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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벽에 맺힌 신앙의 넋

충청 남도 서북부의 중심지에 위치해 행정, 문화, 교통, 체신의 중추이자 서해안 방위의 핵심 역할을 담당해 온 홍성은 그 관할 범위가 넓었던 만큼 순교자들도 많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시대에 홍주부를 두어 관찰사가 주재했던 홍성은 관할 구역만 해도 북으로는 평택 이남, 동으로는 경부선 서부 지역, 남으로는 금강 이북의 22개 군에 이르렀다. 홍성읍의 한복판에 위치하고 있는 홍주 읍성은 전체가 순교 현장이다. 군청, 객사, 동헌 등 구석구석이 처형지로 사용됐던 읍성은 아직도 무심하게 남아 있는 고목들과 함께 당시 교우들이 받았던 엄청난 핍박을 그대로전해 준다.
 
이 지역 순교자들에 대해서는 "치명 일기"에만도 80여 명의 명단이 전해지지만 전체적으로 명확한 기록은 잘 나타나 있지 않다 하지만 관할 지역의 범위와 지리적 위치를 고려할 때 상당수의 교우들이 순교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홍성은 예로부터 최영 장군, 만해 한용운 선사, 백야 김좌진 장군과 사육신의 하나인 성삼문 등을 배출했을 뿐만 아니라 1905년 을사 보호 조약에 의분을 참지 못한 의병들이 순국한 충절의 고장이기도 하다. 홍성의 역사를 찾는 순례자들은 죽음을 무릅쓴 신앙 선조들의 굳건한 신앙과 함께 조국과 민족을 위해 몸 바친 우국 열사들의 향기를 함께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어느 여행길이나 마찬가지이겠지만 홍성을 찾는 순례객들은 미리 지역에 대한 사전 지식을 갖추고 떠나는 것이 유익하다. 특히 단순한 경치 구경을 넘어서 선조들의 향기를 맡으려는 여행자는 목적지의 역사와 유래 등을 진지하게 살펴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홍성에 도착해서 홍주 읍성 내 군청에 들러 간단한 여행 안내 책자를 받으면 개략적으로나마 지역에 대해 알 수 있을 것이다.
 
홍성은 서울에서 출발할 경우 2시간이 조금 넘게 소요된다. 홍성 버스 터미널에서 순교 현장이 홍주 읍성까지는 걸어서 15분 남짓이면 갈 수 있다.
 
홍주성은 홍성읍 한복판, 남산 공원에 쌓은 8백 10미터 규모의 성곽으로 축조 연대에 대한 명확한 자료는 없다. 대원군의 친필이 남아 있는 홍주 아문, 홍주성의 동문인 조양문과 함께 사적 제 231호로 지정돼 있다 .홍주 읍성 내에는 군청과 함께 감옥 터, 객사, 동헌 등이 있어 교우들을 고문하던 곳으로 쓰였고 때로는 처형지로도 이용됐다.
 
홍성읍 시가지를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조양문인데 홍주성을 드나들던 동서남북 4개 문 가운데 유일하게 남은 동문이 바로 조양문이다. 당시 홍주군이 관할하던 넓은 지역에서 붙잡혀 온 교우들은 이 문을 통해 홍주성 안으로 들어갔고 멀쩡하게 걸어 들어갔던 그들은 시체가 되어 성벽 밖으로 던져졌던 것이다. 조양문의 왼편으로 골목을 조금 돌아가면 군청이 나오는데 그 입구에 서 있는 것이 홍주 아문(洪州衙門)으로 여기에는 대원군이 친필로 쓴 현관이 붙어 있다.
 
홍주 아문을 돌아 청사 안으로 들어서면 그 안이 바로 순교의 생생한 숨결이 배어 있는 장소이다. 청사 안뜰에 무심하게 서있는 고목들은 당시 순교자들이 처분만을 기다리며 오랏줄로 꽁꽁 묶여 있던 기둥들이었고 바닥에 깔린 흙 위에는 선조들의 피와 고통이 서려 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이 지역에서 모진 고통을 당하고숨을 거둔 선조들이 누구누구이며 얼마나 많은 지가 명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관할 지역의 규모와 지리적 위치로 볼 때 많은 순교자가 배출됐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홍성군 내의 문서에는 천주교 박해와 관련된 부분들이 전혀 나타나 있지 않아 이에 대한 조사와 정리가 시급하다.
 
일부 성지 안내서와 교구사를 통해 순교자들이 면모를 살펴보면 1866년과 그 후 2년간에 걸쳐 많은 교우들이 순교했고 "치명 일기"에만도 80명의 명단이 기로돼 있으며 그 외에도 무명의 순교자들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록상으로 홍주 지방에서 처음 순교한 사람은 1783년 원 베드로이다. 1797년에 또 큰 박해가 발생하여 이듬해 원 야고보, 배 프란치스코, 방 프란치스코 등이 잡혀 방 프란치스코는 이곳에서 순교하고 나머지는 청주로 이송돼 순교했다고 전해진다.
 
그 외에도 많은 순교자들이 처형되었는데 그 시체는 성 밖으로 내던져졌다. 군청을 나와 왼편으로 약간의 언덕을 거슬러 올라가면 그리 높지 않은 성벽이 나온다. 바로 이 성벽 위에서 우리의 신앙 선조들은 오직 천주를 배반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차디찬 시체가 되어 바닥에 떨어졌다.
 
천주교인들에 대한 혹독한 탄압을 일삼았던 흥선 대원군이 1866년 병인양요와 1871년 신미양요에서 승리하고 그 해 서울 종로와 전국 각지에 세운 척화비(斥和碑)는 홍성에서도 발견된다. 척화비는 홍성읍에서 차를 타고 서산 방면으로 15분 가량 달리면 구항 면사무소 건너편 산자락에 철책이 둘러쳐진 채로 서 있다. 산허리를 돌아 나오는 세찬 세월의 바람에 척화비의 글자들은 점점 희미해지고 있지만 당시의 서슬 퍼런 박해의 기억과 굳은 신앙을 아직도 우리에게 되새기게 해준다.
 
홍성 순례 시 함께 돌아볼 수 있는 주변 관광지로는 수덕사, 덕산 온천, 덕산 도립 공원과 용봉산 등이 있다. [출처 : 주평국, 하늘에서 땅 끝까지 - 향내나는 그분들의 발자국을 따라서, 가톨릭출판사,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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