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자료실 > 한국의 성지와 사적지 > 이선이 엘리사벳 묘

생나무 십자가의 길

1815년 을해년 박해를 피해 숨어든 천주 교인들이 교우촌을 이룬 이래 영남 지방 선교의 요람이 된 신나무골에는 병인박해 당시 큰아들과 함께 작두에 목이 잘려 순교한 이선이(엘리사벳)의 유해가 묻혀있다.
 
생나무를 깎아 만든 14처와 묘소 한쪽에 잘 보존돼 있는 옛 제대가 풍취를 더해주는 순교자 이선이의 묘소 앞에 서는 순례자들은 여린 아낙이면서도 장정네들 못지않은 굳건한 신앙을 보여 준 그의 생전 모습을 보는 듯한 느낌을 갖는다.
 
원래 이선이의 유해는 그가 병인박해 때 포졸들에게 쫓기다 체포돼 한티에서 순교한 뒤 대구시 북구 읍내동(안양동) 산21번지에 위지한 선산에 모셔져 있었다. 그러다가 신나무골 성역화 사업의 일환으로 1984년 왜관 성 베네딕도 수도회의 주선으로 이곳 신나무골로 이장된 것이다.

성지 입구 표지판

아래서 본 묘역 전경

순교자 묘역 전경

순교자 묘역 전경

이선이의 남편인 성산 배씨(星山裵氏) 배정모는 원래 성주가 고향이었으나 칠곡으로 옮겨 와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그리 넉넉하지는 못했으나 착실한 신앙 생활을 해 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던 중 1861년 경상도 지방에 박해가 일어났는데 칠곡읍은 특히 칠곡 고을을 중심으로 관아(官衙)가 있었기 때문에 신자들에 대한 감시가 꽤 심했다. 배씨 가족은 박해를 피하기 위해 칠곡읍에서 20여리 떨어진 신나무골로 피난을 했지만 이곳에도 포졸들이 들이닥쳐 신자들은 경황없이 뿔뿔이 흩어졌다.
 
배정모와 부인 이선이 그리고 세 아이는 한티 쪽으로 총총히 쫓기는 발걸음을 서둘렀다. 2월의 매서운 겨울 바람 속에서 이들은 갖은 고생 끝에 한티의 사기굴이라는 곳에 도착해 잠시 숨을 돌렸으나 결국은 뒤따라 온 포졸들에게 잡히고 만다.
 
굴 밖으로 끌려 나온 이들을 향해 포졸들이 "성교를 버리지 않으면 죽여 버리겠다."고 엄포를 놓자 겁에 질린 배정모는 배교를 하고 풀려난다. 하지만 부인 이선이와 맏아들 배도령은 "죽어도 성교를 믿겠다."고 하며 신앙을 지킨다. 그 대가는 너무도 가혹했다. 포졸들은 그 자리에서 시퍼런 작두날로 이들의 목을 잘라 모자가 한자리에서 순교하게 된다.
 
남편은 가슴을 후벼파는 뼈저린 아픔 속에 부인과 맏아들의 시체를 그 자리에 묻었다가 얼마 후 선산이 있는 칠곡의 안양동으로 부인의 시체만 이장했다. [출처 : 주평국, 하늘에서 땅 끝까지 - 향내나는 그분들의 발자국을 따라서, 가톨릭출판사, 1996]

위에서 본 묘역 전경

순교자 묘소

순교자 묘비

옛 돌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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