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자료실 > 한국의 성지와 사적지 > 둔토리(서 루도비코 신부 은신 동굴)

고개가 절로 숙여지는 동굴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와 의왕시를 잇는 342번 지방도 중간쯤에서 위로 올라가 서울 외곽 순환 고속 국도 밑의 터널을 지나 국사봉 등성이를 오르면 1866년 병인박해 당시 새남터에서 순교한 서 루도비코(볼리외, Beaulieu) 신부가 박해를 피해 숨었던 동굴이 나온다.
 
조선에 입국한 선교사들 중에 가장 어린 나이인 26세에 혹독한 박해의 칼날에 목을 떨군 성 볼리외 신부가 은신해 있던 이 동굴에는 박해의 퍼런 서슬에 맞서 오로지 복음 선포를 위해 낮선 이국 땅에서 숨죽이고 지내야 했던 짧은 삶, 그러나 뜨거운 신앙의 열정으로 불탔던 성인 신부의 자취가 서려 있다.
 
조선 땅에 발을 들인 지 겨우 9개월, 그 짧은 시간을 위해 그는 고국인 프랑스에서 이곳 조선까지 무려 10개월의 여정을 멀다 않고 찾아왔다. 그렇게 어렵사리 도착한 조선 땅에서 그는 행여 누가 볼세라 상복 차림으로 산과 들길을 발이 부르트도록 걸어 박해의 그늘 아래 숨어 있던 교우들을 찾아 헤매 다녔다. 그리고 마침내는 관헌에게 붙잡혀 새남터에서 세 차례에 걸친 회광이의 칼부림 끝에 장엄하게 순교했던 것이다.
 
1840년 프랑스 보르도 교구의 랑공(Langon)에서 태어난 그는 1857년 보르도 신학교에 입학해 1862년 부제품을 받은 후 이듬해 파리 외방 전교회에 입회했고 1864년 사제품을 받음과 동시에 조선에 선교사로 파견된다. 그 해 7월 프랑스를 출발한 볼리외 신부는 다음해 5월 27일 열 달이 넘는 긴 여행 끝에 비로소 조선 땅에 도착한다.
 
조선말을 배우기 위해 한양에서 몇 십리 떨어진 조그만 교우촌에 머물러 있던 볼리외 신부는 병인박해가 시작되던 1866년 2월 성무를 수행하는 데 어려움이 없을 정도로 조선말에 능숙해 있었다. 이에 따라 베르뇌 주교는 그에게 한양에서 동남쪽으로 수십리 떨어진 경기도 광주(廣州) 지방을 임지로 맡긴다.
 
볼리외 신부가 짐을 꾸려 막 임지로 떠나려 할 무렵, 한양으로부터 베르뇌 주교가 체포되었다는 소식이 당도하고 그는 있던 집을 떠나 그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이씨성을 지닌 다른 교우의 집으로 몸을 피한다.
 
그로부터 며칠 후인 2월 27일 새벽, 한 무리의 포졸들이 둔토리(현 경기도 광주군 대왕면)에 있는 이씨의 집을 에워쌌다. 베르뇌 주교를 밀고한 교우의 말에 따라 묘론리(현 성남시 운중동)로 내려온 포졸들이 세례 받은 지 얼마 안 된 한 교우의 인도로 들이닥친 것이다.
 
이미 모든 것을 각오하고 조금도 굽힘이 없는 태연한 자세로 포졸들의 뒤를 따른 볼리외 신부는 뒤이어 붙잡힌 도리 신부와 함께 이튿날인 28일 한양으로 압송된다. 양손이 붉은 줄로 가슴 위에 묶이고 머리에는 중죄인이 쓰는 모자를 쓴 두 신부는 들것에 실려 바야흐로 순교의 영광된 길을 떠난 것이다.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신앙을 드러내며 혹독한 고문을 당한 볼리외 신부는 결국 3월 7일 베르뇌 주교, 브르트니에르, 도리 신부와 함께 새남터 형장으로 끌려 나갔다. 세 번째 칼날에 그의 목은 떨어지고 머리는 사흘 동안 그곳에 높이 달려 효수(梟首)되었다가 몇몇 교우들이 시신을 거두어 왜고개로 옮겼다.
 
스물여섯의 꽃 같은 나이에 순교한 그는 1968년 로마 베드로 대성당에서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시복되고 이어 1984년 5월 6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품에 올려졌다. [출처 : 주평국, 하늘에서 땅 끝까지 - 향내나는 그분들의 발자국을 따라서, 가톨릭출판사,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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