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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후배들과 함께 누워

경남 김해군 진영읍의 진영 성당 공원 묘지에 안장돼 있는 신 말구의 묘소에는 1976년부터 매년 9월 26일 순교자 축일에 마산 지구의 신자들이 모여 순교자 현양 미사를 봉헌한다.
 
1866년 병인박해의 와중에서 순교한 그의 유해는 원래 장방(노루목)의 도둑골(김해군 이북면 장방리) 야산에 가매장되어 있었다. 진영 본당 신자들은 매년 9월 26일 가매장지에서 미사를 봉헌해 왔으나 그 후 1975년 12월 1일 진영 본당 공원 묘지에 이장했고 이듬해부터 현양 미사를 이곳에서 봉헌해 왔던 것이다.
 
순교자 신 말구(1827-1866년)는 밀양군 하남읍 명례리에서 출생했다. 비교적 넉넉한 살림의 짐안에서 태어난 그는 누룩 행상을 하면서 천주를 지극히 공경했다.
 
1866년 병인박해가 한바탕 휩쓸고 간 뒤 정월 하순경에 누룩을 팔기 위해 웅천장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던 중이었다. 해 질 무렵 그가 태어난 명례리 가까운 가산동(김해군 이북면 가동)에서 그는 대구에서 내려온 포졸들에게 체포되고 만다.
 
그가 천주학쟁이로 관헌에 의해 붙잡혀 가자 동네 사람들은 매우 놀랐고 서학도에 대한 처벌이 어떤 것인가를 잘 알고 있었던 그의 가족들은 행여 그 불똥이 자신들에게로 튈까 염려해 몹시 불안에 떨었다.
 
포졸들은 신 말구를 잡아가면서 뇌물 생각이 났던지 사람을 시켜서 "죄수를 구하려면 금동(밀양군 상남면 금동) 주막까지 나오라."고 전했다. 하지만 그의 형제들은 아직 비신자였고 나라에서 외국의 종교를 믿는 사람은 모두 죽인다는 이야기를 전해듣고 겁이 나 그 장소에 나가지 않았다. 그들은 천주교를 믿는 동생으로 인해 자신들의 신상과 가문에 닥칠지도 모를 후환을 두려워했던 것이다.
 
결국 그는 대구 감영으로 압송되고 온갖 가혹한 고문과 형을 받는다. 하지만 굳은 신앙으로 고통을 이겨 내고 신앙을 증거했다. 신앙을 굽힐 수 없었던 그는 마침내 1866년 2월 27일(음력)에 39세의 나이로 순교한다.
 
그 후 그의 아들인 이냐시오가 돈을 가지고 대구로 가서 부친의 시신을 찾아 고향으로 운구해 왔으나 신씨 문중에서는 그를 고향에 안장할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한다. 이에 따라 그는 부득이 야산에 가매장했고 그 후 진영 본당 공원 묘지로 이장했다.
 
한 가지 불행한 일은 그의 행적이 자세히 전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본인은 물론 부모 형제의 이름, 생년 월일, 입교 시의 상황이 전혀 기록에 남아 있지 않다. 뿐만 아니라 "병인 일기"의 기록에 의하면 그의 본명이 이냐시오로 나오는데 실제로는 그의 아들이 이냐시오이고 순교자는 말구 였다고 전해진다.
 
신 말구의 미망인은 그 후로도 오랫동안 명례리에서 살았고 후손은 아들 이냐시오에게서 아들 4형제가 났고 그의 4대 후손이 명례리 상촌의 현지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고 한다. [출처 : 주평국, 하늘에서 땅 끝까지 - 향내나는 그분들의 발자국을 따라서, 가톨릭출판사,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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