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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기정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3월 25일)

어느 때보다 어렵고 힘들게 사는 사람들이 많은 시기이다. 여전히 넉넉한 사람들은 그리 힘들지 않다지만, 여러 가지 여건과 이유로 힘들고 마음 아픈 일을 겪는 이들이 결코 적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많은 이들이, 고통스러워도 새로운 변화를 겪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저마다 자기 주장을 내세우지만, 어떤 경우에는 낙담하기도 한다. 어깨가 무겁고 힘이 빠진다.
 
이럴 때 어디선가 희망적인 이야기가 들려오면 얼마나 기쁠까? 실의에 빠진 이들은 희망의 이야기를 기다린다. 희망이 있다면 이들은 더없이 기쁠 것이다. 힘들고 어려울 때에는 위로와 용기를 주는 이야기, 희망을 전해주는 소식을 듣고 싶어한다. 우리는 지금 이 시대에 그런 소식을 기다리고 있다. 곧 미래가 열려있는 새로운 삶을 기대하고 있다. 그런 소식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데 그 소식이 들려온다면, 우리는 입가에 웃음을 띠게 되고 내심 기뻐할 것이다. 우리는 희망의 소식을 기다린다.
 
희망의 소식, 희망을 전하는 소식, 그래서 우리에게 기쁨이 되는 소식이 전해지면 얼마나 좋을까. 사람들은 누구나 이런 소식을 기다린다. 각 개인이 그렇고, 가족이 그렇고, 단체들이 그렇고, 한 사회, 더 나아가 한 민족이 그런 소식을 기다린다. 옛 이스라엘 사람들 또한 그러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집트를 탈출한 뒤 하느님과 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오랜 세월 동안 구세주이신 메시아를 기다려왔다. 수많은 핍박과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희망을 갖고 기다렸다. 그들은 희망이 있었기에 그런 어려움과 고통 속에서도 실망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희망이 드디어 이루어졌다.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그 약속에 대한 희망이 실현될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은 주님의 탄생을 미리 알리는 사건을 기념한다. 주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이루어주실 것이라고 기다리며 희망하던 것이 이제 이루어지게 되었다. 매우 큰 기쁨의 소식이다. '예수 성탄 대축일'이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을 기뻐하고 기념하는 것이라면, 그 예수님께서 탄생하실 것이라는 기쁜 소식을 가브리엘 천사가 성모님께 알려준 사건은, 기다리던 희망이 이루어지게 되고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것이 성취됨을 기뻐하고 기념하는 것이다.
 
이 축일은 이러한 역사를 갖고 있다. 이 축일은 예수 성탄으로부터 꼭 아홉 달 전에 기념하고 축하한다. 그래서 3월 25일이라는 날짜가 나왔다. 로마 교회에서는 이 축일을 7세기 후반부터 '주님의 예고(Annunciatio Domini) 축일'이라는 이름으로 기념하였다. 하지만 이후 세기들부터 '성모영보 축일' 또는 '수태고지 축일'(Annunciatio beatae Mariae Virginis)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천년 이상을 지내게 되었다. 성모 신심과 더불어 이 축일이 주님의 축일에서 성모님 축일로 바뀌게 된 것이다. 그러다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전례력에는 본래대로 '주님 탄생 예고'라는 이름을 사용하여 이 축일의 의미를 되찾게 되었다.
 
이 축일은 대부분 사순시기 중에 지내게 된다. 그래서 부활을 준비하는 사순시기에 성탄을 준비하고 기다리는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을 거행하는 것이 주제가 서로 연결이 잘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주님 탄생의 기다림에 대한 희망이 성취되는 기쁜 소식이 전해진 것을 축하하고 기념하는 것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우리 로마 교회에서는 성주간과 성삼일이 아니면, 이 대축일을 장엄하게 지낸다. 또 동방 비잔틴 교회에서는 사순절을 중요하게 생각하여 토요일이 아니면 다른 축일 거행을 허락하지 않았지만, 이 축일은 예외로 성주간과 성삼일에도 지내도록 하고 있다. 그만큼 이 축일은 주님의 축일로서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주님의 성탄 대축일을 중심으로 앞부분은 대림시기가 마련되어 있다. 성탄시기는 주님의 공현과 주님의 세례 축일까지 연결된다. 더 나아가 주님의 봉헌 축일(2월 2일)로 그 의미가 확대되고, 또 거기에 앞서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3월 25일)로 일찍부터 준비된다.
 
우리는 지금 사순시기를 지내지만, 오늘의 축일은 예수 성탄과 연결된다. 우리는 예수 성탄 대축일을 지내면서, 주님께서 오셔서 우리와 '함께 계심'을 묵상하고 그 의미를 되새겼다. 그리고 그날처럼 나날의 신앙생활이 '주님께서 함께 계시는' 성탄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였다. 그렇다. 오늘 '탄생 예고'에서부터 '주님 봉헌'의 그날까지 나날이 성탄일 수 있다. 우리가 그 축일들의 의미를 연결하여 묵상한다면, '메리 크리스마스'가 '매일 크리스마스'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주님께서 '사람'이 되어 오시겠다고 알려주셨다. 구세주께서 오신다는 것은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성모님은 그 기쁜 소식을 온 몸과 마음으로 받아들이셨고, 하느님의 뜻에 순응하셨다. 우리도 이 축일을 지내면서, 희망의 기쁜 소식이 전해졌음을 기억하자. 힘들고 어려운 이때에 전해주는 희망의 소식이다. 주님께 '예' 하고 그 소식에 귀기울이고 온 몸과 마음으로 받아들이자. 그래서 이 힘겨운 시대에 사순절의 의미와 함께 희망차고 용기있는 신앙생활을 다짐해 보자.
[이글은 대구대교구 나기정 신부님께서 경향잡지(1999년 3월)에 기고하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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