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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기정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잔칫집에 가면, 사람들이 모여서 그 잔치의 주인공을 축하해 준다. 그리고 그날 잔치의 기쁨을 나누고 음식도 나눈다. 음식을 나누는 것은 기쁨을 함께 나누는 일이 된다. 옛날에는 잔치가 끝나면 하객들이 떠나갈 때 잔칫집에서 음식을 싸주기도 하였다. 대접받은 것만 해도 고맙고 기쁜 일인데, 집에 가서 다른 이들과 나누라고 음식까지 싸주는 것이었다. 근래에는 이것이 없어지고 답례품이나 기념품 같은 것으로 대신하기도 하는데, 가정의례준칙으로 금지한 때도 있었다.
 
이렇게 옛 전통의 잔치는 단순히 음식을 나누는 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하객들에게 잔치 음식을 싸서 나누어줌으로써, 하객들은 그 음식을 집에서 가족들과 또다시 나누게 된다. 그러면 그 가족들은 음식을 나누면서 잔치에 관한 이야기로 기쁨을 또다시 나누게 된다. 이것은 우리 전통의 아름다운 풍습이었다. 잔치와 축제의 기쁨을 축하객들의 가족에게까지 확대시켰던 조상들의 깊은 지혜를 엿볼 수 있다.
 
우리가 가진 것을 나누는 것은 좋은 것 같다. 옛말에 기쁨은 나눌수록 커지고 슬픔은 나눌수록 작아진다고 하였다. 우리는 부활시기를 지내면서, 생명이 가져다주는 기쁨을 나누었다. 마치 한 아이의 탄생에 온 가족이 기뻐하듯이, 또 죽을 고비를 넘기고 살아난 사람의 가족들이 기뻐하듯이 새 생명에 대한 기쁨을 나누었다. 그리고 50일 간에 걸쳐 오랫동안 그 기쁨을 나누고 축제를 거행하였다. 여덟번째 되는 주일에 우리는 성령 강림 대축일을 지내고 부활시기를 마감하였다. 이제 성령께서 우리 교회 안에 머물러 계시고 함께 계신다.

남양 성모성지 조배실 감실

공세리 성당 조배실 감실

사당5동 성당 감실

새남터 성지 성당 감실

그런데 부활시기가 끝나고 이어지는 주일들에 계속해서 주님의 축일들을 지낸다. 성령 강림 대축일 다음 주일이 '삼위일체 대축일'이다. 이 대축일은 하느님 아버지, 성자 그리스도의 구원사업(파스카 사건) 그리고 성령 강림으로 삼위일체의 신비가 드러난 것을 기념하는 신학적 축제이다. 또 그 주간 목요일은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이 대축일을 성대하게 지내려고 주일로 옮겨서 지낸다.
 
이 축제는, 이제 성령 강림으로 온전히 태어난 교회가 성체성사의 신비를 중심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말해주는 축제이다. 파스카 신비를 통해 교회는 온전히 주님의 힘으로 산다.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이시고,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교회 안에 성령이 함께 계신다. 마치 몸 안에 영혼이 있는 것과 같다. 그리고 교회의 자녀들은 하느님을 아버지로 모신다. 이제 이 몸은 그리스도의 몸, 곧 성체이다. 그래서 교회의 본질은 성체성사인 것이다. 이제 믿는 이의 몸(교회)은 자신의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능력으로 사는 것이다. 이것을 기념하고 축제를 지내며, 잔치를 벌이는 것이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이다.
 
그렇다면 이 축일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본래 이 축일은 13세기에 성체께 대한 신심에서 유래되었다. 당대에는 성체 신심이 많이 실천되던 시대였다. 또 이 시대에 오르비에토(Orvieto)에서 성체성사의 기적도 일어났다. 여행을 하던 한 사제가 성체성사에 의심을 품고 미사를 봉헌하던 중 빵과 포도주가 실제의 살과 피로 변하는 사건이 일어났던 것이다. 우르바노 4세 교황은 교서를 반포하고 이 축일을 이날 목요일에 지내도록 결정했다. 그리고 14세기에 와서 전 교회가 모두 이 축일을 지내게 되었다. 이것은 성체성사가 분명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준 기적 사건이다. 또 이 사건과 신자들의 신앙 때문에 교회가 자신의 몸(교회)에 대한 축제를 지내게 된 것이다.

둔촌동 성당 감실

요나 성당 감실

초당 성당 감실

죽산 성지 대성당 감실

이날 축제는 더할 나위 없이 '성체'께 대한 것이다. 주일마다 교회 공동체가 미사를 봉헌하는 것이 이미 '성체성사'의 신비를 드러내는 것이지만, 이날은 이를 특히 더 강조한다. 이날 독서의 내용은 모두 성체성사의 신비를 말해준다. 구약 독서는, 멜기세덱의 제사(가해), 시나이산의 계약제사(나해), 사막에서 만나를 먹음(다해)으로 성체성사에 관한 구약의 예형들이다. 또 복음은 생명의 빵에 관한 예수님의 설교(가해), 최후만찬(나해), 빵을 많게 한 기적(다해)으로 성체성사에서 말하는 '나눔의 의미'를 잘 나타내주고 있다.
 
성체성사의 의미는 명료하다. 나눔의 신비이다. 생명의 빵에 관한 말씀이나 최후만찬 이야기, 또는 빵을 많게 한 기적에서 보듯이 기적은 '나눔'에서 생긴다. 생명은 기쁨이며, 기쁨은 나누어야 더 커지고 많아진다. 그게 기적이다. '모인 이들 우리끼리만' 나누고 즐기는 것이 아니다. '우리'라는 범위에 한정되지 않는다. 마치 잔칫집과 같다. 집으로 돌아가는 하객들이 잔치 음식을 싸들고 가듯이, 우리도 또다시 나눌 기쁨을 싸들고 세상에 나아가 '다른 이들'과 나누어야 한다. 자신의 '몸'을 '생명'이 되는 '음식'으로 내어주신 그리스도, 그분께서 우리에게 주신 나눔의 신비를 오늘 묵상해 보자.
[이글은 대구대교구 나기정 신부님께서 경향잡지(1999년 6월)에 기고하신 글입니다.]

성체 성혈 대축일
 

성체 성혈 대축일
 

성체 성혈 대축일
 

성체 성혈 대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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