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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기정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성 금요일 주님 수난 예식

사람은 '태어났다.'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태어났다. 그런데 어느 누구도 자신이 태어날 때 스스로 동의해서 태어난 사람은 없다. 그렇게 사람의 생명은 인간의 의지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다. 생명은 하느님께서 주신 것이다.
 
누구나 태어나듯이 또한 죽음을 맞는다. 죽음은 탄생과 마찬가지로 생의 한 가지 절차이다. 필연적이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자신의 죽음의 때를 알지 못한다. 죽음을 맞이하는 일은 분명하지만 그 때를 알지 못하고, 자신의 의지로 이루어지는 일 또한 아니다. 죽음은 하느님께서 주신 생명을 거두시는 것이다.
 
삶과 죽음은 필연적이다. 누구나 분명하게 겪어야 하는 절차이다. 또한 삶과 죽음은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 있다. 자신의 의지로 태어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자기 죽음의 때를 알지 못한다. 그것은 분명 하느님의 영역에 속하며, 한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우리는 왜 사는가?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또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 하는 의문을 가진다. 삶을 이해하려면 죽음의 의미를 깨달아야 한다. 삶과 죽음은 동일한 관점에서 이해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죽음의 의미를 어떻게 깨달을 수 있을까? 살아있으면서 삶의 의미도 잘 이해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죽어본 적도 없으면서 죽음을 깨달을 수 있는가?
 
교회는 일년 연중을 지내면서 죽음을 자주 묵상한다. 특히 죽은 이들을 기억하는 위령성월(11월)과 위령의 날(11월 2일)이 그렇다. 성인들의 축일도 모두 그들이 죽은 날이다. 곧 하느님 나라에 새로 태어난 날로 이해한다. 특히 인간이 되어 오신 그리스도의 죽음을 기억하는 날이 있다. 사순시기의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성삼일을 지내는데, 그 첫째날인 성금요일이다. 교회는 이 날 그리스도의 죽음을 묵상하면서 그리스도의 부활을 준비한다. 그리스도께서 인간으로서 죽음을 당하셨고, 그 죽음으로 부활의 새 생명을 우리에게 보여주셨다.
 
이렇게 죽음의 의미는 생명을 지향한다. 그리스도께서 인간이셨기에 인간이 당하는 온갖 고통과 죽음까지도 그대로 다 맞이하신 것이다. 그 죽음을 묵상함으로써 참 삶의 의미를 깨닫는다. ① 죄의 결과는 고통이며 고통은 죽음을 가져온다. 인간이 저지른 모든 죄, 인류의 모든 범죄를 대신하여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을 당하셨다. ② 죽음으로 생명을 가져다주신다. 예수님께서 몸소 당신의 죽음으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다는 것을 직접 행하셨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한 묵상이다.
 
죽음, 특히 그리스도의 죽음은 우리에게 커다란 의미를 일깨워주고 있다. 그래서 초세기 교회 때부터 성금요일 전례를 매우 깊이 있게 기념하고 거행하였다.
 
4세기말 예루살렘에서 성금요일은 순례지를 돌면서 그리스도의 죽음을 묵상하며 기도하는 날이었다. 먼저 예수님께서 최후만찬을 거행하셨던 다락방에서 기도한다. 여기에는 예수님께서 채찍질을 당할 때 묶였던 돌기둥이 있는데, 여기서 그리스도의 수난과 고통을 묵상한다. 또 골고타로 자리를 옮겨서 기도하는데, 신자들이 경배할 수 있도록 십자가 나무를 보여주고, 각 순례지점마다 신자들은 수난에 관한 예언서와 복음을 읽고 시편을 노래하며 기도하였다.
 
7세기에 와서는 제대 위에 십자가를 현시하고 말씀 전례를 거행한 다음, 십자가 경배와 친구를 하였다. 이어 주님의 기도를 합송하고 십자가를 경배하며 성체를 영하였다. 이렇게 오늘날 성금요일 전례의 틀이 잡히게 된다.
 
성금요일의 전례는 시작예식 없이, 간단한 경배와 기도를 하고, 말씀 전례, 십자가 경배, 영성체 등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말씀 전례'는 '우리 죄 때문에 상처를 입으신 구세주'(제1독서, 이사 52-53장)와 '예수께서 복종하는 것을 배우심으로써 당신에게 복종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구원의 근원이 되셨다.'(제2독서, 히브 4-5장)는 내용으로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우리 죄를 대신하는 구세주이심을 밝혀준다.
 
복음은 요한의 수난 복음으로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드라마틱하게 입체 낭독함으로써 현장감 있게 생생하게 주님의 죽음을 묵상한다. 아울러 보편 지향 기도(신자들의 기도)로써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은총이 무엇이며, 우리가 실천이 부족하기 때문에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며, 죽음의 의미를 우리 생활 안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를 일깨워준다.
 
'십자가 경배'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묵상하는 절정에 속한다. 이 경배 때 우리를 위하시는 그리스도의 희생과 고통, 그리고 수난과 죽음의 절정으로 보여주신 크나큰 사랑의 마음을 읽어야 한다. 그 사랑의 힘으로 우리의 삶을 살아야 한다.
 
성금요일은 그야말로 대단식의 날이다. 금식과 금육으로 몸을 비우고 따라서 마음을 비운다. 주님 부활의 새 생명을 향하는 관문인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이 날 우리의 죽음도 함께 묵상하고 우리의 삶을 되살려보자.
[이글은 대구대교구 나기정 신부님께서 경향잡지(2002년 3월)에 기고하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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