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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기정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성 목요일 주님 만찬 미사

요즈음의 텔레비전 드라마는 청춘 남녀들의 사랑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물론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다른 종류의 사랑 이야기도 적지 않다. 부모와 자식 간의 깊은 사랑 이야기며, 스승과 제자 간의 사랑 이야기도 있다. 어린 시절 추억의 순수한 우정도 있고 노년의 진정한 이해와 포용을 다룬 이야기도 있다. 그런데도 젊은 남녀들의 성숙하지 못한 사랑이나 잘못된 생각의 사랑 이야기를 펼치는 것은 그런 이야기 전개를 거쳐서 사랑의 본질, 본래의 의미를 찾아가려는 의도인 것 같다. 이런 종류의 미성숙한 사랑 이야기에서는 흔히 사랑의 본래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해서 일어나는 갈등이나 부작용을 묘사하고 있다. 특히 사랑에 대한 이해가 자기 중심적일 때, 상대편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때, 완력으로 밀어붙일 때 그런 갈등이 생겨나고 참사랑의 관계가 잘 설정되지 못하는 것을 본다.
 
그렇다. 참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다.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내어주는 것이다. 상대를 불편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다. 우월한 위치에서 상대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겸손하게 낮추는 것이다. 내 입장에서 사물을 대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입장을 항상 생각하고 위해준다.
 
우리는 사순절을 지내고 있다. 사순절이 막바지에 이르면 부활을 맞이하는 데 가장 가까운 시기가 '성삼일'이다. 부활절은 교회 생활 절기의 절정이며,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내어주신 크고 깊으신 사랑을 드러내주는 결정판이다. 성삼일은 여기에 가장 근접한 준비기간이다. 성삼일은 성목요일, 성금요일(주님 수난 금요일), 성토요일(부활 성야)이다. 이미 사순시기를 통해 하느님의 사랑인 은총과 축복을 체험하지만, 이 성삼일 동안 그 사랑의 구체적인 모습을 경험하게 된다. 부활 성야를 앞둔 성금요일에 '모든 것을 희생하신'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제사를 묵상한다면, 성목요일에는 당신 자신을 '무한히 낮추시고 내어주신' 그리스도의 겸손한 사랑을 묵상한다.
 
그렇다면, 성목요일의 경우 이날을 기념하는 역사는 어떤 과정을 거친 것일까? 본래 성삼일 전례는 예루살렘의 전례에서 유래하였다. 예루살렘 순례지에서 부활을 앞두고 거행하였던 전례였다. 그래서 성사적 전례가 아니라, 교리교육적이며 신비교육적인 전례이다. 성목요일이 되면 예루살렘의 '순교 성당'(Martyrium)에서 두 번의 미사를 거행하였다. 첫째 미사는 사순시기의 단식을 마감하는 미사였다. 사실 단식을 실천하였던 수난시기에는 성찬례를 거행하지 않았다. 그것은 성찬례가 이미 '먹고 마시는 잔치'이므로 단식 중에 거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미사는 특히 사순시기 동안 이름을 등록하고 실천하였던 '참회자'들과 공동체의 화해 예식으로 마련된 것이기도 하였다.
 
지금 이야기할 것은 두번째 미사이다. 이 미사는 특히 골고타의 십자가가 서있던 자리에서 거행하였으며, 주님의 성찬제정을 기념하는 '만찬 미사'를 지냈다. 이렇게 시작한 성찬제정 기념 미사는 단식 마감 미사와 이미 구별하여 거행하였다. 로마에서 4세기까지는 성목요일을 참회자를 위한 화해의 날로 지냈지만, 7세기경에는 아침의 단식 마감 미사와 저녁의 만찬 기념 미사를 거행하였다. 이때에는 말씀 전례 없이 봉헌 예절부터 시작하였으나, 오늘날에는 말씀 전례와 함께 온전한 미사 형태를 띠게 되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미 7세기 때부터 만찬 미사에서 거행했던 '발을 씻어주는 예식(세족례)'이다. 이 예식은 예수께서 최후 만찬에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것을 그대로 재현하고 기념하는 예식이다. 미사 때마다 주님께서 거행하신 당신의 성찬례를 기념하고 그대로 재현하듯이 똑같이 거행한다. 스승이신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것이다. 다른 사람의 발을 씻어주는 것은 매우 깊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유다인들은 높으신 어른이 먼길을 왔을 때, 귀하신 손님을 맞았을 때 집주인은 그를 맞아 발을 씻어주는 전통을 갖고 있었다. 귀중한 손님으로 맞아들이는 것이며, 그분을 위해 '봉사할 자세'를 갖추었음을 행동으로 보이는 것이기도 하였다.
 
그런데 최후만찬에서 예수님의 이 행위는 상황이 다르다. 제자들이 스승의 발을 씻어드린 것이 아니라, 스승이신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셨다. 그것은 예수께서 제자들에 대한 당신의 사랑이 당신을 무한히 낮추신 겸손한 사랑이며, 온전히 당신 자신을 내어주시는 사랑이며, 봉사받는 자기 중심이 아니라 상대편을 이해하고 봉사하는 사랑임을 행동으로 몸소 보여주신 것이다. 그리고 당신이 하신 행위에 대해 덧붙여 말씀하신다. "스승이며 주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어주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일을 너희도 그대로 하라고 본을 보여준 것이다"(요한 13,14-15).
 
서로의 발을 씻어주는 일, 이것은 사랑의 참모습이다. 이 예식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몸과 피'를 우리에게 음식으로 내어주신 사랑의 모습을 이해할 수 있다. 또 성금요일에 기념하게 될 '십자가의 희생제사', 곧 당신의 모든 것을 바치고 내어주신 주님의 크신 사랑도 더 잘 이해하게 된다. 우리는 주님 만찬 미사와 세족례를 통해 자신을 무한히 낮추시고 당신을 모두 내어주신 주님의 깊은 사랑을 묵상해 보자. 이웃을 사랑한다고 말하고 실천할 때도 진정 그들의 발을 씻어줄 수 있는 겸손한 마음과 봉사의 자세로 사랑을 베풀도록 해보자.
 
부활은 생명의 승리로 기뻐하는 날이지만, 우리의 생명을 살리고 기쁨이 되게 하는 것은 '봉사하는 겸손한 사랑'이기 때문이다.
[이글은 대구대교구 나기정 신부님께서 경향잡지(1999년 4월)에 기고하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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