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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기정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대영광송

우리 나라 사람들은 노래를 잘하는 민족이라고 말한다. 그만큼 노래와 가깝게 지내고 일상에서 노래를 자주 한다는 말이다. 시내에 나가보면 노래방이 참 많은 것을 보고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노래는 인간의 감정을 음악적으로 가장 잘 표현하는 것이라 한다. 기쁨과 슬픔, 애절함과 성취감, 또는 사랑과 안타까움이나 비난과 힐책 같은 인간의 소소한 감정을 운율과 함께 가락에 맞추어 음가를 붙여 표현한 것이 노래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노래는 인간의 감정을 잘 담아내는 그릇이다. 노래를 통해 그 감정을 잘 묘사하는 것이다.
 
미사 때에는 노래를 많이 한다. 노래를 통해 하느님께 대한 우리의 감정과 느낌, 곧 사랑과 흠숭의 마음을 표현한다. '대영광송'도 흔히 노래로 부른다. 그것은 노래하기에 가장 적합한 것이기 때문에 노래하는 것이다. 대영광송은 '영광을 드리는 노래', 그것도 크게 노래하기에 '대(大)영광송'이라 부르는 것이다.
 
미사 전례서 총지침에서 말하기를, "① 모든 교우들이 노래하거나, ② 교우들과 성가대가 교대로 노래하거나, ③ 또는 성가대만이 노래한다. 또 ④ 노래하지 못할 경우 교우들이 함께 읽든지 교대로 읽는다."(31항)고 밝히고 있다. 대영광송은 그만큼 노래로 불러야 제 맛이 나고 이 성시를 가장 잘 표현하는 것이 되므로 노래로 부르기를 힘주어 강조하는 것이다.
 
그러면 왜 노래로 불러야 하는 성시인가. 그것은 대영광송의 내용을 잘 살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이 노래는 크게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천사의 노래, 하느님을 찬양하는 노래, 그리스도를 찬양하는 노래, 영광의 노래이다.
 
① 천사의 노래는 "하늘 높은 데서는 하느님께 영광 …"이라고 예수님의 성탄을 노래하는 성서구절(루가 2,14)이다. 하늘은 하느님의 영광으로 가득 차고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당신의 수난과 부활로 인류를 구원하셔서 그 영광이 땅에서도 빛난다는 말이다.
 
② 이어서 하느님을 찬양하는 대목은 '찬미, 찬양, 찬송, 기리다' 등 다양한 표현으로 말하고 있다. 아울러 하느님께 대해 여러 가지 호칭을 사용한 것은 하느님께 대한 신앙의 표현이 또한 그러하다는 말이다.
③ 그리스도를 찬양하는 노래도 마찬가지이다. 그리스도께 대한 호칭은 '하느님의 어린양', '성부의 아드님' 등으로 예수님의 본질과 신분을 장엄하게 표현한다. 또 그리스도 '홀로' 거룩하시고, 주님이시고, 높으시다고 밝힘으로써 예수님께서 절대적인 분이심을 고백한다.
 
④ 마지막 영광송 부분은 성삼위께 영광을 드리는 노래이다. 주요 기도나 찬미가를 항상 영광송으로 끝맺던 오랜 유다의 관습에서 나온 것이다. 이렇게 대영광송은 처음부터 끝까지 '영광을 드리는 노래'로 일관되어 있다. 그래서 대영광의 노래이다. 하느님(성부)과 그리스도(성자)께 드리는 영광의 노래이다.
 
또 이 노래를 미사 안에서 부르게 된 역사를 보면, 얼마나 교회 공동체가 대영광송을 '노래'하기를 갈망했는지 알 수 있다. 초세기에 시편이나 성서 찬가를 닮은 성가가 많이 나왔는데 대영광송도 그중의 하나였다. 동방교회에서 먼저 시작했다가 4세기경에 서방교회로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 먼저 교황이 집전하는 성탄미사에만 사용하다가 점차 주교가 집전하는 성탄과 부활 미사에도 사용하게 되었다. 6세기에는 주일과 순교자 축일로 확대되었으며, 7세기 이후에는 새 사제의 첫미사에도 불렀다.
 
11세기 말에 와서 오늘날처럼 모든 주일과 축일까지 확대하여 부르게 되었다. 대중적인 노래로서 교회가 주님 찬양을 노래하는 데 열정을 갖고 있었기에 그렇게 된 것이다. '주님의 영광'에 대해 마음속에서 넘치는 기쁨과 환희를 표현하려는 열망이 자주 노래하게 만든 것이다. 하느님께서 크고 훌륭한 일을 하셨기에 존경(공경)심이 생기고, 하느님의 자녀로서 자랑스럽고 대견하게 생각하고, 든든하고 가슴 뿌듯한 감정이 있기에 '하느님의 영광'을 노래한 것이다.
 
그러면 여기서 우리가 노래하는 하느님의 '영광'이란 무엇인가? 영광은 한마디로 '현존'을 뜻한다. 예컨대, 어떤 사람이 훌륭한 일을 하여 언론에 이름이 오르내리면 그는 '영광'스럽다고 한다. 다른 사람들이 그를 '알아주기' 때문에 사람들의 의식 속에 그가 '현존'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에게 '영광'이 된다. 덧붙여 그가 말하기를 "이 모든 영광을 저의 어머니께 돌려드리고 싶습니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여러분이 나를 '알아주기'보다 내 어머니를 알아주십시오."라는 뜻이다.
 
또 내가 존경하는 분이 나를 찾아오면 나는 "누추한 곳을 찾아주셔서 영광입니다."라고 말한다. 존경하는 그분의 의식 속에 '나에 대한 인식'이 있고, 그의 생각 안에 내가 '머물기' 때문에 나에게 영광이 되는 것이다. 이처럼 영광은 곧 현존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느님께 영광을 드린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우리 가운데, 세상 안에 현존하신다.'는 것을 노래하는 것이며, 그것을 '우리가 다시 인식하고 되새기는 것'이다.
 
그러면 기본적으로 어떤 마음으로 이 노래를 부를까? 칭찬을 받으면 기분이 좋다. 영예스럽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어떤 영광을 받는다면, 하느님 때문에 받는 것이다. 우리(교회)가 세상으로부터 칭찬받는 일을 하게 되면 우리가 잘한 것보다 하느님께서 이루어주셨기 때문이다. 이럴 때에 우리는 흔히 "하느님께 영광을 드립니다."라고 말한다. 하느님께서 우리 가운데 계시면서 그 훌륭한 일을 이루게 해주셨고, 또 그것을 우리가 깨달아야 하기에 그분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노래'를 해야 한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가운데 항상 현존하시고 함께 계신다. 이 점을 늘 '기억'해야 한다. 그것이 하느님의 자녀로서 도리일 것이다.
[이글은 대구대교구 나기정 신부님께서 경향잡지(1998년 3월)에 기고하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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