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든 영광을 당신께 드립니다 . ::::::::::::::::::::::::::::::::::::::::::::::::::::::

서울시 송파구 신천동 11번지 장미아파트 30동 905호.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이다.
반 백년 사제생활동안 하느님 집 울타리를 벗어나 살아본 적이 없었던
나는 처음엔
새 보금자리가 참 낯설었었다.
하지만 이 곳에 둥지를 튼 지도 벌써 3년이라는 세 월이 흘러갔다.


지난 해 봄 몇몇 교우들이 나를 찾아왔다. 내가 몸담았던 본당의 신자들이었다.
교회나 신자들에게서 잊혀지고 있는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뜻밖의 일
이었다. 그들은 하마트면 금경축을 잊고 지낼 뻔 했다며
대단히 미안하다고 했다.
그리고 나의 사제서품 50주년을 기념하는 금경축 행사를 마련하고 싶다
는 뜻을 전했다. 게다가 회고록을 발간하자고 제안했다.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 사제로 살아온 것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인가.'
나는 거듭 거절했다. 이 노사제를 잊지 않고 찾아준 것
만 으로도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하지만 교우들은 자신들의 뜻을 굽히지 않았고,
급기야 회고록이라는 이름으로 이 책을 발간하게 됐다.

나는 회고록을 준비하면서도 그만둘까 망설인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회고록이라는 것이 자신의 이름을 내는 일 인데, 나는 이름을 남길 만큼 잘 한 일도 없고 잘나지도 못한 사제였다. 그리고 내가 교회를 위해, 신자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일한 사제였는지 자문해 보았다. 그것도 아니었다.
사제는 두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하느님 백성들의 모임인 교회를 위
해 일하는 사제와 자신을 위해 일하는 사제이다. 나는 어디에 속하는가. 사제로 살아온 지난 반세기를 돌아보면서 나 자신을 위해 일했던 적이 다반사였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또, 나는 그동안 많은 신자들을 속인 거짓말쟁이였음을 솔직하게 털어놓지 않을 수 없다. 신자들을 타이르기도 하고, 호통을 치기도 하면서 하느님의 자녀라면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조언을 하 곤 했지만 정작 나 자신은 내가 뱉은 말대로 살아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컴퓨터다 인터넷이다 하는 첨단 시대에 노사제의 과거지사에 관심을 갖고 눈여겨 보고 읽어줄 신자가 몇이나 될까. 내가 살아온 지난 세월이 우리민족과 나라가 겪은 격동의 시기라고는 하지만 나와 같은 시대를 살아온 사람이 한 둘이 아닐진대 나의 이야기도 많은 분들이 겪었을 법한 이야기와 다를 바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 이렇다하게 내놓을 만큼 잘한 일도 없고, 사람들의 흥미를 끌만한 이야기도 변변치 않아 작업을 진행할수록 회의는 짙어져 갔다. 또, 내 과거를 들춰내서 활자로 옮긴다고 생각하니 민망하고 부끄럽기 이를데 없었다.
하지만 나는 용기를 냈다. 시작한 일이니 끝은 맺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동안 나를 믿고 따라준 수많은 신자들과 동료 사제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고, 또 나의 말과 행동으로 인해 알게 모르게 상처입었을 모든 이들에게 회고록이라는 이름을 빌어 용서를 청하고 싶은 마음에서 작은 책을 발간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이 책에는 나의 어린 시절과 신학교 생활 그리고 지난 50년동안 목자라는 외길 인생을 살아오면서 겪었던 기쁨과 슬픔, 고달픔 등 내 기억의 편린들을 옛날 이야기하듯 주워 담았다.

내 기억 속의 이야기들이 어쩌면 지나온 세월의 무게에 묻혀 조금은 왜곡되거나 과장되기도 했을 것이다. 혹은 내가 그러리라고 믿었던 이야기들이 사실과 다른 경우도 없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보관하고 있던 자료들을 들춰보면서 또, 내 기억을 더듬으면서 최선을 다해 내가 살아온 지난 날들을 차근히 되돌아보았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나는 한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까지 한 번도 이처럼 나 자신과 나의 삶을 꼼꼼하게 돌아본 적이 없었다는 점이다. 회고록을 집필했던 지난 몇 달간의 시간은 나에게는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귀중한 시간들이었다. 인생의 종착역이 얼마남지 않은 노사제에게 이런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배려해 준 모든 이들에게 더없는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그리고 나의 80평생을 정리하면서 가장 안타까운 일을 한가지 꼽으라면, 첫 사목지였던 평양교구의 진남포 본당에 발도 들여보지 못한 채 먼발치에서 돌아서야 했다는 점이다.
민족의 상잔의 비극인 한국전쟁으로 인해 어쩔수 없는 일이었다고 하더라도 내 사제 생활의 가장 큰 오점이라는 생각은 아직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통일의 그 날까지 내가 살수 있다면 진남포 본당에서 여생을 보냈으면 하는 것이 나의 마지막 소망이다. 나의 소망이 혹자에게는 지나친 욕심으로 비칠 수도 있겠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살기 위해 목자의 길을 선택했던 나이기에 주어진 소명을 잘 마무리하고 이 세상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이 책이 나오기까지 애써준 많은 분들에게 거듭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다.

2001년 4월
장대익 루도비꼬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