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곱 성 사 생 활

‘부르심’이란 관점에서, 바오로 서간을 중심으로




심흥보 지음




머리말



  대부분의 본당에서 매일 성체성사가 거행되며 한 해에 적어도 한 두 번은 세례성사와 견진성사가 집전됩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성사에 참여하는 우리는, 성사에 참여하는 순간과 그 순간을 기억하는 며칠만을, 그것도 의식의 화려함과 의식 중에 느낀 감정적인 기분만을 기억에 남기고 일상으로 돌아가 버립니다.

  또한 우리 신앙생활의 출발이며 정점이라는 거룩한 미사 전례는 어떻습니까? 평일미사에 참여하는 신자들은 주로 노인분들이거나 여성들입니다. 미사를 어느 나라에서는 ‘서비스’(service)라는 안내판 항목에 넣습니다. 그런데 이 서비스라는 개념이 신자들에겐 하느님과 관계없이 자신들의 필요와 아쉬움을 어루만져 주고 들어 주는 편의시설과 편의제공에 해당되는 것이 아닐까! 이런 의구심이 신자들의 원의와 관계없이 공짜로 제공된 ‘희생제사’(sacrifice)라는 측면에서, 하느님의 침묵을 부채질(?)하고, 십자가의 제사를 더욱 제사답게 한다는 역설적인 느낌마저 들게 합니다.

  그나마 신자들이 전례나 성사와 연관되어 우리가 들을 수 있는 관심사는 “주일미사 한 번이라도 빠지면 고해성사 보아야 합니까?”, “본당 신부님께 고해성사 보지 않기 위해서 주일미사 빠지지 않기로 했대요!”, “왜 하필 월드컵 시즌에 견진교리를 집어 넣으셨어요?”, “견진 받은 신자가 그럴 수가 있어?” 정도입니다. 이러한 표현 뒤에 숨겨진 전례생활은, 종교가 신자들에게 주는 계율에 대한 의무와 그 의무를 궐한 데서 오는 부담과 죄의식입니다. 전례와 성사가 인간을 억압하는 악의 세력으로부터 해방시키고 구원하시는 하느님 사랑의 표징이라는, 본래의 모습과는 다소 어울리지 않아 보입니다.

  물론 이것은 현상에 드러난 피상적인 일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볼 때, 성사를 받으면 받을수록 신자들의 신앙생활이 더욱더 풍요로워진다고 단언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성사에 참여함으로써 받게 되는 주님의 은총과 현세적인 축복, 그리고 은총으로 부여되는 지위에는 관심이 많지만, 각 성사의 은총이 의미하는 주님의 부르심과 그 부르심에 응답해야 할 성사생활에 대해서는 지극히 소극적이거나, “착하게, 잘 살아야지요!” 하는 등의 막연한 결심뿐일 경우도 있습니다.


  이미 이 책의 전편이랄 수 있는 예비신자 교리서 ‘일하며, 쉬며, 또!’와 ‘가톨릭 교리서’는 복음을 중심으로 살펴보았습니다. 그래서 여기서는 ‘바오로 사도의 서간’에 나오는 말씀 중에 성사생활과 연관되는 구절들을 모아 놓았습니다. 주님 승천 후 작성된 바오로 서간은 교회의 성사를 살피는 데 좀 더 구체적일 수 있습니다. 특별히 부활하신 주님의 영인 성령을 받아 활동하던 바오로를 통해, 성사생활의 모습을 ‘부르심’이란 관점에서 찾아보는 것은 의미 있으리라는 생각도 가미되었습니다.

  이 책을 깊이 묵상하면서 자신의 실생활에서 자신의 처지와 능력에 따라 하나씩, 할 수 있는 만큼 적용할 수도 있고, 공동체에서 이용하려면, 우선 지도자와 함께 ‘글쎄’라는 항목을 통해, 세상 사람들과 성사생활에 무관심한 일반 신자들이 성사에 대해 가지고 있는 엉뚱한(?) 견해를 접하면서, 자신들의 의식 속에 감추어져 있던 성사와 견해와 느낌을 상기시킵니다. 그리고 각 성사들이 의미하고 지향하고 있는 방향에 들어가기 전에, ‘둘이’라는 항목을 통해 옆 사람과 둘이 자신들의 성사생활에 대해 대화를 나누면서 스스로 점검할 기회를 갖습니다(자신들의 경험이나 느낌을 ‘나는’이라는 항목 아래에 기록해도 좋습니다). 그리고 지도자나 공동체 장의 지도로 ‘배움’을 통해 각 성사의 단계적 의미와 성사생활을 살펴봅니다. 그 다음 다 같이 그 성사와 연관하여 바오로 서간에서 찾아낸 성경구절을 ‘말씀’에서 읽고, 20분 정도 ‘묵상’한 다음, ‘나눔 자료’를 가지고 옆 사람과 둘이 또는 그룹별로 대화를 나눕니다(그룹별로 대화를 나눌 때에는 나눔 장소로 간 후, 성호를 긋고 다시 한 번 ‘말씀’을 읽고 난 후 대화를 나누기 시작합니다. 이때는 조장이 사회를 보고, 서기를 두어 나눔 내용을 기록하여, 그룹모임이 끝난 후 전체 모임에서 발표하거나 제출합니다). 그리고 다 같이 모여 지도자와 함께 ‘새 빛’이라는 항목을 통해 성사예식의 본질적인 말씀이나 연관된 기도나 구절을 되새기며, 성사에 대한 확고한 이해와 성사생활에 대한 새로운 다짐으로 한 과를 정리할 수 있습니다. 물론 구역•반모임에서는 여기 각과의 ‘말씀’으로 복음나누기를 하고, ‘배움’을 6단계에서 하실 수 있습니다.


  끝으로 성탄을 맞아 우리 신자들의 가정에 예수 아기 탄생의 기쁨과 축복이 가득하길 빌며, 이 책이 나오기까지 수고하신 모든 분들, 특별히 하늘나라의 유형래 세영 알렉시오를 비롯한 강 디모테아, 심 가타리나 수녀님과 이 세라피나 삼성동 사무장님, 윤 마리아, 허 마리아고레띠를 비롯한 말씀봉사회와 총구역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천주강생 2012년 12월 25일 예수 성탄 대축일에

천주교 서울대교구 삼성동 성가정 성당

주임사제 심흥보 베드로 신부



일곱 성사생활 교과 과정표




과  목

주 님 의    부 르 심

주요 성경

시작

성사생활

“나와 함께 아버지에게 가자.”

-하느님의 사랑이신 주님과 주님의 교회 그리고 교회의 성사

에페소서 

 1,3-14

1

세례성사

“나를 선택하라.”

로마서

 6,2-14

2

견진성사

“나를 믿고 의지하라.”

-성령의 인도를 따르라

갈라티아서 5,16-6,8-10

3

성체성사

“나와 함께 세상을 구원하자.”

-세상을 향한 또 하나의 성체

에페소서

2,13-22

4

고해성사

“나처럼 사랑을 완전히 이루라.”

1코린토서

13,1-13

5

성품성사

“나와 함께 가난한 이들에게 가자.”

필리피서

2,1-16

6

혼인성사

“내 앞에서 한 약속을 무르익히라.”-둘이 한 몸을 이루어라

에페소서

 5,21-33

7

병자성사

“나에 대한 희망을 잃지 말라.”

-인간의 한계에 구애받지 말라

로마서

 8,18-30

피정

피   정

그리스도를 통한 새 생활과 그리스도인의 생활원칙

콜로새서

 2,20-3,17

부   록

성사로 간직할 만한 표지들

 

차      례






도움의 말

시작. 교회의 성사

1.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살고-세례성사

2. 성령께 의지하여-견진성사

3. 그리스도 우리의 평화-성체성사

4. 가장 좋은 길-고해성사

5. 그리스도의 겸손한 마음-성품성사

6. 둘이 한 몸을-혼인성사

7. 고통에서 영광으로-병자성사

피정 그리스도를 통한 새 생활

*부록1 성사로 간주할만한 표지들

1) 말씀의 전례와 말씀 나누기

2) 기도

3) 거룩한 신심행위

4) 기도와 단식과 희생 및 자선 그리고 봉사

5) 축성-축성생활회(수도회와 재속회)와 평신도 사도직 단체

(1) 수도자 종신 서원

(2) 동정녀 축성 예식

(3) 재속회 서약

(4) 평신도 사도직 단체의 선서

*부록2 일곱 성사생활 성경색인






□시 작

교회의 성사



  글쎄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성사는 하나도 기억 안 나요.”

  “세례성사 때는 그저 줄줄이 나갔다 들어갔다 하느라고 정신없었어요……”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다고요?”

  “첫영성체는 너무 어릴 때 해서…….”

  “주님과 하나가 된다고요? 성체를 모신다고 배부른 것도 아니고…….”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그게 어떤 건지도…….”

  “성사가 내 생활하고 어떤 관계가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둘이 

  성사를 받던 순간을 기억해 보고, 옆 사람과 둘이 대화를 나누어 봅시다.


  세례성사를 받으며 내 이마 위에 차가운 물이 떨어져 흐를 때, 내 머리를 하얀 미사보로 감싸 줄 때……, 두 손에 초를 들고 주님께 나아가듯, 제대 앞으로 한 발 한 발 다가설 때……, 부모님이나 어른들이 내게 해주신 내 유아세례 때의 이야기나 내 어린 시절의 성사생활 이야기…….

  고해성사를 보기 위해 떨리는 가슴으로 고해실에 들어가 죄를 고백할 때, 죄를 용서받고 후련한 마음으로 고해소를 나올 때……, 중요하지 않은 것들만 먼저 말하고 정작 고백했어야 할 죄를 잊어버리고 그냥 나왔을 때……,. 말하기가 너무나도 수치스럽고 두려워 고백하지 못하고 “이 밖에 알아내지 못한 죄도 모두 용서하여 주십시오.”만을 힘주어 말했을 때……,

  성체성사를 통해 주님의 몸을 모시고 황홀해 했을 때……, 정말 주님의 몸인지 의심했을 때……


  나는…….





  말씀

  그리스도를 통하여 베풀어진 은총(에페 1,3-14)


  1 3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께서 찬미받으시기를 빕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온갖 영적인 복을 우리에게 내리셨습니다. 4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 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사랑으로 5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미리 정하셨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그 좋으신 뜻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6그리하여 사랑하시는 아드님 안에서 우리에게 베푸신 그 은총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셨습니다. 7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를 통하여 속량을, 곧 죄의 용서를 받았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그 풍성한 은총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8하느님께서는 이 은총을 우리에게 넘치도록 베푸셨습니다. 당신의 지혜와 통찰력을 다하시어, 9그리스도 안에서 미리 세우신 당신 선의에 따라 우리에게 당신 뜻의 신비를 알려 주셨습니다. 10그것은 때가 차면 하늘과 땅에 있는 만물을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머리로 하여 한데 모으는 계획입니다. 11만물을 당신의 결정과 뜻대로 이루시는 분의 의향에 따라 미리 정해진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서 한몫을 얻게 되었습니다. 12그리하여 하느님께서는 이미 그리스도께 희망을 둔 우리가 당신의 영광을 찬양하는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13여러분도 그리스도 안에서 진리의 말씀, 곧 여러분을 위한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 안에서 믿게 되었을 때, 약속된 성령의 인장을 받았습니다. 14우리가 하느님의 소유로서 속량될 때까지, 이 성령께서 우리가 받을 상속의 보증이 되어 주시어, 하느님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십니다.




  배움

  주님께서는 성사생활을 통해 “나와 함께 아버지에게 가자!”고 우리를 부르십니다.


  첫째,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온갖 영적인 복을 우리에게 내리셨습니다.”(에페 1,3)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생명을 나누어 주시기 위해 세상을 지어 내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을, “생겨라!”는 한 말씀으로 만드시고 당신 생명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당신께서 지어 내신 세상 만물을 사랑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만드신 것 중 인간은, 하느님의 사랑을 받기는 하면서도 하느님의 사랑에 감사드리며 하느님을 섬기는 데는 충실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하느님을 괴롭혀 왔습니다. 인간들은 하느님의 뜻을 무시하기 일쑤였고 하느님의 계획에 반대되는 일마저 저질렀습니다. 인간은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일을 성취하기 위해 하느님을 이용했고, 지배하려고 했으며,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원망하거나 하느님을 떠나기까지 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사랑하셨지만 인간들은 자기 자신만을 사랑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 모든 것을 골고루 사랑하셨지만, 인간은 자신들에게 이익이 되느냐 아니냐만을 따져, 옳고 그름과 자기 행동의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그때마다 “예언자들을 통하여 여러 번에 걸쳐 여러 가지 방식으로 조상들에게 말씀하셨다.”(히브 1,1 참조) 인간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예언자들을 통해 전해 듣고는 하느님께 되돌아오기도 했지만,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는 불행하게도 점점 멀어져만 갔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인간을 타이르기도 하고 벌을 주기도 했지만, 인간들은 자주 그리고 점점 더 하느님을 떠나 악의 영향권으로 빨려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인간과 관계된 세상은 점점 파괴되어 갔습니다. 하느님께서 세상을 만드신 이유와 질서가 깨지고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런 인간들이 너무나 안쓰러웠고 불쌍해 보였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주신 길이 인간에게 가장 좋은 길인데도, 인간은 그 길을 피하고 죽음의 길로 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어떻게 하면 다시 관계를 회복하고, 당신이 만드신 인간에게 사랑의 길을 걷도록 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신 끝에 당신의 외아들을 보내시기로 결정하셨습니다. “이 마지막 때에는 아드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히브 1,2)


  둘째, 하느님께서는 우리 인간을 구하시기 위해 당신의 외아들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희망을 주고 사랑을 가르쳐 주기 위해 우리와 똑같은 인간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리아라는 여인의 몸을 빌려 인간으로 태어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우리처럼 배고파하셨고(“오고 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음식을 먹을 겨를조차 없었던 것이다.”-마르 6,31ㄴ), 피곤하여 쉬고 싶어하셨으며(“너희는 따로 외딴곳으로 가서 좀 쉬어라.”-마르 6,31ㄱ), 친구의 죽음 앞에서 슬피 우셨고(“예수님께서는 눈물을 흘리셨다. 그러자 유다인들이 ‘보시오, 저분이 라자로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하고 말하였다.”-요한 11,35-36), 죽음의 위협 앞에서 공포로 떠셨다(“공포와 번민에 휩싸이기 시작하셨다. 그래서 그들에게 ‘내 마음이 너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다. 너희는 여기에 남아서 깨어 있어라.’하고 말씀하셨다. 그런 다음 앞으로 조금 나아가 땅에 엎드리시어, 하실 수만 있으면 그 시간이 당신을 비켜 가게 해 주십사고 기도하시며”-마르 14,33-35).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사명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묵묵히 당신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셨습니다.(“아빠!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무엇이든 하실 수 있으시니,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가 원하는 것을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것을 하십시오.”-마르 14,36).

  예수님께서는 온 정열을 다 쏟아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우리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까지! “과연 하느님께서는 기꺼이 그분 안에 온갖 충만함이 머무르게 하셨습니다. 그분 십자가의 피를 통하여 평화를 이룩하시어 땅에 있는 것이든 하늘에 있는 것이든 그분을 통하여 그분을 향하여 만물을 기꺼이 화해시키셨습니다.”(콜로 1,19-20) 그 덕분에 우리는 하느님 앞에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으로 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에페 1,4 참조).


  셋째, “(하느님께서는 사랑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미리 정하셨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그 좋으신 뜻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에페 1,5) 주님께서는 불평과 불만을 터뜨리며, 다른 인간과 사회에 책임을 돌릴 수 있는 인간의 조건을 가지셨어도 그러한 인간 조건에 굴복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갖가지 한계를 가진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어도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온전히 따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자기의 이익을 챙기며 자기만 잘 살려고 하는 인간의 욕망이, 이웃을 십자가에 죽게 한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 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인간 자신이 바라는 것을 얻기 위해 현실적으로 행하는 행위의 결과가 인간이 바라는 것을 주기보다는 전혀 다른, 아니 경우에 따라서는 이웃 사람과 자연을 파괴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과 같아지려는 유혹보다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더 인간의 완성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렇게 주님께서는 우리를 잡고 있던 악의 세력과 죄로부터 우리를 구하셔서, 하느님의 자녀로서 영광스러운 자유를 누리게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주님처럼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로마 8,15; 갈라 4,6 참조)라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주님께서는 우리의 희망이요, 구세주가 되셨습니다.


  넷째, 예수님의 아버지 하느님께서는 아들의 순명을 보고 예수님을 부활시켜 우리의 주님이 되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도 그분을 높이 올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그분께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이름 앞에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에 있는 자들이 다 무릎을 꿇고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라고 모두 고백하며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게 하셨습니다.”(필리 2,9-11)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를 고아로 내버려 두지 않겠다던 약속에 따라 우리는 “약속된 성령의 인장을 받았습니다.”(에페 1,13ㄴ) 성령께서는 교회를 이끄시며 교회의 성사 안에 현존하시면서 우리를 아버지께로 인도하십니다. 성령께서는 빵과 포도주를 주님의 몸과 피로 변화시켜 주시는 성체성사를 이루게 하심으로써 우리 삶의 양식을 주십니다. 우리는 성체성사를 통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여 교회를 이룹니다. “이 안티오키아에서 제자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게 되었다.”(사도 11,26ㄷ) 성령께서는 성체성사를 통해 주님을 중심으로 우리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 되게 하십니다. “그분은 또한 당신 몸인 교회의 머리이십니다.”(콜로 1,18ㄱ)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이고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지체입니다.”(1코린 12,27)


  다섯째, 성령께서는 성체성사를 통해 우리를 교회가 되게 하십니다. 교회는 주님의 사명을 이룰 때 비로소 교회가 되고 하느님 나라를 향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18-20)

  성체성사를 이루기 위해 우리는 세례성사를 받습니다. 주님께서는 세례성사를 통해 “나를 선택하라.”고 우리를 부르십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살면서 보고 듣고 몸담아 온, 세상의 여러 가지 가치관과 생활방식을 버리고, 주님과 주님께서 걸어가신 길을 내 인생의 길로 선택함으로써, 주님의 자녀들인 교회 공동체에서 새로 태어납니다.

  주님께서는 견진성사를 통해 “나를 믿고 의지하라.”고 우리를 부르십니다. 우리는 내 생각과 내 계획을 버리고, 성령께서 이끄시는 대로 세상 안에서 하느님 나라를 향해 교회를 이루어 나갑니다.

  주님께서는 성체성사를 통해 “나와 함께 세상을 구원하자.”고 우리를 부르십니다. 우리는 십자가상의 제사인 성체성사 안에서 나를 봉헌하고, 주님으로부터 세상을 하느님 나라로 변화시킬 힘을 얻어, 세상에 나를 또 하나의 성체로 바칩니다.

  주님께서는 고해성사를 통해 “나처럼 사랑을 완전히 이루라.”고 부르십니다. 우리는 고해성사를 통해 세상의 죄악과 유혹을 이기고, 주님처럼 흠 없는 어린 양이 되어 사랑을 완성해 나갑니다.

  주님께서는 성품성사를 통해 “나와 함께 가난한 이들에게 가자.”고 우리를 부르십니다. 우리는 성령을 받아 주님처럼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내가 살고 머무는 그곳에서 기쁜 소식을 실현합니다. 또한 우리는 우리가 전한 기쁜 소식을 받아들이는 이와 함께 교회를 이루어 하느님 나라를 완성해 나가는 사도가 됩니다.

  주님께서는 혼인성사를 통해 “내 앞에서 한 약속을 무르익히라.”고 우리를 부르십니다. 우리는 마치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듯이 자신의 배우자를 사랑함으로써 혼인의 서약을 무르익혀 나갑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병자성사를 통해 “나에 대한 희망을 잃지 말라.”고 부르십니다. 우리는 주님처럼 죽음에 구애받거나 굴복당하지 않고 주님께서 부활하신 것처럼 우리도 부활하리라는 희망을 여기서 채워 나갑니다. 주님과 형제들에게 나를 바치고, 나의 고통을 그리스도의 고통에 참여시킴으로써 주님의 구원사업을 이루어 나갑니다.


  여섯째, 주님께서는 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성사생활을 통해 “나와 함께 아버지께로 가자.”고 우리를 부르십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보여 주신 생명의 길을 전례와 성사 안에서 보고, 그 길을 걸어갈 힘을 얻으며, 우리가 직접 그 길을 걸어감으로써 주님과 함께 아버지께로 나아갑니다.



  묵상과 나눔

1. 2천 년 전에 살아 계시던 예수님을 내 생명의 주님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까? 주님과 어떤 관계를 맺고 계십니까?

2. 주님의 삶을 기쁜 소식으로 받아들이고 주님을 따라 성사생활을 함으로써 생명의 길을 걷고 계십니까?




  새 빛

 그리스도 안의 새 생활(로마 12,1)


  “내가 하느님의 자비에 힘입어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여러분의 몸을 하느님 마음에 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십시오. 이것이 바로 여러분이 드려야 하는 합당한 예배입니다.”





차례..

1.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살고

- 세례성사 -





  글쎄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세례를 받는다고 뭐가 달라지나요? 제 버릇 개 못 준다는데……”

  “세례만 받으면 천국에 가는 것 아닌가요? 다들 그러잖아요?”

  “어떨 땐 세례 받은 신자가 더 하던데요? 고해성사만 보면 된데요!”

  “하느님께서는 신자 편이니까, 잘못해도 다른 사람보다 더 감싸 주시고 용서해 주시겠죠?”




  둘이 

  나는 무엇 때문에 세례를 받았습니까? 세례받을 때 어떻게 살겠다고 다짐했습니까? 그런데 지금은 무엇을 선택하여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옆 사람과 둘이 대화를 나누어 봅시다.


  부모님이 시켜서? 결혼하기 위해서? 건강하게 살고 싶어서? 걱정 없이 살고 싶어서? 행복하게 살고 싶어서? 나를 위로해주고, 나와 함께해 주고, 나를 도와줄 형제․자매들이 필요해서? 내 일이 잘되기 위해서? 주님을 알고 따르기 위해서?


  나는…….

  말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하나가 된 우리(로마 6,2-14)


  6 2죄에서는 이미 죽은 우리가 어떻게 여전히 죄 안에 살 수 있겠습니까? 3그리스도 예수님과 하나 되는 세례를 받은 우리가 모두 그분의 죽음과 하나 되는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모릅니까? 4과연 우리는 그분의 죽음과 하나 되는 세례를 통하여 그분과 함께 묻혔습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을 통하여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것처럼, 우리도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5사실 우리가 그분처럼 죽어 그분과 결합되었다면, 부활 때에도 분명히 그리될 것입니다. 6우리는 압니다. 우리의 옛 인간이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써 죄의 지배를 받는 몸이 소멸하여, 우리가 더 이상 죄의 종노릇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7죽은 사람은 죄에서 벗어나기 때문입니다. 8그래서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니 그분과 함께 살리라고 우리는 믿습니다. 9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시어 다시는 돌아가시지 않으리라는 것을 압니다. 죽음은 더 이상 그분 위에 군림하지 못합니다. 10그분께서 돌아가신 것은 죄와 관련하여 단 한 번 돌아가신 것이고, 그분께서 사시는 것은 하느님을 위하여 사시는 것입니다. 11이와 같이 여러분 자신도 죄에서는 죽었지만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을 위하여 살고 있다고 생각하십시오. 12그러므로 죄가 여러분의 죽을 몸을 지배하여 여러분이 그 욕망에 순종하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13그리고 여러분의 지체를 불의의 도구로 죄에 넘기지 마십시오. 오히려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살아난 사람으로서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고, 자기 지체를 의로움의 도구로 하느님께 바치십시오. 14죄가 여러분 위에 군림할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은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은총 아래 있습니다




  배움

  주님께서는 세례성사를 통해 “나를 선택하라!”고 우리를 부르십니다.

  첫째, “어떻게 여전히 죄 안에서 살 수 있겠습니까?”(로마 6,2) 우리가 처음 세례를 받을 때에는 다시는 나쁜 짓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기도도 열심히 하고, 성당에도 잘 나오고, 주님의 말씀대로 열심히 살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의 모습은 어느덧 세례받기 전 과거의 그 모습 그대로입니다. 지금도 죄를 짓고 있고, 어느 정도 아는 것 같으니까, “앞으로 하면 되지!” 하면서 점점 미루고 게을러지고,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전보다 더 세속화되었습니다.

  세례는 한 번 받았다고 완성되는 것은 아닙니다. 세례성사는 완전하지만, 세례를 받은 우리는 완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를 지을 때마다, 흐트러질 때마다 거듭 회개하여 내가 받은 세례성사를 완전하게 이루어야 합니다.


  둘째,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니 그분과 함께 살리라고 우리는 믿습니다.”(로마 6,8) 우리가 세례를 받을 때, 우리는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시며 우리를 구원하신 분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또한 그분의 말씀을 기쁘게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그분을 주님이시라고 믿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과거의 내 잘못과 그릇된 욕심을 버리고 주님의 말씀대로 새롭게 살기로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신자들과 한 식구가 되어 함께 살기 위해 세례성사를 청했습니다.


  셋째,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서 되살아나시어 다시는 돌아가시지 않으리라는 것을 압니다. 죽음은 더 이상 그분 위에 군림하지 못합니다.”(로마 6,9) 죄를 짓고 나면 우리는 부끄럽고, 자신이 원망스럽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성당에 나가 예수님을 뵙기가 두렵습니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주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알고 계시지만, 우리를 탓하지 않으시고 우리가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내가 지금까지 마치 자석에 끌리듯 저질러 왔던 악한 습관을 버리기란 아주 힘듭니다. 끊으려고 하지만, 생각처럼 그렇게 쉽게 끊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내가 끊으려고 하면 할수록 더 나를 끌어당깁니다. “사실 내 안에, 곧 내 육 안에 선이 자리 잡고 있지 않음을 나는 압니다. 나에게 원의가 있기는 하지만 그 좋은 것을 하지는 못합니다. 선을 바라면서도 하지 못하고, 악을 바라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하고 맙니다. 그래서 내가 바라지 않는 것을 하면, 그 일을 하는 것은 더 이상 내가 아니라 내 안에 자리 잡은 죄입니다.”(로마 7,18-20)

  “죄가 여러분 위에 군림할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은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은총 아래 있습니다.”(로마 6,14) 주님을 선택하면 회개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주님 은총의 지배를 청하십시오. 주님을 생각하기 시작하고 주님께 나아가려고 노력하면, 주님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되고, 자연스럽게 악습을 떨쳐 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 수난과 부활의 힘이 우리를 당신 사랑 안에 머무르도록 해주실 것입니다.


  넷째, “유다인도 그리스인도 없고, 종도 자유인도 없으며, 남자도 여자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입니다.”(갈라 3,28) 내가 보기에 열심히 살고 있는 듯한 다른 어느 누구도 부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나는 다만 각기 다른 방법으로 나를 부르신 주님께 응답하면 됩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믿음으로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갈라 3,26)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누구에게도 내 잘못의 책임을 돌릴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서로의 부족한 점을 채워 한 식구가 되도록 합시다. 다같이 한 식구가 되어 성령께서 보여 주시는 대로 하느님 나라를 향해 교회를 이루어 나갑시다. “성령께서 평화의 끈으로 이루어 주신 일치를 보존하도록 애쓰십시오.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실 때에 하나의 희망을 주신 것처럼, 그리스도의 몸도 하나이고 성령도 한 분이십니다.”(에페 4,3-4)


  다섯째, “그러므로 죄가 여러분의 죽을 몸을 지배하여 여러분이 그 욕망에 순종하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로마 6,12) 우리가 세례 때 한 결심과 다짐은, 어떤 의미로는 순수하고 단지 마음속의 이상을 그린 것일 수 있습니다. 이제 그 다짐을 완성시키지 못하고 죄에 떨어졌던 경험을 바탕 삼아,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주님의 힘으로 다시 일어섭시다. 내가 하고 싶고, 가지고 싶고, 얻고 싶은 것보다 내가 해야 할 것과 주어야 할 것과 베풀어야 할 것을 먼저 합시다. 그러면 우리는 죄의 지배를 벗어나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와 같이 여러분 자신도 죄에서는 죽었지만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을 위하여 살고 있다고 생각하십시오.”(로마 6,11)하신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주님의 수난에 참여합시다. 나가서 죽어 가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면 다시 태어날 수 있는지를 이야기합시다. 또다시 태어나는 과정과 그 고통이 힘들기도 하지만 얼마나 살맛 나는 길인지 알기 때문에, 그 사람이 다시 일어날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기대하며 기다리고 용기를 북돋워 줍시다. 이렇게 주님과 함께 다시 일어나 다른 사람들의 새로운 삶을 위해 내 몸을 희생제물로 바칩시다.




  묵상과 나눔

1. 내 생각과 내 마음을 죽이고 주님을 선택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나를 주님께 가지 못하도록 꽉 붙잡고 있는 그것은 무엇입니까?

2. 주님께만 전적으로 희망을 두고 살 결심이 섰습니까?

3. 지금 내 이웃 중에 다시 태어날 수 있도록 도와 주어야 할 사람이 있습니까? 어떻게 그를 새로 태어나게 하시렵니까?




  새 빛


† 여러분은 하느님의 자녀로서 자유를 누리기 위하여 죄를 끊어 버립니까?

◎ 예, 끊어 버립니다.

† 죄의 지배를 받지 않기 위하여 악의 유혹을 끊어 버립니까?

◎ 예, 끊어 버립니다.

† 죄의 뿌리인 마귀를 끊어 버립니까?

◎ 예, 끊어 버립니다.

† 천지의 창조주 전능하신 천주 성부를 믿습니까?

◎ 예, 믿습니다.

† 동정 마리아께 잉태되어 나시고, 고난을 받으시고 묻히셨으며,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성부 오른편에 앉으신 독생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 예, 믿습니다.

† 성령과,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와, 모든 성인의 통공과, 죄의 용서와, 육신의 부활과, 영원한 삶을 믿습니까?

◎ 예, 믿습니다.

† 이것이 우리의 신앙이요, 이것이 교회의 신앙이므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러한 신앙을 고백하는 것은 우리의 영광입니다

◎ 아멘.

† 나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           )에게 세례를 줍니다.





차례..

2. 성령께 의지하여

-견진성사-




  글쎄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제가 어릴 땐, 기도하면 꺼진 전등불도 들어오곤 했어요……. 신앙은 어릴 때, 멋모를 때의 얘기 아닌가요?”

  “신앙이란 힘없고 약한 사람들이 그저 위안이나 삼는 그런 거 아닌가요?”

  “아우슈비츠에서, 총칼 앞에서 하느님이 계시던가요?”

  “어떻게 그걸 뿌리칠 수 있어요. 그렇게 안 하면 난 죽는데.”

  “세상은 험한데 성당에만 가면 편안해요. 성당에서 살았으면 좋겠어요……”




  둘이 

  여러분은 어디에 의지하고 살고 있습니까? 무엇을 통해 힘을 얻습니까? 옆 사람과 둘이 대화를 나누어 봅시다.


  잘 먹고 열심히 일하는데, 쉬지 않고 부단히 노력하는데, 사람들을 많이 그리고 별 문제 없이 사귀는데, 지금까지 내가 이루어 놓은 업적과 재산을 유지하는데, 내 자녀들과 후손의 안전과 행복한 미래를 마련하는데, 주님의 말씀을 지키고 사는데, 성령의 이끄심을 따라가는데…….


  나는…….



  말씀

  성령께 의지하여(갈라 5,5.16-26; 6,1-2.8-10)


  5 5그러나 우리는 성령을 통하여 믿음으로 의로워지기를 간절히 희망합니다.

  16내 말은 이렇습니다. 성령의 인도에 따라 살아가십시오. 그러면 육의 욕망을 채우지 않게 될 것입니다. 17육이 욕망하는 것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께서 바라시는 것은 육을 거스릅니다. 이 둘은 서로 반대되기 때문에 여러분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없게 됩니다. 18그러나 여러분이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율법 아래 있는 것이 아닙니다. 19육의 행실은 자명합니다. 그것은 곧 불륜, 더러움, 방탕, 20우상 숭배, 마술, 적개심, 분쟁, 시기, 격분, 이기심, 분열, 분파, 21질투, 만취, 흥청대는 술판, 그 밖에 이와 비슷한 것들입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이미 경고한 그대로 이제 다시 경고합니다. 이런 짓을 저지르는 자들은 하느님의 나라를 차지하지 못할 것입니다. 

  22그러나 성령의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호의, 선의, 성실, 23온유, 절제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막는 법은 없습니다. 24그리스도 예수님께 속한 이들은 자기 육을 그 욕정과 욕망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25우리는 성령으로 사는 사람들이므로 성령을 따라갑시다. 26잘난 체하지 말고 서로 시비하지 말고 서로 시기하지 맙시다.

  6 1형제 여러분, 어떤 사람이 잘못을 저지르는 것을 보면, 영적인 사람인 여러분은 온유한 마음으로 그를 바로잡아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대도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2서로 남의 짐을 져 주십시오. 그러면 그리스도의 율법을 완수하게 될 것입니다

  8자기의 육에 뿌리는 사람은 육에서 멸망을 거두고, 성령에게 뿌리는 사람은 성령에게서 영원한 생명을 거둘 것입니다. 

9낙심하지 말고 계속 좋은 일을 합시다. 포기하지 않으면 제때에 수확을 거두게 될 것입니다. 

10그러므로 기회가 있는 동안 모든 사람에게, 특히 믿음의 가족들에게 좋은 일을 합시다. 




  배움

  주님께서는 견진성사를 통해 “나를 믿고 의지하라!”고 우리를 부르십니다.


  첫째, “그러나 우리는 성령을 통하여 믿음으로 의로워지기를 간절히 희망합니다.”(갈라 5,5) 우리의 희망은 구원입니다. 구원은 우리 모두의 희망사항을 궁극적으로 다 합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 희망사항을 다 합친, 보다 근원적인 희망인 구원은 바로 오늘 내게 “너는 죄가 없고 또 훌륭하게 살았기 때문에 내 사랑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다.”는 하느님의 인정과 칭찬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죄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누구 앞에서도 흠 한 점 없이 깨끗하거나, 나 자신이 나를 돌이켜 생각해봐도 훌륭하게만 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온전히 있다고 말할 사람이 없습니다. 물론 그것은 우리만의 온전한 책임은 아닙니다. 다만, 우리는 부족하고 나약하지만 그래도 하느님의 사랑을 받고 싶어 합니다.

  이러한 우리의 사정을 아시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죄 없는 아들을 죄 있는 인간의 모습으로 보내셔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율법이 육으로 말미암아 나약해져 이룰 수 없던 것을 하느님께서 이루셨습니다. 곧 당신의 친아드님을 죄 많은 육의 모습을 지닌 속죄 제물로 보내시어 그 육 안에서 죄를 처단하셨습니다.”(로마 8,3)

  이렇게 구원은 주님의 은총으로 말미암은 것이고, 그것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얻게 되는 은총입니다. 성령께서는 이러한 희망을 우리에게 심어주었습니다. “믿음 덕분에,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가 서 있는 이 은총 속으로 들어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하리라는 희망을 자랑으로 여깁니다.”(로마 5,2) 그러므로 우리는 마지막 날 “너는 죄가 없고 또 훌륭하게 살았기 때문에 내 사랑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다.”는 심판의 선고를 받고, 성령의 인도로 하느님 나라에서 주님과 함께 아버지 하느님의 사랑 속에서 살게 되기를 기대합니다(이러한 심판의 선고를 바오로 사도는 ‘의화(義化)’라고 했고 공동번역 성경에는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에 놓인다.’라고 번역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는 오늘, 여기서, 이미, 마지막 날에 얻을 구원의 기쁜 소식을 미리 알아서 기뻐하고 있습니다.


  둘째, 그런데 우리는 지금 행복합니까? 우리의 매일매일이 기쁨에 넘치고 있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왜 그렇습니까? 우리가 기쁜 소식을 받았다면 당연히 기뻐야 하는데 기쁘지 않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성령의 인도를 받아 살기보다는 세상의 흐름에 따라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릇 육을 따르는 자들은 육에 속한 것을 생각하고, 성령을 따르는 이들은 성령에 속한 것을 생각합니다. 육의 관심사는 죽음이고 성령의 관심사는 생명과 평화입니다.”(로마 8,5-6)

  세상은 우리에게 우리의 믿음을 버리도록 유혹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이것을 보아라. 이것을 가져라. 그러면 행복해질 것이다.” “이것을 배워라. 그리고 내 말을 들어라. 그래야 네가 살 수 있고 네 미래가 보장될 것이다.”

  그런데 정말 그렇습니까? 한번 세상의 흐름을 따라가 봅시다. 세상이 주는 평화는 이웃을 밟고 올라서야만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경쟁사회! 다른 이의 희생을 전제로 하고 그 희생이 나의 이익으로 합쳐질 때 비로소 내 행복이 보장됩니다. 자기 이익을 우선으로 삼는 자본주의 경제사회! 세상이 요구하는 대로라면 다른 사람의 아픔이 나의 기쁨이 되고, 다른 사람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 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과적으로 우리에게 기쁨보다는 씁쓸함과 비애를 안겨줍니다. 그리고 내가 빼앗았던 그것을, 언제 다시 다른 이에게 빼앗길지 몰라 불안해합니다. 또 그것을 지키기 위해 이웃을 적으로 경계해야 합니다. 그것이 경쟁과 경제사회 안에서는 미덕과 성공이 될지 모르지만, 인간사회 안에서는 죽음과 공포입니다. 이것이 육체적인 세상에서 주는 평화입니다.

 

  셋째, 그렇다면 어떻게 다시 주님께서 주시는 기쁨에 찬 생활을 회복할 수 있습니까? “하느님의 영의 인도를 받는 이들은 모두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여러분은 사람을 다시 두려움에 빠뜨리는 종살이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여러분을 자녀로 삼도록 해 주시는 영을 받았습니다. 이 성령의 힘으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 하고 외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성령께서 몸소,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임을 우리의 영에게 증언해 주십니다.”(로마 8,14-16)

  우리의 확신에 찬 믿음은, 이 세상에서 출세하고 부귀영화를 누리는 현세적인 입신양명을 향한 것이 아니라 인간세상의 구원을 향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은 주님의 사도직과 연결됩니다. 주님의 사도직은 아버지 하느님께서 주님에게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주님의 생명을 바치라고 한, 그 사명을 실천하는 직책과 임무입니다. 또한 그 믿음은 우리가, 나나 우리 가족의 안일과 평온을 얻는 데에서 그치도록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믿는 주님께서는, 우리가 세상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봉사함으로써 주님께 봉헌하도록 하십니다. “여러분의 몸을 하느님 마음에 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십시오. 이것이 바로 여러분이 드려야 하는 합당한 예배입니다.”(로마 12,1ㄴㄷ) 이렇게 봉헌하는 우리의 노력은, 주님을 세상 안에서 증거하는 교회 공동체의 사도직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믿음을 가진 우리는 세상의 유혹과 위협과 박해를 이겨 내려고 합니다. 이때 우리의 믿음을 아시는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면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성령께서도 나약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올바른 방식으로 기도할 줄 모르지만, 성령께서 몸소 말로 다할 수 없이 탄식하시며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해 주십니다. 마음속까지 살펴보시는 분께서는 이러한 성령의 생각이 무엇인지 아십니다. 성령께서 하느님의 뜻에 따라 성도들을 위하여 간구하시기 때문입니다.”(로마 8,26-27) 

  한편 우리는 우리의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일들이 세상을 더 가난하고 더 구조적으로 악하게 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할 때도 있습니다. 경제구조를 개선하지 않고 가난한 이를 돕는다는 것은 결국 경제구조를 더 악하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로마 8,28)라는 사도 바오로의 말씀처럼 우리는 단지 우리가 할 수 있는 데까지 우리 힘을 다하고 나머지는 하느님께서 조정하고 이루실 일입니다. 세상의 죄악 때문에 우리 일을 포기하고 주저하는 것은 단지 핑계가 될 뿐입니다.


  넷째,우리는 성령으로 사는 사람들이므로 성령을 따라갑시다.”(갈라5,25) 이렇게 세상의 부정과 불의라는 유혹과 위협 앞에서,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만이라도 우리의 믿음대로 살아야 합니다. 다른 그리스도인들의 눈치를 보며 주저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나를 위하여 수난하시고 부활하셔서 나를 부르시는 주님의 호소에 내가 직접 응답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각 사람에게 공동선을 위하여 성령을 드러내 보여 주십니다. 이 모든 것을 한 분이신 같은 성령께서 일으키십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각자에게 그것들을 따로따로 나누어 주십니다.”(1코린 12,7.11) 내가 불의에 맞서 저항하고 고발할 용기를 받았다면, 다른 이는 불의를 이기는 진실을 말없이 실천할 선물을 받았고, 또 다른 이는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기꺼이 그리스도처럼 수난할 수 있는 거룩한 선물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모두 다 합쳐져 그리스도의 희생제사에 참여하는 교회의 공동사업이 됩니다.

  “서로 남의 짐을 져 주십시오. 그러면 그리스도의 율법을 완수하게 될 것입니다.”(갈라 6,2) 그때 우리는 교회를 이루고 세상에서 교회의 사명을 이룰 것입니다. 교회의 사명, 곧 주님의 구원사업을 드러내고 증거하는 그 일 말입니다. 또한 그것이 우리가 이룰 그리스도의 법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상속자입니다. 그리스도와 더불어 공동 상속자인 것입니다. 다만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누리려면 그분과 함께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로마 8,17)


  다섯째,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성령을 따라 사는 삶’이란 무엇입니까? 과연 어떻게 사는 것이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삶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바람은 불고 싶은 데로 분다. 너는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영에서 태어난 이도 다 이와 같다.”(요한 3,8) 우리는 우리가 원하지도 않고 기대하지도 않은 일들을 갑자기 겪게 됩니다. 그 일이 반가운 것이든 아니든,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살면서 여러 가지 일들을 겪도록 허락하십니다. 그때 우리는 그 일이 자신의 삶에 사소한 것이라면, 아무 것도 느끼거나 깨닫지 못하고 그냥 지나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일이 자신의 삶에 커다란 부담과 영향을 끼칠 만한 것이라면, 우리는 “왜 이런 일이 나에게 닥쳤는가?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하는 의문을 던지며, 당혹해하고 궁금해합니다.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하느님 마음에 들며 무엇이 완전한 것인지 분별할 수 있게 하십시오.”(로마 12,2)

  그때 성령께서는 그 일을 통해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내용을 깨닫도록 하십니다. 그리고 그 일을 어떻게 주님의 뜻 안에서 해결할 수 있는지 알려 주십니다. “보호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이다.”(요한 14,26)

 이렇게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우리는,

  ㈀ 주님께서 왜 우리에게 그 일을 겪도록 하셨는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 주님께서 나에게 어떻게 대응하라고 일러 주시는지를, 성경과 성전 안에서 식별하여 정확히 깨닫게 됩니다.

  ㈂ 발견하고 식별하여 깨달은 것을 성령께서 일러 주신 주님 사랑의 그 방법대로 실천하게 됩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곧 주님의 성령의 인도를 받아 사는 삶입니다. 그리고 내가 이렇게 사는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주님을 발견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삶은 또한 주님을 증거하는 삶이 됩니다. “내가 아버지에게서 너희에게로 보낼 보호자, 곧 아버지에게서 나오시는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분께서 나를 증언하실 것이다. 그리고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나를 증언할 것이다.”(요한 15,26-27) 우리는 이러한 삶을 ‘성령을 따라 사는 삶’, ‘복음을 사는 삶’, ‘주님의 말씀을 사는 삶’이라고 합니다.




  묵상과 나눔

1. 성령의 도우심을 믿습니까? 그런 도우심을 받은 경험이 있습니까? 그때 어땠습니까? 지금, 시대와 세상이 내게 요구한다고 하면서 불의와 부정을 저지르고 있지는 않습니까?

2. 내가 맺고 싶고 나에게 필요한 성령의 열매는 무엇입니까?




  새 빛


(           ), 성령 특은의 날인을 받으십시오!


하느님, 저희에게 하신 일을 완성하소서. 또한 신자들 마음 안에 성령의 은혜를 보존하시어, 신자들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세상 사람들에게 부끄러움 없이 증언하며, 사랑과 정성으로 그리스도의 명령을 완수하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 아멘.





차례..

3. 그리스도 우리의 평화

-성체성사-





  글쎄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미사는 신부님이 드리는 거잖아요.”

  “앉았다, 섰다, 뭐가 뭔지 정신이 없었어요.”

  “성체가 예수님의 몸이라는데 그걸 먹으면 뭐가 달라지나요? 배부른 것도 아니고…….”

  “희생요?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분이 아닌가요? 나도 살기 힘든데 무엇 때문에……”




  둘이 

  내 가슴속에 지금도 뿌듯한 감정으로 남아있는 사건은 무엇입니까? 계속 기억나고 다시 한번 해보고 싶은 그것은 무엇입니까? 옆 사람과 둘이 대화를 나누어 봅시다.


  생일날 친지들과……, 시험에 합격했던 날……, 첫 데이트하던 날……, 결혼하던 날……, 승리한 날……, 내 집을 장만하던 날……, 가난한 이들이나 환자들에게 땀을 흘려 봉사하던 날……


  나는…….


  말씀

  그리스도 우리의 평화(에페 2,13-22)


  2 13그러나 이제, 한때 멀리 있던 여러분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하느님과 가까워졌습니다. 14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몸으로 유다인과 이민족을 하나로 만드시고 이 둘을 가르는 장벽인 적개심을 허무셨습니다. 15또 그 모든 계명과 조문과 함께 율법을 폐지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여 당신 안에서 두 인간을 하나의 새 인간으로 창조하시어 평화를 이룩하시고, 16십자가를 통하여 양쪽을 한 몸 안에서 하느님과 화해시키시어, 그 적개심을 당신 안에서 없애셨습니다. 17이렇게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에 오시어, 멀리 있던 여러분에게도 평화를 선포하시고 가까이 있던 이들에게도 평화를 선포하셨습니다. 18그래서 그분을 통하여 우리 양쪽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19그러므로 여러분은 이제 더 이상 외국인도 아니고 이방인도 아닙니다. 성도들과 함께 한 시민이며 하느님의 한 가족입니다. 20여러분은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기초 위에 세워진 건물이고,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바로 모퉁잇돌이십니다. 21그리스도 안에서 전체가 잘 결합된 이 건물이 주님 안에서 거룩한 성전으로 자라납니다. 22여러분도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거처로 함께 지어지고 있습니다.




  배움

  주님께서는 성체성사를 통해 “나와 함께 세상을 구원하자!”고 우리를 부르십니다.


  첫째, “여러분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하느님과 가까워졌습니다.”(에페 2,13)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하느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하느님을 압니다. 예수님의 생애를 살펴보면 우리에게 대한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게 됩니다. 성체성사는 예수님 자신입니다.


  둘째,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몸으로 유다인과 이민족을 하나로 만드시고 이 둘을 가르는 장벽인 적개심을 허무셨습니다.”(에페 2,14) 그리고 주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셔서, 유다인과 이방인들을 구별하는 담을 헐라고 하셨습니다. 맏아들이라는 유다민족과 다른 민족들, 남자와 여자, 그리고 부자와 가난한 자에 대한 인간의 편애의식과 그에 따른 인간의 차별구조를 없애시고 평등을 선포하셨습니다(요한 2,13-22 참조).

  “당신 안에서 두 인간을 하나의 새 인간으로 창조하시어 평화를 이룩하시고”(에페 2,15ㄴ) 또한 주님께서는 할례를 받은 유다인들뿐만 아니라 이방인들에게도 하느님의 생명과 사랑을 나누어 주시고(가나안 여자의 믿음-마태 15,21-28), 당신을 주님으로 믿는 사람들을 하느님 나라의 새 백성, 곧 교회를 이루게 하셨습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양쪽을 한 몸 안에서 하느님과 화해시키시어, 그 적개심을 당신 안에서 없애셨습니다.”(에페 2,16) 십자가는 우리에게 하느님과 이웃을 동시에 바라보게 합니다. 우리의 잘못으로 잃었던 생명을 다시 주신 하느님과, 우리에게 주신 하느님의 생명을 나누어야 할 이웃! 우리는 주님으로 인하여 십자가 안에서 하느님과 이웃과 생명을 받고, 주는 신앙의 신비를 살아갑니다.

  또한 이 신비를 간직한 새 민족인 교회는 하느님 나라를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갑니다. 특혜와 차별이 없는 나라, 원수와 적이 없는 나라, 미움과 증오가 없는 나라, 굶주림과 소외가 없는 나라, 억압과 묶임이 없는 나라, 탐욕과 착취가 없는 나라, 챙기는 것이 없고 나누는 나라! 그리스도 우리 주님께서 죽으심으로써 우리에게 문을 활짝 열어 준 나라는 바로 평화의 하느님 나라입니다.


  셋째, 십자가는 우리의 희망입니다. 십자가는 우리 구원의 약속이며 하느님 사랑의 징표입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1코린 1,23) 우리는 십자가 안에서 하늘과 땅을 봅니다. 곧 우리가 그리는 하느님 나라와, 지금 여기서 내가 겪고 있는 현실을 봅니다. 하느님 나라를 기준으로 현실을 바라본다면 현실은 지옥입니다. 십자가는 현실을 지옥으로 판단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현실을 떠나 신심 속으로 숨을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도피이지 희망을 성취하는 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한 세상은 더럽고 혼탁한데, 한 사람만 세상에서 건져 성당과 종교생활이라는 깨끗한 어항에 넣는다고 하느님 나라가 건설되지 않습니다. 십자가에서 구원을 찾는 우리의 신앙은 세상을 정화하는 것이고 세상에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의 관심은 언제나, ‘세상을 어떻게 하느님 나라로 변화시킬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넷째, 그래서 우리는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듯이 우리도 세상에서 죽어야 합니다. “이는 너희를 위한 내 몸이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1코린 11,24) 나를 내어 준다는 것은 어려운 것일 수도 있습니다. 세상과 보이는 것에서 행복을 찾는 사람들은 더 많은 물질을 가져야 하기 때문에 줄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희망도 없습니다. 욕망뿐입니다. 조금 가진 사람은 자기가 가진 것을 통해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려 하기 때문에 자기가 가진 것을 내놓으면 자신의 희망이 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느님께 희망을 둔 가난한 사람들은 자신의 생명마저도 기꺼이 내놓습니다. 하느님께서 그에게 생명을 다시 주시리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분의 영께서 여러분 안에 사시면, 그리스도를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분께서 여러분 안에 사시는 당신의 영을 통하여 여러분의 죽을 몸도 다시 살리실 것입니다.”(로마 8,11)


  다섯째, 십자가는 세상의 죄악을 모두 안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미움과 원망과 탐욕과 질시의 결과가 십자가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진 사람들은 수치와 모욕의 대표입니다. “이 잔은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다. 너희는 이 잔을 마실 때마다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1코린 11,25) 주님을 따르는 길, 복음의 길, 주님과 함께하는 기쁨의 길은 바로 이 모욕과 수치의 인생입니다. 사람들의 무시와 멸시를 한 몸에 받고 사는 인생입니다.

 우리가 걷는 십자가의 길은 사회의 지도자들에겐 질시의 대상이 될 것이며, 세상에 희망을 둔 이들에게는 조롱거리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는 이들에게, 십자가는 부활에 이르는 유일한 영광의 길입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 그리스도는 유다인들에게는 걸림돌이고 다른 민족에게는 어리석음입니다. 그렇지만 유다인이든 그리스인이든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힘이시며 하느님의 지혜이십니다. 하느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더 지혜롭고 하느님의 약함이 사람보다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1코린 1,23-25)


  여섯째, 우리는 성체성사를 통하여, 십자가상에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주님을 기억하고, 주님을 통해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을 감사드리며, 주님의 생명을 받아 모십니다. 그리고 아이가 부모님께서 주는 애정과 음식을 받아먹고 부모를 닮아가듯이, 우리는 주님께서 주시는 생명의 양식을 먹고 주님을 닮아갑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성체성사를 통하여 우리를 주님의 백성으로 만드십니다. “여러분도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거처로 함께 지어지고 있습니다.”(에페 2,22) 주님의 백성이 된 우리는 주님을 중심으로 교회가 됩니다.

  교회인 우리는 주님께서 하신 것처럼 우리 자신을 세상에 양식으로 내놓게 됩니다. 이렇게 우리 자신을 세상에 양식으로 내놓음으로써, 우리는 성체성사를 선포합니다. “사실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여러분은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적마다 주님의 죽음을 전하는 것입니다.”(1코린 11,26) 이것이 바로 성체성사를 통해 우리를 부르시는 주님의 초대입니다. “나와 하나 되어 세상의 구원을 위해 애쓰자꾸나! 나와 함께 평화의 하느님 나라를 만들자꾸나! 난 너의 도움이 필요하단다.”

  바오로 사도는 성체성사의 삶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의 환난에서 모자란 부분을 내가 이렇게 그분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내 육신으로 채우고 있습니다”(콜로 1,24) 그리고 이렇게 권고합니다. “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을 다스리게 하십시오. 여러분은 또한 한 몸 안에서 이 평화를 누리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감사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리스도의 말씀이 여러분 가운데에 풍성히 머무르게 하십시오. 말이든 행동이든 무엇이나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면서, 그분을 통하여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십시오.”(콜로 3,15-16.17)




  묵상과 나눔

1. 나는 지금 주님께서 주시는 평화를 받아 누리고 있습니까?

2. 주님께서 만드시는 하느님 나라를 완성하는 데 참여하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새 빛

  평화의 기도


 주님, 저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신앙을,

 그릇됨이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두움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는 자 되게 하소서.

 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여 주소서.

 저희는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써 용서받으며,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






차 례..

4. 가장 좋은 길

-고해성사-





  글쎄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어떻게 불완전한 사람이 완전할 수 있어요? 그저 적당히 믿으면서 살면 되지…….”

  “누군 미워하고 싶어서 미워하나요? 누가 죄 짓고 살고 싶은 사람 있어요? 살다 보면 그렇게 되는 거지…….”

  “상대는 잘못도 안 비는데 그냥 왜 용서해 줘요? 나만 우습고 만만한 사람 되는 거지…….”

  “죄는 용서받았다고 해도 상처는 남지 않나요? 못을 빼도 못 자국은 남잖아요.”




  둘이 

  나를 완전히 자유롭고 편안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왜 주님의 말씀을 온전히 실천하지 못합니까? 내가 주님의 말씀을 전하거나, 정말로 실천하려고 할 때 가로막는 것은 무엇입니까? 무엇이 내 사랑을 잡아 놓고 있습니까? 옆 사람과 둘이 대화를 나누어 봅시다.


  주위의 따가운 시선 때문에……, 언제 무슨 일이 닥칠지 모르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걱정과 준비 때문에……, 도와 주고 함께해야 되는 줄 알지만, 지금 당장 내 코가 석 자니까……,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을 먼저 해야 하니까……, 그 사람이 원할지 원하지 않을지 모르니까……, 나 말고도 도와줄 사람이 많으니까……, 주님께서 원하시는 방법이 무엇인지 잘 몰라서……, 하다가 무슨 일이 생겨서 그만두면 시작하지 않은 것보다 못하니까……, 똑같은 죄를 짓거나 실수할까 봐……


  나는…….



  말씀

  사랑(1코린 13,1-13)


13 1내가 인간의 여러 언어와 천사의 언어로 말한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요란한 징이나 소란한 꽹과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2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고

     모든 신비와 모든 지식을 깨닫고

     산을 옮길 수 있는 큰 믿음이 있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3내가 모든 재산을 나누어 주고

     내 몸까지 자랑스레 넘겨준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4사랑은 참고 기다립니다.

     사랑은 친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고

     뽐내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습니다.

    5사랑은 무례하지 않고

     자기 이익을 추구하지 않으며

     성을 내지 않고

     앙심을 품지 않습니다.

    6사랑은 불의에 기뻐하지 않고

     진실을 두고 함께 기뻐합니다.

    7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주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

   

    8사랑은 언제까지나 스러지지 않습니다.

     예언도 없어지고

     신령한 언어도 그치고

     지식도 없어집니다.

    9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합니다.

   10그러나 온전한 것이 오면

     부분적인 것은 없어집니다.

   11내가 아이였을 때에는

     아이처럼 말하고

     아이처럼 생각하고

     아이처럼 헤아렸습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서는

     아이 적의 것들을 그만두었습니다.

   12우리가 지금은 거울에 비친 모습처럼 어렴풋이 보지만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볼 것입니다.

     내가 지금은 부분적으로 알지만

     그때에는 하느님께서 나를 온전히 아시듯

     나도 온전히 알게 될 것입니다.

   13그러므로 이제 믿음과 희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계속됩니다.

     그 가운데에서 으뜸은 사랑입니다.




  배움

  주님께서는 고해성사를 통해 “나처럼 사랑을 완전히 이루라!”고 우리를 부르십니다.


  첫째, “고해성사를 꼭 보아야 하나요? 난 죄 없어요!…… 착하고, 나쁜 짓 안하고, 남 울리지 않고, 열심히 자기 할 일 다하고, 살다가 기회 있으면 남도 도우면 되지! 거기서 더 이상 뭘 어떻게 살아요?” 고해성사는 단순히 죄를 씻는 세탁소에 불과한 것입니까? 성사가 은총이라면 고해성사는 어떤 면에서 우리에게 은총입니까? 그리스도교 신앙이 우리에게 말하는 완전한 인간의 삶은 어떤 모습입니까?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사랑은 자기가 좋아서 하는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일종의 자기 만족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여기서 한 인간이 남을 돕는다면, 몇 명이나 돕고 어느 정도까지 할 수 있느냐는 식의 자기 성찰을 유도하여, 죄를 만들어 안기자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우리가 나누고 싶은 것은 우리 삶의 근본적인 태도와 우리 인간이 걸을 수 있는 가장 좋은 길이란 어떤 길인가를 찾아보고자 합니다.

  “내가 인간의 여러 언어와 천사의 언어로 말한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요란한 징이나 소란한 꽹과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고 모든 신비와 모든 지식을 깨닫고 산을 옮길 수 있는 큰 믿음이 있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1코린 13,1-2) 전시회에 가서 훌륭한 그림을 보고 정말 아름답다고 느꼈다고 합시다. 그러면 그 그림을 그린 사람의 마음이 아름다운 것일까? 아니면 그 그림을 보고 아름답다고 느낀 사람의 마음이 아름다운 것일까? 화가의 마음이 아름다운가 아닌가를 말하기보다, 그림을 보고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는 이의 마음속에 심어져 있는 사랑을 보고 싶습니다. 어떤 것을 보고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고, 또 자기가 느낀 그 아름다움을 아름답다고 인정하고. 표현하며, 격려해주고, 자기가 본 그 어떤 것을 정말 아름다운 것으로 만들어 주는 그 마음! 그 마음이 사랑입니다.


  둘째,아무에게도 빚을 지지 마십시오. 그러나 서로 사랑하는 것은 예외입니다.”(로마 13,8ㄱㄴ) 인간 모두는 누구나 한 인간으로서, 인격적인 존엄성을 인정받으며 살 권리가 있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서나 정당하게 대우를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그것이 인권입니다. 그런데 그 권리는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주어지는 것입니다.

  첫 번째 의무는 인간으로 살아 있어야 합니다. 일단 오늘 여기서 살아 있어야, 죽은 후에도 사체에 대한 권리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의무라면 이웃에 대한 의무입니다. 어쩌면 이 두 번째 의무는 인간에 대한 요구일 수도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인격의 완성을 향한 목표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인격의 완성에 다다랐다고 인정할 만해서 머리 숙여 존경을 표시할 만한 이들의 공통점은 그분들이 이웃을 향한 사랑을 살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자신의 시간과 재산의 얼마를 쪼개 주는 순간의 행위에 그치지 않고, 자신을 송두리째 바치는 삶의 태도와 방향입니다. “내가 모든 재산을 나누어 주고 내 몸까지 자랑스레 넘겨준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1코린 13,3)


  셋째,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너무나 많습니다. 게다가 우리가 부러워하면서,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 꼭 해야겠다고 결심하는 것도 많습니다. 그에 비하자면, 하고 싶은 것은 더 말할 나위도 없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해야 할 것과 해야겠다고 결심하는 것, 그리고 하고 싶은 것 모두를 다 합친 것을 다 포함하면서도 한 번에 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사랑입니다.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율법을 완성한 것입니다.…… 그것들은 모두 이 한마디 곧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말로 요약됩니다.”(로마 13,8-9)


  넷째,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이는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으며 하느님을 압니다.”(1요한 4,7) 누구도 사랑하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사랑할 줄 모르거나, 자신의 사랑을 남에게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거나, 자신의 사랑이 남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아서, 안타까워하고 망설이기까지 합니다.

  미움이 결심이 아니라 생겨나는 감정인 것처럼 사랑도 우리에게 생겨나고, 차곡차곡 스며드는 감정입니다. 사람을 자주 보면 그가 반가워지고 정들기 시작하고, 안보이면 기다려지고 걱정하게 됩니다. 이미 우리에게는 하느님의 사랑이 심어져 있기 때문에, 우리는 단지 그 사랑을 키워나가기만 하면 됩니다.

  그런데 한편 자신의 사정상, 살기 위해서, 마음먹은 만큼 사랑을 다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우리가 천막을 벗더라도 알몸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 천막 속에 살면서 무겁게 짓눌려 탄식하고 있습니다. 이 천막을 벗어 버리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그 위에 덧입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죽을 것을 생명이 삼키도록 말입니다. 바로 이 일을 위하여 우리를 준비시키신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그분께서 우리에게 그 보증으로 성령을 주셨습니다.”(2코린 5,3-5) 이미 앞 과에서 보아온 것과 같이,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 주셔서, 우리가 사랑하는 데 있어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성령께서는 우리가 사랑하도록 이끄시며, 채워 주시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다섯째, 그런데 문제는 “사랑의 감정이 생겨나지 않고, 사랑은커녕 미움만 앞서는데……. 차라리 남이라면 주님이나 교회의 명령에 따라서 하겠지만 누구보다도 사랑해야 할 가족인데도 그러니 어떻게 하겠습니까?”

  우리는 십자가상의 주님을 바라봅니다. 그분께서는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들한테 사랑은커녕 배신을 당해 십자가형에 처해졌습니다. 그런데도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루카 23,34) 용서를 청한 이가 그 중에 하나라도 있었는가를 고려하기보다, 주님께서는 사람들의 무지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죽이는 이들이,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들이며 주님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죽이려고 했을 리가 있었겠습니까?

  우리는, 우리 행위의 의미를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하는 행위가 남에게 어떤 부담을 주는지 모릅니다. 또한 우리는 우리 행동의 의미를 고려하여 행동하기보다는, 습관적으로 특별한 의미도 없이 행동합니다. 가령 그 행동이 남에게 비판받을 수 있는 소지가 있다 하더라도, 그 자신은 그 행동이 그렇게 문제된다고 보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합니다. 나에게 부담을 주는 상대도 그렇게 행동합니다. 그러니 그도 모르고 한 짓입니다. “서로 너그럽고 자비롭게 대하고,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에페 4,32)

  우리가 사랑하기 위해 용서하는, 아니 용서라는 그 사랑은 바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무상으로 베풀어 준 것이고, 심어 준 것입니다. 그 사랑은 또한 우리에게 생명이라는 형태로 사랑을 주시고, 매일 아침 우리 눈을 뜨게 하여 우리를 살리시는 하느님 사랑, 바로 그 자체에서 우러나오는 것입니다.


  여섯째, 그리고 상대의 행동에 대한 우리의 생각도 바뀌어야 합니다. 이를테면 알코올, 도박, 마약 중독은 일종의 병입니다. 그것은 결심하고, 강한 의지로 노력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닌 병입니다. 암환자를 미워할 수 있습니까? 단지 아프고 괴로운 감정이 들 뿐입니다. 그리고 그 아픔 앞에서, 어떻게 할 수 없는 자신의 무력감과 인정할 수밖에 없는 한계 앞에서, 주님께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께서 그를 지켜주시고 인도해 주시기를! “한 지체가 고통을 겪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겪습니다”(1코린 12,26)

  상대를 보라. 상대의 상태와 현실을! 그러면 미움보다는, 같은 감정(동정)과 감싸주고 싶은 사랑만이 자신의 가슴 전체에 메아리 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 선택된 사람, 거룩한 사람, 사랑받는 사람답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동정과 호의와 겸손과 온유와 인내를 입으십시오. 누가 누구에게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 참아 주고 서로 용서해 주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콜로 3,12-13)


※코린토 1서 13장을 보면서 두 가지 방법을 취해 봅시다.

  첫 번째로 4절부터 8절 첫 문장까지 읽을 때, ‘사랑’이라는 단어 대신 ‘나’라는 단어를 넣어 읽어 봅시다. 동시에 그 줄 마지막에 나오는 동사를 어떻게 마무리해야 하는지 결정하십시오. 그것이 우리의 현재 모습이지요!

  두 번째는 아예 나와 비교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성경에 나오는 사랑은, 어떤 의미로는 하느님의 사랑이지 우리의 사랑이 아닙니다. 읽으면 읽을수록 오히려 죄책감만이 생겨납니다. 그보다는 읽고 또 읽으면서, 하느님의 그 사랑이 내 안에 스며들고 자리 잡게 하십시오. 그 사랑이신 하느님께 청하는 마음으로 읽고 또 읽으면, 그 사랑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모든 면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그리스도로 충만해 있습니다.”(에페 1,23) 그러므로 고해성사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심어주신 사랑을 키우라는 부르심입니다.




  묵상과 나눔

1. 주님의 사랑을 실현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두려움과 망설임이 사라졌습니까?

2. 위 코린토 1서 13장의 말씀에 나오는 사랑의 항목 중에 내가 더욱 키워 나갈 항목은 어느 것이며, 내가 빨리 얻어야 할 항목은 어느 것입니까?




  새 빛

  고백자의 통회기도


○ 하느님, 제가 죄를 지어 참으로 사랑받으셔야 할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사오니 악을 저지르고 선을 소홀히 한 모든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나이다. 또한 주님의 은총으로 속죄하고 다시는 죄를 짓지 않으며 죄지을 기회를 피하기로 굳게 다짐하오니 우리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 공로를 보시고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차례..

5. 그리스도의 겸손한 마음

-성품성사-





  글쎄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가난한 사람요? 가난한 나를 도와주세요.”

  “가난한 사람이 가면 반기기나 하나요…….”

  “난 결혼할 거예요.”

  “주님도 좋고 사랑도 좋지만, 적당히 쉬고 내 인생도 살아야죠. 그렇게 바쁘고 힘든 일을 누가 해요? 자기 시간, 자기 인생도 없이 그저 남의 일에만 쫓아다니고, 누구 하나 알아주는 사람도 없고…….”

  “인생은 즐기라고 주신 것 아닌가요? 좋은 게 좋은 것 아닌가요? 하느님의 뜻은 뭐 다른 가요…….”




  둘이 

  나는 지금 어디에 서 있습니까? 어디를 향해 가고 있습니까? 어떤 식으로 인생의 순간을 보내고 계십니까? 옆 사람과 둘이 대화를 나누어 봅시다.


  시장에서 살 물건을 고르면서, 술집에서 우정을 나누며 스트레스를 해소하면서, 회사에서 어떻게 하면 더 잘될지 고민하면서, 나를 유혹하는 사회라는 거리에서 광고와 텔레비전과 시대의 흐름이 말해주는 대로 뒤쫓으면서, 아픔을 겪고 있는 이웃 앞에서 주님의 호소에 따라 위로하면서…….


  나는…….



  말씀

  일치와 겸손(필리 2,1-16)


  2 1그러므로 여러분이 그리스도 안에서 격려를 받고 사랑에 찬 위로를 받으며 성령 안에서 친교를 나누고 애정과 동정을 나눈다면, 2뜻을 같이하고 같은 사랑을 지니고 같은 마음 같은 생각을 이루어, 나의 기쁨을 완전하게 해 주십시오. 3무슨 일이든 이기심이나 허영심으로 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겸손한 마음으로 서로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십시오. 4저마다 자기 것만 돌보지 말고 남의 것도 돌보아 주십시오. 5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바로 그 마음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

    6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7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여느 사람처럼 나타나

    8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9그러므로 하느님께서도 그분을 드높이 올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그분께 주셨습니다.

   10그리하여 예수님의 이름 앞에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에 있는 자들이 다 무릎을 꿇고

   11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라고 모두 고백하며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게 하셨습니다.

  12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늘 순종하였습니다. 내가 함께 있을 때만이 아니라 지금처럼 떨어져 있을 때에는 더욱더 그러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여러분 자신의 구원을 위하여 힘쓰십시오. 13하느님께서는 당신 호의에 따라 여러분 안에서 활동하시어, 의지를 일으키시고 그것을 실천하게도 하시는 분이십니다.

  14무슨 일이든 투덜거리거나 따지지 말고 하십시오. 15그리하여 비뚤어지고 뒤틀린 이 세대에서 허물없는 사람, 순결한 사람, 하느님의 흠 없는 자녀가 되어, 이 세상에서 별처럼 빛날 수 있도록 하십시오. 16생명의 말씀을 굳게 지니십시오. 그러면 내가 헛되이 달음질하거나 헛되이 애쓴 것이 되지 않아, 그리스도의 날에 자랑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배움

  주님께서는 성품성사를 통해 “나와 함께 가난한 이들에게 가자!”고 우리를 부르십니다.


  첫째,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제직에서 우리가 받은 사도직의 원형과 방향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루카 4,18-19.21)

  그러므로 주님의 사제직을 받은 사도들은 가난한 이들에게 말과 행동으로 복음을 전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전한 그 복음을 받아들이고 믿는 이들과 함께 그 복음을 이룹니다. 그럼으로써 세상에 하느님 나라가 왔다는 은총을 선포합니다.


  둘째, 사도 바오로의 말씀 안에서, 우리는 사도직의 본질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1) 사도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 하느님께서 주신 사명을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의 종으로서 사도로 부르심을 받고 하느님의 복음을 위하여 선택을 받은 바오로가 이 편지를 씁니다.”(로마 1,1) “이 은총은 내가 다른 민족들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님의 종이 되어, 하느님의 복음을 전하는 사제직을 수행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다른 민족들이 성령으로 거룩하게 되어 하느님께서 기꺼이 받으시는 제물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로마 15,16)

  2) 사도는 하느님의 일꾼이며, 하느님으로부터 그 일을 할 수 있는 힘을 받습니다. “사실 다른 민족들이 순종하게 하시려고 그리스도께서 나를 통하여 이룩하신 일 외에는, 내가 감히 더 말할 것이 없습니다. 그 일은 말과 행동으로, 표징과 이적의 힘으로, 하느님 영의 힘으로 이루어졌습니다.”(로마 15,18-19) “하느님께서 당신의 힘을 펼치시어 나에게 주신 은총의 선물에 따라, 나는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습니다.”(에페 3,7)

  3)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봅니다. “나는 여러분 가운데에 있으면서 예수 그리스도 곧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기로 결심하였습니다.”(1코린 2,2) “그러나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어떠한 것도 자랑하고 싶지 않습니다.”(갈라 6,14)

  4) 사도는 자신을 버리고 주님께서 몸소 활동하시도록 합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서라면 약함도 모욕도 재난도 박해도 역경도 달갑게 여깁니다. 내가 약할 때에 오히려 강하기 때문입니다.”(2코린 12,10) “나의 주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의 지고한 가치 때문에, 다른 모든 것을 해로운 것으로 여깁니다.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지만 그것들을 쓰레기로 여깁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그분 안에 있으려는 것입니다.”(필리 3,8-9)

  5)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 되려고 합니다.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도, 권세도, 현재의 것도, 미래의 것도, 권능도, 저 높은 곳도, 저 깊은 곳도, 그 밖의 어떠한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로마 8,38-39) “사실 나에게는 삶이 곧 그리스도이며 죽는 것이 이득입니다.”(필리 1,21)

  6) 사도는 자신에게 임무를 맡기신 분이 누구이신지 그리고 그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나는 이 복음을 위하여 선포자와 사도와 스승으로 임명을 받았습니다. 그러한 까닭에 나는 이 고난을 겪고 있지만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나는 내가 누구를 믿는지 잘 알고 있으며, 또 내가 맡은 것을 그분께서 그날까지 지켜 주실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2티모 1,11-12) “이제 나는 여러분을 위하여 고난을 겪으며 기뻐합니다. 그리스도의 환난에서 모자란 부분을 내가 이렇게 그분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내 육신으로 채우고 있습니다.”(콜로 1,24)

  7) 사도는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노력합니다. “나는 내 몸을 단련하여 복종시킵니다. 다른 이들에게 복음을 선포하고 나서, 나 자신이 실격자가 되지 않으려는 것입니다.”(1코린 9,27) “나는 이미 그것을 얻은 것도 아니고 목적지에 다다른 것도 아닙니다. 그것을 차지하려고 달려갈 따름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이미 나를 당신 것으로 차지하셨기 때문입니다.”(필리 3,12) “이를 위하여 나는 내 안에서 힘차게 작용하는 그리스도의 기운을 받아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콜로 1,29)

  8) “이렇게 여느 사람처럼 나타나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필리 2,7-8) 그러므로 사도는 사명을 실천하기 위해 주님의 뒤를 따라 자기 생명을 바칩니다. “내가 설령 하느님께 올리는 포도주가 되어 여러분이 봉헌하는 믿음의 제물 위에 부어진다 하여도, 나는 기뻐할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와 함께 기뻐할 것입니다.”(필리 2,17) “여러분의 몸을 하느님 마음에 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십시오. 이것이 바로 여러분이 드려야 하는 합당한 예배입니다.”(로마 12,1)

  9) 사도의 기쁨과 보람은 “먼저 여러분 모두의 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의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여러분의 믿음이 온 세상에 알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로마 1,8) “여러분에 대한 나의 신뢰도 크고 여러분에 대한 나의 자랑도 큽니다. 나는 위안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우리의 그 모든 환난에도 기쁨에 넘쳐”(2코린 7,4)있는 것입니다.

  10) 사도의 아픔과 희망은 “나의 자녀인 여러분,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모습을 갖추실 때까지 나는 다시 산고를 겪고 있습니다. 내가 지금 여러분과 함께 있으면서 다른 어조로 말할 수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 나는 여러분의 일을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갈라 4,19-20) “나는 선택된 이들을 위하여 이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 그들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받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2티모 2,10) “그 기도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느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여러분에게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시어 여러분이 그분을 알게 되고, 여러분 마음의 눈을 밝혀 주시어, 그분의 부르심으로 여러분이 지니게 된 희망이 어떠한 것인지, 성도들 사이에서 받게 될 그분 상속의 영광이 얼마나 풍성한지 여러분이 알게 되기를 비는 것입니다.”(에페 1,17-18)라는 것입니다.

  11) 사도는 완성된 사람이 아니라 계속 정진해야 할 사람이고, 또한 이를 위해 신자들의 기도를 필요로 합니다. “말씀을 전할 수 있는 문을 하느님께서 열어 주시어 우리가 그리스도의 신비를 말할 수 있도록, 우리를 위해서도 기도해 주십시오. 나는 그 신비를 위하여 지금 갇혀 있습니다.”(콜로 4,3)


  셋째, 사도 바오로는 목자로서의 사목적인 배려에 대해 말합니다.

  1) “나는 여러분을 부끄럽게 하려고 이런 말을 쓰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을 나의 사랑하는 자녀로서 타이르려는 것입니다.”(1코린 4,14)

  2) 목자로서 어떤 목표를 향해, 어떤 마음으로 신자들을 만나야 하는지 말합니다. “나는 여러분을 보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여러분과 함께 성령의 은사를 나누어 여러분의 힘을 북돋아 주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내가 여러분과 같이 지내면서 여러분의 믿음과 나의 믿음을 통하여 다 함께 서로 격려를 받으려는 것입니다.”(로마 1,11-12) “나는 매우 괴롭고 답답한 마음으로 많은 눈물을 흘리며 여러분에게 그 편지를 써 보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을 슬프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을 향한 나의 특별한 사랑을 여러분이 알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2코린 2,4) “코린토 신자 여러분, 우리는 여러분에게 솔직히 말하였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활짝 열려 있습니다. 나는 자녀에게 이르듯이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여러분도 보답하는 뜻으로 마음을 활짝 여십시오.”(2코린 6,11.13) “여러분에게 굴레를 씌우려는 것이 아니라,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서 품위 있고 충실하게 주님을 섬기게 하려는 것입니다.”(1코린 7,35)

  3)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필리 2,6-7) 이렇게 사도는 그리스도를 본받아 자기가 만나는 신자들의 조건과 수준에 자신을 낮추어 맞춥니다. “나는 아무에게도 매이지 않은 자유인이지만, 되도록 많은 사람을 얻으려고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습니다.”(1코린 9,19) “형제 여러분, 여러분에게 이야기할 때, 나는 여러분을 영적이 아니라 육적인 사람, 곧 그리스도 안에서는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으로 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1코린 3,1)

  4) 사도는 신자들 안에 드러난 사건들을 신앙의 빛으로 비춰보고 식별하도록 합니다. “나는 그들에 관하여 증언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을 위한 열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깨달음에 바탕을 두지 않은 열성입니다.”(로마 10,2) “여러분은 현세에 동화되지 말고 정신을 새롭게 하여 여러분 자신이 변화되게 하십시오. 그리하여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하느님 마음에 들며 무엇이 완전한 것인지 분별할 수 있게 하십시오.”(로마 12,2)

  5) 사도는 주님의 이름으로 호소하고 권고하고 명합니다.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모두 합심하여 여러분 가운데에 분열이 일어나지 않게 하십시오. 오히려 같은 생각과 같은 뜻으로 하나가 되십시오.”(1코린 1,10) “나는 주님 안에서 분명하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더 이상 헛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다른 민족들처럼 살아가지 마십시오.”(에페 4,17) “나는 하느님 앞에서, 또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님 앞에서, 그리고 그분의 나타나심과 다스리심을 걸고 그대에게 엄숙히 지시합니다.”(2티모 4,1)


  넷째, 사도는 자신의 사명을 함께 실천할 협조자들을 선발하고 양성한 후 파견합니다. “그러한 까닭에 나는 그대에게 상기시킵니다. 내 안수로 그대가 받은 하느님의 은사를 다시 불태우십시오.”(2티모 1,6) “그 때문에 내가 티키코스를 여러분에게 보냅니다. 우리의 형편을 알리고 여러분의 마음을 격려하게 하려는 것입니다.”(에페 6,22)

  그리고 사목의 연계성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도단의 일치를 도모합니다. “나는 심고 아폴로는 물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자라게 하신 분은 하느님이십니다.”(1코린 3,6)


  다섯째, 우리가 사제가 되고 싶어할 때, 그것은 우리의 개인적인 꿈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사제직으로 부르시는 분은 바로 주님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호의에 따라 여러분 안에서 활동하시어, 의지를 일으키시고 그것을 실천하게도 하시는 분이십니다.”(필리 2,13)

  그리고 사제가 되고자 하는 이들은 그리스도의 겸손한 마음을 지녀야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바로 그 마음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필리 2,5)

  그리고 또한 “그리하여 비뚤어지고 뒤틀린 이 세대에서 허물없는 사람, 순결한 사람, 하느님의 흠 없는 자녀가 되어, 이 세상에서 별처럼 빛날 수 있도록 하십시오. 생명의 말씀을 굳게”(필리 2,15-16)지켜야 합니다.


  여섯째, 이상에서 본 사제직은 제단에서 말씀과 희생제사로 봉사하는 ‘직무 사제직’, ‘서품 사제직’ 또는 ‘축성 사제직’입니다. 그러나 한편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누구든지 세례를 받음으로써, 주님의 사제적 백성이 됩니다. 즉 신자 각자 자신이 몸담고 일하고 있는 사회에서 그리스도를 증거하도록 사제직을 수여받았습니다. 그 사제직을 ‘공통 사제직’, ‘일반 사제직’, 또는 ‘평신도 사도직’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바오로 사도의 서품 사제직에 관한 이상의 말씀들이 우리 평신도 사도직과 무관하지 않다고 봅니다. 서품 사제들이 교회 공동체에서 신자들을 위해 봉사하도록 축성되었다면, 우리는 세상에서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봉사하도록 초대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묵상과 나눔

1. 나는 성품성사를 받은 사제는 아닐지라도 세례성사를 통해 평신도 사도직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지금 내가 일하는 세상에서 주님의 사도로서 어떻게 활동하고 있습니까?

2. 내가 평신도 사도로서 간직해야할 것은 무엇입니까?

3. (내가 만일 사제직을 걷고 싶다면) 왜, 무엇을 위해 사제직을 선택하고 싶습니까?




  새 빛

  사제서품 예식 중에서 주교님의 훈시


  첫째, 예언직에 대하여, “여러분은 스승이신 그리스도의 성스러운 교도직을 책임지고 수행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기꺼이 받아들인 하느님의 말씀을 모든 이에게 전하십시오. 하느님의 법을 깊이 묵상하며 읽는 것을 믿고, 믿는 것을 가르치며 가르치는 것을 실천하십시오.

  여러분이 가르치는 교리는 하느님의 백성에게 양식이 되고, 여러분의 성실한 생활은 신자들에게 기쁨이 되도록, 말과 모범으로 하느님의 교회를 건설해야 합니다.”


  둘째, (성화)사제직에 대하여, “여러분은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성화의 임무도 수행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봉사로써 신자들의 영적 제사가 그리스도의 제사와 결합되어 완성될 것입니다. 제단에서 여러분이 거행하는 미사는 바로 여러분이 신자들과 함께 피흐름 없이 봉헌하는 그리스도의 제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자신이 거행하는 것을 알고 그 내용을 실천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주님의 죽음과 부활의 신비를 거행하는 것이므로 새로운 생활을 하도록 노력하십시오.

  세례로 사람들을 모아 하느님의 백성이 되게 하고, 고해성사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교회의 이름으로 죄를 사해주며, 병자성사로 병자들의 고통을 덜어 주십시오. 또한 여러 가지 거룩한 예식을 거행하고, 하느님의 백성뿐 아니라 온 세상을 위하여 매일 여러 차례 감사와 찬미의 제사를 드리며 여러분 자신이 사람을 위하여 사람 중에서 선발되어 하느님의 일을 하도록 임명되었음을 기억하십시오. 그러므로 참된 사랑과 변함없는 기쁨으로 사제이신 그리스도의 직무를 수행하며 자신의 이익을 찾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따르도록 하십시오.”


  셋째, 왕직에 대하여, “마지막으로 여러분은 머리이시요 목자이신 그리스도의 직무를 성실히 수행하십시오. 주교와 결합하여, 그 지도에 따라 신자들을 한 가족으로 일치시키며,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 안에서 그들을 하느님 아버지께로 인도해야 합니다. 봉사를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봉사하러 오셨고 길 잃은 사람을 찾아 구원하러 오신 착한 목자이신 그리스도를 언제나 모범으로 삼기 바랍니다.”





차례..

6. 둘이 한 몸을

-혼인성사-




  글쎄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안 돼요! 안 맞으면 헤어져야지. 안 맞는 걸 맞춘답시고 고생만 하지, 새 사람 만나서 새롭게 살아야지요.”

  “혼자 살면 정말 편하겠어요. 자식 없는 게 상팔자지.”

  “그냥 그렇게 사는 거예요! 사랑이 어디 있어요, 사랑이? 서로 싫어하는 일만 조심하면서 맞추며 사는 거지.”

  “저희도 처음엔 주는 대로 낳아서 키우려고 했어요! 그런데 어떻게 해요? 사회가 이젠 더 이상 자녀를 낳을 수 없도록 제도적으로 만들었어요.”




  둘이

  어떻게 우리 가정이 사랑을 이룰 수 있습니까? 내 배우자와 가족이 나에게 무엇을, 어떻게 하기를 원하십니까? 나는 그들의 바람에 어떻게 응하고 있습니까? 옆 사람과 둘이 대화를 나누어 봅시다.


  조금만 일찍 들어오세요!, 집 좀 지키고 있어요!, 술 좀 그만 드세요!, 바가지 좀 긁지 마세요!, 체신 좀 지키세요!, 잔소리 좀 하지 마세요!, 어지럽히지 좀 마세요!, 담배 좀 그만 피우세요!, 그 성격 좀 고치세요!, 그것만, 고것만, 조금만…….


  나는…….



  말씀

  아내와 남편(에페 5,21-33)


  5 21그리스도를 경외하는 마음으로 서로 순종하십시오. 22아내는 주님께 순종하듯이 남편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23남편은 아내의 머리입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이시고 그 몸의 구원자이신 것과 같습니다. 24교회가 그리스도께 순종하듯이, 아내도 모든 일에서 남편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25남편 여러분,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교회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신 것처럼, 아내를 사랑하십시오. 26그리스도께서 그렇게 하신 것은 교회를 말씀과 더불어 물로 씻어 깨끗하게 하셔서 거룩하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27그리고 교회를 티나 주름 같은 것 없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당신 앞에 서게 하시며, 거룩하고 흠 없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28남편도 이렇게 아내를 제 몸같이 사랑해야 합니다.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29아무도 자기 몸을 미워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하여 하시는 것처럼 오히려 자기 몸을 가꾸고 보살핍니다. 30우리는 그분 몸의 지체입니다. 31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됩니다.32이는 큰 신비입니다. 그러나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를 두고 이 말을 합니다. 33여러분도 저마다 자기 아내를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고, 아내도 남편을 존경해야 합니다. 




  배움

  주님께서는 혼인성사를 통해 “내 앞에서 한 약속을 무르익히라!”고 우리를 부르십니다.


  첫째, 아내들은 남편들에게 이야기합니다.“제발 일찍 좀 들어오세요! 늦으면 전화라도 하고요! 기다리는 사람 생각 좀 해주시고요! 그리고 술 좀 작작 드세요!” 또한 남편들은 아내들에게 말합니다.“집 좀 지켜 집 좀! 매일 어딜 그렇게 쏘다니는 거야? 집에서 청소도 하고, 맨날 방구석이 이게 뭐야, 이게 사람 사는 집이야? 돼지 우리지!”

  답답합니다! 답답할 것입니다! 게다가 요란스럽게 여기저기서 부딪히고 걸리적거려, 마음이 혼란스러울 때 그런 배우자의 모습을 보면 정말 짜증스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생각해 봅시다. 나는 누구와 결혼했습니까? 나는 내 마음 속에서 그려 왔고, 아직도 (변화되어 새 사람으로 내 앞에 나타나기를) 기대하는 내 마음 속의 배우자와 결혼한 것이 아닙니다. 나는 지금 매일 술만 먹고 늦게 귀가하는 남편과 결혼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지금 집안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고도, 아무 문제도 없다는 듯이, 매일 집을 비우고 쏘다니는 아내와 결혼했습니다. 어처구니가 없을지도 모르지만 난 지금 내가 그렇게도 싫어하는 점을 간직한 그 사람이 좋아서 결혼했습니다. 이 점만은 사실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둘째, “다 좋은데 그 점만 조금 고치면…….”하고 말할지 모르지만, 내가 내 배우자가 변화되기를 기대하고 바라는 ‘그 점만’, 그리고 ‘조금’이라고 하는 그 부분이, 나에게는 아주 작은 부분이지만 상대에게는 얼마나 큰 것인지를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물론 배우자에게 변화되기를 바라는 것 자체가 잘못은 아닐 것입니다. 그리고 배우자의 잘못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을 고치라고 지적하는 것도 대단한 용기겠지요! 배우자의 부족한 점을 발견하고 그것을 지적하는 것은, 참으로 사랑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행위요, 용기 있는 행위입니다. 그러나 더 큰 용기는 지적하는 것을 넘어, 자기가 아는 배우자의 부족한 점을 채워주는 것이 진정한 용기요, 진정한 사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남편도 이렇게 아내를 제 몸같이 사랑해야 합니다.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입니다.”(에페 5,28) 자신의 취향과 자신의 희망사항을 채워 주기를 기대하는 것은 참사랑이라기보다는 이기주의에 가깝습니다. 우리가 배우자에게 마땅치 않게 생각하고 화를 내는 점은 어떤 면에서는 내가 그 점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으며, 또 다른 한편으로는 내가 배우자의 그 점을 포용할 여유가 없는, 배우자가 내 한계를 넘어섰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거기서 불만과 불안감이 생겨납니다.

  그렇게 본다면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아주 적절한 배우자를 점지해 주셨다고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나를 완성시키기 위해 나의 부족한 점을 배우자가 채워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배우자가 신경에 거슬리고, 나를 화나게 할 때마다, 하느님과 배우자에게 감사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내 배우자는 나를 사랑해서, 나의 한계를 깨뜨리고 성숙시켜 주려고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남편 여러분,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교회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신 것처럼, 아내를 사랑하십시오.”(에페 5,25)


  셋째,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됩니다.”(에페 5,31)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서로 사랑하여 결혼하기 전까지, 그 동안 서로 다른 가문과 서로 다른 환경, 다른 문화, 다른 성장과정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결혼하였다고 해서, 아니 결혼한 부부라고 해서, 자기와 같은 마음과 같은 행동을 기대한다는 것은 욕심입니다. 아니 처음부터 어리석은 기대였을 것입니다. 서로 같을 수 있다면 하나 된다고 하지 않습니다. 서로 같다고 할 것입니다. 그리고 고민과 걱정도 없을 것입니다. 같으니까요!

  ‘하나 된다!’ ‘한 몸을 이룬다’는 것은 서로 같다는 의미보다는, 서로가 서로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여 완성에 이른다는 것일 수 있습니다. 또한 그렇게 보완하여 하나의 모습으로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자녀들에게 부모라는 한 모습으로, 이웃과 친지들에게 한 가정으로서의 모습을……. 사람은 누구나 한 사람 한 사람 실제로 만나게 되면, 각자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하나의 결정과 하나의 방향을 향해 나아가려고 노력하고, 또 함께 그것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넷째,그리스도께서 그렇게 하신 것은 교회를 말씀과 더불어 물로 씻어 깨끗하게 하셔서 거룩하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에페 5,26) 그러므로 하나 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몸을 바쳐 우리를 키우시고 살리시듯이 우리도 서로를 위해 몸을 바쳐야 합니다. 지금 와서 돌이켜 볼 때, 우리의 부족하고 불완전한 결합을, 주님께서 성사로 들어 올려 주시고 축복해 주셨다는 것에 우리는 감사드릴 뿐입니다. 주님께서는 죄 많은 우리를 위해 돌아가심으로써,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을 향한 사랑에 얼마나 충실한가를 보여 주셨습니다. “의로운 이를 위해서라도 죽을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혹시 착한 사람을 위해서라면 누가 죽겠다고 나설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심으로써, 하느님께서는 우리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증명해 주셨습니다.”(로마 5,7-8)

  우리 역시 우리의 혼인 서약에 충실해야 하겠습니다. 서약이란, 서로가 좋을 때뿐 아니라, 어렵고 심지어는 헤어지고 싶고 떠나고 싶을 때까지도 포함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 면에서 하나 되기 위해서는, 단순히 좋아한다는 사랑의 감정을 떠나, 무엇보다도 부부간의 용서는 필수적입니다. 그리고 용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가령 배신과 배반의 외도 상황이 눈앞에 펼쳐진다 하더라도 우리는, 우리가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다가 지쳐 마지막에는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까지 용서해 주시는 주님의 사랑을 실천해야 하겠습니다. “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며, 너희를 거슬러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사실 너희에 앞서 예언자들도 그렇게 박해를 받았다.”(마태 5,11-12)

  설사 살아서 나의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 보이더라도, 또 아무도 알아주지 못하더라도, 주님을 기억하며 주님의 자녀가 걸어 나갈 길을 포기하지 맙시다. 한평생 외도로 아내를 괴롭혀온 한 남편이 죽어 가면서, 차마 자기 아내에게는 말하지 못하고 친구에게 이런 말을 남기고 떠났다고 합니다. “나는 죽어서 아내의 가슴에 묻히겠습니다!”


  다섯째, 우리의 처지 안에서, 오히려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셔서 우리를 부르시는 주님의 호소를 들어 보십시오. 주님께서는 가난한 이웃을 우리 주변에 살도록 하심으로써, 우리에게 가난한 이웃을 맡기셨다는 것을 깨닫게 하십니다. 그와 같이 우리의 인격적인 완성을 위해, 내 배우자를 나에게 맡기셨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아니 오히려 나에게 사명을 주신 주님께 감사드려야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자신과 인생을 나누어 온 배우자를, 이제 자기 자신과 동일시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삶이 자기를 속인다는 말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회생활을 하는 남편은, 변천하는 사회사의 흐름 속에서 꾸준히 변화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시간을 가정과 친척들 안에서 보내야 하는 아내는, 남편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갑자기 과거에 비해 너무나 변화된 서로의 모습을 보면서, 멀어졌다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또한 남편은 사회에서 자기 자리를 잡기 위해 일에 매달리다시피 하여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고, 아이들은 다 커서 자신들의 길을 걸어가고 있지만, 아내는 어떻습니까? 아내는 가족을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치느라 자신의 친정과 친구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꿈과 문화 그리고 자기 계발의 순간을 다 놓쳐 버렸습니다. 어느덧 나이만 덜렁 들어 버린 자신을 발견하고서는, 허전해하고 억울해하는 40대 아내의 방황도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와 가정을 위해 자신의 입장에서 나름대로 애써 일해 온 서로를 기억하면서, 지금의 어려움을 극복해 나갑시다. 지난 순간들을 기억하면서, “나밖에 돌볼 사람이 없어서, 나밖에 맡아 줄 사람이 없어서 나에게 이 배우자를 보내셨다!”는 다짐을, 혼인 서약의 충실성과 책임감과 함께 가져봅시다. 어쩌면 이제부터 서로의 인격을 완성시킬 때가 아니겠습니까?


  결혼에 관한 바오로의 견해(1코린 7,1-16 참조)

  ․결혼과 독신생활

  “혼자 사는 이들과 과부들에게 말합니다. 그들은 나처럼 그냥 지내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자제할 수 없으면 혼인하십시오. 욕정에 불타는 것보다 혼인하는 편이 낫습니다.”(1코린 7,8-9)

  ․결혼의 불가해소성

  “혼인한 이들에게 분부합니다. 내가 아니라 주님께서 분부하시는 것입니다. 아내는 남편과 헤어져서는 안 됩니다. ─ 만일 헤어졌으면 혼자 지내든가 남편과 화해해야 합니다. ─ 그리고 남편은 아내를 버려서는 안 됩니다.”(1코린 7,10-11)

  ․별거상황

  “서로 상대방의 요구를 물리치지 마십시오. 다만 기도에 전념하려고 얼마 동안 합의한 경우는 예외입니다. 그 뒤에 다시 합치십시오. 여러분이 절제하지 못하는 틈을 타 사탄이 여러분을 유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1코린 7,5)

  ․외짝교우와 바오로 특전

  “그 밖의 사람들에게는 주님이 아니라 내가 말합니다. 어떤 형제에게 신자 아닌 아내가 있는데 그 아내가 계속 남편과 함께 살기를 원하면, 그 아내를 버려서는 안 됩니다. 또 어떤 부인에게 신자 아닌 남편이 있는데 그가 계속 아내와 함께 살기를 원하면, 그 남편을 버려서는 안 됩니다. 신자 아닌 남편은 아내로 말미암아 거룩해졌고, 신자 아닌 아내는 그 남편으로 말미암아 거룩해졌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의 자녀도 더러울 터이지만, 사실은 그들도 거룩합니다. 그러나 신자 아닌 쪽에서 헤어지겠다면 헤어지십시오. 그러한 경우에는 형제나 자매가 속박을 받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평화롭게 살라고 부르셨습니다.”(1코린 7,12-15)




  묵상과 나눔

1.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마음으로 서로 순종하십시오.”(에페 5,21)

  1) 남에게 자랑할 만하고 자기도 마음속으로부터 공경하는 배우자의 장점을 발견했습니까?

  2) 배우자 서로의 의견을 존중합니까?

     부부가 서로 다른 생각과 의견을 보일 때 서로의 의견과 주장을 들어 줍니까?

     서로의 가치관과 입장 차이를 겸허히 인정합니까?


2. “남편 여러분,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교회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신 것처럼, 아내를 사랑하십시오.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하신 것은 교회를 말씀과 더불어 물로 씻어 깨끗하게 하셔서 거룩하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에페 5,25-26)

  1) 남편으로서 아내에게 순종을 요구할 만큼 아내에게 성실하고 책임 있는 사랑을 쏟고 있습니까?

  2) 아내로서 남편을 신뢰하고 순종합니까?

  3) 다음 물음에 서로 답하십시오.

    ① 배우자의 생일과 기념일을 기억하고 축하해 줍니까?

         언제, 어떻게?

    ② 배우자의 꿈이나 취미가 무엇인지 알고 계십니까?

    ③ 배우자의 꿈과 취미를 살릴 시간을 주고 있습니까?

    ④ 배우자의 바람과 아쉬운 마음을 어떻게 헤아려 들어 줍니까?

    ⑤ 서로의 마음을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해 어떻게 배려합니까?

    ⑥ 서로가 약속한 대로 이행하지 않았을 때 서로 양해와 화해를 위한 시간을 가집니까?

    ⑦ 서로의 성적 요구에 성실히 응합니까?

    ⑧ 서로를 자기 인생의 귀한 선물로 받아들이고, 일생의 반려자로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⑨ 배우자에게 자신의 진심을 어떤 방법으로든 전하고 있습니까?

    ⑩ 배우자가 자신만의 공간과 시간을 갖고 싶을 때 그것을 인정하고 배려해 줍니까?

    ⑪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고 서로를 존중하면서도, 같이 한마음이 되기 위해 희생하고 노력합니까?



부부 십계명



     남편의 십계명            아내의 십계명


 1. 아내를 위해 화살기도를     1. 남편을 위해 기도하고

  하고 아내에게서 성모님의      남편에게서 예수님의 모습

  모습을 발견하며, 하느님께     을 발견하고, 하느님 은총의

  삶을 봉헌하는 동반자임을      공동 상속자임을 기억합시다.

  기억합시다.


 2. “예수님은 섬기러 오셨다.”   2. 남편이 밖에서 힘들게 일

   는 것을 기억하고 집안에서    해서 가정을 살린다는 것을

   왕처럼 군림하려 하지 말고    기억하고 남편의 어려운 입

   섬기는 마음으로 아내를 대    장을 이해해서, 혼자서만 말

   합시다.                      하지 말고 남편의 말도 들읍시다.


 3. 식탁에 오른 음식에 대해   3. 기도하는 마음으로 음식을 

   서 말이나, 행동으로 아내     준비하고 남편의 식성에 유

   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표      의합시다.

   시합시다.       


 4. 아내가 싫어하는 말이나,     4. 남편에게 할 말이 있을

   행동은 가급적 피하도록 하고,  때 분위기와 기회를 잘 선

   지나친 음주로 품위를 떨어     택하고, 남편의 잘못된 점

   뜨리지 않도록 하며, 귀가      을 보았을 때 칭찬과 함께

   시간이 늦을 때는 전화합시다.  넌지시 말합시다.


 5. 자녀들 앞에서 아내를 존중    5. 남편의 기를 살려주고,

   하는 모습을 보여 줌으로써      남편의 결점을 늘어 놓거

   아내의 위치를 세워 주고 아     나 바가지를 긁지 맙시다.

   내를 무시하는 말이나 행동을

   삼갑시다.


 6. 아내를 다른 여인과 비교하    6. 모임이나 회중 앞에서

   지 말고, 하느님께서 나에게      남편을 자랑하기보다 묵

   꼭 맞는 선물을 주셨다는 것      묵히 존경하고, 경솔한

   을 인정합시다.                  말이나 행동을 삼갑시다.


 7. 문제가 있을 때 자기의 판단   7. 남편에게 지나치게 의

   과 문제해결 방식만 옳다고 고   존하지 말고 취미생활이

   집부리지 말고 아내와 대화하    나, 하느님께서 주신 장점을

   고, 가정불화 시에는 아내에게   키워서 자신을 개발해 나

   한 걸음 양보합시다.            갑시다.


 8. 아내의 생일과 결혼기념일을   8. 기도하고 성경을 읽어, 

   기억하고, 정한 날짜에 외출      좋은 말씀을 남편에게 말

   하는 것을 잊지 맙시다.          이나 글로 전합시다.


 9. 아내의 건강에 대해 항상 신   9. 모든 일에 인내를 갖고

   경을 쓰고, 아내의 취미나 재     일하며 짜증스런 말이나,

   능을 키워줍시다.                행동을 피합시다.


10. 주부의 위치를 존중하고      10. 남편이 갖고 싶어하는

   살림살이는 가능한 아내의       한적한 시간을 존중합시다.

   의견을 존중합시다.             그래서 남편이 가정을 보

                                 금자리로 느낄 수 있도록

                                 합시다.




  새 빛

  혼인(동의)서약


◎ 나(      )는 당신을 내 아내(남편)로 맞아들여, 즐거울 때나 괴로울 때나, 성하거나 병들거나, 일생 당신을 사랑하고 존경하며 신의를 지키기로 약속합니다.


† 교회 안에서 고백한 이 합의를 주께서 친히 견고케 하시고 풍부히 강복하실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맺으신 것을 사람이 풀지 못할 것입니다.







차례..

7. 고통에서 영광으로

-병자성사-





  글쎄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죽으면 그만 아닌가요? 어차피 늙으면 병들고 죽기 마련인데…….”

  “또 살면 뭐해요? 여러 사람 고생만 시키는데……, 아무도 모르게 빨리 죽어서 추한 꼴 안보이고…….”

  “이젠 끝났어요. 이런 몸으로 어딜 가서 무얼 하겠어요.”

  “난 죽을 수 없어요! 지금 죽으면 내 아내나 자식은 어떡하고, 이 모든 일을 어떻게 해요…….”

  “저렇게 젊은 나이에 데려가시다니? 하느님도 무심하시지…….”




  둘이 


  근심 걱정을 할 때나 아플 때 어떻게 하면 다시 편안해집니까? 또 영원히 놓치기 싫은 것은 무엇입니까? 옆 사람과 둘이 대화를 나누어 봅시다.


  잠을 자면 다 잊어버립니다. 잠시 여행을 다녀오면 깨끗해집니다. 가만히 두면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히 해결되기도 합니다. 상대를 놓치지 않고 끝까지 정신을 바짝 차리면 됩니다. 주님께 매달리면 길을 알려 주십니다.


  나는…….



  말씀

  고난과 희망과 영광(로마 8,18-30)


  8 18장차 우리에게 계시될 영광에 견주면,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겪는 고난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19사실 피조물은 하느님의 자녀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20피조물이 허무의 지배 아래 든 것은 자의가 아니라 그렇게 하신 분의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희망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21피조물도 멸망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하느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영광의 자유를 얻을 것입니다. 22우리는 모든 피조물이 지금까지 다 함께 탄식하며 진통을 겪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23그러나 피조물만이 아니라 성령을 첫 선물로 받은 우리 자신도 하느님의 자녀가 되기를, 우리의 몸이 속량되기를 기다리며 속으로 탄식하고 있습니다. 24사실 우리는 희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보이는 것을 희망하는 것은 희망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을 누가 희망합니까? 25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희망하기에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립니다.

  26이와 같이, 성령께서도 나약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올바른 방식으로 기도할 줄 모르지만, 성령께서 몸소 말로 다할 수 없이 탄식하시며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해 주십니다. 27마음속까지 살펴보시는 분께서는 이러한 성령의 생각이 무엇인지 아십니다. 성령께서 하느님의 뜻에 따라 성도들을 위하여 간구하시기 때문입니다.

  28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29하느님께서는 미리 뽑으신 이들을 당신의 아드님과 같은 모상이 되도록 미리 정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그 아드님께서 많은 형제 가운데 맏이가 되게 하셨습니다. 30그렇게 미리 정하신 이들을 또한 부르셨고, 부르신 이들을 또한 의롭게 하셨으며, 의롭게 하신 이들을 또한 영광스럽게 해 주셨습니다




  배움

  주님께서는 병자성사를 통해 “나에 대한 희망을 잃지 말라!”고 우리를 부르십니다.


  첫째,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 들수록 자신의 미래에 대해 더 불안해하고, 자기가 처한 현실 상황이 불안정하다고 느낍니다. 왜 그런 것입니까? 지금까지 자기가 살아오면서 경험한 것이 믿음직스러운 것보다는 의심스러운 것이 많은 이유였겠습니까? 아니면 자신이 지금까지 추구해 온 것이 허망해진 탓입니까?

  “난 곧 죽을 것이니까 아무런 욕심도 없다.”고 말하면서도, 오히려 수전노 같아지고, 점점 독재를 부리게 되고, 작은 일에도 섭섭해하며, 화를 내게 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긴 인생 경험을 통해 꾸준히 인격적인 성장과 성숙을 해왔기 때문에, 더욱더 온유하고 너그러우며 내적으로 풍요로워져야 할 텐데 말입니다.

  누구나 먹고, 자고, 입으면서 삽니다. 어떤 이는 “먹고, 입고, 자는 것을 해결하기 위해 일합니다.”고도 합니다. 심지어는 사는 이유가 “먹고살기 위해서”라고까지 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느끼는 불안과 안정되지 않은 생활은, 단지 나이가 들어 무료한 하루하루를 보내야 한다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 의•식•주 해결에 대한 불안감에 있습니다. 오늘 지금 먹으면, 언제 또 먹을지 모른다는 심리적인 부담은, 육체를 더욱더 고달프고 궁폐스럽게 합니다. 젊을 때보다 끼니때를 늦추기가 더 힘들고, 옷이나 잠자리를 더 챙기게 만듭니다. 이러한 불안은 그야말로 보장되어 있지 않은 미래에서 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기대하는 것은, 자기 생명이 붙어 있는 한, 굶지 않고 길거리에 내팽개쳐지지 않고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거기에 병마저 걸리게 되면 그의 처지가 어떻게 됩니까? 자신이 병고에 시달려야 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그의 투병에 함께해 줄 이가 있습니까? 머리에 떠올리기도 싫은 상황입니다. 그러나 그 상황에 대한 두려움이, 내가 떠올리려 하지 않아도, 나의 현재를 강한 힘으로 지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떠올리려고 하지 않는 정도보다 그 이상으로 반비례하여 우리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두려움이 몰고 오는 힘입니다.


  둘째,그러나 그것은 희망을 간직하고 있습니다.”(로마 8,20) 희망은 무엇입니까? 죽음으로 사그라지고 말 육체가 소멸되지 않는다는 말입니까? 질병이 없어진다는 말입니까? 먹고 입고 잠잘 곳이 보장된다는 것입니까? 빠르게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변화하는 사회보장제도나 보험이, 이 불안을 우리에게서 지워줄 수 있단 말입니까?

  성경에서 말하는 희망은 무엇입니까?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다는 부활과 구원의 희망은 무엇입니까? 그 희망은 우리가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서, 허망해하는 현세적이고도 물질적인 보장이 아닙니다. 인간은 먹어야 살고, 언젠가는 죽습니다. “피조물이 허무의 지배 아래 든 것은 자의가 아니라 그렇게 하신 분의 뜻이었습니다.”(로마 8,20)

  그런데도 인간이 가질 수 있는 희망은 “피조물도 멸망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하느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영광의 자유를 얻을 것”(로마 8,21)이라는 희망입니다. 멸망의 사슬에서 풀려난다는 것은, 어차피 죽을 운명으로부터의 해방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녀가 되기를, 우리의 몸이 속량되기를 기다리며 속으로 탄식하고 있다.”(로마 8,23) 우리의 몸이 해방된다는 것은, 우리 육체의 유지와 안락함에 대한 걱정과 관심으로부터 자유롭게 된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우리가 더 이상 육체로 인한 제약을 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죽은 후의 영혼만이 있는 날로부터가 아니라, 지금 여기서 아직 병들거나 늙지 않았어도,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날부터라는 것입니다.


  셋째, “여러분이 육에 따라 살면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힘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 것입니다. 하느님의 영의 인도를 받는 이들은 모두 하느님의 자녀입니다.”(로마 8,13-14) 죽음의 한계와 육체의 보존과 건강을 유지하려는 몸부림에서 해방된 자유로운 삶을 봅시다. ‘성 프란치스코’, ‘마더 데레사’ 그리고 ‘이름 없는 봉사자들!’ 그들은 가질 것을 다 가졌기 때문에, 그리고 미래에 대한 불안을 느낄 만한 처지가 아니라 다 보장되었기 때문에 다른 이들에게 자기를 바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어차피 죽을 목숨이니 여기서 좋은 일이나 하고 가자!”하는 마음으로 헌신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처럼 죽음의 힘이 누를 수 없는 이들이며, 죽음에 구애받지 않는 하느님의 자녀들입니다. 그들에게 보장이 있다면 그것은 하느님의 사랑뿐입니다. “우리가 아직 나약하던 시절, 그리스도께서는 정해진 때에 불경한 자들을 위하여 돌아가셨습니다. 의로운 이를 위해서라도 죽을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혹시 착한 사람을 위해서라면 누가 죽겠다고 나설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심으로써, 하느님께서는 우리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증명해 주셨습니다.”(로마 5,6-8)


  넷째,사실 우리는 희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보이는 것을 희망하는 것은 희망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을 누가 희망합니까?”(로마 8,24) 우리의 희망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오늘 내가 남을 위해 헌신하다가 쓰러지면 누가 나를 돌볼 것입니까?”하는 이런 기본적인 계산도 못 해서가 아니라, 하느님의 자녀들이 생각하는 것은 ‘하느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영광스러운 자유’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미리 정하신 이들을 또한 부르셨고, 부르신 이들을 또한 의롭게 하셨으며, 의롭게 하신 이들을 또한 영광스럽게 해 주셨습니다.”(로마 8,30)


  다섯째, 성령께서는 이러한 영광을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우리에게서 두려움을 몰아내 줍니다. “성령께서도 나약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올바른 방식으로 기도할 줄 모르지만, 성령께서 몸소 말로 다할 수 없이 탄식하시며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해 주십니다.”(로마 8,26) 그리고 성령께서는 우리를 이끄시고 채워 주십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로마 8,28)

  이러한 믿음과 희망 때문에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희망하기에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로마 8,25)리며, 하느님께서 맏아들이신 그리스도와 같은 모습을 가지도록, 미리 정하신 대로 살아갑니다. 이것이 희망을 이루는 삶이요, 희망의 성사를 받는 이들의 은총입니다.


  여섯째, 이 희망의 전망 안에서 우리의 질병과 고뇌를 봅시다. 질병은 우리 인간의 한계를 더욱더 절박하게 느끼게 합니다. 그러나 한편, 질병으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은, 그 고통을 바라보는 이들에게 사랑을 실천하도록 초대하고 있습니다. 이 모습은 질병이 한 개인의 문제로 그치지 않고, 사회적인 연대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게 합니다.(심흥보 저, ‘가톨릭 교리서’, 82쪽 7과 배움 여섯째, 2003 참조)

  또한 우리는 죄 없으신 주님께서, 오히려 다른 이들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 상에서 돌아가시고, 그 구원을 위한 희생을 보신 아버지께서 주님을 부활시켜 주셨음을 믿습니다. 이러한 믿음 속에서, 우리는 인간의 질병과 그 질병으로 인한 고통을, 더 이상 죄의 벌이라고만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오히려 인간의 고통을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이제 나는 여러분을 위하여 고난을 겪으며 기뻐합니다. 그리스도의 환난에서 모자란 부분을 내가 이렇게 그분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내 육신으로 채우”(콜로 1,24)는 행위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또한 그 고통의 순간에, 우리는 더욱더 주님을 가깝게 만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하여 나는 내 안에서 힘차게 작용하는 그리스도의 기운을 받아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콜로 1,29) 그리고 고통을 인간의 처참한 모습만으로 볼 필요는 없습니다. 고통은 인간을 정화시키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그 계시들이 엄청난 것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그래서 내가 자만하지 않도록 하느님께서 내 몸에 가시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사탄의 하수인으로, 나를 줄곧 찔러 대 내가 자만하지 못하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이 일과 관련하여, 나는 그것이 나에게서 떠나게 해 주십사고 주님께 세 번이나 청하였습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서라면 약함도 모욕도 재난도 박해도 역경도 달갑게 여깁니다. 내가 약할 때에 오히려 강하기 때문입니다.”(2코린 12,7-8.10)


  일곱째, 어떤 병자는 “아파서 누워 있을 때 더 열심히 기도하게 될 줄 알았지만, 막상 아프다 보니 기도는커녕, 아픈 데 신경 쓰느라 주님을 기억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 상황에선 기도가 사치요, 한낱 이론적인 처방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지금까지 자신이 살아온, 삶의 습관과 선택에서 오는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증언도 있습니다. “아플 땐 기도고 뭐고, 옆에 사람이 있는데도 눈치 볼 여유도 없더라구요. 내가 당장 아파 죽겠는데. 이리저리 뒹굴면서, 그냥 ‘주님, 주님!’ 하고만 외쳐댔어요. 나중엔 말도 안 나오더라구요. 그런데 한 번은 그야말로 지옥 같은 통증을 겪고 난 후, 우연히 벽에 걸린 십자고상을 바라보게 되었어요. 그러면서 예수님께서는 얼마나 아프셨을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어요. ‘십자가에 저렇게 생으로 매달렸었다니!’ 하는 생각에 순간 눈물이 흘러 나왔어요. 그 후엔 고통이 올 때마다 십자가를 바라보게 되었고, 그때마다 내가 주님과 합쳐지는 것 같았어요. 그리고 계속 아프기만 한 건 아니잖아요. 고통이 왔다갔다해요. 그런데 그 고통의 순간순간을 넘기면서 내가 점점 강해지는 것 같았어요.”

  이 모습과 연관시켜 우리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환난도 자랑으로 여깁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환난은 인내를 자아내고 인내는 수양을, 수양은 희망을 자아냅니다. 그리고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기 때문입니다.”(로마 5,3-5) 또한 주님에게서도 이런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계실 때, 당신을 죽음에서 구하실 수 있는 분께 큰 소리로 부르짖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와 탄원을 올리셨고, 하느님께서는 그 경외심 때문에 들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드님이시지만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그리고 완전하게 되신 뒤에는 당신께 순종하는 모든 이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으며, 하느님에게서 멜키체덱과 같은 대사제로 임명되셨습니다.”(히브 5,7-10)

  고통은 오히려 우리를 더욱더 하느님의 자녀로 만들어 주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겪는 고통이 구원을 향한 주님의 고통과 연결될 때, 그 고통은 좌절이 아니라 희망의 서곡이요 주님의 부르심입니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희망하기에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립니다.”(로마 8,25)




  묵상과 나눔

1. 우리의 믿음에서 우러나오는 희망과, 주님의 약속으로 말미암아 지울 수 있는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망설여집니까? 왜?

2. 고뇌의 현장에서 부활하신 주님의 부르심을 느끼십니까?

3. 주님의 남은 고난을 내 몸으로 채울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주님의 고난을 채우려는 내 안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 우리 주님께서 강한 힘을 주시고 계시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까? 그러면 이제 어떻게 채우시겠습니까?




  새 빛

  도유(병자 성유 바를 때)


† 주님께서는 당신의 자비로우신 사랑과 기름 바르는 이 거룩한 예식으로 성령의 은총을 베푸시어 이 병자를 도와 주소서. 또한 이 병자를 죄에서 해방시키시고 구원해 주시며, 자비로이 그 병고도 가볍게 해주소서.







차례..

□ 피 정

그리스도를 통한 새 생활







  말씀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새 삶(콜로 2,20-3,17)


  2 20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 이 세상의 정령들에게서 벗어났으면서도, 어찌하여 아직도 이 세상에 살고 있는 것처럼 규정에 얽매여, 21“손대지 마라, 맛보지 마라, 만지지 마라.” 합니까? 22모든 것은 쓰고 나면 없어져 버리는 것들에 대한 규정으로, 인간의 법규와 가르침에 따른 것들일 뿐입니다. 23그런 것들은 자발적인 신심과 겸손과 육신의 고행을 내세워 지혜로운 것처럼 들리지만, 육신의 욕망을 다스리는 데에는 아무런 가치도 없습니다. 

  3 1그러므로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저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십시오. 거기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아 계십니다. 2위에 있는 것을 생각하고 땅에 있는 것은 생각하지 마십시오. 3여러분은 이미 죽었고, 여러분의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 안에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4여러분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여러분도 그분과 함께 영광 속에 나타날 것입니다. 5그러므로 여러분 안에 있는 현세적인 것들, 곧 불륜, 더러움, 욕정, 나쁜 욕망, 탐욕을 죽이십시오. 탐욕은 우상 숭배입니다. 6이것들 때문에 하느님의 진노가 순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내립니다. 7여러분도 전에 이러한 것들에 빠져 지낼 때에는 그렇게 살아갔습니다. 8그러나 이제는 분노, 격분, 악의, 중상, 또 여러분의 입에서 나오는 수치스러운 말 따위는 모두 버리십시오. 9서로 거짓말을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옛 인간을 그 행실과 함께 벗어 버리고, 10새 인간을 입은 사람입니다. 새 인간은 자기를 창조하신 분의 모상에 따라 끊임없이 새로워지면서 참지식에 이르게 됩니다. 11여기에는 그리스인도 유다인도, 할례 받은 이도 할례 받지 않은 이도, 야만인도, 스키티아인도, 종도, 자유인도 없습니다. 그리스도만이 모든 것이며 모든 것 안에 계십니다.

  12그러므로 하느님께 선택된 사람, 거룩한 사람, 사랑받는 사람답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동정과 호의와 겸손과 온유와 인내를 입으십시오. 13누가 누구에게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 참아 주고 서로 용서해 주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 14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입으십시오. 사랑은 완전하게 묶어 주는 끈입니다. 15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을 다스리게 하십시오. 여러분은 또한 한 몸 안에서 이 평화를 누리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감사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16그리스도의 말씀이 여러분 가운데에 풍성히 머무르게 하십시오. 지혜를 다하여 서로 가르치고 타이르십시오.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느님께 시편과 찬미가와 영가를 불러 드리십시오. 17말이든 행동이든 무엇이나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면서, 그분을 통하여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십시오. 




  배움

  주님께서는 “성령의 인도를 따르라!”고 우리를 부르십니다.


  첫째, 신앙생활은 또 다른 형태의 속박이나 굴레가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마태 11,28-30)라고 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신경 쓰게 하고 제한하며 억누르는 모든 장애와 벽을 허무셔서, 우리를 해방시키시고, 우리에게 자유를 누리도록 해주셨습니다.

  그렇다고 옳건 그르건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자기 마음대로 살라는 것이 아닙니다. 또 종교계율을 완전히 무시하라고 하신 것도 아닙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자유는 사랑함으로써 얻는 자유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교 신앙생활은 사랑의 생활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포함하고, 모든 것을 이기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완전하게 묶어 주는 끈입니다.”(콜로 3,14ㄴ)


  둘째,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은 애초에 타인의 무관심과 멸시로 빚어진 폐해를 끌어안는 삶입니다. 우리가 그 폐해를 끌어안을 때 세상은 자신들이 저지른 죄악의 결과를 보게 됩니다. 그들이 그 결과를 보고 회개하며 속죄하는 마음으로 주님의 사랑에 함께하고자 할 때 우리는 사람을 살리는 것이 됩니다. 그러나 그들이 회개하지 않고 죽음의 두려움 속에 갇히기 될 때면 자기 죄악의 결과를 숨기기 위해 우리를 박해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오히려 영혼도 육신도 지옥에서 멸망시킬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마태 10,28)하신 주님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이미 죽었고, 여러분의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 안에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콜로 3,3)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이지 세상의 자녀가 아닙니다. 세상이 우리를 죽이려고 한다 하더라도, 우리는 마지막 날에 주님과 함께 살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니 그분과 함께 살리라고 우리는 믿습니다.”(로마 6,8) 그러므로 중단없이 사랑을 완성하십시오. 성령께서 우리에게 용기와 희망을 아낌없이 부어주실 것입니다.


  셋째,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 이 세상의 정령들에게서 벗어났으면서도, 어찌하여 아직도 이 세상에 살고 있는 것처럼 규정에 얽매여, ‘손대지 마라, 맛보지 마라, 만지지 마라.’ 합니까?”(콜로 2,20-21) 종교계율을 메우고 채우려고 수고하기보다는 주님의 사랑을 추구하십시오. 서울에서 부산을 가고 싶을 때, ‘비행기로 갈까? 기차로 갈까? 버스로 갈까? 자전거로 갈까? 걸어서 갈까? 어느 것으로 갈까?’ 하고 망설이기보다, 그 중 하나만 선택하면 나머지 수단은 자연스레 없어져 버립니다.

  “위에 있는 것을 생각하고 땅에 있는 것은 생각하지 마십시오.”(콜로 3,2)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주님께서는 내가 어떻게 하기를 바라시는지’를 먼저 생각하고 그대로 하면 다른 것은 그냥 허물어지고 맙니다. 주님과 주님의 뜻을 우리의 생각과 선택의 맨 첫 자리에 놓고 살아가십시오.


  넷째,새 인간은 자기를 창조하신 분의 모상에 따라 끊임없이 새로워지면서 참지식에 이르게 됩니다.”(콜로 3,10ㄴ)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피아노를 치면서 피아노를 배워가듯이, 조금씩 점차로 사랑해 나가면서, 어떻게 하는 것이 주님의 사랑을 사는 방법인지 배워나가십시오.

  “그리스도의 말씀이 여러분 가운데에 풍성히 머무르게 하십시오.”(콜로 3,16)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최고의 선생님은, 바로 주님의 성령이십니다. 주님의 말씀을 성경 안에서 찾고, 찾은 것을 깨닫고, 깨달은 것을 실천하십시오.

  주님의 말씀은 힘이 있습니다. 말씀은 우리를 부활하신 주님의 능력 안으로 불러 주시고,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우리의 작은 노력을, 당신의 능력으로 열매를 맺게 해주십니다. 그리고 실천한 결과를, 다시 말씀 안에서 바라보십시오. 그렇게 주님의 말씀을 점점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나가십시오.

  그러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머무르게 될 것이며, 그리스도의 평화가 우리를 휘감아 주실 것입니다. 그 때 우리는 이 세상에서 별처럼 빛나는 ‘제2의 그리스도’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묵상

  주님께 견진성사의 은총을 청하면서 편지를 올립시다.




새 빛

  사도 바오로의 마지막 권고(1테살 5,16-22.25)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 성령의 불을 끄지 마십시오. 예언을 업신여기지 마십시오. 모든 것을 분별하여, 좋은 것은 간직하고 악한 것은 무엇이든 멀리하십시오. 형제 여러분, 우리를 위해서도 기도해 주십시오.








부 록


1. 성사로 간주할 만한 표지들

1) 말씀의 전례와 말씀 나누기

2) 기도

3) 거룩한 신심행위

4) 기도와 단식과 희생 및 자선 그리고 봉사

5) 선서-축성생활회(수도회와 재속회)와 평신도 사도직 단체

(1) 수도자 종신 서원

(2) 동정녀 축성 예식

(3) 재속회 서약

(4) 평신도 사도직 단체의 선서

2. 일곱 성사생활 성경 찾아보기






1. 성사로 간주할 만한 표지들




차례..

1) 말씀의 전례와 말씀 나누기-구역·반 공동체


  주님은 우리 아버지 하느님의 말씀이시고, 주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주님을 만나게 해주는 성사적인 표지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주님의 말씀은 첫째 주님을 알게 해주고, 둘째 주님의 뜻을 깨닫게 해주며, 셋째 우리의 구체적인 상황에서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길을 제시해 줍니다.

  또한 교회의 소공동체에서 하는 ‘(복음) 말씀 나누기’는 참으로 성사적입니다. 본당의 소공동체인 구역•반에서는 형제•자매들이 함께 모여, 주님의 말씀을 자신의 삶과 일상생활에 비추어 나눕니다. 이러한 나눔 속에서, 공동체의 일원들은 다른 형제의 발표에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게 됩니다. 또한 주님을 모신 공동체 안에서, 자신의 삶을 복음에 비추어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식별하고, 용기와 위로를 받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교회의 소공동체 모임에서, 말씀을 기준으로 자신들의 신앙생활과 자신들이 살고 있는 지역사회를 바라봅니다. 어떻게 하면 신앙생활과 지역사회를 더욱더 복음화할 수 있는지, 서로 머리를 맞대고 함께 주님의 길을 찾습니다.

  우선 자신이나 본당의 신앙생활과 지역사회 속에서 개선할 점이 무엇인지 살펴봅니다. 그 다음에 주님께서는 그것을 어떻게 개선하기를 원하시는지 성경에서 찾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찾은 주님의 뜻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현 가능하게 할 것인지 방법을 계획하고, 단계적으로 실천합니다.






차례..

2) 기도

  우리는 ‘빵 한 조각을 식탁 위에 놓고 기도하는 노인의 모습’이 그려진 그림을 보면서, 겸허하고 감사하는 자세로 살아야겠다는 응답이 우리 내부에서 일어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또한 성당에서 기도하는 수도자들의 모습에서, 평온한 얼굴로 두 눈을 감고 묵주를 돌리며 기도하는 신자들의 모습 속에서 경건한 부르심을 느낍니다. 기도하는 신앙인의 모습은 주인이신 주님께 자신을 바치고 맡기는 봉헌의 자세이며, 거룩해지라는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삶의 구체적인 행동 중의 하나입니다.

  자신의 뜻을 버리고 주님의 뜻을 찾는 기도자들의 모습은, 자신들뿐 아니라, 그 모습을 지켜보는 이들에게 하나의 성사적인 표지가 됩니다. 또한 우리가 자주 바치는 ‘묵주의 9일 기도’는, 주님의 일생을 묵상하며 주님께서 내려 주신 은총에 대해 감사드리고,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상황을 주님의 뜻 안에서 풀어 나가려는 사도들의 연구인 동시에, 우리의 삶 속에 주님께서 왕하셔서 우리를 당신의 도구로 써 달라는 기본적인 응답입니다.

  주님을 기리며, 주님의 뜻을 찾는 우리의 기도는, 홀로 하더라도 공동체의 기도가 됩니다. 우리를 회심으로 이끌고, 공동체의 관심사와 현안을 주님께 봉헌하며,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 임하시기를 비는 ‘시간경(성무일도)’은 그 시간에 기도하는 모든 이들과 함께 고리를 이루어 교회의 기도가 됩니다.

  기도하는 신앙인의 삶, 곧 기도생활은 주님을 우리의 구체적인 생활 안에 모시고, 자기가 하고 싶고 원하는 것을 버리고 주님의 도구로써 주님의 뜻대로, 이웃과 함께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 살고자 하는 교회의 삶이며, 그러기에 성사적인 표지입니다.




차례..



3) 거룩한 신심행위

  말씀의 전례와 함께 또는 말씀의 전례와 연관하여 거행되는 교회의 거룩한 신심행위는 대부분 성모 마리아나 성인들의 업적을 기리고 본받아 공경하기 위한 행위입니다. 이러한 신심행위들도 교회의 또 하나의 성사적 표지입니다.

  우리는 매년 5월 성모 성월을 맞아, 거룩한 신심행위 중 대표격인 ‘성모의 밤’을 통해 성모님의 신앙을 기리고 새깁니다. “성모는 우리 신앙의 모범이며, 교회의 표상입니다. 마리아는 처녀가 아기를 가졌다는 사실 앞에서 ‘주님의 뜻을 찾아, 그 뜻에 순명했고’, 가나의 혼인잔치 때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현실을 주님께 알려드리고, 주님께서 오시도록 청했으며’, 주님의 십자가 아래에서 주님과 함께 ‘주님의 수난에 참여했으며’ 주님을 통해 ‘우리 교회의 어머니가 되셨습니다.’ 그리하여 ‘교회 공동체와 함께 성령을 청하시고’ 하늘에서 우리의 어머니로서 교회를 자애롭게 바라보고 계십니다.”(심흥보 저, ‘가톨릭 교리서’, 22-1과 215~218쪽, 1994 참조) 성모를 기리는 신심은 신자들의 가슴속에 자애로우신 어머니요, 주님의 겸손된 자녀로서의 자세를 간직하도록 합니다.

  또한 9월 순교자 성월에 ‘순교자의 밤’을 통해 우리는, 죽음에 이르기까지 주님을 증거한 순교자들의 용기와 삶을 되새기며, 성령께서 우리를 성화시키시고 이끄시도록 맡기게 됩니다. 견진성사를 받아 더욱 굳건해진 신자들은 매일, 세상의 사고방식과 흐름에 속하지 않고 주님께 속한 생활을 함으로써 세상에 주님을 증거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이루신 성인들의 삶은 우리가 주님께 대한 희망과 믿음을 더욱 굳세게 함으로써, 지금 여기서 우리가 성령의 인도를 받아 성체성사를 받아 모심으로써 주님을 따라 살도록 해줍니다.




차례..



4) 기도와 단식과 희생 및 자선 그리고 봉사

  주님께서는 편하게 사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인류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주님을 만나고 주님의 사랑을 느낍니다. 그렇듯이 우리도 자신의 현세적인 발전과 풍족한 삶을 위해 더 유익하고 효과적인 방법을 포기하고, 이웃의 고통 앞에 멈추어 서서 ‘착한 사마리아 사람’처럼 자신을 희생하는 행위는, 바로 주님의 모습이며, 희생을 하는 이나 그 희생을 바라보는 이들로 하여금 주님을 발견하고 만나도록 하는 성사적인 표지라 할 수 있습니다.

  기도는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마태 6,10)기를 청하신, 예수님께서 아버지를 효심 깊게 섬기는 아들임을 드러내는 본질적인 모습입니다. 주님께서는 죽음을 목전에 두시고도 자신의 생각과 의지를 버리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뜻과 방법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면서, “아버지, 하실 수만 있으시면 이 잔이 저를 비켜 가게 해 주십시오. 그러나 제가 원하는 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십시오”(마태 26,39)라고 기도하셨습니다. 내 생각과 방법보다 아버지의 뜻과 방법이 맞다고 믿으며 그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의탁하는 성사적인 표지입니다.

  단식은 생명체의 자기 보호와 유지의 본능을 거부하는 행위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희생제사에 참여하는 마음으로, 또 이웃의 아픔과 고통에 동참하는 수고로 끼니를 거를 때(마르 6,31 참조), 이 단식은 물론이요 자신의 이익을 포기하고 이웃의 구원을 위해 희생하는 것도 주님의 성체성사적인 표지입니다. 우리는 가끔 우리가 원치 않아도 우리에게 부당하게 요구되기 때문에 당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힘이 없거나 그 상황을 거부하지 못해서 어쩔 수 없이 당하는 경우라 할지라도, 억울해하며 마지못해 하거나 무조건 참기보다 다른 이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라면, 그 아픔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주님께서 세상을 구하시기 위해 겪으신 고통에 참여하기 위해 우리도 고통을 겪으며 주님께 그 고통을 봉헌한다면 우리에겐 공덕도 되고 세상을 구하는 일에 동참하는 일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자신을 버리고 주님을 따른다는 의미로, 자신의 생명이라 할 수 있는 시간과 땀, 힘과 소유를, 아무런 대가 없이 이웃과 나누는 것 역시 성사적인 표지입니다. 자선과 봉사라는 행위의 의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자신의 것으로만 여기지 않겠다는 표현입니다. 즉, 자신의 것은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잠시 맡기신 것이고, 다른 이들과 함께 사회를 이루기 위해 봉사하여야 할 것이며, 가진 모든 것은 인류 모두에게 주어진 것이기에 당연히 나누어야 한다고 여기는 피조물의 기본 자세입니다.

  이는 세례성사를 받아 내가 몸 담고 있는 이 사회를 하느님 나라로 만들어 가는 주님의 자녀가 걸어갈 길이요, 평신도 사도직을 받아 주님의 제자이며, 사도들이 걸어갈 성체성사의 길입니다.




차례..



5) 선서-축성생활회(수도회와 재속회)와 평신도 사도직 단체

  성품성사는 아니지만 주님 앞에 자신의 일생을 가난과 정결 그리고 순명의 복음 3덕에 따라 선서를 하는, 축성생활회의 회원(수도자와 재속회원)들의 선서도 하나의 성사로 간주할 만한 표지입니다. 또한 평신도로서 그리스도 예수를 따라 사람들 사이에서 복음의 3덕을 사는, 재속회의 ‘봉헌된 평신도’들의 서약도 성사적 표지입니다. 그리고 복음 3덕을 선서하지는 않지만 세상 안에서 자신의 삶을 주님께 바치려는, 각 평신도 사도직 단체의 선서도 성사적 표지입니다.

  여기 수도자들의 서원과 동정녀 축성예식, 그리고 재속회원들의 서약과 평신도 사도직 단체원들의 선서를 소개합니다.




차례..


(1) 수도자 종신서원-샬트르 성바오로 수녀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주 예수님, 저는 성령의 도우심에 힘입어 사람들을 섬기며 아버지의 나라를 위해 저 자신을 봉헌하고자 하나이다.


  저 ○○○ 수녀는 찬미의 희생 제사를 바치신 주님과 하나 되어 종신토록 정결과 가난과 순명의 삶을 서원하나이다. 저의 이 서원을 샬트르 성바오로 수녀회 안에서 총장(관구장)께 맡겨 드리며 본회 회칙대로 살 것을 서약하나이다.


  주님, 당신 은총이 저를 도우시어 제가 하는 이 봉헌을 이루어 주시며 또한 당신이 돌아오실 때까지 이에 늘 충실하게 하소서. 아멘.




차례..


(2) 동정녀 축성 예식

-레이 메르메 저, 김인영 역, ‘성경 안에 드러난 신앙’,

 분도출판사, 1994.


  고대교회 이래 사용되던 동정녀 축성 예식서는 성사전례성에 의해 개정되어 1970년 5월 31일 인준되었습니다. 이 예식서는 고유 예식서를 갖지 못한 수녀회와 이 동정녀 축성을 받을 수 있는 허가를 주교로부터 받은 평신도 동정녀들을 위한 것입니다.


<말씀의 전례 후에 주교는 후보자들에게 질문합니다.>

† 여러분은 여러분이 주님과 교회에 봉사하기 위하여 동정생활을 택한 여러분의 결정을 평생 지켜나가기를 원하십니까?

◎ 네, 원합니다.

† 여러분은 여러분의 삶이 사랑의 증거요 앞으로 올 하늘 나라의 표지로서 드러나도록 복음에 따라 그리스도께 복종하기를 원하십니까?

◎ 네, 원합니다.

† 여러분은 하느님의 아들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여러분을 바치고, 그분을 여러분의 신랑으로 받아들이시기를 원하십니까?

◎ 네, 원합니다.

<이어서 성인호칭기도와 종신동정서원이 따릅니다. 이제 주교는 손을 뻗친 채 성대한 축성기도를 바칩니다. 이 기도문은 성 레오 교황(440-461년)의 것입니다.>

† 사람들 가운데 머무시기를 원하시는 우리 주 하느님, 당신은 당신께 봉헌한 이들 가운데 계시며, 자유롭고 깨끗한 마음들을 사랑하시나이다.

  당신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세상을 창조하신 주님께서는 당신 자녀 안에 있는 죄로 인하여 일그러진 당신 모상을 쇄신하시나이다. 당신은 그들이 원래 갖고 있던 결백함을 회복시켜 주실 뿐 아니라 다가올 세상의 좋은 것을 체험할 수 있도록 이끄시나이다. 지금 이 순간부터, 당신 면전에 있는 천사들처럼 그들도 당신 앞에 있도록 부르시나이다.

  주님, 저희 자매(수녀)들을 굽어보소서. 당신의 부르심에 응답한 이들은 당신께 그들 자신을 온전히 바치고, 정결을 지키고 당신께 영원히 자신들을 봉헌하고자 하는 결정을 당신 손에 맡깁니다.

  주님, 만일 당신께서 그들 안에 원의를 불러일으키지 않으시면, 육의 존재들인 이들이 어찌 본성의 욕구를 조절하고, 혼인을 자유로이 거부하며, 온갖 종류의 사슬에서 해방될 수 있겠나이까?

  당신은 온 백성에게 은총을 주시며, 온 나라에서 새 계약의 상속자이며 육과 피로써 나지 않고 성령으로 난 자녀들을 하늘의 별보다 더 많이 끌어내시나이다. 이처럼 널리 퍼진 은총 가운데 동정의 은총이 있사오니, 당신은 그것을 원하는 이들에게 주시나이다.

  성령께서는 당신 백성을 고무하시어, 그들이 혼인의 거룩함과 위대함을 알고 있으면서도, 혼인이 상징하는 그리스도와의 일치, 교회와의 일치에 전념하기 위해 혼인을 거부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나이다.

  복되도다. 그리스도가 자신의 동정생활의 이유이자 삶으로 인정하여 그들에게 자신의 삶을 바치는 이들이여, 그들은 교회의 신랑이자 동정녀 마리아의 아드님이신 분을 사랑하기를 결정했나이다!

<이제 주교는 후보자들에게 안수하여 계속 기도합니다.>

† 주님, 당신 앞에 서서 이 축성으로 새 희망과 새 힘을 얻고자 하는 이 자매(수녀)들에게 당신 도움과 보호를 내려 주소서.

  수많은 계획을 실패하도록 이끄는 악령이 이들의 정결의 광채를 흐리게 만들지 못하고, 모든 여인의 재화이어야만 할 정결을 그들에게서 빼앗아 가지 못하도록 하소서.

  당신 성령의 은총으로, 현명, 단순함, 부드러움, 지혜, 신중함, 섬세함, 정결, 자유가 그들 안에 항상 머물게 하소서.

  그들이 사랑으로 불타고, 당신 외에 아무도 사랑하지 않게 하소서.

  정화된 마음과 성화된 몸으로 당신께 영광을 드리게 하소서.

  사랑하는 마음으로 당신을 경외하며 사랑으로 당신께 봉사하게 하소서.

  항상 신실하신 당신 안에서 그들의 위엄, 기쁨, 사랑을 발견케 하소서.

  당신께서 그들이 고통 중에 있을 때 위로가, 의심 가운데 있을 때 빛이, 불의를 당할 때 정의가 되어 주소서.

  그들이 시험 중에 있을 때 인내를, 가난 중에 있을 때 부유함을, 먹을 것이 없을 때 음식을, 아플 때 치유의 은총을 내리소서.

  그들이 다른 모든 것보다 당신을 더 좋아하므로, 그들이 당신 안에서 모든 것을 갖게 하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 아멘

<새로이 축성된 이들이 주교에게 다가가면, 주교는 그들에게 반지, 면사보, 기도서, 촛불을 주면서 말합니다.>

† 그리스도와의 결합의 상징인 이 반지를 받으십시오. 주 예수께 충실함으로써 그분은 여러분을 영원한 계약에로 인도하실 겁니다.

◎ 아멘

† 여러분의 축성의 상징인 이 면사보를 받으십시오.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그분의 몸인 교회에 봉사하도록 봉헌되었음을 잊지 마십시오.

◎ 아멘

† 교회의 기도서를 받으십시오. 여러분의 하느님을 찬미하는 일과 세상의 구원을 위해 탄원하기를 그치지 마십시오.

◎ 아멘

† 깨어 있으십시오. 여러분은 그때와 그날을 모릅니다. 복음의 빛을 조심하여 보존하시고, 오실 주님을 맞으러 나갈 준비를 항상 갖추십시오.

◎ 아멘

<새로 축성된 이들이 성찬례에 사용될 빵, 포도주, 물을 제대로 가져갑니다. 이제 미사가 계속됩니다. 영성체 후 주교는 새로이 축성된 이들에게 다음과 같이 강복합니다.>

† 하느님, 이들의 가슴에 심어 주신 동정생활에 대한 사랑 안에 이들을 항상 지켜 주소서.

◎ 아멘

† 봉헌된 이들의 충실한 신랑이신 우리 주 예수님, 당신의 말씀을 통하여 평온하고도 많은 결실을 맺는 삶을 이들에게 주소서.

◎ 아멘

† 동정 마리아에게 파견되셨고, 오늘 이들의 마음을 축성하신 성령님, 하느님과 교회에 봉사하도록 힘을 이들에게 내려주소서.

◎ 아멘




차례..


(3) 재속회 서약-프라도 사제회•프라도 형제회

-프라도 사제회 회헌 86항

◎ 저는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 효과적으로 더욱 잘 일할 수 있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더 가까이 따르기로 결심합니다. 프라도 가족 안에서 그리고 교회 앞에서 나는 프라도회의 회헌에 따라 다음 사항들을 실천할 것을 (영원히) 하느님께 서약합니다.

․구유에서 태어나신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우리가 그리로 파견된 바로 그 가난한 사람들을 사랑하기 위해 가난하고 겸허하게 살 것을 서약합니다.

․십자가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명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육신의 고통을 짊어진 사람들을 사랑하기 위해 순명할 것을 서약합니다.

․성체성사 안에서 우리의 양식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사랑과 정의와 자유를 갈망하는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기 위해 저 자신 전부를 바칠 것과 독신 생활의 정결을 서약합니다.

  마리아와 신앙의 다른 증인들과 더불어 아버지의 부르심에 응답하기를 원하며, 그리스도께 대한 애착을 가지고 성령께서 이끄시는 대로 저를 맡기기를 원합니다. 그럼으로써 저는 저의 나약함 가운데서도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고, 가난한 사람들의 복음화를 위해 기쁘게 일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 저는 (국제 프라도 사제회 책임자 신부님의 이름으로) 당신을 받아들입니다. 이는 가난한 이의 복음화를 위해 책임을 지고 있는 교구장님의 뜻과 일치된다고 믿고 이를 확인합니다.




차례..


(4) 평신도 신심 단체 - 레지오 마리애 선서문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지극히 거룩하신 성령이시어, 저(성명과 세레명)는(은)

오늘 레지오 마리애 단원으로 등록되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그러나 저 스스로는 합당한 봉사를 드릴 만한 능력이 없사오니

저에게 오시어 저를 당신으로 채워 주소서.

제가 하는 보잘 것 없는 일들을 당신 힘으로 받쳐 주시며

당신의 위대한 목적을 이루는 도구가 되게 해 주소서.


당신은 이 세상을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하려고 오셨으나

성모 마리아를 통하지 않고서는 역사하지 않으시고

저희 또한 성모 마리아 없이는 당신을 알아 뵈올 수 없고

사랑할 수도 없음을 아옵니다.

당신은 저희에게 모든 재능과 성덕과 은총을 내려 주시오나

성모 마리아를 통하여, 성모 마리아가 원하시는 사람들에게,

성모 마리아가 원하시는 때에, 성모 마리아가 원하시는 만큼,

성모 마리아가 원하시는 방법으로,

베풀고 계심을 제가 아옵니다.

또한 제가 레지오 단원으로 충실하게 봉사하는 비결은

당신께 완전히 하나 되어 계시는 성모 마리아와 온전히 일치하는

것임도 잘 알고 있나이다.

그러므로 이 모든 사실을 우리 눈앞에 드러내 보이는

레지오 단기를 손에 쥐고 ☞ (벡실리움을 오른손으로 잡는다. 끝날 때 까지)

저는 지금 성모님의 병사요 자녀로서 당신 앞에 서서,

성모님께 온전히 의탁함을 선언 하나이다.

성모님은 내 영혼의 어머니시옵니다.

성모님의 마음과 제 마음은 하나이오며,

이 하나인 마음으로

“주님의 종이오니”라고 다시 사뢰오니,

당신은 성모님을 통하여 큰일을 하시고자 다시 오시나이다.


지극히 거룩하신 성령이시여,

당신의 권능으로 저를 감싸주시고 제 영혼 안에 사랑의 불을 놓으시어

이 세상을 구하고자 하는 성모님의 사랑과 뜻에 일치하게 해 주소서.

당신의 권능으로 티 없이 되신 성모님 안에서 저 또한 깨끗하게 하시고

우리 주 그리스도께서 제 안에서도 자라시게 해 주소서.

그리하여 저 또한 그리스도의 어머니이신 성모님과 함께

이 세상과 영혼들에게 그리스도를 모셔다 드리게 해 주시고

그들과 제가 이 세상 싸움에서 이긴 다음 성모님과 함께

복되신 성삼위의 영광 안에서 영원히 살게 해 주소서.


오늘 저는, 당신께서 저를 받아 주시고 저를 써 주시며

저의 나약함을 굳센 힘으로 만들어 주시리라 확실히 믿으며 다짐하나이다.

저는 감히 레지오의 대열에 한 자리를 차지하여 충실하게 봉사하겠나이다.

저는 레지오 규율에 온전히 복종하겠나이다.

이 규율은 동료 단원들과 저를 하나로 묶어

군단을 이루도록 하며,

또한 성모님과 함께 진군하는

우리의 대열을 가다듬어,

당신의 뜻을 이루고 은총의 기적을 일으키게 하나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땅의 얼굴은 새롭게 되고

온 누리에 하느님의 나라가 펼쳐지게 될 것이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차례..

*부록2 일곱 성사생활 성경색인



마태오의 복음서

 5,11-12; 몰이해를 각오하고 사랑을 포기하지 말라; 6과 70쪽

 6,10;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청함; 부록1, 4); 쪽

10,28; 세상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말라; 견진피정 86쪽

11,28; 신앙은 또 다른 속박과 굴레가 아니다.; 견진피정 85쪽

15,21-28; 이방인에게도 구원의 손길을; 3과 37쪽

26,39; 제가 원하는 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십시오; 부록1, 4); 쪽

28,18-20; 교회에게 사명을 주는 주님; 교회의 성사 14-15쪽


마르코의 복음서

 6,31; 피곤하여 쉬고 싶어하신 주님; 교회의 성사 12쪽

 6,31; 배고프신 예수님; 교회의 성사 12쪽;

       사람들을 돌보시느라 굶으신 예수; *부록1 111쪽

14,33; 죽음의 위협 앞에 공포로 떤 주님; 교회의 성사 12쪽

14,36; 포기 않고 끝까지 사명을 행한 주님; 교회의 성사 12쪽


루카의 복음서

4,18-19.21;주님의 사명은 가난한 이들에게 가는 것;5과55쪽

23,34; 자기를 죽이는 이들을 용서하시는 주님; 4과 48쪽


요한의 복음서

 2,13-22; 차별 없애고 평등선포; 3과 37쪽

 3,8;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름; 2과 31쪽

11,35-36; 친구의 죽음 앞에서 우신 주님; 교회의 성사12쪽

14,26; 성령께서 알려주심; 2과 32쪽

15,216-27; 성령의 도우심으로 주님을 증거함; 2과 32쪽

사도행전

11,26ㄴㄷ;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림; 교회의 성사 14쪽


로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1,1; 복음을 전해야 할 사도로 불림; 5과 55쪽

 1,8; 사도의 기쁨-신자들의 훌륭한 믿음생활; 5과 57쪽

 1,11-12; 신자들을 만날 때 가져야 할 사도의 마음;5과 568

 1,38-39; 그리스도와 일치하고자 하는 사도; 5과 56쪽

 5,2; 믿음으로 얻는 구원의 은총; 2과 27쪽

 5,6-8; 하느님의 사랑으로 남에게 헌신하는 사람들; 7과79쪽

 5,7-8;부족한 배우자에게 헌신해야할 주님의 사랑; 6과69쪽

 6,2-14;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살고; 1과 23-24쪽

 6,2; 세례는 거듭 죄를 씻고 꾸준히 완성시켜야; 1과 20쪽

 6,8; 주와 함께 죽었으니 함께 살것; 1과 20쪽; 견진피정 86쪽

 6,9; 죄 지은 것에 두려워하지 말고 돌아오라; 1과 20쪽

 6,11; 주의 수난에 참여하자; 1과 22쪽

 6,12; 죄의 지배를 받지 않기 위해 육욕을 버리자; 1과 22쪽

 6,14; 은총의 지배를 받으므로 죄의 지배 안받음; 1과 21쪽

 7,18-20; 원하지 않는데도 내 속에 죄가 죄짓게 함;1과21쪽

 8,3; 아들을 통해 인간의 약한 본성을 채워주심; 2과 27쪽

 8,3-5; 성령의 사랑으로 고통을 겪으면서도 희망함; 7과 82쪽

 8,4-6; 세상의 흐름에 따라 살아서 기쁨을 잃음; 2과 28쪽

 8,11; 부활의 희망으로 생명을 내놓음; 3과 39쪽

 8,13.14; 성령의 인도로 육체로부터 해방됨; 7과 79쪽

 8,15;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름; 교회의 성사 13쪽

 8,14-16; 성령의 인도로 기쁨에 찬 생활 회복; 2과 29쪽

 8,17; 주와 함께 고난 받으니 영광도 함께; 2과 31쪽

 8,18-30; 고통에서 영광으로; 7과 83-84쪽

 8,20; 한계를 지닌 인간; 7과 78쪽

 8,20; 한계를 넘어서는 희망; 7과 78쪽

 8,22; 주님 자녀가 누릴 영광스러운 자유에의 희망; 7과78쪽

 8,23; 하느님 자녀가 되는 날과 우리 몸 해방될 날”;7과78쪽

 8,24; 눈에 보이는 것을 바라는 희망으로 삶 ; 7과 79쪽

 8,25; 보이지 않는 것을 인내롭게 기다림; 7과 80쪽; 83쪽

 8,26-27; 성령께서 함께 하심; 2과 30쪽; 7과80쪽(26절만)

 8,28; 부르심 받은 사람은 좋은 결과를; 2과 30쪽;7과80쪽

 8,30; 하느님 자녀들의 희망-의화; 7과 80쪽

10,2; 식별하는 사도; 5과 59쪽

12,1; 사명을 실천하기 위해 생명을 바치는 사도; 5과 57쪽

12,1; 자기를 예물로 바침; 교회의 성사 17쪽; 2과 29-30쪽

12,2; 하느님의 뜻을 식별하라는 사도; 2과 32쪽(); 5과59쪽

13,8ㄱㄴㄷ; 아무리 해도 다할 수 없는 의무-사랑; 4과 46쪽

13,8; 사랑하는 사람은 율법을 완성함; 4과 46-47쪽

15,16; 복음을 전할 사제의 직무를 맡은 사도; 5과 55쪽

15,18; 하느님의 겸손한 일꾼인 사도; 5과 55쪽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

 1,10;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호소하는 사도;5과59-60쪽

 1,23; 십자가는 우리 희망의 징표; 3과 38쪽

 1,23-25; 십자가를 바라보는 서로 다른 시각; 3과 39-40쪽

 2,2; 십자가에 달린 예수 그리스도만 생각하는 사도;5과56쪽

 3,1; 신자들의 수준에 맞추어 이야기 하는 사도; 5과 59쪽

 3,6; 사도단 안에서의 사목의 연계성을 알리는 사도;5과60쪽

 4,14; 신자들을 교육하는 사도; 5과 58쪽

 7,1-16; 결혼에 관한 바오로의 견해; 6과 71-72쪽

 7,5; 별거상황; 6과 72쪽

 7,8-9; 결혼과 독신생활; 6과 71-72쪽

 7,10-11; 결혼의 불가해소성; 6과 72쪽

 7,12-15; 외짝교우와 바오로 특전; 6과 72쪽

 7,35; 신자들을 교육하는 사도의 목적; 5과 59쪽

 9,19; 신자들을 위해 종이 된 사도; 5과 59쪽

 9,27; 자신을 단련하는 사도; 5과 57쪽

11,24; 성체 안의 주님처럼 내 몸을 내 놓아야; 3과 39쪽

11,25; 주의 성혈처럼 피를 쏟는 모욕과 수치의 길; 3과 39쪽

11,26; 성체성사를 통해 부르시는 주님; 3과 40쪽

12,7.11; 각기 다르게 받은 은총으로 복음을 이루자; 2과31쪽

12,26; 고통을 보며 함께 아파하고 참여하는 사랑; 4과49쪽

12,27;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신자들의 지체; 교회의 성사14쪽

13,1-13; 사랑; 4과 50-52쪽

13,1ㄱ.2ㅁㅂ; 가장 좋은 길-사랑의 길; 4과 45쪽

13,3; 사랑으로 나를 봉헌하자; 4과 46쪽

13,27; 성체성사를 통해 교회를 이룸; 교회의 성사; 18쪽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둘째 서간

 2,4; 목자로서의 사목적 배려; 5과 58-59쪽

 5,3-5; 성령의 인도로 두려움 없는 사랑을; 4과 47쪽

 6,11.13; 신자들에게 마음을 열라고 주문하는 사도; 5과59쪽

 7,4; 고난 속에서도 신자들의 믿음을 보고 기뻐함; 5과 58쪽

12,7-8.10; 겸손과 성숙으로 향한 은총으로서의 고통; 7과 80쪽

12,10; 사도는 자신을 버리고 주께서 활동하시게 함; 5과56쪽


길라티아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3,26; 각자 자기 입장에서 능력껏 주님을 따른다;1과 21-22쪽

 3,28; 주의 교회 안에서 차별없이 평등한 신자들: 1과 21쪽

 4,6;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됨;교회의 성사13쪽

 4,19.20ㄱㄴ; 신자 걱정으로 안절부절 못하는 사도;5과57-58쪽

 5,5; 성령을 통한 구원에로의 희망; 2과 27쪽

 5,5.16-6,2.8-10; 성령께 의지하여; 2과 33-34쪽

 5,14;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보는 사도; 5과 56쪽

 5,25; 성령의 인도를 따라서 살자; 2과 30쪽

 6,2; 각자의 형편에 따라 교회의 공동사업을 함; 2과 31쪽


에페소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1,3-14; 주님을 통해 받는 영적 축복; 교회의 성사 16-17쪽

 1,3;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진 하늘의 축복;교회의 성사11쪽

 1,4; 주님의 죽으심으로 죄없는 인간이 됨;교회의 성사13쪽

 1,5; 인간으로 하느님의 뜻을 따르신 예수;교회의 성사13쪽

 1,13; “약속하셨던 성령을 주셨다.”; 교회의 성사 14쪽

 1,17-18; 신자들이 주님을 알기를 바라는 사도; 5과 58쪽

 1,23; 사랑으로 완성되고 이루어지는 교회; 4과 50쪽

 2,22; 성체성사를 통해 하느님의 집을 이룸; 3과 40쪽

 2,13-22; 그리스도 우리의 평화; 3과 41-42쪽

 2,13ㄴ; 예수를 통해 하느님과 가까워짐; 3과 37쪽

 2,14; 그리스도야말로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3과 37쪽

 2,15; 모든 인류를 하나의 새 민족으로 만드심; 3과 37쪽

 2,16; 십자가 안에서 이루어지는 화해와 일치; 3과 37쪽

 3,7; 하느님으로부터 사명을 실천할 힘을 받는 사도;5과56쪽

 4,3-4; 성령의 인도로 서로 모여 교회를 이룸; 1과 22쪽

 4,17; 주님의 이름으로 권고하는 사도; 5과 60쪽

 4,32; 주님이 용서하신 것처럼 서로 용서하십시오.”; 4과 48쪽

 5,21-33; 남편과 아내; 6과 73쪽

 5,25; 그리스도처럼 자기 아내를 사랑하십시오.”; 6과 68쪽

 5,26; 서로 자신의 배우자에게 자기를 바쳐라; 6과 69쪽

 5,28; 자기 아내를 제 몸같이 사랑해야; 6과 68쪽

 5,31; 자기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룬다.”; 6과 68쪽

 6,22; 협조자를 파견하는 사도; 5과 60쪽

필리피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1,21; 그리스도와 하나되고자 하는 사도; 5과 56쪽

 2,1-16; 그리스도의 겸손한 마음; 5과 61-62쪽

 2,5; 사도가 지녀야 할 마음; 5과 60쪽

 2,6-7; 백성들을 위해 종의 신분을 취하신 주님; 5과 59쪽

 2,7-8; 십자가에 달려서 죽기까지 순종하신 주님; 5과 57쪽

 2,9-11; 부활하여 우리의 주인이 되신 주님; 교회의 성사 14쪽

 2,13; 주님의 일을 하도록 사도로 부르시는 주님; 5과 60쪽

 2,15-16; 흠없는 자녀로 말씀을 지켜야 할 사도; 5과 60-61쪽

 2,17; 사명을 실천하기 위해 생명을 바치는 사도; 5과 57쪽

 3,8ㄴㄷ; 그리스도를 위해서 모든 것을 버리는 사도; 5과 56쪽

 3,12ㄱㄴ; 희망을 향해 꾸준히 달리는 사도; 5과 57쪽


콜로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1,18;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 교회의 성사 14쪽

 1,19-20; 온 정열을 다해 사랑하신 주님; 교회의 성사 13쪽

 1,24; 어떻게 사명을 실천해야 하는지 아는 사도; 5과 57쪽

 1,24; 주의 남은 고난을 몸으로 채움;3과38-39쪽; 7과 81쪽

 1,29;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도; 5과 55쪽; 7과 81쪽

 2,20-3,17; 그리스도를 통한 새 생활; 견진피정 87-89쪽

 2,20ㄴ-21; 종교계율에 더이상 얽매이지 말라; 견진피정 86쪽

 3,2; 천상의 것들에 마음을 두라; 견진피정 86쪽

 3,4; 주님께 속한 우리의 생명; 견진피정 86쪽

 3,10; 말씀을 실천하면서 참 지식을 가짐; 견진피정 87쪽

 3,12-13; 상대를 불쌍히 보고 용서하라; 4과 49쪽

 3,14; 사랑은 모든 것을 묶어 완전하게 함; 견진피정 85쪽

 3,15.17; 성체성사를 사는 이들이 지니는 마음; 3과 41쪽

 3,16; 그리스도의 말씀이 여러분 안에 살기를; 견진피정 87쪽

 4,3ㄱㄴ; 신자들에게 기도 도움을 청하는 사도; 5과 58쪽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

 5,16-22.25;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십시오.; 견진피정 89쪽


티모테오에게 보낸 둘째 서간

 1,6; 협조자를 양성하는 사도; 5과 60쪽

 1,11-12; 자기에게 사명을 맡기신 이를 아는 사도; 5과 56쪽

 2,10; 신자들이 주님을 믿고 구원되길 바라는 사도; 5과 58쪽

 4,1;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명령하는 사도; 5과 60쪽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서간

 1,1; 예언자들을 시켜 말씀하신 하느님; 교회의 성사 11쪽

 1,2; 예수를 통해 당신을 알리신 하느님; 교회의 성사 12쪽

 5,7-10; 고통을 통해 아버지께 순명하신 주님; 7과 82쪽


요한의 첫째 서간

 4,7; 하느님이 우리를 사랑하셨듯이 사랑하십시오; 4과 4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