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 교리 : 복음의 길을 따른 예비 신자 교리서

가톨릭 교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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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례


도 움 의 말

교과 과정표

구세사1 구약 성서의 아버지 하느님

1. 저 는

1-1. 너는 나의 귀염둥이 나의 사랑

2. 내 백성이 억압을 받으며

3. 내 계약을 지키면

4.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

4-1. 우리 모습을 닮은 사람을 만들자

5. 너 어디 있느냐

5-1. 임금님이 그 사람입니다

6.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

6-1. 주님은 샅샅이 보고 아시나이다

6-2. 세상 만사 헛되다

7. 내가 태어난 날이여




구세사2 신약 성서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7-1. 지금 말씀대로 이루어지기를

8.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9.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

9-1.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9-2.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10.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10-1. 자캐오야, 어서 내려오너라

10-2. 소녀야, 어서 일어나거라

11.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12. 먼저 하느님의 나라를 구하라

13. 죽었던 내 아들이 다시 살아 왔다

14. 나를 따르라

14-1. 나는 생명의 빵이다

14-2. 나다, 안심하여라

15.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15-1.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16.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17. 받아 먹어라, 이는 내 몸이다

18.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19. 평안하냐

19-1. 우리와 함께 묵어 가십시오

20. 갈릴래아 사람들아, 왜 너희는




구세사3 교회와 성령

21. 여러분이 죽인 예수를

22.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22-1.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22-2. 그리스도인의 피는 그리스도인의 씨앗

22-3. 교우들은 보십시오

23.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23-1. 너도 가서 그렇게 하여라

23-2. 날마다 성전에 모였으며

24. 새로운 일들

24-1. 노동하는 인간은

24-2. 평화를 창조하는 가정

24-3. 성, 무엇이 문제인가

24-4. 모두와 함께하는 평화

25. 찰고 - 신부님과 만나요

26. 세례 성사




부 록

1. 주요 기도

2. 나는 너를 용서한다

3. 주님, 저 여기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나를 돌봐 주셨어요!"

4. 미사 통상문(제2양식)

5. 성서 구절 찾아보기

6. 교리 관련표








도 움 의 말



이 책은 예비 신자들이 자신의 일터와 가정과 친구, 이웃들 사이에서 생기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주님 안에서 풀어 나감으로써, 주님을 알고, 세례와 견진을 받아 자신의 삶의 터를 복음화하는 데 도움을 주고, 구역, 반모임을 통한 신자 재교육을 위해 꾸민 예비 신자 및 신자 재교육용 교리 교재입니다.

이 교재를 가지고 형제, 자매들과 함께 모여 복음을 나눔으로써, 주님을 자신의 생활 안에 생생히 살아 숨쉬시도록 초대하고, 주님을 만나도록 하십시오. 그렇게 계속하다 보면 점점 우리 마음속에 주님의 말씀이 새겨집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우리에게 어떻게 살라고 하시는지도 깨닫게 될 뿐 아니라,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면서 우리의 힘이 되어 주실 것입니다.

이 교재의 신학적 흐름은 아래와 같습니다.

제1부는 구세사(세상을 구원하시는 역사)의 첫번째 부분인 구약 성서를 통해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을 어떻게 사랑해 오셨는가를 배웁니다.

제2부에서는 구세사의 두 번째 부분인 신약 성서를 통해 하느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당신의 외아들 예수님을 세상에 인간으로 보내시어, 하느님과 하느님의 나라를 가르쳐 주십니다. 하지만 인간들은 예수님을 이해하지 못했고, 오히려 예수님을 십자가형에 처하게 됩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죗값을 대신 짊어지시고 돌아가시지만, 하느님은 그 아들을 부활시키셔서 우리 구원의 주님으로 선포하셨다는 것을 배웁니다.

제3부는 죽음의 세력을 이기시고 부활하셔서, 인간을 구원하시고 승천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이름으로 모인 백성들에게 성령을 보내셔서, 이 땅에서 마치 아버지와 아들 예수님께서 하나였던 것처럼 함께해 주시고, 사도들을 통해 교회를 건설하시고 이끄심을 배웁니다.

아울러 교회는 이 땅에서 주님의 사명을 이어받아 하느님 나라의 완성을 위해, 세상에 주님의 사랑을 드러내게 되는데 그 드러내는 일이 바로 '성사'이며, 성사적 삶의 실천적인 예로서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행위를 통해 그리스도인의 신원을 모색합니다.

이교과 과정은 한 주에 한번 모임을 할 때, 6개월(24주 기본교리, 6회 평일 집중 교리)을 기본 단위로 하고, 각과 다음에 나오는 '-1' 또는 '-2'로 보충을 해서 1년까지의 과정을 밟아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며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또 그렇게 믿어서 주님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요한 20, 31)입니다.

이 교재를 이용하실 때 처음에는 자신의 입을 열어 자신을 밝히는 것이 두려울 수 있습니다만, 서로를 신뢰하고 서로의 발표 내용을 지켜주겠다는 애정으로 참여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자기 마음을 열고 난 다음에는 복음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부담스러울 수도 있습니다만, 신앙 생활을 한다는 것은 바로 이 예수님의 말씀을 복음(기쁜 소식)으로 받아들이고 그대로 실천하며 살겠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부족한 우리를 주님께서 이끌어주시고 도와 주고 계시다는 것을 믿고 주님의 길을 걸으시길 바랍니다.

이 교과 과정은 서로의 삶을 진지하고 깊이 있게 나누기 위해 약 8명 내지 10명 단위로 그룹을 나누는 것이 적당합니다. 진행 방법은 지도자와 함께 여기란에 나오는 예제를 다 같이 읽고 나서 서로의 느낌과 생각 또는 자기 경험을 나누고, 성서의 말씀배움을 따라 주님의 사랑 안에서 주님의 뜻을 헤아리는 나눔을 하고 실천 약속을 한 후, 돌아가면서 한 명씩 그 날 들은 주님의 말씀을 되새기며 기도하는 방식으로 마치면 됩니다.

구역, 반모임에서 이 교재를 이용하여 '복음 나누기 7단계'를 하실 때에는 먼저 말씀을 가지고 '1단계'에서부터 '5단계'까지 하시고, '6단계'에서 배움을 읽으시고 연구하신 다음 실천 약속을 하시면 됩니다.

끝으로 1994년에 발간되었던‘일하며, 쉬며, 또!’를 ‘가톨릭 교리서’로 개정 하도록 해 주신 홍문택 신부님과 참여해 주신 장상원 신부님과 최부식 신부님, 신문호 신부님, 전대규 신부님, 이정우 신학생과 로사리아, 공항동 성당 수녀님들과 구역장님들과 평신도 교리 교육 위원회원님들 및 가톨릭출판사 임직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1999년 7월 5일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에

심흥보 (베드로) 신부

차례






<교과 과정표>

교과별 내용

주요 성서 구절

1

한국 천주 교회, 본당, 자기 소개

마태 11, 28-30

1-1

자신의 하느님 체험 소개

이사 43, 1-7

2

출애급-인간 역사와 함께하심

출애 3, 7-12. 14

3

십계명-인간의 길

출애 20, 1-17

4

천지 창조1-하느님께서 만드심

창세 1, 1-2, 4ㄱ

4-1

천지 창조2-인간 창조

창세 2, 4ㄴ-9. 15-25

5

인간의 죄-관계가 깨짐!

창세 2, 15-17;3, 4-19

5-1

예언자-하느님 말씀을 전함

2사무 12, 1-14

6

신관의 변화와 삶의 변화

창세 4, 1-5. 8-11ㄱ

6-1

나와 함께하신 하느님

시편 139,1-18.23-24

6-2

인간의 사상과 경험 그 너머

전도 1, 2; 3, 1-22

7

구원에 이르는 고통

욥 1;2;3;;6;7;38;40;42

7-1

구세주 탄생예고-겸손과 순명

루가 1,26-37

8

구세주의 가난하고 약한 탄생

루가 2, 1-16;

마태 2, 1ㄴ-2. 5. 9-11

9

세례-아버지의 뜻을 이루심

마태 3, 1-4. 8. 13-17

9-1

유혹-구원의 방법론 논쟁

마태 4, 1-11

9-2

예수님의 삶-'노동의 복음'

마태 13, 54-57ㄱ

10

구세주의 사명-기쁜 소식 선포

루가 4, 16. 18-19. 21

10-1

회개-주님 사랑으로 변화됨

루가 19, 1-10

10-2

생명의 주인이신 예수-기적을 통해 보여주시는 하느님 나라

루가 18, 15-17; 마르 56,38-43; 요한 5, 1-9

11

참된 행복(산상 수훈, 진복 팔단)

마태 5, 3-12

12

하느님 나라의 최우선권

마태 6, 25-34;

마르4, 30-32

13

하느님의 자비로우신 사랑

루가 15, 1-3. 11-32

14

부르심, 섬김의 사도직

*평신도 사도직

마르 1, 16-18;3,13-19;루가 9,23-25; 마태 20,26ㄴ-28

14-1

생명의 빵

출애 16, 4.31. 35; 루가 9, 12-17; 요한 6, 5-66

14-2

주님-자연과 우리의 주재자

마태 14, 22-33

15

주님의 기도

마태 6, 7-15

15-1

부활과 생명이신 예수님

요한 11, 3-44

16

수난 배경-신원 고백, 신앙 고백

마태 16, 13-23

17

인류 구원을 위한 희생 제사

-최후의 만찬

출애 12, 21-27;

마태 26, 20-28

18

주님의 수난과 사망 -대속

루가 22, 39-23, 56

19

부활하신 주님

마태 28, 1-10

19-1

제자들에게 나타나심-발현

루가 24, 13-35

20

승천하신 주님, 종말 신앙

마태 28, 18-20;

사도 1, 8-11

21

성령 강림과 교회

사도 2,1-4.36.41ㄴ-47

22

삼위 일체이신 하느님

1요한 4, 7-21

22-1

마리아론

요한 1, 43-46; 2, 1-11

22-2

전체(세계) 교회사

루가 22, 34-36

22-3

한국 천주 교회사(성지 순례)

김대건 신부의 옥중 서간

23

성사1-성사 일반, 7성사

요한 13, 34-35

23-1

성사2-성사 생활: 사랑의 실천

루가 10, 25-37

23-2

전례 생활

사도 2, 46-47ㄱ

24

사회 회칙의 기본 원리

회칙 '노동 헌장'

24-1

가톨릭 교회의 노동관

회칙 '노동하는 인간'

24-2

가정 생활

권고 '가정 공동체' 86

24-3

성교육 자료

에페 5, 1-3ㄱ. 4ㄷ. 5

24-4

환경 교육 자료

로마 8, 19-25

25

찰고(면담)


26

세례 성사


부 1

주요 기도

부 2

고해 성사 - 화해의 성사

부 3

세례전 피정

요한 13, 4-8. 12. 15

부 4

미사 통상문

부 5

성서 구절 찾아보기

부 6

교리 관련표



차례





구세사 1

구약 성서의 하느님 아버지




1. 저 는





안녕하십니까? 만나서 반갑습니다!

오늘 처음 만났으니 우리 서로 인사를 나누기로 합시다. 여기에 씌어 있는 순서대로 나눠 보도록 하겠습니다. 자, 그럼 제가 먼저 하겠습니다.

여기

서로 인사하며 반갑게 맞이해 봅시다.

이름은?

세례명(영세명)은?

별명은?

언제 어디서 태어났습니까?

어디서 공부했습니까?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집 전화 번호는?

직장 전화 번호는?

할아버지의 성함과 세례명과 연세는?

우리 할머니의 성함과 세례명과 연세는?

아버지의 성함과 세례명과 연세와 직업은?

어머니의 성함과 세례명과 연세와 직업은?

집 주소?

누구와 삽니까(식구 이름)?

제일 아끼는 것은?

좋아하는 것은?

좋아하는 음식은?

싫어하는 것은?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습니까?

가장 친한 친구는?

가장 기뻤던 순간이나 추억은?

가장 슬펐던 순간이나 추억은?

성당에 나오게 된 동기는?





말씀 나에게 와서 쉬어라(마태 11, 28-30)

11 28"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이는 사람은 다 나에게로 오너라. 내가 편히 쉬게 하리라. 29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의 영혼이 안식을 얻을 것이다. 30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나눔

·위 성서 구절을 읽으면서, 어떤 느낌이나 생각이 납니까? 내 생활과 연관시킬 수 있으면, 더 자세히 이야기해 봅시다(성서 구절이 나에게 뭐라고 말하는 것 같다든지, 나를 편하게 해 준다든지…).



배움 한국 천주 교회(가톨릭 교회)와 본당 소개

첫째, 천주 교회는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그런데 그 사랑이신 하느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사랑하기 위해 모인다.

둘째,우리 본당 주소는?

우리 본당 설립일은?

우리 본당 주보 성인은?

우리 본당의 축일은?

셋째, 우리 본당 주임 신부는?

보좌 신부는?

원장 수녀는?

전교 수녀는?



다음

·우리는 매주 요일 분에 모여서 우리의 삶을 성서의 말씀에 비추어 보고, 주님께서 우리를 어떤 방법으로, 어떤 길로 인도하시는지, 또 우리가 어떻게 살기를 원하시는지를 함께 찾아 나갑니다.

·혹시 늦거나 무슨 일이 있을 때에는 언제라도 미리 전화를 주십시오. 저의 전화 번호는?

봉사자는?

사무실은?

(혹시 예비 신자 교리 과정 중이시면, 특별히 주일(주님의 날-일요일)에는 주일 미사에 참례하십시오.) 우리 본당의 미사 시간을 기록하고 잊지 않도록 합시다.

·다음 주에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희망을 주시는지 알아봅시다. 한 주간 동안 하느님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기도

다 같이 오늘 우리가 나눈 것을 되새기면서 마침 기도를 합시다. 마음에 간직한 좋은 성서 구절을 가지고 기도해도 됩니다. 기도를 시작하기 전과 마칠 때, 또 하루를 시작할 때나 일을 시작할 때마다 아래처럼 기도합시다.

성호경 : (십자를 그으며)"성부와 †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낱말

성부 : 아버지 하느님

성자 : 아버지 하느님의 외아들 예수, 우리의 주님 그리스도

성령 : 아버지 하느님의 영(얼),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영

마태오 : 예수님의 삶 즉, 말씀과 행적을 기록(복음 - 기쁜 소식)한 사람의 이름. 복음은 4명의 복음 사가에 의해 쓰여졌다. 그래서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 '루가가 전한 거룩한 복음',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 등 총 4개의 복음이 있다. 이 네 복음은 짧게 마태오 복음, 마르코 복음, 루가 복음, 요한 복음이라고도 부른다.

성서 : 하느님께서 인간을 사랑하시는 사실을 적은 책이다. 그 속에는 인간이 하느님의 도움을 받아 인생을 개척해 나가는 이야기와 인간이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속을 썩이다가 벌을 받고 다시 하느님께 돌아가는 이야기 등 인류가 하느님과 연관관계 속에서 풀어 나가는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인간의 기쁨과 슬픔, 고통과 희망이 구구절절이 베어 있다.

성서는 인간이 하느님의 영감을 받아썼다. 인간이 자신의 현실 속에서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고 찾을 때, 하느님께서 그에게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아차리고 깨닫도록 하느님의 영감을 불어넣어 주신다. 그래서 그 영감을 받아 하느님의 뜻을 알게 되고 자신들이 알게 된 하느님의 사랑과 뜻을 하느님 말씀으로 적어 놓은 것이다.

성서는 예수님께서 구세주로 탄생하시기 이전 이스라엘의 역사를 구약성서 46권에 기록했다. 그리고 인류를 향한 하느님의 사랑이 명확하게 드러난 예수님의 탄생과 예수, 우리 주님의 말씀과 활동을 신약성서 27권에 기록했다. 그래서 총 73권이다.

그리스도 교회 : 예수를 주님 그리스도로 믿는 이들의 모임. 교회는 성직자를 중심으로 수도자, 평신도들로 구성되어 있다.

관구 : 작은 교구들을 관할하는 대교구

교구 : 교회의 지역적 행정상 기본 단위

본당 : 교회의 교구에 속하는 하나의 공동체

공소 : 본당보다 작은 단위의 공동체로서 사제가 상주하지 않는 단위 또는 건물

주보 성인 : 개인이나 단체가 자신들이 공경하고 또 자신들을 지켜 주십사 하고 청하는 신앙의 선조(성인, 성녀 또는 복자, 복녀) 개인의 경우에는 세례명으로 정한다. 수호 성인 또는 수호 천사도 있다.

신부 : 사제 - 성직자

수녀 : 여성 수도자/ 수사: 남성 수도자

평신도 : 성직자, 수도자와 구별되는 일반 신자

미사 : 예수님의 구원 사업, 즉 세상 사람들의 구원을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을 기념하는 제사와 잔치로서 말씀의 전례와 성찬의 전례로 이루어져 있다.

토요 특전 : 주일날 부득이한 이유로 미사 참례를 못하는 이들을 위해 토요일 오후 4시 이후에 미사를 드리게 함으로써 주일미사 참례 의무를 대신하도록 함

세례 : 죄를 씻고 하느님 안에서 새로 나는 것을 기념하는 예절(제23과 '세례 성사' 참조).

예비 신자 : 정식 신자가 되기 위하여 천주 교회 교리를 배우면서 세례 성사를 준비하는 사람.

순교자 : 신앙의 이유로 죽음을 당한 사람.

전교 : 신앙을 전함

선교사 : 신앙을 전교하는 사람(전교자라고도 함).

한국 천주 교회

한국 천주 교회는 신자들이 세운 교회다. 1777년 천진암 주어사에서 학자들이 모여 공부를 하던 중 천주교 책을 읽게 되었다. 그중 이승훈이 1784년 북경에 가서 세례를 받았다. 세례명은 베드로이다. 그리고 1831년 천주교 조선 교구가 설립되었다.

한국 천주 교회는 지금 현재 조선 말기의 4대 박해를 거쳐 103위의 순교 성인이 계시고, 총 15개 교구(침묵의 교회인 덕원, 함흥, 평양 3개 교구는 별도임) 1,147개 본당과 1,148개 공소에 추기경님 1분과 대주교님 3분과 주교님 18분과 2,800분의 성직자(사제, 신부 - 방인 2,606명 / 외국인 194명)와 대신학생 1,537명과 수도자 9,435명(수사(남) - 1,145명/ 수녀(여) - 8,290명)과 전교사 56명과 교리 교사 192명을 비롯하여 총 3,804,094(전체 국민 46,858,463명의 8.1%)명의 신자가 있다(1998. 12. 31 현재).

현재 우리 (대)교구의 교구장님은?

보좌 주교님은?


<우리 본당의 미사 시간표>

미 사

오 전

오 후

주 일







월요일



화요일



수요일



목요일



금요일



토요일



(토요 특전)



차례





1-1. 너는 나의 귀염둥이 나의 사랑



여기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기쁘고 슬펐던 순간마다, 하느님께서 어떻게 나와 함께하셨는지를 되새겨 봄으로써 하느님의 사랑을 느낍시다.



말씀 주님께서 이스라엘을 되찾으신다(이사 43, 1-7)

43 1그러나 이제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주님의 말씀이시다.

이스라엘아, 너를 빚어 만드신 주님의 말씀이시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건져 주지 않았느냐?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으니, 너는 내 사람이다.

2네가 물결을 헤치고 건너갈 때 내가 너를 보살피리니

그 강물이 너를 휩쓸어 가지 못하리라.

네가 불속을 걸어 가더라도 그 불길에 너는 그을리지도

타버리지도 아니하리라.

3나, 주님이 너의 하느님이다.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 내가 너를 구원하는 자다.

이집트를 주고 너를 되찾았고

에티오피아와 스바를 주고 너를 찾아왔다.

4너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나의 귀염둥이, 나의 사랑이다.

그러니 내 어찌 해안 지방을 주고라도 너를 찾지 않으며

부족들을 내주고라도 너의 목숨을 건져 내지 않으랴!

5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보살펴 준다.

내가 해뜨는 곳에서 너의 종족을 데려오고

해지는 곳에서도 너를 모아 오리라.

6내가 북쪽을 향해서도 외치리라.

그들을 어서 내놓아라.'

남쪽을 향해서도 외치리라.

'그들을 잡아 두지 말라.'

아무리 먼 데서라도 나의 아들들을 데려오너라.

땅 끝에서라도 나의 딸들을 데려오너라.

7그들은 내 백성이라고 불리는 것들,

나의 영광을 빛내려고 창조한 내 백성,

내 손으로 빚어 만든 나의 백성이다.



나눔 자신의 하느님 체험 소개

1. 위 하느님의 말씀 중에 내 마음에 드는 구절이 있는지요? 그 구절이 내 지난 과거 어느 일을 연상케 합니까?

2. 내 생애 가장 기뻤던, 슬펐던 순간이나 추억이 있다면?

(언제, 어디서, 누구와 함께 무슨 일이었는지 구체적으로 나눠주십시오.)

3. 내 생애의 한순간에 하느님께서 함께 해주셨다고 느낄 만한 사건이 있습니까?

4. 나에 대해서 오늘 여기 함께 있는 동료들에게 말하고 싶은 것 한 가지!



기도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마태 3, 17).



낱말

이사야 : 예언자의 이름. 예언자는 미래를 점치는 사람이 아니라 그 시대, 그 자리에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

차례




2. 내 백성이 억압을 받으며



여기

·우리를 둘러싼 세상은 어떻습니까?

·가정과 직장과 동네, 친구와 일가 친척, 이웃 사이에서 우리를 귀찮게 하고 슬프고 힘들게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전쟁 같은 사회

·보장되지 않은 불안한 미래

·무능력하고 술주정하는 남편

·탐욕스럽게 자기만 아는 아내

·부모 마음 모르고 속썩이는 자식

·자기만 바라보는 일가 친척

·또 이웃과의 사이에서 말과 행동으로 인해 생기는 오해와 갈등, 불목 등.


| *이곳에 나를 괴롭히는 것을 다 쓰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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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 썼으면, 속이 후련해지게, 절취선을 잘라서, 빡빡

| 찢어 버리십시오!



*속이 후련해지셨습니까? 그럼 우리가 갈 길을 갑시다.



말씀 이집트 노예 생활에서의 탈출(출애 3, 7-12. 14)

3 7주님께서 계속 말씀하셨다. "나는 내 백성이 이집트에서 고생하는 것을 똑똑히 보았고 억압을 받으며 괴로워 울부짖는 소리를 들었다. 그들이 얼마나 고생하는지 나는 잘 알고 있다. 8나 이제 내려가서 그들을 이집트인들의 손아귀에서 빼내어 그 땅에서 이끌고 젖과 꿀이 흐르는 아름답고 넓은… 땅으로 데려 가고자 한다.

9지금도 이스라엘 백성의 아우성 소리가 들려온다. 또한 이집트인들이 그들을 못살게 구는 모습도 보인다. 10내가 이제 너를 파라오에게 보낼 터이니 너는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에서 건져내어라." 11모세가 하느님께 아뢰었다. "제가 무엇인데 감히 파라오에게 가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건져내겠습니까?" 12하느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네 힘이 되어 주겠다. 이것이 바로 내가 너를 보냈다는 증거가 되리라. 너는 나의 백성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낸 다음 이 산에서 하느님을 예배하리라." 14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나는 곧 나다."하고 대답하시고, 이어서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분은 나다-라고 하시는 그분이다'하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일러라."



배움 출애급 사건 - 하느님께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구하심 하느님께서는 우리와 함께하심으로써 우리를 구원하신다. 그분은 우리의 어려움과 고통을 모른 체하지 않으신다. 그분은 우리가 어려워하는 것을 보시고 우리의 불평과 신음을 들어 다 아신다. 그래서 우리에게 희망을 주시며, 우리에게 힘을 주셔서 우리를 구원하신다.

첫째, 성조사 - 우리 인간과 함께하시는 하느님

야곱의 열두 아들 중 요셉은 형들의 미움을 사서 이집트로 팔려 갔다. 그런데 요셉은 이집트 왕의 신임을 받아 재상이 되었다. 그후 이스라엘 지방에 심한 가뭄이 들어, 형들이 이집트로 곡식을 구하러 왔다. 그제서야 요셉은 하느님께서 자기 가족을 살리시기 위해 자기를 미리 이집트에 보내신 것임을 깨우쳤고, 형들은 자기들의 잘못을 통해서도 자신들을 구원하시는 하느님을 찬미하며 거기서 함께 살았다(창세기 37장 이후).

그런데 이집트 사람들은 자기 나라 땅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이 두려웠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을 노예로 삼았고, 사내 아기를 낳으면 바로 죽였다. 이스라엘은 하느님께 하소연했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어려움을 보시고, 그들의 외침을 들으시고는 마음이 몹시 아프셨다. 그래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인들을 이집트에서 구해 내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데려가시겠다"는 희망을 주셨다.

둘째, 주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나는 곧) '나다'라고 하시는 그분이다"라고 당신의 이름을 가르쳐 주셨다(계시). 신약 성서에서는 예수님께서 풍랑에 시달리는 제자들을 안심시킬 때 이 말씀을 하신다. "나다! (두려워하지 말라)"(요한 6, 20).

그리고 모세에게 힘을 주셔서, 이집트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해 내라고 하셨다(사명). 그러나 이집트 왕 파라오는 모세의 요구를 듣지 않았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재앙을 내리셨다. 하느님의 벌을 받고서야 이집트인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놓아 주었다(과월절 혹은 빠스카 - 낱말 참조).

셋째, 출애급 사건 - 해방절

하지만 이집트 사람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노예로 부려먹기 위해 다시 추격해 왔다(이런 이집트 사람들의 입장을 자기 안에서 본다면 '악에 끌리는 경향'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결국 "자유롭게 하느님을 섬기기 위해, 홍해 바다에 빠져 죽을 것인가?" 아니면, "또다시 이집트인들의 노예로 살 것인가?"의 갈림길에 놓이게 되었다.

이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느님을 섬기는 자유'를 선택해 홍해로 뛰어들었다. 이를 보신 하느님께서는 바다를 가르시어 이스라엘을 구해 주셨고, 이집트 사람들을 물에 빠지게 하셨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을 억눌렀고, 또 한편 이스라엘이 살기 위해 매달려 있던 악의 세력(사회악-사회 구조와 굴레)을 없애 주셨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느님의 은총으로 해방되었다.



나눔

1. 위 성서 구절 중 내 마음을 끌어당기는 말씀이 있습니까?

2.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여기'에서 말한 어려움을 알고 계실까요?

3.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떤 희망을 주실까요?

1) 집이나 동네에서 :

2) 학교나 학원에서 :

3) 사회에서, 동료나 친구와 이웃들 사이에서 :



약속

·이렇게 하느님께서 만들어 주시는 새로운 희망이 이루어지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 하나를 골라 실천하기로 약속합시다.



기도

한 명씩 돌아가면서 기도합시다. 기도하기가 어려우면 그냥 "예수님!"하고 부르신 다음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하시면 됩니다. 또는 오늘 마음에 와닿은 주님의 말씀을 되풀이해서 읽으셔도 됩니다.

"항상 기도하십시오. 늘 기도하십시오. 어떤 처지에서든지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여러분에게 보여 주신 하느님의 뜻입니다"(1데살 5, 16-18).



낱말

야훼 : 하느님의 이름 "(나는 곧) '나다'라고 하시는 그분이다"라는 뜻.

계시 : 사람의 능력으로는 알 수 없는 사실을 하느님께서 직접 알려 주심. 계시 진리라고도 함.

아브라함 : 이스라엘 역사와 신앙의 성조로 기억되는 인물.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리라는 의미로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으로 이름을 고쳐 받는다(창세기 17장 참조 - 부인 '사래'는 많은 민족의 어머니라는 의미로 '사라'라고 고쳐 받는다).

파라오 : 이집트 왕(구약 성서에서는 인간을 억누르는 세력으로 묘사됨).

모세 : '물에서 건져냈다'는 뜻. 히브리인으로 이집트 공주의 양아들이 되어, 태어나는 히브리인들의 남자 아기는 모두 죽이라는 이집트 왕의 지시에서 목숨을 건졌다.

성인이 된 후 자신이 히브리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후 동족을 핍박하는 이집트인을 죽이고 동족끼리의 싸움을 말리다가 자신이 이집트인을 죽였다는 사실이 탄로 나자, '미디안'으로 피신하여 '르우엘'이라는 족장의 목동이 된다. 아내는 '시포라'이며 아들은 '게르솜'이다(출애급기 1; 2장 참조).

이사악 : 아브라함이 100세에 얻은 아들(창세기 21; 22; 24장 참조). 부인은 '리브가'이다.

야곱 : 이사악의 아들로서 에사오의 동생이지만, 형으로부터 떡과 불콩죽을 주고 장자 상속권을 샀다(창세기 25, 19 이하).

요셉 : 라헬이 하느님께서 나의 부끄러움을 씻어 주셨다면서 야곱과의 사이에서 난 아들로,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상징하는 야곱의 열두 아들 중 열한 번째 아들이다.

그는 야곱의 귀여움을 독차지했지만 나머지 형제들의 시샘을 사서 이집트로 팔려간다. 하지만 거기서 성공하여 이집트의 재상이 된다(창세기29; 30; 37-50장 참조).

*이스라엘의 축제

과월절 : '파스카(pass over)'라고도 하며, 죽음의 천사가 거르고 '건너 지나가다'라는 의미이다. 주 하느님께서 이집트인들의 맏아들과 맏배(첫번째 새끼)를 치는 열 번째 재앙 때, 이스라엘인의 집 대문에 발라져 있는 양의 피를 보고 죽음의 천사가 이스라엘인들은 죽이지 않고 그냥 통과하고 지나쳐 목숨을 건졌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축제이다(출애 12, 1-14; 레위 23, 4-5 7-9 참조).

무교절 : 너무나 급히 도망치듯 이집트에서 나오는 바람에 빵을 굽지도 못 하고, 또 여행길에 상하지 않도록 누룩(효소)으로 부풀리지도 못한 채, 그저 반죽만 들고 떠났던 때를 기억하여 드리는 축제이다(출애 12, 15-20; 12, 34; 레위 23, 4. 6-8 참조).

오순절 :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서 첫 곡식을 수확하여 하느님께 감사의 예물을 드린 것을 기념하는 감사 축제(후에 사도들에게 성령이 임하신 것을 기념하는 성령 강림 대축일이 되었음)이다(레위 23, 9-22 참조).

차례




3. 내 계약을 지키면



여기

·어떻게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관이 벽에 부딪친 적이 있습니까?

·가진 것은 적지만 속편하게 살 것입니까, 아니면 이것저것 다 챙기고 누리면서 언제 무너지고 빼앗길지 몰라 불안해 하며 살 것입니까?

·우리가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구분하는 기준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한평생 살면서 좌우명처럼 꼭 지키고, 또 한편 명심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말씀 십계명(출애 20, 1-17)

20 1이 모든 말씀은 하느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2"너희 하느님은 나 주님이다. 바로 내가 너희를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 낸 하느님이다. 3너희는 내 앞에서 다른 신을 모시지 못한다. 4너희는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 위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어떤 것이든지 그 모양을 본따 새긴 우상을 섬기지 못한다. 5그 앞에 절하며 섬기지 못한다. 나 주님 너희의 하느님은 질투하는 신이다. 나를 싫어하는 자에게는 아비의 죄를 그 후손 삼 대에까지 갚는다. 6그러나 나를 사랑하여 나의 명령을 지키는 사람에게는 그 후손 수천 대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은 사랑을 베푼다.

7너희는 너희 하느님의 이름 야훼를 함부로 부르지 못한다. 주님은 자기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자를 죄 없다고 하지 않는다.

8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켜라. 9엿새 동안 힘써 네 모든 생업에 종사하고 10이렛날은 너희 하느님 주님 앞에서 쉬어라. 그 날 너희는 어떤 생업에도 종사하지 못한다. 너희와 너희 아들 딸, 남종 여종뿐 아니라 가축이나 집안에 머무는 식객이라도 일을 하지 못한다. 11주님께서 엿새 동안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드시고, 이레째 되는 날 쉬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님께서 안식일을 축복하시고 거룩한 날로 삼으신 것이다.

12너희는 부모를 공경하여라. 그래야 너희는 너희 하느님 주님께서 주신 땅에서 오래 살 것이다.

13살인하지 못한다.

14간음하지 못한다.

15도둑질하지 못한다.

16이웃에게 불리한 거짓 증언을 못한다.

17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못한다. 네 이웃의 아내나 남종이나 여종이나 소나 나귀 할 것 없이 네 이웃의 소유는 무엇이든지 탐내지 못한다."



배움 십계명 - 하느님과의 계약, 하느님께 나아가는 길, 인간이 마땅히 걸어가야 할 길

하느님께서 우리가 살면서 꼭 지키라고 주신 계명(TORAH-길)은 바로 사랑이다. 또한 그 사랑의 길이 인간의 완성과 구원의 길이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광야에서 교육하신다. '누가 자신들을 구원해 주었는지', '구원된 백성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리고 '다시 또 노예가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십계명을 통해 명확히 심어 주신다. 십계명의 내용은 "먼저 우리를 구원해 주신 하느님을 사랑하고,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바로 그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첫째, 한 분이신 하느님을 흠숭하여라.(인간 존엄과 평등의 근거이신 하느님)

하느님을 믿고 찬미하며 감사드려야 한다. 그리고 내 기도를 들어주면 하느님이시고, 안 들어주면 하느님께서 안 계시다고 생각 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하느님보다 자기에게 좋고 편한 것만을 찾는 것은 우상 숭배가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돈, 성적, 등수, 성공, 쾌락, 아름다움, 건강 등.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지나치게 집착하면, 우리를 사로잡는 우상이 되어 버린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노예살이에서 구원하셨으니 하느님만을 섬겨야 하고, 다시는 누구도 다른 인간에게 지배당해서는 안되며 다른 인간을 지배하려고 해서도 안 된다. 하느님과 하느님의 뜻만이 우리 삶의 최우선의 자리에 있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틀렸다고 하거나 무시하고 미워하지 말고 서로 존중 하여야 한다.

둘째, 하느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마라.

나를 위해 하느님을 파는 거짓 맹세 등으로 하느님을 욕되게 하지 말라는 것이다. 사람들이 나를 보고, "하느님을 믿어서 그렇게 바르게 사는구나!" 할 정도로 살자.

셋째, 주일을 거룩히 지내라.

1) 주일(일요일)은 하느님을 기억하는 날이다. 이날은 지난 한 주간을 잘 지내게 해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오는 한 주간을 기쁘고 사랑 가득한 가운데 지낼 수 있도록, 미사를 봉헌하며 하느님께 기도하는 날이다.

2) 이날은 힘있게 다시 일하기 위해 쉬는 날이다.

3) 이날은 내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웃 친척을 찾아가 인사하고 돌보는 날이다.

넷째, 부모에게 효도하여라. - 순종과 공경, 권위에의 인정, 그리고 사랑.

다섯째, 사람을 죽이지 마라.

사람을 만드신 분은 하느님이시다. 또 하느님께서는 사람에게 하느님의 모상(영, 얼, 모습)을 심어 주셨다. 사람은 사랑받고 사랑해야 한다. 그러므로 사람을 미워하거나 이용하려 하거나 지배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또한 자신의 이익을 위해 부정과 불의를 저지르고 이웃의 고통을 모른체하면 간접 살인에 해당된다.

여섯째, 간음하지 마라.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혼과 가정 생활을 사회적으로 보호하려는 것이다.

또한 단순히 좋은 것을 넘어, 인격적인 사랑을 나누어야 한다. 아울러 무절제한 사랑으로 태어나는 아기의 인권과 생명의 고귀함이 손상되지 않기를 바라며(낙태 금지), 각자 스스로의 때를 채우고 기다리는 노력으로 참 사랑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

일곱째, 도둑질을 하지 마라.

하느님께서는 사람에게 필요한 물건을 자기가 가질 수 있도록 하셨다. 그런데 누가 그 사람에게 필요한 것을 빼앗아 가거나, 줄 것을 주지 않거나, 몰래 가져간다면, 하느님께서 주신 자유와 사랑을 무시하고 가로채는 것이 된다.

이 계명은, 7년마다의 안식년과 7년이 일곱 번 지난 다음해인 희년에 담보 잡힌 각종 소유권과 지배권을 해소시켜 해방되게 한다. 이는 가난하고 억울한 이를 되살리는 규정이다(레위기 25장 참조).

여덟째, 거짓 증언을 하지 말라.

나를 위해 다른 사람 핑계를 대거나 거짓말을 해서 그 사람이 대신 피해를 입게 해서는 안 된다. 거짓 증언은 죽음의 벌을 받아 마땅한 거짓말을 가리킨다.

아홉째, 열째, 남의 아내를 탐내지 말라. 남의 재물을 탐내지 말라.

내가 어려워도 함께 사는 할아버지나 할머니, 부모님, 형제, 자매들 그리고 친구들과 이웃을 존경하고 사랑하며 하느님께 감사하자. 또한 너와 내 안에 있는 악을 없애기 위해 노력은 하되, 인간을 미워하지는 말자.

"나에게 필요한 것은 내가 가지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축복과 사랑이다"라는 것을 항상 기억하고 자제하며 인격적인 성숙을 맞이하자.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하는 마음으로 십계명에서 제시하는 길을 걸어나갈 때, 나와 우리가 하느님께로 나가게 된다.



나눔

1. 위 성서 구절 중 내 마음을 끌어당기는 말씀이 있습니까?

2. 위에 나오는 십계명을 어긴 적이 있습니까? 또는 어떤 것을 잘 지키고 있습니까?



약속

·내가 자주 어기는 계명 중 하나를 선택해서 지키기로 약속해 봅시다.



기도

"나는 너희에게 새 계명을 주겠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 34).

차례




4.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



여기

·자연을 보고 감탄한 적이 있습니까? 우주와 지구 그리고 사람의 기원과 생성에 대해 배우거나, 들어 본 적이 있습니까? 당신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아기의 맑은 눈동자를 보았습니까? 세상이 언제 보기 좋고 또 언제 보기 싫은가요? 세상이 언제 고맙고 또 언제 원망스럽습니까?

·이 세상에 생명을 주고 죽음을 주는 것은 무엇입니까?

·나는 누구이며, 왜 태어났다고 생각하십니까? 내가 이 사회, 이 인류를 위해 할 일은 무엇입니까?



말씀 천지 창조(창세 1, 1-2, 4)

1 1한 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지어 내셨다. 2땅은 아직 모양을 갖추지 않고 아무 것도 생기지 않았는데, 어둠이 깊은 물위에 뒤덮여 있었고 그 물위에 하느님의 기운이 휘돌고 있었다.

3하느님께서 "빛이 생겨라!"하시자 빛이 생겨났다. 4그 빛이 하느님 보시기에 좋았다. 하느님께서는 빛과 어둠을 나누시고 5빛을 낮이라, 어둠을 밤이라 부르셨다. 이렇게 첫날이 밤, 낮 하루가 지났다.

6하느님께서 7하늘… 9땅, 10바다, 11풀과 과일 나무… 14해, 달, 별… 20물고기, 새… 24동물… 25하느님께서 보시니 참 좋았다.

26하느님께서는 "우리 모습을 닮은 사람을 만들자! 그래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 또 집짐승과 모든 들짐승과 땅 위를 기어다니는 모든 길짐승을 다스리게 하자!"하시고, 27당신의 모습대로 사람을 지어 내셨다. 하느님의 모습대로 사람을 지어내시되 남자와 여자로 지어내시고, 28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복을 내려 주시며 말씀하셨다. "자식을 낳고 번성하여 온 땅에 퍼져서 땅을 정복하여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를 돌아다니는 모든 짐승을 부려라!"

29하느님께서는 다시 "이제 내가 너희에게 온 땅 위에서 낟알을 내는 풀과 씨가 든 과일 나무를 준다. 너희는 이것을 양식으로 삼아라. 30모든 들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 위를 기어다니는 모든 생물에게도 온갖 푸른 풀을 먹이로 준다." 하시자 그대로 되었다. 31이렇게 만드신 모든 것을 하느님께서 보시니 참 좋았다. 엿샛날도 밤, 낮 하루가 지났다.

2 1이리하여 하늘과 땅과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이 다 이루어졌다. 2하느님께서는 엿샛날까지 하시던 일을 다 마치시고, 이렛날에는 모든 일에서 손을 떼고 쉬셨다. 3이렇게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을 새로 지으시고 이렛날에는 쉬시고 이 날을 거룩한 날로 정하시어 복을 주셨다. 4하늘과 땅을 지어내신 순서는 위와 같았다.



배움 천지 창조

첫째, 성서는 세상이 어떻게 해서 생겼는지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과학자와 역사학자들의 일이다. 성서는 이 세상을 '누가 있게 했느냐'를 알리는 신앙의 진리이다.

창세기 1장 9절에서 2장 4절에 나오는 창조의 방법(말씀으로 창조)과 2장 5절부터 25절까지에 나오는 창조의 방법(인간을 진흙으로 빚어 만드신 후 숨을 불어넣으심)이 서로 다르다. 그러면서도 그대로 기록한 것은 창조 방법이 아니라 창조의 원인을 밝히려고 한 때문이다.

둘째, 성서는 "하느님께서 최고의 신이심"을 강조한다. 창세기는 그 동안 자신들을 노예로 부리던 이집트나 바빌론 사람들이 섬기던 신들, 즉 '해'와 '별'도 우리 하느님께서 만드신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므로 비록 한때 힘있는 사람들이 세상을 지배하고, 하느님께서는 침묵하시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오히려 하느님께서는 약하고 보잘것없는 민족 이스라엘을 선택하셨다. 그래서 성서는 "누구든지 이스라엘같은 약한 민족이 강하고 잘 사는 것을 보면, '주 하느님께서 참 하느님이시다!'라고 말하게 되리라"는 신앙 고백이 덧붙여 있다

째, 하느님께서 창조주이시다. 성서는 "하느님께서‘라고 말씀하시자 (‘ ’라고 말씀하신 바로) 그 말씀대로 되었다"고 쓰고 있다. 하느님께서는 말씀으로 세상을 만드셨다.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 만물과 하느님의 생명을 나누기 위해 지어 내셨다. 그리고 사람을 만드실 때 '하느님의 모상'을 심어 주셨다. 하느님의 모상이란 하느님의 뜻과 마음과 사랑이다.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만드신 모든 것을 보시고 "보기에 좋다"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느님께서 만드신 좋은 목적과 방향에 따라서 세상을 다스려야 한다.

넷째, 우리는 결혼하여 부부의 사랑을 통해 자녀를 낳고, 하느님께서 만드신 것을 이용하여 새로운 것을 만들어 하느님의 창조 사업을 계속한다.

또 이웃을 사랑하고 도와서 하느님의 사랑이 이 땅에 드러나게 함으로써 하느님의 구원 사업에 참여한다.

이러한 우리의 노력은 마지막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에 완성되어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살게 된다.



나눔

1. 위 성서 구절 중 내 마음을 끌어당기는 말씀이 있습니까?

2. 오늘날 하느님께서 만드신 세상을 살리는 것(또는 일)은 무엇입니까? 또 반대로 생명을 죽이는 것(또는 일)이 무엇인지 이야기해 봅시다.



약속

·세상을 살리는 일에 내가 어떤 방법으로 참여할 수 있을까요?



기도 조물들의 찬가(시편 148, 1-15)

"1알렐루야. 주님을 찬미하라, 하늘로부터. 높고 높은 곳에서 찬미들 하라.

2천사들아, 모두 다 주님을 찬미하라. 하늘의 군대들아, 주님을 찬미하라.

3해야 달아, 주님을 찬미하라. 반짝이는 별들아, 너희 모두 찬미하라.

4하늘들 위의 저 하늘들아, 하늘 위의 물들아. 너희는 주님을 찬미하라.

5주께서 명하심으로 창조된 것이기에 모두 다 그 이름 찬미들 하라.

6주님은 그 모든 것 영원히 다지시어 변치 않을 법에다 매어 주셨도다.

7주님을 찬미하라, 땅으로부터. 바다의 괴물들아, 깊고 깊은 물들아.

8불이며, 우박이며, 눈이며 안개 주님의 영을 좇는 거센 바람이며

9산과 산, 모든 언덕, 과일 나무, 체드루스들

10맹수야 가축이야, 길짐승에 나는 새들

11세상의 임금들과 모든 백성들이며 대관들과 세상의 모든 판관들이며

12숫총각들 숫처녀들, 늙은이들 어린이들

13너희는 주님 이름 찬미들 하라. 당신의 이름만이 홀로 높으시도다

하늘 땅 아득 높이 찬란하신 그 영광!

14당신의 백성에게 높은 영광 주셨으니, 성도들의 자랑이 아닐손가?

15주님이 괴옵시는 이스라엘의, 그 백성 후예들의 자랑이로세. 알렐루야."



쉼터

한 아이가 물었습니다.

"너, 왜 화가 나있니?"

"응, 세상에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이 없어서 그래!"

"세상을 돈 주고 사 버리지 그래! 세상을 사 버려!"

"뭐? 너 미쳤니? 너 누구 약 올려?"

"미치긴 누가 미쳐? 네가 만들지도 않았고, 네 것도 아닌 세상이 네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이 당연하지!"

"……"

차례




4-1. 우리 모습을 닮은 사람을 만들자



여기

·하느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 입김을 불어넣어 숨을 쉬게 하셨습니다. 나는 요즈음 하느님의 영을 받아 생기 있게 살고 있습니까?

·나는 내 이웃과 주변 사물에 이름을 붙여주고, 아끼고 사랑하며 돌보고 있습니까?



말씀 아담과 하와가 지음 받다(창세 2, 4ㄴ-9. 15-25)

2 5하느님께서 땅과 하늘을 만드시던 때였다. 땅에는 아직 아무 나무도 없었고, 풀도 돋아나지 않았다. 하느님께서 아직 땅에 비를 내리지 않으셨고 땅을 갈 사람도 아직 없었던 것이다. 6마침 땅에서 물이 솟아 온 땅을 적시자 7하느님께서 진흙으로 사람을 빚어 만드시고 코에 입김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되어 숨을 쉬었다.

8주 하느님께서는 동쪽에 있는 에덴이라는 곳에 동산을 마련하시고 당신께서 빚어 만드신 사람을 그리로 데려다가 살게 하셨다. 9하느님께서는 보기 좋고 맛있는 열매를 맺는 온갖 나무를 그 땅에서 돋아나게 하셨다. 또 그 동산 한가운데는 생명 나무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돋아나게 하셨다.

15하느님께서 아담을 데려다가 에덴에 있는 이 동산을 돌보게 하시며 16이렇게 이르셨다. "이 동산에 있는 나무 열매는 무엇이든지 마음대로 따먹어라. 17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만은 따먹지 말아라. 그것을 따먹는 날, 너는 반드시 죽는다."

18하느님께서는 "아담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그의 일을 거들 짝을 만들어 주리라" 하시고, 19들짐승과 공중의 새를 하나하나 진흙으로 빚어 만드시고 아담에게 데려다 주시고는 그가 무슨 이름을 붙이는가 보고 계셨다. 아담이 동물 하나하나에게 붙여 준 것이 그대로 그 동물의 이름이 되었다. 20이렇게 아담은 집짐승과 공중의 새와 들짐승의 이름을 붙여 주었지만 그 가운데는 그의 일을 거들 짝이 보이지 않았다. 21그래서 하느님께서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신 다음, 아담의 갈빗대를 하나 뽑고 그 자리를 살로 메우시고는 22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신 다음, 아담에게 데려 오시자 23아담은 이렇게 외쳤다. "드디어 나타났구나! 내 뼈에서 나온 뼈요, 내 살에서 나온 살이로구나. 지아비에게서 나왔으니 지어미라고 부르리라!" 24이리하여 남자는 어버이를 떠나 아내와 어울려 한몸이 되게 되었다. 25아담 내외는 알몸이면서도 서로 부끄러운 줄을 몰랐다.



배움 천지 창조 2-하느님의 모습대로 우리 인간을 만드심

첫째, 창세기의 계시-창세기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

1) 하느님께서 창조주이시다 -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을 제각기 다르게, 또한 그것에 알맞게 만드셨다.

그리고 입김을 불어넣어 사람이 되게 하여 숨쉬게 하셨다.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께 감사드리자.

2) 창조된 모든 것은 좋은 것이다 - 하느님께서는 이루어진 것을 보실 때마다 "보기에 좋다"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만드신 모든 것은 좋은 목적과 방향을 가지고 만들어진 좋은 것이다.

3) 사람도 하느님의 창조물(피조물)이다 -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만드실 때 특별히 당신의 마음과 생각과 사랑을 간직할 수 있도록 하셨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만드시고, 인간에게 하느님의 모상을 심어 주셔서, 하느님의 뜻에 따라 세상을 다스리게 하셨다.

그러므로 비록 불완전하지만, 언제나 하느님의 마음과 생각과 사랑을 기억하고 되새겨, 자기 자신과 세상을 관리하여야 한다.

4) 선하게 창조된 사물은 선하게 사용되어야 한다 - 모든 것은 하느님의 것이고 단지 우리는 이 지상에 사는 동안 이것을 관리할 수 있는 소유권(점유권적 관리 소유권)을 가진다.

그러므로 사람은 세상을 관리할 때, 언제나 하느님의 뜻을 찾고 헤아려 그 만드신 목적과 뜻에 맞추어야 한다.

5) 창조된 세계는 하느님께서 지배하신다 - 하느님께서 이 세상을 지배하신다.

그러므로 인간이 자신의 뜻과 마음대로 세상이 움직여 주지 않는다고 불평할 수 없다. 왜냐하면 세상의 주인은 인간이 아니라 하느님이시기 때문이다(물론 그렇다고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하느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둘째,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세상과 조화를 이루며 살도록 만드셨다.

1) 인간은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하느님과의 조화는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하느님의 말씀을 따르는 데 있다.

2) 인간은 자기 육체와 영혼이 한몸으로 조화를 이루어 진정한 인격을 이루어야 한다. "우리는 살아 계신 하느님의 성전입니다"(2고린 6, 16).

3) 인간은 이웃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만드실 때부터 혼자 있게 하지 않으시고 함께 도우면서 살도록 하셨다.

이웃은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이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나에게 이웃을 맡기셨다는 사실을 기쁘게 받아들여야 한다. 이웃을 통해 나의 약함이 드러나는 동시에, 하느님의 은총이 다가온다는 것을 겸손되이 고백하자.

4) 인간은 창조된 모든 피조물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그러므로 대자연을 이용할 때 하느님께서 만드신 목적과 계획에 맞게 사용하여야 한다.

셋째, 하느님께서는 사람에게 하느님의 모상(하느님의 생각과 마음, 사랑)을 심어 주셨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사람에게 세상을 맡기셨다. 그리고 하느님과 함께 세상을 만들고 구원하는 일을 계속 같이 하자고 우리를 부르신다. 하느님과 함께 세상을 만들고 구원하는 일에 동참하자.



나눔

1. 위 성서 구절 중 내 마음을 끌어당기는 말씀이 있습니까?

2. 내 삶이 생기가 없고 만족스럽지 못하다면 왜 그렇습니까?



약속

·내가 기쁘게 살기 위해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웃과 더불어 살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하시렵니까?



기도 주님 좋으시다, 영원하신 그 사랑(시편 99, 1-5))

"1온누리 반기어 주님께 소리쳐라.

2기쁨으로 주님 섬겨 드려라, 춤추며 당신 앞에 나아가라.

3주님은 하느님, 너희는 알라. 우리를 내셨으니, 우리는 당신의 것,

당신 백성이어라, 기르시는 그 양떼이어라.

4고마우심 노래하며 당신 문으로, 찬미하며 들어가라, 그 뜰 안으로.

주님께 감사하라, 그 이름을 찬양하라.

5주님 좋으시다, 영원하신 그 사랑,

당신의 진실하심, 세세에 미치리라."

차례




5. 너 어디 있느냐



여기

·내가 지금보다 더 잘 살려면 어떻게 하면 됩니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 친구들이나 부모님, 배우자의 부탁을 거절한 적이 있습니까?

·친구나 동료들에게 버림받은 적이 있습니까? 빚보증 섰다가 떼이고 대신 시달린 적이 있습니까? 어느 누구에게 원망과 수치감으로 들끓은 적이 있습니까?

·떨쳐버리기 힘든 유혹이 있습니까?

·삶이 기쁘고 보람되게 하려면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말씀 하느님의 말씀을 거역하다(창세 2, 15-17; 3, 4-19)

2 15주 하느님께서 아담을 데려다가 에덴에 있는 이 동산을 돌보게 하시며 16이렇게 이르셨다. "이 동산에 있는 나무 열매는 무엇이든지 마음대로 따먹어라. 17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만은 따먹지 말아라. 그것을 따먹는 날, 너는 반드시 죽는다."

3 4그러자 뱀이 여자를 꾀었다. "절대로 죽지 않는다. 5그 나무 열매를 따먹기만 하면 너희의 눈이 밝아져서 하느님처럼 선과 악을 알게 될 줄을 하느님이 아시고 그렇게 말하신 것이다." 6여자가 그 나무를 쳐다보니 과연 먹음직하고 보기에 탐스러울 뿐더러 사람을 영리하게 해 줄 것 같아서, 그 열매를 따먹고 같이 사는 남편에게도 따 주었다. 남편도 받아먹었다. 7그러자 두 사람은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알몸인 것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앞을 가리웠다.

8날이 저물어 선들바람이 불 때 주 하느님께서 동산을 거니시는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는 주 하느님 눈에 뜨이지 않게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다. 9주 하느님께서 아담을 부르셨다. "너 어디 있느냐?" 10아담이 대답하였다. "당신께서 동산을 거니시는 소리를 듣고 알몸을 드러내기가 두려워 숨었습니다." 11"네가 알몸이라고 누가 일러주더냐? 내가 따먹지 말라고 일러 둔 나무 열매를 네가 따먹었구나!"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12아담은 핑계를 대었다. "당신께서 저에게 짝지어 주신 여자가 그 나무에서 열매를 따 주기에 먹었을 따름입니다." 13주 하느님께서 여자에게 물으셨다. "어쩌다가 이런 일을 했느냐?" 여자도 핑계를 대었다. "뱀에게 속아서 따먹었습니다." 14주 하느님께서 뱀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이런 일을 저질렀으니 온갖 집짐승과 들짐승 가운데서 너는 저주를 받아, 죽기까지 배로 기어다니며 흙을 먹어야 하리라. 15나는 너를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리라. 네 후손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라. 너는 그 발꿈치를 물려고 하다가 도리어 여자의 후손에게 머리를 밟히리라." 16그리고 여자에게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는 아기를 낳을 때 몹시 고생하리라. 고생하지 않고는 아기를 낳지 못하리라. 남편을 마음대로 주무르고 싶겠지만, 도리어 남편의 손아귀에 들리라." 17그리고 아담에게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는 아내의 말에 넘어가 따먹지 말라고 내가 일찍이 일러 둔 나무 열매를 따먹었으니, 땅 또한 너 때문에 저주를 받으리라. 너는 죽도록 고생해야 먹고살리라. 18들에서 나는 곡식을 먹어야 할 터인데, 땅은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리라. 19너는 흙에서 난 몸이니 흙으로 돌아가기까지 이마에 땀을 흘려야 낟알을 얻어먹으리라.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가리라."

*참고 카인과 아벨 이야기 - 이기주의, 질투(창세기 4, 1-16)

노아의 방주 이야기 - 죄와 벌 이야기(창세기 6, 5-8)

바벨탑 이야기 - 집단 이기주의(창세기 11, 1-9)



배움 인간의 죄

인간은 하느님과 함께할 때 인간답게 살 수 있다. 하느님을 떠나고 하느님의 사랑을 저버릴 때 인간은 인간성을 잃어버린다. 그것이 죄와 벌이다.

첫째, 죄와 죽음

1) 인간이 처음 지은 죄는 '교만'이다.

아담과 하와에게 뱀이 다가와 유혹했다. "너는 하느님께서 만드신 인간에 불과하지만, 저 '선과 악을 아는(구분하는) 나무 열매'를 따먹으면 하느님처럼 된다." 아담과 하와는 하느님과 같아지고 싶었다. 하느님처럼 완전히 생각하고 소유하고 지배하고 싶었다.

그래서 뱀의 유혹에 넘어가 선악과 나무 열매를 따먹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하느님처럼 한계도 없고, 모든 것을 지배할 능력과 권한이 생기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수치심(자기들이 알몸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제서야 그들은 자신들이 하느님의 뜻을 저버렸다는 것을, 즉 죄를 지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러고는 두려워서 하느님으로부터 숨고 떠나게 된다.

2) 책임 전가 - 핑계

하느님께서 물으시자 그들은 대답한다.

"내가 아니고 너, 유혹 때문이라고…."

3) 죄의 결과인 벌 - 평화를 잃음

아담과 하와를 유혹한 뱀은 죽도록 땅을 기어다니며 흙을 먹도록 벌을 받는다. 그리고 여자는 아기를 낳을 때 고통을 받고, 남편을 주도하려 하지만 남편의 손아귀 안에 잡히리라는 벌을 받는다. 그리고 아담은 흙에서 흙으로, 즉 죽음을 선고받고 이마에 땀을 흘려야 낟알을 얻어먹으리라는 벌을 받는다.

이 아담의 벌을 보면, 하느님께서 (흙을 빚어) 만드시고 입김을 불어넣어 숨을 쉬게 하신 인간에게서, 숨을 거두어 들여 다시 흙이 되게 하시겠다는 것이다. 죄는 죽음을 가져왔다.

또 전에는 에덴 동산에서 자유롭게 따먹고 대자연과 어울리던 생활이 없어지고, 이제는 먹고살기 위해 고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노동이 기쁘고 자연스러운 행동이 아니라, 살기 위해서 죽을 때까지 땀을 흘려야 하는 것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땅은 저주하시지만, 인간은 용서하실 만큼 사랑이 지극하신 분이시다.

둘째, 죄의 결과

1) 죄는 하느님과의 관계를 깨뜨린다.

·하느님을 무서움과 두려움으로 맞이한다.

·하느님을 피해 숨는다.

·하느님으로부터 떠나게 된다.

2) 죄는 동료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를 깨뜨린다.

·하와(인간)는 뱀(자연)을 핑계대면서 원망한다.

·아담(인간)은 하와(동료인간)를 핑계대면서 원망한다.

3) 죄는 인간 자신과의 관계를 깨뜨린다.

·아담과 하와(인간)는 자신이 누리던 행복을 잃어버린다.

·인간은 힘들게 일을 해야 먹고 살 수 있게 된다.

·인간은 생명을 박탈당하게 된다(죽는다).

셋째, 원죄 - 인간의 사회성과 죄의 연대성

1) 아담과 하와의 첫 범죄를 원죄라고 한다.

2) 이 원죄의 결과(위 '둘째')는 유전한다. 인간은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벌받은 세상에 살게 된다.

3) 인간의 사회성과 죄의 연대성 - 인간은 사회 안에서 서로 유혹을 하고 유혹을 받으며, 상처를 받은 사람에게서 상처받고 또 상처를 주며 산다.

그래서 한 사람이 죄를 짓고 악의 상태에 있으면, 그 주위 사람들이 모두 다 그 영향으로 괴로워하게 된다(예 : 부부 싸움과 가출 청소년, 환자와 그 우울한 가족들).

이런 인간과 사회의 특성이 현대 세계 안에서도 '원죄의 유전성'을 보여주고 있다.

넷째, 그치지 않는 하느님의 사랑과 희망

인간은 죄로 하느님과 멀어졌지만, 하느님께서는 인간에 대한 사랑을 끊지 않으시고, 오히려 더욱더 인간에게 맞춰 배려해 주신다(나뭇잎 옷 대신 가죽옷을 만들어 입혀 주신다.).

또한 하느님께서는 인간에게 구세주를 보내 주시겠다는 희망을 주신다. "도리어 여자의 후손에게 머리를 밟히리라"(3, 15)라는 구절에서 살펴보듯이, 인간은 죄의 유혹과 악의 세력에서 구원될 수 있으며, 인간을 구원할 여자(마리아)의 후손, 구세주(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린다.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인간에게 기쁜 소식을 주신다. 이 첫번째 기쁜 소식을 원복음이라고 한다.



나눔

1. 위 성서 구절 중 내 마음을 끌어당기는 말씀이 있습니까?

2. 부모님의 말씀이나, 내 마음속에서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양심에 가책이 되는) 저질렀던 죄에 대해 되새겨 봅시다.

1) 무슨 일이었습니까?

2) 왜 그랬습니까?

3) 그 결과는 어떠했습니까?

4) 그 일이 지금 나의 생활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까?



약속

·내가 하고 싶은 것을 기쁘고 보람있게 하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요?



기도 하느님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시편 51, 3-21)

"3하느님, 자비하시니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애련함이 크오시니 내 죄를 없이 하소서.

4내 잘못을 말끔히 씻어 주시고 내 허물을 깨끗이 없애 주소서.

5나는 내 죄를 알고 있사오며 내 죄 항상 내 앞에 있삽나이다.

6당신께, 오로지 당신께 죄를 얻었삽고 당신의 눈앞에서 죄를 지었사오니

판결하심 공정하고 심판에 휘지 않으심이 드러나리이다.

보소서, 나는 죄 중에 생겨났고 내 어미가 죄 중에 나를 배었나이다.

8당신은 마음의 진실을 반기시니 가슴 깊이 슬기를 내게 가르치시나이다.

9히솝의 채로 내게 뿌려 주소서. 나는 곧 깨끗하여지리이다.

나를 씻어 주소서, 눈보다 더 희어지리다.

10기쁨과 즐거움을 돌려주시어 바수어진 뼈들이 춤추게 하소서.

11내 죄에서 당신 얼굴 돌이키시고 내 모든 허물을 없애 주소서.

12하느님 내 마음을 깨끗이 만드시고 내 안에 굳센 정신을 새로 하소서.

13당신의 면전에서 날 내치지 마옵시고 당신의 거룩한 얼을 거두지 마옵소서.

14당신 구원, 그 기쁨을 내게 도로 주시고 정성된 마음을 도로 굳혀 주소서.

15악인들에게 당신의 길을 가르치오리니 죄인들이 당신께 돌아오리이다.

16하느님, 날 구하시는 하느님이여 피 흘린 죄벌에서 나를 구하소서.

내 혀가 당신 정의를 높이 일컬으오리다.

17주여 내 입시울을 열어 주소서. 내 입이 당신의 찬미 전하오리니

18제사는 당신이 즐기지 않으시고 번제를 드리어도 받지 아니하시리이다.

19하느님, 나의 제사는 통회의 정신

하느님께서는 부서지고 낮추인 마음을 낮추 아니 보시나이다.

20주여, 인자로이 시온을 돌보시고 예루살렘의 성을 다시 쌓아 주소서.

21법다운 제사와 제물과 번제를 그 때에 받으시리니

그때에는 사람들이 송아지들을 당신 제단 위에 바치리이다."



낱말

: 죄인 줄 '알면서', '자기 스스로 원해서 고의로', '계획 실천한 행위'라는 세 가지 요건이 다 채워졌을 때 "죄를 지었다"라고 한다.

차례




5-1. 임금님이 그 사람입니다



여기

·하느님께서는 지금의 나와 나의 가족을 보시고 뭐라고 하시겠습니까? 한편 사람들은 나와 나의 가족을 보고 뭐라고 합니까?

·하느님께서는 지금의 우리 사회를 보시고 뭐라고 하시겠습니까?

·나 한 사람이 만족하며 살기 위해 다른 이의 삶이 어떻게 변화되어야 합니까? 내 기쁨이 다른 이에게도 기쁨이 될 수 있습니까? 내 한순간의 기쁨이 내 삶을 통해 계속 기쁨으로 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말씀 나단 예언자가 다윗 왕을 꾸짖다(2사무 12, 1-14)

12 1주님께서 예언자 나단을 다윗에게 보내셨다. 나단은 다윗을 찾아와 이런 이야기를 하였다.

"어떤 성에 두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한 사람은 부자였고 한 사람은 가난했습니다. 2부자에게는 양도 소도 매우 많았지만, 3가난한 이에게는 품삯으로 얻어 기르는 암컷 새끼 양 한 마리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이 새끼 양을 제 자식들과 함께 키우며, 한 밥그릇에서 같이 먹이고 같은 잔으로 마시고 잘 때는 친딸이나 다를 바 없이 품에 안고 잤습니다. 4그런데 하루는 부잣집에 손님이 하나 찾아왔습니다. 주인은 손님을 대접하는데 자기의 소나 양은 잡기가 아까워서, 그 가난한 집 새끼 양을 빼앗아 손님 대접을 했습니다."

5다윗은 몹시 괘씸한 생각이 들어 나단에게 소리쳤다. "저런 죽일 놈! 세상에 그럴 수가 있느냐? 6그런 인정머리 없는 짓을 한 놈을 그냥 둘 수는 없다. 그 양 한 마리를 네 배로 갚게 하리라." 7그 때 나단이 다윗에게 말하였다.

"임금님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 이스라엘의 하느님,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너를 사울의 손아귀에서 빼내어 기름을 붓고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았다. 8나는 네 상전의 딸과 아내들까지 네 품에 안겨 주었다. 나는 온 이스라엘과 유다의 딸들까지 너에게 주었다. 그래도 모자란다면 어떤 여자든지 더 주었을 것이다. 9그런데 어찌하여 너는 나를 얕보며 내 눈에 거슬리는 짓을 했느냐? 너는 헷 사람 우리야를 칼로 쳐죽였다. 암몬군의 칼을 빌어 그를 죽이고 그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다. 10네가 이렇게 나를 얕보고 헷 사람 우리야의 아내를 네 아내로 삼았으니, 너의 집안에는 칼부림 가실 날이 없으리라'. 11주님께서 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네 당대에 재난을 일으킬 터이니 두고 보아라. 네가 보는 앞에서 네 계집들을 끌어다가 딴 사내의 품에 안겨 주리라. 밝은 대낮에 네 계집들은 욕을 당하리라. 12너는 그 일을 쥐도 새도 모르게 했지만, 나는 이 일을 대낮에 온 이스라엘이 지켜보는 앞에서 이루리라.'"

13"내가 주님께 죄를 지었소." 다윗이 이렇게 자기 죄를 고백하자 나단이 말하였다. "주님께서 분명 임금님의 죄를 용서해 주실 것입니다. 그리하여 임금님께서 죽지는 않으실 것입니다. 14그러나 임금님께서 주님을 얕보셨으니, 우리야의 아내가 낳게 될 아이는 죽을 것입니다." 나단은 이 말을 남기고 집으로 돌아갔다.



배움 예언자-그 자리와 상황에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이

첫째, "'지금 바로 여기', 이 상황에서 하느님께서는 어떻게 말씀하실까"를 두려움 없이 전하는 이들이 바로 예언자들이다. 예언자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에누리없이 그 시대 그 상황에 전해야 하며, 죽음의 두려움 속에서도 전함으로써 백성들에게 하느님의 정의와 사랑을 확인시켜 주었다.

둘째, 예언자는 예언을 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 예언은 앞일을 내다보는 것이 아니다. 성서에서 말하는 예언은 "'그 시대, 그 자리'에 사는 사람들에게 하느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전하는 것"을 가리킨다.

셋째, 구약 성서 안에서 '왕'의 삶은 당대 백성의 생활상을 대표한다. 그러므로 왕에 대한 예언자의 질책은 곧 당대 백성들에 대한 질책으로 볼 수 있다.

넷째, 처음 예언자들이 하느님의 선택을 받을 때에는, 예외 없이 자신은 부족하고 합당하지 않다고 주저했다. 그러나 결국 하느님의 소명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하느님의 명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느님의 많은 예언자들은 시대에 대해 질책함으로써, 당대 백성들과 지도자들에게 미움과 버림을 받아 억울하게 죽어 갔다. 그러나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 전하는 예언자들은 계속해서 등장했고, 하느님께서는 예언자들에게 당신의 힘과 말씀을 주셔서 예언하도록 하셨다.

다섯째, 하느님을 믿는 이들은 언제나 자기가 사는 그 자리와 그 시간에,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즉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 옳게 사는 것이 무엇이고, 어떻게 하면 안 되는지를 사회에 외쳐야 한다. 이를 '예언직'이라 한다.

'70년대 천주교의 대사회 발언은 '정치에의 간섭'이 아니라 예언직의 수행으로 보아야 한다. 아무도 불의한 사회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때, 교회만이 목소리를 낼 수 있을 때, 교회는 인간 삶에 대한 '하느님의 말씀'을 전해야 한다. 침묵하는 것 역시 찬성한다는 의미의 참여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나눔

1. 위 성서 구절 중 내 마음을 끌어당기는 말씀이 있습니까?

2. 가장 아름답게 변화된 내 삶의 형태와 사회상에 다가서는데, 방해가 되는 현실적인 장애물이 있습니까? 그 중에 내가 치울 수 있는 장애물은 무엇이고 치울 수 없는 장애물은 무엇입니까?



약속

·내가 오늘 여기서 하느님의 뜻에 맞게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기도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힘을 얻습니까?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위안을 받습니까? 성령의 감화로 서로 사귀는 일이 있습니까? 서로 애정을 나누며 동정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같은 생각을 가지고 같은 사랑을 나누며 마음을 합쳐서 하나가 되십시오. 그렇게 해서 나의 기쁨을 완전하게 해주십시오. 무슨 일에나 이기적인 야심이나 허영을 버리고 다만 겸손한 마음으로 서로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십시오. 저마다 제 실속만 차리지 말고 남의 이익도 돌보십시오"(필립 2, 1-4).



낱말

다윗 : 학자들 간에는 이스라엘의 첫 공식적인 왕이라고 본다. 아버지 '이새'의 아들 중 여덟 번째 막내아들이다. 예언자 사무엘에 의하여 기름이 부어져 이스라엘의 왕으로 축성되었다. 그는 당시 왕 '사울'의 궁중 악사로 등용되었다가 '골리앗'이라는 불레셋 장수를 돌팔매질로 물리친 사건으로 장수가 되었고 사울의 딸 '미갈'과 결혼하였다(1사무 16-18장 참조).

그 후 사울의 시기로 망명 생활도 하였으나 다윗은 하느님의 뜻을 잘 따라 왕위에 올랐다(2사무 2장). 다윗은 유다와 이스라엘의 통합 왕이 되었고 잘 다스렸다.

다윗은 왕들을 평정하기 위해 군대를 파견한 후, 궁중 너머 여염집 뜰에 전쟁에 나간 '우리야'라는 병사의 아내 '바쎄바'가 목욕하는 것을 보고는 욕정이 동하여 정을 통했다. 그리고는 우리야를 불러 들여 바쎄바와 함께 잠자리를 하도록 하였으나 우리야가 전쟁 중엔 깨끗해야 한다고 응하지 않자 요압 장군에게 "우리야를 가장 전투가 심한 곳에 앞세워 내보내고 너희는 뒤로 물러나서 그를 맞아 죽게 하여라"는 살인 명령을 내려 죽이고 바쎄바를 차지했다(2사무 11장).

훗날 바쎄바의 몸에서 '솔로몬'이 태어나 왕위를 이었다.

나단 : 다윗 시대의 예언자.

차례




6.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



여기

·사람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싶어합니다. 내 나름대로의 사고 방식과 가치관은 어떤 것입니까?

·또 내 자유를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려면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내가 아는 하느님은 누구이며, 그 하느님께 무엇을 바랍니까?



말씀 정의로우실 뿐 아니라 자비로우시고 가련한 이들을 돌보시는 하느님(창세기 4, 1-5. 8-11ㄱ)

4 1아담이 아내 하와와 한 자리에 들었더니 아내가 임신하여 카인을 낳고 이렇게 외쳤다. "주님께서 나에게 아들을 주셨구나!" 2하와는 또 카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을 치는 목자가 되었고 카인은 밭을 가는 농부가 되었다. 3때가 되어 카인은 땅에서 난 곡식을 주님께 예물로 드렸고 4아벨은 양떼 가운데서 맏배의 기름기를 드렸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아벨과 그가 바친 예물은 반기시고 5카인과 그가 바친 예물은 반기시지 않으셨다. 8카인은 아우 아벨을 "들로 가자"고 꾀어 들에 데리고 나가서 달려들어 아우 아벨을 쳐죽였다.

9주님께서 카인에게 물으셨다.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카인은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하고 잡아떼며 모른다고 대답하였다. 10그러나 주님께서는 "네가 어찌 이런 일을 저질렀느냐?"고 하시면서 꾸짖으셨다. "네 아우의 피가 땅에서 나에게 울부짖고 있다. 11ㄱ땅이 입을 벌려 네 아우의 피를 네 손에서 받았다."



배움 인간의 성숙에 따른 신관의 변화와 삶의 변화 - 바른 인식과 신앙 생활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집트에서 해방된 후 새로운 세상에서 새로운 일을 겪게 된다. 그 때마다 자기들과 함께해 주시는 하느님을 새롭게 체험하면서 다시금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고백하게 된다.

이는 마치 어린아이가 어릴 때는 부모님이 자신들과 함께해 주시면서,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사주고 들어주어야 부모님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차츰 커가면서 부모님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게 된다. 이처럼 하느님과 우리 관계는 마치 부모님과의 관계가 보호자에서 동반자로, 오히려 협조자로 바뀌어 가는 모습과도 같다.

첫째, 해방자 하느님 -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느님

소수 유목민족인 이스라엘은 항상 강한 민족의 위협 속에서 살아왔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그러한 위협을 자신들의 힘만으로는 쉽사리 이겨 낼 수 없었다. 그러나 번번이 그러한 위협을 당할 때마다 하느님께서 함께해 주셔서 위협을 넘길 수 있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주 하느님께서 "자신들을 해방시켜 주시고, 자신들의 어려움과 고통 속에 항상 함께해 주시는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자신들이 위협을 당할 때마다 뼈저리게 느꼈다.

둘째, 창조주이시고 주관자이시며 구원자이신 하느님

이스라엘은 자신들을 이집트에서 해방시켜 주신 하느님이야말로 자신들을 구원해 주실 하느님이시며, 자신들을 구원하시는 하느님이야말로 자신들을 세상에 낳으신 분이시고, 세상 만물을 만드시고 주관하시는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셋째, 가난하고 억울한 이들의 사정을 헤아려 주시는 자비로우신 하느님

한편 가장 보잘것없고 약한 민족이 번번이 승리하는 것을 본 이웃 민족들은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승리의 하느님', '전쟁의 하느님'으로 알게 되었다.

그러다가 가나안 땅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정착하게 되자 가나안 족들은 자신들의 신이 '정의롭게 심판하시는 신'이라고 주장하며 "너희의 신은 어떤 분이시냐?"고 묻게 되었다.

그런데 가나안 족이 내세우는 정의의 기준은 자기네 사회의 문화·풍습과 맞느냐 안 맞느냐, 자신들에게 이익이 되느냐 손해가 되느냐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집트에서 노예살이를 하던 자신들의 처지를 되돌아보면서, 참으로 '하느님의 정의는 나약하고 가련한 인간에게 무상으로 베풀어 주시는 자비'라고 체험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물론 우리의 하느님도 정의롭고 공의로우시지만 거기에 그치지 않고, '굶주리고 가련하며 약한 이들을 굽어보시는 하느님'이시다" 라고 더 깊숙이 신앙을 고백하게 되었다.

*참고-이스라엘의 왕이신 하느님, 군대들의 주님, 계약의 궤


<신관의 변화에 따른 가치관과 신앙 생활의 변화>


카 인

(가나안 정착 이후)

아 벨

(이스라엘의 전통 생활상)

문화

농경문화, 개인일터,

개인소득, 개인소유

유목문화, 공동일터, 공동소득, 공동소유, 공동분배

신관

정의(롭게 심판하시는)의 하느님

정의로우시지만 한편, 가련하고 약한 이들을 모른 체하지 않으시고 굽어보시는 하느님

신앙

생활 양식

내가 일해 번 돈으로 내가 산다. - "내가 아우(가난한 이들을)를 돌보는 사람입니까?"

내가 일한 대가를 함께 나누고 이웃을 돌보아야 한다. - 고아나 과부, 노인, 병자 및 나그네도 함께 산다.





나눔

1. 위 성서 구절 중 내 마음을 끌어당기는 말씀이 있습니까?

2. 내가 아는 하느님과, 지금까지 교리에서 배운 하느님과는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약속

·어떤 사람은 자신이 필요할 때만 하느님께 도와 달라고 함으로써, 하느님을 마치 자신의 보물 창고처럼 만드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면 나는 하느님께 무엇을 바라고 어떻게 살아가면 될까요?



기도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또 무엇을 입을까 하고 걱정하지 말라. 이런 것들은 모두 이방인들이 찾는 것이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잘 알고 계신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구하여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마태 6, 31-33).



낱말

가치관 : 가치관이란 자신이 어떤 사람 또는 사물을 대하는 자세나 우선 순위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은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행동한다. 어떤 의미에서는 자신의 생활 철학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예를 들면, 행복에 대한 가치관을 돈이 많으냐 적으냐로 판단하는 사람이라면 그는 무엇을 결정할 때 돈을 제일 먼저 그리고 최고의 기준으로 삼을 것이다. 즉 '돈이 많이 드느냐?', '비싼 것이냐?', '돈이 많은 사람이냐?'의 여부가 기준이 될 것이다.

신앙 생활도 가끔 이 가치관에 의해 결정되기도 한다. 돈을 많이 벌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경우 등이 여기에 속한다. 자기가 하느님께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면, 자기가 아는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게 된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자기가 살고 있는 사회가 자신에게 요구하는 가치관을 자신의 가치관으로 삼아 살아왔던 과거를 버리고, 신앙의 가치관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아울러 자기가 하느님께 바라는 것보다는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주님의 말씀과 교회의 가르침 속에서 찾아 이룩해내야 한다.

: 아담이 다시 아내와 한자리에 들었더니 아내가 아들을 낳고는 "하느님께서 카인에게 죽은 아벨 대신 이제 또다른 아들을 주셨구나." 하며 이름을 셋이라고 지어 주었다. 셋도 아들을 얻고 이름을 에노스라고 지어 불렀다. 그때 에노스가 비로소 주님의 이름을 불러 예배하였다(창세 4, 25-26).



쉼터

어떤 두 사람이 싸우고 난 뒤 하느님께 똑같이 기도했습니다.

"하느님 저 사람(회사, 나라)이 (이러 이러한 점에서) 회개하여 (내 말을 듣는) 새 사람이 되게 하여 주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이 둘 중 어느 편의 기도를 들어 주실까요?

한 사람의 기쁨이 다른 사람의 슬픔을 전제와 조건으로 한다면, 하느님께서는 무슨 말씀을 하고 싶어하실까요?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의 욕심을 채워 주기 위해 계신 것일까요?

차례





6-1. 주님은 샅샅이 보고 아시나이다



여기

·지난 우리의 삶 속에 어떻게 하느님께서 함께하셨는지 되돌아 봅시다.



말씀 주님은 샅샅이 보고 아시나이다(시편 139, 1-18. 23-24).

139 1주님 당신은 저를 샅샅이 보고 아시나이다.

2앉거나 서거나 매양 저를 아옵시고

멀리서도 제 생각을 꿰뚫으시나이다.

3걸을 제도 누울 제도 환히 아시고

제 모든 행위를 익히 보시나이다.

4말소리 제 혀끝에 채 오르기 전에

주님은 벌써 모든 것을 알고 계시나이다.

5앞뒤로 이 몸을 감싸 주시며

제 위에 당신 손을 얹어 주시나이다.

6아심이 너무나 놀랍고도 아득하와

제 힘이 미치지 못하나이다.

7당신의 얼을 떠나 어디로 가오리까

당신 얼굴 피해 갈 곳 어디 오리까.

8하늘로 올라가도 거기 주는 계시옵고

지옥으로 내려가도 거기 또한 계시나이다.

9새벽의 날개를 이 몸이 친다 하여도

저 바다의 먼 끝에 산다 하여도,

10거기에도 당신 손은 저를 인도하시고

그 오른손 이 몸을 잡아 주시리다.

11"어둠이나마 저를 덮씌워서

빛인 듯 밤이 저를 휘감는다면" 할 때에도,

12어두움 그것마저 당신께는 어둡지 않아

밤 또한 낮과 같이 환히 밝으며

캄캄함도 당신께는 빛과 같으오리다.

13당신은 오장 육부 만들어 주시고

어미의 복중에서 저를 엮어 내셨으니,

14묘하게도 만들어진 이 몸이옵기

하신 일들 묘하옵기 당신 찬미하오니

당신은 제 영혼도 완전히 아시나이다.

15은밀한 속에서 제가 지음 받았을 제

깊숙한 땅속에서 제가 엮어졌을 제

당신은 제 됨됨이를 알고 계셨나이다.

16제 행위를 당신 눈이 환히 보시고

낱낱이 당신 책에 적으셨으니,

평생의 첫 하루가 있기도 전에

제 날수는 미리부터 정해 두셨나이다.

17하느님 당신 생각은 알아듣기 힘드오며

헤아릴 길 없을 만큼 많사오이다.

18세어 보자 하여도 모래보다 더욱 많고

끝까지 닿는대도 도로 당신이오이다.

23주님 저를 샅샅이 보시고

제 마음을 살펴 주소서

저를 시험하시고 제 은밀한 생각들을 아시옵소서.

24나쁜 길을 걸을세라 보아주시고

영원의 길을 따라 저를 인도하소서.



나눔

1. 우리의 지난 날을 나눠 봅시다.

(내 생애의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기억하면서, 그때마다 하느님께서 어떻게 해주셨는지 되돌아봅시다.)

2. 서로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상대의 삶을 하느님께서 어떻게 지켜주시고 보살펴주셨는지 음미해 봅시다.

3. "내가 하느님이라면", 하느님의 마음으로 서로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전해 줍시다.

4. 시편 139편을 읽고 내 마음에 와 닿는 부분에 대해 이야기해도 좋습니다.



기도

돌아가면서 각자 자신의 일생에 함께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바칩시다.

차례




6-2. 세상 만사 헛되다



여기

·아이들이 나에게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물으면, '세상은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거야!'라고 하면서 무엇을 가르치시겠습니까?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파악하고 정리된 세상살이는 어떤 것입니까?

·지난 생애 중 내가 풀지 못한 불가사의한 문제들이 있었습니까? 지금까지의 내 생애를 되돌아볼 때, 하느님께서는 나를 어떤 방향으로, 어떤 방법을 통해, 어떻게 이끌어 오셨다고 느끼십니까?



말씀 세상 만사 헛되다(전도 1, 2-3; 3, 1-22).

1 2헛되고 헛되다, 설교자는 말한다. 헛되고 헛되다. 세상 만사 헛되다. 3사람이 하늘 아래서 아무리 수고한들 무슨 보람이 있으랴!

3 1무엇이나 다 정한 때가 있다. 하늘 아래서 벌어지는 무슨 일이나 다 때가 있다. 2날 때가 있으면 죽을 때가 있고 심을 때가 있으면 뽑을 때가 있다. 3죽일 때가 있으면 살릴 때가 있고 허물 때가 있으면 세울 때가 있다. 4울 때가 있으면 웃을 때가 있고 애곡할 때가 있으면 춤출 때가 있다. 5연장을 쓸 때가 있으면 써서 안될 때가 있고 서로 껴안을 때가 있으면 그만 둘 때가 있다. 6모아들일 때가 있으면 없앨 때가 있고 건사할 때가 있으면 버릴 때가 있다. 7찢을 때가 있으면 기울 때가 있고 입을 열 때가 있으면 입을 다물 때가 있다. 8사랑할 때가 있으면 미워할 때가 있고 싸움이 일어날 때가 있으면 평화를 누릴 때가 있다.

9그러니 사람이 애써 수고하는 일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10그래서 하느님께서 사람에게 시키신 일을 생각해 보았더니, 11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이 제때에 알맞게 맞아 들어가도록 만드셨더라. 그러나 하느님께서 사람에게 역사의 수수께끼를 풀고 싶은 마음을 주셨지만, 하느님께서 어떻게 일을 시작하여 어떻게 일을 끝내실지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12결국 좋은 것은 살아 있는 동안 잘 살며 즐기는 것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13사람은 모름지기 수고한 보람으로 먹고 마시며 즐겁게 지낼 일이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의 선물이다.

14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은 모두가 한결같으셔서 누가 보탤 수도 뺄 수도 없는 노릇이라, 사람은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을 보고 다만 그의 앞에서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음을 나는 깨달았다. 15무슨 일이 일어나도 그 일은 전에 있던 일이요, 앞으로 있을 어떤 일도 전에 있던 일이라,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은 마냥 그 일의 되풀이에 지나지 않는다.

16그뿐만 아니라 공평 무사하게 정의가 이루어져야 할 세상에 불의가 판치는 것을 나는 또 보았다. 17사람이 무슨 생각으로 무슨 일을 하든지 다 하느님께서 때를 정하시고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를 심판하신다는 생각이 들었다.

18사람이란 본디가 짐승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하느님께서 밝히 보여주신다는 생각이 들었다. 19사람의 운명은 짐승의 운명과 다를 바 없어 사람도 짐승도 같은 숨을 쉬다가 같은 죽음을 당하는 것을! 이렇게 모든 것은 헛되기만 한데 사람이 짐승보다 나을 것이 무엇인가! 20다 같은 데로 가는 것을! 다 티끌에서 왔다가 티끌로 돌아가는 것을! 21사람의 숨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숨은 땅 속으로 내려간다고 누가 장담하랴! 22그러니 제 손으로 수고해 얻은 것을 즐기는 것밖에 좋은 일이 없다. 그것이 사람마다 누릴 몫이다. 죽은 다음에 어찌 될지를 알려 줄 자 어디 있는가!



배움 인간 경험의 결론-하느님의 뜻

인간이 실제 삶 속에서 여러 가지 사건들을 겪으면서 느끼고 체득한 생각과 경험 속에서 바라본 인간의 생애와 세계, 그 너머에 계시는 하느님. 그 하느님이 세상의 주인이시다. 그리고 인간의 삶, 그것은 바로 하느님의 선물이다.

첫째, 인간은 나름대로의 생각이 있다.

인간은 나름대로의 삶을 살아왔다. 자기가 살아온 지난 생애에 비추어 볼 때, 자기 자신이 모든 것에 있어서 완전하지는 않더라도 어느 정도는 유능하고 지혜를 갖추고, 외적으로 보이는 부와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자부하고 있다. 그리고 '내가 노력하면 분명히 내가 누릴 수 있는 행복을 얻는다' '내 인생은 내가 개척할 능력이 있다'라고 생각한다. 특별히 교과서나 다른 어디에서 인생을 가르쳐주지 않았어도 나름대로의 경험이 있고 또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다.

둘째, 모든 것이 헛되다.

그런데도, 그러한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본 결과 어떤 무엇인가를 경험했다고 느끼면서도, 아쉽게도 결국에 가서는 "모든 것이 헛되다"는 것이다. 인간이 지금까지 경험하고 생각해 온 대로 되지 않는 한계에 부딪힐 때마다 모든 것이 헛되다고 느낀다. 공부하는 것도, 일하는 것도, 산다는 것도, 하느님에 대해서 안다는 것도 모든 것이 헛되다라는 것을 생의 순간 순간 깨닫는 경험을 하게 된다.

셋째, 운과 하느님의 섭리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그저 그렇게 사는 거지!" 또는 "적당히 사는 거야!"라고 말해 버린다. 또 어떤 사람들은 인간의 생애와 삶의 문제를 단순한 인과 응보나, 해결책과 해답을 찾지 못하니까 막연하게 운명이나 운세에 돌리고 만다. 특별히 자기 자신의 실수나 잘못이 없는데도 다른 사람에 의해 또는 사회의 변화에 의해 손해를 보거나 실패한 것처럼 될 때, 실망과 좌절 속에 있을 때, 미래에 대한 불안 속에 있을 때 더욱 그렇다.

그러나 신앙의 눈으로 인간과 세상사를 바라본다면 모든 것이 헛된 것이 아니라, 넓은 의미에서 하느님의 섭리 안에서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넷째, 인간을 이끄시는 하느님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생각과 경험, 그 너머에 계신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조종할 수도 완전히 알아들을 수도 없는 분이시지만, 거듭 우리에게 자신을 드러내 보이시고 우리를 위해 당신께서 마련해 주시는 인간의 길로 우리를 이끌어 가신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허탈감과 무상함 그리고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벗어버리고 하느님께 의지하며 하느님께 우리를 내 맡기고 살아 나갈 수 있다. 우리의 삶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선물이다. 우리는 하느님의 섭리 안에 있다.



나눔

1. 위 성서 구절 중 내 마음을 끌어당기는 말씀이 있습니까?

2. 지금 이 순간에 하느님께서는 나를 어떻게 바라보고 계실까요? 또 어떻게 어느 곳으로 이끌고 계시다고 느끼십니까?



약속

하느님께서 나를 어떻게 이끌고 계시는지 어렴풋이나마 느껴진다면, 어떻게 하느님의 이끄심에 응답할 수 있을지 나누어 봅시다.



기도

"우리가 지금은 거울에 비추어 보듯이 희미하게 보지만 그 때에 가서는 얼굴을 맞대고 볼 것입니다. 지금은 내가 불완전하게 알 뿐이지만 그 때에 가서는 하느님께서 나를 아시듯이 나도 완전하게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과 희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언제까지나 남아 있을 것입니다. 이 중에서 가장 위대한 것은 사랑입니다"(1고린 13, 12-13).

차례




7. 내가 태어난 날이여



여기

·세상은 공평합니까?

·정직하고 땀 흘려 일하는 사람의 삶이 어떻습니까?

·왜 착한 사람이 고통을 받습니까?

·나쁜 일을 일삼는 사람의 말로가 어떻습니까?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억울하다고 느낀 적이 있습니까?



말씀 억울한 고통을 당하면서도 끝까지 하느님께 충실했던 욥(욥 1, 8-12. 20-22; (2, 5. 6. 7. 10); 3, 1-3. 11.; 4, 1. 7; 6, 1. 2. 24. 25; 7, 7. 18; 38, 1. 2; 40, 7. 8; 42, 1-3. 10ㄴ.16. 17)

1 8주님께서 사탄에게 "그래, 너는 내 종 욥을 눈여겨보았느냐? 그만큼 온전하고 진실하며 하느님을 두려워하고 악한 일은 거들떠보지 않는 사람은 땅 위에 다시없다." 하고 말씀하시자 9사탄이 주님께 아뢰었다.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느님을 두려워하겠습니까? 10당신께서 친히 그와 그의 집과 그의 소유를 울타리로 감싸 주시지 않으셨습니까? 그가 손으로 하는 모든 일을 축복해 주셨고 그의 가축을 땅 위에 번성하게 해주시지 않으셨습니까? 11이제 손을 들어 그의 모든 소유(사탄의 두 번째 시험 - 2 5뼈와 살을)를 쳐보십시오. 그는 반드시 당신께 면전에서 욕을 할 것입니다." 12주님께서 사탄에게 이르셨다. "좋다! 이제 내가 그의 소유(2 6그)를 모두 네 손에 붙인다. 그러나 그의 몸에(2 6목숨)만은 손을 대지 말아라." 이에 사탄은 주님 앞에서 물러 나왔다.(2 7사탄은 주님 앞에서 물러 나오는 길로 곧 욥을 쳐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심한 부스럼이 나게 하였다).

20욥은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를 깎았다. 그리고는 땅에 엎드려 21입을 열었다. "벌거벗고 세상에 태어난 몸 알몸으로 돌아가리라. 주님께서 주셨던 것, 주님께서 도로 가져가시니 다만 주님의 이름을 찬양할지라."

22이렇게 욥은 이 모든 일을 당하여 죄를 짓지 않았고 하느님을 비난하지도 않았다.(2 10그러나 욥은 "우리가 하느님에게서 좋은 것을 받았는데 나쁜 것이라고 하여 어찌 거절할 수 있단 말이오?" 이렇게 욥은 이 모든 일을 당하여 입술로 죄를 짓지 않았다).

3 1마침내 욥이 (자기를 위로하러 온 친구들 앞에서) 먼저 입을 열어 자기의 생일을 저주하며 2부르짖었다. 3"내가 태어난 날이여, 차라리 사라져 버려라. 사내아이를 배었다고 하던 그 밤도 사라져 버려라. 11내가 어찌하여 모태에서 죽지 아니하였으며 나오면서 숨지지 아니하였는가?"

4 1데만 사람 엘리바즈가 말을 받았다. 7"곰곰이 생각해 보게. 죄없이 망한 이가 어디 있으며 마음을 바로 쓰고 비명에 죽은 이가 어디 있는가?"

6 1욥이 말을 받았다. 2"아, 이 원통한 심정을 저울질하고 이 재앙도 함께 달아 보았으면, 24좀 가르쳐 주게. 내가 무슨 실수라도 했다면 깨우쳐 주게. 나 입을 다물겠네. 25진심으로 하는 말은 힘이 된다는데 자네들은 어찌하여 나무라기만 하는가?

7 7잊지 마십시오. 이 목숨은 한낱 입김일 뿐입니다. 18어찌하여 아침마다 그를 찾으시고 잠시도 쉬지 않고 그에게 시련을 주십니까?"

38 1주님께서 욥에게 폭풍 속에서 대답하셨다. 2"부질없는 말로 나의 뜻을 가리는 자가 누구냐?

40 7대장부답게 허리를 묶고 나서라. 나 이제 물을 터이니, 알거든 대답하여라. 8네가 나의 판결을 뒤엎을 셈이냐? 너의 무죄함을 내세워 나를 죄인으로 몰 작정이냐?"

42 1욥이 주님께 대답하였다. 2"알았습니다. 당신께서는 못하실 일이 없으십니다. 계획하신 일은 무엇이든지 이루십니다. 3부질없는 말로 당신의 뜻을 가리운 자, 그것은 바로 저였습니다. 이 머리로는 헤아릴 수 없는 신비한 일들을 영문도 모르면서 지껄였습니다."

10ㄴ주님께서 욥의 소유를 전보다 두 배나 돌려주었다. 16그 후 욥은 백사십 년을 살면서 사대 손을 보았다. 17욥은 이렇게 수를 다 누리고 늙어서 세상을 떠났다.



배움 인간의 고통과 구원

인간의 고통은 인간이 지은 죄로 인한 벌이 아니라, 인간의 신비이다. 인간은 오히려 고통을 받아들이고 참여함으로써 구원에 이를 수 있다.

첫째, 현실에서 거부되는 상선 벌악 -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느님의 계명에 충실하기만 하면 모두 복을 받고 구원된다(상선 벌악)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계명을 잘 지키고 선하게 사는 사람이 오히려 고생하며 살게 되고, 악한 사람이 오히려 선한 사람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떵떵거리고 살아가는 현실이 종종 벌어진다. 어찌 된 일인가? 이런 부정한 현실이 생기는 원인은 무엇인가?

둘째, 인과 응보의 법칙이 이루어지지 않는 현실-사람들은 인간의 고통이 잘못 살았거나, 죄를 지은 결과라고 생각해 왔다. 예수님 시대까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길을 가다가 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소경을 만나자 제자들은 "'저 사람이 소경으로 태어난 것은 누구의 죄입니까? 자기 죄입니까? 그 부모의 죄입니까?'하고 물었다"(요한 9, 2). 우리도 가끔 끔찍한 일을 당한 사람을 보면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라는 식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그러나 "자기 죄 탓도 아니고 부모의 죄 탓도 아니다. 다만 저 사람에게서 하느님의 놀라운 일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요한 9, 3)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에서 보듯이, 선하게 살면 상을 받고 악하게 살면 벌을 받는다는 전통적인 원인과 결과의 원칙(인과 응보의 법칙)은 무너져 버렸다.

셋째, 성서는 하나의 '커다란 고통에 관한 책'이다. 구약 성서를 보면 자기와 자기 자식들, 특히 맏아들과 외아들의 죽음, 후손의 결핍, 고국에 대한 향수, 주위 환경의 박해와 적대, 고통받는 사람에 대한 조롱과 경멸, 고독과 소외감, 양심의 가책, 왜 악인이 번성하고 의인이 고통을 당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어려움, 친지들과 이웃들의 불성실과 무례함 그리고 자기 동족의 비운 등이 그것이다.

이렇게 인간은 '어떤 종류이든 악을 경험할 때'마다 고통을 겪는다. 구약 성서에서는 고통과 악이 서로 일치되어 있다. 그래서 구약 성서는 고통받고 있는 모든 것을 '악'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한편 그리스도교는 인간이 존재적으로 선하다고 규정한다(이하 회칙 '구원에 이르는 고통' 참조).

넷째, 고통을 겪는 인간은 "왜?"라는 '물음'을 던진다. 사람들은 흔히 바로 세상에서부터 인간에게로 고통이 오고 있는 데도, 인간은 이 물음을 세상을 향해 묻지 않고, 세상의 창조자이며 주인이신 하느님께 묻는다. 구약 성서에서는 인간의 고통을 그 인간이 지은 죄의 벌로 이해해 왔다. 그리고 사람들은 죄를 지은 인간에게 고통을 요구한다.

그러나 선하신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고통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단지 고통을 겪는 것을 허락하실 뿐이라는 사실을 욥기를 통해 잘 알 수 있다(욥의 의로움을 증명하기 위해 사탄의 시험을 허락하심 - 욥 1, 12; 2, 6 참조). 그러므로 한편 고통받는 욥의 모습은 그리스도의 수난을 예고한다.

다섯째, 구원은 악으로부터의 해방이다. 그러므로 인간 세상의 악을 제거하러 오신 그리스도는 인간의 고통을 대신 짊어지신 구원자이시다. "우리는 그가 천벌을 받은 줄로만 알았고 하느님께 매를 맞아 학대받는 줄로만 여겼다. 주님께서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지우셨구나"(이사 53, 4ㄷㄹ. 6ㄷㄹ.).

그러므로 고통을 겪는다는 것은 그리스도께 마음을 연다고 할 수 있으며, 고통을 받아들이는 것은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것이 된다. 그리스도께서 인류의 죄악을 대신 짊어지심으로써 고통스러운 수난을 겪으셨지만,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다는 것을 믿는 이들은 자신들이 겪는 고통을 통해 그리스도의 고통에 참여하고자 한다.

바로 그리스도께서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겪으시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몸으로 채우고 있습니다."(골로 1,24 - 사도 바오로의 고통관)라고 믿고 자기에게 닥친 고통을 끌어안음으로써 자신과 세상의 구원 사업에 참여한다.

여섯째, 인간 고통의 세계는 인간다운 사랑의 세계를 끊임없이 부르고 있다. 고통받는 인간을 발견할 때마다 모든 개인 각자가 고통 속에서 사랑을 증거하도록 '직접 부르심'을 받은 것처럼 느끼고, 그 고통 앞에 '멈춰 서서' 그 부르심에 응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남은 고통을 자신의 몸으로 채우는 삶이다.

천주교의 신앙을 갖는다는 것은 자신에게 내려 주시는 하느님의 은총만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이웃에게 하느님의 복을 빌어주고 더 나아가 이웃의 잘못과 죄로 인한 폐해를 대신 겪고 그 아픔과 고통을 끌어안고 함께하는 것이다.



나눔

1. 위 성서 구절 중 내 마음을 끌어당기는 말씀이 있습니까?

2. 나는 왜 이런 어려움과 억울함을 겪고 있습니까? 내가 겪고 있는 이 고통 속에서 하느님께서는 뭐라고 하십니까?



약속

·어떻게 하면 이 고통을 극복할 수 있습니까?



기도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고통을 당하면서도 기뻐합니다. 고통은 인내를 낳고 인내는 시련을 이겨 내는 끈기를 낳고 그러한 끈기는 희망을 낳는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 희망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속에 하느님의 사랑을 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로마 5, 3-5).


차례




구세사 2

신약 성서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 이 '2부 신약 성서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편을 마치기 전에 신약 성서의 4복음서 중 하나를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노트에 옮겨 쓰면서 예수님을 직접 만나 느끼시도록 하십시오.




7-1. 지금 말씀대로 이루어지기를



여기

·하느님께서는 내가 무엇을 하고 또 어떤 역할을 맡아 주기를 바라십니까? 혹시 사람들의 입을 통해 나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있습니까? 정확치 않더라도 생각하고 느낀 대로 이야기해 봅시다.



말씀 예수님 탄생의 예고(루가 1, 26-38)

1 26엘리사벳이 아기를 가진 지 여섯 달이 되었을 때 하느님께서는 천사 가브리엘을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이라는 동네로 보내시어 27다윗 가문의 요셉이라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를 찾아 가게 하셨다.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였다. 28천사는 마리아의 집으로 들어가 "은총을 가득히 받은 이여, 기뻐하여라. 주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 하고 인사하였다. 29마리아는 몹시 당황하며 도대체 그 인사말이 무슨 뜻일까 하고 곰곰이 생각하였다. 30그러자 천사는 다시 "두려워하지 말라. 마리아, 너는 하느님의 은총을 받았다. 31이제 아기를 가져 아들을 낳을 터이니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32그 아기는 위대한 분이 되어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이라 불릴 것이다. 주 하느님께서 그에게 조상 다윗의 왕위를 주시어 33야곱의 후손을 영원히 다스리는 왕이 되겠고 그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다." 하고 일러주었다. 34이 말을 듣고 마리아가 "이 몸은 처녀입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자 35천사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성령이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감싸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나실 그 거룩한 아기를 하느님의 아들이라 부르게 될 것이다. 36네 친척 엘리사벳을 보아라. 아기를 낳지 못하는 여자라고들 하였지만, 그 늙은 나이에도 아기를 가진 지가 벌써 여섯 달이나 되었다. 37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은 안 되는 것이 없다." 38이 말을 들은 마리아는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천사는 마리아에게서 떠나갔다.

*참고 - 두 번째 읽을 때에는, 옆 사람과 두 명씩 짝을 지어 한 사람은 '가브리엘'천사 역을 또 한 사람은 '마리아'의 역을 맡아 교대로 읽으면서 하느님의 음성처럼 직접 들어봅시다.

세 사람일 경우에는 한 명이 해설자 역할을 해도 좋습니다.



배움 주님 탄생 예고 - '겸손과 순명'

하느님께서는 우리 인간을 당신의 협조자로 선택하신다.

첫째, 하느님께서는 외아들 예수님을 사람으로 세상에 보내고자 하셨다. 그래서 아들을 낳아 줄 어머니가 필요했다. 하느님께서는 신실한 처녀 마리아를 택하셨다. 처음에 마리아는 당황했지만,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였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성령의 힘으로 마리아에게 구세주이신 예수님을 잉태시키셨다. 이렇게 마리아가 겸손하게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임(순명)으로써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둘째, 하느님의 은총은 축복이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고통이 될 수도 있다(예 : 처녀가 아이를 가짐 - 당시의 풍습으로는 처녀가 아이를 가지면 돌로 쳐죽였다). 이것은 은총의 성격이나 관점이 받아들이는 사람 쪽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주시는 하느님 쪽에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은총은 은총을 받는 자기 개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위한 하느님의 선물이다.

그러므로 하느님을 믿고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이들은 현실에서 일어나는 사건, 그것이 비정상적인 사건이라도 그 사건을 통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알려 주시고 또 어떻게 하라고 인도하시는지를 찾아야 한다.



나눔

1. 위 성서 구절 중 내 마음을 끌어당기는 말씀이 있습니까?

2. 내가 '하고 싶은 것'과 내가 '해야 할 것'(사람들이 나에게 원하는 것) 사이에서 나는 어떤 고민을 하고 있습니까? 다음 '내 고민표'를 작성하면서 함께 걱정해 봅시다.


<내 고민표>


항목

항목별 장점

항목별 단점











약속

·주님의 말씀을 내 상황과 처지에 맞춰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약속하고 기도하며 실천합시다.



기도 성모송 풀이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 "은총을 가득히 받은 이여, 기뻐하여라. 주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루가 1, 28 -마리아를 방문한 가브리엘 천사의 인사말).

*여인 중에 복되시며, 태중의 아들 예수님 또한 복되시나이다.

- "모든 여자들 가운데 가장 복되시며 태중의 아드님 또한 복되십니다"(루가 1, 42 - 엘리사벳이 자기를 방문한 마리아를 보며 부른 노래).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해 빌어 주소서.

-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신 마리아께 바치는 교회의 청원 노래

*아멘.

차례




8.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여기

·내 꿈과 희망은 무엇이었습니까? 왜 그 꿈을 가지게 되었습니까?

·무엇이 존경받는 조건입니까?

·구세주(세상을 구원하시는 주님)의 표징은 무엇이겠습니까? 어떤 모습이 구세주의 모습이겠습니까? 당신이 구세주로 세상에 오신다면 어느 신분으로, 어떻게 오시겠습니까?



말씀 구세주의 가난하고 약한 탄생(루가 2, 1-16)

2 1그 무렵에 로마 황제 아우구스토가 온 천하에 호구 조사령을 내렸다. 2이 첫번째 호구 조사를 하던 때 시리아에는 퀴리노라는 사람이 총독으로 있었다. 3그래서 사람들은 등록을 하러 저마다 본고장을 찾아 길을 찾아 떠나게 되었다. 4요셉도 갈릴래아 지방의 나자렛 동네를 떠나 유다 지방에 있는 베들레헴이라는 곳으로 갔다. 베틀레헴은 다윗 왕이 난 고을이며 요셉은 다윗의 후손이었기 때문이다. 5요셉은 자기와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등록하러 갔는데 그때 마리아는 임신 중이었다. 6그들이 베들레헴에 가 머물러 있는 동안 마리아는 달이 차서 7드디어 첫 아들을 낳았다. 여관에는 그들이 머무를 방이 없었기 때문에 아기는 포대기에 싸서 말구유에 눕혔다.

8그 근방 들에는 목자들이 밤을 새워가며 양떼를 지키고 있었다. 9그런데 주님의 영광의 빛이 그들에게 두루 비치면서 주님의 천사가 나타났다. 목자들이 겁에 질려 떠는 것을 보고 10천사는 "두려워 말라. 나는 너희와 모든 백성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러 왔다. 모든 백성들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이다. 11오늘 밤 너희의 구세주께서 다윗의 고을에 나셨다. 그분은 바로 주님이신 그리스도이시다. 12너희는 한 갓난 아이가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것을 보게 될 터인데 그것이 바로 그분을 알아보는 표이다." 하고 말하였다. 13이때 갑자기 수많은 하늘의 군대가 나타나 그 천사와 함께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14"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가 사랑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

15천사들이 목자들을 떠나 하늘로 돌아간 뒤에 목자들은 서로 "어서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알려 주신 그 사실을 보자" 하면서 16곧 달려가 보았더니 마리아와 요셉이 있었고, 과연 그 아기는 구유에 누워 있었다.

주님의 공현(마태 2, 1ㄴ-2. 5. 9-11)

2 1ㄴ그때에 동방에서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2"유다인의 왕으로 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에게 경배하러 왔습니다."하고 말하였다. 5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은 예언서를 보고 이렇게 대답하였다. "유다 베들레헴입니다."

9그때 동방에서 본 그 별이 박사들을 앞서 가다가 마침내 그 아기가 있는 곳 위에 이르러 멈추었다. 10이를 보고 그들은 대단히 기뻐하면서 11그 집에 들어 가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를 보고 엎드려 경배하였다. 그리고 보물 상자를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



배움 세상의 빛으로 오신 아기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구유(먹이통)위에서 포대기에 싸여 가냘프고 나약한 아기의 모습으로 겸손하게 오셨다. 예수님께서는 가난하고 어려움에 허덕이는 인간에게 기쁨을 주시기 위해 더 가난하게 태어나셨다.

첫째,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셨다. 주님께서는 우리처럼 배고프고, 졸립고, 피곤을 느끼셨다. 이렇게 주님께서는 인간이 되심으로써, 하느님으로서 누리시는 모든 권능을 다 포기하셨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가난해지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보다 더 가난하게 태어나신 아기 예수님을 볼 때마다 우리가 부자가 되는 느낌을 받는다("그분은 부유하셨지만 여러분을 위하여 가난하게 되셨습니다. 그분이 가난해지심으로써 여러분은 오히려 부유하게 되었습니다"-2고린 8, 9).

그리고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을 알게 된다. 주님께서는 사랑이라는 빛으로, 가진 것 없고 약한 우리를 환하게 비춰 주신다.

둘째, 구약 성서에서 예언자들은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을 사랑하셔서 구세주를 보내 주실 것이다!"라고 예언하였다.

1) (유혹과 악을 상징하는 뱀에게) "나는 너를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리라. 네 후손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라. 너는 그 발꿈치를 물려고 하다가 도리어 여자의 후손에게 머리를 밟히리라"(창세기 3, 15).

2)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이라 하리라"(이사야 7, 14).

3) "그러나 에브라다 지방 베들레헴아, 너는 비록 유다 부족들 가운데 보잘것없으나 나 대신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 너에게서 난다"(미가 5, 1ㄱ; 마태2, 5).

셋째,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제일 먼저 자신을 드러내셨다(공현).

1) 목자 - 사람들은 양을 치는 목자들이 죄를 짓고 도망친 사람들이거나 남의 물건을 훔치는 도둑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당대 사람들에게 죄인 취급을 받아 사회로부터 버림받고 의심받았던,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다.

2) 동방 박사 - 이방인. 별을 보고 구세주의 탄생을 알아볼 수 있었던 '마음으로 가난한' 사람들이었다(당시 유다인들은 이방인들이 구원에서 제외되었다고 함). 박사였지만 진리이신 주님 앞에 경배드리는 겸손하고 경건한 사람들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가난한 사람들에게 먼저 나타나셨다.

넷째, 동방 박사들이 예수님께 드린 선물.

1) 황금 - 왕에게만 드리는 예물, 하늘과 땅의 왕이신 예수님께 드리는 선물.

2) 유향 - 기도의 상징으로서 하느님께만 드리는 예물.

3) 몰약 - 죽음과 장례 때 쓰는 귀중한 예물, 예수님의 죽으심을 준비하는 예물.

나눔

1. 위 성서 구절 중 내 마음을 끌어당기는 말씀이 있습니까?

2. 어떤 사람들은 가진 것이 많은 사람들을 보면 하느님의 축복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초라한 모습으로 세상에 오신 아기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떻게 살라고 하실까요? 특별히 내 꿈과 희망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무엇을 줄 수 있습니까?



약속

·내가 어떻게 살면 아기 예수님께 선물이 될 수 있을까요? 구체적으로 약속 합시다.



기도 관상 기도

이제 모두 눈을 감고 상상해 봅시다.

밤하늘을 바라보십시오. 그중에 우리가 예수님께로 갈 길을 비춰 주는 큰 별을 찾으십시오.

주님께서 우리를 비춰주시는 그 별빛을 따라 동방 박사와 함께 그 길을 찾아 나가십시오.

사방은 캄캄한데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마구간에서 빛이 비춰 오고 있습니다.

마구간으로 들어가서 성 요셉과 성모 마리아를 만나 인사드리십시오.

"저희는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드리러 왔습니다!"

이제 성 요셉과 성모 마리아가 인도하는 데로 따라가서 아기 예수님을 만나 보십시오.

아기 예수님께서는 포대기에 싸여 말구유에 누워 생긋생긋 웃으면서 우리를 바라보시고는 말씀하십니다.

"어서 와라!"

자 인사하십시오! 그리고 하고 싶은 말을 다 해보십시오 (밑줄 친 부분을 채우십시오).

"예수님! 저 왔습니다!

저는 0 0 0 입니다.






이렇게 주님께서 우리를 따뜻하게 바라보시는 그 눈길에 편안히 잠겨 마음껏 머물러 계시다가 우리 마음의 다짐을 선물로 드리고 나오십시오.

차례





9.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



여기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서, 내가 더 낫다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까? 어떤 일이었는지 함께 나누어 봅시다.

·어떻게 하면 사랑받을 수 있습니까?

·주님을 만나기 위해서, 세례 성사를 받기 위해서 어떤 준비를 하고 있습니까?



말씀 세례 받으시는 예수(마태 3, 1-4. 8. 13-17)

3 1그 무렵에 세례자 요한이 나타나 유다 광야에서 2"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다가 왔다!"하고 선포하였다. 이 사람을 두고 예언자 이사야는 이렇게 말하였다.

3"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가 들린다.

'너희는 그의 길을 닦고 그의 길을 고르게 하여라.'"

4요한은 낙타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두르고 메뚜기와 들꿀을 먹으며 살면서, 세례를 받으러 오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8"너희는 회개했다는 증거를 행실로써 보여라."

13그 즈음에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려고 갈릴래아를 떠나 요르단강으로 요한을 찾아오셨다. 14그러나 요한은 "제가 선생님께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어떻게 선생님께서 저에게 오십니까?"하며 굳이 사양하였다. 15예수께서 요한에게 "지금은 내가 하자는 대로 하여라. 우리가 이렇게 해야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모든 일이 이루어진다"하고 대답하셨다. 그제서야 요한은 예수께서 하자시는대로 하였다. 16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시자 홀연히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성령이 비둘기 모양으로 당신 위에 내려오시는 것이 보였다. 17그때 하늘에서 이런 소리가 들려왔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배움 세례받으시는 주님 - 공생활의 시작

첫째, 아버지의 뜻을 이루심 - 예수님께서는 30세가 되어 '때가 차자' 죄가 없는데도 요한을 찾아가 죄인들 틈에 끼어서 세례를 받으신다.

주님께서는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 기꺼이 선택하시고, 또 아버지는 아들의 선택을 축복해 주신다. 그럼으로써 주님께서는 아버지와의 일치를 확인하게 된다("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

둘째, 회개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하느님께로 돌아가는 것' 그리고 '하느님을 사랑하여 하느님처럼 생각하고, 하느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다.

*참고 - '자비로우신 하느님'과 '사랑의 하느님'을 뵈올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정상적이지 못한 하느님 체험의 보기는 아래와 같다.

1) 당위나 윤리 의식의 하느님 - "착하게 살아라."

2) 감시하시고 심판하시는 하느님 - "다시 죄 지으면 혼난다."

3) (나와 무관한) 무감각한 하느님 - 아무것도 못 느낌(집중하지 못하고 난잡하거나, 모임이나 하느님께 관심이 없을 때 생기는 경우도 있음).

셋째, 요한의 세례와 교회의 세례 성사

세례는 물로 씻는 예절로, 구약에서 거룩한 일을 하기 전에 몸을 씻던 '정결례'와도 연관지어 생각할 수 있다. 요한의 세례는 일종의 침례(온몸을 물속에 전부 담갔다가 나오는 예절)로서 단순히 회개를 위한 세례이다. 그러므로 요한의 세례는 주님을 모시기 위해 준비하는 성격을 띤다고 할 수 있다.

한편 교회의 세례 성사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로써 구원받아 새로이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예절이다. 곧 자신의 죄로부터 죽고 주님 안에서 다시 태어나는 성사이다. 이는 지금까지 자기가 최우선으로 삼고 있던 모든 가치관과 사고 체계 및 행동 양식에서 벗어나, 주님을 최우선으로 삼는 새로운 삶, 인격의 변화를 의미한다(세례 성사를 받는 것을 '영세'라고 한다).



나눔

1. 위 성서 구절 중 내 마음을 끌어당기는 말씀이 있습니까?

2. 어떤 때는 내가 잘못한 것이 아닌데도 오해와 싸움이 벌어지고, 내 마음이 괴롭기까지 합니다. 아무 죄가 없으셨던 예수님께서도 아버지의 뜻이 옳다고 믿어서, 아버지의 뜻대로 죄인들과 함께 세례를 받았습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을 드러낼 만한 회개의 증거는 무엇입니까? 내 생활 안에서 찾아 서로 이야기해 봅시다.



약속

·내가 주님의 사랑을 받는 자녀가 되려면 무엇을, 어떻게 하면 될까요?



기도 그리스도인의 새 생활(로마 12, 1-2).

"그러므로 형제 여러분, 하느님의 자비가 이토록 크시니 나는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여러분 자신을 하느님께서 기쁘게 받아 주실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십시오. 그것이 여러분이 드릴 진정한 예배입니다. 여러분은 이 세상을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하여 새 사람이 되십시오. 이리하여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그분 마음에 들며 무엇이 완전한 것인지를 분간하도록 하십시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차례




9-1.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여기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요?

·하느님의 세상 경영 방식과 인간의 사회 경영 방식이 어떻게 다르다고 생각하십니까?



말씀 광야에서 유혹을 받으신 예수(마태 4, 1-11)

4 1그 뒤에 예수께서 성령의 인도로 광야에 나가 악마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2사십 주야를 단식하시고 나서 몹시 시장하셨을 때에 3유혹하는 자가 와서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거든 이 돌더러 빵이 되라고 해 보시오"하고 말하였다. 4예수께서는 "성서에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리라'고 하지 않았느냐?"하고 대답하셨다. 5그러자 악마는 예수를 거룩한 도시로 데리고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6"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거든 뛰어내려 보시오. 성서에, '하느님이 천사들을 시켜 너를 시중들게 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너의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시리라.'하지 않았소?"하고 말하였다. 7예수께서는 "'주님이신 너의 하느님을 떠보지 말라.'는 말씀도 성서에 있다"하고 대답하셨다. 8악마는 다시 아주 높은 산으로 예수를 데리고 가서 세상의 모든 나라와 그 화려한 모습을 보여 주며 9"당신이 내 앞에 절하면 이 모든 것을 당신에게 주겠소"하고 말하였다. 10그러자 예수께서는 "사탄아, 물러가라! 성서에 '주님이신 너희 하느님을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고 하시지 않았느냐?"하고 대답하셨다. 11마침내 악마는 물러가고 천사들이 와서 예수께 시중들었다.



배움 유혹 - 구원의 방법론 논쟁

첫째, '빵'과 '말씀' - 먹는 것 말고도 인간의 길이 따로 또 있다는 것이다. 자기가 원하고, 먹고, 채우고, 갖추는 것 너머에 우애라든지 사랑, 믿음, 양보, 용서 등이 있다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부자가 되어야만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다. 우선 올바로 사는 방법과 사람들과 함께 사는 방법도 배워야 행복해질 수 있다.

둘째, "성전에서…." - 성전 꼭대기에서 떨어지면 당연히 육체가 파열되어 죽게 된다. 그런데 악마의 말대로 한다면, 그렇게 하는 이는 자기 인간 조건을, 즉 자기에게 주어진 현실을 거부하는 것이요, 자기가 처해진 조건에 넘치는 허황된 것을 누리려 하는 것이요, 하느님을 시험하는 것이 된다.

한편 사랑은 깜짝쇼로도 얻을 수 없고, 의심한다고 확인할 수도 없는 것이다.

셋째, "나에게 절하면…." - 인간이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인간 존엄성과 진실의 가치를 저버리고 악에게 굴복하는 것을 말한다. 불의와의 타협이나 뇌물, 부정 등을 선택하는 경우를 말한다.

하느님만을 섬기라는 것은 하느님의 뜻과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고, 인간을 살리는 구원의 행위)을 최고의 가치 기준으로 삼으라는 것이다.

넷째, 악마는 계속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거든…"하며 유혹한다. 그래서 악마는 인간으로 오셔서 인간의 모든 조건을 다 채우시면서 사랑의 사명을 완수하려는 예수님을 막으려 한다. 악마는 손쉬운, 그러나 옳지 않은 다른 방법을 제시한다.

그러나 악마(유혹하는 자) 앞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앞에 선 의로운 사람'을 강조하시며 유혹을 뿌리쳤다. 그럼으로써 예수님께서는 원죄와 본죄 때문에 파괴된 인간성을 회복시켜 주신다(본죄는 자기가 지은 죄를 말하고, 원죄는 첫 인류의 범죄로 인해 유전되어 인간의 심성 속에서 악으로 기울어지는 성향을 말하기도 한다. 그래서 원죄에는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없게 인간에게 영향을 주는 사회의 구조(사회악, 필요악) 마저도 포함됨).

우리도 언제나 성령의 인도 안에 머물러 있으려고 노력하면 우리에게 떠오른 생각이 유혹인지 아닌지, 또 유혹의 실체를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설사 유혹에 걸려 넘어지더라도 다시 주님께 다가 갈 수 있습니다.

늘 기도하며 성령의 인도를 청하십시오. 그러면 유혹을 바라볼 수 있으며 유혹을 뿌리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눔

1. 위 성서 구절 중 내 마음을 끌어당기는 말씀이 있습니까?

2. 나는 어떤 유혹에 자주 빠집니까? 주님께서는 그때 내가 어떻게 하기를 원하실까요?



약속

·주님의 사랑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바를 실천해 봅시다.



기도

"너 이스라엘아 들어라. 우리의 하느님은 주님이시다. 주님 한 분뿐이시다. 마음을 다 기울이고 정성을 다 바치고 힘을 다 쏟아 너의 하느님 야훼를 사랑하여라. (오늘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말을 마음에 새겨라. 이것을 너희 자손들에게 거듭거듭 들려주어라. 집에서 쉴 때나 길을 갈 때나 자리에 들었을 때나 일어났을 때나 항상 말해 주어라. 네 손에 매어 표를 삼고 이마에 붙여 기호로 삼아라. 문설주와 대문에 써 붙여라)"(신명 6, 4-5(9)).

"사람이 빵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리라."

차례




9-2.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여기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을 무시하거나 열등하게 여긴 적이 있습니까?

·땀 흘려 일하는 것이 하느님의 벌이고 창피한 것인가요?

·예수님께서는 무엇을 하시면서 자라셨습니까?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하러 나서시기 전에 가지셨던 직업은 무엇입니까?



말씀 목공 일을 하신 예수(마태 13, 54-57ㄱ)

13 54(예수께서는) 고향으로 가셔서 회당에서 가르치셨다. 사람들은 놀라며 "저 사람이 저런 지혜와 능력을 어디서 받았을까? 55저 사람은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어머니는 마리아요,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가 아닌가? 56그리고 그의 누이들은 모두 우리 동네 사람들이 아닌가? 그런데 저런 모든 지혜와 능력이 어디서 생겼을까?"하면서 57예수를 도무지 믿으려 하지 않았다.



배움 예수님의 삶 - 인간의 길을 걸으심, '노동의 복음' 선포

예수님께서는 '한 인간이 걸어야 할 길'을 한 인간으로서 채우셨다. 예수님께서는 자라면서 어릴 때는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하셨고, 30세까지 가정에서 양아버지 요셉을 따라 친히 목공 일을 하시면서 성가정을 이루셨다.

첫째, 땀 흘려 일하는 노동은 신성하고 존엄하다.

1) 노동의 신성함 - 노동은 천하거나 벌이 아니다. 예수님께서는 목수인 요셉을 따라 새로운 것을 만드셔서, 하느님의 창조 사업을 계속하고 발전시키셨다.

예수님께서는 친히 일하심으로써 노동을 거룩하게 하셨다.

2) 노동의 존엄성 - 노동을 하는 인간이 하느님의 모상을 가져서 존엄하기 때문에, 노동은 존엄하다.

나무나 물고기는 일할 수 없다.

둘째, 노동으로 하느님과 함께 창조 사업을 계속하는 협조자가 된다.

셋째, 노동으로 한 가족이 된다(땀을 흘리면서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 한 가족이 되고 사회를 이룬다).

넷째, 노동으로 생계를 마련한다(일해서 번 돈으로 먹고산다. 먹고살기 위해 일한다).

다섯째, 노동으로 사회에 봉사한다(좋은 것을 만들어 사람들이 유용하게 쓰도록 한다).

여섯째, 노동으로 자신을 성취한다(기쁨과 보람). 자기를 투여하고 자기를 완성해 나간다.

일곱째, 땀 흘리는 노동으로 '새 하늘 새 땅'(하느님 나라)을 창조해 간다. 하느님 구원 사업의 협조자가 된다.



나눔

1. 위 성서 구절 중 내 마음을 끌어당기는 말씀이 있습니까?

2. 만일 사람들이 '노동은 천하고 힘들어서' 안 한다고 하면, 앞으로 우리 사회는 어떻게 될까요?

아울러 매일 밥하고 설거지하고 집안 청소하는 가사 일을 하느님 창조 사업과 어떻게 연결시킬 수 있습니까?



약속

·노동하는 사람이 존경받고 기쁘게 일할 수 있도록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기도

우리가 오늘 편하게 살 수 있도록 일하고 계시는 분들께 감사의 기도를 드립시다.

"내 아버지께서 언제나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는 것이다"(요한 5, 17).

차례




10.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여기

·지루함을 느낀 적이 있습니까? 주님께서는 왜 나를 세상에 태어나게 하셨을까요? 주님께서는 나에게 어떤 일을 맡기셨다고 생각합니까? 더 나아가 그 일이 내 삶을 투신할 만큼 가치 있고 나의 욕구를 채워줄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기를 바라시겠습니까?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인간의 길'은 어떻게 사는 모습이겠습니까?



말씀 주님의 사명(루가 4, 16. 18-19. 21)

4 16예수께서는 안식일에 나자렛 회당에 들어가 일어서서 이사야 예언서를 읽으셨다.

18"주님의 성령이 나에게 내리셨다.

주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

주께서 나를 보내시어

묶인 사람들에게는 해방을 알려 주고

눈먼 사람들은 보게 하고,

억눌린 사람들에게는 자유를 주며

19주님의 은총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21"이 성서의 말씀이 오늘 너희가 들은 이 자리에서 이루어졌다."



배움 구세주의 사명 - 가난한 이에게 기쁜 소식 선포

예수님께서는 세례를 받으신 후 유혹을 이기시고 공생활을 시작하셨다. 이 때부터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길을 몸소 사심으로써 우리에게 인간의 길을 가르쳐 주셨다.

그 길은 "주님을 받아들이고 복음(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지킴으로써, 자신의 죄와 사회의 굴레(원죄-사회악, 구조악, 필요악)로부터 해방되어 하느님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게되고 구원된다"는 기쁜 소식(복음)이다.

첫째, 하느님의 아들로 성령을 받으신 분, 바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오셨다.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신다.

우리에게도 성령이 오시면, 아니 우리가 주님의 영에 눈뜨고 주님을 갈망하게 되면 성령이 오신다. 성령이 오시면 우리는 우리 죄에서부터 회개하여 주님을 뵙게 되고, 주님께서는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켜 주셔서 우리는 이웃을 해방시키러 가게 된다.

둘째,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 -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와 꼭 같은 인간이 되신 주님은 우리에게 참으로 기쁜 소식이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약한 이들과 외로운 이들과 우는 이들에게 희망과 위로를 주신다(제13과 마태 5장 '참된 행복' 참조).

셋째, 묶인 사람들에게 해방 - 탐욕과 스스로의 죄악 그리고 사회의 굴레 안에 갇혀 버린 사람들에게, 창조 때에 하느님께서 주신 하느님의 모상(모습, 영)과 자유와 행복을 회복시켜 주신다.

넷째, 눈먼 사람들을 보도록 - 사람이 걸어가야 할 길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주님의 빛을 비추어 주신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사물뿐 아니라 그 너머에 계신 하느님의 빛을 바라 볼수 있도록 하신다.

다섯째, 억눌린 사람들에게 자유 - 외적인 제도와 환경의 제약으로 인해 위축되고 손상된 인간성을 회복시켜 그를 억누르고 있던 억압에서 풀어 주신다. 그리고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온전한 자유를 누리도록 하신다.

여섯째, 주님의 은총의 해…. - 하느님께서 바로 '오늘 여기에 우리와 함께'하신다. 그래서 주님의 구원이 시작된다. 주님의 말씀이 그 말씀을 믿고 받아들이는 이들 안에서 이루어진다.



나눔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나자렛 회당에 들어가 일어서서 이사야 예언서를 읽으신 다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성서의 말씀이 오늘 너희가 들은 이 자리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면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우리는 오늘 우리 생활과 우리 주위에서 이 말씀을 어떻게 이룰 수 있는지 함께 생각하고 나누어 봅시다. (다음 여섯가지 중 하나만 나누셔도 좋습니다.)

첫째, "주님의 성령이 나에게 내리셨다." 주님을 가난한 이들에게로 인도하셨던 성령께서 오늘 우리를 예수님께로 인도하고 계십니까?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것을 느낍니까?

둘째, "주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

1) 바로 내가 오늘 예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느낍니까?

2) 꼭 필요한 것인데도 가진 것이 없어서 고생하는 동료나 친구가 있습니까? 누구입니까?

3) 우리는 그에게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셋째, "주께서 나를 보내시어 묶인 사람들에게는 해방을 알려주고"

1) 내 주위에 혹시 "내 물건을 누가 가져가지나 않을까, 손을 대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에 자기 소유물이나, 체제와 제도, 스케줄에 묶여 있는 동료나 이웃이 있습니까?

2) 우리는 그에게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넷째, "눈먼 사람들은 보게 하고,"

1) 자기 욕심에 눈이 멀어 주님이나 이웃을 보지 못하는 동료나 이웃이 있습니까?

2) 우리는 그에게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다섯째, "억눌린 사람들에게는 자유를 주며"

1) 우리 주위에 눌려 지내는 동료나 이웃이 있습니까?

2) 우리는 그에게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여섯째, "주님의 은총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1)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2) 주님의 말씀이 내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까?



기도

"아들은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고 그대로 할뿐이지 무슨 일이나 마음대로 할 수는 없다.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아들도 할 따름이다."(요한 5, 19)

차례




10-1. 자캐오야, 어서 내려오너라



여기

·세상 마지막 날이 오면 죄인들과 부자들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들은 구원의 대상에서 제외되겠습니까?

·내가 얕보고 무시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한편 이 사회에서 얕보고 무시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들)는 누구이며, 어떤 일을 합니까? 왜 무시당합니까?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어떻게 보실까요?



말씀 주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는 자캐오(루가 19, 1-10)

19 1예수께서 예리고에 이르러 거리를 지나가고 계셨다. 2거기에 자캐오라는 돈 많은 세관장이 있었는데 3예수가 어떤 분인지 보려고 애썼으나 키가 작아서 군중에 가리워 볼 수가 없었다. 4그래서 예수께서 지나가시는 길을 앞질러 달려가서 길가에 있는 돌무화과나무 위에 올라갔다. 5예수께서 그곳을 지나시다가 그를 쳐다보시며 "자캐오야, 어서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 하고 말씀하셨다. 6자캐오는 이 말씀을 듣고 얼른 나무에서 내려와 기쁜 마음으로 예수를 자기 집에 모셨다. 7이것을 보고 사람들은 모두 "저 사람이 죄인의 집에 들어가 묵는구나!" 하며 못마땅해 하였다. 8그러나 자캐오는 일어서서 "주님, 저는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렵니다. 그리고 제가 남을 속여먹은 것이 있다면 그 네 갑절은 갚아 주겠습니다" 하고 말씀드렸다. 9예수께서 자캐오를 보시며 "오늘 이 집은 구원을 얻었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10사람의 아들은 잃은 사람들을 찾아 구원하러 온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배움 회개 - 주님의 사랑으로 변화됨 : 다시 태어남

첫째,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사랑하셔서 구원해 주신다. 그러므로 인간의 구원은 '한 인간이 얼마나 율법을 잘 지켰는가'(율법주의 구원관)가 아니라, 하느님의 조건 없는 사랑에 의한 것(예수님의 방문으로 새로 나는 자캐오)임을 알 수 있다.

당시 유다교의 '율법주의 구원관'에 의하면 사람이 구원되려면 하느님께서 내려 주신 율법을 잘 지켜야 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율법을 정확히 지키기 위해 세부 규정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한편 시대가 흘러감에 따라 사람들은 율법에 담겨진 하느님의 사랑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율법과 규정들의 조문 그대로만을 충실히 따르려는 경향이 생겨났다.

이러한 경향은, 경우에 따라서는 율법의 근본 바탕이 되는 하느님의 사랑과 정신을 오히려 가로막는 구조적인 악의 요소를 가지게 되었다. 일례로, 율법에서 사람이 죄를 씻고 새로워지려면 ‘속죄제’를 바쳐야 하는데 그 ‘속죄제’에 바칠 제물을 사는 돈은 깨끗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리가 있는 말이고 바람직한 해설이지만, 진정 '창녀'나 '세리'나 '거지', '도둑' 등은 어떻게 속죄를 할 수 있겠는가!

가난한 사람들은 정작 율법을 잘 모르고, 수월히 지킬 수도 없는 형편에 처해 있다. 결국 율법의 시행 규칙에 따르면 가난한 이들이나 율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죄인이 되며, 또 죄인과 어울리는 사람 역시 같이 죄인이 되므로 결국 종교적으로, 사회적으로 버림받으며 소외된다.

이 율법주의 구원관 대로라면 죄인으로 취급된 이들이 구원을 기대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둘째, 인간은(자캐오) 하느님 사랑을 느끼고 체험하게 되면 변화된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아무리 큰 죄를 지은 사람이라도 주님께로 다시 돌아오려는 사람들을 용서하시고 구원해 주신다.

인간은 이러한 사랑을 받아 지금까지의 사고 방식과 생활 방식을 버리고 주님 안에서 새롭게 다시 살게 된다. 이것이 '회개'다.

셋째, 잃어버린 이들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 : 예수님께서는 흔히 사회에서 '죄인'이라고 취급하는 사람, 그리고 아무도 돌보지 않아 하느님만을 기다려야 하는 사람들을 부르러 오셨다.



나눔

1. 위 성서 구절 중 내 마음을 끌어당기는 말씀이 있습니까?

2. 예수님께서는 자캐오의 집이 구원을 얻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자캐오가 무엇을 하겠다는 마음과 결심을 함으로써 예수님으로부터 구원을 얻었다는 말을 들었습니까? 그리고 자캐오는 어떻게 그런 마음과 결심을 갖게 되었습니까?



약속

·자캐오는 키가 작아서 예수님을 보기 위해 나무에 올라갔습니다. 우리는 지금 예수님을 보고 있습니까? 만일 못 뵙고 있다면 예수님을 보기 위해 어떻게 하겠습니까?



기도

"주님, 저는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렵니다. 그리고 제가 남을 속여먹은 것이 있다면 그 네 갑절은 갚아 주겠습니다."



낱말

세리 예수님 시대의 세리들은 백성들이 한꺼번에 세금으로 낼 돈이 많이 없으니까 자기 돈으로 먼저 로마에 세금을 낸 다음, 그 돈에 이자까지 붙여 백성들에게서 걷기도 하고 또 고리 대금으로 돈(이자)놀이를 하였기 때문에 죄인으로 멸시당했다.

차례




10-2. 소녀야, 어서 일어나거라



여기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또는 하느님께서 계신다)는 것을 느낀 적이 있습니까? 또는 지금 되돌아볼 때, 내 생애 중에 상식적으로나 인간적으로 이해될 수 없었던 '이상하거나 신기한' 사건이 있었습니까?

·도대체 주님께서 말씀하신 하느님 나라는 언제 오리라고 생각하십니까?



말씀 어린이를 축복하신 예수님(루가 18, 15-17)

18 15사람들이 어린 아기들을 예수께 데리고 와서 손을 얹어 축복해 주시기를 청하였다. 이것을 본 제자들이 그들을 나무라자 16예수께서는 어린 아기들을 가까이 오게 하시고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였다. "어린이들이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말고 그대로 두어라. 하느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17잘 들어라. 누구든지 어린이와 같이 순진한 마음으로 하느님 나라를 맞아들이지 않으면 결코 거기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탈리다 쿰'(마르 5, 38-43)

5 38예수께서는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울며불며 떠드는 것을 보시고 39집안으로 들어가셔서 그들에게 "왜 떠들며 울고 있느냐? 그 아이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잠을 자고 있다" 하고 말씀하셨다. 40그들은 코웃음만 쳤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다 내보내신 다음에 아이의 부모와 세 제자만 데리시고 아이가 누워 있는 방에 들어가셨다. 41그리고 아이의 손을 잡고 "탈리다 쿰" 하고 말씀하셨다. 이 말은 "소녀야, 어서 일어나거라"라는 뜻이다. 42그러자 소녀는 곧 일어나서 걸어 다녔다. 소녀의 나이는 열 두 살이었다. 이 광경을 본 사람들은 놀라 마지않았다. 43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이 일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엄하게 이르시고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하셨다.

베짜타 못가의 병자(요한 5, 1-9. 10)

5 1유다인의 명절이 되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 2예루살렘 양의 문 곁에는 히브리말로 베짜타라는 못이 있었고 그 둘레에는 행각 다섯이 서 있었다. 3이 행각에는 소경과 절름발이와 중풍병자 등 수많은 병자들이 누워 있었는데 (그들은 물이 움직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4이따금 주님의 천사가 그 못에 내려와 물을 휘젓곤 하였는데 물이 움직일 때에 맨 먼저 못에 들어가는 사람은 무슨 병이라도 다 나았던 것이다) 5그들 중에는 삼십팔 년이나 앓고 있는 병자도 있었다. 6예수께서 그 사람이 거기 누워 있는 것을 보시고 또 아주 오래 된 병자라는 것을 아시고는 그에게 "낫기를 원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7병자는 "선생님, 그렇지만 저에겐 물이 움직여도 물에 넣어 줄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 혼자 가는 동안에 딴 사람이 먼저 못에 들어갑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8예수께서 "일어나 요를 걷어들고 걸어가거라" 하시자 9그 사람은 어느새 병이 나아서 요를 걷어들고 걸어갔다.

10그 날은 마침 안식일이었다. 그래서 유다인들은 병이 나은 그 사람에게 "오늘은 안식일이니까 요를 들고 가서는 안 된다" 하고 나무랐다.



배움 생명의 주인이신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기적을 통해 "생명의 주인은 하느님이시고, 그 하느님께서 사람을(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실제로 느끼게 해주신다.

또한 이 기적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하느님 나라가 '지금', '여기에' 이미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참되다는 것을 오늘 기적을 통해 드러내신다.

참조: 예수님의 말씀-제12과 "주님의 성령이 나에게 내리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루가 4, 16-21).

첫째,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 - 하느님 나라는 어린이와 같이 순진한 사람들의 것이다. 주님을 뵙기를 갈망하고 주님과 주님의 말씀을 진실로 믿어 실천하는 것이 그 나라를 맞아들이는 것이다.

둘째, 묶인 이들에게 해방을 - 예수님께서는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죽었는데도, 다시 살려 주실 수 있는 생명의 주인이시다. 예수님께서는 그 딸을 다시 살려 주셔서 사람들이 하느님을 찬양할 수 있게 하신다.

셋째, 예수님께서는 기적을 보고 미신적으로나 충동적으로 믿지 못하게 하신다(함구령).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구세주이시기 때문에 믿는 것이 아니라, 기적을 행하는 신비한 사람이기 때문에 따르는 것을 원하지 않으신다(마르 5, 43ㄱ).

넷째, 눈먼 사람은 보게 하고 - 사람의 병을 낫게 하는 것은 착한 일을 하거나 또는 (세상 사람들의 미신적인 풍습에 따라) 이렇게 저렇게 행동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이다.

병이 나면 병원에 가야 하지만, 병을 고치는 것은 의사가 아니라 하느님이시다. 의사는 단지 병이 낫도록 협조하는 것이고, 실제로 병을 낫게 하시는 분은 하느님이시다. 생명은 하느님의 것이기 때문이다(제3과 '십계명' 참조).

다섯째, 이러한 기적들을 보면서 우리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하느님 나라가 이미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여기에' 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지만 이미 시작되었고, 엄연히 현실에 존재하는 하느님 나라!



나눔

1. 위 성서 구절 중 내 마음을 끌어당기는 말씀이 있습니까?

2. 유다인들은 "안식일에 일하면 안 된다"라는 안식일 법을 의식해서 예수님을 주님으로 맞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이 하느님과 하느님의 나라를 기꺼이 맞아들이는 데 방해가 되는 의식이나 선입관이 있습니까?

(유다인들은 자신들 나름대로 하느님에 대해 생각했고, 그 생각의 틀에 맞지 않으면 하느님과 멀다고 간주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자기들 마음에 드는 하느님을 만들어 버렸습니다. 우상 숭배가 된 것입니다.)



약속

·하느님을 믿기 위하여, 또 내 안에 하느님께서 생생이 살아 숨쉬게 하기 위하여 어떻게 하시렵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기도

"낫기를 원하느냐?"


차례




11.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여기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준 적이 있습니까?

·다른 사람이 나를 행복하게 해준 적이 있습니까?

·내가 생각하고, 느끼고 있는 행복(의 기준)은 무엇입니까?



말씀 참된 행복(마태 5, 3-12)

5 3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4슬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5온유한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6옳은 일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만족할 것이다.

7자비를 베푸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8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느님을 뵙게 될 것이다.

9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느님의 아들이 될 것이다.

10옳은 일을 하다가 박해를 받는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11나 때문에 모욕을 당하고 박해를 받으며 터무니없는 말로 갖은 비난을 다 받게 되면 너희는 행복하다. 12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받을 큰상이 하늘에 마련되어 있다. 옛 예언자들도 너희에 앞서 같은 박해를 받았다.



배움 참된 행복(산상 수훈, 진복 팔단)

주님께서는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경제적, 사회적인 성공보다 자신이 처해 있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거기서 하느님의 뜻을 찾고 그 뜻대로 사는 것이 행복이라고 말씀하신다.

더 나아가서는 자신보다 이웃의 아픈 현실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의 행복에 대해서 더 깊이 바라보신다.

첫째,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1) 당하는 가난 안에서 - 가난한 사람들, 괴로워하는 사람들, 하느님만이 도울 수 있는 가련한 처지에 놓인 이들이 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가난을 싫어하고, 가난한 처지를 불행으로 여긴다. 그리고 가난은 하느님으로부터 벌을 받은 것이라고 생각하여, 모두 벗어나려고만 한다. 물론 지금 당장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리는 이는 필요한 것을 얻어야 한다.

그런데 자기에게 닥친 가난한 상황 안에서, 서로의 인격과 인정을 나누며 하느님 나라를 만드는 사람들은 행복하다. "항상 기뻐하십시오. 늘 기도하십시오. 어떤 처지에서든지 감사하십시오"(1데살 5, 16-18).

2) 자발적으로 선택한 가난 안에서 - 자신의 시간과 능력과 가진 것이 자기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이를 위해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하여, 자신의 행복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누고자 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이들은 주님처럼 다른 이들에게 다 줌으로써 가난해진 사람들이다.

또한 하느님만을 의지하고 하느님의 뜻만을 실천하고자 하는,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은 행복하다. 그들은 이미 하느님 나라에 살고 있다.

둘째, "슬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 남에게 나쁜 짓을 할 수가 없어서 자기가 대신 당하거나, 이웃이 나쁜 일이 생겨 괴로워하는 것 때문에 함께 슬퍼하는 이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십자가 밑에 모여와' 이웃을 도와 주지 못한 것을 뉘우치고, 세상의 행복과 구원을 막고 지연시키는 불의와 사리사욕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해, 슬퍼하는 이들은 한없이 자비로우신 주님으로부터 위로를 받을 것이다.

반면에 다른 사람들의 아픔에 함께하지 못하는 이들과, 다른 이들을 위해 살지 못하고 자신의 사리 사욕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항상 불만족하고 불안하며, 어느 누구에게도 아무런 위로를 받지 못할 것이다.

셋째, "온유한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 언제나 동료들을 따뜻하게 맞아 주고, 친절하고 자상하여 편하게 해주는 사람, 기다려 주고 용서해 주며, 기꺼이 함께하는 사람들은 행복하다.

세상의 주인이며 주관자이신 하느님의 힘을 믿어서 "사랑과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행, 진실, 온유 그리고 절제"(성령의 열매 - 갈라 5, 22)를 간직한 채, 겸손한 종이신 그리스도, 주님 곁에 모인 그 사람들은 하느님 나라의 상속자가 될 것이다.

넷째, "옳은 일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만족할 것이다." - 거짓을 싫어하고, 미움을 받더라도 나쁜 일에 함께하지 않으며, 죄악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사랑으로 떠맡는 사람들(*예 - 낙태라는 죄를 조장하기보다 미혼모 보호와 입양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은 행복하다.

"성실하게 바른 인생 길만 펴며, 기가 꺾여 용기를 잃는 일 없이, 끝까지 바른 인생 길을 세상에 펴는"(이사 42, 3-4) 사랑의 투사들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느님의 정의를 드러내는 사람들이며, 하느님을 '목말라'(요한 19, 28)하기에, 하느님께서 그들의 갈증을 채워 주실 것이다.

다섯째, "자비를 베푸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 죄인을 용서하고 죄인의 인간 존엄성을 중시하는 자비로운 사람들은 행복하다.

주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자신을 죽이는 백성들을 바라보면서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루가 23, 34)하고 하느님 아버지께 대신 용서를 청하시며, 십자가상에서 죄를 뉘우치는 다른 죄수에게 "오늘 네가 정녕 나와 함께 낙원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루가 23, 43)라고 하셨다.

이런 주님의 자비를 입어, "너희가 남의 잘못을 용서하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실 것이다"(마태 6, 14)라는 계명을 지키는 사람은 참으로 행복하다.

여섯째,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느님을 뵙게 될 것이다." - 자기 죄가 드러날까 봐 두려워 불안해 하고 떳떳하지 못한 사람이 있다. 자기에게 이익이 되도록 하거나 다른 생각(꿍꿍이 셈)을 하여 믿을 수 없는 이도 있다.

"양심은 인간의 가장 은밀한 안방이요, 인간이 저 혼자서 하느님과 같이 있는 지성소이며, 그 깊은 곳에서 하느님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양심은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함으로써 완성되는 그 법을 놀라운 방법으로 밝혀 준다"(제 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사목 헌장 16항).

일곱째,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느님의 아들이 될 것이다." - 화해를 시키고 일치를 이루기 위해 일하는 사람들은 행복하다. 원수는 하느님이 갚아 주실 것(로마 12, 19 참조)이므로 보복에 대한 생각을 버리고, 정의에 투신하겠다는 소신을 가지고, 평화는 하느님께서 주시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확신하여, "주님, 저를 주님 평화의 도구로 써주소서"라고 기도하는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와 같은 마음으로 일하는 이들은, 하느님의 사랑받는 아들이 될 것이다.

"하늘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가 사랑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루가 2, 14)

여덟째, "옳은 일을 하다가 박해를 받는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 외톨이 친구를 도와 주다 같이 따돌림당하는 사람, 질서를 세우고 회복하기 위해 일하다 누명을 쓰고, 심지어는 의문의 죽음을 당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익명(무명)의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늘 나라의 상속자이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을 따라 하느님의 예언자요, 의인으로서 살다가 죽임을 당하는 주님의 후예들은 주님께서 받으신 부활의 영광을 얻게 될 것이다(버나드 헤링 저, 성찬성 역, '참된 행복', 성바오로 출판사, 1981, 참조).

*"나 때문에 모욕을 당하고 박해를 받으며 터무니없는 말로 갖은 비난을 다 받게 되면 너희는 행복하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받을 큰상이 하늘에 마련되어 있다. 옛 예언자들도 너희에 앞서 같은 박해를 받았다." - 예수님의 말씀대로 실천하다가 오해를 받는 경우나, 위의 여덟 가지 행복을 찾다가 미움을 사고 따돌림을 당하는 경우이다.

그런데 위의 여덟 가지 행복은 바로 예수님께서 걸으신 길이며, 예수님께서 약속해 주시는 새 하늘과 새 땅, 곧 하느님 나라에 대한 희망의 약속이다. 그러므로 참된 행복은 예수님의 행복이며, 주님께서 주시는 행복이다.

이러한 행복을 갈구하는 마음을 우리는 '주님의 기도'에서 발견할 수 있다. 주님께서 바치신 주님의 기도는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기도이며, 유혹과 악에서 헤어나, 주님께로 가서 주님과 함께 행복을 누리도록 인도해 주시기를 청하는 기도이다(마태 6, 7-15).



나눔

이상의 여덟 가지 행복 중에서 가장 내 마음에 드는 것은 어떤 행복입니까? 왜 그 행복이 마음에 듭니까?

(반대의 경우를 생각하면 쉽게 대답할 수 있습니다. 예, 가난한 사람 - 부자는 왜 불행한가? 친구가 없다. 집이나 차 속에 갇혀 지낸다 등.)



약속

·이상의 여덟 가지 행복 중에서 내가 지니고 싶은 행복은 어떤 것입니까? 그 행복을 얻기 위하여 내가 취할 방법은 어느 것입니까?



기도

"나 때문에 모욕을 당하고 박해를 받으며 터무니없는 말로 갖은 비난을 다 받게 되면 너희는 행복하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받을 큰상이 하늘에 마련되어 있다. 옛 예언자들도 너희에 앞서 같은 박해를 받았다."

차례




12. 먼저 하느님의 나라를 구하라



여기

·요즘 사람들 사이에서, 최고로 여기는 것은 무엇입니까?

·내가 살기 위해서 가장 중요하고, 없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첫번째 것은 무엇입니까?

·한편 우리가 꼭 기억하고 실천해야 하는 것인데도, 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그냥 잊어버리고 사는 것은 무엇입니까?



말씀 하느님 나라의 최우선권(마태 6, 25-34)

6 25그러므로 나는 분명히 말한다. 너희는 무엇을 먹고 마시며 살아갈까, 또 몸에는 무엇을 걸칠까 하고 걱정하지 말아라. 목숨이 음식보다 소중하지 않느냐? 또 몸이 옷보다 소중하지 않느냐? 26공중의 새들을 보아라. 그것들은 씨를 뿌리거나 거두거나 곳간에 모아들이지 않아도 하늘에 계신 너희의 아버지께서 먹여 주신다. 너희는 새보다 훨씬 귀하지 않느냐? 27너희 가운데 누가 걱정한다고 목숨을 한 시간인들 더 늘일 수 있겠느냐? 28또 너희는 어찌하여 옷 걱정을 하느냐? 들꽃이 어떻게 자라는가 살펴보아라. 그것들은 수고도 하지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29그러나 온갖 영화를 누린 솔로몬도 이 꽃 한 송이만큼 화려하게 차려 입지 못하였다. 30너희는 어찌하여 그렇게도 믿음이 약하냐? 오늘 피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질 들꽃도 하느님께서 이처럼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야 얼마나 더 잘 입히시겠느냐? 31그러므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또 무엇을 입을까 하고 걱정하지 말라. 32이런 것들은 모두 이방인들이 찾는 것이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잘 알고 계신다. 33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구하여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34그러므로 내일 일은 걱정하지 말아라. 내일 걱정은 내일에 맡겨라. 하루의 괴로움은 그날에 겪는 것만으로 족하다.

겨자씨의 비유(마르 4, 30-32)

4 30예수께서 또 말씀하셨다. "하느님 나라를 무엇에 견주며 무엇으로 비유할 수 있을까? 31그것은 겨자씨 한 알과 같다. 땅에 심을 때에는 세상의 어떤 씨앗보다도 더욱 작은 것이지만 32심어 놓으면 어떤 푸성귀보다도 더 크게 자라고 큰 가지가 뻗어서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된다."



배움 하느님 나라의 최우선권과 그 나라의 건설

우리가 살면서 선택해야 할 제일 첫 자리는 하느님의 뜻이다.

첫째, "먼저 하느님 나라와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구하여라."

"예수님께서는 이럴 때 어떻게 하실까?", 또는 "예수님께서는 내가 어떻게 하기를 원하실까?" 하는 질문을 스스로 던지면서, 하느님의 뜻을 찾고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는 연습을 하자.

여기 단적인 예를 하나 들어보자.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 기업가는 노동자를 고용하여 임금을 지불하고, 노동자는 기업가에게 노동을 제공하여 임금을 받는다.

이때 "자본(돈)이 제일 중요하다." 즉, 자본이 노동보다 우선한다고 생각하는 사람(경제 제일주의의 자본주의자)은 임금을 '상품을 만드는데 드는 비용'으로 본다. 그래서 기업가는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 가능하면 (비용으로 취급되는) 임금을 줄이려고 한다. 또한 기업의 주인은 기업가라고 생각한다.

반면에 "노동이 자본보다 우선한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노동주의자)은 임금을 '노동자가 기업가에게 제공한 노동의 가격'으로 본다. 그러므로 자기의 노동이라는 상품을 가능한 한 비싼 가격에 팔고자 한다. 또한 자기가 일해서 기업이 돈도 벌고 커졌으니까 기업의 주인은 노동자라고 생각한다.

한편 이렇게 여러 가지 다른 생각을 가지고 달리 사는 사람들 속에서 과연 신앙인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신앙인은 임금을 비용으로도 또 가격으로도 보는 동시에 "이마에 땀을 흘려야 낟알을 얻어먹으리라"(창세 3, 19)는 성서의 말씀에 따라 임금을 생계비라고 본다. 즉, 임금은 노동을 하는 기업가와 노동자 모두가 '인간답게 사는 데 필요한 만큼 가져야 할 것'이라고 본다. 또한 '노동을 통해 사회에 봉사한 수고료'요, '그 노동한 사람의 미래를 보장하는 몫'으로 본다.

그러므로 임금을 결정하는 기준은, "그 사람의 가족이 몇이고, 그 집안에 환자가 몇이며, 교육을 받아야 하거나 보호를 받아야 할 사람이 몇인가", 또 "그 사람이 인간답게 사는 데 얼마나 필요한가"를 직업의 종류와 직책보다 우선 생각한 후, 그 기업의 이익 수준을 고려하여 책정하게 된다. 그래서 또한 기업의 주인은 하느님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만드실 때 "인간 모두에게, 좀더 정확히 말하면 인간 어느 누구 하나에게가 아니라 인류 공동체에 자연을 양식으로 주셨고, 다스리도록 맡기셨으며, 그렇게 하신 분은 주인이신 하느님"이시기 때문이다(창세 1, 26-30 참조).

오늘날 이러한 가톨릭 정신이 각종 수당이나 임금 체계 안에 그리고 사회 보장 제도로 스며들어 있다.

둘째, 그러므로 '하느님 나라', 즉 "하느님께서 주인이신 나라", "하느님께서 만들어 우리에게 다스리라고 맡겨 주신 그 하느님의 뜻과 목적이 이루어지는 나라"를 가슴 깊이 새기고, 그대로 살려는 노력을 하자. 그래서 이웃과 자연과의 관계를 통해, 하느님 사랑의 인류 공동체를 형성하자.

셋째, 이렇게 하느님 나라는 예수를 주님으로 믿고, 주님의 말씀을 기쁜 소식(복음)으로 맞아들이며, 박해가 있거나 환난이 있어도, 꾸준히 그리고 성심껏 실천해 나가는 사람들의 나라다.

사람들은 말한다. "자기 하나 변한다고 세상이 변합니까? 구조가 변해야지!" 또는 "예수님의 말씀이 좋은 줄은 알지만, 아무도 실천하지 않는데 나만 혼자 실천하다 보면 나만 뒤떨어지고, 나만 밑지고, 살기조차 어려워진다." 하지만 단순히 세상을 바꾸는 일이 아니라, 세상을 구원할 방법이 주님의 방법 외에 없다는 것을 인간의 역사를 되돌아보면서 발견할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보잘것 없고 어리석어 보이지만, 마치 모래알만한 크기의 겨자씨가 큰 나무를 이루듯이, 자기가 실천할 수 있는 작고 쉬운 말씀부터 하나씩 하나씩 자기의 것으로 삼고 행해 나갈 때, 우리는 인간 모두가 다 함께 기쁘고 복되게 살 수 있는 하느님의 나라를 이룰 수 있다. 거기에는 주님께서 함께하시기 때문이다.



나눔

1. 위 성서 구절 중 내 마음을 끌어당기는 말씀이 있습니까?

2.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구하여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하신 주님의 말씀이 오늘 내게 호소하는 것은 무엇입니까?(내 생활이 어떻게 변화되기를 바라십니까?) 아주 구체적으로 실례를 들어가며 나누어 봅시다.



약속

·겨자씨같이 잘 기억나지 않는 작은 예수님의 말씀을 마음속에 새기고 살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지금 당장 내가 실천할 수 있는 예수님의 말씀이 무엇인지 위 '나눔'에서 다룬 실례와 연결시켜 이야기해 봅시다.



기도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구하여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차례




13. 죽었던 내 아들이 다시 살아 왔다



여기

·집을 떠나서 나 혼자, 내 마음대로 살고 싶은 기분을 가진 때가 있었습니까? 언제 어떤 일이었습니까?

·내 것을 찾음으로써 생기는 기쁨이, 결과적으로 소외감과 불안감을 가져다준 적이 있습니까?



*참고 : 아래 성서 구절을 읽으면서 집나간 작은아들을 기다리는 아버지처럼 하느님 아버지께서 나를 기다리고 계시다는 것을 느끼십시오. 그리고 하느님 아버지가 큰아들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작은아들을 편애하신다는 입장보다는 '아버지의 사랑과 아버지와 함께하는 기쁨'이라는 관점에서 보십시오.

말씀 다시 살게 된 아들-하느님의 사랑(루가 15, 1-3. 11-32)

15 1세리들과 죄인들이 모두 예수의 말씀을 들으려고 모여들었다. 2이것을 본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은 "저 사람은 죄인들을 환영하고 그들과 함께 음식가지 나누고 있구나!"하며 못마땅해 하였다. 3그래서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셨다. 11"어떤 사람이 두 아들을 두었는데 12작은아들이 아버지에게 제몫으로 돌아올 재산을 달라고 청하였다. 그래서 아버지는 재산을 갈라 두 아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13며칠 뒤에 작은아들은 자기 재산을 다 거두어 가지고 먼 고장으로 떠나갔다. 거기서 재산을 마구 뿌리며 방탕한 생활을 하였다. 14그러다가 돈이 떨어졌는데 마침 그 고장에 심한 흉년까지 들어서 그는 알거지가 되고 말았다. 15하는 수 없이 그는 그 고장에 사는 어떤 사람의 집에 가서 더부살이를 하게 되었는데 주인은 그를 농장으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다. 16그는 하도 배가 고파서 돼지가 먹는 쥐엄나무 열매로라도 배를 채워 보려고 했으나 그에게 먹을 것을 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17그제서야 제정신이 든 그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아버지 집에는 양식이 많아서 그 많은 일꾼들이 먹고도 남는데 나는 여기서 굶어 죽게 되었구나! 18어서 아버지께 돌아가,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19이제 저는 감히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할 자격이 없으니 저를 품꾼으로라도 써주십시오 하고 사정해 보리라.' 20마침내 그는 거기를 떠나 자기 아버지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집으로 돌아오는 아들을 멀리서 본 아버지는 측은한 생각이 들어 달려가 아들의 목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었다. 21그러자 아들은 '아버지, 저는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이제 저는 감히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할 자격이 없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2그렇지만 아버지는 하인들을 불러 '어서 제일 좋은 옷을 꺼내어 입히고 가락지를 끼우고 신을 신겨 주어라. 23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내다 잡아라. 먹고 즐기자! 24죽었던 내 아들이 다시 살아왔다. 잃었던 아들을 다시 찾았다'하고 말했다. 그래서 성대한 잔치가 벌어졌다.

25밭에 나가 있던 큰아들이 돌아오다가 집 가까이에서 음악 소리와 춤추며 떠드는 소리를 듣고 26하인 하나를 불러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다. 27하인이 "아우님이 돌아왔습니다. 그분이 무사히 돌아 오셨다고 주인께서 살진 송아지를 잡게 하셨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8큰아들은 화가 나서 집에 들어가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버지가 나와서 달랬으나 29그는 아버지에게 "아버지, 저는 이렇게 여러 해 동안 아버지를 위해서 종이나 다름없이 일을 하며 아버지의 명령을 어긴 일이 한번도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저에게는 친구들과 즐기라고 염소 새끼 한 마리 주시지 않으시더니 30창녀들한테 빠져서 아버지의 재산을 다 날려 버린 동생이 돌아오니까 그 아이를 위해서는 살진 송아지까지 잡아 주시다니요!" 하고 투덜거렸다. 31이 말을 듣고 아버지는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모두 네 것이 아니냐? 32그런데 네 동생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왔으니 잃었던 사람을 되찾은 셈이다. 그러니 이 기쁜 날을 어떻게 즐기지 않겠느냐?" 하고 말하였다.

*이 과는 '나눔' 없이, 성체 조배에 관한 간단한 안내만 받고 바로 성당에 올라가 성서 본문을 읽으며 하느님의 사랑을 직접 느끼는 것이 더 좋을 수 있습니다.

'나눔'은 수업 후에 각자가 글월로 정리할 수도 있습니다.



배움 하느님의 무한히 자비로우신 사랑

우리 행복의 근거는 하느님이시다.

첫째, 어떤 사람들은 "하느님께서 인간의 자유를 왜 간섭하시는가?"하고 묻기도 한다. 그러면서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의 근거는 인간 자신에게서 온다.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자기가 원하는 것을 찾을 때 행복해진다. 그러므로 빨리 하느님의 간섭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라고 한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만일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서로 사랑하면서, 자기 아기를 남자나 여자로 결정할 수 있는가? "낳고 나서 보니 남자아이요, 여자아이더라!"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또한 인간이 인간의 존재 근거라면 부모가 자기 자식을 때리든, 돈을 벌어 오도록 강요하든, 굶기든, 죽이든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둘째, 한편 오늘 내가 찾아 얻은 행복이, 나와 함께 동시대를 사는 다른 이들에게도 행복일 수 있는가? 나의 행복이 남의 불행을 전제로, 또는 남의 불행을 밟고 일어서는 것이라면 정말 행복할 수 있는가?

또 오늘의 행복이, 나에게 내일은 불행으로 다가오지는 않는가?

그것은 "이기주의" 또는 "비인간적인" 모습이다.

셋째, 사람은 하느님을 떠나서 자기 마음대로 할 때 행복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 안에서 하느님과 함께함으로써만 온전한 기쁨과 행복을 누릴 수 있다. 창세기 2장과 3장을 보면, 첫사람 아담과 하와는 자기들이 원하는 바(하느님과 같아짐)를 이루려고 했지만(선과 악의 나무 열매를 따먹음), 결국 자기들이 원하는 것을 이루어 행복을 누리기보다는 오히려 수치를 느꼈고, 지금까지 누리던 행복마저 잃어버렸다(낙원에서 추방됨).

넷째, 그러므로 우리가 아무리 큰 죄를 지어도, 하느님께 돌아가고자만 한다면 언제든지 받아 주시고, 또 그렇게 인간이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깊이 간직하고 기억합시다. 그래서 자기 자신에 대한 실망감과 수치로 좌절하거나 삶을 포기하지 말고, 믿음과 확신을 갖고 꼭 되돌아가, 하느님께서 주시는 행복 안에서 다시 삽시다.



나눔

1. 작은아들은 자기 혼자서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은 것을 다 하고 살기를 원했지만, 자기가 생각하고 계획한 대로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그 원인은 무엇일까요? 또한 그의 가족은 어떠했습니까? 내 삶의 경험과 연결시켜 판단해 봅시다.

2. 이 복음에 나오는 아버지는 하느님의 사랑을 보여 주고 계십니다. 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하느님 아버지께 어떤 생각이나 느낌이 듭니까?

3.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모두 네 것이 아니냐?" 하느님께서는 우리 각자에게 당신의 가장 귀한 생명을 비롯하여 기쁨, 사랑, 평화, 온유, 화해, 용서 등을 주셨습니다. 나는 나의 삶을, 나에게 주신 하느님의 선물로 받아들이며 살고 있습니까? 그리고 좋은 것 외에 아픔, 슬픔, 괴로움조차도 선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약속

·어떻게 하면 내가 주님의 사랑 안에서 살 수 있겠습니까?



기도

"죽었던 내 아들이 다시 살아왔다. 잃었던 아들을 다시 찾았다."



쉼터1

사람은 선물이다.

사랑이 자기를 향할 때 미움이요, 죽음이다.

사랑이 남을 향할 때 비로소 사랑이 되며 생명이다.



쉼터2

·'집 나간 작은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아버지의 모습'이나, '작은아들을 반기는 아버지의 모습' 또는 '큰아들을 타이르는 아버지의 모습'을 마음속으로 그리며 그 사랑 안에 잠시 머물러 봅시다.

그 느낌을 (그림이나) 글로 표현해 봅시다.

차례




14. 나를 따르라



여기

·나를 주님께로 인도한 것은 무엇입니까?

·지금까지 교리를 받으면서, 고민하고 부담스러운 것은 무엇입니까?

·주님을 믿으면 주님의 부르심을 듣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왜 우리를 부르시며,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신다고 생각하십니까?



말씀 열두 사도(마르 1, 16-18; 3, 13-19)

1 16예수께서 갈릴래아 호수에서 그물을 던지고 있는 어부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아를 보시고 17"나를 따라 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하고 말씀하셨다. 18그들은 곧 그물을 버리고 예수를 따라갔다.

3 13예수께서 산에 올라가 마음에 두셨던 사람들을 부르셨다. 그들이 예수께 가까이 왔을 때에 14예수께서는 열둘을 뽑아 사도로 삼으시고 당신 곁에 있게 하셨다. 이것은 그들을 보내어 말씀을 전하게 하시고, 15마귀를 쫓아내는 권한을 주시려는 것이었다. 16이렇게 뽑으신 열두 사도는 베드로라는 이름을 붙여주신 시몬과 17천둥의 아들이라는 뜻으로 둘 다 보아네르게스라고 이름을 붙여주신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 18그리고 안드레아, 필립보, 바르톨로메오, 마태오, 토마,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타대오, 혁명당원 시몬, 19그리고 예수를 팔아 넘긴 가리옷 사람 유다이다.

예수를 따르려면(루가 9, 23-25)

9 23"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매일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24제 목숨을 살리려고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살 것이다. 25사람이 온 세상을 얻는다 해도 제 목숨을 잃거나 망해 버린다면 무슨 이익이 있겠느냐?"

섬기는 자가 다스린다(마태 20, 26ㄴ-28)

20 26예수께서는 "너희 사이에서 높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남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27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종이 되어야 한다. 28사실은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목숨을 바쳐 몸값을 치르러 온 것이다"하셨다.



배움 소명과 응답 - 평신도 사도직

첫째,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사람 낚는 어부'로 부르신다.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고 싶고, 예수님께서 나의 소원을 들어주실 것이라고 기대하고, 나를 의지할 만큼 사랑하고 또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것을 느끼게 되면, 우리도 '사람 낚는 어부'가 되어 이웃들에게 예수님의 기쁜 소식을 전할 수 있다.

둘째,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1) 당신 곁에 있게 하려고,

2) 그들을 세상 사람들에게 보내어 말씀을 전하게 하고,

3) 마귀를 쫓아내는 권한을 주려고 부르신다.

그래서 사람들을 생생이 살게 하라는 주님의 사명을 주신다.

셋째, 주님을 따르려면,

1) 자기를 버리고

2) 매일 자기 십자가를 지고,

3) 주님과 함께, 주님께서 가시는 길을 따라가야 한다.

넷째,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명령하시고 시키시기보다 사랑해 주시고 대신 죽어서 사람들을 구원하시기까지 섬기러 오셨다.

그러므로 사도는, 제자로서 주님을 섬기는 그 사랑으로 사람들을 섬기는 사랑으로 산다. 우리가 주님의 사랑을 받듯이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



나눔

1. 위 성서 구절 중 내 마음을 끌어당기는 말씀이 있습니까?

2. 예수님께서 부르신 제자들은 어부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라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나를 부르실 때는, 무엇이 되게 하겠다고 하시겠습니까? 나는 오늘 내 생활을 통해 어떻게 사람들을 주님께로 인도할 수 있겠습니까?


약속

·주님을 따르기 위해 내가 버릴 것은 무엇이며, 짊어지고 걸어가야 할 내 십자가는 무엇입니까? (또는 누구를 섬겨야 하고, 어떻게 섬길 것인지 약속합시다.)



기도 사랑(1고린 13, 1-13)

"13 1내가 이제 가장 좋은 길을 여러분에게 보여 드리겠습니다. 내가 인간의 여러 언어를 말하고 천사의 말까지 한다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나는 울리는 징과 요란한 꽹과리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2내가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 전할 수 있다 하더라도, 온갖 신비를 환히 꿰뚫어 보고 모든 지식을 가졌다 하더라도, 산을 옮길 만한 완전한 믿음을 가졌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3내가 비록 모든 재산을 남에게 나누어준다 하더라도 또 내가 남을 위하여 불속에 뛰어든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모두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4사랑은 오래 참습니다.

사랑은 친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자랑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교만하지 않습니다.

5사랑은 무례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사욕을 품지 않습니다.

사랑은 성을 내지 않습니다.

사랑은 앙심을 품지 않습니다.

6사랑은 불의를 보고 기뻐하지 아니하고

진리를 보고 기뻐합니다.

7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주고

모든 것을 믿고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

8사랑은 가실 줄을 모릅니다.

말씀을 받아 전하는 특권도 사라지고 이상한 언어를 말하는 능력도 끊어지고 지식도 사라질 것입니다.

9우리가 아는 것도 불완전하고 말씀을 받아 전하는 것도 불완전하지만

10완전한 것이 오면 불완전한 것은 사라집니다.

11내가 어렸을 때에는 어린이의 말을 하고 어린이의 생각을 하고 어린이의 판단을 했습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서는 어렸을 때의 것들을 버렸습니다.

12우리가 지금은 거울에 비추어 보듯이 희미하게 보지만 그 때에 가서는 얼굴을 맞대고 볼 것입니다. 지금은 내가 불완전하게 알뿐이지만 그 때에 가서는 하느님께서 나를 아시듯이 나도 완전하게 알게 될 것입니다.

13그러므로 믿음과 희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언제까지나 남아 있을 것입니다. 이 중에서 가장 위대한 것은 사랑입니다."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

차례




14-1. 나는 생명의 빵이다



여기

·우리가 사는 데 없어서는 안될 것은 무엇입니까? 만일 주님께 청할 수 있는 것이 하나뿐이라면, 무엇을 청하시겠습니까?

·또는 정반대로 오늘 나와 내가 사는 사회 안에서, 주님께 아뢰고 나의 작은 정성이라도 봉헌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까?



말씀 이스라엘 백성들을 몸소 먹이시는 하느님(출애 16, 4. 31.35)

16 4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이제 내가 하늘에서 너희에게 먹을 것을 내려 줄 터이니, 백성들은 날마다 나가서 하루 먹을 것만 거두어들이게 하여라." 31이스라엘 사람들은 이것을 만나라고 이름지어 불렀다. 그것은 고수 씨같이 희었고 맛은 벌꿀 과자 같았다. 35이스라엘 백성은 정착지에 이르기까지 사십 년 동안 만나를 먹었다. 곧 가나안 땅 접경에 이르기까지 만나를 먹었다.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요한 6, 5-15)

6 5예수께서는 큰 군중이 자기에게 몰려오는 것을 보시고 필립보에게 "이 사람들을 다 먹일 만한 빵을 우리가 어디서 사올 수 있겠느냐?" 하고 물으셨다. 6이것은 단지 필립보의 속을 떠보려고 하신 말씀이었고 예수께서는 하실 일을 이미 마음속에 작정하고 계셨던 것이다. 7필립보는 "이 사람들에게 빵을 조금씩이라도 먹이자면 이백 데나리온어치를 사온다 해도 모자라겠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8제자 중의 하나이며 시몬 베드로의 동생인 안드레아는 9"여기 웬 아이가 보 리빵 다섯 개와 작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습니다마는 이렇게 많은 사람에게 그것이 무슨 소용이 되겠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10예수께서 그들에게 "사람들을 모두 앉혀라." 하고 분부하셨다. 마침 그곳에는 풀이 많았는데 거기에 앉은 사람은 남자만 약 오천 명이나 되었다. 11그때 예수께서는 손에 빵을 드시고 감사의 기도를 올리신 다음 거기에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달라는 대로 나누어 주시고 다시 물고기도 그와 같이 하여 나누어 주셨다. 12사람들이 모두 배불리 먹고 난 뒤에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조금도 버리지 말고 남은 조각을 다 모아 들여라" 하고 이르셨다. 13그래서 보리 빵 다섯 개를 먹고 남은 부스러기를 제자들이 모았더니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찼다. 14예수께서 베푸신 기적을 보고 사람들은 "이분이야말로 세상에 오시기로 된 예언자이시다" 하고 저마다 말하였다. 15예수께서는 그들이 달려들어 억지로라도 왕으로 모시려는 낌새를 알아채시고 혼자서 다시 산으로 피해 가셨다.

생명의 빵(요한 6, 54-65. 66)

6 54"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누릴 것이며 내가 마지막 날에 그를 살릴 것이다. 55내 살은 참된 양식이며 내 피는 참된 음료이기 때문이다. 56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서 살고 나도 그 안에서 산다. 57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고 내가 아버지 힘으로 사는 것과 같이 나를 먹는 사람도 나의 힘으로 살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 이 빵은 너희의 조상들이 먹고도 결국 죽어 간 그런 빵이 아니다.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이다."

66"이때부터 많은 제자들이 예수를 버리고 물러갔으며 더 이상 따라 다니지 않았다."



배움 생명의 빵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몸을 우리에게 주셔서 우리를 살리신다.

첫째, 주 하느님께서는 하느님을 섬기러 이집트의 노예살이에서 탈출한 유다 민족을, 광야에서 먹여살리셨다. 유다 민족은 이 '만나'라는 양식을 먹으면서, 하느님을 보다 더 깊이 알게 되었고, 하느님을 온전한 주님으로 섬길 수 있게 되었다.

둘째, 예수님께서는 자기에게 몰려오는 큰 군중을 보시고, "양식을 먹여야겠다"라고 생각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을 지극히 사랑하시는 아버지 하느님의 자비를 지니신 주님이시다.

셋째, 한 아이가 가진 보리 빵 다섯 개와 작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시고도 오천 명을 먹이시는 주님께서는, 우리의 아주 작은 정성과 노력을 기꺼이 받아 주시고, 이를 통해 당신의 일을 이루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필립보처럼 부끄러워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주님께 우리의 상황을 알려 드리고 미소한 노력이라도 봉헌하여, 주님께서 우리의 삶 속에 임하시도록 하여야 한다.

넷째, 또한 예수님의 양식을 나누어 주는 이는 바로 우리 자신이고,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가난한 이들을 맡기셔서, 우리가 그들을 돌보고, 그들과 나누기 위해 예수님께 말씀드리고 청하도록 하셨다.

다섯째, 주님께서는 또 주님께 오지 않은 이들의 양식마저도 마련해 주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께서 주시는 것을 더욱더 이웃과 잘 나눌 수 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거듭 채워 주시기 때문이다.

여섯째, 주님께서는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당신 자신'(생명 - 말씀, 몸)을 우리 죄를 씻을 속죄 제물로 내어 주시고, 오늘도 계속해서 우리 삶의 양식으로 내주고 계신다.

일곱째, 우리는 주님께서 주시는 맛있고 영양가 있는 양식('주님의 말씀'과 '그리스도의 몸' : 성체)을 우리 삶의 참 양식으로 받아먹음으로써, 주님의 사람이 되고, 주님으로부터 힘을 얻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된다.



나눔

1. 위 성서 구절 중 내 마음을 끌어당기는 말씀이 있습니까?

2. 주님의 말씀을 내 생명의 양식으로 삼고 있습니까? 최근 내 삶에 힘을 더해 준 주님의 말씀은 무엇입니까?



약속

·세상 사람들을 구하시기 위해 먹을 것까지 마련해 주시는 주님을 기억하면서, 주님께 보답하는 의미로 나는 무엇을 형제, 자매들에게 나누렵니까?



기도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누릴 것이며 나는 마지막 날에 그들을 모두 살릴 것이다. 내 살은 참된 양식이며 내 피는 참된 음료이기 때문이다."

차례




14-2. 나다, 안심하여라



여기

·아래 성서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서 함께 배에 오르시자 바람이 그쳤다"고 합니다. 혹시 내게도 주님께서 함께해 주심으로써 풀리기를 바라는 문제가 있습니까?



말씀 물위를 걸으신 기적(마태 14, 22-33)

14 22예수께서 곧 제자들을 재촉하여 배를 태워 건너편으로 먼저 가게 하시고 그동안에 군중을 돌려 보내셨다. 23군중을 보내신 뒤에 조용히 기도하시려고 산으로 올라 가셔서 날이 이미 저물었는데도 거기에 혼자 계셨다. 24그 동안에 배는 육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 역풍을 만나 풍랑에 시달리고 있었다. 25새벽 네 시쯤 되어 예수께서 물위를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셨다. 26예수께서 물위를 걸어오시는 것을 본 제자들은 겁에 질려 엉겁결에 "유령이다!"하며 소리를 질렀다. 27예수께서 제자들을 향하여 "나다, 안심하여라. 겁낼 것 없다"하고 말씀하셨다. 28베드로가 예수께 "주님이십니까? 그러시다면 저더러 물위로 걸어오라고 하십시오."하고 소리쳤다. 29예수께서 "오너라"하시자 베드로는 배에서 내려 물위를 밟고 그에게로 걸어갔다. 30그러다가 거센 바람을 보자 그만 무서운 생각이 들어 물에 빠져 들게 되었다. 그는 "주님, 살려 주십시오!"하고 비명을 질렀다. 31예수께서 곧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왜 의심을 품었느냐? 그렇게도 믿음이 약하냐?"하고 말씀하셨다. 32그리고 함께 배에 오르시자 바람이 그쳤다. 33배 안에 있던 사람들이 그 앞에 엎드려 절하며 "주님은 참으로 하느님의 아들이십니다"하고 말하였다.



배움 주님!-자연을 지배하시고 우리를 구하시는 주님

첫째, 제자들이 주님과 떨어져 있을 때, 제자들이 타고 있던 배가 위험해졌다. 제자들은 이런 저런 방법으로 손을 다 써 보았지만, 그 혼란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주님께서 함께하심으로써 비로소 그 혼란에서 헤어날 수 있었다.

1) 혼란은 주님과 떨어져 있을 때 생긴다.

2) 주님께서는 우리가 혼란 중에 있음을 다 아신다.

3) 제자들은 주님을 찾지 않고 자신들끼리 해결하려 하였고, 주님께서 오셨지만 주님을 '유령'으로 판단하고 맞아들이지 않았다.

4) 제자들이 예수님을 주님으로 맞아들일 때 다시 살게 된다.

5) 제자들이 주님과 함께할 때 비로소 혼란은 없어진다.

둘째, "나다(안심하여라. 겁낼 것 없다)."

이 표현은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찾아오실 때, 백성들에게 자신을 알리시는 표현이다. "나다"라는 이 표현을,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당신의 이름을 가르쳐 주실 때 사용하셨다.(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나는 곧 나다" 하고 대답하시고, 이어서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분은 나다라고 하시는 그분이다' 하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일러라."-출애 3, 14)

셋째, 성서에서 배는 '주님을 믿는 이들의 모임' 곧 '교회'를 상징한다. 주님을 믿는 교회의 주인은 주님이시다. 그런데 주님을 믿고 또 주님의 이름으로 모였지만, 나 개인 생활 안에서나 교회 안에서, 주님을 온전히 그리고 올바르게 모시지 못해, 개인적으로나 공동체적으로 혼란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때 눈곱만한 크기라도, 주님을 발견할 수 있게 되면, 주님께 매달리자. 그리고 따르자.

설사 베드로처럼 물에 빠진다 하더라도, 다시 주님을 찾으십시오. 실망하거나 좌절하여, 포기하지 말고 주님을 찾으십시오. 주님께서는 우리의 어려움을 다 알고 계시고, 우리를 구하러 오고 계십니다. 주님을 뵈옵고 주님을 모십시오. 주님을 내 삶의 주인으로 모시기 위해 나를 주님께 허락하십시오.



나눔

1. 위 성서 구절 중 내 마음을 끌어당기는 말씀이 있습니까?

2. 주님께서 함께해 주시기를 원합니까? 주님께서 오시기를 간절히 바랍니까?



약속

·지금 나와 우리 공동체의 일 속에 주님을 모십시다. 주님께서 나와 함께하셔서 우리를 구하실 수 있도록 주님을 모십시다.



기도

"나다, 안심하여라. 겁낼 것 없다."

관상 기도

성당이나 조용하고 한적한 곳에서 위 구절을 묵상 관상하며, 내 손을 잡아 구해 주시는 주님을 체험해 봅시다.

차례




15.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여기

·주님께 간절히 기도한 적이 있습니까? 언제 무슨 일이었습니까? 그리고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 기도를 들어주셨습니까?

·어떤 세상을 바라고 있습니까?

·지금 무엇을 바라고 있습니까?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 일이 없던 것으로 하면 안될까요? 그러면 무엇을 얼마만큼 손해봅니까? 그것이 내가 마음 편히 사는 것보다 큰가요?

·내가 그 사실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과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또 마음속에 간직한 채 마음 아파하는 것과 잊어버리고 속 편히 사는 것과 어느 쪽이 행복합니까?



말씀 주님의 기도(마태 6, 7-15)

6 7"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방인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말아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해야만 하느님께서 들어주시는 줄 안다. 8그러니 그들을 본받지 말아라. 너희의 아버지께서는 구하기도 전에 벌써 너희에게 필요한 것을 알고 계신다. 9그러므로 이렇게 기도하여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온 세상이 아버지를 하느님으로 받들게 하시며

10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11오늘 저희에게 필요한 양식을 주시고

12저희가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하듯이

저희의 잘못을 용서하시고

13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14너희가 남의 잘못을 용서하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실 것이다. 15그러나 너희가 남의 잘못을 용서하지 않으면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잘못을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



배움

우리는 '하느님 아버지'와 '우리가 사는 세상' 그리고 '이웃'을 동시에 보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가 하느님께 원하는 것'과 동시에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원하는 것'도 보아야 한다.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빌고 또 우리가 그 뜻을 이룰 수 있도록 빌어야겠다.

예수님께서 살아 계시던 세상은 로마의 식민지였고, 사람들은 메시아가 오기를 고대하고 있었다(제16과 '예수님 수난의 배경' 참조).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아무리 참된 인간의 길과 가치를 이야기하고 기적을 베풀어도,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오히려 예수님을 부담스러워하고, 심지어 죽이려는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다. 그 참담한 세상에서, 주님께서는 아버지께 기도하신다.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져, 자신들이 하는 짓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저들을 용서하시고 구원해 주십시오!"

주님의 기도 해설

(레오나르도 보프 저, 이정희 역, '주의 기도', 한국신학연구소, 1986. 참조)

첫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 하느님께서 땅에 계시다면 사람들은 하느님을 자기 마음대로 조종하려고 할 것이다. '하느님은 사람이 조종할 수 없는 분이시다'라는 의미로 "하늘에 계신다"라고 썼다. 사람들은 어렵고 힘들 때마다, 누구도 조종할 수 없는 최고의 거룩하고 완전하신 분, 그 하느님을 체험해 왔다.

그러나 한편 그 하느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지켜주신다. 하느님께서는 하늘에 계시지만, 동시에 그분은 우리와 함께 계시고(임마누엘), 우리를 돌보시는 우리의 아버지이시다.

*"온 세상이 아버지를 하느님으로 받들게 하시며" - 세상 사람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을 괴롭히고 이용한다. 그런 세상이 변하려면 온 세상 사람들이 하늘 무서운 줄 알고, 하느님을 주님으로 믿을 때 가능하다. 이것이 유일한 희망이며, 우리가 자기를 버리고 이웃을 사랑할 수 있게 한다.

둘째,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 하느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가르쳐 주셨다는 것은, 곧 하느님께서 자신을 드러내셨다는 것을 뜻한다(출애 3장 참조).

그러므로 인간 사회 안에서 하느님과 하느님의 뜻을 거스를 수 없다는 사실이 사람들 모두에게 명확하게 드러나고, 심어지기를 기대하는 희망이며 요청이다.

셋째,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 아버지의 나라는 장소나 영역이 아닌, 하느님께서 함께하심과 드러나심 그리고 지배하심을 뜻한다. 그러므로 "이 세상을 하느님께서 지배하시옵소서! 이 세상에 당신의 권능을 드러내소서!"하는 기도이며, 동시에 사람들에게 올바르게 살라는 요청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종말의 심판을 예고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아버지의 나라는 사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올 것이기 때문이다.

넷째,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 미움과 복수 그리고 절망의 유혹을 극복하고, 용기를 내어 하느님께 자신을 바치겠다는 다짐이며, 더 나아가 사람은 자신의 악한 뜻에도 불구하고, 하느님 사랑의 힘을 믿음으로써, 하느님의 자비가 인간의 악의를 극복(변화)시켜 준다는 확신을 표현한 것이다.

다섯째, "오늘 저희에게 필요한 양식을 주시고" - 오늘도 세상에서 먹을 것이 없어서 굶주리고, 올바르게 사는 방법을 몰라서 목말라 하는 이들에게 물적, 영적 양식을 주시고, 그 양식을 받아먹음으로써 저희가 하느님의 자녀 되게 하여 주시고, 또한 저희가 저희에게 주어진 양식을 이웃과 나누게 해주십시오.

여섯째, "저희가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하듯이 저희의 잘못을 용서하시고" - 나를 괴롭히는 사람의 악을 용서하시고, 저는 절대로 남에게 그런 짓을 하지 않게 해 주십시오. 또한 상대의 마음속에 나를 괴롭히도록 하는 마음을 불어넣고 또 내 마음속에 나를 괴롭히는 상대를 미워하고 복수하고자 하는 마음을 불어넣는, 우리 마음속에 숨어 있는 공통의 악으로부터 헤어나 자유롭게 살 수 있도록 용서의 은총을 주십시오.

그리고 저희들의 잘못과 가끔 저희에게 위로를 청하는 이들이나, 도움을 청하는 이들을 못 본 체하고 지나친 저희들의 빚을 용서해 주시고 청산해 주십시오.

일곱째,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확실한 미래의 불안한 상황 속에서 개인적으로나 공동체적으로 인간이 인간이기 때문에 겪는다는 자신의 한계를 거부하며, 육을 따라 살지(갈라 5, 19-21) 아니하고 영을 따라 살기(갈라 5, 22-23)를 바라는 기도이다.

"사람이 시험을 당하는 것은 각각 자기 욕심에 이끌려 꾐에 빠지기 때문입니다."(야고 1, 13-14 참조).

여덟째, "악에서 구하소서." - '세상의 죄'(구조악, 필요악)라는 '죄의 상황' 속에서 저희를 구하소서. 습관적으로 죄를 짓도록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악의 세력에서 구하소서.

아홉째, "아멘" - 저희에게 오시어 저희가 "아멘"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그렇습니다, 하느님! 하느님께서 참으로 옳으십니다.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나눔

1. 위 성서 구절 중 내 마음을 끌어당기는 말씀이 있습니까?

2. 오늘 내가 바라는 것이 주님의 뜻 안에 있습니까? 주님의 기도를 바치며 내가 주님께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바라고, 무엇을 해야할 지 나눕시다.



약속

·주님의 기도를 자주 바칩시다. 어려운 그 상황에서 주님의 기도를 바칩시다. 그리고 주님의 뜻을 찾고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며 주님의 나라가 오도록 기도합시다. 그리고 내 일상에서 주님의 뜻을 어떻게 이룰 것인지 약속합시다.



기도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쉼터

"이제 저는 더 이상 할 것이 없습니다. 할 바를 다했습니다. 그런데도 안 됩니다. 이제는 끝입니다."

"아니다! 네가 할 것이 하나 더 남았다. 주님께 아뢰라! 그분이 너와 함께하셔서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실 것이다."

차례





15-1.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여기

·예수님께서는 아래 복음에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겠고…"라고 말씀하십니다. 나는 예수님을 알게 된 후, 예수님의 생명을 받아 다시 살게 되었습니까? 또는 주위에 신앙을 가짐으로써 새로워진 사람이 있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무덤에서 나온 라자로를 보시고 "그를 풀어 주어 가게 하여라."고 하셨습니다. 혹시 나나 어떤 친구에게서 풀어져야 할 만한 것을 발견합니까?



말씀 다시 살아난 라자로(요한 11, 3-4. 17. 21-27. 34-44)

11 3마리아와 마르타는 예수께 사람을 보내어 "주님,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이가 앓고 있습니다" 하고 전했다. 4예수께서는 그 전갈을 받으시고 "그 병은 죽을 병이 아니다. 그것으로 오히려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하느님의 아들도 영광을 받게 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17예수께서 그곳에 이르러 보니 라자로가 무덤에 묻힌 지 이미 나흘이나 지난 뒤였다. 21마르타는 예수께 이렇게 말하였다.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는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22그러나 지금이라도 주님께서 구하시기만 하면 무엇이든지 하느님께서 다 이루어 주실 줄 압니다." 23"네 오빠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24마르타는 "마지막 날 부활 때에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은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5예수께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겠고 26또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 하고 물으셨다. 마르타는 27"예, 주님.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시기로 약속된 그리스도이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것을 믿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34"그를 어디에 묻었느냐?" 하고 예수께서 물으시자 그들이 "주님, 오셔서 보십시오" 하고 대답하였다. 35예수께서는 눈물을 흘리셨다. 36그래서 유다인들은 "저것 보시오. 라자로를 무척 사랑했던가 봅니다" 하고 말하였다. 37또 그들 가운데에는 "소경의 눈을 뜨게 한 사람이 라자로를 죽지 않게 할 수가 없었던 말인가?" 하는 사람도 있었다.

38예수께서는 다시 비통한 심정에 잠겨 무덤으로 가셨다. 그 무덤은 동굴로 되어 있었고 입구는 돌로 막혀 있었다. 39예수께서 "돌을 치워라" 하시자 죽은 사람의 누이 마르타가 "주님, 그가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서 벌써 냄새가 납니다" 하고 말씀드렸다. 40예수께서 마르타에게 "네가 믿기만 하면 하느님의 영광을 보게 되리라고 내가 말하지 않았느냐?" 하시자 41사람들이 돌을 치웠다. 예수께서는 하늘을 우러러보시고 이렇게 기도하셨다. "아버지, 제 청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42그리고 언제나 제 청을 들어주시는 것을 저는 잘 압니다. 그러나 이제 저는 여기 둘러선 사람들로 하여금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 주셨다는 것을 믿게 하려고 이 말을 합니다." 43말씀을 마치시고 "라자로야, 나오너라" 하고 큰 소리로 외치시자 44죽었던 사람이 밖으로 나왔는데 손발은 베로 묶여 있었고 얼굴은 수건으로 감겨 있었다. 예수께서 사람들에게 "그를 풀어 주어 가게 하여라" 하고 말씀하셨다.



배움 부활과 생명이신 예수

첫째, 고통은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이다. 고통은 죄의 결과나 벌이 아니라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마련된 하느님의 섭리이다.

요한 복음 9장 2-3절에 "제자들이 예수께 '선생님, 저 사람이 소경으로 태어난 것은 누구의 죄입니까? 자기 죄입니까? 그 부모의 죄입니까?'하고 물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자기 죄 탓도 아니고 부모의 죄 탓도 아니다. 다만 저 사람에게서 하느님의 놀라운 일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라고 나온다.

그러므로 고통은 하느님의 임하심을 기다리는 은총의 순간이요, 세상을 구하시는 주님의 고통에 참여하는 것이다.

둘째,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부활을 예비하는 의미로 라자로의 부활을 보여 주신다. '라자로의 부활'에 나오는 부활을 영적인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부활은 단순히 육적으로 다시 살아난다는 것만이 아니라 완전히 사람이 뒤바뀌는, 새로워지는 것을 의미한다.

신앙은 한 사람을 그릇된 인생의 길에서 벗어나 하느님의 생명을 받아들이도록 변화시키며, 이때부터 부활의 새 생명을 살게 된다.

셋째, 예수님께서는 죽은 인간을 다시 살리시고(부활), 생명을 불어넣어주시는 생명의 주인이시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겠고 또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라자로야 나오너라"하시면서 죽은 라자로를 다시 살리셨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인간을 막고 있는 모든 억압과 굴레에서 해방시켜 주신다. "그를 풀어 주어 가게 하여라."

넷째,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난다. "네가 믿기만 하면 하느님의 영광을 보게 되리라고 내가 말하지 않았느냐?" 사람들이 죽은 라자로를 묻었던 무덤의 돌을 치우자 예수님께서는 무덤에서 라자로를 건져 주심으로써 인간을 구원하시는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되었다.

그리고 그 하느님의 영광이 예수님을 통해 드러나게 됨으로써,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로 약속된 그리스도이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라는 것을 사람들이 믿게 되었다.



나눔

1. 위 성서 구절 중 내 마음을 끌어당기는 말씀이 있습니까?

2. 마르타는 27절에서 예수님께 "예, 주님,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시기로 약속된 그리스도이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것을 믿습니다" 하고 대답하였습니다. 나도 이렇게 믿고 있습니까?

3. 마르타는 39절에서 예수님께 "주님, 그가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서 벌써 냄새가 납니다" 하고 말씀드렸습니다. 내 생활 중에 이미 굳을 대로 굳어 고치기 힘든 성격이나 버릇이 있습니까? 내가 주님을 모시면 그것을 고칠 수 있겠습니까?



약속

·주님의 빛이 내 안에 스며들어와, 주님께서 보여 주시는 길로 나아가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시겠습니까?



기도 "라자로야, 나오너라."



낱말

마르타와 마리아: 베다니아 동네에 사는 라자로의 누이들.

루가 복음 10장 38절에서 42절에 보면,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주님의 말씀을 듣고 있던 마리아에게 여러 가지 준비를 하고 시중을 들던 마르타가 주님께 "마리아더러 제 일을 좀 도와 주라고 하십시오."하고 청하자, 주님께서는 "마르타, 마르타, 너는 많은 일에 다 마음을 쓰며 걱정하지만 실상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라고 하심으로써, 활동의 중요성 못지 않게, 주님의 뜻과 말씀에 귀기울이는 것(성서 연구 및 기도와 관상)도 아주 중요하다는 것을 일러주셨다.

학자에 따라서는 요한 복음 8장 1절부터 11절에 나오는 '간음한 여인'을 마리아라고 간주하는 견해도 있다. 또한 12장 1절부터 8절에, 마리아는 예수님의 머리에 향유를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 발을 닦아드림으로써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한 여인이다.

차례




16.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여기

·나는 언제 기도합니까?

·또 나는 주님을 누구로 알고, 주님께 무엇을 바랍니까? 아래 보기를 보고 내 경우를 생각해 봅시다.

*보기 : 좋은 선물을 주시겠지! - 예수님께서는 산타 클로스

돈을 많이 벌게 해주시겠지! - 예수님께서는 은행장

한편, 예수님께서는 누구이시며 왜 돌아가셔야만 했습니까?



말씀 베드로의 고백과 수난에 대한 첫번째 예고(마태 16, 13-23)

16 13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 하더냐?"하고 물으셨다. 14"어떤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이라 하고 어떤 사람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예레미야나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제자들이 이렇게 대답하자 15예수께서 이번에는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하고 물으셨다. 16"선생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시몬 베드로가 이렇게 대답하자 17예수께서는 "시몬 바르요나, 너에게 그것을 알려 주신 분은 사람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 너는 복이 있다. 18잘 들어라. 너는 베드로(반석)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죽음의 힘도 감히 그것을 누르지 못할 것이다. 19또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도 매여 있을 것이며 땅에서 풀면 하늘에도 풀려 있을 것이다"하고 말씀하셨다. 20그리고 나서 예수께서는 자신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단단히 당부하셨다.

21그 때부터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자신이 반드시 예루살렘에 올라가 원로들과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그들의 손에 죽었다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날 것임을 알려 주셨다. 22베드로는 예수를 붙들고 "주님, 안 됩니다. 결코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하고 말리었다. 23그러나 예수께서는 베드로를 돌아다보시고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장애물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을 생각하는구나!" 하고 꾸짖으셨다.



배움 수난 배경 - 신원 고백, 신앙 고백

첫째,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인가? -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더냐?"

1) 세례자 요한 - 당시 백성들의 부패를(대표적인 예 : '헤로데의 부정한 결혼') 힘있게 비판하고, 다시 하느님께로 돌아가라는 회개의 설교로서, 유다 백성들에게 하느님의 소리를 전한 예언자.

*'어떻게 하면 현실에서 하느님을 섬길 수 있는지'를 제시한, 하느님의 사람으로 백성들에게 인식됨(마태 14, 2-12; 마르 6, 17ㄴ-19; 루가 3, 10-14 참조).

2) 엘리야 - 왕비 이사벨을 따라 다른 나라 신과 다른 종교의 문화를 섬기던 아합 왕과 백성들에게 하느님의 절대적인 우위권을 증명해 보인 예언자이다.

농경 사회에서 농사의 풍요를 주는 바알신과 유일하시고 주인이신 하느님 중 어느 분을 섬겨야 하는지를 증명하고, 참 신앙의 길을 걷도록 요청한 예언자. 죽지 않고 하늘로 올라갔으므로, 다시 내려와 백성을 하느님의 이름으로 구원하리라는 기대를 받던 하느님의 사람이다.

*엘리야는 현실적으로 이득이 될 것이라고 생각되는 길과 신앙이 가리키는 갈림길 사이에서, 참 신앙의 길을 걷도록 한 예언자이다(1열왕 18, 20-40 참조).

3) 옛 예언자 중의 하나 - '모세'를 지칭한다고 볼 수 있다. 모세는 하느님의 이름으로 이집트 노예살이에서 해방시켜 준 예언자로서, 하느님과 얼굴을 대면할 정도로 가까웠던, 그래서 그의 죽음도 확실히 알 수 없는 하느님의 사람이다. 그러므로 마지막날 하느님의 이름과 권능으로 구원하러 오리라고 기대되던 성조이다.

*예수님을 이 예언자에 비유한 것은 마치 로마의 식민지로부터 해방시켜 주고, 모세처럼 젖과 꿀이 흐르는, 물질적인 풍요를 가져다주리라는 정치적이고도 현실적인 메시아(구세주)관에서 비롯되었다(출애급기 참조).

둘째,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

1) '살아계신 하느님' -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기쁨과 슬픔 그리고 희망과 고민을 다 아신다. 그때마다 하느님께서는 사랑 때문에 우리와 함께 아파하시면서 우리를 찾아와 생생이 살아 숨쉬는 분이시다.

*하느님에 대한 오류와 무관심의 예

- 하느님께서는 천상에서 지복 직관(스스로 행복함)을 누리실 뿐, 인간의 고통 따위는 관계하지 않으신다.

-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만들어 인간에게 맡기시고 끝내셨기 때문에, 우리가 다 알아서 해야한다.

- "신은 죽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자기 잇속만 차리기 때문에 신이 차지할 자리가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께 기도하고 주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려고 노력할 때 주님께서 우리 안에 진정 살아 계실 수 있다.

2)'그리스도'란 단어의 어원과 의미

'그리스도'란 단어는 그리스어로 '기름부어 축성하여 세운 왕'이란 뜻이다. 이 단어는 구약의 '메시아'(주님의 기름을 바른 자)를 번역한 것이다. 단어가 가리키는 내용과 의미를 따라 우리말로 하자면 '구세주'(세상을 구원하실 주님)이다.

고대부터 왕이나 사제 또는 예언자들에게 하느님의 힘과 능력을 주어, 백성을 다스리고 인도하도록 기름을 부어 축성하는 행위에서 비롯되었다. '기름 부음받은 자' 또는 '기름 바른 자'라는 단어가 의미하는 것은, 하느님께서 기름 부은 자를 통해 당신 백성을 사랑하시고 구원하신다는 것이다.

예수님 시대에 백성들이 히브리어로 '메시아' 또는 그리스어로 '그리스도'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또 기대하는 바는 바로 '하느님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할 사명을 받은 자'이며, 그를 통한 '하느님의 구원'이다.

셋째, 신앙을 주시는 하느님과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시는 주님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믿도록 가르쳐 주시고, 또 이끌어 주신다(마태 16, 17 참조). 그리고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중심으로 교회를 만드시고, 그 대표인 베드로에게 교회를 맡긴다(마태 16 ,18 참조).

또한 첫 교황인 베드로로 대표되고 사도들로 이어지는 교회의 사제들에게 우리들의 죄를 풀어 줄 권한(고백 성사의 사죄권)을 주셨다(마태 16, 19).

주님께서 우리를 주님 앞에 데려와 주님을 믿도록 하셨듯이 우리가 부족하더라도 이웃에게 예수님을 전하면 주님은 우리를 통해서 이웃에게도 믿음을 심어주실 것이다.

넷째,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 예고

1) 구세주는 사람들을 구하시기 위해 사람들의 미움과 죄악을 대신 짊어지고, 그 값을 치르기 위해 고통당해야만 한다.

2) 구세주 예수님께서는 죽음이라는 육적인 한계를 넘어 영이신 당신 자신이 되시리라는 부활을 예고하신다.

다섯째, 예수님 죽음의 배경

1) 예수님께서는 백성들의 바람, 즉 로마 식민지로부터의 해방과 물질적인 풍요와, 축복의 세상으로 데려다 줄 메시아에 대한 기대를 채워 주지 못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당대 종교와 사회에서 버림받은 사람들과 죄인들을 축복하시고 함께 어울림으로써, 당시 사회와 종교의 가치관과 질서를 흔들어 놓았다.

2) 유다인 지배자들은, 예수님께서 성전 정화 사건으로 그들의 부정수입을 방해했고, "하느님과 나는 하나이다.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요한 10, 30; 14, 6)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보고 없애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3) 제자들 역시 예수님께서 현실의 정치적인 왕이 되었을 때를 기다렸으나, 박해의 표적이 되자 배신하고 떠나게 된다.

4) 이교인 지식인과 점령군 지도자들도 자신들의 정치적인 이해 관계 앞에서 진리를 포기하고 예수님에게 사형 선고를 내렸다.



나눔

1. 위 성서 구절 중 내 마음을 끌어당기는 말씀이 있습니까?

2. 내가 주님께 바라는 것이 주님의 뜻 안에 있습니까? 내 바람이 주님께로부터 온 것입니까? 아니면, 내게서 나온 것입니까?



약속

·주님께서 나에게 기꺼이 당신의 교회를 맡기실 정도의 믿음을 간직하기 위해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기도

"선생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차례




17. 받아 먹어라, 이는 내 몸이다



여기

·인생의 순간 순간 어려운 일이나 뜻밖의 일이 생겼을 때 무력감과 아쉬움을 느낀 적이 있습니까? 언제, 무슨 일이었습니까?

·평생해도 다 갚을 수 없는 도움을 받은 적이 있습니까?

·내 정성을 다 바쳐 누구를 도와 준 적이 있습니까?



말씀 과월절(파스카) - '넘어서 지나가다'(출애 12, 21-27)

당신들이 집집마다 양을 한 마리씩 잡아서 그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르시면, 이집트인들을 죽이는 파괴자는 그냥 지나가시고 이스라엘 백성의 첫아들과 짐승들의 맏배(첫 새끼)는 살 것이오.

최후의 만찬 - 성체 성사의 제정(마태 26, 20-28)

26 20날이 저물었을 때에 예수께서 열두 제자와 함께 식탁에 앉아 21같이 음식을 나누시면서 "나는 분명히 말한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배반할 것이다"하고 말씀하셨다. 22이 말씀에 제자들은 몹시 걱정이 되어 저마다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하고 물었다. 23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지금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은 사람이 바로 나를 배반할 것이다. 24사람의 아들은 성서에 기록된 대로 죽음의 길로 가겠지만 사람의 아들을 배반한 그 사람은 화를 입을 것이다. 그는 차라리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더 좋을 뻔했다." 25그 때에 예수를 배반한 유다도 나서서 "선생님, 저는 아니지요?"하고 묻자 예수께서 "그것은 네 말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26그들이 음식을 먹을 때에 예수께서 빵을 들어 축복하시고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시며 "받아 먹어라, 이는 내 몸이다." 하시고 27또 잔을 들어 감사의 기도를 올리시고 그들에게 돌리시며 "너희는 모두 이 잔을 받아 마셔라. 28이것은 나의 피다. 죄를 용서해 주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내가 흘리는 계약의 피다."

미사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먹어라.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줄 내 몸이다."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마셔라.

이는 새롭고 영원한 계약을 맺는 내 피의 잔이니,

죄를 사하여 주려고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 흘릴 피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배움 인류 구원을 위한 희생 제사 - 최후의 만찬

예수님께서는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당신 스스로 죽음의 희생 제물이 되셨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 미사를 봉헌하며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기억하고, 현실에서 다시 이룩(재현)한다.

첫째, 구약의 해방절 제사 - 과월절(해방절)

하느님께서는 '어린양'을 제물로 받으심으로써 이스라엘인들의 맏아들과 맏배(첫 새끼)들을 죽음에서 구해 주셨다.

둘째, 최후 만찬과 성체 성사 -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몸과 피로 상징되는 빵과 포도주를, 제자들에게 먹으라고 내어 주심으로써, 성체 성사를 제정하셨다. 이 만찬은 십자가상에서 예수님께서 죽는 이유와 그 죽음의 의미를 미리 알려 준 것이다.

우리는 이 성사를 통해 주님을 우리 안에 모심으로써, 하느님(주님)의 자녀로 살아갈 힘을 받는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을 구원하기 위한 또 하나의 성체로 세상에 파견되고,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밀씨가 된다.

셋째, 십자가상 제사 - 주님께서는 자신의 생명을, 인류 구원을 위해 스스로 바치셨다. 이는 하느님 아버지의 뜻에 순명하는 인간의 모습이요, 인간 구원을 위한 하느님의 희생이다.

또한 주님께서는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인간들을 용서해 주시고, 아버지께 용서를 청하시는 사랑 가득한 분이시다.

넷째, 미사 - 미사는 예수님의 십자가상 제사를, 최후의 만찬의 형식인 빵과 포도주의 축성을 통해 재현하는 제사이다. 그러므로 미사를 통해 인류 구원의 제사가 매번 다시 거행되는 것이다.

다섯째, 성체 성사의 삶 -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같이 살지만, 다른 사람들처럼 세상에서 바라는 대로 살지 않고, 주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산다. 우리는 주님께 속해 있기 때문에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며 산다.

사제는 제대에서 빵과 포도주를 봉헌하며 성체 성사(미사)를 드린다. 우리는 우리의 책상을 제대로, 또 우리의 땀과 노력을 책과 함께 제물로 봉헌하며, 성체 성사의 삶을 산다(예 : 설거지 대를 제대로, 물과 손과 내 노력을 제물로 : 책상과 작업대를 제대로, 서류와 재료를 제물로).

이는 바로 예수님의 수난을 통한 인류 구원의 성사와, 또 하나의 성체 성사인 우리 자신의 삶이다.

<최후의 만찬과 십자가상의 제사와 미사>


최후의 만찬

십자가상 제사

미 사

제사를 받으시는 분(지향자)

성부 하느님

성부 하느님

성부 하느님

제사 드리기 위해 바치는 물건(제물)

빵과 포도주로 표시된 예수님의 생명(몸)

예수님의 생명(몸)

빵과 포도주로 표시된 예수님의 생명(몸)

제사드리는 이(봉헌자)

예수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

사제(예수님의

대리자)





나눔

1. 위 성서 구절 중 내 마음을 끌어당기는 말씀이 있습니까?

2. 주님께서 미사와 성체 성사를 통해 내게 생명을 주시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까? 미사에 참례하여 영성체를 하면서 주님을 느끼십니까?



약속

·예수님께서는 "내 몸과 피를 마실 때마다 나를 기억하여 이 예를 행하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만나 뵙고 성체를 모신 후, 여러분은 무엇을 행할 것입니까?



기도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먹어라.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줄 내 몸이다."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마셔라.

이는 새롭고 영원한 계약을 맺는 내 피의 잔이니,

죄를 사하여 주려고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 흘릴 피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낱말

빠스카(pascha, pass over) 축제 : 과월절 축제, 즉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느님의 도우심과 이끄심으로 이집트 탈출을 기념하는 축제(양의 피를 이스라엘 집안의 문설주에 발라 죽음의 천사가 그냥 넘어 지나간 사건)이다.

한편 신약에 와서는 과월절 축제와 최후의 만찬이 결합되면서(요한 19, 36 참조) '성체 성사'와 '십자가상의 제사'를 통해 예수님께서 온 인류를 죽음에서 구출하였다는 의미로 부활 축제를 가리키게 되었다.

빠스카 양 : 빠스카 축제 때 잡는 '양'으로 이집트인들에게 내리신 열 번째 재앙 때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인들과 구별하기 위하여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르던 사건에서 비롯된 풍습이다.

예수님께서도 과월절 축제를 준비하느라 빠스카 양을 잡던 과월절 전날 오후 3시경에 십자가에 달리셨기에 예수님을 빠스카 양에 비유하기도 한다. 그래서 예수님을 '하느님(천주)의 어린 양' 또는 '고양'이라고도 한다.

성체 : 축성된 예수님의 몸(재료 - 누룩 없는 밀빵). 신앙인들이 성체를 모심으로써 주님과 성사적으로 결합되고 일치되어 세상(과)의 영신 투쟁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힘을 주는 우리 영의 참된 양식이다.

성혈 : 축성된 예수님의 피(재료 - 순수 발효시킨 포도주). 우리 영의 참된 음료다(몸 속에 피가 들어 있다는 의미로 미사 때에는 일반적으로 성체만 영한다).

미사 : "재판이 끝났다"라는 법정 용어로서 미사가 끝날 때 "Ite missa est"라고 외치던 습관에서 비롯되었다. 지금은 미사의 원형 동사인 '파견하다'(mittere)를 기억하여 파견의 의미를 가진다. 교회는 예수님의 구원 사업인 십자가상의 제사와 부활을, 즉 미사의 성체 성사를 통하여 재현한다. 아울러 미사를 통하여 이 세상에 또 하나의 성체로 파견된다.

차례





18.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여기

·주님을 원망하거나 거부해 본 적이 있습니까? 언제, 무슨 일이었습니까?

·배반당해 본 적이 있습니까? 그때 기분이 어떠했습니까? 그 후로 그 사람과는 어떻게 지내고 있습니까?

·억울한 적이 있습니까? 어떻게 그것을 극복했습니까?

·왜 죄없는 사람이 죄지은 사람들이 받아야할 벌을 대신 받습니까?



말씀 유다의 배반과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루가 22, 39-48. 54-71; 23, 1-2. 22-23. 32-56)

22 39예수께서 만찬을 마치시고 올리브 산으로 가 기도하셨다. 42"아버지, 아버지의 뜻에 어긋나는 일이 아니라면 이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

45기도를 마치시고 일어나 제자들에게 돌아와 보시니 그들은 슬픔에 지쳐 잠들어 있었다. 46이것을 보시고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왜 이렇게들 잠만 자고 있느냐?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일어나 기도하여라"하고 말씀하셨다.

47예수의 말씀이 채 끝나기도 전에 무리가 떼를 지어 열두 제자 중의 하나인 유다라는 사람을 앞세우고 나타났다. 유다가 예수께 입맞추려고 다가서자 48예수께서는 "유다야, 입을 맞추어 사람의 아들을 잡아 넘기려느냐?"하고 말씀하셨다.

54그들은 예수를 잡아 대사제의 관저로 끌고 들어갔다. 그 때에 베드로는 멀찍이 떨어져서 뒤따르다가 59"이 사람은 분명히 예수와 함께 있던 사람이오. 이 사람도 갈릴래아 사람이 아니오?"하며 (세 번째로) 몰아 세웠다. 60베드로는 "여보시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요?"하며 (세 번이나) 끝내 부인하였다. 베드로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닭이 울었다. 61그 때에 주께서 몸을 돌려 베드로를 똑바로 바라보셨다. 그제서야 베드로는 "오늘 닭이 울기 전에 나를 세 번 모른다고 할 것이다."하신 주님의 말씀이 떠올라 62밖으로 나가 슬피 울었다.

63예수를 지키던 사람들은 예수를 조롱하고 때리며 64눈을 가리고 "누가 때렸는지 알아 맞추어 보아라"고 하면서 65계속해서 갖은 욕설을 다 퍼부었다.

66날이 밝자 백성의 원로들을 비롯하여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이 모여 법정을 열고 예수를 끌어내어 67심문을 시작하였다. "자, 말해 보아라. 그대가 그리스도인가?" 예수께서는 "내가 그렇다고 말하여도 너희는 믿지 않을 것이며 68내가 물어 보아도 너희는 대답하지 않을 것이다. 69사람의 아들은 이제부터 전능하신 하느님의 오른편에 앉게 될 것이다"하고 대답하셨다. 70이 말씀을 듣고 그들은 모두 "그러면 그대가 하느님의 아들이란 말인가?"하고 물었다. 예수께서 "내가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너희가 말하였다"하고 대답하시자 71그들은 "이제 무슨 증언이 필요하겠습니까? 제 입으로 말하는 것을 우리가 직접 듣지 않았습니까?"하고 말하였다.

23 1그리고 나서 온 의회가 일어나 예수를 빌라도 앞에 끌고 가서 2"우리는 이 사람이 백성들에게 소란을 일으키도록 선동하며 카이사르에게 세금을 못 바치게 하고 자칭 그리스도요, 왕이라고 하기에 붙잡아 왔습니다"하고 고발하기 시작하였다.

22빌라도는 (지도자들과 백성들에게) 세 번째로 "도대체 이 사람이 무슨 죄를 지었단 말이냐? 나는 이 사람에게서 사형에 처할 죄를 찾아내지 못 하였다. 그러니 이 사람을 매질이나 해서 놓아 줄 생각이다"하고 말하였으나 23무리들은 더욱 악을 써가며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야 한다고 소리 질렀다.

32다른 죄수 두 사람도 예수와 함께 사형장으로 끌려가고 있었다. 33해골산이라는 곳에 이르러 사람들은 거기에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았고 죄수 두 사람도 십자가형에 처하여 좌우편에 한 사람씩 세워 놓았다. 34예수께서는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하고 기원하셨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은 자들은 주사위를 던져 예수의 옷을 나누어 가졌다. 35사람들이 곁에 서서 쳐다보고 있는 동안 그들의 지도자들은 예수를 보고 "이 사람이 남들을 살렸으니 정말 하느님께서 택하신 그리스도라면 어디 자기도 살려 보라지!"하며 조롱하였다. 36군인들도 또한 예수를 희롱하면서 가까이 가서 신 포도주를 권하고 37"네가 유다인의 왕이라면 자신이나 살려 보아라"하며 빈정거렸다. 38예수의 머리 위에는 '이 사람은 유다인의 왕'(INRI)이라는 죄목이 적혀 있었다.

39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달린 죄수 중 하나도 예수를 모욕하면서 "당신은 그리스도가 아니오? 당신도 살리고 우리도 살려 보시오!"하고 말하였다. 40그러나 다른 죄수는 "너도 저분과 같은 사형 선고를 받은 주제에 하느님이 두렵지도 않으냐? 41우리가 한 짓을 보아서 우리는 이런 벌을 받아 마땅하지만 저분이야 무슨 잘못이 있단 말이냐?"하고 꾸짖고는 42"예수님, 예수님께서 왕이 되어 오실 때에 저를 꼭 기억하여 주십시오"하고 간청하였다. 43예수께서는 "오늘 네가 정녕 나와 함께 낙원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하고 대답하셨다.

44낮 열두 시쯤 되자 어둠이 온 땅을 덮어 오후 세 시까지 계속되었다. 45태양마저 빛을 잃었던 것이다. 그 때 성전 휘장 한가운데가 찢어지며 두 폭으로 갈라졌다. 46예수께서는 큰 소리로 "아버지, 제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하시고는 숨을 거두셨다.(*읽는 것을 멈추고 잠시 침묵 중에 주님의 죽으심을 묵상합시다) 47이 모든 광경을 보고 있던 백인대장은 하느님을 찬양하며 "이 사람이야말로 죄 없는 사람이었구나!"하고 말하였다. 48구경을 하러 나왔던 군중도 이 모든 광경을 보고는 가슴을 치며 집으로 돌아갔다. 49예수의 친지들과 갈릴래아에서부터 예수를 따라다니던 여자들도 모두 멀리 서서 이 모든 일을 지켜 보고 있었다.

50의회 의원 중에 요셉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올바르고 덕망이 높은 사람이었다. 51그는 예수를 죽이려던 의회의 결정과 행동에 찬동을 한 일이 없었다. 그는 유다인들의 동네 아리마태아 출신으로 하느님의 나라를 기다리며 살던 사람이었다. 52그는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내어 달라고 청하여 승낙을 받고 53그 시체를 내려다가 고운 베로 싸서 바위를 파 만든 무덤에 모셨다. 그것은 아직 아무도 장사지낸 일이 없는 무덤이었다. 54그 날은 명절 준비일이었고 시간은 이미 안식일에 접어들고 있었다.

55갈릴래아에서부터 예수와 함께 온 여자들도 그곳까지 따라가 예수의 시체를 무덤에 어떻게 모시는지 눈여겨 보아 두었다. 56그리고 집에 돌아가 향료와 향유를 마련하였다.

(*잠시 침묵 중에 우리 구원을 위한 주님의 죽으심을 묵상합시다.)



배움 주님의 수난과 죽으심 - 인간을 대신한 희생제사

예수님께서 우리 인류의 죄와 우리를 억압하고 괴롭히는 세상 죄악의 굴레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다. 주님께서는 십자가상 제사를 통해 우리를 구원하신다.

첫째, 배반당하신 예수

예수님께서는 백성들을 구하러 세상에 오셨지만,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고, 오히려 배반과 미움으로 주님을 버렸다.

1) 제자들에게 - '유다'는 물론이고 제자들 모두 예수님을 버리고, 부인하며 도망쳐 버렸다.

2) 백성의 지도자들에게 - 하느님만이 유다인의 왕이기 때문에 누구에게도 절하거나 굴복할 수 없다고 주장했지만, 정작 예수님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왕은 카이사르밖에 없습니다. 그는 자기가 왕이라고 하는 반역자입니다"하면서 점령군 지배자들에게 예수님을 넘겨 버렸다.

3) 백성들에게 - 예수님께서 자신들을 구원하러 오신 왕, 그리스도라는 것을 인정하기에는, 백성들이 메시아에게 거는 기대가 너무나 이기적이고 정치적이었다.

4) 책임자들에게 - 빌라도와 같은 이국인 지도자나 지식인들도 이 억울한 죽음 앞에 침묵하고 함구하였다.

둘째, 조롱당하시는 예수님

하느님의 아들이셨지만, 가난한 집안의 아기로, 겸손하고 보잘것 없이 태어나신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조롱을 당하신다. "(나 때문에) 모욕을 당하고 박해를 받으며 터무니없는 말로 갖은 비난을 다 받게 되리(되면 너희는 행복하다)."(마태 5, 11)라고 말씀하신 대로,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그리고 기꺼이 주님께서 걸어가셔야 할 그 길을 걸으신다.

아울러 모욕과 수치는 참으로 하느님께서는 살아 계시고, 굽어보고 계시다는 것을 믿는 신앙인들만이 걸을 수 있는 겸손의 극치이다.

셋째, 십자가상 제사

1) 하느님께 자비를 구하는 인간 예수님 - 의인의 희생 제사

로마 총독 빌라도는 "도대체 이 사람이 무슨 죄를 지었단 말이냐? 나는 이 사람에게서 사형에 처할 죄를 찾아내지 못하였다."(루가 23, 22)라고 했고, "백인대장은 하느님을 찬양하며 '이 사람이야말로 죄 없는 사람이었구나!'"(47절)라고 했다.

이렇듯 예수님께서는 죄가 없으셨지만 인간으로서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무슨 짓을 하는지) 모르고 있습니다'하고 용서를 청하셨다"(34절).

2) 인류의 죄를 용서하시고 구원하시는 구세주 - 당신의 피로 용서하심.

예수님께서는 최후의 만찬 석상에서 "너희는 모두 이 잔을 받아 마셔라. 이것은 나의 피다. 죄를 용서해 주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내가 흘리는 계약의 피다"(마태 26, 27ㄷ.-28)하시며, 십자가상의 제사가 인류의 죄사함과 구원의 사건이라는 것을 미리 알려 주셨다.

그리고 이어 게쎄마니에서 "할 수만 있으면 수난의 시간을 겪지 않게 해 달라고 하시며 '아버지, 나의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무엇이든 다 하실 수 있으시니 이 잔을 나에게서 거두어 주소서. 그러나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마르 14, 35ㄴ-36)하고 기도하시면서, 참으로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아버지의 뜻이 당신의 수난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확인하셨다.

또 실제로 아버지의 뜻을 당신의 수난과 죽음을 통하여, 다 이루심으로써 인류의 죄를 사하시고 구원하신다.

"오늘 네가 정녕 나와 함께 낙원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루가 23, 43 참조).



나눔

1. 위 성서 구절 중 내 마음을 끌어당기는 말씀이 있습니까?

2. 예수님께서 진정 나를 위해 돌아가셨다고 느껴집니까? 언제 어떻게 그것을 믿게 되었는지 나누어봅시다.



약속

·우리는 미사 때마다 거양 성체 후 사제가 "신앙의 신비여" 라고 외칠 때,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주님의 죽음을 전하며 부활을 선포하나이다"라고 응합니다. 오늘 이 성서 기사를 읽고, 주님의 죽음을 어떻게 삶 속에서 전할 수 있겠습니까?



기도 '고난받는 주님의 종'의 네 번째 노래(이사 52, 13-53, 12)

"이제 나의 종은 할 일을 다 하였으니, 높이높이 솟아오르리라 무리가 그를 보고 기막혀 했었지. 그의 몰골은 망가져 사람이라고 할 수가 없었고 인간의 모습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이제 만방은 그를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고 제왕들조차 그 앞에서 입을 가리우리라. 이런 일은 일찍이 눈으로 본 사람도 없고 귀로 들어 본 사람도 없다.

그러니 우리에게 들려주신 이 소식을 누가 곧이들으랴? 주님께서 팔을 휘둘러 이루신 일을 누가 깨달으랴? 그는 메마른 땅에 뿌리를 박고 가까스로 돋아난 햇순이라고나 할까? 늠름한 풍채도, 멋진 모습도 그에게는 없었다. 눈길을 끌 만한 볼품도 없었다. 사람들에게 멸시를 당하고 퇴박을 맞았다. 그는 고통을 겪고 병고를 아는 사람, 사람들이 얼굴을 가리우고 피해 갈 만큼 멸시만 당하였으므로 우리도 덩달아 그를 업신여겼다. 그런데 실상 그는 우리가 앓을 병을 앓아 주었으며, 우리가 받을 고통을 겪어 주었구나. 우리는 그가 천벌을 받은 줄로만 알았고 하느님께 매를 맞아 학대받는 줄로만 여겼다. 그를 찌른 것은 우리의 반역죄요, 그를 으스러뜨린 것은 우리의 악행이었다. 그 몸에 채찍을 맞음으로 우리를 성하게 해주었고 그 몸에 상처를 입음으로 우리의 병을 고쳐 주었구나. 우리 모두 양처럼 길을 잃고 헤매며 제멋대로들 놀아났지만, 주님께서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지우셨구나. 그는 온갖 굴욕을 받으면서도 입 한번 열지 않고 참았다.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처럼, 가만히 서서 털을 깎이는 어미 양처럼 결코 입을 열지 않았다. 그가 억울한 재판을 받고 처형당하는데 그 신세를 걱정해 주는 자가 어디 있었느냐? 그렇다, 그는 인간사회에서 끊기었다. 우리의 반역죄를 쓰고 사형을 당하였다. 폭행을 저지른 일도 없었고 입에 거짓을 담은 적도 없었지만 그는 죄인들과 함께 처형당하고, 불의한 자들과 함께 묻혔다. 주님께서 그를 때리고 찌르신 것은 뜻이 있어 하신 일이었다. 그 뜻을 따라 그는 자기의 생명을 속죄의 제물로 내놓았다. 그리하여 그는 후손을 보며 오래오래 살리라. 그의 손에서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리라.

그 극심하던 고통이 말끔히 가시고 떠오르는 빛을 보리라. 나의 종은 많은 사람의 죄악을 스스로 짊어짐으로써 그들이 떳떳한 시민으로 살게 될 줄을 알고 마음 흐뭇해 하리라. 나는 그로 하여금 민중을 자기 백성으로 삼고 대중을 전리품처럼 차지하게 하리라. 이는 그가 자기 목숨을 내던져 죽은 때문이다. 반역자의 하나처럼 그 속에 끼어 많은 사람의 죄를 짊어지고 그 반역자들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한 때문이다."



낱말

INRI [I(J)esus Nazarenus Rex I(J)udaeorum] : 로마인들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혔을 때 머리 위에 붙였던 예수님의 죄목으로 '유다인의 왕 나자렛(사람)예수'라는 뜻이다. 하느님만이 자신들의 왕이 될 수 있다고 믿었던 유다인들에게는 너무나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신성 모독죄이다(요한 19, 21 참조 - 유다인들의 대사제들은 빌라도에게 가서 "'유다인의 왕'이라 쓰지 말고 '자칭 유다인의 왕'이라고 써 붙여야 합니다."하고 말하였으나…).



쉼터 '위령 미사 감사송1' 중에서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복된 부활의 희망을 주셨으니, 죽음의 운명이 분명히 다가올 것을 슬퍼하면서도, 장차 불멸의 생명을 얻으리라는 주님의 약속이 있기에 위로를 받나이다. 과연 주님을 믿는 이들에게는 죽음이 죽음이 아니요. 새로운 삶으로 옮아가는 것이오니, 세상에서 깃들이던 이 집을 떠난 다음에는 천국에서 영원한 거처가 마련되리이다."

차례




19. 평안하냐



여기

·죽은 후의 세계에 대해서 들어 본 일이 있습니까?

·죽음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까?

·지금 죽는다면, 죽기 전에 마무리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까?

·어떻게 죽었으면 좋겠습니까? 죽을 때 어떤 처지와 형편에 놓여있기를 바랍니까?



말씀 예수의 부활(마태 28, 1-10)

28 1안식일이 지나고 그 이튿날 동틀 무렵에 막달라 여자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러 갔다. 2그런데 갑자기 큰 지진이 일어나면서 하늘에서 주의 천사가 내려와 그 돌을 굴려내고 그 위에 앉았다. 3그 천사의 모습은 번개처럼 빛났고 옷은 눈같이 희었다. 4이 광경을 본 경비병들은 겁에 질려 떨다가 까무러쳤다. 5그때 천사가 여자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무서워하지 말라. 너희는 십자가에 달리셨던 예수를 찾고 있으나 6그분은 여기 계시지 않다. 전에 말씀하신 대로 다시 살아나셨다. 그분이 누우셨던 곳을 와서 보아라. 7그리고 빨리 제자들에게 가서 '예수께서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고 당신들보다 먼저 갈릴래아로 가실 터이니 거기에서 그분을 뵙게 될 것이오'하고 알려라. 나는 이 말을 전하러 왔다." 8여자들은 무서우면서도 기쁨에 넘쳐서 제자들에게 이 소식을 전하려고 무덤을 떠나 급히 달려갔다. 9그런데 뜻밖에도 예수께서 그 여자들을 향하여 걸어 오셔서 "평안하냐?" 하고 말씀하셨다. 여자들은 가까이 가서 그의 두 발을 붙잡고 엎드려 절하였다. 10그러자 예수께서는 그 여자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들은 거기서 나를 만나게 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배움 부활하신 주님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죄악으로 인한 죽음을 쳐이기고 부활하셔서, 우리의 주님이 되셨다. 그 부활을 믿는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증인이 되어, 세상 끝까지 복음을 선포하며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첫째,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 부활은 생명이라는 빛이다. 어둔 방구석을 아침 햇살이 구석구석 비춰 보이게 하고 새 날을 만들어 주듯이, 부활은 인간의 죽음이라는 어둠에 생명의 빛을 던져 준 사건이다.

둘째, 우리 인생의 흔적 안에서 어머니의 사랑을 지울 수 없듯이, 사랑은 밑지고 죽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코 죽지 않으며 끝내 엄연히 살아 있다.

사랑이신 주님을 인간이 죽였고, 또 주님께서는 인간들의 원의를 통해 드러난 하느님 아버지의 뜻에 따라 스스로 죽음을 받아들이셨다.

주님께서는 아버지를 사랑하여 아버지의 뜻을 선택하셨고, 인간을 사랑하여 인간의 증오마저도 수용하셨다. 주님께서는 바로 그 사랑 때문에 죽음의 세력을 이길 수 있었다. 악을 품은 사람들은 주님을 죽여 없애 버리면 될 줄 알았지만, 예수님께서는 죽음을 쳐부수시고 부활하심으로써, 우리의 주님이 되셨다.

셋째, 부활의 첫인사는 "평안하냐?"였다. 사랑을 받으면, 또 사랑을 받아들이면 참으로 편안하다. "그러니 너희는 언제나 내 사랑 안에 머물러 있어라.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 사랑 안에 머물러 있듯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물러 있게 될 것이다. 내가 이 말을 한 것은 내 기쁨을 같이 나누어 너희 마음에 기쁨이 넘치게 하려는 것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요한 15, 9ㄴ-12)

넷째, 우리는 한편 주님의 사랑 안에 늘 머물러 있지 못한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벗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사랑은 없다"(요한 15, 13)라고 하시면서 "이제 나는 너희를 종이라 부르지 않고 벗이라고 부르겠다"(요한 15, 15)라고 하셨다.

예수님께서는 벗이 될 수 없는 불충한 우리를 벗으로 만들어 주시고, 또 우리를 위해 목숨을 바치시고, 그렇게 벗을 위해 목숨을 바치면 다시 살수 있다는 것을 당신 부활로 확실히 보여주시고 우리를 구원해 주셨다.

이러한 일방적인 사랑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우리 구원의 '주님'이 되셨다.

다섯째,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택하여 내세운 것이다. 그러니 너희는 세상에 나가 언제까지나 썩지 않을 열매를 맺어라"(요한 15, 16)고 하셨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셔서 제일 먼저 여자들에게 나타나셨다. 당대 여자들은 법적으로 '증인'이 될 수 없었는데도 예수님께서는 여자들을 당신 부활의 증인으로 제자들에게 파견하셨다.

특별히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후 "내 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들은 거기서 나를 만나게 될 것이다."라고 하셨다. 갈릴래아는 구원에서 제외되었다고 하는 소외 받고 가난한 이들이 사는 이방인의 도시인데 주님은 그곳에서 제자들을 만나기를 원하신 것이다.

우리도 가서 사랑으로 부활의 증인이 되자!



나눔

1. 위 성서 구절 중 내 마음을 끌어당기는 말씀이 있습니까?

2.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 인생에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이 내 생활과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약속

·내 삶 깊숙한 곳에서부터 구체적이고도 실천적인 사랑을 심어, 주님의 부활을 증언합시다. 부활의 기쁜 소식을 선포합시다. 주님의 부활을 맞아서 어떻게 새로 나시렵니까?



기도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님께 축하와 감사의 인사를 기도로 써 봅시다.

그리고 다 같이 큰소리로 '사도 신경'을 바칩시다.

"전능하신 천주 성부, 천지의 창조주를 저는 믿나이다.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님 (밑줄 부분에서 머리를 숙인다.)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 마리아께 잉태되어 나시고, 본시오 빌라도 통치 아래서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 저승에 가시어 사흗날에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하늘에 올라 전능하신 천주 성부 오른편에 앉으시며 그리로부터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믿나이다.

성령을 믿으며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와 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으며, 죄의 용서와 육신의 부활을 믿으며, 영원한 삶을 믿나이다. 아멘."



쉼터

스승이 제자들에게 물었다.

"새 날이 언제 오겠느냐?"

제자들이,

"아침에 해가 뜨면…", "지구가 한바퀴 돌면…", "시간이 지나면…"

이에 스승이,

"새 날은 창 밖에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다 형제 자매로 보일 때이다!"

차례




19-1. 우리와 함께 묵어 가십시오



여기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집으로 초대한 적이 있습니까?

·살면서 문득 주님을 느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실망이나 충격으로 인해 집을 나서거나,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여행해 본 적이 있습니까?



말씀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루가 24, 13-35)

24 13바로 그날 거기 모였던 사람들 중 두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한 삼십 리쯤 떨어진 곳에 있는 엠마오라는 동네로 걸어가면서 14이즈음에 일어난 모든 사건에 대하여 말을 주고받고 있었다. 15그들이 이야기를 나누며 토론하고 있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다가가서 나란히 걸어가셨다. 16그러나 그들은 눈이 가리워져서 그분이 누구신지 알아보지 못하였다. 17예수께서 그들에게 "길을 걸으면서 무슨 이야기들을 그렇게 하고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러자 그들은 침통한 표정인 채 걸음을 멈추었다. 18그리고 글레오파라는 사람이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던 사람으로서 요새 며칠 동안에 거기에서 일어난 일을 모르다니, 그런 사람이 당신 말고 어디 또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19예수께서 "무슨 일이냐?" 하고 물으시자 그들은 이렇게 설명하였다. "나자렛 사람 예수에 관한 일이오. 그분은 하느님과 모든 백성들 앞에서 그 하신 일과 말씀에 큰 능력을 보이신 예언자였습니다. 20그런데 대사제들과 우리 백성의 지도자들이 그분을 관헌에게 넘겨 사형 선고를 받아 십자가형을 당하게 하였습니다. 21우리는 그분이야말로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실 분이라고 희망을 걸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이미 처형을 당하셨고, 더구나 그 일이 있은 지도 벌써 사흘째나 됩니다. 22그런데 우리 가운데 몇몇 여인이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하였습니다. 그들이 새벽에 무덤을 찾아가 보았더니 23그분의 시체가 없어졌더랍니다. 그뿐만 아니라 천사들이 나타나 그분은 살아 계시다고 일러주더라는 것이었습니다. 24그래서 우리 동료 몇 사람이 무덤에 가 보았으나 과연 그 여자들의 말대로였고 그분은 보지 못했습니다."

25그때에 예수께서 "너희는 어리석기도 하다! 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그렇게도 믿기가 어려우냐? 26그리스도는 영광을 차지하기 전에 그런 고난을 겪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 27하시며 모세의 율법서와 모든 예언서를 비롯하여 성서 전체에서 당신에 관한 기사를 들어 설명해 주셨다.

28그들이 찾아가던 동네에 거의 다다랐을 때에 예수께서 더 멀리 가시려는 듯이 보이자 29그들은 "이젠 날도 저물어 저녁이 다 되었으니 여기서 우리와 함께 묵어 가십시오" 하고 붙들었다. 그래서 예수께서 그들과 함께 묵으시려고 집으로 들어가셨다. 30예수께서 함께 식탁에 앉아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나누어 주셨다. 31그제서야 그들은 눈이 열려 예수를 알아보았는데 예수의 모습은 이미 사라져서 보이지 않았다. 32그들은 "길에서 그분이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서를 설명해 주실 때에 우리가 얼마나 뜨거운 감동을 느꼈던가!" 하고 서로 말하였다.

33그들은 곧 그곳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가 보았더니 거기에 열한 제자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모여서 34주께서 확실히 다시 살아나셔서 시몬에게 나타나셨다는 말을 하고 있었다. 35그 두 사람도 길에서 당한 일과 빵을 떼어 주실 때에야 비로소 그분이 예수시라는 것을 알아보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배움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주님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거듭 나타나심(발현)으로써, 당신이 부활하시어 살아 계시다는 것을 사랑의 증거 삼아 보여 주셨다.

첫째, 예수님께서는 썩어 없어지는 육의 살이 아니라, 영과 육이 온전히 결합되어 영원히 살아 있는 '새로운 몸'으로 부활하시어 당신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

주님께서 변화된 새로운 몸으로 나타나셨기 때문에, 제자들은 주님을 보면서도 알아보지 못하였다. 그러나 빵을 나누는 모습에서, 주님 사랑의 징표를 발견하고, 눈이 열려 주님을 알아뵙는다.

둘째, 주님께서는 생전의 말씀대로 '죽지 않고 살아 계시다'는 것을 몸소 증명해 보이심으로써, 주님 자신이 바로 '기쁜 소식'(복음)이 되셨다. 기쁜 소식이 되신 주님께서는 제자들뿐만 아니라 인간 모두에게, 새로운 생명 곧 영원한 생명에의 새 희망을 증언 보증하신다.

셋째, 주님 안에서 얻게 되는 깨달음과 새로운 삶

"길에서 그분이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서를 설명해 주실 때에 우리가 얼마나 뜨거운 감동을 느꼈던가!" 우리는 요사이 자기에게 일어난 일들을 성서의 말씀을 통해 재해석하면서 예수님께서 뭐라고 하시는지 깨닫게 될 때 참 기쁨을 얻는다.

그리고 이렇게 자신의 삶 속에서 주님과 깊은 연관을 맺게 되면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자신과 함께하고 계시다는 것을 체험하게 되고 아울러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다.

넷째, 주님을 믿음으로써 변화된 삶과 복음 선포

"우리와 함께 묵어 가십시오." 주님의 말씀을 통해 주님을 대면하게 되고, 주님 안에서 자신의 문제를 풀고, 주님의 힘을 받아 주님의 말씀을 실현해 나가면서 느끼는 행복과 기쁨이 얼마나 큰 것인지!

"예수께서 함께 식탁에 앉아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나누어 주셨다. 그제서야 그들은 눈이 열려 예수를 알아보았는데…"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접하고 성체 성사에서 오는 힘으로 그 말씀을 실현하게 된다. "그들은 곧 그곳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나눔

1. 위 성서 구절 중 내 마음을 끌어당기는 말씀이 있습니까?

2.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주님을 알리기 위하여 이른 아침 동트기 전에 여자들에게 나타나셨고, 또 날이 저물어 묵어가야 할 때까지 하루 종일 애써 사랑을 베풀고 계십니다. 주님의 이러한 사랑을 느끼십니까? 왜 주님께서는 이처럼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생각하십니까?



약속

·미사에 참례하여 성체 성사 안에서 주님을 만나 봅시다. (아직 예비 신자이기 때문에, 또는 죄 중에 있어서) 영성체를 할 수 없다면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주님을 모시고(신영성체) 주님께서 주시는 사랑에 푹 젖어 봅시다.

·그리고 세상에 나가 주님을 만나 봅시다. 새로운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주님을! 우리의 두 눈을 열어 사람들 사이에서 찾아 만나 봅시다.



기도

"길에서 그분이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서를 설명해 주실 때에 우리가 얼마나 뜨거운 감동을 느꼈던가!"

차례




20. 갈릴래아 사람들아, 왜 너희는



여기

·"그(제자)들은 하늘만 쳐다보고 있었다." 우리도 어쩔 수 없어서, 그냥 막연하게 잘되기만을 바란 적이 있습니까?

·우리의 미래는 어떠리라고 생각합니까?



말씀 제자들의 사명과 주님의 승천(마태 28, 18-20; 사도 1, 8-11)

28 18예수께서는 그들에게 가까이 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19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내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20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것을 지키도록 가르쳐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

1 8"성령이 너희에게 오시면 너희는 힘을 받아 땅 끝까지 어디에서나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 9예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시고 사도들이 보는 앞에서 승천하셨는데 마침내 구름에 싸여 그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셨다. 10예수께서 하늘로 올라가시는 동안 그들은 하늘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때 흰옷을 입은 사람 둘이 갑자기 그들 앞에 나타나서 이렇게 말했다. 11"갈릴래아 사람들아, 왜 너희는 거기에 서서 하늘만 쳐다보고 있느냐? 너희 곁을 떠나 승천하신 저 예수께서는 너희가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시던 그 모양으로 다시 오실 것이다."



배움 승천하신 주님과 종말 신앙

주님께서는 우리 구원을 위한 수난과 희생의 제사로써, 아버지로부터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아 우리의 참 주님이 되셨다. 승천하신 주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러 다시 오신다.

첫째,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참으로 우리의 구세주, 주인이 되셨다. 주님만이 우리를 구원해 주실 수 있는 참 권능을 아버지 하느님께로부터 받았다.

"천상 천하의 주인이 되신 주님께 경배드리자!"

둘째, 주님께서는 부활하셔서 40일 동안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후 승천하셨다.

승천은 부활의 또 다른 모습이다. 육신은 벽에 막혀 문이 잠기면 열쇠 없이는 들어갈 수 없지만, 영은 시간과 공간에 구애받지 않는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영의 새로운 몸으로 언제, 어디서나 당신을 믿고 찾는 이들에게 함께하신다.

셋째, 우리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영인 성령을 받아, 세상 끝까지 주님의 죽음과 부활을 증거하는 증인이다.

넷째, 성모 승천과 종말 신앙

주님께서는 신앙의 모범이신 마리아를 하늘로 불러 가셨다. 마리아의 뒤를 따라 주님을 믿는 우리들도 부활·승천하게 된다. 그러므로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삶으로 들어가는 관문이며, 생의 또다른 시작이다.

하느님 나라는 이미 시작하였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우리 일상의 일례를 보면, 주님을 뵙기도 하고 만나기도 하지만 순간적이다. 또한 기쁘기만 한 것이 아니라, 곧 슬퍼지기도 하고 의심까지도 갖게 된다.

"우리가 지금은 거울에 비추어 보듯이 희미하게 보지만 그 때에 가서는 얼굴을 맞대고 볼 것입니다. 지금은 내가 불완전하게 알 뿐이지만 그 때에 가서는 하느님께서 나를 아시듯이 나도 완전하게 알게 될 것입니다"(1고린 13, 12).

그러므로 내가 죽어 주는 것이 주님을 기억하는 사랑에서 비롯된 것일 경우에는, 주님께서 우리를 이 땅에서 불러 가실 그때 우리는 구원된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러 오셨고 앞으로도 우리를 구원하시리라.

마지막 날은 심판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구원을 위한 것이다. 계명을 지키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부활하신 주님의 영, 곧 성령을 받아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증언하며 살아갑시다.



나눔

1. 위 성서 구절 중 내 마음을 끌어당기는 말씀이 있습니까?

2. 우리가 절망과 좌절에 빠져 있을 때, 우리를 구해 주신 분이 주님이시라는 것을 믿습니까? 또 나의 부족함과 아쉬움을 온전히 채워 주실 수 있는 분은 주님뿐이라고 고백할 수 있습니까?



약속

·주님께서는 갈릴래아 산에서 "성령이 너희에게 오시면 너희는 힘을 받아 땅 끝까지 어디에서나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내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것을 지키도록 가르쳐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어떤 방법으로 부활하신 주님을 증언할 수 있습니까?



기도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내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것을 지키도록 가르쳐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



낱말 마지막날에 대한 신학적인 옛 표현들

마지막 날 : '구원의 날' 이며 '심판의 날' 이다. 기쁨의 날인 동시에 슬픔의 날일 수도 있다.

공심판 : 인류 전체의 마지막 날의 심판을 말한다.

사심판 : 인간의 죽음 이후의 개인적, 개별적인 심판을 말한다.

천국 : 죽은 후에 선인들이 가는 곳.

지옥 : 죽은 후에 악인들이 가는 곳.

연옥 : 죽은 후에 작은 죄를 지은 이들이 천국에 가기 전에 자신의 죄를 씻는 동안 머무르는 곳.



쉼터

내게 가장 사랑스러운 신앙은

희망이라고 하느님께서 말씀하신다.

희망은 만사를 함께 이끌어들이는 미소한 것

신앙은 존재하는 것만을 보고 있으나

희망은 존재할 것을 보고 있네,

사랑은 존재하는 것만을 사랑하지만

희망은 존재할 것을 사랑하네.

신앙은 영원과 시간 속에서 존재하는 것을 사랑하지만

희망은 시간 속에서 영원을 위해 존재할 것을 보고 있네.

이를테면 영원의 미래를 위해…

희망은 아직 존재하지 않고 존재할 것을 보고 있네.

희망은 아직 존재하지 않으나 존재할 것을 사랑하네.

시간과 영원의 미래 속에서. (Ch. 페기)

- G. 그레사케 저, 심상태 역, '종말신앙 - 죽음보다 강한 희망', 135쪽, 성바오로 출판사, 1980

차례






구세사 3

교회와 성령




21. 여러분이 죽인 예수를





여기

·성령은 우리를 하나 되게 해 줍니다. 우리 가족이 하나 되는 기쁨을 느낀 적이 있습니까?

·성령께서는 주님을 느끼게 해줍니다. 주님께서 나와 함께하심을 느낀 적이 있습니까?



말씀 '성령 강림'과 초대 교회(사도 2, 1-4. 36. 41ㄴ-47)

2 1마침내 오순절이 되어 신도들이 모두 한 곳에 모여 있었는데 2갑자기 하늘에서 세찬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가 들려 오더니 그들이 앉아 있던 온 집안을 가득 채웠다. 3그러자 혀 같은 것들이 나타나 불길처럼 갈라지며 각 사람 위에 내렸다. 4그들의 마음은 성령으로 가득 차서 성령이 시키시는 대로 여러 가지 외국어로 말을 하기 시작하였다

36"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온 백성은 분명히 알아 두시오.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이 예수를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주님이 되게 하셨고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습니다." 41ㄴ그날 새로 신자가 된 사람은 삼천 명이나 되었다. 42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듣고 서로 도와 주며 빵을 나누어 먹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였다.

43사도들이 계속해서 놀라운 일과 기적을 많이 나타내 보이자 사람들은 모두 하느님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44믿는 사람은 모두 함께 지내며 그들의 모든 것을 공동 소유로 내어놓고 45재산과 물건을 팔아서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만큼 나누어 주었다. 46그리고 한 마음이 되어 날마다 열심히 성전에 모였으며 집집마다 돌아가며 같이 빵을 나누고 순수한 마음으로 기쁘게 음식을 함께 먹으며 47하느님을 찬양하였다. 이것을 보고 모든 사람이 그들을 우러러보게 되었다. 주께서는 구원받을 사람을 날마다 늘려 주셔서 '신도(믿는 이)의 모임'이 커 갔다.



배움 성령 강림과 교회

우리에게 주님과 주님의 아버지를 알도록 해 주시는 분은, 삼위일체의 제3위이신 성령이시다. 부활하신 주님의 영이신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주님을 온전히 뵈옵고, 더욱더 깊이 알게 해주셔서, 우리를 주님과 하나 되게 해주신다.

첫째, 제자들은 주님께서 승천하신 후 유다인들에게 잡혀갈까,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라고 외쳐도 누가 믿어 줄까 하는 걱정 때문에 웅크리고 있었다.

그런데 승천하신 지 10일 만에 성령이 내려오셔서, 그런 제자들을 변화시켜 용감히 예수님의 부활을 선포하는 사도로 만드셨다.

둘째, 교회 공동체의 건설 - 성령에 힘입어 '제자들은 (진정한) 사도들이 되었고', '그 사도들의 가르침을 듣고', '세례를 받은 후', '함께 모여', '빵을 나누고', '하느님께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며', '이웃과 함께 삶을 나누는' 교회 공동체를 건설하게 되었다. 성서에 나오는, 초대 교회의 '빵 나눔'은 미사를 의미한다.

셋째, 성령께서 함께하시는 교회 - 성령께서는 교회 공동체를 건설하시고, 교회 공동체 안에 살아계시고 교회 공동체와 함께하시면서, 교회 공동체를 이끄신다.

넷째, 하느님께서 함께하시는 표징

·개인(성령의 열매):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행, 진실, 온유(갈라 5, 22-23)

·교회-공동체(신자들의 공동 생활: 사도 행전 2, 43-47)




나눔

1. 위 성서 구절 중 내 마음을 끌어당기는 말씀이 있습니까?

2. 내 안에서 성령의 움직이심을 느껴 보신 적이 있습니까? 갑자기 우리 안에 주님께 대한 마음이 솟구쳐 오른 적이 있습니까?



약속

·나와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갈망과 원의를 주님께 말씀드리고, 성령께서 우리 안에 오셔서 우리를 주님의 뜻대로 이끌어 가시기를 청합시다.



기도

우리에게도 성령께서 내려오시어, 주님이 누구신지 깨닫고, 느끼고, 사랑하고, 또 이웃에게 전하며 살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주시도록 기도문을 써서 한 명씩 읽으면서 기도합시다. 또는 다 함께 마음을 모아 하나의 기도문을 만듭시다.

그리고 다같이 아래의 '성령 송가'를 한 줄씩 좌우로 나누어 교송으로 바칩시다.

성령 송가

"오소서 성령이여 창조주시여 / 신자들 마음속을 찾아주시어

당신이 창조하신 우리가슴을 / 천상의 은총으로 채워주소서.

당신의 그이름은 위로자시니 / 높으신 하느님의 선물이시요

생명의 샘이시며 불이시옵고 / 사랑과 신령하신 기름이외다.

당신의 일곱은사 베푸시오니 / 하느님 아버지의 오른손가락

성부의 언약대로 내려오시어 / 우리입 말솜씨로 채워주시네.

빛으로 우리오관 비춰주시고 / 그사랑 우리맘에 부어주시며

영원한 능력으로 도와주시어 / 연약한 우리육신 굳게하소서.

원수를 멀리멀리 쫓아주시고 / 언제나 당신평화 내려주소서

앞장서 이끄시는 당신손길에 / 해로운 모든것을 피하리이다.

성령의 힘을입어 성부를알고 / 성자도 그힘으로 알게하소서

성부와 성자께로 좇아나시는 / 성령을 우리항상 믿으오리다.

아멘."



낱말

오순절과 성령 강림 : 유다인들이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정착한 가나안 땅에서, 농사지어 추수한 첫 곡식을 바치는 것을 기념하던 구약의 오순절 축제일에, 성령께서 오심으로써 교회 공동체를 새롭게 일으키신다.



쉼터

두 친구가 조용히 거닐고 있었는데 한 친구가 말했다.

"세례를 받았다며, 축하한다!"

"응, 고마워!"

"참 너 주님의 기도 외울 줄 아니?"

"아니, 못해! 너무 길어서…."

"뭐? 그럼 성모송은?"

"그것도 혼자서는 못해…."

"영광송은?"

"……."

"그럼, 너 어떻게 세례를 받았니?"

"음! 난 주님의 기도는 잘 못 외우지만 변한 게 있어! 너도 아다시피 내가 세례받기 전에는 학교 끝나면 전자오락실에서 해가 져야 돌아오고, 결코 모든 일에 지지 않으려고만 했는데, 이젠 양보도 하고…. 이 정도면, 쑥스럽지만 새 사람 된 거 아니겠어!"

차례





22.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여기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그 사람(들)을 사랑함으로써 기쁨이 솟구칩니까?

·그 사람(들)과의 사랑으로 일치를 이룹니까?

·그 사람(들)을 사랑해서 행복합니까?



말씀 하느님은 사랑이시다(1요한 4, 7-21).

4 7"사랑하는 여러분에게 당부합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하느님께로부터 났으며 하느님을 압니다. 8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9하느님께서 당신의 외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 주셔서 우리는 그분을 통해서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가운데 분명히 나타났습니다. 10내가 말하는 사랑은 하느님에게 대한 우리의 사랑이 아니라 우리에게 대한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보내셔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려고 제물로 삼으시기까지 하셨습니다. 11사랑하는 여러분, 명심하십시오. 하느님께서 이렇게까지 우리를 사랑해 주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12아직까지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면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에 계시고 또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서 이미 완성되어 있는 것입니다.

13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당신의 성령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느님 안에 있고 또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4우리는 아버지께서 당신의 아들을 구세주로 보내신 것을 보았고 또 증언하고 있습니다. 15누구든지 예수께서 하느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을 인정하면 하느님께서 그 사람 안에 계시고 그 사람도 하느님 안에 있습니다. 16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을 알고 또 믿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17이 세상에서 우리가 그리스도처럼 살게 되었으니 사랑이 우리 안에서 완성된 것이 분명합니다. 이제 우리는 자신을 가지고 심판날을 맞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18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몰아 냅니다. 두려움은 징벌을 생각할 때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두려움을 품는 사람은 아직 사랑을 완성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19하느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사랑을 합니다. 20하느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기의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거짓말쟁이입니다.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가 어떻게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21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의 형제도 사랑해야 한다는 이 계명을 우리는 그리스도에게서 받았습니다.



배움 '삼위 일체'이신 하느님

우리 신앙의 목표는 삼위 일체이신 하느님 사랑의 신비 속에 참여하는 것이다.

첫째, 아버지 하느님(성부)께서는 아들 예수님(성자)을 낳으시고, 성부와 성자의 사랑 속에서 성령께서 나신다. 이 삼위의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서로 사랑으로 일치하는 한 분의 하느님이시다. 그리고 그 하느님의 사랑은 주님을 통해 우리를 향한 사랑으로 퍼져 나온다.

아버지께서는 아들에게 모든 권한을 주시고, 아들은 그 모든 권한을 아버지의 뜻에 따라 행사하고, 모든 영광을 아버지께 돌리며, 영은 아버지와 아들을 연결시켜 주신다.

이제 성령께서는 우리를 주님께로 연결시켜 주신다. 그래서 우리는 삼위 일체이신 하느님의 사랑을 받아, 성령의 이끄심으로 이웃에게 간다.

둘째, 제1위이신 성부께서는, 사랑으로 세상을 창조하시고 구원하시는 세상의 주인, 하느님이시다. 우리는 하느님을 주 예수님 덕분에 '아빠', '아버지' 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다.

셋째, 제2위이신 성자께서는,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상 제사의 희생 제물이 되심으로써, 우리에게 구원의 은총을 내려 주신 하느님의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님이시다.

넷째, 제3위이신 성령께서는, 우리가 하느님을 온전히 알고 깨닫도록 해 주시고, 하느님께로 나아가도록 이끌어 주시며, 우리를 하느님과 이웃과 세상과 일치시켜 주시는 하느님의 영이시다.

다섯째, 우리는 삼위 일체의 하느님을 믿는 믿음의 힘으로 서로 사랑하여, 삼위 일체의 신비에 참여하는 영광과 기쁨을 누린다.

그러므로 우리의 실제 삶에서 주님을 섬기고, 주님의 뜻대로 불의는 바로잡더라도, 인간은 미워하거나 단죄하지 말고 서로 사랑함으로써 삼위 일체이신 하느님께 나아갑시다.

* 삼위 일체의 신비는 말로 설명하고 인간의 머리로 이해하기에는 너무나도 어려운 '신앙의 신비'입니다. 무한히 자비로우신 사랑과 일치의 표징으로 다가오시는 삼위 일체이신 하느님 사랑의 신비를 바라보고 또 그 사랑 안에 참여합시다.

- 예 1 한 자루의 초

+- 불 - 성부 - 사랑 자체

+- 빛 - 성자 - 은총과 계시

+- 열 - 성령 - 친교와 일치

- 예 2 나의 '생각'과 '의지'와 '행위'의 일치



나눔

1. 위 성서 구절 중 내 마음을 끌어당기는 말씀이 있습니까?

2. 우리 부부나 가족, 모임은 서로 사랑하고 있습니까? 주위에서는 우리 사랑을 보고 뭐라고 합니까? 우리 사랑은 어디를 향하고 있습니까,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퍼져 나가고 있습니까?

예비 신자 권면? 환자 위로? 고아 입양? 노인 시중? 장애자 돌봄?



약속

·삼위 일체의 하느님께서 서로 사랑하심으로써 그 사랑은 넘쳐서 마침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돌아가시기까지 하셨습니다. 주님의 사랑을 받는 우리가 어떻게 그 사랑을 보답할 수 있습니까? 또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 사이에서 흘러 넘치는 사랑을 어떻게 이웃과 나누렵니까?



기도

"사랑하는 여러분에게 당부합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하느님께로부터 났으며 하느님을 압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차례




22-1.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여기

·성모님을 아십니까?

·사람들은 마리아에 관해 어떻게 말합니까?

·여러분은 성모님께 어떤 생각이나 느낌이 듭니까?



말씀 필립보와 나타나엘을 부르시다(요한 1, 43-46)

1 43그 이튿날 예수께서 갈릴래아로 떠나 가시려던 참에 필립보를 만나 "나를 따라오너라"하고 부르셨다. 44필립보는 베싸이다 출신으로 안드레아와 베드로와 한 고향 사람이다. 45그가 나타나엘을 찾아가서 "우리는 모세의 율법서와 예언자들의 글에 기록되어 있는 분을 만났소. 그분은 요셉의 아들 예수인데 나자렛 사람이오"하고 말하였다. 46그러나 그는 "나자렛에서 무슨 신통한 것이 나올 수 있겠소?"하고 물었다. 그래서 필립보는 나타나엘에게 와서 보라고 권하였다.

가나의 혼인 잔치(요한 2, 1-11)

2 1이런 일이 있은 지 사흘째 되던 날 갈릴래아 지방 가나에 혼인 잔치가 있었다. 그 자리에는 예수의 어머니도 계셨고 2예수도 그의 제자들과 함께 초대를 받고 와 계셨다. 3그런데 잔치 도중에 포도주가 다 떨어지자 예수의 어머니는 예수께 포도주가 떨어졌다고 알렸다. 4예수께서는 어머니를 보시고 "어머니, 그것이 저에게 무슨 상관이 있다고 그러십니까? 아직 제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하고 말씀하셨다. 5그러자 예수의 어머니는 하인들에게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하고 일렀다.

6유다인들에게는 정결 예식을 행하는 관습이 있었는데 거기에는 그 예식에 쓰이는 두세 동이들이 돌 항아리 여섯 개가 놓여 있었다. 7예수께서 하인들에게 "그 항아리마다 모두 물을 가득히 부어라"하고 이르셨다. 그들이 여섯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우자 8예수께서 "이제는 퍼서 잔치 맡은 이에게 갖다 주어라"하셨다. 하인들이 잔치 맡은 이에게 갖다 주었더니 9물은 어느 새 포도주로 변해 있었다. 물을 떠간 그 하인들은 그 술을 어디에서 났는지 알고 있었지만 잔치 맡은 이는 아무것도 모른 채 술맛을 보고 나서 신랑을 불러 10"누구든지 좋은 포도주는 먼저 내놓고 손님들이 취한 다음에 덜 좋은 것을 내놓는 법인데 이 좋은 포도주가 아직까지 있으니 웬일이오!"하고 감탄하였다. 11이렇게 예수께서는 첫번째 기적을 갈릴래아 지방 가나에서 행하시어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셨다. 그리하여 제자들은 예수를 믿게 되었다.



배움 우리 신앙 생활의 모범이고 목표인 마리아의 모습

우리는 성모님의 일생을 보면서 우리가 어떻게 신앙 생활을 해야하는지를 배운다. 그리고 하늘로 불려 올라가셔서 하늘의 어머니가 되신 성모님을 뵈오며 우리 교회의 나아갈 길과 우리 구원의 희망을 간직하게 된다.

첫째, 현실에서 하느님의 뜻을 찾고 따르는 마리아(제7-1과 '구세주 탄생 예고' 참조) - 아기를 가지리라는 천사의 예언에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하고 대답하였다"(루가 1,. 38).

둘째, 우리의 현실을 주님께 알려 드리고, 주님께서 오시도록 청하는 마리아 - "그런데 잔치 도중에 포도주가 다 떨어지자 예수의 어머니는 예수께 포도주가 떨어졌다고 알렸다"(요한 2, 3). "그러자 예수의 어머니는 하인들에게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하고 일렀다."(요한 2, 5).

셋째, 주님의 수난에 참여하는 마리아 - "예수의 십자가 밑에는 그 어머니와 이모와 글레오파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여자 마리아가 서 있었다"(요한 19, 25).

넷째, 주님께서는 마리아를 우리 교회에 어머니로 주셨다 - "예수께서는 당신의 어머니와 그 곁에 서 있는 사랑하시는 제자를 보시고 먼저 어머니에게 '어머니,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하시고 그 제자에게는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하고 말씀하셨다. 이때부터 그 제자는 마리아를 자기 집에 모셨다"(요한 19, 26-27).

다섯째, 교회 공동체와 함께 성령을 청하는 마리아 - "성안에 들어 온 사도들은 자기네가 묶고 있던 이층방으로 올라갔는데 그 일행은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아, 필립보, 토마, 바르톨로메오, 마태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혁명당원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들이었다. 그 자리에는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를 비롯하여 여러 여자들과 예수의 형제들도 함께 있었다. 그들은 모두 마음을 모아 기도에만 힘썼다"(사도 1, 13-14).



나눔

1. 위 성서 구절 중 내 마음을 끌어당기는 말씀이 있습니까?

2. 마리아는 잔칫집에 포도주가 떨어진 것을 주님께 알리고, 하인들에게는 주님께서 시키는 대로 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지금 주님께 어떤 상황을 알려 드리겠습니까?



약속

·이 '배움'에 나타난 마리아의 모습 중에서, 내가 본받고, 따를 수 있는 모습을 하나 골라 실천을 합시다.



기도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가 1, 38).

차례




22-2. 그리스도인의 피는 그리스도인의 씨앗





여기

·우리 집안은 언제 누구부터 신앙을 갖게 되었습니까?



말씀 깨어 기도하여라(루가 21, 34-36)

21 34"흥청대며 먹고 마시는 일과 쓸데없는 세상 걱정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그날이 갑자기 닥쳐올지도 모른다. 조심하여라. 35그 날이 온 땅 위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덫처럼 들이닥칠 것이다. 36그러므로 너희는 앞으로 닥쳐올 이 모든 일을 피하여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



배움 전체(세계) 교회사

첫째, 사도 시대의 교회 - 제21과 '성령 강림과 교회' 참조, 사도 행전 참조.

둘째, 사도 후 시대의 박해와 종교 자유

1) 주님과 함께 살면서 주님으로부터 직접 양성받은 사도들이 돌아가신 후, 교회 공동체는 신자들을 위해 '사도들의 증언'을 '신약 성서'로 기록하고, 당시 유럽 지역의 종주국인 로마 제국에까지 전교,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건설해 나갔다.

2) 그러나 곧 이어 '하느님만이 인간의 진정한 주인이심'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왕을 신으로 섬기던 대부분의 나라에서 박해를 받기 시작하였다.

특별히 로마 제국에서는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회심으로 인한 '밀라노 관용령'으로 종교의 자유를 얻기까지, 잔인하고 비인도적인 죽음을 당해야 했다.

그 이후 천주교가 각 민족들의 점령자인 로마 제국의 국교가 됨으로써, 교회 선교 활동의 자유뿐만 아니라 현실적인 정치 세력을 갖게 되었다.

3) 신자들은 그리스도와의 완전한 일치가 '박해에 의한 순교'라고 여겨왔지만, 박해가 끝나자 수도 생활로서 주님과의 일치를 도모하기 시작하였다.

한편 이 시기에는 박해가 끝나자마자, 교회 내에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에 대해, 삼위 일체 및 의화설(그리스도의 죽음으로써 죄를 지은 인간이 죄 없는 인간으로 판정받음)에 대한 의심과 이론으로 인한 이단이 생겨나기도 했다.

셋째, 중세 교회

1) 중세 교회는 유럽의 거의 전체를 그리스도교화시켰고, 동시에 교회의 영역은 '신성 로마 제국'이라는 정치 세력과 연결되었다. 중세 시기는 '그리스도교 교리'라는 하나의 사상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두를 지배하는 질서였다.

한편 이슬람교도들의 예루살렘 성지 점령에 대해 유럽의 그리스도교 국가들이 '십자군'을 만들어 전쟁에 나섰으나, 실상 그 모습은 종교 전쟁이라기보다는 종교를 명목으로 한 인간적인 정치, 경제의 세계 질서에 대한 주도권 다툼이었다.

2) 이 시기에는 '수도회'를 중심으로 한 은수자, 고행자, 순례자등이 관상 기도를 통해 주님과 일치하려는 노력이 활발하였다.

그러나 한편 고행자의 경우에는 지나치게 주님의 고통만을 중시함으로써, 주님께서 주시는 구원과 기쁨에 대해 소홀하기도 하였다. 일반인들은 관상 기도와 고행을 주로 하는 성직자 수도자들의 정신과 삶에 쉽게 따라갈 수도, 성서를 자기 나라의 말로 볼 수도 없었다(라틴어로 쓰여짐).

그래서 주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기도하며 따르기보다는, 성인들의 삶을 더 친근하게 느껴 성인 공경이 활발하게 전개되는 아쉬움을 낳기도 하였다.

3) 한편 신학 및 철학 연구를 중심으로 한 대학 등의 전문 교육과 자선 의료, 성음악, 성미술, 성의복, 교회법의 제정 및 발전 등으로 근대 문화와 사상의 기틀이 마련되었다.

넷째, 근세 교회

1) 이처럼 교회가 현실적인 정치 권력과 연결되자, 세상에 복음의 참 빛을 드러내기가 어려워졌다. 정치적인 이해 관계에 휩쓸리게도 되고, 방대한 토지 등의 재산을 국가 또는 정부 권력으로부터 희사받게 되자, '사람들을 섬기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여 가난해지신 주님의 사랑'이 퇴색되어 갔다.

이러한 교회의 고착되고 현세적인 모습을 개혁하고자 했던 여러 노력들이 개혁자들과 주변의 이해 관계로 인해 좌절, 변형되기도 하여 종교 분열을 가져왔다(영국 교회 : 성공회 - 영국 왕의 재혼이 교회 법적으로 금지되자, 재혼을 위해 영국 땅에 있는 교회의 책임자는 교황이 아니라 영국 왕임을 선언하며 갈라져 나감; 개신교 - 루터 신부는 종교의 개혁을 위해 힘썼으나 자신의 삶이 뒤따르지 못하여 힘이 없었고 신성 로마 제국으로부터 독립하려는 독일 제후들의 후원에 자신을 맡김으로써 결국 교회를 떠나게 되었음).

이러한 분열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끝없이 용서해 주시고 이끄시는 주님의 사랑을 신뢰, 의지하고 거듭 태어나려고 하는 신앙이 현실적인 안정과 풍요 속에서 약해진 결과로 보인다.

2) 한편 이러한 자극과 아울러 교회는 한때 더 고착되기도 하였으나, 내적으로 쇄신과 선교 활동에 노력하여, 다시금 본 모습을 되찾고자 노력했다.

또 다른 한편 십자군 전쟁 이후 활발히 전개된 세계 무역을 위한 대 단위 공장 설립 및 기계화에 따른 노동자들과 도시 빈민들의 비인간적인 처지나 호소에 대해 복음적으로 응답하지 못함으로써 사회로부터 교회 제도뿐 아니라 주님마저도 부인, 거부당하는 '무신론'과 '계몽주의' 및 '공산주의'의 출현을 유발시켰다.

주님께서는 교회의 이러한 혼란 시기에 '성모 발현'이라는 기적을 통해 다시 당신의 권능을 드러내시고, 교회가 복음의 빛으로 다시 서도록 이끌어 주셨고, 선교사들의 순교와 1, 2차 세계 대전 중에 교회는 세상과 다시 연결될 수 있었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거쳐 현대 세계에 주님을 증거할 수 있는 바른 방법을 다시 찾게 되었다.

3) 근세에 있어 우리에게 관심을 기울일 만한 영신 활동을 꼽는다면 '빈첸시오 아 바울로회'(이하 '빈첸시오회')와 '가톨릭 노동 청년회'(J.O.C./Y.C.W./이하 '가노청')의 활동이다.

이들은 현대 세계에서 착취당하고 신음하는 노동 빈민 계층에 주님을 증거하기 위해 활동하였는데 '빈첸시오회'는 가난한 노동자들에게 단순히 말과 기도뿐만이 아닌 현실적이고도 실제적인 필요를 제공하고 있고, '가노청'은 가난한 노동자들 스스로 어떻게 현실을 복음화하며 자신들을 억압하는 구조를 개선할 수 있는가 하는 '정의'구현 활동을 하고 있다. 이 '자선'과 '정의'는 서로 반대되거나 우열이 아닌, 사회 안에서 활동하는 교회라는 마차의 두 바퀴이다.



나눔

지금 난 어떻습니까? 주님을 모시기를 원하십니까? 주님의 사랑을 받기 원하십니까? 주님께서 나를 온전히 이끄시기를 원하십니까?



약속

·내가 어떻게 살면, "늘 깨어 기도하여라"하신 주님의 말씀처럼 사는 것이 될까요?



기도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이 사람의 눈에는 어리석어 보이지만 사람들이 하는 일보다 지혜롭고, 하느님의 힘이 사람의 눈에는 약하게 보이지만 사람의 힘보다 강합니다"(1고린 1, 25).



낱말

"그리스도인의 피는 그리스도인의 씨앗이다" : 교부 테르툴리아노의 말씀으로, 세상은 신자들을 박해하고 죽여 교회를 없애려 하지만 오히려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주님을 맞이하는 순교자들로 인하여 새로운 신앙이 싹트고 교회가 건설된다는 의미이다.

차례




22-3. 교우들은 보십시오



여기

·나는 언제 어떤 기회에 신앙을 갖게 되었고, 그 후 주님을 모시고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나나 우리 주위에서 신앙을 삶으로 증거하는 이들을 본 적이 있습니까? 어떤 느낌이 들었습니까?



말씀 김대건 신부님의 마지막 옥중 서간(현대문 번역본)

교우들은 보십시오. 우리 벗이여, 생각하고 생각해 봅시다.

하느님께서 아득한 태초로부터 천지 만물을 지어 제 자리에 놓으시고, 그중에 사람을 당신 모상과 같이 내어 세상에 두신 목적과 그 뜻을 생각해 봅시다. 온갖 세상일을 가만히 생각하면 가련하고 슬픈 일이 많습니다. 이같이 험하고 가련한 세상에 한번 태어나서 우리를 내신 임자를 알지 못하면 태어난 보람이 없고, 살아 있더라도 쓸데없습니다. 비록 주님 은총으로 세상에 태어나고 영세 입교해 그분의 제자되니, 주님의 제자라는 이름도 또한 귀하지만은 실행이 없다면 그 이름을 무엇에 쓰겠습니까. 세상에 나서 입교한 효험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주님을 배반하고 그 은혜를 거스리는 것입니다. 주님 은혜만 입고 그분께 죄를 짓는다면 어찌 태어나지 않은 것만 같겠습니까.

씨를 뿌리는 농부를 보건대, 때를 맞춰 밭을 갈고 거름을 주며 더위에 그 큰 고생도 아랑곳 않고 아름다운 씨를 가꿉니다. 밭 거둘 때에 이르러서 곡식이 잘되고 영글면 땀 흘린 수고를 잊고 오히려 즐기며 춤추며 기뻐합니다. 곡식이 영글지 않고 밭 거둘 때 빈 대와 껍질만 있다면, 주인은 땀 흘린 수고를 생각하고 오히려 그 밭에 거름 내고 들인 노력을 생각하며 그 밭을 박대할 것입니다. 이같이 주님께서는 땅으로 밭을 삼으시고 우리 사람을 벼로 삼으며, 은총으로 거름을 삼으시고, 강생 구속하신 피로 우리를 물 주시어 자라고 영글도록 하셨습니다. 마침내 심판 날 거두기에 이르러, 주님의 은혜를 받아 좋은 결실을 보았으면 주님의 의로운 자녀로써 천국을 누릴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영글지 못했으면 주님의 의로운 자녀라 하더라도 원수가 되어 영원히 마땅한 벌을 받을 것입니다.

우리 사랑하는 형제 자매들이여, 알아봅시다. 우리 주 예수께서는 세상에 내려와 친히 무수한 고난을 받으시고 괴로운 데로부터 거룩한 교회를 세우시고 고난 중에 자라게 하셨습니다. 그러니 세상 풍속이 아무리 치받고 싸운다 한들 교회를 감히 이기지 못할 것입니다. 예수 승천 후 사도 시대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교회는 두루 무수한 박해와 힘들고 어려운 중에 자라왔습니다.

이제 우리 조선에 교회가 들어온 지 5, 60여년 동안 여러 번 박해가 일어나 교우들이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또 오늘날 박해가 불길같이 일어나 여러 교우들과 나까지 잡히고 아울러 여러분까지 환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이에 우리는 한 몸이 되어 애통한 마음이 어찌 없겠으며, 사사로운 정 때문에 차마 이별하기에 어려움이 없겠습니까. 그러나 성경에 말씀하시되 작은 털끝이라도 주님께서 돌보신다 했고, 모르심이 없이 돌보신다 하셨습니다. 어찌 이렇듯한 박해가 주께서 하고자 하신 일 아니며, 주님의 상과 주님의 벌이 아니겠습니까.

주님의 거룩한 뜻을 따르며 온갖 마음으로 천주 성자 예수 그리스도 대장의 편에 서서 이미 항복받은 세속의 마귀를 공격합시다. 갈팡질팡 어쩔 줄을 모르는 이런 시절을 당해 마음을 늦추지 말고 도리어 힘을 다하고 역량을 더해서 마치 용맹한 군사가 무기를 갖추고 전쟁터에 나가는 것과 같이 우리도 싸워 이겨냅시다.

부디 서로 우애를 잊지 말고 서로 도우면서 주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어 환난을 거두시기까지 기다립시다. 혹 무슨 일이 있을지라도, 부디 삼가고 극진히 조심해서 주님의 영광을 위하고, 조심을 배로 더하고 더해 갑시다. 여기 감옥에 있는 20인은 아직 주님의 은총으로 잘 지내니 설혹 죽은 후라도 여러분은 그 사람들의 가족을 부디 잊지 말아 주십시오.

할 말이 무궁한들 어찌 편지로서 다할 수 있겠습니까. 이만 그칩니다. 우리는 머지않아 전장에 나아갈 터이니 부디 공을 착실히 닦아 천국에서 만납시다.

마음으로 사랑해서 잊지 못할 신자 여러분

여러분은 이런 어려운 시절을 만나 부디 마음을 헛되게 먹지 말고 밤낮으로 주님의 도우심을 빌어, 마귀와 세속과 육신의 삼구에 맞서서 박해를 참아받으며, 주님의 영광을 위하고 그대들의 영혼을 위한 큰일을 경영하십시오. 이런 박해 때에는 주님의 시험을 보게 됩니다. 세속과 마귀를 물리쳐서 덕행과 공로를 크게 세울 때입니다. 부디 환난에 눌려 항복하는 마음으로 주님을 받들고 영혼을 구하는 일에서 뒷걸음치지 마십시오. 오히려 지난날 성인 성녀들의 자취를 살펴 이를 본받고 실행하여 우리 교회의 영광을 더하십시오. 하느님의 착실한 군사이며 의로운 아들임을 증거하십시오. 여러분의 몸은 비록 여럿이나, 마음으로는 한 사람이 되어, 사랑을 잊지 말고 서로 참아 나가며 돌보고 불쌍히 여기며, 주께서 가련히 여기실 때를 기다리십시오.

할 말은 끝없지만, 있는 곳이 타당치 못해 더 적지 못합니다. 모든 신자들은 천국에서 만나 영원한 삶 누리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내 입을 여러분의 입에 대어 사랑으로 입맞춥니다.

부감목 김 안드레아

세상 온갖 일은 주님의 뜻 아닌 것이 없고, 주님께서 내리신 상이나 벌 아닌 것은 없습니다. 그러니 이런 박해도 역시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바니 그대들도 이를 달게 받아 참으면서 주님을 위하고, 오직 주님께 슬퍼 빌어서 평안함을 주시기를 기다리십시오. 내가 죽는 것이 여러분의 감정과 영혼 대사에 어찌 거리낌이 없겠습니까.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오래지 않아 나보다 더 착실한 목자를 상으로 보내시리니 부디 서러워 마십시오. 큰사랑을 이뤄 한몸같이 주님을 섬기다가, 죽은 후에 한가지로 영원히 하느님 앞에서 만나, 길이 영복을 누리기를 천 번 만 번 바랍니다.

평안히 계십시오.

김 신부가 애틋한 마음으로 드립니다.

(김대건 신부 순교 150주년 행사위원회, '그분과 함께 겨레와 함께'-김대건 신부 순교 150주년 기념 신앙 대회 유해 순회 기도 자료집, 102쪽, 1996)



배움 한국 천주 교회사

첫째, 평신도들이 세운 교회

한국 천주 교회는 조선 말기인 1777년 천진암과 주어사에서, 당대의 정치계에서 소외된 남인 학자들이 모여, 이조 시대의 통치원리인 성리학을 연구하던 중, '이벽'으로부터 서학이라고 하는 천주학을 전해 듣고는 이를 더 깊이 연구하기 시작함으로써 태동되었다.

당시 이들이 연구하던 책은 중국에 와서 선교하던 '마태오 리치'의 '천주실의' 등으로서, 그 내용은 보유론(유교를 보완하는 천주학)이었다.

둘째, 첫 세례자와 신앙 공동체

이들 중 '이승훈'은 1784년 정부로부터 중국에 동지사로 파견된 부친을 따라 북경까지 가서 세례를 받고 돌아옴으로써, 한국 최초의 세례자(세례명 - 베드로)가 되었다. 이로써 선교사가 들어와 선교를 하기도 전에 이미 교회의 모습을 갖추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모든 지역 교회는 외국에서 선교사들이 들어와 교리를 가르치고 신앙 공동체를 건설함으로써 시작되었다 (한편 이 시대의 선교는 결과적으로 교회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유럽 강국에서 파견된 선교사의 뒤를 따라 군대가 들어가 그 나라를 식민지로 만드는 동점 서세의 성격을 띄었다).

북경에서 세례를 받고 온 이승훈은, 자신이 보고 온 대로 권일신(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정약종(아우구스티노), 정약용(세례자 요한) 등에게 세례를 베풀고, 중인 계급인 김범우(토마)의 집(명례방 - 현 명동 성당)에서 모여 미사도 드리고 성사를 집전하는 가성직 제도의 교회를 꾸몄다.

그러나 곧 그것이 불법이라는 것을 알고는, 성사 집전을 중단하고 선교 사제를 모시는 일에 충실하였다. 참고로 당시 고해 성사의 보속을 보면 "가난한 이들에게 자선 베풀기", "어려운 이들을 위해 희생하기" 등으로 그리스도교 정신을 상당히 깊이 이해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셋째, 순교자들

1791(신해)년 전라도 진산군의 '윤지충'(바오로)이 모친 장례에 그의 외사촌 형 '권상연'(야고보)와 함께 가족들이 만든 신주를 불살라 버리고 천주교 식으로 장례를 치르려 하자, 가문과 정부에서 패륜아로 사형에 처했다. 이로써 천주교 박해가 시작되었다.

중국인 선교 사제 '주문모' 신부와 '이루갈다' 동정 부부, 종교의 자유를 위해 서양에 원조와 지원을 청하는 백서를 쓴 황사영을 비롯한 300여명의 교우가 순교한 신유 박해(1801)가 일어났다.

정부의 척사윤음(천주교를 버릴 것)을 반대하여 상재 상서(재상에게 교리로서 반박하는 글)를 냈던 '정하상'(바오로) 과 우리 나라 최초의 신부 김대건(안드레아)의 부친 '김제준'(이냐시오), 13세의 최연소 순교자 '유대철'(베드로), 조선 교구 2대 교구장인 '앵베르 범' 주교, '샤스탕 정', '모방 라' 신부 등 세 명의 프랑스 성직자를 비롯하여 약 150여 명의 교우가 기해 박해(1841) 때 순교하셨다(이중 79분이 1984년 성인품을 받음).

우리 나라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안드레아)은 1845년 8월 17일 상해 근처 김가항에서 사제 서품을 받으시고 10월 12일 42일 간 파도와 싸우다 강경 황산포에 입국하여 홀로 전교 활동을 하시다가 3대 교구장 '페레올 고' 주교를 모시러 백령도에 나갔다가 잡혀 병오 박해(1846) 9월 16일 새남터에서 순교하셨다.

그 후 함께 마카오로 신학 공부를 하러 갔던 '최양업'(토마) 신부가 1849년 4월 15일 중국에서 사제 서품을 받고 귀국, 전국 팔도를 다니시다가 고 주교님의 뒤를 따라 병사하셨고, 우리 나라 최초의 '성요셉' 신학교(배론)를 세워 한국인 사제를 양성하고자 했던 4대 교구장 '베르뇌 장' 주교님과 '브르트니에르 백', '볼리외 서', '도리 김', '푸르티에 신', '프리니콜라 박' 신부님들은 새남터에서, '최형'과 '전장운'은 서소문 밖 네거리에서, '다블뤼' 주교님과 '위앵 민', '오메트르 오' 신부, '장주기'(배론 신학당 집주인), '황석두'는 충남 보령의 갈매못에서 대원군의 정권 기반을 다지기 위한 1866년부터 1873년까지의 병인 박해 속에서 순교하셨다(이중 24분을 합쳐 모두 103분이 1984년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품에 오르셨다).

*천주교 교우들에 대한 당시 정부의 박해 원인을 아래와 같이 볼 수 있다.

1) 정치인들의 당쟁 속에서, 정권 탈취와 통치 기반 안정을 위한 희생양으로 삼았다.

2) 남녀 노소, 양반, 중인, 상놈의 구분이 명확한 신분 사회인 이조 사회(지배 계층)의 눈에는, 천주교인들이 '하느님만이 왕'이심을 믿기 때문에, 모든 사람을 차별 없이 한 하느님의 자녀로서 "형제·자매"로 받아들이고 함께 어울림으로써, 왕권과 사회 통치 질서를 위협하는 세력으로 비추었다.

3) 각 선교 단체들이 당시 동양의 전래 문화 풍습을 잘 이해하지 못했기에, '조상 제례'인 제사를 금지함으로써 무리한 박해를 초래했다. 지금은 오히려 존중하는 추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1만여 명에 이르는 순교자(martyr)들은 기꺼이 죽음으로써 하느님을 증거(martyr)하였고, 박해 속에서도 신자들은 교우촌을 형성하여 선교를 계속했다.

한편 달레 신부의 '한국 천주 교회사'는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전하고 있다. "모든 재산과 권리를 몰수당하고 쫓겨다니면서도 서로 먹을 것을 나누었기에 굶어 죽은 사람이 없었다."

이 기록을 통해서 우리는 순교자들이 주님을 진정으로 알아 믿고 섬기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를 자랑으로 삼는다.

넷째, 신앙의 자유

이러한 박해 속에서도 교우들은 신앙을 굳건히 증거하였고, 1886년 한불조약(한국과 프랑스)에 의해 신앙의 자유를 획득하게 되었다.

이렇게 순교자들의 피로 세워진 우리 교회는, 개화기엔 문화(출판, 문맹 퇴치), 교육(초·중·고·대학교 및 기술 훈련소), 의료(병원, 조산소, 무료 병원, 산재 병원), 자선(고아원, 양로원, 무료 급식소, 장애인 공동체), 사회 사업(노동 상담소, 근로자 기숙사, 노동자 사목 센터, 정의 평화 위원회) 등으로, 70년대엔 인권과 민주 사회 건설을 위한 노력으로 한국 사회 안에 빛이 되었다.

이제 우리 후손들은 주님께 대한 믿음을 우리 삶으로 증거함으로써 이 땅에 빛이 되어야 하겠다.



나눔

1. 위 편지 구절 중 내 마음을 끌어당기는 말씀이 있습니까?

2. 순교자들은 하느님과 일치하는 최고의 방법이 죽음으로써 증거하는 것이라고 믿었기에 죽음 앞에서도 두려워 않고, 오히려 주님을 만나 뵈올 기대감으로 기꺼이 순교하였습니다. 오늘 내 삶 속에서 어떻게 주님을 증거할 수 있겠습니까?



약속

·'나눔'에서 나눈 여러 가지 방법 중에서 내가 해야겠다고 느낀 것과,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기도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아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아끼는 사람은 잃을 것이며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목숨을 보존하며 영원히 살게 될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있는 곳에는 나를 섬기는 사람도 같이 있게 될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높이실 것이다"(요한 12, 24-26).

낱말

가성직 제도 : 정식으로 성직을 수행하려면 적법한 주교로부터 사제 서품을 받아야 하는데, 그것을 모르고 다만 그 성직 제도만을 본떠 운영했다.

교구장 : 지역 교회인 교구의 사목 책임자로서 원칙적으로 주교이다.

시성 : 죽은 신자들 가운데 교회에서 신자들에게 신앙 생활의 모범으로 본받으라고 공식적으로 기적 조사를 통해 장엄하게 성인으로 선포하는 예절. 기적 조사는 그 죽은 신자에게 기도하여 실제로 기적이 일어났는지를 확인하는 조사이다. 이 조사는 죽은 후에 시작하며, 성인품에 오르기 전에 복자품 때 1차로, 그 후에도 계속 성인품에 올릴 필요가 있을 때 다시 조사한다.

차례




23.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여기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 살아 계시다고 느끼신 적이 있습니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나만의 체험이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의 모습을 보고 느낀 적이 있다면 그것도 함께 나누어 봅시다.



말씀 새 계명(요한 13 ,34-35)

13 34"나는 너희에게 새 계명을 주겠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35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세상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배움

성사 일반

성사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오시는 순간이다. 성사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은총을 눈으로 볼 수 있도록 해주는 표시(표지, 표징, 사인-sign)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사를 통해 하느님을 만난다.

첫째, 성사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보여 주시는 사랑의 표지이다. - "성사는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사랑을 보이도록 해주는 표시이다."

둘째, 예수님께서는 말씀과 행동을 통해 우리에게 하느님을 알도록 보여 주셨으므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성사다.

즉, 예수님께서는 인간으로 오셔서 사랑, 슬픔, 배고픔 등 온갖 고통을 겪으셨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모습은 하느님께서 인간을 용서하시는 사랑의 표징이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모든 성사의 원천이시기에, 예수님을 '원성사'라고 한다.

셋째, 교회는 성사를 통해 신자들에게 주님을 알리고, 신자들은 성사 생활로 주님을 증거한다.

이렇게 교회가 이 땅에서 예수님께서 명하신 사명을 계속함으로써, 세상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드러내 보여 주기에, 교회는 예수님의 성사다.

넷째, 그러면 "누구를 위한" 성사인가?

(케난 오스본 저, 김광식 역, 성사 신학, 제3장 그리스도교의 성사들과 방법론, 56쪽, 분도출판사, 1993. 참조)

예수님께서는 보고 들을 수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느님에 대해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위한 하느님의 성사이다.

교회 역시 그리스도교 신자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모든 사람들을 위한 성사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빛으로, 생명으로 드러나신 하느님의 성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회가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대로 산다면, 그 교회는 모든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빛을 반사한다.

그러나 또 한편 교회의 칠성사와 준성사들은 교회를 통해 주님을 믿는 이들을 위한 성사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교 신자가 아닌 사람은 칠성사의 의미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칠성사와 준성사들은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위한 것이다.

칠성사를 받은 신자들의 삶(성사 생활)을 통해, 사람들은 성사적인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즉 신자들의 모습에서, 사람들은 하느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므로 성사를 받은 신자는 '그리스도의 향기'를 뿜어내는 '주님의 성전'이며 주님의 사도요, 선교사들이다.

칠성사(7성사)

첫째, 세례 성사(성세, 영세 - 세례 성사를 받음)

1) 말씀 : "물과 성령으로 새로 나지 않으면 아무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요한 3, 5).

2) 배움 : 주님께서 십자가상에서 온 인류의 죄를 짊어지시고 돌아가신 후 다시 부활하신 것처럼, 우리도 세례를 통하여 우리의 죄에서 죽고 주님 안에서 다시 태어난다. 즉, 그전에 가지고 있던 가치관과 생활 방식을 버리고, 몸과 마음이 변하여 완전히 새로운 인격으로 다시 태어난다.

또한 세례로써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 신앙 공동체의 한 식구가 된다. 이 성사 안에서, 우리는 아버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생명과 사랑, 이웃, 자연 모두를 '선물'로 기꺼이 받아들이고, 주님을 생의 최우선으로 삼고 살아가는 은총을 받는다.

세례 때 받은 지워지지 않는 세례의 '인호'는 우리가 교회를 통해 하느님께 받은 신앙을 세상에서 고백하게 한다.

둘째, 견진 성사

1) 말씀 : "그들은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지만 아직 성령은 받지 못했던 것이다. 베드로와 요한이 그들에게 손을 얹자 그들도 성령을 받게 되었다"(사도 8, 16-17).

2) 배움 : 순교자들이 용감하게 죽음을 받아들이고 기꺼이, 기쁘게 순교할 수 있었던 것처럼, 주님을 증거할 힘을 얻게 된다.

그로써 주님과 주님의 복음을 선포할 사도가 된다.

셋째, 성체 성사

1) 말씀 :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누릴 것이며 내가 마지막 날에 그를 살릴 것이다"(요한 6, 54).

2) 배움 : 영성체(성체를 모심)로써 주님과 온전히 결합되어 하나되고, 우리 신앙 생활의 양식을 얻는다.

참으로 영성체는 주님과 그리고 신자들과 하나 되게 하며, 또한 우리가 복음을 선포해야 할 세상과 하나 된다.

아울러 우리는 주님과 함께 우리를 하느님 아버지께 그리고 세상을 위한 또 하나의 성체로 나를 봉헌한다.

넷째, 고해 성사 - 화해의 성사

1) 말씀 : "누구의 죄든지 너희가 용서해 주면 그들의 죄는 용서받을 것이고 용서해 주지 않으면 용서받지 못한 채 남아 있을 것이다"(요한 20, 23).

2) 배움 : 사랑을 거부하고 배신함으로써 주님과 이웃, 그리고 자신과 멀어진 상태를 다시 회복하는 화해의 성사이다. 이 성사를 통해 우리의 죄를 용서받고, 다시 주님의 사람이 된다.

또한 이 성사 안에서, 힘을 회복한 우리는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할 힘을 얻는다.

다섯째, 성품 성사

1) 말씀 : "예수께서 세 번째로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하고 물으시자, 베드로는 '주님, 주님께서는 모든 일을 다 알고 계십니다. 그러니 제가 주님을 사랑한다는 것을 모르실 리가 없습니다'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께서 '내 양들을 잘 돌보아라'하고 분부하셨다"(요한 21, 15).

"잘 들어라,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죽음의 힘도 감히 그것을 누르지 못할 것이다"(마태 16, 18).

2) 배움 : 주님만을 사랑함으로써 자신의 몸과 마음을 주님께 봉헌하고, 주님의 대리자로서 사도의 삶을 살고자 하는 이들에게 정규 신학 교육을 받게 한 후, 하느님 백성을 사랑하고 주님께 이끄는 목자로 서품시키는 성사다.

그래서 이들은 하느님의 말씀과 은총으로 교회를 사목한다.

여섯째, 혼인 성사

1) 말씀 :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그러니 하느님께서 짝지어 준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마태 19, 6).

2) 배움 : "혼인 서약은, 이로써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서로 그 본연의 성질상 부부의 선익과 자녀의 출산 및 교육을 지향하는 평생 공동 운명체를 이루는 것인 바, 주 그리스도에 의하여 영세자들 사이에서는 성사의 품위로 올려졌다"(교회 법전 제4권 교회의 성화 임무 제1055조 1항).

혼인 성사를 통하여 예수, 마리아, 요셉의 나자렛 성가정을 이룸으로써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된다. 바오로 사도는 혼인을 주님의 교회에 대한 사랑과 비유하신다.

"교회가 그리스도께 순종하는 것처럼 아내도 모든 일에 자기 남편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남편 된 사람들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셔서 당신의 몸을 바치신 것처럼 자기 아내를 사랑하십시오"(에페 5, 24-25).

혼인을 통해 가정이 형성되고, 가정에서 인간 사회의 새 시민들이 탄생하며, 그들이 영원한 하느님의 백성이 되기 위해 세례를 받음으로써 성령의 은총으로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

일곱째, 병자 성사

1) 말씀 : "회개하라고 가르치며 마귀들을 많이 쫓아내고 수많은 병자들에게 기름을 발라 병을 고쳐 주었다"(마르 6, 13).

2) 배움 : 병자 성사는 주님께서 주님을 따르는 이들에게, 당신의 깊은 사랑으로 다가와 위로와 용기를 북돋워 주는 성사이다.

한편 이 성사는 병이 낫기 위해 받는다기보다는 병으로 인한 자신의 고통이 주님께서 세상을 구하시기 위하여 겪으시는 그 고통에 참여하기 위한 성사이며, 그러한 이유로 더욱더 그리스도 주님과 결합, 일치되기 위한 성사이다.

<참고 - 인생 여정과 7성사>

인 생 여 정

칠 성 사

성 사 내 용

아기가 탄생했습니다.

세례 성사

하느님을 "아빠" 혹은 "아버지" 라 부르게 됩니다.

젖을 먹고 자랍니다.

성체 성사

주님을 모시고 힘과 기쁨을 얻습니다.

걸음마를 하고 달리기를 해 건강해 집니다.

견진 성사

주님을 지금 여기에서부터, 세상 어디에서나 굳건히 증거하게 됩니다.

동생이 태어나자 화를 내고 질투와 미움이 생겨 편안치 않습니다.

고해 성사

화해의 성사

주님과 이웃 그리고 나 자신과 화해하여 다시 생기 있고 기쁘게 살아갑니다.

어른이 되어 결혼합니다.

혼인 성사

주님의 축복 안에서 성가정이 됩니다.

주님만을 사랑하여 신부가 됩니다.

성품 성사

이 땅에서 주님의 대리자가 됩니다. 주님의 몸과 피를 축성하여 신자들과 나눕니다.

병이 났습니다.

병자 성사

종부 성사

주님께서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겪으신 고통에 자기의 고통으로 참여하게 됩니다.





나눔

1. 위 성서 구절 중 내 마음을 끌어당기는 말씀이 있습니까?

2. 교회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교회를 예수님의 성사라고 합니다. 그런데 교회란 단순히 성당 건물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교회'라고 말할 수 있는 기준과 특성은 무엇입니까?



약속

·우리 모두가 예수님을 믿는다면,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의 이 모임이 바로 교회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하여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겠습니까?



기도

"누구든지 새로(위로부터)나지 아니하면 아무도 하느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요한 3, 3).



낱말

로만 칼라 : 로만 가톨릭 교회의 성직자들이 성직자 복장의 목 부분에 착용하는 흰색 플라스틱 띠.

교도권 : 교회가 예수님께서 명하신 대로 신앙을 선포하고 교육할 권리와 의무.

전례 헌장(Sacrosanctum Concilium) : 전체 (세계) 교회의 주교님들이 모여서 교회 전례의 의미와 정신을 현대 세계에 맞춰 새로 쓰신 제 2 차 바티칸 공의회 첫문헌이다.

준성사 : "어느 정도 성사들을 모방한 거룩한 표징들로서 영적인 효험을 표시하며 교회의 간구(간절한 기구 - 기도의 옛 말)로써 그것을 얻어 준다"(전례 헌장 60). 한 마디로 말한다면, 하느님 안에서 살고자 자신과 자신의 주위에 축복을 비는 신심행위라고 할 수 있다(예, 축복 - 교회의 교도권이 인정하는 주교나 사제가 하는 축복 행위와 축성으로 사람이나 물건[십자가, 성모상, 묵주, 자동차 등], 장소[성당, 집, 공장, 가게] 등에 하느님의 은총을 비는 것이다. '축복', '축성' 또는 '방사'라고 한다). 우리는 준성사를 미신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신앙과 봉헌의 정신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유아 세례 : 만 7 세 이하의 어린아이들에게 부모의 신앙 고백을 증거 삼아 베푸는 세례성사.

첫영성체 : 유아세례를 받은 (또는 세례를 청하는) 만 7세부터 14세까지의 어린아이에게 그리스도교 신자가 되는 데 필요한 교리를 가르치고, '첫고해 성사'를 준 후 (세례를 받지 않은 어린이는 세례 후에 첫고해 성사를 준다), 영성체를 시키는 교회의 관습.

비상 세례(대세) : 죽을 위험이 있는 사람에게 주는 성사이다. 이 성사는 신자 또는 신자가 아니어도 죽을 위험에 처한 사람이 원하면 줄 수 있는 성사이다.

비상 세례 주는 법

- 7세 이하의 세례자에게 : (물을 이마에 부으면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명을 부르며) ( ) 에게 세례를 줍니다."

- 7세 이상의 세례자에게 : (물을 이마에 부으면서) "당신이 세례를 받을만하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명을 부르며) ( ) 에게 세례를 줍니다."

* 비상 세례를 줄 때, 의식이 아직 남아 있는 사람에게 세례 전에 반드시 가르치고 믿는지 확인해야 할 '천주교 4대 교리'

첫째, 살아 계신 하느님

하느님께서 세상을 만드시고 주관하시며, 우리 안에 살아 계셔서 구원하신다.

둘째,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

하느님의 외아들 예수님께서 사람으로 세상에 오셔서 우리와 함께 사셨고, 우리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심으로써 우리가 구원되었고,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셔서 우리의 주님이 되셨다.

셋째, 삼위 일체이신 하느님

예수님께서는 부활 승천하셔서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 주심으로써, 우리에게 주님을 알게 하고, 주님께로 인도하며, 주님을 증언할 힘을 주신다.

또한 제1위이신 '아버지 하느님'(성부)과, 제2위이신 '그 외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성자), 그리고 제3위이신 '부활하신 주님의 영'(성령)은 세 위격을 지니셨지만 한 분이신 하느님이시다.

넷째, 상선 벌악

주님께서 보여주시는 길을 걸어 이 땅에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며, 악을 제거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인간의 길이다.

대세자(비상 세례를 받은 사람)는 정식으로 예비 신자 교리를 받기 전에는 영성체나 다른 성사를 받을 수 없다.

비상 세례를 준 사람은, 그 사실을 '세례를 받은 사람의 주소지 관할 본당'에 알려 비상 세례 대장에 기입하도록 하여야 한다.

보례 : 대세자에게 주는 세례의 보충 예절

세례 증명서 : 세례 성사를 받았다는 증명서. 마치 호적(초본)과도 같다. 세례받은 본당과 교구청에 영구 보존한다. 신자들이 받은 성사 사실을 기록하는 기록부의 종류에는 대세 대장, 세례 대장, 견진 대장, 혼인 대장, 병자 성사 대장 등이 있다.

교적 : 신자들의 성사 생활 내용을 가족 단위로 기록해 놓은 것. 마치 주민등록과도 같아서 이사를 다닐 때마다 옮긴다. 교적을 옮기지 않거나 판공 성사를 지속적으로 받지 않으면 냉담자나 행불자로 처리되므로 유의하여야 한다.

대부, 대모 : 영신의 아버지, 어머니란 뜻으로 세례자(또는 견진자)의 신앙 생활을 이끌고 돌봐 주는 이를 일컫는다. 한국천주교회에서는 세례자(또는 견진자)가 남자인 경우에는 대부, 여자인 경우에는 대모를 1명만 세운다.

공심재, 공복재 : 영성체를 위한 육신의 준비로서 영성체 1시간 전에는 음식을 먹지 않는 예의. 단, 물이나 약은 제외되며, 고령자와 병자 그리고 병자를 간호하는 사람은 구애받지 않는다. 영혼의 준비는 회개와 고해 성사를 보는 것이다.

판공성사 : 한국 천주 교회법에 의하여 신자들이 최소한 1년에 두 번(성탄 시기와 부활 시기) 에 받아야 하는 고해 성사. 한때는 이를 가을, 봄 판공이라고도 불렀다.

고해 성사의 보속 : 고해 성사 때 사제의 사죄경을 받음으로써 고백자의 죄는 사해졌지만, 죄로 인해 남아 있는 벌(잠벌이라고도 함)을 보상하는 행위다.

혼인 교리 : 혼인 성사를 받기 전에 혼인의 사회적 신앙적인 중요성과 불가해소성, 순결 및 자연법적 가족 계획에 의한 산아조절 등을 교육한다.

혼인 성사 준비 : 사제와의 '혼인 면담' 전에 호적 등본과 '세례 증명서'를 준비해야 한다. 혼인 면담은 혼인할 사람의 교적이 있는 본당 신부만이 할 수 있다. 만일 다른 신부에게 하려면, 본당 신부의 위임을 받아야 한다(만일 혼인할 배우자 중 한 쪽이 신자가 아니면, 신자의 본당 신부에게 함께 가서 면담해야 함). 그리고 혼인 당일에는 혼인할 남·여의 증인을 남·여 각각 한 명씩 모시고 와야 하며, 혼인 반지도 각각 한 개씩 준비해야 한다.

조당 : 지속적으로 죄 중에 있기 때문에 성사를 받을 수 없는 상태를 가리킨다. 일례로 신자가 혼인 성사(또는 관면혼인)를 받지 않고 그냥 사회식으로 혼인하고 살 경우나, 임의로 (사회식으로) 이혼하고 다른 사람과 함께 사는 경우(유효화되는 혼인에 한하여)에는, 정식으로 혼인 성사를 받기 전에는 고해 성사를 받더라도 다시 죄 중에 있게 되므로 성사를 줄 수 없을 뿐 아니라, 죄 중에 있어 다른 성사도 받지 못하게 되므로, 성사 생활이 금지된 채로 신앙 생활을 하게 된다.

종부 성사 : 병자 성사의 옛 말로서 죽음의 마지막 순간에 받는 성사이며, 죽어 가는 이에게는 사제가 교황의 위임으로 전대사를 주고, 기름을 바르고, 노자 성체를 받게 한다.

노자 성체 : '죽은 사람이 천국까지 가는 긴 여행길에 힘이 되라고 영해 주는 성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는데, 죽기 전에 이 땅에서 마지막으로 영하는 성체를 말한다.

교무금 : 신자가 교회의 운영과 가난한 사람들을 돕기 위하여 내는 월별 봉헌금.

(주일) 헌금 : 신자가 주일 미사를 드리면서 한 주일을 감사드리며, 오는 한 주일을 주님께 청하며 봉헌하는 헌금.

미사 예물 : 특별히 미사 중에 사제에게 기도 바쳐 주기를 청하며 드리는 예물.



쉼터1

한국이의 감자

"한국아, 너 예수님 봤니?"

"아뇨"

"눈에 보이지도 않는 예수님을 어떻게 믿니?"

"참, 아저씨는 눈에 보여야만 믿나요?"

그 다음날 한국이는 싹이 튼 감자를 들고 가 아저씨에게 주면서 말했다.

"잘 보세요, 아저씨. 이 감자가 겨울에 싹이 나지 않았을 때에는 죽은 것 같았어요. 그런데 지금 이렇게 파랗고 예쁜 새 싹이 돋아난 것을 보면, 이 감자는 그동안 살아 있었고 또 지금 이렇게 생명이 돋아났어요. 그러니까 지금 아저씨 눈에 예수님께서 안 보인다고 예수님께서 안 계신 것이 아니고, 이 감자의 새싹처럼 아저씨의 마음에 봄이 와 예수님께 마음을 열고 믿기 시작할 때까지 기다리고 계세요."



쉼터2

나는 예수님은 믿지만 교회는 믿지 않는다.

- 마하트마 간디 -

차례




23-1. 너도 가서 그렇게 하여라



여기

·나에게 사랑을 베풀어 준 사람이 있었습니까? 언제 누구였습니까? 그때의 느낌을 나눕시다.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내가 사랑을 베풀어주기를 바라는 사람에게 어떻게 했습니까?



말씀 착한 사마리아 사람(루가 10, 25-37)

10 25어떤 율법 교사가 일어서서 예수의 속을 떠보려고 "선생님, 제가 무슨 일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하고 물었다. 26예수께서는 "율법서에 무엇이라고 적혀 있으며 너는 그것을 어떻게 읽었느냐?"하고 반문하셨다. 27"'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생각을 다하여 주님이신 네 하느님을 사랑하라. 그리고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고 하였습니다." 이 대답에 28예수께서는 "옳은 대답이다. 그대로 실천하여라. 그러면 살 수 있다."하고 말씀하셨다. 29그러나 율법 교사는 짐짓 제가 옳다는 것을 드러내려고 "그러면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하고 물었다. 30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리고로 내려 가다가 강도들을 만났다. 강도들은 그 사람이 가진 것을 모조리 빼앗고 마구 두들겨서 반쯤 죽여 놓고 갔다. 31마침 한 사제가 바로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 사람을 보고는 피해서 지나가 버렸다. 32또 레위 사람도 거기까지 왔다가 그 사람을 보고 피해서 지나가 버렸다. 33그런데 길을 가던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그의 옆을 지나다가 그를 보고는 가엾은 마음이 들어 34가까이 가서 상처에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매어 주고는 자기 나귀에 태워 여관으로 데려가서 간호해 주었다. 35다음 날 자기 주머니에서 돈 두 데나리온을 꺼내서 여관 주인에게 주면서 '저 사람을 잘 돌보아 주시오. 비용이 더 들면 돌아오는 길에 갚아 드리겠소'하며 부탁하고 떠났다. 36자, 그러면 이 세 사람 중에서 강도를 만난 사람의 이웃이 되어 준 사람은 누구였다고 생각하느냐?" 37율법 교사가 "그 사람에게 사랑을 베푼 사람입니다."하고 대답하자 예수께서는 "너도 가서 그렇게 하여라." 하고 말씀하셨다.



배움 성사 생활 : 사랑의 실천

주님을 만날 수 있고, 주님을 모시고 주님과 함께하는 길은 주님의 말씀을 자신의 현실에서 실현하는 삶이다.

첫째, 영원한 생명, 즉 구원 또는 영원히 사는 방법은,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삶이다.

* 참조 :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며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또 그렇게 믿어서 주님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20, 31).

둘째, 우리는 내 명예와 단순한 동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주님의 명령 때문에,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한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나를 통해 '주님의 일'을 하실 수 있도록 활동하기 전에 먼저 주님께 기도한다.

셋째, 우리의 이웃은 바로 지금 내 눈앞에 어려운 상황이나 상태에 처해, 내가 (또는 내 사랑의 나눔이) 필요한 사람이다. 우리는 그 요구와 호소에 응해 주님의 삶을 살자. 이 모습이 바로 성사적인 삶이며 성사 생활을 하는 우리의 모습이다.

넷째, 주님은 "너도 가서 그렇게 하여라"고 말씀 하신다. 예수님과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구체적으로 자기 생활에 적용하여 실천할 때 비로소 ‘믿는다’ 라고 할 수 있다.



나눔

1. 위 성서 구절 중 내 마음을 끌어당기는 말씀이 있습니까?

2. 요즈음 내 주위에 나의 도움과 사랑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있다면 누구이며, 그는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약속

·나는 그 사람에게 어떤 방법으로 사랑을 베풀어 줄 수 있습니까?



기도

"너도 가서 그렇게 하여라."



낱말

레위 :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 중 사제 지파로서 주님께 제사를 지내고 성직에만 봉사하도록 한 가문이다. 이들은 이스라엘 땅을 열한 부족이 가꾸어 얻은 소득에서 십분의 일씩을 떼어(십일조) 받아 생활한다.

차례




23-2. 날마다 성전에 모였으며





여기

·전례에 참례하면서 힘을 얻습니까? 지금까지 전례에 참례하면서 느낀 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말씀 초대 교회 신자들의 공동 생활 중 전례 생활(사도 2, 46-47ㄱ)

2 46한 마음이 되어 날마다 열심히 성전에 모였으며 집집마다 돌아가며 빵을 나누고 순수한 마음으로 기쁘게 음식을 함께 먹으며 47ㄱ하느님을 찬양하였다.



배움 전례 생활

첫째, "전례, 특히 감사의 제사(미사 성제)에서 우리 속죄의 구원 사업이 수행된다. 그러므로 전례는 신자들이 생활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신비와 참 교회의 본질을 다른 이에게 드러내 보이고 명시함에 가장 큰 도움이 된다…. 전례는 (교회) 안에 있는 이들을 주 안에 성전으로, 성령 안에 하느님의 거처가 되게 하여 그리스도의 연세의 풍부한 분량에 이르도록 건설하며, 동시에 오묘하게 그들의 힘을 굳세게 하여 그리스도를 선포하게 하는 것이다"(전례 2).

둘째, "그렇지만 역시 전례는 교회 활동이 지향하는 정점이며, 모든 힘이 흘러나오는 원천이다. 왜냐하면 (교회의) 사도적 활동의 목표는 모든 이가 신앙과 성세로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 한데 모이고, 교회 가운데서 하느님을 찬미하며 거룩한 제사에 참여하고, 또 주의 만찬을 먹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 한편 전례는 신자들로 하여금 '빠스카 신비에서 힘을 얻어 사랑 안에 한 마음이 되도록' 격려하고, '신덕으로 받은 것을 생활로써 지키도록' 기도한다. 그리고 하느님과 인간과의 계약이 미사 성제 중에 갱신됨으로써, 신자들을 그리스도의 충동적인 사랑으로 이끌고 불타오르게 한다. 이런 이유로 전례, 특히 미사 성제에서 흡사 샘에서와 같이 우리에게 은총이 흐르고, 또한 여기서 성교회의 모든 활동의 목적인 성화와 하느님의 영광이 그리스도 안에 가장 효과적으로 실현되는 것이다"(전례 10).

셋째, "그러나 이같이 완전한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신자들이 올바른 마음의 자세로 전례에 참여하고, 자기 소리에 마음을 합하고, 천상의 은총을 헛되이 받지 않도록 은총과 협력해야 할 필요가 있다"(전례 11).

넷째, "그렇다고 영적 생활이 오로지 전례에 참여하는 데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 신자는 비록 공동으로 기도하도록 부름을 받았더라도 방에 들어가 은밀한 곳에서 성부님께 기도할 것이고, 더구나 사도의 가르침을 따라 간단없이 기도할 의무가 있다. 예수님 죽으심의 고난을 언제나 우리 몸에 지녀, 예수님의 생명이 우리의 죽을 몸에도 또한 나타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같은 사도에게서 배우고 있다. 우리는 미사 성제 중에 주님께 '성스러운 제물을 받아들이시어 우리 자신도 주께 바쳐지는 영원한 제물'이 되게 하시도록 기도한다"(전례12).

다섯째, 전례 주년

1) 주일 - 주님의 부활하신 날을 기념하여 사도 시대 이후 여덟째 날마다 '주님의 날'을 지낸다(전례102. 106). 주님을 기념하기 위해 신자들이 순교의 피를 흘리며 얻은 날이다. 사회적으로는 일요일이라고도 한다(3과 '십계명' 참조).

2) 대림절 - 주님께서 오시기를 기다리는 4주간, 교회력으로 새해다. 대략 11월 마지막 주간이나 12월 첫주간부터 시작해 성탄 전까지다.

3) 성탄절(성탄 시기) - 주님의 탄생을 경축하는 시기. 우리 안에 주님께서 (말씀으로) 탄생함을 받아들이는 때이다. 12월 24일 성탄 전야 미사부터 시작된다.

4) 주님 공현 대축일 - 주님께서 온 백성들에게 당신 모습을 드러내신 날을 기리는 날(우리 나라에서는 1월 2일에서 8일 사이의 주일에 바친다)

5) 사순절 - 다시 태어나기 위한 세례의 준비와 회개의 보속을 바치는 시기(전례 109) 사순 시기의 보속은 단지 내적이고 개인적이어서는 안되며, 동시에 외적이요 사회적이어야 한다(전례 110).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유혹을 받으시던 '40일 간'에서 유래되었다. 대략 2월말이나 3월에 시작된다. 이마에 재를 바르고 회개와 봉사를 다짐하는 '재의 수요일'부터 5주간.

6) 부활절 - 주님의 부활을 경축하는 시기. 부활 대축일부터 7주간

7) 주님 승천 대축일 - 주님의 승천을 기념하는 주일(우리 나라는 부활 제7주일).

8) 성령 강림 대축일 - 성령께서 오심을 경축하는 날(승천 다음 주일).

9) 삼위 일체 대축일 - 삼위 일체이신 하느님을 기리는 날(성령 강림 다음 주일).

10)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 대축일 - 인류 구원을 위해 내주신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기리는 날(삼위 일체 다음 주일).

11) 예수 성심 대축일 - 인류 구원을 위해 피흘리시며 자비 지극하신 사랑으로 우리를 굽어보시는 주님의 마음을 기리는 날(성령 강림 후 제2주일 다음 금요일).

12) 그리스도왕 대축일 - 왕이신 그리스도를 경축하는 날(연중 마지막 주일).

여섯째, "전통에 따라, 성교회는 성인들을 공경하고 그들의 확실한 유해와 성상도 존중한다. 왜냐하면 성인들의 축제는 그리스도께서 당신 종들 안에 행하신 놀라운 업적을 알리고, 신자들에게는 본받을 적절한 모범을 제시하기 때문이다"(전례 111).

1)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1월/1일) - 주님의 어머니를 기리는 날.

2)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3/25) - 성모의 예수 아기 잉태일.

3) 한국 교회의 수호자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 대축일(12/8) - 성모의 원죄 없으신 탄생 기념일(한국 천주 교회 주보 성인).

4) 성모 승천 대축일(8/15) - 주님의 어머니께서 하늘로 부름을 받아 올라가신 날.

5)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 대축일(3/19)

6)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6/24)

7)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6/29)

8)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7/5)

9)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대축일(9/20)

10) 포교 사업의 수호자 예수 아기의 성녀 데레사 동정 대축일(10/1)

11) 모든 성인의 대축일(11/1)

12) 포교 사업의 수호자 성 프란치스꼬 하비에르 사제 대축일(12/3)

*한국 전통 민속 대축일

1) 설 대축일(음력 1/1)

2) 한가위 대축일(음력 8/15)

일곱째, "성음악과 성미술 및 전례 제구 및 제의는 전례의 성격과 품위를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전례 112-130).

여덟째, 기도는 주님을 기억하고, 나를 주님께 봉헌하며, 주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며, 내 삶에 적용하기 위해 묵상하는 순간이며, 방법이다.



나눔

1. 위 성서 구절 중 내 마음을 끌어당기는 말씀이 있습니까?

2. 주님께서 전례에 참석하는 우리를 굽어보시면서 뭐라 하실까요?



약속

·전례 안에서 주님을 만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겠습니까?



기도

"한 마음이 되어 날마다 열심히 성전에 모였으며 집집마다 돌아가며 빵을 나누고 순수한 마음으로 기쁘게 음식을 함께 먹으며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낱말

금육재 : 만 14세 이상의 신자가 주님의 수고 수난을 기억하며 연중 매 금요일마다 고기를 먹지 않는 전통 풍습. '소재'라고도 한다.

금식재 : 만 20세 이상 60세 이하의 신자가 주님의 고통을 기억하여 사순 시기 '재의 수요일'과 '성 금요일'에, 한 끼는 아주 적게 한 끼는 보통으로 한 끼는 충분히 먹는 '단식재'를 지키는 예를 말한다. '대재'라고도 한다.

이렇게 하여 아낀 식량만큼의 재물을 이웃과 나누는 것이 이 예의 정신이다. "주님께서 당신을 찾아오는 모든 이들에게 하느님 나라를 가르쳐 주시고, 다 고쳐 주시느라 음식을 먹을 겨를조차 없었던 것이다"(마르 6, 31 참조)라는 성서의 장면을 기억하면 쉽게 이해하고 지킬 수 있다.

성체 조배 : 성체 앞(주님의 현존)에 머물러 있는 기도 방법.

성체 강복 : 성체로 축복하는 예절.

성체 현시, 성시간 : 성체를 성광에 모셔서, 신자들이 예수님의 몸(성체)을 직접 눈으로 바라보면서 기도하는 방법과 그 시간.

차례




24. 새로운 일들



여기

·요사이 우리 주변에서 무슨 현상이나 일이 새롭게 일어나고 있습니까?



말씀 노동자의 비참한 현실(노동 헌장 1)

오랫동안 세계 각국의 사회를 휩쓸던 혁명적 변화의 소용돌이는 이제 정치적 한계를 벗어나 경제적 영역에까지 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사실 새로운 산업의 출현, 새로운 기술의 발전, 노사 관계의 변화, 극소수의 엄청난 재산 소유와 대다수의 빈곤, 노동자들의 자신감과 그들 사이의 보다 밀접한 유대 관계, 그리고 설상 가상으로 일반 윤리 의식의 타락 등이 갈등을 빚어내는 원인이 되고 있다.



배움 사회 회칙의 기본 원리 : 교회의 대 사회 교리

신자로서 세상을 살아가며 염두에 둘 것은 하느님이 만들어 주신 '인간의 존엄성'이며 '정의로움', 그리고 존엄한 인간 각자의 역할 분담인 '보조성의 원리'를 지키는 것이다.

노동 헌장 (RERUM NOVARUM) 의 시대적 배경과 원리

첫째, 노동 헌장의 시대적 배경

1) 역사적 배경

1400년 경부터 유럽 사회에서는 중세 봉건 영주(장원)제도가 무너지기 시작하였다. 이는 상업 혁명이라는 외국과의 물자 교역으로 비롯된 것인데, 처음에는 단순한 물건의 교환이었으나 교역이 확대됨으로써 더 많은 물건이 필요하게 되자 공장이 세워지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1760년 교역 중심 국가인 영국에서부터 대량 생산을 위한 기계화로서의 산업 혁명이 일어나기 시작하여 전 유럽에 퍼졌는데, 이러한 산업 혁명의 결과로 '새로운 일들'(RERUM NOVARUM)이 생겨났다.

2) 사회 사상사적 배경

가. 도시화와 빈부 격차

공장이 자꾸만 건설되자 더 많은 노동자들이 필요하게 되었고, 당시 지주들에게 소작료를 내거나 농업 노예였던 농부들이 도시 공장으로 몰려드는 도시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노동자들이 많아지자 사회 구성 계층 중 노동자 계층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아져 갔다. 또한 이들을 고용하는 고용주(사업주)와 노동자들 사이에 경제적인 빈부 격차와 도덕적, 인격적, 정의적인 문제가 발생하였다.

나. 경제 체제와 인간 노동

고용주들은 적은 비용을 들여 많은 이윤을 남기기(한계 비용 절감과 한계 이윤의 극대화) 위해 노동자가 죽지 않고 겨우 노동을 할 수 있을 가장 적은 정도만의 임금을 제공함으로써 노동 조건이나 노동자의 삶이 비참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이러한 관점 하에서 기업가들은 노동 조합이나 노동 관계법 제정은 기업의 운영을 간섭하고 위축시킨다고 주장하면서 국가는 단지 국방과 사회 질서의 안정만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1776년 아담 스미스가 쓴 '국부론'이란 책에서 나오는 이른바 자유 경쟁과 자유 시장 법칙에 의거하는 '자유 방임적 자본주의 사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다. 사회주의 사상의 등장

자본주의 경제 사회 체제하에서 노동자들의 상태가 너무나 열악하게 되자 칼 마르크스는 1848년 '공산당 선언'을 통해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표어를 내걸고 자본주의 체제를 파괴하고 사회주의(당시엔 공산주의) 체제로의 전환을 요구했다.

그래서 공산주의자들은 사회의 문제가 사유 재산 제도에 있다고 보고 모든 사람들의 재산을 국유화시켜 모두 똑같은 생활 조건을 마련해 주는 사회주의 천국을 외치기 시작했고, 아울러 교회를 자본가들의 앞잡이라고 몰아붙였다. 그러자 교회는 사회주의자들을 단죄하였고 노동자들은 사회주의적 성격을 띤 채로 사회주의자들보다 적은 관심을 보인 교회를 떠나기 시작하였다.

라. 교회의 작업

교회는 이렇게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난하고 소수의 사람들만이 부를 장악하며(노동 헌장 1항), 공중 도덕이 파멸(2항)되는 상황, 탐욕스러운 사용주들로부터 착취당하는 노동자들(6항)과 가난한 이들의 권리를 보호하지 않는 공권력(6항)을 보면서 인간 노동 문제에 관한 노력을 기울였다.

영국 런던의 마닝 추기경은 그동안 꾸준한 관심을 보인 결과를 인정받아 1889년 부두 노동자 대파업을 수습할 수 있었다. 독일 마인즈 교구 케틀러 주교는 1848년 사순절 강론 때 노동 문제에 관한 특강을 위시하여 1870년 노동자 보호법의 제정을 강력히 추진하였다. 미국 볼티모어의 기본스 추기경은 1880년에 '노동의 기사'(현 노동 조합 연맹의 전신)라는 노동 조합을 지원하는 등 노동문제에 관심을 보여왔다.

이러한 일련의 움직임은 페렝(Perin) 신부가 이끄는 프랑스, 벨기에 중심의 안제르(Angers) 학파를 형성하여 ‘자선’을 강조하였고, 독일 라이문트(Raimund) 신부는 리에즈(Liege) 학파를 형성 하여 ‘국가의 개입 및 노동 관계 입법’을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교황 레오 13세는 1891년 공적으로 노동과 노동문제에 대한 최초의 사회회칙인 '노동헌장'을 반포, 교회의 입장과 가르침을 선언하였다.

둘째, 사회 회칙의 기본 원리

1) 인간 존엄성의 원리

노동 헌장을 시작으로 교황의 사회 회칙 안에 나타난 교회 가르침의 기본 원리는 언제나 인간의 인격 존엄이란 관점에서 풀어 나간다.

기계는 쓰다가 고장이 나면 고치고 부속품을 갈아 끼우거나 새 기계로 바꾸면 된다. 그러나 노동하는 인간은? 노동은 인간의 생활 조건을 가능케하는 수단인 동시에 사회(동료 인간들)에 대한 봉사이기도 하다. 노동자가 일하다 산업 재해(산재)로 손이 잘려 그 일을 더 이상 못하게 될 경우 기계 부속품처럼 갈아치울 수 있을까? 물질적이고도 현세적인 경제 원칙 하에서는 보상으로 대신한다 하겠지만 그 산재자의 비극을 단순히 물질적인 보상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 또 그는 누구를 위해 무엇을 하다가 산재를 당했는가?

또한 자유 시장, 자유 계약만을 최고로 삼는 자유 방임적 자본주의 안에서 노동자가 취업하여 일하려면 사용자가 제시하는 근로조건대로 근로 계약서에 서명하여야 하는데, 그 계약서에 명시된 노동 조건이 계약 당사자인 노동하는 인간에게 있어서 인간다운 삶을 보장할 수 있을까? 임금을 비용 이상으로 보지 않고, 생산성을 임금 산출의 근거로 제시하는 경제 원리 아래에서 노동하는 인간은 한낱 부속품이요, 소모품이고 지출 요소에 불과하다.

2) 정의의 원리

가. 교환 정의

어린이가 가게에서 초코파이 하나를 고른 후 초코파이 포장에 써 있는 대로 100원을 내고 구입하려 할 때 주인이 그 이상의 가격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초코파이 한 개에 100원'이라는 생산자와 소비자간의 보이지 않는 사회의 계약이 있기 때문이다. 그처럼 노동자가 근로 계약대로 노동을 했을 경우에 사용자는 약속대로 대가를 주어야 한다. 그래서 교환 정의를 계약 정의라고도 한다.

그러나 교회는 단순히 계약 조건의 준수로 책임을 다했다고 인정하기보다는 노동자가 '최소한의 검소한 생활'을 하기에도 불충분한 임금은 쌍방의 계약에 의거한 것이라도 부당한 것으로 본다. 이는 자연법의 정신에도 어긋난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 노동은 먹고살기 위한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 분배 정의

하느님께서 열 사람에게 10개의 빵을 주셨는데, 그 빵을 나눠 주는 사람이 한 사람에게는 9개를 주고 나머지 아홉 사람에게는 1개의 빵을 나눠 먹으라고 한다면 이는 분배 정의상 부정이다. 그래서 분배 정의는 계약 당사자의 한편에게 해당하기보다는 국가 또는 정부의 수행에 관한 정의이다.

그러므로 국가는 충분한 인간적 생활을 하는 데 필요한 재산과 인간다운 생활을 할 기회를 노동자들에게 보장해야 한다. 이것은 노동자뿐 아니라 인간 모두의 복지 증진을 위한 것으로써 '공동선'을 가리킨다.

인간 사회의 목표인 공동선이란 사용주와 노동자뿐 아니라 그 제품을 사용하는 일반 소비자에게도, 또 그 사회의 여러 조건과 상태에 처해 있는 사람들 모두를 위한 이상을 가리킨다.

한편 사회 정의는 재산과 기회의 균등 분배 중 재산의 분배 쪽만을 의미하기도 한다. 여기에는 장치와 제도를 포함하며 일종의 상대적 평등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3) 보조성의 원리

정의 원리가 사람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권리의 충돌을 해소하기 위한 원리라면, 보조성의 원리는 공동선을 실천하는 인간의 존엄성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적 원리이다.

회칙 '40주년'(QUADRAGESIMO ANNO - 노동헌장 반포 40주년 기념 회칙)에서는 보조성의 원리를 구체화시켜서 "첫째로 인간 개인은 모든 집단들의 근원이고 목표이기에 어떤 집단도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을 대신해서는 안 되며, 둘째, 큰 집단들은 작은 집단의 영역을 침범하지 말아야 하고, 셋째, 국가는 작은 하위 집단들의 활동을 돕고 장려해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을 스스로 완수하도록 보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부모가 아이들의 옷 단추나 신발을 대신 끼워 주거나 신겨서는 안 되며, 또한 단체장을 선생님이 대신 지명해서도 안되며, 특별히 국가는 민주화와 분권을 지향해 노사 문제에 자본가쪽보다는 노동 조합의 권리가 짓밟히지는 않는지 감시 지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정신의 적용

이러한 현실 앞에서 교회는 스스로 늘 가르침을 선포하고 적용하는 노력을 기울여 왔는데 실례로는 1930년 미국 노동법을 제정케한 라이언 신부의 활동과 각국의 노동 관계법 제정 운동 및 평신도 사도직 단체의 육성(가톨릭 노동 청·장년회 - J.O.C./Y.C.W.·C.W.M.) 및 노동 문제 연구소, 노동문제 상담소, 노동자 복지 시설 등을 신설 운영하고 있다.



나눔

관찰

1. 요즘 새로 등장하는 사회적인 문제와 상황은 무엇입니까?

2. 그 문제와 상황은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까?

3. 그 문제와 상황은 왜 생겨났습니까?

판단

1. 그 문제와 상황의 긍정적인 가치와 부정적인 가치는 무엇입니까?

2. 그 문제와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간절히 바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3. 주님께서는 이와 비슷한 문제와 상황에서 무슨 말씀을 하시고, 어떻게 활동하셨습니까?(성서를 찾아봅시다)

4. 그러한 상황과 문제들 안에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하고 계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까?

5. 이 문제와 상황을 통해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어떤 호소를 하고 계십니까?

약속

1. 우리는 이러한 문제와 상황을 변화시키기 위하여 어떻게 하겠습니까? 무엇을 가지고 누가/누구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2. 이 문제와 상황을 잘 해결하기 위해 어떤 계획과 과정이 필요합니까?

기도

"여러분은 이 세상을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하여 새 사람이 되십시오. 이리하여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그분 마음에 들며 무엇이 완전한 것인지를 분간하도록 하십시오"(로마 12, 2).

쉼터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교 신앙으로 되돌아오지 않는 한, 계획이나 실천 방법이 아무리 훌륭하고 효과적이라 할지라도 결국은 별 쓸모가 없다(교황 레오 13세, 노동 헌장 82).

차례




24-1. 노동하는 인간은



여기

·교회는 노동하는 인간이 존엄하므로, 노동을 신성한 것으로 본다. 요사이 노동하는 인간이 인간답게 살고 있습니까?



말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노동하는 인간'의 머리말)

노동으로 인간은 먹을 것을 마련한다. 노동으로 인간은 과학과 기술의 발전에 참여한다. 무엇보다, 노동으로 인간은 그가 살고 있는 사회의 도덕적 문화적 수준을 향상시킨다.

노동은 인간의 육체적 정신적 활동 모두를 의미한다.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되어 땅에서 살며 그것을 다스릴 권한을 받았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인간은 노동의 사명을 받은 것이다.

노동은 인간을 다른 창조물과 구별짓는다.

오로지 인간만이 노동을 할 수 있다. 노동은 인간들의 공동체 안에서 활동하고 있는 개개의 인격체를 나타내는 표지요, 이 표지를 통하여 우리는 노동의 실재를 파악하는 것이다.



배움 가톨릭 교회의 노동관

·인간 노동과 그 문제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

·노동 헌장 반포 90주년 기념 회칙 '노동하는 인간'(LABOREM EXERCENS)을 중심으로

1. 서론

인간의 생활은 노동으로 이루어지며, 노동에서 인간은 그 독특한 존엄성을 얻는다. 또한 노동은 노고와 고통을 동반하고, 국가 및 국제적 차원에서의 사회 불의도 안고 있다. 인간이 제 손으로 일하여 얻은 빵을 먹는다(시편 128, 2 참조)는 것도 진리이지만(이 말은 과학과 발전, 문명과 문화의 양식도 의미한다), '이마에 땀을 흘려'(창세 3, 19) 얻은 빵을 먹는다는 것도 진리이다. 말하자면 개인적인 노력과 노고를 통해서만이 아니라 각 사회와 전 인류의 생활을 어지럽게 하는 긴장과 충돌 그리고 위기들 속에서 얻는 빵을 먹는다는 말이다.

요즘 기술, 경제, 정치적 분야에서 새로운 발전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 새로운 발전은 자동화, 에너지 및 원자재 가격 상승, 한정된 천연 자원의 고갈 현상을 가져온다. 또한 수세기 동안 남에게 억눌려 온 민족들이 국제 협상에서 정당한 지위와 몫을 요구하며, 국가들 사이에서 부상하고 있는 사실도 포함한다. 이 모든 요구는 경제 구조와 노동 분배구조를 재조정하도록 촉구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수백만의 노동자들에게 일시적인 실직이나 재훈련을 받아야 하는 불행을 안겨줄런지도 모른다. 또한 발전된 나라들에게는 이러한 변화가 생활 수준을 낮추고 경제성장을 더디게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난한 나라에 사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에게는 위안과 희망을 안겨줄 수도 있다.

교회는 노동하는 사람들의 존엄성과 권리에 대해 마땅히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 존엄성과 권리가 침해될 경우, 교회는 이 침해상황을 고발하고, 이러한 변화들을 이끌어 인간과 사회의 진정한 진보를 보장해야 하는 것이다(1항).

2. 노동과 인간

첫째, 노동은 신성하다 - 교회는 노동을 존엄(신성)한 것으로 본다. 왜냐하면 노동의 주체인 노동하는 인간이 존엄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인간이 하느님 모습대로 창조되고, 노동을 하도록 하느님으로부터 직접 초대받았으며(창세 1, 27. 28참조), 우리 노동을 통해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세상을 계속 만드시고 또 구원하시기 때문이다(4항).

둘째, 노동자 - 특히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으로, 그것도 노동자인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셔서 직접 노동하심으로써, 노동의 복음을 선포하셨다(6항).

그러므로 인간이 '노동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노동이 '인간을 위해' 있다. 여러 가지 종류의 노동이 각각 다른 가치를 지닌 물건을 생산해 낸다 하더라도, 각각의 노동은 노동자의 존엄성에 의해서 평가되어야만 한다. 어떤 목적으로 노동하든지 간에 노동 그 자체로서는 의미가 없다. 사회가 인간의 노동을 아무리 하찮게 평가한다 해도 노동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인간이다(6항).

셋째, 올바른 가치 서열에 대한 위협 - 인간만이 노동을 하는데, 인간은 노동을 통해 자신과 가족의 생계를 유지하고, 노동을 통해 자기를 실현 완성시켜 나가며, 또한 사회 전체에 대하여 봉사한다.

그러므로 노동의 대가(휴식으로서의 여가, 휴가 포함)는 자선이 아니라 정의의 실천이기에, 당연히 노동하는 인간의 현재와 미래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수준이어야 한다. 또한 인간의 노동을 '노동력'이라는 상품으로만 취급하는 유물론적이고도 경제주의적인 오류에서 벗어나야 한다(7항).

넷째, 노동자들의 결속 - 인간의 노동을 생산의 도구로서만 보고 자본만이 생산의 유일한 기반이요 목적이라고 보았던 산업화 시기에는, 노동자들이 '하늘을 향해 복수를 요청하며'(신명기 24, 15; 창세 4, 10) 자신들을 짓누르던 부당하고 악랄한 체제에 대해 반발하였고, 또 사회 도덕적인 관점에서 볼 때 정당한 처사였음이 인정되어야 한다. 이러한 단결 운동은 노동자들의 지위가 떨어지고 이들이 착취당하는 어디에서나, 그리고 가난과 굶주림이 있는 곳 어디에서나 마땅히 있어야 한다. 이렇게 하는 것이 교회의 사명이며 그리스도께 대한 충실성의 증거요, 그래야만 진정으로 '가난한 이들의 교회'가 될 수 있는 것이다(8항).

다섯째, 노고 -땀 흘려 일하는, 육체 노동자들뿐 아니라 학자 및 사회에 영향을 끼칠 결정을 내릴 책임을 지닌 정신 노동자들도 노고에 익숙해져 있다. 이러한 노고에도 불구하고 노동은 인간을 위해 좋은 것이다. 그것이 유용하고 즐겁기 때문만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을 표현하고 증가시키므로 좋은 것이다. 노동을 통해서 자연을 변화시킬 뿐 아니라, 인간으로서 충만해지고 '보다 더 인간답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일 근면의 덕을 제외하고 노동이 집단 수용소에서 강제 노동이라는 형벌로, 압박하고 착취하는 수단으로 사용될 때 인간성의 격하를 가져온다(9항).

3. 오늘날에 있어서의 노동과 자본의 갈등

첫째, 노동이 자본보다 우선하며 우위에 있다 - 노동이 생산의 원인이지만 자본은 생산의 도구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노동이 자본보다 더 중요하며 우선한다. 아울러 자본은 땅의 자원이기도 하지만, 자원을 이용하기 위하여 노동에 의해 창조된 결과이기도 하다. 한편 인간이 노동을 시작하는 첫 단계에서는 언제나 자원이라는 창조주 하느님의 선물이 있다(12-13항).

둘째, 노동과 소유 - 재산은 노동에 기여하기 위하여 노동을 통해 얻어지는 생산 수단이다. 생산 수단을 개인의 재산으로 독차지하여 '노동'에 대립되는 '자본'의 형태로 만들거나, 더구나 노동을 착취하려고 한다면, 이는 바로 수단과 목적을 거스르는 것이다.

소유권의 정당한 명분은 개인 소유권이든, 공동 소유권이든, 집단 소유권이든 간에, 오로지 노동을 위해서만 기여해야 한다는 점이고, 노동에 기여함으로써 재화의 보편적인 목적과 재화의 공동 사용권을 성취시킬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적당한 상황에서는, 어떤 생산 수단의 사회화(공동 소유)도 받아들일 수 있다. 노동자들이 기업 경영 또는 이윤 배당에 참여한다든지, 노동에 의한 주식 소유 등 '노동 수단의 공동 소유'를 위한 제안을 할 수 있다(14항).

단지 소유자의 손아귀에서 생산 수단(자본)을 빼앗아, 국가에 넘겨 준다고 해서 생산 수단의 사회화가 충분히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사회화란 각자가 자신의 노동을 기반으로 하여, 다른 모든 사람과 함께하는 커다란 일터에서, 자신도 하나의 소유자라고 온전히 생각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14항).

그 때 인간은 정당한 보수를 받을 수 있으며, 자신의 노동이 단지 기계의 부속품처럼 취급당하지 않으며 '자신을 위해' 노동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렇게 인격적인 가치가 존중될 때 생산성이 높아지고 경제가 발전한다(15항).

4. 노동자의 권리(노사 관계의 당사자들)

첫째, 노사 관계의 당사자인 노동자와 (직접)사용자 그리고 정부, 국제 관계(간접 사용자) - 노동 계약을 제한하는 요인들과, 노동 현장에서 정당하거나 부당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모든 요인 - 상호 의존 체제인 국제경제 하에서의 노동 정책(16. 17항)의 삼자는, 보조성의 원리 속에서 공동선을 지향한다(18항).

둘째, 고용 - 특별히 정부는, 다수의 노동자가 노동할 수 있는 취업의 권리와 기회를 제공하여야 한다. 교육과 직업 훈련을 마치고 일을 하려는 진지한 소망과 공동체의 발전에 책임있게 참여하겠다는 각오를 지닌 젊은이들이, 실업 때문에 좌절하는 것을 보기란 고통스러운 일이다. 실업 수당을 지급해야 할 의무는 생명과 생존의 권리에서 나오는 의무이다. 발전에 있어서 기본요소이자 발전을 실현시킬 수 있는 방법은, 노동의 목적과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관점에서, 그침 없이 인간의 노동을 재평가하는 일이다. 발전은 인간을 통해서, 인간을 위해서 이루어져야 하고, 그리고 인간 안에서 그 결실을 맺어야 한다(18항).

또한 노동자들간의 격차가 심하지 않도록 하며, 또한 무엇보다 특히 노동자가 자신의 권리와 이익을 지키기 위한 자연법적 기본 권리인 단결, 교섭, 쟁의 3권이 정당한 것이고, 또 온전히 지켜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18. 19항).

셋째, 임금과 사회적 혜택 - 어느 사회 경제 체제가 얼마나 정의로운가 하는 것은 결국 그 체제 안에서 인간의 노동이 정당한 보상을 받느냐 못 받느냐 하는 데에서 평가된다(19항). 또한 사회보장(의료 혜택, 휴식과 연금의 권리 와 노후 대책, 산업 재해 보험)과 복지 제도를 실시하여야 한다. 아울러 노동환경과 작업 과정에 대한 권리들도 노동자의 기본적인 권리들이다. 이 모든 권리들이 보장되는 가운데, 노사 관계가 발전하기 위해서 노동조합이 필요하게 된다(19항).

넷째, 노동 조합 - 이 모든 권리들은 노동자들의 자기 보호를 위한 필요성과 더불어 다른 또 하나의 권리, 즉 '단결권'을 갖게 한다. 단결권에 의해 형성된 모든 단체를 노동 조합이라 부른다. 노동의 사회적인 힘은 공동체를 건설하는 데에 있다. 노동 조합을 통해서 노동자들이 보다 많이 '소유'하게 될 뿐만 아니라 보다 나은 '존재' 가 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다(20항).

다섯째, 대부분의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지만 농업 노동은 중요하다(21항). 또한 인간의 존엄성보다 경제적인 이익을 우선시하여, 강하고 건강한 사람이 약하고 병든 사람에게 하는 차별이 장애자들의 노동에 적용되지 않기를 바란다(22항). 또한 이민 노동자들에 대한, 노동의 가치도 동일한 기준에 의해 평가되어야 하지, 국적이나 인종 혹은 종교에 따라 달리 평가되어서는 안 된다(23항).

5. 노동의 영성

첫째, 교회의 임무 - 노동이 언제나 인간의 행위인 이상, 육체와 정신이 온전히 하나로 결합된 전인간이 노동을 하는 것이다. 살아있는 하느님의 말씀, 구원의 복음 역시 전 인간을 향해 있다. 믿음과 희망과 사랑으로 인도되어서, 우리는 하느님께서 노동을 어떻게 보시며, 노동이 어떻게 하느님의 구원 계획의 일부가 되는지를 마음 밑바닥으로부터 갈구한다.

교회는 노동의 인간적 가치라는 관점에서 노동에 관하여 말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는 복음화라는 교회 사명의 일부이다. 동시에 교회는 노동의 영성도 발전시켜야 한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노동을 통하여 하느님께 가까이 갈 수 있고,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 참여하며, 삶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사제직과 예언직과 봉사직에 참여함으로써, 그리스도와의 친교를 깊게 할 수 있어야 한다(24항).

둘째, 창조 사업에 참여하는 노동 - 영성적으로 볼 때 첫째, 인간의 노동은 하느님의 창조 사업에 참여하는 것으로써 둘째,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직접 노동하심으로써 '노동의 복음' 을 선포 실천하셨다(25. 26항).

인간의 가치는 무엇을 가졌느냐에 있지 않고, 어떤 인간이냐에 있다. 마찬가지로 보다 나은 정의와, 보다 넓은 형제애와 보다 인간다운 사회 관계의 질서를 확립하려는 인간의 노력이 기술의 발전보다 훨씬 값진 것이다. 현대의 사상을 지배하는 주제인 진보와 발전은 이와 같은 노동의 영성의 결실로서만 이해될 수 있다. 이것이 '노동의 복음' 의 가르침이며 또한 하느님의 계획이다(26항).

셋째,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 노동에 대하여 말하는 것, 또한 인간 노동은 하느님의 활동을 모방하는 것으로 인간에게 존엄성을 부여한다. 그러나 동시에 모든 노동은 불가피하게 '고생'과 연결되어 있다.

노동의 '고생'에 관한 복음의 마지막 말씀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의 신비 안에서 발견된다. 부활의 신비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인간의 불순명과 대조를 이루는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그분의 순명을 포함한다(로마 5, 19 참조). 또한 성령의 힘으로 부활하심도 드러낸다.

노동의 땀과 고생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에게 그리스도의 일에 사랑으로써 참여할 수 있게 한다. 이 '구원의 일', 즉 구원 사업은 십자가 위에서의 고통과 죽음을 통하여 이루어졌다.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와 일치하여 노동의 고생을 견디어 냄으로써, 인간은 인류의 구원에 있어서 그리스도와 협력하는 것이다. 인간은 매일 제 십자가를 짊어짐으로써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라는 것을 드러낸다.

그리스도인은 노동 안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작은 부분을 발견하며, 그리스도와 같은 정신으로 이를 받아들인다. 노동 안에서 그리스도의 부활로 인하여 우리도 '새로운 하늘과 새 땅'의 선포를 듣는다(2베드 3, 13; 묵시 21, 1). 노동의 고생을 통해서 인간과 세상은 '새로운 하늘과 새 땅'에 참여하는 것이다. 고생이 없이는 십자가가 노동의 영성에 꼭 필요한지를 절대로 확인할 수 없다. 다른 한편으로 이 십자가는 노동 자체로부터 솟아 나오는 새로운 선을 보여주고 있다.

인간 노동의 결실인 이 '새로운 선'은 이미 정의가 깃들여 있는 '새 땅'의 한 작은 부분이 아닌가?(2베드 3, 13 참조) 노동이 십자가의 작은 일부라면 그리스도의 부활과 어떻게 연결되는가? 공의회는 말한다. 새로운 땅에 대한 기대가 현세의 이 땅에 대한 노력을 약화시켜서는 안 될 것이고, 오히려 더욱 자극해야 할 것이다. 새로운 시대를 예고해 주는 인간 공동체가 이 땅에서 자라고 있기 때문이다. 현세적 진보를 하느님 나라의 성장과 구별해야겠지만, 이것이 인간 사회의 질서를 보다 더 낫게 하는 데에 이바지하고 있는 한 하느님의 나라를 위해서도 중대한 의미를 가진다(사목 헌장 39항 참조).

그리스도인들은 물질적인 진보에 있어서뿐 아니라, 하느님 나라의 성장에 있어서도 자기가 하는 노동의 중요성을 깨달아야 한다. 성령의 힘과 복음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 모두는 하느님 나라로 초대받고 있는 것이다(27항).

- 요한 바오로 2세 1981. 9. 14



나눔

1. 위 문헌 구절 중 내 마음을 끌어당기는 말씀이 있습니까?

2. 교회는 노동하는 인간이 사회 정의를 실천하는 것은 다른 사람에 대한 투쟁이 아니라 '정의를 위한 투쟁'이라고 말합니다. 내가 직장을 복음화할 때, 이러한 투쟁을 하게 됩니까?



약속

·주님의 수고, 수난과 부활의 영광을, 내가 땀 흘려 노동하여 얻은 결과와 어떤 식으로 연결시켜 일하렵니까?



기도

"무슨 일에나 사람을 섬긴다는 생각으로 하지 말고 주님을 섬기듯이 정성껏 하십시오. 여러분은 주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상으로 받게 되리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골로 3, 23-24).

차례




24-2. 평화를 창조하는 가정



여기

·우리 가정은 지금 행복합니까?

·우리 가정의 행복을 위협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말씀 - 교황 요한 바오로 2세(회칙 '가정 공동체' 86항)

하느님의 오묘한 뜻에 따라서, 하느님의 아들은 나자렛 성가정에서 긴 세월의 숨은 생활을 하셨다. 그래서 그것은 모든 그리스도인 가정의 원형이며 모범이다. 그것은 세상에서 둘도 없는 가정이었다. 그 가정 생활은 팔레스티나의 한 작은 동리에서 익명과 침묵 가운데서 이루어졌다. 그것은 가난과 박해와 망명의 시련을 겪었다. 그것은 비 할데 없이 들어올려지고 순수한 방법으로 하느님께 영광을 드렸다. 그리고 매일 매일의 의무에 충실하고, 삶의 걱정과 시련을 견디어 내며, 타인의 요청에 개방적이고 관대하며, 이에 대한 하느님의 계획을 기쁘게 완수한다는 것은 틀림없이 그리스도인 가정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가정에 도움이 될 것이다.



배움 가정은 인류 가족의 평화를 창조한다

'94. 1. 1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세계 평화의 날) 교황 담화

1. 세계는 평화를 염원하고 있으며 또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쟁과 분쟁, 점증하는 폭력과 사회 불안 그리고 물질적인 빈곤 상황이 계속하여 무죄한 희생자들을 낳고 개인간 민족 간의 분열을 야기시키고 있습니다. 평화는 때때로 결코 도달할 수 없는 목표처럼 보입니다.

우리는 낙담해서는 안됩니다. 그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평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평화는 하느님께서 세우신 원초적인 계획의 한 부분이기에 그렇습니다.

저는 국제 가정의 해에 맞이하는 이 세계 평화의 날 담화에서 가정과 평화의 밀접한 관계를 성찰하고자 합니다.

생명과 사랑의 공동체인 가정

2.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교육 공동체인 가정은 인간의 정체성 확립을 도와 주는 종교적 문화적 가치의 전수를 위한 특혜 수단입니다. 사랑을 토대로 하여 생명을 내어 주는 가정은 그 자체 안에 바로 사회의 미래를 안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가정의 가장 특별한 과업은 평화의 미래에 공헌하는 것입니다.

가정은 자녀들이 모든 인간의 존엄성과 평화의 가치를 존중하도록 가르치는 교육자로서 그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는 부모들의 노력을 통하여 평화의 과업을 성취할 것입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을 받아들이고 그들의 필요와 요구를 자기 것으로 삼아 자신이 누리는 혜택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사랑, 자기를 내어 주는 그 사랑에 따라 살아가는 가정 환경에서, 평화의 가치에 대한 '가르침'은 물론 그 이상의 증거가 이루어져야만 합니다. 인간의 생명과 존엄에 대한 깊은 존경심을 토대로 삼아 상호 이해와 인내, 격려와 용서로 실천되는 가정적인 덕행들은 가정 공동체로 하여금 평화에 대한 최초의 근본적인 체험을 할 수 있게 해줍니다. 이러한 사랑은 자기 희생의 대가를 치르더라도 다른 사람의 선익을 추구하는 강렬하고도 영원히 계속되는 도덕적 힘입니다. 더 나아가서 참사랑은 언제나 평화를 위하여 절실하게 필요한 정의와 더불어 함께 나아갑니다. 참사랑은 곤경을 겪고 있는 사람들, 가정이 없는 사람들, 사랑과 보호를 받지 못하는 어린이들, 외롭고 버림받은 사람들에게로 다가갑니다.

평화 결핍의 희생물인 가정

3. 평화를 위한 그 원초적인 소명에 반하여, 불행하게도 가정은 흔히 긴장과 억압의 현장이 되고 있으며, 오늘날의 사회에 만연된 온갖 폭력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희생의 현장이 되고 있습니다.

긴장은 때때로 가정 내부의 관계에서 보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긴장들은 흔히 일자리가 부부들을 서로 멀리 떨어져 있게 할 때에, 그리고 고용의 불확실성과 실업으로 인해 생존 그 자체에 대한 걱정과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시달릴 때에 화목한 가정 생활을 이루기가 어려운 곤경에서 기인하는 것입니다. 또한 가족들과 함께 행복하고도 풍요로운 삶을 추구하기보다는 저마다 자기 민족만을 찾는 향락주의와 소비주의에 젖은 행동거지에서 긴장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부모들의 빈번한 언쟁, 자녀 출산의 거부, 미성년자 유기와 학대 등은 이미 가정의 평화가 심각한 위험에 처해 있다는 서글픈 징후입니다. 이는 분명코 부부의 별거라는 슬픈 해결책으로 치유될 수 없으며, 더더군다나 참으로 현대 사회의 '유행병'인 이혼으로는 결코 해결될 수 없습니다(사목 헌장 47항 참조).

4. 전쟁과 폭력은 가정 구조를 약화시키고 파괴하는 분열의 힘이 될 뿐 아니라 또한 평화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행동 양식을 제안하고 실질적으로 강요함으로써 국민 정신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결코 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와 관련하여, 불행하게도 요즈음 무력 분쟁에서 직접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소년 소녀들, 심지어는 조그만 어린이들까지 그 숫자가 점점 불어나고 있다는 이 서글픈 사실을 개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은 무장 민병대에 가입하도록 강요당하고 있으며, 자신이 언제나 잘 알아듣지도 못하는 명분을 위하여 투쟁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또 다른 경우에 그들은 생명을 아주 경시하여 살인까지도 서슴지 않는 진정한 폭력 문화에 연루되고 있습니다.

또한 수많은 어린이들이, 너무나도 많은 어린이들이 아늑한 가정을 빼앗기고 있습니다. 흔히는 가정이 비어 있습니다. 실제로 다른 관심사들을 쫓는 부모들은 자기 자녀들을 제멋대로 놀도록 방치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경우에는 자기 가정이란 아예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집이 없어 거리를 헤매는 어린이들, 자기 자신 외에는 어떤 의지가지도 없는 수많은 어린이들이 있습니다. 이 거리의 어린이들 가운데 얼마는 비참하게 죽어 갑니다. 다른 어린이들은 마약의 이용이나 판매 그리고 매춘에 이끌려 들어가고, 마침내는 범죄 조직으로 떨어지고 마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이토록 만연되어 있는 수치스러운 상황을 어찌 모른 체할 수 있습니까! 바로 사회의 미래가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어린이들을 거부하거나 소외시키고 절망적인 처지로 몰아넣는 그러한 공동체는 결코 평화를 알 도리가 없습니다.

평화로운 미래를 바라보려면, 모든 어린이가 착취와 배반이 아니라 따뜻한 보호와 끊임없는 애정을 체험하도록 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국가에서 어린이들을 지원하는 구조와 시책들을 통하여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 무엇으로도 대치할 수 없는 안정과 신뢰의 분위기를 보장해 주는 가정의 공헌은 앞길이 창창한 어린이들이 밝은 미래를 바라보게 하고 장차 성장하여 사회의 진정한 진보를 이루는 책임 있는 역할을 할 준비를 하도록 도와 주는 데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어린이들은 이미 우리 가운데 현존하는 미래입니다. 어린이들이 평화가 무엇을 뜻하는지 체험함으로써 평화의 미래를 창조할 수 있게 하여야 합니다.

평화의 일꾼인 가정

5. 영구적으로 평화로운 질서는 평화의 가치들을 표명하고 견고케 하는 제도를 필요로 합니다. 인간 본성에 가장 직접적으로 부응하는 그러한 제도가 바로 가정입니다. 오로지 가정만이 사회의 지속성과 그 미래를 보장해 줍니다. 그러므로 가정은 그 자체 안에서 표명하고 전수하는 가치들을 통하여 그리고 가족 구성원 각자의 사회 생활 참여를 통하여 평화를 위해 일하는 적극적인 일꾼이 되도록 부름받고 있습니다.

평화에 봉사하는 가정

6. 이제 저는 가정에, 특별히 그리스도인 가정에 직접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가정은 본연의 것이 되어라!"고, 저는 교황 권고 '가정 공동체'에 적었습니다. 가정은 사랑을 주고 생명을 전하도록 부름받았으니 "부부 생활과 부부애로 깊이 맺어진 공동체"가 되십시오! 여러분 부모들은 자녀를 평화인으로 키우고 가르칠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이를 위하여 여러분은 그 누구보다도 먼저 평화를 위한 일꾼이 되어야만 합니다.

자녀 여러분, 뜨거운 젊음으로 꿈과 희망에 찬 미래를 바라보며, 가정의 은혜를 소중히 새기고, 하느님께서 마땅한 길을 거쳐 여러분을 부르실 그 소명에 따라 가정을 이루고 발전시할 책임을 이행할 수 있도록 준비하십시오.

할아버지 할머니 여러분, 다른 가족들과 더불어 세대 사이에 독특하고도 고귀한 연결을 맺어 주고 계시는 여러분은 평화로운 현재에서 과거를 미래에 이어 주도록 여러분의 경험과 증언을 통하여 적극적인 기여를 하십시오.

가정은 화합하는 가운데 자신의 사명을 수행하며 충만한 생활을 해나가야 합니다.

끝으로, 여러 가지 이유에서 어떠한 가정도 없다고 느끼는 수많은 사람들을 우리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저는 그분들에게도 가정이 있다는 사실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교회는 모든 이의 집이요, 가정입니다. 교회는 그 문을 활짝 열고 외롭고 버림받은 사람들을 따뜻하게 맞아들입니다. 그 연령이나 곤경이 어떠하든 그들의 소원이나 희망이 무엇이든, 교회는 외롭고 버림받은 사람들을 하느님께서 특별히 사랑하시는 자녀들로 여기고 있습니다.



나눔

1. 위 성서와 담화 구절 중 내 마음을 끌어당기는 말씀이 있습니까?

2. 가정에서의 내 역할은 무엇입니까? 나는 어떻게 가정을 행복하게 할 수 있습니까?



약속

·우리 주변에 가정이 없는 이들이 있습니까? 있다면 나는 어떻게 그들에게 가정이 되어 줄 수 있습니까?



기도

"눈이 손더러 '너는 나에게 소용이 없다'고 말할 수도 없고 머리가 발더러 '너는 나에게 소용이 없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몸 가운데서 다른 것들보다 약하다고 여겨지는 부분이 오히려 더 요긴합니다. 우리는 몸 가운데서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부분을 더욱 조심스럽게 감싸고 또 보기 흉한 부분을 더 보기 좋게 꾸밉니다"(1고린 12, 21-23).



쉼터

"가정을 사랑한다는 것가정의 가치와 능력을 음미할 줄 알고 항상 그것을 육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가정을 사랑한다는 것은 가정에 위협이 되는 위험과 악을 찾아내어 극복하는 것을 의미한다. 가정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 발전을 두둔하는 환경을 조성하려고 노력하는 것을 의미한다"(요한 바오로 2세 회칙 '가정 공동체' 86항).

차례




24-3. 성, 무엇이 문제인가





여기

·내 삶에서 어떻게 성을 표현하고 있습니까?



말씀 (에페 5, 1-3ㄱ. 4ㄷ. 5)

5 1여러분은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자녀답게 하느님을 닮으십시오. 2그리스도를 본받아 우리를 사랑하신 나머지 우리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셔서 하느님 앞에 향기로운 예물과 희생 제물이 되셨습니다. 3음행이나 온갖 추행이나 탐욕에 찬 말은 입에 담지도 마십시오. 4성도들에게 어울리는 것은 하느님께 대한 감사의 말입니다. 5음행하는 자와 더러운 것을 하는 자와 탐욕을 부리는 자는 그리스도와 하느님의 나라에서 상속을 받지 못한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탐욕을 부리는 자는 우상을 숭배하는 자입니다.



배움

성, 무엇이 문제인가? 성이란 단순히 인간 육체의 성욕을 자극하는 영역만을 말하며, 모든 사람들의 삶의 궁극의 목적은 성적 쾌감에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성은 성행위(성교)와 동의어가 되어 가고 있으며, 또한 침실에서 얼마나 잘 실행해 가느냐 하는 것과 동일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외설적인 선전 문구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전적으로 부정적인 단죄에서 끝날 수만은 없다. 우리는 우리의 성적인 면을 직접적인 성행위가 아닌, 그 이상의 방법으로 생활함으로써 터득한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의견을 내세워야 한다.

첫째, 성은 곧 소속되는 것이다.

성은 서로에게 속하는 것에 관한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서로에게 어떤 관계인가를 말해 준다. 성은 서로의 관계이다. 우리 인간의 성적인 면은 우리 자신을 상대방에게 더 잘 표현할 수 있도록 우리를 도와 준다. 우리가 다른 한 사람과 또는 다른 사람들과 가지는 인간 관계의 종류와 그 정도는 우리가 선택한 삶의 방법에 있어서, 성과 그 표현이 우리 각자에게 어떤 의미를 갖고 있나 하는 것을 결정한다.

결혼한 부부들은 정신과 마음과 몸이 하나가 됨으로써, 그들이 서로에게 속한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 그들의 성행위는 "나는 당신의 것입니다"하는 것을 말해 주며, 서로가 상대방의 일부분이 되도록 초대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자신이 상대방 안에서 완전히 일치됨은 예수 그리스도가 그의 백성과 갖는 유대 관계의 신비의 상징이다. 결혼한 부부들이 끊임없이 서로를 보살피고, 서로를 위하여 관심을 가지고 서로를 나눔은 서로에게 속함으로써 완전한 결합을 이루는 징표가 되는 것이다. 그들의 성행위는 그들 두 사람은 서로를 떠나서는 그들 자신일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이들의 의미 있는 행위는 그들 자신으로부터 자기를 끄집어내어, 서로에게 삶의 구심점을 두는 모험을 하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사제나 수도자들은 그들의 삶을 다른 사람들을 위한 봉사에 바치고 있다. 사제나 수도자들 개개인의 성적인 면의 표현은, 그들이 사도직을 수행함에 있어 얼마나 사람들에게 봉사하고 있으며, 그들에게 속하기로 했는지, 그리고 그들과 더불어 같은 길을 걷는 공동체 일원들에게 얼마나 소속되어 있는가 하는 데서 충분히 나타나고 있다.

둘째, 온전하고 전적인 결합

당신은 현재 한 인간으로서 결혼 전 또는 혼외의 성행위와 관련된 문제를 직면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다른 한 사람과 성적인 관계를 갖기 전에, 당신은 "이 사람이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나? 그리고 나는 상대방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하는 것을 자신에게 정직하게 물어야 할 것이다. 서로에게 의미있는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당신과 상대방 사이에 항구적이며 둘만이 갖는 관계를 지녀야 한다. 당신들의 관계에서 이 항구성과 둘만의 독점적인 면이 없다면 그 관계는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두 사람은 서로에게 아무 중요한 존재가 될 수 없다. 더구나 당신과 상대방의 관계가 의미 없고 소중하지 않는 관계라면, 당신들 사이의 성행위는 다만 서로가 두 육체를 이용하는, 생명을 잃은 공허한 행위에 지나지 않게 된다. 아마 일시적인 육체적 희열을 느낄지 모르겠다. 그것은 다만 두 사람 사이의 비인격적이고 기계적인 성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먼저 상대방에게 자기를 바치지 않고서 가지는 두 사람의 성행위는 참된 의미가 없다.

이와 반대로 결혼하여 서로에게 항구적으로 속하며 독점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두 사람 사이의 성행위는, 그들이 인격적인 결합의 완전한 표현인 것이다. 성행위 안에서 상대방에게 자신을 넘겨줌은, 그들이 서로에게 속하며 상호 의존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들의 관계는 침실에서 시작해서 침실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끊임없이 서로를 바치는 가운데, 그들 인생의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그런 관계로 깊어지는 것이다. 그들은 성행위를 통해서 서로에게 "나는 나 자신으로는 불완전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느님과 모든 사람들 앞에서 "나는 당신 안에서 완전하고 진정한 기쁨을 발견하기로 했습니다"라고 천명하는 것이다. 이러한 확신과 정신 자세를 가짐으로써, 당신들은 성행위를 통해서 두 사람이 가장 의미있는 방법으로 서로를 알 수 있게 된다.

결국 당신은 혼전이나 혼외의 성행위에 대해 결정을 내려야 한다. 당신은 성행위란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두 사람 사이의 결합으로서 영원히 자기를 바치게 하고, 그 사람에게만 성실할 것을 요구하는 관계라고 생각하는지, 아니면 성행위란 아무하고나 별 의미 없이, 또 서로를 바치지 않고서도 할 수 있는 행위라고 생각하는지 결정해야 한다.

셋째, 선택

결혼을 하거나 독신으로 남거나 사제직 또는 수도 생활을 택하든지, 젊은이는 그 길이 자신의 인간성을 최대한으로 발휘할 수 있는 길이라고 믿고 선택하는 것이다. 어떤 길을 택하든지 간에 성적인 충족은 당신이 무엇을 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삶에 관련된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으며, 당신이 그들에게 누구인가 하는 것에 달려 있다. 어떤 삶의 길을 택하든지 모든 선택에는 희생이 따르고 다른 사람의 ‘선’을 위해 포기해야 할 때가 있다.

어떤 젊은이는 결혼한다는 것을 성욕을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할 수도 있으며, 어떤 이는 가족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하여 사제나 수도자의 길을 또는 결혼하기를 원할 수도 있다. 이 각각의 경우에 있어서, 문제는 어떤 삶의 길을 택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동기에서 그런 선택을 하느냐가 중요하다.

넷째, 삶의 한 표본

젊은이들은 결혼한 부부들을 보고, 그들의 삶이 따를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들 자신들도 결혼을 한다. 사제직과 수도 생활에 매력을 느끼는 젊은이들도 그들이 알고 존경하는 사제나 수도자를 통해서 그들의 소명을 알게 되고 매력을 느끼는 것이다.

예수님의 삶은 결혼생활과 사제 생활과 수도 생활을 위한 하나의 본보기로 되어 있다. 남편과 아내는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셨듯이 서로를 사랑해야 한다(에페 5, 24-25 참조). 사제나 수도자들은 그리스도를 본받아 아버지의 뜻을 이루고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하느님을 알고 하느님을 사랑하도록 하기 위하여 자신을 바치도록 부르심을 받은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서 자유로이 독신 생활을 선택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완전한 인간이셨으며, 그분과 삶을 같이 나누는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셨다. 그의 동료들 중에는 남자도 있고 여자도 있었으며 기혼자도 독신자도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이 사람들에게 완전하고 충만한 방법으로 속하셨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성적인 면을 성행위로 충족시키지는 않았다. 그분은 그를 따르기로 선택한 모든 사람에게 자기를 속하게 함으로써 그의 성적인 면을 표현하고 충족시켰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의 따뜻함에 감동되셨으며, 그들의 고통을 함께 나누셨다. 그분은 그들에게 마음을 여셨으나 그들에게 소유당하지는 않으셨다. 그분은 말과 행동에 대한 자신의 독립성을 소중히 하셨으나, 그분의 독립성이 당신의 사명을 완수하는 데 있어서 그들에게 배타적이지는 않으셨다. 그분은 그들에게 지상에서의 어떤 보상도 약속하시지 않았고 당신 자신과 그들과 함께 있는 그의 존재만을 약속했을 뿐이다. 예수님께서 고통 중에 있을 때 제자들에게 깨어서 기도하게 해줄 것을 기도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친구 중 하나인 유다가 그에게 입을 맞추면서 배신했어도 그를 단죄하지 않을 만큼 그의 친구들에게 속해 있었다. 그분은 친구들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바치셨으며 그들을 위해 기도하셨다. 자신의 생명을 포기하는 이 위대한 희생은 자유로운 결정에 의한 것이었다.

다섯째, 본래의 질문, "성,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것을 "우리는 과연 무엇이 문제인가?"하는 새로운 면으로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하여 모든 것을 알 수는 없다. 그것은 자기가 생각하는 최상의 방법으로 자기의 삶을 살기로 한 각자의 결정을 끊임없이 펼쳐 나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적인 완성은 누구에게나 성적인 충족 이상의 것이 되겠다.

우리가 선택한 인생을 충만히 살고, 그 소명을 완성하는 것은 우리가 자신을 얼마나 알고 있으며, 자신에게 얼마나 진실한가에 달려 있다. 어떤 삶이 다른 삶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인가를 비교할 수는 없다. 모든 삶의 길은 각자 위엄과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러한 삶을 살기로 자유로이 선택한 사람들이 바로 그 삶을 충만하게 살고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이다. 각각의 소명은 다른 측면에서 보아야 한다. 모든 삶은 서로를 완성시키고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지, 서로 경쟁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하나의 소명은 우리가 우리 자신이 되는 것, 온전한 인간이 되어 거룩하게 되는 것이다. 거룩하다는 것은 자기가 살기로 결정한 그 삶을 통해서, 자기자신을 온전히 실현하고,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복음 말씀을 실천하며 자기를 완성하는 것을 말한다.

- 톰 모로우 저, 정진형 역, '나는 누구에게 속하나?'

젊은이들의 선택, 48-56쪽, 분도출판사, 1982. 참조.



나눔

1. 위 성서와 본문 구절 중 내 마음을 끌어당기는 말씀이 있습니까?

2. 하느님께서 내가 어떤 방법으로 성을 표현하기를 바라실까요?



약속

·내가 인간의 완성을 향해가면서 앞으로 어떻게 성을 표현하고 싶습니까?

기도 "여러분 자신을 하느님께서 기쁘게 받아 주실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십시오"(로마 12, 1).

차례




24-4. 모두와 함께하는 평화





여기

·나는 살면서 창조의 질서를 어떻게 보존하고 있습니까?

·내가 창조의 질서를 파괴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말씀 (로마 8, 19-20. 23-25)

8 19모든 피조물은 하느님의 자녀가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20피조물이 제 구실을 못하게 된 것은 제 본의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그렇게 만드신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희망이 있습니다. 23피조물만이 아니라 성령을 하느님의 첫 선물로 받은 우리 자신도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날과 우리의 몸이 해방될 날을 고대하면서 속으로 신음하고 있습니다. 24우리는 이 희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바라는 것은 희망이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누가 바라겠습니까? 25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기에 참고 기다릴 따름입니다.



배움 "창조주 하느님과 함께하는 평화, 모든 피조물과 함께하는 평화"

'90. 1. 1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세계 평화의 날) 교황 담화

서론

1. 세계 평화는 군비 경쟁과 지역 분쟁 그리고 제민족과 국가들 간의 지속적인 불의에 위협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는 자연에 대한 마땅한 존중의 결여, 자연자원의 피폐, 점차 악화되는 생활의 질적 저하로 인하여 세계의 평화가 위협을 당하고 있다는 의식이 증대되고 있습니다. 그러한 상황이 야기하는 불안과 위기 의식은 집단적인 이기심과 타인에 대한 무시 그리고 부정의 온상이 되고 있습니다.

2. 평화로운 사회 발전의 토대인 수많은 윤리 가치들은 생태 환경 문제에 구체적으로 관련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세계가 직면하고 있는 많은 도전들이 상호 의존적이라는 사실은 도덕적 응집력을 갖춘 세계관의 바탕을 둔 해결책의 신중한 협력 모색의 필요성을 확인시켜 주고 있습니다.

3. 하느님께서는 하늘과 바다, 그리고 땅과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을 창조하신 후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지어내셨습니다. 바로 그때에 "이렇게 만드신 모든 것을 하느님께서 보시니 참 좋았다"(창세 1, 31)라고 합니다. 모든 피조물을 인간에게 맡기신 다음에야 - 우리가 읽고 있는 성서의 표현에 따르자면 - 하느님께서는 비로소 "모든 일에서 손을 떼고"(창세 2, 2) 쉬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와는 반대로, 인간은 창조주의 계획을 자의로 거슬러, 즉 죄악을 선택함으로써 기존의 조화를 파괴하였습니다.

4.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인류와 하느님의 화해를 성취하였다고 믿습니다. 이렇게 하여 새로운 창조가 이루어졌습니다(묵시 21, 5 참조). 죄악과 멸망의 사슬에 예속되어 있던 피조물(로마 8, 21 참조)이 이제 새로운 생명을 얻었으며, "우리는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2베드 3, 13).

5. 이러한 성서적 고찰은 인간 활동과 모든 피조물 사이의 관계를 더 잘 이해하도록 우리를 도와 주고 있습니다. 인간이 창조주의 계획에 등을 돌릴 때에, 인간은 다른 피조물의 질서에 피할 수 없는 영향을 미치는 무질서를 야기하게 됩니다. 인간이 하느님과 평화를 이루지 못한다면, 지구 그 자체도 평화를 누릴 수 없습니다. "땅은 메마르고 거기에 사는 모든 것이 찌들어 간다. 들짐승과 공중의 새도 함께 야위고 바다의 고기는 씨가 말라 간다"(호세 4, 3).

이 지구가 '고통'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은 하느님께 대한 우리의 신앙을 고백하지 않는 사람들도 절박하게 의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문제의 근원으로 들어가, 환경의 파괴도 심각한 도덕적 위기의 한 난국일 뿐이라는 진상의 전모를 직시하여야 합니다.

생태계의 위기, 도덕 문제

6. 오늘날 생태계 위기의 일부 요인들은 그 도덕적 성격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첫째 요인이 과학 기술 발전의 무차별 적용입니다. 우리는 생태계의 한 영역에 개입할 때에 그러한 개입이 다른 영역에 미치는 결과와 미래 세대의 행복에 대하여 모두 마땅한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고통스러운 현실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어떤 경우에 있어서 이미 이루어진 훼손을 제대로 복구할 수 없다고는 하더라도, 다른 많은 경우에는 당장 그 훼손을 중지시킬 수 있습니다.

7. 생태학적 문제의 근저에 깔려 있는 도덕적 암시의 가장 근본적이고도 심각한 징후는 생명 존중의 결여입니다. 생명의 존중, 그 무엇보다도 인간 존엄성의 존중은 건실한 경제, 산업 및 과학 발전을 위한 궁극적인 지도 규범입니다. 평화로운 사회는 결코 생명에 대한 존중을 소홀히 할 수 없으며 생명 존중이 바로 모든 피조물의 보전이라는 사실을 경시할 수 없습니다.

해결책의 모색

8. 우주의 질서는 마땅히 존중되어야 합니다. 또 한편 이 지구는 궁극적으로 공동 유산이며 그 소산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9. 우주의 질서와 공동 유산이라는 개념은 지구 자원의 관리를 위한 더 나은 국제적 협력의 필요성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국제적 차원의 공동 활동에 대한 요구는 각국의 책임을 결코 약화시키지 않습니다. 안전한 환경에 대한 권리는 오늘날 새로운 인간 권리 헌장에 포함되어야 할 권리로서 더욱더 줄기차게 제시되고 있습니다.

새로운 연대의 절박한 요구

10. 생태계의 위기는 특히 개발 도상국들과 선진산업국들 사이의 관계에 있어서 새로운 연대의 절박한 도덕적 요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요구는 국가간의 평화로운 협력 관계의 강화를 위한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11. 또한 전세계에 존재하는 빈곤의 구조적 형태를 직접 해결하지 않고서는 적절한 생태학적 균형을 모색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말하여야 합니다. 예를 들자면, 많은 나라의 농촌 빈곤과 불의한 토지 분배는 영세 농업과 토양의 피폐를 야기하여 왔습니다.

12. 우리를 위협하는 또 다른 위협 곧 전쟁의 위협이 있습니다. 불행하게도 현재 과학은 이미 적대 행위의 목적으로 환경을 변화시킬 수 있는 역량을 가지고 있습니다.

13. 현대 사회는 그 생활 양식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해야 합니다. 소수의 무심한 습관이 끼치는 부정적인 결과로 인하여 모든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지 않도록 절제와 극기는 물론 희생 정신이 일상 생활의 일부가 되어야만 합니다.

생태계에 대한 책임을 가르치는 교육, 즉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 그리고 지구에 대한 책임을 가르치는 교육이 절실합니다. 특별히 가정에서 어린이는 자기 이웃을 존중하고 자연을 사랑하는 법을 배웁니다.

14. 창조의 미적 가치를 간과할 수는 없습니다. 대지의 자연미에 대한 존중은 생태학적으로 건전한 개발을 위하여 없어서는 아니 될 필요 조건입니다. 훌륭한 미적 교육과 건강한 환경 유지 사이의 관계는 결코 간과될 수 없습니다.

생태계의 위기, 공동 책임

15. 오늘날 생태계의 위기는 모든 사람의 책임이며, 생태계의 위기를 평화의 추구라는 한층 더 폭넓은 맥락에서 볼 때에 이 지구가 우리에게 하는 말은 곧 우주에는 마땅히 존중하여야 할 질서가 있으며 자유로운 선택의 역량을 부여받은 인간은 미래 세대의 행복을 위하여 이 질서를 보전하여야 할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생태계의 위기는 도덕적 문제라는 말씀을 저는 거듭 되풀이해 드리고자 합니다.

16. 모든 사람을 위하여 건강한 환경을 보전하려는 신앙인들의 투신은 창조주 하느님께 대한 신앙에서 직접 뻗쳐 나오는 것이며, 원죄와 본죄의 결과에 대한 인정으로부터 그리고 그리스도께 구원을 받았다는 확신으로부터 직접 우러나오는 것입니다. 인간의 생명과 존엄성에 대한 존중은 또한 인간과 더불어 하느님을 찬미하도록 부름 받은 다른 모든 피조물들(시편 148; 96 참조)에 대한 존중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1979년에, 저는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를 자연 환경을 증진시키는 사람들의 천상 수호자로 선포하였습니다(사도적 서한 Inter Sanctos, AAS 71). 그분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모든 피조물을 참으로 깊이 존중하는 모범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하느님의 피조물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가난한 사람들의 친구 성 프란치스꼬께서는 모든 피조물들을 - 동물들과 식물들, 온갖 자연들, 형제자매인 해와 달까지 - 초대하여 주님께 영광을 드리고 주님을 찬미하셨습니다. 아씨시의 그 가난한 사람은 우리가 하느님과 평화를 이룰 때에 모든 민족들 간의 평화와 떼어놓을 수 없는 모든 피조물과의 저 평화를 이룩하는 데에 우리 자신을 더욱 훌륭하게 헌신할 수 있다는 놀라운 증거를 보여주고 계십니다.

성 프란치스코의 영감이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저 선하고 아름다운 모든 피조물과 더불어 더더욱 생생한 '형제애'의 의식을 지켜 나가도록 우리를 도와 주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성인께서 인류 가족 안에 존재하는 저 위대하고도 숭고한 형제애에 비추어 모든 피조물을 존중하고 보살펴야 할 우리의 중대한 의무를 끊임없이 깨우쳐 주시기를 빕니다.

-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창조 질서 보전을 위한 생활 수칙 70가지

- 새 하늘 새 땅을 향하여(한국 천주교 정의평화 위원회 제공)

낡은 사고로부터의 해방

1. 바로 지금, 죽어 가는 자연을 생각해 봅시다.

2. 살아 있는 모든 생물들을 존중합시다.

3. 자연의 변화를 받아들이며 자연 속에서 생활합시다.

4. 크고 복잡한 것보다 작고 단순한 것으로!

5. '새 것'만 찾는 습관에서 벗어납시다.

6. '편리함'만 찾으려는 생각에서 벗어납시다.

7. 가끔 한 번씩 쌓인 것들을 털어 버립시다.

가정에서

8. 합성 세제 출입 금지!

9. 깨끗한 물, 살아 있는 물을 마시도록 합시다.

10. 밥상을 살리기 위해 육식보다 채식을, 수입 식품보다는 우리 땅에서 난 식품을!

11. 종이기저귀, 알미늄 호일, 랩의 사용을 삼갑시다.

12. 비닐봉지 사용을 줄이고 남은 것은 가게에 돌려줍시다.

13. 집안의 냉난방 상태를 살펴봅시다(에너지 손실 여부).

14. 자주 쓰지 않는 제품들은 이웃과 공동으로!

15. 적당한 거리는 걸어서

16. 출퇴근은 전철이나 버스를 이용합시다.

17. 길은 항상 깨끗하게!

18. 담배 꽁초 조심!

19. 무연 휘발유 사용은 대기 오염을 줄입니다.

20. 타이어의 수명을 늘리도록 합시다.

21. 차량에서 사용, 교체되는 각종 오일은 재생해야 합니다.

직장에서

22. 우리 차를 마시도록 합시다.

23. 종이는 꼭 양면을 모두 사용한 후 재생해야 합니다.

24. 복사나 인쇄는 꼭 필요한 만큼만!

25. 자신이 사용하는 물품이나 기계를 사랑합시다.

26. 환경 문제에 대한 생각을 동료들과 나누고 열악한 작업 환경은 개선해 나갑시다.

27. 자신이 속한 직장이 공해 기업은 아닌지…….

28. 상품의 본질은 물론 용기 등 그 상품의 쓰레기까지 기업이 책임지도록 요구합시다.

농촌에서

29. 화학 비료와 농약 사용을 줄여 나갑시다.

30. 농사는 이제 생명의 농법인 유기 농법으로!

31. 폐비닐은 꼭 수거해 재활용하도록 합시다.

32. 축사의 오물 처리가 잘 되고 있는지 살펴봅시다.

33. 농기계는 공동 구입 공동 사용을!

34. 농산물 직거래 방안을 찾아봅시다.

35. 농촌 공동체 문화 되살리기

성당에서

36. 성당에는 꼭 걸어다니도록 합시다.

37. 자신이 속한 단체에서 환경 문제 토론의 기회를 가집시다.

39. 안 쓰는 물건 나누기, 폐품 모으기를 실천해 나갑시다.

40. 주일 학교에서도 환경 교육을!

41. 창조 질서 보전을 위한 본당 기구 설치.

42. 지역내 반공해 활동에 공동으로 참여합시다.

생활 속에서

43. 청량 음료 덜 마시기를 생활화합시다.

44. 화학 조미료 안 넣어 먹기를 넓혀 갑시다.

45. 인스턴트 식품을 가급적 먹지 맙시다.

46. 의약품에 대한 바른 지식을 가집시다.

47. 수입품이나 외국 상표 제품은 사지 맙시다.

48. 쓰레기는 언제나 분리 수거를!

49. 우편물, 광고물의 지나친 발송을 중지합시다.

지역 사회에서

50. 환경 운동 모임을 만들고 참여합시다.

51. 핵 발전소나 핵무기에 대해 바로 알도록 합시다.

52. 골프장 건설이 가져오는 문제점을 살펴봅시다(특히 농약 문제).

53. 우리 지역에 공해를 일으키는 곳은 없습니까?

54. 농산물은 농민들과 직거래를 통해 구입합시다.

55. 환경 문제에 적극적인 후보에게 한 표를!

56. 환경 오염은 범죄 행위므로 이에 대해 고발 정신을 가집시다.

산과 들과 바다에서

57. 등산이나 여행 준비를 할 때는 음식물을 간소화하고 일회용품의 사용은 줄입시다.

58. 텐트는 지정된 장소에만!

59. 물가에서 세차는 절대 금지!

60. 제발 계곡물을 괴롭히지 마세요!

61. 땅과 돌을 맨발로 디뎌 봅시다.

62. 강은 강대로 바다는 바다대로(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친해지도록 해봅시다).

63. 항상 산의 정상까지 올라가야 한다는 생각은 버립시다.

자녀들과 함께할 일

64. 학용품은 필요한 만큼만!

65. 아이가 커가며 필요없게 된 물건들은 이웃이나 친지에게 물려주도록 합시다.

66. 간식은 이제 엄마 솜씨로!

67. 환경 문제 자료나 비디오를 함께 보고 느낀 점을 나눕시다.

68. 버려지는 쓰레기 중에서 재활용이 가능한 것은 무엇인지 찾아봅시다.

69. 자연을 주제로 한 동요나 성가 배우기.

70. 흙이나 물이나 모래에서 함께 노는 시간을 마련합시다.



나눔

1. 위 성서와 담화문 구절 중 내 마음을 끌어당기는 말씀이 있습니까?

2. 하느님께서는 왜 그리고 어떻게 우리에게 세상을 다스리라고 하셨습니까?



약속

·창조 질서 보전을 위한 생활 수칙 중에서 내가 지금부터 할 수 있는 일을 골라 실천을 하고 실천합시다.



기도

"사람들이 하는 모든 일은 그분 앞에 드러나서

그분의 눈을 피할 수가 없다.

그분은 영원한 시간을 내려다보시며

그분에게 있어 놀라운 일이란 하나도 없다.

그러므로 '이게 무엇이냐, 왜 이러느냐?'라고 말하지 말아라.

모든 것은 목적이 있어서 만들어진 게 아니냐?"

(집회 39, 19-21)

차례




25. 찰고 - 신부님과 만나요



면담1

·'삼위 일체 하느님' 에 대해서

- 성부,

- 성자,

- 성령.

·하느님 나라

·복음

·교회

·성사

·예수님은 누구이십니까?

·내가 만난 주님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예수님을 느끼거나 만난 적이 있습니까?)

·예수님의 말씀 중에서 내가 앞으로 좌우명처럼 꼭 기억하면서 지키고 싶은 구절은 ?


*신부님과 만나기 전에 미리 답변할 것을 준비하면서, 나의 신앙을 정리 해봅시다.

·'하느님'하고 부르면 어떤 생각이나 느낌이 나는지?

·언제 내가 '하느님이 정말 계시구나!' 하고 느낀 적이 있었는지?

·하느님이 구체적으로 내게 해준 것이 무엇인지?

·주님께서 나를 위해 돌아가셨다고 피부로 느끼는지?

·주님께서 나를 사랑하고 계시다는 것을 느끼고 또 믿는지?

·예수님 말씀대로 살면 사회에서 살기가 어렵다고들 하는데, 손해 보면서 어떻게 신앙 생활 할 수 있는지? 사는데 지장이 많은데도 예수님을 믿겠는지?

·왜 세례를 받으려고 하는지? 세례를 받으면 뭐가 달라지는지?

·세례를 받고 신자들의 모임인 구역·반 공동체나 단체 활동에 참여하겠는지?

·세례를 받고 나서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



면담2

지금까지 내 생애 속에서 느낀 하느님에 대해서 쓰십시오. 하느님께서 어떻게 나와 함께해 주셨는지, 내가 언제 그분을 느끼게 되었는지…

그리고 마음에 드는 예수님의 말씀을 성서에서 찾아 옮겨 쓰고 그 말씀을 앞으로 어떻게 실현하며 살 것인지 각오를 쓰십시오.

차례



26. 세례 성사



- 어른 입교 예식서,

제2장 간략한 어른 입교 예식서 (112-128면 참조)

개회식 - 환영식

시작성가 가톨릭 성가 1. 나는 믿나이다. <일어섬>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 아멘.

† 여러분(당신)은 하느님의 교회에서 무엇을 청합니까?

◎ 신앙을 청합니다.

† 신앙이 여러분(당신)에게 무엇을 줍니까?

◎ 영원한 생명을 줍니다.

† 영원한 생명이란 다른 것이 아니라, 참 하느님을 알고, 그분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생명의 원천이 되게 하시고 유형 무형한 만물의 주인이 되시게 하셨습니다. 만일에도 여러분(당신)이 세례를 청하면서도 아직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고 그의 제자가 되겠다는 결의를 가지지 못했다면 영원한 생명을 청하는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당신)은 이미 그분의 말씀을 들었고, 그분의 계명을 지키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여러분(당신)은 형제들과 함께 사귀며 기도에 참여하고 착실한 그리스도교 신자가 되기 위하여 이 모든 것을 행한 것이 아닙니까?

◎ 예, 그렇습니다.

† 예비 신자(들)의 대부 대모가 되시려고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당신)은 하느님 대전에서 이 예비 신자가(들이) 오늘 입교 성사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 여러분(당신)이 이 예비 신자(들)에게 말과 행동으로 그리스도를 받들어 섬기는 증거를 보여주셨으니, 앞으로는 그들을(그를)도와 주기로 결심하셨습니까?

◎ 도와 주기로 결심하였습니다.

† 기도합시다.

지극히 인자하신 하느님, 여기 있는 당신의 종(들)을 위하여 당신께 감사드리나이다. 일찍부터 그들은(그는)여러 가지 방법으로 도움을 주시는 당신을 찾다가 오늘 당신의 부르심을 받고 교회 안에서 당신께 응답하였사오니, 그(들)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기꺼이 당신 사랑의 계획을 완성하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 아멘.

말씀 전례

<앉음>

제1독서 이 땅을 네 후손에게 주리라(창세 15, 1-6. 18ㄱ)

그 때에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환상으로 나타나 말씀하셨다. "무서워하지 말아라, 아브람아, 나는 방패가 되어 너를 지켜주며, 매우 큰 상급을 네게 내리리라." 그러자 아브람이 여쭈었다. "주님, 나의 주님, 저는 자식이 없는 몸입니다. 가문의 대를 이을 사람이라고는 다메섹 사람 엘리에젤밖에 없는데 제게 무엇을 주신다는 겁니까? 저를 보십시오. 하느님은 제게 자식 하나 점지해 주지 않으셨습니다. 제 대를 이을 사람이라고는 제 집의 이 종녀석 밖에 없지 않습니까?" 아브람이 이렇게 여쭙자, 주님의 말씀이 그에게 내렸다. "네 대를 이를 사람은 그 사람이 아니다. 장차 네 몸에서 날 네 친아들이 네 대를 이을 것이다." 그리고는 그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 말씀하셨다. "하늘을 쳐다보아라. 셀 수 있거든 저 별들을 세어 보아라. 네 자손이 저렇게 많이 불어날 것이다." 그가 주님을 믿으니, 주님께서 갸륵하게 여기시어, 그날 주님께서 아브람과 계약을 맺으시며 말씀하셨다. "나는 이집트 개울에서 큰 강 유브라데스에 이르는 이 땅을 네 후손에게 준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23, 1-3ㄱ. 3ㄴ-4. 6.)

◎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노라.

1.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노라

파아란 풀밭에 이 몸 뉘어주시고

고이 쉬라 물터로 나를 끌어 주시니

내 영혼 싱싱하게 생기 돋아라.

◎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노라.

2. 주님께서 당신 이름 그 영광을 위하여

곧은 살 지름길로 날 인도하셨어라

죽음의 그늘진 골짜기를 간다 해도

당신 함께 계시오니, 무서울 것 없나이다

당신의 막대와 그 지팡이에

시름은 가시어서 든든하외다.

◎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노라.

3. 한평생 은총과 복이 이 몸을 따르리니

오래 오래 주님 궁에서 살으오리다.

◎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노라.

복음전 노래 (요한 8, 12) <일어섬>

◎ 알렐루야/알렐루야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 알렐루야.

복음 나를 따르려면 자기를 버리고 나를 따르라(마태 16, 24-27)

†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 또한 사제와 함께.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 주님 영광 받으소서.

그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합니다. 제 목숨을 보존하려고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며 나 때문에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얻을 것입니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는다 해도 제 목숨을 잃는다면 무슨 이익이 있겠습니까? 사람의 목숨을 무엇과 바꿀 수 있겠습니까? 사람의 아들이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자기 천사들을 거느리고 올 터인데 그때에 그는 각자에게 그 행실대로 갚아줄 것입니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미사 중에 세례식을 거행할 때에는, '본기도' 와 '독서', '화답송', '복음전 노래' 와 '복음'이 그날 미사 전례에 맞춰져 바뀔 수도 있습니다.)

강론 <앉음>

묵상과 침묵 기도

보편 지향 기도 <일어섬>

† 그리스도의 성사를 청하는 친애하는 이 형제들과(형제와) 우리 모든 죄인들이 그리스도를 믿고 참회하는 마음으로 일생을 지내며 새 생활을 계속할 수 있기 위하여 열심히 기도드립시다.

1) 주님, 저희 모든 이에게 진실한 참회의 마음을 새롭게 하시며 불타오르게 하소서.

◎ 주님, 저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2) 주님, 세례로 죄에 대하여 죽은 저희 모든 이가 그리스도의 구원을 받아 그 은혜를 밖으로 드러내 보일 수 있게 하소서.

3) 주님, 여기 있는 당신 종들이 사랑을 믿으며 뉘우치는 마음으로 구세주 그리스도를 맞이할 준비를 갖추게 하소서.

4) 주님, 이 형제들이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그리스도를 따름으로써 죄에 물들었던 마음을 고치고 짐을 벗어버리게 하소서.

5) 주님, 성령의 힘으로 이 형제들을 깨끗이 씻어 주시고, 성령의 인도로 성덕의 길로 이끌어 주소서.

6) 주님, 이 형제들이 세례의 성사로 그리스도와 함께 묻힘으로써 죄에 대하여 죽고 하느님을 위하여 영원히 살게 하소서.

7) 주님, 이 형제들이 하느님 아버지께로 나아가 성덕과 애덕의 결실을 맺게 하소서.

8) 하느님 아버지께서 세상을 위하여 당신의 사랑하시는 아들을 보내셨으니, 온 세상이 그 사랑으로 돌아오게 하소서.

구마 기도와 예비 신자 성유의 도유;

Oleum Catechumenorum : 0.C.

† 죄의 종살이를 하는 인간에게 당신 자녀들이 누리는 자유를 주시려고 독생 성자를 보내신 전능하신 주 하느님, 저희가 여기 있는 당신의 종들을 위하여 겸손되이 간구하오니, 세상의 유혹을 겪으며 마귀의 간계에 걸려들어 스스로 범죄하였음을 당신 어전에 고백하는 이 형제들을, 당신 성자의 수난과 부활로 어두움의 권세에서 구해 내시고,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지켜주시며 인생길에 항상 보호해 주소서.

◎ 아멘.

† 구세주 그리스도의 능력이 여러분(당신)을 지켜 주시도록 기원하며, 이를 표시하기 위하여 세세에 살아계시는 우리 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여러분(당신)에게 구원의 성유를 바릅니다.

◎ 아멘. <앉음>

세 례 집 전

세례수 축성

† 깨끗함과 생명을 주시려고 물을 만드신 전능하신 천주 성부님, 찬미받으소서.

◎ 천주 성부님, 찬미받으소서.

† 당신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 교회를 창립하시려고 당신 가슴에서 물과 피를 다 쏟으신 예수 그리스도님, 천주의 독생 성자님, 찬미받으소서.

◎ 천주의 독생 성자님, 찬미받으소서.

† 요르단 강물에서 세례를 받으신 그리스도에게 강림하심으로써 장차 저희 모든 이가 성령으로 세례를 받도록 섭리하신 천주 성령님, 찬미받으소서.

◎ 천주 성령님, 찬미받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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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성된 세례수가 없을 경우)

† 유일한 아버지이신 주님, 저희를 도와 주시고, 이 물을 거룩하게 하시어, 사람들이 이 물로 세례를 받으며 죄를 씻고 주님의 자녀로 다시 나게 하소서.

◎ 주님, 저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 이 물을 거룩하게 하시어, 이 물로 세례를 받으며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에 참여하는 모든 이가 그리스도 안에서 성자의 모습을 닮게 하소서.

◎ 주님, 저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 이 물을 거룩하게 하시어, 당신이 뽑으신 이들이 성령의 힘으로 다시 나고, 주님의 거룩한 백성 가운데 한몫을 얻게 하소서.

◎ 주님, 저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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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축성된 세례수가 있을 경우)

† 축성된 이 물의 신비로 주님의 자녀(아무와 아무)들을 부르시어 교회의 신앙으로 세례를 받게 하셨으니, 이들을 영신적으로 다시 나게 하시고 이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소서.

◎ 아멘.

† 여러분 다 같이 일어서서 세례를 받기 전에 교회 앞에서 마귀를 끊어 버리고 우리 신앙을 고백합시다. <일어섬>

마귀와 죄를 끊어 버림

† 여러분은 하느님의 자녀로서 자유를 누리기 위하여 죄를

끊어 버립니까?

◎ 예, 끊어 버립니다.

† 죄의 지배를 받지 않기 위하여 악의 유혹을 끊어 버립니까?

◎ 예, 끊어 버립니다.

† 죄의 근원이요 지배자인 마귀를 끊어 버립니까?

◎ 예, 끊어 버립니다.

신앙 고백

† 천지의 창조주 전능하신 천주 성부를 믿습니까?

◎ 예, 믿습니다.

† 동정녀 마리아께 잉태되어 나시고, 고난을 받으시고 묻히셨으며, 죽은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성부 오른편에 앉으신 독생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 예, 믿습니다.

† 성령과, 거룩하고 공번된 교회와, 모든 성인의 통공과, 죄의 사함과, 육신의 부활과, 영원한 삶을 믿습니까?

◎ 예, 믿습니다.

세례식

† 나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 )에게 세례를 줍니다.

세례를 설명하는 예식

세례 후 기름 바름

Sanctum Oleum(S.O.)Chrisma(S.CH.)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신 전능하신 하느님, 주님께서 이 형제 자매(들)의 죄를 사하시고, 물과 성령으로 다시 나게 하셨으니, 몸소 구원의 성유를 바르시어, 주님의 백성이 된 이 형제 자매 (들)로 하여금 사제이시요 예언자이시며 왕이신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살다가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소서.

◎ 아멘.

흰옷을 입힘 <일어섬>

† 여러분 (당신)은 이제 새로이 창조되어 그리스도를 닮게 되었으니, 이 흰옷(수건)을 받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심판날까지 깨끗이 보존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하십시오.

◎ 아멘. <앉음>

촛불을 켜줌

† 대부 대모는 (이 부활초에서) 촛불을 켜서 새 영세자(들)에게 주십시오.

† 여러분(당신)은 그리스도님을 통하여 빛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끝까지 빛의 아들, 딸로서 살아가며 신앙에 항구하여 하늘나라에 계시는 천사들과 함께 여러분(당신)도 다시오시는 주님을 영접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 아멘.

파견식

<† 주님의 자녀가 된 세례자 여러분 축하합니다. 이제 우리 모두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주님의 기도를 가슴속 깊이 새기며 바칩시다.

◎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축복

† 전능하신 천주 성부와 † 성자와 성령은 여기 있는 세례자들과 저희 모두에게 강복하소서.

◎ 아멘.>

*미사 중에 세례식을 거행할 때에는 <파견식>은 생략한다.

파견 성가 가톨릭 성가 77번 '천주여 네 권능과'

차례





부 록




부록1

주요 기도



1. 성호경

(십자 성호를 그으며)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 주님의 기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아멘.

3. 성모송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 중에 복되시며, 태중의 아들 예수님 또한 복되시나이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4. 영광송

(밑줄 부분에서 고개를 숙이며)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5. 사도신경

전능하신 천주 성부,

천지의 창조주를 저는 믿나이다.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님

(밑줄 부분에서 고개를 깊이 숙인다.)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 마리아께 잉태되어 나시고

본시오 빌라도 통치 아래서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

저승에 가시어 사흗날에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하늘에 올라 전능하신 천주 성부 오른편에 앉으시며

그리로부터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믿나이다.

성령을 믿으며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와 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으며

죄의 용서와 육신의 부활을 믿으며

영원한 삶을 믿나이다.

아멘.

6. 반성 기도

주님, 오늘 생각과 말과 행위로 지은 죄와 의무를 소홀히 한 죄를 자세히 살피고 그 가운데 버릇이 된 죄를 깨닫게 하소서. 아멘.

7. 십계명

일, 한 분이신 하느님을 흠숭하여라.

이, 하느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마라.

삼, 주일을 거룩히 지내라.

사, 부모에게 효도하여라.

오. 사람을 죽이지 마라.

육. 간음하지 마라.

칠. 도둑질을 하지 마라.

팔. 거짓 증언을 하지 마라

구. 남의 아내를 탐내지 마라.

십. 남의 재물을 탐내지 마라. (잠깐 반성한다)

8. 고백 기도

전능하신 하느님과 형제들에게 고백하오니 생각과 말과 행위로 죄를 많이 지었으며, 자주 의무를 소홀히 하였나이다. (가슴을 치며) 제 탓이오, (가슴을 치며) 제 탓이오, (가슴을 치며) 저의 큰 탓이옵니다. 그러므로 간절히 바라오니, 평생 동정이신 성모 마리아와 모든 천사와 성인과 형제들은 저를 위하여 하느님께 빌어주소서.

전능하신 하느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죄를 용서하시고, 영원한 생명으로 이끌어주소서. 아멘.

9. 통회 기도

하느님, 제가 죄를 지어 참으로 사랑받으셔야 할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사오니, 악을 저지르고 선을 소홀히 한 모든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나이다. 또한 주님의 은총으로 속죄하고 다시는 죄를 짓지 않으며 죄지을 기회를 피하기로 굳게 다짐하오니 우리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 공로를 보시고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소서. 아멘.

삼덕송

10. 신덕송

하느님, 하느님께서는 진리의 근원이시며 그르침이 없으시므로 계시하신 진리를 교회가 가르치는 대로 굳게 믿나이다.

11. 망덕송

하느님, 하느님께서는 자비의 근원이시며 저버림이 없으시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통하여 주실 구원의 은총과 영원한 생명을 바라나이다.

12. 애덕송

하느님, 하느님께서는 사랑의 근원이시며 한없이 좋으시므로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하며 이웃을 제 몸같이 사랑하나이다.

13. 봉헌 기도

하느님, 저를 사랑으로 내시고, 저에게 영혼 육신을 주시어 주님만을 섬기고 사람을 도우라 하셨나이다. 저는 비록 죄가 많사오나, 주님께 받은 몸과 마음을 오롯이 도로 바쳐, 찬미와 봉사의 제물로 드리오니, 어여삐 여기시어 받아주소서. 아멘.

14. 삼종 기도

○ 주님의 천사가 마리아께 아뢰니,

● 성령으로 잉태하셨나이다.

(성모송 -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 중에 복되시며, 태중의 아들 예수님 또한 복되시나이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 "주님의 종이오니,

●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

(성모송 -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 중에 복되시며, 태중의 아들 예수님 또한 복되시나이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 이에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 저희 가운데 계시나이다.

(성모송 -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 중에 복되시며, 태중의 아들 예수님 또한 복되시나이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 천주의 성모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시어

●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소서.

† 기도합시다.

하느님, 천사의 아룀으로 성자께서 사람이 되심을 알았으니, 성자의 수난과 십자가로 부활의 영광에 이르는 은총을 저희에게 내려주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15. 부활 삼종 기도

(예수 부활 대축일부터 성령 강림 대축일까지)

○ 하늘의 모후님, 기뻐하소서. 알렐루야.

● 태중에 모시던 아드님께서, 알렐루야.

○ 말씀하신 대로 부활하셨나이다. 알렐루야.

● 저희를 위하여 하느님께 빌어주소서. 알렐루야.

○ 동정 마리아님, 기뻐하시며 즐거워하소서. 알렐루야.

● 주님께서 참으로 부활하셨나이다. 알렐루야.

† 기도합시다.

하느님,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온 세상을 기쁘게 하셨으니, 성자의 어머니 동정 마리아의 도움으로 영생의 즐거움을 얻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묵주 기도 (로사리오)

16. 환희의 신비

1단 마리아께서 예수님을 잉태하심을 묵상합시다.

2단 마리아께서 엘리사벳을 찾아보심을 묵상합시다.

3단 마리아께서 예수님을 낳으심을 묵상합시다.

4단 마리아께서 예수님을 성전에 바치심을 묵상합시다.

5단 마리아께서 잃으셨던 예수님을 성전에서 찾으심을 묵상합시다.

17. 고통의 신비

1단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피땀 흘리심을 묵상합시다.

2단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매맞으심을 묵상합시다.

3단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가시관 쓰심을 묵상합시다.

4단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 지심을 묵상합시다.

5단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심을 묵상합시다.

18. 영광의 신비

1단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을 묵상합시다.

2단 예수님께서 승천하심을 묵상합시다.

3단 예수님께서 성령을 보내심을 묵상합시다.

4단 예수님께서 마리아를 하늘에 불러올리심을 묵상합시다.

5단 예수님께서 마리아께 천상 모후의 관을 씌우심을 묵상합시다.

19. 식사 전 기도

† 주님, 은혜로이 내려주신 이 음식과 저희에게 강복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 아멘.

20. 식사 후 기도

† 전능하신 하느님, 저희에게 베풀어주신 모든 은혜에 감사하나이다. ◎ 아멘.

† 주님의 이름은 찬미를 받으소서.

◎ 이제와 영원히 받으소서.

† 세상을 떠난 모든 이가 하느님의 자비로 평화의 안식을 얻게 하소서. ◎ 아멘.

21. 일을 시작하며 바치는 기도

○ 오소서, 성령님. 저희 마음을 성령으로 가득 채우시어 저희 안에 사랑의 불이 타오르게 하소서.

● 주님의 성령을 보내소서. 저희가 새로워지리이다. 또한 온 누리가 새롭게 되리이다.

† 기도합시다.

하느님, 성령의 빛으로 저희 마음을 이끄시어 바르게 생각하고 언제나 성령의 위로를 받아 누리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 아멘.

22. 일을 마치고 바치는 기도 (성모님께 보호를 청하는 기도)

○ 거룩하신 천주의 성모님, 저희를 지켜주시고 어려울 때 저희가 드리는 간절한 기도를 물리치지 마소서. 또한 온갖 위험에서 언제나 저희를 지켜주소서. 영화롭고 복되신 동정녀시여.

23. 아침 기도

(십자 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 아멘.

○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 아멘.

◎ 하느님, 저를 사랑으로 내시고, 저에게 영혼 육신을 주시어 주님만을 섬기고 사람을 도우라 하셨나이다. 저는 비록 죄가 많사오나, 주님께 받은 몸과 마음을 오롯이 도로 바쳐, 찬미와 봉사의 제물로 드리오니, 어여삐 여기시어 받아주소서. 아멘.

† 우리 주 하느님께 권능과 영광, 지혜와 굳셈이 있사오니, 찬미와 감사와 흠숭을 영원히 받으소서. ◎ 아멘.

† 전능하신 하느님, 오늘도 저희 생각과 말과 행위를 주님의 평화로 이끌어 주소서. ◎ 아멘.

24. 저녁 기도

(십자 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 아멘.

† 주님, 오늘 생각과 말과 행위로 지은 죄와 의무를 소홀히 한 죄를 자세히 살피고 그 가운데 버릇이 된 죄를 깨닫게 하소서. (잠깐 반성한다.)

◎ 하느님, 제가 죄를 지어 참으로 사랑받으셔야 할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사오니, 악을 저지르고 선을 소홀히 한 모든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나이다.

또한 주님의 은총으로 속죄하고 다시는 죄를 짓지 않으며 죄지을 기회를 피하기로 굳게 다짐하오니 우리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 공로를 보시고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소서.

◎ 아멘.

○ 하느님, 하느님께서는 진리의 근원이시며 그르침이 없으시므로 계시하신 진리를 교회가 가르치는 대로 굳게 믿나이다.

● 하느님, 하느님께서는 자비의 근원이시며 저버림이 없으시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통하여 주실 구원의 은총과 영원한 생명을 바라나이다.

○ 하느님, 하느님께서는 사랑의 근원이시며 한없이 좋으시므로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하며 이웃을 제 몸같이 사랑하나이다.

†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오늘 하루도 이미 저물었나이다. 이제 저희는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모든 천사와 성인과 함께 주님을 흠숭하며, 지금 이 순간까지 베풀어 주신 주님의 사랑에 감사하나이다. ◎ 아멘.

† 전능하신 천주 (십자 성호를 그으며) 성부와 † 성자와 성령께서는 저희에게 강복하시고 지켜주소서.

◎ 아멘.

25. 성수 기도

(성당에 들어가면서, 성수를 손에 찍어 성호를 그으며)

○ 주님, 이 성수로 저의 죄를 씻어주시고 마귀를 몰아내시며 악의 유혹을 물리쳐 주소서. 아멘.

(또는)

○ 주님, 이 성수로 세례의 은총을 새롭게 하시고 모든 악에서 보호하시어 깨끗한 마음으로 주님께 나아가게 하소서. 아멘.

26. 가정을 위한 기도

○ 마리아와 요셉에게 순종하시며 가정생활을 거룩하게 하신 예수님, 저희 가정을 거룩하게 하시고 저희가 성가정을 본받아 주님의 뜻을 따라 살게 하소서.

● 가정생활의 자랑이며 모범이신 성모 마리아와 성 요셉, 저희 집안을 위하여 빌어 주시어 모든 가족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하시며 언제나 주님을 섬기고 이웃을 사랑하며 살다가 주님의 은총으로 영원한 천상 가정에 들게 하소서. ◎아멘

27. 부모를 위한 기도

○ 인자하신 하느님, 하느님께서는 부모를 사랑하고 공경하며 그 은덕에 감사하라 하셨으니 저희가 효성을 다하여 부모를 섬기겠나이다.

● 저희 부모는 저희를 낳아 기르며 갖은 어려움을 기쁘게 이겨냈으니 이제는 그 보람을 느끼며 편히 지내게 하소서.

○주님, 저희 부모에게 강복하시고 은총으로 지켜주시며 마침내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 아멘.

28. 자녀를 위한 기도

○ 세상을 창조하신 하느님, 하느님께서는 저희에게 귀한 자녀를 주시어 창조를 이어가게 하셨으니 주님의 사랑으로 자녀를 길러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하소서.

● 주님, 사랑하는 저희 자녀를 은총으로 보호하시어 세상 부패에 물들지 않게 하시며 온갖 악의 유혹을 물리치고 예수님을 본받아 주님의 뜻을 이루는 일꾼이 되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 아멘.

29. 부부의 기도

○ 인자하신 하느님 아버지, 혼인 성사로 저희를 맺어주시고 보살펴 주시니 감사하나이다.

● 이제 저희가 혼인 서약을 되새기며 청하오니, 저희 부부가 그 서약을 따라 즐거울 때나 괴로울 때나, 잘살 때나 못살 때나 성할 때나 아플 때나 서로 사랑하고 존경하며 신의를 지키게 하소서.

○ 또 청하오니 언제나 주님을 찬미하는 저희 부부의 삶이 주님의 사랑을 드러내는 성사가 되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 아멘.

30. 십자가의 길

†주 예수님,

◎저희를 위하여 온갖 수난을 겪으신 주님의 사랑을 묵상하며 성모님과 함께 십자가의 길을 걷고자 하나이다. 저희에게 죄를 뉘우치고 주님의 수난을 함께 나눌 마음을 주시어 언제나 주님을 사랑하게 하시며 성직자들을 거룩하게 하시고 모든 죄인이 회개하도록 은혜를 내려주소서.

◎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 맘속에 주님 상처 깊이 새겨주소서

제 1처 예수님께서 사형 선고 받으심을 묵상합시다.

제 2처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심을 묵상합시다.

제 3처 예수님께서 기력이 떨어져 넘어지심을 묵상합시다.

제 4처 예수님께서 성모님을 만나심을 묵상합시다.

제 5처 시몬이 예수님을 도와 십자가 짐을 묵상합시다.

제 6처 베로니카 수건으로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드림을 묵상합시다.

제 7처 기력이 다하신 예수님께서 두 번째 넘어지심을 묵상합시다.

제 8처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부인들을 위로하심을 묵상합시다.

제 9처 예수님께서 세 번째 넘어지심을 묵상합시다.

제10처 예수님께서 옷 벗김 당하심을 묵상합시다.

제11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심을 묵상합시다.

제12처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심을 묵상합시다.

제13처 제자들이 예수님 시신을 십자가에서 내림을 묵상합시다.

제14처 예수님께서 무덤에 묻히심을 묵상합시다.

31. 자비를 구함

†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 그리스도님, 자비를 베푸소서

◎ 그리스도님, 자비를 베푸소서.

†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32. 대영광송

† 하늘 높은 데서는 하느님께 영광

○ 땅에서는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

● 주 하느님, 하늘의 임금님

○ 전능하신 아버지 하느님

● 주님을 기리나이다, 찬미하나이다.

○ 주님을 흠숭하나이다, 찬양하나이다.

● 주님 영광 크시오니 감사하나이다.

○ 외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님

● 주 하느님, 성부의 아드님

○ 하느님의 어린양

●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님, 저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 성부 오른 편에 앉아 계신 주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 홀로 거룩하시고, 홀로 주님이시며, 홀로 높으신 예수 그리스도님

◎ 성령과 함께 아버지 하느님의 영광 안에 계시나이다. 아멘.

33.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온 누리의 주 하느님! 하늘과 땅에 가득찬 그 영광!

높은 데서 호산나!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찬미받으소서. 높은 데서 호산나!

34. 하느님의 어린양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님 평화를 주소서.

차례




부록 2.

나는 너를 용서한다





배움

고해 성사는 하느님과 이웃과 바로 자기 자신과 화해하는 은총의 자리이며, 고해 성사를 통해 다시 하느님 앞에서 의화되는(의인으로 판결받는다) 화해의 성사입니다.

첫째, 상처와 죄는 사람을 아프게 합니다.

둘째, 서로의 아픔을 치료하고, 화해하지 않으면 내 안에 예수님께서 머물러 계실 수 없습니다.

셋째, 예수님께서 내 안에 계시지 않으면 나의 상처도 치료할 수 없으며, 우리 모두는 기쁨도 사랑도 없이 살아가게 됩니다.

넷째, 다 같이 우리의 마음을 열고 화해합시다.

다섯째, 아래 한솔이의 일기를 읽고 우리가 화해해야 할 이가 누구인지 생각합시다. 그 이가 내 머리 속에 떠오르면 "저는 당신을 용서합니다. 당신도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하고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내 마음 가득히 예수님께서 주시는 사랑과 평화가 깃들게 될 것입니다.

"너희가 남의 잘못을 용서하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실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남의 잘못을 용서하지 않으면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잘못을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마태 6, 14-15)



한솔이의 일기

1992년 7월 15일 수요일 맑음

어제 철이랑 싸우고 나서 오늘까지도 기분이 나빴다. 그래서 철이는 꼴도 보기 싫었다. 만나기도 싫었다. 그리고 철이 생각만 하면 내 마음도 편하지 않았다. 왠지 기도할 때도 마음에 떠오르고 양심에 가책이 되었다. 그래서 주님 만나 뵈옵기가 부끄러워서 요번 주일에는 성당도 안 가고 기도도 안 했다. 괜히 시무룩하고 모든 게 다 재미가 없었다.

그래서 "빨리 화해해야 겠다!"라고 결심하고 다짐했지만 정작 어제 철이를 만나니까 화가 나서 다시 싸웠다. 내가 먼저 저하고 화해하러 갔는데 그 자식이......! 분하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해서 "다시는 그런 놈하고 상종도 하지 말아야 겠다!" 하고는 포기해 버렸다. 그러나 오늘 아침 철이를 안보면 내 마음이 편하고 즐거울 줄 알았는데 그래도 마찬가지고, 오히려 더 괴롭기만 했다.

혼자 방황하다가 근무가 끝나자마자 성당에 가서 신부님께 "어떻게 하면 됩니까?" 하고 여쭈어 보았다. 신부님께서는 "화해는 예수님께서 주시는 은총입니다. 그러니까 먼저 성당에 들어가 예수님 앞에 앉아 그 친구를 상상하며 '나는 너를 용서한다. 너도 나를 용서해다오'하고 마음속으로 말한 다음 '예수님, 화해할 수 있는 은총을 주십시오!'하고 기도해 보라"고 하셨다.

성당에 가서 기도하고 나와 집으로 돌아오다가 우연히 철이를 만났는데 이상하게도, 너무나 쉽게 화해했다. 신부님께 고해성사를 보았다. 그랬더니 신부님께서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용서해 주셨다. 날아갈 것 같았다! 그러고 나니까 기도도 잘 되었다. 또 마음도 편하고 기뻤다.

오늘 나는 한가지 깨달았다. 고해 성사는 '화해의 성사'다. 주님께서는 정말 자비로우신 분이시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부르면 언제나 대답하시고 찾아와 용서해 주시는 사랑 가득한 분이시다! 주님께서 내 죄를 용서해 주셔서, 내가 '자유'를 다시 받았다!

주님께 감사의 기도를 바친다.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의 은총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친구와 화해하여 기쁘게 되었고 또 주님께서 저의 죄를 용서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다시는 죄를 짓지 않고 주님의 사랑 안에 머물러 있는 한솔이가 되겠습니다. 아멘!"

주님, 저 자겠습니다. 안녕히 주무십시오.


성찰 자료-십계명(제3과 참조)

단순히 죄인으로서 긴장과 두려움을 가지고 고백소에 들어가기 보다는 오히려 무한한 사랑을 지니신 아버지께 돌아온 작은아들처럼 신뢰와 희망을 가지고 임합시다.




고해 성사 실습


1. 고해 성사 - '화해의 성사'보는 법

1) 성찰(되돌아봄) :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아내고,

2) 통회(회개) : 잘못한 것을 뉘우치고 아파한 후,

3) 정개(결심) :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기도한

후 상대와 화해하고,

4) 고백(죄를 고함) : 자기가 지은 죄를 사제 통해 예수님께

고백하고,

5) 보속 : 내 죄는 예수님께서 대신 십자가에서 돌아가심으

로써 사(용서)해 주셨으므로 남아 있는 작은 벌(잠

벌)을 보속으로 바쳐 온전히 새로워진다.


2. 고백하는 법(고해 성사 순서)

1)"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성사 본지( )되었습니다."

3)"저는 …(죄를 고백합니다)…!"

4)"이 밖에 알아내지 못한 죄에 대하여도 통회하오니 사하여 주소서."

사제가 사죄경을 읊으며 죄를 사해준다.

"전능하신 천주 성부께서 나도 성부와 †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당신의 죄를 사합니다."

5)"아멘. 감사합니다."

나가서 보속을 바친다.


3. 고백자의 기도

"하느님, 제가 죄를 지어 참으로 사랑받으셔야 할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사오니 악을 저지르고 선을 소홀히 한 모든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나이다. 또한 주님의 은총으로 속죄하고 다시는 죄를 짓지 않으며 죄지을 기회를 피하기로 굳게 다짐하오니 우리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 공로를 보시고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소서."

차례




부록3

주님, 저 여기 있습니다



- 예비 신자 교리반 세례 대상자 피정



피정 일정표1

첫 날 저녁(토)

17:00 출발

18:00 식사

20:00 피정 준비 - 자료 정리

22:00 정리 및 취침

이틀째(일)

07:00 기상

07:30 아침 기도

08:00 식사

09:30 묵상 안내 및 묵상 기도

12:30 식사

14:00 나눔

16:30 발표

17:30 파견 미사



피정 일정표2

오후 2:00 피정 준비 - 자료 정리

3:00 묵상 안내 및 묵상 기도

5:00 간식

5:30 나눔

7:00 파견 미사



피정 준비 자료

여기

1. 교리를 처음 시작할 때의 상황과 조건을 회상해 봅시다.

(교리를 받아야겠다고 느꼈을 때는 언제 무슨 경우였습니까?)

2. 교리를 받으면서 내가 느낀 것은 무엇입니까?

(1)변화된 내 모습은?

(2)기뻤을 때는?

(3)힘겨웠을 때는?



나눔 1

1. 이 교리를 받고 난 지금, 주님께서 내 삶에 영양가 있는 양식이 되고 있습니까?

2. 교리를 통해 하느님의 부르심과 호소를 느끼고 있습니까?

3. 교리를 통해 내가 꼭 해야겠다고 다짐할 만한 일은 무엇입니까?



묵상과 기도

이 글을 읽기 전에 성령이 임하시도록 기도하세요.

이 글을 그냥 읽어 내려가지만 말고 각 구절마다 조금씩이라도 멈추어 머물러 계십시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오시도록!

우리의 삶을 잘 돌이켜 보면서......

그러나 죄책감 없이, 어린이 같은 순수한 마음으로 예수님만을 바라보면서!

매 문단을 마칠 때마다 예수님께 이야기하세요, "예수님 사랑해요!"

이 글을 다 읽고 감상하지만 말고, 당신이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예수님을 만나 뵙고 대화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저에게 더 깊은 사랑을 주신 예수님께서 '당신을 사랑해 주시도록!' 저도 함께 기도합니다.

어머니께서도 당신을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1. 예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

"예수님 알고 싶어요

예수님의 사랑을 피부로 느끼고 싶어요."

피정은 휴식입니다. 일종의 휴식이죠. 피정은 영적인 휴가입니다. 평소에 우리가 어떻게 살고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를 다시 생각해 보고 예수님 안에서 정리하는 영적 휴가의 기간입니다. 피정은 새로운 세계, 낯설은 세계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것도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가만히 있고 하느님께서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느끼고 만나서 하느님과 대화하는 시간입니다. 영세다! 나눔이다! 다 잊고 푹 쉬기만 하면 하느님께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문제들을 헤쳐나갈 수 있는 평화와 힘을 주십니다.

"주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 내가 만드는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 2,000년 전 존재하셨고 나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지금도, 아무 조건 없이 나를 사랑하신다. 내가 그분께 허락하는 정도만큼… 문제는 주님께서 주시는 사랑을 내가 안 받아들이는 것이 문제입니다.



2. 예수님과 협조 - 용서

우리는 가끔 걱정거리, 고민(돈, 성격 등등)때문에 주님을 받아들이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더 기본적인 것은 바로 '앙심 품는 마음',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입니다. 고민이 있다면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고민이겠죠. 걱정을 낮추세요.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만든 고민거리겠죠.

사랑의 첫걸음은 '용서'입니다. "나를 용서하소서" 하면서 앙심을 품고 있다면? 마음의 문을 닫고는 "여는 길을 닫는 것" 입니다. "그 사람 안 만났으면 좋겠다…" 설사 그 자리에서, 그 장소에서 용서하지 못해서 연기 하더라도 꼭 해야만 합니다. 또한 용서는 주고 받는 것입니다. 또 용서할 사람이 별로 없는 것 같지요. 그러나 그것은 그전에 알았지만 시간이 흘러서 잊어버린 것뿐이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모르는 사이에 서로 상처를 주고받고 하면서 지낸 것도 있습니다.

75세 되신 어떤 영국 할머니가 "신부님, 저는 기도 못해요!" "기도하고 싶어요?" "해야죠!" "마음에 어떤 장애가 있어요?" "…" "혹시 누구에게 앙심 품고 있는 것 있어요?" 한참을 울다가 "어떻게 아셔요? 그 동안 내 어머니를 미워했어요!" "할머니, 어머니를 용서하는 마음으로 서로 기도해요!" 그때서야 비로소 그 할머니는 해방감을 느꼈고 기도할 수 있었답니다.

용서의 목적은 예수님의 사랑을 더욱더 많이 받고 싶어서 입니다. 우리는 가끔 용서할 때, "먼저 사과해야…, 다시는 안 하겠다고 해야" 등의 조건을 내세웁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아무런 조건을 내세우지 않으십니다.

내 원수! 내가 사랑하기 어려운 형제·자매 앞에서 "∞형제·∞자매, 난 앞으로 당신이 어떤 일을 해도 용서하겠습니다!" 하는 용서의 기도를 바치세요. 용서의 기도를 바칩시다. 아버지의 얼굴을 상상하면서 "나는 아버지를 용서합니다. 아버지의 용서를 빕니다" 하고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어머니, 식구…, 지금 내 곁에 없지만 한 명씩 한 명씩 용서해 나갑시다. 그리고 마지막에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앞에 나아가 "내가 이 외에도 모르는 사람들을 용서하고 용서를 빕니다"하고 기도하십시오. 죄책감이나 실망에 빠지지 말고, 예수님의 사랑을 받고자 하는 기도를 바칩시다.



3. 통회

우리가 예수님께 가까이 가려면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합니다. 마음을 여는 좋은 방법은 '용서'입니다. 그리고 하나를 더 추가한다면 그것은 '통회'입니다. 여러분의 생애 중에서 고백하기 어려운 죄가 있습니까? 무엇입니까? 그러나 저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죄가 문제가 아니라고. 머리로 기억하며 마음에 부끄러움을 느끼고, 당황하고, 창피해 하고… 문제는 그 죄 때문에, 그 죄의 열매 때문에 계속 느끼고 가져야 하는 좋지 않은 감정입니다.

죄책감을 느끼지 마십시오. 중독자들은 습관적인 죄인입니다. 알코올, 성, 도박, 가출… 가족 중에 이런 이들이 있을 때 어떻게 하십니까? 그것은 '사랑'뿐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기가 자신을 자제하고 조절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습관적인 죄를 다시 지으면 죄책감과 자기 미움이 싹트게 됩니다. 그러면 압박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자신의 상황을 인정해야만 벗어날 수 있습니다. 잘못한 이들에게 야단치면 죄책감과 열등감에 빠지게 됩니다. 단지 "걱정 하지 마십시오. 하느님께서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하고 말하지 않습니까? 뉘우치는 마음으로 갈 때만 예수님께 다가갈 수 있습니다.

진짜 통회하는 마음은 우리의 뜻대로도 아니요, 미안해서도 아니요, 답답해서도 아니요. 돌아온 탕자의 마음입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야단을 맞는 것보다 사랑을 받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제일 큰 소원은 "그 사랑을 받도록 하겠다"는 것입니다.

어렸을 때 부모 몰래 일 저질렀다가 나중에 사건을 아신 아버지가 물으셨습니다. "네가 그랬지?" 난 마음 속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딱 잡아 뗄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어머님이 옆에서 "걔는 안 그랬어요. 걔는 그럴 애가 아니예요. 걔는 믿어요." 그 순간 고백과 통회의 눈물이… "제가 그랬어요!" 아버지께는 아무렇지도 않게 거짓말을 했으면서도 어머니께는 왜 그럴 수 없었는가?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어머니의 사랑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 인 것 같습니다.

통회하기 위해선 "예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먼저 깨달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 통회는 죄책감에서 나온 것이거나 엉터리 통회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우리 자신이 조절할 수 없는데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조절하고자, 통제하고자 합니다. 습관적인 죄는 일종의 무의식에서 범하게 되는데 범하자마자 "하느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말을 상기하여야 합니다. 죄를 범했을 때는 너무 좋지 않은 감정을 느끼게 되므로 예수님의 사랑을 안 받겠다고 기피합니다.



4. 기도

예수님을 만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만나서 그분을 알고, 그분과 비슷한 사람이 되고 우리가 바로 그분 자신이 되기 위해서 입니다. 우리의 생활 안에서 예수님을 다 드러내고 나타내야 합니다. 로마서 8장에서 기도는 '선물'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힘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도 아닙니다. 오로지 성령의 힘으로만 가능합니다. 기도는 예수님과 연락하는 것입니다. 두 손을 펴드는 것도 기도가 됩니다. 생활하면서 기도를 못하게 될 때 두손을 펴드십시오. 그것이 봉헌이 될지 예수님의 사랑을 받고자 청하는 것이 될지… '연락'이 되면 기도가 됩니다. 아무 방법이든 연락하십시오.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 드리십시오.!

예수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십시오.!

기도를 못하게 하는 장애물이 있습니다. 그것은 1)앙심, 2)습관적인 죄를 범하는 문제(성사 볼 때마다 매번 같은 이야기), 3)무관심("너무나 생소하다!", "혼자서 가만히 앉아서 무엇하나?", "기도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기도한다고 뭐가 달라지는가?") 입니다.

참고로 하느님과 만나게 될 때 생기는 여러가지 현상들이 있습니다. 1)기복적이고, 주술적으로 하느님을 생각하는 사람("무엇, 무엇, 주세요!"), 2)윤리의식과 당위의 하느님("착하게 살아라! 부모님 말씀 잘 들어라!"), 3)자기 생각 속에서 자기 고민에 빠져서 하느님을 보지 못하고 만나지 못해 하느님과 대화 못하는 경우(이렇게 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인지, 저렇게 하는 것이 잘하는 것인지?), 4)하느님을 만나 하느님에게서 힘을 얻는 경우(하느님을 만나면 하느님께서는 화를 내시거나 잘못한 부분에 대해서 혼내시기보다는 우리를 용서해주시고 끌어안아 주시며 힘을 주신다).

기도가 안 된다고, 쉽게 느껴지지 않는다고 고민하거나 쉽사리 포기하지 마십시오. 잘 안 된다 하더라도 계속 그 자리에서 예수님을 기다리는 그 마음으로 머물러 계십시오. 상본에서 본 예수님의 얼굴이나 자기 마음속의 상상과 추억 속에 남아있는 예수님을 생각하면서…"예수님 사랑해요! 예수님 어서 오세요!"

기도합시다. 다음의 글을 조용히 소리내어 내 마음속 깊이 스며들도록! 그리고 주님께서 다가오심을 느낍시다.

예수님, 사랑해요!

예수님, 어서 오세요.

예수님, 어서 오셔서 저희와 함께 해주세요.

예수님, 저희에게 오셔서 저희의 어려움과 고민을 함께 나누어 주셔요.

예수님, 어서 오셔서 저희에게 힘을 주셔요.

예수님, 사랑해요!

예수님, 어서 오셔요.

저희가 일하다 지쳤을 때,

사람 때문에 짜증나고 화가 났을 때,

사람들이 나를 원할 때,

직장이나 반에서 나만이 십자가를 짊어져야 할 때,

상사에게 모욕을 당했을 때,

예수님의 사랑으로 위로해 주세요.

예수님께서 백성들 앞에서 모욕을 당하셨을 그때처럼 저희를 구원해 주세요.

예수님, 사랑해요!

예수님, 어서 오세요.

저희가 모여 모임 할 때,

올 사람이 안 와서 허탈한 마음으로 기다려야만 할 때,

열심히 준비했어도 사람들의 호응이 적을 때,

자꾸만 사람들이 줄어들고 약화될 때,

저희와 함께 하셔서 저희를 위로해주시고 힘을 주세요.

예수님께서 주시지 않으면 저희는 한 명의 새 사람도 친구도 얻을 수 없답니다.

예수님, 사랑해요!

예수님, 어서 오세요.

저희가 외로운 동료에게 다가갈 때,

새 사람들을 데리고 모임을 시작할 때,

저희와 함께 하셔서

저희에게 예수님을 드러낼 수 있는 지혜와 사랑과 능력을 주세요.

성모님도 사랑해요!

성모님, 저희에게 예수님을 알려 주세요.

성모님, 저희를 예수님께로 인도해 주세요.

성모님, 성모님께서 하느님께 순명하여 예수 아기를 가질 수 있었듯이,

주님과 사람들이 나를 요구할 때,

그 요구 속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하느님의 부르심으로 여겨

순명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도와 주세요.

성모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세요.

성녀 소화 데레사, 당신도 사랑합니다.

예수님만을 사랑하던 맑고 깨끗하고 순수한 정열을,

당신의 마음을 갖도록 해주세요.

오로지 예수님만을 사랑하여 세상 선교사들의 주보 성인이 되신 성녀님,

저희가 복음을 선포할 때,

예수님으로부터 오는 힘과 능력과 지혜를 얻을 수 있도록

예수님을 사랑하게 인도해 주세요.



5. 관상 기도

요한 복음 13장 4절부터 15절까지의 '발씻김 예식' 기사(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예수)를 관상해 보십시오(유다는 빼고).

13 4예수께서는 식탁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허리에 두르신 뒤 5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차례로 씻고 허리에 두르셨던 수건으로 닦아 주셨다. 6시몬 베드로의 차례가 되자 그는 "주께서 제 발을 씻으시렵니까?" 하고 말하였다. 7예수께서는 "너는 내가 왜 이렇게 하는지 지금은 모르지만 나중에는 알게 될 것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8베드로가 "안 됩니다. 제 발 만은 결코 씻지 못하십니다" 하고 사양하자 예수께서는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않으면 너는 이제 나와 아무 상관도 없게 된다"하시고는 12발을 씻겨주신 후에 "내가 왜 지금 너희의 발을 씻어 주었는지 알겠느냐? 15내가 너희에게 한 일을 너희도 그대로 하라고 본을 보여준 것이다"(요한 13, 4-8. 12. 15).

관상 기도는 영화 구경처럼 바라만 보는 것이 아니라 나도 거기에 들어가 있다고 생각하고 나를 거기에 넣고 하십시오. 예수님의 말씀을 잘 듣고…

갑자기 일어나 대야에 물을 떠서 내 발을 씻어 주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내게서 무슨 감정이 떠오르는지, 내가 무슨 말을 예수님께 하게 되는지, 또 예수님께서 나에게 어떤 말씀을 하시는지 잘 들어보십시오. 베드로는 자기 생각대로 "안 된다"고 말리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러면 나와 아무 상관없게 된다"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내 앞에 오셔서, 무릎을 꿇고, 내게 묻습니다.

"내가 네 발을 씻어도 되겠느냐?"

이때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십시오. 어쩌면 제일 먼저 나의 죄가 생각나 예수님을 똑바로 뵙지도 못하고 부끄럽고 피하고만 싶지만 그래도 용기를 내어 말씀하십시오.

"그때 제 죄를 기억하십니까?"

우리가 기록하지 않아도 우리는 우리의 죄를 다 압니다.

"예수님, 그 때 제가 범한 죄를 아십니까? 기억하십니까? 지금 저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말씀해 주실 것입니다.

"나는 모른다. 그리고 그것은 네가 하는 일 중의 아주 작은 부분이고 부정적인 면일 뿐이다. 나는 그럴 때는 안 본다. 걱정하지 말아라 그래도 난 너를 사랑한단다."

이 순간에 주님의 사랑에 깊이 깊이 푹 잠겨 머물러 계십시오.

그리고 주님께서 내게 해주시는 말씀을 계속 들어보십시오.

대화가 다 끝났으면, 양말을 걷고 주님께 말씀하십시오.

"주님, 제 발을 씻어 주십시오."

그러면 주님께서는 내 발치에서 나를 바라보시고, 내 발을 씻어 주십니다.

여기서 오래 머무르십시오.



6. 믿음

예수님을 믿으십니까? 예수님을 믿으시는지요? 이런 물음에 우리는 쉽게 "예"라고 답합니다. 그런데 진짜 예수님을 믿는지? 얼마 정도? 몇 %정도? 5-70%…

예수님께서는 완전히 우리를 믿으시는데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그분을 믿는지요? "내가 너를 믿는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옳은 말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다" 라는 말이 옳은 말일까요?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한 사람이 등산을 갔습니다. 산을 오르다가 잘못해서 낭떠러지 밑으로 떨어져 버렸습니다. 떨어지다가 다행스러이 나뭇가지 하나를 붙잡고 겨우 살았구나 하면서 이 궁리 저 궁리 해 보았지만 아무런 수가 없었고 지나가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때 하느님을 생각하며 하늘을 보고 소리쳤습니다.

"하느님 나 좀 살려주쇼!" "네가 나를 믿느냐?" "믿습니다." "내가 너를 살릴 수 있다는 것을 믿느냐?" "예! 믿습니다." "그러면 그 나뭇가지를 놓아라! 네가 거기 걸려 있는데 내가 어떻게 하겠니?" 그 사람은 소리쳤을 것입니다. "아니! 이분 말고 다른 하느님 안 계셔?"

나의 생명을 그분의 손에 맡겨드립니다 그 정도로 그분을 신뢰하고, 좋아하고, 믿고, 손에 맡겨드립니다. 어려울 때 진짜 예수님을 믿어요? "예수님! 너무하십니다. 힘든 계명을 주지 않는 다른 하느님, 다른 예수님은 안 계실까" 하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지요? 고린토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몸에 가시로 찌르는 듯한 병'을 받았다고 합니다.

반모임에서 자기를 온전히 드러내야 할 때, 자기 개인의 경제적, 사회적 삶이나 식구들보다 먼저 가까이 가기도 어려운 상처받아 삐뚤어진 이웃을 만나고 돕기 위해 복음의 투사로서 활동해야 할 때, 반이나 단체에서 내가 맡지 않았으면 하는 감투나 역할을 맡아야 할 때, 가정, 동네, 사회 복음화의 순간 순간 … 그때도 예수님을 믿는지요?



7. 상처받지 않고 성숙하는 신앙

자신을 성숙시키는 3단계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원의'입니다. "예수님의 길을 걷고 싶다!"

두 번째는 '자기 합리화'입니다. 처음에는 원의대로 잘 나가다가 어느 정도 기쁨도 얻고 할만큼 했다 싶어 "지금까지 이렇게 열심히 일했는데 뭐, 이젠 좀 부담없이…" "규칙을 바꿨으면…" "반모임 꼭 일주일에 한번씩 해야 하나? 딱 정해 놓지 말고, 하고 싶을 때 하고 싶은 마음이 우러나와서 하면 될텐데" "반모임 때 복음 나누기 안 하면 안 되나? 모여서 함께 뭐라도 하면 되지 꼭 복음 나누기만 해야 되나?"

세 번 째는 '내면화'의 단계입니다. 내가 자발적으로 원해서 택하고, 기뻐서 계속 더하는 단계입니다.

내가 존경하는 신자분을 따라 신앙 생활을 시작했다가 오히려 그분이 물의를 일으키고 신앙을 버리게 되면 나에게는 위기의 순간이 됩니다. 완전한 성숙을 얻기 위해서라기보다 자유를 얻고 자유를 통해 예수님의 사랑을 더 얻고자 하십시오. 느낌이 중요합니다. 남에게 내 느낌이나 감정을 조절할 수 있는 권한을 주지 마십시오. 남이 나에게 어떻게 한다고 거기에 따라 기분 나빠하지 마십시오. 누가 어떻게 한다고 하더라도 방황하는 것은 나이고, 화를 내는 것도 나요, 슬퍼지고 우울해지는 것도 나입니다. 오로지 예수님께만 주십시오. 자기 관리, 자기 절제의 문제입니다.

너무나 신경을 쓰게 되면 더 어려워집니다. 내가 혼자 하는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도 나를 도와 주십니다. 새가 뭡니까? 날개 있는 동물, 날아가는 동물을 새라고 합니다. 그런데 '닭'이 새입니까, 아닙니까? 날아갑니까, 안 날아갑니까? 닭은 아주 위험할 때만 납니다. 언제나 더러움 속에서 먹을 것이 뭐 없나 하고 뒤집니다. 날개가 필요 없는 것 같아 보입니다. '닭'과 '죠나단 리빙스턴 시걸'을 한번 비교해 봅시다. 닭은 마치 언제나 자신의 약함만을 내려다보면서 사는 것처럼 보이고 갈매기 '시걸'은 언제나 높은 하늘을 바라보면서, 푸른 하늘만 바라보면서 위로, 위로 날아가는 '자유'가 있어 보입니다. 자신에게 용기를 주고, 사랑하고, 그대로 받아들이고, 예수님의 뜨거운 사랑 속에 살도록 하십시오.

- 1993. 6. 게 올리버 신부, 이냐시오 영신 수련 8일 피정 강론 중에서 참조



나눔

'나눔'1 부분과 피정 중에 기도하면서 얻은 느낌이나 변화를 함께 나눈다.

1. 교리에서 배우고 알게 된 주님과 주님의 뜻이 담긴 말씀이 오늘날 내 삶의 영양가 있는 양식이 되고 있습니까?

2. 교리를 통해 하느님의 부르심과 호소를 느끼고 있습니까?

3. 교리를 받은 후인 지금 내가 꼭 해야겠다고 다짐할 만한 일은 무엇입니까?

4. 피정 중에 기도하면서 하느님을 느꼈습니까?

5. 주님을 만남으로써 힘을 얻으셨습니까?



약속

·세례를 받으려는 지금 내가 주님의 자녀요, 제자로서 또 주님의 죽음과 부활을 선포할 사도로서 내가 주님의 은총에 힘을 얻어 꼭 하고 싶은 것은 무엇입니까?

1. 어떻게 변화되고 싶습니까?

2. 변화되어 무엇을 하시렵니까?

차례




되돌아봅시다

-"하느님께서 나를 돌봐 주셨어요!"




말씀 주님의 위엄과 인간의 존엄성(시편 8)

8 2"하느님 내 주시여

온 땅에 당신 이름 어이 이리 묘하신고

하늘 위 높다랗게 엄위를 떨치셨나이다.

3원수들 무색케 하시고자 불신자 복수자들 꺾으시고자,

어린이 젖먹이들 그 입에서마저 어엿한 찬송을 마련하셨나이다.

4우러러 당신 손가락이 만드신 저 하늘하며

굳건히 이룩하신 달과 별들을 보나이다.

5인간이 무엇이기에 아니 잊으시나이까

그 종락 무엇이기에 따뜻이 돌보시나이까

6천사들보다는 못하게 만드셨어도

영광과 존귀의 관을 씌워 주셨나이다.

7손수 만드신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삼라 만상을 그의 발 아래 두시었으니,

8통틀어 양떼와 소들과 들짐승하며

9하늘의 새들과 바다의 물고기며

바닷속 지름길을 두루 다니는 것들이오이다.

10하느님 내 주시여

온 땅에 당신 이름 어이 이리 묘하신고"



배움 신앙 체험 기록 - 나와 함께하시는 주님

주님은 목자시니, 저는 양이옵니다.

주님,

주님은 제가 주님께 저를 바치겠다고 처음 결심했을 때,

제게 행복을 안겨 주셨습니다.

훗날 그때의 저를 보셨던 어머니께서 말씀해 주셨던 것같이

그때 저는 제일 편안했고 가장 행복했습니다.

그 행복은 인간이 주님과 함께할 때 얻을 수 있다던 바로 그 행복이었습니다.

저는 그 행복을 주님께로부터 받았습니다.

주님,

그 후로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제겐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는 단 한가지 일만 있었습니다.

주님의 일은 바로 저를 향한 주님의 사랑 그 한 가지였습니다.

주님,

주님께서 저의 매 순간 매 자리에 함께해 주셨음을 저는 압니다.

제가 양이고자 했을 때 주님은 저의 목자가 돼 주셨습니다.

제가 주님께 다가서려고 했을 때 주님은 저를 끌어 주셨습니다.

제가 주님을 알고자 했을 때 주님은 저를 깨우쳐 주셨습니다.

제가 주님을 뵈옵고자 했을 때 주님은 저에게 드러내 주셨습니다.

제가 주님을 느끼고자 했을 때 주님은 저를 안아 주셨습니다.

제가 주님께 저를 바쳤을 때 주님은 주님 자신을 주셨습니다.

제가 주님의 교리를 가르칠 때 주님의 지혜를 주셨습니다.

제가 주님의 미사를 드릴 때 주님의 생명을 주셨습니다.

제가 주님의 성사를 집전할 때 주님의 권능을 주셨습니다.

제가 환자를 방문할 때 주님은 기적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제가 사람들 앞에 섰을 때 주님은 제 입을 열어 당신을 찬미할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제가 곤경 중에 있을 때 주님은 제 편을 들어 주셨습니다.

제가 악에게 시달리고 있을 때 주님은 제 대신 싸워 주셨습니다.

제가 분노와 갈등으로 밤을 지새울 때 주님은 휴식을 주셨습니다.

제가 혼자 있을 때 주님은 저를 위로해 주셨습니다.

제가 고독해 할 때 주님은 천사를 보내 주셨습니다.

제가 텅비고 허전해진 가슴으로 먹을 것을 찾아헤맬 때 주님은 말씀으로 배불려 주셨습니다.

제가 목말라 할 때 주님은 성체 성사로 적셔 주셨습니다.

제가 실수했을 때 주님은 못 본 체해 주셨습니다.

제가 피곤에 지쳤을 때 주님은 제 대신 일해 주셨습니다.

제가 잘못했을 때 주님은 채워 주셨습니다.

제가 유혹 중에 있을 때 주님은 안쓰러워 어쩔 줄 모르셨습니다.

제가 유혹에 걸려 넘어졌을 때 주님은 다시 일으켜 주셨습니다.

제가 다시 또 범죄하였을 때 주님은 저와 함께 아파하셨습니다.

제가 거듭 범죄하여 수치감과 죄책감으로 시달리고 있을 때 주님은 저를 불러 주셨습니다.

제가 제 죄의 무게에 짓눌려 절망했을 때 주님은 저에게 생기를 주셨습니다.

제가 주님 곁을 떠나 도망치고 싶을 때 주님은 성령의 힘으로 나를 휘감아 나도 모르는 새에 다시 주님 앞에 앉아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이렇게 주님은 제가 다시 주님 사랑의 빛 안으로 나오도록

저를 용서해 주시고

저를 끌어내 주시고

이 모든 일들을 저에게 겪도록 하심으로써

저를 거룩하게 만들어 주시고 계십니다.

이 모든 제 생애의 순간 순간들이 그리고 저의 전생애의 역사가

주님의 오묘한 섭리 안에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오늘 주님 앞에 다가와서 청합니다.

주님이 제게 베풀어 주신 모든 은혜와

주님이 저와 함께해 주셨던

모든 순간들을 기억하며 청합니다.

말씀으로 저를 일러 주시고

성체 성사로 먹여 주시는

주님 앞에 서서 청합니다.

주님, 저를 받아 주소서.

저는 주님밖에 매달릴 분이 없어서 주님께 부르짖습니다.

저는 제가 바라는 것을 세상 그 어느 것으로도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주님께 청합니다.

저는 제가 바라는 것을 주실 수 있는 분이

주님뿐이시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기에 주님께 청합니다.

저는 주님이 하시고자만 하시면

저에게 주님을 주실 수 있다는 것을 믿기에 주님께 청합니다.

제가 주님의 일을 할 때 제가 주님의 사랑 안에 있게 되고

그 사랑 안에 있을 때 가장 행복하다는 것을 살아왔기 때문에 주님께 청합니다.

주님 저를 복음의 사도로 써주소서.

제 가슴 속에 꺼지지 않는 불을 지펴 주시어

주님을 사랑하게 해주소서.

언제나 주님께 다가와 주님을 모실 수 있도록

저를 불러 주소서.

주님은 제 영혼의 주인이십니다.

주님 제게 오셔서 저에게 당신이 원하시는 일을 하소서.

아멘.



나눔

홀로 조용히 앉아 자신의 일생을 되돌아보면서 하느님께서 어떻게 자신과 함께 해주셨는지를 깨달으며, '나와 함께 주님'이란 주제로 자신만의 이야기를 써 보십시오.(다 쓴 것은 면담 신부님께 제출하십시오.)

비밀은 이야기하지 말고, 서로서로 자신을 나누어 봅시다. 한 사람의 나눔이 끝난 후 아래 노래를 불러 각자의 삶 안에 함께 하느님께 감사 드립시다.



기도

II: 주님을 찬미하나이다. 주님은 좋으신 분!

주님을 찬미하나이다. 알렐루야! :II

차례






부록4

미사 통상문(제2양식)



개회식

입당성가 <섭니다>

† (십자성호를 그으며)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 아멘.

† 사랑을 베푸시는 하느님 아버지와 은총을 내리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시는 성령께서 여러분과 함께.

◎ 또한 사제와 함께.

† 형제 여러분, 구원의 신비를 합당하게 거행하기 위하여 우리 죄를 반성합시다.

† 전능하신 하느님과

◎ 형제들에게 고백하오니 생각과 말과 행위로 죄를 많이 지었으며, 자주 의무를 소홀히 하였나이다. (가슴을 치며)제 탓이오, 제 탓이오, 저의 큰 탓이옵니다. 그러므로 간절히 바라오니, 평생 동정이신 성모 마리아와 모든 천사와 성인과 형제들은 저를 위하여 하느님께 빌어주소서.

† 전능하신 하느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죄를 용서하시고, 영원한 생명으로 이끌어주소서.

◎ 아멘.

†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 그리스도님, 자비를 베푸소서

◎ 그리스도님, 자비를 베푸소서.

†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 하늘 높은 데서는 하느님께 영광

○ 땅에서는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

● 주 하느님, 하늘의 임금님

○ 전능하신 아버지 하느님

● 주님을 기리나이다, 찬미하나이다.

○ 주님을 흠숭하나이다, 찬양하나이다.

● 주님 영광 크시오니 감사하나이다.

○ 외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님

● 주 하느님, 성부의 아드님

○ 하느님의 어린양

●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님, 저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 성부 오른 편에 앉아 계신 주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 홀로 거룩하시고, 홀로 주님이시며, 홀로 높으신 예수 그리스도님

◎ 성령과 함께 아버지 하느님의 영광 안에 계시나이다. 아멘.

본기도

† 기도합시다. … 비나이다. (또는) …다스리시나이다. ◎ 아멘.

말씀 전례

<앉습니다>

독서1, 2 ○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복음 환호송 <섭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와 영광 받으소서. (또는)알렐루야

복음

†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 또한 사제(부제)와 함께.

† ( )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 주님, 영광받으소서.

†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전능하신 천주 성부, ◎ 천지의 창조주를 저는 믿나이다.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님 (밑줄 부분에서 모두 고개를 깊이 숙인다.)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 마리아께 잉태되어 나시고 본시오 빌라도 통치 아래서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 저승에 가시어 사흗날에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하늘에 올라 전능하신 천주 성부 오른편에 앉으시며 그리로부터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믿나이다. 성령을 믿으며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와 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으며 죄의 용서와 육신의 부활을 믿으며 영원한 삶을 믿나이다. 아멘.

보편 지향 기도

◎ 주님, 저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성찬 전례

† 형제여러분, 우리가 바치는 이 제사를 전능하신 하느님 아버지께서 기꺼이 받아 주시도록 기도합시다.

◎ 사제의 손으로 바치는 이 제사가 주님의 이름에는 찬미와 영광이 되고 저희와 온 교회에는 도움이 되게 하소서.

† …비나이다. (또는) …다스리시나이다. ◎ 아멘.

†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 또한 사제와 함께.

† 마음을 드높이

◎ 주님께 올립니다.

† 우리 주 하느님께 감사합시다.

◎ 마땅하고 옳은 일입니다.

† 거룩하신 아버지, 사랑하시는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아버지께서는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그분을 저희에게 구세주로 보내셨으니 그분께서는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 마리아에게서 사람으로 태어나셨나이다. 성자께서는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고자 십자가에서 팔을 벌려 백성을 아버지께 모아들이셨으며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나이다.

그러므로 저희는 모든 천사와 성인과 함께 아버지의 영광을 찬양하나이다.

◎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온 누리의 주 하느님! 하늘과 땅에 가득 찬 그 영광! 높은 데서 호산나!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찬미받으소서. 높은 데서 호산나!

† 거룩하신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모든 거룩함의 샘이시옵니다. 간구하오니, 성령의 힘으로 이 예물을 거룩하게 하시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 피가 되게 하소서. 스스로 원하신 수난이 다가오자 예수께서는 빵을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쪼개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나이다.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먹어라.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 줄 내 몸이다.

저녁을 잡수시고 같은 모양으로 잔을 들어 다시 감사를 드리신 다음 제자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나이다.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마셔라.

이는 새롭고 영원한 계약을 맺는 내 피의 잔이니

죄를 사하여 주려고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 흘릴 피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 신앙의 신비여,

◎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주님의 죽음을 전하며 부활을 선포하나이다.

† 아버지, 저희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기념하며 생명의 빵과 구원의 잔을 봉헌하나이다. 또한 저희가 아버지 앞에 나아와 봉사하게 하시니 감사하나이다.

간절히 청하오니 저희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어 성령으로 모두 한 몸을 이루게 하소서.

주님, 온 세상에 널리 퍼져 있는 교회를 생각하시어 교황 ( )와 저희 주교 ( )와 모든 성직자와 더불어 사랑의 교회를 이루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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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령 미사> (오늘) 이 세상에서 불러 가신 교우 ( )를 생각해 주소서. 그는 이미 세례를 통하여 성자의 죽음에 동참하였으니 그 부활도 함께 누리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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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희망 속에 고이 잠든 교우들과 세상을 떠난 다른 이들도 모두 생각하시어 그들이 주님의 빛나는 얼굴을 뵈옵게 하소서.

저희에게도 자비를 베푸시어 영원으로부터 주님의 사랑을 받는 하느님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와 복된 사도들과 모든 성인과 함께 영원한 삶을 누리며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소서.

†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하나되어 전능하신 천주 성부 모든 영예와 영광을 영원히 받으소서.

◎ 아멘.

영성체 예식

† 하느님의 자녀 되어, 구세주의 분부대로 삼가 아뢰오니

◎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 주님, 저희를 모든 악에서 구하시고 한평생 평화롭게 하소서. 주님의 자비로 저희를 언제나 죄에서 구원하시고 모든 시련에서 보호하시어 복된 희망을 품고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게 하소서.

◎ 주님께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있나이다.

† 주 예수 그리스도님 일찍이 사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에게 평화를 두고 가며 내 평화를 주노라" 하셨으니 저희 죄를 헤아리지 마시고 교회의 믿음을 보시어 주님의 뜻대로 교회를 평화롭게 하시고 하나 되게 하소서. 주님께서는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나이다.

◎ 아멘.

† 주님의 평화가 항상 여러분과 함께.

◎ 또한 사제와 함께.

† 평화의 인사를 나누십시오.

◎ 평화를 빕니다.

◎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님 평화를 주소서.

†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분이시니 이 성찬에 초대받은 이는 복되도다.

◎ 주님,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사오나 한 말씀만 하소서. 제가 곧 나으리이다.

(모두 다 앉고 성체를 모실 사람은 제대 앞으로 나옵니다)

<앉는다>

† 그리스도의 몸

◎ 아멘.

영성체 후 기도 <섭니다>

† 기도합시다. …비나이다. (또는) …다스리시나이다.

◎ 아멘.

마침 예식

†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 또한 사제와 함께.

† 전능하신 천주, 성부와 † 성자와 성령께서는 여기 모인 모든 이에게 강복하소서.

◎ 아멘.

† 주님과 함께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파견 성가


영성체 예절 연습

1. 영성체 준비

마음의 준비 : 주님을 모시기에 부끄러운 면이 있으면 '고해 성사'를 통해 주님과 화해합니다.

그리고 내 마음 깊숙한 곳에서부터 "주 예수님 어서 오십시오"하면서 기도합니다. 이 기도는 나의 주인이시고 나를 사랑하시는 예수님께서 내 마음에 오셔서 "나를 주님과 하나되게 하는 기쁨과 행복을 주십시오. 그리고 내가 주님의 말씀을 실천할 수 있는 힘을 주십시오" 하고 주 예수님께서 오시기를 간절히 기다리는 마음입니다.

육신의 준비 : 몸을 깨끗이 씻고 옷을 정갈하게 입습니다. 그리고 영성체 하기 전 1시간 이내에는 음식을 먹지 않습니다 (공심재, 공복재). 단, 물이라든지 약 등은 괜찮습니다.

2. 영성체 연습

두 손을 합장하고 두 줄로 봉헌 때같이 나오십시오.

(앞 사람이 성체를 받는 동안) 예수님께 인사하고, 오른손으로 왼손을 바쳐 성체를 받으십시오.

성체를 받은 다음 두 걸음 정도 옆으로 가서 왼손 위에 있는 성체를 오른 손으로 잡아 영하십시오.

차례




부록5

성서 구절 찾아보기



창세기

1,1-2, 4ㄱ; 천지 창조; 4과

1, 27. 28; 노동에로 불림; 24-1과

1, 31; "하느님께서 보시니 참 좋았다"; 24-4과

2, 3; "모든 일에서 손을 떼고 (쉬셨다)"; 24-4과

2, 4ㄴ-9. 15-25; 아담과 하와가 지음받다; 4-1과

2, 15-17; 3, 4-19; 원죄; 5과

3, 15; "그 발꿈치를 물려고 하다가"(원복음); 5과, 8과

3, 19ㄷ; "땀을 흘려야 낟알을 얻어"; 12과

4, 1-5. 8-11ㄱ; 가련한 이들을 돌보시는 하느님; 6과

4, 10; "하늘을 향해 복수를 요청하며"; 24-1과

4, 25-26; "죽은 아벨 대신 또 다른 아들(셋) "; 6과

15, 1-6. 18ㄱ; "이 땅을 네 후손에게"; 26과

출애 급기

3, 7-12. 14; "얼마나 고생하는지 잘 알고 있다."; 2과, 14-2과

12, 21-27; 과월절; 17과

16, 4. 31. 35; 백성들을 몸소 먹이시는 하느님; 14-1과

20, 1-17; 십계명; 3과

신명기

6, 4-5(9); "너 이스라엘아 들어라"; 9-1과

24, 15; "(품삯을 주어라.) 하늘을 향해 복수를"; 24-1과

사무엘하

12, 1-14; 나단 예언자가 다윗 왕을 꾸짖다; 5-1과

욥기

1, 8-12. 20-22; (2, 5. 6. 7. 10); 3, 1-3. 11.; 4, 1. 7; 6, 1. 2. 24. 25; 7, 7. 18; 38, 1. 2; 40,7. 8; 42, 1-3; 10ㄴ.16. 17 "선한 사람이 왜 고통을 받는가?"; 7과

시편

8, 2-10; 주님의 위엄과 인간의 존엄성; 부록3

23, 1-3ㄱ. 3ㄴ-4. 6.; "주님은 나의 목자"; 26과

50(51), 3-21; "하느님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5과

99, 1-5; "주님 좋으시다, 영원하신 그 사랑"; 4-1과

139, 1-18. 23-24; 나를 샅샅이 아시는 주님; 6-1과

148, 1-15; 주님을 찬미하라; 4과

전도서

1, 2-3. 3, 1-22; 세상 만사 헛되다; 6-2과

이사야

7, 14;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8과

42, 3-4; "바른 인생길 펴며"; 11과

43, 1-7; "주님께서 이스라엘을 되찾으신다"; 1-1과

52, 13-53, 12; '고난받는 주님의 종' 4째 노래; 18과

53, 4ㄷㄹ. 6ㄷㄹ.; 죄악을 그에게 지우셨구나; 7과

호세아

4, 3; "땅은 메마르고 주민은 모두 찌들어 간다"; 24-4과

미가

5, 1ㄱ; "베들레헴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 8과

집회서

39, 19-21 "목적이 있어서 만들어진 게 아니냐?" 24-4과

마태오 복음서

2, 1ㄴ-2. 5. 9-11; 동방 박사의 방문; 8과

3, 1-4. 8. 13-17; 세례를 받으신 예수; 9과

3, 17; 내 사랑하는 아들,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1-1과

4, 1-11; 광야의 유혹; 9-1과

5, 3-12; 참된 행복; 11과

5, 11 "모욕을 당하면" 18과

6, 7-15; 주님의 기도; 11과, 15과

6, 14-15; 용서; 11과, 부록2

6, 25-34; "먼저 하느님의 나라를 구하라"; 12과

6, 31-33; 하느님께서는 잘 알고 계신다; 6과

11, 28-30; "무거운 짐을 진 사람은"; 1과

13, 54-57ㄱ; 목공일을 하신 예수; 9-2과

14, 22-33; 물위를 걸으신 기적; 14-2과

16, 13-23; 베드로의 고백과 수난 예고; 16과

16, 18; 성품 성사; 23과

16, 19; 고백 성사의 사죄권; 16과

16, 24-27; "나를 따르려면 자기를 끊고"; 26과

19, 6; 혼인 성사; 23과

20, 26ㄴ-28; 섬기는 자가 다스린다; 14과

26, 20-28; 최후의 만찬; 17과

26, 27ㄷ. 28; "위하여 내가 흘리는 계약의 피다"; 18과

28, 1-10; 예수의 부활; 19과

28, 18-20; 주님의 승천; 20과

마르코 복음서

1, 16-18; "나를 따라오라"; 14과

3, 13-19; 열두 사도; 14과

4, 30-32; 겨자씨에 비유되는 하느님 나라; 12과

5, 38-43; "탈리다 쿰"; 10-2과

6, 13; 병자 성사; 23과

14, 35ㄴ. 36;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18과

루가 복음서

1, 26-38; 예수 탄생 예고; 7-1과(87-88쪽), 22-1과

1, 42; "태중의 아드님 또한 복되십니다."; 7-1과

2, 1-16; 구세주의 가난하고 약한 탄생과 공현; 8과

2, 14; "하느님께 영광, 사람들에게 평화"; 11과

4, 16. 18-19. 21; 주님의 사명; 10과

9, 23-25; 예수를 따르려면; 14과

10, 25-37; "너도 가서 그렇게 하여라"; 23-1과

15, 1-3. 11-32; "죽었던 내 아들이 다시"; 13과

18, 15-17; 어린이들을 축복하신 예수님; 10-2과

19, 1-10; 회개한 자캐오; 10-1과

21, 34-36; "깨어 기도하라"; 22-2과

22, 39-48. 54-71. 23, 1-2. 22-23, 32-56; 구원을 위한 주님의 수난; 18과

23, 34; "용서하여 주십시오"; 11과

23, 43; "낙원에 들어가게 될 것"; 11과

24, 13-35;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19-1과

요한 복음서

1, 43-46; 필립보와 나타나엘 부르심; 22-1과

2, 1-11; 가나의 혼인잔치; 22-1과

3, 3; 누구든지 새로 나지 않으면; 23과

3, 5; 세례 성사; 23과

5, 1-9. 10; 베짜타 못가의 병자; 10-2과

5, 17; "…나도 일하는 것이다"; 9-2과

5, 19; "…아들도 할 따름입니다"; 10과

6, 5-15; 오천명을 먹이신 기적; 14-1과

6, 20; "나다! (두려워하지 말라.)"; 2과

6, 54-55. 56. 57. 66; 생명의 빵; 14-1과, 23과

8, 12; "나를 따르는 자는 생명의 빛을"; 26과

9, 1-3; "누구의 죄입니까?"; 7과

10, 30. 14, 6;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16과

11, 3-4. 17. 21-27. 34-44; 다시 살아난 라자로; 15-1과

12, 24-26; "밀알 하나가 썩으면…"; 22-3과

13, 4-8. 12. 15; 세족례; 부록3

13, 34-35; 새 계명; 3과, 23과

15, 9ㄴ-12; "서로 사랑하여라"; 19과

15, 13; 벗을 위하여 자기 목슴을 바치는 사랑; 19과

15, 15; 종이 아니라 벗; 19과

19, 25-27; 십자가 밑의 마리아; 22-1과

19, 28; 목말라함; 11과

20, 23; 고해 성사; 23과

20, 31; 성서를 쓴 목적; 23-1과

21, 15; 성품 성사; 23과

사도 행전

1, 8-11; "성령이 오시면…"(제자들의 사명); 20과

1, 13-14; 교회와 함께 성령을 청하는 마리아; 22-1과

2, 1-4. 36. 41ㄴ-47; 성령강림과 초대교회; 21과

2, 46-47ㄱ; 초대 교회 신자들의 전례 생활; 23-2과

8, 16-17; 견진 성사; 23과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

5, 3-5; "고통은 인내를, 인내는 시련을…"; 7과

8, 19-20. 23-25; 피조물의 희망; 24-4과

8, 21; 멸망에 예속된 피조물; 24-4과

12, 1-2; 그리스도인의 새생활; 9과, 24과, 24-3과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

1, 25; "어리석어만 보이는 하느님의 힘"; 22-2과

12, 21-23; 몸과 지체; 24-2과

13, 1-13; 사랑; 14과

13, 12-13; 가장 위대한 사랑; 6-2과, 20과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둘째 편지

6, 16; "우리는 살아계신 하느님의 성전"; 4-1과

8, 9; "그분은 부요하셨지만 가난하게 되셨고"; 8과

갈라디아인들에게 보낸 편지

5, 19-23; 육과 영을 따라 삶; 15과

5, 22; "성령의 열매는"; 11과, 15과

에페소인들에게 보낸 편지

5, 1-3ㄱ. 4ㄷ. 5; "하느님을 닮으십시오"; 24-3과

5, 24-25; 남편과 아내; 23과, 24-3과

필립비인들에게 보낸 편지

2, 1-4; 같은 생각, 같은 사랑, 같은 마음; 5-1과

골로사이인들에게 보낸 편지

1, 24; "남은 고통을 자신의 몸으로 채움"; 7과

3, 23-24; "무슨 일이나 주님을 섬기듯이"; 24-1과

데살로니카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

5, 16-18; 항상 기쁨, 늘 기도, 감사; 2과; 11과

야고보의 편지

1, 13; "시험을 당하는 것은 욕심에 이끌려"; 15과

베드로의 둘째 편지

3, 13; 새 하늘과 새 땅; 24-1과(278쪽), 24-4과

요한의 첫째 편지

4, 7-21;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22과

요한의 묵시록

21, 1; 새 하늘과 새 땅의 선포; 24-1과

21, 5; 새로운 창조; 24-4과

문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사목 헌장16; 11과

김대건; 마지막 옥중 서간; 22-2과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회 헌장11; 23과

요한 바오로 2세; "'혼인'-교회 법전"; 23과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전례 헌장 60; 23과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전례 헌장2, 10, 11, 12, 102, 106, 109, 110, 111, 112-130; 교회의 전례 정신; 23-2과

레오 13세; 노동 헌장1, 82항; 24과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사목 헌장39항; 현실과 하늘나라; 24-1과

요한 바오로 2세; "노동하는 인간은…"; 24-1과

요한 바오로 2세; "평화를 창조하는 가정"; 24-2과

요한 바오로 2세; 가정 공동체 86항; 24-2과

요한 바오로 2세; "모두 함께하는 평화"; 24-4과

차례




부록6

교리 관련표



1. 교리자 명단



이 름

본 명

생년월일

주소와 전화번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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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도 월반



이 름

본 명

생년월일

주소와 전화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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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교리반 출석표




월/일

수업

주일미사

월/일

수업

주일미사

월/일

수업

주일미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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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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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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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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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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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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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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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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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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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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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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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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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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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교리반 신청서



19 . .



성명


본명


세례일과

받은장소


생일


성별

남, 여


학교


전공

학년 반

고향


주소


전화번호


인도자


본명


전화번호


가 족 사 항

관계

성 명

세 례 명

생년월일

학력

직 업















































차례




E-mail : peters1@seoul.catholic.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