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천주교 사회복지사


이 논문은 1998년 가을학기

가톨릭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

사회복지학과에서 문학석사학위를

받은 논문입니다.


논 문 개 요


Ⅰ. 서론

1. 문제제기와 연구목적

2. 시대구분과 연구내용

1) 시대구분

2) 연구 대상

3) 연구 내용

3. 연구 방법과 일정


Ⅱ. 본론

1. 초기교회 신앙정립과정의 활동(1777∼1886)

1) 정치 사회 및 교회 사회복지적인 배경

2) 분야별 천주교 사회복지사업

3) 사회복지 활동의 시대적 성격과 그 의의

2. 종교자유획득과 수도회 결성이후의 활동(1886∼1910)

1) 정치 사회 및 교회 사회복지적인 배경

2) 분야별 천주교 사회복지사업

3) 사회복지 활동의 시대적 성격과 그 의의

3. 일제식민시기의 활동(1910∼1945)

1) 정치 사회 및 교회 사회복지적인 배경

2) 분야별 천주교 사회복지사업

3) 사회복지 활동의 시대적 성격과 그 의의

4. 해방후 활동(1945∼1975)

1) 정치 사회 및 교회 사회복지적인 배경

2) 분야별 천주교 사회복지사업

3) 사회복지 활동의 시대적 성격과 그 의의

5. 인성회(仁成會) 조직 이후의 활동(1975∼1991)

1) 정치 사회 및 교회 사회복지적인 배경

2) 분야별 천주교 사회복지사업

3) 사회복지 활동의 시대적 성격과 그 의의

6.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 조직 이후의 활동(1991∼)

1) 정치 사회 및 교회 사회복지적인 배경

2) 분야별 천주교 사회복지사업

3) 사회복지 활동의 시대적 성격과 그 의의


Ⅲ. 결론

1. 한국 천주교 사회복지사 요약

1) 초기교회 신앙정립과정의 활동(1777∼1886)

2) 종교자유획득과 수도회 결성이후의 활동(1886∼1910)

3) 일제식민시기의 활동(1910∼1945)

4) 해방후 활동(1945∼1975)

5) 인성회 조직 이후의 활동(1975∼1991)

6)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 조직 이후의 활동(1991∼)

2. 제언

1) 선교와 복지의 통합된 사목

2) 교회 공동체와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사회복지 활동

3) 선교와 복지의 일관적이고도 체계적인 사목 형태

4) 교회 선교와 사회복지의 전문성

5) 국제화된 복지 활동의 전개

6)천주교 사회복지 정신교육


Ⅳ. 참고문헌


Ⅴ. 부록1 사회복지활동을 하는 수도회와 시설에 대한 질문지


Abstract


<표1> 한국 가톨릭 사회 복지 사업(시설·기관·단체) 교구별 및 분야별 분포현황표

논문개요



이 연구는 각 시대별 사회환경의 변화에 따라 교회가 어떠한 사회복지 활동을 펼쳐 왔는지를 체계적으로 정리하면서, 사회복지 활동이 교회 복음 선교에서 차지하는 자리를 그 시대의 특성과 한국 사회와의 관계 안에서 재확인하여, 교회가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선교와 복지를 해 나가야 하는지 알아보기 위한 목적이다.

한국 천주교 사회복지 역사를 초기 신앙정립기와 신앙의 자유 선택권 획득 이후, 일제시대, 해방이후,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인성회라고 불리는 한국 카리타스 설립 이후, 사회복지 전담기구인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 설립 이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6시기로 구분하고, 구분된 각 시기 별로 첫째 정치 사회 및 교회 사회복지적인 배경을 살펴보고, 둘째 분야별 천주교 사회복지사업을 살펴본 후, 셋째 사회복지 활동의 시대적 성격과 의의를 살펴본다.

그리고 천주교 사회복지를 "개인적으로 대처하기 어려운 욕구나 문제에 그리스도의 사랑의 정신으로 함께 참여하여 그 문제를 나누고 함께 풀어나가기 위한 교회의 가르침과 교회의 사목적 지침 그리고 그 가르침에 따른 교회 공동체의 직·간접적인 행위와 신자 개인이 신앙의 정신을 가지고 교회의 이름으로 또는 교회의 가르침과 지침을 실천하려는 다양한 노력"이라고 규정한다. 이를 교회적인 용어로 바꾸어 말한다면, "하느님 사랑에 응답하는 이웃사랑의 구체적인 형태의 활동"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제1기 '초기교회 신앙정립과정의 활동기'(1777∼1886) 동안 교회는 사목자들의 가르침과 사목정책, 평신도의 활동을 통해 하느님 사랑의 표현이 이웃사랑, 그중에서도 가난한 이웃에게 대한 사랑이라는 것을 증거했다.

제2기 '종교자유획득과 수도회 결성이후의 활동기'(1886∼1910) 동안 교회는 천주교회 기초단위인 각 본당이 본당에 파견된 수도자들과 함께 지역사회 안에서 그 지역사회의 기초복지랄 수 있는 고아 수용과 영유아 보육, 노인 수용과 보육, 수용된 고아와 노인의 치료를 위한 시약소를 운영하며 사회복지 활동을 펼쳤다.

제3기 '일제식민시기의 활동기'(1910∼1945) 동안 교회는 한국을 효과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교회의 사회에의 영향력을 통제하기 위한 일제식민정부의 의도에 따라 보육, 양로, 교육, 의료 분야의 사회복지 활동 분야에서 쫓겨났지만, 교회는 사회의 기본교육과 언론문화 복지를 통해 사회복지 활동을 펼쳤다. 그리고 이러한 일제의 박해로 인해 여성 수도자들이 본당의 전례보조와 예비자 교리 등의 기능적인 일로 축소 종사하게 됨과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수도회가 본당과는 별도로 자체적인 사회복지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제4기 '해방후 활동기'(1945∼1975) 동안 교회는 미국 가톨릭 구제위원회를 비롯한 외원단체의 후원 아래 해방과 전후의 한국 민중들에게 사회복지 활동을 펼쳤다. 그러한 과정에서 '인보성체 수도회' 같은 사회복지 전문 수도회와 '빈첸시오 아 바울로회'와 같은 전문 사도직 단체가 설립되었다.

제5기 '인성회 조직 이후의 활동기'(1975∼1991) 동안 교회는 미국 가톨릭 구제위원회의 활동과 자산을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인성회로 이어받아 인간 개발과 사회복지를 실현했다. 그리고 본당 중심의 지역사회 복지가 교구나 수도회 차원의 전문 사회복지 활동으로 대체되고, 정부는 사회복지 시설의 운영을 천주교에 맡기기 시작했다. 또한 사회복지를 전담하는 사목자들이 생겨났다.

제6기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 조직 이후의 활동기'(1991∼) 동안 교회는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산하의 인성회를 사회복지위원회로 개칭하고 사회복지를 전담하도록 했다. 그래서 각 교구마다 사회복지회(국 또는 위원회)가 설립되고 교구 내의 사회복지 업무를 통합적으로 계획, 조정, 지원하도록 했다.

이상의 한국 천주교 사회복지 역사 연구에 따라 아래와 같이 제언한다.

첫째, 초기 교회사에서 보듯이, 교회의 복지 활동을 선교와의 별개로 삼지 말고 통합되고 체계적으로 조화된 사목을 해야 한다. 아울러 교회 사회 복지 활동의 근거와 방향을 이웃의 구원을 위한 자기 희생이라는 신앙적인 관점에서 찾도록 해야 한다.

둘째, 종교자유획득과 수도회 결성 이후의 시기에서 보듯이, 천주교회의 기초단위인 각 본당은 자기가 속해있는 지역의 영유아, 노인, 장애인 등의 기초적인 복지혜택이 필요한 이들에게 직접적으로 응해야 한다. 아울러 사회복지 시설이나 기관과 해당 지역의 본당이 깊은 유대와 구체적인 연결을 가지고 활동해야 한다.

셋째, 한국 교회 사회복지 역사 안에서 빈번하게 보듯이, 지역 교회 공동체의 사목자들이 바뀔 때마다 사목형태가 변하지 않도록 사목자는 교회 구성원인 사목의 협조자들과 평신도 지도자들 그리고 교우들 모두와 함께하는 사목을 펴나가야 하겠고, 또 평신도들도 사목자의 권유와 명령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일회적이고도 육체적인 단순 노력봉사 차원의 것이 아니라, 스스로 능동적이고도 적극적으로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고자 하는 열정에서 우러나와 지속적이고도 책임 있는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겠다.

넷째, 일제시대처럼 전문성을 빌미로 사회복지활동에서 밀려나지 않도록 선교와 복지 활동을 하는데 있어서 전문성을 지녀야 하겠다. 그리고 교구 사회복지회나 관련 사목 담당 부서에서는 본당이나 수도회에서 처음 지역 사회복지를 시작하는 사목자와 수도자, 평신도 지도자를 위한 행정처리 안내와 체험에서 비롯된 실질적이고도 구체적인 가이드 라인을 미리 체계적으로 준비하여 제공해 주어야 하겠다. 그리고 사목자의 양성과정 안에 자발적으로 사회복지사 자격취득과정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면 좋겠다.

다섯째, 해외 원조를 받아 운영했던 사회복지 활동의 역사를 기억하여, 한국 교회도 외국의 가난한 나라의 사회복지 대상자들을 위한 원조도 하고, 국제 카리타스와의 연대와 유대 속에서 보다 나은 사회복지 활동을 해야하겠다.

여섯째, 교회 사회복지 활동의 역사 안에서 가톨릭의 정신과 방법을 잘 몰라 빚어졌던 불필요한 오해와 마찰을 피하고 천주교 정신에 따라 깊이 있는 천주교 사회복지 활동이 이루어지기 위해, 단지 사회법의 요구를 채우는데 그치지 말고 가톨릭의 정신과 방법론을 명확히 규명하고 교육하여 천주교의 정신이 적용되고 구현되도록 해야 하겠다. 그래서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라는 기초 아래 클라이언트의 요구를 조물주의 호소와 동일하게 받아들이고, "어떤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그 날 먹을 양식조차 떨어졌는데 여러분 가운데 누가 그들의 몸에 필요한 것은 아무 것도 주지 않으면서 '평안히 가서 몸을 따뜻하게 녹이고 배부르게 먹어라.'고 말만 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 어리석은 사람이여, 행동이 따르지 않는 믿음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고 싶습니까?"(야고 2,15-16.20)라는 성서 말씀을 따라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사회복지를 해야하겠다.




A Study of the History of the Catholic Social Welfare in Korea

Peter Heung-bo Shim

Master's Program in Social Welfare

Graduate School of Social Welfare

The Catholic University of Korea.

ABSTRACT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seek how the Church should be in order to fulfill the mission and the welfare tomorrow through arranging what is the Social Welfare which the Church has done according to the change of social environment and through confirming the position that the Social Welfare has been on the evangelization of the Catholic Church in relation with the Korean society and the specific character of the ages.

The history of Catholic Social Welfare in Korea was divided into 6 periods : 1) the Early Church, 2) the period of Freedom of Religion, 3) the period of Japan's Colony, 4) the post Liberation period, 5) the period after establishing the Korea Caritas which is called the Human Development Committee of the Catholic Bishops' Conference of Korea and 6) the period from establishing the Social Welfare Committee of the Catholic Bishops' Conference of Korea to nowadays; and seeking first the background of the policy in the Society and the Church Social Welfare, secondly the various fields of the Catholic Church Social Welfare, thirdly the character and meaning of the Social Welfares of each period.

And it is the Social Welfare that "the various ways to realize the teachings and directives of the Church which are based on the love and thought of Christ for doing and sharing and fulfilling the needs and problems which are hard to respond individually" in this study. Saying this in Church words, it can be called "the concrete acting of the loving neighbor which is responding the God's love".

During the 1st period, 'the Early Church' (1777∼1886), the Catholic Church was persecuted. The loving God was through the teachings and pastoral policies of the pastor and the acting of the layman, especially for the poor.

The 2nd period, 'the period of Freedom of Religion' (1886∼1910), each of the parishes, the unit of the Catholic Church had done Social Welfares, the orphan asylum and the asylum for the aged and the pharmacy for needy patient, etc., with the Religious who were sent to the Parish in Communities located in the Parish territory.

The 3rd period, 'the period of Japan's Colony' (1910∼1945), even though the Catholic Church was dismissed from the Social Welfare that had cared for the orphan, the aged, the education, the medical, etc because the Japan's colonial government wanted to control easily the Korean society. The Church conducted basic courses of education of the society and the press, culture services. And by this reason, the women Religious Societies were restricted to assistant roles of the liturgy and the catechism. Otherwise, the Societies of Religious had started to do Social Welfare by themselves separately from the Parish.

The 4th period, 'the post Liberation' period (1945∼1975), the Catholic Church did Social Welfares under the sponsoring of the Catholic Relief Service(C.R.S.) of U.S. and other sponsors of foreign organizations after the Liberation and the World War Ⅱ. And there was established the professional Society of Religious, Congregation, Caritatis S.S. Sacramenti (C.B.S.S.) and the professional association of St. Vincent de Paul Society in the field of the Social Welfare.

The 5th period, 'the period after establishing the Korea Caritas which is called the Human Development Committee of the Catholic Bishops' Conference of Korea' (1975∼1991), the Catholic Church received the finances and acts from the C.R.S. to the Human Development Committee of the Catholic Bishops' Conference of Korea. And the community service which was done by the parish was changed to the professional service performed by the dioceses and the Societies of Religious. And the Government has started to entrust the management of organizations of the Social Welfare to the Church. And appearing the full-time director who is in charge of the Social Welfare.

The 6th period, 'the period from establishing the Social Welfare Committee of the Catholic Bishops' Conference of Korea to nowadays' (1991∼), the Church renamed the Human Development Committee of the Catholic Bishops' Conference of Korea to the Social Welfare Committee of the Catholic Bishops' Conference of Korea and put that Committee in charge of the Social Welfare. And so it was established the Caritas (committee) of each Dioceses to plan and control, support the Social Welfare.

Based on these results of the study, follow these suggestions;

First, as appearing in 'the Early Church', it should be not separated the mission and the welfare but integrated and harmonized systematically. And the principle and direction of the Church Social Welfare should be based on the point of view of faith that is the sacrifice for saving our neighbor.

Secondly, as appears in 'the period of Freedom of Religion', the parish, the unit of the Catholic Church should be to respond directly to the client, the infant, the aged, the handicapped etc who is needed basically in its area. And agencies and organizations of Social Welfare should keep relationship with the community parishes.

Thirdly, as appearing often in the history of Korean Church Social Welfare, changing the pastoral direction according to the change of the pastor should be avoided. And the pastor should plan with pastoral assistants and leaders, laymen. In other hand, laymen should be to act actively and positively and support continuously and responsibly not move passively by the pastor's suggestions and commands.

Fourth, not to repeat the dismissal from the field by reason of the lack of professionalism when in the time of Japanese Colony, to be professional is very required in the mission and the welfare. And it should be prepared the information and guide line of the related administrative process and content of the Social Welfare for the pastor and the religious and the layman who want to start.

Fifth, as remembering the history of Social Welfare which was sponsored by foreign Churches, the Korean Church should support the poor and the client of the foreign countries to promote solidarity and so to do more and better.

Sixth, as appearing in the history of the Church Social Welfare, several misunderstandings and struggles which were from the unknowing of the catholic thought and method should be avoided and educate and realize the spirituality of the Catholic for the good Catholic Social Welfare, not only the Church act should be good the social law concerning the Social Welfare. And so it should receive the needs of the client as a request of the Creator under the spirit of that "In so far as you did this to one of the least of these brothers of mine, you did it to me."(Mt 25,40) and do clearly and directly the Social Welfare according to the words, "If one of the brothers or one of the sisters is in need of clothes and has not enough food to live on, and one of you says to them, 'I wish you well; keep yourself warm and eat plenty', without giving them these bare necessities of life, then what good is that? Do realize, you senseless man, that faith without good deeds is useless."(Jm 2,15-16.20)

Ⅰ. 서론


1. 문제제기와 연구목적

교회는 지상에서 하늘 나라로 향해 순례하는 하느님 백성들의 모임이다. 이들은 하느님이 인간을 지으시고 사랑하시고 구원해주시리라고 믿는다. 그래서 이들은 하느님이 다스리시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한편 이들은 자신들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또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이 땅에서 미리 앞당겨 살기 위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기억한다. 이는 곧 하느님께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그 외아들 예수를 세상에 보내시어 제물로 삼으실 정도로 인간을 사랑하신 그 사랑을 살고자 한다. 이 사랑은 바로 예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바치신 구원을 위한 희생이다. 그리고 그 희생은 죽음에 그치지 않고 부활하심으로써 인류의 주님이 되셨다. 그래서 예수님은 주님이시고 참으로 인간에게 기쁜 소식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너희는 가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내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것을 지키도록 가르쳐라"(마태 28,19-20)하신 말씀에 따라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한다. 그런데 복음을 전하는 것이 곧 '신자가 되게 하는 일이다.'라고 한계 지어 말할 수는 없다. 교황 바오로 6세는 이미 '현대의 복음선교'에서 복음 선포한다는 것은 단지 '전교'(傳敎)에 그치지 않고, 그리스도를 모르는 이에게 그리스도를 알리고 신자로 만들 뿐 아니라 그들이 생활하는 삶의 현장에 구체적인 변혁과 역전이 전개되도록 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고 밝혔다.(바오로 6세 : 17∼19항) 그러기에 이제는 더 이상 과거처럼 교회의 사목형태 중에 교리교육을 '직접 선교'로 사회복지 활동을 '간접 선교'로 구분하고, 간접선교는 직접선교를 위한 하나의 방편에 불과한 것으로 격하시키거나 덤으로 주어지는 것으로 간주해서는 안된다. 다시 말해서 교회의 사회복지활동은 하느님께서 인간을 사랑하신다는 구체적인 표징이며, 가난한 이들이 그 표징을 통해 하느님이 자신들을 사랑하신다고 느껴 고백하게 됨으로써 복음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 아직도 일부에서는 2,000년대를 향한 교회의 복음화를 깊이 받아들이고 적용하지 못한 채 과거에 머물러 있다. 일례로, 최근 서울대교구의 어느 한 본당에서 그 관할 지역사회에 홀로 사시는 할머니들을 위한 집을 마련하기 위해 양로원을 지으려고 시도했다. 그런데 그에 대한 교회 안팎에서 들려온 다양한 반응 중에는 복음화를 잘못 이해하는 이들의 목소리도 있었다. "왜, 본당 신부가 본당 일은 안하고 엉뚱한 일만 벌리느냐?", "교회가 왜 사회복지를 하나?", "양로원은 특수사목이지 본당사목이 아니지 않느냐?" 등 사회복지가 선교에 차지하는 내용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목소리였다.

본당 사목과 특수 사목을 완전히 별도의 것으로 치부해서는 안된다. 하느님 사랑의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표징이 사회복지적인 형태로 드러나는 것이다. 오갈 데 없는 할머니를 방문하고 위로하는 것은 본당 사목이고, 그 할머니들을 위한 집을 짓고 모시는 것은 특수 사목이라고 할 수는 없다. 나이가 이미 70대가 넘어선 노인들에게 지금까지 자기가 살아왔던 집과 이웃과 고향 산천을 떠나 노인 요양소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라는 것이 진정 인간에게 총체적인 해방과 구원을 가져다주는 사목적인 행위라고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진정 본당 사목을 단순히 예비자 교리와 성사집전, 신자방문 만을 본당 사목으로 국한한다면, 과연 사목의 목적과 목표가 무엇인지 의아해진다. 무엇 때문에 사목하고, 왜 성당에 나오라고 하는지 되새겨야 한다. 개인의 심리적인 안정과 이기적인 행복을 추구해주기 위해 나오라고 하지는 않는다.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 신자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기쁜 소식을 들은 신자들이 기뻐서 세상에 나아가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도록 하기 위해 사람들을 교회로 모으는 것이다.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이라는 - 사목 수행의 현실적인 한 형태로 드러나는 - 사회복지적인 행위를 교회의 부수적이고 이차적인 것으로 취급하지 말고, 교회의 본질을 이루는 것으로서의 사목의 직접 선교와 간접 선교라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것으로 보아야 하는데도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그러므로 교회의 역사가 이를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이 논문을 통해 고찰해 보도록 한다.

한국 교회의 역사 안에서 특별히 신앙을 가졌다는 이유 때문에 세상으로부터 박해를 받아 몸을 피해야 했던 박해시대에도 이 사회복지적인 이웃사랑이 없지 않았다. 초기교회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교회의 역사 안에서 사회복지적인 애덕 활동이 교회가 처한 내외적 환경 안에서 어떤 역할과 비중을 차지했고, 그리고 교회는 어떤 형태의 사회복지를 했으며, 그러한 교회의 모습은 그 당시 사회와 어떤 영향을 주고받았는지, 또한 그러한 사회복지적인 활동이 어떤 변천과정을 밟아 왔는지를 살펴보기로 한다.

한국 천주교의 사회복지에 관한 연구를 한 박석돈(1981)과 최정복(1952) 등은 신자들의 자선사업에 대해 실례와 한국 최초의 아동복지시설 영해회와 양노원, 시약소, 성 라자로 요양원 및 미국 가톨릭 구제위원회의 활동 그리고 천주교 사회복지 전국조직인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인성회를 다루었고, 최석우(1982)는 시약소를, 유흥렬(1962)은 한국 최초의 노인복지 양로원 설치에 대해, 조화영(1992)은 영해회에 대해 다루었다. 그리고 전찬범(1994)과 김용태(1993)와 이현숙(1997)은 성서와 성전(聖傳) 그리고 교황 요한 바오로2세의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인 사랑'이라는 권고에 따라 가난하고 고통받고 억눌려 있는 모든 사람들에 대한 사랑과 배려가 크리스챤의 의무이자 권리이며, 물질적인 지원 뿐만아니라 정신적이고도 인격적인 차원에서 교회가 적극적으로 대응 참여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초기 한국 천주교회의 사회복지 활동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천주교 사회복지의 흐름을 살펴본 바 있다.

이상의 선행연구들에 나타난 천주교 사회복지 활동을 보면, 한국 천주교회는 박해시대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그리고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려는 교회의 본질적인 형태로 사회복지 활동을 해왔다는 것을 부분적으로나마 확인할 수 있었다. 1777년부터 시작된 221년간의 한국 천주교회의 역사는 한국 천주교회 사회복지의 역사가 아닌가? 이 한국 교회의 역사 안에 엄연한 현실로 살아 있는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 자리를 간접 선교로 간신히 본당 사목 속에 넣어 주거나, 있으면서도 한 구석으로 밀어 놓기 보다 적극적으로 찾아주고 계승 발전시켜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한국 천주교회의 사회복지 활동에 대한 역사가 전체적인 면에서 구체적이고도 통합적으로 정리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천주교회 내에서 사회복지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천주교 사회복지의 정신과 그 적용에 있어서 매번 개별적으로 처음부터 다시 새롭게 풀어나가야만 했다. 또 어렵게 사회복지 활동을 시작했어도, 이렇게 사회복지의 정신과 적용이 체계적이고 이론적으로 정립되어 계승 발전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특별히 관심이 있는 사회복지사업가 개인의 당대에 그치거나, 또 그 후임자들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혼란과 사업의 변환이 거듭되는 일을 이제는 멈추도록 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 연구는 각 시대별 사회환경의 변화에 따라 교회가 어떠한 사회복지 활동을 펼쳐 왔는지를 체계적으로 정리하면서, 사회복지 활동이 교회 복음 선교에서 차지하는 자리를 그 시대의 특성과 한국 사회와의 관계 안에서 재확인하여, 교회가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선교와 복지를 해 나가야 하는지를 모색해 보고자 한다.


2. 시대구분과 연구내용

1) 시대구분

샤를르 달레(Ch. Dallet) 신부는 1784(1592)년부터 1866년 병인박해(丙寅迫害)까지의 한국 천주교회 역사를 둘로 나누었다. 첫째는 1592년 임진왜란시 일본인들의 조선 침략으로 인해 일본에 잡혀가 입교 순교한 조선 사람들의 뒤를 이어 1784년 이승훈의 첫세례 후 1827년 교회가 정해박해(丁亥迫害)를 받기까지를 '초기의 한국교회'로 잡았다. 둘째는 1831년 천주교 조선교구가 설정되고 1866년 병인박해로 베르뇌(Berneux) 주교 및 그의 동료신부들의 순교에 이르기까지를 '시련과 발전의 한국교회'로 잡았다.

그리고 유홍렬은 한국 천주교회 역사를 예수회 포르투칼인 가스파르 빌렐라 신부가 일본에서 조선으로 선교하려고 계획했던 1556년부터 '일제 압정하의 교세와 해방 후의 교회 발전'까지를 10편으로 나누어 잡았다.

위에서 언급한 이 둘의 한국천주교회사는 초기 교회의 순교와 순교로 지킨 신앙의 자유 획득 그리고 해방 전후를 기준으로 역사를 나누고 있다.

그리고 초기 교회 이후 역사의 연구의 기준이 되는 시대 구분은 김성태 신부 지도의 가톨릭대학교 신학과 학생들의 일제시대 교회사 졸업논문에 나타난 시기구분을 참조할 수 있다.(강형석, 1995; 김선용, 1996; 백지영, 1998) 그리고 이들은 해방이후를 한 시기로 잡았다.(정승호, 1992; 한정희, 1996; 유환민, 1996) 한편 일제시대를 사회복지 역사의 한 획으로 구분한 것은 권오구(1997 : 241)와 함세남 외 7인(1996 : 542)의 경우와도 같다.

전찬범(1992)은 1784년 한국 천주교회의 성립에서 1886년 선교 자유까지를 '제1단계 : 박해시대'로 구분했다. 그리고 선교 자유에서 1945년 해방 전까지를 '제2단계 : 문호개방과 일제강점기'로 구분했다. 그리고 해방이후 1975년 인성회 설립 전까지를 '제3단계 : 자치교회의 발전시기'로 구분했다. 그리고 인성회 활동시기부터 1991년 사회복지위원회 설립 전까지를 '제4단계 : 인성회 활동시기'로 구분했다.

연구자는 달레와 유홍렬과 함께 1777년 국내의 천진암 주어사에서 유학자들이 처음으로 천주교를 연구하기 시작해서 1784년 이승훈이 세례성사를 받고 이어지는 박해 속에서 1831년 조선 교구가 설정되고 1866년 병인박해로 많은 신앙인들이 순교한 후 그 열매로 1886년 한불수호조약을 맺고 신앙의 자유를 얻기까지를 '제1기 초기교회 신앙정립과정의 활동기'(1777∼1886)로 구분한다.

그리고 신앙의 자유를 얻은 이후 교계제도가 정식으로 설정되고 수도회가 진출하며 평신도들도 세상에서 드러내놓고 공식적으로 활동하다가 1910년 한일합방으로 다시 한국 천주교회가 정치적으로 주권을 잃고 박해를 받기 전까지를 '제2기 종교자유획득과 수도회 결성이후의 활동기'(1886∼1910)로 구분한다.

그리고 한일합방의 설움과 압제에서 신음하다가 해방이 되어 다시 주권을 되찾은 1945년 8월 15일까지를 '제3기 일제식민시기의 활동기'(1910∼1945)로 구분한다.

그리고 이 논문은 교회의 사회복지 활동을 다루기 위한 연구이므로 전찬범과 함께 해방이후를 1948년이나 1960년대까지로 한정하지 않고, 한국 천주교회의 사회복지 활동을 전국적인 조직체계로 연결한 1975년 주교회의 인성회 설립 이전시기까지를 '제4기 해방후 활동기'(1945∼1975)로 구분한다.

그리고 1975년 6월 26일 한국 카리타스인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인성회 설립되고 그 산하에 전국적인 사회복지조직이 결성되고 체계적인 사회복지활동을 펼친 '제5기 인성회 조직 이후의 활동기'(1975∼1991)로 구분한다.

그리고 주교회의 인성회가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로 개칭되어 사회복지 전담으로 축소 집중된 1991년 10월 이후 전국적으로 각 교구에 사회복지회(국 또는 위원회)가 설치되어 활동하기 시작하여 현재까지를 '제6기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 조직 이후의 활동기'(1991∼)로 구분한다.

2) 연구 대상

한국 사회복지사를 연구하기 위해서 무엇을 사회복지의 대상으로 볼 것인가를 정해야 한다. 사회복지의 대상을 정하기 위해서는 사회복지의 개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사회사업사전에서는 "사회복지는 사회를 유지하는데 기본적인 사회, 경제, 교육, 건강의 욕구를 사람들에게 충족시키고 지역사회와 전체 사회의 집단적인 복지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국가적 프로그램, 급여, 서비스 체계."(로버트 L. 바커 : 110) 라고 한다.

그리고 "사회복지는 인간의 복지를 증진시키기 위해 사회적,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사회의 조직화된 노력이다."(김융일, 조흥식, 김연옥 : 20) 라고도 한다. 또 김융일(1986)은 "사회복지는 정부 및 민간기관들이 개발과 개입전략을 통해 모든 국민들이 적절하고 창조적인 사회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인간과 사회제도들 사이에 위치해서 그들의 상호작용을 회복 유지 강화시킴으로써 개인의 자기실현과 사회의 정의를 구현하려는 공사의 조직화된 활동들의 체계로서 제일선 사회제도들 중 하나이다."라고 한다.

한편 하상락(1989 : 12)은 사회복지사 연구의 대상을 찾기 위한 사회복지 개념의 불명확성을 언급하면서도 사회복지에 대한 가장 포괄적인 개념 규정을 해 본다면, 개인적으로 대처하기 어려운 욕구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협동적인 노력 또는 제 3자에 의한 원조의 체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한국 천주교회사를 연구하고자 하는 이 논문에서는 사회복지를 "개인적으로 대처하기 어려운 욕구나 문제에 그리스도의 사랑의 정신으로 함께 참여하여 그 문제를 나누고 함께 풀어나가기 위한 교회의 가르침과 교회의 사목적 지침 그리고 그 가르침에 따른 교회 공동체의 직·간접적인 행위와 신자 개인이 신앙의 정신을 가지고 교회의 이름으로 또는 교회의 가르침과 지침을 실천하려는 다양한 노력"이라고 규정한다. 이를 교회적인 용어로 바꾸어 말한다면, "하느님 사랑에 응답하는 이웃사랑의 구체적인 형태의 활동"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러한 사회복지의 규정아래 이 연구에서는 천주교 사회복지사 연구의 대상을 한정된 사회적 약자와 사회적 낙오자에 두고 그 구제, 보호, 예방, 회복의 원조를 행하는 시책과 방법체계로 이해하여(이계탁 : 13) 사회복지사업을 중심으로 하는 협의의 사회복지(김상규, 윤욱, 전재일 : 30)와 사회복지를 포괄적으로 표시하는 광의의 사회복지(김용태 : 9) 모두로 잡는다.

그리고 "사회복지는 인간의 존엄성을 수호하기 위한 사회 공동체적 활동이므로 사회복지는 자선활동뿐 아니라, 정의를 실현하는 수단으로 인식되어야 한다."와 "교회의 복지시설은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에게도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도록 도와주도록 하는 시설이다.(사목회의 사회복지 의안, 제 8절 참조)."라고 한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의 결정(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 82)도 참조한다.

3) 선행 연구와 연구 내용

한국 천주교회 사회복지에 관한 선행 연구들을 보면, 달레(Ch.Dallet) 신부의 한국천주교회사와 유홍렬(柳洪烈)의 한국천주교회사 등 기존의 천주교회의 역사 연구는 순교로 지킨 신앙과 신앙을 전하는 선교 측면에서의 성장과 성숙을 기술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 천주교회 사회복지사를 부분적으로 연구한 선행연구들도 있었다. 박석돈(1981)은 이승훈 베드로와 원 베드로, 강완숙 골롬바, 김시우 알렉스, 김명숙, 김종한 안드레아, 조신철 가를로, 최경환, 최해성 요한, 이문우 요한, 민극기 스테파노 등의 자선사업에 대해 실례를 들어 기록하였고, 김옥현, 서상돈, 대구교구의 인애회를 기술한 최정복, 안성 본당의 공신부 등에 의해 빈민구제사업이 이어졌다고 하였다. 그리고 해방과 6 25를 겪는 동안 '미국 가톨릭 구제위원회'(Catholic Relief Service)가 한국에 진출하면서 대대적이고 조직적인 구빈사업과 사회개발사업이 펼쳐졌다고 기술하고, 1946년 구호사업을 시작하여 1952년 외원법에 의해 외원단체로 보사부에 등록한 한국의 C.R.S.가 한국 인성회에 양도되기까지의 역사를 기록하였다.

그리고 1852년 한국에 파견되어 나온 매스트르 신부의 1854년의 영해회를 시작으로 한 고아원 사업과 1894년 한국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가 인천에 고아원을 설립하며 시작한 시약소의 의료복지사업 그리고 1948년부터 세브란스병원 부속 결핵요양소를 구입하여 성 라자로 요양원을 설립하여 시작된 구라사업 등을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그리고 교회예산에 공식적으로 배정되어 있는 자선비(현재의 찬조비)를 언급하고, 이어 그는 교회의 사명을 복음선포(Kerygma)와 전례(Liturgia) 및 애덕(Caritas)과 봉사(Diaconia)에 둠으로써 교회 초창기부터 불우한 형제들에게 애덕을 실천할 것을 주교(사제계급 중 신부의 윗단계 신분) 축성식의 내용에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을 소개한다. 그리고 모금운동으로 시작된 인성회(국제적인 이웃돕기 사업인 Caritas의 한국조직명)의 설립과 그 취지 및 활동을 기록했다. 그리고 가톨릭 아동복지협의회와 가톨릭 결핵사업가협회, 심신장애인사업 종사자회, 교회 여성 사회사업 종사자회, 국내정착 월남 난민문제에 대한 회와 대구 중심의 사회복지시설 자원체계를 기술했다.

최석우도 의료사업의 일환인 시약소를 전국 주요도시에서(1982 : 418), 유흥렬도 1885년 노인복지를 위한 최초의 양로원을 설치 운영했다고 밝히고 있다.(1962: 상권 289)

조화영(1989 : 79)은 위 박석돈에 이어 1854년 매스트르 신부에 의해 설립 운영된 한국 최초의 아동복지시설인 영해회를, 교회의 사목자가 당시의 시대상황 속에서 어려움에 처한 백성들에 대한 직접적인 사목활동으로 간주하고 다루었다. 그리고 그는 연구의 결론에서 "첫째, 근대적 의미의 아동복지 사업의 발아기를 1854년 매스트르 신부의 영해회 사업 전개로 봄이 마땅하다고 생각하므로 기존의 한국 사회복지사 문헌에서 제시하는 근대적 사회사업의 실시시기를 1894년 갑오경장의 개혁정치 이후(구자헌, 1970 : 47)나 1897년 대한제국 선포 이후(지윤, 1969 : 248-250)로 보는 것은 마땅치 않다고 생각한다. 둘째, 기존의 사회복지사 문헌에서 최초의 고아시설 설립 년도를 1888년으로 보는 것(하상락, 1989 : 82)은 수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기존의 사회복지사 문헌에서 제시하고 있는 두 가지 사실에 대해 수정요구를 하였다.

전찬범(1992)은 "자생적 교회로 이 땅에 뿌리를 내린 한국 천주교회는 어려운 박해시기가 채 끝나기도 전에 이미 그리스도의 사랑과 나눔을 실천하기 위하여 사회복지활동을 펼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민족적 굴욕과 아픔의 시대인 일제치하와 6·25동란을 겪는 동안에도 사회복지활동은 복음 정신에 따라 교회의 명분을 유지하면서 꾸준히 전개되어 왔다."고 했다.

김용태(1993 : 62)는 "교회 사회복지활동이 자선과 애긍의 덕이라는 차원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인 사랑'이란 사도직 권고에 따라 가난하고 고통받고 억눌려 있는 모든 사람들에 대한 사랑과 배려가 크리스챤의 의무이자 권리임이 천명되면서, 교회는 사회복지에 대한 다양한 요구를 수용하게 되었다. 또한 사회복지 대상자들에 대한 물질적인 지원뿐만 아니라, 비물질적이고 인격적이고 정신적인 사회복지의 요구들이 대두되었고, 이러한 요구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교회의 사명으로 여겨지게 되었다."고 밝혔다.

이현숙(1997)은 '가톨릭 사회복지의 현황과 발전 전망'과 '한국 복지제도의 발전과 한국교회의 사회복지 참여 전망'에서 "천주교 사회복지사업의 역사를 보면 역시 19세기말로 거슬러 올라가며, 다양한 영역에서 사회복지활동을 선구적으로 전개해 왔을 뿐 아니라, 서구적인 사회복지 개념과 방법론을 소개하는 등 한국사회의 사회복지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한편 김인숙(1997 : 4)은 '지역사회 안에서의 교회의 역할'에서 "한국 가톨릭 교회의 사회복지활동은 외국의 수도회들이 선교의 보조 수단으로 사회복지시설을 운영했던 일제시대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당시 한국의 사회복지는 일제가 도입한 '조선구호령'이라는 생활보호사업 형태가 고작이었다."라고 했다.

이상의 연구를 보면 초기 교회사에 있어서 박석돈은 평신도 신자 개인차원의 자선사업 사례만을 다루었으며, 그 이후는 대구교구에 치중한 듯한 모습이 보인다. 또한 김인숙의 글은 이미 1777년부터 한국 천주교회가 시작되었는데도 교회 존재의 양면인 선교와 사회복지라는 양면 중 사회복지 부분을 간과했을 뿐만 아니라 사회복지를 사회복지시설 운영으로 한정시킨 것이다.

한국 천주교회가 종교의 자유를 얻은 시기에서 최석우와 유흥렬은 교회사의 관점에서 교회가 사회복지사업을 하였다는 사실을 기록하는데 그치었고, 조화영은 아동복지에 대해서 성실히 다루었으나 당대 교회 복지사업의 전반을 소개하지는 못했다.

김용태와 이현숙과 전찬범은 현대교회의 사회복지의 진단과 미래방향을 제시하느라 역사의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사료부분을 폭넓고 깊이 다루지는 않았다.

이상의 연구들의 한계점을 종합하면, 교회 사회복지 활동이 교회사 안에서 차지하는 비중이나 의의를 뚜렷이 밝히지 않았고 또한 교회 사회복지 활동의 전체적인 체계와 세대 간 사회환경의 변화 속에서도 꾸준히 사회복지 활동을 실천케 한 연결고리가 되는 일관된 교회 사회복지의 맥락을 이끌어 내지 못했다.

그래서 연구자는 한국 천주교회가 초기교회부터 순교로 지킨 신앙을, 시대와 세대를 거치며 한국 전체 교회와 각 교구별로 현대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현실에서 실현하며 살아왔는지를 '하느님 사랑의 표현인 이웃사랑'이라는, 즉 어려움에 처한 이웃과 단체 및 지역사회를 말로 위로하고 수용과 보호 및 양육 그리고 제도적이며 체계적으로 돕는 '교회의 사회복지'라는, 일관된 시각에서 각 시대와 각 복지분야를 통합적으로 밝혀보고자 한다.

이러한 연구를 위해 연구자는 구분된 각 시대 별로

첫째, 정치 사회 및 교회 사회복지적인 배경을 살펴보고

둘째, 분야별 천주교 사회복지사업을 살펴본 후

셋째, 사회복지 활동의 시대적 성격과 의의를 살펴보고자 한다.

정치 사회 및 교회 사회복지적인 배경은 구분된 각 시대의 사회복지활동을 가져오게 한 사회상과 교회의 토대를 기록하며, 그 내용은 시대별 활동내용에 따라 구체화한다.

그리고 분야별 천주교 사회복지사업은 아동복지(보육원과 어린이집, 탁아소, 유치원)와 교육복지, 야학 및 기술복지, 장애인복지, 행려자복지, 근로자복지, 청소년복지, 여성복지, 노인복지, 의료복지, 지역사회복지 순으로 다루는데, 나환우 복지처럼 각 시대의 특징 및 중점사업은 먼저 다루고 특별히 현대의 복지분야로 분류할 수 없는 시대적인 특정사업은 기타 항목에서 다룬다.

분야별 천주교 사회복지사업 중 문맹인들과 가난한 이들에 대한 기초적인 사회 지식습득 그리고 사회적응과 취업 차원에서의 교육 그리고 사회복지 전문 교육과정을 사회복지사업의 교육복지 범주 안에 넣는다. 이는 아동복지의 유치원과 의료복지의 경우 의·병원도 같은 맥락이다.


3. 연구 방법과 일정

1) 한국 교회사를 다룬 서적과 논문 등지에서 사회복지사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또 관련자에게 인터뷰를 한다.(1997년 12월∼1998년 9월)

2) 한국 교회사 연구소에서 1985년 발간한 한국 가톨릭 대사전에서 한국 천주교의 사회복지 활동을 찾아 시대별로 구분 나열한다.(1997년 12월∼1998년 9월)

3) 이렇게 나열된 사회복지활동을 전개해온 한국 천주교의 해당 본당과 수도회에 그 사회복지활동의 역사와 내용을 일차적으로 질문지를 보내 확인하고, 필요하다면 인터뷰를 하여 보완한다.(1997년 12월∼1998년 11월)

4) 이렇게 나열된 사회복지활동을 전개해온 한국 천주교의 해당 사회복지시설에 그 사회복지활동의 역사와 내용을 일차적으로 질문지를 보내 확인하고, 필요하다면 인터뷰를 하여 보완한다.(1997년 12월∼1998년 11월)

5) 수집된 자료를 통합 분석한다.(1998년 3월∼1998년 11월)


이 논문은 1998년 가을학기 가톨릭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 사회복지학과에서 문학석사학위를 받은 논문입니다. 첨가나 수정하시고 싶은 내용이 있으시면 아래의 주소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E-mail : peters1@seoul.catholic.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