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천주교 사회복지사


Ⅲ. 결론




1. 한국 천주교 사회복지사 요약



1) 초기교회 신앙정립과정의 활동(1777∼1886)

1777년부터 시작된 한국 천주교회 초기에는 신자들이 책을 보고 신앙을 갖기 시작했고 비록 교회법적으로는 불법이었지만 중국교회에서 어깨넘어로 보고 온 대로 가성직제도를 세워 교회공동체를 건설하면서, 하느님께 대한 신앙은 곧 형제들, 그 중에서도 가난한 이들에게 봉사하는 생활로 드러나는 것이라고 굳게 믿고 실현에 옮기며 살았다.

특히 이러한 사실은 사목자들의 서한에서 나타났듯이 김대건 신부가 박해로 인한 죽음의 현장에서도 천연두로 고생하는 백성들을 고쳐주기 위해 그 치료방법을 청하였고, 최양업 신부가 스승 신부에게 청한 목록 속에 선교에 필요한 성물을 보내달라고 하기 보다 먼저 우선 백성들이 비위생적인 물로 인해 생겨나는 잔병에서 헤어나도록 해주기 위해 공중 위생을 위한 물의 정화방법을 알려달라고 청하였으며 또 매스트르 신부도 1855년 신학교를 세워 신학생을 양성하기 이전에 우선 1854년에 고아원을 설립한 모습들 속에서 사목자들은 사회복지활동을 종교의 교리를 선포하는 것에 우선시하거나 적어도 동전의 양면과도 같이 동등하게 간주하였고 평신도들도 자신들의 삶으로 이러한 신앙을 살았다.

한편 이러한 모습이 고난과 박해의 피난시절과 형장에까지도 그리고 박해자들에게까지도 드러남으로써, 한국천주교회는 초기교회 때부터 사회복지로 통칭되는 이웃 사랑을 하느님께 대한 신앙의 응답이요 증거로 삼았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교우들은 자신의 몸을 바쳐 순교하듯이 가난한 이들에게 헌신하게 된 것이다.

사회복지사업으로 보자면, 1836년 파리외방전교회 모방 신부가 김대건, 최양업, 최방제 3소년을 마카오로 유학시켜 근대적인 교육을 받도록 했으며, 1854년 매스트르 이 신부는 전교활동 중에 죽음에 직면한 고아들을 위해 '영해회'라는 보육원을 세워 프랑스 성영회의 재정후원으로 운영하고, 1855년에는 한국 최초의 근대식 학교를 세워 신학생들을 양성했다. 1857년에는 영해회의 어린이들과 가난한 이들을 위한 시약소를 설치 운영하였다. 이 고아원과 시약소는 1866년 병인대박해로 중단되었다가, 1880년 다시 계속하였다. 그리고 1882년 9월 명동 성당 관할지역에 인현서당을 세웠고, 1885년 블랑 주교는 관철동에 양로원을 설치해 운영했다.

비록 한국의 초기 교회가 신앙 전파와 동시에 박해가 이어져 공개적으로 신앙활동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드러나게 사회복지 시설을 운영할 수는 없는 형편이었는데도, 이웃 사랑의 차원에서 드러나는 사회복지 활동은 단순히 가난한 이에게 대한 일회적인 적선으로 그치지 않고 교우촌을 이루어 공동체차원에서 그리고 '한줌의 쌀' 운동등을 통해 조직적으로 실현해 왔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사제들이 들어와서는 근대식 사회복지 시설을 세우고 운영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2) 종교자유획득과 수도회 결성이후의 활동(1886∼1910)

1886년 한불 수호조약으로 인해 종교 자유를 획득한 후 천주교 사회복지 활동은 초창기 빈민구제와 고아 및 환자 치료 활동의 연속과 아울러 개화기라고 할 수 있는 한국 사회의 사회화와 문화화 및 문맹퇴치 등의 사회 기초 교육에 대한 교육복지에 힘썼다. 특히 이 시기에는 교회의 선교와 복지 사업을 위해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를 비롯한 수도회들을 초빙하여 그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이들은 각 본당 주임사제의 초청으로 파견되어 본당마다 고아원과 시약소, 양로원, 학교, 야학 등을 담당하게 되었다. 서울 명동과 중림동, 인천의 제물포, 황해도의 매화동과 재령, 평양의 관후리와 진남포, 수원의 안성과 왕림 및 장호원, 강원도 이천 본당 등지에서 본당들이 세워지고 수도회들과 함께 교회의 선교와 복지 활동이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1893년의 통계에 의하면 천주교에서 설립, 경영하는 학교가 36개교, 학생수가 246명이다. 그 후 11년후인 1904년에는 75개교 693명으로 늘었다. 근대화가 진행되던 그 시대에 교회는 문맹 퇴치와 가난한 이들의 교육을 위해 헌신함으로써 사회와 민족적인 요구에 응답하였다. 한편 여성 수도회의 진출로 수녀들이 1900년부터는 여아와 여성들의 개화와 교육에 이바지하게 되었다.

그러나 1905년부터 시작된 정부의 보호정치는 선교사들뿐만 아니라 평신도와 일반인들도 교육기관을 설립하게 되었지만, 1908년 공포된 사립학교령으로 인해 인가 청원서가 각하 되었다. 1910년도 교구통계를 보면 천주교 학교 총수가 124개인데 반해 학부가 발표한 것은 46개교로 나타남으로써 78개교가 인가를 받지 못했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샬트르 100년사 : 35)

한편 이 시기 천주교 사회복지사업의 특징은 그 사업의 주체가 교구가 아니라 각 본당이었다는 것이다. 신부들은 주교로부터 본당에 파견 받아 그 본당과 그 본당 관할구역 지역사회에 살고 있는 가난한 이들의 필요와 욕구에 적극적으로 응답해 고아와 문맹인, 빈민, 노인 등을 보호하고 교육하는 데 그 사명을 다했다. 천주교회 각 본당들은 그 지역사회의 가난한 이들의 기쁜 소식이 된 것이다.

그리고 1906년에 창간한 경향신문을 통해 일제의 침략을 저지하기 위한 민중계몽운동과 민족자립, 애국애족운동을 공개적으로 펼치다가 1910년 한일합방으로 폐간되었다. 이외에도 교회는 각 본당에서 운영하는 학교, 야학, 기술학교 등지에서 일제침략에 대항하여 민족 계몽운동과 한일합병의 기도를 분쇄코자 다각적으로 노력했다. 그럼으로써 이 시기의 교회는 그 시대의 사회가 요구하는 민족적인 욕구에도 민감하고도 충실히 그 사명을 다하고자 했다.



3) 일제식민시기의 활동(1910∼1945)

1910년 한일합방으로 시작된 일제 식민정부 시기에는 조선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무엇보다 먼저 한일합방으로 인한 한국인의 주권상실이다. 그로 인해 한국인은 정상적이고도 성숙한 삶을 향한 모든 방편을 일본 식민지 지배정부로부터 제한 받아야만 했다.

교회의 선교 및 복지 사업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교회의 모든 종교의식과 사목, 사회복지 활동 그리고 신앙생활 등 전반적인 면에서 일제의 간섭과 제한을 받아야만 했다. 그래서 교회는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이고자 한 자신의 사명을 실현하는 데 여러 가지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었다. 아울러 교회는 사회복지의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게 된다. 그것은 개화기에 이루어진 문맹퇴치와 개화기의 사회적응을 위한 민중계몽운동 교육과정을 넘어 민족의 자주와 독립을 향한 정신 계몽 운동이며, 사회교육의 분야가 그것이다. 이러한 의식 개혁과 민족 자주 운동은 비록 파리 외방 전교회 선교사들이 주축인 교회의 책임자들에게는 우려와 주저함이 없지 않았지만, 한국인 성직자들과 수도자, 평신도들은 주체적으로 청년연합회를 결성하고 가톨릭 청년지를 창간하여 민족의식을 불러일으키고 사회 복음화 운동을 추진해 나갔다.

교회는 언론 복지를 통해 민중의 계몽과 교회의 입장을 밝혔다. 그리고 교육복지를 통해 근대화 운동과 반침략 운동을 전개했다. 예천의 인성학교는 '보국애인'을 설립 취지로 삼고, 이천의 삼애학교는 '애주(愛主), 애국, 애인'을 교훈으로 삼았으며, 안악의 봉산학교는 '나라를 사랑하는 정신과 도덕의 마음을 배양함과 국태민안'을 설립취지로 내세웠다.

이 시기에는 교회 내적인 변화도 많았다. 그것은 교구의 분할과 그로 인한 본당의 신설과 본당의 복음선포와 복지사업을 진행하기 위한 수도자들의 진출과 결성이 그것이다. 1884년부터 조선교구로 통칭되던 서울교구는 10개 교구로 분할되며, 분할 된 교구의 거의 모든 본당의 사목에 수도자들이 참여하였다. 특별히 여성 수도자들의 참여가 두드러졌다.

각 본당의 사목자들은 복음 선포의 일환으로 관할 구역 내의 가난한 이들에 대한 사목적 배려를 아낌없이 베풀어 본당마다 학교나 학원 또는 강습소를 통한 문맹 퇴치와 기술 교육복지, 육신의 건강을 통한 영적인 성숙을 가져오는 의료복지, 영유아와 고아를 위한 보육원과 유치원의 아동복지, 양로원을 지어 오갈 데 없는 노인을 돌보는 노인복지, 장애인들을 위한 장애인 복지 등의 사회복지사업을 교구나 수도회가 아닌 본당이 주체가 되어 그 본당이 위치한 관할 구역의 지역 사회 복지를 구현하였다. 그리고 일부 지역에서는 마치 "나더러 '주님, 주님' 하고 부른다고 다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간다."(마태 7, 21) 그러므로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구하여라."(마태 6, 33) 하신 주님의 말씀을 실현하기라도 하듯 본당의 성당 건물보다 사회복지 사업용 건물을 우선적으로 건축하는 경우도 있어, 교회가 공동체적으로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으로 현존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한편 교회는 일제의 침략에 맞서 민족자립운동을 펼치고자 노력했다. 1927년 발간한 대구청년회의 '천주교회보'와 서울청년회의 '별'지를 통합하여 '가톨릭 청년'지를 통해 경제, 사회, 법률, 언어, 과학, 미술, 의학, 문예 및 방송용어 등을 통해 민족 자주와 자립을 위한 계몽운동을 펼쳤고, 공산주의와 히틀러 정권을 비판함으로써 일제 침략정부를 우회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1933년 조선어학회의 '한글맞춤법 통일안'이 발표되자 이를 즉시 경향잡지에 적용하였고, 이병기의 '조선어 강좌'를 청년지에 연재함으로써 한글 연구를 촉진시키는 노력을 기울였다. 또한 한국인의 민족의식을 상기시키고 가톨릭과 민족문화를 접맥하기 위한 방편으로 '다산 선생의 서세 백년을 맞이하며'라는 특집을 통해 다산 정약용을 '동방의 태양', '조선 과학계의 명성', '위대한 과학자'로 제시함으로써 조선 민족과 조선 민족 문화의 우수성을 고취시키고자 하였다.

그리고 그 동안 전국적으로 각 본당에서 실시해오던 고아원과 고아원 아이들과 지역사회 가난한 이들을 위한 시약소 차원에서 질 높은 의원수준으로 확장 개원하기 시작했다. 1926년 함남 청진 본당의 '성심의원', 1927년 원산 본당의 무료진료소, 1928년 덕원의 '덕원병원', 1930년 평북 신의주 본당의 '성모병원', 1931년에는 조선교구 설정 100주년을 기념하여 '경성교구 청년 연합회'를 주축으로 병원설립운동이 펼쳐져 '성모병원'이 개원하였고, 1934년 평북 안주본당의 '성모병원'과 대구 고아원의 시약소가 '대구 성요셉의원'으로, 1935년 인천의 답동 본당의 '해성병원'을 확장하였고, 1940년에는 재령 본당에 '성심병원'이, 1941년에는 함흥 본당에 '성심의원'이 설립되어 가난한 이들에게 체계적이고도 질 높은 의료복지가 실현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러한 교회의 선교와 복지 사업은 일제의 지속적인 탄압과정에서 위축되어 나갔다. 일제 치하의 교육복지 측면에서는 과거 성직자 수도자들의 무료 봉사 내지 저급 임금으로 운영되던 본당의 학교들이 정식 교원자격증자를 채용토록 함으로써 교사 봉급이 상당한 재정적인 부담이 생겨나 운영상의 난관이 있었다. 그리고 1915년에 개정된 '사립학교규칙'에서 학교 교과시간이나 교내에서는 일체의 종교교육을 금하였으므로 학교 창설자의 목적과 의의가 위협을 받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10년간의 유예기간이 있었으므로 그 기간을 최대한 이용하였고, 그 이후에 교리교육을 방과후에 실시하는 방법을 마련하였다.

또 한가지 문제는 1924년부터는 모든 교사들에게 교원자격증이 엄격히 요구될 것이었으므로 인적·물적자원의 결핍상태에서 어렵게 운영되고 있는 본당학교들이 현상유지나 될지 불안한 점이었다. 그래서 교회는 독일의 성 오틸리엔 베네딕토 수도회를 초청하여 사범 교육기관 '숭신학교'를 세워 교사들을 양성하고자 했으나 이 역시 일제 식민정부의 탄압으로 5년만에 폐교하고 말았다. 이는 전문성을 위한 자격증 취득 여부의 문제가 아니라 식민 통치를 위해 교회의 사회복지 활동을 위축시키고 통제하기 위한 구실에 불과하였다는 사실을 입증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이런 문제들이 당시 천주교 학교 전체가 겪는 어려움이었다.

또한 의료복지의 측면에서도 이러한 부담은 비슷했다. 과거의 무료 시약소가 이제는 정식 자격증을 취득한 의사와 처방으로만 가능하게 되었고, 또 다른 복지분야에서도 모든 것을 인·허가제도로 묶어 둠으로써 사회의 인적·물적인 교류와 연대를 경직시켰다.

이러한 움직임이 교회 사회복지활동이 전문성을 띄게 되는 계기가 된 것은 긍정적인 면이지만, 그 취지가 자격증을 빌미로 봉사자들을 통제하려는 일제 식민정부의 의도였기 때문에 교회의 선교 및 복지 활동은 많은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또 한편 당시 일본 식민 정부는 천주교의 많은 선교와 사회복지 활동을 통제하고자하는 의도로 사회의 다른 여타 종사자들과 달리 종교지도자들의 전문성을 제도적으로 인정하지 않아 종교 지도자들의 활동을 많이 위축시키려고 하였다.

그리고 또 이 시기에 교회 복지사업에 피부적으로 와 닿는 일차적인 피해는 특별히 개화기의 교회 사회복지 활동의 대명사처럼 불릴 만큼 적극적으로 추진되어 오던 교육복지분야의 종교교육에 대한 조선총독부의 탄압으로 사제들과 수도자들과 평신도 선교사들은 교단에서 떠나야만 했었고, 특별히 여성 수도자들은 본당 내의 종교활동이나 예비자 교리, 가정방문, 제의실 담당 등의 일로 전환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아쉽게도 이러한 수도자들의 역할 축소와 포교에 대한 제한적인 이해는 일제의 탄압에 의해서 이루어진 결과라는 것을 모르는 채 꽤 오랜 기간 교회의 분위기 안에서 굳어져 일부 교회 인사들에게는 오히려 그러한 것이 본당 선교와 사목의 정상적이고도 당연한 형태로 받아들이도록 하는 애처로운 결과마저도 가져오는 부작용을 가져오기도 했다.

그리고 한편 교구의 분할과 수도원의 진출 및 결성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일이었지만 긍정적이기도한 부분은 수도원 자체적으로도 사회복지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 동안은 본당의 성직자와 수도자가 신자들과 함께 그 지역사회의 사회복지활동을 함께 결정하고 함께 추진해 나갔지만 이 시기부터는 수도회가 어느 한 지역사회에 진출하여 그 지역사회의 필요와 요구를 복음적인 시각으로 채워주고자 하는 시도가 국내에서도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4) 해방후 활동(1945∼1975)

1945년 8월 15일 해방 후에는 각 본당을 통한 미국의 '가톨릭 구제위원회'의 활동이 두드러졌다. 모자보건, 아동 급식, 학교 급식, 근로 지원 사업, 극빈자 구호 사업 등의 양곡사업과 농로개설, 축산, 저수지 축조, 관개, 주택, 간척, 신용조합 육성 등의 지역사회 개발사업 및 비타민제와 기타 의약품 공급, 의료기구의 지원과 병원의 설립 운영을 위한 원조 등의 의료사업을 진행했다. 그리고 이 가톨릭 구제위원회의 자산과 후속 작업을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인성회'가 이어받았다.

그리고 해방 후 두드러진 교회 사회복지 사업 중의 하나는 나환우 복지사업이다. 메리놀회 캐롤 신부의 열성으로 1950년 6월 2일 광명시에 '성 라자로 마을'을 창건하면서부터 나환우 구호와 치료 및 정착촌 개설작업이 활기차게 펼쳐졌다. 그리고 1950년 5월 1일에는 가난한 이들의 비영리 금융 운동인 '신용협동조합 운동'이 메리놀 수녀회 메리 가브리엘라 수녀의 노력으로 부산 중앙본당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1957년, 1926년 원산 본당에서 포교 성 베네딕토 수녀회원들이 시작했던 장애아 복지가 서울 돈암동 본당의 농아부에서 해방 후 다시 시작되었고, 1961년 5월에는 애덕 농아자활원이, 1971년 6월 3일에는 명휘원이, 1974년에는 애화학교가 설립되었다. 그리고 1958년 12월 31일 대구시가 행려자들을 위한 '희망원'을 설립하여 대구대교구가 위탁 운영을 하기 시작했고, 1971년에는 천주의 성 요한 의료봉사 수도회가 걸인수용소인 갱생원을 설치 운영하기 시작했다. 1960년에는 성가 소비녀회의 나자렛 기술학원과 미망인 양재소가, 1962년 까리따스 문화복장학원이, 1969년에는 요한 보스코 기술교육원이 사회복지 법인체로 인가되었고, 1973년 8월에는 서울과 안동에 마리스타 교육관을 설립했고, 1975년 1월 1일에는 마리아의 수녀회에서 서울시립 소년의 집 운영을 맡아 청소년 기술교육 복지를 전개했다. 1970년에는 교회 내 교정복지를 담당할 교도사목부가 정비되었고, 평신도 단체인 교도사목회가 조직되었다.

그리고 1956년에는 윤을수(라우렌시오) 신부에 의해 사회사업여자전문학교인 '구산후생학교'가 설립되고, 사회복지 전문 수도회인 '인보 성체회'를 설립하였다. 그리고 노동자와 농민들에 대한 교회 사회복지 활동이 1958년 조직된 가톨릭 노동 청년회와 1964년의 가톨릭 농민회를 통해 노동, 농민 복지가 전문성을 띠게 되었다. 그후 1965년에는 국제가톨릭형제회의 서정림(말가리다)과 한성인(벨따)가 안양 근로자 회관을 설립했고, 1966년에는 서강대학교 부설 산업문제연구소가 개소했으며, 1968년 노틀담 수녀회가 버스안내양 교양교육사업을, 1971년에는 살레시오 수녀회가 버스 안내양들을 위한 기숙사 마자렐로 센터를, 1973년에는 왜관 성 베네딕토 수도회에서 근로여성복지회관을 설립하여 근로자 복지에 힘썼다.

그리고 이 시기에 빼어 놓을 수 없는 교회 복지사의 중요한 일정은 1961년에는 사회복지 활동 전문 평신도 사도직 단체인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가 발족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제들의 헌신과 수도회와 전문 단체들의 활기찬 활동이 있던 한편에는, 한국 교회의 기초조직이랄 수 있는 각 본당에서 일제의 간섭과 탄압으로 인해 교회의 사목을 교회 공동체 안에 국한시키게 되버린 상황이 다시 복원되지 못하고, 오히려 고착화되는 상태에서 머물러 버렸다는 것이 전반적으로 드러난 현상이다.

그래서 첫째 교회의 기본 사목조직인 본당에서는 지역사회인들을 위한 사회복지활동을 변화하는 사회 환경에 맞추어 더욱 더 창의적이고도 발전적으로 힘쓰기보다는 극빈자에 대한 자선차원에서 머물고 종교적인 의미로서만 축소되는 선교와 종교 행사에 더욱 치중하게 되었다. 외부의 많은 박해와 통제로 빚어진 환경 때문에 벌어진 상황이 오히려 본말을 뒤집어 놓은 것이다. 이렇게 됨으로써 과거에 본당 중심으로 이루어지던 지역사회복지는 결과적으로 축소되었다.

둘째 교구와 본당의 이러한 흐름과는 별도로 전문화되고 사회화되는 사회 환경에 맞추어 수도회가 본당이나 교구에 의지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사회복지시설을 신설 운영하게 되었다. 아울러 전문화되고 체계화되고 체제화되어 가는 사회 환경에 맞추어 나가다 보니 교회인이라기보다는 전문가적인 모습이 두드러지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셋째 교육복지의 경우에 일제말기부터 이어져온 종교인들에 대한 자격증 취득 요구는 결과적으로 교회가 가난한 이들을 비롯한 요구호자에 대한 복지 측면에서 벗어나 교육이라는 특수한 분야에 집중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러한 변화가 교육계나 의료계 등의 전문 분야에 기여하는 바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교회의 복음선포로서의 복지사업과는 별도로 진행되어 나갔다. 그래서 과거 모든 교회의 복지의 방향과 대상이 복음선포와 가난한 이 우선이었던 것이 점차로 공교육이란 미명아래 윤리와 인간 생명과 사회의 기반인 종교교육은 소홀해 지고 선착순 접수라는 경쟁 논리로 변화되고 변천하는 사회 속에서 점차로 벌어지는 입시전쟁의 틀 안에 끼게됨으로써 교회 사업의 복음적인 모습을 반감시키는 결과가 되었다. 이러한 추세는 교회가 운영하는 모든 사회복지 사업에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모습이다. 사회에 봉사하기 위해 사회에 뛰어들지만, 반대로 사회 체제에서 요구하는 경쟁과 자본주의 경제 논리를 채워주어야 하기 때문에 교회의 사회복지라는 모습보다는 자본주의 경제사회의 기관으로 변모되어 가는 아픔을 겪게 되어, '소유'와 '봉사' 차원의 분리 등이 논란거리로 등장하기도 했다.



5) 인성회 조직 이후의 활동(1975∼1991)

1975년 6월 26일, 1974년 교황청 사회복지위원회(Cor Unum) 위원인 박희섭이 '한국 가톨릭 사회발전 심의회' 설립을 주교회의에 제출하였고 또 미국 가톨릭 구제위원회가 활동을 마치면서 주교회의에 '한국 카리타스'의 부활을 요청하자,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는 교황청과의 협의 아래 두 제안을 통합하여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인성회를 설립해 사회복지 업무를 연계했다. 그리고 1975년 착한 목자 수녀회가 여성 근로자들을 위한 마리아 자애원과 미혼모를 위한 마리아의 집을 설립하는 등,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 사랑의 딸회와 사랑의 선교 수녀회가 한국에 진출해 전문적인 사회복지 활동을 펼치기 시작했고, 가톨릭 사회복지회는 성가정 입양원을 열어 국내외에서 문제시되던 해외입양을 대체할 한국 최초의 국내 입양기관을 세웠다.

그리고 1981년 정부의 부랑인 실태조사에 이어 1982년부터 중앙 정부의 지원아래 교회는 부랑인 보호사업을 실시하게 되었다. 또한 1981년 유엔이 정한 세계 장애인의 해를 계기로 가톨릭 교회는 장애인 복지에 더욱 힘쓰게 되었다. 그리고 가톨릭 사회복지회를 선두로 교회는 그 동안의 사회복지 활동에 상담소, 단주, 단도박 모임, 출소자 모임, 나눔의 전화 등의 전문성을 띠게 되었다. 아울러 그동안 교회가 적극적으로 해 오던 보육원과 어린이집, 양로원과 어버이집, 등이 새 세대의 변화에 따라 무의탁자 뿐만 아니라 오갈 데 없는 이들을 대상으로 확대하면서 사회사업이 전문적이고 아울러 한층 더 심화되었다. 그리고 현대 세계에 접어들면서도 사회의 전문화와 분업화에서 소외된 이들을 위한 무료급식소 등의 행려자와 부랑아들을 위한 복지 사업도 전개되기 시작했다. 한편 서울대교구의 노동상담소를 비롯한 안내양 교양센터, 엠마우스 운동 등 근로자 복지도 활성화 되었다. 아울러 이와 연관되어 살레시오 수도회 중심의 근로청소년회관, 돈보스꼬 회관, 대구의 가천 청소년 교육관, 원주의 마리스타 교육원, 글라렛 수도회의 중간의 집(half house) 나눔의 집, 독서실, 서울시립동부아동상담소, 나자렛집, 경북의 성바오로 청소년의 집 등의 청소년 복지도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그리고 각 본당에서는 사회복지분과가 설립되어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와의 연대 속에서 과거에 교회가 해 오던 사회복지 분야를 담당하게 되었다.

한편 이상에서 보았듯이 주교회의 인성회 설립 이후에는 교회 사회복지 활동의 주체가 완전히 뒤바뀐 형상을 드러내고 있다. 이제는 더 이상 본당 중심의 사회복지는 몇 몇 본당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그 대신 수도회들은 과감히 지역사회의 요구에 민감하게 움직여 본당의 초청이 아니더라도 지역사회와 사도직 단체의 초청으로 사회복지에 참여하게 되었다. 더 나아가서는 직접 사회복지 활동을 찾아 나서고 헌신하게 되었음은 고무할 만한 일이다.

그리고 정부가 사회복지 시설을 설립하여 가톨릭 단체들에 운영을 위탁하는 사례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는 사회복지 시설 설치에 따르는 막대한 재원과 유지에 드는 재정적 지원이 교회가 종래에 가난한 이들과 함께한다는 의식에서 단순히 후원회원들의 소액 월정 후원금이나 기존의 재화를 희생과 절제 차원에서 나누는 정도의 규모에 그치지 않고, 하나의 사업과도 같은 차원에서 사회복지 시설 설비에 대한 투자를 요구하고 있는 실정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렇게 정부가 사회복지 시설의 운영을 천주교에 위탁하는 모습은 그 동안 천주교회가 이루어 왔던 사회복지 활동의 정신과 업적을 사회가 인정해 준 결과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런데 교회의 기본 조직인 본당의 구조가 책임자인 사제에게 집중되어 있는 형편인데 반하여 그 책임자인 사제들이 일정한 임기가 되면 교체되는 한국 교회 본당의 상황으로 보아 본당을 주체로 한 지속적이고 전문적인 사회복지 활동을 전개하는데 있어서 부담을 갖기도 하였다.

결국 다양하고 전문화되는 사회의 환경 안에서 일부 사제들은 본당을 떠나 특수사목이라는 형태로 사회복지 활동에 전념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시작하자 역으로 본당에서는, 사회복지 활동은 특수사목자들이나 수도회나 자격증을 가진 전문가들이 하는 것으로 여기게 되고, 단순히 사회복지 분과나 빈첸시오 아 바오로 회를 통한 극빈자에 대한 자선 차원에 머물게 됨으로써 오히려 지역사회의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이어야 할 본당의 우선적이고도 본질적인 모습은 상징적으로만 드러나게 되었다.



6)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 조직 이후의 활동(1991∼)

1991년 11월 주교회의 인성회가 사회복지위원회로 개칭되고 사회복지를 전담하게 된 후에는 각 교구마다 사회복지회(국 또는 위원회)가 생겨났고 지도 신부가 임명되었으며, 다양한 사회복지 활동은 각기 분야별로 협의, 조정 및 공동 사업을 위하여 전국 협의체를 발족하여 주교회의의 인준을 받았으며, 각 본당 사목협의회 사회복지분과와 사회복지 전문 사도직 단체인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 활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그리고 전국적인 모금활동이 전개되었고 국내뿐만 아니라 국외까지도 공개적인 지원을 하기에 이르렀다.

1983년 대구 효성 가톨릭대학교에 이어 1993년에는 가톨릭 상지전문대학에서, 1995년에는 서강대학교 수도자 대학원에서, 1995년에는 가톨릭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에서 사회복지 전문인 양성을 위한 정규과정이 신설되었다.

1990년대에 들어와서 교회의 사회 복지 활동은 몇 가지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교회의 사회복지 활동은 인구가 밀집한 대도시 지역의 도시형 복지 활동 유형을 따르고 있다. 아동복지는 보육원 중심에서 빈민 지역에서의 공부방과 어린이집, 유아원, 탁아원의 형태로 변모되고 있다. 노인 복지 분야도 전통적인 양로원보다는 노인 학교 쪽으로 변화되고 있으나 고령화 사회 및 핵가족 사회로의 문화 변천에 따라 양로원도 앞으로 활성화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다고 보여진다. 나환우 복지사업은 음성 나환자들의 공동자립터전인 정착마을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복지 수요에 비하여 늦게 시작된 결핵 사업은 요양원과 재활촌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의료 복지 분야에서는 빈민의료 차원에서 치료 활동도 활발해지고 있다.

근래에 가장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 분야는 장애인 분야이다. 1979년 '세계 장애인의 해' 이래 장애인 숫자의 증가와 아울러 복지 활동도 확대되고 세분화되고 있다. 구체적인 예로는 맹인선교회가 전국 협의체로 주교회의 인준을 받았고 농아선교회도 전국적 협의의 틀을 갖추고 있다. 이외에도 정박인, 지체장애인 등의 부문도 활발해지고 있다.

또 무의무탁자를 위한 복지 활동도 근래에 와서 두드러지고 있다. 숫자상으로도 증가하고 있을 뿐 아니라 양적으로는 대형 시설화되는 경향을 띠고 있는데 이들 대형 시설은 엄밀한 의미에서 종합 복지 시설 형태를 띠고 있다. 이들 시설은 무의무탁자를 위한 것이지만 사업 내용상으로는 노인, 장애인, 부랑인들에 대한 수용, 치료, 재활을 겸하고 있다.

국민 의료보험이 실시되고 있지만 무료 자선 진료의 요구가 증대되고 있는 현실적 요청에 따라 자선 전문 의료 복지가 활발해지고 있다. 여성 복지 분야는 상담과 교육기관이 있는데 주로 산업화 과정에서 발생되고 있는 미혼모 문제를 다루는 활동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청소년 분야도 다양한 형태의 복지적 접근을 하고 있는데 비정기 교육 및 직업 훈련과 함께 일탈 청소년들을 위한 보호 기관(생활 공동체)이 대종을 이루고 있다.

1990년대에 들어서서 주목할 만한 현상의 하나는 시설의 대형화와 소규모 공동체적 접근이다. 일견 상충되어 보이는 이 두 경향은 교회 복지 활동의 다변화와 다양화를 드러내는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시설 대형화의 현상은 1,000명 이상의 대형 시설이 7개소로 나타나고 있으며 이들 시설이 수용하는 인원은 전체 교회 사회복지 시설 수용인원의 절반을 웃돌고 있다. 또한 300명 이상 500명 미만 수용시설이 4개소, 100명 이상 300명 미만의 수용시설이 27개소로 나타나고 있어 대형 시설 수용적인 사회복지형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반면에 총 384개 시설과 기관 중 조상에 응답한 127개소의 33.9%에 달하는 43개 시설이 수용인원 39명 미만의 소규모 시설인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사실 이들은 법형식상의 사회복지시설이라고 부르기에는 부적합하지만 복지시설의 목적이 파기된 가정의 최소한의 대체라고 할 때 오히려 가정에 근접한 생활공동체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근래에 나타나고 있는 대형 시설의 추세 중의 또 다른 하나는 정부와 지방 자치 단체가 운영하던 시설을 교회-주로 수도회-가 운영권을 받아 위탁 운영하는 경향이다. 또 다른 추세는 지역복지 중심의 복지사업으로 지역 사회 복지관의 설립이다. 이들 지역 중심의 복지 사업도 그 운영권을 민간에게 넘겨주고 있는데 몇 몇 교구와 수도회에서 지역사회 복지관의 운영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다른 한편 전국의 행정단위 수와 지역사회 복지관의 개수를 비교해 볼 때 그것도 교회에서 설립하거나 위탁을 받아서 지역사회 복지관을 교회가 운영하는 것 그리고 또 지역사회에서 운영하고 있는 복지관에 신자들이 참여하고 있는 것까지 다 합친다 해도 교회가 지역사회복지를 충실히 하고 있다고 보기에는 너무나도 거리가 멀다. 그리고 또 다른 면에서 볼 때 시설의 대형화와 전문성은 교회의 지역사회 복지를 일반화하고 대중화하는 측면이나 교회가 자신의 본질인 이웃사랑을 적극적이고도 주체적으로 참여하는 측면 모두에서 오히려 반대 영향을 끼치고 말았다.




2. 제언



1) 선교와 복지의 통합된 사목

한국 천주교 '초기교회 신앙정립과정의 활동'(1777∼1886) 연구에서 드러난 것같이 교회의 사회복지활동이 교회의 선교와 동떨어진 것이거나, 부차적인 것으로 취급되지 않았다. 오히려 김대건, 최양업, 매스트르 신부의 사목활동을 보면 선교에 앞서 복지활동을 펼쳤다. 그러므로 선교와 복지를 구분하고 우열을 두기보다 통합된 사목을 펼쳐야 한다.

복음을 선포한다는 것은 단지 '선교'(宣敎) 또는 '전교'(傳敎)에 그치지 않고, 그리스도를 모르는 이에게 그리스도를 알리고 신자로 만들 뿐아니라 그들이 생활하는 삶의 현장에 구체적인 변혁과 역전이 전개되도록 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복음화라고 말할 수 있다.(교황 바오로 6세, 1977 : 17-19항 참조) 그러기에 이제는 더 이상 과거처럼 교회의 사목형태 중에 교리교육을 '직접 선교'로 사회복지 활동을 '간접 선교'로 구분하고, 간접선교는 직접선교를 위한 하나의 방편에 불과한 것으로 격하시키거나 덤으로 주어지는 것으로 간주해서는 안된다. 다시 말해서 교회의 사회복지활동은 하느님께서 인간을 사랑하신다는 구체적인 표징이며, 가난한 이들이 그 표징을 통해 하느님이 자신들을 사랑하신다고 느끼게 됨으로써 고백하게 됨으로써 복음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특히 사목이 구체적으로 실천되고 있는 본당 차원에서는 말씀의 전파인 예언적 직분인 전교와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성화를 위한 사제적 직분인 성사와 전례와 함께 세상에 봉사하는 왕직인 사회복지 활동이 혼연일체가 되었을 때 진정한 사목의 총체성이 드러난다.(한국천주교회연감, 1994 : 50) 이런 관점에서 교회 사목자들은 사회복지 활동을 신자들이 자신들이 믿고 전하는 복음을 실현하고 또 예비자들과 이교인들과 미신자들이 복음을 받아들이는 구체적이고도 효과적인 사목의 구체적 프로그램으로 삼아야 한다. 그러므로 교회 사회복지 활동을 하면 좋고 안하면 어쩔 수 없다는 식의 복음선포의 가미적인 부분으로 여길 것이 아니라 교회 공동체를 건설하고 성숙시키는 사목의 필수적인 조건이요 복음을 이루는 과정으로 삼아야 한다.

아울러 교회 사회 복지 활동은 그 활동의 근거와 방향을 신앙적 관점에서 찾아보아야 한다. 비록 사회복지 활동의 방법이 전문사회사업실천과 사회복지법이라는 종합응용사회과학과 사회법이 제시하는 바를 차용하고 있지만 그 출발점은 가난한 이들의 기쁜 소식으로 자신을 바치신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의 뒤를 이은 구원을 위한 희생이라는 이웃 사랑이어야 하며, 인간의 실질적이고도 구체적인 복음화를 향한 것이어야 한다.



2) 교회 공동체와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사회복지 활동

'종교자유획득과 수도회 결성이후의 활동'(1886∼1910) 연구에서 나타났듯이 천주교회의 기초단위인 본당은 각 본당의 관할구역 내에 있는 영유아, 노인, 장애자들을 위한 사회복지활동을 적극적이고도 주체적으로 실시했다. 심지어는 천주교회 본당 건물보다도 먼저 사회복지시설을 설치 운영한 본당들도 있었다. 이는 지역교회가 자기가 속한 지역의 복지를 하나의 사업으로보다는 교회의 사명이요 근본으로 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오늘날에도 각 본당은 자기가 속해있는 지역의 영유아, 노인, 장애인 등의 기초적인 복지혜택이 필요한 이들에게 직접적으로 응해야 한다.

가족과 친지들에게서 버림받고 오갈 데 없는 이들을 그리스도교 정신으로 받아들여 사회복지 시설에 수용하여 좋은 환경 속에 살도록 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한편 사회복지 대상자 자신들이 지금까지 완전하지는 않았어도 나름대로 기쁨과 슬픔을 나누며 살아온 지역사회와 그 사회 안에서 맺고 살아왔던 인간관계를 하루아침에 포기하도록 하고 멀리 떨어진 사회복지 전문 시설에 수용하는 것만이 최고의 방법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

마지막으로 택할 단계가 아니라면, 가급적 자신이 살아오던 그 지역사회의 관할 본당에서 소규모 그룹 홈 형태의 소규모 공동체를 이룸으로써 그 동안 함께해 왔던 교우들과 이웃들과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맺으며 살 수 있도록 배려해주고 지역 본당의 공동체가 지속적인 관심과 애정을 쏟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하겠다. 지역 교회 공동체가 사회복지 대상자들을 위한 공동체를 형성할 형편이 되지 못한다면 재가복지의 차원에서 자원 봉사를 제공함으로써 교회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것을 서로 확인하고 받아들이며 연대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시설과의 연계 속에서 대상자들이 원하는 것만큼을 자원봉사로 제공할 때 교회 공동체가 교회의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 이러한 접근과 시도는 사회복지 활동이 부수적이고도 베푸는 형태의 자선이 아니라, 교회 공동체의 기본적인 활동이며 교회 공동체의 본질이라는 것을 인식할 때 가능하다.

아울러 사회복지 시설이나 기관이 본당에 자원과 재정적인 지원만을 얻으려고 애쓸 것이 아니라, 사회복지 활동을 위해 지역사회 안으로 파고 들 듯이 교회 체계와 활동에 깊이 연관되고 관계를 맺어, 교회기관이면서도 그 해당 지역 본당에서부터 떨어져 나간 듯이 독립되고 차별화하기 보다는 함께하는 복지형태를 이루어나가야 한다.



3) 선교와 복지의 일관적이고도 체계적인 사목 형태

한국 천주교 사회복지 역사의 흐름을 잘 살펴보면, 지역 교회 공동체의 사목자들이 바뀔 때마다 사목형태가 변함으로써 기존의 사목형태에서 복지 혜택을 받고 있던 사회복지 대상자들이 어려움을 겪게 되고 또 사업의 중단과 변경으로 인해 이중의 소외를 당하는 결과가 있었다. 그러므로 앞으로는 그러한 결과가 재발되지 않도록 사목자들은 교회 구성원인 사목의 협조자들과 평신도 지도자들 그리고 교우들 모두와 함께하는 사목을 펴나가야 하겠고, 또 평신도들도 사목자들의 권유와 명령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일회적이고도 육체적인 단순 노력봉사 차원의 것이 아니라, 스스로 능동적이고도 적극적으로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고자 하는 열정에서 우러나와 지속적이고도 책임 있는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겠다. 한 걸음 더 깊이 들어가서 사회복지 활동의 동기와 힘이 복음을 이루어야만 하는 그리스도인의 사명 때문에, 가슴 속 깊은 곳에서부터 불타오르는 성령의 이끄심과 부르심을 거절 할 수 없어서 수행하고 투신하게 됨으로써 자신과 자신이 봉사하는 대상자 및 지역 공동체의 선교와 복지가 이루어지도록 해야 하겠다.

그리고 각 본당은 그 본당의 관할 구역과 공존하는 지역사회와 밀접한 연계를 가져야 할 것이고, 상위 단체와 시설 및 기관과 연결하여 체계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공유하며 함께 성숙해 나아가야 할 것이다. 아울러 봉사자들도 봉사의 양과 질이라는 측면에서 유기적이고 체계적으로 연결되어야 하겠다. 그리고 시설 종사자들도 단순히 자원봉사자들을 여기 저기 배치하여 이런 저런 일들을 하게 함으로써 시설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데에만 그치지 않고, 자원봉사자들도 존중받아야 할 인격체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또 하나의 사회복지 대상자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4) 교회 선교와 사회복지의 전문성

현대 세계는 단순히 사랑과 자선 차원의 적선만으로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복잡성과 다양성을 가지고 있다. 또 몇 번의 만남과 시도만으로 해결되지 않을 정도로 그 문제의 심각성도 상당히 깊다. 그러므로 복잡하고 다양하며 골이 깊은 문제를 안고 있는 사회복지 대상자들에 대한 봉사도 해당분야의 전문적인 기술이 필요하다. 우선적이고도 기본적으로 사회복지사로서의 자질과 전문성을 갖추어야 하겠다. 교회의 사목자들이 교회 신자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무려 10여년이란 세월을 교육기관에서 양성되는 것처럼, 같은 의미와 목적으로 가난하고 상처받아 문제를 안고 있는 이들에게 다가서기 위해 사회복지적인 면에서나 현대세계에 대해서나 특별한 문제들에 대해서나 연구하고 합당한 자격을 취득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사목을 물질적으로 가난한 자에게 물질적인 필요를 보충해주거나 시설에 보내면 해결되고 마는 문제 해결 방식으로 이해하고 그 대상자를 문서 처리하듯 처리하고자 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또 그런 면에서 교회 사목은 비전문가들이라도 합당한 지향을 지니고 열정만 가지면 교육과정을 이수하고 자격을 갖추지도 않은 채, 누구나 언제든지 할 수 있는 비전문적인 것으로 전락시켜서도 안된다. 사목자들이 자신이 맡은 사목 대상자들에게 복음의 말씀을 쉽고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자신이 전하는 말씀과 사목이 좋은 양식이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가급적이면 현대 세계에서 방황하는 사회복지 대상자들에게도 그들을 변화시킬 수 있고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좋은 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도록 질적 양적으로 노력해야 하겠다. 노력해서 되는 일이라면 대상자들에게 수준 높은 사회복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더 좋은 사람으로 다가가는 것이 이상적이다.

그리고 교구 사회복지회나 관련 사목 담당 부서에서는 본당이나 수도회에서 처음 지역 사회복지를 시작하는 사목자들과 수도자, 평신도 지도자들을 위한 행정처리 안내와 체험에서 비롯된 실질적이고도 구체적인 가이드 라인을 미리 체계적으로 준비하여 제공해 주어야 하겠다.

또 다시 한 번 숙고하고 지나갈 점은 사목자를 양성하는 교과과정이다. 사회의 변화에 따라 교육환경도 변화되고 교과과정도 변화한다. 실제로 교회가 교육복지를 통해 사회복지에 힘쓰던 중, 일제 식민정부가 사제와 수도자들에게 종교교육을 못하게 하고 또 교사자격증을 요구하며 탄압할 때 교회는 신학생들에게 '교사자격증'을 취득하도록 했다. 그것은 그만큼 교육복지가 중요하고 필요한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현대 세계에 사목자가 한 알의 밀알과 성체성사로 참여하기 위해서는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하는 것이 중요하고도 필요하다.

(이렇게 사목자들이 전문성을 갖추기 위한 노력과 아울러 현재같이 정부에서 재정과 조직 시설 면에서 대부분의 사회복지 수혜대상자들이 방치되어 있다시피한 현사회에서는 어느 정도 사제의 전문성을 인정받도록 해서 사회복지시설을 설치하고 운영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마치 사제가 군종신부로 군대에 봉사할 때 사목생활을 경력으로 인정하여 3년 이상이면 대위로 임관하고, 또 교육부 소속 학교의 교장으로 봉직하게 될 때 사목 생활을 경력으로 인정해 주듯이 사회복지부 소속 시설이나 기관에 참여할 때도 나름대로의 전문성을 인정받아 사회복지사와 시설종사자들과 함께 적극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1998년 초 종교 단체의 장이 소속 단체의 건물 안에 '어린이집'을 설치할 때 시설장을 겸임하도록 한 것과 같은 원리와 정도로, 지역 사회 안에서 영유아와 장애인, 노인 등 일차적이고도 필수적인 사회복지 시설을 설치하고 운영하는 데 있어, 전문성이 그 추구하는 바와는 달리 재정과 전문가 부족이라는 현실적인 한계 앞에서 대중성과 보편성을 상실하게 함으로써 지역사회의 기초적인 복지를 포기해야만 하는 결과를 방지해야겠다. 한 예로 1998년 7월 16일 대통령령 제15839호로 개정 공포된 사회사업법의 시행령 제6조 2항에서 "노인복지법에 의한 노인여가복지시설(노인복지회관을 제외한다), 장애인복지법에 의한 점자도서관과 점서 및 녹음서 출판시설, 영유아보육법에 의한 보육시설, 윤락행위등방지법에 의한 여성복지상담소·일시보호소 및 자립자활시설, 정신보건법에 의한 정신질환자사회복귀시설 및 정신요양시설, 성폭력범죄의처벌및피해자보호등에관한법률에 의한 성폭력피해상담소"에는 사회복지사를 의무적으로 채용하지 않아도 된다고 함으로써 현실적인 한계를 간접적으로 비껴간 것과 같은 맥락이다.

또한 오랜 기간 사회복지활동에 직, 간접적으로 참여해 왔으면서도 비인가 시설에 종사했다던지 사회복지사 자격증이 없다던지 등의 법률상에 부합하는 체계적인 전문성을 갖추지 못했다는 이유로 사회복지 현장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심지어는 물러나야 하는 수도자들과 종교인들이 자신들의 선한 지향과 노력을 지속적으로 사회복지에 쏟을 수 있도록 그 경력을 제도적으로 인정해 줄 장치도 마련해 주어야 한다.)



5) 국제화된 복지 활동의 전개

해방 이후 한국 천주교 사회복지 활동은 미국 천주교 구제위원회와 다른 나라의 외원단체의 후원을 받아 운영되다시피 했고 오늘날까지도 많은 지원을 받고 있다. 그래서 이제는 한국 교회가 국제화된 세계에서 원조를 받던 시절만을 되새기고 국내에서 겪고 있는 현재의 어려움만을 강조할 것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경제적인 면에서 더 어렵고 낙후된 제3세계 사회의 사회복지 대상자들에게도 관심과 애정을 기울여 해외원조를 비롯한 구체적인 사회복지를 제공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겠다. 동시에 세계 사회복지계의 변화와 전망 및 확대된 사회복지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위해서 국제 까리따스와의 연대와 유대 속에서 활동해야 겠다.



6) 천주교 사회복지 정신교육

지금까지의 천주교 사회복지 활동의 역사를 보면, 어떤 경우에는 단지 명목상으로 천주교에서 운영하는 사회복지시설 이상의 것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천주교에서 운영하면서도 단지 사회법에 따른 적법성과 합법성만을 충족시키는 수준에서 만족하고, 천주교의 정신을 실현하지 못하거나 명료하게 구체화시키지 못함으로써 서로의 업무처리와 활동방식에 대한 불필요한 오해와 충돌이 있었다. 그러므로 앞으로는 천주교 사회복지 활동에 있어서 그 정신과 방법론을 명확히 규명하고 교육하여 천주교의 정신이 적용되고 구현되도록 해야 하겠다.

사회에서 평신도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며 복음을 이루고 있는 전문직인들에게 교회가 다각적으로 영적교육을 제공하듯이, 천주교 신앙 단체, 교구·수도회·본당이 운영하는 사회복지 시설이나 기관에 근무하는 종사자들에게 지치지 않는 사회복지 활동과 그리스도교 신앙에 입각하고 기초한 사회복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영성교육을 적극적으로 심화시켜야 하겠다. 아울러 사회복지 대상자들에게 자신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들이 어떤 사상과 가치를 가지고 다가오는지를 알려 서로의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한 영적인 접근도 시도해야 하겠다.

그래서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 40)라는 기초 아래 클라이언트의 요구를 조물주의 호소와 동일하게 받아들이고, "어떤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그 날 먹을 양식조차 떨어졌는데 여러분 가운데 누가 그들의 몸에 필요한 것은 아무 것도 주지 않으면서 '평안히 가서 몸을 따뜻하게 녹이고 배부르게 먹어라.'고 말만 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 어리석은 사람이여, 행동이 따르지 않는 믿음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고 싶습니까?"(야고 2, 15-16. 20)라는 성서 말씀을 따라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사회복지를 해야하겠다.






위 '결론' 중 () 안의 내용은 논문 심사 과정 중에 제외된 부분입니다.







Ⅳ.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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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사연구소 편저, 김대건 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서한, 한국교회사연구소, 1996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한국 천주교 사목지침서, 제5편 사회, 제2장 사회복지, 제 222조 1항과 2항





2. 한국 천주교 사회복지 활동을 하는 수도회와 사회복지시설의 발전사 서적 및 논문자료.

가톨릭중앙의료원, 가톨릭중앙의료원 50년사, 1988

샬트르 성바오로 수도회 85년사 편찬위원회, 바오로 뜰안의 애환 85년, 가톨릭출판사, 1973

샬트르 성바오로 수녀회 100년사 편찬위원회, 한국 샬트르 성바오로 수녀회 100년사, 분도인쇄소, 1991

서울대교구 사회사목부 '한마음 한몸'운동본부, '한마음 한몸'운동 현황과 전망, 1996

영원한 도움의 성모수녀회 50년사, 성모수녀회 발행, 1983

올리베티아노 성 베네딕토 수녀회, 부산 성 베네딕도 수녀회 은혜 60년사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회사목부 공문 제 97-3, 1977. 8. 21일자

포교 성 베네딕토 수녀회, 원산수녀원사, 왜관 분도 인쇄소, 1987

한국가톨릭나사업연합회, 한국가톨릭나사업연합회, 가톨릭 나사업 현황, 1997

한국교회사연구소, 천주교 평양교구사, 분도출판사, 1981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한국천주교회연감, 1994

함경도 천주교회사 간행사업회, 함경도 선교사 서한집·Ⅰ, 한국교회사연구소, 1995

함경도 천주교회사 간행사업회, 함경도 선교사 서한집·Ⅱ, 한국교회사연구소, 1995

함경도 천주교회사 간행사업회, 원산교구 연대기, 한국교회사연구소, 1991

함경도 천주교회사 간행사업회, 함경도 천주교회사, 한국교회사연구소, 1995





3. 사회복지에 관한 서적

구자헌, 한국사회복지사, 홍익재, 1970

권오구, 사회복지 발달사, 홍익제, 1997

김상규, 윤욱, 전재일, 사회복지론, 설영출판사, 1983

김원모, 근대한국외교사연표

김융일, "사회복지의 개념의 정의에 관한 연구", 사회과학연구 제2집, 성심여자대학 인간 및 사회복지연구소, 1986, 2

김융일, 조흥식, 김연옥, 사회사업실천론, 나남출판, 1995

로버트 L. 바커, 중앙사회복지연구회 역, 사회사업사전, 이론과 실천, 1996

민경배, 한국기독교회사, 대한기독교출판사, 1982

이계탁, 복지행정론, 고려원, 1986

지윤, 사회사업사, 홍익재, 1969

하상락, 한국사회복지사론, 박영사, 1989

함세남, 이원숙, 김덕환, 김범수, 윤찬중, 서화자, 구종회 공저, 선진국 사회복지 발달사, 홍익제, 1996





4. 한국 천주교 사회복지에 관한 서적 및 학술지, 논문

김선용, 일제 강점기하의 한국 천주교회와 수도회의 활동에 대한 사회·문화적 고찰 - 민족의식의 한계성을 중심으로, 가톨릭 대학교 대학원, 신학과 수료논문, 1996. 5

김용태, "우리나라 사회복지에 있어서 천주교회의 위상정립과 역할에 관한 연구", 경희대학교 행정대학원, 1993

김인숙, "지역사회 안에서의 교회의 역할", 1997년 1차 본당 사회복지분과위원 연수회 교육자료집, 사회복지법인 서울가톨릭 사회복지회, 1997

노길명, 박해기 개화기의 한국천주교회와 사회개발, 한국교회사논문집1, 한국교회사연구소, 1984

박석돈, "한국의 천주교사회복지사업에 관한 연구", 한사대학대학원 석사학위논문, 1981

박석돈, 가톨릭 복지 사업, 한국가톨릭대사전 개정판 1권, 한국교회사연구소, 1995

박윤세, "한국 가톨릭 사회교육의 발전을 위한 기초연구", 한국교회사논문집 1권, 한국교회사연구소, 1984

백 플라치도(Placidus, O.S.B.), 한국에서의 초기 베네딕토회의 선교방침, 한국교회사 논문집 1집, 1984, 772∼776

사회복지법인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나눔', 1호(1976. 9. 27)∼28호(1985. 1. 15). 41호(1985. 4. 6)∼84(1986. 2. 8)호; 85호(1986. 2. 15)∼260호(1989. 7. 15),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이현숙, "가톨릭사회복지의 현황과 발전 전망", 한국 복지제도의 발전과 한국교회의 사회복지 참여 전망 세미나, 숭실대 기독교 사회연구소, 1997

임진창, 한국의 사회발전과 가톨릭 교회의 역할, 서강대학교 사회문제 연구소, 1976

전찬범, "한국 가톨릭 사회복지활동의 과제와 개선 방안에 관한 연구 -교구사회복지를 중심으로-", 수원가톨릭대학 대학원 수료논문(1992), 나눔연구 제2호,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1994

조화영, "조선천주교회의 아동복지에 관한 연구 -박해시대 영해회 사업을 중심으로-", 가톨릭대학원 사회사업학과 석사학위논문(1989), 나눔연구 창간호,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1992

최석우, 한국가톨릭과 의료사업의 전개, 한국천주교회사 연구, 한국교회사연구소, 1982

최석우, 한국분도회의 초기 수도생활과 교육사업(사학연구36), 한국사학회, 1983

한국교회사연구소, '교회와 역사' 1호(1975.9)∼247호(1995.12), 한국교회사연구소





5. 사회복지활동을 하는 한국 천주교 수도회와 사회복지시설 및 관련자에게 보낸 사회복지 활동역사에 대한 질문의 답변서

번호 수신일자 답신과 답변한 수도회, 본당, 시설명과 답신자

1. 1998년 3월 동정성모회 답신

2. 1998년 3월 마리아의 작은 자매회 답신

3. 1998년 3월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 답신

4. 1998년 3월 31일 마리아의 작은 자매회의 답신

5. 1998연 3월 살레시오 수녀회 답신

6. 1998년 3월 인보성체수도회 답신

7. 1998년 4월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답신

8. 1998년 4월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 답신 (평양교구사 참조)

9. 1998년 4월 의정부2동 성당 사무장 의정부50년사 답신

10. 1998년 4월 작은자매 전교회 답신

11. 1998년 4월 28일 한국순교복자수녀회 답신

12. 1998년 4월 가톨릭중앙의료원 답신

13. 1998년 4월 대구 희망원 답신

14. 1998년 4월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 수녀회 답신

15. 1998년 4월 살레시오 근로청소년 기숙사 답신

16 1998년 4월 쌘뽈원 답신

17. 1998년 4월 성 빈첸시오 아 바올로회 답신

18. 1998년 4월 서울 SOS 어린이마을 답신

19. 1998년 4월 성체 어린이집 답신

20. 1998년 4월 22일 가톨릭 중앙 의료원 홍보과 이승우(바오로)의 답신

21. 1998년 5월 갈릴리 어린이집 답신

22. 1998년 5월 한국순교복자수녀회 답신

23. 1998년 5월 성 빈센트 병원 답신

24. 1998년 5월 메리놀 병원 답신

25. 1998년 5월 가톨릭근로자회관 답신

26. 1998년 5월 16일 나자렛집 답신

27. 1998년 5월 20일 광주씨튼 어린이집 조미아 데보라 수녀 답신

28. 1998년 5월 22일 요셉의 집 김 아오스딩 수녀 답신

29. 1998년 5월 27일 포항 예수 성심 시녀회의 답신

30. 1998년 5월중 성 바오로 청소년의 집 답신

31. 1998년 5월 29일 오순절 평화의 마을 답신

32. 1998년 5월 29일 안나의 집 답신

33. 1998년 대구결핵요양원 답신

34. 1998년 가톨릭 피부과 의원 답신

45. 1998년 본동종합사회복지관 답신

36. 1998년 대구 요셉의 집 답신

37. 1998년 성모의 마을 답신

38. 1998년 경남장애인종합복지관 답신

39. 1998년 6월 11일 아이들의 집 답신

40. 1998년 섭리의 집 답신

41. 1998년 꾸러기 동산 답신

42. 1998년 햇빛자리 답신

43. 1998년 소년 예수의 집 답신

44. 1998년 6월 인보의 집 답신

45. 1998년 6월중 명휘시립어린이집 답신

46. 1998년 6월 10일 원주 가톨릭 종합 사회복지관 홍보담당 윤유일의 답신

47. 1998년 6월 11일 노틀담 장애인 교육원 답신

48. 1998년 안양시장애인종합복지관 답신

49. 1998년 6월 11일 원주가톨릭종합사회복지관 답신

50. 1998년 6월 13일 꾸러기 동산 어린이집 이화복의 답신

51. 1998년 6월 15일 제천종합사회복지관 답신

52. 1998년 6월 30일 대철 베드로의 집 김혜경 데레사 수녀의 답신

53. 1998년 7월 포교 성 베네딕도 수녀회 안 요한네스 수녀 답신

54. 1998년 7월 9일 농아선교회 답신

55. 1998년 7월 9일 인천 가톨릭 농아선교회 답신

56. 1998년 7월 14일 일신우리집 답신

57. 1998년 7월 14일 농아선교회 답신

58. 1998년 8월 25일 밀알회(재활원) 답신

59. 1998년 8월 28일 충주 성심 맹아원 답신

60. 1998년 8월 28일 파티마 병원 답신

61. 1998년 8월 26일 마리아의 집 답신

62. 1998년 8월 26일 살레시오의 집 답신

63. 1998년 9월 2일 성심양로원 답신

64. 1998년 9월 3일 노인요양원 원주 사랑의집 답신

65. 1998년 9월 3일 파티마 결핵 요양원의 오 세레나 수녀 답신

66. 1998년 9월 3일 보금자리의 오 세레나 수녀 답신

67. 1998년 9월 5일 성심원의 김정이(끄레센시아)의 답신

68. 1998년 9월 7일 보금자리 답신

69. 1998년 9월 7일 성심원 답신

70. 1998년 9월 11일 살레시오의 집 답신

71. 1998년 10월 30일 서울 꽃동네 사무실 답신

72. 1998년 10월 30일 가톨릭대학교 성심교정 학생과장 김중실의 답변

73. 1998년 11월 3일 가톨릭대학교 부설 춘의종합사회복지관 답신

74. 1998년 11월 3일 하상 장애인 종합복지관 김주희 사회복지사 답신

75. 1998년 11월 3일 늘 푸른 나무 천주의 성 요한 수도회 서울분원 평화의 모후 공동체 답신

76. 1998년 11월 3일 서강대학교 수도자 대학원 조교 강민규 답변과 답신

77. 1998년 11월 3일 대구 효성 가톨릭 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조교 이지현 답변

78. 1998년 11월 4일 서울 가톨릭사회복지회 신망애의 집 강순애 답신

79. 1998년 11월 4일 명휘원 종로 복지관 답신

80. 1998년 11월 4일 성모조기교육원 답신

81. 1998년 11월 5일 요셉의원 부설 목동의 집 매기석(베드로) 신부(파리외방전교회) 답신

82. 1998년 11월 5일 사랑의 선교 수사회 이요한 수사 답신

83. 1998년 11월 5일 안나의 집 답신

84. 1998년 11월 5일 마천 어린이집 윤 프란치스카 수녀 답신

85. 1998년 11월 5일 살레시오 나눔의 집 백 분도 수사 답신

86. 1998년 11월 5일 이냐시오의 집 답신

87. 1998년 11월 5일 가톨릭대학교 의정부 성모병원 사회사업팀 답신

88. 1998년 11월 6일 서울시립 소년의 집 답신

89. 1998년 11월 6일 전·진·상 복지관 답신

90. 1998년 11월 6일 쟌 쥬강의 집 경로수녀회 답신

91. 1998년 11월 6일 율곡 어린이집 답신

92. 1998년 11월 6일 요셉 놀이방 답신

93. 1998년 11월 6일 마리아 수녀회 도티 기념 병원

94. 1998년 11월 6일 은평의 마을 김 베드로 수사 답신

95. 1998년 11월 7일 사랑손 답신

96. 1998년 11월 7일 고척동 만남의 집 답신

97. 1998년 11월 7일 마천동 가난한 마음의 집 답신

98. 1998년 11월 7일 까르딘 청소년 상담터 답신

99. 1998년 11월 7일 마가렛의 집 답신

100. 1998년 11월 8일 착한 목자의 집 답신

101. 1998년 11월 8일 나자렛 성가원 답신

102. 1998년 11월 10일 성심의 어머니집 답신

103. 1998년 11월 10일 이태원 공동체 답신

104. 1998년 11월 10일 서울 가톨릭 맹인 선교회 답신

105. 1998년 11월 10일 모현 호스피스 답신

106. 1998년 11월 10일 애덕 농아재활원 박 베니타 수녀 답신

107. 1998년 11월 10일 성심수녀회 답신

108. 1998년 11월 10일 성모자애보육원 답신

109. 1998년 11월 10일 중계 마을 복지회관 답신

110. 1998년 11월 11일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가정 호스피스 답신

111. 1998년 11월 11일 염리 청소년 독서실 답신

112. 1998년 11월 11일 가톨릭 상지 전문대학 사회복지과 답신

113. 1998년 11월 13일 인보성체수도회 하 데레사 수녀의 예리고의 집 답신

114. 1998년 11월 13일 인보성체수도회 하 데레사 수녀의 인보의 집 답신

115. 1998년 11월 13일 인보성체수도회 하 데레사 수녀의 사랑의 집 답신

116. 1998년 11월 13일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정선희 사회복지사 답신

117. 1998년 11월 14일 인보성체수도회 한 율리엣다 수녀의 효신실업학교 답신

118. 1998년 11월 14일 성 골롬반 외방 선교 수녀회 고 미리암 수녀의 사마리아의 집 답신

119. 1998년 11월 14일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 수녀회의 선화기숙사 답신

120. 1998년 11월 17일 한국가톨릭나사업연합회 박명진 답신

121. 1998년 11월 17일 성모의 집 담당 수녀 답신

122. 1998년 11월 18일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정선희 사회복지사 답신

123. 1998년 11월 23일 한국순교복자수녀회 마가렛 수녀 답신

124. 1998년 11월 25일 요셉의원장 선우경식의 답신

125. 1998년 12월 1일 애덕의 집 도성희 가타리나 수녀 답신





Ⅴ. 부록1 사회복지활동을 하는 수도회와 시설에 대한 질문지



천주교 진건 성당

(착한 목자)

<472-830>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면 용정리 363

대철어린이집 : 0346-573-7720

주임신부 : 0346-573-7721∼2 선한 목자 예수 수녀회 :0346-573-7725

본당 사무실 : 0346-573-7723, 팩스번호 : 0346-573-7724


천진건사 1998. .

받으실 분 :

참 조 : 수도회 사료담당 수녀

내 용 : 석사 논문 '한국 천주교 사회복지사' 작성 자료 협조 의뢰


†. 찬미 예수님.

성무에 노고가 많으십니다.

다름이 아니오라 저는 이번에 가톨릭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에서 '한국 천주교 사회복지사'라는 제목으로 석사논문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한국 가톨릭 대사전(한국교회사연구소 간행 1985년판) …쪽에 나와 있는 귀 수도회에 대한 설명 중 귀 수도회가 " …특수사목활동(사회복지사업)을 하고 있다."고 서술되어 있기에 그에 대한 자세한 자료를 아래와 같은 양식으로 청하오니 보내주시면 저에겐 더 없는 커다란 도움이 되겠습니다. 또한 이 논문은 우리 한국 교회에도 커다란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부디 바쁜 시간을 쪼개어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논문이 완성되면 한 부 보내드리겠습니다.

- 아 래 -

1. 각 시설(사목활동)의 이름 :

2. 각 시설(사목활동)의 설립(시작) 목적 :

3. 각 시설(사목활동)의 설립(시작) 연도 :

4. 각 시설(사목활동)의 설립(시작) 장소 :

5. 각 시설(사목활동)의 설립(시작)자 이름 :

6. 각 시설(사목활동)의 설립(시작) 형태와 규모 :

7. 각 시설(사목활동)의 설립(시작) 배경이나 상황 :

8. 각 시설(사목활동)의 변경이나 마침 :

9. 각 시설(사목활동)의 근거가 되는 성서말씀이나 카리스마(회헌이나 창립자의 훈시 등)

이상의 내용을 담고 있는 근거자료가 있으면 보내주시고, 없으면 위 내용에 대한 귀 수도회의 답변서를 근거자료로 삼겠습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진건 성당 주임신부 심 흥 보 (베드로)





부록2 사회복지활동을 하는 수도회와 시설에 대한 질문지



천주교 공항동 성당

(성 프란치스코)

<157-240> 서울특별시 강서구 공항동 691

사무실 : 02-665-7011∼2 수녀원 : 02-665-7013

수석보좌 : 02-665-7014, 주임사제 : 02-665-7015

제2보좌 : 02-665-7050 모사전보 : 02-664-2065


천서공 1998. .

받으실 분 :

참 조 : 수도회 사료담당자

내 용 : 석사 논문 '한국 천주교 사회복지사' 작성 자료 협조 의뢰


†. 찬미 예수님.

성무에 노고가 많으십니다.

다름이 아니오라 저는 이번에 가톨릭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에서 '한국 천주교 사회복지사'라는 제목으로 석사논문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귀 사회복지시설과 귀 시설을 운영하고 있는 수도회나 주체에 대한 자세한 자료를 아래와 같은 양식으로 청하오니 보내주시면 저에겐 더 없는 커다란 도움이 되겠습니다. 또한 이 논문은 우리 한국 교회에도 커다란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부디 바쁜 시간을 쪼개어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논문이 완성되면 한 부 보내드리겠습니다.

- 아 래 -

1. 각 시설(사목활동)의 이름 :

2. 각 시설(사목활동)의 설립(시작) 목적 :

3. 각 시설(사목활동)의 설립(시작) 연도 :

4. 각 시설(사목활동)의 설립(시작) 장소 :

5. 각 시설(사목활동)의 설립(시작)자 이름 :

6. 각 시설(사목활동)의 설립(시작) 형태와 규모 :

7. 각 시설(사목활동)의 설립(시작) 배경이나 상황 :

8. 각 시설(사목활동)의 변경이나 마침 :

9. 각 시설(사목활동)의 근거가 되는 성서말씀이나 카리스마(회헌이나 창립자의 훈시 등)

이상의 내용을 담고 있는 근거자료가 있으면 보내주시고, 없으면 위 내용에 대한 귀 수도회의 답변서를 근거자료로 삼겠습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공항동 성당 주임사제 심 흥 보 (베드로)



이 논문은 1998년 가을학기 가톨릭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 사회복지학과에서 문학석사학위를 받은 논문입니다. 첨가나 수정하시고 싶은 내용이 있으시면 아래의 주소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E-mail : peters1@seoul.catholic.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