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천주교 사회복지 명부4(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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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리보 / 라자로 마을 / 라파엘의 집

라리보 Larribeau (한국가톨릭대사전, 1985. 한국교회사연구소발행 318쪽)

서울교구의 제 8대 교구장이며 대전교구의 초대 교구장. 주교. 프랑스의 라로뮤(La Romieu) 에서 태어났으며, 1907년 파리외방전교회에 들어가 1907년 3월10일에 서품을 받고 첫 부임지인 한국으로 왔다.

1916년에는 서울교구의 당가신부가 되었고 1926년 5월1일에 성성식을 갖고 서울교구를 다스렸다. 1927년 혜화동의 베네딕도 수도원이 덕원으로 이전하자 혜화동의 베네딕도 부지와 건물을 매입하여 소신학교를 건립하였다. 또한 5교구 교구장들과 연합하여 교리서와 한국교회지도서를 통일시켰고 <가톨릭 청년>을 창간함으로써 민족문화 향상에 기여하였다.

그러나 소위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일제는 교회를 탄압하여 외국인 성직자를 추방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라리보 주교는 사임할 것을 로마교황청에 요청하였고 노기남 신부가 방인 사제로서 서품되어 서울교구를 다스린다. 그 후 용산에 있는 신학교에 은거한 라리보 주교는 8.15광복이 될 때까지 성 바오로회 소속 한국인 수녀와 고아를 돌보는 일에 전념하였다.

그의 58년간에 걸친 한국교회를 위한 봉사와 공로로, 1960년에 프랑스 정부로부터 레지온 도뇌르 훈장을 수여하였고 1962년에는 대한민국 정부에서 문화훈장을 수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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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자로 마을 (영) St. Lazarus Village (한국가톨릭대사전, 1985. 한국교회사연구소발행 321쪽)

경기도 시흥군 의왕읍 오전리 87번지 소재의 나환자 정착촌. 1945년 광복후 서울 근교에 떠돌아 다니던 많은 나환자들을 접한 메리놀회 소속 캐롤 주교는 이들을 위한 구호 및 의료사업의 필요성을 절감하여 1950년 오류동에서 성 라자로원을 창설하였다. 1951년 시흥에 20만평의 대지를 구입한 성 라자로원은 그곳으로 이전하면서 1955년에는 가톨릭 의대 부속 성 라자로 의원을 개원하였다. 이 때부터 재가(在家) 환자들을 찾아다니며 이동진료를 시작하였는데 1962년 정착촌을 마련하고 나환자들을 이곳에 모여 살도록 하였다. 그간 서울 교구에 마련되어있던 성 라자로 마을은 수원교구가 분리, 독립된 이후인 1967년 수원교구로 이양되었다. 1975년 성당을 축성하였고 1981년 설립30주년을 맞아 피정의 집을 개설하였다. 1985년 현재 성 라자로 마을에는 나환자 정착촌을 비롯하여 12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병동, 진료소, 성당, 교육관, 수녀원, 휴게실 등 부대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1971년 창간된 마을회보가 간행되고 있다.

1950. 오류동에서 성 라자로원을 창설 (321쪽 라자로 마을)

1955. 성 라자로 의원 개원 (321쪽 라자로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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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엘의 집 (나눔지 119호 3쪽) - 1986. 10. 11발행

신체적인 장애로 인하여 무가치한 존재로 여김받고 소외되어 있는 맹인 중복 장애아들을 위한 재활시설이 마련되었다. 서울 가톨릭 맹인선교회에서는 라파엘의 집(원장-이수남) 을 개설하면서 축성식을 갖었다. '라파엘의 집'은 올해 4월 맹인선교회 부회장인 이수남씨가 자택이었던 종로구 평동 13-27 소재의 대지 45평, 건평 41평의 가옥 1채를 회사하였다. '라파엘의 집'에 입소할 수 있는 장애자는 맹인으로서 언어 청각기능에 장애를 지니거나 정신지체자, 지폐성향을 지닌자에 한하는데 이러한 중복 장애자의 수용보호에도 재활훈련과 교육, 신앙생활을 지도하며 장애자 및 가족의 상담과 중복장애자들의 재활 및 교육에 관한 조사와 관련자료의 수집과 홍보활동을 통한 중복장애자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을 높이는 계몽활동도 활발히 벌일 예정이다.

1986. 9. 28. 맹인선교회 부설「라파엘의 집」설립 (나눔지 119호 3쪽) - 1986. 10. 11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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