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천주교 사회복지 명부10(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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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들의 집 / 천주의 성 요한 의료봉사수도회 / 청주 빈첸시오의 집 / 청진본당 / 청평고아원 / 칠곡 가톨릭 피부과 병원

천사들의 집 - 1998. 5. 27일 오순절 평화의 마을(부산) 정원기님의 답신에 의거

자신의 신체 및 정신적 장애를 극복하지 못하고 비관된 삶을 살고 있는 이들과 버려진 영아들과 삶을 함께하고 지도교육 하므로서 자신의 장애를 극복하여 밝은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오순절 평화의 마을을 설립한 오수영(히지노) 신부가 1998년 3월에 경기도 여주군 점동면 청안리에 설립하였다.

1993년 한독지가로 부터 장애인 복지사업에 사용해 달라는 취지와 함께 부산광역시 전포동에 있는 대지(현시가 10억원 상당)를 수증하므로서 장애인 복지사업을 계획하게 되었고 경기도 여주에 임야를 가진 또 다른 독지가 가 임야를 증여하므로서 사업계획이 구체화되기 시작하였으며 공사비 예산절감을 위해 토목공사는 군병력 및 장비를 지원 받았으며 건축비는 자부담금과 정부로 부터 어렵게 지원받은 기능보강사업비로 영육아 시설은 준공을 하여 1998년 4월 개원을 하였으며 성인장애인 시설은 현재80%의 공정을 보이고 있다.

1998. 3. 천사들의 집 시설설치 허가

소재지 : 우 469-870 경기도 여주군 점동면 청안리 산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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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의 성 요한 의료봉사수도회 (영) Hospitaler Brothers of St. John God (한국가톨릭대사전, 1985. 한국교회사연구소발행 1132쪽)

1593년 포루투갈의 천주의 성 요한에 의하여 창설된 수도회. 1958년 한국에 진출하였다. 광주교구의 헨리(Henry) 주교의 요청으로 애란관구 소속 5명의 수사가 처음으로 내한하여 정착한 뒤 활동을 개시하여 '천주의 성 요한 의원' 을 개원하였다. 이 지방의 가난한 주민들과 노동자계급의 의료요구에 응하게 되었다. 1971년에는 광주시 변두리에 걸인수용소인 갱생의원을 설치하는 한편 그 안에 정신과 병실을 설치하여 한정된 수의 환자들에게 획기적인 치료방법을 시도하였다. 1973년에는 '천주의 성 요한의원' 내에 정신과 외래를, 1980년에는 정신과 입원실을 개설하여 정신질환 치료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아울러 정신과 간호원 훈련 등 의료교육사업 및 '소년의 집' 이라는 고아원도 경영하고 있다.

1958. '천주의 성 요한 의원' 개원 (1132쪽 천주의 성 요한 의료봉사수도회)

1971. 걸인 수용소인 갱생원 설치 (1132쪽 천주의 성 요한 의료봉사수도회)

1983. 12 고아원인 '소년의 집' 운영 (1132쪽 천주의 성 요한 의료봉사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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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빈첸시오의 집 (성 빈센트 드 뽈 자비의 수녀회) - 1998. 5. 2일 성 빈센트 드 뽈 자비의 수녀회의 답신에 의거

청주교구 빈첸시오 아 바울로 중앙이사회에서는 1990년 한국 빈첸시오회 도입 30주년 기념사업으로 봉사와 사랑을 실천하는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에게 사랑이 담긴 점심 한끼를 나누자는 뜻으로 지도 신부님과 회원들이 뜻을 모아 무료급식소인 빈첸시오의 집을 마련하였다. 대지 100평을 교구로부터 받아 건평 125평으로 지어 1991년 5월에 준공식을 하였다. 급식은 월요일 부터 금요일까지 하루에 120-150명 정도 급식을 하고 있다. 식당봉사는 청주시내 본당을 중심으로 레지오 단체가 도와주고 있고 자금은 후원회와 상점을 하는 사람들이 야채와 음식재료를 무료로 보내주고 있고 그 밖의 많은 은인들의 도움으로 운영하고 있다. 성 빈센트 드 뽈 자비의 수녀회는 1997년 2월 청주교구에서 수녀 파견 요청에 따라 1명의 수녀를 성 빈첸시오 아바울로회의 지도와 빈첸시오의 집 관리를 위해 파견되었다. 빈첸시오의 집에서는 노인들에게 식사전 간단한 운동과 주1회의 간담회, 강좌, 오락시간에는 가야금, 노래배우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1991. 5 청주 빈첸시오의 집 설립 (성 빈센트 드 뽈 자비의 수녀회)

소재지 : 우 360-112 충북 청주시 상당구 수동 351-5/ 전화 0431)52-7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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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진본당 淸津本堂 (포교 성 베네딕도 수녀회 원산수녀원사 151쪽)

청진본당은 마르코 바인거(Markus Bainger, 方, 1981. 9. 6 - 1945. 9. 17)신부에 의해 1926년, 함경북도 청진시 포경동(浦傾洞)에 창설되었다. 본당의 주보는 성신이었다. 1935년, 나남(羅南) 본당을 분활, 독립시키고 1945년, 바인거 신부가 병사하자 이 재철(李載喆, 베드로, 1913-1950. 6. 24) 신부가 2대 주임으로 부임하였다.

청진에 포교 성 베네딕도 수녀회의 분원이 창설된 것은 1940년 7월 22일이었으며 분원의 주보는「예수성심」이었다. 암브로시아 원장수녀는 일제의 침략 전쟁과 황국 신민화 정책이 강화되는 가운데 과감히 분원 창설을 단행하였던 것이다.

본당 내의 빈민학교에서는 김 악녜스 수녀가 정식 교사로 활동하였으며, 옵타다 수녀와 사베라 수녀는 전교를 맡아하였다. 박 골룸바 수녀는 시약소를 맡아서 도처에서 몰려오는 환자들을 최선을 다하여 돌보아 주었을 뿐 아니라 본당의 교리반도 맡아 일하였다. 켈트루드 분원장 수녀는 학교의 교리반과 본당의 제의방, 임마꿀라따회도 겸하여 맡아 일하였다. 옵타다 수녀는 부인 예비자반과 아울러 주방을 맡아 많은 희생을 치루며 봉사하였다. 수녀들의 전교열에 부응하여 객실에는 예비자들이 끊일 사이 없이 모여들었다. 사베라 수녀는 청진에 사는 일인들에게 교리를 가르쳤다. 이처럼 수녀들은 많은 일들을 불평없이 하느님의 뜻 안에서 성실히 해 나갔던 것이다.

청진은 북쪽이었으므로 겨울에는 추위때문에 종종 수도 파이프가 얼어 곳곳에서 터지곤 하였다. 지하실에 배수관을 설치해야 되었지만 당시는 남자들은 모두 전쟁에 나가고 없었으므로 많은 어려움을 겪은 후에야 배수관을 설치하였다. 배급타기도 수월치 않아 아침식사는 바나나 말린 것 2쪽과 우유 한 컵으로, 점심은 콩깻묵밥으로 저녁에는 죽으로 식생활을 해 나갔다. 그나마 옵타다 수녀가 텃밭에서 가꾼 채소로 부족한 영양을 보충시켰다. 설상가상으로 총독부의 신사참배에 대한 압력이 증가됨에 따라 수녀들은 이에 대치할 명분 때문에 고심해야 되었고 밤에는 야경을 돌아야 했는데 수녀들도 어쩔 수 없이 일제의 지시대로 밤중에 방한복을 착용하고 야경 교대 순번에 맞추어 참례했다. 이런 어려운 일을 늘 분원장 수녀가 앞서서 지도해 나갔다.

1926. 청진(淸津)본당 설립 (포교 성 베네딕도 수녀회 원산수녀원사 1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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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평고아원 淸平孤兒院 (샤르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100년사 988쪽)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사방에서 고아들이 생기고 수녀들은 피난 도중에도 계속 늘어나는 고아들을 돌보아야 했다. 1·4후퇴 때 경기도 안양보육원에서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가 수원으로 잠시 피해있던 황인경 말가리다 수녀와 몇 명의 수녀들은 그때 고아원을 맡아달라는 윤을수(尹乙洙, 로렌죠, 1907-1971) 신부의 청에 따라 수원에서 아이들을 모아 서울로 상경하여 자하문 밖 윤현궁 별장에서 고아원을 운영하였다. 또한 소사에서도 아이들을 모아 황 수녀를 비롯하여 박동자 에메 드 마리 수녀, 최종희 토마스 수녀 등이 돌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청평에 있던 고아원도 운영하게 되어 소사, 자하문 밖, 청평의 세 고아원에서 헌신적으로 일하였다. 고아원 운영은 미군들이 많이 도와주었고 김명순 유스티나 수녀는 아이들에게 학습지도 및 교리 등을 가르쳤고 아이들을 인근의 중·고등학교까지 보내기도 하였다. 그 후 청평에 새 건물을 짓고 자하문과 소사에 있던 아이들을 모두 청평으로 모아 돌보다가 1959년 6월에 철수하였다.

1951. 3 청평고아원에 샤르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파견 (샤르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100년사 988쪽)

1959. 6 청평고아원에서 샤르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철수 (샤르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100년사 9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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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곡 가톨릭 피부과 병원 (교회와 역사 235호 22쪽) - 1994. 12. 25발행

칠곡 가톨릭 피부과 병원의 사도직은 1978년 엠마 프라이징거 여사의 초청으로 시작되었다. 당시 의료 기술과 인력을 가진 여로 수도회에 부탁하였지만 모두 거절당한 엠마 프라이징거 여사의 부탁을 들은 그리스도의 교육 수녀회는 회원수가 부족하였지만 오직 도와주고 함께 해야 한다는 절박함에서 회원 파견을 시작하였다. 그 후 사회와 가족으로부터 버림받은 많은 나환자들에게 아낌없는 사랑의 나눔으로 힘이 되어 주었다. 그러나 점차 나환자의 수가 감소 추세에 있고 또 병원도 안정기에 접어들어 봉사가 예전처럼 절박하지도 않아서 보다 필요한 곳에의 투신을 위해 1994년 7월에 분원을 철수하였다.

1978. 칠곡 가톨릭 피부과 병원에서 그리스도의 교육 수녀회는 사도직 전개 (교회와 역사 235호 22쪽) - 1994. 12. 25발행

1994. 7 칠곡 가톨릭 피부과 병원에서 그리스도의 교육 수녀회 분원 철수 (교회와 역사 235호 22쪽) - 1994. 12. 25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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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ail : peters1@seoul.catholic.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