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천주교 사회복지 명부12(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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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마 결핵 요양원 / 파티마병원 / 편물 양재 학원 / 평양본당 / 평화의 모친의 집 / 평화의 모후원 / 포항예수성심시녀회 / 프라도 수녀회 / 프란치스꼬 청소년의 집

파티마 결핵 요양원 - 1998. 9. 3 파티마 결핵요양원의 오세레나 수녀님의 답신에 의거

이시대와 지역사회의 요청에 따라 의료를 통한 사도직 수행과 특히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과 함께 계시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찾으며 이와 같은 사도직 수행을 통해서는 지역사회의 발전과 국민보건 향상에 기여키 위하여 1975년 9월 26일에 설립된 파티마 결핵 요양원은 저소득층 결핵환자의 입원치료 및 요양을 목적으로 경상북도 칠곡군에 왜관 성 베네딕도 수도회 소속 왕 레지날도 신부에 의해 설립되었다. 설립당시는 66병상의 의원 규모로 대구 파티마 병원에서 의사와 방사선기사와 임상병리사가 각 1명씩 주 1회 파견되었으며 요양원의 운영은 대구 파티마 병원의 수입 및 수도원의 예산으로 운영되었다.

故 왕 레지날도 신부가 선교활동 중에 결핵에 감염되었으나 경제적인 여유가 없어서 치료를 받지 못하는 환자들의 어려움을 보고 그들을 치료하고 요양시킬 요양원의 필요성을 절감하여 설립케 되었다.

1982년 대구 포교 성 베네딕도 수녀회로 요양원은 이양되었고 1992년 7월에는 결핵환자수의 감소와 의료보험으로 인한 입원 환자수가 감소하여 폐원하게 되었다.

1975. 9. 26 파티마 결핵 요양원 설립 - 1998. 9. 3 파티마 결핵요양원의 오세레나 수녀님의 답신에 의거

1982. 파티마 결핵 요양원은 대구 포교 성 베네딕도 수녀회로 이양 - 1998. 9. 3 파티마 결핵요양원의 오세레나 수녀님의 답신에 의거

1992. 7. 1 파티마 결핵 요양원 폐원 - 1998. 9. 3 파티마 결핵요양원의 오세레나 수녀님의 답신에 의거

소재지 : 우 718-820 경북 칠곡군 지천면 연화리 189-1 전화 0545)973-7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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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마병원 - 1998년 8월 28일 대구 파티마병원의 이 헬만 수녀님의 답신에 의거

포교 성 베네딕도 수녀회가 파견되어 있는 대구 파티마병원은 1956년 대구 동구 신암동에 설립되었다. 1971년 원목실에 수녀들이 외래입원환자와 직원들의 신앙, 상담을 위하여 파견되어 병원장에 메리 엑네스 수녀가, 원목실장에 김원집 수녀가 맡게 되었다. 설립당시 입원환자 침상은 300개 정도가 있었지만 현재는 500여개의 침상과 평신도 2명, 신부 1명, 그리고 포교 성 베네딕도 수녀회 수녀 7명이 활동하고 있다. 지금은 직원수도 800명으로 증가하였고 자원봉사자수도 200명으로 증가하였다. 파티마병원은 "들어라, 너는 병중에서 주님을 떠나지 말아라. 항상 기도하면 주님께서 고쳐주실 것이다." (집회 38,9)의 말씀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이 병원의 이념은 다음과 같다.

1. 파티마병원은 포교 성 베네딕도 수녀회가 가톨릭 교회 전통인 예수 그리스도의 치유사도직을 수행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2. 파티마병원을 찾는 모든 이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하여 양질의 진료로서 고통받는 이들을 낫게하고 심리적, 정신적 및 영적인 안정과 평화를 찾도록 도와주며 최선의 예방및 재활에 힘써 건강한 생활을 하도록 돕는다.

3. 질병과 고통 그리고 죽음이 인간삶의 한 부분이며 오히려 이들을 통해 하느님의 현존을 체험하고 환자와 그의 가족들에게도 병을 치유하시는 분이 하느님이심을 알게 하며 하느님 나라에 대한 새로운 희망과 인간다운 품위를 지니도록 그들을 돕는다.

4. 각 개인이 기본적으로 필요한 진료를 받을 권리가 있음을 인정하며 특히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돌본다.

5. 모든 인간생명의 신비와 존엄성이 진료활동 전반에 걸쳐 존중되도록 교회의 가르침을 준수한다.

6. 성 베네딕도가 가르친 대로 "병든 형제를 그리스도처럼 섬기고 돌볼" 뿐 아니라 치유사도가 동참하는 동료들과 형제적 연대성을 증진시켜 그리스도적 공동체를 형성하는데 힘쓴다.

7. 양질의 진료와 서어비스를 제공하는데 필요한 기술과 지식을 갖추고 책임있는 관리로 이들 목적을 달성하도록 노력한다.

1956. 대구 파티마 병원이 설립되어 포교 성 베네딕도 수녀회의 수녀 파견

1971. 대구 파티마 병원 원목실에서 포교 성 베네딕도 수녀회 활동

소재지 : 우 701-600 대구시 동구 신암동 302-1/ 전화 053)952-4051/ 모사전보 053)954-7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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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물 양재 학원 (교회와 역사 223호 22쪽) - 1993. 12. 25발행

"본회는 돈보스꼬의 정신을 충실히 살아 온 창설자 안토니오 가보리 사제를 본받아 가난한 청소년들을 위하여 도덕적 종교교육을 베풀며 필요에 따라서는 직업의 실천지도를 향한다."(회헌 12)는 정신 아래 농촌의 가난한 아가씨를 위한 직업 교육의 일환으로 1962년 7월 11일 '까리따스 문화 복장 학원'이란 이름을 걸고 학동 본원에 직업학교를 개설하여 편물과 양재를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입학 당시에는 대부분 생활이 넉넉치 못한 60명이 넘는 시골 아가씨들과 부인들이었는데 이중에는 미감아들도 있었다. 이들에게는 무료로 기숙사를 마련해 주는 등 아낌없는 배려와 함께 그들이 정상적인 사회인으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 주었다. 그러나 차차 기성복 이용도가 높아지고 사회인들이 많은 학원을 세움으로 인해 학생들을 확보할 수 없는데다가 일반인들의 유행에 민감하게 따르지 못하는 수녀들의 취약점 등으로 인해 저조한 현상을 보이다가 이들의 직업 교육을 위해 시대와 지역사회의 필요에 의해 성립된 이 학원은 그 목적을 최대한으로 실현시키면서 까리따스 수녀원의 정신을 펼 수 있던 사업이었다.

1962. 7. 11 '까리따스 문화 복장 학원'이라는 이름의 편물 양재 학원 설립 (교회와 역사 223호 22쪽) - 1993. 12. 25발행

1979. 2 까리따스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편물 양재 학원 폐쇄 (교회와 역사 223호 22쪽) - 1993. 12. 25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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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본당 (한국가톨릭대사전, 1985. 한국교회사연구소발행 1207쪽)

1895년 창설된 평양도 최초의 본당. 주보는 성 미카엘, 평화의 모후. 평양을 비롯한 평안도는 1864년 베르뇌(Berneux) 주교의 전교로 복음이 시작되었다. 1866년 병인 박해로 교우들이 산산히 흩어지기 시작했으나 1881년 부터 전교회장 김기호의 전교로 다시 복음이 전파되었고 그 뒤 차츰 교우 집단이 생겨나게 되자 황해도 수안본당 관할의 공소지역으로 되었다.

본당 창설 신부인 르장드르 신부는 평양외성의 산명모루에 주거지를 정하고 사가를 사들여 임시성당으로 사용하여 교세신장에 전념하다가 1898년 본당을 평양시내의 장대재로 옮긴 뒤 전임되고 후임으로 르메르(Le Merre) 신부가 부임하여 1900년 봄에 영와조 성당을 건축하였다. 르메르 신부는 20년간 사목하면서 1905년 기명학교, 1906년 성모여학교등을 개설하고 1909년에는 샤르트르 성 바오로 수녀들을 초빙하여 교육과 전교를 전담케 하는 등 본당 발전의 기틀을 마련해 놓았다.

1929년 본당 운영의 기명학교와 성모여학교를 통합한 6년제 성모보통학교가 정식 인가를 받게된다. 1944년 2월 일제에 성당과 부속건물을 징발당하여 산정현의 예배당으로 성당을 옮겨야 했고 8.15 광복 후 북한 공산정권과의 끈질긴 교섭 끝에 1946년 3월 성당을 다시 찾아 이듬해 전 교구민의 완성을 보지 못한 채, 1949년 5월 홍용호 주교가 북한 공산당 정권에 의해 납치되고 이어 6월에 본당주임 김필현 신부가, 12월에 보좌 서운석 신부가 납치 됨으로써 결국 침묵의 본당이 되었다. 본당 운영의 사업체로는 성모보통학교, 성모유치원, 성모학원, 양로원, 무료숙박소 등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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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모친의 집 (마리아의 작은 자매회의 복지시설) - 1998. 3. 31 마리아의 작은 자매회 답신에 의거

1973년 11월 평화의 모친의원으로 개원하였다가 1987년 폐원하였다. 그 후 같은 건물에 무의탁 노인들을 위하여 양로시설로 변경하여 1990년 5월에 설립되었다. 1998년 현재 포천에 위치하고 있으며 20명-25명의 할머니들을 수용할수 있는 규모이다.

1973. 11. 평화의 모친의원 개원 (마리아의 작은 자매회의 복지시설)

1990. 5 평화의 모친의 집으로 재 설립 (마리아의 작은 자매회의 복지시설)

소재지 : 우 487-800 경기도 포천군 포천읍 신읍리 151-3/ 전화 0357)535-2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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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모후원 (가톨릭사회복지회보 통권 6호 38쪽) - 1996. 11. 8발행

수원 '평화의 모후원'에는 75명 노인들이 살고 있고 노인들의 식사와 의료혜택 장례 절차에 이르기까지 모든 시설들을 노인들이 생활하기 편리하도록 설계하였다.

한 방에 2인이 생활하고, 부부는 7쌍이 계신데 부부방은 전에 살던 가구로 꾸미기도 하고 수녀님들이 수소문해서 구한 가구들로 가정집처럼 단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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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예수성심시녀회 浦項∼聖心侍女會 (영) Handmaids of the Sacred Heart of Jesus (한국가톨릭대사전, 1985. 한국교회사연구소발행 1213쪽)

1935년 12월 경상북도 영천군 용평리에서 루이 데랑드 신부의 지도아래 6명의 처녀들이 삼덕당(三德堂)이란 이름으로 창설한 수녀회. 복음삼덕(福音三德)을 수련하는 곳이라는 뜻. 삼덕당에서 시작된 창설 당시의 회원들은 본당사목을 도우며 가난해서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어린이들을 가르치기도 하였다. 1936년 2월에는 '성모자애원'(聖母慈愛院)을 설립하여 고아들과 의지할 곳 없는 노인들을 돌보기 시작하였다. 1940년 5월에는 들랑드 신부가 경상북도 영천본당으로 부임됨에 따라 수녀원과 사업체의 일부가 이전하게 되었다. 그러나 1944년 7월 부터는 일제의 탄압에 의해서 활동은 고사하고 심문과 고문으로 고생하다가 8.15 광복을 맞게 되었다. 광복 후 회원수의 증가로 부득이 경상북도 영일군 대송면으로 1950년 3월 이전하였지만 곧 6.25전쟁의 어려움을 겪었다. 1952년 9월 8일 교황청으로부터 정식 수녀회의 인가를 받고 수도회명도 '포항예수성심시녀회'로 개칭하였다. 그 뒤 1954년 12월 첫 서원식이 거행되었고, 1957년 12월에는 나환자들을 위한 '다미안피부병진료소'를 개설하여 정기적인 치료, 투약, 이동진료 등을 실시하는 한편, 경상북도 영일군 의창면에 정착촌도 마련해 주었다. 1965년 3월에는 서정길 대구교구장과 함께 첫 총회를 개최하여 김장주 수녀가 초대 총원장에 취임하였다. 1968년 10월에는 포항종합제철 부지 선정으로 인하여 현 소재지인 영일군 영일읍 대잠동으로 본부를 이전하게 되었고, 수련소는 대구시 남구 대명동에 자리잡게 되었다. 1977년 6월에는 포항에 있는 본원에 포항성모병원을 건립하여 보다 효율적인 활동을 하게 되었다. 현재 탁정자 총원장과 수녀를 비롯한 335명의 회원들이 1983년 12월 말 현재 포항의 본원과 성모자애원, 성모병원 그리고 대구교구를 비롯한 전국 10개 교구 70여개 본당에서 활동하고 있다.

1936. 2 성모자애원 설립 (1213쪽 포항예수성심시녀회)

1957. 12 다미안피부병진료소 설립 (1213쪽 포항예수성심시녀회)

1977. 6 포항성모병원 건립 (1213쪽 포항예수성심시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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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도 수녀회 (영) Sisters of Prado (한국가톨릭대사전, 1985. 한국교회사연구소발행 1218쪽)

1860년 12월 슈브리에(Chevrier) 신부에 의해 프랑스에서 창설된 수녀회. 1975년 한국진출. 가난한 이들을 위한 복음전파와 가난한 이들과 함께 생활하는 것을 근본정신으로 하는 이 수녀회는 1975년 서울에 진출하여 서울 가리봉동에 본원을 설치하여 새로운 지원자를 양성하는 한편,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고 일하며 교리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1980년에는 서울 문래 2동에 첫 분원을 설치하고 테레즈(Therese) 수녀를 중심으로 4명의 회원들이 1983년 12월 말 현재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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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꼬 청소년의 집 (가톨릭사회복지회보 통권 8호 103쪽) - 1997. 11. 13발행

고아, 결손가정 아동 및 청소년을 위한 청소년의 집이 개설되었다. 안동 용산동에 위치한 농민회관을 개조해 마련된 프란치스꼬 청소년의 집은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허보록 신부가 지도 신부로 임명되었으며 프란치스꼬 전교 봉사회 수녀 2명이 청소년들과 함께 생활한다. 수용인원은 20명이며 현재 여중생 1명과 초등학생 3명이 생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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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ail : peters1@seoul.catholic.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