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자 현양의 밤

루카 9,23-26; 수색 예수성심 성당; ’19/09/21

우리 나라에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102위 한국순교성인과 아울러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복자 주문모 야고보 신부와 122위 순교복자 이외에도 많은 순교자들이 계십니다. 특별히 지금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는 하느님의 종 이벽 요한 세례자와 동료 132위의 순교자분들의 시복을 추진중입니다. 이분들은 우리 나라 초대교회의 증거자들에서부터 병인박해의 순교자분들이십니다. 오늘은 그분들 중 몇 분을 살펴보기로 합시다.

이벽(李蘗) 요한 제례자의 본관은 경주이고, 자는 '덕조’, 호는 '광암'으로, 1754년 포천 화현리(현 경기도 포천시 화현면 화현리)에서 태어났습니다. 무반집안에서 난 이벽은 학문에 더 뜻을 두었고, 광주 마재(현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에 살던 나주 정씨 집안과 인척 관계를 맺게 된 뒤에는 정약전·약용 형제들과 가깝게 지내면서 학문을 닦았습니다. 그는 안동 권씨와 사별하고, 해주 정씨를 두 번째 부인으로 맞이하였습니다. 이벽은 1779년 겨울 천주교리에 대해 토론하며, 서울 수표교(현 서울시 종로구 관수동과 중구 수표동 사이) 인근으로 이주하여, 1779년 경에는 경기도의 주어사에서 김범우와 권철신, 권일신, 이승훈 베드로 등과 천주교리를 연구하였습니다.

이승훈(李承薰) 베드로는 본관이 ‘평창’이고, 자는 ‘자술’, 호는 ‘만천’으로 서울 만석방의 약현(현 서울시 중구 중림동)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위의 나주 정씨와 혼인하여 25세인 1780년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1784년 3월 북경에 가서 예수회의 그랑몽(양동재[梁棟材] 요한) 신부에게서 세례를 받고 귀국합니다.

1784년 겨울 베드로는 수표교 인근 이벽의 집에서 권철신의 아우인 권일신과 정약전·약용 형제에게 한국 최초의 세례식을 거행했습니다. 이벽의 세례명은 요한 세례자, 권일신의 세례명은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정약용의 세례명은 요한 사도였습니다. 이벽 요한 세례자의 활약으로 서울에서는 홍낙민 루카, 최창현 요한, 김험우 토마스, 충청도의 이존창 루도비코 곤자가와 전라도의 유항검 아우구스티노, 경기도의 권철신 암브로시오 등이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 무렵 이벽의 집에서 갖던 신앙 공동체 모임을 김범우 토마스의 집인 명례방(明禮坊)으로 옮깁니다.

1785년 봄 어느 날 명례방에서 요한 세례자의 주도 아래 집회를 갖던 중, 범법 행위를 단속하는 형조의 관원들이 이곳을 지나다가 도박꾼들의 모임으로 여겨 수색하였고, 그곳에 모여 있던 신자들을 모두 체포하여 형조로 압송하고, 그곳에 있던 교회 서적과 성물들도 모두 압수하였습니다.

이 사건으로 중인 신분인 집주인 김범우 토마스는 형조판서의 문초를 받으면서 “천주교에는 좋은 점이 아주 많으니, 천주교를 그르다고 하는 이유를 알지 못하겠습니다.”하며 신앙을 증언한 뒤 충청도 단앙으로 유배되어 기도생활을 하다가 주님께 돌아가셨고, 양반인 이벽 요한 세례자와 이승훈 베드로는 가족들에 의해 배교를 강요당했습니다. 요한 세례자는 가족의 배교강요를 받다가 모진 고초 속에 31세의 나이로 주님께 돌아가셨습니다.

1791년 천주교 신자들의 제사 폐지 문제와 관련한 진산 사건으로 이승훈 베드로는 체포되어 관직을 잃었고, 1795년 주문모 신부님의 입국이 발각되자 예산으로 유배를 다녀왔다가, 1801년 신유박해 때 한국천주교 우두머리로 잡혀 서소문에서 참수형을 받으셨습니다.

권일신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는 1791년 진산사건으로 체포되어 형조에서 “천주교에서의 가르침이 도리에서 벗어나는 사악한 가르침이 아닌 이상 어찌 예수 그리스도를 사악하다고 배척해 말할 수 있겠습니까?”하면서 신앙을 증언하셨고, 제주도로 유배되었다가 순교하셨고, 형님 권철신 암브로시오는 1801년 신유박해 때 65세의 일기로 순교의 영광을 얻으셨습니다.

내포의 사도로 일컬어지던 충청도의 이존창 루도비코는 권철신의 제자였습니다. 1791년 신해박해로 공주감영에서 문초와 형벌을 받고, 홍산에서 전교활동을 하다가, 1795년 서울에서 중국인 주문모 신부님을 만난 후 다시 전라도 고산으로 이주하여, 을묘박해를 피해 내려온 주문모 신부님을 모시기도 하였습니다. 1801년 신유박해 때 공주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하셨습니다.

왕족인 송 마리아와 신 마리아 순교자가 계십니다. 송 마리아는 정조의 이복동생인 은언군 이인의 부인으로 며느리 신 마리아와 함께 양제궁에 사시다가, 송 마리아의 아드님이자 신 마리아의 남편인 상계군 이담이 정치적 상황에서 역적으로 몰려 강화로 유배된 후에 두 분이 함께 사시다가 천주교를 믿게 됩니다. 1794년 주문모 신부님의 입국으로 세례를 받고, 강완숙 골롬바의 집에서 미사를 드리고 강론을 들으며 신앙을 키워나갔습니다. 1801년 신유박해로 주문보 신부님은 강완숙 골롬바의 집에서 양제궁으로 옮기게 되었고, 훗날 이것이 발각되어 정순왕후의 명에 따라 사약을 받고 순교하셨습니다.

황사영 알렉시오는 15세인 1790년 진사시에 합격하여, 정약현의 따님 정명련(난주) 마리아와 결혼하셨습니다. 그는 “천주 신앙은 세상을 구제하는 좋은 약”이라고 확신하며 신앙생활을 계속하였습니다. 1801년 신유박해 때 김한빈 베드로와 제천 배론 김귀동의 집으로 피신하여, 신앙의 자유를 얻고 교회를 재건할 수 있는 방책으로 북경 주교에게 백서를 작성하여 황 토마스를 통해 전달하고자 했으나 발각되어, 12월 대역부도죄인으로 판결을 받아 서소문 밖에서 능지처참형으로 26세의 일기로 순교하셨습니다.

평양의 김큰아기 마리아는 의원을 하던 김진에게 재혼하여 1863년 서울로 이주하여 약현에 거주하다가 1864년에 남편 베드로는 그 이듬해에 베르뇌 주교에게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1866년 병인박해 중에 남편 베드로가 평양에 치료를 갔다가 체포된 후 마리아도 “남편과 마찬가지로 매질 아래 죽어서 한결같이 천주의 가르침에 따라 즐겁게 좋은 곳으로 가겠다.”는 결심을 하고 서울 우포도청에 자수하여, 32세의 일기로 양화진에서 군문효수형으로 순교하셨습니다.

황해도 재령군에 살던 안여집 요한 사도는 슬하에 6남 2녀를 두시고, 성품이 순량하고 정직하며 찬찬하고 의리가 있어 이웃 사람들에게서 군자라는 평을 들었습니다. 세례를 받은 후 1866년 병인박해가 발발하고 포교들이 쳐들어온다고 하자 공소 신자들을 모두 피신시킨 후, 처자식과 함께 묵주 기도를 하며 포교들을 기다렸다가 포교들과 점심을 차려먹고 해주로 압송되어 문초를 받습니다. 그는 문초중에 “나는 하늘을 공경하고, 영혼을 구하는 데 힘썼으며, 나라를 사랑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라는 도리를 실천해 왔는데, 어찌 이것이 죄가 될 수 있느냐?”고 항변하며 “이미 나의 목숨을 천주를 위하여 바치기로 작정하였소. 천주는 만민의 왕이요, 만민의 아버지이신데, 어찌 백성이요 자식된 자로서 그분을 욕할 수 있겠습니까? 죽기로 결심했으니, 속히 처형해 주시오.” 라고 신앙을 증거함으로써, 1866년 12월 44세의 일기로 배지사형을 받아 순교하셨습니다.

평민 신분인 심능석 스테파노는 횡성에서 태어나 1838년 20세 때 천주교리를 배우고 샤스탕 정 신부님에게서 세례를 받고, 페레올 주교님에게 견진성사를 받고 성사생활을 하였습니다. 1866년 병인박해로 도피생활을 하다가 1868년 강릉 계촌에서 체포된 후, “우리는 결박하지 않아도 도망갈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니 집에 가서 남에게 진 빚을 갚고 모든 일을 처리하게 한 뒤에 재산을 적몰하십시오.”라고 청하여 일을 다 처리한 후, 서울 좌포도청으로 압송되어 문초와 형벌을 당하다가 49세에 순교하셨습니다.

충청도 홍산 태생의 강영원 바오로는 부모를 따라 입교하였고 부모가 홍산에서 순교하자 전라도 용담으로 이주하였습니다. 그는 “나의 소망은 ‘박해를 당하게 되었을 때 주님을 위해 순교하는 것’입니다. 지존하고 위대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수난을 받으셨으니, 나같이 비천한 사람이 어찌 예수 그리스도의 표양을 따르지 않겠습니다.”라는 고백을 했었고, 1871년 신미박해로 체포되어 신발도 없이 눈길을 걸어 나주로 압송됩니다. 옥중 생활에 지쳐 세상 복락을 생각하게 되자, “우리가 이러한 생각을 학 되는 것은 유감을 입은 탓이니, 이 유감을 물리치고 끝까지 신앙을 증언하자.”고 서로 권면하며 박해를 이겨내다가 곤장 30대를 맞고 1872년 백지사형을 받아 50세의 일기로 순교의 영광을 얻으셨습니다.

이분들의 시복을 기리며, 오늘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겪는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기로 합시다.




순교자 현양의 밤

(마르 8,31-35) 공항동 성당; 01/09/22/20:30

어느 나라의 한 대통령이 "정부가 여러분에게 무엇을 해 줄 것인가를 바라지말고, 여러분이 정부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해 주십시오."라고 했단다.

실제로 우리의 삶을 고단하고 척박합니다. 요즘같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에는 우리가 한층 더 부족함을 느낍니다. 갑작스런 실직과 빚으로 집과 재산을 다 넘겨 버리고 살 길이 막막한 이들도 있고, 세끼 먹을 것이 없어서 끼니를 걱정하는 이들까지 있어 조금이라도 더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합니다. 그래서 기도할 때면 더욱 더 주님께 매달리게 됩니다. "주님, 저희 집안을 지켜주십시오."

그런데 가만히 앉아서 생각해 보면, 실제로 하느님께서 더 주신다 하더라도, 하나라도 더 가지려는 사람들에게 과연 남과 나눌 정도로 남는 것이 있을 수 있을까? 없다. 흔히들 거지는 받아먹기만 해서 줄 줄 모른다고 하고, 언제 줄지 몰라서 한 번 줄 때 다 먹어 버린다고 한다.

내 것을 다 채우고 나서 남과 나누려면 줄 것이 없다. 아니 내 것도 모자란다. 저축도 쓰고 나서 남은 것을 하려면 없다고 하지 않는가? 먼저 띄어 놓고 나서 써야 그나마 저축도 하지 않는다고 하지 않던가? 과부사정 홀아비가 안다고, 우리가 이웃의 어려움을 보고 들으면 그냥 돌아설 수 없다. 내가 하고자 하고 얻고 싶은 것을 조금만 참고 조금만 늦추고 한 단계 낮추어야만 우리가 함께 살 수 있다. 가족이 어떻게 사는가? 아버지가 벌어온 것을 온 식구가 나누지 않는가? 친척끼리 어떻게 사는가? 조금 여유있는 형제가 여유없는 형제를 도와서 살지 않는가? 나는 왜 한 평생 아내와 자식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가 하고 의문을 제기하는 아버지가 어디 있는가? 가족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마음이 곧 주님의 마음이다. 먹여 살리고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 그것이 아버지의 마음이요 하느님의 마음이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우리를 살리기 위해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를 세상에 내려보내셨고 우리를 살리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하셨다.

그렇다면 우리도 한 번쯤 되돌아본다. 우리의 사명은 무엇인가? 예수님께 내려준 사명이 세상 인류를 구하라는 것이었다면, 우리에게 내려준 사명은 무엇일까? 우선 일차적으로 가족이고 친척 친지들이다. 그런데 그것은 굳이 신자가 아니더라도 다른 모든 사람들도 하는 일이다. 아니 그것은 동물적인 본능이다. 고슴도치도 자기 새끼를 이뻐해 주고 아낀다.

그리스도인의 사명은 가족에 국한되지 않는다. 아니 가족을 자기가 직접 낳고 기르는 자식만으로 한정시키지 않는다. "옳은 사람을 위해서 죽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혹 착한 사람을 위해서는 죽겠다고 나설 사람이 더러 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죄많은 인간을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이리하여 하느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당신의 사랑을 확실히 보여 주셨습니다."(로마 5,7-8)

물론 최소의 범위로 자기 자식만이라도 확실히 챙길 수 있다면 다른 이들에게 짐을 안겨주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사람의 아들이 반드시 많은 고난을 받고 원로들과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버림을 받아 그들의 손에 죽었다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신"(마르 8,31) 주 예수님을 따라 살기로 서약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사람의 일만 생각하지 않고 하느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사명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실현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실천하며 사는 사람들이다.

오늘날에는 옛날처럼 예수님을 믿는다고 죽이는 사람들이 없다. 즉 일상에서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던 안 믿는다고 하던 어떤 혜택이나 불이익도 없다. 오히려 오늘날엔 예수님을 믿는 이가 어떻게 사는가 하는 것이 더 사람들의 관심을 끈다. 기도 많이 하고 성서 많이 읽고 미사 자주 드려서 어떻게 사는가? 보통 사람과 어떻게 다르게 사는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통신앙보다 정통행실이 더 중요한 시기다.

예수님께서는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마르 8,34ㄴ)고 말씀하신다.

교회 안에서도 오늘날엔 과거처럼 직책을 서로 맡으려고 하지 않고 안 맡으려고 떠민다. 과거엔 겸손하게 거절해야 했지만 오늘날엔 자기가 십자가로 삼고 짊어져야 한다. 자기가 조금만 노력하고 희생하면 할 수 있고 할 줄 알면 할 수 있다고 응답하는 것이 십자가를 지는 일이다. 설사 할 수 없는 일이라도 그것이 기술직이 아닌 다음에는 '주님의 도우심에 힘입어 하겠습니다.'라고 응답하는 것이 십자가를 지는 일이다. 자기의 욕심을 버리고 착한 일을 하는 것에 그치지 말고, 이제는 그리스도 신자로서 자기의 도우심을 필요로 하는 공동체와 이웃에게 응답하며 사는 것이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길이다. ?제 목숨을 살리려는 사람은 잃을 것이며, 나 때문에 또 복음 때문에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살릴 것이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는다 해도 제 목숨을 잃는다면 무슨 이익이 있겠느냐? 절개 없고 죄많은 이 세대에서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 사람의 아들도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거룩한 천사들을 거느리고 올 때에 그를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마르 8,35-38)

오늘날 그리스도인으로서 순교하는 길은, 남 모르게 더욱 많이 그리고 깊이 성서를 읽고 기도하면서 하느님의 뜻을 찾는 길이며 자기가 찾은 그 뜻을 자신의 현실에 적용하는 길이 진정 순교하는 길이다. 누가 보던 보지 않던, 누가 뭐라고 하던 말던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고 해야겠다고 마음 깊은 곳에서 끊임없이 울려 퍼지는 주님의 목소리를 따르는 일이 순교하는 길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말을 잘 지킬 것이다."(요한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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