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자 현양의 밤

(마르 8,31-35) 공항동 성당; 01/09/22/20:30

어느 나라의 한 대통령이 "정부가 여러분에게 무엇을 해 줄 것인가를 바라지말고, 여러분이 정부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해 주십시오."라고 했단다.

실제로 우리의 삶을 고단하고 척박합니다. 요즘같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에는 우리가 한층 더 부족함을 느낍니다. 갑작스런 실직과 빚으로 집과 재산을 다 넘겨 버리고 살 길이 막막한 이들도 있고, 세끼 먹을 것이 없어서 끼니를 걱정하는 이들까지 있어 조금이라도 더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합니다. 그래서 기도할 때면 더욱 더 주님께 매달리게 됩니다. "주님, 저희 집안을 지켜주십시오."

그런데 가만히 앉아서 생각해 보면, 실제로 하느님께서 더 주신다 하더라도, 하나라도 더 가지려는 사람들에게 과연 남과 나눌 정도로 남는 것이 있을 수 있을까? 없다. 흔히들 거지는 받아먹기만 해서 줄 줄 모른다고 하고, 언제 줄지 몰라서 한 번 줄 때 다 먹어 버린다고 한다.

내 것을 다 채우고 나서 남과 나누려면 줄 것이 없다. 아니 내 것도 모자란다. 저축도 쓰고 나서 남은 것을 하려면 없다고 하지 않는가? 먼저 띄어 놓고 나서 써야 그나마 저축도 하지 않는다고 하지 않던가? 과부사정 홀아비가 안다고, 우리가 이웃의 어려움을 보고 들으면 그냥 돌아설 수 없다. 내가 하고자 하고 얻고 싶은 것을 조금만 참고 조금만 늦추고 한 단계 낮추어야만 우리가 함께 살 수 있다. 가족이 어떻게 사는가? 아버지가 벌어온 것을 온 식구가 나누지 않는가? 친척끼리 어떻게 사는가? 조금 여유있는 형제가 여유없는 형제를 도와서 살지 않는가? 나는 왜 한 평생 아내와 자식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가 하고 의문을 제기하는 아버지가 어디 있는가? 가족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마음이 곧 주님의 마음이다. 먹여 살리고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 그것이 아버지의 마음이요 하느님의 마음이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우리를 살리기 위해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를 세상에 내려보내셨고 우리를 살리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하셨다.

그렇다면 우리도 한 번쯤 되돌아본다. 우리의 사명은 무엇인가? 예수님께 내려준 사명이 세상 인류를 구하라는 것이었다면, 우리에게 내려준 사명은 무엇일까? 우선 일차적으로 가족이고 친척 친지들이다. 그런데 그것은 굳이 신자가 아니더라도 다른 모든 사람들도 하는 일이다. 아니 그것은 동물적인 본능이다. 고슴도치도 자기 새끼를 이뻐해 주고 아낀다.

그리스도인의 사명은 가족에 국한되지 않는다. 아니 가족을 자기가 직접 낳고 기르는 자식만으로 한정시키지 않는다. "옳은 사람을 위해서 죽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혹 착한 사람을 위해서는 죽겠다고 나설 사람이 더러 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죄많은 인간을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이리하여 하느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당신의 사랑을 확실히 보여 주셨습니다."(로마 5,7-8)

물론 최소의 범위로 자기 자식만이라도 확실히 챙길 수 있다면 다른 이들에게 짐을 안겨주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사람의 아들이 반드시 많은 고난을 받고 원로들과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버림을 받아 그들의 손에 죽었다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신"(마르 8,31) 주 예수님을 따라 살기로 서약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사람의 일만 생각하지 않고 하느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사명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실현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실천하며 사는 사람들이다.

오늘날에는 옛날처럼 예수님을 믿는다고 죽이는 사람들이 없다. 즉 일상에서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던 안 믿는다고 하던 어떤 혜택이나 불이익도 없다. 오히려 오늘날엔 예수님을 믿는 이가 어떻게 사는가 하는 것이 더 사람들의 관심을 끈다. 기도 많이 하고 성서 많이 읽고 미사 자주 드려서 어떻게 사는가? 보통 사람과 어떻게 다르게 사는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통신앙보다 정통행실이 더 중요한 시기다.

예수님께서는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마르 8,34ㄴ)고 말씀하신다.

교회 안에서도 오늘날엔 과거처럼 직책을 서로 맡으려고 하지 않고 안 맡으려고 떠민다. 과거엔 겸손하게 거절해야 했지만 오늘날엔 자기가 십자가로 삼고 짊어져야 한다. 자기가 조금만 노력하고 희생하면 할 수 있고 할 줄 알면 할 수 있다고 응답하는 것이 십자가를 지는 일이다. 설사 할 수 없는 일이라도 그것이 기술직이 아닌 다음에는 '주님의 도우심에 힘입어 하겠습니다.'라고 응답하는 것이 십자가를 지는 일이다. 자기의 욕심을 버리고 착한 일을 하는 것에 그치지 말고, 이제는 그리스도 신자로서 자기의 도우심을 필요로 하는 공동체와 이웃에게 응답하며 사는 것이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길이다. ?제 목숨을 살리려는 사람은 잃을 것이며, 나 때문에 또 복음 때문에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살릴 것이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는다 해도 제 목숨을 잃는다면 무슨 이익이 있겠느냐? 절개 없고 죄많은 이 세대에서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 사람의 아들도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거룩한 천사들을 거느리고 올 때에 그를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마르 8,35-38)

오늘날 그리스도인으로서 순교하는 길은, 남 모르게 더욱 많이 그리고 깊이 성서를 읽고 기도하면서 하느님의 뜻을 찾는 길이며 자기가 찾은 그 뜻을 자신의 현실에 적용하는 길이 진정 순교하는 길이다. 누가 보던 보지 않던, 누가 뭐라고 하던 말던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고 해야겠다고 마음 깊은 곳에서 끊임없이 울려 퍼지는 주님의 목소리를 따르는 일이 순교하는 길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말을 잘 지킬 것이다."(요한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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