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제2주일


2017년 주임사제의 교구장 사목목표 세부시행 계획 새로운 복음화의 활력으로 미사를 봉헌하며 ‘새로운 시대, 새로운 복음화’를 이루는 친교 공동체




(가해) 마태 3,1-12; 16/12/04

우리 수색 예수성심 교회 공동체 신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전임 이기헌 사도 요한 신부님과 사목협의회원들과 소속 단체장님들 그리고 구역반장님들과 함께, 2016년 한 해 복음화 사업에 매진하신 여러분의 환대와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주님 사랑과 은총 안에서 함께 땀 흘리며, 주님의 위로 안에서 마음을 모아 수고 수난했던 지난 한 해를 뒤돌아보며 주님께 더욱더 깊이 감사드리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께서 세우신 교회는 오늘 우리를 통해 우리가 사는 수색 지역에 구체화되고 구현되고 있습니다. 2017년 새해를 맞이하며 우리는 우리 교회의 사명을 다시 한 번 되새기고, 교구장님의 사목목표에 따라 ‘새로운 복음화의 활력으로 미사를 봉헌하며, 새로운 시대, 새로운 복음화를 이루는 친교 공동체’를 이루고자 합니다.

교구장님께서는 2017년 사목교서에서 지난 사년에 걸쳐 “말씀으로 시작되어, 기도로 자라나며, 교회의 가르침으로 다져지는 신앙 강화의 여정을 걸었고, 올해는 미사로 하나가 되는 신앙의 해를 보내고자 합니다.” 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시면서 올 한 해의 사목 주제어를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루카 22,19) 라는 말씀으로 삼으시고, ‘미사는 새로운 복음화의 중심’이라고 정하셨습니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복음화

첫째, 선교와 복음화

삼위일체 하느님께서 서로 사랑하시어 그 사랑이 우리에게 넘쳐흘러오듯이, 우리도 주 하느님의 사랑을 세상에 전합니다. 주 친히 승천하시면서 우리에게 사명을 주셨습니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18-20) 우리 교회는 형제자매들에게 주 하느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해주시며 구원해주시는지 알리며 함께 구원의 길을 걷고자 합니다.

선교는 비단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선포하고, 설교하고, 교리를 가르치고, 세례성사와 다른 성사들을 베푸는 것을 복음화라고 규정하려 하였을 수 있습니다.”(교황 바오로 6세, 현대의 복음선교, 17항) 실제로 선교는 그리스도교회의 세례자와 교회 공동체의 숫자 늘리기가 아니고, 복음의 말씀대로 행복을 살아 이 땅에 새 하늘과 새 땅이라고 할 수 있는 정의와 평화의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는데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세례를 받고 또 복음에 따라 사는 삶으로 새로워진 새 사람이 없다면 새 인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복음화의 목적은 바로 이러한 내적 변화이며, 한마디로 표현하여, 교회가 복음화한다는 말은, 교회가 자신이 선포하는 메시지의 거룩한 힘을 통하여 모든 개인과 집단의 양심, 그들의 활동, 그들의 삶과 구체적인 환경을 변화시키고자 노력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것이 복음화를 설명하는 가장 알맞은 표현일 것입니다.”(18항) 그래서 “인간의 모든 차원이 변화하여야 합니다. 교회로 볼 때 이는 단순히 지리적으로 더욱 넓은 지역이나 더욱 많은 사람에게 복음을 선포하는 것만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과 구원 계획에 상반되는 인간의 판단 기준, 가치관, 관심 사항, 사고방식, 영감의 원천, 생활양식 등에 복음의 힘으로 영향을 미쳐 그것들을 변화시키고 바로잡는 것이기도 합니다.”(19항)

그러기에 선교는 복음을 전하는 교회 공동체의 복음화를 전제로 하고 우선시 하여, 교회가 스스로 복음화하고 복음을 이웃과 나누고 복음화의 길로 초대하게 됩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습관적으로 반복해 왔던 교회의 모든 활동을 되돌아보며, 우리 교회의 활동을 어떻게 하면 복음과 교회의 정신에 맞춰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온 마음과 정신을 다 기울여 모색하고 실현합시다.

둘째, 그리스도 교회 공동체 건설과 친교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우리 삶의 기쁜 소식이요, 구원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으로 받아들입니다. 우리는 함께 모여 기도하며,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을 찬미하고 주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며, 주님과 하나 됩니다. 우리는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 주님께서 이 땅에서 세우고자 하셨던 하느님 나라를 향해 걸어나가는 교회 공동체를 건설합니다. 이 교회 공동체는 이미 주 예수님께서 오셔서 구원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심으로 시작되었고, 제자들과 함께 양성하셨고, 제자들과 그 후계자들과 그들의 복음선포를 받아들이고 믿는 이들을 통해 전승되었습니다. 이 교회 공동체는 오늘 우리가 모여 함께 기도하고 친교를 나누는 공동체이기도 하고, 우리의 복음 선포로 새로 건설될 새로운 지역의 공동체이기도 합니다.

교회 공동체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과 이 땅에서 친교를 이루고자 노력합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신 삼위의 하느님께서 서로 사랑하셔서 하나 되신 그 사랑의 신비 속에 참여하고자 기도하고 복음을 실천하며 친교를 이루고자 합니다. 주 하느님의 마음과 사랑 그 정신을 모시고 따라가고자 노력합니다. 그리고 그 하느님의 사랑과 정신을 담은 말씀을 새기고, 형제들과 함께 마음을 모아 실현하면서 주님 안에서 친교를 나누고자 합니다.

그중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은 교회의 미래를 이끌어 나갈 청소년 성소자와 교회의 정신을 제대로 습득한 평신도 지도자를 양성하는 일이 공동체 건설과 친교의 중요한 작업입니다.

셋째, 이웃 사랑

삼위일체의 하느님께서 사랑으로 하나되고, 그 사랑이 넘쳐흘러 세상을 지어내시고, 주관하시고, 구원하시며 사랑을 나누어 주시듯이, 우리도 주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사랑을 주위의 형제자매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특별히 가난하고 소외되어 어려운 삶을 살고 있는 이들과 함께 우리의 삶을 나누고자 합니다. 선교와 이웃 사랑은 하느님 사랑이라는 손의 바닥과 등이며, 직접선교와 간접선교라는 양면입니다.

이상의 세 가지 교회의 선교 사명은 교회의 본질이자 목표입니다. 이는 삼위일체 하느님 사랑의 신비 안에서 그 근원과 힘을 얻고, 우리가 그 신비 안에 참여함으로써 구원의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게 됩니다.


2017년 교구장 사목목표를 구현하기 위한 시행 계획

올 2017년 교구장님께서는 이러한 교회의 선교 사명을 실현하기 위하여, 루카 복음에 나오는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루카 22,19) 라는 말씀으로 미사성제를 통하여 복음화의 활력을 얻고자 하십니다. 교구장님은 “미사 전례는 ‘교회 활동이 지향하는 정점이며, 동시에 거기에서 교회의 모든 힘이 흘러나오는 원천’입니다. 주님의 말씀, 공동체의 기도 그리고 교회의 가르침이 모두 포함되어 있는 신앙의 종합선물과도 같은 미사는 새로운 복음화의 중심이며 원동력입니다.” 라고 일컬으십니다.

첫째, ‘기억과 재현’의 미사성제

우리는 미사를 봉헌하며 지금까지 우리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과 선조들을 기억하며 그분들을 통해 우리를 살려주시는 주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지금까지 우리를 길러주시고 좋은 영향을 끼쳐주신 선생님과 어르신들을 기억하며 그분들을 통해 우리를 구하기 위해 생명을 바치신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드립니다. 또한 우리가 알게 모르게 우리 사회를 이루고 넘겨주신 민족의 열사와 의사들, 지금도 우리 사회를 위해 봉사하고 계신 공직자, 군인, 사회활동가들과 선의의 모든 시민들을 기억하며 그분들을 통해 우리를 하느님 나라로 이끄시는 성령님께 감사드립니다. 살면서 아무런 대가없이 우리를 보호해 주시고 사랑해 주신 은인과 후원자들을 비롯한 선의의 지지자들을 기억하며 그분들을 통해 우리를 보호해주시는 수호천사와 주보성인과 한국의 순교 성인성녀들께 감사드립니다.

미사성제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위하여 구역별 보편지향기도 외에도 제물봉헌에 소공동체 구역과 소공동체 단체모임에서 순차적으로 참여하도록 합시다. 아울러 같은 참여 방식으로 우리가 기도하고 찬미하는 성전을 우리 손으로 쓸고 닦으며, 우리의 정을 성전 곳곳에 새기기로 합시다.

우리 활동의 중심이자 원동력인 성체성사를 영하고, 개인적으로나 공동체적으로 매주 화요일 저녁 8시부터 9시까지 다 함께 성체조배를 하고, 매일 저녁 9시 주모경을 바치며 가정의 화목과 단란, 본당의 친교와 일치, 우리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통한 국토통일, 세계의 평화를 위해 기도하며 실생활에서 이를 이루기 위해 헌신합시다.

부활 시기에는 72일 고리기도를 바치며 본당의 친교와 지역사회의 복음화를 위해 희생봉사 합시다.

둘째, 성찬의 말씀과 미사성제

우리는 미사성제를 통해 우리 삶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을 가져다주는 ‘생명의 말씀’을 들으며 잘 새기고, 성체성사를 통해 그 말씀을 우리 일상에서 실현할 힘을 얻어, 가정과 일터와 지역사회로 파견됩니다.

미사성제의 연장으로 우리는 매 기도와 모임에서 말씀을 듣고 묵상하고 적용하며 하느님 나라를 건설합니다. '소공동체들로 이루어진 본당 공동체'(공동체들의 친교)의 이상적인 교회 모습이 구역반과 단체가 함께 어우러지는 것이오니, 소공동체 구역반모임과 소공동체 단체모임이 제 자리에서 복음을 나누고 실현하는 데 한 걸음 더 나아가도록 합시다. 소공동체 단체·모임에서는 교회 전례주년으로 가해인 2017년 미사 중에 읽게 되는 마태오 복음을 읽고 그에 대한 훈화를 듣고, 소공동체 구역·반에서는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를 가지고 말씀 나누기와 공부를 통해 우리 활동의 양식과 방향을 아로 새기고 실천합시다. 아울러 공동체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성서공부인 ‘성서못자리’를 3년에 걸쳐 1, 2학기로 연구합시다.

셋째, 미사성제와 함께 이루어지는 단계별 어른 입교 예식과 주일학교와 노인대학 신앙교육과 신앙캠프

미사성제를 통한 우리의 감사와 찬미를 드리며, 예비신자 교리반을 년 2회 정규적으로 모집하고 운영함으로써 선교역랑을 집중하고자 합니다. 이 교육과정은 년 2회 예비신자 교리반 모집과 운영, 받아들이는 선발예식, 성지순례, 세례성사, 신비교육 순으로 진행됩니다. 이상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 초대교회의 예비신자 교리전통 ? 받아들이는 예식, 선발 예식과 정화와 조명의 시기, 입교성사와 신비교육 - 을 되살리기 위해 설정된 단계별 어른 입교 예식 절차를 따릅니다.

단계별 어른 입교 예식과 아울러 주일학교 교육을 통해 자녀들과 차세대의 젊은이들에게 우리가 받아왔고 담아왔던 좋은 이상들과 가치들, 전통과 문화들, 특별히 우리의 신앙을 전수하고자 합니다.

노인대학(시니어 아카데미)에서도 매월 첫 주간에 말씀을 주제로 한 교리 공부를, 둘째 주간에는 본당에서 돌아가신 모든 분들을 위한 연도를, 셋째 주간에는 성경공부를 추가하여 보다 더 말씀에 귀 기울이고 살아가는 기쁨을 얻도록 합시다.

또한 여름 예수성심 가족캠프를 기획하여, 매년 순차적으로 사복음서를 주제로 우리 신자가정이 지금까지 배워오고 꿈꾸어 오던 하느님 나라를 실험적으로 살아보고자 합니다.

지역적인 뉴타운 건설로 이전하는 식구들과 나날이 줄어드는 미사참례자와 쉬는 교우수를 줄이고 보다 많은 형제자매들이 우리와 함께 주님을 찬미하고 감사드릴 수 있도록, 예비신자와 쉬는 교우에게 권면하고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미사성제와 신앙교육에 참여할 수 있도록 그 방안을 모색하고 또 실제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 이를 위하여 매 월 하루 가정의 날을 가져 가족이 함께 영화를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과 아울러 외짝 교우를 포함한 가족 모두가 함께 성당에서 신앙생활을 편안히 할 수 있는 기회를 자주 다양한 방법으로 갖기로 합시다.

넷째, 성찬의 사랑나눔과 미사성제

미사성제를 통해 우리 삶의 은총을 얻은 우리는 주님께 감사드리고 보답하는 의미로, 주님 사랑 안에서 공동체가 하나로 일치하고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형제자매들에게 우리가 주님께 받은 은총을 나누고자 합니다. 본당의 친교와 지역 복음화를 위하여, 특별히 가난하고 소외되고 어렵게 살아가고 있는 우리 형제자매들에게 우리의 사랑을 나누고자 합니다.

올 해부터 지금까지 우리가 매달 작은 정성을 나누던 관내 불우이웃돕기 이외에도, 매년 대림시기에 우리에게 오시는 아기 예수님께 선물을 드리는 의미로 또 사순시기에는 우리를 구하시기 위해 수난하시는 주님의 수고에 동참하는 의미로 구역별로 단체들과 마음을 모아서 사회복지시설을 방문하여, 현장체험과 봉사활동을 통해 우리에게 베풀어주시는 주님 사랑을 나누고자 합니다.

늘 새롭게 다가오시는 주님을 맞으며, 주 친히 우리에게 명하신 ‘복음 선포’와 ‘공동체 양성’ 및 ‘이웃사랑’을 통해 우리 교회를 이 땅의 하느님 나라로 변화시킵시다. 성전에서 미사를 봉헌한 후 우리 삶의 한 가운데로 깊이 들어가 책상과 작업대와 싱크대를 제대로 삼아 희생 제사를 봉헌하고 실현하여 이 땅에 하느님 나라를 이루도록 합시다. 성령의 이끄심과 도우심에 의지하여, 미사성제 중에 주님의 뜻을 찾고, 그 뜻을 이룰 수 있는 힘을 받아, 우리 삶의 현장에서 활동하여 결실을 맺도록 합시다. 성모님께서도 저희를 보호해 주시고, 참 교회로 성장시켜 주시기를 청합니다.

주 예수님께서 교회를 통해 제게 주신 권한으로,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 그리고 여러분이 하시는 모든 일에 강복해주시고 화목하고 평안하게 해주시기를 1년 내내 매 순간 기도합니다.


2016년 대림절에

천주교 서울대교구 수색 예수성심 성당

주임사제 심흥보 베드로 신부




대림 제2주일

자비의 특별 희년 선포 칙서 ‘자비의 얼굴’ (Misericordiae Vultus)1




(다해) 루카 3,1-6; 15/12/06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저는 지난 6월 14일 연중 제11주일 강론에서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강론: 자비의 희년 발표’를 전해드렸습니다. 오늘은 ‘자비의 특별 희년’이 시작하는 내일 모레 12월 8일을 맞아, 교황님께서 선포하신 칙서 ‘자비의 얼굴’을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이 칙서는 “하느님의 종들의 종 로마 주교 프란치스코가 이 편지를 읽는 모든 이에게 은총과 자비와 평화를 빕니다.” 라는 말로 시작하여, 총 25개항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 아버지의 자비의 얼굴이십니다. 아버지의 자비는 나자렛 예수님 안에서 생생하게 드러나 그 정점에 이르렀습니다. “자비가 풍성하신”(에페 2,4) 아버지께서는 모세에게 “자비하고 너그러운 하느님, 분노에 더디고 자애와 진실이 충만한 하느님”(탈출 34,6 참조)이라고 당신 이름을 알려 주시고 역사를 통하여 여러 가지 방법으로 당신의 거룩하신 본성을 끊임없이 보여 주십니다. “때가 차자”(갈라 4,4) 아버지께서는 당신 아드님을 보내시어 동정 마리아에게서 태어나게 하시고 우리에게 완전한 사랑을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뵌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입니다(요한 14,9 참조). 나자렛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과 행동, 당신의 온 인격으로 하느님의 자비를 드러내십니다.

2. 우리는 언제나 자비의 신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 신비는 기쁨과 고요와 평화의 샘입니다. 여기에 우리 구원이 달려 있습니다. 자비는 인생길에서 만나는 형제자매를 진실한 눈으로 바라보는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자리 잡는 근본 법칙입니다. 자비는 하느님과 사람을 이어 주는 길이 되어 우리가 죄인임에도 영원히 사랑받으리라는 희망을 품게 해 줍니다.

3. 이 성년은 2015년 12월 8일,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에 시작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죄악을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사랑으로 거룩하고 흠 없는 마리아를 선택하시어 인간 구원자의 어머니가 되기를 바라셨습니다(에페 1,4 참조). 주님의 자비는 언제나 어떠한 죄보다도 더 크므로 그 누구도 용서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막을 수 없습니다.

대림 제3주일에 로마 주교좌 대성당, 곧 성 요한 라테라노 교황 대성전의 성문이 열릴 것입니다. 이어서 모든 개별 교회는 자비의 문을 열고, 이 성년을 특별한 은총의 때와 영적 쇄신의 계기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4. 제2차 바티칸 공의회 폐막 50주년이 되는 이날 성문을 열 것입니다. 오랫동안 교회를 안온한 도성처럼 감싸 주던 성벽은 무너져 버리고, 새로운 방식으로 복음을 선포해야 할 때가 왔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의 새로운 임무는 열정과 확신으로 신앙을 증언하는 것입니다.

바오로 6세 복자는 공의회를 마치면서 말하였습니다. “우리 공의회의 신앙은 사랑이었습니다. 착한 사마리아인의 옛 이야기가 공의회의 모범이자 규범이었습니다. 모든 환경에서 살아가는 인간, 온갖 나약함을 지닌 인간, 갖가지 요구를 지닌 인간에게 봉사하려는 것입니다.”

믿는 이들의 발걸음을 그리스도의 구원 활동에 협력하도록 이끄시는 성령께서 하느님의 백성을 일으켜 세우시고 이끌어 주시어 그들이 자비의 얼굴을 바라보도록 도와주시기를 빕니다.

5. 희년은 2016년 11월 20일 그리스도 왕 대축일에 끝날 것입니다. 그날 특별한 은총의 시간을 주신 성삼위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교회의 삶과 모든 인간과 무한한 우주를 주님이신 그리스도께 맡겨 드리며 미래의 풍요로운 역사를 이루려고 노력하는 모든 사람에게 당신의 자비를 아침 이슬처럼 내려 주시기를 빌 것입니다.

6. “자비를 베푸시는 것이 하느님의 고유한 본질입니다. 바로 그 자비 안에서 하느님의 전능이 드러납니다.” 구약 성경에서는 분노에 더디시고 자비로우신 분이라는 말로 자주 하느님의 본성이 묘사됩니다. 주 하느님은 “네 모든 잘못을 용서하시고 네 모든 아픔을 낫게 하시는 분, 네 목숨을 구렁에서 구해 내시고 자애와 자비로 관을 씌워 주시는 분”(시편 103[102],3-4) 이시며, “억눌린 이들에게 올바른 일을 하시며 굶주린 이들에게 빵을 주시는 분이시다. 주님께서는 붙잡힌 이들을 풀어 주시고 눈먼 이들의 눈을 열어 주시며 꺾인 이들을 일으켜 세우신다. 주님께서는 의인들을 사랑하시고 이방인들을 보호하시며 고아와 과부를 돌보신다. 그러나 악인들의 길은 꺾어 버리신다”(시편 146[145],7-9). 그리고 “마음이 부서진 이들을 고치시고 그들의 상처를 싸매 주신다. …… 주님께서는 가난한 이들을 일으키시고 악인들을 땅바닥까지 낮추신다”(시편 147[146-147],3.6). 그러므로 하느님의 자비는 추상적인 관념이 아니라 당신의 사랑을 보여 주는 구체적인 실재입니다. 온유한 배려와 너그러운 용서가 넘치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자연스럽게 솟구치는 사랑입니다.

7. “주님의 자애는 영원하시다.” 이는 하느님의 계시 역사를 노래하는 시편 136편의 모든 절마다 반복되는 후렴구입니다. 자비는 하느님과 이스라엘의 역사를 구원의 역사로 변화시켜 줍니다. 이는 시공의 역사 안에서만이 아니라 영원토록, 인간은 하느님 아버지의 자비로운 눈길 아래 있으리라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듯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수난하시기 전에 이 자비의 시편으로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찬미가를 부르고 나서”(마태 26,30) 올리브 산으로 가시면서, 예수님께서 성찬례를 당신과 당신의 파스카 희생에 대한 영원한 기념제로 제정하시면서, 자비의 빛이 상징적으로 이 최고의 계시 행위를 비추게 하셨습니다. 바로 그 자비의 지평에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완성될 위대한 사랑의 신비를 의식하시며 수난하시고 돌아가셨습니다.

8.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1요한 4,8.16). 그분께서는 오직 사랑, 자신을 거저 내어 주는 사랑이십니다. 예수님께서 특별히 죄인이나 가난한 이들, 버림받은 이들, 병자들, 고통 받는 이들에게 행하신 모든 기적은 자비를 보여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라오는 군중을 보시자 그들이 지도자 없이 길을 잃고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는 것을 알아채시고 무척 가엾은 마음이 드셨습니다(마태 9,36 참조). 그분께서는 가엾게 여기시는 마음으로 사람들이 데려온 병자들을 고쳐 주시고(마태 14,14 참조), 빵 몇 개와 물고기 몇 마리로 수많은 군중을 배불리 먹이셨습니다(마태 15,37 참조). 이 모든 상황에서 예수님을 움직인 것은 다름 아닌 자비였습니다. 그 자비로 당신께서 만난 사람들의 마음을 읽고 그들의 절실한 바람을 채워 주셨습니다. 외아들의 장례를 치르러 가는 나인의 과부를 만나셨을 때, 예수님께서는 울부짖는 어머니의 커다란 고통을 보시고 무척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 그 아들을 죽음에서 다시 일으켜 어머니에게 돌려주셨습니다(루카 7,15 참조). 게라사인 지방에서 마귀 들렸던 사람을 고쳐 주시고,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이렇게 명령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너에게 해 주신 일과 자비를 베풀어 주신 일을 모두 알려라”(마르 5,19). 마태오를 부르신 것도 자비의 맥락 안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관 앞을 지나시다가 마태오를 바라보셨습니다. 그 사람의 죄를 용서하시는 자비의 눈길이었습니다.

대림 제2주일, 자비로이 우리를 부르시고 회개의 길로 이끄시어, 주님을 맞이하도록 준비시켜 주시는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루카 3,4)




대림 제2주일

2015년 주임사제의 교구장 사목목표 세부시행 계획

새로운 복음화의 활력으로 기도를 바치며 ‘새로운 시대, 새로운 복음화’를 이루는 친교 공동체




(가해) 마르 1,1-8; 14/12/07


우리 삼성동 교회 공동체 신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사목협의회원들과 소속 단체장님들 그리고 구역반장님들과 함께, 2014년 한 해 복음화 사업에 매진하신 여러분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주님 사랑과 은총 안에서 함께 땀 흘리며, 주님의 위로 안에서 마음을 모아 수고 수난했던 지난 한 해를 뒤돌아보며 기쁘고 뿌듯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께서 세우신 교회는 오늘 우리들을 통해 우리들이 살고 있는 삼성동 지역에 구체화되고 구현되고 있습니다. 2015년 새해를 맞이하며 우리는 우리 교회의 사명을 다시 한 번 되새기고, 교구장님의 사목목표에 따라 ‘새로운 복음화의 활력으로 기도를 바치며, 새로운 시대, 새로운 복음화를 이루는 친교 공동체’를 이루고자 합니다.

첫째, 선교와 복음화

삼위일체의 하느님께서 서로 사랑하시고 그 사랑이 우리에게 넘쳐흘러오듯이, 우리도 우리를 구원하신 주 하느님의 사랑을 온 세상에 전합니다. 주 친히 승천하시면서 우리에게 사명으로 주셨습니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18-20) 그래서 우리 교회는 형제자매들에게 주 하느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해주시며 구원해주셨는지 알리며 함께 구원의 길을 걷고자 합니다.

선교는 비단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선포하고, 설교하고, 교리를 가르치고, 세례성사와 다른 성사들을 베푸는 것을 복음화라고 규정하려 하였을 수 있습니다.”(교황 바오로 6세, 현대의 복음선교, 17항) 실제로 선교는 그리스도교회의 세례자와 교회 공동체의 숫자 늘리기가 아니고, 복음의 말씀대로 행복을 살아 이 땅에 새 하늘과 새 땅이라고 할 수 있는 정의와 평화의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는데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세례를 받고 또 복음에 따라 사는 삶으로 새로워진 새 사람이 없다면 새 인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복음화의 목적은 바로 이러한 내적 변화이며, 한마디로 표현하여, 교회가 복음화한다는 말은, 교회가 자신이 선포하는 메시지의 거룩한 힘을 통하여 모든 개인과 집단의 양심, 그들의 활동, 그들의 삶과 구체적인 환경을 변화시키고자 노력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것이 복음화를 설명하는 가장 알맞은 표현일 것입니다.”(18항) 그래서 “인간의 모든 차원이 변화하여야 합니다. 교회로 볼 때 이는 단순히 지리적으로 더욱 넓은 지역이나 더욱 많은 사람에게 복음을 선포하는 것만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슴과 구원 계획에 상반되는 인간의 판단 기준, 가치관, 관심 사항, 사고방식, 영감의 원천, 생활양식 등에 복음의 힘으로 영향을 미쳐 그것들을 변화시키고 바로잡는 것이기도 합니다.”(19항)

그러기에 선교는 복음을 전하는 교회 공동체의 복음화를 전제로 하고 우선시 하여, 교회가 스스로 복음화하고 복음을 이웃과 나누고 복음화의 길로 초대하게 됩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습관적으로 반복해 왔던 교회의 모든 활동을 되돌아보며, 우리 교회의 활동을 어떻게 하면 복음과 교회의 정신에 맞춰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온 마음과 정신을 다 기울여 모색하고 실현합시다.

둘째, 그리스도 교회 공동체 건설과 친교

예수님의 말씀을 우리 삶의 기쁜 소식이요 우리 구원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으로 받아들인 우리 신자들은 함께 모여, 함께 기도하며,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을 찬미하고 주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며, 주님과 하나 되어,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 주님께서 이 땅에서 세우고자 하셨던 하느님 나라를 향해 걸어나가는 교회 공동체를 건설합니다. 이 교회 공동체는 이미 주 예수님께서 오셔서 구원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심으로 시작되었고, 제자들과 함께 양성하셨고, 제자들과 그 후계자들과 그들의 복음선포를 받아들이고 믿는 이들을 통해 전승되었습니다. 이 교회 공동체는 오늘 우리가 모여 함께 기도하고 친교를 나누는 공동체이기도 하고, 우리의 복음 선포로 새로 건설될 새로운 지역의 공동체이기도 합니다.

교회 공동체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과 이 땅에서 친교를 이루고자 노력합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신 삼위의 하느님께서 서로 사랑하셔서 하나 되신 그 사랑의 신비 속에 참여하고자 기도하고 복음을 실천하며 친교를 이루고자 합니다. 주 하느님의 마음과 사랑 그 정신을 모시고 따라가고자 노력합니다. 그리고 그 하느님의 사랑과 정신을 담은 말씀을 새기고, 형제들과 함께 마음을 모아 실현하면서 주님 안에서 친교를 나누고자 합니다.

그중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은 교회의 미래를 이끌어 나갈 청소년 성소자와 교회의 정신을 제대로 습득한 평신도 지도자를 양성하는 일이 공동체 건설과 친교의 중요한 작업입니다.

셋째, 이웃 사랑

삼위일체의 하느님께서 사랑으로 하나되고, 그 사랑이 넘쳐흘러 세상을 지어내시고, 주관하시고, 구원하시며 사랑을 나누어 주시듯이, 우리도 주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사랑을 주위의 형제자매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특별히 가난하고 소외되어 어려운 삶을 살고 있는 이들과 함께 우리의 삶을 나누고자 합니다. 선교와 이웃 사랑은 하느님 사랑이라는 손의 바닥과 등이며, 직접선교와 간접선교라는 양면입니다.

이상의 세 가지 교회의 선교 사명은 교회의 본질이자 목표입니다. 이는 삼위일체 하느님 사랑의 신비 안에서 그 근원과 힘을 얻고, 우리가 그 신비 안에 참여함으로써 구원의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게 됩니다.

올 2015년 교구장님께서는 이러한 교회의 선교 사명을 실현하기 위하여, 사도행전에 나오는 “사도들과 신자들은 모두 한 마음으로 기도에 전념하였다.”(사도 1,14 참조)는 성경구절을 인용하시며, 기도에서 새로운 복음화의 활력을 얻자고 하십니다. 가정 교회에서 출발하여 우리 공동체의 모든 지체가 “하느님 향하여 마음을 들어 높이고, 하느님께 은혜를 청하자”고 하셨습니다.

우리 모든 활동에 앞서 ‘주님의 기도’에 나오듯이,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마태 6,10) 라고 기도하며, 주님의 기도를 비롯한 묵주기도, 성무일도 등의 염경기도와 성체조배를 비롯한 복음나누기 등의 묵상과 관상 기도 중에 주님의 뜻을 찾아 얻고, 그 뜻을 이룰 수 있는 힘을 얻고, 그 뜻을 따라 활동하며, 주님의 뜻대로 결실을 맺도록 노력합시다.

2014년 대림절에

천주교 서울대교구 삼성동 성가정 성당

주임사제 심흥보 베드로 신부



대림 제2주일

2014년 주임사제의 교구장 사목목표 세부시행 계획

생명의 말씀을 읽고 실천하며 ‘새로운 시대, 새로운 복음화’를 이루는 친교 공동체




(가해) 마태 3,1-12; 13/12/08



우리 삼성동 교회 공동체 신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사목협의회원들과 소속 단체장님들 그리고 구역반장님들과 함께, 2013년 한 해 복음화 사업에 매진하신 여러분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주님 사랑과 은총 안에서 함께 땀 흘리며, 주님의 위로 안에서 마음을 모아 수고 수난했던 지난 한 해를 뒤돌아 보며 기쁘고 뿌듯합니다.

저는 사제로서 신자들과 함께 교회 공동체의 친교와 지역 사회 복음화를 위해 뛰면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첫째, 신앙생활에 우리에게 생명을 주는 주님의 말씀이 기본과 근거를 이루지 않는다면, 그 신앙은 미신행위나 이데올로기로 변질될 수 있습니다. 둘째, 신앙생활에 주님과 친교를 이루는 고리인 내적 체험이 없다면, 그 신앙은 이론적이고 논리적이며 신학적인 교의와 사상에 그칠 수 있습니다. 셋째, 신앙생활에 신비체험은 있지만 그 체험이 내적 감흥으로만 머물고 기도와 절제와 희생 봉사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그 신앙은 종교적인 신심행위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신자들에게 길과 진리와 생명을 가져다 주는 성경 말씀과 그에 따른 교회의 가르침인 교리 교육 및 기도와 실천으로 이어지는 영신 성숙을 동시에 도모해야 한다고 여겨왔습니다.

2012년 10월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께서는 “그리스도와 만나는 기쁨과 새로운 열정을 더욱 북돋우기 위하여 신앙의 여정을 재발견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에서 ‘신앙의 해’를 선포하셨습니다.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대주교님께서는 신앙의 해를 시작하면서 한국천주교회가 당면한 신앙의 위기는 ‘허약한 신앙’이라고 진단하셨습니다. 그리고 허약한 신앙을 강화하기 위한 방안을 다섯 가지 표어, ‘말씀으로 시작되는 신앙’, ‘기도로 자라나는 신앙’, ‘교회의 가르침으로 다져지는 신앙’, ‘미사로 하나되는 신앙’, ‘사랑으로 열매 맺는 신앙’에 담아 제시하셨습니다. 교구장님께서는 앞으로 5년 동안 순차적으로 이 다섯 가지 주제에 초점을 맞추어 우리의 허약한 신앙체질을 개선하고자 하십니다.

그 첫번째로 올 2014년에는 첫 번째 주제인 성경 말씀에 역점을 두고 신앙생활을 하자고 하십니다. 교구장님께서는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로마 10,17) 라고 하신 사도 바오로의 말씀을 기치로 매일 성경 읽기와 성경 공부를 강조하십니다. 매일 미사에서 읽게 되는 독서들을 미사 전에 읽고 묵상하며 미사를 준비하고, 성모 마리아처럼 마음에 간직하여 삶으로 실천하자고 하십니다.

저는 이러한 교구장님의 사목목표를 따라 “생명의 말씀을 읽고 실천하며 ‘새로운 시대, 새로운 복음화’를 이루는 친교 공동체”를 올 한 해 주임사제의 교구장 사목목표 세부시행 계획으로 삼고자 합니다. 그리하여 예비 신자 교리를 비롯한 각종 교육에서, 구역 반모임에서, 신자들의 사도적 활동에서 말씀을 기초의 삶의 원동력으로 삼아 살아갑시다. 말씀으로 우리 삶 가운데로 깊숙이 다가오시는 주님을 모시고, 말씀을 통해 생명의 빛으로 우리 삶을 비춰주시는 주님의 인도를 받아, 주님의 길을 걷기로 합시다.

우리들 각자가 자신의 삶 속에서 말씀을 지속적으로 묵상하고 실천하면서 말씀의 힘이 자신을 변화시켜 주님의 사도가 되게 해주십사 청합시다. 기도와 묵상을 통해 주님의 영을 통해 힘과 용기를 얻어, 그 힘으로 활동하면서 우리가 머무는 가정과 직장, 본당과 지역사회 가운데 하늘나라를 이루어 나갑시다. 주님께서 내려주시는 은총과 사랑이 우리를 휘감아, 주님을 따르는 신앙생활이 우리 삶의 참 기쁨이 되고 본당 공동체의 친교와 지역사회 복음화를 위해 헌신하시는 주님의 사도가 되기를 성모님께 의탁하며 기대합니다.

세부시행계획의 구체적인 방안으로, 예비신자들은 ‘함께하는 여정’으로 성경 말씀을 중심으로 한 교리교육을 받고, 세례를 받은 후 ‘여정 첫걸음’과 이어지는 후속 성경 프로그램인 ‘가톨릭 성서 모임’과 ‘성서 40주간’, ‘성경 백주간’ 등으로 성경 말씀을 바탕으로 한 신앙생활의 기초를 다지고, 단체 모임에서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나누며 사도적 활동의 원동력을 얻고, 구역반모임에서 ‘말씀 나누기’를 하면서 말씀과 함께하는 신앙생활을 맛들여가고, 공동체 관점에서 바라본 성경공부 프로그램인 ‘성서 못자리’로 견진교리와 깊이 있는 신앙을 심화시킵시다.

우리 매일의 신앙 생활 속에 우리 삶에 빛을 비춰주시고 삶의 힘을 북돋아 주시는 주님의 말씀을 우리 삶의 기준과 바탕과 목표로 삼아 다가오는 2014년 한 해를 살아나감으로써 “생명의 말씀을 읽고 실천하며 ‘새로운 시대, 새로운 복음화’를 이루는 삼성동 성당 친교 공동체”를 이루어 나가기로 합시다.



2013년 대림절에

천주교 서울대교구 삼성동 성가정 성당

주임사제 심흥보 신부





대림 제2주일

2013년 주임사제의 교구장 사목목표 세부시행 계획

신앙의 해를 맞아 ‘새로운 시대, 새로운 복음화’를 이루는 친교 공동체

(다해) 12/12/09

1. 새로운 시대, 새로운 복음화

교황 베네딕토 16세께서는 2012년 10월 11일부터 2013년 11월 24일까지를 “‘우리 믿음의 영도자이시며 완성자이신’(히브 12,2)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신앙의 길로 나아갑시다.” 라고 하시며 신앙의 해를 선포하셨습니다. 그에 따라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대주교님께서는 신앙의 해를 맞아 ‘새로운 시대, 새로운 복음화’를 2013년도 사목목표로 삼으셨습니다. 저는 신앙의 해를 맞아 ‘새로운 시대, 새로운 복음화’를 이루는 친교 공동체를 내년 교구장 사목목표의 세부시행 계획으로 삼고 싶습니다.

2. 새로운 시대를 맞아 실현해야할 복음화

복음화란 사람들이 자신들의 삶 속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자기 삶에서 솟구치는 갈망과 갈등을 주님 안에서 찾고 그 응답을 사는 일입니다. 이를 교회 문헌에서 찾아보면, “복음의 힘으로 인류를 내부로부터 변화시켜 새롭게 하는 것”이며, “교회가 복음화한다는 말은, 교회가 자신이 선포하는 메시지의 거룩한 힘을 통하여 모든 개인과 집단의 양심, 그들의 활동, 그들의 삶과 구체적인 환경을 변화시키고자 노력하는 것”입니다(18항). 그러기에 단순히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에게 그리스도를 선포하고, 설교하고, 교리를 가르치고, 세례성사와 다른 성사들을 베푸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모든 본질적 요소를 고려”하여(17항), “인간의 모든 차원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단순히 지리적으로 더 넓거나 더 많은 사람에게 복음을 선포하는 것만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과 구원 계획에 상반되는 인간의 판단 기준, 가치관, 관심 사항, 사고방식, 영감의 원천, 생활양식 등에 복음의 힘으로 영향을 미쳐 그것들을 변화시키고 바로잡는 것이기도 합니다.”(19항) 그러기에 현실 문화의 바탕 위에 하늘나라를 세우고자 하며, 하늘나라를 향해 오늘의 한계를 이겨나가고자 합니다(20항 참조). 이렇게 복음화는 전통 문화 정신의 계승 및 복음의 토착화 과정을 거쳐 이루어집니다.

3. 교회의 복음화 사명 실천

교회가 주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라 수행해야 할 첫 번째 사명은 선교와 복음화를 통한 교회 공동체 건설입니다. 우리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서 사랑으로 세상을 창조하셨고, 그 사랑의 힘으로 세상이 구원되리라고 믿고, 교회를 통해 그 사랑을 전하고 교회 공동체를 건설합니다. 교회는 복음을 전하면서 동시에 자신이 전하는 복음에 따라 스스로 복음화 됨으로써 교회 공동체를 새롭게 복음화합니다.

두 번째로 교회가 할 일은 사도양성과 내적 친교입니다. 교회는 성령의 인도로 지상에서 그리스도 예수님을 대리할 성직자와 가난과 정결과 순명의 복음삼덕을 살아감으로써 교회의 빛과 기둥이 되는 수도자 그리고 세상에 살면서도 세상의 처세방법에 따라 살지 않고 세상 한 가운데에서 성령의 힘을 받아 그리스도 예수님의 말씀과 교회의 가르침을 실현할 평신도 그리스도인을 양성합니다. 아울러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아버지, 아버지께서 제 안에 계시고 제가 아버지 안에 있듯이, 그들도 우리 안에 있게 해 주십시오.”(요한 17,21)라고 기도하셨듯이, 주님과 평신도, 수도자, 성직자가 친교로 일치하고자 합니다.

세 번째로 교회는 이웃을 사랑합니다. 교회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강도 만난 사람을 도와준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루카 10,33-35)에서 세 번째 소명의 예를 발견합니다. 성령의 인도로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영적?물적으로 어려운 이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함께하는 일이 우리 교회가 채워야 할 세 번째 소명입니다.

4. 교구장 사목목표인 신앙의 해를 맞은 ‘새로운 시대, 새로운 복음화’를 이루는 친교 공동체

우리는 신앙의 해를 맞아 교구장님께서 정해주신 다섯 가지 표어를 통해 친교 공동체를 이루고자 합니다.

첫째, 말씀으로 시작되는 신앙

우리에게 생명을 주는 주님의 말씀을 새기고 일상에서 실현하며 구원의 나라로 나아갑시다. 구역, 반모임과 레지오 및 단체에서 정기적으로 복음 말씀을 나누고 마음에 새기고 형제?자매들과 함께 실현하여 스스로 거룩해지며, 공동체와 지역사회를 복음화시키고 성화될 수 있도록 말씀을 살아나갑시다. 늘 매일의 미사 복음에 나오는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담고 그 말씀에서 나오는 힘으로 하루를 살아갑시다.

둘째. 기도로 자라나는 신앙

주님과의 친교를 통해 내적 기쁨과 평화를 얻고 현실에서 겪는 여러 가지 난관을 이겨낼 수 있도록 힘을 청하고, 주님께서 늘 함께하셔서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 주님 안에서 주님의 뜻대로 주님의 힘으로 열매 맺어주시길 기도합시다. 한 시간 기도하면 서너 시간으로 갚아주시고, 우리가 청하는 것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주시며, 함께 기도함으로써 우리 모두가 하나될 수 있다는 기도체험과 신앙의 확신이 우리 신앙의 기초가 되도록 합시다. 매일 정기적으로 정해진 장소에서 정해진 시간에 기도하며 주님과의 친교를 다지고, 묵주기도와 십자가의 길 및 성무일도를 바치며 주님과 가까워지며, 예비신자 선교와 쉬는 교우를 위한 묵주의 고리기도 등 본당 공동체의 친교와 지역사회 복음화를 위해 기도합시다.

셋째, 교회 가르침으로 다져지는 신앙

꿈과 행동을 비롯한 우리 삶의 가치와 양식의 기준을 교회의 가르침으로 삼아, 스스로 신앙인답게 살아가며 세상 한 가운데서 그리스도인의 거룩함과 정의로움을 드러낼 수 있도록 교회의 가르침을 다져갑시다. ‘가톨릭 교리서’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및 ‘교회 가르침’을 잘 새기고 따릅시다.

넷째, 미사로 하나되는 신앙

미사를 봉헌하며 우리 삶의 양식과 은총을 받고, 주님과 함께 주님의 힘으로 살아가며, 또 다시 미사를 봉헌하며 하느님의 은총에 감사드리며 자신의 삶의 방향과 양식을 점검하고 바로잡아 새로 나고 다시 성체성사의 힘으로 주님과 하나되고 주님의 뜻을 내 삶의 길이요 진리로 삼아 살아갑시다.

다섯째, 사랑으로 열매 맺는 신앙

주님의 말씀을 따르면 따를수록, 기도하면 할수록, 교회의 가르침을 새기면 새길수록, 미사를 봉헌하면 할수록 우리는 우리 마음속에서 주님께서 내려주시는 기쁨과 은총을 경험하게 되고 그에 따른 뜨거운 감정이 우리를 이웃 사랑으로 초대하고 이끕니다. 하느님 사랑의 현실적인 열매로 이루어지는 이웃사랑을 교회 공동체와 지역 사회 안에서 완성해 나가도록 합시다.

이제 ‘소공동체들로 이루어진 본당 공동체(공동체들의 친교)’ 교회를 지향하는 우리 본당의 사목협의회 각 분과와 소공동체 및 단체 그리고 초등부와 중고등부 청소년, 청년, 어르신을 비롯한 신자 각 개인이 주임사제의 교구장 사목목표 세부시행계획에 따라 구체적인 실천계획을 세워 실현하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새로운 시대, 새로운 복음화를 이루는 친교 공동체를 건설하기 위해 헌신하시는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 그리고 여러분과 함께하는 모든 분들에게 주님의 풍성한 은총과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특별히 교회의 미래를 짊어지고 갈 어린이, 청소년, 청년들을 향한 우리의 사목적 열정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신 삼위일체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결실을 맺길 성모님께 전구를 청하며 기도합니다.



2012년 대림절에

천주교 서울대교구 삼성동 성가정 성당

주임사제 심흥보 신부





대림 제2주일

2012년 주임사제의 교구장 사목목표 세부시행 계획

‘새로운 시대, 새로운 복음화’를 이루는 친교 공동체

(나해) 마르 1,1-8; 11/12/04

1. 주님이 주시는 영원한 생명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요한 3,16). 하느님의 외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우리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돌아가심으로써 부활하셔서 우리의 주님이 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려고 하십니다. 우리는 성경과 성전(성경을 쓴 교회의 전승과 정신)을 통해 예수님을 알게 되고, 기도 중에 주님과 주님의 나라를 깨닫고, 믿으며, 실천합니다(요한 17,3 참조). 이러한 과정이 ‘복음화’이며, 새로운 생명 곧 주님께서 주시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입니다.

2. 주님과 주님의 교회인 우리

주님께서는 부활, 승천하시면서, 교회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명하셨습니다(마태 28,18-20). 주님께서는 교회를 박해하는 사울에게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사도 9,4)고 물으실 정도로 우리 교회를 주님과 동일시 하셨습니다. 우리 교회는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를 간직하고 있지만, 교회를 이루는 우리는 진리이신 주님의 사랑으로 회개하고 변화되어야 할 연약하고 부족한 죄인들입니다. 그런데도 주님께서는 주님의 나라를 이루시고자 우리를 부르십니다(마태 28,20). 그래서 우리는 성령께서 우리를 이끌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3. 교회 공동체의 본질과 사명인 복음화

복음화란 사람들이 자신들의 삶 속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자기 삶에서 솟구치는 갈망과 갈등을 주님 안에서 찾고 그 응답을 사는 일입니다. 이를 교회 문헌에서 찾아보면, “복음의 힘으로 인류를 내부로부터 변화시켜 새롭게 하는 것”이며, “교회가 복음화한다는 말은, 교회가 자신이 선포하는 메시지의 거룩한 힘을 통하여 모든 개인과 집단의 양심, 그들의 활동, 그들의 삶과 구체적인 환경을 변화시키고자 노력하는 것”입니다(18항). 그러기에 단순히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에게 그리스도를 선포하고, 설교하고, 교리를 가르치고, 세례성사와 다른 성사들을 베푸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모든 본질적 요소를 고려”하여(17항), “인간의 모든 차원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단순히 지리적으로 더 넓거나 더 많은 사람에게 복음을 선포하는 것만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과 구원 계획에 상반되는 인간의 판단 기준, 가치관, 관심 사항, 사고방식, 영감의 원천, 생활양식 등에 복음의 힘으로 영향을 미쳐 그것들을 변화시키고 바로잡는 것이기도 합니다.”(19항) 그러기에 현실 문화의 바탕 위에 하늘 나라를 세우고자 하며, 하늘 나라를 향해 오늘의 한계를 이겨나가고자 합니다(20항 참조). 이렇게 복음화는 전통 문화 정신의 계승 및 복음의 토착화 과정을 거쳐 이루어집니다.

4. 교구장 사목목표인 새로운 시대, 새로운 복음화

서울대교구장님께서는 변화하는 우리 삶의 새로운 조건과 새로운 환경에 맞추어, ‘새로운 열의, 새로운 방법, 새로운 표현’으로 새로운 복음화를 이루자고 하셨습니다. 복음화는 “선진 국가나 민족들의 교회 공동체 자체의 구조를 먼저 개선하여 그리스도화 하는 일”(평신도 그리스도인 34항)이며, “교회는 복음 선포자이지만 먼저 교회 자신을 복음화해야”(현대의 복음선교 15항) 한다던 2011년 사목교서 말씀을 다시 강조하셨습니다.

교구장님께서는 새로운 복음화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바탕과 기원을 두고 있기 때문에, 공의회 개막 50주년을 맞이하는 올해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을 되새기며, 복음화가 ‘온 인류를 위하여 일치와 희망과 구원의 가장 튼튼한 싹’(교회헌장 9항)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하십니다.

5. 새로운 복음화의 실현

우리 한국 교회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친교 교회론을 바탕으로 1993년 소공동체 사목을 시작하였습니다. 소공동체 사목 20여년을 바라보는 오늘 우리가 마주치는 교회 내의 새롭게 변화된 환경은 개인주의와 활동주의입니다. 소공동체에 참여하여 복음을 읽고 자신의 구체적이고 진솔한 마음을 나누기보다는 연령과 취향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활동하는 것을 더 즐깁니다. 아울러 자신을 내적으로 변화시키는 자신과의 영적투쟁보다는 외적으로 봉사하면서 자신을 승화하고자 합니다.

선행과 자선은 좋은 것이지만 그것만으로는 복음화를 충족시키지 못합니다. 복음화는 가난한 마음으로 복음을 받아들여 주님의 사랑을 느끼고 내적으로 회개하고 변화되는 새로운 삶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주님의 제자로서 현실 세상의 악과 싸우며 갈등 속에서 식별하고 투신하며 진통을 겪게 됩니다. 이러한 영적투쟁을 통해 복음의 사도가 되어 공동체 건설과 아울러 십자가의 길을 통해 복음화의 열매를 맺어 나갑니다.

6. ‘새로운 시대, 새로운 복음화’를 이루는 친교 공동체

1) 새로운 열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과 열정이 우리 마음과 공동체 안에 샘솟아야 하겠습니다. 우리 신앙생활과 활동의 원천은 주님께 대한 갈망과 그 갈망을 채워주시는 주님 사랑에 감화되어, 우리 안에서 샘솟게 되는 복음의 길에 대한 열정입니다.

2) 새로운 방법

복음을 받아들임으로써 회개와 내적인 변화를 가져오듯이, 지금까지 우리 공동체에서 해 오던 모든 모임과 행사를 단순히 되풀이하기보다, 더 복음적이고 가톨릭 교회적으로 심화시켜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모임과 행사가 그리스도의 복음에 근거하고 복음 말씀을 구현하도록 함으로써, 그리스도께서 친히 오시도록 초대합시다. 그래서 모임과 행사에 참여한 우리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체험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실 수 있도록 기획하고 실현합시다.

3) 새로운 표현

이제는 단순히 인간적으로 편안하고 즐거운 성당이 아니라, 복음과 십자가의 길에서 얻는 그리스도의 평화와 기쁨을 말해야 하겠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마태 11,28-30)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안식을 누리기 위해 주님의 말씀인 복음과 주님의 백성인 교회의 멍에를 기꺼이 짊어집시다.

복음에 비추어 예수님께서는 우리 삶과 활동에서 마주치는 사건과 상황을 ‘왜’ 겪게 하시고, ‘무엇’을 말씀하시며, ‘어떻게’ 하기를 바라시는지 재삼재사 묵상하고 식별하여 우리 삶으로 담대하게 표현하기로 합시다.

이제 본당 사목협의회 각 분과와 소공동체 및 단체가 주임사제의 교구장 사목목표 세부시행계획에 따라 전통 문화 정신의 계승 및 복음의 토착화를 통한 복음화의 구체적인 실천계획을 세워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새로운 시대, 새로운 복음화를 향해 헌신하시는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 그리고 여러분과 함께 일하는 모든 분들에게 주님의 풍성한 은총과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2011년 대림절에

천주교 서울대교구 삼성동 성가정 성당 주임사제 심흥보 신부



대림 제2주일

(나해) 마르 1,1-8; 05/12/04

교회 전례력으로 2005년 가해 한 해를 보내고 2006년 나해를 시작한지 벌써 2주일째입니다.

지난 1년간 우리가 살면서 하느님께 감사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주님께 무엇을 받았고, 또 무엇을 되돌려 드릴 수 있을지도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사연이 있습니다. 그것이 꼭 부정적인 의미의 과거가 아니다 하더라도, 각 가정의 가훈이 다르듯이 서로의 탄생과 성장 배경이 다르고 지난 세월 동안 주고받으면서 영향을 끼치고 받아오던 서로 다른 환경과 문화가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서로가 오랜 세월을 걸쳐 삶을 공유하기도 하고 좋은 것은 물론이고 좋지 않은 것도 서로 주고받으면서 살아왔습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지난 세계평화의 날에 “평화를 원하거든 서로를 존중하십시오.”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의 장점과 단점을 다 알면서도 단점을 비난하지만 말고 피해가면서도 장점을 인정하고 존중해 주며 한 걸을 더 나아가 각자의 마음속에 숨겨진 미래에의 가능성을 개발시켜 주라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그래야만 평화롭게 살 수 있다고 말입니다.

과연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평화는 정말 간절한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주간 동안 다른 곳에서 외국인들과 마주하면서 떨어져 살다가 한 주일에 한 번 주님을 보시고 또 형제들과 만나 서로 우정을 나누고 서로를 격려하면서 또 한 주간을 준비하는 교회는 우리에게 평화의 친정집이요, 어머니 아버지의 집입니다.

진정 하느님의 집인 교회는 우리 평화의 집입니다.

정말 일 주일에 한 번 성당에 오면 마음이 편하고, 기쁘며, 말씀과 성찬을 얻어먹고 우리 한 주간의 양식을 얻어가는 곳입니다.

지난 화요일 판공성사를 시작하는 날 아침부터 눈이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첫눈이 내리는 것을 바라보면서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마치 주님께서 포근하게 성탄을 준비시켜 주시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정말 올 성탄은 우리 신자들의 가정과 신자들의 일터와 우리 신자들과 함께하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 성당 신자들끼리 모인 교회 내에 평화를 내려 주시기를 빌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 신자들의 마음 속 깊이 다가오셔서 평화를 안겨주시기를, 정말 편안히 살게 해주시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과연 서로 사랑하고 좋아하는 사이가 아니라, 서로 다르게 생각하고,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지고, 서로 다른 행동방식을 가진 사람들끼리 심지어는 껄끄럽고 마찰까지 빚어 서로 감정의 골까지 가진 사람들끼리 어떻게 하면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

피하지도 않고, 겉으로만 친한 척 위선을 부리지도 않으면서도 서로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사도 바오로는 에페소인들에게 보낸 편지 2장 14절에서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몸으로 유다인과 이민족을 하나로 만드시고 이 둘을 가르는 장벽인 적개심을 허무셨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마음속에 그리스도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고, 주님께서 주시는 평화를 형제들에 대한 적개심과 경계심으로 깨뜨리지 않고 형제들과 나누면서 평화를 누리리면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 봅시다.

오늘 대림 제2주일 인권주일을 맞아, 이 번 성탄에 다가오시는 아기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 각자를 정말 편안하게 살게 해 주시기를 청합니다.

그리고 동시에 나를 사랑함으로써 너를 존중하고 서로 함께 다 같이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실천하면서 평화의 왕이신 아기 예수님께서 우리들이 모여 함께 사는 가운데 태어나시도록 노력합시다.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3)



대림 제2주일

(가해) 마태 3,1-12; 04/12/05

지난 대림 제1주일 특별강론에서 서울 가톨릭 대학교 윤리신학 교수인 이동익 신부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80~90년대 성당에 많은 사람들이 들어와 천주교 신자는 늘어났는데, 회심하지 않은 채 들어왔기 때문에 오히려 교회를 세속적으로 오염시킨 부정적인 면도 있었다. 그래서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게 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속화된 교회가 세상의 지탄을 받기도 했다.”

그렇다면 천주교에 들어오기 위해 해야 하는 회심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자기가 지금까지 세속에 살면서 가져왔던 가치관과 생각들과 행동방식을 버리고, 그리스도의 가치관과 그리스도교적인 행동방식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 세례자 요한은 유다 광야에 나타나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다가왔다!”(마태 3,2)하고 선포한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요르단 강으로 요한을 찾아가서 “자기 죄를 고백하며 세례를 받았다.”(6) 그러나 요한은 바리사이파나 사두가이파 사람들이 회개는 하지 않고, 세례를 받으러 오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독사의 족속들아! 닥쳐올 그 징벌을 피하라고 누가 일러 주더냐? 너희는 회개했다는 증거를 행실로써 보여라.”(7-8)

성서의 예언자들이 한결같이 외치는 말씀 중에 빠지지 않고 단골메뉴처럼 등장하는 내용은 “회개하라!”는 요구이다. 굳이 예언자들의 말을 빌지 않는다 하더라도 대림 시간에 판공성사를 준비하면서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서 양심성찰을 할 때마다 부끄러울 뿐만 아니라 난처하기 이를 데가 없다. 그리고 우리는 이 회개의 요구를 들을 때마다 참으로 부담스럽다.

우리 마음속에서 지난 한 해를 되돌아볼라치면, ‘그 때 내가 최소한 이 정도는 해 줬어야 하는데…’ ‘이렇게 해 주었어야 하는데 못해준 것이 지금 생각해도 마음이 아프다.’ ‘적어도 내가 자식으로서, 배우자로서, 부모로서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것이었는데…’ 하는 아쉬움과 자책감이 나를 괴롭힌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되돌아보자. 우리가 고의나 악의를 가지고 범한 죄악이 아닌 다음에야 우리가 더 잘하지 못해서 뉘우치는 우리의 마음을 주님께서 탓하시겠는가. 오히려 위로해 주지 않으시겠는가.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해서, 내가 생각은 했어도 행동에 옮길만한 조건과 기회가 되지 않고 또 내가 부족해서 못한 사실을, 그것도 오늘 그것을 하지 못했기에 뉘우치는 우리를 주님께서는 대견하게 여기시지 않으시겠는가.

오히려 그런 좋은 방향과 의도를 우리에게 심어주셔서 오늘 반성까지 하게 해주시고 새 삶의 방향을 일러주시는 주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우리가 다 못하고, 다 채우지 못한 부분을 채워주시지 않으시겠는가. 그리고 주님께서 이미 채워주셨고 또 주님의 방식대로 받아주셨기에 우리가 오늘 이렇게 무사히 넘어왔고 또 살아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지금까지 우리를 돌보아주시고 우리 대신 채워주셨던 주님의 사랑에 감사드리며 우리는 이제부터 회개의 발걸음을 시작하자.

지난 우리의 과거를 발판삼아 주님을 향한 새로운 발걸음을 시작하자.

먼저 진정 주님의 뜻이 무엇이고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를 주님의 말씀과 교회의 가르침 안에서 정확히 찾고,

지금 우리가 우리의 지난 과거를 되돌아보면서 뉘우치는 죄악을 다시 범하지 않도록,

그리고 우리가 부끄러워하며 아쉬워하는 미진하고 부족했던 부분을 주님께서 채워주시고 이끌어주시도록 청하자.

그리고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 때문에 상처받고 손해 보는 이들은 물론이요, 우리의 무지로 인해 지나쳐온 어려운 사람들에게 주님께서 몸소 은총을 베풀어주시도록 청하자.

우리 각자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면서 한 가지씩이라도 우리가 주님의 뜻 안에서 실현할 수 있는 것을 정해 시도함으로써 다가오시는 아기 예수께 우리 회개의 행실을 선물로 드리도록 하자.



대림 제2주일

(다해) 루가 3, 1-6; 2003/12/07

어느 부모치고 자기가 자식을 낳을 때 단점 투성이의 아이가 탄생하기를 바라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나 자신도 태어나면서 모자란 점을 가지고 태어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는 완전하지 못하고 어딘가 모자라고 부족한 점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우리는 부족한 인간입니다. 우리가 완전하지 않다는 것은 우리도 잘 압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가 부족하다고 마음대로 살 것인가? 아니면, 남의 부족함을 핑계삼아 남을 비난하거나, 자기의 부족함을 내세워 자기의 의무와 자기에게 주어진 자기 계발을 게을리 할까? 아니면 부족하면서도 부족한 것이 없는 완전한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 자기의 약점을 감추려 하고 그대신 남을 지배하려는 열등감 아래에서 헤맬 것인가?

우리가 부족하게 태어난 것은 우리의 바램도 아니고 우리 부모의 죄나 실수도 아니다. 그렇다면 무엇인가? 하느님께서 우리를 그렇게 만드신 것이다. 그렇다면 하느님께서는 왜 우리를 불완전하게 만드셨을까? 그분이 우리를 불완전하게 만드신 것은 그리고 불완전한 우리들이 한데 모여 함께 살도록 하신 것은 무엇인가? 부족한 우리에게 서로의 약점을 잡아 짓밟고 악착같이 싸워 이겨 남을 지배하고 살라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분은 우리가 믿는 하느님이 아니시다. 오히려 하느님께서는 부족한 우리가 서로의 잘못과 허물을 덮어주고 부족한 부분을 서로 채워주며 더불어 살기를 바랄 것이며 우리가 하다가 하다가 정 안되면 하느님께서 몸소 도와주시려고 하실 것이다.

오늘 세례자 요한은 구세주를 기다리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회개하고 세례를 받아라. 그러면 죄를 용서받을 것이다."(3절)라고 외친다. 회개는 주님께 되돌아가는 것을 말한다. 그러자면 주님께서 처음 우리를 세상에 내 보내실 때 우리에게 맡겨주신 사명을 지키고 이루면서 주님께 나아가야 하겠다.

한 번 생각해 보자 오늘 이 시대에 우리가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 회개하여할 것은 무엇인가?

과연 오늘 우리의 생을 우리는 우리에게 주는 하느님의 선물로 받아들이고 있는가 아니면 짐으로 받아들이고 있는가?

우리의 이웃이 우리에게 주신 하느님의 선물인가 짐인가?

하느님은 우리 각자에게 우리의 생을 선물로 주셨는데 우리는 짐으로 삼고 있지 않는지?

하느님은 우리 각자에게 이웃을 선물로 주셨는데 우리는 짐으로 삼아 피하고 조종하고 제거하려고 하지 않는지?

내가 부모와 자식과 형제 자매로서 마땅히 내가 해야만 하는 것인데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이 세상에 와서 우리와 같이 살기 위해 아기로 오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우리가 이 대림절에 주님께 드릴 수 있는 선물은 무엇일까?

주님께서 원하시는 선물과 준비는 바로 그리스도 예수님을 그리워하는 마음이다.

주님을 모시고 싶어하고

주님을 그리워하고

주님과 같아지기를 갈망하고

주님의 말씀을 실행하고 싶어서 안달하는 마음을 주님께서 바라신다.

그러기에 내가 살기 위해 네가 내 말을 들어주어야만 하고 네가 내 대신 죽어주어야만 한다는 인간 본능의 요구가 아니라, 내가 너와 함께 같이 살기 위해 나를 희생하고 너를 존중하며 너에게 맞추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말아야겠다.

안되면 안 될수록 주님께 기도하고 매달리면서 주님을 기다려야겠다.

그것만이 우리가 주님께 드릴 수 있는 선물이며 준비다.

주님, 저에게 주님의 커다란 사랑을 부어주시어, 주님을 더욱 더 사랑하게 해 주시고, 제 가족과 이웃들을 용서하고 아끼며 돌볼 수 있는 능력도 아울러 베풀어주소서. 아멘.



대림 제2주일

(나해) 마르 1, 1-8; 2002/12/08

벌써 대림2주일이다. 대림시기는 주님께서 오시는 것을 기다리는 시기다. 성탄이 12월 24일로 정해진 교회력 안에서 실제로 대림은 이제 겨우 2주정도 밖에 남지 않았다. 그런데 성탄이 진정 우리에게 기쁜 소식인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성탄이 우리에게 무엇을 주기에 우리는 성탄을 기다리는가? 그렇다면 어린아이가 산타 클로즈에게 자기가 원하는 선물을 바라듯이 예수님께 간절히 무엇인가를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 사람에게 성탄은 특별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무엇을 기다리건 기다리지 않건 성탄은 다가온다.

주님이 오신다는 것이 우리에게 기쁜 소식일 수도 있고 나쁜 소식일 수도 있다. 반그리스도교인들에게만 나쁜 소식이 아니다. 단순히 행사나 예절로서의 성탄절이 아니라 진정 주님께서 이 시대에 여기 살고 있는 우리에게 나타나신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주님의 오심을 피부로 느낄 정도로 좀 더 심각하게 말하면, 종말에 대한 비유일 수 있다. 즉 두 주 후에 지구의 종말이 온다면 그 소식이 기쁜 소식인가 슬픈 소식인가 하는 문제다. 또 왜 기쁜 소식이며, 정작 오실 때까지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가도 심각한 문제다.

주님을 믿고 주님의 말씀을 지키며 주님께서 오셔서 하늘나라를 완성해 주시길 간절히 기다리던 이들에게는 참으로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지만, 그렇지 않은 이에게는 그리 기쁘지 않을 것이다. 주님을 갈망하는 이들에게는 종말이 설레임과 희망의 소리이지만, 그렇지 않은 이에게는 불안과 공포의 순간이다.

구약에서부터 야훼의 날로 불려진 주님의 날은 구원과 심판이라는 이 두 가지의 상반된 의미를 다 가지고 있다. 오늘 첫 번째 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희망의 기쁜 소식으로 선포한다. "예루살렘 시민에게 다정스레 일러라. 이제 복역 기간이 끝났다고, 그만하면 벌을 받을 만큼 받았다고, 주님의 손에서 죄벌을 곱절이나 받았다고 외쳐라."(40, 2) 그런가하면 두 번째 독서에서 베드로 사도는 심판을 언급한다. "주님의 날은 도둑처럼 갑자기 올 것입니다. 모든 것이 다 파괴될 것이니 여러분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해 보십시오."(3, 10ㄱ. 11ㄱ) 그러면서도 주님께서는 인자하시니 어서 빨리 회개하라고 촉구한다. "어떤 이들은 주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미루신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은 여러분을 위해서 참고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회개하게 되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거룩하고 경건한 생활을 하면서… 티와 흠이 없이 살면서 하느님과 화목하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십시오."(3, 9. 11ㄴ. 14ㄴ)



대림 제2주일

21회 인권주일 담화 - 생명의 시초부터 인권은 존중받아야 합니다

2002/12/08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올해는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님의 축일에 제21회 인권주일을 맞이했습니다. 교회는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된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존중하고 보호하는 데 앞장서 왔습니다.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마태 25, 40). 하신 주님의 가르침에 따라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에 대한 우선적인 선택을 언제나 강조하고 실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권위주의 시대에 공권력의 온갖 인권 침해에 시달려 왔으나, 민주화의 회복에 따라 국민의 기본권 보장도 개선되어 왔습니다. 과거의 군사 정권에서 저질러진 의문사의 진상이 일부 밝혀지고 국가인권위원회의 출범 등 인권 보장을 위한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하여 활동하고 있는 것이 그 보기입니다. 그렇지만 아직도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차별, 인신매매, 낙태, 성폭행, 환경 파괴와 교통 법규를 비롯한 기본 질서를 무시한 각종의 사고 등 크고 작은 인명 피해와 인권 침해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고 속죄하지 아니했을 뿐 아니라 이기주의를 버리지 못한 데서 오는 것입니다.

민주국가에서 국가의 가장 중요한 책무가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데 있음을 다시 환기하면서 다음 세 가지 사항에 대하여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째는 가톨릭 병원노조의 파업과 관련된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운영하는 병원의 노조가 부당한 장기파업을 하는 서글픈 현상은 가톨릭 교회의 전통적인 가르침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처럼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병원과 노조의 문제이지 교회와 노동자의 대립은 아닙니다. 지금까지 교회는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희생을 감수해 왔습니다. 이러한 교회의 일관된 노력은 60년대 이후 한국사회가 높이 평가하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노사 관계는 갈등과 대립의 구조가 아니라 "자본은 노동없이 있을 수 없고, 노동은 자본없이 있을 수 없다."는 레오 13세 교황의 가르침대로 상호 협조 관계를 유지하여야 하고, 근로자가 자기의 권리를 보호해야 할 경우에도 폭력의 사용은 삼가야 하는 것입니다. 근로자의 단체행동권은 보장되어야 하나 그것은 "정당한 파업"이 갖추어야 할 조건을 구비한 단체행동에 국한되는 것입니다. 집단적 이기주의를 앞세워 환자를 볼모로 한 부당한 주장은 어느 경우에도 근로자의 권리행사로 받아들일 수는 없습니다.

둘째는 아직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은 태아의 인권에 대한 것입니다. 특히 낙태의 끊임없는 증가와 이에 대한 공권력의 묵인이라는 충격적이고도 비극적인 현실은 인권에 대한 여러 고결한 선언들이 실제로는 비참하게 거부되고 있다는 증거이고, 이 사회가 인권의 증진과 보호를 최우선 목표와 자랑으로 내세우면서도 그러한 비극이 끊이지 않고 있다는 현실은 커다란 모순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인간의 초기 생명에 대한 공격은 낙태만이 아닙니다. 오늘날 이른바 생명과학의 일부 분야에서 주장하고, 정부가 법 제정까지 추진하고 있는 인간 배아의 생산과 이용은 그야말로 반생명적이고 반인권적이라고 고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온전한 인간 생명으로서 보호받고 존중되어야 할 인간 배아를 죽이는 행위를 의료 발전을 위한 숭고한 행위로 포장하려는 시도는 즉시 중단되어야 합니다.

셋째 12월 19일 실시되는 대통령 선거에 관하여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교회는 결코 정치 공동체와 혼동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나라는 남북의 분단으로 고통을 겪으면서도 갖가지 부정과 비리로 얼룩지고, 지역 갈등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서글픈 모습을 띠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모두 "정의가 없으면 평화도 없고, 용서가 없으면 정의도 없다." 하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올 평화의 날 담화를 깊이 새기면서 정치 질서를 바로 잡고 공동선을 찾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이 번 대선에서 우리는 모두 지역 감정이나 사사로운 정을 버리고 진정으로 국민을 위한 지도자를 신중하게 선택하여야 하겠습니다.

우리 한국 교회의 수호자이신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님의 도우심에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맡겨 드리면서, 여러분 모두에게 주님의 평화가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

2002년 12월 8일 제21회 인권주일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최 영 수 주교



대림 제2주일

제20회 인권주일 담화문 - 사형제도, 그것은 또 하나의 살인행위입니다

01/12/09

1.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는 1999년 제18회 인권주일과 2000년 대희년을 준비하면서 사형제도 폐지 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 인간 존엄성을 침해하는 사형으로부터 인간생명을 회복하고, 죽음의 문화를 생명의 문화로 바꾸자는 취지에서 이 운동은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사회는 흉악한 범죄와 비인간적인 삶의 형태들이 도처에 산재해 있기 때문에, 이러한 현상들을 없애기 위해서는 사형제도가 이 시대에 필수 불가결한 하나의 제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형제도가 이러한 현상들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이 될 수 없으며, 어떠한 이유에서도 사형은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2.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대로 하느님에 의해 창조되었습니다(창세 1,26-27). 이것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인간의 존엄성과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임을 말하여 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존엄성을 지닌 인간생명의 기원과 목적은 인간 스스로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창조하신 하느님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생명을 어떠한 인간적 이유나 제도를 통해서 빼앗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인간은 끊임없는 윤리적 선의 추구와 완성을 향한 회개와 보속의 삶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과 용서의 체험 그리고 친교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구원에로 불리운 존재이며, 하느님으로부터 선사된 미래로 나아가는 존재입니다. 사형제도는 바로 이러한 인간의 존엄성을 말살하는 것이기에 마땅히 폐지되어야 합니다.

3. 일반적으로 형벌의 의미는 첫째, 범죄에 대한 응보와 보복이며, 둘째, 범죄의 예방, 셋째, 범죄의 억제, 넷째, 범죄자의 개선입니다. 그러나 사형제도는 이러한 형벌의 의미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응보의 필수성을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사고는 인간을 일종의 무책임한 형식주의로 이끌게 되고, 이러한 형식주의는 모든 인간애와 인간을 무시해 버리게 됩니다. 그러나 법 없는 삶이 불가능한 것처럼 관용없는 삶 또한 불가능합니다. 치안을 위해 무자비함과 응보의 의미 안에서만 정의를 실천하려고 하는 국가는 인간을 위한 삶의 공간을 스스로 파괴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형은 범죄의 예방이나 억제를 도와주지 못합니다. 지금까지 인류가 집행해 온 사형횟수에 형벌이론을 적용시켜보면 범죄 발생률이 줄어들어야 하고 나아가서는 사형이 국가통치에 합당한 것이었다면 범죄는 사라져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범죄는 더 흉악해지고 범죄 발생률은 증가 일로에 있습니다.

4. 범죄자의 개선은 사형에 의해 죽은 죄수에게서는 기대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형벌이론대로라면 사형은 형벌이 아니며 국가 공권력에 의해서 저질러지는 또 하나의 살인이며 인간의 심리 속에 내재한 보복본능을 법이라는 미명(美名) 하에 시행하는 제도적인 살인인 것입니다.

사실 현대 국가의 형벌의 의미는 보복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미래 지향적인 사회의 질서보존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범죄가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고 공공생활에 대한 부정적인 영향력을 가능한 제거하기 위한 것이며 사람들에게 평화스럽고 안전한 공동생활을 가능하게 하려는 목적을 위해 형벌이 집행된다고 할 수 있기에 처벌보다는 개선에 더 중점을 두어야 하는 것입니다.

많은 경우에 정부가 사형제도를 폐지하지 못하는 이유로 내세우는 내용은 우리의 문화수준이나 사회 현실이 어느 정도 발전되고 안정되어야 사형을 폐지할 수 있다는 것이고, 또 국민의 법감정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보복으로서의 사형을 인정하고 있는 한, 국민의 법감정이라는 것이 결국 자신 안에 있는 보복의 감정과 동일한 것이기 때문에 절대로 사형의 폐지를 인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5. 법은 이성의 표현이지 감정의 발로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따라서 국가가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것이 오히려 문화수준을 퇴보시키고 사회현실에 더 악영향을 주는 것은 아닐지 심사숙고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인간의 행위로서만 보는 범죄는 결코 최종적이라거나 돌이킬 수 없는 것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기에 인간은 그가 살아있는 한 회개하고 새롭게 시작할 수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범죄자에 맞서 보복하고 복수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진 인간 역시 바로 그 멀어진 곳에서도 하느님으로부터 사랑 받고 돌아오라는 부름을 듣고 있는 피조물이며, 이 피조물 위에 하느님만이 홀로 심판할 권리를 가졌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6. 그리스도인들은 보복과 응징, 형벌과 처벌이 아니라 화해와 용서와 사랑을 통하여 범죄자들에게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그것은 범죄자 또한 하느님이 주신 인간의 존엄성을 지닌 우리의 형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사형제도의 폐지를 통해 죽음의 문화를 거부하고 새로운 생명존중의 문화를 만들어 나가야 하겠습니다.

2001년 12월 9일 제20회 인권주일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최영수 주교



대림 제2주일 인권주일 메시지 - 소외된 이웃의 인권 존중으로 신앙을 증거하자

(01/12/09)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된 인간 생명의 존엄성과 가치는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신성한 것입니다.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루가 10,27)는 사랑의 계명은 자신의 인권에 못지 않게 이웃의 인권도 존중해야 한다는 명령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면서까지 제몫만을 챙기려는 사람들로 말미암아 참으로 혼란스럽습니다.

지난 9월, 뉴욕의 국제무역센터 건물에 대한 테러에 이어 탄저균의 유포와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폭격과 전쟁은 무고한 인명을 앗아가는 참혹한 현실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테러가 정당화될 수 없지만 보복전쟁 역시 정당화될 수 없음은 생명의 존엄성에 비추어 자명합니다. 그리고 국내적으로는 공권력 개입에 의한 인권침해는 줄었다고 하지만, 인명경시의 풍조는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살인, 강도, 성폭력 또는 낙태의 자행, 그리고 인간배아복제 등은 모두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것입니다. 마약거래가 늘어나고 교통질서 등 기본질서를 무시하여 일어난 각종 사고로 남의 신체와 생명에 피해를 주는 것도 중대한 인권침해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공동체의 구성원입니다. 사람의 권리에는 다른 사람의 권리를 인정하고 존중해야 할 의무가 따르는 것입니다.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기 위하여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남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고 응분의 책임을 면치 못할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 곳곳에서 자신의 권리만을 주장하고 상대편에 대한 의무나 책임을 망각하고 있는 현상은 참으로 개탄할 일입니다.

가난한 사람, 장애인, 외국인 노동자 등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최소한도의 생존마저 보장받지 못하고 소외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공동선을 실현하고 공동체를 건전하게 가꾸기 위해서는 "서로 사랑하시오. 내가 여러분을 사랑한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사랑하시오"(요한 13,34)라는 주님의 계명에 따라 우리 신앙을 증거함으로써 이 땅에서 소외된 모든 이들의 인권이 보장되도록 해야 합니다.

국가는 국민의 기본권을 최대한 보장하고 모든 사람이 사람다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확고하게 마련해야 합니다. 개인이나 단체는 자신의 권리만을 앞세우지 말고 상대편의 권리도 함께 존중하는 풍토를 조성해야 합니다. 국가와 국민이 다 같이 공동체의 질서를 바로잡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이들을 위한 사랑을 실천할 때에 진정으로 인권을 존중하는 국가를 건설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사형제도는 단순히 형벌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국가권력에 의한 또 하나의 살인인 까닭에 하루 빨리 폐지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민족이 화해하고 하나 되는 그 날이, 또한 북한 동포의 고통이 덜어지고 이들의 인권이 보장되는 그 날이 앞당겨질 수 있도록 기도하고 희생을 바칩시다. 그리스도의 사랑과 자비가 여러분 모두와 함께하기를 기원합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대림 제2주일

(다해) 2000/12/10

제19회 인권주일 담화문 - 인간을 존중하는 공동체 질서를 마련합시다

1. 새 천년의 첫 인권주일을 맞는 우리는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을 다시 한 번 마음속 깊이 새기면서 이를 어떻게 지키고 가꾸어 나가야 할 것인지 헤아려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인간이 하느님의 모습대로 창조되었음을 믿습니다(창세 1, 26). 그러므로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을 존중하는 것은 곧 하느님께 대한 경외와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며,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마태 19, 19)는 주님의 계명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2.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는 화해와 은총의 2000년 대희년을 지내면서, 교회가 오히려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을 해친 적이 있었음을 고백하셨습니다. 한국교회도 '2000년 대희년 주교회의 담화문'을 통해 그 동안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의 실현을 위해, 특히 가난하고 소외받는 이들의 인권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 못했음을 반성한 바 있습니다.

이에 하느님 백성인 우리 모두는,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사랑하신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 스스로 '가난한 교회'의 모습을 지녀야 할 것입니다. 교회가 먼저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인 선택'('백주년' 11항)에 힘쓸 때 국가와 사회에 대하여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배려할 것을 요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3.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경제적, 사회적으로 소외된 이들이 많습니다. 요즘 더욱 심각해지고 있는 빈곤층, 실업자, 행려자, 노숙자, 결손가정 아동들의 문제는 단지 경제적 관점에서만이 아니라 인간의 생존과 존엄의 보장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할 것입니다. 국가, 사회, 교회의 모든 공동체가 힘을 합쳐 이러한 소외된 이웃의 인권에 한층 더 관심을 쏟아야 할 때입니다. 모든 구성원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보장받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인간공동체는 참된 존재의의를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4. 인간 존엄성의 핵심은 인간을 어떤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데에 있습니다. 특히 인간의 생명은 그 어떤 목적을 위해서도 인위적으로 박탈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범죄예방이라는 명분 하에 아직도 시행되고 있는 사형제도는 하루 빨리 폐지되어야 합니다. 오늘날 사형제도가 범죄예방에 효과가 있다는 것이 단지 추상적인 가정에 불과하고, 그 실제적인 영향은 전혀 미지수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합니다. 가족계획이라는 명분 하에 자행되고 있는 낙태 또한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관념을 마비시키는 중대한 행위입니다. 낙태를 사실상 허용하고 있는 '모자보건법'의 폐지를 강력히 촉구합니다. SOFA, 곧 '주한미군의 지위에 관한 한미행정협정'도, 불평등한 국제적 조약이라는 문제점을 떠나, 국가이익이라는 목적을 위해 일방적으로 개인의 희생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인권보장의 측면에서 근본적으로 검토되어야 합니다. 특히 군사시설과 군사행동 때문에 생활의 터전을 잃는 등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이 더 이상 소외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5. 우리는 과학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오늘날 오히려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이 더욱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인간 생활의 모든 것을 과학기술이 지배하고, 심지어 인체의 유전자 지도가 일부 완성되어 인간복제의 가능성마저 주장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인간 생명과 인간성은 어떤 것으로도 완전히 지배될 수 없는 마지막 신비로운 영역이라는 것이 인간 존엄성의 핵심입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도 최근 '평신도들의 대희년' 행사에서 유전학의 발전과 경제향상으로 제기되는 사회문제에 교회가 적극적으로 개입할 것을 촉구하셨습니다.

과학기술이 발전할수록, 그리하여 인체의 과학적, 생물학적 내용이 밝혀질수록 오히려 인간 생명과 인간성의 신비로움은 더욱 커져가고 있습니다. 창조주이신 하느님께 대한 흠숭과 사랑은 곧 인간의 신비에 대한 존중이라고 할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의 모든 것을 과학기술로써 지배하고자 하는 인간복제 등 인체실험은 창조질서와 인간 존엄성을 정면으로 유린하는 것으로 절대적으로 막아내야 할 행위입니다.

6. 인간이 자신의 자유로운 인격과 존엄성을 구현할 수 있도록 해주는 가장 중요한 틀은 정의로운 사회질서입니다('자유의 자각' 32항). 인간 존엄성과 인권의 보장은 인간 생명과 인간성의 신비로움에 대한 경외심을 바탕으로 국가, 사회, 교회가 함께 인간 중심의 공동체 질서를 마련할 때 비로소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새 천년을 살면서 현재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위기를 극복하고자 힘과 지혜를 한데 모으는 이때 우리 모두는 가장 먼저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을 생각해야 합니다. 인간 공동체는 그 어떤 것도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2000년 12월 10일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대림 제2주일

(나해) 99/12/05

제18회 인권주일 담화문(요약)

사형제도 폐지로 생명의 문화를 가꿉시다

하느님의 모상대로 하느님에 의해서 창조된 인간(창세 1,26-27)은 그분의 피조물 중 가장 존귀한 존재로서 그 생명 또한 존엄합니다. 따라서 창조주가 아닌 어느 누구도 인간의 생명을 박탈할 수는 없습니다. 사형제도는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죽음의 문화'입니다.

1948년 세계 인권선언에서 생명권 존중에 대한 입장을 천명한 데 이어 '유엔 인권규약'과 1989년 유엔총회에서 채택한 '사형폐지를 목적으로 한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조약'의 제2선택 의정서는 인권규약상의 생명권 개념에 사형폐지를 포함시키게 되었습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1995년 3월 25일에 발표한 회칙 [생명의 복음]은 "사회적 측면에서 보아 사형은 일종의 '정당방위'라고 하는 경우에조차도 사형제도에 대한 공적인 반대가 커지고 있다는 징후가 있다"(27항)고 지적하고 "범죄자를 사형에 처하는 극단까지 가서는 안 된다"(56항)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또한 유엔주재 교황대사 레나토 마르티노 대주교의 성명을 통해 "생명권은 양도할 수 없는 인간의 권리이기 때문에 유엔 결의안은 인간 존엄성과 생명의 신성함을 확고히 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전제하고 "범죄에는 효과적인 처벌이 뒤따라야 하지만 처벌의 목적은 올바른 시민을 만드는 교화에 있다"면서 "아무리 잔악한 범죄자라도 새로운 삶의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정의평화위원회는 우리 나라도 사형제도를 폐지할 것을 국민과 정부에 호소하는 바입니다.

1999년 12월5일 제18회 인권주일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박석희 주교




제18회 인권주일 담화문

오직 하느님만이 생명의 주인, 사형제도 폐지로 생명의 문화를 가꿉시다.


1. 하느님의 모상대로 하느님에 의해서 창조된 인간(창세 1,26-27)은 그분의 피조물 중 가장 존귀한 존재 로서 그 생명 또한 존엄합니다. 따라서 창조주가 아닌 어느 누구도 인간의 생명을 박탈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국가 또는 어떤‘권위’에 의해서 사형제도가 존속해 온 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는‘죽음의 문화’임에 틀림없습니다.

2. 18세기까지 사형은 극형인 동시에 핵심적 형벌이었으며. 19세기 전반기부터 본격화되기 시작한 각국의 형사입법은 사형을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만 허용하게 되었습니다. 19세기 서양에서 사형의 제한시대를 열었다면, 20세기 후반에는 사형폐지의 방향으로 진전돼 왔으며, 1997년 현재 법률상 또는 사실상 사형폐지 국가는 모두 98개국입니다.

1948년 세계 인권선언에서 생면권 존중에 대한 입장을 천명한데 이어‘유엔 인권규약’에서는 “모든 인간은 천부의 생명권을 가지며. 이 권리는 함부로 박탈당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사형 존치국이라 할지라도 사형은 가장 극악한 범죄에 한해서만 선고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규약은 또한 사형폐지가 바람직하다고 강력히 주장하면서 일반적인 사형폐지를 지지하고, 사형폐지를 향한 모든 조치가 생명권의 향유라는 점에서 진보로 간주된다고 천명했습니다.

1980년대 이후 유엔과 국제사면위원회 등 여러 기구와 단체들이 사형을 폐지하거나 최소한 사형집행의 중지를 달성하기 위해 각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1989년 유엔총회에서 채택한‘사형제도 폐지를 목적으로 한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조약’의 제2선택 의정서는 인권규약상의 생명권 개념에 사형폐지를 당연히 포함하기에 이르렀습니다.

3. 사형폐지를 향한 가톨릭 교회의 입장은 분명합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1995년 3월 25일에 발표한 회칙「생명의 복음」은“사회적 측면에서 보아 사형은 일종의‘정당방위’라고 하는 경우에조차도 사형제도에 대한 공적인 반대가 커지고 있다는 징후가 있다”(제27항)고 지적하고 “범죄자를 사형에 처하는 극단까지 가서는 안 된다”(제56항)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회칙 내용은 1997년에 완간된(라틴어판) 세계 표준 교리서인 ‘가톨릭교회 교리서’(제2267항)에도 그대로 적용해서 모든 신자들이 이 정신을 살고 있고, 같은 행 제30차 세계평화의 날 담화(5항)에서 교황은“악행을 저지른 자들이라 하더라도 어떠한 형벌이든 범죄자들의 양도할 수 없는 존엄성을 말살할 수는 결코 없다."면서 "회개와 갱생의 모든 기회가 언제나 열려있어야 한다"고 천명했습니다.

4. 새로운 천년기의 시작을 앞두고 가톨릭 교회에서는‘2000년 대희년 한해만이라도 사형집행을 중지하자’는 취지에서 서명운동을 전개해 유엔에 청원했고, 마침내 1999년 유엔총회는 사형제도 반대를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습니다. 교황청은 성명(유엔주재 교황대사 레나토 마르티노 대주교, 1999.11.2)을 통해“생명권은 양도할 수 없는 인간의 권리이기 때문에 유엔 결의안은 인간 존엄성과 생명의 신성함을 확고히 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전제하고“범죄에는 효과적인 처벌이 뒤따라야 하지만 처벌의 목적은 올바른 시민을 만드는 교화에 있다“면서 아무리 잔악한 범죄자라도 새로운 삶의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5. 세계가 이렇듯 사형폐지 쪽으로 기우는데도 아시아 일부 국가와 미주지역 일부에서는 부정적인 면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1996년 한 해동안 무려 4,367명의 사형수에게 형을 집행한 나라가 있는가 하면,사형이 언도된 범죄의 종류 또한 68가지나 되고, 탈세와 도박, 중혼, 주택침입 강도, 가짜 영수증 발행, 호랑이 밀렵, 소도둑, 낙타도둑 따위도 사형에 처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극형이 아닌 다른 형벌로도 다스릴 수 있는 범죄인데도 최후의 수단까지 동원하는 것은 명백한 인권유린입니다.

미국의 경우 1976년 이후 1998년까지 486건의 사형선고 가운데 평균 7건중 1건이 무죄로 입증됐으며(유에스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 1998.11.15), 일리노이주의 경우 20건의 사형선고 가운데 9명이 나중에 무죄로 판명되었습니다. 잘못된 판결의 희생자는 대개 소수민족이고, 경제적 능력이 없어 유능한 변호사를 구하지 못해 죄인이 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오판으로 인한 사형선고와 집행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잘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많은 자료들은 사형이 무기형보다 더 큰 범죄억제 효과가 나타난다는 증거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 사형을 폐지한 주가 사형을 존치한 주보다 더 낮은 살인사건 비율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형이 사회악의 근원을 영구히 제거할 수 있다고 보는 견해도 불합리합니다. 범행 당시에는‘사회악의 근원’이었지만 영구히 사회악 자체였던 것은 아닙니다. 회심하고 개전의 정을 보이면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사형수들을 우리는 많이 보고 있습니다.

6. 우리 나라도 금년 광복절 특별사면에서 5명의 사형수에 대한 무기징역으로의 감형이 있었으나, 사형제도를 여전히 실시하고 있는 세계 90여 개국 가운데 하나로 남아 있습니다.

사형은 보편적으로 인정된 인간의 생명을 무시하는 행위로서, 가장 잔인하고 비인도적이며 불명예스러운 형벌이란 점을 직시해야 할 것입니다. 사형으로 폭력을 이길 수는 없으며, 이는 보복과 복수를 우선 순위에 놓는 행위일 따름입니다. 그보다는 관용과 용서, 사랑과 정의의 실현으로 범죄자들이 진정한 회개를 통한 생명의 길로 나아가는 데에 도움을 줘야 할 것입니다.

특히 새로운 천 년대를 열어가는 오늘의 시점에서 우리 모두는 발상의 전환을 통해 여러 형태의 반 생명적인 장치나 제도를 과감히 혁파해서 생명존중의 문화를 가꿔나가야 할 것입니다.

이에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는 오늘 금세기 마지막 인권주일을 기해 우리 나라도 사형제도를 폐지할 것을 국민과 정부에 호소하는 바입니다.

1999년 12월5일 제18회 인권주일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박석희 주교



대림 제2주일

(가해) 복음 나누기 7단계 소개 98/12/06

복음 나누기 7단계를 시작하기 전에 사회자(모임을 하고 있는 집주인)가 원하는 성가를 부르고, 성호를 긋습니다.

그리고 이 복음 나누기 7단계는 마치 '기도모임'처럼, 미사 중 '말씀전례'처럼 침묵 중에 진행합니다. 그래서 적어도 6단계 전까지는 기도 속에서 주님께 집중하여 모임이 진행되도록 해주십시오.

1단계는 주님을 초대하는 시기입니다. 그래서 이 때는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 오시기를 청하는 기도를 합니다. "단 두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겠다."(마태 18,20)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주님께서 우리 구역, 반모임에 오시도록 기도합니다.

2단계는 주님의 말씀을 읽는(듣는) 시간입니다. 이 단계에서는 눈으로 주님의 말씀을 보고, 입으로 읽으며, 귀로 듣습니다. 가능한 한 모든 참석자들이 능동적으로 참여하기 위해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한 절씩 성서 본문을 읽습니다.

3단계는 주님의 말씀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고, 지금의 처지에 놓여있는 내 마음을 두드리는 주님의 말씀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마치 숨겨져 있는 보물을 쳐들 듯이, 자기 가슴을 울린 말씀을 외칩니다.

4단계는 침묵 속에서 자기 마음에 울려온 말씀에 좀 더 머무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그 말씀이 지금의 자신의 처지에 대해 뭐라고 말씀하시고, 어떻게 하도록 이끄시는 지를 자세히 듣고 되새깁니다.

5단계는 자신에게 들려온 주님의 말씀이 자기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뜻이었는지를 서로 나누는 시간입니다. 이러한 나눔 속에서 서로는 서로의 삶속에 함께하시는 주님의 움직이심을 느끼고, 또 다른 한편 식별도 합니다.

6단계는 구역, 반장이 진행합니다. 먼저 5단계에서 나눔한 것 중에 궁금한 것이나, 교정해줄 것이나, 위로해줄 것이 있었으면 질문과 권유를 통해 서로를 도와줍니다. 그래서 서로가 서로에게 들려온 주님의 말씀을 '생명의 말씀'(생활의 말씀) 삼아, 실현가능한 구체적이고도 좋은 실천약속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합니다. 그리고 다 함께 해야 할 내용이 있으면 공동의 실천약속으로 정해서 추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구역, 반 공동체와 교회 공동체에 필요한 안건이나 건의사항 등을 나누고, 다음 모임 시간과 장소를 정합니다.

7단계는 함께해주신 주님께 감사드리고, 모임을 하고 있는 가정을 위한 기도와 주님의 기도를 바칩니다.

끝으로 구역, 반장님이 구역, 반원과 함께 사는 모든 이들을 위해 '파견 강복을 비는 기도'를 바칩니다.

이렇게 매주 여성 반모임과 격주 남성모임을 그리고 한 달에 한번 가정모임을 바치면서 하늘나라를 만들어 갑시다.



대림 제2주일

97/12/07


제16회 인권주일 담화 -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하느님 모습대로 지어진 인간은 "우리 가운데 계시는 하느님의 완전한 반영"인 까닭에 사 람은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사람답게 살아갈 권리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우리는 완전한 인권을 누리지 못한 채 총체적인 부패의 사슬에서 허덕이고 있습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이익과 권력을 손에 넣으려는 끝없는 욕망으로 빚어진 '죄의 구조'가 사회 구석구석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어서 법과 정의가 땅에 떨어지고 도덕과 질서가 문란해져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은 인간답게 살기가 어렵고 부자와 권력을 지닌 사람들은 정신적 빈곤이 더욱 깊어 가는 것이 오늘 우리의 현실입니다.

국민 각자가 모두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자기 품위에 맞게 윤리 도덕의 기반 위에서 자유 를 행사할 수 있을 때 진정한 민주주의가 꽃필 수 있고, 또한 참된 민주 사회는 그 구성원 들을 이러한 민주적 역량이 있는 인간으로 성장시켜 주는 사회입니다. 그러므로 민주주의가 만능이 아니며, 정의와 윤리에 어긋나는 부도덕한 정책 결정을 할 수는 없습니다. "사회로부 터 요청되는 정의와 윤리의 기준에 따라 이루어지지 않고, 그 요구를 내세우는 집단들의 선거 영향력과 재정 능력에 의해서 결정된다면" 진정한 민주주의는 이룩될 수 없습니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법치국가에서만 존재할 수 있으며 올바른 인간관의 기초 위에 성립한다." 는 점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인물은 공동선을 증진시키고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이 라고 봅니다.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그들은 사람들 사이에 참된 관계를 맺도록 노력합니다.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은 긴장을 없애고 다양한 환경 속에서 일어 나는 갈등을 해소해 줍니다. 선거열풍이 온 나라를 휩쓸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그늘진 곳, 춥고 배고픈 이웃이 인간다운 삶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는 점에 우리는 마음을 써야 합 니다.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신음하는 이들, 특히 인권의 동토에서 정신은 물론 육체적으로 죽어가고 있는 북한의 형제 자매들을 기억하고 우리가 형제적인 사랑을 실천하도록 해야 합니다. 이렇게 우리가 다 함께 평화를 위하여 일하고 새로운 덩치문화를 꽃피우면 우리는 2000년 대희년을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E-mail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