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4주일

(나해) 마르 6,1-6; 06/07/09

찬미 예수님!

안녕하십니까?

한 번 옆 사람의 얼굴을 바라보십시오.

아는 분이십니까? 아니면, 잘 모르는 분이십니까?

우리같이 작은 공동체에서는 미사에 참석하면 대부분 옆 사람을 다 압니다.

그가 어디서 왔고,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고 있는지 대부분 다 압니다.

혹 과거를 모르는 사람도 있지만, 적어도 내가 그를 보아온 이래부터 지금까지 무엇을 해 왔는지는 어느 정도 압니다. 그래서 어떤 때 그가 무슨 소리를 하면, 그의 평소 언행이 일치하지 않은 사람이었다면 ‘너나 잘 하세요’하는 마음이 들기도 하고, 그가 평소 언행을 조심하고 일치시키기 위해 노력했고 많은 봉사로 주위 사람들을 도와주었으면 그의 말마디에 수긍이 가고 동감합니다.

만일 우리 옆 사람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를 따르라’하셨던 것처럼, 나와 함께 내가 하자는 대로 하자면서 마치 동업이라도 할 듯이 나를 자기 인생에 초대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와 마음을 합쳐 좋은 일을 하겠습니까? 아니면 ‘아유 방해나 말지’하시겠습니까?

우리는 보이는 대로만 봅니다. 아니 그가 우리에게 보여준 만큼, 그리고 우리에게 보인 만큼 그 보인 대로 그를 안다고 여기고 그를 평가합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을 보아왔다고 자처하는 동네사람들이 예수님께서 기적을 행하시고 좋은 말씀을 하시자 이런 반응을 보입니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을까? 저런 지혜를 어디서 받았을까? 그의 손에서 저런 기적들이 일어나다니! 저 사람은 목수로서 마리아의 아들이며, 야고보, 요셉, 유다, 시몬과 형제간이 아닌가? 그의 누이들도 우리와 함께 여기에 살고 있지 않은가?’ 그러면서 그들은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다.”(2-3)

그들은 예수님의 어린 모습을 기억하면서 자신들이 보아온 예수님이 자신들이 보아온 그 모습과 다르기에 이상하게 여기고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예수님에게서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모습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들을 가르치고 지도할 스승이라는 것은 이해할 수도 없었고 받아들일 수도 없었습니다. 내가 아는 너는 이러 이러한 단점을 지닌 한 인간에 불과하다는 것 그 이상을 그들은 바라보지도 못했고 인정할 수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어제까지도 우리 동네의 한 아기에 불과했고, 내 아이와 함께 지내던 철부지 그 젊은이에 불과하기 때문에, 내가 아는 너는 내가 아는 너 이상의 존재가 될 수 없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상대는 변했지만 자기 인식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사람은 변하는데 사람의 인식은 고착되니 말입니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더군다나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것이 그들에게는 천부당만부당한 사건이었습니다.

우리는 상대를 다 안다고 하지만, 실제로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시기와 질투를 던진 예수님의 동네 사람들처럼 예수님의 내면과 진면목은 모릅니다.

우리 옆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떤 마음을 품고 자라왔는지,

어떤 마음을 품고 무엇을 어떻게 하다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지,

지금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 잘 모릅니다.

그런가 하면, 나를 바라보는 옆 사람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도 더 더욱 잘 모르는 것은 우리 안에서 활동하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서 어떻게 활동하시는지?

과거 우리가 잊고 싶고 씻어버리고 싶은 사건을 왜 내가 겪도록 만드셨는지?

그리고 그 사건을 통해 우리를 어디로 어떻게 이끄셨는지,

그리고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이 자리와 이 사람들을 통해 주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깨닫게 하시려는지,

과연 다음 단계는 또 무엇이기에 나를 지금 이렇게 준비시키고 계시는지 잘 모릅니다.

우리의 어릴 때 꿈은 무엇이었습니까?

그 꿈이 지금 얼마만큼 이루어졌습니까?

그리고 그 꿈이 자라면서 어떻게 수정되고 변화되었습니까?

그 꿈이 그냥 한 낱 지나가는 꿈처럼 어린 시절 누구나 가질 수 있었던 단순한 소망과 바람이 아니라, 그 꿈이 주님께서 우리 마음속에 심어주신 꿈이었다면 그 꿈을 우리가 어떻게 가꾸고 있는지 되새겨 봅시다.

우리가 지니고 가꾸었던 그 꿈을 오늘 내 인생의 현실 속에서 어떻게 실현시킬 수 있을지!

아무도 인정하지 않고 받아들이지도 않을 듯한 이 현실 세상 속에서 주님께서 내 영혼에 심어주신 사명을 어떻게 실현시킬 수 있는지.

다시 한 번 꿈 많던 어린시절로 되돌아갈 수는 없지만, 이제 어른이 되어 내 꿈을 꿈으로만 그치지 않고 현실화 시킬 수 있는 내 인생의 책임질 수 있는 자리에서 다시금 아니 이젠 진정으로 주님께서 내게 심어주신 고귀한 이상과 사명을 실현해 보기로 합시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내가 도전해 볼 수 있는 만큼이 얼마 만큼이고, 어떤 방법으로, 어느 방향으로, 어떤 의미에서 이룰 수 있을 것인지?

그리고 동시에 옆에 있는 형제 자매들의 마음속에 감추어져 있어서 우리에게 보이지는 않지만, 예수님께서 그 영혼 속에 심어주신 고귀한 이상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기도하고 배려하며 존중해 주기로 합시다. 함께할 수 있는 것이라면 함께 하면서 말입니다.

여러분에게 심어주신 하느님의 고귀한 이상이 꼭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E-mail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