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3주일 - 제49회 평신도 주일

- 자비의 실천으로 인내하며 생명을 얻읍시다(루카 21,19)

(다해) 루카 21,5-19; 16/11/20

교우 여러분, 연중 마지막 전 주일인 오늘은 제49회 평신도 주일입니다.

평신도 주일은 특별히 우리가 주님께로부터 받은 고유한 소명과 사명을 되새기며 그에 합당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서로를 격려하고 기도하는 날입니다.

1. 하느님의 백성인 평신도들은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고백하고 그리스도께서 선포하신 복음, 곧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선포할 책임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참으로 사랑이심을 널리 알리고, 우리의 말과 행동으로 그 증인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 신자들의 사명입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 헌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평신도들은 세속 안에서, 곧 각각의 온갖 세상 직무와 일 가운데에서 …… 일상의 가정 생활과 사회 상황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거기에서 하느님께 부르심을 받아, 자기의 고유한 임무를 수행하며 복음 정신을 실천하고 누룩처럼 내부로부터 세상의 성화에 이바지하며, 또 그렇게 하여 무엇보다도 자기 삶의 증거로써 믿음과 바람과 사랑으로 빛을 밝혀 다른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분명하게 보여 준다”(31항).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평신도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고유한 삶의 자리가 복음을 선포해야 할 곳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 평신도들은 하느님 백성인 교회의 일원으로서 교회 안에서 다양한 활동을 통해 교회의 성장과 발전에 협력하고 봉사해야 합니다. 또한 세상 속에서도 평신도 사도직을 적극적으로 수행해야 합니다. 세상은 우리가 몸담고 살아가는 자리일 뿐 아니라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가꾸고 변화시켜야 할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2. 사도 바오로는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자신이 보여준 모범을 본받도록 요청하십니다. “우리 스스로 여러분에게 모범을 보여 여러분이 본받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2테살 3,9) 그분은 사도로서의 권리를 내세우기보다는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밤낮으로 일하였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어 무질서하게 살아가면서 일은 하지 않고 남의 일에 참견만 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십니다. 그러면서 “묵묵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벌어먹도록 하십시오”(2테살 3,12).라고 권고하십니다. 일은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자기 몫만 챙기려 하거나, 또 쓸데없이 남의 일에 참견해서 불화와 마찰을 일으키거나, 뒷담화로 상처를 주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성실히 살아가야 합니다. 사도 바오로의 삶을 본받을 뿐 아니라 사도 바오로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본이 되어야겠습니다.

3. 한국천주교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는 지난해부터 ‘답게 살겠습니다’ 운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이 운동은 우리 평신도들이 저마다의 삶의 자리에서 하느님의 뜻에 일치하여 생각과 말과 행동을 바로 하자는 운동입니다.

‘답게 살겠습니다’ 운동을 통하여 먼저 우리 모두가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된 소중한 존재임을 깨달아야겠습니다. 하느님의 사랑받는 존재로서 우리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사랑해야겠습니다. 나아가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그 사랑으로 서로를 사랑해야겠습니다. ‘답게 살겠습니다’ 운동은 “빛의 자녀답게”(에페 5,8)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소명과 사명에 따라 살아가려는 의식 계몽 운동이자 실천 운동입니다. 이 운동은 거창하거나 특별하지 않습니다. 가정에서는 부부답게, 부모답게, 자녀답게 서로 믿고 이해하고 용서하며 살아가자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는 신앙인답게 친교와 나눔과 섬김의 삶을 살며, 일터에서는 저마다 맡은 직무를 정직하고 성실히 수행해 나가자는 것입니다. 이런 우리의 삶이 사회에 누룩과 소금이 되고, 주변을 환히 밝히는 빛이 되어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 것입니다.

4. 교우 여러분, 우리는 올해 ‘병인년 순교 150주년’과 ‘자비의 특별 희년’을 지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지난 2014년 방한 때 평신도 지도자들과의 만남에서 “신앙의 풍요로움은 사회적 신분이나 문화를 가리지 않고 우리 형제자매들과 이루는 구체적인 연대로 드러난다.”고 하시면서 “자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니 ‘인간 성장’을 위해 더 노력해 달라”고 권고하셨습니다. 우리 신앙선조들은 신분에 상관없이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한 존재로 여겼습니다. 하느님의 모상이기에, 하느님의 자녀이기에 교우들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도 그리 대하였습니다.

한 해 동안 ‘병인년 순교 150주년’과 ‘자비의 특별 희년’을 잘 살아온 우리는 앞으로도 항구하게 하느님의 자비로운 사랑을 전하고 실천하는 주님의 도구가 되어야겠습니다. 나날의 삶 속에서 그리스도인 ‘답게’ 살아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파하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겠습니다. 이것이 신앙선조들의 순교 정신을 면면히 이어가는 길이고, 이 땅에 복음화의 꽃을 피우는 길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이렇게 격려하십니다.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루카 21,19). 아멘.

2016년 11월 13일

한국천주교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




연중 제33주일 - 제48회 평신도 주일

- 빛의 자녀답게 살아가십시오(에페 5,8)

(나해) 마르 13,24-32; 15/11/15


교형 자매 여러분, 오늘은 제48회 평신도 주일입니다. 평신도 주일은 가정을 꾸리며 세속 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평신도 그리스도인으로서 지닌 소명과 사명을 되새기고 그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도록 서로 격려하고 함께 기도하는 주일입니다.

1. 연중 제33주일인 오늘 미사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사람의 아들이 다시 올 그 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곧 우리에게 항상 깨어 있으라고 당부하시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깨어 있어야 합니다. 작년 교황님께서는 아시아 청년들에게 “잠들어 있는 사람은 기뻐하거나 춤추거나 환호할 수 없다”고 말씀하시면서 “깨어서 비추라”고 권고하셨습니다. 깨어 있다는 것은 단지 눈을 뜨고 있다는 것이 아닙니다. 깨어 있다는 것은 우리의 마음가짐을 바로 하고, 말과 행동을 바로 하여 세상을 비추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깨어있는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바로 하고자 한국평협은 올해 초부터 ‘답게 살겠습니다’ 운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답게 살겠습니다’ 운동은 구호를 외치는 운동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힘써 창조해 주신 내가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를 깨닫는 일부터 시작해서 가정과 이웃, 직장, 교회, 사회에서 만나게 되는 모든 사람을 사랑함으로써 우리 사회 전체가 하느님 보시기에 좋도록 바꿔 나가는 쇄신 운동이자 실천 운동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리스도 신자로서 또 가정과 사회에서 하고 있는 직분과 역할에 맞게 살고자 노력해 나가는 것, 그것이 바로 ‘답게 살겠습니다’ 운동입니다.

2. 빛의 자녀답게 살아가라는 바오로 사도의 권고를 따라 우리는 먼저 평신도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소명과 사명을 되새기고자 합니다.

첫째는 가정입니다. 우리는 가정이 생명과 사랑의 보금자리여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가족 구성원 간의 진실한 대화와 공감, 그리고 배려가 무엇보다 필요할 것입니다. 이와 함께 가족이 함께 기도를 바치고 있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부부 간에는 물론이고 비록 아직 철들지 않은 어린 자녀라 할지라도 그의 말에 귀를 기우려 주는 가족 간의 따뜻한 대화가 요청됩니다. 가정은 또한 가족 간에 깊은 사랑으로 그 가운데 예수님을 모시는 ‘작은 교회’가 될 수 있어야 가득한 평화와 행복의 보금자리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둘째는 교회입니다. 그리스도 신자인 우리는 하느님 백성인 교회를 이루는 지체들입니다. 우리는 머리이신 그리스도에게서 오는 은총의 힘으로 살아갑니다. 그리고 교회는 그 은총의 통로로서 우리가 그리스도 신자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해 줍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교회에 감사해야 할 뿐 아니라 또한 교회의 지체로서 우리가 지닌 재능과 역량을 교회 발전을 위해서도 사용해야 합니다. 나아가 우리는 단지 교회의 지체일 뿐만 아니라 우리자신이 바로 교회라는 분명한 인식을 지녀야 합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처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성령을 모시는 사람답게 거룩하게 살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셋째는 사회입니다. 평신도인 우리는 교회의 일원으로서 교회 안에서 살아가기도 하지만, 우리에게 고유한 삶의 자리는 가정과 사회, 곧 세상입니다. 그래서 50년 전 폐막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평신도의 특성을 ‘세속성’이라는 한 마디로 표현했습니다. 세속성을 특징으로 하는 우리 평신도의 고유한 임무는 “현세의 일을 하고 하느님의 뜻대로 관리함으로써 하느님 나라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속을 멀리하는 것이 아니라 세속 안에서 살면서 마치 누룩처럼 세속을 그 내부로부터 변화시켜야 합니다. 우리가 ‘평신도 그리스도인답게 삶으로써 이 세상에 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빛을 밝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보여줄 수 있을 때 가능해 집니다. 이것이 우리 평신도들이 수행해야 할 사명입니다.

3. 올해는 광복 70주년이자 동시에 분단 70주년의 해입니다. 그동안 남북 양측의 정부와 국제사회가 보여준 것처럼 화해와 평화는 거저 주어지지 않습니다. 과거 독일의 교회가 그랬듯이 우리의 끊임없는 노력, 무엇보다도 기도가 필요합니다. 마침 한국천주교 주교회의는 지난 3월 정기총회를 통해 분단 70주년을 맞이하여 주교회의 차원에서 담화문을 발표하고, 각 교구가 평화를 위한 한국 교회 차원의 기도 운동을 전개하며, 북한의 장충성당의 유지보수를 지원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또한 이러한 결정에 따라 각 본당에서 2015년 6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매일 미사 전에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지향으로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와 “묵주기도 8천만 단(남북 전체 인구수) 바치기”의 일환으로 ‘묵주 기도 1단’을 바치고, 매일 밤 9시에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기원하며 모든 신자들이 주모경을 바치기로 하였습니다.

이 기회에 다시 호소합니다. 모든 신자들이 한 분도 빠짐없이 이 기도에 동참해 주십시오. 기도는 우리 신앙인들이 지닌 가장 큰 힘입니다.

4. 20여일 후면 우리는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선포하신 자비의 특별 희년을 맞게 됩니다. 12월 8일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에 시작해 내년 11월 20일 그리스도왕 대축일에 마치는 자비의 희년은 우리 시대에 가장 절실히 요구되는 자비의 의미와 중요성을 깨닫고 자비를 실천하며 전하는 해입니다. 교황님께서는 올해 초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자비가 많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평신도들이 자비를 실천하고 다양한 사회 환경에 자비를 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그렇습니다. 이 시대야말로 자비를 필요로 하는 시대임을 우리는 직접 체감하며 살고 있습니다. 자비를 실천하고 자비를 전함으로써 험한 세상을 바꾸는 일은 그 누구보다도 세속에 몸담고 살면서 세속을 하느님 뜻에 맞게 바꿔 나가야 하는 사명을 지닌 우리 평신도들의 몫입니다. 그리고 자비를 실천하는 일은 우리가 매일 만나는 사람들, 우리의 동료와 이웃으로 한정되지 않습니다. 자비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우리 “공동의 집”이라고 표현하신 지구 전체, 곧 자연 생태계뿐 아니라 사회 생태계까지 포함하는 통합생태계 전체에 두루 미쳐야 합니다.

하지만 제대로 자비를 실천하고 전하려면 먼저 자비를 체험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더 많이 용서 받은 사람이 더 큰 사랑을 보일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의 자비를 깊이 체험할수록 우리는 자비를 더 잘 실천하며 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이 자비의 희년을 맞아 우리 자신이 먼저 진실한 참회와 화해로 하느님의 자비를 체험하고 그 자비에 힘입어 이웃에게 자비를 실천하고 전하도록 합시다.

우리의 모든 소망과 다짐을 한국 교회의 수호자이며 평화의 어머니이신 성모 마리아께 온전히 맡겨 드립니다.

2015년 11월 15일

한국천주교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



「답게 살겠습니다」 운동을 위한 기도



하느님 아버지,

주님께서 아버지의 자비와 어머니의 사랑으로 저희를 보살펴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지금까지 저희는 하느님보다는 제 자신의 이익과 편안함을 먼저 생각하고

다른 이들을 격려하고 칭찬하기 보다는 비난하고 깎아내리며

어려운 이들을 배려하고 돕기보다는 무관심으로 외면해왔습니다.

이제 당신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빛의 자녀로 살기로 결심하오니

저희에게 새로운 마음을 불어넣어주시고 굳센 정신을 심어주소서.

자애로우신 주님!

청하오니,

저 자신부터 주님의 자녀답게 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삶을 살게 하소서.

가정에서는 부부답게, 부모답게, 자녀답게 서로 이해하고 용서하며 살고

교회에서는 신앙인답게 친교와 나눔, 봉사의 삶을 살게 하시며

일터에서는 직장인답게 자신의 임무를 정직하고 성실히 수행하게 하소서.

사회에서는 공동선을 추구하는 정의와 평화의 도구가 되게 하소서.

그리하여 저희가 당신의 자녀로서 어둠을 비추는 등불이 되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 아멘.

○ 한국교회의 수호자이신 성 요셉과 성모 마리아님,

●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 한국의 모든 순교자님!

●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2015년 6월 5일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 인준




연중 제33주일- 제47회 평신도 주일


- 우리는 자랑스러운 하느님의 백성입니다.

(가해)마태 25,14-30; 14/11/16


+ 찬미예수님!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러분과 여러분 가정에 하느님의 은총이 충만하기를 빕니다. 오늘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에 따라 우리나라에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평협)가 발족되고 “평신도사도직의 날”이 제정된 후 마흔일곱 번째 맞이하는 평신도 주일입니다. 평신도 주일은 평신도들이 교회 안에서 성직자, 수도자들과 더불어 하느님의 사랑받는 백성임을 재확인하면서 각자에게 주어진 성화소명을 다짐하는 참으로 뜻 깊은 날입니다. 이날을 주신 하느님께 영광과 찬미와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는 위대한 신앙 선조를 둔 자랑스러운 평신도들입니다.

올해는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을 성인품에 올리신지 꼭 30년이 되는 해입니다. 이 뜻 깊은 해에 우리는 또다시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모시고 윤지충 바오로와 123위 동료 순교자들의 시복식을 서울 한복판에서 장엄하게 치르는 큰 기쁨을 누렸습니다. 이렇게 두 번씩이나 교황님께서 직접 방문하여 시성식과 시복식을 집전하신 나라는 한국밖에 없습니다. 선교사의 도움 없이 평신도들에 의해 세워진 한국 교회에 하느님께서 내리신 크나큰 축복이라 아니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늘 기억해야 할 한국 교회의 103위 성인 가운데 93위가 평신도이고 124위 새 복자는 주문모 신부님을 빼고 모두 평신도들입니다. 이 위대한 평신도 신앙 선조들의 후손인 우리들에게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과,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애정 어린 깊은 관심을 아낌없이 보여주셨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한국 교회를 평신도들에게서 시작되어 여러 세대에 걸쳐 충실하고 끊임없는 노고로 크게 자라난 매우 비범한 전통의 상속자들이라고 칭송하셨습니다(8월 14일 ‘한국 주교들과 만남’에서). 그리고 한국 평신도 사도직에 대해 언제나 번창하고 시들지 않는 꽃으로 남아 있을 것이라는 축복의 말씀도 해주셨습니다(8월 16일 ‘평신도 사도직 단체와 만남’에서). 교황님과 함께 했던 8월의 행복감과 기쁨은 마치 예수님을 만난 듯, 아직도 우리 마음 안에 가시지 않는 큰 감동으로 남아 있습니다.

우리 한국 교회 평신도들은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사실이 얼마나 행복하고 자랑스러운 일인지를 잊고 산 적이 많았습니다. 그런 우리들에게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5일이 채 안 되는 짧은 만남을 통해 자랑스러운 하느님 백성이 된 행복과 기쁨을 가슴깊이 느끼게 해주었고, 하느님의 크신 은총에 감사해야 함을 가르쳐주었습니다. 이런 행복과 기쁨은 우리 평신도들이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소명을 다할 때 길이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오늘의 말씀은 하느님 백성으로서 평신도들의 소명의식을 잘 일깨워줍니다.

오늘의 제1독서 잠언 말씀에서 우리는 훌륭한 아내이면서 가난한 이에게 손을 펼치고 불쌍한 이에게 손을 내밀어 도와주는 자비로운 여인을 만납니다. 이 여인은 오늘날 가정과 교회 그리고 세상 안에서 헌신하는 평신도 여성 사도직의 표상입니다. 지난 8월 시복식과 평신도들과의 만남에서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평신도 그리스도인 가정의 소중함을 거듭 강조하셨습니다. 그때 교황님은 가정에서 어머니로서, 교사와 스승으로서, 또 교회에 많은 공헌을 해 온 한국 가톨릭 여성 신자들에게 감사를 표하셨습니다. 그만큼 이 시대의 가정 복음화와 평신도 여성 사도직의 소명이 중요하다고 여기신 때문일 것입니다. 지난달에 열린 세계주교시노드 제3차 임시총회와 내년에 열릴 제14차 정기총회의 주제는 ‘가정 사목과 복음화’입니다. 앞으로 가정을 중심으로 한 평신도 사도직, 특히 여성 사도직의 소명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평신도 사도직의 소명이 커질수록 하느님의 백성으로서 공동체 의식 또한 높아져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우리 모두가 “빛의 자녀이며 낮의 자녀”(1데살 5,5)로서 맑은 정신으로 깨어있어야 하고, 또 서로 격려하고 저마다 남이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오늘 제2독서의 말씀은 그에 대한 매우 적절한 가르침입니다.

오늘의 복음 역시 우리의 주인이신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은사가 열매를 맺고 커가도록 우리가 얼마나 열심히 몸을 던져 노력했는지 스스로 묻게 합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일군 결실을 가난한 이웃들과 나누며 키웠는지, 아니면 자신만을 위해 감춰두고 살아왔는지도 오늘의 복음을 통해 성찰해야 할 대목입니다. 우리가 진정한 하느님의 백성이 되려면 신앙심의 외양이나 교회에 대한 사랑의 겉모습 뒤에 숨어서 자기 것만 추구하는 “영적 세속성은 안 된다”(?복음의 기쁨? 93항)고 하신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경고를 늘 마음에 새기고 살아가야 되리라 생각됩니다. ?

한국 사회의 인간 위기 극복에 앞장서는 것은 우리 평신도들의 소명입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사목헌장? 12항은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을 따라’ 창조되었고, 창조주를 알아 사랑할 수 있으며 창조주로부터 세상 만물의 주인공으로 설정되어(창세1,26; 지혜2,23) 만물을 다스리고 이용하며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것이다(집회17,3-10).”라고 가르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된 존재인 모든 사람은 외양이 어떠하든 지극히 거룩하고 우리 사랑과 헌신을 받아 마땅하다(?복음의 기쁨? 274항)고 강조하십니다.

그런데 오늘날 세상 사람들은 이런 가르침과 너무나 거리가 먼 인간 위기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 위기의 원인은 물질적 탐욕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탐욕에서 비롯한 인간 위기 극복을 강조하시며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은행의 투자가 조금 이윤을 잃으면 재난이 일어난 것처럼 합니다. 그러나 만약 사람이 굶어 죽으면, 먹을 것이 없으면, 건강이 좋지 않으면 이것은 상관할 일이 아니라고 합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의 위기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의 증거는 이런 정신 상태에 저항하는 것입니다.”(2013년 5월 18일 성령강림대축일 전야 미사 강론에서) 이러한 교황님의 가르침은 ?복음의 기쁨? 회칙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53항, 198항 참조). 교황님께서 한국 방문 중에도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그리스도인 생활의 필수 요소라고 하시는 말씀을 여러 번 반복하여 강조하셨습니다.

우리는 또한 교황님께서 성모승천대축일 미사 강론 중에 한국 교회의 어머니이신 성모님께 간청하신 기도를 기억합니다. 교황님은 우리가 세례 때 받은 존엄한 자유에 충실하고, 하느님의 계획대로 세상을 변모시키려는 노력을 이끌어주시도록 간청하셨습니다. 한국 교회가 하느님 나라의 누룩으로 더욱 부풀어 오르고,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은 사회 모든 영역에서 정신적 쇄신의 힘이 되어 물질주의 유혹과 이기주의적 무한 경쟁 풍조에 맞서 싸우기를 교황님은 빌었습니다. 새로운 형태의 가난을 만들어 내고 노동자들을 소외시키는 비인간적인 경제 모델들을 거부하며, 하느님과 하느님의 모상을 경시하고 모든 인간의 존엄성을 모독하는 죽음의 문화를 배척하기를 빌었습니다.

이 기도는 인간 위기의 시대를 사는 우리가 하느님의 백성으로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특히 교황님은 한국 평신도들에게 “인간 증진”에 힘쓸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인간 증진이란 바로 인간의 잃어버린 하느님의 모상성 회복입니다. 하느님의 모상성 회복은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오늘날 우리 사회를 짓누르는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일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절망과 좌절 속에서 하느님의 모상성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부끄럽게도 한국의 자살 증가율은 세계 2위이고 OECD 국가 가운데서는 매년 1위라고 합니다. 우리 평신도들이 자랑스러운 하느님의 백성으로 산다는 것은 이런 절망에 빠진 이웃들에게 희망을 줌으로써 잃어버린 하느님의 모상성을 회복시켜 주는 삶입니다. 우리 신앙 선조들은 그런 삶을 살았습니다. 124위 복자에 포함된 천민 출신인 김천애 안드레아와 황일광 시몬 두 분 순교자가 그것을 입증합니다. 황일광 복자는 “나의 신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너무나 젊잖게 대해주니, 천당은 이 세상에 하나 있고, 후세에 하나가 있음이 분명하다.”는 증언을 남겼습니다. 잃었던 하느님의 모상성을 회복한 기쁨의 증언입니다.

이 땅에 인간의 위기가 만연한 이 시대야말로 우리 평신도들이 위대한 신앙 선조들을 본받아 진정한 하느님의 모상성을 회복시키는 삶의 실천에 앞장서야 할 때입니다. 이 실천적 삶은 긴 여정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복음의 기쁨?(49항)에서 선포하신 것처럼, 우리 모두 함께 이 여정에 나서 “이제 출발합시다!” 우리가 하느님의 자랑스러운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확고하게 자각하고 있는 한, 성령께서 이끌어주시는 우리의 발길은 가벼울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방한 이후 우리 교회를 찾는 이들과 마음을 돌려 다시 교회로 돌아오는 냉담자들이 많아졌다고 합니다. 그들이 교회로 돌아오도록 마음을 움직여주신 하느님께 감사하며 우리가 먼저 친절하게 형제자매들을 맞이하면 어떨까요? 고맙습니다.

2014년 11월 16일

한국천주교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



연중 제33주일- 제46회(2013) 평신도 주일 강론자료


- 서로 사랑하며 평화의 길로 나아갑시다

(다해) 루카 19,1-10; 13/11/02




† 찬미예수님!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연중 제33주일인 오늘, 마흔여섯 번째 평신도주일을 맞이할 수 있게 해주신 하느님께 찬미와 영광과 감사를 드리고, 교회 공동체와 함께 기뻐합니다.

1. 평신도와 평신도주일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1965)는 평신도의 역할이 매우 크고, 평신도를 통해서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일깨워줍니다. 공의회가 끝난 지 3년 후 1968년에 ‘한국천주교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가 발족했고, 각 교구별로 ‘평협’이 태어났을 뿐만 아니라, 레지오마리애를 비롯한 여러 단체들이 평신도 사도직 활동을 더욱 왕성하게 벌이기 시작했습니다.

전례력으로 대림시기에 앞서 연중 마지막 주일에 가까워지면서 우리가 듣는 하느님의 말씀은 주로 세상의 종말에 관한 내용들입니다. 조금 전에도 우리는 하느님을 믿고 사는 현실이 비록 고통스럽고 부조리가 만연하다고 하더라도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루카 21, 19)는 복음 말씀을 들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 신자들을 괴롭히는 박해는 정치적 권력자나 나를 반대하는 세력, 또는 일터에서 만나는 누구, 신앙을 거부하는 가족이나 친지로부터 올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의미 없이 고통을 참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어디서나 진리 안에서 하느님을 더욱 더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면서 하느님께로 나아감으로써 마침내 생명을 얻어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2. ‘신앙의 해’를 돌아보며 다시 시작하기

제2차 바티칸공의회 개막 50주년이 된 지난해 10월 11일부터 올해 연중 마지막 주일인 11월 24일 그리스도왕 대축일까지 우리는 ‘신앙의 해’를 살고 있습니다. 이 신앙의 해가 꼭 1주일 후에는 막을 내립니다.

하느님의 은총으로 믿음을 가졌으나 그 바탕이 약해서 작은 돌부리에도 곧 잘 넘어지는 것이 우리의 신앙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한 해 동안 부지런히 말씀을 듣고 이 말씀을 생활에 옮기려고 노력했습니다. 개별적으로 뿐만 아니라 가족이 함께 기도 바치기에 주력해왔습니다. 본당, 또는 공동체별로 ‘가톨릭교회 교리서’를 읽는다든지, 교회의 가르침에 귀 기울이는 한편, 주일 미사는 물론 평일 미사에도 나가려고 노력하면서 신앙선조, 특히 순교자들의 모범을 따르기 위해 성지순례에도 동참해왔습니다. 무엇보다 가톨릭 신자로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세상으로 가져가기 위해 무던히도 애써왔습니다.

물론 미진하고 아쉬움이 많습니다. 그러나 정작 신앙의 해는 이제부터가 시작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습니다, 다시 시작하는 것입니다!

3. 평화를 위한 기도와 형제애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가 신앙인으로 세상 한가운데서 살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기 위해서는 먼저 평화를 이루어나가는 사명을 다해야 할 줄 압니다.

우리는 미사 때마다 영성체하기 전에 ‘평화의 인사’를 주고받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평화가 너희와 함께!”(요한20,19)라고 말씀해주신 것도 알고 있습니다.

참으로 “인간 생명의 존중과 증진에는 평화가 필요”합니다.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것만도 아니고, 적대 세력들 사이의 균형을 보장하는 데 그치는 것도 아닙니다”(제2차 바티칸 공의회 「사목헌장-기쁨과 희망」 78참조).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참된 평화를 이뤄나가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선익(善益)을 보호하고 사람들 사이의 자유로운 의사소통이 있어야 하며, 사람들과 민족의 존엄성을 중히 여기는 가운데 형제애(兄弟愛)의 끊임없는 실천이 따라야 합니다(이상 「가톨릭교회 교리서」 2304 참조).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새해 제47차 ‘세계 평화의 날’ 담화문에서 “형제애는 평화의 바탕이며 통로”라고 언급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시리아와 중동과 세계 평화를 위해 전 세계가 함께 기도할 것을 호소하시고, 이탈리아 남쪽 람페두사 섬 부근에서 난파당한 아프리카 난민들의 처지를 가슴아파하시며, 프란치스코 성인의 고향 아시시를 방문해서는 이날을 이민 희생자들을 추도하는 “통곡의 날”이라고 규정하기까지 했습니다. “지금도 세계는 수많은 사람이 노예상태와 굶주림에서 벗어나려고 도망쳐야 하는 사실에 무관심하다”고 한탄하신 교황님은 “얼마나 더 이런 사람들이 죽는 것을 보는 고통을 겪어야 하느냐”고 반문하십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 신자들도 교황님의 마음과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내 주위의 가난한 사람들, 고통 받는 이웃을 외면할 수가 없습니다.

4. 공동선을 향한 노력

형제자매 여러분,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생명을 경시하고 낙태와 이혼을 밥 먹듯이 하며, 나와 내 가족의 안일을 위해서 이웃에게 해악을 끼치는 일이 우리 주위에는 얼마나 많습니까?

나와 생각을 달리한다고 해서 배척하는 일은 또 얼마나 많습니까?

일치가 아닌 분열을 조장하는 일이, 같은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고백하는 신자들 사이에는 없습니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라”(마태 6, 10 참조)고 일러주셨습니다.

오늘날, 사회정의에 관해서 많이들 강조하고 있는 것도 ‘아버지의 뜻’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며, ‘현세 질서의 개선’(제2차 바티칸 공의회, 「평신도사도직에 관한 교령 7 참조)이란 면에서 아주 중요합니다. 다만 진정한 사회정의는 그리스도인다운 가난의 정신, 나눔의 정신에서 오는 결과입니다. 이 가난과 나눔의 정신은 부자와 가난한 이 모두에게 똑같이 요구되는 것이고, 여기에는 세 가지 원칙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자기 재산이라고 해서 자기가 소유자라기보다 관리자로 낮추어야 한다는 원칙, 자기 재산을 사용할 때에도 사회의 공동선(共同善)을 고려해야한다는 원칙, 그리고 꼭 필요하지 않은 나머지 재산을 가난한 이들과 나누어야 한다는 원칙들을 실제로 적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이탈리아 영성가 포레지 신부, ‘하느님을 선택하는 것’). 분명한 것은 어느 적용방법이든 복음의 정신을 반영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입니다. 복음서에 이미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사람들!”(마태 5, 3).

5. 그리스도와 함께

신앙의 해를 선포하신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은 “주님의 말씀이 바르게 퍼져나가 찬양을 받고, 이 신앙의 해로 주님이신 그리스도와 우리가 맺은 관계가 더욱 굳건해지기를 바란다”고 회칙 「믿음의 문」 (15)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신앙의 해를 돌아보며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십자가 위의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에도 성부와 일치하셨던 그리스도를 관상하면서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바로 그 시선에 동참하는 법을 배운다”고 지적하고, “신앙은 우리의 온갖 어둠을 몰아낼 수 있는 빛이 아니라, 밤중에 우리 발걸음을 인도하는 등불이며, 우리의 여정을 위해서는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회칙 「신앙의 빛」(56-57)에서 말씀하십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특히 지난 3월 14일 교황으로서 처음 집전한 미사에서 ‘걷기(walking), 짓기(building), 신앙고백(professing)’을 교회의 세 가지 임무로 제시하고 영적 쇄신을 통한 교회 재건을 역설했습니다. “우리가 걷지 않으면 멈추고, 반석 위에 집을 짓지 않으면 어린아이가 해변에 지은 모래성처럼 모든 것이 무너지게 된다”고 지적하신 교황님은 “십자가 없이 걷고, 십자가 없이 무언가를 짓고, 십자가 없이 예수님의 이름을 부른다면 우리는 주 예수님의 제자가 아닌 세속적인 존재일 뿐”이라고 강조하신 것입니다. 교황님은 그 후로도 기회 있을 때마다 ‘돈’이라는 우상에 현혹되지 말 것을 우리에게 당부하십니다.

아무쪼록 가정생활, 직장생활, 사회생활을 해나가면서 우리 평신도들은 ‘그리스도 신자’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매 순간 다가오는 십자가를 잘 끌어안으면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주시는 참 평화를 향해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지금은 우리 모두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한 13,34)고 하신 주님의 ‘새 계명’을 사는 데에서부터 우리의 신앙생활을 다시 시작하면서 평화의 길로 나아갈 때입니다.

“교회의 어머니이시며 우리 신앙의 어머니이신 마리아께 기도를 드립시다.

어머니, 저희의 신앙을 도와주십시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분의 음성과 부르심을 알아차릴 수 있도록

저희의 귀를 열어주십시오”(회칙 「신앙의 빛」 60).

아멘. 감사합니다.




2013년 11월 17일

한국천주교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



연중 제33주일- 제45회 평신도 주일 강론자료


- 형제를 사랑하며 신앙의 불꽃을 태웁시다

12/11/

+ 찬미예수님.

“그때에 ‘사람의 아들’이 큰 권능과 영광을 떨치며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볼 것이다”(마르코 13, 26).

오늘 복음의 한 구절입니다.

연중시기가 막바지에 이르러 세상 종말과 주님의 재림을 묵상하며 늘 깨어 있기를 다짐하는 이 계절에, 우리는 마흔다섯 번째 평신도주일을 맞이했습니다.

형제 자매 한 분, 한 분과 이 땅의 모든 백성들이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복된 나날 지내시기를 빕니다.

1. 평신도주일

해마다 그리스도왕 대축일 전 주일인 연중 제33주일에 지내는 평신도주일은 ‘한국천주교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이하 ‘한국평협’)의 첫 번째 명칭인 ‘한국가톨릭 평신도사도직중앙협의회’가 발족한 1968년, 가을 주교회의 총회가 이 단체를 인준하면서 제정해서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각 교구 평협과 전국 규모의 평신도사도직 단체들의 협의체인 ‘한국평협’은 발족 후 103위 한국 순교 복자들의 시성운동을 포함해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 정신을 각자 삶의 현장에서 구현하며, 모든 평신도들이 개인 사도직과 단체 사도직을 더 잘 수행할 수 있도록 정보를 교환하고 용기를 북돋우면서 주님께서 일러주신 사랑의 새 계명을 살고자 노력해왔습니다.

한국평협은 지금도 ‘하느님의 종’ 124위 순교자와 증거자 최양업 신부 시복시성을 위한 기도운동에 적극 나서면서 성지순례와 ‘묵주기도 바치기’에 여러분의 동참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2. 새로운 복음화와 ‘신앙의 해’

지난 달 10월 11일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 개막 50주년인 동시에 ‘가톨릭교회 교리서’ 반포 20주년이 된 날로서, 이날부터 내년 연중 마지막 주일인 11월 24일 그리스도왕 대축일까지를 전 세계 모든 가톨릭 신자들은 ‘신앙의 해’를 살고 있습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은 ‘성화(聖化)를 향한 보편적 부르심’을 통해 모든 믿는 이들이 그리스도의 길을 따라 살아갈 것을 권고하십니다. 신앙의 해를 시작하면서 교황님은 “거룩함은 문화와 사회, 정치, 또는 종교적인 울타리에 머물러 있지 않는 것”이라며 “사랑과 진리의 언어는 선의(善意)의 모든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고, 이는 곧 새로운 생명의 마르지 않는 원천인 예수 그리스도께로 우리를 이끌어준다”고 힘 있게 말씀하십니다. 사랑의 언어로써, 즉 사랑 실천을 통해 진리를 선포하는 그리스도의 길을 우리 모든 믿는 이들이 따라서 걸어가야 한다는 지적입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은 거룩하게 살아가도록 불림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오늘날 순교하지 않고서도 성인이 될 수 있는 ‘평신도 성인들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나부터 복음화되어 세상을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성화하도록 하자는 것이 ‘새로운 복음화’이고, 새로운 복음화의 일차적인 대상은 믿음이 약한 우리의 이웃입니다. “세례를 받았지만 교회에서 멀어지고 그리스도교적 삶의 지표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을 먼저 만나보고 그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3. 신앙의 기초부터 튼튼하게 가꿉시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이제 1년 동안 신앙의 해를 어떻게 살아가야 하겠습니까? 어떻게 새로운 복음화를 살아야 하겠습니까?

이 질문에 이미 답이 나와 있습니다. 복음을 살아야 하는 것이지요. 복음은 ‘하느님의 뜻’을 실행할 것을 요구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마태오 22, 34-40참조)는 가장 큰 계명을 지켜야 합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형제도 사랑해야 한다(1요한4,21)고 가르칩니다.

그렇습니다. 현 순간 내 앞을 스치고 지나가는 이웃이 곧 내 형제요, 자매입니다. 내가 사랑해야 할 사람입니다. 사랑하면 거룩한 삶을 살 수가 있고, 증거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남편은 아내를 내 몸같이 사랑하고, 아내 또한 남편을 내 몸같이 사랑해야 합니다. 부모는 자녀를 사랑하고 자녀는 부모를 효도로 공경하며 사랑할 일입니다. 이렇듯 가정과 일터와 사회에서, 정치, 경제, 문화, 스포츠 등 모든 면에서 서로 사랑하면서 하느님의 뜻을 할 수가 있습니다.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에서 예수님은 “좋은 땅에 떨어진 것은, 바르고 착한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간직하여 인내로써 열매를 맺는 사람들”(루카8,15)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신앙도 기초부터 튼튼하게 가꿀 수 있도록 마음을 열고 이웃을 받아들이는 연습을 해나갔으면 좋겠습니다.

4. 기도하고 실천하며 정직한 평신도

우리 평신도는 세례로써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어 하느님 백성이 됐으며, 백성들 중에서도 자기 몫을 교회와 세상 안에서 실천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스도인이면서 평신도인 우리는 세상 안에서 세상일을 통해서 하느님 나라와 복음을 선포하는 고유한 사명을 지니고 있습니다. 목숨을 내놓을 정도로 큰일을 하지는 않더라도 아주 작은 일에서부터 참된 그리스도인답게 살 수가 있습니다.

모범적인 신앙인으로서 프란치스코 3회원이었던 장면 요한(1899-1966) 박사는 한때 내각책임제 헌정체제의 제2공화국 정부(1960.8-1961.5)를 이끌었던 정치인이기도 한, 그분에 대한 이런 증언이 있습니다. “서울에 전차가 다닐 때였고, 그때는 전차를 타게 되면 내릴 때 차표를 내게 돼 있었어요. 만원일 경우, 인파에 그대로 밀려 표를 내지 못하는 때도 있었는데, 장 박사는 꼭 전차표를 그 자리에서 찢어버리는 것이었어요”(‘한국 재속 프란치스코회 75주년 기념 인물전’ 1권 p.125, 2012).

비록 작은 일이지만 정직하게 살고, 누가 보든 보지 않든 교통법규 하나라도 잘 지키려고 애쓰는 몸가짐, 마음가짐이 오늘을 사는 우리 평신도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꼭 필요한 덕목이라 하겠습니다.

5.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날 우리의 신앙이 교황님의 표현과 같이 ‘연료가 없는 불꽃’(flame without fuel)은 아닌지 살펴볼 때입니다. 연료가 없는 불꽃은 쉽게 꺼지고 맙니다. 신앙의 연료는 신앙의 기쁨과 영적 충만함일 것입니다. 연료를 가득히 유지하기 위해서는 성경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기도를 통해 영적 충만함을 유지하여야 합니다. 또한 교회의 가르침을 충실히 배우고 성체성사를 비롯한 전례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며 사랑의 실천을 통해 신앙의 열매를 맺을 때 신앙의 기쁨과 영적 충만함이 우리 마음 안에 가득찰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거룩한 실천과 체험들을 통해 주님을 향한 우리 ‘신앙의 불꽃’이 더욱 뜨겁게 활활 타오를 것입니다.

신앙의 해를 살아가며 지내는 오늘 평신도 주일 복음말씀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새로운 결단을 요청하고 계십니다. 우리 삶 안에서 작은 일이라도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감으로써 예수님의 요청에 기꺼이 응답하는 참된 자녀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마르코 13, 32).

감사합니다.



연중 제33주일- 제44회 평신도 주일 강론자료


- 흰색 순교를 살며 복음화의 길로 나아갑시다

11/11/

+ 찬미예수님

형제자매 여러분, 마흔네 번째 평신도주일을 맞이해서 여러분과 여러분이 사랑하시는 모든 분들에게 하느님의 은총이 듬뿍 내리기를 축원합니다.

1. 평협과 평신도주일

우리 한국 천주교회는 1784년 교회창설 주역들이 모두 평신도들이었고, 그 후 박해시대를 거치면서 평신도 회장과 봉사자들의 활동이 두드러진 역사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가 끝난 지 몇 해 지나지 않아서 1968년 7월 23일 대전에서 ‘한국가톨릭평신도사도직중앙협의회’가 출범한 것이 오늘날 ‘한국천주교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이하 ‘한국평협’)의 시작입니다.

한국 주교회의는 그해 10월 총회에서 한국평협을 인준하고, 그 건의사항을 받아들여 해마다 구세주 대림 제1주일을 ‘평신도의 날’로 정해 평신도들이 사도직에 불림을 받았다는 사실을 자각하도록 했습니다. 그 이듬해 주교회의 총회는 ‘평신도의 날’ 둘째 헌금을 거두어 본당과 교구와 전국 기구가 사용하도록 했으며, 발족 3년 후부터는 연중 마지막 전 주일을 ‘평신도주일’로 지내고 있습니다.

2. 평협과 시복 시성 기도운동

한국평협은 각 교구 평신도사도직협의회와 전국 단위 운동 단체들을 회원으로 하면서, 복음적 사도의 정신으로 회원 상호간의 협력을 도모하고 경험과 정보를 교환함으로써 그 활동을 촉진시키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금년 5월에 시작한 한국 순교자 124위와 증거자 최양업 신부 등 ‘하느님의 종’들의 시복 시성 청원 기도운동을 통해서 각 교구 평협과 운동 단체들의 협력과 정보교환이 원활히 이뤄지고 있는 것을 실감합니다.

사실 평협은 발족 당시부터 교회 창설 초기 순교자들의 시복과 103위 순교 복자들의 시성운동을 제창하면서 기도운동을 벌여왔던 것이고, 그 결실로써 1984년 한국교회 200주년에 즈음해서 교황님을 모시고 시성식을 거행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지난 9월 순교자성월에 발표한 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위원장 박정일 주교) 담화는 “교황청 시성성 장관 안젤로 아마토 추기경을 예방했을 때 추기경은 한국 순교자들에 대한 깊은 관심을 표명하시면서 “‘하느님의 종’들의 시복 시성 청원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아래로부터의 운동”이라고 강조했다고 전하면서 이는 “시복 시성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시복 시성을 간절히 바라는 신자들의 적극적인 원의의 표출이 있어야 하고, 그럼으로써 순교자들의 순교 명성을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한국평협이 전개하는 이 기도운동에 모든 신자들이 동참해주기를 바란다고 덧붙였습니다.

하느님의 종 순교자와 증거자들의 시복 시성 청원 기도운동을 벌이면서 한국평협은 순교자들의 모후이신 성모님께 우리의 원의를 맡겨드리면서 매일 묵주기도 다섯 단씩 바칠 것을 권장하고 있습니다. 당신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를 가장 가까이서 가장 잘 따르셨던 성모님이야말로 평신도 사도직의 모범 중의 모범이십니다. 성모님과 함께 십자가의 신비를 묵상하는 이 기도를 열심히 바쳐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3. 사도직에 불림을 받은 평신도

우리가 순교자와 증거자의 시복 시성을 청원하고 기도하는 것은 순교한 그분들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분들은 이미 하느님 곁에서 천상 복락을 누리고 계십니다. 그분들의 시복 시성을 염원하는 것은 우리도 그분들의 삶과 죽음을 본받아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순례의 여정에 동참하기 위해서이고, 순교한 그분들을 우리 삶의 모범으로 삼기 위해서입니다.

우리 평신도는 누구나 세례로써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어 하느님 백성이 되고, 그리스도의 사제직과 예언자직과 왕직에 각자 나름의 고유한 방식으로 참여해서, 그리스도교 백성 전체의 사명 가운데서 자기 몫을 교회와 세상 안에서 실천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우리는 세상 안에서 세상일을 통해서 하느님 나라와 그 복음을 선포하는 고유한 사명을 지니고 있고, 교회 안에서 교회 일을 맡은 성직자들의 사명보다 더 절박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우리 평신도는 직업에 충실해야 하고, 기도생활과 사도직 활동, 가정생활, 일상의 노동 등을 통해서 우리 자신의 삶을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와 함께 제물로 바침으로써 세상 구원에 이바지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평신도는 생활의 증거와 말씀으로 그리스도를 세상에 선포하는 사람들입니다. 일반 교육과 특히 사회 홍보 매체를 통해서 복음을 선포하는 것도 우리 평신도의 몫입니다. 우리 평신도는 진리와 사랑으로 공동선에 이바지하고, 사회정의와 덕을 실천함으로써 하느님 나라, 하느님의 다스림이 사회 모든 분야에서 이뤄지도록 힘쓰는 사람들입니다.

4. 새로운 복음화의 길

지난해 9월 서울에서 열린 아시아 가톨릭 평신도대회를 통해서 우리는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할 것을 다짐한 바 있습니다. “신자는 누구든지, 교회의 어떤 기관이든지 그리스도를 만민에게 전할 지상 의무에서 벗어날 수 없다”(「교회의 선교사명」 3)고 한 교회의 가르침을 기억하면서 우리는 새로운 열정과 새로운 방법, 새로운 표현으로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구원하러 오셨다는 이 기쁜 소식을 이웃에 전하고 이 땅에 선포해야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말씀’을 살고 말씀의 증거를 통해서 지붕 위에서 외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울지마 톤즈’라는 기록영화로 세상을 감동시킨 고 이태석 요한 신부님의 선교사로서의 삶과 그 반향을 잘 알고 있는 우리는 우리 시대의 사람들이 “스승보다 증거를, 주장보다 경험을, 이론보다 실천”(같은 문헌 42)을 더 믿는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특히 새해 2012년은 우리 한국교회에 교계제도가 설정된 지 50주년이 되는 해이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개막된 지 50년이 되는 해입니다. 새로운 각오, 새로운 결심이 필요한 때입니다.

5. 매일 매 순간 흰색 순교를 살기

순교자들의 시복 시성 청원 기도운동을 벌이고 있는 우리는 무엇보다 그분들의 순교정신을 본받아야겠습니다. 박해시대에 살았던 그분들에게는 신앙을 받아들인다는 것이 곧 죽음을 각오하는 것이었고, 실제로 신앙 때문에 죽어갔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매 순간 어려움을 만날 때마다 죽을 각오로써 복음을 산다면, 다시 말해서 순교정신으로 나아간다면 못할 것이 없을 것입니다. 매 순간 생활을 통해서 순교정신을 사는 것, 이것이 흰색 순교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순교자들이 보여준 애덕을 실천했으면 합니다. 흉년과 기근 속에서도 서로 돕고 나누었기 때문에 우리의 신앙선조들은 굶어죽는 일이 없었습니다.

흰색 순교를 살며 복음화의 길로 나아가는 값진 삶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항상 깨어 있어라”(마태 25,13)고 한 복음 말씀을 기억하며 항상 깨어 있도록 하십시다.

아멘.



연중 제33주일- 제43회 평신도 주일 강론자료


- 새로운 복음화의 때가 왔습니다

10/11/14

1. 찬미예수님!

전례력으로 한해를 마감하는 주일을 한 주간 앞둔 오늘, 마흔세 번째 평신도주일을 맞이하며 교우 여러분과 함께 이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우리 평신도들이 주교님을 비롯한 성직자, 수도자 분들과 더불어 하느님 백성을 이룩해 새로운 복음화의 사명을 다시 한 번 다짐할 수 있게 해 주신 하느님께 영광과 찬미를 드립니다.

우리 한국 교회에 평신도주일이 제정되고, 이날 평신도가 제단에 올라와서 나눔의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된 데에는 1968년 한국천주교 평신도사도직협의회가 발족되고, 그 해 주교회의가 이를 결정해 주면서 부터였습니다.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2. 조금 전에 들은 독서와 복음 말씀은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게 해줍니다. 사탄이 비록 갖은 술수로 우리를 유혹할지라도,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멸망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회개하기를 바라시기 때문”(2베드 3,9)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을 무한히 사랑하셔서 보내주신 독생 성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안전합니다. 우리가 믿는 유일한 분, 우리에 대한 사랑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님께 우리는 우리의 믿음과 희망을 둘 수 있습니다. 그분은 지금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무서워하지 마라”(루카 21,9).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루카 21,18).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루카 21,19).

3. 지난 8월 31일부터 9월 5일까지 ‘오늘날 아시아에서 예수 그리스도님을 선포하기’라는 주제로 아시아 가톨릭 평신도대회가 서울에서 열렸습니다. 교황청 평신도평의회가 주최하고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평신도사도직위원회와 한국천주교 평신도사도직협의회가 주관한 이번 대회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일은 교회가 아시아의 백성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최상의 봉사”라는 교황권고 「아시아 교회」의 가르침을 상기하면서 평신도들이 복음화의 일선에서 교회의 목자와 일치해서 유일한 구세주이신 예수님을 이웃에 전해야 한다는 점을 확인했습니다. 또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자가 되어 다가오는 미래 사회의 희망의 등불이 되어야 함을 참석자 모두가 인식하는 소중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아시아 20개국 대표와 30여개 교회운동 단체들이 함께 한 이번 평신도대회에서 또 한 가지 식별할 수 있었던 것은 아직도 열악한 환경에서 종교의 자유가 제한된 가운데 박해받고 있는 교회가 많다는 사실이고, 여기에 비해서 인구대비 10.1%의 복음화율을 기록하고 있는 우리 한국 교회는 상대적으로 넉넉하고 자유를 만끽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4. 세계 인구 65억 중 3분의 2가 넘는 40억 이상이 아시아에 살고 있지만, 가톨릭 신자는 불과 3%에 머물고 있습니다. 그나마도 필리핀을 제외하면 고작 1%에 지나지 않습니다. 과거 소비에트연방에서 독립한 중앙아시아의 투르크메니스탄은 사제가 1명뿐이고 총 신자 수가 90여 명이며, 우즈베키스탄은 총 신자 수가 3천여 명이라고 소개했습니다. 우리와 얼굴 모습이 비슷한 몽골은 700여 명 신자가 있을 따름입니다. 이 밖에 남아시아와 서아시아에도 소수 종교로서 박해받고, 자연재해에 시달리는 백성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런 지역의 형제 자매들에게 우리 한국 교회가 기도로써 뿐만 아니라, 물질로도 관심을 가지면서 평신도 선교사 파견과 같은 프로그램도 마련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5. 올가을 국내 영화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준 작품 ‘울지 마 톤즈’는 내전 중이던 아프리카 수단에서 의료 선교를 하다가 숨진 한 수도 사제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입니다. 주인공인 이 한국인 사제가 자청해서 간 남수단은 내란을 겪으면서 위험하기 짝이 없는 지역이었고, 그곳에서 그는 헐벗고, 굶주리고, 다치고, 병에 걸리고, 희망을 상실한 주민들에게 의술과 예술, 따뜻한 가슴으로 다가갔습니다. 그가 톤즈 마을의 배고픈 아이들, 밤낮 사흘간 걸어서 찾아온 환자들, 수단인조차 외면하는 한센병 환자를 바라보는 선한 시선과 해맑은 미소가 장면마다 배어납니다.

그는 말합니다. “예수님께선 ‘가장 작은이에게 해 준 것이 곧 나에게 해 준 것’(마태 25,40)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0년 동안 그런 생활을 한 이 수도 사제는 올해 1월 14일 대장암으로 선종했고, 48세의 젊은 나이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를 일찍 데려가셨지만, 이 사건을 통해서 이웃 사랑을 어떻게 실천하는지를, 어떤 자세로 복음화에 나서야 하는지를 세상에 알려주신 것입니다.

6.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지난달 전교주일 담화에서 ‘예수님의 요구’에 응답하는 “선교사명 의식은 선교 사제와 봉헌생활자, 평신도 선교사들이 교회 친교를 촉진하고자 노력할 때 길러진다”면서 ‘친교의 교회’를 강조하고 계십니다. 우리 한국교회사를 돌아볼 때 18세기말 오직 한분뿐인 사제를 살리기 위해서 평신도 회장이 대신 붙잡혀 죽어간 을묘년 주문모 신부 실포사건(失捕事件)과 6년 후 신유박해 때 교우들의 피해를 줄이고자 이 중국인 사제가 관가에 자수해서 순교까지 한 사례는 목자와 양떼 사이의 아름다운 친교의 전통을 말해줍니다.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도 모두 서로를 위해 목숨까지 바칠 각오로써 친교의 교회상을 바로 세워나갔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7.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들과 교황권고 「평신도 그리스도인」은 평신도의 교회생활 참여를 적극적으로 요청하고 있습니다. 평신도는 교회 내에서 주변 사람들이 아니고 삶의 현장에서 그리스도의 복음 선포를 위해 적극적이고 주체적으로 참여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그리스도의 증거자들입니다. 우리는 세례 때 이미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마르 16,15)할 사명과 소명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곧 사도직입니다.

이제 새 천년이 시작되고도 10년이 지났습니다. 교회는 ‘새로운 복음화’의 때가 왔음을 거듭 거듭 일깨워주면서, 새로운 열정과 새로운 방법으로 세상을 복음화하라고 촉구하고 있습니다.

8. 이번 아시아 평신도대회 폐막미사 끝에 진행된 선교 파견예식에서 참석자들은 하얀 묵주와 함께 목에 거는 십자가를 받았습니다. 이는 대회에 참석한 300여명만 받은 것이 아니고, 우리나라 교회, 아니 온 아시아 평신도들이 받은 것을 의미합니다. 성모님의 시선으로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일생을 돌아보면서 열심히 기도를 바치고, 세상 구원을 위해서 십자가 수난을 겪으시고 부활하신 주님을 따르겠다고 매 순간 다짐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생활하면서 만나는 모든 고통을 십자가에 달리신 우리 주님의 수난에 합쳐드리면서 “서로 사랑하라”(요한 13,34)는 ‘말씀’을 실행에 옮기고 이웃에 전함으로써 이 땅과 온 아시아에 예수 그리스도님을 선포하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아멘.



연중 제33주일- 제42회 평신도 주일 강론자료


-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갑시다

09/11/19

1. 찬미예수님!

한 해를 마무리하는 연중 마지막 전 주일을 우리 교회는 평신도주일로 지내고 있습니다. 각 교구 평신도사도직협의회와 전국 단체들의 협의체인 한국천주교 평신도사도직협의회가 주교회의의 승인을 받아 ‘평신도의 날’을 지내며 활동하기 시작한 1968년부터 마흔 두 번째 ‘평신도주일’입니다. 해마다 평신도주일은 그 동안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온 우리 자신의 삶을 좀 더 철저하게 성찰하며 앞으로 좀 더 나은 삶을 살도록 다짐하는 귀중한 은총의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2. 올해는 특히 베네딕토 16세 교황님께서 선포하신 ‘사제의 해’를 지내면서 우리 교회의 103위 순교자들의 시성 25주년을 경축하고 있는 만큼 오늘 평신도주일을 더욱 뜻있게 보내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 교회는 세계적으로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가 매우 충실히 그리스도 안에서 친교를 이룬 가운데 “이 땅에 빛을” 비추어 백성들을 진리의 길로 이끌며 크게 성장하고 있는 교회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성장은 “순교자의 피는 그리스도인의 씨앗”(테르툴리아노)임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어서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3. 25년 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 친히 한국을 찾아오시어 시성식을 집전하신 그 날의 감동을 되새기게 해주는 감사의 노래 “사은 찬미가(테 데움)”의 일화가 있습니다. 103위 성인 가운데 한 분인 마르티노 루카 위앵 민(閔) 신부는,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로서 1866년 병인박해 때 충청도 보령 갈매못에서 30세의 나이로 순교했습니다. 위앵 신부의 순교 소식을 전해들은 프랑스 고향 마을의 어머니는, 아들의 유품이 들어있는 장롱 문을 열고, 두 팔은 열 십(十)자로 포갠 다음, 무릎을 꿇고 ‘테 데움을 노래하기 시작했습니다. “찬미하나이다. 주 하느님. …거룩하시도다. 주 하느님! …영광에 빛나는 사도들의 대열, 무수한 예언자들의 대열, 눈부신 순교자들의 무리, 아버지를 높이 기리며 받드나이다.…”

4. 아들 신부가 죽음의 땅으로 가는 것을 극력 반대했으면서도, 순교했다는 그 한 마디 소식에 그저 하느님을 찬미하는 감사의 노래를 부를 수 있었던 그런 어머니의 믿음과 희망과 사랑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 교회가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사제의 해를 지내고 있는 우리는 사제들과 사제들의 부모님들에게, 특히 어머니들에게 감사드리며 이분들을 위해 기도드려야 할 것입니다. 선교사들과 이분들의 부모님들에게도 감사드리며 이 분들을 위해 기도드려야 할 것입니다.

5. 우리 한국 천주교회는 ‘평신도들이 세운 교회’입니다. 자발적인 교리 연구를 거쳐 1784년에 이승훈이 북경에서 베드로라는 이름으로 영세 입교한 후 서울에서 동료들에게 세례를 주고 모임을 가짐으로써 마침내 평신도들로 교회 공동체를 시작했던 것입니다. 목자 없이 출발한 신자 공동체는 잠시 동안 두 분의 중국인 신부를 모실 수 있었을 뿐, 1836년 모방 신부의 입국으로 시작된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이 활동을 시작할 때까지 40여 년 동안 평신도들만의 공동체로서 신앙을 가꾸며 열매를 맺었던 것입니다.

6. 주문모 신부 입국 초기에는 신부를 피신시키기 위해 신도들이 대신 붙잡혀 매 맞아 죽기까지 했으며, 교우들의 핍박을 덜어주기 위해 목자들이 스스로 관가를 찾아 자수하고 순교한 일도 있었습니다. 신자 공동체는 성사의 은총을 받으려는 열망으로 주교, 신부들을 영입해 들이기 위해 북경 삼천리 길을 걸어서 오가면서 교황님께, 또는 북경 주교님에게 눈물겨운 호소로써 다가갔고, 그렇게 해서 어렵사리 영입해온 선교사들이 한꺼번에 참변을 당하는 참혹한 현실 앞에서 이 땅의 신자 공동체는 시련을 딛고 다시 시작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들은 세례 때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했고, 목숨을 바치면서까지 그렇게 했습니다.

7. 신앙 선조들의 삶을 돌아보면서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 자신의 생활은 과연 어떠한지 살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겠습니다. 우리는 과연 누구입니까? 우리는 세례로써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자녀들로 새로 태어났고 그리스도의 지체요 교회의 지체로서 서로 한 몸을 이루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이렇게 하느님께서 우리를 부르시어 새 사람이 되게 하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인으로 거룩하게 살아 성직자, 수도자와 함께 교회를 성장시키며 세상을 변화시켜 하느님께 봉헌하도록 하시기 위해서 입니다. 곧 성직자, 수도자와 함께 공동 책임을 지며 서로 보완하여 교회와 세상을 복음화 하도록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8. 특히 가정과 직장을 비롯한 일상생활 현장은 평신도 고유의 영역이고 우리는 이러한 생활 현장, 곧 이 세상을 하느님의 뜻에 따라 개선할 사명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사랑과 정의가 강물처럼 흘러(아모 5, 24 참조) 우리 자신은 물론 우리 이웃의 모든 사람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바로 우리들 평신도들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교회는 희망과 사랑의 표지요 원천으로서 세상의 모든 분야에 현존하게 됩니다.”(평신도 그리스도인, 7항)

9. 오늘 평신도 주일을 맞아 우리는 과연 이러한 그리스도인의 소명과 사명을 깨닫고 실천하고 있는지 성찰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리는 혹시 교회의 봉사 활동에 열심히 참여하면 자신의 생활 현장에서 다 해야 할 책임을 소홀히 해도 된다거나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또는 일상생활과 신앙생활은 따로 떼어 놓아도 된다거나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진지하게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10. 우리는 과연 일상생활에서 의식주와 여가 생활, 에너지 소비, 자원 재활용, 등에서 그리스도인다운 검소한 생활 방식을 따르고 있는지, 한 마디로 우리 생활 방식은 과연 얼마나 가난한 이들을 배려하며 복음적인지 진지하게 성찰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11. 우리 자신이 복음화 되어 세상을 복음화 하는 것, 이것이 바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이며 우리가 거룩하게 되어 구원 받는 길입니다. 우리의 자랑스러운 순교 선열들이 목숨까지 내 놓으며 걸어간 길도 이러한 길이었습니다. 오늘 복음말씀처럼 “하늘과 땅은 사라질 지라도 결코 사라지지 않을 하느님의 말씀”(마르 13,31 참조)을 따라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며 살아간 바로 그러한 길이었습니다.

12. 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의 말씀 한 구절을 말씀 드리면서 마칠까 합니다. 여러분이 참으로 그리스도인답게 산다면, 온 세상에 불을 놓을 것입니다.”(서한 368 참조)

감사합니다.



연중 제33주일- 제41회 평신도 주일 강론자료


이웃에 사랑을, 누리에 하느님을!


- 가정은 사랑의 학교, 신앙의 터전입니다 -

08/11/16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마태 25,29).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오늘 연중 마지막 주일인 그리스도 왕 대축일을 한 주간 앞두고 마흔한 번째 평신도주일을 지내고 있습니다.

방금 인용한 오늘 복음의 한 구절, 격언과도 같은 이 말씀은 심판의 엄정함과 더불어 하느님께서 가없이 후하심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어떤 사람이 여행을 떠나면서 자기 종들에게 각자 능력에 따라 다섯 탈렌트와 두 탈렌트, 그리고 한 탈렌트를 맡겼는데, 주인이 돌아왔을 때 다섯 탈렌트를 맡았던 종은 다섯 탈렌트를 더 벌었다며 내놓았고, 두 탈렌트를 맡은 종은 두 탈렌트를 더 벌어서 내놓았으나 한 탈렌트를 맡았던 종은 이것을 땅에 묻어두었다가 한 탈렌트 그대로 가져와서 “주인님의 것입니다. 도로 받으십시오”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주인은 ‘사악하고 게으른 종’이라며 그를 꾸짖고는 “저자에게서 그 한 탈렌트를 빼앗아 열 탈렌트를 가진 자에게 주어라”고 다른 종에게 이른 다음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라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신자로서 우리가 받은 소명과 해야 할 사명

오늘 복음에서 종들이 해야 할 몫은 저마다 능력에 따라 맡겨진 ‘탈렌트’를 가지고 결실을 맺는 것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신앙인들에게 값진 교훈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 누구에게나, 그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능력에 맡는 일을 맡기십니다. 세례와 견진성사로 우리를 당신 백성으로 삼아주신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소명과 사명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받은 소명은 무엇보다도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태 5, 48)고 하신 주님의 말씀대로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와 성사 생활을 충실히 하며 각자 자신의 삶의 현장에서, 가정과 이웃과 일터에서, 복음을 전하고 자신의 생활을 통해 이 복음을 실천함으로써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입니다. 이 사명이 곧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수행해야 할 사도직입니다. 우리 평신도들은 “복음화와 인간 성화에 힘쓰며 현세 질서에 복음 정신을 침투시켜 그 질서를 완성토록 노력하여 실제로 사도직을 수행합니다. …세상 한가운데에서 세속 일을 하며 살아가는 것이 평신도의 신분이므로 바로 평신도들은 그리스도인 정신으로 불타올라 마치 누룩처럼 세상에서 사도직을 수행하도록 하느님께 부름 받았습니다”(제2차 바티칸공의회, ‘평신도사도직에 관한 교령’ 제2항).

그러기에 얼마나 성실하게 이 사명을 다해나가는가, 그것이 바로 우리의 몫이고, 지상 여정을 끝냈을 때 우리 각자가 하느님 앞에서 셈해야 할 과제입니다.

평신도사도직협의회 40주년

많은 교우들이 자발적으로 복음을 받아들여 교회를 세웠고, 목숨까지 바쳐 가며 신앙을 지킨 신앙 선조들의 후예답게,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는 자신의 사도직을 개인적으로 묵묵히 수행하고 있습니다. 단체에 가입해서 활동하는 교우들도 많습니다. 우리가 해마다 그리스도왕 대축일을 한 주간 앞둔 연중 제33주일을 ‘평신도주일’로 지내는 것은 바로 우리 교우들이 개인적으로나 단체에 가입해서 주님께 받은 자신의 ‘탈렌트’를 불리기 위해서이며, 이는 곧 자신의 사도직에 대한 의식을 새롭게 하고 그 사도직을 촉진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취지를 조직을 갖춰 지속적으로 살려나가기 위해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끝난 지 3년 뒤 1968년에 한국천주교 평신도사도직협의회가 설립되었고, 이후 전국의 각 교구에서도 평신도사도직협의회가 세워져 평신도 사도직을 촉진하는 일을 해왔습니다.

올해 우리 교회는 한국천주교평신도사도직협의회 설립 40주년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그 동안 지도와 격려를 아끼지 않으신 주교님들을 비롯한 모든 신부님들과 수녀님, 수사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언제나 따뜻한 관심과 협력을 아끼지 않으신 교우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시성 25주년, 새로운 복음화의 열정

내년 2009년 5월 6일은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정하상 바오로 회장을 비롯한 103위 한국 순교성인들의 시성 25주년 은경축입니다.

1984년 이날, 우리는 ‘이 땅에 빛’을 비추어야 할 우리의 사명을 다짐하면서 하느님께 감사드렸습니다. 한강 건너 새남터와 절두산, 당고개 순교터가 바라보이는 여의도 광장에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을 모시고 ‘103위 순교복자 시성’을 선포하던 이 땅의 하느님 백성들! 그 함성이 아직도 귀에 쟁쟁합니다.

그 동안 우리 중에는 103위 성인 성녀들을 허락하신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시성의 참 뜻을 깨달아 복음화에 앞장 서온 분들이 참으로 많고, 이제 그 성과 또한 500만 신자를 넘어서서 인구 대비 20%의 복음화를 목표로 삼게 됐습니다.

그렇지만 이번 기회에 우리가 사도직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점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성찰하면서 이웃을 사랑하며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겠다는 각오와 열정을 다시 한 번 불태웠으면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가 얼마나 하느님의 말씀을 읽고 그 말씀대로 살아 왔는지 진지하게 성찰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의 집’을 바위와 같은 하느님의 말씀 위에 짓고 있는지, 아니면 성공이나 경력이나 돈 같은 모래 위에 짓고 있는지, 진지하게 성찰해 볼 일입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최근의 세계 금융 위기는 이 ‘돈’이라는 것이 얼마나 쉽게 사라지고 마는 허망한 것인지, 사회 질서의 근본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 잘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교황 베네딕토 16세, 2008년 10월 5일 제 12차 세계 주교 시노드 개막미사 강론 참조). 우리의 순교 성인 성녀들이야말로 자신의 삶의 집을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단단한 바위 위에 지은 분들입니다.

가정에서 사회에서 백색의 순교를 살자!

오늘 우리에게 피를 흘리면서까지 순교할 것을 강요하는 세력은 없습니다. 그러나 피를 흘리지 않더라도 우리는 얼마든지 순교의 삶을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바로 ‘백색의 순교’입니다. 그것은 곧 고난을 겪게 될 때마다 그 고난을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 져야 할 십자가로 기꺼이 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을 가정 안에서부터 실천하자고 말씀드립니다. 그것은 곧 삶의 집을 하느님의 말씀 위에 짓는 것입니다. 가정은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 사랑을 가르치고 배우는 사랑의 학교입니다. 곧 신앙의 터전인 것입니다. 이러한 참된 그리스도인 가정이야말로 우리 시대를 위한 기쁜 소식입니다. 우리 가정은 하느님의 말씀을 전해야 할 막중한 사명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우리 가정은 복음화의 훌륭한 도구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가정에서 사랑을 실천하는 것, 이것은 곧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탈렌트’를 불리는 것이요,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 땅의 얼굴을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사랑을 실천할 때, 온 누리에 하느님의 사랑이 퍼져 나가고 마침내 참된 평화가 깃들 것이기 때문입니다.

감사합니다.



연중 제33주일- 제40회 평신도 주일 강론자료


- 이 땅에 좀 더 인간다운 사회를 건설하기 위하여

07/11/18

1. 오늘은 평신도주일입니다. 평신도주일은 우리 평신도들이 자신의 사명을 더욱 잘 깨닫고 더욱 잘 수행하도록 하기 위해 특별히 제정된 날입니다. 바로 그런 까닭에 오늘은 평신도가 강론을 맡아 여러 형제 자매님들께 인사드리며 말씀 드리는 것입니다.

특히 오늘은 1968년 제정된 이래 마흔 번째 맞는 평신도 주일입니다. 그러한 만큼 오늘 저는 지난 세월 우리 평신도들이 신앙인답게 이 땅의 빛과 소금의 구실을 제대로 하지 못했음을 주님 앞에 뉘우치면서 하느님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바로 지금 자신의 삶의 현장에서 하라고 명하시는 것을 실행할 것을 새로이 다짐했으면 합니다. 오늘 우리 사회가 올바른 길을 잃고 진리와 생명을 거스르는 ‘죄의 구조’에 빠져 있는 데는 우리 신앙인들도 적지 않은 책임이 있기에 말입니다.

2. 우리 교회를 세운 평신도 신앙 선조들은 이 땅에 복음의 정신으로 좀 더 나은 세상을 건설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고 순교의 피로 교회를 성장시켰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친구들까지도 너희를 넘겨 더러는 죽이기까지 할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루카 21, 16-19)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이들은 굳게 믿고 두려움 없이 “진리의 협력자”(3 요한, 8)가 되어 온 겨레가 그리스도께 마음을 열도록 하는 일에 헌신했던 것입니다.

3. 이처럼 자랑스러운 신앙의 유산을 물려받은 이 땅의 우리 평신도들은 무엇보다 자신과 교회와 사회를 복음화하는 일에 더욱 헌신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사회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봉사입니다. 하느님께서 세례성사를 통해 우리를 부르신 것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가 살고 있는 공동체의 정신, 풍습, 법률, 구조 등을 그리스도 정신으로 충만하게 하여”(평신도 교령, 13항) 하느님께 봉헌하도록 하시기 위해서 입니다. 우리가 삶의 현장에서 제 구실을 하지 않으면 거기서 교회는 제 구실을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자신의 삶의 현장에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바로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4. 이제 우리와 우리 이웃이 모두 함께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우리가 삶의 현장에서 시급히 해결해야 할 몇 가지 과제에 대해 여러분과 함께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5. 먼저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가장 기초적인 삶의 현장인 가정을 복음화하는 일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가정은 온갖 악의 세력에게 위협 받아 무너질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가정이 바로 서야 사회가 바로 섭니다. 우리 신자 가정은 자녀를 많이 낳아 기르고 가족이 서로 사랑하고 기도하며 이웃에게 봉사함으로써 복음을 선포하고 증언해야 합니다. 이러한 가정이야 말로 진정한 가정 문화를 창조하여 악의 세력을 물리칠 힘이요 우리 교회와 사회의 기쁨이요 희망입니다.

6. 모든 인간이 지닌 불가침의 존엄성과 인권을 수호하고 증진하는 일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것은 인간 사회 한복판에서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도록 부름 받고 있는 우리 평신도들의 근본 임무입니다.

인권 중에 최우선적이며 근본적인 권리는 생명권입니다. “인간은 잉태되는 그 순간부터 자연적인 죽음에 이르기까지 모든 상황에서 생명권의 주체입니다”(평신도 그리스도인, 38항). 그러므로 우리 평신도들은 특히 낙태를 허용하는 법률을 폐지하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사형제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올해까지 사형을 집행하지 않으면 우리나라는 ‘사실상 사형폐지국가’의 대열에 함께하게 되어 그나마 다행한 일입니다만 사형제도를 완전히 폐지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우리 평신도들은 인간 배아 복제 연구를 허용하려는 어떠한 조치도 단호히 배격하고 올바른 생명윤리가 확립되도록 온 힘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리고 “의학 연구 종사자들과 입법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시작부터 자연적인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인간 생명을 언제나 깊이 존중하도록”(베네딕토 16세 11월 일반 기도 지향) 교황님과 함께 기도해야 합니다.

7. 인간답게 사는 데에 종교의 자유는 없어서는 안 될 권리입니다. 이러한 권리는 어느 정권, 어느 사회, 어느 체제와 환경에서도 보장돼야 합니다. 따라서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추구하면서 북녘 동포들을 걱정하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북녘 동포들이 인간답게 살아가고, 종교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한반도에 화해와 평화의 정신이 자라나도록”(베네딕토 16세 11월 선교 지향) 교황님과 함께 기도해야 합니다.

8. 얼마 후에 우리는 2000년대에 들어서서 두 번째로 대통령을 선출하게 됩니다. 대통령 선거는 우리 사회에 사랑의 문화를 건설하기 위해 매우 중요한 기회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의 빛으로 우리 사회를 변화시켜야 할 우리 평신도들은 올바른 선거문화를 촉진하는 데 앞장서는 한편 후보자들이 내세운 정책을 제대로 파악하여 주님께서 누구를 선택하시는지 우리에게 알려주시도록 기도하면서 이 땅에 사랑과 정의와 평화가 자라나게 하는 데에 가장 적합한 인물을 뽑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9. 우리 교회와 사회에서 평신도 사도직을 진작시키며 복음 선교를 위해 기도와 활동으로 노력해오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여러분과 여러분 가정에 하느님께서 축복하시기를 빕니다.

2007년 11월 18일

한국천주교평신도사도직협의회



연중 제33주일- 제39회 평신도 주일 강론자료


- 생명의 복음을 실천합시다

06/11/19

1.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서른아홉 번째 맞이하는 평신도주일에 평신도가 강론대에서 그리스도 신자로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말씀드릴 수 있도록 배려해주신 하느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2. 지난 한해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따른 파장으로 온 나라가 용광로처럼 들끓었습니다. 국가이익이라는 명분아래 생명의 존엄성이 침몰하고 일방적인 여론이 조성되어 모두가 터무니없이 열광하고 있을 때, 우리 교회는 ‘생명의 복음’을 소리 높이 외치며 결연히 이에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의학과 생명과학은 생명을 보호하고 지키고 살리는 데에 목적을 두어야 하며, 생명인 인간배아에 대한 실험이나 조작은 인간의 존엄성을 모독하고, 인간 생명을 파괴하는 비도덕적인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 후 그런 연구는 거짓으로 드러났고, 이 불행한 사태는 오히려 우리 사회에 생명의 존엄성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3. 우리 교회는 이미 오래 전부터 난치병을 치료하는 방법에 관심을 갖고 이를 지원해왔습니다. 배아줄기세포를 이용하는 것보다 임상적으로도 효능을 발휘하고 있고, 윤리적으로 논란이 되지 않을뿐더러 안정성도 월등한 ‘성체줄기세포 연구’가 그것입니다. 교회는 지난해 사태 이후 이 연구에 힘을 실어주면서 지원하고 있습니다. 서울대교구는 이 성체줄기세포 연구를 돕기 위해 100억원의 ‘생명의 신비’ 기금을 모금하고 있습니다.

4. 오늘날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생명의 문화를 거슬러 죽음의 문화를 부추기는 현상이 팽배해있습니다. 지난날 극심한 빈곤을 극복해나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어느 틈엔가 경제적인 부와 명성을 얻는 것을 인생의 성공이라며 우러러보게 되었습니다. 우리 사회가 이처럼 소득을 최우선으로 여기고 황금만능, 물질 중심의 생활태도에 빠져들게 된 데에는 우리 신자들이 제대로 살지 못한 허물이 큽니다. 뿐만 아니라 가정이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높은 이혼율과 낙태 건수는 세계에서 으뜸을 차지하고 있고, 특히 낮은 출산율은 심각한 국가적인 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2005년 현재 여성 1명이 평생 낳는 자녀의 수를 기준으로 본 우리나라 출산율이 1.08명으로, 일본 1.29명, 영국 1.79명에 비해 세계 최저 수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같은 추세라면 2019년 이후 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하고 2095년이면 우리나라에는 인구가 사라질 것이라고들 합니다.

5.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인간 생명의 탄생은 하느님의 창조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고, 하느님의 뜻에 부합하는 거룩한 일입니다. 또한 가정만이 인간 생명이 탄생하는 합당한 장소입니다.

예로부터 우리 선조들은 인간 생명을 존엄하게 여기는 의식이 매우 높았습니다. 새로 태어난 아기에 대한 기쁨을 이웃과 함께 나누면서 이 아이가 잘 자라나도록 배려하는 전통과 풍습을 미덕으로 여겼습니다. 조상전래의 이 미풍양속을 오늘에 더 발전시켜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세상을 우리가 만들어나가야 할 것입니다.

6. 우리 그리스도인 가정과 부부들은 혼인성사를 세워주신 주님께 감사드리면서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삶의 모든 상황 안에서 각자의 소명을 다해야 합니다. 우리 신자들은 하느님의 은총인 생명을 받아들이고, 이 귀중한 생명을 잘 키워가는 가정을 가꾸어나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특별히 우리의 증거가 필요합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은 “쾌락주의와 상대주의로 가득 찬 현대문명에 휩쓸리지 않도록 하는 가정, 아낌없이 자신을 바쳐 사회와 교회 안에서 자신의 사명을 수행하는 데에 앞장서는 가정이 필요하다” 고 말씀하십니다.

혼인성사는 “그리스도인 부부와 부모를 ‘땅 끝까지’ 그리스도의 증인이며 동시에 참된 의미에서 사랑과 생명의 선교사로 만들어줍니다.” 요한 바오로2세 교황 권고 ‘가정공동체’ 54항 참조

이 사명은 가정 안에서는 서로를 위해주고 자녀를 올바르게 교육하는 것이며, 밖으로는 모든 이를 향한 하느님 사랑의 징표가 되도록 불린 것을 의미합니다.

8. 다시 한번 우리 평신도의 소명과 사명을 깊이 인식하면서 바오로 사도가 권고하신 것처럼 “우리가 받은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가야 한다”(에페 4,1)는 점을 명심했으면 합니다. 특히 각 분야에 종사하는 우리 평신도들이 하느님께서 세워주신 직분 안에서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고 온 마음, 온 힘, 온 영혼을 다해 생명을 받아들이고 지키면서 생명의 복음을 실천할 때 세상과 세상 사람들도 변화할 것입니다.

9. 형제자매 여러분,

낙태를 예방하는 데에 힘쓰면서 미혼모를 도와주고 입양을 장려하는 일에 적극 나섭시다. 출산을 장려하고 태어난 아기를 돌보는 일에도 온 가족이 관심을 쏟읍시다. 가난한 노인과 질병으로 고통 받는 병자들을 사랑으로 돌봐주는 것 역시 우리 평신도들의 사명입니다.

이와 같은 우리의 사명은 하느님의 은총으로 힘을 얻게 되었을 때만 완수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성모님께서 도와주시도록 기도하십시다.

10. 끝으로 교우 여러분에게 청합니다. 서른아홉 번째 평신도 주일을 지내면서 봉헌하는 오늘 미사 두 번째 헌금은 평신도 사도직 활동을 위해 쓰입니다. 여러분께서 적극 참여해주시고, 함께 해주시기를 정중히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연중 제33주일- 제38회 평신도 주일 담화문


- 살아있는 인간은 하느님의 영광입니다

05/11/13

1.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은 서른여덟 번째 맞이하는 평신도 주일입니다.

어머니이신 교회의 배려 속에 평신도가 주일 강론대에 올라와서 그리스도 신자로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말씀드리게 된 점, 하느님과 교회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오늘은 우리 시대에 가장 뚜렷하게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생명의 문제와 관련해서 여러분과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2. 우리나라에서 임신할 수 있는 여성의 연간 임신중절수술, 다시 말해서 낙태하는 여성이 엄청나게 많고, 전체 낙태수술 여성 가운데 미혼여성이 42%에 달하고 있습니다. 또 기혼 여성 3명 중 1명이 낙태한 경험이 있고, 낙태하는 이유가 ‘자녀를 원치 않아서’나 ‘터울 조절을 위해서’라고 응답합니다. 우리나라가 ‘낙태 왕국’이라는 불명예와 저출산 문제까지 안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부끄럽고 나라의 장래를 위해 매우 염려스러운 일입니다.

연약하고 방어 능력이 없는 수많은 사람들, 특히 태어나지 않은 아기들의 생명에 관한 기본권이 짓밟히고 있는 이 현실 앞에서 교회는 침묵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하느님의 이름으로 개개인과 모든 사람들에게 절박하게 호소하고 있습니다. “생명을, 모든 인간의 생명을 존중하고, 보호하고, 사랑하며, 그것을 위해 봉사하십시오! 오직 이 방향에서만 당신은 정의, 개발, 참된 자유, 평화와 행복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교황 요한 바오로 2세 회칙, ‘생명의 복음’ 5항).

3. 이와 같은 교회의 가르침에서 볼 때, 최근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배아복제연구’는 생명을 그르치는 일이 분명합니다. 이는 인간 생명을 위한다는 취지와는 달리 생명을 저해하는 심각한 윤리적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인간 배아는 존엄한 인간 생명의 시작이므로 결코 실험실의 연구 조작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배아는 생명이고, 우리는 모두 배아였습니다. 난치병 치료가 목적이라고 하더라도 배아복제 실험을 정당화할 수는 없습니다. 인간 생명인 배아에서 줄기세포를 추출할 것이 아니라, 탯줄에서 추출하는 성체줄기세포 연구를 통해서도 얼마든지 난치병 치료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하는 점에서, 우리 가톨릭교회는 이 방향에서 연구를 지원하며 장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4. 생명은 언제나 선한 것이며,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선물인 생명은 살아있는 다른 피조물들에게 주신 생명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인간, 즉 살아있는 인간이 바로 하느님의 영광”입니다. 인간은 인간 자신과 창조주를 결합시켜주는 긴밀한 유대에 바탕을 둔, 고결한 품위를 부여받았으며, 하느님께서 인간 안에 반사되어 빛나고 있기 때문입니다(‘생명의 복음’ 34항 참조).

그런데 우리 사회, 우리 주변은 반생명적인 생각과 행동이 ‘죽음의 문화’를 부추기고 있습니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에 24.2명꼴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습니다. 특히 청소년과 노인층의 자살이 심각합니다. 그런가하면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률 면에서도 우리나라는 여전히 후진국 수준에 머물러 있고, 아직도 사형제도가 존속되고 있습니다.

인간 생명은 좋은 목적을 위해서라 할지라도 결코 인위적으로 박탈해서는 안 되는 가장 존엄한 것입니다. 또 아무리 흉악한 범죄자라 하더라도 극형으로써 목숨을 앗아버리기보다는 회개와 속죄의 기회를 주는 것이 복음정신이고 훨씬 더 인도적이기 때문에 사형제도는 폐지돼야 합니다.

5. 형제자매 여러분,

겉으로 보이는 것만 중히 여기고, 보이지 않는 것은 하찮게 여겨 무시하는 데에서 생명경시 풍조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최고의 가치인 생명 자체보다는 생명에 봉사해야 할 이차적 가치들을 더 중요시하고, 그래서 가치관이 전도되고 죽이는 문화, 죽음의 문화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렇듯 그릇된 가치관을 바로잡고 죽음의 문화를 생명의 문화로 바꾸어야 할 시대적 사명이 우리 평신도들에게 있습니다. 이제 우리 모두가 생명을 지키는 일에 앞장 서야 할 때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생명의 주인은 하느님이시고 우리는 관리인’일 뿐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복음 말씀은 바로 이 점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복음에서 종들이 주인으로부터 몇 달란트를 받았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받은 달란트를 어떻게 활용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생명을 지키는 이로서 우리가 받은 달란트가 얼마인가,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나 단체적으로 각자가 처한 위치에서 어떻게 소임을 수행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생명을 지키는 일은 먼저 가정에서부터 해나가야 할 것입니다. 자녀들에게 생명의 존귀함을 가르쳐 줍시다. 인간 생명은 임신하는 순간부터 자연적 죽음에 이르기까지 결코 훼손할 수 없는 존엄한 존재임을 깨우쳐 줍시다. 눈에 보이지 않고 별것 아니라고 해서 함부로 대할 수는 없습니다. 인간 생명뿐 아니라 살아 있는 모든 것에 경외심을 갖고 사랑으로 대하도록 가르쳐 줍시다.

6.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우리 평신도들은 세상에서 생명의 파수꾼 직분을 수행하는 데도 결코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합니다. 낙태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주위 사람들에게 태아 생명이 존엄하다는 사실을 일깨워 줍시다. 난치병 치료를 위한 배아복제가 당연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배아 역시 존엄한 인간 생명으로 마땅히 존중받아야 하며, 난치병 치료를 위해서 배아줄기세포가 아닌 성체줄기세포를 이용해서 얼마든지 연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줍시다. 죽을죄를 지은 사람일지라도 생명의 주인은 하느님이시므로 사형으로 목숨을 빼앗기보다는 회개하고 속죄할 기회를 주는 것이 마땅하다고 주장합시다. 삶의 의욕을 상실한 채 죽음을 선택하려는 이들에게는 생명은 소중한 것이라고, 아무리 힘들어도 죽음보다는 삶이 아름답다고 말해줍시다. 아니, 우리가 나서서 그들에게 삶의 의욕을 불어넣어 주고, 용기와 희망을 심어 줍시다. 아무리 힘들고 실망스러워도 삶이 더 의미 있다는 것을 사랑의 행동으로 보여줍시다.

살아있는 인간은 하느님의 영광입니다.

7. 오늘 평신도들의 큰 축제날인 서른여덟 번째 평신도 주일을 맞이해서우리 모두가 한 마음으로 축하의 인사를 나누고 싶습니다. 진심으로 서로 축하합시다.

끝으로, 오늘 두 번째 봉헌하는 헌금은 평신도사도직 활동을 위해 쓰인다는 점을 말씀드리면서 형제자매 모든 분께서 기꺼이 동참해주실 것을 호소합니다.

감사합니다.

2005년 11월 13일



연중 제33주일- 제37회 평신도 주일 담화문


- 가정과 사회를 아름답게 가꿉시다

2004/11/14

1. 서른일곱 번째 평신도주일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은 한국 천주교회가 정한 서른일곱 번째 평신도주일입니다.

이 뜻 깊은 날을 허락하신 하느님께 찬미와 영광을 드리면서 우리 평신도 모두가 서로 사랑할 것을 다짐하고, 다 함께 감사하며 스스로 경축하는 하루가 됐으면 합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를 통해서 평신도들의 소명과 사명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높아지면서 우리나라에서도 평신도들이 사도직을 더 잘 수행하기 위해서 평신도사도직협의회를 발족시킨 것이 36년 전인 1968년의 일입니다. 한국교회는 사도좌(使徒座)를 중심으로 하면서 보편교회와 일치하는 가운데, 지역교회 목자들이신 주교님을 비롯한 성직자 분들의 적극적인 뒷받침과 평신도들의 자발적인 노력으로, 이때부터 해마다 평신도주일을 지내고 있습니다.

2. 세상 복음화의 최일선에서 사도직을 수행하는 평신도

오늘 평신도주일을 맞이해서 평신도 사도직을 어떻게 수행하며, ‘평신도사도직협의회’, 또는 ‘평신도사도직 단체협의회’가 하는 일에 대해서 여러분과 함께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잘 아시는 대로 사도직(使徒職)은 온 세상에 그리스도 왕국을 펼치도록 교회에 맡겨진 사도적(使徒的) 사명을 모든 그리스도인이 수행하는 활동을 말합니다. 우리 신자들은 누구나 다 세례성사를 받을 때 이미 사도직에 불림을 받았으며, 우리 평신도들은 ‘주님의 포도원’인 각자 삶의 일터에서 사도직을 수행해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주신 각자의 ‘달란트’에 따라 세상 복음화의 최일선에서 주님을 증언하고 복음을 전해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안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 한국 천주교 평신도들은 220년 전 평신도 스스로 복음을 받아들이는 데에 앞장서서 교회 창설의 주역이 됐고, 수많은 순교자를 내며 이 땅에 신앙을 지키고 키워온 자랑스런 전통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러한 전통과 정신을 되살려, 오늘날 우리 사회에 몰아치고 있는 반그리스도교적 문화, 죽음의 문화, 포스트모더니즘 이후 종교다원주의의 부정적인 측면들을 극복해야 할 과제가 우리에게는 너무나 많습니다. 이와 같은 현상들에 대해 우리는 새로운 순교정신으로 임해야 할 때라고 믿습니다.

3. 단체사도직과 평협

“평협이 무엇하는 단체인가?”라고 물어 오시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평협은 한 마디로 평신도 사도직을 수행하는 단체들의 협의체라고 하겠습니다. 현재 전국적으로 군종교구를 포함한 열여섯 개 교구 가운데 신설 의정부교구를 제외한 모든 교구에 평협이 있습니다. 이처럼 각 교구 평협과 전국 단위위 여러 사도직 단체가 모여 전국 규모의 협의체를 구성한 것이 ‘한국천주교 평신도사도직협의회’입니다. 이를 줄여서 ‘전국평협’이라고 부릅니다.

전국평협에서는 분기별로 각 교구 평협 대표와 전국 단위의 사도직단체 대표들이 한 자리에 모여 그동안 수행해온 평신도사도직 활동을 평가하고 경험과 정보를 교환하며 그 활동을 촉진하기 위해 서로 협력해나가고 있습니다.

개인적인 친교 안에서도 교회의 사도직을 수행할 수가 있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단체를 통해서 더 효과적으로 사도직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사도직을 수행하는 단체는 다양하며, 교회가 개인적이 아닌 공동체로서 불렸기 때문에 단체 사도직은 교회의 근본정신에도 부합됩니다.

평신도사도직협의회는 발족 이후 30여 년 동안 이와 같은 단체사도직을 수행해 오면서 103위 성인들의 시성운동과 신뢰회복을 위한 내탓이오 운동 전개, 가톨릭대상 제정과 시상, 도덕성 회복을 위한 똑바로운동, 우리 상품 쓰기와 평신도제자리 찾기 운동, 그리고 공명선거 캠페인도 적극 벌여왔습니다.

4. “아름다운 가정 아름다운 세상”

한국천주교 평신도사도직협의회는 2004년 3월 13일 정기총회에서 새로운 회장단 구성과 함께 “아름다운 가정, 아름다운 세상” 구현을 위한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이혼율이 세계에서 두 번째이고, 출산율은 세계에서 가장 낮을 뿐만 아니라, 하루에도 4천명 이상의 태아가 죽어가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 앞에서 평협은 이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매일 밤 10시가 되면 가족이 함께 모여서 가정 기도를 바치고, 성서를 읽고 복음을 실천하며, 가정성화를 위해서 사도직 단체들과 협력하는 한편 생명문화를 존중하는 아름다운 가정을 건설해서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갈 것을 아울러 다짐하고 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날 우리 주위의 가정을 돌아보면서 하느님 백성들의 참된 가정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생각해봐야 하겠습니다. “가정은 더욱 풍요로운 인간성을 기르는 학교”라고 교회는 가르치고 있습니다(‘사목헌장’ 52). 가정의 구성원들은 서로 사랑하고, 어린 아이들과 병자들, 노인들을 돕고 사랑하면서, 매일 서로 봉사하면서 가진 것을 나누고 기쁨과 슬픔을 나누는 가운데 가정이 사랑의 학교로 자라나게 해야 합니다.

이렇게 해서 가정이 아름답고 건강해질 때 우리가 몸담고 살아가는 사회 또한 아름답게 가꾸어질 것입니다.

5. 평협 활동의 활성화

이제 우리 평협은 사회복음화를 위해서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천주교 신자 수는 전체 인구의 10%에도 못 미치고 있습니다. 거기에다가 신자 증가율은 더디게 올라가고 있는 반면, 쉬는 신자는 늘어나고 청년 신자 수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이러한 현상을 분석, 연구하여 적절한 사목적 대안을 제시하고, 사회 변화에 대응하는 효과적인 선교활동을 전개해야 할 때입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현실 생활과 직결되는 실업자 문제와 환경문제, 생명보호와 남북문제, 안보문제, 사립학교 관련 법개정문제 등 사회 각종 현안에 대해서 가톨릭 신앙인의 입장에서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대응하고 그 해법을 내놓아야 할 일들이 산적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북한인권과 탈북자 문제에 대해서는 더욱 더 깊은 관심을 가지고 대책을 세워야 할 때입니다.

앞으로 우리 사회를 건강하고 아름답게 만들며, 통일에 대비한 북한 복음화문제 등에 대해서도 평협이 해야 할 일은 많고, 이를 효과적으로 수행해 나가고 그 활동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평신도 여러분의 관심과 적극적인 참여가 매우 중요합니다.

이 자리에서 형제자매 여러분에게 부탁드릴 것이 있습니다. 오늘 평신도주일에는 평신도사도직 활동을 위한 봉헌금까지 교회가 배려하고 있습니다.

잠시 후 봉헌 시간에 여러분이 함께 해주실 이 헌금은 교구 평신도사도직협의회 활동을 위해서 쓰이고, 나머지 일정한 몫은 한국천주교 중앙협의회로 보내 전국평협 활동의 기금이 됩니다. 지금까지 평신도주일 헌금 금액은 너무나 적어서 평협 활동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가 극히 어려운 실정입니다. 아무쪼록 지금까지 말씀드린 여러 가지 평신도 활동에 적극 동참해주신다는 뜻으로 봉헌에 임해주실 것을 호소합니다. 내가 직접 나서서 해야 할 일을 교구평협과 전국평협이 앞장서서 해주는 일에 나도 한 몫을 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적극 동참해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끝으로 오늘 들으신 복음말씀의 마지막 부분을 여러분과 함께 묵상하면서 제 말씀을 마칠까 합니다.

“너희는 나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겠지만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참고 견디면 생명을 얻을 것이다.”(루가 21,17-19)

감사합니다.

2004년 11월 14일

평신도 사도직 협의회



연중 제33주일- 제36회 평신도 주일 담화문(요약)


- 가정·생명·평화 - 참된 가정은 평화를 건설하는 사랑의 학교입니다

2003/11/16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평신도 주일을 맞이해서 여러분 모두에게 따뜻한 사랑의 인사를 드립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평신도 그리스도인들을 통해서 하고자 하시는 뜻이 무엇이며, 그 뜻을 어떻게 이룰 수 있는지 지혜롭게 알아보면서 이를 실행할 것을 다짐했으면 합니다.

우리 교우들은 각자 삶의 자리에서 복음을 선포하고 생활하면서 성직자, 수도자와 함께 교회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세속에 살고 있으므로 “교회와 사회 안에서 다양한 사도직을 수행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교회 공동체와 가정, 청소년, 사회 환경, 국가와 국제 질서들입니다”(평신도교령 9).

올해 평신도 주일에 우리가 깊이 생각해 볼 문제는 가정에 관한 일입니다. “가정은 바로 사회의 핵심 세포가 되어야 할 사명을 하느님께 받았다. 가족들이 서로 사랑하고 함께 기도하며 교회의 가정 성소가 될 때에, 가정은 그 사명을 다하게 될 것이다”(평신도교령 11).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미래의 복음화는 가정 교회에 있다”고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의 현실에서 지나쳐버릴 수 없는 것이 매체들입니다. 인터넷과 텔레비전이 가정에 끼치는 영향은 엄청나며, 가족간의 대화를 단절시키기도 합니다. 각종 매체들이 혼전동거와 불륜, 성매매, 이혼 등 비정상적인 남녀관계를 미화하고 조장하면서 혼인과 가정의 가치를 근본적으로 위협하는 사례가 빈번합니다. 소돔과 고모라 시대를 연상케 할 만큼 그릇된 성문화가 요동을 치고 있습니다. 젊은 부부들의 심각한 저출산 형태도 낙태와 더불어 하느님의 창조사업을 가로막는 현상입니다.

가정은 세상을 탓하고 세상은 가정을 탓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때일수록 가정은 생명의 복음을 선포하고 기념하며 봉사하도록 요구받고 있습니다. 인간 생명은 선물로 주기 위해서 받은 선물이며, 이 같은 사실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독특한 사건이 ‘출산’입니다. “새 생명을 탄생시키는 부모들은 그들이 서로 사랑을 준 열매인 자녀가 자신들에게서 비롯된 선물이지만 결국 자신들을 위한 선물이라는 것”(제4차 세계가정대회)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가정과 생명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입니다.

한국 천주교 평신도사도직협의회는 지난 2001년부터 도덕성 회복을 위한 ‘똑바로 운동’을 전개해 오면서, 2003년 가을부터는 마리아사업회인 ‘포콜라레 운동’과 함께 ‘성매매 뿌리 뽑기 서명운동’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생각과 말과 행동을 똑바로 하면서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세상을 만들어 가고자 하는 똑바로 운동은 이제 가정에서부터 생명을 존중하고 이를 사회로 확산하면서 세계 평화에도 이바지해야 할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지난달에 끝난 ‘묵주기도의 해’를 통해 세계평화와 가정성화를 위해 기도할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묵주기도의 해’는 끝났지만 우리의 기도는 멈출 수 없고,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그리스도의 공생활을 묵상하는 ‘빛의 신비’ 또한 계속 바쳐야 할 것입니다. 기도는 어떤 대량 살상무기보다도 더 큰 힘으로 폭력과 전쟁을 막아 줍니다.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마태 5,9)고 하신 주님의 말씀대로, 우리 평신도 그리스도인들부터 투신할 때 좋은 결과가 올 것입니다. 가정에서부터 생명과 사랑을 배우면서 똑바로 살아간다면 평화를 앞당길 수 있습니다. 참된 가정은 평화를 건설하는 사랑의 학교입니다.

한국 천주교 평신도 사도직 협의회



연중 제33주일-평신도 주일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깨어 있습시다(1데살 5, 6)

2002/11/17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서른 다섯 번째 평신도주일을 맞이하여 여러분과 여러분 가정에 아버지 하느님의 은총이 풍성히 내리기를 기원합니다.

특별히 오늘은 우리 각자가 주님의 제자로서 가정과 일터에서 합당하게 살아왔는지 겸허하게 돌아보면서 “당신들도 내 포도원으로 가서 일하시오.”(마태 20,3-4) 하시는 그분의 음성에 귀기울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포도원은 온 세상, 곧 우리 평신도 그리스도인들이 하느님의 뜻에 따라 똑바로 바꾸어 나가야 할 세상입니다. ('평신도그리스도인’1항 참조)

1. 평신도는 새로운 복음화의 일꾼입니다.

증거를 통해 복음을 만방에 전하라는 사명을 지닌 우리 평신도는 성세성사를 통해 하느님 백성에 속하고 “현세적 일에 종사하며 하느님의 뜻대로 관리함으로써 천국을 찾도록 불린 사람들”(‘교회에 관한 교의헌장’31)입니다.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변해야 합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그 동안 꾸준히 강조해오신 ‘새로운 복음화’는 바로 “나부터 복음화되어야 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새롭다’는 것은 ‘열심하다’는 뜻을 담고 있으며, 새로운 복음화는 이미 복음화 된 지역이나 사람을 다시 복음화하는 것도 의미합니다.

새로운 방법과 새로운 열정, 새로운 표현으로 복음화에 투신할 것을 다짐하면서, 하느님의 백성인 우리는 교회 안에서 또 사회 속에서 사도직 활동을 충실히 수행함으로써 새로운 복음화의 결실을 맺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2. 도덕성 회복을 위한 똑바로 운동 전개

한국 천주교 평신도사도직협의회가 지난해 가을부터 벌이고 있는 도덕성 회복을 위한 ‘똑바로 운동’ 역시 증거를 통한 새 복음화 노력의 하나입니다.

도덕성 회복운동은 인간화 운동이며 인간성 회복운동입니다. 우리 자신부터 먼저 생각과 말과 행동을 똑바로 해서 바르고 정직한 삶을 살자는 것이 똑바로 운동입니다.

‘똑바로’라는 말은 ‘바르다’, ‘곧다’의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올바른’, ‘의로운’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정직하다’라는 뜻도 내포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가치관이 뒤바뀌고, 윤리와 도덕이 무너져 내리면서 부정과 부패가 실타래처럼 이어지고 있는 현실은 그리스도 신자인 나 자신을 포함해서 우리 모두가 똑바로 서있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양심을 똑바로 가져야 하고,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도 진실을 담아 똑바로 해야 합니다. 기도를 똑바로 하고, 정치와 경제생활도 똑바로 해야 합니다. 특히 다음 달에 실시되는 제16대 대통령 선거도 똑바로 해야 합니다. 나라와 겨레의 앞날을 바라보면서 똑바로 투표해야 할 것입니다.

성당에 와서 자리를 잡을 때도 똑바로 자리잡는 방법이 있습니다. 먼저 오신 분이 먼저 앞자리에 가운데부터 앉으신다면 뒤에 오시는 분을 배려하는 일이 됩니다. 그렇습니다. 남을 배려하는 것, 이것이 똑바로 살아가는 자세입니다.

그런데 이 운동의 취지에는 찬동하면서도 정작 ‘똑바로’ 스티커를 붙이는 데는 조심스러워하시는 분이 의외로 많이 계십니다. 한 마디로 부담스럽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시 한번 생각해볼 일입니다. 우리는 성인(聖人)이 되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이므로 잘못했더라도 다시 시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인들도 잘못을 범할 때가 있었지만, 잘못하는 그 순간 즉시 회개하고 다시 시작해서 완덕에 이르렀다고 하지 않습니까.

3. 성덕으로 나아가야 할 평신도

교황님께서는 2000년 대희년의 막을 내리면서 발표한 교서 <새천년기>에서 성덕의 중요성을 다시금 일깨워 주고 계십니다. 21세기를 살고 있는 오늘의 교회는 현시대와 새로운 영성의 요구에 부응한 성인들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교서는 "예비신자에게 '세례 받기를 원하십니까?'하고 묻는 것은 '성화되기를 바라십니까?'라고 묻는 것과 같다"고 말합니다.(제31항 참조)

교서는 또 우리가 절실히 필요로 하는 친교의 영성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4)고 말씀하신 ‘새 계명’을 지키는 일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교회의 가르침은 평신도들도 성인이 될 수 있다고 하는 것을 확실히 말해주는 대목입니다. 실제로 교황님은 지난해 2001년 10월 21일 처음으로 한 쌍의 부부를 동시에 복자로 선포했습니다. 순교하지 않은 부부 복자의 탄생은 2000년 교회 역사상 처음 있은 일이라고 합니다.

20세기 전반 로마에서 살았던 루이지와 마리아 벨트라메 콰트로키(Luigi e Maria Beltrame Quattrocchi)가 그들인데, 그들은 그들 안에 현존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함께 깨닫고, 계속해서 하느님을 첫 자리에 모시려 했습니다.

두 사람 다 교회생활에 매우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며, 자녀를 신앙으로 키우면서 하느님을 알고 사랑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네 자녀들 중 셋이 하느님께 자신들을 봉헌했고, 네 번째 자녀인 딸이 태어나려 할 즈음, 의사들은 산모의 생명이 위태로우니 낙태를 하라고 권고했지만, 이들 부부는 위험을 무릅쓰고 아기를 낳고자 했습니다. 이 딸은 그 후 언제나 부모님 곁에 머물러, 양친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보살펴드렸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으로부터, 그리고 성인들의 증거로부터 영감을 받으면서, 평범한 삶을 비범하게 살았던 이 부부는 성덕에 이르는 훌륭한 모범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4.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깨어 있읍시다.

전례력으로 한 해의 마지막 주일을 한 주간 앞둔 오늘, 평신도 주일을 지내면서 듣는 하느님의 말씀은 종말에 대한 준비를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하느님을 두려워하면서 남편에게 충실하고 열심히 일하는 여인이 칭찬 받고, 모험을 피하고 거짓 안전을 취한 쓸모 없는 종은 가진 것마저 빼앗길 뿐만 아니라, 쫓겨나 가슴을 치며 통곡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또한 제2독서에서는 ‘빛의 자녀’인 우리가 “다른 사람들처럼 잠자고 있을 것이 아니라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깨어 있자”(Ⅰ데살 5,6)고 당부합니다.

오늘 들은 성서 말씀처럼 빛의 자녀로서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깨어 있읍시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님의 말씀을 살고, 하느님을 사랑하며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은 깨어있음의 의미를 잘 알기 때문입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가정과 사회에서, 또한 본당과 교회운동 단체생활을 하면서도 주님의 포도밭을 가꾸는 일꾼으로서 열심히 살고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똑바로 살아가는 지름길입니다.

끝으로 오늘 2차 헌금은 평신도 사도직 활동을 위해 쓰인다는 점을 말씀 드립니다.(우리 본당의 현황도 아울러 말씀 드리겠습니다./ 각 본당 현황 소개)

감사합니다.



연중 제33주일(평신도 주일)

01/11/18

똑바로 운동에 다함께 나섭시다

형제 자매 여러분, 연중 제33주일인 오늘은 한국 천주교회가 정한 제34회 평신도 주일입니다.

한국 천주교회는 지난 1968년 주교회의 가을 정기총회에서 평신도의 날을 지내기로 한 이후 해마다 연중 마지막 주일(그리스도왕 대축일) 바로 전 주일을 평신도 주일로 지내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이처럼 평신도 주일을 제정해 지내고 있는 것은 세속 안에서 현세 사물을 비추며 관리함으로써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도록 부름 받은 우리 평신도들이 시대에 요청되는 평신도 사도직을 충실히 수행하도록 격려하고 자극하기 위해서입니다.

오늘 평신도 주일을 맞아 우리 평신도들에게 주어진 이런 사명을 다시 한번 되새기면서 이 시대에 요청되는 평신도 사도직은 무엇이고 이를 어떻게 수행해 나가야 할 것인지를 함께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잘 알고 계시듯이 한국천주교 평신도사도직협의회는 도덕성 회복을 위한 똑바로 운동을 전국적으로 전개하고 있습니다. 똑바로 운동 실천 선언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이 운동은 오늘의 사회에 가치관의 전도 현상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고 양심과 도덕이 서야 할 자리를 잃고 있어서 우리 자신부터 먼저 생각과 말과 행동을 똑바로 하여 바르고 정직한 삶을 살자는 의식 계몽 운동이자 생활 실천 운동입니다. 지난 9월 서울에서 시작한 똑바로 운동은 주교님들의 격려와 성원 속에 이제 전국 각 교구와 본당으로 일제히 확산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도덕성 회복을 위한 똑바로 운동이 단지 연례행사 치레로 하는 일회적인 구호성 운동이 아니라 시대의 징표를 통해서 드러나는 주님의 뜻에 합당하게 부응하기 위한 '시대의 요청'이자 우리 '그리스도인 양심의 호소'임을 강조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오늘을 우리 모든 평신도들이 개인적으로나 공동체적으로 똑바로 운동의 주역으로 나설 것을 결연히 다짐하는 날로 지내 주실 것을 당부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똑바로 하는 것이겠습니까. 방금 우리가 들은 독서와 복음 말씀은 똑바로 운동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간결하면서도 분명하게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제1독서의 말씀처럼 제멋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두려운 줄 알고 사는 것입니다. 제2독서의 말씀처럼 게으름을 부리거나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남의 일에만 참견하는 것이 아니라 말없이 일해서 제힘으로 벌어먹도록 하는 것입니다. 복음의 말씀처럼 사람들 앞에서 용감하게 주님의 복음을 증언하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시류에 영합하여 잇속을 차리지 않고 오히려 주님 앞에서 올곧고 떳떳하고 성실한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물론 똑바로 산다는 것이 쉬운 일만은 아닙니다. 제 잇속도 차리지 못한 채 바보처럼 산다는 핀잔을 받을 수도 있고, 혼자 올바른 척, 정직한 척 하지 말라는 조소나 질시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 안에서부터 먼저 이런 유혹이 머리를 치켜들고 올라올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가 참으로 똑바로 살려고 노력한다면 하느님 두려워할 줄 알고 말없이 제힘으로 성실히 벌어먹고 정직하게 살아가려고 노력한다면, 그때에는 오늘 제1독서의 말씀처럼 ?승리의 태양이 비춰와 우리의 병을 고쳐? 똑바로 살게 해주실 것입니다. 복음의 말씀처럼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이렇게 볼 때 오늘 독서와 복음의 말씀은 평신도 주일을 맞아 똑바로 운동에 결연히 나서려는 우리 평신도들에게 새삼 위안과 희망을 주는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제 우리 모두 도덕성 회복을 위한 똑바로 운동에 힘차게 나섭시다. 나부터 그리고 우리 함께 생각을 똑바로 하고 말을 똑바로 하고 행동을 똑바로 하여, 우리 자신과 가정과 사회 전체를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우리,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가정,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사회로 변화시켜 나갑시다.

여러분 모두의 가정에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가득하시기를 빕니다.

2001년 11월 18일 한국 천주교 평신도 사도직 협의회



연중 제33주일(평신도 주일)

2000/11/19

참된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아갑시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은 연중 제33주일인 동시에, 새 천년기에 맞이하는 첫 번째 평신도주일입니다.

연중 마지막 주일을 한 주간 앞두고 서른 세 번째로 지내는 오늘 평신도주일 성서 말씀의 주제는 '종말'입니다. 나뭇잎이 떨어지는 11월의 늦가을은 그 자체로 우리의 스승이며, 위령성월도 후반기로 접어든 이즈음, 우리 중의 누가 예기치 못한 죽음을 당했다고 한다면 이 역시 우리에게 묵상거리를 충분히 주고있는 것입니다.

종말은 문 앞에 이르렀고, 그와 함께 사람의 아들도 문 앞에 이르렀습니다. '문 앞에 가까이 이르렀다'는 이 표현에는 심판과 구원과 심판자가 결합돼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깊이 묵상해야 할 대목은 사람들이 지금 이미 지니고 있는 것, 곧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는 일입니다.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마르 13,31)이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들은 천지보다 영원하며 사람의 아들의 심판에서 기준이 됩니다.

복음서는 계속해서 "그러나 그 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13,32)면서 항상 깨어있을 것을 촉구합니다. 그리스도 신자에게 종말론적 기다림은 매일 매일의 활동과 일에서 이탈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 온갖 사물과 이 세상을 결정적으로 하느님의 나라를 이루는 데 더욱더 합당한 요소가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면서 항상 깨어 생활한다는 것, 이것이 중요합니다.

예수께서는 "나는 이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이 불이 이미 타올랐다면 얼마나 좋았겠느냐!"(루가 12,49)고 말씀하셨는데, 이는 사도직의 핵심을 일러주시는 말씀입니다. 이 불은 우리 사이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사랑을 통해서 나타나고 번져갑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세상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요한 13,35)라고 하셨습니다. 불이 정복하고 휩쓸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듯이 사도직의 힘은 서로 사랑하는 데에 있습니다. 서로 서로 사랑하는 것, 즉 '사랑을 가져다주는 예수님의 현존'은 모든 것을 변화시키는 불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불은 바로 이러한 사랑의 관계에서 번져갑니다.

우리 사이에 이러한 서로간의 사랑이 있고, 다른 이들이 이러한 불이 켜져 있는 것을 보게 된다면, 바로 이 때 우리는 하느님과 그분의 현존을 다른 사람들에게 증명해 보일 수가 있는 것입니다.

형제의 고통을 우리의 것으로 하고 함께 기쁨을 나누게 될 때까지 참으로 우리는 형제와 함께 머무르고, 함께 느끼며, 하나가 되어주어야 합니다. 그러면서 하느님의 뜻을 실행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 자신이 똑바로 서 있어야 하고,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거룩한 가정을 이룩하면서 선교의 열정으로 사도직을 제대로 수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국천주교 평신도사도직 협의회는 지난 달 10월 26일부터 29일까지 '새 천년기 그리스도의 증인들- 그리스도 어제도 오늘도 영원히'라는 주제를 내걸고 '대희년 평신도대회'를 개최했습니다. 특히 29일 장엄미사 중에는 '새 천년 한국 평신도의 반성과 다짐'을 통해 그 동안 가정과 이웃과 일터에서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지 못했음을 반성하면서, 새 복음화의 열정으로 그리스도를 선포하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을 살기로 뜻을 모았던 것입니다.

이제 그 다짐을 다시 한번 새기면서 우리 모든 평신도가 이를 실천함으로써 빛과 소금과 누룩의 역할을 더 잘 해나갔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 우리는 먼저 기도생활과 성사생활을 열심히 하여 자신을 성화하는 일에 힘쓰겠습니다.

-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서로 사랑하며 가족이 함께 이웃에게 봉사하는 삶을 살겠습니다.

- 우리는 가정과 이웃과 직장에서 복음을 전하고 실천하는 일에 적극 투신하여 적어도 한 해에 한 사람 이상 입교시키겠습니다.

- 우리는 해외선교를 위해 기도와 물질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 우리는 수태에서부터 자연사에 이르는 생명의 모든 단계에서 인권이 존중되도록 힘쓰겠습니다. 가난과 질병으로 고통받거나 소외당하는 사람이 없는 사회 건설을 위해 자신이 받은 재능을 값있게 쓰겠습니다.

- 우리는 남북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며, 민족이 하나되는 날까지 북한 동포들과의 나눔에 힘쓰겠습니다. 또한 우리 사회의 계층간, 지역간, 세대간의 벽과 골을 메우는 일에 적극 나섬으로써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또한 우리는 이날 평신도대회에서 30년 전 선배 평신도들이 '103위 한국 순교복자 시성운동'을 전개한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면서, 다시금 마음을 모아 첫 번째 전국적인 박해인 1801년 신유박해 순교자들의 시복을 위한 기도운동을 벌이기로 했다는 점을 상기시켜 드리면서 이 기도운동에 모두가 동참해 주실 것을 청합니다.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한국천주교 평신도사도직 협의회



연중 제33주일(평신도 주일)

(가해) 마태 25, 14-30; 99/11/14

오늘은 평신도 주일을 맞아 평신도가 교회의 주인이 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해 보았습니다.

우선 주님과 주님의 말씀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말씀대로 살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주님을 모르거나 심지어 거부하는 세상 한 가운데서 주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또 그대로 살아야 합니다. 증거하는 것이지요. "너희는 가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내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으 이름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것을 지키도록 가르쳐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 19-20). "잡혀 갔을 때에 '무슨 말을 어떻게 할까?' 하고 걱정하지 말아라. 때가 오면 너희가 해야 할 말을 일러 주실 것이다"(마태 10, 19). 그러기 위해서는 매일 성서를 연구하고 묵상하고 기도하면서 주님을 알고 자신이 깨달은 주님의 말씀을 자신의 일상에서 적용하고 실현해서 주님을 모셔야 합니다. 그래서 신학교나 교리신학원에서 교리를 탐구하고 성서 공부를 통해 주님의 말씀을 더 잘 배우고 구역, 반모임에서 형제들과 말씀을 나누어 그 말씀을 실현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교회를 위해 헌신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너희 중에 으뜸가는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태 23, 11) 라고 하셨습니다. 누구나 생업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자기 생업에만 충실한 사람은 자기의 삶에 대한 인정은 받을지 몰라도 다른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웃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은 자기가 헌신했던 사람들과 그 사실을 아는 사람들에게 감사와 칭찬을 받고 그들의 지도자가 될 수 있습니다. 교회에 헌신하고 형제들을 위해 봉사할 때 자기 교회가 됩니다. 교회의 주인이자 지도자가 되는 것이죠.

그리고 또 교회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삼아 감싸주고 삭힐 줄 알아야 합니다. 교회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옵니다. 그것도 돈을 많이 가지고 인격이 좋은 사람들만 오는 것이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가진 것이 적고 인격적으로 모가 나고 죄가 많은 사람들이 그 죄를 씻고 주님의 사랑으로 채워지기를 바라며 찾아옵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교회는 주님의 진리를 가지고 있지만, 죄인들이 모여 주님의 구원을 바라는 죄인들의 교회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교회에서 사람들이 자신들의 죄를 벗어버리고 다시 태어날 때까지 그리고 다시 태어날 수 있도록 그 죄를 받아주어야 합니다. 그러자면 그가 죄를 벗을 때까지 그로 인한 아픔과 더러움을 대신 짊어주어야 하고 꼴아닌 꼴도 보고 당하게도 됩니다. 교회에는 하느님의 사랑이 있지만, 교인들 너도 나도 그 하느님의 사랑을 받고자만 한다면 그 교회는 아수라장이 될 뿐입니다. 그러나 사랑을 받고자 하는 이에게 채워주기 시작한다면 교회는 진정 주님의 사랑이 살아있는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몸은 하나이지만 많은 지체를 가지고 있고 몸에 딸린 지체는 많지만 그 모두가 한 몸을 이루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몸도 그러합니다. 눈이 손더러 '너는 나에게 소용이 없다' 고 말할 수도 없고 머리가 발더러 '너는 나에게 소용이 없다' 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몸 가운데서 다른 것들보다 약하다고 여겨지는 부분이 오히려 더 요긴합니다. 우리는 몸 가운데서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부분을 더욱 조심스럽게 감싸고 또 보기 흉한 부분을 더 귀중하게 여겨 주셔서 몸의 조화를 이루게 해 주셨습니다. 이것은 몸 안에 분열이 생기지 않고 모든 지체가 서로 도와 나가도록 하시려는 것입니다. 한 지체가 고통을 당하면 다른 모든 지체도 함께 아파하지 않겠습니까? 또 한 지체가 영광스럽게 되면 다른 모든 지체도 함께 기뻐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은 다 함께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고 있으며 한 사람 한 사람은 그 지체가 되어 있습니다"(1고린 12, 12. 21-27).

교우 여러분, 누가 뭐래도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사랑을 받아서 주님의 말씀을 실현하며 교회와 형제들 그리고 불우한 이웃에게 빛을 주는 책임있는 교회 신자가 됩시다. 소공동체의 복음화 그리고 그를 통한 이웃 선교와 이웃 돕기, 2000년 대희년을 맞이하는 평신도 지도자가 됩시다.



연중 제33주일(평신도 주일)

(다해) 루가 21,5-19 : 98/11/13

저는 신자분들께 "잘 사세요!"하고 인사합니다. 그런데 과연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일까? 한편 요사이 사이비 종교지도자들은 지구의 마지막날을 언급하면서, 우리에게 겁마저 줍니다. 그래서 종교가 사람들에게 기쁜소식이 아니라 협박과 세상 재물과 연관된 사기의 형태마저 띄고 다가옵니다. 오늘 제자들도 예수님께 묻습니다. "선생님, 그런 일이 언제 일어나겠습니까? 그리고 그런 일이 일어날 즈음해서 어떤 징조가 나타나겠습니까?"(루가 21,7)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앞으로 많은 사람이 내 이름을 내세우며 나타나서 '내가 바로 그리스도다!' 혹은 '때가 왔다!'하고 떠들더라도 속지 않도록 조심하고 그들을 따라가지 말라. 또… 듣더라고 두려워하지 말라.… 그렇다고 끝날이 곧 오는 것은 아니다."(루가 21,8-9)하시면서 우리들의 마음을 달래주십니다.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사도 바오로는 오늘 데살로니카에서 게으른 생활을 하며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남의 일에만 참견하는 사람들에게 "말없이 일해서 제 힘으로 벌어먹도록 하십시오."(2데살 3,12ㄴ)라고 권고합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이 어릴 때부터 꿈꾸어 왔고, 지금도 옳다고 생각하고, 마땅히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하여 건의해 왔던 그 일들을 여러분 자신이 시작하셔서 완성을 이루십시오. 아무도 여러분이 필요하다고 느끼시는 것을 대신 이루어주지 않습니다. 필요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그만큼 더 그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애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생각하고 구상해 온 사람이 됩니다. 그런데 그냥 마음속에만 담아 두고 있으면서, 누가 대신해 주기를 기다리기만 한다면 차라리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보다도 못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신앙의 눈으로 볼 때, 주님께서 나에게 어떤 것을 보고 느끼게 했다면 그것은 주님께서 나를 그 어떤 것에로 부르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어떤 것이 한 순간의 느낌이나 수상에 그치지 않고 계속 내 가슴속에서 떠오르고 또 내 마음을 끌어당기고 또 움직이도록 한다면 그것은 자신의 성소라고까지 말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안에 계셔서 여러분에게 당신의 뜻에 맞는 일을 하고자 하는 마음을 일으켜 주시고 그 일을 할 힘을 주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필립 2,13)

우리는 신앙인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주님이시라고 믿어 고백했고 또 그 믿음에 따라 주님의 말씀대로 살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주님을 사랑해서 주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주님께서 주시는 말씀대로 살아가도록 하십시오. 그래서 여러분의 가정과 여러분이 일하고 몸담고 있는 이 사회에 하느님 나라가 하루 빨리 이루어지도록 하십시오.



연중 제33주일(평신도 주일)

(나해) 마르 13,24-32 : 98/11/16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재난이 다 지나면 해는 어두워지고 달은 빛을 잃고 별들은 하늘에서 떨어지며 모든 천체가 흔들릴 것이다."(마르 13,24-25) 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현세에서 가끔 무엇이든 다 이룰 수 있고 또 다 이루어질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삽니다. 그래서 경우에 따라서는 욕심도 부리게 되고 과도한 욕망 즉 탐욕으로 인해 자기 자신을 스스로 망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과도한 욕망으로 인해 실패를 하거나 파산을 하게 되면 그제야 '아, 내가 욕심을 부렸구나!' 하고 자인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세상에서 화려하고 그럴듯하게 보이는 권좌와 부, 명예 등이 정말 허망한 것이고, 헛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지금까지 자기가 최고라고 여기고 또 가지고 싶고 도달하고 싶어하던 그 모든 것이 빛을 잃고 자기 생각이 흔들리게 됩니다. 어쩌면 이러한 실패가 우리를 눈뜨게 하고 제정신이 들어 주님을 쳐다보고 믿게 하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사람의 아들이 구름을 타고 권능을 떨치며 영광에 싸여 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26)

한편 주님은 영광에 싸여 오십니다. 그분은 정복자와도 같은 모습으로 우리를 억압하고 우리를 괴롭히러 오는 것이 아니라, "그때에 사람의 아들은 천사들을 보내어 땅 끝에서 하늘 끝까지 사방으로부터 뽑힌 사람들을 모을 것이다."(27) 이 얼마나 고맙고 감격할 일인가? 어떤 사람들은 "주님께서 곧 오실 터이니, 가진 것을 다 팔아 나에게 바쳐라." 하기도 하고, "하늘에 오를 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모두 집과 가족과 재산을 버리고 가진 것을 다 가지고 와 바친 다음에 여기서 하늘에 오를 것을 기다려라."고 협박과 공갈을 일삼는다.

그런데 성서는 우리에게 말합니다. 주님이 오시면 우리 뽑힌 사람들을 모을 것이라고! 여기 저기 흩어져, 돈과 세상의 모든 굴레의 노예가 되어 있는 사람들을 다 불러모으실 것이라고. 우리의 잘남과 잘못을 따지지 않으시고 우리를 뽑아서 불러모으실 것이라니 이 얼마나 기쁜 소식일까! 정말 그런 주님께서 어서 오셔서 나를 구해주셨으면 좋겠다. 주님 우리를 구원하시러 어서 오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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