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9주일

(가해) 마태 7,21-27; 11/0 3/0 6

지난 한 주간 동안 본당 사목협의회 각 분과위원들과의 만남을 가졌습니다. 만남을 하면 할수록 이분들이 정말 수고가 많으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힘겨운 세파와 아무리 해도 다 할 수 없는 가정에서의 의무를 하면서도, 시간과 정성을 쪼개어 교회에 헌신하는 평신도 지도자들의 노고 덕분에 우리가 지금 이렇게 살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물론 이분들의 노고를 받아주시고 당신 영광 안으로 이끌어 열매를 맺어주시는 주님의 은총에 더욱 깊이 찬미와 감사를 드립니다.

아울러 우스개 소리로, 면담 중에 이영춘 신부님을 하도 거론하시기에, 저는 아무리 열심히 해도 이영춘 신부님의 그늘 아래에서 벗어날 수 없겠구나 하는 마음도 들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김숭호 신부님은 보수 공사하고 빚 갚느라 아끼고 아껴 신자들의 욕을 잔뜩 먹고 가셨으니, 신부님은 걱정 말고 신자들을 위해 돈 많이 쓰셔도 좋습니다. “ 하시는 말을 들으면서 그 동안 선임 사제들의 덕에 내가 살게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앞으로 본당 사목을 하면서, 선임 사제들의 노고를 기억하여 가능하면 선임 사제들의 사목 방향을 계승, 유지하는데 수고를 게을리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울러 선교의 활성화로 2020년에 서울 인구 대비 신자비율을 20%로 만들자고 하시며 2020 운동을 주창하신 교구장님의 사목정책을 본당 사목계획에 충실히 적용해야겠다는 마음이 듭니다.

서울대교구장이신 정진석 추기경님께서는 올 2011년 사목교서에서 사목표어를 “새로운 시대, 새로운 복음화”로 잡으셨습니다. 교구장님께서는 눈부신 경제발전에 비해 빈부의 격차가 심화되었고, 전통적인 가치관이 붕괴되고, 인간보다 물질이 우선되는 그릇된 가치관이 도덕과 양심마저 위협하고 있으며, 특히 자살이나 낙태의 증가, 배아실험 등 생명파괴의 행위가 자행되고 있다고 오늘의 현실을 바라보셨습니다. 그리고 교회 역시 본당과 지역 간의 복음화의 차이가 심화되고, 미사참례자 수의 감소, 청소년들의 소극적인 교회 참여 등으로 ‘새로운 복음화’에 직면하였다고 말씀하십니다.

교구장님께서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말씀을 인용하여, 새로운 복음화란 “새로운 열의, 새로운 방법, 새로운 표현”으로 이루어지는 복음화를 의미한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평신도 그리스도인』 34항을 인용하여, “오로지 새로운 복음화만이 깊고 빛나는 신앙의 성장을 보장할 수 있다.”고 말씀하시면서, “이의 실현을 위하여 긴요한 것은 이들 선진 국가나 민족들의 교회 공동체 자체의 구조를 먼저 개선하여 그리스도화 하는 일”이라고 강조하셨습니다. 교구장님께서는 아울러 교회는 그리스도 예수님의 복음을 온 세상에 선포하지만, 무엇보다도 교회 자신이 끊임없는 회개와 쇄신으로 자신을 복음화 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새로운 복음화는 어떻게 이룰 수 있는가? 지금까지 우리가 살면서 해왔던 신앙생활로는 부족하다는 말인가?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 그러고는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좋은 활동을 많이 하고, 기적을 많이 일으키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부언설명을 하시십니다. 그리고는 “나의 이 말을 듣고 실행하는 이는 모두 자기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슬기로운 사람과 같을 것이다. ”라고 확언하십니다.

교황 바오로 6세는 『현대의 복음선교』에서 ‘복음 선교는 그리스도를 알리고 세례를 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17항), “하느님의 말씀과 구원계획에 상반되는 인간의 판단 기준, 가치관, 관심 사항, 사고방식, 영감의 원천, 생활 양식 등에 복음의 힘으로 영향을 미쳐 그것들을 역전시키고 바로잡는 데 있다.”(19항)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교구장님도 이 말씀을 사목교서에 인용하셨습니다. 바오로 6세는 또 우리의 삶과 전통 및 생활 관습을 아우르고 있는 ‘문화의 복음화도 필요하다’(20항)고 덧붙이셨습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교회의 선교 사명』에서 복음화는 교회가 인간과 전 인류에게 기여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공헌이며(2항), “선교는 믿음의 문제이며 그리스도와 우리에 대한 그분의 사랑을 믿는 우리 믿음의 정확한 지표”(11항)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선교를 비그리스도인에 대한 선교,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사목적 배려, 더 이상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한 새로운 복음화, 즉 재복음화로 나누었습니다(33항).

그리고 선교 방법으로는 실천을 통한 증거와 부활하신 예수님의 복음 선포, 그리스도교적인 회개와 세례, 지역 교회 설립, 복음화의 힘인 기초 교회 공동체 육성, 복음과 민족 문화와의 융합, 타종교인들과의 대화, 양심 교육을 통한 인간 발전,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사랑의 실천 등을 선교의 아홉 가지 방법으로 잡았습니다. 그 중 “주교들과 주교회의들이 사목 활동의 우선 과제로 추진하고 있는 기초 교회 공동체는 가정이나 그와 비슷한 한정된 환경에서 함께 모여 기도하고 성경을 읽으며 교리를 공부하고 인간과 교회 문제들을 공동 노력으로 해결하고자 토론하는 그리스도인 모임”이라고 정의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공동체들은 교회 안에서 활력의 표지이고 신자 양성과 복음화의 도구이며, ‘사랑의 문화’에 바탕을 둔 새로운 사회의 출발점”(51항)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는 교회의 모습을 ‘하느님 백성인 교회’,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성령의 궁전인 교회’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들이 다 함께 그리스도 신자로서 하느님 나라를 건설해 나가는 하느님 백성이며, 또 교회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고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가 한 몸을 이루며, 교회는 또 주님의 성령께서 머무시는 성령의 궁전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또 교회의 모형을 교계제도라는 사회조직의 형태를 갖춘 ‘제도인 교회’, 주님을 세상에 드러내는 ‘성사인 교회’, 주님 말씀을 듣는 ‘청취자인 교회’, ‘제자들의 공동체인 교회’, ‘주님의 고난 받는 종인 교회’, 그리고 ‘친교인 교회’라고 선언했습니다.

특별히 ‘친교인 교회’ 모형은 삼위일체 하느님의 친교와 일치,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친교와 일치, 세계교회와 지역교회 그리고 교구와 본당 사이의 친교와 일치, 교회 구성원간의 친교와 일치를 친교 교회론의 원형으로 삼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친교는 일치와 사랑과 평화의 주요소입니다.

1985년 제2차 세계 주교 대의원회의에서 주교님들은 “교회는 성사이다. 즉, 하느님과 맺는 친교의 표징이고 도구이며, 또한 인간들이 다른 인간들과 맺는 친교와 화해의 표징이며 도구이다.”라고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그 친교를 가장 잘 표현하고 수립할 수 있는 교회의 형태를 소공동체로 삼았습니다. “만일 새로운 기초 공동체들이 진실로 교회와 일치하고 있다면, 그들은 친교의 진실한 표현이며 보다 항구한 친교의 건설을 위한 수단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교회 삶의 커다란 희망의 원인이 될 것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세계 주교 대의원회의를 거친 후 이 친교 교회론은 각 대륙에서 그 대륙별 특성에 맞게 발전시켜 왔습니다. 라틴 아메리카 교회에서는 ‘기초 교회 공동체’란 이름으로, 아프리카 교회서는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란 이름으로, 아시아 교회에서는 ‘소공동체’로 자리매김하였습니다.

1993년 서울대교구장 김수환 추기경은 교회의 외적 성장에 비해 교회 내적으로 복음정신에 기초한 친교와 봉사의 공동체 모습을 상실했다는 현실 진단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김 추기경님은 복음화를 이루기 위해 소공동체를 건설하자는 사목정책을 선언하였습니다. 2000년대 복음화를 향한 소공동체 사목의 주안점을 ‘말씀 중심의 친교 공동체’, ‘사회 복음화의 사명 실천’으로 잡았습니다. 서울대교구는 친교 교회론의 주제인 ‘공동체들의 친교’를 ‘공동체들로 이루어진 공동체’로 번역하고 소공동체 사목을 시작했습니다.

이상의 내용과 친교 교회론의 대륙별 배경과 발전사에 대해서는 제 책 ‘공동체들의 친교’를 참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그 책에는 제 사목정책의 근간이요 기본이 되는 내용이 담겨있으므로 본당의 사목협의회 및 각 단체 지도자들은 꼭 숙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서울대교구가 소공동체 사목을 시작한지 근 20여 년이 흘렀습니다. 저희 삼성동 본당은 2000년 9월 7일에 설립되었고, 설립하자 마자 교구의 사목 방침에 따라 소공동체 사목을 펼쳐왔습니다. 그리고 지난 해에 본당 설립 10주년을 맞았습니다. 우리 모두는 이제 지난 10년간의 사목과 그에 따른 우리의 신자생활을 되돌아 보아야 하겠습니다. 때 마침 내려주신 교구장님의 새 복음화라는 명제 앞에 우리의 삶이 어떻게 주님의 복음 말씀과 교회의 정신과 일치하며 어떻게 다른지 살펴 보아야 하겠습니다. 아울러 변천하는 새로운 사회 앞에 우리의 교회가 어떻게 선교와 복음화의 역할을 다해 낼 수 있을지 모색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주님과 일치하고 있는 친교의 모습은 더욱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고, 멀리 떨어져 벗어나 있는 부분이 있다면 새로운 복음화와 재 복음화 과정을 통해 바로 잡아야 할 것입니다.

올 한 해 우리 교회의 사목정책의 주제어는 ‘공동체들의 친교’입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하느님과 형제 자매들과 친교를 이루며, 그 친교를 통해 우리 자신과 사회 복음화를 이룰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반성과 숙고 그리고 그에 따른 재복음화가 우리 교회를 ‘복음 공동체’, ‘친교의 공동체’로 만들 것입니다.

“나의 이 말을 듣고 실행하는 이는 모두 자기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슬기로운 사람과 같을 것이다.” 아멘.


연중 제9주일

(나해) 마르 2, 23-3, 6: 2000/03/05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길을 가다가 배가 고프셔서 밀 이삭을 잘라먹었습니다. 그러자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예수님께 따졌습니다. "보십시오, 왜 저 사람들이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될 일을 하고 있습니까?"(24절)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두둔하셨습니다. "에비아달 대사제 때에 다윗은 하느님의 집에 들어가서 제단에 차려 놓은 방을 먹고 함께 있던 사람들에게도 주었다. 그 빵은 사제들밖에는 아무도 먹을 수 없는 빵이 아니었더냐?"(26) 예수님의 이 말씀은, '안식일에 빵이 없다고 굶어 죽는 것이 낳겠느냐? 아니면 그나마 밀이라도 잘라먹는 것이 낳겠느냐?'라는 소리로 들립니다.

안식일은 쉬는 날입니다. 천지창조 때 하느님께서는 6일 동안 세상을 만드시고 7일째 되는 날에 쉬시며 하느님께서 만드신 세상을 축복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을 믿는 유다인들은 7일째 되는 날을 안식일로 정해서 하느님께 감사드리는 예를 바치고 쉬었습니다. 그러니까 6일동안 일하고 7일째 되는 날은 6일 동안 번 것으로 먹고 쉬는 것입니다. 사실 이 휴식은 주인 뿐 아니라 그 주인 밑에서 일하는 남종과 여종에게 그리고 땅에게 더 필요한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또 이렇게 마음놓고 쉴 수 있도록, 7일째 양식을 6일째 되는 날에 곱빼기로 주셨습니다. 그래서 유다인들은 이런 안식일 정신으로 7년째 되는 해를 안식년으로 정하고 자기와 자기 종들과 자기 소유의 땅을 놀게 했고 7년을 7번 지난 다음해인 50년째를 희년으로 정해 쉬고 종들을 해방시키고 원상 회복하는 해로 지냈습니다. 그런데 차츰 인간을 고된 노동에서 쉬게 하려는 하느님의 사랑에 감사드리는 것은 잊어버리고 점차로 쉬어야만 한다는 것만 법으로 남아 짐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오늘 말씀하십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은 아니다."(27)

그리고 한 단계 더 높여서 말씀하십니다.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28) 예수님께 안식일 법을 상기시키려던 사람들에게 오히려 예수님은 안식일의 본 뜻과 섬겨야 할 분이 누구이신지를 상기시켜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께서 부활하신 날을 주님의 날로 정해 안식일처럼 지내고 있습니다. 이 주일에 안식일의 본 뜻에 맞게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우리와 우리가 데리고 일하는 사람들을 쉬게 해야 할뿐만 아니라 주님 말씀대로 다른 이들을 살리고 돕는 일에도 충실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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