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 승천 대축일 메시지


“선을 행하는 모든 이에게는 영광과 명예와 평화가 내릴 것입니다.” (로마 2,10)

15/08/15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평화의 모후이신 성모님의 승천 대축일을 축하드리며 주님께서 주시는 평화가 여러분 모두와 함께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교회는 성모 승천 대축일을 경축하면서 “성모 마리아는 당신 모성애로써 당신 아드님의 형제들이 지상 여정에서 위험과 고통 중에 있는 것을 돌보시어 행복한 고향으로 인도해 주신다.”(「교회헌장」 62항 참조)는 사실을 기억합니다. 성모님의 승천은 특별히 우리 신앙인들도 주님 부활의 영광에 참여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교회는 초대교회 때부터 성모 마리아를 “교회의 어머니, 신앙의 어머니”로 존경해왔습니다. 우리 신앙인들이 성모 마리아를 존경하는 것은 그분의 깊은 신앙으로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성모 마리아는 평생 동안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믿고, 마음 깊이 새겨서 실천한 참된 신앙인이었습니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라는 위대한 신앙고백으로 하느님의 구원 역사에 깊이 동참하셨습니다. 성모님의 일생은 어렵고 힘든 고통의 삶이었지만 온전히 하느님의 부르심에 헌신하는 응답의 삶이었습니다. 우리도 성모님을 본받아 힘들고 고달픈 인생 여정에서 희망을 잃지 않고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며 살아가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올해는 성모 승천 대축일에 해방된 우리나라가 광복과 더불어 남북으로 분단된지 70주년을 맞이하는 해입니다. 70년이란 긴 세월 동안 같은 언어를 쓰는 한 민족이 반목하면서 지낸다는 것은 매우 슬픈 현실입니다. 그동안 남과 북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화해와 평화를 위해 서로 많은 노력을 해왔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서로의 갈등과 반목의 골이 더 깊어지는 안타까운 현실에 직면해 있습니다. 또한 우리 사회 곳곳에 갈등과 분열, 증오와 대립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남과 북은 평화통일과 민족의 동질성 회복을 위해, 우리 사회는 소통과 사회적 통합을 위해 더욱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을 굳건히 믿었던 성모님께서 두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던 것처럼, 우리 역시 희망을 간직해야 합니다.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루카 1,37 참조)

한반도의 평화를 이루기 위해 우리 신앙인이 해야 할 중요한 일 중의 하나는 기도하는 것입니다. 분단 시대의 교회는 민족의 화해와 일치 그리고 한반도 평화, 아시아와 세계평화를 위해서 더 열심히 지속적으로 기도를 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 겨레는 분열과 미움을 버리고 남북을 넘어서 아시아 안에서, 모든 이들과 함께, 평화와 화해의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우리의 기도는 구체적 행동으로 실천되어야 합니다. 우리 신앙인들이 분단 상황에서 가장 고통받고 있는 북한 주민의 삶에 도움과 지원을 계속할 때, 한반도에 평화와 일치의 싹이 자라나기 시작할 것입니다. 남북한 당국자들은 남북 분단으로 고통받는 형제들을 먼저 생각하고, 서로 협력하여 평화정착과 더불어 한반도의 비핵화, 미래의 번영을 위한 대화를 시작해야 합니다. 하느님이 주시는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편리와 이익보다 공동선을 이루겠다는 의지와 용기, 실천이 가장 필요합니다. 하느님께서 “선을 행하는 모든 이에게는 영광과 명예와 평화를 내려주실 것입니다.”(로마 2,10 참조)

성모 승천 대축일을 맞이하여, 우리나라가 하느님의 은총으로 분단의 상처와 아픔을 극복하고 사회적 통합과 일치, 화해와 통일을 이루도록 기원합니다.

또한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많은 문제와 어려움들이 어머니이신 성모 마리아의 도우심으로 지혜롭게 극복되기를 기도드립니다. 그래서 온 겨레가 “더 나은 희망이 주어져, 우리는 그것을 통하여 하느님께 다가갑니다.”(히브 7,19)라는 찬미의 노래를 부르는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바랍니다.__

다시 한번 성모 승천 대축일을 함께 축하하며, 우리 신앙인들은 남북은 물론 우리 민족을 갈라놓는 모든 것으로부터 화해와 일치를 이루도록 주님께 간절히 청합시다.

“평화의 모후이신 성모 마리아여! 우리 민족을 축복해주시고, 남북이 진정으로 화해를 이루어 한반도에 평화의 날이 올 수 있도록 하느님께 전구해주소서. 아멘.”

2015년 8월15일

천주교 서울대교구

교구장 염수정 추기경



성모 승천 대축일 아시아 청년들과 만남

솔뫼 성지, 2014년 8월 15일

사랑하는 젊은 친구 여러분,

“저희가 여기서 지내면 좋겠습니다”(마태 17, 4). 이는 성 베드로 사도가 타보르 산에서 영광 속에 변모하신 주님께 드린 말씀입니다. 정말 우리가 오늘 이곳, 한국 교회 초기에 주님의 영광을 드러낸 순교성지에서 함께 지내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좋은 일입니다. 아시아 전역의 젊은이들이 함께 모인 이 대회를 통해서 우리는, 예수님의 영광이 우리 가운데에 계심을, 모든 국가와 언어와 민족을 포용하는 교회 안에 계심을, 그리고 모든 것을 새롭게 젊게 살아있게 하시는 성령 안에 계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따뜻한 환대와 열정, 즐거운 찬양, 신앙 고백, 그리고 여러분의 다양하고 풍부한 문화를 보여준 아름다운 공연에 모두 감사 드립니다. 특별히 여러분의 희망과 문제와 관심사들을 저와 함께 나누었던 세 젊은이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그들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들었으며, 이를 마음속에 간직하겠습니다. 유흥식 라자로 주교님의 소개 말씀에도 감사 드리며 여러분 모두에게 마음을 다하여 인사를 드립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제 6차 아시아 청년대회 주제의 일부인 “순교자의 영광이 너희를 비춘다”에 대하여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주님께서는 순교자들의 영웅적인 증언을 통해 당신 영광을 비추셨던 것처럼, 여러분의 삶에서 당신의 영광이 빛나게 하시고, 또 여러분을 통하여 아시아 대륙에 생명의 빛을 밝히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오늘 그리스도께서는 여러분의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일어나 깨어있으라고, 또 삶에서 진정 소중한 것들이 무엇인지 깨달으라고 부르고 계십니다. 뿐만 아니라, 세상 밖으로 나아가 다른 이들의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그들의 삶 안에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도록 초대하라고 요청하고 계십니다.

아시아 청년들이 모이는 이 훌륭한 대회를 통하여 우리는 하느님의 영원한 계획 안에서 교회의 역할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세상 곳곳에서 모인 젊은이들과 함께, 우리 모두가 평화와 우정을 나누며 사는 세상, 장벽을 극복하고 분열을 치유하며 폭력과 편견을 거부하는 세상을 만드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야말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일입니다. 교회는 전 인류의 일치를 위한 씨앗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국가와 민족들이 일치를 이루도록, 그러나 다양성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다양성을 인정하고 조화를 이루어 더 풍요롭게 하는 일치를 이루도록 부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이런 놀라운 전망과 계획으로부터 얼마나 동떨어져 있습니까! 우리가 뿌리려는 선행과 희망의 씨앗이, 우리 주변뿐 아니라 바로 내 마음 안에 있는 이기심, 적대감, 불의라는 잡초에 질식해 버리는 경우가 또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를 괴롭히는 사회의 빈부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지고 있습니다. 우리 삶에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하는 물질과 권력, 쾌락 숭배의 징후들을 우리는 봅니다. 우리 가까이에 있는 많은 친구와 동료들이 엄청난 물질적 번영에도 불구하고, 정신적 빈곤, 외로움, 남모를 절망감에 고통 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세상에 하느님의 자리는 더 이상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마치 정신적인 사막이 온 세상으로 퍼져나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는 청년들에게도 영향을 미쳐서 희망을 앗아가고, 많은 경우에 삶 그 자체를 앗아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바로 이러한 세상 속으로 나아가 희망의 복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그리고 하느님 나라의 약속을 전하고 증언하라는 부름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비유를 통하여, 희망과 구원의 메시지를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하느님 나라가 조용히 와서 소리 없이 자라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영은 모든 인간의 마음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고, 그 어떠한 상황도, 가장 절망적인 상황까지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복음은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학교, 직장, 가정, 지역 공동체 안에서 여러분이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이들과 나누어야 할 메시지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서 되살아나셨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께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요한 6, 68). 주님의 말씀에 모든 이의 마음을 움직이고 악을 선으로 이기며 세상을 바꾸고 구원하는 힘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사랑하는 젊은 친구 여러분, 이러한 시대에 주님께서는 바로 여러분에게 의지하고 계십니다! 주님은 여러분이 세례를 받던 그날 여러분의 마음에 들어오셨고, 견진을 받던 그날 여러분에게 성령을 내려주셨습니다. 또한 성체 안에 현존해 계시면서 끊임없이 여러분에게 힘을 주시어 여러분이 세상 앞에 주님을 증언할 수 있게 해 주십니다. 주님께 “예’ 하고 대답할 준비가 되셨습니까? 정말 준비 되셨습니까?

이제 여러분이 진실되고 기쁜 마음으로 복음을 증언할 수 있는 방법 세 가지를 제안해 드리겠습니다. 이 세가지를 늘 생각하시고 여러분 삶의 원칙이 되게 하십시오.

첫째,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에게 주시는 힘을 믿으십시오. 그분 말씀의 진리와 은총의 힘에 대한 희망을 잃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가는 주님의 파스카로 세례를 받았으며, 우리 마음에 살아 계시는 성령의 힘으로 견진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영적인 힘을 결코 의심하지 마십시오.

둘째, 날마다 기도 안에서 주님과 가까이 지내십시오. 하느님을 경배하십시오. 주님께 대한 경배를 잊지 마십시오. 주님의 성령이 여러분의 마음을 들어올려 아버지의 뜻을 알고 실행하는데 도움을 주시게 하십시오. 성체 성사로부터 기쁨과 힘을 얻으십시오. 정기적으로 고해성사를 받아, 여러분 마음이 순수함을 잃지 않고 흐트러지지 않게 하십시오. 본당의 일에 적극적으로 열심히 참여하시기를 바랍니다. 또 사랑의 복음을 외면하지 마십시오. 최선을 다해 사랑의 실천에 참여하십시오.

마지막으로, 복음에 반대하는 수많은 유혹들이 우리를 에워싸고 있으니, 여러분의 모든 생각과 말과 행위가 그리스도 말씀의 지혜와 진리의 힘으로 인도되게 하십시오. 그리스도께서는 여러분이 모든 일을 어떻게 해 나가야 하는지 가르쳐 주시고, 또 매일매일 당신이 여러분에 대해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시는지 알려 주실 것입니다. 만약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에게 사제직이나 수도생활로 당신을 섬기도록 부르신다면, 두려움 없이 “예”하고 대답할 수 있는 은총도 함께 내려주실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참된 행복과 완성을 향한 길을 여러분에게 보여주실 것입니다.

이제 제가 가야 할 시간입니다. 주일 미사 때 여러분을 다시 만나 이야기 하기를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이제, 우리가 이렇게 함께 할 수 있도록 강복해 주신 주님께 감사 드리고, 아시아와 전 세계에 주님의 사랑을 기쁜 마음으로 충실히 증언할 힘을 주시도록 간청합시다.

우리의 어머니이신 성모 마리아께서 여러분을 보살펴 주시고 여러분이 그 아들 예수님 곁에 늘 가까이 머물게 해주시기를 빕니다. 또한 세계 청년 대회를 처음 시작하신 성 요한 바오로 2세께서도 하늘로부터 항상 여러분을 이끌어 주시기를 빕니다. 크나큰 사랑으로 여러분에게 저의 강복을 드립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성모 승천 대축일 삼종기도 말씀

2014년 8월 15일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이 거룩한 미사를 마치며, 우리는 다시 한 번 하늘의 모후이신 성모 마리아를 바라봅니다. 성모님께 우리의 모든 기쁨과 고통 그리고 희망들을 봉헌합니다.

우리는 특별히 “세월호” 침몰 사건으로 인하여 생명을 잃은 모든 이들과, 이 국가적인 대재난으로 인하여 여전히 고통 받고 있는 이들을 성모님께 의탁합니다. 주님께서 세상을 떠난 이들을 당신의 평화 안에 맞아주시고, 울고 있는 이들을 위로해 주시며, 형제자매들을 도우려고 기꺼이 나선 이들을 계속 격려해 주시길 기도합니다. 이 비극적인 사건을 통해서 모든 한국 사람들이 슬픔 속에 하나가 되었으니, 공동선을 위해 연대하고 협력하는 그들의 헌신적인 모습을 확인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또한 성모님께서, 우리 중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 특별히 병든 이들과 가난한 이들, 존엄한 인간에 어울리는 일자리를 갖지 못한 이들을 자비로이 굽어보시도록 간청합니다.

끝으로, 대한민국의 해방을 기념하는 광복절을 맞아, 우리는 이 고상한 나라와 그 국민을 지켜 주시도록 성모 마리아께 간구합니다. 또한 아시아 전역에서 이곳 대전교구에 모여온 모든 젊은이들을 성모님의 손길에 맡깁니다. 그들이 하느님의 복된 계획에 따라 평화로운 세상의 새벽을 알리는, 기쁨에 넘친 전령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성모 승천 대축일

대전, 월드컵 경기장, 2014년 8월 15일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온 교회와 일치하여, 우리는 성모님께서 육신과 영혼을 지니신 채 천국의 영광 안으로 올라가신 성모 승천 대축일 미사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성모 마리아의 승천은 하느님의 자녀이며 그리스도의 지체인 우리들의 숙명을 보여 줍니다. 우리 어머니이신 성모님처럼, 우리도 또한 죄와 죽음을 이기신 주님의 승리에 온전히 동참하도록, 그리고 주님의 영원한 나라를 주님과 함께 다스리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제1독서에서 선포된, “태양을 입고 …… 머리에 열두 개 별로 된 관을 쓴 여인”(묵시 12,1)이라는 “큰 표징”은 하느님이신 아드님 곁에 영광스럽게 앉으신 마리아를 바라보도록 우리를 초대합니다. 또한 부활하신 주님께서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앞에 열어 놓으시는 미래를 알아보도록 우리를 초대합니다. 한국인들은 그 역사적인 경험에 비추어 이 국가의 역사와 민족의 삶 안에서 활동하시는 성모님의 사랑과 전구를 인식하면서, 전통적으로 이 대축일을 거행하고 있습니다.

오늘 제2독서에서는, 새로운 아담이신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시어 죄와 종살이의 왕국을 무너뜨리시고, 자유와 생명의 나라를 여셨다는 성 바오로 사도의 말씀(1코린 15,24-25 참조)을 들었습니다. 참된 자유는 아버지의 뜻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데에 있습니다. 은총이 가득하신 성모 마리아에게서,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자유가 단순히 죄에서 벗어나는 일보다 더 크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그것은 영적으로 세상의 현실을 바라보는 새로운 길을 열어 주는 자유입니다. 하느님과 형제자매들을 깨끗한 마음으로 사랑하는 자유이며, 그리스도의 나라가 오기를 기다리는 기쁨이 가득한 희망 안에서 살아가는 자유입니다.

오늘 하늘의 모후이신 성모 마리아를 공경하면서, 우리는 또한 한국 교회의 어머니이신 그분께 간청합니다. 세례 때에 우리가 받은 존엄한 자유에 충실하도록 우리를 도와주실 것을 간청합니다. 하느님의 계획대로 세상을 변모시키려는 우리의 노력을 이끌어 주시도록 간청합니다. 또한 이 나라의 교회가 한국 사회의 한가운데 에서 하느님 나라의 누룩으로 더욱 충만히 부풀어 오르게 도와주실 것을 간청합니다. 이 나라의 그리스도인들이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정신적 쇄신을 가져오는 풍성한 힘이 되기를 빕니다. 그들이 올바른 정신적 가치와 문화를 짓누르는 물질주의의 유혹에 맞서, 그리고 이기주의와 분열을 일으키는 무한 경쟁의 사조에 맞서 싸우기를 빕니다. 새로운 형태의 가난을 만들어 내고 노동자들을 소외시키는 비인간적인 경제 모델들을 거부하기를 빕니다. 생명이신 하느님과 하느님의 모상을 경시하고, 모든 남성과 여성과 어린이의 존엄성을 모독하는 죽음의 문화를 배척하기를 빕니다.

고귀한 전통을 물려받은 한국 천주교인으로서 여러분은 그 유산의 가치를 드높이고, 이를 미래 세대에 물려주라는 부르심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 새롭게 회개하여야 하고, 우리 가운데 있는 가난하고 궁핍한 이들과 힘없는 이들에게 깊은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이 대축일을 거행하면서, 우리는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모든 교회와 일치하여 우리 희망의 어머니이신 마리아를 바라봅니다. ‘성모의 노래’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자비로운 약속을 결코 잊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일깨워 줍니다(루카 1,54-55 참고). 성모 마리아께서는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루카 1,45)이기에 복되십니다. 그분 안에서, 하느님의 모든 약속은 진실하게 드러났습니다. 영광 속에 앉으신 성모님께서는 우리들의 희망이 현실이라는 것을 보여 주십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 희망은 “우리 생명을 위한 안전하고 견고한 닻과 같아”(히브 6,19 참조) 그리스도께서 영광 속에 앉으신 곳에 닿게 합니다.

이 희망은,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복음이 제시하는 이 희망은, 외적으로는 부유해도 내적으로 쓰라린 고통과 허무를 겪는 그런 사회 속에서 암처럼 자라나는 절망의 정신에 대한 해독제입니다. 이러한 절망이 얼마나 많은 우리의 젊은이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습니까! 오늘날 우리 곁에 있는 이런 젊은이들이 기쁨과 확신을 찾고, 결코 희망을 빼앗기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성모님께 은총을 청합시다. 우리가 하느님 자녀들의 자유를 누리며 기뻐할 수 있도록, 그 자유를 지혜롭게 사용하여 형제자매를 섬길 수 있도록, 그리고 다스림이 곧 섬김인 영원한 나라에서 완성될 바로 그 희망의 표징으로서 일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성모님의 은총을 간청합시다. 아멘.

프란치스코 교황



성모 승천 대축일 전야 한국 주교들과 만남

서울, 한국천주교주교회의 강당, 2014년 8월 14일.

사랑하는 형제 주교님 여러분,

여러분 모두에게 큰 사랑으로 인사 드립니다. 강우일 베드로 주교님께서 여러분의 이름으로 해 주신 형제적인 환영 말씀에 감사를 드립니다. 한국 교회의 활기찬 삶을 직접 보게 된 것은 저에게 커다란 복입니다. 목자로서 여러분은 주님의 양 떼를 지키는 임무를 받았습니다. 여러분은 주님께서 당신 백성에게 이루시는 놀라운 일들을 지키는 분들입니다. 지키는 것은 특별히 주교에게 맡겨진 임무의 하나로, 곧 하느님의 백성을 돌보는 것입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주교직을 받은 형제로서, 이 나라에서 하느님 백성을 돌보는 임무의 두 가지 중심 측면을 성찰해 보려고 합니다. 그것은 기억의 지킴이가 되고 희망의 지킴이가 되는 것입니다.

기억의 지킴이가 되는 것. 윤지충 바오로와 그 동료들의 시복은 순교자들이 뿌린 씨앗으로 이 땅에서 은총의 풍성한 수확을 거두게 하신 주님께 감사를 드리는 기회입니다. 여러분은 순교자들의 후손이고, 그리스도 신앙을 영웅적으로 증언한 그 증거의 상속자들입니다. 또한 평신도들에게서 시작되어 여러 세대에 걸친 그들의 충실성과 끊임없는 노고로 크게 자라난, 매우 비범한 전통의 상속자들입니다. 한국 교회의 역사가 하느님의 말씀과 직접 만나 시작되었다는 것은 뜻이 깊습니다. 그리스도의 메시지에는 아름다움과 진실성이 있어서, 복음과 복음의 요구, 곧 회개, 내적 쇄신, 사랑의 삶에 대한 요구가 이벽과 첫 세대의 양반 원로들을 감동시켰다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는 바로 그 메시지에, 그 순수함에 거울을 보듯이 자신을 비추어,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추구해야 합니다.

복음이 뿌려진 한국 땅이 얼마나 비옥했고 신앙의 선조들이 전해 준 유산이 얼마나 위대했는지는, 오늘날 활기찬 본당 사목구와 교회 단체들의 번창에서, 탄탄한 교리교육 과정에서, 젊은이들과 가톨릭 학교, 신학교와 대학교에 대한 사목적 관심에서 볼 수 있습니다. 한국 교회는 국가의 정신적 문화적 생활에 대한 역할과 선교에 관한 힘찬 열정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제 한국은 선교지에서 선교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보편 교회는 여러분이 세계에 파견한 수많은 사제와 수도자들을 통해 계속해서 혜택을 받고 있습니다.

기억의 지킴이가 되는 것은 과거의 은총을 기억하고 고이 간직하는 것 이상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그 기억으로부터 영적인 자산을 꺼내어, 앞을 내다보는 지혜와 결단으로 미래의 희망과 약속과 도전을 직시하고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잘 아시듯이, 한국 교회의 삶과 사명은 궁극적으로 외적, 양적, 제도적인 잣대로 헤아릴 수 없습니다. 오히려, 분명한 복음의 빛과 그 부르심에 비추어,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 돌아오라는 회개의 촉구에 따라 판단하여야 합니다. 기억의 지킴이가 되는 것이란, 성장시켜 주시는 분은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1코린 3,6 참조) 깨닫고, 동시에 성장은 과거처럼 현재에도 고난을 이겨내며 끊임없이 일하는 그러한 노고의 열매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순교자들과 지난 세대의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기억은 현실적이어야 합니다. 이상화되거나 “승리에 도취”된 기억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지금 회개하라고 촉구하시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듣지 않고 과거만 바라본다면, 우리가 앞으로 길을 나아가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오히려 우리의 영적 진전을 가로막거나 실제로 멈추게 하고 말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기억의 지킴이가 되는 것을 넘어서, 여러분은 또한 희망의 지킴이가 되라는 부르심을 받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드러난 하느님의 은총과 자비의 복음이 가져다 주는 희망, 순교자들을 감격시킨 그 희망의 지킴이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희망을 세상에 선포하라는 초대를 받았습니다. 물질적인 번영 속에서도 어떤 다른 것, 어떤 더 큰 것, 어떤 진정하고 충만한 것을 찾고 있는 세상에 이 희망을 선포하여야 합니다. 여러분과 여러분의 형제 사제들은 여러분의 성화 직무를 통하여 이 희망을 제시하십시오. 이 성화 직무는 신자들을 전례와 성사 안에 있는 은총의 샘으로 이끌어 줄 뿐만 아니라, 목표를 향하여 달려가라는(필리 3,14 참조)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행동하도록 끊임없이 재촉합니다. 여러분은 교회의 친교 안에서 성덕의 불꽃, 형제적 사랑의 불꽃, 선교 열정의 불꽃이 타오르게 함으로써 이 희망을 지킵니다. 이러한 까닭에, 저는 여러분이 언제나 여러분의 사제들 곁에 머무를 것을 부탁합니다. 날마다 일하고 성덕을 추구하며 구원의 복음을 선포하는 그들의 곁에서 용기를 북돋아 주십시오. 하느님의 백성을 섬기는 그들의 아낌없는 봉사에 감사를 드린다고, 저의 사랑에 넘치는 인사를 전해 주십시오.

선교하는 교회, 세상을 향하여 끊임없이 나아가는 교회, 특히 이 시대 사회의 변두리로 나아가는 교회가 되라는 도전을 우리가 받아들인다면,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모든 지체를 받아들이고 그 지체 하나 하나와 동화되는 데에 “영적인 맛”을 들여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 268항 참조).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 공동체는 어린이들과 노인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노인들의 기억과 지혜와 경험, 그리고 젊은이들의 열망을 외면한다면, 우리가 어떻게 희망의 지킴이가 될 수 있겠습니까? 이를 위하여 젊은이들의 교육을 특별히 배려하여 주시기를 부탁 드립니다. 대학교만이 아니라 초등학교를 비롯하여 모든 단계의 가톨릭 학교가 지닌 근본 사명의 수행을 뒷받침해 주십시오. 거기에서 젊은이들의 정신과 마음이 하느님과 그분의 교회에 대한 사랑 안에서 자라나고, 또 좋은 것, 참된 것, 아름다운 것 안에서 자라나서, 그들이 훌륭한 그리스도인이 되고 정직한 시민이 될 수 있게 해주십시오.

희망의 지킴이가 된다는 것은 또한, 가난한 사람들에게 관심을 쏟으며, 특히 난민들과 이민들, 사회의 변두리에서 사는 사람들과의 연대를 시행하여, 한국 교회의 예언자적 증거가 끊임없이 명백하게 드러나도록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관심은 구체적인 자선 활동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 그것도 꼭 필요한 것이지만 ― 사회, 직업, 교육 수준의 개선을 위한 지속적인 활동을 통해서도 드러나야 합니다.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일을 사업적인 차원으로만 축소시키고, 모든 사람은 반드시 한 인간으로서 성장하고 자신의 인격과 창의력과 문화를 존엄하게 표현하여야 한다는 것을 잊어버리는 위험에 빠질 수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연대는 그리스도인 생활의 필수 요소로 여겨야 합니다.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연대는 교회의 풍요한 유산인 사회 교리를 바탕으로 한 강론과 교리 교육을 통하여 신자들의 정신과 마음에 스며들어야 하며, 교회 생활의 모든 측면에 반영되어야 합니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이들의 교회”라는 사도 시대의 이상은 여러분 나라의 첫 신앙 공동체에서 그 생생한 표현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상이 미래를 향해 순례하는 한국 교회가 걸어갈 길에 계속 귀감이 되기를 바랍니다. 교회의 얼굴이 그 무엇보다도 먼저 사랑의 얼굴일 때에, 그분의 신비체의 친교 안에서 언제나 거룩한 사랑으로 불타오르는 예수님의 마음에 늘 더 많은 젊은이들이 이끌려올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예언자적인 복음의 증거는 한국 교회에 특별한 도전들을 제기합니다. 한국 교회가, 번영되었으나 또한 매우 세속화되고 물질주의적인 사회의 한가운데에서 살고 일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목자들은, 기업 사회에서 비롯된 능률적인 운영, 기획, 조직의 모델들을 받아들일 뿐 아니라, 성공과 권력이라는 세속적 기준을 따르는 생활양식과 사고방식까지도 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기준보다 우선하여 취하려 하는 유혹을 받습니다. 십자가가 이 세상의 지혜를 판단할 수 있는 힘을 잃어 헛되게 된다면, 우리는 불행할 것입니다! (1코린 1,17 참조) 여러분과 여러분의 형제 사제들에게 권고합니다. 그러한 온갖 유혹을 물리치십시오. 성령을 질식시키고, 회개를 무사안일로 대체하고, 마침내 모든 선교 열정을 소멸시켜 버리는 그러한 정신적 사목적 세속성에서 하늘이 우리를 구원해 주시기를 빕니다(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 93-97항 참조).

사랑하는 형제 주교 여러분, 기억과 희망의 지킴이가 되는 여러분의 사명에 관한 이러한 묵상으로, 저는 한국 신자들의 일치와 성덕과 열정을 증진하려고 노력하시는 여러분에게 용기를 북돋아 드리고자 하였습니다. 기억과 희망은 우리에게 영감을 주고 미래를 향해 이끌어 갑니다. 제 기도 안에서 여러분을 모두 기억하겠습니다. 언제나 하느님 은총의 힘에 의지하십시오. “주님은 성실하신 분이시므로, 여러분의 힘을 북돋우시고 여러분을 악에서 지켜 주실 것입니다”(2테살 3,3). 순교자들이 씨앗을 뿌리고 가톨릭 신자들이 대대로 물을 주어, 이 나라와 세상의 미래를 위한 약속으로서 여러분에게 전해진 신앙이, 교회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의 기도로 이 땅에서 활짝 피어나기를 빕니다. 여러분에게, 그리고 여러분의 사목과 보호에 맡겨진 모든 이들에게 마음을 다하여 저의 교황 강복을 드립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성모 승천 대축일 전야 대통령과 정부 공직자들과 외교단과 만남

서울, 청와대, 2014년 8월 14일.

대통령님,

존경하는 정부 공직자들과 외교관 여러분,

친애하는 벗들이여,

고요한 아침의 나라 한국에 오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이 나라의 아름다운 자연을 보게 되어서, 또 무엇보다 한국의 국민들과 그 풍요로운 역사와 문화의 아름다움을 접하게 되어서 기쁩니다. 이 민족의 유산은 오랜 세월 폭력과 박해와 전쟁의 시련을 거쳤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시련 속에서도, 대낮의 열기와 한밤의 어둠은, 정의와 평화와 일치를 향한 불멸의 희망을 품고 있는 아침의 고요함에 언제나 자리를 내어 주었습니다. 희망은 얼마나 위대한 선물입니까! 우리는 우리가 희망하는 이 목표들을, 한국 국민만이 아니라 모든 지역과 세계를 위해, 결코 좌절하지 말고 추구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따뜻한 환영에 감사를 드립니다. 대통령님과 정부 요인들에게 인사를 드립니다. 외교관 여러분에게, 국가 공직자들과 군 관계자들에게 그리고 저의 방한을 위해 애쓰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여러분의 따뜻한 환대에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덕분에 금방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저의 한국 방문은 제6차 아시아 청년 대회를 계기로 하여 이루어졌습니다. 이 대회는 이 광대한 아시아 대륙에서 모인 가톨릭 청년들이 그들의 공통 신앙을 경축하는 자리입니다. 저는 또한 이번 방한 중에 그리스도 신앙을 위하여 순교한 윤지충 바오로와 123위 동료 순교자들을 복자 품에 올릴 것입니다. 이 두 행사는 서로를 보완합니다. 한국의 문화는 연장자들의 고유한 품위와 지혜를 잘 이해하며, 사회 안에서 그분들을 존경합니다. 우리 가톨릭 교우들은 신앙 때문에 순교한 선조들을 공경합니다. 그분들은 자신들이 믿고 따른 진리를 위하여 기꺼이 목숨을 바쳤기 때문입니다. 그분들은 온전히 하느님과 이웃의 선익을 위하여 사는 법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지혜롭고 위대한 민족은 선조들의 전통을 소중하게 여길 뿐만 아니라 그들의 젊은이들을 귀하게 여깁니다. 젊은이들은 과거의 전통과 유산을 물려받아 현재의 도전들에 적용할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청년 대회와 같이 젊은이들이 함께 모이는 자리는, 우리 모두가 그들의 희망과 관심사를 들을 수 있는 소중한 기회입니다. 우리는 또한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들을 다음 세대에 얼마나 잘 전해 주고 있는지, 그리고 어떠한 세상과 사회를 그들에게 물려주려고 준비하고 있는지 성찰하라는 도전을 받을 것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저는 우리 젊은이들에게 평화라는 선물이 필요하다는 것을 성찰하는 것이 특별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평화의 부재로 오랫동안 고통을 받아온 이 땅 한국에서는, 이러한 호소가 더욱 절실하게 들릴 것입니다. 저는 한반도의 화해와 안정을 위하여 기울여 온 노력을 치하하고 격려할 뿐입니다. 그러한 노력만이 지속적인 평화로 가는 유일하고도 확실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평화 추구는 이 지역 전체와 전쟁에 지친 전 세계의 안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우리 마음에 절실한 대의입니다.

평화를 추구한다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쉽지 않은 일이지만, 특별히 여러분 중에서 인내를 요구하는 외교 활동에 종사하여 인류 가족의 공동선을 추구하는 분들에게는 더 큰 도전입니다. 이는 화해와 연대의 문화를 증진시켜 불신과 증오의 장벽을 허물어 가는 끝없는 도전입니다. 외교는 가능성의 예술이며, 평화란 상호 비방과 무익한 비판이나 무력시위가 아니라, 상대방의 말을 참을성 있게 들어주는 대화를 통하여 이루어질 수 있다는 확고부동한 믿음에 그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것이 아니라, “정의의 결과”(이사 32,17 참조)입니다. 그리고 정의는 하나의 덕목으로서 자제와 관용의 수양을 요구합니다. 정의는 우리가 과거의 불의를 잊지는 않되 용서와 관용과 협력을 통하여 그 불의를 극복하라고 요구합니다. 정의는 상호 존중과 이해와 화해의 토대를 건설하는 가운데 서로에게 유익한 목표를 세우고 이루어 가겠다는 의지를 요구합니다. 우리 모두 평화 건설에 헌신하며, 평화를 위하여 기도하고 평화를 이루려는 우리의 결의를 다지게 되기를 바랍니다.

친애하는 벗들이여, 여러분은 국가와 정치의 지도자로서 궁극적으로 우리 자녀들을 위하여 더 나은 세상, 더 평화로운 세상, 정의롭고 번영하는 세상을 건설하겠다는 목표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경험에 비추어볼 때, 우리는 점점 더 세계화되는 세상 안에서 공동선과 진보와 발전을 단순히 경제적 개념으로가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사람을 중심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대부분의 선진국처럼 한국도 중요한 사회 문제들이 있고, 정치적 분열, 경제적 불평등, 자연 환경의 책임 있는 관리에 대한 관심사들로 씨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사회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소리를 듣고, 열린 마음으로 소통과 대화와 협력을 증진시키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또한 가난한 사람들과 취약 계층 그리고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을 각별히 배려하는 것 역시 중요합니다. 그들의 절박한 요구를 해결해 주어야 할 뿐만 아니라, 그들이 인간적, 문화적으로 향상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저는 한국의 민주주의가 계속 강화되기를 희망하며, 오늘날 절실히 필요한 “연대의 세계화”에서도 이 나라가 앞장서 주기를 바랍니다. 연대의 세계화는 모든 인류 가족의 전인적인 발전을 그 목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는 25년 전에 한국을 두 번째로 방문하시면서, “한국의 미래는 이 국민들 가운데 현명하고 덕망 있고 영적으로 깊이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함께 하느냐에 달려 있다.”(1989년 10월 8일)는 확신을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되새기면서, 오늘 저는 한국 가톨릭 공동체가 이 나라의 삶에 온전히 참여하기를 계속 열망하고 있다는 것을 보증합니다. 가톨릭 교회는 젊은이들의 교육에 이바지하고,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과 함께 하려는 정신이 자라나게 하여, 새로운 세대의 국민을 양성하는 일에 기여하고자 합니다. 이들은 조상들에게서 물려받고 자신의 신앙에서 우러나오는 지혜와 전망으로 국가가 당면한 커다란 정치적 사회적 문제들에 기꺼이 이바지할 준비를 갖출 것입니다.

대통령님 그리고 신사 숙녀 여러분, 여러분의 환영과 환대에 다시 한 번 감사 드립니다. 하느님께서 여러분들에게, 그리고 사랑하는 모든 한국인들에게 복을 내려 주시기를 빕니다. 특별히,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우리의 위대한 보화인 연장자들과 용기를 불러일으키는 우리 미래의 희망인 젊은이들에게 복을 내려 주시기를 빕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성모 승천 대축일

루카 1,39-56; 14/08/15

오늘 8월 15일은 성모승천대축일입니다. 성모승천(聖母昇天)은 라틴어로 Assumptio Mariae 영어로는 Assumption 이라고 표기합니다. 교황 비오 12세가 1950년 11월 1일에, “원죄 없으신 하느님의 어머니, 평생 동정녀 마리아는 지상생활을 마친 후 그 영혼과 육신을 지닌 채 하늘의 영광으로 영입(迎入)되었다.”(회칙 『가장 풍부하신 하느님[Munificentissimus Deus]』) 라고 수세기 동안 신자들이 믿어 왔던 신비를, 믿을 교리로 반포하였습니다. 교황은 그리스도의 부활이 곧 그리스도 교인의 부활에 대한 성서적인 근거이므로(1고린 15:14-57), 마리아께서도 죽으셨다가 부활하셨다고 봅니다.

4세기부터 성모님의 죽음과 부활에 관한 전언들이 많았지만, 7세기경 요한 다마세노가, “마르치아누스 황제와 풀케리아 황후에게 예루살렘의 세례자 유베날리스에게 성모의 시신을 인도할 것을 요청하였지만, 성모가 하늘로 올림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콘스탄티노플 근처 발케르네에 경당을 세웠다.”고 전한 내용이 교회 초기에 그리스도교 전승으로 자리잡게 됩니다.

루카 복음에서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께 드린 말씀,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루카 1,28)와 세례자 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 성녀께서 마리아께 드린 말씀,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42절) 등에서 성모님께 드려진 은총의 가득하심은 성모승천으로 성취되었다고 봅니다. 묵시록의 “하늘에 큰 표징이 나타났습니다. 태양을 입고 발밑에 달을 두고 머리에 열두 개 별로 된 관을 쓴 여인이 나타난 것입니다.”(묵시록 12,1) 라는 성경구절은 교회의 종말론적 상징을 마리아의 모습으로 의인화시키고 있습니다.

성모승천의 신비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성경에 함축되고 교부들의 저서에 구체화된 관념은 '새로운 이브로서'의 마리아입니다. 첫 이브는 하느님의 의도대로 아담의 조력자가 되지 못하고, 하느님을 거역하여 범죄에 협력함으로써 인류에게 죽음을 초래하였습니다. 그에 반하여, 새로운 이브인 마리아는 천사의 영보에 순명하여 새로운 아담을 잉태하였고, 탄생, 첫 기적, 십자가의 죽음, 승천, 성령강림에 이르기까지 구속사업의 완성에 협력함으로써 인류에게 생명을 가져온 바 되었습니다.

비오 12세는 또 성모승천의 신학적인 이유로 마리아가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사실을 듭니다. 그리스도는 어머니이신 마리아를 사랑하고 구속 신비에 마리아와 결합하였다는 사실에서, 죄 없이 창조되어 그리스도의 어머니로 선택받은 동정 성모 마리아는 승천을 통해 죽음을 이기셨다고 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이시므로 자신의 능력으로 승천하였으나 성모 마리아는 하느님의 은총을 입고 그 '부르심을 받았다'는 의미에서 '몽소'(蒙召) 승천'이라고 구별합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는 “티없이 깨끗하신 동정녀께서 조금도 원죄에 물들지 않으셨으며 지상 생활을 마치신 후에, 영혼과 육신이 천상 영광으로 부르심을 받으시어, 주님으로부터 천지의 모후로 추대받으셨다. 이로써 마리아는 다스리는 자들의 주님이시며 죄와 죽음에 대한 승리자이신 당신 아드님을 더욱 완전히 닮게 되셨다.”(교회헌장 59항) 라고 가톨릭 교회의 정통 교리로 선포합니다.

교회의 모상인 마리아가 하늘에 올림을 받은 신비를 기념하면서 교회는 마리아 안에서 완성될 구원의 업적을 보고 희망을 갖습니다. 마리아의 모성이 당신 아드님을 통해 구원으로 이끄심으로써 온 세상을 위한 은총이 되듯이, 마리아께서 하늘로 불려 올라가신 것은 온 인류가 하느님 안에서 하늘로 부름을 받는 승천의 시작입니다. 성모님의 승천을 바라보며 우리도 몸과 영혼을 지니고 영원히 천국으로 올라가리라는 것을 기대하며 기도합니다.

엘리사벳을 비롯한 교회는 오늘날까지도 성모님은 복된 분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성모님은 무슨 복을 받았습니까?

오늘 엘리사벳의 말씀을 봅시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루카 1,45) 엘리사벳의 말대로라면, 성모님이 받은 하느님의 축복은 하느님께 대한 믿음에서 비롯된 것인데, 그 믿음은 바로 하느님의 말씀이 꼭 이루어질 것이고 또 이루어져야만 한다는 희망에서 나옵니다. 그래서 성모님은 자신의 희망이 이루어지기 위해, 자기를 하느님께 바칩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 성모님은 자신의 봉헌이 세상 사람들에게 구원을 가져올 것이며, 다른 사람이 행복해짐으로써 결국 자신이 행복해진다는 사실을 믿고 삽니다.

성모님은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루카 1,34) 하며 두려워했지만, 자신에게 내려진 축복이 자기 개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통해 모든 이를 구원하기 위한 것임을 잘 알고 그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원하며 자신을 하느님께 바칩니다.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 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이름은 거룩하고. 그분의 자비는 대대로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미칩니다.”(루카 1,49-50)

성모님은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루카 1,52ㄱ.53ㄴ)신 이유가 바로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루카 1,52ㄴ.53ㄱ)시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 노래는 권력자나 부자 어느 누구 한 명이 보기 싫거나 혼내기 위해서 그가 누리는 것을 없애려 하심이 아니며, 또 보잘 것 없는 자나 배고픈 사람 어느 하나를 더 사랑하셔서 좋은 것을 누리도록 하심이 아니라, 모든 이가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평등하고 인간답게 살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인간 모두가 하느님께서 마련해 주신 세상에서 다 함께 행복하게 살도록 하기 위한 조정입니다. 가진자나 안 가진자나, 누리는 자나 못 누리는 자나 자신들의 삶을 지배하고 운명짓는 외형적인 것으로부터 해방시켜주시고, 인간이 인간이라는 사실로도 충분히 살도록 신앙공동체를 만들어 구원하신다는 믿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한 바로 이것이 하느님께서 신앙인들에게 약속하신 하느님의 자비라는 것을 선포합니다. “당신의 자비를 기억하시어 당신 종 이스라엘을 거두어 주셨으니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 자비가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히 미칠 것입니다.”(루카 1,54-55)

하느님의 축복을 받아 오늘 세례를 받으시는 세례자 여러분과 신자 여러분, 여러분의 축복된 오늘이 여러분의 계획이 이루어지고 여러분의 뜻을 펼치는 계기가 되기보다는, 하느님의 뜻과 계획이 이 땅에 이루어지기 위해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구체적인 삶 속에 주님께서 어떻게 함께 해주시는가를 체험하고 깨달으며 살아야 하겠지만 그 깨달음과 체험이 여러분과 여러분 가족만의 번영과 안락을 위한 것이 되지 않도록 하십시오. 그래서 여러분의 삶과 여러분의 계획에 하느님을 끼어들이려고 하기 보다, '하느님의 계획에 저를 도구로 써주십사.' 하고 청하며 여러분 자신을 주님께 온전히 바치시게 되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오늘 8월 15일은 또한 우리 민족에게는 36년 동안 일제의 식민통치에서 벗어난 광복절이기도 합니다. 한국 교회의 주보이신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께서 지상생애를 마치시고 승천하신 이날 우리 나라는 이민족의 강제 통치에서 벗어나 자립하게 됩니다. 성모님께서 나와 우리 민족을 가슴 깊이 품어 주 하느님께 인도해 주시기를 거듭 기리며, 우리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통한 통합과 통일을 기대합니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루카 1,46-48)



2013년 성모 승천 대축일 담화문

“서로 뜻을 같이하고 평화롭게 사십시오.”(2코린 13, 11)

13/08/15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주님께서 주시는 평화가 여러분 모두와 함께하시기를 빕니다.

오늘은 우리 신앙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께서 지상 생활의 여정을 마치시고, 하늘로 올림을 받으셔서 영원한 생명을 얻으셨음을 기리는 성모 승천 대축일입니다. 성모님의 승천은 우리 신앙인들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신앙의 사건입니다. 왜냐하면 성모 마리아와 같이 승천하여 영원한 삶을 사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궁극적 희망이며, 우리의 미래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성모 승천 대축일을 맞이하여 “성모님께서는 당신 아드님의 형제들이 지상 여정에서 위험과 고통 중에 있는 것을 당신의 모성애로써 돌보아주시고, 이들을 행복한 고향으로 인도해 주신다.”(교회헌장 62항)는 믿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어려움을 성모님께서 전구해 주시길 기도합니다.

평화의 모후이신 성모님의 승천 대축일을 경축하면서 우리가 온 힘을 기울여 이뤄야 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온 겨레의 참된 평화입니다. 죄인들의 손에 넘어가기 전에 예수님께서는 비탄하는 제자들에게 평화를 선물하셨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요한 14,27)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란, 평화를 추구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자 그분의 제자로서 이 세상 안에서 평화를 이루기 위해 파견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복자 교황 요한 23세께서는 회칙「지상의 평화」에서 “평화는 모든 시대의 인류가 깊이 갈망하는 것으로서 진리, 정의, 사랑, 자유 안에서 하느님께서 설정하신 질서를 충분히 존중할 때 비로소 회복될 수 있고 견고해진다.”라고 강조하셨습니다. 또한 사도 바오로는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시며, 그분께서 사람들을 갈라놓는 증오의 벽을 허무시고, 갈라진 두 편을 하느님과 화해시키셨다.”(에페 2,14 참조)라고 선언한 바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평화를 원하시는 주님의 뜻에 따라 우리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만드신 질서 안에서 사람들이 서로 믿음과 사랑을 회복하고, 진리와 정의를 실현할 때 이 세상에 참 평화가 시작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상황은 어떠합니까? 정전 60주년이 지났는데도 우리 한반도는 여전히 남북으로 분단되어 끝없는 대립과 대치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남북한의 화해는 한반도뿐 아니라, 세계 평화의 지름길이며 필수 조건입니다. 그러므로 남북한이 이제는 불행하고 어두운 과거를 넘어서 밝고 희망적인 미래를 지향해야 할 것입니다.

남북의 화해를 위해서는 시급하고 당면한 문제부터 해결해야 할 것입니다. 남북한 당국은 중단된 이산가족들의 생사 확인, 서신 교류, 만남 등 가장 인도적인 조치를 다른 것보다 우선하여 무조건적으로 시행해 주실 것을 당부합니다. 가족의 생사조차 모른 채 가슴의 한을 풀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고 계신 이산가족들의 애타는 심정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남북한 이산가족의 아픈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우선적으로 해야 할 시대적 소명입니다. 남북한이 열린 마음과 지혜로운 정책으로 인도적인 도움과 평화적인 교류를 늘려나가기를 기원합니다. 또한 남북한이 당면한 모든 문제를 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특별히 분단의 상황에서 살고 있는 우리 교회가 무엇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는 신앙인인 우리가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실천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기도는 화해와 일치를 원하시는 하느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하고, 우리를 평화의 일꾼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 겨레는 분열과 미움을 버리고 사랑과 평화의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우리 한반도가 인간의 존엄과 진리와 자유를 존중하는 나라로 발전하여 서로 화해하고 평화를 누리는 그 날이 더욱 빨리 다가올 것입니다.

성모님께서 우리를 주님 뜻대로 인도하시고 이 모든 것을 도와주시길 간청합니다. 또한 온 겨레에 하느님의 축복이 함께하시길 기원합니다.

“우리 신앙인들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여!

우리 민족을 축복해 주시고 남북이 진정으로 화해를 이루는 날이 하루 빨리 올 수 있도록 하느님께 전구 해주소서. 아멘.”

2013년 8월 15일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겸 평양교구장 서리

염수정 대주교



2012년 성모 승천 대축일 담화문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마태 5,9)

12/08/15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은 성모님께서 하늘로 불러올려짐을 경축하는 성모 승천 대축일입니다. 이렇게 기쁘고 복된 날에 주님의 은총이 형제자매 여러분에게 가득히 내리기를 기원합니다.

성모 승천 대축일은 우리 한국 교회에 아주 특별하고 의미 있는 날입니다. 한국 교회의 주보이신 성모 마리아의 승천 대축일에 우리 조국은 일제 치하를 끝내고 광복을 맞았기 때문입니다. 성모님의 승천은 우리 신앙인들에게 희망의 표지입니다. 우리도 성모님처럼 구원받아 하느님 영광 안에 들 수 있다는 희망을 알려주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성모님은 아직도 당신의 모성애로 나그넷길을 걸으며 위험과 고통을 겪는 우리 신앙인들을 돌보시며 행복한 고향으로 이끌어 주십니다.(교회헌장 62항)

오늘 우리는 성모 승천 대축일을 기뻐하며 평화의 모후이신 성모님께 우리 사회의 참 평화를 간구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참 평화가 목마른 시기에 살고 있습니다. 남과 북으로 갈라진 민족 간의 대립과 긴장뿐만 아니라 OECD 국가 중 자살률은 최고를 나타냅니다. 또한 출산율은 세계최하위국에 해당합니다. 우리 사회의 현재와 미래가 얼마나 불안한지를 보여주는 징표입니다. 또한 극단적인 양극화의 삶, 경기침체, 가정의 붕괴, 생명경시 사상 등은 사람들의 삶을 더욱 고통스러운 절망의 늪으로 빠지게 합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물질만능주의와 경제우선주의가 모든 것의 해결이라는 유혹에 빠져 점점 더 이기적이 되고 가치관의 혼란을 부추기고 세대 간, 계층 간의 갈등의 골을 더욱 깊게 하여 모래알처럼 서로 뿔뿔이 흩어져 살게 합니다.

오늘날 우리 시대가 풀어야 하는 시급한 과제는 모든 사람들, 모든 세대가 원활하게 소통하고 하나의 마음으로 일치하여 평화롭게 어우러져 한가족처럼 살아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바르게 소통하고 하나로 통합하기 위해서는 우선 모든 인간이 평등하고 가치 있는 존재라는 깊은 인식과 연대감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은 모두가 똑같아지는 것이 아니라 차이와 다름을 간직한 채 조화롭게 공존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비로소 이사야 예언자가 예언했던 “늑대가 새끼 양과 함께 살고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지내리라. 송아지가 새끼 사자와 더불어 살쪄 가고 어린아이가 그들을 몰고 다니”(이사 11,6)는 평화로운 세상을 향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에게 필요한 참 평화는 하느님이 가르쳐주신 사랑을 통해서만 이룩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모두 이기적인 욕심과 자기중심적인 삶을 버리고 주님이 몸소 실천하신 사랑의 실천과 나눔으로 우리 사회 곳곳에 스며있는 불안을 극복하여 이 땅에 평화를 이룹시다. 세상에 소통과 일치, 공존을 통해 참 평화를 가져오는 일은 국가의 지도자들이 최우선적으로 해야 하는 일입니다. 또한 평화의 도구로 사는 것은 우리 신앙인에게도 중요한 책무입니다. 신앙인들은 세상 안에서 평화와 정의의 증거자로 살아가도록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오늘 우리는 성모 승천 대축일을 지내며 한편으로는 민족의 비극으로 인해 갈라진 북녘의 형제자매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여러 여건으로 남북한 상호교류가 어려운 상황에 봉착해 있음에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남북문제는 폭력이 아닌 신뢰를 바탕으로 대화를 통해 해결해야 합니다. 물론 남북한이 마음의 문을 여는 것은 양편이 서로 노력해야 하고 오직 하느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라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기도와 도움이 더욱 절실히 필요합니다. 남북으로 갈라져 있는 민족화해 문제는 남북한 정부뿐 아니라 종교, 민간단체 등 모두가 함께 지혜를 모아 풀어나가야 할 것입니다. 남북한이 상호 간의 신뢰를 쌓아가며 대화를 시도하여 이 땅이 분열과 불화의 깊은 상처를 딛고 사랑과 일치, 화해의 땅으로 새롭게 태어나기를 소원합니다.

성모 승천 대축일을 맞아 우리 모두 함께 기뻐하며 성모님의 큰 사랑 속에 우리 사회의 불안과 미움, 고통과 갈등 등 삶의 모든 부정적인 요소가 모두 용해되어 사랑과 평화가 흘러넘치는 세상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또한 북녘땅의 우리 형제자매들에게도 하느님의 평화가 함께하길 기도합니다.

“평화의 모후이신 성모 마리아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2012년 성모 승천 대축일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대주교



성모 승천 대축일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루카,145)

루카 1,39-56; 11/08/15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은 한국 교회의 주보이신 성모 마리아의 승천 대축일입니다. 이 기쁘고 복된 날에 주님의 은총이 우리나라에 가득하게 내리기를 기원합니다.

성모승천 대축일은 우리 신앙의 어머니이신 성모님께서 하느님의 은총으로 영광스럽게 하늘로 들어 올려지심을 경축하는 날입니다. 성모님의 승천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 신앙인들에게 큰 희망을 안겨줍니다. 우리도 성모님처럼 구원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모님께서는 오늘도 수많은 전구로 우리에게 영원한 구원의 은혜를 얻어주시고, 당신의 모성애로 아직도 나그넷길을 걸으며 위험과 고통을 겪는 우리 신앙인들을 돌보시며 행복한 고향으로 이끌어 주십니다(교회헌장 62항).

성모님께서는 예수님을 잉태할 때 인간의 능력과 생각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든 일생일대의 선택을 하게 됩니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1,38) 이 응답은 성모님께서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버리고 그 어떤 가치보다도 하느님을 우선시하고, 하느님을 믿고 따랐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물질적 풍요와 안락한 삶이 보장된 평화로운 삶을 원합니다. 그런데 오늘의 세상은 어떠합니까? 참 평화와는 거리가 먼 시대에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오늘날 우리 사회는 산업화의 혜택을 맘껏 누리고 있습니다. 반면에 과도한 자연자원의 낭비와 파괴가 극성을 부리고, 생명을 존중하기는커녕 생명의 남용을 서슴지 않는 비인간화가 거리낌 없이 성행되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갖는 가장 큰 불행은 많은 이들이 하느님을 하느님으로 섬기지 못하는 것입니다. 특히 하느님의 자리에 돈과 재물을 두었다는데 가장 큰 문제가 있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맘몬이즘(mammonism)을 문제 삼으며 “안전하지 못한 재물에 희망을 두지 말고, 우리에게 모든것을 풍성히 주시어 그것을 누리게 해 주시는 하느님께 희망을 두라고 지시하십시오.”(1티모6,17)라고 권고하셨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우리 사회는 점점 돈을 하느님처럼 숭배하고, 돈이 인생의 목적이 되며, 돈이 최고의 가치가 된 사회로 치닫고 있습니다. 이렇게 돈과 재물에 대한 욕망은 한계가 없고 통제되지 않는 탐욕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마음을 채울 수 있는 것은 황금도 명예도 권력도 아닌 오로지 절대자 하느님 한 분뿐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듯이 “하느님과 재물을 아울러 섬길 수 없다.”(마태 6,24)고 하셨습니다.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재물에 대한 탐욕적인 갈망이 상호 배타적인 것임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다행히 자신의 재물을 사회의 공익을 위해 내어놓고, 가난한 사람들과 나누는 이들이 점차 늘어나는 것은 바람직한 일입니다. 그래야만 돈이 화폐의 가치에 충실하면서도 사람들의 탐욕을 부추기는 도구로 전락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라의 지도자들은 우리 사회가 재물과 돈의 투명성과 신뢰성을 더 높이는 정보체계와 환경을 만드는데 더욱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나라는 보다 더 건강하고 신뢰가 굳건한 사회가 될 것입니다. 그 책임과 의무가 지도자들에게 있음을 분명히 인식해야 합니다. 또한, 교회의 가르침대로 우리 신앙인들은 재물과 돈을 올바로 사용하여 늘 이웃사랑과 나눔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돈의 노예가 아니라 주인이 되어, 인간 노동의 대가인 돈과 재물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내리시는 큰 축복이 될 것입니다.

성모승천 대축일을 맞이하여 평화의 원천이신 하느님의 큰 축복이 우리나라 방방곡곡에 내리기를 기원합니다.

“평화의 모후이신 성모 마리아님! 이제 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2011년 성모 승천 대축일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추기경



성모 승천 대축일

루카 1,39-56; 06/08/15

찬미 예수님!

안녕하십니까?

우리는 살면서 여러 일을 겪게 되고 우리가 겪는 일마다 각기 대응을 하게 됩니다. 어떤 때는 나에게나 상대에게나 모두에게 좋은 대응을 하기도 하고, 서로가 좋은 대응을 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그저 나에게만 도움이 되는 대응을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때는 서로에게도 안 좋고 심지어는 세상에 짐스럽고 죄스러운 결과를 가져오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뿌듯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불안에 떨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런 일을 겪고 나서 내가 대응한 것에 대해 특별히 아무 일도 안 생기는 것을 보면, 상도 없고 벌도 없는 듯한 세상에서 내 맘대로 사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이 들기도 하고, 적당히 사람들과 조화를 맞춰가면서 죄만 짓지 않으면 잘 사는 것이라고 생각할 때도 있습니다.

과연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일까?

그리고 특별히 신앙인으로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신앙 공동체 안에서만 사는 것도 아니고, 신앙 공동체도 실제로 세상 안에 구성되어 있는 것이기에 세상과 동떨어져 살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요한 복음 17장 14절부터 18절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이 세상에 살면서도 이 세상에 속하지 않고, 주님께 속해서 오히려 세상에 복음을 실현하러 나가는 것’이 우리 신앙인의 삶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 12,24)

누가 우리를 어떻게 평가하고 누가 어떻게 대응하던, 우리는 신앙인으로서 우리의 길을 걸어갑니다. 우리가 걷는 길이 반드시 주님께서 제시한 그 길대로 실수 없이, 착오 없이 걸어간다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우리는 기도하면서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신앙의 신비를 살아가려고 노력합니다.

주님을 향해 진실하고 순수하며, 성실하고 항구하게.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세상적인 판단기준으로 성공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주님께서는 우리의 마음과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십니다. 주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의 아들이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천사들과 함께 올 터인데, 그때에 각자에게 그 행실대로 갚을 것이다.”(마태 16,27)

우리가 한 것 중에는 잘한 것도 있고, 못한 것도 있습니다. 잘한 것은 잘한 만큼 복을 받을 것이고, 못한 것은 잘못을 뉘우치고 우리의 삶을 수정하여 주님께 돌아가면 용서받을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사도행전에서 이렇게 선포합니다.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저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여러분의 죄를 용서받으십시오. 그러면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입니다.”(사도 2,38)

그저 우리는 하느님께서 다 알고 갚아주실 것이므로, 스스로 복수하지 말고 하느님께 맡기면, 하느님께서 다 갚아주실 것입니다.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느님께서 우리의 진실함을 다 굽어보시고 기억하시고 갚아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할 일이 있다면 그것은 그저 우리 스스로 주님을 믿는 믿음으로 오늘을 거룩하고 성실히 살아나가는 것뿐입니다. 로마서에서 사도 바울로가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스스로 복수할 생각을 하지 말고 하느님의 진노에 맡기십시오. 성경에서도 ‘복수는 내가 할 일, 내가 보복하리라.’하고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오히려 ‘그대의 원수가 주리거든 먹을 것을 주고, 목말라하거든 마실 것을 주십시오. 그렇게 하는 것은 그대가 숯불을 그의 머리에 놓는 셈입니다.’ 악에 굴복하지 말고 선으로 악을 극복하십시오.”(로마 12,10-21)

살면서 스스로 다른 사람에게 사기당하고 이용당하고 억눌려서 비천하고 억울하다고 느낄 때 마리아의 노래를 기억하십시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이름은 거룩하고 그분의 자비는 대대로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비칩니다.

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

당신의 자비를 기억하시어 당신 종 이스라엘을 거두어 주셨으니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 자비가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히 미칠 것입니다.”(루카 1,46-54)

경우에 따라서는 오늘 소리치고 휘어잡고 자기 주장만을 내세우며 자기 멋대로 하는 듯하는 교만한 자들과 통치자들과 부유한 자들과 회개해야할 사람이 너 일수도 있고 남편이기도 하고 어른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경우에는 나 일수도 있고 아내일 수도 있고 자식들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각자 너 나 할 것 없이 그리고 다른 사람 쳐다보며 욕하면서 또 다른 죄를 더 보태지 말고 각자의 회개할 몫을 찾아 주님께로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엘리사벳을 만난 마리아처럼 우리 본당이 서로 서로에게 마리아가 되고 엘리사벳이 되어주어 서로에게 주님을 향한 믿음을 더욱 굳세게 해주고, 하느님 나라를 향한 희망을 북돋아주며, 서로의 구원을 위해 사랑을 실천하는 신앙 공동체가 될 수 있도록 살아갑시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마지막 날 오늘 우리가 기억하는 성모님처럼 영광스럽게 하늘에 올라, 하늘 나라에서 주님의 품 안에 다시 다 함께 만나서 영원한 행복을 누릴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면서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희생하며 살아갑시다.

아멘.



성모승천대축일 서울대교구장 담화문

05/08/15

겨레의 새로운 출발을 위하여 -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요한 20,26)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원죄에 물들지 않으신 동정녀 마리아께서 지상 생활의 여정을 마치시고, 육신과 영혼이 하늘의 영광으로 올림을 받으신 성모 승천 대축일을 맞이하여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하느님의 은총이 가득하기를 축원합니다.

이 큰 축일에 우리 겨레는 광복 60주년이라는 특별한 날도 함께 경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오늘 우리 신자들뿐만 아니라, 남과 북의 온 겨레가 함께 기뻐하며 축복의 인사를 나누고 싶습니다. 특별히 광복 60주년을 우리 민족이 새로운 역사를 시작할 수 있는 새로운 계기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하느님의 은총으로 분단의 상처와 아픔을 극복하고 우리 민족이 화해와 통일을 이루도록 기원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북한의 모든 동포들이 인간 존엄성을 존중받으며 삶의 행복을 충만하게 누리는 사회를 만드는 데 물심양면으로 지원과 협력을 아끼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온 겨레가 함께 손을 맞잡고 하느님을 찬미하는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기원합니다.

우리는 겨레의 참된 해방과 생명을 위해 새롭게 출발해야 합니다. 그 동안 우리 신앙인은 과연 사회 속에서 참된 삶과 복음의 표지가 되었는지 반성해야 합니다. 교회는 민족 공동체의 화해와 일치에 기여해야 할 책임을 지니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모든 사람의 보편적 구원과 일치를 지향하는 참된 그리스도의 성사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교회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 대해서 충분한 관심과 배려를 다했는지, 또한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노력을 소홀히 하지는 않았는지도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반성을 토대로 하여 우리는 겨레의 진정한 해방과 구원을 위해 그리스도에게서 다시 출발하여 생명의 복음을 전하고자 합니다. 따라서 광복 60주년을 경축하는 올해를 가톨릭에서 성체성사의 해로 지내고 있는것은 매우 뜻 깊은 하느님의 섭리라고 생각합니다. 신앙을 수호하기 위해 목숨까지 바친 우리 교회의 수많은 순교 선열들의 용기와 희생도 바로 성체성사에서 나온 것입니다.

성모 승천 대축일과 광복 60주년을 경축하면서 우리가 온 힘을 기울여 이루고자 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온 겨레의 진정한 해방이며 참된 평화입니다. 평화는 단순히 전쟁의 부재만이 아닙니다. 평화는 정의의 작품이며 결과입니다(이사 32,17 참조). 그러므로 평화를 원하면 정의를 먼저 실천해야 합니다. 세상의 평화 건설을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과 민족들, 그리고 그들의 존엄성을 존중하려는 확고한 의지와 형제애의 성실한 실천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렇게 평화는 정의가 줄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넓고 풍요로운 사랑의 열매가 됩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국내외적으로 여전히 많은 평화의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끊임없는 테러와 전쟁의 위협으로 인하여 사람들이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께서 지난 7월 7일, 런던테러가 난 직후에 “잔인하게 희생된 이들에게 깊은 슬픔을 전한다”고 애도하시면서 “성전(聖戰)이란 미명 하에 일어나는 테러 행위를 멈춰 달라”고 간곡히 요청하셨습니다. 또한 교황께서는 “테러는 문명간 충돌의 산물이 아닌 광신도들의 행태”라며 “3대 종교간 대화가 절실하다”고 역설하셨습니다. 어떤 이유로도 인간의 생명을 파괴하는 폭력과 테러는 절대로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분명히 평화로 가는 길에는 많은 어려움과 인내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평화의 추구는 세상이 아무리 죄악과 증오와 폭력으로 물들었다 하더라도 하느님께 모든 인간이 하나로 일치해서 한 가족이 되라는, 포기할 수 없는 소명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따라서 진정한 평화의 추구는 어느 한 민족·문화·정치 공동체만의 행복이 아니라, 인류 전체의 선익을 먼저 생각해야만 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갈라진 것을 하나로 일치시키고, 죄악과 증오를 없애시며, 인류에게 일치와 형제애에 대한 소명을 일깨워 주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신앙인들이 세상에 평화와 정의를 이룩하려는 희생과 노력은 신앙의 본질이 됩니다.

평화는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도 달려 있습니다. 특히 우리 신앙인들의 책임과 의무가 막중합니다. 우리 신앙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참된 회심을 바탕으로 하여 세상의 죄악을 극복하고 “자기 자신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 가장 멀리 떨어진 인간 공동체들과의 관계, 나아가서는 자연과의 관계를 하느님의 뜻 안에서 다시 올바로 세워야 합니다”(교황요한 바오로 2세, 회칙 「사회적 관심」, 38항). 그렇게 할 때 우리 겨레도 분열과 미움을 떨쳐버리고 사랑과 평화를 향한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선 우리 신앙인부터 가정 안에서 평화의 모범과 증인으로서 자녀들에게 평화를 가르치는 부모가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또한 국민들의 행복에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는 정치 지도자들도 평화와 정의의 증진을 목적으로 정치 활동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진정한 종교와 믿음은 결코 전쟁과 폭력의 원인이 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모든 종교는 대화를 통하여 모든 이들에게 사랑과 용서의 확신을 전파하고 평화와 공존의 길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어머니는 어느 누구에게나 고향처럼 포근함과 사랑을 느끼게 합니다. 우리 신앙의 어머니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모님께서는 항상 세상과 우리 죄인들을 위해 하느님께 전구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겪고 있는 많은 문제와 어려움들이 교회의 어머니이신 성모 마리아의 도우심으로 지혜롭게 극복되기를 기도드립니다. 온 겨레가 “희망을 안고 하느님께 가까이 나아가도록”(히브 7,19) 이끌어 가는 우리의 이 여정에 “성체성사의 여인”(교황 요한 바오로 2세, 회칙 「교회는 성체성사로 산다」, 53항)이신 성모님께서 우리를 진리의 길로 인도하시며 도와 주실 것을 간청합니다. 다시 한 번 성모 승천 대축일 맞아 온 겨레에 평화의 인사를 드리며 하느님의 축복을 기원합니다.

“평화의 모후이신 성모 마리아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 주소서, 아멘.”

2005년 성모 승천 대축일에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겸 평양교구장 서리

교구장 정진석 대주교



성모승천대축일

(루가 1, 39-56); 2004/08/15

우리 모두에게는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남아있다. 내 어머니. 그분은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여인도 아니시고, 세상에서 제일 좋은 여인도 아니지만 그래도 내 가슴속에서 결코 잊혀지거나 지워지지 않는 강한 인상으로 남아있습니다. 우리가 결코 어머니를 잊을 수 없는 이유중의 하나는 다른 이들의 어머니가 아니라, 나를 낳아주신 '내 어머니'라는 감정도 있지만, 단순히 나를 낳아주셨다는 것에 그치지 않고 우리의 뇌리에서 결코 지워지지 않는 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바로 우리 가족을 살리기 위해 모든 것을 다 버리시고 헌신적으로 일하셨다는 것입니다. 그 일이 얼마나 어려웠고 힘들었는가는 각 가정의 상황에 따라 정도차이가 있었겠지만, 공통적인 어머니의 모습은 어머니께서 가정을 지키고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갖은 고생을 마다하지 않으시고 그 어려운 시기를 우리를 데리시고 몸소 헤쳐나가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더욱 더, 어머니는 내 어머니이시다. 어머니는 이모나 고모가 아니고, 단순히 나를 먹여주고 도와주는 사람도 아니었다. 어머니는 바로 내 어머니이시다. 뭐라 꼬집어 말할 수 없지만,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내 어머니이시다. 오늘 우리 곁에 어머니를 모시는 분도 있지만, 안 계신 분도 있다. 우리가 모시는 어머니의 어머니도 그리고 이미 우리 곁을 떠난 어머니에 대한 감정 그대로 아니 그 이상으로 심지어는 내 어머니가 내게는 그렇게 못해주셨다고 아쉬워하는 이에게는 더욱 더 특별한 의미로 우리가 기도할 때마다 그리고 간절해질 때마다 우리가 찾는 어머니가 바로 성모 마리아이시다.

성모님은 우리의 어머니이시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면서 제자들로 구성된 우리 교회 신자 모두에게 안겨주신 어머니이시다. 요한 복음은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어머니와 그 곁에 서 있는 사랑하시는 제자들 보시고 '어머니,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하시고 그 제자에게는 '이분이 네 어머니이시다.'하고 말씀하셨다. 이 때부터 그 제자는 마리아를 자기 집에 모셨다."(요한 19, 26-27)고 적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아버지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게 해주시고, 우리에게 아버지를 안내해 주신 구원의 길과는 또 다른 방법으로, 당신의 어머니 마리아를 우리에게 어머니로 주셨다.

우리 교회는 오늘 성모 승천 대축일을 기념하면서 우리도 성모님처럼 마지막 날에 주님께로 불려 올라가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기에 성모님은 정녕 우리가 따라 걸어가야 할 모범이며 또 우리 마지막날의 희망이시다.

그런데 우리가 성모님의 생애를 되돌아볼라치면 정녕 마리아는 우리의 인생고를 방불케 한다. 마리아는 정말 누구 못지 않게 절망의 순간들을 겪었던, 절망의 여인이다.

성모님은 요셉과 결혼하기도 전에 임신하는 곤란을 겪었다.(루가 1, 26-38)

성모님은 떳떳이 남에게 자랑할 수도 없는 상태에서 결혼해야만 했고 부부생활도 변변치 못했다.(마태 1, 18-25)

그리고 호구조사를 위해 베들레헴까지 만삭의 몸으로 고통스럽게 내려가야 했다.(루가 2, 2-5)

그리고 예수 아기를 낳을 자리도 마땅치 않아, 첫아들을 말구유에 눕혀야만 했다. 성모님은 하느님의 아들을 낳으면서도, 호강은커녕 오히려 처절한 빈곤과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다.(루가 2, 6-7)

그리고 아기 예수를 낳은 후 동방박사의 방문을 받은 지가 무섭게, 헤로데의 검은 손길을 피해 제대로 몸도 풀지 못한 채 아기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난을 가야만 했다.(마태 2, 2-18)

그리고 예수 아기를 성전에 바치는 봉헌절 축제에도 성모님은 시메온으로부터 슬픈 소식을 전해들어야 했다. "이 아기는 많은 사람들의 반대를 받는 표적이 되어 당신의 마음은 예리한 칼에 찔리듯 아플 것입니다."(루가 2, 35)

그리고 명절이 되어 성전에 올라갔을 때에도 어린 예수를 잃어버려 3일이나 찾아 헤매야 했고, 겨우 찾았는데도 정작 아들 예수는 오히려 성모님을 당황하게 했다. "왜, 나를 찾으셨습니까? 나는 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할 줄을 모르셨습니까?"(루가 2, 50)

그런가하면 다 자란 아들 예수가 직업이나 가정도 없이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기 시작했을 때 성모님의 마음은 이해할 수 없는 아들의 행동에 근심이 가득해야만 했다.

성모님은 아들이 "더러운 악령에 사로잡혔다."(마르 3, 30)는 소식에 가슴을 졸여야 했다.

그리고 또 급한 마음에 아들을 찾아 나섰을 때 오히려 아들에게 "누가 내 어머니며 내 형제들이냐?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 곧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다."(마르 3, 33) 라고 여러 사람 앞에서 아들을 믿지 못했다는 이유로 망신을 당해야만 했다.

그런가하면, 아들 예수의 기적은 순간이요, 대부분의 공생활 기간 동안 여러 각도에서 여러 계층의 사람들로부터 반대 받는 표적이 되었을 때 어머니로서 그 억울함과 안쓰러움으로 시달려야만 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자기 앞에서 아들이 사형선고를 받는 것을 겪어야만 했다.

성모님은 자기 자식이 그야말로 무슨 죽을죄라도 지어서 사형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시기와 질투 그리고 모함을 받아 죽어 가는 아들을 바라보면서 차라리 자기가 대신 죽고 싶은 고통과 절망을 느꼈다.(루가 23, 13-25)

성모님의 자기의 자식이 사람들의 조롱과 모욕을 받으면서 그리고 매를 맞아가면서까지 십자가를 지고 죽음의 언덕을 오를 때 그걸 멀쩡한 두 눈으로 바라보아야만 했다.(루가 23, 26-32)

성모님은 결국 자기보다 먼저 자식이 죽는 치욕을 당해야만 했다.(루가 23, 44-46)

성모님께서 죽은 아들을 품에 앉았을 때, 그 절망이 오죽했겠는가?(루가 23, 53)

성모님께서 죽은 아들을 무덤에 묻을 때, 그 심정은 아들과 같이 죽고만 싶지 않았겠는가?(루가 23, 53)

성모님의 일생 중에 겪으셔야했던 절망이 그처럼 컸기에 그 절망을 이기고 일어선 성모님에게서 우리는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성모님께서 그 절망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믿음이었다. 오늘 복음에서 엘리사벳이 자신을 찾아온 마리아에게 말한다. "주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이 꼭 이루어지리라 믿으셨으니 정녕 복되십니다."(루가 1, 45) 그 믿음이 성모님을 오늘 우리가 그토록 바라는 주님의 품안에 안기게 해주었다. 성모님처럼 주님의 품안에 안기는 그 영광이 우리가 그토록 바라는 바가 아닌가? 성모님께서 우리 희망의 자리에 앉아 계시는 것을 우리는 누구보다도 잘 안다.

그리고 성모님은 거기에 그치지 않으시고, 하느님의 새로운 백성 곧 새로운 이스라엘인 우리 교회의 믿는 이들을 위해 어머니로서 우리를 위해 기도해주고 계시다. 하늘의 어머니로서. 그분은 오순절 날 다락방에서 성령께서 오시기를 제자들과 함께 기도하시면서 사도들의 어머니이셨듯이 오늘 하늘에 올라 우리를 위해 기도해주시는 어머니이시다.

인생의 모든 절망을 믿음으로 극복하시고 하늘에 오르신 성모님을 기억하면서 함께 성모송을 바칩시다.

우리와 세상의 구원을 위해 성모님께서 기도해 주시기를 청하면서.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 중에 복되시며

태중의 아들 예수님 또한 복되시도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성모승천대축일

서울대교구장 겸 평양교구장 서리 성모 승천 대축일 담화문

“내 영혼이 주님을 찬양하며, 내 구세주 하느님을 생각하는 기쁨에 이 마음 설렙니다”(루가 1,46-47)

1.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은 구세주의 어머니시요 모든 그리스도인의 어머니이신 성모 마리아께서 하느님의 은총으로 천상에 오르신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동시에 일제의 압제에 시달리던 우리 민족이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해방을 맞이한 광복절입니다. 이 미사를 봉헌하면서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 자신과 가정, 교회와 사회 공동체의 성화와 구원을 위해서 기도합시다. 나아가 남북으로 갈라진 채 고통받고 있는 우리 민족이 화해와 일치를 이루어 하루 빨리 하나될 수 있기를 간청합니다.

지난 세기를 돌아보면 한반도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식민 제국주의와 전쟁에 휘말려 있었고 이념의 대립과 빈부의 심화로 많은 갈등을 겪었습니다. 새 천년을 맞이하면서 우리는 폭력과 불의가 그쳐지길 소망하며 화해와 상생의 시대가 도래하길 기원하였습니다. 그러나 테러와 보복의 악순환은 지금도 지구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는 이념의 대립으로 분단된 채 지구상에 남아있는 유일한 국가입니다. 지난 세기의 유산을 짊어진 우리는 분단의 아픔을 치유하면서 화해와 일치를 염원하지만, 동시에 서해교전과 같은 돌발사태의 위협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인류 역사 안에 반복되는 불의와 폭력의 악순환 속에서 어떻게 참된 평화를 실현할 수 있겠습니까?

2. 성모승천 대축일은 성모 마리아께서 지상생활을 마치시고 영혼과 육신이 하늘나라로 올려지신 날입니다. 성모님은 현실의 온갖 고통과 부조리 속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하느님과 함께 도래할 새로운 세상에 대한 희망을 간직하셨던 분입니다. 결혼하지 않은 처녀의 몸으로 아기를 낳는 일은 당시 사회에서는 죽기를 각오해야 하는 매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성모님은 하느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도록 “예”라고 응답하면서 당신의 온 몸과 마음을 내놓으셨습니다. 성모님은 인류의 역사 안에 하느님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신 분입니다.

루가 복음에는 성령으로 예수님을 잉태한 성모님이 친척 엘리사벳을 찾아가 부른 찬미의 노래가 실려 있습니다. “주님은 전능하신 팔을 펼치시어 마음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권세 있는 자들을 그 자리에서 내치시고 보잘것없는 이들을 높이셨으며, 배고픈 사람은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부요한 사람은 빈손으로 돌려 보내셨습니다”(루가 1,51-53). 이 세상은 권력(勸力)과 무력(武力) 그리고 금력(金力)으로 다스려지는 곳이지만, 하느님께서는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사람들을 돌보시는 분임을 이 찬미 노래 안에 고백하고 있습니다. 신앙인이라면 세상의 권세에 휘둘리지 말고, 무력으로남을 억압하지도 말며, 불의로 재산을 축적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동시에 가난한 자를 돌보고 힘없는자를 배려하며 이웃을 사랑하라는 요청으로 다가옵니다.

3.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57년전 오늘은 일제의 압제에 시달리던 우리 민족이 광복을 맞이한 날입니다. 그러나 광복의 기쁨도 잠시, 남북 분단과 동족간의 전쟁, 혼란과 격동의 시기를 겪으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오늘광복절은 여전히 미완성인 축제로 머물고 있습니다. 남북한이 온전히 하나되는 통일의 그 날이야말로 진정한 광복의 원년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그동안 한국 교회는 식량난과 경제난으로 고통받는 북한 동포를 위해서 많은 지원을 하였습니다.우리와 이념과 체제를 달리하지만 지금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는 이웃을 모른 체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서 어려운 처지에 있는 북한 동포들을 돕는 데 앞장서야 하겠습니다. 앞으로 북한의 사정이 나아질 때까지 우리의 관심과 지원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또한 북한 당국도 하루빨리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제도적인 개혁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할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하느님의 모상을 닮은 인간의 권리가 신장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남북 화해와 일치를 도모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에 만연한 부정과 부패를 청산하고 잃어버린 양심과 도덕성을 회복해야 합니다. 새로운 천년기에 걸맞는 삶을 가꿔나가기 위해 모든 국민이 새로운 몸과 마음으로 태어나야 할 것입니다. 물질적이며 이기적인 삶을 극복하고 정신적가치를 소중히 여기며 이타적인 삶을 가꿈으로써 하느님의 뜻을 이 세상에 실현시켜야 합니다. 특히사회 여러 분야의 지도층에 있는 사람들은 누구보다도 윤리와 도덕적으로 올바른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지도층이 모범을 보일 때, 비로소 국민들로부터 존경을 받을 수 있으며 그 힘을 바탕으로 남북의 화해와 일치를 앞당길 수 있습니다.

4.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누구나 하느님께서 주시는 참 평화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겨레의 진정한 해방도 이평화를 전제로 하는 것이며, 이는 동서화합과 남북화해를 통한 평화를 말하는 것입니다. 물론 어려운일입니다. 멀고도 험난한 길이 가로놓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도 성모님처럼 하느님께 자신을 투신하고 정의를 실현해 나간다면 분명 좋은 결과가 나타날 것입니다.

한국교회의 보호자이신 성모 승천 미사를 봉헌하면서 하느님의 말씀을 철저히 따르신 성모님을 더욱 닮을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또한 성모님께서 우리 자신과 가정, 교회와 겨레를 위하여 하느님께 전구해 주시도록 기도합시다. 하느님의 은총과 성모님의 전구하심에 힘입어 우리 민족이 화해와 일치를 이루고 마침내 참 광복인 통일의 날이 앞당겨질 수 있도록 성모님이 부르셨던 구원의 노래를 다함께 부릅시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양하며 내 구세주 하느님을 생각하는 기쁨에 이 마음 설렙니다”(루가1,46-47).

2002년 8월15일 성모 승천 대축일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겸 평양교구장 서리 정진석 대주교



성모승천대축일

서울대교구장 겸 평양교구장 서리 성모 승천 대축일 담화문

겨레의 참된 생명을 위하여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살게 될 것입니다." (1고린 15,22)

1. 구세주의 어머니요 우리 모두의 어머니이신 마리아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셔서 영광을 받으신 성모 승천 대축일을 맞이하여 남과 북, 이 땅의 모든 분들께 하느님의 큰사랑과 은총이 가득하시기를 빕니다. 우리 민족은 이 뜻깊은 날에 ’조국광복’이라는 크나큰 선물을 받았습니다. 그로부터 56년이 지난 오늘의 시점에서 현대사를 돌아볼 때, 우리는 참으로 많은 것을 겪었고, 엄청난 시련 속에 빠른 속도로 세상이 변해 가는 과정도 지켜보며 살아왔습니다.

오늘날 우리 주위에는 안타깝게도 이기주의와 황금만능주의, 부정부패와 불신풍조, 윤리와 도덕성의 결여가 만연해 있습니다. 또한 낙태와 인공출산, 대리모 출산과 안락사 문제 등은 하느님의 창조질서를 어지럽히는 죽음의 문화로써 새천년기를 시작하면서 청산해야 할 요소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동안 우리 민족은 국토분단과 동족상잔의 고통에 신음하며 너무나도 많은 희생을 치뤘고, 아직도 크고 작은 숱한 갈등을 풀지 못하고 있습니다.

2. 지난해 6.15 남북 정상의 만남 이후, 우리는 몇 차례 이산가족 상봉을 지켜보며 "누가 우리를 갈라놓았느냐?" "흘러간 세월을 누가 되돌려 놓겠느냐?"고 울부짖는 소리도 들었습니다. "자기 명대로 살지 못하고 죽어간 그 많은 사람들의 원한은 누가 씻어줄 것이냐?"며 통곡하는 가족들의 오열도 지켜보았습니다. 서로 다른 여건과 환경에서 가치관의 혼돈과 더불어 정신적 육체적 굶주림과 목마름으로 허덕이는 이웃이 오늘날도 많습니다.

1945년 8월15일을 계기로 외세의 압제에서 벗어나기는 했으나 남과 북이 갈라선 채 따로 정부를 수립함으로써 우리 겨레는 그 날부터 ’통일’이라는 새로운 염원을 간직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대목이 있습니다. 1917년 러시아에서 10월 혁명이 일어나기 직전, 파티마에서 발현하신 성모님은 "러시아의 회개를 위해 기도하라"고 일러주시면서 "결국 나의 성심이 승리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로부터 70여 년이 지난 1990년대 초 성모님의 말씀대로 공산주의가 유럽에서 몰락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통일문제도 여러 갈래의 동상이몽 속에 백성들의 마음을 한데 모으지 못하고 있지만, 우리가 진정으로 민족화해를 위해 기도하고 노력할 때 성모님의 전구와 하느님 아버지의 은총으로 평화적인 통일을 이룩하게 될 것을 믿습니다.

3. 우리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선정하신 2002년 1월 1일 제35차 세계 평화의 날 주제 ’용서 없이는 평화 없다’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교황님은 분쟁지역의 평화를 위해서는 대화와 협상, 정의를 위한 투신이 필요하지만, 이러한 노력들도 용서 없이는 지속적인 효과를 내지 못한다면서, "용서와 화해야말로 평화에 이르는 가장 확실한 길"이라고 강조하십니다.

이와 같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평화에 이르는 지속적인 대화와 윤리적 책임의 수용, 인간의 자유, 인간 존엄성에 대한 존중이 전제되어야 하고, 극단적인 대립을 삼가도록 해야 합니다. 오늘의 우리 정치현실과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면에서 과연 제대로 똑바로 가고 있는지 살펴볼 일입니다. 지금은 더불어 살아가고 함께 승리하는 길을 찾아 나서야 할 때입니다. 또한 우리 겨레가 당면한 ’민족화해’ 문제도 이러한 측면에서 접근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4. 오늘을 사는 이 겨레, 이 백성들이 추구해야 할 것은 과연 무엇입니까? 무한경쟁에서 승리하고, 물질적인 부(?u)를 만끽하며, 이웃의 희생 위에 나의 성공을 자랑하는 그런 것을 추구할 수는 없습니다. 참다운 가치관을 가지고 ’영원한 생명’을 추구해야 할 것입니다. 어떤 율법교사가 "선생님, 제가 무슨 일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예수님은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통해 ’이웃 사랑’을 강조하시면서 "너도 가서 그렇게 하여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루가 10,25-37 참조).

사실 우리는 예수님의 마음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마음을 넓혀야 합니다. 마음에 드는 사람만 사랑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 모든 이를 사랑하는 것이 참된 사랑입니다. 우리 곁에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해서, 하느님께서 그 사람을 사랑하시는 것과 꼭 같이 우리도 그를 사랑해야 합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원수까지도 사랑하면서 하나가 될 때, 현실생활에서부터 하느님 나라인 천국을 맛보며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5. 오늘날 우리가 진정 바라고 추구해야 할 참된 해방을 누리려면 먼저 죄에서 해방되어야 하고 ’새 인간’이 되어야 합니다. 죄에서 해방되기 위해서는 구원의 은총 속에서 자신의 허물을 돌아보고, 우리가 몸담고 살아가는 사회가 죄의 구조에서 벗어나도록 모두가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 각자가 새롭게 태어나는 일대 변화를 가져와야 하리라고 봅니다. 변화의 주체는 바로 나 자신입니다. 내가 변해야 세상이 변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아담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죽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살게 될 것"이라면서 그분을 믿는 이들도 그분의 뒤를 이어 부활의 영광에 동참하게 될 것임을 일러주고 있습니다(1고린 15,12-34 참조). 옛 인간에 속한 사람들의 죽음은 단지 아담이 지은 죄에 따른 운명적 결과일 뿐만 아니라 그들 자신이 지은 죄의 결과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새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 우리는 생명의 길로 계속 매진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6. 현대를 ’증거자의 시대’라고 말합니다. 선교 활성화와 함께 시노드를 준비하고 있는 우리 교구의 모든 성직자와 수도자, 평신도들은 특별히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특히 신유박해 순교 200주년을 지내고 있는 오늘, 우리 모두는 하느님과 이웃을 위해 목숨까지도 기꺼이 내어놓은 한국 순교자들의 거룩한 순교정신을 본받아 복음을 생활화하면서 그리스도처럼 살아갈 것을 요청 받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생활로써 기쁜 소식을 이웃에게 전해줄 때, 우리 주변은 물론, 북녘 땅과 아시아의 복음화가 앞당겨질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우리는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가장 확실한 증인이며 복음을 온전하게 사신 성모님을 닮은 신앙인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성모님은 한평생 동안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그 말씀을 따라 사심으로써 천상의 영광을 누리며 우리들을 위해서 전구해 주고 계십니다. 성모님은 이 지상에서 주님의 날이 올 때까지(2베드 3,10 참조) 순례길에 있는 하느님 백성에게 희망과 위로의 표시로서 빛나고 있습니다(교회헌장 68).

새 천년을 시작하면서 남과 북의 모든 형제 자매들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참다운 자유와 해방을 누릴 수 있기를 축원하며 기도 드립니다.

2001년 8월15일 성모 승천 대축일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겸 평양교구장 서리

정 진 석 대주교



성모승천대축일

서울대교구장 겸 평양교구장 서리 성모 승천 대축일 담화문

민족의 참된 해방을 위하여

'하느님께서는 자유를 주시려고 여러분을 부르셨습니다'(갈라 5,13).

1. 특별한 감회 속에 맞이한 8.15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은 성모 승천 대축일이자 우리 민족이 일제의 식민통치에서 벗어난 지 쉰 다섯 돌이 되는 뜻깊은 광복절입니다.

해마다 8월15일이면 맞이하는 성모 승천이요, 광복절이지만 올해는 특별한 감회 속에 대축일과 경축일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한 세기가 바뀌는 것이 아니라, 한 천년기가 가고 새로운 천년기가 시작되는 2000년 대희년의 한 중턱에서 맞이한 축제날입니다. 또한 동시에, 동·서가 화합하는 세계사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도 지구상의 유일한 분단지역으로 남아 있는 우리 한반도에서 남과 북의 정상이 서로 만나 평화공존과 통일을 향한 새로운 이정표를 그려 나가고 있습니다. 이런 시점에서 맞이한 축제날이기에 이번 8in15는 더욱 색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2. 성모님과 한국교회·한국민족

우리 한국 천주교회는 성모님의 특별한 보호 아래 성장, 발전해 왔습니다. 오늘 이 중요한 시기에도 성모님은 변함없이 천상에 계신 예수님의 어머니이시며 우리의 어머니이십니다. 그러기에 오늘 대축일 교중미사를 통해 전국의 모든 본당에서 한국교회의 수호자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님께 나라와 교회를 봉헌하는 예식을 거행하는 것은 참으로 뜻깊은 일이라 하겠습니다.

일찍이 조선교구 제2대 감목으로서 이 땅에서 순교까지 하신 앵베르 범세형 주교 성인은 1838년 한국교회를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님께 봉헌하였습니다. 이후 1945년 8월15일 성모 승천 대축일에 우리 나라와 민족은 해방을 맞이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1984년 5월6일 103위 순교 복자들을 시성하기에 앞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명동 성당에서 다시 한번 우리 겨레와 교회를 성모님께 봉헌한 것을 우리는 매우 뜻깊은 일로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습니다.

3. 새로운 마니피캇

이제 새 천년 첫 8in15에 즈음해서 반세기가 넘도록 대치상태에 놓여있던 남과 북이 함께 '화해주간'을 지내고 있습니다. 그 동안 나뉘고 흩어져 살아온 남북 이산가족들이 비록 한정된 인원과 기간이기는 해도, 감격과 회한 속에 재회의 기쁨을 나누게 됐습니다. 그리고 끊어져 녹슬기만 했던 철길을 다시 놓아 남북을 이어주는 경의선 공사도 머지 않아 시작할 단계에 와 있습니다. 이 모든 일은 성모님의 전구를 통해 우리 민족에게 베풀어 주신 하느님의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에 광복절이자 성모님의 승천을 기리는 큰 축일인 오늘, 하느님은 모든 이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마음이 교만한 자들의 계획을 흩으시며, 권세 있는 자들을 그 자리에서 내치시고, 보잘것없는 이들을 높이시며, 정의로 다스리시고, 부(?u)를 나누어 주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알게 해 주신 천상의 어머니를 기리며 '마니피캇'(성모찬송)을 노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4. 용서와 화해

우리는 분단과 전쟁으로 동족끼리 총부리를 겨누고 싸웠던 지난날을 돌아보면 하느님과 인류 앞에 부끄럽기 그지없습니다. 서로를 알려고 하기보다 편견과 아집으로 수십 년을 헛되게 보낸 데 대해 이제는 서로가 용서를 청하고 용서하는 겸허함을 보여야 할 때입니다. 잘못된 과거를 뼈저린 참회와 회심으로 씻어내면서 민족의 미래를 설계하고 새로운 역사를 기록해 나가야 할 오늘입니다.

교회도 그 동안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이루어야 할 본연의 사명을 다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반쪽만의 교회'가 전체인 양 말하고 행동한 것에 대해 반성하고 북녘의 동포들과 아픔을 함께 나누면서 민족의 화해를 이루려는 노력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할 것입니다.

5. 민족의 참다운 해방을 위하여

진정한 화해는 그리스도인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전 인류의 일치와 정의와 평화의 하느님 나라를 성장케 하는 데에 목적이 있습니다.

55년 전 우리 민족은 일제의 압제에서 벗어났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의 해방은 아직도 결실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몸담고 살아가는 이 사회는 죄와 죄의 구조에 얽매여 여전히 참다운 해방을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가 남의 인권을 훼손하며 억압하기도 하고, 억압을 당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인간 이하로 대접하는 것에 대해서 깊이 반성해야 합니다. 또한 신자유주의의 그릇된 물결이 자라나는 세대에게까지 번지고 있는 현실에서 공동선이 무시되고 지역 이기주의와 집단 이기주의의 목소리가 메아리 되어 들려오고 있습니다.

6. 새로운 사명

지나간 20세기가 우리 민족에게 억압과 분단의 시대였다면, 아시아·태평양 시대라고 일컫는 21세기는 우리가 참다운 해방과 통일과 번영을 이룩하여 세계 모범국가로 우뚝 설 수 있는 시대로 일구어 나가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은 우리 민족을 각별히 사랑하셔서 새 시대에 새로운 사명을 맡겨 주고 계십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기회 있을 때마다 북한과 중국을 포함한 동북 아시아의 복음화를 걱정하시면서 이 일은 한국 교회만이 할 수 있다는 점을 상기시켜 주십니다. 이제는 우리가 응답해야 할 차례이며 우리가 나서야 할 시점입니다.

"서쪽 하늘에서 구름이 일면 비가 내릴 것을 알아야 하는"(루가 12,54) 것과 같이 '시대의 징표'를 깨달아야 하고, 오늘 우리에게 내리시는 하느님의 계획을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동양 선교에 목숨까지도 바쳐서 투신해 오고 있는 선교사들에게 감사하며, 이들을 본받아 우리 모두 선교 결의를 굳게 다짐해야 하겠습니다.

7. "예"라고 응답하며 다시 시작합시다

예수님의 탄생 2000년을 되새기는 것은 선교의 기원을 경축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희년은 곧 교회 전체가 새로운 선교의 열정으로 일할 수 있는 은총의 시간입니다. 이제 새로운 천년기를 맞이하여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묶인 사람들에게는 해방을 알려 주고 눈먼 사람들은 보게 하고, 억눌린 사람들에게는 자유를 주며 주님의 은총의 해를 선포하도록"(루가 4,18-19) 파견되신 성자 그리스도의 사명을 성령의 도우심 안에서 이 땅과 아시아의 복음화를 위해서 헌신해야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나라와 교회의 수호자이신 성모님께 의탁해야 합니다. 성모님께 우리 모두 새로운 복음화를 위한 하느님의 계획 실행에 "예"라고 대답하도록 도와 주실 것을 청해야 합니다.

북녘과 남녘의 형제 자매 여러분이 진리와 사랑 안에 참다운 해방을 누리며 새로운 삶을 살아가도록 하느님의 축복이 있기를 간구합니다.

2000년 8월15일 성모 승천 대축일에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겸 평양교구장 서리

정 진 석 대주교



성모승천대축일

서울대교구장 정진석대주교 성모승천대축일 담화

하느님께서는 당신께 충실한 사람을 결코 잊지 않으십니다.

친애하는 교형자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성모 승천 대축일이고 광복절입니다. '성모 승천 대축일'은 성모님께서 지상생활을 마치시고 영혼과 육신이 하늘나라로 들어 높여졌음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미사중에 특별히 남북으로 분단된 우리 민족과 교회 안에 하느님 아버지의 은총이 충만하시기를 기원하며 기도드립니다.

지난 100년을 돌이켜보면, 우리 민족은 세계의 어느 민족보다도 극심한 고난의 길을 헤치며 살아왔습니다. 20세기가 시작되면서 일제의 지배 아래 신음하였고 1945년에 제 2차 세계 대전 종식과 함께 가까스로 압정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광복에 기쁨도 누릴 사이 없이 남북이 갈라져 동족을 살상하는 처참한 전쟁을 치렀고 수 많은 이산 가족이 지금까지도 한을 안고 살아갑니다. 민족 분단의 역사는 어느새 반 백년이 지났지만 그 아픔이 오히려 깊어만 가고 있습니다. 공산국가의 종주국이었던 소련이 붕괴되고 동.서독간의 장벽이 무너진지 1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현실을 보면 남북 분단의 문제뿐 아니라 지역간, 계층간의 골이 더욱 깊어만 가고 있습니다. 진실로 지역간,계층간 구별없이 사랑으로 하나되고, 남북이 하나 되는 날, 그날이 바로 진정한 광복의 날일 것입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는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오로지 경제적으로 잘사는 것만을 최우선으로 삼았습니다. 그 결과 어느 정도 가난에서 벗어날 수는 있게 되었지만 그 대신에 아름다운 전통과 정신이 허물어졌고 영성적인 가치관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따라서 오늘 우리는 먼저 잃어버린 영성적인 가치의 소중함을 깨닫고 그 가치들을 재발견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진정한 광복의 날을 맞이하기 위해서 모든 사람들이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회개하여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 국가 사회를 이끌어가는 지도층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도덕성 높은 솔선수범이 그 어느때보다도 절실히 필요합니다.

친애하는 교형자매 여러분!

우리 민족이 식민지의 질곡에서 벗어나 주권을 회복한 8월 15일이 교회의 달력으로 '성모 승천 대축일'인 것도 매우 뜻이 깊습니다. 일찍이 우리 한국 천주교회는 성모님께 봉헌 되었습니다.이 명동 성당 역시 '원죄 없으신 성모님'께 봉헌된 성당입니다. 또한 우리 나라의 신자들은 세계 어느 민족보다도 성모님께 대한 신심이 깊다고 할 수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성모 승천 대축일에 광복을 맞이 한 것은 우연이 아니라 성모님의 전구하심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구원의 역사 안에서 성모님은 그 누구보다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성모님은 언제 어디서나 하느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며 그 말씀에 따라 충실하게 한 평생을 사신 분입니다. 하느님께 희망을 두고 살았던 성모님은 전능하신 하느님과 함께 도래할 사랑과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새 날에 대한 희망으로 이런 노래를 불렀습니다. "주님은 거룩하신 분, 주님을 두려워하는 이들에게는 대대로 자비를 베푸십니다. 주님은 전능하신 팔을 펼치시어 마음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권세있는 자들을 그 자리에서 내치시고 보잘것없는 이들을 높이셨으며, 배고픈 사람은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요한 사람은 빈손으로 돌려보내셨습니다."(루가1,49-53).

성모님은 언제나 하느님의 말씀에 '예’라고 응답하시어 모든 신자의 모범이 되셨습니다. 성모님은 항상 예수님과 함께한 분이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음을 맞이하면서 당신의 어머니를 모든 믿는 사람들의 어머니로 내어 주셨습니다. 성모님은 예수님을 따라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우리 인간이 당할 수 있는 모든 고통을 다 당한 분입니다. 고통의 한가운데서도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깊이 묵상하며 사신 성모님은 그리스도를 증언한 교회와 신앙인의 모범이자 어머니였습니다.

친애하는 교형자매 여러분!

하느님께서는 당신께 충실한 사람을 결코 잊지 않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신앙에 충실한 성모님을 드높혀 주셨는데 그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기리는 '성모 승천’입니다. 우리도 성모님처럼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며 충실하게 생활한다면 하느님께서 우리를 거두어 주시고 드높혀주실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의 성모 승천 대축일은 믿음을 가지고 있는 우리 모두의 축일이기도 합니다.

성모님은 하느님께 대한 신앙만 진실했던 것이 아니고 주위 사람들에게 열린 마음으로 다가간 분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최초로 기적을 행하신 '가나의 혼인잔치'를 기억할 수 있습니다. 혼인잔치집에서 포도주가 떨어졌을 때 성모님은 난처한 입장에 처한 주인을 위해서 아들 예수님에게 도움을 청하였고, 그 결과 물이 포도주로 변한 최초의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모님은 사촌언니인 엘리사벳의 해산일이 가까워지자 해산을 돕기 위해서 그 먼 유다 산골까지 찾아가셨습니다.

성모님이 모든 그리스도인의 모범이 된 것은 늘 하느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고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들에게 사랑을 실천했기 때문입니다. 지난 8월 초순 집중호우와 태풍으로 말미암아 경기 북부지방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인명과 재산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우리 교구에서는 긴급지원과 함께 모든 본당에서 2차 헌금과 구호 물품을 모아 전달해주었습니다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수재로 고통을 받으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수재민들이 오늘의 고통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의 희망을 갖게 되도록 우리 모두 성모님의 모범을 따라 이웃의 고통에 동참하며 정성을 모아야 하겠습니다. 끝으로 성모님의 전구하심에 힘입어 하느님 안에서 우리 민족이 하나되고 전 인류가 평화를 누리기를 바라며 하느님께 기도드립니다. 아멘.

99/08/15



성모승천대축일

(다해) 루가 1,39-56 : 98/08/15

오늘 세례를 받으시는 여러분 축하드립니다. 주님의 축복이 세례자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함께 하시길 빕니다. 그리고 성모승천대축일을 맞이하는 신자 여러분에게 같은 축복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엘리사벳은 마리아님을 맞으면서 "모든 여자들 가운데 가장 복되"(루가 1,42ㄴ)다고 소리칩니다. 그러면 실제로 마리아님이 하느님의 축복을 받아서 어떻게 살았는지 확인해 봅시다. 마리아님은 하느님의 아들을 임신하는 영광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그 시대엔 처녀가 아이를 배면 돌로 맞아 죽었어야 했습니다.(요한 8,3-5 참조) 마리아님은 하느님의 축복을 받아 죽을 위험에 빠진 것입니다. 마리아님은 예수 아기를 낳고 헤로데가 두 살 이하의 어린아이들을 죽이려고 하는 바람에 이집트로 도망가야 했습니다.(마태 2,13-15 참조) 또 마리아님은 예수님이 어릴 때부터 어머니의 말을 안 듣고 혼자 떨어져 성전에서 학자들과 어울리는 등 엉뚱한 짓을 해서 속을 썩어야 했습니다.(루가 2,41-50 참조) 그리고 또 마리아님은 자신이 애지중지 키운 아들 예수님이 미쳤다는 소리를 듣고 찾아 나서야 했습니다.(마르 3,21 참조) 게다가 급기야는 마리아님은 자기 아들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는 아픔을 겪어야 했습니다.(요한 19,25-27 참조)

그렇다면 마리아님이 받았다고 하는 하느님의 축복은 결국 무엇입니까? 마리아님의 생애 안에서 우리가 생각하고 기대하는 행복과 풍요 그리고 평안이라는 것은 아예 없습니다. 오히려 하느님의 축복이 마리아님께는 무슨 벌이라도 받은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런데도 엘리사벳을 비롯한 교회는 오늘날까지도 마리아님은 복된 분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마리아님은 무슨 복을 받았습니까? 오늘 엘리사벳의 말씀을 봅시다.. "주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이 꼭 이루어지리라 믿으셨으니 정녕 복되십니다."(루가 1,45) 엘리사벳의 말대로라면, 마리아님이 받은 하느님의 축복은 하느님께 대한 믿음에서 비롯된 것인데, 그 믿음은 바로 하느님의 말씀이 꼭 이루어질 것이고 또 이루어져야만 한다는 희망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마리아님은 자신의 희망이 이루어지기 위해, 자기를 하느님께 바친 것입니다.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가 1,38) 마리아님은 하느님의 계획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하면서 자기의 계획을 버린 것입니다. 마리아님은 하느님의 계획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함으로써, 자기의 인생을 하느님의 도구로 바친 것입니다. 그리고 마리아님은 자기의 봉헌이 세상 사람들에게 구원을 가져올 것이며, 다른 사람이 행복해짐으로써 결국 자신이 행복해진다는 사실을 믿고 산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마리아님을 죽도록 하지 않으시고 하늘로 불러 올리셔서, 오늘 우리가 성모승천대축일을 지내면서까지 경축하게 된 것입니다.

마리아님 자신도 이 사실을 잘 알았습니다. 마리아님은 "이 몸은 처녀입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루가 1,34)하며 두려워했지만, 자신에게 내려진 축복이 자기 개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통해 모든 이를 구원하기 위한 것임을 잘 알고 그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원하며 자신을 하느님께 바친 것입니다. 그래서 마리아님은 이렇게 노래를 불렀습니다.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 일을 해 주신 덕분입니다. 주님은 거룩하신 분 주님을 두려워하는 이들에게는 대대로 자비를 베푸십니다."(1,49-50)

한편 마리아님은 "권세 있는 자들을 그 자리에서 내치시고, 부요한 사람을 빈손으로 돌려보내"(1,52ㄱ.53ㄴ)신 이유가 바로 "보잘 것 없는 이들을 높이고, 배고픈 사람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1,52ㄴ.53ㄱ)시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 노래는 권력자나 부자 어느 누구 한 명이 보기 싫거나 혼내기 위해서 그가 누리는 것을 없이하시는 것이 아니며, 또 보잘 것 없는 자나 배고픈 사람 어느 하나를 더 사랑하셔서 좋은 것을 누리도록 하시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이가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평등하고 인간답게 살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인간 모두가 하느님께서 마련해 주신 세상에서 다 함께 행복하게 살도록 하기 위한 조정입니다. 가진자가 안 가진자나, 누리는 자나 못 누리는 자나 자신들의 삶을 지배하고 운명짓는 외형적인 것으로부터 해방시켜주시고, 인간이 인간이라는 사실로도 충분히 살도록 신앙공동체를 만들어 구원하신다는 믿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한 바로 이것이 하느님께서 신앙인들에게 약속하신 하느님의 자비라는 것을 선포합니다. "주님은 약속하신 자비를 기억하시어 당신의 종 이스라엘을 도우셨습니다. 우리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대로 그 자비를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토록 베푸실 것입니다."(1,54-55)

하느님의 축복을 받아 오늘 세례를 받으시는 세례자 여러분과 신자 여러분, 여러분의 축복된 오늘이 여러분의 계획이 이루어지고 여러분의 뜻을 펼치는 계기가 되기보다는, 하느님의 뜻과 계획이 이 땅에 이루어지기 위해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구체적인 삶 속에 주님께서 어떻게 함께 해주시는가를 체험하고 깨달으며 살아야 하겠지만 그 깨달음과 체험이 여러분과 여러분 가족만의 번영과 안락을 위한 것이 되지 않도록 하십시오. 그래서 여러분의 삶과 여러분의 계획에 하느님을 끼어들이려고 하기 보다, '하느님의 계획에 저를 도구로 써주십사.' 하고 청하며 여러분 자신을 주님께 온전히 바치시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같이 성 프란치스코의 기도를 마음 속으로 함께 바치면서 세례식을 시작합시다.

"주님, 저를 당신의 도구로 써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신앙을

그릇됨이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두움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는 자 되게 하소서.

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여 주소서

저희는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써 용서받으며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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