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부활 대축일 서울대교구장 메시지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 있는 것이다.”(루카 20,38)

(가해) 요한 10,11-18; 17/04/16

주님께서 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알렐루야!

온 세상 만물이 소생하는 봄에 우리는 예수 부활 대축일을 맞았습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이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함께하시길 빕니다. 특별히 어렵고 힘든 처지에 있는 사람들과 남북의 모든 형제자매들에게 주님의 평화가 충만히 내리기를 기원합니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사건은 그리스도교의 핵심이자 우리의 신앙을 지탱하는 중심 내용입니다. 따라서 부활은 우리 그리스도교 신앙의 정수이며, 모든 두려움과 불확실함, 모든 의혹과 인간적인 계산을 날려주는 강력한 바람입니다. 주님의 부활로 우리 모두의 마음에 절망이 아닌 희망의 불씨가 피어나 온 세상에 가득 퍼져 나가기를 바랍니다. 특히 올해 예수 부활 대축일은 세월호 참사 3주기가 되는 날입니다.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모든 분들과 유가족들에게 끝없는 위로와 기도를 전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은총으로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이 하늘나라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고, 미수습자들도 하루빨리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길 기도합니다. 또한 이 나라에 더 이상 무죄한 이들의 죽음이 반복되지 않도록 우리 국민 모두가 생명을 더욱 귀중하게 여기고, 이를 최우선의 가치로 삼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오늘 복음 말씀은 빈 무덤 이야기를 통해 예수님의 부활 사건을 전해줍니다. 예수님의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고,(요한 20,1 참조) 무덤이 비어있다는 마리아 막달레나의 증언을 들은 두 제자는 예수님의 얼굴을 감쌌던 수건과 아마포가 놓여있는 것을 실제로 보았습니다.(요한 20,3-6) 주님은 부활하심으로써 어둠이 빛을, 불의가 정의를, 미움과 증오가 사랑을 결코 이길 수 없음을 세상에 증거하셨습니다.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께서 ‘사도 중의 사도’라고 칭송한 마리아 막달레나는 끝까지 예수님의 임종을 지켰고, 슬픔 속에도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가장 먼저 나타나셨고, 이로써 그녀는 그리스도 부활의 첫 목격자이자 첫 증언자가 되는 영광을 안았습니다. 그녀가 예수 부활을 알렸기에 두려움에 떨던 주님의 제자들이 용기를 내어 세상에 나가 복음을 전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마리아 막달레나처럼 희망을 굳게 믿어야 합니다. 현재 우리 사회는 혼란과 불안을 간직한 채 변화와 혁신이 필요한 시기에 놓여 있습니다. 헌정 사상 처음인 현직 대통령의 파면은 우리 국민들로 하여금 깊은 슬픔과 함께 새로운 사회와 새로운 지도자에 대한 열망을 확인하게 했습니다. 이 어려운 난국에서도 온 국민이 인내와 슬기를 가지고 헤쳐 나가기를 기원합니다.

또한 변화의 시작에서 우리나라는 새로운 봉사자를 뽑는 제19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습니다. 다가오는 선거와 그 결과가 국민의 화합과 일치를 이루고 참다운 민주주의 발전의 계기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이번 대선은 어느 때보다도 국가의 미래를 위해 중요한 날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국민을 위해 봉사하고 공동선과 정의를 실천하며 우리나라의 통합과 화해를 위해 노력하는 봉사자를 선출해야 합니다. 국민으로부터 선택받은 새로운 지도자가 갈등과 분열을 뒤로하고 화해와 일치를 통해서 화합의 길로 나아가도록 이끌어 주기를 바랍니다. 진정한 지도자는 혼자 변화를 시키는 사람이 아니라 국민과 함께 국민으로 하여금 변화를 이루게 만드는 사람입니다. 하느님께 우리나라와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좋은 지도자를 보내주시길 기도합시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부활이며 ‘새로운 삶’을 의미합니다. 즉 부활의 믿음은 그리스도의 모습에 따라 창조된 새 인간을(에페 4,24 참조) 낳고 새로운 공동체, 새로운 인류를 낳습니다. 부활에 대한 믿음은 끝내 우리가 원하는 변화를 가져오며 그 변화의 종착지는 하느님 나라입니다. 우리 신앙인들도 주님의 제자들처럼 부활 신앙을 간직하고 새롭게 변화되어 말과 행동으로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해야 하겠습니다. 나부터 새롭게 변화되면 부활은 우리 주변 곳곳에서 발견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지금 우리 교회가 실천하고 있는 신앙 운동인 ‘답게 살겠습니다’와 같은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모두의 삶과 마음 안에 그리스도께서 온전히 형성되실 때까지 그분을 닮고자 노력하고 실천하는 그리스도인이 됩시다. 주님께서는 부활을 증언하며 어둠을 물리치고 다양하며 선하고 긍정적인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가려는 우리 모두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함께하실 것입니다.(마태 28,20 참조)

다시 한 번 부활하신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파티마 성모 발현 100주년을 맞아 평화의 모후이신 성모 마리아께 주님의 빛과 생명과 평화가 한반도에 가득하도록 전구해주시길 청합니다.


2017년 예수 부활 대축일에 주님과 함께 천주교 서울대교구 교구장 염수정 추기경



예수 부활 대축일 낮미사 서울대교구장 메시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우리에게 생생한 희망을 주셨습니다.”(1베드 1,3 참조)

(나해) 요한 20,1-9; 15/04/05

주님께서 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겨우내 얼어 있던 대지에 다시 생명의 싹이 돋아나고 꽃망울이 피어나는 봄이 왔습니다. 싱그러운 봄과 함께 주님의 부활 대축일을 맞이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은총이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 남과 북의 모든 형제자매,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충만히 내리시기를 기원합니다. 무엇보다도 지난해 온 국민에게 말로 다할 수 없는 충격과 슬픔을 안겨준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아, 희생된 모든 분들과 유가족들에게 부활하신 주님의 특별한 은총을 기원합니다. 주님 은총의 힘으로 희생자들이 영원한 안식을 누리고, 유가족들은 하루빨리 슬픔을 극복하고 마음의 상처를 치유 받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인간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서 무참하게 죽으셨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절망과 두려움에 떨고 있던 제자들을 찾아오시어 “평화가 너희와 함께!”라고 인사를 건네십니다. 이 만남을 통해 제자들은 스승을 배반했던 죄책감에서 벗어나고 죽음의 공포에서 해방되어 그분을 증거할 용기를 얻게 됩니다. 이렇게 그리스도의 부활은 죄인이 새롭게 태어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며, 하느님과 함께 영원히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선사합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죄와 죽음의 어둠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우리에게도 새로운 삶에 대한 용기와 희망을 전해 줍니다.

오늘날의 세상은 부활하신 주님의 빛과 은총이 어느 때보다도 필요합니다. 세계 도처에 어둠이 짙게 깔려있기 때문입니다. 곳곳에서 테러와 폭력, 전쟁의 위험이 끊이지 않고, 무고한 사람들이 생명의 위협을 당하며 억울하게 희생되고 있습니다. 테러와 전쟁은 하느님의 뜻에 반하여 고귀한 인간성을 말살하는 반인륜적인 행위며 소중한 생명을 짓밟는 행위입니다. 우리 사회에도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이기주의, 물신주의와 생명경시 풍조, 진영논리로 인한 비난과 증오가 날로 증가하여 평화롭고 조화로운 삶을 어렵게 합니다.

이런 어두운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우리 신앙인들은 새로운 삶으로써 부활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크게 변화되어 그분을 만방에 선포하였습니다. 주님의 부활은 제자들의 ‘부활’, 곧 새로운 삶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부활의 삶을 살기 위해 무엇보다 먼저 부활하신 주님께서 선물로 주신 평화의 삶을 각자 삶의 현장에서 살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주님이 주시는 평화는 “사랑과 정의가 충만한 상태”로서, “결코 한 번에 영구히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평화는 모든 사람이 언제나 꾸준히 이룩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우리 안에 모시고 평화의 길로 나아갑시다. 주님이 주신 평화는 그분의 십자가와 죽음을 통해 이루어졌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우리 역시 평화를 위해 십자가를 지고 희생할 각오를 합시다. 특히 올해는 한반도 분단 7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주님 부활의 은총으로 남과 북이 새롭게 되어 서로 화해와 일치를 위해 더욱더 힘써야 할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도 “남한과 북한은 같은 언어를 쓰는 한민족이며, 순교자의 피는 남한만을 위한 것이 아니기에 피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남북한의 형제들이 하루빨리 서로 대화하고 교류하여 함께 평화의 삶을 이루어 나가기를 기원합니다.

또한 우리 사회가 갈등과 분열을 뒤로하고 평화와 화합의 길을 갈 수 있도록 모두 노력하고 희생합시다. 우리 각자의 변화 없이 우리 사회의 변화는 요원합니다.

우리 자신의 변화를 위해 이번 사순 기간에 한국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가 주도하여 범종교인 차원의 ‘답게 살겠습니다’ 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운동은 나 자신부터 시작하여 스스로 반성하고 쇄신의 기치를 드높여 나가겠다는 선언입니다. 이와 같은 훌륭한 실천운동이 각 계층에서 활발하게 이어져 우리 사회가 좀 더 밝고 평화롭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가 마음으로부터 새로워져 자신과 가정만을 바라보는 좁은 삶의 테두리에서 벗어나, 이웃을 배려하고 사회를 생각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기원합니다. 많은 이들이 더 큰 사랑과 나눔을 실천하여 우리 사회가 하나가 되는 데 힘을 모은다면, 물신주의에서 비롯된 우리 사회의 비인간화와 여러 분열상들을 해소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많은 어려운 현실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다시 생생한 희망을 줍니다. 우리도 주님의 제자들처럼 새롭게 변화되어 말과 행동으로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해야 하겠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마음 안에 그리스도께서 온전히 형성되실 때까지 그분을 닮는 노력을 계속해야 합니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더 이상 죽음의 어둠 속에 있지 않고, 부활의 빛과 생명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영광스러운 주님의 부활을 맞이하여 여러분과 가정에 주님 부활의 생명과 빛이 가득하시기를 바랍니다.

2015년 부활절에

천주교 서울대교구

교구장 염수정 추기경


예수 부활 대축일 성야미사

(나해) 마르 16,1-7; 15/04/04

지난 주간에 본당에서 살다가 요양원이나 실버타운 등지로 이사가신 어르신들을 찾아 뵈었습니다. 어떤 분들께서는 제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신부님, 사람이 죽지 않는 것이 문제에요……” “나이 90이 넘으면 문명의 이기 등이 아무 소용이 없어요. 그저 자신의 몸에서 나오는 힘으로 움직이고 살아야 해요……”

저는 그분들의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이렇게 나이가 들어 사는 것 자체가 한쪽으로는 짐처럼 다가오는 생애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특별히, 주님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오늘 생각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살리기 위해 대신 죽기까지 하시면서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시고 가셨는데, 우리에게 그 생명이 진정 신비이며 선물이고 행복일까?’

어릴 때는 빨리 커서 어른이 되어 마음껏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어른이 되어서 내가 어릴 때 하고 싶었던 좋은 일들을 다 하고 살고 있는지?

그리고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순간을, 내 생애를 행복이며 선물로 여기고 살고 있는지?

나이가 들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때, 또 어떤 것도 내가 해야만 할 의무가 없을 때, 그 때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병들어 신음하고 있을 때, 의식 조차 없이 누워서 시간만 보내며 마치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는 것만 같을 때, 우리 생명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나는 그 순간에도 주님께서 내게 주신 생명에 대해 진정 감사를 드리며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반드시 삶의 마지막이 아닌 일상에, 사람도 일도, 열정과 의지와 힘도 사라지고, 말 그대로 나 혼자 뿐일 그 순간이, 어쩌면 그렇게 그리워하던 주님과 하나되는 순간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무도 없이 혼자 아니, 홀로 주님 앞에 마주 앉아 주님과 함께 진정 하나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아닐런가 생각해 봅니다. 외적인 영향이나 장애 없이 스스로의 노력만으로도 주님과 함께할 좋은 순간이라 기대해 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앞으로도 부활하신 주님께서 주시는 생명을 가지고 기쁘게 살아나갈 수 있을까? 내가 만일 내 생애의 순간 순간들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살아나갈 때, 내 생애가 내겐 더 할 수 없는 선물이요 감사드릴 수 있으리라. 내가 만일 내 생애의 순간들을 거부하고 부정적이고 수동적으로 마지못해 살아나갈 때, 내 생애는 내게 커다란 짐으로 다가 온다는 것을 지난 생애의 경험과 믿음 안에서 바라봅니다. 그리고 ‘앞으로 남은 생애도 그러리라.’고 여깁니다.

하느님께서 육신 생명을 주셔서 이 세상에 나를 내 주시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나를 살리시기 위해 대신 죽음으로 내 죗값을 치러주시기까지 하시면서, 믿음으로 새로운 생명을 주셨습니다.

주 하느님께서 이렇게 내어주신 우리 인생이 기쁘고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주시는 새 생명이 우리 믿음 안에서 참 기쁨이며 선물이기를 기도합니다.

주님을 향한 우리의 진실한 믿음이 생명의 원천이며 활력이기를 빕니다. 아멘.

“그분께서는 되살아나셨다. 그래서 여기에 계시지 않는다.”(마르 16,6)


예수 부활 대축일 낮미사 서울대교구장 메시지

요한 20,1-9; 14/04/20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바로 그 마음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필리 2,5)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죽음의 세력을 이기고 부활하신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북녘의 형제자매들에게도 주님의 빛과 생명, 그리고 평화가 가득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나 사흘 만에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으로 끝날 수 밖에 없는 인간에게 영원히 살게 하는 참 생명에 이르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주님의 부활은 사도들의 증언을 통해 전해졌습니다. 예수님께 부르심을 받았던 사도들은 본래 배움도 짧았으며, 겁 많고 나약한 보통의 인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핍박을 받고 고초를 당하실 때에는 스승을 배반하고 도망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나약한 사도들이 부활하신 그리스도 예수님을 만나고 그분의 영을 받은 후에는 완전히 다른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사도들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성과 힘을 다해(루카 10,27 참조)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하였습니다. 사도들이 살아 계신 예수님을 체험하지 않았다면 감히 나서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 순교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최근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시복을 결정하신 ‘하느님의 종 124위’를 보더라도 학식과 능력이 뛰어난 이들도 있지만, 인간적인 대우조차 받지 못했던 천민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가 한결같이 죽음 앞에서 흔들림이 없었으며, 사형장에서는 오히려 얼굴에 기쁨의 빛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생전에 가난하고 유약해 모든 이들에게 비웃음을 샀던 조용삼 베드로(?~l801)는 마지막 형벌 때 박해자들을 향해 다음과 같이 대담하게 말했습니다. “하늘에는 두 명의 주인이 없고, 사람에게는 두 마음이 있을 수 없습니다. 제가 원하는 것은 천주를 위해 한 번 죽는 것뿐이며, 다른 말씀은 드릴 것이 없습니다.” 죽음의 공포 앞에 선 순교자들을 이처럼 굳건하게 변모시킨 힘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고 자신도 그분과 함께 부활하리라는 굳은 희망 때문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러한 순교자들의 삶을 어떻게 본받을 수 있을까요?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재물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며 하느님의 자리를 대신하는 우상으로 여긴다고 우려하셨습니다. 자신만을 위한 이기적인 욕심 안에는 결코 하느님이 존재하지 않고, 지상의 재물에서는 결코 안전을 찾을 수 없다고도 하셨습니다. 가능한 재물을 많이 소유하고 축적하는 것이 인생 최고의 행복이라 생각하는 세상 안에서 우리 신앙인들은 사랑과 나눔 안에 진정한 삶의 기쁨과 행복이 있음을 증거해야 합니다.(교황 프란치스코, 삼종기도 강론, 2014년 3월2일)

또한 갈등과 분열이 반복되고 개인주의가 만연한 세상 속에서 우리들은 나의 생각과 뜻이 다른 이들을 보듬고 서로 대화하고 이해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런데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한걸음 더 나아가 “반대자들을 사랑하고 우리를 험담하는 이들을 축복합시다.”라고 말씀하십니다.(교황 프란치스코, 연중 제7주일 미사 강론, 2014년 2월23일) 사도들과 한국의 순교자들이 그러했듯이 우리 신앙인은 용감하게 모든 이들에 대한 사랑을 실천해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용기를 성령께 청합시다. 재물이나 명예와 같은 온갖 유혹에 굴복하지 않고 하느님을 섬기고 이웃을 사랑하고 내게 소중한 것을 이웃과 나누는 것이 바로 순교이며 부활의 삶이 됩니다.

이번 우리나라를 “일어나 비추어라.”(이사 60,1) 라는 주제로 사목방문하시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방한을 계기로 우리의 신앙이 다시 생기를 얻고 활성화되기를 기원합니다. 특별히 미래 교회의 주역인 젊은이들이 이번에 체험한 신앙을 바탕으로 삼아 우리 교회와 국가에 이바지할 수 있는 큰 인물로 성장하기를 기원합니다.

또한 이번에 시복되는 124위 복자와 이미 시성된 103위 성인에 대해서도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알려는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아무리 거칠고 힘들어도 부활의 믿음 안에서 주님과 같이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부활하고 새로운 하늘과 새 땅 가운데서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집시다. 그래서 부활시기를 맞이하여 그리스도께서 지니셨던 마음을 우리 마음 안에 간직하여(필리 2,5 참조) 내적으로 새롭게 거듭 태어나야 할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영광스러운 주님의 부활을 맞아 여러분과 우리 사회에 주님의 평화가 가득하길 기도합니다. 또한 온 세상과 한반도, 특별히 북녘땅에 주님의 평화와 자비가 전해질 수 있도록, 평화의 모후이신 성모 마리아와 한국의 모든 성인 성녀의 전구를 청합니다. 아멘.

2014 부활 대축일에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


예수 부활 대축일 밤미사

마태 28,1-10; 14/04/19

지난 주 목요일 삼촌 수사님의 초대로 김 신부님과 함께 주세페 김과 구미꼬 김의 인문학 한국 팝페라 콘서트, ‘말의 꿈’을 관람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아리랑에서 아리랑까지’ 라는 주제로 진행된 콘서트에서 정현웅의 소설 ‘마루타’를 원작으로 꾸민 한국 뮤지컬 ‘상평통보’ 서곡과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 조 마리아 여사의 옥중편지에 곡을 붙인 ‘아들아 아들아’를 들으며, 새삼 갈등과 분열로 얼룩진 이 시대의 문화 예술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제 팻북에 어떤 분들이 제가 강남 본당에 있다고 ‘강북 신부님’에 대한 비난성 글을 게재하곤 합니다. 일반인들의 눈에는 신부도 강북 신부, 강남 신부로 구별되는지 몰라도, 저희는 주교님이 “강북 가서 살아라.” 하면 강북에 가는 것이고, “강남 가서 살아라.” 하면 강남 본당에 가서, 그 지역에 사는 신자들을 위하여 미사와 성무를 집행하며 사목하는 사제로 살뿐이지, 강북 신부와 강남 신부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 다 같은 서울교구 사제입니다. 다른 이들의 눈에는 신부들이 이러 저러한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우리가 개인적으로 만났을 때는 그저 형이고 동생이며 다 같이 서울대교구 사제단의 일원일 뿐입니다.

선거철이 다가옵니다. 여러분 중에는 후보로 나서는 분들도 있고, 지지하는 분들도 있고, 투표하러 가시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서로 생각하는 바가 달라도, 서로 지지하는 사람이 달라도, 우리 모두 한 본당 한 식구였으면 좋겠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는 이방인이 들어갈 수 있는 구역, 유다인 여인들이 들어갈 수 있는 구역, 유다인 남자들이 들어갈 수 있는 구역이 따로 따로 존재했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이런 차별적인 장벽들을 허물어버리시며 성전을 정화하셨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몸으로 유다인과 이민족을 하나로 만드시고 이 둘을 가르는 장벽인 적개심을 허무셨습니다. 또 그 모든 계명과 조문과 함께 율법을 폐지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여 당신 안에서 두 인간을 하나의 새 인간으로 창조하시어 평화를 이룩하시고, 십자가를 통하여 양쪽을 한 몸 안에서 하느님과 화해시키시어, 그 적개심을 당신 안에서 없애셨습니다. 이렇게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에 오시어, 멀리 있던 여러분에게도 평화를 선포하시고 가까이 있던 이들에게도 평화를 선포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을 통하여 우리 양쪽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제 더 이상 외국인도 아니고 이방인도 아닙니다. 성도들과 함께 한 시민이며 하느님의 한 가족입니다. 여러분은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기초 위에 세워진 건물이고,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바로 모퉁잇돌이십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전체가 잘 결합된 이 건물이 주님 안에서 거룩한 성전으로 자라납니다. 여러분도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거처로 함께 지어지고 있습니다.”(에페 2,14-22) 라고 말합니다.

서로를 구분하고 차별하는 세상을 바라보시며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저는 이들만이 아니라 이들의 말을 듣고 저를 믿는 이들을 위해서도 빕니다.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 아버지께서 제 안에 계시고 제가 아버지 안에 있듯이, 그들도 우리 안에 있게 해 주십시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셨다는 것을 세상이 믿게 하십시오. 저는 그들에게 아버지의 이름을 알려 주었고 앞으로도 알려 주겠습니다.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신 그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저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요한 17,20-21.26) 우리 모두가 하나되기를 바라신 주님의 사랑 안에 우리 모두 서로 사랑하여, 아껴주고, 감싸주고, 덮어주고, 용서해주면서 한 식구로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와 똑 같은 인간이 되어 오셨습니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필립 2,6-7) 아니 우리보다 더 가련한 모습으로 말구유에 뉘였습니다. “그분께서는 부유하시면서도 여러분을 위하여 가난하게 되시어, 여러분이 그 가난으로 부유하게 되도록 하셨습니다.”(2코린 8,9) 이번 사순절의 교황 담화문의 주제어였습니다.

그런가 하면, 그분은 우리에게 하느님의 사랑과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해 마련하신 하늘나라에 대해 말씀해주시고, 몸소 그 나라를 기적으로 보여주시고, 마침내 우리를 구하시기 위해 주님 자신의 생명을 바쳐주셨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오늘 부활하시어 우리의 주님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여느 사람처럼 나타나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도 그분을 드높이 올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그분께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이름 앞에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에 있는 자들이 다 무릎을 꿇고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라고 모두 고백하며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게 하셨습니다.”(필립 2,8-11)

그러고도 모자라 주님께서는 “나는 너희를 고아로 버려두지 않고 너희에게 다시 오겠다.”(요한 15,18) 하시고는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리고 2014년 오늘도 성체성사를 통해 우리 영을 먹여 살려주십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나도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릴 것이다.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과 같이, 나를 먹는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 것이다.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이다.”(요한 6,54-55. 57-58.)

겸손하고 가난하게 탄생하시어,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생명을 바치시고, 오늘 새생명으로 부활하신 대축일 미사에 참여하여, 주님께서 남겨주신 성체를 영하며, 주님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지난 한국 팝페라 콘서트에서 초연된 이상백 시인의 ‘해후(II)’를 들으며, 부활하신 주님의 사랑을 되새겨 봅니다.


울지 말아요

내가 먼저 간다고


그대들의 배웅만 받고 가니

그저 미안해서 돌아볼 수가 없어요.


울지 말아요.

내가 먼저 간다고


자꾸 울면 흘러 넘치는 눈물이

내가 돌아오는 길

막을지도 몰라요.


울지 말아요.

언제나 그랬듯이


내 이름 불러봐요.

천천히 소리내서


그대들의 가슴속에

나 다시 살아


강을 건너 올게요.

아침이 되어


금싸라기 햇살을

가득 안고


와서,

기억의 텃밭에

따뜻한 흙이 될게요.


부활 축하드립니다.

부활하시어 우리의 주님이 되신 예수님께서 내려주시는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 가정에 가득하시기를 빕니다.

“평안하냐?”(마태 28,9)


예수 부활 대축일 낮미사

요한 20,1-9; 12/04/08

여러분의 세례성사를 축하드립니다. 6개월 동안 수고하셨습니다. 여러분의 선택이 여러분의 일생 동안 여러분에게 기쁨과 희망을 가져다 주시길 기대합니다. 세례성사를 받는 여러분의 얼굴이 오늘 참 천사같이 거룩하고 아름다워 보입니다.

오늘은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날을 기념하는 부활대축일입니다. 이 사순절과 부활절은 세례성사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전례헌장 109항을 보면 “사순 시기는 두 가지 성격을 지니고 있으므로, 특히 세례의 기억이나 준비를 통하여 또 참회를 통하여 신자들이 더 열심히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기도에 전념하며 파스카 신비의 경축을 준비하게 함으로써, 전례에서나 전례 교리교육에서 이 두 가지 성격이 더욱더 분명하게 제시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또한 6항에서는 “세례를 통하여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에 결합되어,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묻히고, 함께 부활하며, 입양의 성령을 받아 그 성령 안에서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며”(로마 8,15), 또 그렇게 하여 하느님 아버지께서 찾으시는 참된 예배자가 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아울러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회헌장에서는 7항에서 “예수님께서는 죽음과 부활로 죽음을 이기시고 인간을 구원하시어 새 사람으로 변모시키시고… 성령을 주시어 신비로이 당신의 몸을 이루셨다… 우리는 세례를 통하여 그리스도께 동화된다. ‘우리는 모두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다’(1고린 12,13).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결합이 세례의 거룩한 예식으로 드러나고 이루어진다. “과연 우리는 세례를 받고 죽어서 그분과 함께 묻혔다.”고 밝힙니다.

그리고 지난 성 목요일에 교회헌장 31항과 36항에서 보았듯이 모든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세례를 받음으로써 그리스도의 보편사제직을 이어받아 자신의 삶 속에서 그리스도의 성화 사제직과 복음화 예언직 그리고 봉사와 희생의 왕직을 수행하며 하늘 나라를 건설해 나간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래서 10항에서는 “세례 받은 사람들은 새로 남과 성령의 도유를 통하여 신령한 집과 거룩한 사제직으로 축성되었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인간의 모든 활동을 통하여 신령한 제사를 바치며 그들을 어두운 데에서 당신의 놀라운 빛 가운데로 불러 주신 분의 능력을 선포한다.”고 밝히고, 11항에서는 “신자들은 세례를 통하여 교회에 합체되어 그리스도교의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인호를 받고, 또 하느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 교회를 통하여 하느님께 받은 신앙을 사람들 앞에서 고백하려고 힘쓴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세례를 통하여 교회로 들어온”(14항) 가톨릭 신자들은 “세례와 견진을 통하여 바로 주님께 평신도 사도직에 임명된다.”(33항)고 하면서,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자기 업적 때문에 하느님께 불린 것이 아니라 오직 하느님의 계획과 은총에 따라 부름 받고, 주 예수님 안에서 의화되고, 믿음의 세례 안에서 참으로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 하느님 본성에 참여하였기에 참으로 거룩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느님의 은총으로 거룩하게 살며 이미 받은 성덕을 보존하고 완성해 나가야 한다.”(40항)며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걸어나가야 할 ‘보편적 성화 소명’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오늘 세례식을 통해 여러분과 함께하시면서 여러분을 이끌어 오신 하느님의 사랑을 기억해 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태어나기도 전에 여러분을 선택하시고, 여러분에게 생명을 주시고, 여러분 삶의 한 순간 순간마다 여러분과 함께하시면서 여러분을 어려움과 위험에서 건져주시고, 여러분이 다 알아차리고 감사드리지 못하는데도 지속적으로 여러분에게 은총으로 사랑해오셨던 하느님, 여러분을 지금에까지 이르게 하시어 결국 오늘 여러분이 교회 안에서 세례 성사를 통해 하느님의 자녀가 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신 하느님 그분의 사랑과 여러분을 구원해주신 주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의 사랑과 여러분을 이끌어 주신 성령님의 사랑을 구체적으로 되새겨 감동을 느끼고 감사드리며 새로 나시길 바랍니다.

올해부터 여러분은 단계적 신자 교육에 들어가게 됩니다. 6개월 간의 예비신자 교리를 마친 여러분은 오늘 세례성사를 받고 1주를 쉰 후에 6주간 신비교육으로 하느님께 나아가기 위한 내적 성찰과 외적 장애를 제거하는 고해성사를 준비하여 첫고해를 하게 되고, 9월부터 시작하는 신약성경 공부, ‘성경말씀 맛들이기’를 통해 견진성사를 받게 됩니다. 그리고 견진성사 후에는 구약부터 체계적으로 성경 공부와 나눔을 통해 말씀과 함께하는 삶을 시작하게 됩니다. 여러분의 체계적인 교육이 여러분의 알찬 신앙생활을 이루어나가게 되기를 기대하고 기도하겠습니다.

오늘 부활대축일을 맞이하신 신자 여러분 축하드립니다. 날마다 힘들다는 소식이 여기 저기에서 들려오곤 하는 이 즈음에, 사순절에 겪은 여러분의 노고가 여러분의 어려움을 다 안고 갔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부활은 우리 자신의 자기 계발을 통한 신분상승과 이익창출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포기와 헌신적인 희생과 봉사를 통해 얻어지는 영광의 길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 나온 여인들처럼 주님으로부터 부활에 대해 들었으면서도 정작 부활 사건 앞에서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요한 20,2)하듯이, 부활에 이르는 생명의 이 길을 알아차리지 못하거나, “베드로보다 빨리 달려 무덤에 먼저 다다랐지만 안으로 들어가기 않은”(4-5) 다른 제자처럼 뻔히 걸어가야 할 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주저하고 망설이며 이 길을 의무감으로 걷게 된다면 힘겨운 일이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일을 자기 삶의 한 방편이요 자기 인격과 질로 삼을 수 있다면 기쁨과 영광의 길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이 형제들을 구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부활하신 주님의 뒤를 이어 내일부터 시작하는 여러분의 일상에 새로운 삶의 희망이 되시길 바랍니다.

“사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는 성경 말씀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9)


예수 부활 대축일 서울대교구장 메시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요한 11,25)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죽음의 세력을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 모두에게 가득하시기를 빕니다.

온 세상에 생명의 기운이 스며든 싱그러운 봄과 함께 우리는 주님의 부활 대축일을 맞이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제자들에게 약속하신 대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지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마태오 16,21) 인간적으로 볼 때 이 세상 어떠한 것도 인생의 모든 것을 앗아가 버리는 죽음의 허무함과 슬픔을 달래줄 수는 없습니다. 죽음은 우리 인간에게 가장 두렵고 비참한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앙인에게 있어서 죽음은 인생의 끝이 아닙니다. 우리가 죽음을 슬퍼하면서도 이 세상에서의 죽음을 뛰어넘어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을 품을 수 있는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믿음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 신앙생활은 부활한 생활이며(에페 2,6), 그리스도의 몸을 모시고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생활이 되어야 합니다.(1고린 12,12-27) 죽을 수밖에 없는 유한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 인간에게 그리스도의 부활처럼 더 기쁘고 복된 소식은 없습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 신앙인의 부활에 대한 희망이며, 보증이 됩니다.(1고린 15,20-22)

오늘날 세상은 과거보다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고 있지만, 그 이면에 존재하는 물질만능주의, 이기주의의 어두운 면은 그 어느 시대보다도 더 깊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가난과 부의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은 더 심해져 가난한 사람들을 더욱 가난하게 만들고, 고통받게 합니다. 또한 우리는 그 어느 시대보다도 뛰어난 최첨단 대중 매체의 체제 아래 살고 있지만 인간의 삶은 과거에 비해 더 소외되고, 진실된 친교와 소통은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우리 사회가 당면한 과제는 모든 생명의 공존과 소통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무엇보다 다양한 계층 간의 갈등을 해소하고 일치를 이루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생명의 일치는 모두를 같게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함께 평화롭게 공존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사회, 종교, 정치문제에서 우리와 달리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들도 존경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서로 달리 생각하는 사람들도 사랑과 호의를 가지고 상대를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면 대화는 더욱 쉬워질 것입니다.(사목헌장 28항)

이제 곧 국민을 위한 봉사자를 우리 손으로 뽑는 제19대 국회의원 선거가 다가옵니다. 국가의 미래를 위한 중요한 선택의 순간입니다. 이번 선거에서 우리는 냉정하고 이성적인 판단으로, 우리나라의 미래와 행복에 가장 바람직한 선택이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가톨릭교회는 정치 생활의 목적인 인간의 존엄성과 공동선을 보호하고 증진하도록 모든 국민이 자유투표를 할 권리와 의무를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 자유로운 선거를 통해 국민을 위해 헌신하는 봉사자를 선택하는 것은 신자들이 세상의 복음화와 공동선의 증진을 위해 참여하는 중요한 활동이 됩니다.(사목 헌장 75항) 또한 교회는 특정 정당이나 후보에 대해 공개적인 지지나 거부하는 일은 삼가야 하겠습니다. 그러한 행위는 공동체의 심각한 분열을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다가오는 총선이 국민의 화합과 일치를 이루고 우리나라가 한층 더 발전하는 도약의 계기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그리스도교 신자는 매 순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고, 우리 자신의 부활을 믿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부활을 믿는 삶이란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쳐주신 사랑과 희생과 봉사의 생활입니다. 따라서 부활의 믿음을 가진 이들은 일상생활, 삶의 현장에서 사랑의 삶을 충실히 살아갈 때 부활하신 주님을 세상에 증거 할 수 있습니다.(마르 16,11 참조) 그때 비로소 우리는 더는 죽음 아래 있지 않고, 부활의 생명 아래 있게 될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영광스러운 주님의 부활을 맞이하여, 여러분 마음 안에 주님의 부활과 생명의 빛이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2012년 부활절에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추기경 정진석


예수 부활 대축일 낮미사

요한 20,1-9; 11/04/24

세례자 여러분, 여러분이 세례성사를 받게 된 것을 축하드립니다.

오늘 여러분의 얼굴 모습을 여러분 자신은 잘 모르시겠지만, 세례성사를 받으려고 오신 여러분의 오늘 모습은 너무나 환하고 아름답습니다. 천사가 하늘에서 온다면 이런 얼굴들이겠구나 싶습니다.

여러분은 그 동안 사시면서 언제 어디서 예수님을 만나셨는지, 또는 주님을 어떻게 느끼셨는지 물었을 때, 많은 분들이 주님을 만난 적이 없다고도 하셨고, 잘 못 느꼈다고도 대답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여러분은 성당에 오면 편안했고, 교리를 받을 때 즐거웠고, 나도 모르게 자꾸 성당에 오게 되었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직접 예수님을 여러분의 눈으로 보고, 예수님의 말씀을 여러분의 귀로 들으며, 예수님의 몸을 여러분의 손으로 느꼈다면 여러분은 지금 이 자리가 아니라, 정신병원에 가 있어야 하겠죠. 우리가 사는 3차원의 현실에서 형상이 표현되지 않으시는 분을 3차원적 형상을 보는 눈으로 보고, 3차원적 형상의 소리를 듣는 귀로 듣고, 3차원적 형상을 느끼는 감각으로 느낄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을 만났다고 합니다. 그러한 만남은 여러분이 표현했던 그 무형의 감각적 만남입니다. 성당에 오면 편하고, 그분을 생각하면 내 보호자 같고, 어딘지 모르게 믿고 따를 수 있고 의지할 수 있다던 바로 그러한 영적 감각이 생각과 정신 그리고 느낌을 넘어 여러분을 주님께로 인도합니다. 아니, 주님께서 여러분을 주님과의 영적인 채널 안으로 초대하고 또 그 안에서 여러분을 만나려고 하시기 때문에 여러분이 그분을 영적으로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오늘 예비신자 교리 시간을 마치고 세례성사를 받음으로써 그리스도교 신자 교육과정이 끝난 것이 아니라, 세례를 받은 오늘부터 지금까지 배운 교리 지식을 바탕으로 해서 현실에서 주님을 만나고 주님과 함께 걸어가는 실습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영적 감각을 최고로 높여 그분의 영적인 초대에 영적으로 응답하고 일상 안에서 그분께 나아가고 그분과 함께 걸어야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늘 깨어 그분의 부르심에 귀 기울이고, 여러분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통해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무엇을 말씀하시고자 하시는지, 여러분이 겪고 있는 현실 상황에서 여러분이 무엇을 어떻게 하라고 하시는 것인지 알아들어 그분의 뜻에 맞춰 살아야 하겠기에 더욱 더 열심하셔야 할 것입니다.

그러한 만남은 기도라고 하는 영적인 깨어있음과 주님을 향한 집중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변화하는 새로운 모습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어떤 사람이 세례를 받자, 그 친구가 물었답니다. “너, 사도신경 다 외웠니?” “아니, 난 주님의 기도도 잘 못해.” “그럼 어떻게 신부님 면담을 통과하고 영세를 받았지?” “응, 나는 교리도 잘 모르고, 기도문도 다 못 외우지만, 그전까지는 매일 술먹고 늦게 귀가하고, 부인하고 허구한날 싸웠지만, 세례 받고 나서는 술 먹는 날도 줄고, 먹어도 적당히 먹고, 부인하고도 잘 지내고 있어… 그러다 보니 집안도 편하고, 하는 일도 잘 풀려…!”

누구나 세례를 받으면 기쁩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세례성사를 통해 기쁨을 안겨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기쁨은 기도 안에서 또 현실 안에서 주님과 함께하려는 세례자의 노력이 없으면 몇 달 안가 없어져 버립니다. 행복에 젖어 있는 동안 그 행복은 꿈처럼 그냥 사라져 버립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평화와 기쁨을 지속적으로 간직하기 위해서는 주님께 늘 귀 기울여 기도하며, 기도 안에서 느끼고 얻은 것을 일상에서 실천해야 합니다.

우리는 앞에서 말했듯이 기도하면서 우리가 사는 현실 안에서 주님의 뜻과 말씀을 듣고 우리의 갈 길을 깨우치게 되지만, 동시에 기도하면서 알게 된 주님의 뜻을 현실 안에서 실천하게 됩니다. 우리가 기도한다고 다 주님의 뜻을 깨닫고, 또 깨닫는다고 해도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 주님께서 가르쳐 주시는 길로 나아가는 것도 아니지만 우리는 주님께 나아가기 위해 기도하고, 기도하면서 얻은 주님의 뜻을 현실 안에서 실천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이러한 우리의 노력 안에서, 우리는 내가 기도와 생각 중에 찾은 주님의 뜻이 정말 주님의 뜻인지 아니면 내가 어려서부터 들어온 좋은 말 중의 하나인지, 아니면 악이 내게 유혹하는 것인지 처음엔 잘 모르기 때문에 그 것을 식별해 줄 신앙 공동체가 필요합니다. 그러기에 여러분은 여러분 주위에 대부모나 여러분을 교회로 이끌어준 분들, 여러분이 사는 지역의 구역, 반 등에서 선배 신앙인들과 함께 여러분이 깨달은 주님의 뜻을 식별하고, 그 뜻을 여러분의 현실에서 실현할 방법을 함께 찾게 되고 또 그렇게 실현하는 데 협조를 받게 됩니다.

세례 받고 산다는 것은 조금 전의 예처럼 세례를 받고 자신의 생애를 새롭게 살게 된 세례자 개인의 삶이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주님을 믿고 따르겠다고 고백하고 함께 교회라는 신앙 공동체를 이룬 형제 자매들과 함께 이 땅을 하느님 나라로 변화시키도록 주님께서 내려주신 사명을 실현해 나가는 교회 공동체의 한 지체로서 공동체적인 삶도 있습니다. 마치 사람은 한 개인이지만 동시에 가족의 한 구성원인 것처럼, 여러분도 여러분은 한 분의 세례자요, 그리스도교 새 신자이며, 동시에 교회 안에서 새로 태어난 새 식구입니다.

그리고 신앙 안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깨달음과 식별과 실천의 삶은 그것이 개인의 삶일지라도,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것이라면 교회 공동체의 삶이 됩니다. 왜냐하면 교회의 본질은 개인과 개인들의 모임인 공동체가 함께 현실이라는 세상에 하늘 나라라는 새 세상의 복음을 이루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우리 삼성동 교회 신자가 되어 우리 교회가 발전하고, 또 우리 교회가 여러분을 주님께로 이끄는 좋은 버팀목이자 인도자이길 기대하고 기도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이 세례성사를 통해 주님께 무엇을 청하십니까?

여러분, 여러분이 세례 후 새롭게 시작할 새 삶에 힘이 될만한 주님의 말씀을 무엇으로 정하셨습니까?

또 이 세례성사를 통해 어떻게 주님의 뜻을 따라 새롭게 살아가시렵니까? 구체적이고 실천 가능한 목표와 방법을 통해 주님께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서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의 새로운 삶에 주님께서 함께해 주시고, 보호해 주시며, 이끌어 주시기를 간구하며, 여러분의 세례성사를 다시 한 번 축하드립니다.

동시에 이어지는 한 달 간의 신비교육 속에서 여러분 자신을 정화하고, 주님께 귀 기울여 주님과의 영적 채널을 연결하고, 주님과의 지속적인 영적인 교류와 만남을 통해 여러분이 주님의 사도로 양성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본당의 주보이신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이여, 세례자들을 위해 빌으소서.

아멘.


2011년 예수 부활 대축일서울대교구장 담화문

우리의 믿음은 부활하신 주님을 세상에 증거하는 것

11/04/24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부활하신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함께하시기를 기원합니다. 특별히 어렵고 힘든 고통 중에 있는 분들과 우리 사회 곳곳에 소외된 이웃들에게 주님의 은총이 가득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오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에게 약속하신 대로 십자가에서 죽으신지 사흘 만에 부활 하셨습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세상에 오신 예수님께서는 수난과 영광스러운 부활로 인류 구원의 사명을 완성하십니다. 따라서 죽을 수밖에 없는 유한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 인간에게 예수님 부활처럼 더 기쁘고 복된 소식은 없습니다. 주님께서 당신의 부활을 통해 인간의 역사와 삶의 끝은 죽음이 아님을 알려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하느님 안에서만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음을 알려줍니다. 그 생명은 주님께서 당신의 목숨을 바쳐서 얻어주신 구원과 희생의 선물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 신앙인의 부활에 대한 희망이며 보증이 됩니다(1코린 15,20-22).

우리가 부활을 맞이하며 분명히 깨달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죄와 죽음의 세력을 극복한 부활의 기쁨이 저절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그분의 지극한 수난과 고통, 그리고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에서도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노력과 희생의 과정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부활의 영광과 새 생명의 기쁨의 열매를 맺기 위해 먼저 십자가의 고통과 죽음의 아픔을 겪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루카 9,23) 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과 함께 십자가의 길을 충실하게 걸어가는 것이야말로 부활을 사는 삶이 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의 세상은 어떠합니까? 우리의 삶이 희망보다 절망이 더 크게 느껴질 때도 없지 않습니다. 세상 곳곳에는 하루를 멀다 하고 전쟁과 폭력이 그치지 않고, 재난과 재해로 하루아침에 사랑하는 가족과 삶의 터전을 잃고 고통의 나날을 보내기도 합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만연한 물질 만능주의와 생명 경시 풍조는 점점 더 심해져서 인간성의 파괴라는 심각한 현실에 직면하게 합니다. 또한 인간의 탐욕은 절제를 모르고 이기적인 안락과 편의를 추구하며 자연에 대한 무자비한 착취를 정당화하려 합니다. 또한 급속한 산업화와 경제성장에 환호하는 사이 사람들의 사이를 더 멀리 단절시키고 다양한 갈등과 격차는 커져만 갑니다.

우리 시대가 현재 맞닥뜨린 불행의 원인은 삶의 모든 것을 경제 중심적인 시각으로 보는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삶에서 하느님이 계셔야 하는 자리에 오히려 돈과 재물이 차지한 결과가 아니겠습니까? 오늘날 이 시대에 요구되는 것은 무엇보다 부활의 신앙입니다.

우리의 현실이 아무리 어둡고 시련이 크다 해도 정의와 진리, 그리고 사랑이 결국에는 승리한다는 진리를 세상에 보여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분명하게 보여주신 진리입니다.

오늘의 세상에서 해야 할 교회의 역할은 막중하고 분명합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지금 이 자리에, 우리 안에 살아 계시다는 것을 세상에 보여주어야 합니다. 믿음을 가진 이들이 일상 생활 곧 삶의 현장에서 부활의 삶을 충실히 살아갈 때, 신앙인은 부활하신 주님을 세상에 비로소 증거할 수 있습니다.

또한 세상의 부조리와 악을 저지할 수 있는 힘이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부활의 믿음을 갖고 끊임없이 사랑의 무기로 악의 세력에 거슬러 싸워야 합니다(에페 6,12). 따라서 부활을 믿는 우리가 가야 할 유일한 길은 분명합니다.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악에 굴복하지 않으면서도 선으로 악을 이겨내는 것입니다(로마 12,21).

그런데 교회가 말로만 믿음을 외치고 자신만의 이기적인 안위와 이익만을 꾀할 때 더 이상 교회 존재의 의미를 상실하게 됩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종교가 행복과 화해의 도구가 아니라 분열과 오히려 불행의 주체가 되는 것이 안타깝다는 사회 일각의 지적을 깊이 반성해 보아야 합니다. 이는 그만큼 아직도 세상은 교회와 신앙인의 역할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이번 부활절을 맞이하여 우리 신앙인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먼저 성령의 힘으로 변화되어 가정 과 사회에서 말과 행동으로 주님의 부활을 전하는 하느님의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때 비로소 우리 사회도 더 이상 절망과 죽음의 어둠 속에 있지 않고 희망 속에서 부활의 생명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영광스러운 주님의 부활을 맞이하여 여러분 가정에 주님 부활의 생명과 빛이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교구장 정진석 추기경


예수 부활 대축일

(가해) 마태 28,1-10; 05/03/26(7)

이런 시가 있습니다.

“나는 나를 사랑해요.

있는 그대로의 나를...

나를 바꾸려하지 않아도 되지요

나는 언제나 나 일거예요

나를 다시 정리하지 않아도 되지요.

나는 이미 아름답다고 할 수 있어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으로서의 나를...

나는 바로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요.

나는 당신을 사랑해요

있는 그대로의 당신을

다시 하기 위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요.

내가 내 안의 나의 사랑을 느낄 때

당신을 사랑하기는 쉽지요.

당신의 두려움 너머에서 당신이 눈물을 흘릴 때

나는 당신의 빛나는 별을 보아요

나는 있는 그대로의 당신을 사랑해요.

나는 세상을 사랑해요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나는 분명히 느낄 수 있어요

모든 것들이 세상을 판단하고

다른 사람들이 나를 판단하기도 하지만

땅위의 평화를 갈구하는 사람들에게 말해주세요

사랑만이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는 거라고...

나는 모든 것을 사랑함으로써만이 성장할 수 있는 거라고...

나는 나를 사랑해요

있는 그대로의 나를..

나는 지금도 성장하고 있지요

내가 찾을 수 있는 변화는 내가 내 안의 나를 깊이 바라볼 때지요.

나는 이미 아름답고 할 수 있어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으로서의 나를..

나는 내 모습 이대로의 나를 사랑하고 있어요“

우리는 우리 자신이 자랑스럽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아니 우리 자신이 부끄러울 때가 더 많습니다. 나를 말하기가 부담스럽고 용기가 없을 때도 많습니다. 그것은 내가 나 자신을 인정하지 못하고 나 자신에게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족한 것을 채우려고 노력도 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겸손해서가 아니라 내가 나 자신에게 자신이 없으니까 다른 누가 대신 해주기를 바라기도 하고, 또 스스로 펼쳐나가기가 힘드니까 그냥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기를 바라거나 아예 회피하기도 합니다. 혹시 나 때문에 그르치면 어쩌나, 내가 실수해서 다 망쳐버리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때문에 그리고 잘못되면 가족들과 가까운 친지들과 형제 자매들의 사랑을 잃게 될까봐 두려워 자신의 소신을 꿋꿋이 펼쳐나가기를 두려워하고, 또 다른 사람의 의견에 ‘아니오’라고 답하기를 두려워하고, 늘 무엇을 결정하고 추진하기에 앞서 두려워합니다. 옳은지 그른지, 해야 하는 것인지 해서는 안 되는 것인지를 스스로 묻고 결정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을 배려해서가 아니라 홀로 서서 나가기가 두렵고 자신이 없으니까 먼저 다른 사람의 생각과 태도를 살펴서 그 반응을 보고 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또 갑자기 내 생애에 어떤 사고나 나서 쓰러지지나 않을까, 내가 그나마 꾸려나가고 있는 생의 조건과 상황이 그리고 어렵게나마 잡은 기회가 하루아침에 물거품처럼 사라져버리지나 않을까, 자연재해나 강도나 도둑이나 제어할 수 없는 물리적인 폭력에 의해 심각한 피해나 상처를 입지나 않을까, 내 배우자와 내 가족, 내 친지들의 사랑을 놓쳐버리지나 않을까, 법이라도 바뀌어서 내 신분과 위치가 갑자기 곤두박질하면 어떻게 되나, 전쟁이나 객지에 나간 배우자나 자식에게 무슨 일이 생기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나, 하루아침에 사람들이 나를 무시하고 외면하고 모략해서 몰아내치면 어떻게 하나 등등의 걱정과 두려움이 우리들을 둘러싸고 위협하고 있고 또 찬찬히 살펴보면 우리네 일상은 그런 것들로 인해 두려움에 가득 차 있습니다.

우리는 그럴 때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제어할 수 없고, 우리가 대응할 수도 없는 일이 생겨날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은 그런 것들에 눌려 지내는 우리에게 마태오 복음사가는 말합니다. “무서워하지 말라. 너희는 십자가에 달리셨던 예수를 찾고 있으나 그분은 여기 계시지 않다. 전에 말씀하신 대로 다시 살아나셨다.”(마태 28,5-6)

인간 모두에게 극복할 수 없고, 도전할 수 없는 갖가지 한계들의 대명사인 죽음 때문에 두려워하고 있는 우리에게, 주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이 소식은 참으로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가 두려워하고 있는 그 두려움을 제거해 주실 수 있는 분, 우리가 두려워하고 있는 그 상황 앞에서 우리를 구해주실 수 있는 주님께서 우리 인간의 한계와 두려움의 대상인 악을 쳐 이기고 부활하셨다는 사실은 우리 삶에 새로운 희망을 안겨 줍니다.

죽음으로 그치지 않는 신앙, 죽음으로 꺼지지 않는 희망이 부활하신 주님 안에서 결실을 맺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천지를 창조하시고(1독서 창세 1,1-2,2), 우리 조상들을 노예살이에서 건져주시고(3독서 출애 14,15-15,1), 우리에게 새 양식을 주시고 생기를 샘솟게 해주시고(5독서 이사 55,1-11), “정화수를 끼얹어 너희의 모든 부정을 깨끗이 씻어 주고 온갖 우상을 섬기는 중에 묻었던 때를 깨끗이 씻어주고 새 마음을 넣어 주며 새 기운을 불어 넣어 주리라”(7독서 에제 36,24-26)고 하시며 “너희 몸에서 돌처럼 굳은 마음을 두려내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넣어 주리라. 나의 기운을 너희 속에 넣어 주리니, 그리 되면 너희는 내가 세워준 규정을 따라 살 수 있고 나에게서 받은 법도를 실천할 수 있게 되리라. 너희는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살면서 나의 백성이 될 것이요 나는 너희의 하느님이 될 것이다.”(26-28)하신 주님께서 부활하셔서 당신의 약속을 다 이루어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님의 부활이 우리에게는 참으로 얼어붙은 사지가 풀리듯 살판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부활절의 알렐루야가 그렇게도 흥겹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오늘 로마인들에게 말합니다.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 예수와 하나가 된 우리는 이미 예수와 함께 죽었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과연 우리는 세례를 받고 죽어서 그분과 함께 묻혔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스러운 능력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것처럼 우리도 새 생명을 얻어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로마 6,3)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단 한 번 죽으심으로써 죄의 권세를 꺽으시고 다시 살아나셔서는 하느님을 위해 살고 계십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도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죽어서 죄의 권세를 벗어나 그와 함께 하느님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십시오.”(10-11)


서울대교구장 예수 부활 대축일 담화문

2004.4.11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요한 1,4)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 모두에게 가득하기를 빕니다. 어느 시인이 “해마다 봄이 되면, 항상 봄처럼 부지런해라, 항상 봄처럼 꿈을 지녀라, 항상 봄처럼 새로워라??고 노래한 것처럼 싱그러운 봄과 함께 주님의 부활 대축일을 맞이하였습니다.

그리스도는 약속하신 대로 십자가에서 죽으신 지 사흘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부활을 믿는 것이고, 그리스도교 신자란 한마디로 부활을 믿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만약 부활이 없다면 인간이 추구하는 모든 가치관은 쓸모 없어져 버리고 인간의 삶은 결국 멸망과 죽음으로 끝나게 됩니다(1고린 15,14-19 참조). 그러므로 죽을 수밖에 없는 유한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 인간에게 부활처럼 기쁘고 복된 소식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예수님 자신만의 사건이 아니라, 구원을 원하는 모든 인간의 부활에 대한 희망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부활은 우리 신앙인의 부활에 대한 희망이며 보증이기 때문입니다(1고린 15,20-22).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도 반드시 부활한다는 이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어떤 처지에서도 실망하지 않게 합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인간의 역사와 삶의 종말은 결코 죽음이 아니요 영원한 생명이라는 희망을 갖게 해 줍니다. 그 생명은 주님께서 목숨을 바쳐 찾아 주신 구원과 희생의 선물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처음으로 만난 막달라 여자 마리아가 제자들에게 “예수께서 살아 계시다??(마르 16,11)는 기쁜 소식을 전합니다. 그러나 죄와 죽음의 세력을 이기신 주님의 부활은 저절로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죽음 없이 부활은 결코 존재하지 않습니다. 또한 이 십자가의 고통은 허구가 아니며 처참하고 혹독한 실제적인 고통이었습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걸으신 길은 다름 아닌 십자가의 길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은 인간에게 죄로 잃어버린 생명을, 어둠 속에서 빛을 다시 가져다 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죽음과 죄 때문에 멸망할 인간과 세상은 구원의 생명과 빛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사회와 세계 정세는 생명과 빛에서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세상 곳곳에서 다양한 가치관을 가진 이들의 미움과 증오가 폭력과 죽음을 양산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수난의 고통을 겪는 순간까지도 자신을 죽이는 박해자들을 위해 기도하시고 용서해 주셨습니다. 진정한 용서만이 죄와 죽음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미움과 증오가 자리 잡고 있는 곳은 어디에도 생명과 빛이 머물 수 없습니다.

얼마 전, 헌정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 소추안 가결로 인해 국론 분열이 매우 우려되고 있습니다. 얼어붙은 경제 상황은 더 나빠져 시민들의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습니다. 국민이 느끼고 있는 경제 불황에 대한 불안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그런데도 정치는 국민의 행복을 추구하는 기본적인 의무는 뒷전에 둔 채 상호비방에만 열을 올려 국론 분열을 초래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원하는 것은 화해와 일치를 통한 공존의 길을 찾는 것입니다. 국민을 위한 봉사자를 우리 손으로 뽑게 되는 국회의원 총선거는 어느 때보다도 국가의 미래를 위하여 중요한 선택의 순간이 될 것입니다. 이번 4·15 총선에서 개인의 감정보다는 냉정한 이성적인 판단으로 우리나라의 미래와 행복에 바람직한 선택이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하여 신성한 권리를 행사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교구의 모든 신자는 사회복음화를 위하여 이번 총선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합니다. 그리스도교 신자가 솔선수범해서 세상을 생명과 빛으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교회는 특정 정당이나 후보에 대해 공개적인 지지나 거부를 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한 행위는 신자 공동체의 분열을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다가오는 총선이 국민의 화합과 일치를 이루고 참다운 민주주의 발전의 계기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또한 오늘날 우리 사회의 큰 문제로는 만연해 있는 인간 생명의 경시 풍조입니다. 살기가 어렵다고 쉽게 자살하거나 다른 이의 생명을 아무런 죄의식 없이 쉽게 해치는 행동은 너무 개탄스러운 현상입니다. 얼마 전, 우리나라 학자들에 의해 세계 최초로 사람의 체세포와 난자만으로 인간 배아 줄기세포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고 세상이 떠들썩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연구에 뒤따르는 윤리적 문제나 부작용, 위험성도 직시해야 합니다. 어떤 경우에라도 인간 생명의 존엄성과 가치를 거슬려서는 안 됩니다.

그밖에도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사회뿐 아니라 개인과 가정에도 수없이 많이 쌓여 있습니다. 점점 심각해져 가는 집단이기주의, 실업 문제, 가정 문제, 심화되는 빈익빈부익부 문제 등 사회는 그야말로 총체적인 어려움에 직면해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에서 우리 신앙인은 과연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예수님의 부활을 단순히 믿기만 하는 것은 부활 신앙의 진정한 의미가 아닙니다. 부활의 진정한 의미는 예수께서 부활하셔서 지금 이 자리에 우리 안에 살아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활 신앙을 가진 이들이 삶의 현장과 일상생활에서 부활의 삶을 충실히 살아갈 때, 부활하신 주님을 세상에 증거할 수 있습니다.

부활의 삶을 산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주님의 십자가 삶을 충실하게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주님과 함께 십자가의 길을 충실하게 걸어가는 것이야말로 부활을 사는 삶이 됩니다. 그 때 비로소 우리는 더 이상 죽음의 어둠 속에 있지 않고 부활의 생명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 부활의 생명은 모든 사람의 빛이 될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영광스러운 주님의 부활을 맞이하여 여러분 가정에 주님 부활의 생명과 빛이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2004년 예수 부활 대축일을 맞이하여

천주교 서울대교구 교구장

대주교 정 진 석


서울대교구장 예수 부활 대축일 담화문

2003/04/20

"여러분에게 평화가 있기를!"(루가 24, 36)

주님께서 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오늘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은총이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 남북으로 갈라진 우리 민족과 세상 모든 사람에게 충만히 내리시기를 기원합니다. 또한 주님께서 주시는 평화가 우리 사회와 온 세상 곳곳에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1. 약속의 실현

예수님은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말씀과 행적을 통해서 선포하셨지만, 원로들과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버림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이방인에게 넘겨 주어 조롱하고 채찍질하며 십자가형에 처하게 했습니다. 참으로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죄 많은 인간을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이리하여 하느님께서는 우리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확실히 보여 주셨습니다"(로마 5,8). 그리스도의 죽음은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을 통해서 인류의 결정적인 구속을 완성하는 파스카의 희생제사입니다. 동시에 이것은 인간을 하느님과 화해시키고 일치시키는 새로운 계약의 희생제사입니다.

안식일 다음 날 새벽, 막달라 여자 마리아와 다른 여인들은 처음으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습니다. 그 다음으로 예수께서는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제자들이 빈 무덤을 발견한 것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인정하는 첫걸음이었습니다. 빈 무덤과 흩어진 수의는 그리스도의 육신이 하느님의 권능으로 죽음과 부패의 사슬을 벗어났음을 뜻합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의 상태에서 벗어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생명의 세계로 넘어가셨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구약의 예언과 예수께서 공생활 중에 하신 약속의 실현입니다. 무엇보다도 부활은 그리스도께서 친히 행하고 가르치신 모든 것이 참되다는 것을 확인해 주는 것입니다.

2. 생명의 길

주님께서는 부활하심으로써 사랑과 생명이 죄와 죽음을 이긴다는 것을 알려 주셨습니다. 부활은 인간 생명은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생명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보여 주는 사건입니다.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 새롭게 변화되어 모든 두려움에서 벗어나 다시 용기를 얻었습니다. 제자들은 과거에 그들과 함께 계셨던 예수님을 회상하면서, 이제는 부활하여 함께하시는 주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루살렘에 모여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진 하느님의 놀라운 일들을 용감하게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만일 예수님의 부활이 없었다면 이 세상에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도, 믿는 사람들의 공동체인 교회도 생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없었다면 인생의 의미나 목적이 무엇인지도 제대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우리가 전한 것도 헛된 것이요, 여러분의 믿음도 헛된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1고린 15,14). 그러나 예수께서는 당신의 죽음을 통해서 사람들을 죄에서 구해 주셨고, 부활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새로운 생명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3. 그리스도 우리의 평화!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지금 우리는 부활을 찬미하고 있지만 불행하게도 세상은 여전히 암울한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이라크에서는 전쟁으로 인하여 무고한 어린이와 민간인 등 수많은 사람이 고귀한 생명을 잃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번 전쟁의 희생자들을 위해서 하느님께 기도드립니다. 아울러 세계 도처에 평화가 정착될 수 있도록 성모님께 전구를 청합니다.

이라크의 전쟁은 나아가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의 평화와 세계 평화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국내의 다양한 문제들과 북한의 핵문제로 인해 또 다른 두려움에 싸여 있습니다. 우리는 먼저 남북한에 하루빨리 평화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마음을 모아 기도바쳐야 하겠습니다. 어떤 이유에서든지 이 땅에서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전쟁은 하느님의 모상을 닮은 인간의 소중한 생명을 파괴하는 가장 큰 폭력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평화가 절실히 요청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여러분에게 평화가 있기를!"(루가 24,36)하고 인사하셨습니다. 모든 사람이 한결같이 염원하는 평화는 주님께로부터 오는 선물입니다. "그리스도야말로 우리의 평화이십니다"(에페 2,14). 주님께서 주시는 평화를 꽃피우기 위해서는 먼저 평화의 원천이신 하느님의 뜻에 귀를 기울이고, 각자가 평화의 도구로서 올바르게 살아야 합니다.

“정의의 실현인 평화는 결코 한 번에 영구히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평화는 모든 사람이 언제나 꾸준히 이룩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사목헌장 78항). 다양한 민족과 가치관 그리고 다른 종교를 가진 이들이 모두 평화롭게 공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서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관대함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회개하는 사람의 잘못을 용서해 주고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4. 새로운 희망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에서 새로운 희망을 발견합니다. 주님께서는 세상의 모든 죄악과 죽음의 권세를 물리치고 영광스럽게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것처럼 우리도 새 생명을 얻어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처럼 부활 신앙을 간직한 우리도 새롭게 변화되어 말과 행동으로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한 분이신 하느님 아버지의 자녀로서 사랑과 우정을 나누며, 공동선을 추구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드는 일에 앞장서야 하겠습니다. 이런 삶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자주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마음 안에 그리스도께서 형성될 때까지 그분을 닮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리스도의 생명의 신비 안으로 받아들여지고 그분과 동화되어 그분과 함께 죽고 함께 부활하여 마침내 그분과 함께 다스릴 것입니다"(교회헌장 7항).

부활하신 주님의 은총이 다시 한 번 여러분과 온 누리에 넘치기를 기원합니다. 평화의 모후이신 성모 마리아와 천상의 모든 성인이 우리나라와 세상에 평화가 충만하도록 하느님 아버지께 전구해 주시기를 간청합니다.

2003년 예수 부활 대축일을 맞이하여

천주교 서울대교구 교구장

대주교 정 진 석


서울대교구장 예수 부활 대축일 담화문

2001/04/15

"이 날은 주님께서 마련하신 날, 이 날을 기뻐하자 춤들을 추자"(시편 118, 24)

친애하는 교형 자매 여러분,

만물이 소생하는 새봄에 우리는 부활 대축일을 맞이하였습니다. 예수께서는 죄와 죽음의 세력을 물리치시고 오늘 온 인류의 구세주로서 영광스럽게 부활하셨습니다. 제삼천년기의 첫해이며 신유박해 순교 200주년의 뜻 깊은 해에 부활 대축일을 맞이하여 교형 자매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내리시기를 기원합니다. 또한 남북으로 분단된 채 살고 있는 우리 민족에게도 부활하신 주님의 축복이 충만하여 하나될 수 있는 날이 도래하기를 기원합니다. 그리하여 이 땅에 하느님의 사랑과 생명이 꽃필 수 있기를 간청합니다.

1. 예수님의 부활이 갖는 의미

예수님의 부활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이요 구원의 완성입니다. 부활 대축일은 교회의 모든 축일 가운데서 가장 큰 축일이며 가장 오래된 축일입니다. 부활시기는 오늘부터 성령 강림 대축일까지 50일간 계속되며, 이 시기에 우리는 부활의 의미에 대해서 깊이 묵상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부활로써 죽음의 세력을 물리치시고 온 인류에게 영원한 생명의 문을 열어주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부활로 죄에서 비롯된 인간의 모든 고통과 죽음의 세력이 꺾이게 되었습니다. 아울러 우리들도 장차 그리스도와 같이 부활할 수 있다는 믿음과 희망을 간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부활은 우리에게 선하신 하느님, 용서하고 축복하시는 하느님이 함께 계시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며, 하느님께로 시선을 돌려 그분의 선하심을 실천하라는 메시지를 전해 줍니다.

이 세상에 오신 예수께서는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사람들에게 말씀과 행적으로 알려주셨지만 세상은 그분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 예수를 여러분은 악인들의 손을 빌려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되살리시고 죽음의 고통에서 풀어 주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죽음의 세력에 사로잡혀 계실 분이 아닙니다”(사도 2,23-24).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써 모든 것이 끝났다면 그분을 믿고 따르는 신앙 공동체인 교회도 탄생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하심으로써 ‘어제나 오늘이나 또 영원히 변하지 않으시는 분’(히브 13,8)이 되셨습니다.

2. 죽음보다 강한 주님의 사랑

성서는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셨다는 것과, 부활의 증인인 사도들의 활약상을 우리들에게 전해 주고 있습니다. "이 예수는 집짓는 사람들 곧 여러분에게 버림을 받았지만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신 분입니다. 이분을 힘입지 않고는 아무도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사람에게 주신 이름 가운데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이름은 이 이름밖에는 없습니다”(사도 4,11-12). 예수께서는 더이상 죽음의 세력에 붙잡혀 있지 않고, 오늘 부활하심으로써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이제 예수께서는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는 인간으로 존재하시는 것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우리와 함께 계시는 주님이 되셨습니다.

한없이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 그 크신 사랑으로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주시고, 그분의 죽음과 부활로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에페 2,4-5 참조). 예수님의 부활은 그분의 말씀과 행적이 참으로 올바르다는 것을 보증해 주는 사건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을 통하여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고, 진실은 거짓보다 강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3. 사랑과 생명이 충만한 아름다운 나라

친애하는 교형 자매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은 마음 속에 부활신앙을 간직하고 있습니다만, 사회에는 죄악과 어둠의 그림자가 짙게 깔려 있습니다. 물질만능주의와 이기주의 풍조가 널리 퍼진 가운데 사람들은 정신적·도덕적인 가치를 잃어버린 채 살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인간의 생명과 존엄성은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과거에 비해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졌으나 아직도 헐벗고 굶주리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교통과 통신 수단의 발전으로 세계가 하나의 지구촌이 되었지만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는 폭력과 불의가 난무하고 있으며, 고통과 반목이 삶의 현장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부정부패가 만연해서 개인적 차원의 노력으로는 도저히 바로 잡을 수 없습니다. 정치·경제·사회·문화적 불의가 집단적, 국가적, 그리고 세계적 차원에서 자행되기 때문입니다. 국제통화기금(IMF) 관리 체제 이후 더욱 심화된 부익부, 빈익빈 현상에 대하여 우려하는 목소리가 점차 높아지고 있습니다. 또한 남북협력의 화해 분위기도 국제 정세의 흐름에 따라 영향을 받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우리나라는 여러 면에서 큰 시련과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모든 국민이 한마음 한뜻이 되어 겨레 사랑의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특히 사회 각 분야의 지도층 인사들이 솔선 수범함으로써 국민들로부터 존경받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정치인들은 언행이 일치된 모습으로 먼저 국민을 생각하고, 국민들에게 봉사함으로써 지지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국민들도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서로를 도우며 함께 살아가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데 힘을 모아야 하겠습니다. 특히 남북으로 분단된 채 살고 있는 우리 민족이 통일의 길로 들어서려면 지속적인 만남과 사랑의 나눔을 더욱 확산시켜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가 힘을 합쳐 지금보다 더 아름답고 사랑과 생명이 충만한 나라를 만들어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4. 하느님을 섬기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

이런 현실에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의 빛이심을 고백하면서, 하느님 아버지의 선하심이 인류 안에 새로운 빛으로 나타나길 소망합니다. 우리가 부활을 믿는 것은 주님의 말씀에 따라 한마음 한뜻이 되어 나눔과 섬김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사도 4,32-36 참조). 예수께서 세상의 온갖 죄악과 유혹에 굴복하지 않고 오롯이 하느님을 섬기고 이웃을 사랑하셨듯이, 우리도 그렇게 살 때 비로소 부활의 영광에 동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부활시기를 맞아 내적으로 새롭게 거듭나야 합니다. "이제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천상의 것들을 추구하십시오. 거기에서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오른편에 앉아 계십니다. 여러분은 지상에 있는 것들에 마음을 두지 말고 천상에 있는 것들에 마음을 두십시오”(골로 3, 1-2).

다시 한번 부활하신 주님의 은총과 사랑, 평화와 기쁨이 교형 자매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충만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아울러 이 땅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 특히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자비로우신 주님의 손길이 두루 미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남북으로 분단된 채 살고 있는 우리 민족이 부활하신 주님의 은총으로 서로 용서하고 화해함으로써 하나될 수 있는 날이 도래하기를 간청합니다. 구세주의 어머니이신 성모 마리아와 모든 성인들, 우리나라의 103위 순교 성인들의 전구를 청하며 기도드립니다.

"이 날은 주님께서 마련하신 날, 이 날을 기뻐하자 춤들을 추자."(시편 118, 24)

2001년 4월 15일 예수 부활 대축일에

천주교 서울대교구 교구장

대주교 정 진 석


서울대교구장 예수 부활 대축일 담화문

2000/04/23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또 영원히 변하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히브 13,8)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구세주 강생 2000년 대희년이라는 특별한 해에,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 대축일을 맞이하였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은총과 사랑, 평화와 기쁨이 형제 자매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충만하기를 빕니다.

또한 이 땅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 특히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자비로우신 주님의 손길이 두루 미치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남북으로 분단된 채 살고 있는 우리 민족이 주님의 은총으로 서로 용서하고 화해함으로써, 하나될 수 있는 날이 하루빨리 도래하기를 기원합니다.

1. 부활은 악에 대한 사랑의 승리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온 몸으로 실천하셨던 예수께서는 이 세상의 악한 세력에게 십자가상의 죽음을 당하셔야 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예수께 "이스라엘을 구원해주실 분이라는 희망을 걸고 있었습니다"(루가 24,21). 그러나 그분의 무고한 죽음은 제자들에게서 이 같은 희망을 모두 앗아갔습니다. 제자들은 극도의 비탄과 좌절을 안고 예루살렘을 떠나 갈릴래아로 달아났습니다(마르 16,12 참조).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기는커녕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죽음에까지 이르는 경우를, 우리는 인류 역사 안에서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정의보다는 불의가 승리하고, 사랑보다는 미움이 더 강한 힘을 발휘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죽으신 지 사흘만에 부활하시어 제자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그분의 삶이 참되다는 것을 증명하는 장엄한 선포입니다. 부활은 거짓에 대한 진실의 승리요, 불의에 대한 정의의 승리입니다. 또한 악에 대한 선의 승리요, 미움에 대한 사랑의 승리입니다. 예수께서는 부활하심으로써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던 연약한 인간의 조건에서 벗어나셨습니다. 이제 주님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 머물러 계시면서 진리가 무엇인지 밝혀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또 영원히 변하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히브 13,8).

2. 그리스도 우리의 평화

부활하신 주님인 그리스도를 만나고나서 제자들의 삶에는 큰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부활을 체험한 제자들은 미움과 불의를 조장하는 악의 세력에 무릎꿇지 않고, 하느님의 사랑과 정의를 실천할 수 있는 엄청난 용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부활의 증인이 된 제자들은 예수께 대한 신앙 안에서 나눔과 섬김의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루었습니다(사도 2,43-47 참조). 나아가서 제자들은 자신들의 생명을 바치면서까지 온 세상에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파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오늘 우리들은 자비로우신 하느님의 은총과 수많은 신앙의 증거자들을 통하여 마음 안에 부활신앙을 간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부활의 또 다른 증인이 되어 온 세상에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데 앞장서야 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부활과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길을 이렇게 알려주셨습니다. "내가 그대들을 사랑한 것처럼 그대들도 서로 사랑하시오. 벗을 위해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을 지닌 사람은 없습니다"(요한 15,12-13). 우리는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부활의 기쁨을 맛볼 수 있습니다. 특히 주위에 있는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또 다른 그리스도로 여겨 가진 것을 나누고 섬김으로써, 우리는 영원한 진리에 이를 수 있을 것입니다(마태 25,31-46 참조).

"그리스도야말로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분은 자신의 몸을 바쳐서 유다인과 이방인이 서로 원수가 되어 갈리게 했던 담을 헐어 버리시고, 그들을 화해시켜 하나로 만드셨습니다"(에페 2,14). 예수께서는 세상의 불의와 폭력에 희생당하셨지만, 부활을 통해 진정한 화해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사건을 통해 우리는 인간적인 폭력과 불의를 하느님의 사랑으로 이겨내는 길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폭력으로 얼룩진 역사 속에서도 하느님의 정의와 평화를 희망하면서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

3. 공동선을 위한 정치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새로운 천년기를 맞이하여 우리 국민들은 낡은 정치를 청산하고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새 정치를 염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 4in13 총선거를 통하여 국회의원을 새로 선출하였습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지난 선거에서 각 정당은 국가와 국민을 위한 정책을 올바로 제시하지 못한 채, 상호비방을 일삼고 지역감정을 부추겼습니다. 이로 인해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무관심과 불신이 더욱 팽배해졌습니다. 공동선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여러 지역과 계층으로 갈라진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서로 존중하고 사랑함으로써 하나를 이루어야 하겠습니다.

새로 선출된 국회의원들을 포함한 모든 정치인들이 하느님의 소리인 양심을 따라 정직하고 올바로 살 때, 비로소 국민들은 정치인들을 다시 신뢰하게 될 것입니다. 정치인들은 사리사욕이나 당리당략을 위해서가 아니라, 국가와 민족 전체의 공동선을 위해 일함으로써 국민들에게 희망을 안겨주어야 합니다. "정치는 공동선을 위해서 존재하고, 공동선 안에서 정당화되고 그 의의를 발견하며, 공동선에서 비로소 고유한 권리를 얻게 됩니다"(사목헌장, 74항). 이제 우리 국민이 모두 한마음 한뜻이 되어 올바른 정치에 기초한 풍요로운 나라를 건설하는데 힘을 모아야 할 것입니다.

4.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향하여

그 동안 우리 민족은 불행하게도 남북으로 갈라져 대립과 갈등, 적대와 증오로 점철된 채 살고 있습니다. 신앙인의 눈으로 보면, 분단 이후 반세기만에 처음으로 대희년 6월에 이루어지는 남북 정상회담이 결코 우연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 민족을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손길이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작용하는 듯합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되기를 바라는 교회는 우리 민족사에 커다란 전환점이 될 정상회담을 환영하며 알찬 결실이 맺어지길 기원합니다. 앞으로 열리게될 남북의 여러 회담들이 성공할 수 있도록 먼저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이 지역간, 계층간의 장벽을 뛰어넘어 하나를 이루어야 할 것입니다. 남북으로 갈린 우리 민족이 서로간의 담을 헐고 다시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신뢰와 인내심을 가지고 자주 만나고 대화를 나누어야 할 것입니다.

부활을 맞이하여 우리 모두는 남북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서 기도하고 용서하며, 나눔을 실천해야 하겠습니다. 저는 서울대교구장이면서 평양교구장 서리로서 북녘의 형제 자매들을 위해서 항상 기도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오늘 부활하신 주님의 은총으로 우리 민족이 서로 화해하고 일치할 수 있기를 청하며 여러분께서도 함께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부활의 기쁨과 희망이 형제 자매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가득하기를 다시 한번 기원합니다.

2000년 대희년 예수 부활 대축일에

천주교 서울대교구 교구장

대주교 정진석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대주교님의 부활 담화

"어둠이 지나가고 참빛이 이미 비치고 있습니다"(1요한 2,8)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만물이 다시 살아나는 새봄에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대축일을 맞이하였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온 누리에 가득차고, 그 생명의 빛이 이 땅의 어둡고 고단한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비치기를 기원합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신 대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지 사흘 만에 죽음을 쳐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이로써 절망과 멸망, 허무와 암흑으로 끝날 수밖에 없던 삶과 세상을 다시 살려내고 영원히 살게 하는 참생명을 이 세상에 주셨습니다. 그것은 예수님 자신이 바로 "부활이요 생명"(요한 11,25)이며 희망의 빛이요 평화이시기에 가능했습니다.

"이 날은 야훼께서 내신 날, 다함께 기뻐하며 즐거워하자"(시편 118,24).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이 날은 하느님께서 직접 마련해주신 특별한 날입니다. 실로 부활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이며 복음의 본질입니다. 그렇기에, 기쁨과 환호에 가득차서 감사와 찬미의 노래를 불러야 하겠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죽음의 구렁, 그 절망의 어둠에 빠졌던 우리가 이제는 "죄의 용서와 육신의 부활과 영원한 삶"(사도신경)을 믿음으로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부조리와 모순과 무의미로 가득찼던 인생의 모든 것이 새로운 의미와 가치와 아름다움으로 빛나게 되었습니다. 특히 금년 부활은 2000년 대희년을 눈앞에 둔 시점에서 맞이하기에 그 의미가 어느 해보다도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새 천년기에 우리는 "묶인 사람들에게 해방을 알려주고, 눈먼 사람들을 보게 하고, 억눌린 사람들에게는 자유를 주는"(루가 4,18) 참그리스도인으로 거듭 새롭게 태어나야 할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2000년 전 부활하시어 사도들 앞에 나타나신 예수님만이 아니라 '오늘 이곳'의 우리들 앞에 펼쳐진 현실도 바라봐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여전히 남북으로 분단되고 서로에 대한 오해와 갈등이 해소되지 않은 안타까운 현실 속에서 새로운 천년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또한 국제통화기금(IMF) 체제가 된 지도 2년째이고 새 정부의 개혁이 시작된 지도 1년이 넘었지만 사회 곳곳의 표정은 여전히 힘에 겹고, 희망을 갖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긴급했던 상황들은 극복되었다고 하지만 과연 누구를, 무엇을 희생해서 이 극복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냉철히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사실 힘들었던 그 상황들을 넘길 수 있었던 것은 대다수의 우리 국민들이 허리띠를 졸라맨 결과입니다.

우리 주변에서 실업자는 여전히 늘어나고 있음은 실로 가슴 아픈 현실입니다. 모든 국민들이 서로 힘을 모으고 짐을 나누어지려고 하는 이때, 개혁의 노력이 몇몇 집단의 이기주의로 발목 잡히고 일부 정치인과 공직자들의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 언행으로 여전히 국민들에게서 외면당한다면, 우리는 오늘의 긴 어두움의 터널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의 현실에서 우리에게 새롭게 다가오는 부활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천년기가 교차하는 대전환의 시대에 오늘 부활하신 예수님은 무엇을 가르치십니까?

그것은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인간에 대한 사랑입니다. 경천애인의 삶을 몸소 사시다가 부활하여 지금 이곳에 우리와 함께하시는 예수님을 참으로 마음 깊이 믿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겪는 시련이 아무리 크다 하더라도 믿음만 확고하다면 우리는 좌절할 필요가 없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생명의 빛으로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라오는 사람은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요한 8,12).

부활은 죽음에 대한 생명의 승리, 미움에 대한 사랑의 승리, 죄에 대한 은총의 승리입니다. 그리하여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낡은 인간에서 벗어나 새 인간으로 거듭납니다(골로 3,9-10).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가 되고, 서로 형제가 됩니다. 그들 사이에는 인종적, 민족적, 사회적 차별이 일체 없으며(갈라 3,28), 그리스도를 본받아 서로 사랑하고 가진 것을 나누며 믿음과 사랑의 공동체를 이룹니다(사도 2,44-47).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나'보다는 '너'와 '우리'를 더 소중하게 여겼던 초대교회의 모습이 이러한 사실을 우리에게 잘 가르쳐줍니다. 부활의 믿음이 있는 곳에서는 이처럼 모든 것이 새로워집니다. 중요한 것은 섬김과 나눔의 공동체, 나 혼자만이 아니라 남과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세상, 기쁨뿐 아니라 고통까지도 함께 나누는 구원의 공동체를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활하신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어둠이 지나가고 참빛이 이미 비치고 있습니다"(1요한 2,8).

2000년 전, 부활하신 주님께서 주신 생명의 빛을 통해 우리들도 새 인간으로 태어났습니다. 오늘 이 시대, 이 땅에서도 우리는 부활신앙의 옷을 입은 새 인간으로서 사랑이 충만한 세상을 열어야 합니다. "잠에서 깨어나라. 죽음에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빛을 비추어 주시리라"(에페 5,14).

오늘 부활 대축일을 맞아 그리스도께서 주신 이 빛이 온 누리의 모든 이들과 우리 겨레에게, 특별히 희망을 잃고 어려움 속에 있는 우리의 형제들에게 고루 비치기를 거듭 기도합니다.

1999년 부활 대축일에

천주교 서울대교구 교구장


예수 부활 대축일

(다해) 루가 24,1-12 : 98/04/12


서울대교구장 김수환 추기경의 부활 메세지(요약)

친애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그리스도는 말씀하신 대로 3일만에 부활하셨습니다. 하느님 아버지는 당신의 뜻에 순종하여 세상 모든 이의 구원을 위해 사람이 되어 오시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신 예수님을 성령으로 부활하시게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를 죄에서 구하시 고 죽음에서 살리는 생명의 주님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말할 수 없이 큰 기쁜 소식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우리가 전한 것도 헛된 것이요 여러분의 믿음도 헛된 것 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1고린 15,14)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지 않으시고 죽음으로 끝나고 말았다면 그가 가르친 모든 말씀, 복음도 헛되고, 우리 인생은 구원의 희망이 없고 부조리와 모순뿐이며, 사람이 진리와 정의를 따라 살 필요도 없고, 윤리 도덕 등 모든 가치관이 쓸모 없게 될 것입니다. 마침내 그 종말은 멸망 뿐일 것입니다. 세상과 역사는 그리스도를 못박아 죽인 그 미움과 폭력과 거짓 속에 끝없이 공전하는 허 무일 뿐일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그리스도께서 죄와 죽음을 쳐이기고 다시 살아나심으로써 우리 모두도 죄의 용서와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는 부활의 은혜를 입게 되었다는 것은 말할 수 없이 큰 기쁜 소식이 아 닐 수 없습니다. 정녕 세상에 이보다 더 기쁘고 복된 소식은 없습니다. 부활은 참으로 그리스도교 신앙의 본질입니다. 그리스도교 신자란 바로 부활을 믿는 사람입니다. 부활 신앙을 굳게 간직하고 살 때 우리에게 는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절망이 있을 수 없습니다. "죽음이 죽음이 아니요 새로운 삶으로 옮아감"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와 같이 반드시 부활한다는 이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어떤 처지에서도 실망하지 않 게 하는 희망 그 자체입니다. 아무리 현실이 어둡고 비참할지라도 - 하늘을 덮은 먹구름 뒤에는 태양이 건재함을 믿듯 - 우리의 구원이요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모든 고통과 시련, 어둠과 절망적 상황 속에서 도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것을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그 마음으로(필립 2,5) IMF 시대에 남과 북에서 가난에 시달리는 형제들과 고통을 나눌 줄 알아야 하고 가진 것을 내놓음으로써 그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서울대교구장 김수환 추기경의 부활 메세지(전문)

친애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새봄과 함께 부활대축일을 맞이하셨습니다. 진심으로 부활하신 주님의 은총 과 평화가 여러분 모두에게 가득하기를 빕니다.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그리스도는 말씀하신 대로 3일만에 부활하셨습니다. 하느님 아 버지는 당신의 뜻에 순종하여 세상 모든 이의 구원을 위해 사람이 되어 오시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신 예수님을 성령으로 부활하시게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를 죄에서 구하시고 죽음에서 살리는 생명 의 주님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말할 수 없이 큰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담의 범죄 이래 죄와 악으로 가득찬 이 세상, 그 결과 모두가 죽음의 운명과 그 질고를 면할 수 없는 이 세상, 절망과 암흑의 땅에 구원과 희망의 빛이 새벽 햇살처럼 환히 동터온 것입니다.

진실로 사도 바울로의 증언대로 "죄가 많은 곳에는 은총도 풍성하게 내렸습니다"(로마 5,20). 그리 스도의 부활로써 인간의 종말은 결코 죽음이 아니요 영원한 생명, 불명의 생명입니다. 우리 모두도 그리스도를 부활하게 하신 같은 성령으로 죽음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부활할 것이기 때문입니다(로 마 8,11 참조). 이리하여 하느님과 같이 그 영광 속에 영원히 사는 것이 모든 인간의 소명입니다. 여 기에 인간 존엄성의 가장 숭고한 이유가 있습니다(사목헌장 19 참조).

우리는 2000년 대희년을 앞두고 성령께 봉헌된 이 해에 우리도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서 살며 성령께서 우리 안에 부활 신앙을 확고히 심어주시고, 우리로 하여금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 에 현존하심을 깨닫게 하여 주시도록 간절히 빌어야 하겠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우리가 전한 것도 헛된 것이요 여러분의 믿음도 헛된 것 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1고린 15,14)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지 않으시고 죽음으로 끝나고 말았다면 그가 가르친 모든 말씀, 복음도 헛되고, 우리 인생은 구원의 희망이 없고 부조리와 모순뿐이며, 사람이 진리와 정의를 따라 살 필요도 없고, 윤리 도덕 등 모든 가치관이 쓸모 없게 될 것입니다. 마침내 그 종말은 멸망뿐일 것입니다. 세상과 역사는 그리 스도를 못박아 죽인 그 미움과 폭력과 거짓 속에 끝없이 공전하는 허무일 뿐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모순된 인생과 종말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것은 너무나 도리에 어긋납니다. 모든 인간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찾고 있는 진리와 정의, 사랑과 행복, 참생명에 대한 배 반입니다. 우리는 누구도 이런 배반을 용납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볼 때 그리스도께서 죄와 죽음을 쳐이 기고 다시 살아나심으로써 우리 모두도 죄의 용서와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는 부활의 은혜를 입게 되었다 는 것은 말할 수 없이 큰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정녕 세상에 이보다 더 기쁘고 복된 소식은 없 습니다.

부활은 진정 죽음의 어둠에 잠긴 지평에 떠오른 생명의 태양입니다. 거짓을 쳐이긴 진리의 승리요 미움 을 쳐이긴 사랑의 승리입니다. 부활 생명의 빛이 어둠에 잠긴 인생과 역사를 환히 밝히고 있기 때문입니 다.

이로써 인생도 역사도 세상 모든 것이 의미를 얻고 다시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진실로 우리는 '알렐루 야'의 기쁜 노래를 드높이 부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날은 주께서 마련하신 날, 이 날을 기뻐하자, 춤 들을 추자"하며 기쁨에 용약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부활은 참으로 그리스도교 신앙의 본질입니다. 그리스도교 신자란 바로 부활을 믿는 사람입니다. 부활 신앙을 굳게 간직하고 살 때 우리에게는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절망이 있을 수 없습니다. "죽음이 죽음 이 아니요 새로운 삶으로 옮아감"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와 같이 반드시 부활한다는 이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어떤 처지에서도 실망하지 않게 하는 희 망 그 자체입니다. 아무리 현실이 어둡고 비참할지라도 - 하늘을 덮은 먹구름 뒤에는 태양이 건재함을 믿 듯 - 우리의 구원이요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모든 고통과 시련, 어둠과 절망적 상황 속에서도 우리와 함 께 계시다는 것을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활은 참으로 평화입니다. 모든 근심 걱정이나 두려움을 없애고 오직 하느니의 자비가 우리의 모 든 죄를 용서하고 그 사랑만이 우리를 감싸는 평화입니다. 그 때문에 부활하신 주님은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하고 인사하셨습니다(요한 20,19).

이제 우리는 이 주님의 부활을 확고히 믿고 이를 온 세상 모든 이에게 전하여야 하겠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우리 안에 살아계심을 증거해야 하겠습니다. 그리스도를 알리는 가장 힘있는 증거는 이 그리스도 를 우리가 따르는 삶, 닮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것은 곧 주님이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복음에 보면 예수님은 모든 인간의 종이 되시어 모든 인간을 사랑하고 봉사하셨습니다. 그 중에서도 죄 인을 비롯한 가난하고 소외되고 병들고 고통받는 사람, 실망과 좌절에 빠진 사람을 더욱 깊이 사랑하셨습 니다.

이 사랑이 오늘 우리에게 가장 요구됩니다.

특히 이른바 IMF 시대에 우리 주변에는 가난에 시달리는 이들이 많습니다. 실직과 경제적 파탄으로 고 통을 겪는 이들이 날로 늘어가고 있습니다. 동시에 북녀Z 땅에서는 이미 잘 아시는 바대로 식량난에 심각 하빈다. 많은 이가 -특히 어린이, 노약자들이 - 굶주림으로 죽어가고 있습니다. 남에서나 북에서나 이 고 통에 놓인 이들은 바로 우리와 한 핏줄입니다. 동포요 형제입니다. 이들의 고통에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와 신자인 우리들은 무관심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그 마음으로(필립 2,5) 그들과 고통을 나눌 줄 알아야 하고 가진 것을 내놓 음으로써 그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이런 사랑의 실천은 사랑의 주이신 예수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어 우리 안에 사심을 가장 힘있 게 증거하는 표시가 되고 동시에 참으로 나라를 살리고 분단의 벽을 헐고 겨레의 통일을 이룩하는 길이 될 것입니다.

1988년 부활대축일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추기경 김 수 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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