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4주일 제54차 성소주일 교황 담화문


선교를 위한 성령의 이끄심

(가해) 요한 10,11-18; 17/05/07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지난 몇 년간 그리스도인 성소의 두 가지 측면, 곧 주님의 목소리를 듣고자 “자신에서 벗어나”라는 부르심과 하느님의 부르심이 생겨나고 자라며 표현되는 특별한 자리인 교회 공동체의 중요성에 관하여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제 저는 제54차 성소 주일을 맞이하여 그리스도인의 부르심의 선교적 차원에 관하여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하느님의 목소리에 이끌려 예수님을 따르기로 결심한 이들은 복음화와 사랑의 봉사를 통하여 자기 형제자매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자 하는 주체할 수 없는 갈망을 자신 안에서 바로 발견하게 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복음의 선교사가 되라는 부르심을 받습니다! 제자인 우리는 개인적 위로를 위하여 하느님 사랑의 선물을 받은 것이 아니고, 또한 우리 자신이나 사익만을 추구하고자 부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단지 하느님께 사랑받는다는 것을 느끼는 기쁨으로 어루만져져 변화된 사람들이기 때문에 우리만 이러한 경험을 해서는 안 됩니다. “제자 공동체의 생활을 가득 채우는 복음의 기쁨은 선교의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선교를 위한 노력은 그리스도인 삶에 장식품으로 부가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신앙 그 자체의 핵심에 자리 잡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과 관계를 맺게 되면 주님 말씀을 전하는 예언자이며 그분 사랑을 보여 주는 증거자로 이 세상에 파견됩니다.

우리가 때때로 우리 안에 있는 수많은 나약함을 체험하고 때로는 좌절을 느낄 수 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고개를 들어 하느님을 바라보면서 우리가 무능하다는 생각에 짓눌리거나 비관주의에 굴복해서는 안 됩니다. 이러한 비관주의는 우리를 지치고 단조로운 삶의 소극적 방관자로 만들 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하느님께서는 몸소 우리의 더러운 입술을 깨끗이 해 주러 오셔서 우리가 선교에 맞갖은 사람이 되도록 해 주십니다. “너의 죄는 없어지고 너의 죄악은 사라졌다. 그때에 나는 이렇게 말씀하시는 주님의 소리를 들었다. ‘내가 누구를 보낼까?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가리오?’ ‘제가 있지 않습니까? 저를 보내십시오.’ 하고 내가 아뢰었다.”(이사 6,7-8)

선교하는 모든 제자는 예수님께서 하셨던 것처럼 좋은 일을 시작하도록 명령하시는 하느님의 이러한 목소리를 자신의 마음 깊은 곳에서 듣습니다(사도 10,38 참조). 저는 모든 그리스도인은 세례성사의 힘으로 크리스토포로와 같은 이, 곧 모든 형제자매에게 그리스도를 전달하는 이가 된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특히 이는 특별하게 봉헌 생활에 부름 받은 이들과 사제들의 경우에 해당되며, 이들은 “제가 있지 않습니까? 저를 보내십시오.”라고 기꺼이 응답한 이들입니다. 이들은 새로운 선교 열정으로 성당이라는 성역을 벗어나 인류를 위하여 하느님의 온유함이 넘치게 하도록 부르심을 받습니다. 교회는 믿을 만하고 흔들림 없는 사제를 필요로 합니다. 이들은 참된 보화를 발견하여 기쁨에 넘쳐 모든 이에게 가서 이 보화를 알리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습니다(마태 13,44 참조).

우리가 그리스도인의 선교에 대하여 말하기 시작하면 분명 많은 질문들이 나오게 됩니다. 복음의 선교사가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누가 우리에게 선포하는 힘과 용기를 줍니까? 선교에 힘을 실어 주는 복음의 논리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복음서에 나오는 다음 세 가지 장면을 생각하면서 이러한 질문들의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나자렛의 회당에서 예수님께서 당신의 사명을 시작하신 장면(루카 4,16-30 참조),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나서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과 동행하시는 장면(루카 24,13-35 참조), 끝으로 씨앗의 비유에 관한 이야기(마르 4,26-27 참조)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으시고 파견되신다. 선교하는 제자가 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사명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몸소 나자렛의 회당에서 그 사명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루카 4,18-19) 이는 우리의 사명이기도 합니다. 곧,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아 우리 형제자매에게 가서 말씀을 선포하고 그들을 위한 구원의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길에 함께하십니다. 인간적인 마음에서 솟아나는 의문과 현실에서 나타나는 도전 앞에서 우리는 당황하고 무기력하고 희망이 없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사명은 단지 비현실적인 이상이나 적어도 우리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현실로 여겨질 위험이 있습니다. 그러나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과 함께 걸어가시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면, 우리는 확신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루카 24,13-15 참조). 이 복음서 장면에서, 우리는 말씀 전례와 빵을 쪼개는 전례에 앞서는 참된 길의 전례를 발견합니다. 이 길의 전례는 예수님께서 우리가 내딛는 모든 발걸음에 함께하신다는 것을 알려 줍니다! 이 두 제자들은 십자가의 치욕적 사건에 상처받아 낙심한 채 집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의 마음 안에는 깨어진 희망과 실현되지 못한 꿈이 담겨 있습니다. 그들 안에서 복음의 기쁨이 있던 자리를 슬픔이 꿰차고 말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무엇을 하십니까?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단죄하지 않으시고 그들과 함께 걸어가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벽을 쌓는 대신에 돌파구를 마련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낙담에 서서히 변화를 가져오십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마음이 타오르게 하시며, 말씀을 하시고 빵을 떼어 주시자 그들의 눈이 열립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인은 단독으로 선교의 사명을 짊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치고 오해를 받는 가운데에서도 다음과 같은 것을 깨닫습니다. 곧, “예수님께서 그와 함께 걸으시고 이야기하시고 숨 쉬시고 함께 일하신다는 것을 압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선교 활동 한가운데에서 자신과 함께 살아가신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씨앗이 자라도록 하십니다. 끝으로, 복음에서 선포 방법을 배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때때로 아무리 좋은 의도를 지니고 있어도 우리는 권력에 대한 욕심이나 개종의 강요나 편협한 광신주의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우리에게 권력과 성공의 우상과 제도에 대한 과도한 염려와, 봉사의 정신보다는 승리주의에서 발생하는 불안을 거부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느님 나라의 씨앗은 아무리 작고 보이지 않고 때로는 하찮아 보여도 하느님의 지치시지 않는 활동으로 조용히 계속해서 자랍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이와 같다. 어떤 사람이 땅에 씨를 뿌려 놓으면, 밤에 자고 낮에 일어나고 하는 사이에 씨는 싹이 터서 자라는데, 그 사람은 어떻게 그리되는지 모른다.”(마르 4,26-27) 그래서 이는 우리가 자신감을 가져야 하는 첫째 이유가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기대를 뛰어넘어 당신의 관대하심으로 계속해서 우리를 놀라게 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인간적 계산을 뛰어넘어 우리의 노력이 결실을 맺도록 하십니다.

복음에서 얻은 이러한 자신감으로 우리는 선교의 기본이 되는 성령의 조용한 활동에 열려 있을 수 있습니다. 지속적인 관상 기도 없이는 성소나 그리스도인의 선교를 촉진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하느님 말씀을 경청하고 무엇보다도 우리가 하느님과 만나게 되는 특별한 자리인 성체 조배 안에서 주님과 인격적 관계를 돈독히 하여 성장하여야 합니다.

저는 진심으로 주님과 이러한 깊은 우정을 맺기를 권유하며 무엇보다도 먼저 사제직과 봉헌 생활에 대한 새 성소자들이 많이 나오기를 간청합니다. 하느님의 백성은 복음에 봉사하는 삶을 사는 사목자들의 안내를 받아야 합니다. 저는 본당 공동체와 단체 그리고 교회에 있는 많은 기도 단체에게 낙담하지 말고 주님께서 당신의 추수할 밭에 일꾼을 보내 주시기를 계속해서 기도하기를 부탁드립니다. 주님께서 복음에 매료되고 형제자매들과 가까이 지내며 하느님의 자비로운 사랑의 징표로서 살아가는 사제를 보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또한 오늘날 우리는 복음을 전파하는 열정을 다시 얻을 수 있으며 특히 젊은이들이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길을 선택하도록 그들에게 힘을 실어 줄 수가 있습니다. 신앙을 무기력한 것이나 단지 이행하여야 하는 의무로 축소하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지만, 우리 젊은이들은 지속적으로 끌어당기시는 예수님을 발견하고 그분의 말씀과 행동에 자극을 받으며 그분께서 온전한 인간으로 살아가시면서 자신을 사랑으로 기꺼이 내어 주시며 실현하신 그 이상을 소중히 여기고자 합니다.

우리 구세주의 어머니이신 거룩하신 성모님께서는 이 이상을 받아들이시고 당신의 젊음과 열정을 하느님의 손에 맡기시는 용기를 지니고 계셨습니다. 성모님의 전구를 통하여 우리가 성모님처럼 열린 마음으로 주님의 부르심에 “제가 있지 않습니까?”라고 기꺼이 응답하며 기쁘게 길을 떠나(루카 1,39 참조) 온 세상에 하느님을 선포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바티칸에서 프란치스코




부활 제4주일 제52차 성소주일 교황 담화문


“탈출, 성소의 본질적 체험"

(가해) 요한 10,11-18; 15/04/26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부활 제4주일은 당신의 양들을 아시는 착한 목자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착한 목자는 양들을 불러 먹을 것을 주시고 이끌어주십니다. 50년 넘게 보편 교회는 부활 제4주일을 성소 주일로 거행합니다. 이를 통하여 예수님께서 당신 제자들에게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루카 10,2)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교회는 우리에게 기도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일깨워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선교사들을 파견하시면서 이러한 명령을 하셨습니다. 열 두 사도만이 아니라 일흔 두 제자를 더 부르시어 사명을 수행하도록 둘씩 보내셨습니다(루카 10,1-6 참조). 교회는 “그 본성상 선교하는 교회”(선교 교령 2항)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인 성소는 반드시 선교 체험을 통해서만 생겨납니다. 착한 목자이신 그리스도의 목소리를 듣고 따라가는 것은 그분께서 우리의 마음을 끌어당기시고 우리를 이끄시도록 하며 우리가 그분께 우리 삶을 봉헌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서 성령께서 우리를 이러한 선교의 힘으로 이끄시고, 하느님 나라를 위하여 기쁘게 우리 삶을 봉헌하겠다는 바람과 용기가 우리 안에서 생겨나도록 하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사명에 우리 자신의 삶을 봉헌하는 것은 우리 자신에서 벗어나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저는 제52차 성소 주일에 성소, 더 정확하게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성소에 대한 응답의 핵심인 바로 그러한 탈출에 대하여 묵상하고자 합니다. 탈출이라는 말을 들으면 우리는 바로 하느님과 당신 백성의 놀라운 사랑 이야기의 시작, 곧 이집트에서 비참하게 노예 생활을 하던 날들에서 시작해서 모세를 부르심과 당신 백성의 해방, 그리고 약속의 땅으로 향하는 여정으로 이어지는 이야기의 시작을 떠올리게 됩니다. 성경에 두 번째로 나오는 탈출기는 구원 역사 전체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또한 그리스도 신앙의 근본적 힘을 설명해줍니다. 사실 노예 생활을 하던 옛 인간에서 벗어나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삶으로 나아가는 것은 신앙을 통해서 우리에게 일어난 구원 사업입니다(에페 4,22-24 참조). 이 과정은 참된 탈출입니다. 이는 그리스도인 한 사람 한 사람의 여정, 그리고 교회 전체의 여정이며, 아버지를 향한 결정적인 삶의 방향 전환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 성소의 바탕에는 신앙 체험의 이러한 근본적인 움직임이 있습니다. 믿음은 안락함과 완고함을 뒤로하고 우리 자신을 넘어서서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삶의 중심에 두는 것입니다. 이는 아브라함과 같이, 자기가 살던 곳을 떠나 하느님께서 새로운 땅에 이르는 길을 보여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나아감을 우리 자신의 삶, 정서, 인성을 경시하라는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그와는 반대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에 나선 이들은 하느님과 그 나라를 위하여 자신을 온전히 내어 맡기며 풍요로운 삶을 찾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 이름 때문에 집이나 형제나 자매, 아버지나 어머니,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모두 백배로 받을 것이고 영원한 생명도 받을 것이다”(마태 19,29). 이 모든 것은 사랑에 깊은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사실 그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인 성소는 사랑의 초대입니다. 그 사랑은 우리를 매료시켜 우리의 자신과 중심에서 벗어나도록 이끌며, “자기만을 찾는 닫힌 자아에서 끊임없이 벗어나 자기를 줌으로써 자아를 해방시키고, 그리하여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고, 참으로 하느님을 발견”(「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6항)하도록 이끕니다.

탈출 체험은 그리스도인의 삶, 특히 복음을 위한 특별 봉헌의 성소를 받아들인 이들의 삶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납니다. 여기에는 끊임없이 회개하고 변화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이는 쉬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 죽음에서 생명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는 모든 전례에서 우리가 거행하는 것으로 파스카의 체험입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신 것부터 모세를 부르신 것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이 광야를 건넌 순례 여정부터 예언자들이 선포하는 회개를 거쳐, 죽음과 부활에서 절정을 이룬 예수님의 선교 여정에 이르기까지, 성소는 언제나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원래의 처지에서 이끌어내시고, 모든 노예 생활에서 우리를 해방시키시고, 습관과 무관심에서 벗어나게 해주시며, 당신과 그리고 우리 형제자매들과 나누는 친교의 기쁨으로 우리를 이끌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은 하느님께서 우리가 우리 자신과 거짓 안락에서 벗어나 삶과 행복의 시작이며 마침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이르는 길을 나서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이 탈출의 움직임은 단지 부름 받은 이들에게만이 아니라 교회 전체의 선교와 복음화 활동에도 관련됩니다. 교회는 나아가는 교회가 될 때에 주님께 충실하게 됩니다. 그러한 교회는 교회 자체, 교회의 조직과 성공을 염려하기 보다는 하느님의 자녀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찾아가 그들을 만나고 그들의 상처와 아픔을 함께 나누는 것에 더욱 많은 관심을 기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삼위일체 사랑의 힘으로 나서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이 울부짖는 소리를 들으시고 그들의 해방을 위하여 활동하십니다(탈출 3,7 참조). 교회는 이렇게 존재하고 활동하라고 부름 받습니다. 교회는 복음화를 하는 교회, 사람들을 만나러 나아가고 복음이 전하는 해방의 말씀을 선포하며 하느님 은총으로 사람들의 영혼과 육체의 상처를 치유해주고 가난한 이들과 궁핍한 이들을 위로하여 주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그리스도와 우리의 형제자매를 향하여 나아가는 이 해방의 탈출은 우리가 공통된 인성을 온전히 이해하고 개인과 사회의 역사적 발전을 촉진하는 방법도 제시합니다. 주님의 부르심에 귀를 기울이고 받아들이는 것은 일시적 기분으로 여길 수 있는 사적이고 개인적인 일이 아닙니다. 이는 오히려 우리 존재 전체를 바쳐 이 땅에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는 일에 구체적이고 실제적이며 총체적으로 헌신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마음을 바라보는 것에 뿌리를 둔 그리스도인의 성소는 우리들이 형제자매, 특히 가장 가난한 이들의 해방을 위하여 연대할 것을 촉구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주님의 무한한 지평에 열린 마음을 지닙니다. 온전히 주님과 하나가 되는 것은 결코 삶이나 세상으로부터의 도피가 되어서는 안 되며, 오히려 “친교와 선교는 서로 깊숙이 연결되어 있습니다”(「복음의 기쁨」, 23항).

하느님과 사람들을 향한 이러한 탈출의 힘은 우리의 삶을 기쁨으로 채워주고 의미 있게 만들어 줍니다. 저는 특히 젊은이들에게 이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젊은이들은 젊고 밝은 미래관을 가져 아낌없이 남을 도울 줄 압니다. 때로는 예측할 수 없는 것, 미래에 대한 근심, 일상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불확실성이 젊은이들의 열정을 마비시키고 꿈을 깨뜨려버릴 위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젊은이들은 헌신할 필요가 없으며, 그리스도인들이 믿는 하느님께서 그들의 자유를 구속하신다는 생각에 이르게 됩니다. 사랑하는 젊은이 여러분, 여러분 자신에서 벗어나 여정에 나서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복음은 우리의 삶을 해방시키고 변화시키며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말씀입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에 놀라고, 당신 말씀을 받아들이며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 하느님 신비를 찬양하고 이웃에게 넓은 마음으로 봉사하는 것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여러분 삶은 날마다 더욱 풍요롭고 기쁨에 넘치게 될 것입니다.

모든 성소의 모범이신 동정 마리아께서는 주님의 부르심에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fiat)라고 대답하는 것을 결코 두려워하지 않으셨습니다. 마리아께서는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를 이끄십니다. 믿음에서 나오는 커다란 용기로 마리아께서는 당신 자신을 내려놓으시고 당신 삶의 계획을 하느님께 온전히 내어맡기는 기쁨의 노래를 부르셨습니다. 우리 모두 마리아께로 향하여 하느님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 마련하신 계획에 우리 자신을 온전히 내어맡기며 서둘러 길을 떠나 다른 이들을 찾아 가려는 바람을 키웁시다(루카 1,39 참조). 동정 마리아께서 우리 모두를 보호하시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간구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바티칸에서 프란치스코



부활 제4주일 제51차 성소주일 교황 담화문


- 성소, 진리의 증언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마태 9,35-38)

(가해) 요한 10,1-10; 14/05/11

어린이 날, 어버이날 잘 보내셨습니까? 여러분, 여러분의 어머니는 어떤 분이십니까?

아버지 어머니를 생각하면 무엇이 떠오르십니까? 제 방에 들어가면, 벽에 예수님의 십자가와 그 양 옆에 아버지 어머니의 영정이 걸려있습니다. 자식 많은 집안의 맏며느리로 들어와, 시댁 식구들의 시샘과 눈치에도 불구하고 시동생 시누이 시집 장가 다 보내시면서, 묵묵히 어머니의 몫을 충실히 해내셨던 어머님이 생각납니다. 그래서 그런지 가끔 아버지 어머니를 바라보고 있으면 편안해 집니다.

성모의 밤을 준비하며 기도중에 어머니 마리아를 생각하면서, 성모님께서는 세월호의 깊은 바닷 속에 잠겨있는 아이들을 하나라도 더 건지기 위해 얼마나 마음 애태우시고 계실까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어머니께서 그 아이들과 모든 희생자들을 받아주시고 어머니 품안에서 위로해주시고 주님께로 인도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오늘 성모의 밤을 봉헌하며, 여러분 모두 어머니 마리아 품에 안겨 온갖 시름을 놓고 편안히 쉬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오늘 교회의 새식구가 되기 위해 교회를 찾아온 예비신자 여러분도 환영하며,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주님을 느끼고 만나뵈올 수 있도록 이끌어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성모님께서 주님께서 세상을 구하시기 위해 뽑으셨던 제자들과 제자 공동체인 교회와 늘 함께하시고 기도하셨듯이, 이 성모의 성월에 주님의 뒤를 이어, 교회와 세상의 구원을 위해 헌신하는 사제들과 수도자들이 좋은 사목적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고, 아울러 성소자들이 풍성해지기를 기도해 주십시오.

오늘은 성모의 밤이면서 또한 부활 제4주일인 성소주일입니다. 여러분도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성소자들을 위해 주님께 기도해 주십시오. 그리고 기회가 되면 그 젊은이들이 내 가정이나 주위에서 나올 때 기꺼이 봉헌해 주시기 바랍니다.

5월 성모의 성월에 맞는 성소주일에,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담화문을 요약하여 살펴보겠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마태 9,35-38)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정작 우리가 열심히 일하지도 않았는데, 누가 그러한 결실을 맺도록 일하였습니까? 바로 하느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밭은 분명히 인류, 곧 우리입니다. 그리고 “많은 열매”를 맺게 하는 효과적인 활동은 하느님의 은총, 곧 그분과 이루는 친교입니다(요한 15,5 참조).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교회에 바라시는 기도는 당신 나라를 위하여 일하는 이들이 많아지게 해 달라는 간청입니다.

우리는 먼저 하느님께서만 주실 수 있는 많은 수확에 놀라고, 언제나 우리를 앞서시는 그분 사랑에 감사드리며, 하느님께서 이루신 일에 대하여 찬미 드립니다. 이 일은 우리가 하느님과 함께, 또 하느님을 위하여 일하겠다는 자유로운 동의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그분께서 우리를 만드셨으니 우리는 그분의 것, 그분의 백성, 그분 목장의 양 떼이어라”(시편 100[99],3), 또는 “주님께서 야곱을 당신 것으로, 이스라엘을 당신 소유로 선택하셨다.”(시편 135[134],4) 라고 기도합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소유”라는 것은 노예가 되는 소유물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영원한 계약에 따라 우리가 하느님과 하나 되고 우리가 서로 하나 되는 강한 유대를 맺는다는 뜻입니다. “주님의 자애는 영원하시기 때문입니다.”(시편 136[135] 참조).

모든 것은 하느님에게서 오고, 모든 것이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곧, 세상, 삶과 죽음, 현재와 미래가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그런데 바오로 사도는 우리에게 이러한 확신을 줍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것이고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것입니다.”(1코린 3,23) 여기서 우리는 하느님께 속하는 방식을 알 수 있습니다. 곧, 우리는 예수님과 이루는 유일무이하고 인격적인 관계를 통하여 하느님께 속하는 것입니다. 이 관계는 세례성사를 통하여 우리가 새 생명으로 다시 태어날 때에 맺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신 말씀으로 우리에게 끊임없이 다가오시는 분은 바로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마음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마르 12,33) 당신을 사랑하며 신뢰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모든 성소는 가는 길은 서로 다를지라도 자신을 벗어나 그리스도와 복음을 삶의 중심에 둘 것을 요구합니다. 우리는 혼인 생활을 하든, 봉헌 생활을 하든, 사제 생활을 하든 하느님의 뜻과 일치하지 않는 사고 방식과 행동 방식을 극복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말씀의 씨앗에 담긴 은총의 힘을 얻도록 우리 마음 안에서 그리스도를 흠숭하라는 부르심을 받고 있습니다(1베드 3,15 참조).

이 말씀의 씨앗은 우리 안에서 자라나 이웃을 위한 구체적인 봉사로 드러나야 합니다. 우리는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삶의 모든 단계에서 열정과 솜씨를 다하여 당신의 일을 계속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결코 우리를 저버리지 않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위한 당신 계획을 실현하시려는 마음을 품고 계시면서도, 이를 우리의 동의와 협력으로 이루고자 하십니다.

오늘날에도 예수님께서는 살아 계시며 일상생활의 여정을 함께 하시어, 모든 사람에게, 먼저 가장 작은 이들에게 가까이 다가가시고 우리의 나약함과 질병을 치유해 주고자 하십니다.

성소는 서로에 대한 사랑이라는 잘 가꾸어진 밭에서 무르익어가는 열매입니다. 성소는 하느님의 마음에서 흘러나오고 믿는 이들의 좋은 땅에서 형제애를 경험하는 가운데 싹을 틔웁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요한 13,35)

부르심 받은 이들의 참다운 기쁨은 주님께서 성실한 분이시라는 것과, 우리가 주님과 함께 걸어갈 수 있다는 것, 곧 주님의 제자이며 하느님 사랑의 증인이 될 수 있다는 것, 큰 이상, 큰 일에 우리의 마음을 열 수 있다는 것을 믿고 체험하는 데에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사소한 것 때문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선택하지 않으셨습니다. 언제나 위대한 것을 향하여 나아가십시오. 고귀한 이상을 위하여 여러분의 삶을 거십시오”.

우리 마음이 “좋은 땅”이 되어 말씀을 듣고 받아들이고 실천하여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합시다. 기도와 성경, 성찬례, 교회 안에서 거행하고 실천하는 성사들을 통하여, 또 형제애를 실천하는 가운데 우리가 예수님과 더욱 긴밀한 일치를 이룰수록, 자비와 진리, 정의와 평화의 나라를 위하여 하느님과 협력하는 기쁨이 우리 안에서 더욱 커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겸손하게 받아들인 은총에 맞갖게 수확할 것도 많아질 것입니다. 이러한 바람으로 저는 여러분이 저를 위하여 기도해 주실 것을 부탁드리며 진심어린 교황 강복을 여러분 모두에게 보내드립니다.

바티칸에서

교황 프란치스코

“나는 문이다.

누구든지 나를 통하여 들어오면 구원을 받고, 또 드나들며 풀밭을 찾아 얻을 것이다.”(요한 10,9)



부활 제4주일(성소주일)

(다해)요한 10,27-30; 13/04/21

여기 앉아계신 H 신부님은 제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우리 성당 중림동 보좌신부님이셨습니다. K 신부님은 누구나 다 잘 아는 사목국장도 하시고, 교포 사목도 하시고 사목 일선에서 누비신 사목의 달인이십니다. 그리고 J 신부님과 L 신부님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하늘같은 교수 신부님이셨습니다. 그리고 기라성 같은 후배신부님들. 이런 분들 앞에서 나이순서가 되었다고 미사를 주례하고 강론을 하려니 정말 몸 둘 바를 모르겠고 그야말로 백골난망입니다.

오늘은 성소주일입니다.

피정에 들어 와서 제 어린 시절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셨던 중림동 본당 역대 본당 신부님들을 기억해 보았습니다. 저 초등학교 3학년 때 세례와 첫영성체를 해 주신 박병윤 토마 신부님, 나중에 요한의 집을 설립하셨죠. 견진 성사를 주신 경갑룡 요셉 주교님, 김영일 발타사르 신부님, 최광연 모이세 신부님, 김창석 다두 신부님, 김정수 레오 신부님, 그리고 중곡동으로 이사 가서 신학교 추천서를 써주신 김희선 요셉 신부님. 지난 4월 18일 기일을 맞으신 한희동 그레고리오 신부님, 경 주교님과 김영일, 김희선 신부님만 빼고는 다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중림동 성당의 보좌 신부님이신 김택암 베드로 신부님, 한정관 바오로 신부님, 김유종 마티아 신부님, 강우일 베드로 주교님, 탁현수 아우구스티노 신부님, 그리고 중곡동 박찬윤 히뽈리또 신부님, 김윤태 세례자 요한 신부님, 한성호 알베르또 신부님 등 역대 보좌 신부님들,

그리고 제가 추천서를 써드린 신부님들과 오늘 신학교에서 첫 번째 성소주일을 맞는 네 번째 아들 신학생,

유치원 원장 수녀님이셨던 원선시오 수녀님과 프란체스카 수녀님 등 역대 수녀님들

그리고 저와 함께 살아주셨던 신부님들, 수녀님들, 그리고 또 저를 교회의 신부로 존중하고 묵묵히 따라주셨던 평신도 지도자 분들을 기억했습니다.

그리고 돌아가신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오늘 수도 서원 25주년을 맞는 동생 수녀와 동기 수녀들, 오빠 언니를 성직자 수도자로 보내놓고 험난한 이 세상을 혼자 개척하며 꿋꿋이 살아가고 있는 막내를 생각했습니다.

모두 모두 감사드린다는 말로는 다 모자랄 정도로 은혜를 베풀어주셨던 분들입니다.

오늘 부활 제4주일인 성소주일을 요한 복음 10장에 나오는 착한 목자 주일이라고도 부릅니다. 사제 서품을 받을 때, 서품 성구로 “나는 착한 목자다.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 놓는다.”요한 10,11) 라는 이 구절을 선택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좋기는 한데, 감히 제 스스로 “나는 착한 목자다.”라는 말을 하기에는 뭔지 모르게 교만해 보이고 또 평생 그렇게 잘 살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어 차마 선택하지 못했습니다. 그 대신 로마서 8장 25절에 나오는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희망하기에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립니다.”라는 구절을 서품 성구로 선택했습니다.

저희가 사제가 되어 신학교를 나올 때 학장 신부님께서 저희 부제들을 모아놓고 훈시를 하셨습니다. 그 중에 제 머리 속에 지금까지 남는 말씀이 하나 있습니다. “착한 목자는 죽을 목자니까 너희가 언제 죽을 지는 너희가 알아서 살아라.”하신 말씀입니다.

처음 10년은 아침에 코피를 터트려가며, 그야말로 죽기를 다해 일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아주 잘했다거나 남이 보아도 아주 잘했다는 평가를 받았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제깐에는 그렇게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 다음 10년도 열심히 일했습니다. 지금 와서 제 사제 생활 25주년을 되돌아보면, 주제넘게도 우스갯말로 한다면, ‘정말 할 만큼 했다.’는 기분이 듭니다.

그동안 주님께서는 저를 음으로 양으로 돌봐주셨습니다. 웬만한 일은 마치 재벌집 속썩이는 아들들 덮어주듯 다 덮어주시고, 뒤에서 제가 사제로서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하고자 한다는 일은 거의 다 이루어주셨습니다. 그렇게 열매를 맺어주실 때마다 일일이 주님께 찬미와 영광을 돌려드리지 못하고 지나왔지만, 지금 와서 되돌아보니 정말 많은 것을 이루어주셨고, ‘그 동안 정말 은총이 세월을 보냈구나!’하는 감탄이 절로 나와 감흡할 뿐입니다.

힘겹고 지치고 메말랐을 때 주님께서는 수호천사들을 보내주시기도 하셨고, 참 많은 위로와 힘을 주셨습니다. 제가 지난 세월 동안 저와 함께 해주시며 갖은 은총을 다 베풀어 주셨던 주님의 흔적들을 글로 모아 ‘어느 사제의 기도’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그 글이 새삼 깊이 다가옵니다. 다소 길지만 신부님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주님,

주님은 제가 주님께 저를 바치겠다고 처음 결심했을 때,

제게 행복을 안겨 주셨습니다.

훗날 그 때의 저를 보셨던 어머니께서 말씀해 주셨던 것같이

그 때 저는 제일 편안했고 가장 행복했습니다.

그 행복은 인간이 주님과 함께할 때 얻을 수 있다던 바로 그 행복이었습니다.

저는 그 행복을 주님께로부터 받았습니다.

주님,

그 후로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제겐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는 단 한가지 일만 있었습니다.

주님의 일은 바로 저를 향한 주님의 사랑 그 한 가지였습니다.

주님,

주님께서 저의 매 순간 매 자리에 함께해 주셨음을 저는 압니다.

제가 양이고자 했을 때 주님은 저의 목자가 돼 주셨습니다.

제가 주님께 다가서려고 했을 때 주님은 저를 끌어 주셨습니다.

제가 주님을 알고자 했을 때 주님은 저를 깨우쳐 주셨습니다.

제가 주님을 뵈옵고자 했을 때 주님은 저에게 드러내 주셨습니다.

제가 주님을 느끼고자 했을 때 주님은 저를 안아 주셨습니다.

제가 주님께 저를 바쳤을 때 주님은 주님 자신을 주셨습니다.

제가 주님의 교리를 가르칠 때 주님의 지혜를 주셨습니다.

제가 주님의 미사를 드릴 때 주님의 생명을 주셨습니다.

제가 주님의 성사를 집전할 때 주님의 권능을 주셨습니다.

제가 환자를 방문할 때 주님은 기적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제가 사람들 앞에 섰을 때 주님은 제 입을 열어 당신을 찬미할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제가 곤경 중에 있을 때 주님은 제 편을 들어 주셨습니다.

제가 악에게 시달리고 있을 때 주님은 제 대신 싸워 주셨습니다.

제가 분노와 갈등으로 밤을 지새울 때 주님은 휴식을 주셨습니다.

제가 혼자 있을 때 주님은 저를 위로해 주셨습니다.

제가 고독해할 때 주님은 천사를 보내 주셨습니다.

제가 텅비고 허전해진 가슴으로 먹을 것을 찾아헤맬 때 주님은 말씀으로 배불려 주셨습니다.

제가 목말라 할 때 주님은 성체성사로 적셔 주셨습니다.

제가 실수했을 때 주님은 못 본 체해 주셨습니다.

제가 피곤에 지쳤을 때 주님은 제 대신 일해 주셨습니다.

제가 잘못했을 때 주님은 채워 주셨습니다.

제가 유혹 중에 있을 때 주님은 안스러워 어쩔 줄 모르셨습니다.

제가 유혹에 걸려 넘어졌을 때 주님은 다시 일으켜 주셨습니다.

제가 다시 또 범죄하였을 때 주님은 저와 함께 아파하셨습니다.

제가 거듭 범죄하여 수치감과 죄책감으로 시달리고 있을 때 주님은 저를 불러 주셨습니다.

제가 제 죄의 무게에 짓눌려 절망했을 때 주님은 저에게 생기를 주셨습니다.

제가 주님 곁을 떠나 도망치고 싶을 때 주님은 성령의 힘으로 나를 휘감아 나도 모르는 새에 다시 주님 앞에 앉아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이렇게 주님은 제가 다시 주님 사랑의 빛 안으로 나오도록

저를 용서해 주시고

저를 끌어내 주시고

이 모든 일들을 저에게 겪도록 하심으로써

저를 거룩하게 만들어 주시고 계십니다.

이 모든 제 생애의 순간 순간들이 그리고 저의 전생애의 역사가

주님의 오묘한 섭리 안에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오늘 주님 앞에 다가와서 청합니다.

주님이 제게 베풀어 주신 모든 은혜와

주님이 저와 함께해 주셨던

모든 순간들을 기억하며 청합니다.

말씀으로 저를 일러 주시고

성체성사로 먹여 주시는

주님 앞에 서서 청합니다.

주님, 저를 받아 주소서.

저는 주님밖에 매달릴 분이 없어서 주님께 부르짖습니다.

저는 제가 바라는 것을 세상 그 어느 것으로도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주님께 청합니다.

저는 제가 바라는 것을 주실 수 있는 분이

주님뿐이시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기에 주님께 청합니다.

저는 주님이 하시고자만 하시면

저에게 주님을 주실 수 있다는 것을 믿기에 주님께 청합니다.

제가 주님의 일을 할 때 제가 주님의 사랑 안에 있게 되고

그 사랑 안에 있을 때 가장 행복하다는 것을 살아왔기 때문에 주님께 청합니다.

주님 저를 복음의 사도로 써주소서.

제 가슴 속에 꺼지지 않는 불을 지펴 주시어

주님을 사랑하게 해주소서.

언제나 주님께 다가와 주님을 모실 수 있도록

저를 불러 주소서.

주님은 제 영혼의 주인이십니다.

주님 제게 오셔서 저에게 당신이 원하시는 일을 하소서.

아멘.

10여 년 전에 쓴 이 글을 다시 바치게 된 이유는 제 사제 생활 동안 주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가 얼마나 크고 풍요로운가를 되새기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어제 강론을 준비하면서 인터넷에서 제가 쓴 이 글을 다시 찾아 읽으면서, 주님 앞에서 회개와 감사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저에게 영을 보내주시어, 주님 사랑의 영으로 휘감아 주시기를... 제 안에 커다란 열정을 심어주시어, 주님 교회의 사도로 다시 헌신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오늘 성소주일에 선배 신부님들의 뒤를 이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의 말씀을 일상에서 이루면서 착한 목자의 뒤를 열심히 따르겠습니다. 여러분 기도 중에 부족하고 나약한 저를 주님께서 지켜주시고 주님 사랑의 도구로 써 달라고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도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아멘.



부활 제4주일성소주일, 예비신자 환영식

(가해)요한 10,1-10; 11/05/15

오늘 우리 천주교 서울대교구 삼성동 성당을 처음 찾아오신 예비신자 여러분 환영합니다. 어떤 분은 아내와 자녀의 성화에 못 이겨서 나오신 분들도 있으실 것이고, 또 어떤 분은 부모님의 간곡한 권유에 마지못해 나오신 분들도 있으실 것이고, 결혼하기 위해서 오신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또 진리와 평화를 갈구하며 인간의 길을 찾기 위해 간절한 마음으로 천주교회를 찾아오신 분들도 있으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 가지 계기로 성당을 찾아 오셨지만, 그 어떤 경우가 되었다 하더라도 여러분을 이 성당 이 자리로 부르신 분은 주님이십니다. 여러분이 이 기회에 주님을 알아 뵈옵고, 주님 안에서 평화와 새 희망의 길을 모색하게 되시길 바랍니다. 지금 세례를 받고 이 자리에 앉아 계신 분들도 성당에 나오게 된 동기나 계기 중에는 예비신자들의 경우와 유사한 분들도 있으리라고 봅니다.

예비신자 여러분은 오늘부터 예비 신자 교육과정을 밟게 됩니다. 예비 신자 교육과정을 통해 여러분은 말씀 드린 바와 같이 하느님과 하느님께서 내려주시는 은총의 삶에 대한 안내를 받게 됩니다. 여러분은 오늘부터 4개월간 하느님 아버지와 우리의 주님이신 그리스도 예수님 그리고 성령에 대한 기초 교리를 배운 후 ‘예비신자 받아들이는 예식’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10월에 성지순례를 하며, 삶 속에서 신앙을 실천했던 선조들의 신앙에 대해 알게 됩니다. 이어서 일곱 가지 성사와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해 습득한 후에 여러분이 세례성사를 받기에 합당하다고 여겨지면, 11월에 ‘예비신자 선발예식’을 합니다. 그리고 12월에 ‘세례 전 피정’을 통해 세례성사를 받기 위한 마지막 준비를 하고, 마음에서부터 주님을 믿고 선택하여 교회 안에서 주님을 찬미하고 신자들과 한 식구가 되기를 청하면, 12월 25일 성탄 대축일에 세례성사를 받게 됩니다. 그리고 세례성사를 마친 후 1개월간 세례 후 교육을 받게 됩니다.

과거에는 예비신자 교육과정이라는 신앙교육이 12개조로 이루어진 사도신경에서 확대된 100여가지 교리문답에 나오는 교리를 설명하고, 예비신자들은 그 교리항목들과 12기도문을 외우는데 치중했습니다. 그리고 또 한 때는 철학적 논리를 바탕으로 한 형이상학적인 신학교리를 전달하는 데 치중하기도 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교육이라고 하면, 뭔가 모르는 것을 새로 배우는 것이라고 여깁니다. 그리고 새로운 가르침도 지식과의 연관 하에서 바라보려고 합니다. 그런데 신앙교육의 핵심은 얼마나 많이 주님에 대한 교리지식을 전달하고 습득하느냐에 있기 보다는, 얼마나 깊이 주님의 말씀과 행적을 이해하고, 얼마나 많이 주님을 사랑하여, 얼마나 주님의 가르침을 따라 변화되었느냐에 있습니다.

이러한 신앙 교육과정의 변화는 교리 지식의 전달과 수용이라는 지적인 습득에 그치지 않고, 주님의 말씀에 대한 지적이고 이성적인 깨달음과 주님 사랑의 마음에 대한 감성적인 느낌으로 이어져, 우리 실생활에 적용하게 합니다. 자신의 일상에 주님의 가르침을 적용하는 가장 적절한 방법은 바로 그 교리 지식을 추출해 낸, 교리의 원천인 성경을 통해서 입니다. 성경을 통해서 우리는 주님과 제자 공동체가 처한 특정한 상황에서 주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셨고 어떻게 행동하셨는지를 쉽게 이해하고 그 의미와 내용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그러한 깨달음 속에서 주님의 사랑을 체험하게 됩니다.

여기서 회개가 이루어집니다. 주님의 가르침을 깨닫고 주님의 사랑을 느끼며 사람들은 자신들이 살아왔던 사고방식과 처세를 되돌아보게 됩니다. 지금까지 자신이 살아오면서 얼마나 주님의 사랑과 보호를 받았는지. 내가 살아왔다고 생각했던 그 지난 세월이 사실은 주님께서 지켜주시고 돌봐주시고 이끌어주신 은총의 세월이었다는 사실을 바라보게 됨으로써 우리는 우리의 인생과 실존에 대해 새롭게 눈 뜨게 됩니다. 우리 삶에 대해 새롭게 눈을 뜨면서 우리는 우리와 함께하시는 주님을 찬미하게 되고 주님께 감사 드리게 됩니다. 주님 사랑 안에서 새롭게 태어나면서 우리는 우리 과거의 가치관과 생활습관을 버리고, 주님께서 가르쳐 주시고 보여주신 그 생명의 나라 곧 하느님 나라를 향해 걸어가게 됩니다. 오늘 첫 번째 독서에서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저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여러분의 죄를 용서받으십시오. 그러면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입니다.”(사도 2,38)

성경을 읽고 나누면서 주님의 가르침을 익히고 자신의 일상에서 그 가르침을 실천하려고 할 때,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신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우리를 통해 맺어주시는 열매를 바라보며, 주님께서 우리 삶 속에서 몸소 활동하고 계시다는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이러한 이해와 깨달음 그리고 그에 따른 믿음은 우리가 주 예수님을 우리 생의 주인으로 고백할 수 있도록 해주며 우리 삶을 변화시켜 줍니다.

주님의 가르침을 우리 현실에서 적용할 때, 경우에 따라서는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우리가 하고자 하는 좋은 의도가 의심을 받을 때도 있고, 우리가 하고자 하는 좋은 행동이 결과적으로 다른 이들과 비교되기 때문에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주님께서도 그렇게 오해를 받으시면서 사셨습니다. 세상 사회 사람들은 하나라도 더 얻어서 조금이라도 더 잘 살려고 합니다. 그런데 주님은 자신의 것을 나누어 주면서, 나누는 것이 더 풍요해지고 행복해지는 삶이라는 것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은 자기를 살리기 위해 다른 이들을 희생시켜야 하는 경쟁 사회 속에서 서로 남을 짓밟으면서 살아남기 위해 신음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다른 이들을 살리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면서, 희생하는 것이 사는 길이요 이기는 길이라는 것을 드러내셨습니다. 주님은 죽는 것이 지는 것이요 실패하는 것으로 비춰지는 죽음으로 그치지 않고, 부활이라는 새 생명으로 다시 나는 것이요 승리하는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오늘 두 번째 독서에서 베도로가 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선을 행하는데도 겪게 되는 고난을 견디어 내면, 그것은 하느님에게서 받는 은총입니다. 바로 이렇게 하라고 여러분은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께서도 여러분을 위하여 고난을 겪으시면서, 당신의 발자취를 따르라고 여러분에게 본보기를 남겨 주셨습니다.”(1베드 2,20-21) 주님께서는 이렇게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대조적으로 사셨고 또 우리를 그 대조사회로 초대하고 계십니다.

신앙교육은 주님께서 최고로 삼으셨던 것, 즉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라셨던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찾고 현실에 적용하여 스스로 변화하고 또 주변을 변화시키는 데 있습니다. 오늘 이 사건과 상황이 왜 일어났는지? 이 사건과 상황을 통해 주님께서는 나에게 무슨 말씀을 하고자 하시는 것일까? 오늘 이 사건과 상황 속에서 주님께서는 내가 누구와 함께 무엇을 어떻게 하기를 바라실까? 매 순간과 매 사건과 상황이 모두 주님께서 하시는 일은 아니지만, 우리의 삶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상황을 주님과의 연관 안에서 주님 사랑과 애정의 눈으로 바라보며, 주님의 뜻을 찾고 또 실천하며 주님을 만나 뵈옵고 주님 사랑 안에서 살아나가기로 합시다. “나는 문이다. 누구든지 나를 통하여 들어오면 구원을 받고, 또 드나들며 풀밭을 찾아 얻을 것이다.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려고 왔다.”(요한 10,9-10)

예비신자 여러분, 여러분의 신앙교육 과정을 통해 주님을 뵈옵고 주님을 깊이 체험하는 좋은 순간들이 점점 많아져서, 여러분이 주님 안에 사는 것이 여러분 삶의 참 자유요 기쁨의 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신자 여러분, 오늘 성소주일을 맞아 여러분을 교회와 신앙으로 이끌어준 부모와 대부모를 비롯한 선배 신앙인들과 성직자 수도자들의 노고를 되새기며 감사의 기도를 바치기로 합시다. 아멘.



부활 제4주일(성소주일)

(가해) 요한 10, 1-10; 05/04/17

베드로 사도가 하늘나라를 지키고 있었답니다. 하늘나라의 문 앞에서 들어오는 사람을 보고 “너는 천당”, “너는 지옥”하고는 판가름하면서, 생전에 착한 일을 많이 한 사람은 천당으로 나쁜 일을 많이 한 사람은 지옥으로 보냈답니다. 그런데 하루는 일을 마치고 하늘나라의 문을 잠그고 경내를 돌다보니, 자기가 들여보내지 않은 사람들이 눈에 띄었답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가 그 사람들을 붙잡아서 “너네 어떻게 여기 들어왔어, 누가 들여보내줬어?”하고 물었답니다. 그랬더니 그 사람들이 요셉 성인이 개구멍으로 들여보내 주었다고 대답했답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가 요셉 성인을 찾아가서 “예수님이 나보고 하늘나라 열쇠를 주면서 지키라고 했는데, 당신이 뭔데 사람들을 마구 들여보내, 하늘나라에서 나가.” 했답니다. 그래서 풀이 죽은 요셉 성인이 보따리를 싸서 하늘나라를 나가려는데, 성모님이 보시더니 “남편이 가는데 나도 따라가야지” 하면서 같이 따라 나가시더랍니다. 그 모습을 예수님께서 보시더니 “아버지 어머니가 나가면 나도 따라 나가야지”하고 하늘나라를 나가려고 하시더랍니다. 그 모습을 보고서는 베드로야 그제야 요셉 성인을 붙잡고 “아이고, 제가 잘못했습니다. 그냥 여기 사십시오.”라고 했답니다. 예수님께서 사시는 곳이 하늘나라인데, 하늘나라에서 예수님이 나가시면 하늘나라가 더 이상 하늘나라가 아니겠지요.

이 이야기는 성 요셉 성월에 요셉 성인을 기리며 하는 말입니다. 이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저는 교회에 감사드립니다. 착한 일을 많이 한 사람은 하늘나라에 가지만, 착한 일을 많이 못한 사람도 죽을 때 임종자의 주보성인이신 요셉 성인에게 청하면 하늘나라에 개구멍을 통해서라도 들어갈 수 있다는 위안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원칙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원칙에 모자라는 사람을 내치지 않는 교회의 처분을 보기 때문입니다.

요셉 성인에 관한 이 이야기는 나약하고 연약한 인간들이 만든 이야기이긴 하지만, 천국을 향해 가는 현실 세계의 교회 모습을 제대로 표현합니다. 우리 인간이 하늘나라를 향해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하면서 걸어가지만, 부족한 것은 주님께서 채워주신다는 사실이 믿음으로 우리에게 아로 새겨져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나는 양이 드나드는 문이다. 누구든지 나를 거쳐서 들어오면 안전할뿐더러 마음대로 드나들며 좋은 풀을 먹을 수 있다.”(7.9)라고 하십니다.

그러시면서 동시에 주님을 따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오는 사람들을 경계하도록 하십니다. “양우리에 들어갈 때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딴 데로 넘어 들어가는 사람은 도둑이며 강도이다.”(1)

그러시면서 우리에게 식별의 기준을 정해주십니다. “문지기는 목자에게 문을 열어 주고 양들은 목자의 음성을 알아듣는다. 양들은 낯선 사람을 결코 따라가지 않는다. 그 사람의 음성이 귀에 익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그를 피하여 달아난다. 도둑은 다만 양을 훔쳐다가 죽여서 없애려고 오지만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더 얻어 풍성하게 하려고 왔다.”(3.5.10)

문은 지향이며 기준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문이 빡빡하고 까다롭다면 소수의 열심하고 능력있는 사람들은 더욱 더 열심해 지겠지만, 그렇지 못한 많은 사람들은 그리로 들어가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못 들어갈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포기하거나 불평하거나 떠나버릴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그렇게도 들어가기 힘든 좁은 문을 열어 놓으시고, 우리 보고 들어오라고 하시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구하시기 위해 돌아가셨는데, 돌아가시면서 여신 그 문이 우리가 들어갈 수 없는 문일 수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흔히 말하는, ‘교회는 이러 이러 해야 한다. 아버지는 이러 이러해야 한다. 청소년은 이러 이러 해야 한다.’는 등의 말은 우리가 나아가야할 지향점이지 비난과 단죄의 기준일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판단에 합격할 사람이 지상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매일 매일 노력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노력이 매번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실망하거나 포기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리고 원망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 나머지는 주님께서 채워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추모 미사에서 추기경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와 인간

이것은 교황님의 거의 모든 말씀의 주제였습니다.

그리스도를 떠나서 인간을 말할 수 없고, 인간을 떠나서 그리스도를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만큼 인간은 그리스도의 길이었고, 그리스도는 인간의 길입니다.

그리스도께 있어 인간은 그를 구하기 위하여 죽기까지 가셔야할 길이었고, 그리스도는 인간이 그분의 구원 생명을 얻기 위해 죽기까지 따라야할 길이십니다.

‘사랑은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키고, 평화를 가져온다.’고 교황님은 말씀하시고 그 신조에 사셨습니다. 임종하시기 전, 임종을 지켜본 주변 분들에게 ‘나는 행복합니다. 그대들도 행복하시오. 울지 말고 우리 함께 기쁘게 기도합시다.’하시며 그리스도 안에 당신 영혼을 맡기시듯 선종하셨다고 신문방송들이 전했습니다.

이 말씀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교황님과 함께 우리는 행복 될 수 있습니까?

‘그분이 바라신 것은 우리 인간 모두 우리의 구세주이신 그리스도, 우리를 위해 사랑으로 죽기까지 하신 그리스도, 당신을 우리 영혼의 생명의 양식으로 주신 그리스도, 그 그리스도께 두려워하지 말고 그리스도께 마음을 열고, 그분께 모든 것을 맡기는 것입니다.’

이것은 요한 바오로 2세께서 교황으로 취임하실 때 하신 말씀의 요지입니다.

한마디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믿고 그분을 본받아 사랑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정신을 깨닫고 살 때 이것이 참된 행복입니다.

이것이 가신 교황님에 대한 참된 추모입니다.”

착한 목자 주일을 맞이한 오늘 우리는 교회의 성소자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가신 교황님과 새로 선출되실 교황님! 그리고 주교님들과 신부님들, 수녀님들, 교회의 평신도 지도자들을 위해 기도하여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나를 용서해주시고 사랑해 주신 주님께 감사하고 보답하는 마음으로 형제들에게 관용과 용서를,

그리고 스스로 다시는 죄짓지 않겠다는 다짐과 극기의 노력과 희생을,

그리고 우리를 주님의 길로 돌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고 우리의 노력이 주님의 사랑과 은총 안에서 열매를 맺도록 청하는 기도를 바치며, 착한 목자이신 주님을 따라가기로 합시다.



부활 제4주일(성소주일)

요한 10, 27-30; 2004/05/02

사제생활을 하면 할수록 이 길이 "참 보람있고 기쁨에 찬 길이기는 하지만, 어려운 길이다."라는 느낌을 가지게 된다. 사제생활을 처음 시작할 때는 진정 착한 목자이신 주님의 모습만을 담고자 했지만 날이 갈수록 느끼는 감정은, 아니 진정 깨닫는 것은 착한 목자는 주님 한 뿐이시다 라는 사실이다.

이 땅에서 인간이 살기 위해서는 이 땅에서 요구하는 인간 조건 즉 시공 안에 존재하며 눈으로 볼 수 있는 자신의 몸뚱이를 필요로 하듯이, 교회는 현시적인 존재 곧 그리스도를 대리할 사제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몸에 만족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교회의 사제는 그저 거룩한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참여할 뿐 그리스도가 아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교회를 통해 축성하셔서 당신의 대리자로 삼은 성직자 수도자 봉헌자들을 위해 교회는 끊임없이 기도한다.

교회는 성직자 수도자 봉헌자들이 인간적인 결점과 세상의 유혹 그리고 악의 세력 앞에서 꾸준하고도 진실하게 주님을 따를 수 있도록 기도한다. 더욱 더 온전히 그리스도께 자신을 봉헌하고 신자들과 인간 모두의 구원을 위하여 주님의 대리자로 사도직을 수행할 수 있도록!

그리고 또한 교회는 교회 내에 주님의 뒤를 이어갈 성직자 수도자들이 더욱 더 많아져 교회를 통한 주님의 구원사업이 열매맺을 수 있도록 주님께 간절히 청한다.

교황님께서는 오늘 제41차 성소주일 담화문을 통해, "오늘날의 세계에는 세속화가 만연되어 있지만 영성에 대한 광범한 요구, 주로 기도에 대한 새로운 요구로 표현되는 요구가 있다."고 말씀하시면서, 이러한 '기도에 대한 요구'에는 주님의 밭인 교회에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달라고 주님께 청하는 간청이 담겨 있다고 하십니다.

그러시면서 또 "주님의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 한 분만을 섬기는 성소는 좋으신 하느님께서 주시는 헤아릴 수 없이 귀중한 은총이며, 신뢰와 겸손으로 끈질기게 간청하여야 할 은총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언제나 이 은총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며, '은총의 때'와 '하느님께서 구원하러 오신 때'(루가 19, 44)를 놓치지 않도록 주의하여야 합니다.

희생과 고통이 따르는 기도는 특별한 가치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골로 1, 24) 자기 몸으로 채우며 겪는 고통은 매우 효과적인 형태의 기도가 됩니다. 전세계의 수많은 병자들이 자신들의 고통을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결합시키며 거룩한 성소를 간청합니다. 그들은 하느님께서 맡기신 베드로 직무를 수행하는 저와 영적으로 함께 하며, 흔히 전혀 드러나지는 않더라도 복음의 대의에 귀중한 공헌을 합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또 성소를 위해 더욱 더 열심히 기도해 주시기를 청하십니다.

교황님께서는 "기도는 하느님의 신비에 대한 흠숭이며, 하느님께서 이루신 '위대한 일들', 인간의 결점에도 아랑곳 않으시고 끊임없이 이루어 주시는 위대한 일들에 대한 감사입니다.

관상 기도는 성소의 은총에 대한 놀라움과 감사로 가득 차 있습니다.

성찬례는 모든 기도 활동의 중심에 있습니다. 제대의 성사는 성소가 생겨나고 유지되도록 하는 데에 매우 중요합니다. 부름 받은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구원의 희생 제사에서 복음 선포에 완전히 헌신할 힘을 얻기 때문입니다. 성찬 거행과 함께 성체 조배를 드림으로써 어떤 의미에서 거룩한 미사의 신비를 연장하는 것이 좋습니다.

교회 안에서 사제직이나 특수한 사명에 부름 받은 사람은, 빵과 포도주의 형상으로 진실로 실체적으로 현존하시는 그리스도를 바라봄으로써, 주님께서 영광스럽게 변모하신 산 위에서 '주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마태 17, 4; 마르 9, 5; 루가 9, 33 참조) 하고 외친 베드로와 같은 열정을 품게 됩니다."라고 하시면서, "가장 좋은 방법은 '성체성사의 여인'이신 성모님의 학교에서 성모님과 함께 그리스도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진정한 기도의 학교'가 되어, 그 안에서 우리가 방대한 사도직 활동 영역에서 일할 일꾼이 부족하지 않도록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한 교회는 하느님께서 부르신 사람들, '어린양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다니는'(묵시 14, 4) 사람들과 함께 하며, 그들에게 지속적으로 영적인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제가 말하는 사람들은 사제, 수도자, 은수자, 봉헌된 동정녀, 재속회원들, 간단히 말해, 성소의 은총을 받아 '질그릇 속에 이 보화'(2고린 4, 7 참조)를 담고 있는 모든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의 신비체 안에는 그리스도인의 성화를 위한 광범위하고 다양한 직무와 은사가 있습니다(1고린 12, 12 참조). 교회의 모든 구성원에게 생기를 불어넣는 성덕에 대한 상호 관심을 통하여 '부름 받은' 사람들이 자신의 성소에 충실하고, 가능한 한 가장 높은 경지의 복음의 완덕에 이르도록 기도하여야 합니다."라고 가르쳐주십니다.

그리고 오늘날 같은 시기에 성직자 수도자 봉헌자들이 "주님의 부르심에 더욱 확고하게 매달리도록" 요청하십니다. 그러시면서 "성령께서 온 교회를 기도하는 백성으로 만들어 주시어, 그들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사제 성소와 봉헌 생활 성소를 소리 높여 간청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선택하시고 부르신 사람들이 충실하고 기쁨에 찬 복음의 증인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그들은 자신들의 삶을 복음에 바친 사람들입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성소자들을 위해 기도하십니다. 우리 함께 마음을 모아 우리에게 신앙으로 이끌어 주시고, 세례를 주시고, 각종 성사와 사목적 은총을 통해 우리를 이끌어 주신 성직자 수도자들 그리고 오늘 날 험난한 세상의 어려움 속에서도 주님의 길을 꾸준히 살아 걷고자 하는 이들을 위해 교황님과 함께 기도합시다.

"모든 시대, 모든 장소의 사람들을 위하여 아버지께서 보내신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주님, 저희는 주님을 믿고 의지하나이다!

주님의 어머니이시며 저희의 어머니이시기도 한 성모님을 통하여 주님께 간구하오니, 교회에 성소가 부족하지 않게 해 주시고, 특히 주님 나라를 위하여 특별한 방식으로 헌신하는 사람들이 부족하지 않게 해 주소서.

인류의 유일한 구세주이신 예수님!

사제직과 봉헌 생활, 그리고 선교로 부르신 주님께 '순종한' 우리 형재자매들을 위하여 기도하오니, 그들의 삶이 날마다 새로워져 살아 있는 복음이 되게 하소서.

자비로우시고 거룩하신 주님, 주님 나라의 추수 밭에 새로운 일꾼들을 계속해서 보내 주소서.

우리 시대에도 주님을 따르도록 주님께 부름 받은 이들을 도와주소서. 그들이 주님의 얼굴을 바라보며 하느님 백성과 모든 인류를 위하여 주님께서 그들에게 맡기신 위대한 사명을 기쁘게 받아들이게 하소서.

주님께서는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나이다. 아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성하의 제41차 성소 주일 담화 전문

2004/05/02

존경하는 형제 주교님들, 사랑하는 형재자매 여러분,

1. "주인에게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달라고 청하여라"(루가 10,2).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이 말씀은 착한 목자 예수님께서 언제나 당신 양들에게 기울이신 관심을 보여 줍니다. 예수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은 양들이 “생명을 얻고 더 얻어 풍성하게 하려는”(요한 10,10) 것입니다. 부활하신 후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당신 사명을 계속해 나갈 책임을 맡기시어, 복음이 모든 시대의 사람들에게 선포될 수 있게 하셨습니다. "나를 따라라."(요한 21,22) 하시는 예수님의 끊임없는 부르심에 수많은 사람들이 기꺼이 응답해 왔고 지금도 응답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삶을 온전히 하느님 나라를 섬기는 일에 바치고자 하는 사람들입니다.

전통적으로 부활 제4주일에 열리는 제41차 성소 주일을 맞아, 모든 신자가 사제 성소와 봉헌 생활 성소, 선교 성소를 위하여 열심히 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사실, 사제 생활과 수도 생활을 통하여 이미 가까이서 그리스도를 따르고 있는 사람들과, 그리스도의 자비로 앞으로도 그러한 중요한 교회의 사명에 부름 받을 사람들을 위하여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기도를 드리는 것은 우리의 근본 임무입니다.

2. 성소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교황 교서 '새 천년기'(Novo Millennio Ineunte)에서, 저는 “오늘날의 세계에는 세속화가 만연되어 있지만 영성에 대한 광범한 요구, 주로 기도에 대한 새로운 요구로 표현되는 요구가 있다."(33항)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이러한 “기도에 대한 요구”에는 주님께서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시기를” 우리가 한 마음으로 주님께 드리는 간청이 담겨 있습니다.

저는 수많은 개별 교회들 안에 성소를 위한 기도 모임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대신학교와 수도회와 선교회 양성소에서는 성소 모임들이 열리고 있으며, 수많은 가정들은 작은 기도 ‘방’이 되어 젊은이들이 용기 있게 헌신적으로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도록 도와 주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의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 한 분만을 섬기는 성소는 좋으신 하느님께서 주시는 헤아릴 수 없이 귀중한 은총이며, 신뢰와 겸손으로 끈질기게 간청하여야 할 은총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언제나 이 은총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며, '은총의 때'와 '하느님께서 구원하러 오신 때'(루가 19,44)를 놓치지 않도록 주의하여야 합니다.

희생과 고통이 따르는 기도는 특별한 가치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골로 1,24) 자기 몸으로 채우며 겪는 고통은 매우 효과적인 형태의 기도가 됩니다. 전세계의 수많은 병자들이 자신들의 고통을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결합시키며 거룩한 성소를 간청합니다. 그들은 하느님께서 맡기신 베드로 직무를 수행하는 저와 영적으로 함께 하며, 흔히 전혀 드러나지는 않더라도 복음의 대의에 귀중한 공헌을 합니다.

3. 사제 생활과 수도 생활로 부름 받은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저는 성소를 위하여 더욱더 열심히 기도해 주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기도는 하느님의 신비에 대한 흠숭이며, 하느님께서 이루신‘위대한 일들’, 인간의 결점에도 아랑곳 않으시고 끊임없이 이루어 주시는 위대한 일들에 대한 감사입니다. 관상 기도는 성소의 은총에 대한 놀라움과 감사로 가득 차 있습니다.

성찬례는 모든 기도 활동의 중심에 있습니다. 제대의 성사는 성소가 생겨나고 유지되도록 하는 데에 매우 중요합니다. 부름 받은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구원의 희생 제사에서 복음 선포에 완전히 헌신할 힘을 얻기 때문입니다. 성찬 거행과 함께 성체 조배를 드림으로써 어떤 의미에서 거룩한 미사의 신비를 연장하는 것이 좋습니다.

교회 안에서 사제직이나 특수한 사명에 부름 받은 사람은, 빵과 포도주의 형상으로 진실로 실체적으로 현존하시는 그리스도를 바라봄으로써, 주님께서 영광스럽게 변모하신 산 위에서 “주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마태 17,4; 마르 9,5; 루가 9,33 참조) 하고 외친 베드로와 같은 열정을 품게 됩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성체성사의 여인”(회칙, '교회는 성체성사로 산다'[Ecclesia de Eucharistia], 53항)이라고 일컬어지기에 마땅한 마음가짐을 보여 주신 성모님의 학교에서 성모님과 함께 그리스도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진정한 기도의 학교’가 되어, 그 안에서 우리가 방대한 사도직 활동 영역에서 일할 일꾼이 부족하지 않도록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한 교회는 하느님께서 부르신 사람들, ??어린 양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다니는”(묵시 14,4) 사람들과 함께 하며, 그들에게 지속적으로 영적인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제가 말하는 사람들은 사제, 수도자, 은수자, 봉헌된 동정녀, 재속회원들, 간단히 말해, 성소의 은총을 받아 “질그릇 속에 이 보화”(2고린 4,7 참조)를 담고 있는 모든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의 신비체 안에는 그리스도인의 성화를 위한 광범위하고 다양한 직무와 은사가 있습니다(1고린 12,12 참조). 교회의 모든 구성원에게 생기를 불어넣는 성덕에 대한 상호 관심을 통하여 ‘부름 받은’ 사람들이 자신의 성소에 충실하고, 가능한 한 가장 높은 경지의 복음의 완덕에 이르도록 기도하여야 합니다.

4. 부름 받은 사람들의 기도

저는 주교대의원회의 후속 교황 권고 '현대의 사제 양성'(Pastores Dabo Vobis)에서, "자신의 뒤를 이어 일할, 이른바 후계자를 찾는 데에 관심을 기울이는 일은 자기가 속한 개별 교회와 그 교회의 미래를 위하여 목자로서 사랑을 지니는 데 꼭 필요한 일이다."(74항)고 강조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께서 마음에 두셨던 사람들을 부르신다는 것은(마르 3,13 참조) 잘 알고 있지만, 그리스도의 모든 교역자는 성소를 위하여 꾸준하게 기도하는 데에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복음을 선포하고 성사를 집전할 헌신적이고 거룩한 사람들을 확보하기 위한 세대 교체의 시급성을 목자 자신보다 더 잘 알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주님과 또 자신의 성소와 사명에 확고하게 매달리는 것"('봉헌 생활'[Vita Consecrata], 63항)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합니다. 부름 받은 사람들의 증언의 힘과, 다른 사람들을 참여시켜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리스도께 자신의 삶을 맡기도록 이끌 수 있는 능력은 그들의 성덕에 달려 있습니다. 그것만이 특히 선교 지역에서 수많은 사도직 활동의 존속을 위협하는 봉헌 생활 성소의 감소를 막는 길입니다. 또한, 부름 받은 사람들, 곧 사제와 봉헌 생활자들의 기도는 사제로서 그리스도께서 드리는 기도의 일부이기 때문에 특별한 가치가 있습니다. 그들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 아버지께 기도하시며, 이 세상에 있지만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을(요한 17,14-16 참조) 당신 사랑 안에서 지켜 주시고 거룩하게 하십니다.

성령께서 온 교회를 기도하는 백성으로 만들어 주시어, 그들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사제 성소와 봉헌 생활 성소를 소리 높여 간청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선택하시고 부르신 사람들이 충실하고 기쁨에 찬 복음의 증인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그들은 자신들의 삶을 복음에 바친 사람들입니다.

5. 모든 시대, 모든 장소의 사람들을 위하여

아버지께서 보내신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주님,

저희는 주님을 믿고 의지하나이다!

주님의 어머니이시며 저희의 어머니이시기도 한

성모님을 통하여 주님께 간구하오니,

교회에 성소가 부족하지 않게 해 주시고,

특히 주님 나라를 위하여 특별한 방식으로 헌신하는

람들이 부족하지 않게 해 주소서.

인류의 유일한 구세주이신 예수님!

사제직과 봉헌 생활, 그리고 선교로 부르신

주님께 ‘순종한’ 우리 형재자매들을 위하여

기도 하오니,

그들의 삶이 날마다 새로워져

살아 있는 복음이 되게 하소서.

자비로우시고 거룩하신 주님,

주님 나라의 추수 밭에

새로운 일꾼들을 계속해서 보내 주소서.

우리 시대에도 주님을 따르도록

주님께 부름 받은 이들을 도와 주소서.

그들이 주님의 얼굴을 바라보며

하느님 백성과 모든 인류를 위하여

주님께서 그들에게 맡기신 위대한 사명을

기쁘게 받아들이게 하소서.

주님께서는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계시며 다스리시나이다. 아멘.

바티칸에서,

2003년 11월 23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성하의 제40차 성소 주일 담화

섬기는 소명

2003/05/11

전세계의 존경하는 형제 주교님들과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1. "보아라, 내가 뽑아 세운 나의 종, 내 사랑하는 사람, 내 마음에 드는 사람"(마태 12, 18; 이사 42, 1-4).

제40차 성소 주일 담화의 주제는 우리를 그리스도인 성소의 근원으로 되돌아가게 합니다. 다시 말해 하느님께 부름 받은 최초의 사람이신 성자 예수님의 이야기를 생각하게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예언자들이 하느님께서 선택하셨고 어머니의 뱃속에 있을 때부터 기르셨던 분(이사 49, 1-6 참조), 하느님께서 믿어 주시고 마음에 들어 하시는 분(이사 42, 1-9 참조), 하느님께서 당신의 성령과 힘을 불어넣어 주신 분(이사 49, 5 참조), 하느님께서 높이 올려 주실 분(이사 52, 13-53, 12 참조)으로 예언한 하느님의 '종'이십니다.

위의 주제 성구가 '종'이라는 말에 본질적으로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는 것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의 문화에서는 섬기는 사람을 열등하다고 봅니다. 그러나 신앙의 역사에서 종은 하느님께 구원과 대속을 위한 특별한 활동을 수행하도록 부름 받은 사람입니다. 종은 자신이 가진 모든 것과 자신의 전 존재를 하느님께 받았다는 것을 압니다. 결국 그는 자신이 받은 것을 다른 사람을 위하여 쓰도록 부름 받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성서에서 섬김은 언제나 하느님의 특별한 부르심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섬김은 피조물의 존엄을 가장 탁월하게 실현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피조물의 신비롭고 초월적인 차원을 상기시켜 줍니다. 보편적 구원 활동을 수행하도록 부름 받은 충실한 종이셨던 예수님의 생애 역시 그러하였습니다.

2.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이사 53, 7)

성서를 보면 섬김과 구원, 섬김과 고통, 종과 하느님의 어린양 사이에는 확실하고 분명한 관련성이 있습니다. 메시아는 인류의 죄를 어깨에 짊어진 고난받는 종입니다. 메시아는 인류가 저지른 죄값을 치름으로써 인류가 가장 필요로 하는 봉사를 하시려고 "도살장으로 끌려가는"(이사 53, 7) 어린양입니다. 종은 "온갖 굴욕을 받으면서도 입 한번 열지 않고 참음으로써"(이사 53, 7) 놀라운 힘, 곧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선으로 악에 대항하는 힘을 보여 준 어린양입니다.

그것은 하느님 안에서 힘을 얻는 종의 부드러운 힘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에 종을 "만국의 빛"(이사 49, 5-6)이며 구원의 일꾼으로 세우십니다. 신비롭게도 섬김의 소명은 언제나 가장 인격적으로 구원의 봉사에 참여하는 소명입니다. 이러한 참여에는 다른 어느 것보다도 큰 희생과 고통이 따를 것입니다.

3.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마태 20, 28)

사실 예수님께서는 성서에서 말하는 종의' 가장 완벽한 전형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아들이시지만(마태 17, 5 참조) 당신 자신을 철저하게 비우시고 "종의 신분"(필립 2, 7)을 취하시어 하느님의 일에 온전히 헌신하신(루가 2, 49 참조)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셨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목숨을 바쳐 몸값을 치르러 오셨습니다"(마태 20, 28). 예수님께서는 당신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으며, 죽기까지, 십자가에 달려서 죽기까지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셨습니다(필립 2, 8 참조).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높이 올리시고 새 이름을 주셨으며 하늘과 땅의 주님으로 만드셨습니다(필립 2, 9-11 참조).

우리는 '종이신 예수님'의 이야기에서 모든 소명의 이야기를 이해하게 됩니다. 그것은 곧 창조주 하느님께서 모든 인류를 위하여 계획하신 이야기이며, 필연적으로 섬김에 대한 요구를 내포하고, 하느님께서 각 사람을 위하여 예정해 두신 새 이름을 발견하는 데에서 절정에 이르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름들' 안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파악하고, 자아 실현에 매진함으로써 자유롭고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특히 우리는 종이며 동시에 주님이신 성자의 비유에서 예수님을 더 가까이 따르도록, 곧 사제 직무나 수도 봉헌을 통하여 종이 되도록 부름 받은 사람의 성소 이야기를 읽을 수 있습니다. 사실 사제 성소나 수도 성소는 본질상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헌신적인 섬김의 소명입니다.

그러므로 섬김은 자신의 성소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길이며 매우 유익한 수단이 됩니다. 봉사(diakonia)는 진정한 성소 사목의 여정입니다([새 유럽을 위한 새로운 성소], 27c 참조).

4. "내가 있는 곳에는 나를 섬기는 사람도 같이 있게 될 것이다"(요한 12, 26).

종인 동시에 주님이신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시는 분이시기도 합니다. 주님께서는 당신과 같은 사람이 되라고 우리를 부르십니다. 인간은 섬김을 통해서만 자신의 존엄과 다른 사람의 존엄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당신께서 섬기신 것처럼 우리에게도 다른 사람을 섬기라고 말씀하십니다. 인간 관계가 상호간의 섬김의 정신으로 고취될 때, 새로운 세상이 건설되고, 그 안에서 참된 성소의 문화가 발전됩니다.

저는 이 담화를 통하여 예수님에 대하여 말씀 드림으로써 젊은이들에게 섬김의 전형을 제시하고, 그들이 개인주의의 유혹을 떨치고, 개인주의로써 행복해질 수 있다는 환상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 주고 싶습니다. 오늘날의 사고 방식 안에도 일부 부정적인 힘이 존재하지만, 대다수 젊은이들의 마음속에는 다른 사람들, 특히 가장 궁핍한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고자 하는 자연스러운 성향이 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너그럽고, 다른 사람의 어려움에 공감할 줄 알며, 자신을 잊고 자신의 이익보다는 다른 사람을 우선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젊은이 여러분, 섬김은 매우 자연스러운 소명입니다. 인간은 본질상 자기 삶의 주인이 아니라 종이며, 또 그 역시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섬김은 우리가 아욕(我慾)에 사로잡혀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섬김은 또한 우리에게 다른 사람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그리고 섬김은, 보기에는 사소한 것일지라도 진정한 사랑의 정신으로 행한다면 실제로는 위대할 수 있는 행위들을 통해서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진실한 종은 겸손하며, 자신이 얼마나 "보잘것없는" 존재인가를 압니다(루가 17, 10 참조). 그들은 사리사욕을 채우려 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헌신하고, 자기 봉헌을 통하여 보상을 바라지 않고 일하는 기쁨을 경험합니다.

사랑하는 젊은이 여러분, 저는 여러분이 여러분을 섬김의 성소로 부르시는 하느님의 목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섬김의 성소는 성품 교역에서부터, 교리교육과 전례 활성화, 청소년 교육, 여러 분야의 자선 활동 등과 같이 정식으로 제정된 직무와 단순히 승인된 직무들에 이르기까지 공동체의 선익을 위한 여러 가지 직무로 통하는 길입니다(요한 바오로 2세, 교황 교서 [새 천년기][Novo millennio ineunte], 46항 참조). 저는 대희년을 마치며 여러분에게 "지금 이 시대는 사랑에도 새로운 '독창성'을 요구한다."([새 천년기], 50항)고 상기시켜 드린 바 있습니다. 젊은이 여러분, 사랑이 자체의 영성적 사도적 풍부함을 드러낼 수 있게 해 주는 것은 특별히 여러분에게 달려 있습니다.

5. "첫째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꼴찌가 되어 모든 사람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르 9, 35).

이것은 예수님께서 "누가 제일 높은 사람이냐"(마르 9, 34)는 문제를 놓고 서로 다투는 열 두 제자를 보시고 하신 말씀입니다. 제일 높은 사람이 되고 싶어하는 것은 떨치기 힘든 유혹으로서, '고난받는 종'의 최고의 사랑의 성사인 성찬례를 집전하도록 부름받은 사제들에게도 예외가 아닙니다. 이러한 봉사직을 수행하는 사람은 누구나 사실 더욱 철저하게 종이 되도록 부름 받은 것입니다. 사제는 사실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행동하고, 최후 만찬 때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태도를 상기하면서, 예수님처럼 생명을 바치면서까지 끝까지 사랑하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만찬을 주재하는 것은 고난받는 종이신 동시에 주님이신 예수님의 태도가 교회 안에서 지속되고 발전되도록 자기 자신을 선물로 바치라는 절박한 초대입니다.

사랑하는 젊은이 여러분, 여러분의 마음이 이러한 가치관과 철저한 선택에 이끌리도록 노력하십시오. 그럴 때 여러분의 삶은 변화되어 하느님의 어린양이신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 다른 사람을 섬길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권력과 개인적인 야망의 유혹에 넘어가지 마십시오. 사제의 이상은 이러한 유혹뿐 아니라 다른 여러 가지 위험한 유혹들에서 지속적으로 정화되어야 합니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 오너라."(요한 12, 26) 하신 주 예수님의 부르심은 지금도 울려 퍼집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이 부르심을 받아들이십시오. 여러분은 분명히 어려움과 희생을 겪을 수도 있지만, 섬김의 행복을 느낄 것이고,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을 증언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무한하고 영원한 사랑의 생생한 불꽃이 될 것입니다. 또한 여러분은 하느님의 선물이자 신비인 사제직이 지닌 영성의 풍요로움을 알게 될 것입니다.

6.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이 경우에도 우리는 교회의 어머니이시며 새로운 복음화의 별이신 성모님께 시선을 돌립니다. 복음에 더욱 직접적으로 봉사하도록 부르시는 주님의 초대에 너그럽게 응답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부족하지 않도록 믿음으로 성모님께 기도 드립시다.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겸손한 종이신 성모님,

어머니께서 낳으신 아드님이 어머니를 인류의 종이 되게 하셨습니다.

어머니의 일생은 겸손하고 너그러운 봉사의 삶이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천사가 어머니께 하느님의 구원 계획을 알려 주었을 때 말씀의 종이 되셨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성자를 낳으시고 성자의 신비에 열려 계신 성자의 종이 되셨습니다.

고난받는 종이시며 어린양이신 주님께서 저희를 위한 사랑으로 당신을 희생하신 그 십자가 아래 꿋꿋이 서 계셨던 어머니께서는 구원의 종이 되셨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오순절에 교회의 종이 되시어 오늘날처럼 어렵고 힘든 때에도 어머니의 전구로 모든 신자들 안에서 끊임없이 교회를 낳아 주십니다.

어머니께서는 영원하신 하느님의 계획 앞에서 젊은이들의 마음이 움직이는 감동을 잘 아시오니, 제삼천년기의 젊은이들이 이스라엘의 어린 딸이신 어머니를 바라보게 하소서.

젊은이들이 성자의 초대를 받아들여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온 생애를 바치며, 하느님을 섬기는 데에서 만족을 얻게 하소서. 오로지 하느님과 하느님 나라에 봉사함으로써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자아를 실현하는 삶이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께 드리는 영광의 찬미가임을 깨닫게 하소서.

아멘."

바티칸에서,

2002년 10월 16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성하의 제39차 성소 주일 담화

성덕의 소명

2002/04/21

존경하는 형제 주교님들과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1. "하느님께서 사랑하셔서 당신의 거룩한 백성으로 불러주신 교우 여러분에게 하느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리시는 은총과 평화가 깃들기를 빕니다"(로마 1,7 참조). 바오로 사도가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에게 한 이 인사는 이번 성소 주일의 주제인 '성덕의 소명'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거룩함! 그것은 "나 주님이신 너희 하느님이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라."(레위 19,2) 하신 말씀처럼 모든 믿는 이들의 은총인 동시에 목표입니다.

저는 교황 교서 [새 천년기](Novo millenniio ineunte)에서 모든 사람에게 "성덕을 표제로 사목 계획을 세우도록" 권고하였습니다. "세례는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고 성령 안에서 살아감으로써 하느님의 거룩하심에 진정으로 참여하는 것이므로, 최소한의 윤리와 피상적인 종교심만을 특징으로 하는 평범한 삶에 안주하는 것은 모순일 것이라는 확신"을 표현하기 위해서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이렇게 숭고한 보통의 그리스도인의 삶을 다시 한 번 온 마음으로 강조할 때가 왔습니다. 그리스도인 공동체와 그리스도인 가정의 모든 삶은 이러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31항).

교회의 주요 임무는 그리스도인들이 성덕의 길을 갈 수 있도록, 신앙의 지혜로운 빛을 받아 그리스도의 얼굴을 알아보고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의 참된 정체성과 주님께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맡기신 사명을 다시 깨닫도록 이끄는 일입니다. 이렇게 하여,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께서 가장 요긴한 모퉁잇돌이 되시며 사도들과 예언자들이 그 기초가 되는 건물이 됩니다. 온 건물은 이 모퉁잇돌을 중심으로 서로 연결되고 점점 커져서 주님의 거룩한 성전이 됩니다"(에페 2,20-21).

교회는 하느님께서 당신 자녀들에게 불러일으키시는 모든 성소를 거두어 들여, 성삼위의 신비를 눈부시게 반영하게 됩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일치로 한 백성을 이룬 것처럼, 교회는 당신 이름을 찬양하고 당신의 뜻을 수행하도록 모든 사람을 부르시는 성부의 신비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도록 성부의 파견을 받아 당신을 따르도록 모든 사람을 부르시는 성자의 신비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또한 교회는 성부께서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선택하신 사람들의 사명을 축성하시는 성령의 신비의 보고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주님께서 불러일으키신 다양한 성소들이 제각기 드러나는 곳이므로, 2002년 부활 제4주일인 4월 21일에 거행될 성소 주일에 즈음하여 성품 직무와 봉헌 생활 성소를 위한 제3차 북아메리카 대륙 대회가 열릴 것입니다. 저는 대회 준비자들과 참석자들에게 기쁜 마음으로 인사를 전하며, 이러한 대회가 열리게 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이 대회는 아메리카 교회와 이 대륙의 새로운 복음화와 관련된 중요한 문제들 가운데 하나를 다루게 됩니다. 이 중요한 모임을 통하여 '신세계'의 그리스도인들이 성소의 봉사에 새롭게 투신하고 더 큰 열의를 가질 수 있도록 여러분 모두 함께 기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2. 교회는 '성덕의 원천'이며, 성령께서 쏟아 부어 주시는 그리스도의 사랑은 교회의 영혼입니다. 교회 안에서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의 말씀에 귀기울이며 기도하고, 성사에 열심히 참여하고, 모든 형제 자매 안에서 끊임없이 그리스도의 얼굴을 찾고자 노력함으로써 각자의 성소를 발견하고 완수할 수 있도록 서로 돕습니다. 이렇게 하여 모든 그리스도인은 각자 받은 은혜에 따라, 희망을 불러일으키고 사랑으로 움직이는 신앙의 길을 걷습니다(교회 헌장[Lumen gentium]), 41항 참조).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가 지닌 무한한 부요를 보여주고 또 체험하게"([평신도 그리스도인][Christifideles laici], 55항) 하며 하느님의 거룩하심이 모든 생활 신분과 상황 안에 나타날 수 있도록 하여, 모든 그리스도인이 주님의 포도밭에서 일하는 일꾼이 되고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도록 합니다.

교회 안의 모든 성소는 성덕에 이바지합니다. 그러나 성품 직무 성소나 봉헌 생활 성소와 같은 성소는 매우 독특한 방식으로 성덕에 이바지합니다. 제가 오늘 여러분에게 특별히 관심을 기울이도록 부탁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성소들입니다. 이들 성소를 위하여 더욱 열심히 기도하여 주십시오.

성품 직무 성소는 "근본적으로 성품성사라는 형식을 통해서 성덕으로 초대하는 부르심입니다. 성덕이란 하느님과 아주 친숙한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가난하시고, 순결하시며, 겸손하신 그리스도를 닮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덕이란 모든 영혼을 남김없이 사랑하는 것이며, 그들을 대신해서 또한 진정으로 그들을 위해서 자신을 내어 주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거룩한 교회이자 우리가 거룩해지기를 바라는 교회를 사랑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맡기신 사명이기 때문입니다"([현대의 사제 양성][Pastores dabo vobis], 33항). 예수님께서는 "당신 곁에 있게 하시고"(마르 3,14) 특별한 친교를 나누고자 사도들을 부르셨습니다(루가 8,1-2; 22,28 참조).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에게 하늘 나라의 신비를 설명하셨을 뿐만 아니라(마태 13,16-18 참조), 그들을 부르신 사도직에 부합하는 탁월한 충실성을 기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철저한 가난과(마태 19,22-23 참조), 가장 끝자리인 종의 자리를 차지하는 겸손을(마태 20,25-27 참조) 요구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에게 그들이 받은 권한에 대한 믿음을 요구하셨으며(마태 17, 19-21 참조), 사도직의 효과적 도구인 기도와 금식(마르 9,29 참조), 그리고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태 10,8) 하신 말씀처럼 이타심을 요구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에게 단순성과 도덕성을 겸비한 지혜를(마태 10,26-28 참조), 그리고 하느님의 섭리에 자신을 맡기는 포기를(루가 9,1-3; 19,22-23 참조) 기대하셨습니다. 사도들은 또한 스승께서 세우신 성사의 집전자이자 그분의 포도밭에서 일하는 일꾼으로서 자신의 책임을 깨달아야 하였습니다(루가 12,43-48 참조).

봉헌 생활은 성덕에 대한 모든 그리스도인 성소의 심오한 본질과, '유일한 신랑'이신 그리스도를 따르는 신부인 교회의 노력을 보여 줍니다. "복음적 권고의 선서는 그리스도의 신비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예수님께서 절대적인 종말론적 가치로 선택하여 가리켜 주신 삶의 길을 힘껏 드러내야 할 의무를 가지고 있습니다"([봉헌 생활][Vita consecrata], 29항). 봉헌 생활 신분에 대한 성소는 꼭 필요한 귀중한 선물로서, 이 성소는 순결하시고 가난하시며 순종하시는 그리스도를 따르고 하느님의 절대적인 수위성을 증언하며 구세주의 모범을 따라 인류에 봉사하는 것이 완전한 영성 생활에 이르는 탁월한 길임을 오늘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오늘날 일부 지역에서 보고되고 있듯이 사제직과 봉헌 생활을 지망하는 사람이 부족하다고 해서, 우리가 기대치를 낮추고 보잘것없는 양성과 영성에 안주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그리스도의 종이요 증인으로 세워져서 거룩한 삶을 통하여 자신들이 선포하고 거행하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 주도록 요청 받을 사람들의 선발과 양성에 더 큰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3. 하느님 백성의 삶과 성덕에 반드시 필요한 사제직 성소와 봉헌 생활 성소가 언제나 신자들의 기도와 영성과 사목 활동의 중심이 될 수 있도록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야 합니다.

누구보다도 주교들과 신부들은 그들이 선물로 받은 직무의 거룩함을 증언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삶과 가르침으로,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을 따르는 기쁨과 그분의 부활 신비가 지닌 구원의 새로운 힘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주교들과 신부들은 특히 젊은 세대에 모범을 보임으로써, 스승이신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 모든 사람이 생명을 얻고 더 얻어 풍성하게 하려고(요한 10,10 참조) 오로지 하느님께 자신을 온전히 바치는 사람들만이 하는 감동적인 모험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교회 사명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로서 교회의 핵심에 자리하고 있는"([봉헌 생활], 3항) 봉헌 생활자들은 자신의 삶이 그리스도 안에 굳게 뿌리내리고 있으며, 수도 생활은 "친교의 원천이며 학교"([새 천년기], 43항)이고, 인류에 대한 자신의 겸손하고 충실한 봉사가 성령께서 언제나 교회 안에 살아 있게 하시는 "사랑의 독창성"([새 천년기], 50항)을 고동치게 한다는 것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모든 성소의 힘은 관상을 즐기고, 다른 이들에게 기쁘게 봉사하며, 하느님 나라를 위하여 순결하게 살고, 자신의 직무에 기꺼이 헌신하는 데에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가정은 교회 안에서 미래의 성소를 위한 결정적인 역할을 하도록 부름 받고 있습니다. 부부애의 성덕, 가정 생활의 화합, 신앙의 정신으로 마주하는 일상의 문제들, 다른 사람들 특히 가난한 사람들을 향한 열린 마음, 그리고 그리스도인 공동체 생활의 참여는 자녀들이 하느님의 부르심에 귀기울이고 이에 기꺼이 응답할 수 있는 좋은 환경을 만들어 줍니다.

4.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으니 그 주인에게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달라고 청하여라"(마태 9,38; 루가 10,2). 그리스도의 이 명령에 따라, 해마다 성소 주일은 모든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한 마음으로 성소를 위하여 하느님께 꾸준하고 열렬하게 간청하는 충만한 기도의 시간입니다.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하느님과 대화를 나누도록 가르치고 신자들이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 주신"(요한 3,16) 성부의 그 사랑에 더욱 마음을 열 수 있도록 가르칠 수 있는 참된 기도의 학교([새 천년기], 33항 참조)가 되어야 합니다. 살며 정진하는 기도는 우리가 그리스도 성령의 이끄심으로 서로 협력하여 사랑의 교회를 세우는 데 도움을 줄 것입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제자는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를 만나 하느님 자녀의 참된 자유를 얻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자라납니다. 이러한 열의로 신자들은 성모님의 모범을 따라 말씀과 성사와 사랑의 교역자가 되거나, 우리 시대인들 가운데서 그리스도의 순결하고 가난하며 순종하는 삶의 살아 있는 표징이 되도록 불러 주시는 주님께 기꺼이 "예"라고 대답할 준비를 갖추게 될 것입니다.

수확하시는 주님께서 당신 교회를 위하여 거룩한 사제 성소와 수도 성소를 풍성히 내려 주시기를 빕니다.

하느님 아버지, 제삼천년기의 길로 첫 걸음을 내딛는 저희 인류를 굽어살피소서. 저희의 삶은 아직도 증오와 폭력과 억압으로 얼룩져 있나이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정의와 진리와 은총을 목말라 하며 아버지께서 성자 예수를 통하여 이루신 구원의 전달자를 기다리고 있나이다. 고통받는 인류에게 봉사하는 헌신적인 종들이 용감한 복음 선포자들이 필요하나이다. 아버지의 백성을 은총의 도구로 거룩하게 할 거룩한 사제들을 교회에 보내 주소서. 봉헌 생활자들을 많이 보내시어 세상 한 가운데에서 아버지의 거룩함을 드러내게 하소서. 아버지의 포도밭에 거룩한 일꾼들을 보내시어 사랑의 열정으로 일하게 하시며 성령의 이끄심으로 그리스도의 구원을 땅 끝까지 전달하게 하소서. 아멘.

카스텔 간돌포에서,

2001년 9월 8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부활 제4주일

(다해) 요한 10, 27-30; 2001/05/06

이스라엘에서는 양들을 한데 모여 자게 한단다. 그리고 아침이 되면 양치기가 가서 "애들아 가자"하면, 다른 양들은 그냥 있고 그 양치기가 치는 양만 따라 나온단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오늘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라온다."(27절)고 말씀하신다. 왜냐하면 양들은 자기 양치기가 자기를 먹여 살리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 그래서 그들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고 아무도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아 가지 못할 것이다."(28절)

그런데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듣고 있는가? 몇 년이 지나도 구역, 반모임에 특별한 이유없이 안 나오는 이들이 있다. 본당 신부가 자신에게 영원한 생명을 제시해 주지 못하기 때문인지! 한 본당의 문제가 아니고 서울대교구 아니 교회 전체의 흐름이 바뀌어가고 있는데 교회가 자신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지 못한다고 여기기 때문인가? 아니면 주님은 축복만 해주면 되는 것이지, 자기 삶은 자기 마음대로니까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말라는 표현인가. 자신의 이익과 필요에만 급급하여 신자로서의 사명은 망각한 듯하다.

우리가 만일 미사성제에서 성체성사를 통해 주님의 몸을 모시고 주님과 일치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주님께서 내려주시는 생명을 받아 모실 수 있겠는가?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읽고 마음 속 깊이 새기고 형제들과 함께 그 말씀을 이루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우리가 주님께서 원하시는 우리 구원의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겠는가? 우리가 주님께 매일 진지하고 충실하게 기도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주님의 뜻을 깨닫고 실현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이웃의 구원을 위해 우리를 희생하지 않는다면 어뗳게 주님의 자비를 바랄 수 있겠는가? 미사성제뿐만 아니라 남모르게 채워야 하는 성서읽기와 기도 및 희생이 우리 신자생활의 기본이다. 그런데 기본도 채우지 않는다면 우리의 신앙생활이 집안 일도 안하고 바깥나들이나 즐기는 여인이나 할 일도 미루고 놀기나하는 남자의 가정형편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구원은커녕 망하지 않겠는가?

착한 목자이신 주님을 기억하는 오늘 우리는 주님을 내 삶의 구세주로 굳게 믿어야 하겠다. 그리고 그 믿음 안에서 내가 지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성서 안에서 주님의 말씀을 듣고 기도중에 깊이 새겨야 한다. 이렇게 해서 "아버지와 나는 하나이다."(30절)하신 주님과 일치하여 나에게 들려주신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나를 버리고 희생하면서 주님과 함께 구원의 하느님 나라를 이루어나가는데 앞장서야 하겠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성하의 제38차 성소 주일 담화

부름받은 삶

2001/05/06

존경하는 형제 주교님들과

전세계의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1. 2001년 5월 6일, 대희년 폐막 후 몇 달 지나지 않아 맞게 되는 이번 '성소 주일'은 '부름받은 삶'을 주제로 할 것입니다. 이 담화를 통하여 저는 여러분과 함께 그리스도인의 삶에 참으로 중요한 이 주제를 잠시 성찰하고자 합니다.

'성소'는 하느님께서 사랑의 자유 안에서 모든 인간과 맺는 관계를 매우 적절히 정의한 말입니다. "모든 삶은 성소"이기 때문입니다(교황 바오로 6세, 회칙 [민족들의 발전], 15항). 하느님께서는 창조 활동을 마치신 다음, 인간을 보시고 "참 좋다."(창세 1,31 참조)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모습대로" 인간을 지어 내시고, 우주를 인간의 일손에 맡기셨으며, 친밀한 사랑의 관계로 인간을 부르셨습니다.

성소는 하느님 계시의 역동성을 깨닫게 함으로써 인간에게 그 존재에 대한 진리를 드러내 주는 말입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현대 세계의 교회에 관한 사목 헌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인간 존엄성의 빼어난 이유는 하느님과 친교를 이루도록 부름받은 인간의 소명에 있다. 인간은 이미 태어날 때부터 하느님과 대화하도록 초대받는다. 하느님의 사랑으로 창조되고 언제나 하느님의 사랑으로 보존되지 않는다면 인간은 결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그 사랑을 자유로이 인정하고 자기 창조주께 자신을 맡겨 드리지 않고서는 인간은 온전히 진리를 따라 살아갈 수 없다"(19항). 하느님과 나누는 이러한 사랑의 대화를 통하여 우리는 저마다 각자의 성향과 특성에 따라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의 토대를 발견합니다. 이러한 특성들은 선물로 받은 것으로서, 충만한 삶으로 나아가는 여정에서 각자의 삶과 일상 생활의 근본 관계를 '의미있게' 합니다.

2. 삶을 성소로 생각하면 내적 자유가 솟구치고, 마음 속에 미래에 대한 소망이 싹트며, 삶을 수동적이거나 지루하고 진부하게 여기지 않게 됩니다. 그럴 때 삶은 "본질상, 하느님께 받은 주어진 선이 되고자 하는 선물"('새로운 유럽을 위한 새로운 성소'(1997), 16, ㄴ)과 같은 가치를 띱니다. 인간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5,12)라는 새 계명의 길을 따르게 될 때, 자신이 성령으로 다시 태어났음을 보여 줍니다(요한 3,3-5 참조). 어떤 의미에서 사랑은 하느님 자녀의 DNA(유전자)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거룩한 성소'로 부름받았습니다. "이것은 하느님의 계획과 은총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이 은총은 천지 창조 이전에 벌써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며, 우리 구세주 그리스도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심으로써 이제는 분명히 드러난 것입니다"(2디모 1,9-10 참조).

모든 성소 여정의 근원에는 임마누엘, 곧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느님께서 계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삶을 형성해 나갈 때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인생의 굴곡 가운데 늘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바란다면, 하느님께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과 함께 독특하고도 모방할 수 없는, 그러면서도 모든 인류, 나아가 전 우주와 조화를 이루는 놀라운 사랑의 이야기를 엮어 나가십니다. 우리가 각자의 삶 속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깨닫고, 더 이상 고아와 같이 혼자가 아님을 느끼며,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아버지가 계시다는 것을 아는 것,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단순한 인간적 시각을 바꾸어, 사목 헌장에서 단언하는 것처럼 "자기 자신을 아낌없이 내어 줌으로써만 자신을 완전히 발견할 수 있다."(24항)는 것을 깨닫게 하는 커다란 전환점입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이 말에는 그리스도교적 삶의 비밀과 모든 인간의 참된 자기 실현의 비밀이 담겨 있습니다.

3. 그러나, 오늘날 그리스도인의 이러한 삶의 이해는 사실상 모든 면에서 하느님을 제쳐 놓는 서구 문화의 일부 특징적 모습을 고려해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삶을 재복음화하기' 위한 그리스도인 공동체 전체의 일치된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근본적인 사목적 노력을 위해서는 삶에서 결실을 보여 주는 신앙인의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결실있는 삶은 하느님 안에 그 원천을 두며, 성령께서 하시는 일에 순종하여 힘을 얻고, 그리스도와 이루는 친교, 교회와 이루는 친교를 통해서 일상적 노고의 참된 의미를 보장받습니다. 그리스도인 공동체 안에서 모든 사람은 각자 자신의 성소를 발견하고 기꺼이 응답하여야 합니다. 모든 삶은 하나의 성소이며, 모든 신자는 교회의 건설에 협력하도록 초대받습니다. 그러나 '성소 주일'을 맞아, 우리는 수품 교역자와, 복음적 권고를 서약함으로써 힘든 봉헌 생활의 길에서 그리스도를 따르고자 하는 수도자들의 필요성과 절실한 요구에 특별히 주의를 기울입니다.

우리에게는 "다양한 시간과 장소에서 구원자이신 그리스도의 성사적 현존을 영구히 보장하는"('평신도 그리스도인', 55항) 수품 교역자들이 필요합니다. 그들은 말씀을 선포하고 성체성사와 여러 가지 성사들을 거행하여 영원한 삶의 여정에서 그리스도 공동체를 인도합니다.

또한 증거를 통하여 "세례 받은 사람들에게 복음의 근본 가치를 일깨워 주고", "세례성사, 견진성사 또는 성품성사를 통하여 하느님의 능력이 이루시는 성사적 봉헌을 행동에 반영하여, 성령께서 그들의 마음 속에 부어 주시는 하느님의 사랑에 성덕 생활로 응답해야 한다는 인식을 하느님의 백성들에게 끊임없이 불어넣어 주는" 수도자들이 우리에게는 필요합니다('봉헌 생활', 33항).

성령께서 특별한 봉헌에 대한 성소를 많은 사람들에게 불러일으키시어, 이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에게 복음에 더욱 충실하도록 격려하고, 삶의 의미는 하느님의 아름다움과 거룩함의 현현이라는 것을 모든 사람이 더욱 쉽게 깨닫도록 도와 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4. 이제 저는 가치를 목말라하면서도 그러한 가치에 이르는 길을 찾지 못하고 있는 많은 젊은이를 생각합니다. 참으로 그리스도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젊은이들이 주님을 만나도록 이끌어 주고 그분과 깊은 관계를 맺도록 도와 주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젊은이들의 세계에 들어가시어 삶에 함께 하시고 그들의 마음을 여셔야 합니다. 젊은이들이 그분을 더욱 더 잘 알게 되고 예수님 사랑의 발자취를 따르게 해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저는 하느님의 백성을 이끄는 목자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들에게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말씀을 일깨워 드립니다. "그러므로 사제는 먼저 말씀의 교역과 생활의 증거로 봉사의 정신과 부활의 참된 기쁨을 분명히 드러내면서 사제직의 탁월성과 필요성을 신자들에게 뚜렷이 보여 주어야 한다는 것을 깊이 명심하여야 하며 ...... 이 목적을 이루는 데에는 자상하고 신중한 영성 지도가 매우 가치있다. ...... 그러나 주님께서 부르시는 목소리가 어떤 기이한 방법으로 미래 사제에게 들리리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주님의 목소리는 날마다 하느님의 뜻이, 슬기로운 그리스도인들에게서 드러나는 징표들에서 이해되고 식별되어야 하며, 사제들은 이러한 표징들을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한다"(사제의 생활과 교역에 관한 교령, 11항).

다음으로 저는 우리의 유일한 희망은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진리, 오직 그분에게서만 그들이 선택한 삶을 살아 나가는 데 필요한 힘을 얻을 수 있다는 진리, 인간은 그분을 통해서만 인류 구원에 대한 깊은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다는 진리를 증언하도록 부름받은 남녀 봉헌 생활자들을 생각합니다. 봉헌 생활자들의 현존과 봉사를 통하여 젊은이들의 마음과 정신이 하느님으로 충만한 희망의 지평을 향해 열리고, 그러한 현존과 봉사가 젊은이들에게 겸손과, 사랑하고 봉사하는 너그러움을 가르쳐 주기를 바랍니다. 남녀 수도자들의 봉헌 생활을 통하여 교회와 문화에 가져다 주는 충만한 의미가, 젊은이들이 주님의 부르심을 듣고 기꺼이 열정적으로 그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는 영혼의 자유를 가지도록 교육하고 양성하는 데 적합한 구체적인 사목적 논고로 훌륭히 변화되기를 바랍니다.

5. 사랑하는 그리스도인 부모 여러분, 이제 저는 여러분에게 자녀들과 가까이 할 것을 당부합니다. 사춘기와 청년기를 맞아 중대한 결정을 해야만 하는 자녀들을 혼자 내버려 두지 마십시오. 자녀들이 물질적 행복만을 추구하지 않도록 도와 주시고, 그들을 참된 영적 행복으로 이끌어 주십시오. 때때로 미래에 대한 불안에 사로잡혀 있는 자녀들의 마음 속에 자유를 주는 신앙의 기쁨이 울려 퍼지게 해 주십시오. 저의 선임자이신 존경하는 하느님의 종 교황 바오로 6세께서 말씀하셨듯이, 젊은이들에게 "창조주 하느님께서 인간의 길에 마련해 놓으신 많은 기쁨들, 곧 활기를 주는 존재와 삶의 기쁨, 순결하고 경건한 사랑의 기쁨, 자연과 침묵에서 오는 평화의 기쁨, 공들인 일에서 오는 이따금의 꾸밈없는 기쁨, 의무 수행에서 오는 만족과 기쁨, 정결과 봉사와 나눔에서 오는 투명한 기쁨, 희생에서 오는 벅찬 기쁨을 순수하게 맛보는 법"(Gaudete in Domino, I)을 가르쳐 주십시오.

가정 교육은 젊은이들에게 성소 의식을 일깨워 주도록 특별히 부름받은 교리교사와 그리스도인 교사들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그들의 임무는 젊은 세대가 각각에 대한 하느님의 계획을 발견하고, 하느님께서 부르실 때 그 사명을 위해 삶을 기꺼이 내어 놓을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을 온전히 복음에 바치는 무조건적인 '순종'을 준비하게 하는 지속적인 결심을 통하여 이루어질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리교사와 교사 여러분, 이러한 목표에 이를 수 있도록, 여러분이 보살피는 젊은이들이 저 높은 곳을 바라보며, 타협하고자 하는 끊임없는 유혹을 이길 수 있도록 도와 주십시오. 젊은이들에게 아버지 하느님을 신뢰하도록 가르치고, "땅의 모습을 새롭게 하는" 위대한 사명에 봉사하도록 각자에게 임무를 맡겨 주신 놀랍도록 위대한 그분의 사랑을 보여 주십시오.

6. 사도행전에는 초대 그리스도인들이 "사도들의 가르침을 듣고 서로 도와 주며 빵을 나누어 먹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였다."(2,42) 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접하는 모든 시간은 성소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성서를 자주 접하면, 하느님께서 어떤 방식과 행동으로 우리를 당신 사랑의 협력자로 선택하시어 가르치시고 키우시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성찬례의 겅행과 기도는 예수님의 말씀을 더 잘 이해하도록 해 줍니다.."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으니 그 주인에게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달라고 청하여라"(마태 9,37-38; 루가 10,2 참조). 성소를 위하여 기도할 때 우리는 복음의 지혜로 세상을 보며, 모든 인간에게 생명과 구원이 필요함을 알게 됩니다. 나아가 우리는 인류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과 연민을 실천하며, 성모님의 모범을 따라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가 1,38) 하고 말할 수 있는 은총을 얻습니다.

추수할 일꾼이 많아지도록 우리 모두 주님께 간청합시다.

거룩하신 하느님 아버지,

존재와 사랑의 영원한 샘이신 아버지께서는

살아있는 인간 안에서 광채를 비추시고

저희의 마음 속에 부르심의 씨앗을 심어 주시니

저희가 게을러서 이 은총을 소홀히 하거나

잃어버리지 않게 하시고

모든 이가 온 마음을 다하여

아버지의 사랑을 실현하게 하소서.

주 예수님,

팔레스티나의 길을 따라 걸으시며

사도들을 뽑으시고 부르시어

그들에게 복음을 선포하고 신자들을 돌보며

하느님의 예배를 거행하도록 임무를 맡기셨으니,

오늘날에도 주님의 교회 안에

거룩한 사제들이 많아지게 하시어

주님의 죽음과 부활을 모든 이에게 전할 수 있게 하소서.

교회를 거룩하게 하시는 성령님,

봉헌 생활로 부름받은 이들의 마음에

끊임없는 은혜로

하느님 나라를 향한 확고하고 단호한 열정을 심어 주시어

관대하고 무조건적인 '순종'으로

일생 동안 복음에 봉사하게 하소서.

지극히 거룩하신 동정 성모님,

전능하신 하느님의 구원 계획을 이루고자

주저 없이 자신을 봉헌하셨으니

성모님께서 지니셨던 믿음을

젊은이들의 마음에도 심어 주시어

언제나 그리스도인의 삶을 올바로 이끌어 주는

열정적인 사제들이 불어나고

부활하신 성자의 현존을

정결과 가난과 순명의 정신으로 드러내는

봉헌 생활자들이 많아지게 하소서.

아멘.

바티칸에서

2000년 9월 14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부활 제4주일

(나해) 요한 10, 11-18: 2000/05/14

누구든지 신부가 될 때면 자기가 사제생활을 하면서 한 평생 이루고 싶은 성서구절을 정하고 그 말씀을 서품상본에 새기고 두고 두고 기억하며 한평생 이루려고 노력합니다. 저는 오늘 복음에 나오는 "나는 착한 목자이다"(11)라는 성서구절을 뽑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착한 목자란 이 말씀은 주님이신 예수님께나 해당하는 말씀 같아서 차마 그 성서구절을 적지 못하고 오늘까지도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끔 저보고 "신부님은 5년 임기만 채우면 그만이지만 저희는 여기서 평생 살아요"하면서 자기 주장을 펴는 신자들을 볼 때면 서글퍼지고 떠나고 싶은 생각이 들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다가도 "목자가 아닌 삯꾼은 양들이 자기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리가 가까이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도망쳐 버린다"(12)라는 구절을 되씹으면서, '그래도 선의의 많은 신자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자각과 아울러 남들이 뭐라고 해도 충실히 예수님을 따라야지 하면서 마음을 잡아왔습니다. 그러다가 그런 말을 한 신자들이 먼저 이사가는 것을 보면 '삯꾼이 따로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나는 착한 목자이다"라는 이 말씀은 저의 희망이요 지향이기도 하지만 아직도, 마음에 커다란 부담이 됩니다. "나는 내 양들은 알고 내 양들도 나를 안다. 나는 내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다"(14. 15)는 주님의 말씀이 저를 부끄럽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오늘 저에게만 말씀하시지 않고 평신도 사도직을 받은 여러분 모두에게도 하십니다. 우리 가족과 이웃, 우리 눈에 띄고 우리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가난한 이들이 우리가 목숨을 바쳐 구해야 할 우리의 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아버지께서는 내가 목숨을 바치기 때문에 나를 사랑하신다. 누가 나에게서 목숨을 빼앗아 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바치는 것이다"(17-18)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하느님께서 주님께 주신 사명이기도 하지만, 오늘 우리에게 주님께서 내려주신 사명입니다.

그래서 "나에게는 이 우리 안에 들어 있지 않은 다른 양들도 있다. 나는 그 양들도 데려와야 한다. 그러면 그들도 내 음성을 알아듣고 마침내 한 떼가 되어 한 목자 아래 있게 될 것이다"(16)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이룹시다. 우리 모두 진정 착한 목자이신 주님께로 인도하는 양들이 됩시다.



부활 제4주일

(가해) 요한 10,1-10; 99/04/25

예수님께서는 "양들은 목자의 음성을 알아듣는다."(3)고 말씀하셨는데, 실제로 양들은 자기 주인의 목소리를 알아듣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도 이스라엘에서는 목동들이 양을 치다가 밤이 되면 양들을 데리고 일종의 양합숙소(?)에 자기들이 치던 양들을 다 한 군데에 몰아넣고 잔답니다. 그리고 아침에 가서 "가자."하면 그 많은 양떼 중에서 자기 양들만 쪼르르 따라 나온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예수님의 음성을 알아듣습니까? 우리는 성서에 쓰여진 예수님의 말씀을 우리의 현실에서 기억해내고 그 말씀을 따라 삽니까? 지난 우리의 과거에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은총을 기억하실 수 있습니까? "이렇게 양떼를 불러 낸 다음에 목자는 앞장 서 간다. 양떼는 그의 음성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를 뒤따라간다."(4)

오늘은 당신의 목숨까지 바쳐 우리를 구한 착한 목자이신 주님을 기억하는 착한 목자 주일입니다. 또한 착한 목자이신 주님의 말씀을 따라 형제들에게 주님의 복음을 전하도록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 부르심에 응답한 사람들을 기억하는 성소주일입니다. "양들은 낯선 사람을 결코 따라가지 않는다. 그 사람의 음성이 귀에 익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그를 피하여 달아난다."(5) 그래서 오래 전부터 오늘은 전통적으로 성직자와 수도자들을 기억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오늘 저는 여러분과 평신도 사도로서 부르심을 받은 여러분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일찍이 가톨릭 노동 청년회 창설자이신 까르덴 추기경님은 "노동자들에게 있어서 가장 좋은 선교사는 노동자 자신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직자 수도자들이 교회 내에서 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산다면, 평신도 사도들은 세상 한 가운데서 세상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삽니다. 자식을 낳고, 직업을 가지고 세상 한 가운데서 살면서 복음을 전하는 일은 바로 여러분의 몫입니다."나는 문이다. 누구든지 나를 거쳐서 들어오면 안전할뿐더러 마음대로 드나들며 좋은 풀을 먹을 수 있다."(9) 선교도 또 하나의 소명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선교하는 목적은 신자수를 많이 늘리고 성당을 더 많이 짓고 교회 시설을 늘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 땅의 고통받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주시는 기쁜소식을 전하여 그들이 주님으로부터 위로를 받고 삶의 희망을 회복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도둑은 다만 양을 훔쳐다가 죽여서 없애려고 오지만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더 얻어 풍성하게 하려고 왔다."(10)



부활 제4주일

(다해) 요한 10,27-30 : 98/04/30

예수님께서는 "나는 내 양들을 안다"(요한 10,27ㄴ)고 하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떤 사람을 아는 방법과 주님이 아는 방법은 어떻게 다른가? 우리는 우리가 보고 또 그 사람에 대해 다른 사람이 한 말을 듣고 안다. 이렇게 우리는 우리에게 비춰지고 들려진 것만큼만 안다. 그런데 주님은 우 리의 겉으로 드러난 모습만 보시지 않고, 또 다른 사람이 전해준 말을 듣고 아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아신다.

또 우리가 아는 것과 주님이 아는 것은 어떻게 다른가? 우리는 어떤 사람의 장점보다는 단점 을 더 많이 보고 아는데 반하여, 주님은 우리의 장점과 단점을 다 아신다. 마치 부모처럼 과거에 부모 품에서 사랑스럽던 그 모습과 이담에 커서 좋은 사람이 될 그 가능성을 가진 모습을 기대 하시면서 더 사랑해주신다.

그리고 어떤 사람에 대해 알아서 우리는 어떻게 행동하고 주님은 어떻게 행동하는가? 우리는 어떤 사람의 단점이나 부족한 면을 보면 그에게 실망하고, 그를 신뢰하지 않고, 그를 멀리하고, 그로 인하여 어떤 불이익을 당하지나 않을까 우려하며 조심한다. 그런데 주님은 어떤가? 주님도 우리의 잘못을 아신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의 부족한 점을 탓하시기 보다 우리에게 그 부족한 만큼 채워주신다. "나는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 그래서 그들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 고 아무도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아 가지 못할 것이다."(28)

우리는 우리가 하고 싶은 것과 얻어야할 일을 더 중요하게 여기지만, 주님은 아버지께서 원하 시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신다. "아버지께서 내게 맡겨주신 것은 무엇보다도 소중하다. 아 무도 그것을 아버지의 손에서 빼앗아 갈 수 없다."(29) 더군다나 아버지께서 예수님께 맡겨주 신 것은 아버지의 백성들이다.

우리는 루가복음에서 잃어버린 아들이 돌아오기를 문밖에 나와서 기다리는 아버지의 모습을 기억합니다. 오늘도 주님은 우리가 회개하여 주님께 돌아오기만 하면, 우리의 과거를 모른 체 덮 어주시고 다 용서해 주셔서 우리가 주님과 함께 했던 전같이 다시 행복해질 것이다. "아버지와 나는 하나이다."(30)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채워주셔서 우리를 하늘나라로 데려가시려고 하시는 착한 목자이신 주님을 믿고 주님의 말씀을 따라서 주님께 나아가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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