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떼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

요한 2,13-22 : 14/11/09

제가 도농 복합 도시에서 첫 주임사제를 할 때입니다. 처음 부임해 보니, 성전은 상가 5층에 있었고, 사제관은 5분여 거리의 아파트에 있었습니다. 상가 성전과 아파트 사제관을 출퇴근하면서 느낀 점은, 사제는 성당 구내, 그것도 성전의, 성체 근처에 살아야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부랴부랴 1년 만에 조립식 성전을 짓고 조립식 사제관에 누워 첫날밤을 지내는데 그렇게 편안하고 안심이 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본당 수녀님이 중고등부 친구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전해주었는데, 참 의외였습니다. 아이들이 “전에 신부님이 아파트 사제관에 계실 때는 매일 가서 라면도 끓여 먹고, 떡복이도 해 먹고, 삼겹살도 구워 먹었는데, 신부님이 성당 사제관에 들어가시니까, 전처럼 쉽게 찾아 갈 수도 없고, 들어가도 왠지 부담스러워요!”

저에겐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 순간이었습니다. 아이들이나 저나 성전 건물은 생겨서 기뻤지만, 학생들이 보기에게는 자신들의 집과 구조도 다르고 환경도 다르니까, 뭔가 생소하고 거리가 느껴진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도 아이들과 함께 아파트에서 성전으로 걸어가고, 일을 마치고 다시 돌아가는 길에 함께하던 그 많은 시간이 생략되었고, 또 주일학교 때만 보고 나서, 저는 성전의 사제관으로 들어가고, 아이들은 자신들의 아파트 집으로 따로 따로 떨어져 가다 보니까 그만큼 만나는 시간도 줄어들어서 거리가 느껴진 것이었습니다.

솔로몬 왕이 예루살렘 성전을 짓고 나서 주 하느님께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 저의 하느님, 당신의 눈을 뜨시고 밤낮으로 이 집을, 곧 당신께서 ‘내 이름이 거기에 머무를 것이다.’ 하고 말씀하신 이곳을 살피시어, 당신 종이 이곳을 향하여 드리는 기도를 들어 주십시오. 당신 종과 당신 백성 이스라엘(과 이방인)이 이곳을 향하여 드리는 간청을 들어 주십시오. 부디 당신께서는 계시는 곳 하늘에서 들어 주십시오. 들으시고 용서해 주십시오.”(1열왕 8,28-30[43])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파스카 축제를 맞이하러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가, 솔로몬 대왕이 짓던 취지와는 정반대로 인종별, 성별 차별과 물질로 가득 차버린 성전을 정화하십니다. “성전에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파는 자들과 환전꾼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끈으로 채찍을 만드시어 양과 소와 함께 그들을 모두 성전에서 쫓아내셨다. 또 환전상들의 돈을 쏟아 버리시고 탁자들을 엎어 버리셨다. 비둘기를 파는 자들에게는, ‘이것들을 여기에서 치워라.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마라.’ 하고 이르셨다.”(요한 2,14-16)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부당한 폭력을 일으키는 것으로 취급하며, 반발하는 유다인들에게 선언하십니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19절) 훗날 복음사가는 예수님의 이 말씀을 기억하며 해설합니다. “그분께서 성전이라고 하신 것은 당신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21절)

루카 복음 19장 46절에서는 예수님께서 “나의 집은 기도의 집이 될 것이다.”(이사 56,7) 라는 이사야 예언서를 인용하시며, 예레미야 예언자의 말대로 ‘강도들의 소굴’(예레 7,11)이 되어버린 성전을 정화하십니다.

우리 모두는 성전이 건물이 아니라, 우리들 마음 속에 살아계신 주님의 말씀과 사랑해 주시는 마음과 정신이라는 것을 잘 압니다. 그리고 교회 공동체라는 것도. 사도 바오로는 오늘 두 번째 독서에서 코린토 신자들에게 말합니다. “여러분이 하느님의 성전이고 하느님의 영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모릅니까?”(1코린 3,16)

성전은 건물로 짓고 그 안에 들어가 기도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성전을 짓는 교회 공동체가 성전이며, 공동체 안에 주님께서 인격적으로 살아 숨쉬도록 초대하는 기도하는 이들의 공동체가 성전입니다. “누구든지 하느님의 성전을 파괴하면 하느님께서도 그자를 파멸시키실 것입니다. 하느님의 성전은 거룩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바로 하느님의 성전입니다.”(1코린 3,17)

성전에 가서야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는 이가 (들어가) 기도하는 곳이 성전이 됩니다.

기도하러 가는 곳이 성전이 아니라, 기도하는 이가 주님과 함께하는 순간과 공간이 성전입니다.

그리스도 교회 공동체 구성원 서로가 서로의 삶 속에서 성령께서 살아 움직이고 계시며, 성령께서 그의 삶을 통해 어떻게 움직이고 계신지를 발견할 때, 비로소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공동체가 됩니다. “여러분의 몸이 여러분 안에 계시는 성령의 성전임을 모릅니까? 그 성령을 여러분이 하느님에게서 받았고, 또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의 것이 아님을 모릅니까?”(1코린 6,19) 그리고 그 때 비로소 교회 공동체는 자신의 본질인 사랑과 사랑의 또 다른 말인 선교를 이룹니다.

우리가 살면서 기쁜 일이든 슬픈 일이든, 예상하지 않았던 일을 겪었을 때,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해주시면서 우리를 지켜주시고 우리를 인도해 주셨다는 사실을 깨닫고, 성전에 와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은혜에 감사드리며, 주님을 찬미하고 주님께 영광을 돌리면, 우리는 성전을 기도하는 집으로 만드는 신자들이며, 이 성전은 주님께서 머무시는 집입니다.

우리가 성전에 와서 주님께, 우리가 살아가면서 필요한 모든 것을 청하고, 또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모든 것들을 통해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간구하고, 또 그렇게 되어 주님의 영광이 이 땅에 드러나기를 청한다면, 우리는 이 성전을 하느님 나라로 만드는 제자들이며, 주님의 영이 이 성전에 머물러 우리 공동체를 이끄십니다.

우리가 이 성전에 와서 주님께 간절히 청하고, 그렇게 청해서 얻은 것을 필요로 하는 형제들과 나누게 된다면, 우리는 주님을 우리 삶 안에 모시게 되고, 주님께서는 아버지와 함께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그러면 우리는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되고, 주님의 말씀을 이 땅에 기쁜 소식으로 선포하여, 하느님 나라가 이 땅에서 완성되는 데 기여하는 주님의 진정한 사도들입니다. 그 때 주님께서는 불신과 질시와 원망과 죄악으로 가득한 각박하고 삭막한 세상에서 부활하시어 우리 공동체와 함께 살아계십니다.

주님께서는 이 때가 이루어져, 이렇게 기도하는 여러분을 기다리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진실한 예배자들이 영과 진리 안에서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온다. 내 양식은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실천하고, 그분의 일을 완수하는 것이다.”(요한 4,23.34)



라떼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

요한 2,13-22 : 03/11/09

성전 건축을 준비하고 있는 우리에게 오늘 라떼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은 특별한 의미를 지닙니다.

주님께서는 오늘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셔서 아버지의 집인 성전이 그저 물건을 사고 파는 곳으로 바뀌어 버린 것을 보시고 한탄하셨습니다. 그래서 유다인들이 46년이나 정성들여 지은 성전을 허물어 버리라고 하시며, 사흘만에 다시 세우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전에 와서 얼마짜리 어떤 예물을 사서 바칠까 하면서 고르고 흥정하는 행위보다, 아버지 하느님께 기도하는 것을 더 원하셨습니다. 아버지 하느님께 기도함으로써 하느님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하느님 아버지의 뜻에 따라 변화되고 새롭게 살아가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죄의 노예가 되어버린 우리 인간을 다시 하느님의 사랑스런 자녀로 만들고 싶으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호세아 예언자를 통해, "내가 반기는 것은 제물이 아니라 사랑이다. 제물을 바치기 전에 이 하느님의 마음을 먼저 알아 다오."(호세 6, 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마태오 복음 9장 13절과 12장 7절에서 이 말씀을 인용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 제물을 바치는 제사보다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자녀가 되도록 하고 싶으셨습니다. 그래서 성전을 헐어버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요한 사도는 예수님의 이 모습을 이렇게 말합니다. "그분은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려고 친히 제물이 되셨습니다. 우리의 죄뿐만 아니라 온 세상의 죄를 용서해 주시려고 제물이 되신 것입니다."(1요한 2, 2)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집을 헐어버리듯이 우리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당신 자신을 죽이시고 우리에게 새로운 성전 곧 하느님과의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사흘만에 부활하심으로써 우리를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자녀의 자리로 회복시켜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하느님의 영이 살아있는 성전으로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교회는 영적인 성전입니다. 교우들이 그리스도를 머릿돌로 하여 뭉친 성전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가 성전을 짓는다는 것은 건물을 세운다는 것에 그치지 않고 교회 공동체를 건설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교회 공동체를 건설한다는 말은 우리 신자들의 모임인 교회 공동체 안에 주님을 모신다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들이 함께 모여 미사를 드릴 때 주님께서 내려오시고,

우리들이 함께 모여 기도할 때 주님께서 들어주시고,

우리들이 함께 모여 복음을 읽으며 계획하고 실현하려고 할 때 주님께서 함께해주셔서 기적같이 결실을 맺음으로써 우리가 기쁘고 행복하게 됩니다.

또한 세상 사람들이 그런 우리의 모습을 보면서 주님을 발견하고 우리 교회 공동체에 참여하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지금 교우들과 함께 미사를 드릴 때 주님을 만나십니까?

여러분, 여러분이 교우들과 함께 기도할 때 주님께서 내려오시고 여러분의 기도를 들어주신다고 느끼십니까?

여러분, 여러분이 구역모임과 단체에서 복음을 읽고 계획하고 실현하려고 할 때 주님께서 함께해주시고 결실을 맺어주신다고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우리 공동체는 그리스도 우리 주님의 교회라고 말할 수 있으며,

또 그러기에 우리가 짓는 건물은 주님의 성전이 될 것입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변화되어야 합니다.

주님의 성전을 지으려면 전보다 더욱 더 간절하고도 정성스럽게 꾸준히 기도하여야 할 것이며, 더욱 더 깊이 복음을 읽고 우리가 읽은 복음을 실현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며, 또 우리 형제 자매들끼리 서로를 받아들이고 서로를 용서하고 서로를 아끼고 보듬어 품어 안음으로써 우리가 하나되고, 그럼으로써 주님께서 우리 모임에 정말 오고 싶어서 기꺼이 오시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제서야 우리는 미사를 봉헌하며 주님을 만나게 되고 주님의 성전을 세우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 공동체 즉 주님을 만나고 주님의 사랑이 넘치는 공동체를 이룰 때 비로소 건축가들이 짓는 성당 건물이 그리스도 우리 주님께서 머무시는 성전이 될 것입니다. 아멘.



라떼라노 성전 봉헌축일

요한 2,13-22 : 97/11/09

어제 동생 수녀와 전화 통화를 하다가 동생이 제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오빠가 점점 다른 신부님 들과 똑같애져! 다른 신부님들보다 못하면 못했지 나은 점이라곤 없을 것 같은 제게 자극을 주기 위 해 동생이 하는 말이었습니다. "친절하기만 하던 오빠가 이젠 바쁘다고 잘라 말하기도 하고, 점점 권위주의적으로 바뀌고 있어. 많이 상처받았나 봐!" 저는 동생의 말에 일견 동의하면서도 "악에게 굴 복하지 말고 선으로써 악을 이겨내십시오."(로마 12,21) 라고 하시던 사도 바오로의 말씀을 연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교 사제란 무엇일까요? 사제란 주님처럼 사람들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사는 사람이고, 사 람들의 죄를 대신 짊어지는 일이 바로 사목입니다. 주님의 거룩함은 주님이 전지전능하시고 무한하신 분이라는 사실에 있지 않고, 그 전지전능하시고 무한하신 분이 바로 우리 인간의 쓰레기 같은 죄 를 대신 짊어지고 감싸주고 씻어주셨다는 데 있습니다. 거룩함은 그냥 그렇게 티하나 없이 깨끗하고 빛처럼 환히 빛나는 그 자체에 있지 않고, 사람들을 구하시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신 그 사랑에 있고 그렇기에 그 사랑이 환하게 빛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도 얼마나 깨끗하고, 얼마나 열심히 사느냐가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 우리 주님을 믿는 우리 신자 삶은 경제적으로는 내가 검소하게 살 수 있을 정도로 만족하고, 남 은 시간과 여력과 재력을 이웃의 구원을 위해 봉헌하는데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삶과 그러한 사람들의 모임이 진정한 교회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삶을 따르는 우리의 노력은 벽돌을 쌓아 성당 건물을 짓는 노력 이상으로 진실한 주님의 몸을 이룰 것입니다. 그래서 "성전 동쪽 문턱에서 물이 나와 온갖 생물들을 살리게 되"(에제 47,1.9 참조)듯이, 주님을 사랑하는 우리에게서 사람들은 생명을 얻고 주님의 모습을 찾고 만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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