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2016년 전교 주일 담화


선교하는 교회, 자비의 증언

(다해) 마태 28,16-20; 16/10/23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교회가 지내고 있는 자비의 특별 희년은 2016년 전교 주일에도 특별한 빛을 비추어 줍니다. 자비의 희년은 우리에게 만민 선교를 영적 육체적으로 위대하고 엄청난 자비의 활동으로 여기도록 초대합니다. 전교 주일에 우리 모두는 선교하는 제자로 밖으로 나아가 저마다 자신의 능력, 창의력, 지혜, 경험을 기꺼이 나누어 온 인류에게 하느님의 온유함과 연민을 전하여 주도록 권유받습니다. 교회는 선교 사명의 정신으로 복음을 모르는 이들을 돌봅니다. 교회는 모든 이가 구원받고 주님의 사랑을 체험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복음의 뛰는 심장인 하느님의 자비를 알려야”(칙서, 「자비의 얼굴」, 12항) 하고, 또한 세계 방방곡곡에 자비를 선포하여 남녀노소 모두에게 다가가도록 하여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피조물인 인간을 만나시면 자비가 하느님 마음 속 깊이 기쁨을 불러일으킵니다. 처음부터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가장 취약한 이들을 사랑으로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하느님 아버지의 위대함과 권능은 젊은이들과 소외된 이들과 억압받는 이들을 당신과 동일시하실 수 있는 것에서 분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입니다(신명 4,31; 시편 86[85],15; 103[102],8; 111[110],4 참조).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친절하시고 [우리를] 보살펴 주시며, 변함이 없으신 분으로,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가까이 하시어 모든 이와, 특히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시고자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한 가정의] 부모가 자녀의 삶을 위하여 하는 것과 똑같이 인간의 현실에 온유함으로 함께하고 계십니다(예레 31,20 참조). 성경에서 자비를 언급하며 사용하는 표현은 어머니의 태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표현은 자녀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머니는 모든 상황에서 그리고 어떠한 일이 벌어진다 하더라도 언제나 자녀를 사랑합니다. 자녀는 어머니 태에서 나온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모든 자녀에게 베푸시는 사랑의 본질적 측면이기도 합니다. 하느님의 이 사랑은 특히 당신께서 직접 창조하시어 키워주시고 가르쳐 주시고자 하는 이들을 향한 것입니다. 그들의 나약함과 불성실함에 직면하시어도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연민으로 북받쳐 오르십니다(호세 11,8 참조). 하느님께서는 모든 이에게 자비로우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이를 사랑하시고, 모든 피조물에 대하여 연민을 느끼십니다(시편 145[144],8-9 참조).

자비는 강생하신 말씀 안에서 가장 고귀하고 완전하게 표현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자비로 넘치시는 하느님 아버지의 얼굴을 드러내 보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비유와 비교로 자비에 대하여 말씀하시고 설명하셨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당신께서 몸소 자비를 인간이 되게 하시고 인격화하셨습니다”(회칙 「자비로우신 하느님」, 2항). 우리가 복음과 성사를 통하여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따르면, 성령의 도우심으로 우리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신 것처럼 우리도 자비로워질 수 있게 됩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우리 삶을 하느님의 선하심의 표징인 거저 받은 선물로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자비의 얼굴」, 3항 참조). 교회는 무엇보다도 인류 한가운데에서 그리스도의 자비를 실천하는 공동체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눈길을 깨닫고 그분께서 자비로운 사랑으로 교회를 선택하셨다는 것을 느낍니다. 이러한 사랑을 통하여 교회는 자신의 사명을 발견하여, 사랑을 실천하고 모든 문화와 종교를 존중하며 나누는 대화를 통하여 이 사랑을 모든 민족들이 알도록 합니다.

초기 교회처럼, 연령과 상황에 관계없이 모든 이가 이러한 자비로운 사랑을 증언합니다. 선교 분야에서 남성들과 함께 활동하는 여성의 존재감이 상당히 증대된 것은 하느님 모성애의 중요한 표징이 됩니다. 여성 평신도나 수도자들, 심지어 오늘날 많은 가정들은 복음을 선포하는 일에서부터 봉사 활동에 이르기까지 여러 다양한 형태로 자신들의 선교 소명을 수행합니다. 선교사들의 복음화 활동과 성사적 활동과 더불어, 여성들과 가정들은 종종 사람들의 문제를 더 적절하게 이해하고, 이러한 문제들을 바람직하고 때로는 새로운 방식으로 다루는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삶을 돌보면서 조직보다는 인간을 더 중시하며, 인적 영적 자원을 분배하여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적 문화적 삶 안에서 좋은 인간관계, 조화, 평화, 연대, 대화, 협력, 형제애를 구축해 나가며, 특히 가난한 이들을 돌봅니다.

많은 곳에서 복음화가 교육으로 시작되어 선교 활동을 하는 이들은 교육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며 마치 복음에 나오는 자비로운 포도 재배인처럼 오랜 세월 동안 꾸준히 교육을 실천한 이후에야 얻게 되는 열매를 인내롭게 기다립니다(루카 13,7-9; 요한 15,1 참조). 이러한 방식으로 복음화 할 수 있는 새로운 사람들이 배출되는 것입니다. 더구나 그들은 복음화가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 곳에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언젠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가지게 될 이들 또한 교회를 어머니로 여길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저는 주님을 아직 알지 못하는 이들이 그분을 만나고 사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자비의 모성적 봉사를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들이 끊임없이 실천하기를 바랍니다. 신앙은 하느님의 선물이지 개종의 결과물이 아닙니다. 오히려 신앙은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복음을 전하는 이들의 신앙과 사랑으로 커집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무한한 사랑, 곧 주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베푸시는 사랑을 품고 세계 곳곳의 거리를 누벼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아름답고 위대한 선물을 선포합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삶과 사랑입니다.

모든 민족들과 문화는 하느님께서 모든 이에게 선물로 주신 구원의 메시지를 받아들일 권리가 있습니다. 이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불의, 전쟁, 인도적 위기 상황이 얼마나 많은지를 생각할 때 더욱더 필요한 것입니다. 선교사들은 경험으로부터 용서와 자비의 복음이 기쁨과 화해, 정의와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마태 28,19-20)라는 복음의 사명은 아직 다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는 현재 상황에서 모든 도전에 맞서 새로운 선교 여정에 나서라는 부르심에 귀 기울일 것을 요청합니다. 이에 관하여 저는 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에서 다음과 같이 서술하였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과 공동체는 주님께서 가리켜 주시는 그 길을 잘 식별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안위를 떠나 용기를 갖고 복음의 빛이 필요한 모든 ‘변방’으로 가라는 부르심을 따르도록 요청받고 있는 것입니다”(20항).

이 희년에 우리는 제90차 전교 주일을 맞이합니다. 전교 주일은 1926년에 비오 11세 교황께서 처음 승인하시고 교황청 전교회가 주관하였습니다. 이에, 저의 선임 교황들의 현명한 지침들을 상기해 보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그분들께서는, 전 세계 모든 교구, 본당, 수도회, 협회, 교회 운동에서 헌금을 모아 교황청 전교회로 보내어, 어려운 그리스도 공동체를 돌보고 심지어 땅 끝까지 복음을 선포하는 데에 그 헌금이 사용되도록 지시하셨습니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이러한 선교하는 교회 공동체의 행위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관심사에만 집착하지 말고, 온 인류에게 우리의 마음을 열도록 합시다.

구원받은 인류의 숭고한 표상이자 교회 선교사들의 모범이신 성모 마리아님께서 모든 이와 가정이 부활하신 주님의 살아있는 신비로운 현존을 어디에서든 알리고 지켜나가도록 이끌어 주시기 바랍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인간관계와 문화와 민족들을 새롭게 하시며 모든 이를 기쁨이 넘치는 자비로 가득 채워 주십니다.

바티칸에서

2016년 5월 15일

성령 강림 대축일

프란치스코


(원문: Pope Francis, Message for the World Mission Day 2016, 2016.5.15., 독일어, 이탈리아어 판도 참조)

영어: http://w2.vatican.va/content/francesco/en/messages/missions/documents/papa-francesco_20160515_giornata-missionaria2016.html

독일어: http://w2.vatican.va/content/francesco/de/messages/missions/documents/papa-francesco_20160515_giornata-missionaria2016.html

이탈리아어: http://w2.vatican.va/content/francesco/it/messages/missions/documents/papa-francesco_20160515_giornata-missionaria2016.html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전교주일)


교황 베네딕토 16세 성하의 전교주일 담화(요약)



마태 28,16-20; 13/10/20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올해 우리는 신앙의 해를 마무리하는 가운데 전교 주일을 지냅니다. 신앙의 해는 우리가 주님과 맺은 친교를 강화하고, 용기 있게 복음을 선포하는 교회로서 우리의 여정을 굳게 다지는 데에 중요한 계기가 됩니다. 이러한 전망에서, 저는 몇 가지 성찰을 제안하고자 합니다.

신앙은 하느님의 소중한 선물로, 우리가 하느님을 알고 사랑할 수 있게 우리 마음을 열어 줍니다. 신앙은 그분의 한없는 자비에 감사하며 그분의 사랑으로 살아갈 용기를 필요로 합니다. 또한 신앙은 나누어야 하는 선물입니다. 복음 선포는 그리스도 제자의 본분 가운데 하나이고 교회의 삶 전체에 활력을 주는 지속적인 투신입니다.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신앙을 고백하고 증언하며 그분 복음의 선포자가 되어 우리 형제자매들과 함께 걸어가도록 세상에 파견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원의 길을 보여 주시기 위하여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그리고 이를 세상 끝까지 전하는 사명을 우리에게 맡기셨습니다.

교회는 성령의 활동으로 활력을 얻는 사람들의 공동체입니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놀라운 만남을 체험하였고 체험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 깊은 기쁨의 경험, 곧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그 구원의 메시지를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이 길에서 교회를 이끄시는 분은 바로 성령이십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 그리스도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일꾼이 되라고 격려하고자 합니다. 여러분의 삶의 처지에 따라 성령께 기꺼이 응답하십시오. 주저하지 말고 아낌없이 주님을 도와드리십시오. 교황청 전교기구는 하느님 백성 전체에 대한 한층 깊은 선교 교육의 필요성을 일깨우고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세상에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기여하도록 독려합니다.

이 신앙의 해로 주님이신 그리스도와 우리가 맺은 관계가 더욱 굳건해지기를 바랍니다. 이는 올해 전교주일에 제가 바라는 것이기도 합니다. 저는 선교사들, 그리고 세상 끝까지 복음을 선포해야 하는 교회의 이 근본 사명에 함께하고 도움을 주는 모든 이들을 진심으로 축복합니다. 우리는 복음의 봉사자이며 선교사로서 “즐거움과 위안을 주는 복음화의 기쁨”(?현대의 복음 선교?, 80항)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2013년 5월 19일, 성령 강림 대축일에

프란치스코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전교주일)


교황 베네딕토 16세 성하의 전교주일 담화



마태 28,16-20; 13/10/20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올해 우리는 신앙의 해를 마무리하는 가운데 전교 주일을 지냅니다. 신앙의 해는 우리가 주님과 맺은 친교를 강화하고, 용기 있게 복음을 선포하는 교회로서 우리의 여정을 굳게 다지는 데에 중요한 계기가 됩니다. 이러한 전망에서, 저는 몇 가지 성찰을 제안하고자 합니다.


신앙은 하느님의 소중한 선물로, 우리가 하느님을 알고 사랑할 수 있게 우리 마음을 열어 줍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와 친교를 맺으시어 우리가 당신 생명에 참여함으로써 한층 의미 있고 더 좋고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기를 바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런데 신앙은 받아들임, 곧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응답을 요구합니다. 신앙은 하느님께 우리 자신을 내어맡기는 용기, 그분의 한없는 자비에 감사하며 그분의 사랑으로 살아갈 용기를 필요로 합니다. 신앙은 소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 아낌없이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모든 사람이 하느님께 사랑받는 기쁨, 구원의 기쁨을 체험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신앙은 혼자만 간직할 수 없고 나누어야 하는 선물입니다. 이것을 우리 자신만을 위하여 간직하려고 하면, 우리는 고립되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병든 그리스도인들이 될 것입니다. 복음 선포는 그리스도 제자의 본분 가운데 하나이고 교회의 삶 전체에 활력을 주는 지속적인 투신입니다. “선교사 파견은 하나의 교회 공동체가 성숙했다는 분명한 표지입니다”(베네딕토 16세, 교황 권고 ?주님의 말씀?, 95항). ‘성숙한’ 공동체는 신앙을 고백하고, 이를 전례 안에서 기쁘게 거행하며, 사랑을 실천하고, 또한 자신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외딴 곳”에, 특히 아직 그리스도를 알 기회를 갖지 못한 이들에게 끊임없이 하느님 말씀을 선포합니다. 개인과 공동체 차원에서 우리 신앙의 힘은, 그 신앙을 다른 이들에게 전달하고 널리 퍼뜨리며 사랑으로 실천할 수 있는 역량, 또 우리가 만나는 이들과 우리와 삶의 여정을 함께 하는 이들에게 신앙을 증언할 수 있는 역량으로 가늠될 수 있습니다.


2.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개막 50주년을 기념하는 신앙의 해는, 온 교회가 현대 세계에서 자신의 존재를 새롭게 인식하고 민족들과 나라들 사이에서 자신의 사명을 새롭게 다지는 계기가 되고 있습니다. 선교 정신은 지리적 영토의 문제만이 아니라, 민족과 문화, 개인들도 관련된 문제입니다. 신앙의 “경계”는 장소와 인간 전통을 뛰어넘을 뿐만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도 가로지르기 때문입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선교 임무, 곧 신앙의 경계를 넓히는 임무가 어떻게 세례 받은 모든 이들과 모든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임무가 되는지를 특별히 강조하였습니다. “하느님의 백성은 공동체들, 특히 교구와 본당 사목구의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며 거기에서 어느 모로든 가시적인 것으로 드러나므로, 모든 민족 앞에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것 또한 그 공동체의 의무이다”(선교 교령 37항). 따라서 모든 공동체는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맡기신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 그리고 땅끝에 이르기까지” 당신의 “증인”(사도 1,8)이 되라는 명령을 자신의 사명으로 삼으라는 도전과 초대를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사명은 그리스도인 생활의 부차적인 측면이 아니라 본질적인 측면입니다.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신앙을 고백하고 증언하며 그분 복음의 선포자가 되어 우리 형제자매들과 함께 걸어가도록 세상에 파견되었습니다. 저는 주교와 신부, 사제 평의회, 사목 평의회, 그리고 교회 내에서 책임을 맡은 모든 사람과 단체들이 그들의 사목 계획과 양성 계획 안에서 선교 차원을 중요하게 여기기를 바랍니다. “모든 민족 앞에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으면 그들의 사도적 헌신은 불완전하다는 점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러한 선교 전망은 단순히 그리스도인 생활의 프로그램 차원이 아니라, 그리스도인 생활의 모든 측면과 관련된 패러다임 차원이기도합니다.


3. 복음화 활동은 흔히 교회 공동체 외부뿐 아니라 내부에서도 장애에 부딪치게 됩니다. 때로는 그리스도의 메시지를 모든 이에게 선포하고 우리 시대의 사람들이 그분을 만나도록 돕는 데에 열정, 기쁨, 용기, 희망이 부족합니다. 때로는 사람들이 여전히 복음의 진리를 선포하는 것을 자유의 침해로 여깁니다. 바오로 6세 교황님은 이에 관하여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형제들의 양심에 무엇인가를 강요하는 것은 분명 잘못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양심에 복음의 진리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매우 분명하게 …… 진리가 나타내는 자유로운 선택을 철저히 존중하며 제시하는 것은 …… 그 자유를 온전히 존중하는 것”(?현대의 복음 선교?, 80항)입니다. 우리는 존중하는 마음으로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제안하고 복음의 선포자가 되는 용기와 기쁨을 지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원의 길을 보여 주시기 위하여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이를 세상 끝까지 전하는 사명을 우리에게 맡기셨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너무 흔히 폭력, 거짓, 오류를 강조하고 내세운다는 것을 압니다. 우리 시대에, 그것도 교회 안에서, 복음을 따르는 선한 삶을 선포와 증언으로 분명하게 밝히는 것이 시급히 필요합니다. 교회 없이는 그리스도를 선포할 수 없다는 근본 원칙을 모든 복음 일꾼이 결코 잊지 않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복음화는 개인적이거나 사적인 단독 활동이 아니라 언제나 교회적인 활동입니다. 바오로 6세는 다음과 같이 쓰셨습니다. “홀로 복음을 전하고 작은 공동체를 모으고 성사를 집전하는 이름 없는 설교자나 교리교사나 목자도 교회의 행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스스로 떠맡은 사명 때문이나 개인의 원의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사명과 일치하여, 또 교회의 이름으로”(?현대의 복음 선교?, 60항) 행동합니다. 그리고 이는 선교에 힘을 보태고 모든 선교사와 복음화 일꾼이 결코 혼자가 아니라 성령께서 활력을 불어 넣어 주시는 단 한 몸의 일부라고 느끼게 해 줍니다.


4. 우리 시대에, 새로운 매체를 통한 커뮤니케이션의 폭넓은 유동성과 편리함 덕분에 사람들, 지식들, 경험들이 뒤섞이고 있습니다. 일 때문에 온 가족이 한 대륙에서 또 다른 대륙으로 이주합니다. 직업적 문화적 교류, 관광, 이와 유사한 현상들도 사람들의 방대한 이동을 촉진합니다. 이로써 본당 공동체조차도 그 지역에 누가 계속 사는 사람이고 누가 잠시 머무르는 사람인지를 알기가 어렵습니다. 오랜 그리스도교 전통을 지닌 지역들 가운데 많은 곳에서, 신앙을 잘 알지 못하거나 종교적 차원에 무관심하거나 다른 믿음을 지닌 이들의 수가 점점 더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례 받은 이들 가운데에도 신앙에서 멀어지게 만드는 생활 방식을 선택하는 일이 드물지 않아 그들에게도 ‘새로운 복음화’가 필요합니다. 더군다나 인류의 상당수가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의 기쁜 소식을 듣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위기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 위기는 삶의 다양한 영역, 곧 경제, 금융, 식량 안보, 환경만이 아니라 삶의 더 깊은 의미와 삶에 활력을 주는 근본 가치들에도 영향을 끼칩니다. 인류 공존 역시 긴장과 갈등으로 얼룩져 있습니다. 이는 견실한 평화로 나아가는 올바른 길을 찾는 데에 불안과 어려움을 야기합니다. 현재와 미래의 지평에 먹구름이 드리워진 이 복잡한 상황에서, 용기 있게 바로 그 현실 속에 그리스도의 복음, 곧 희망과 화해와 친교의 메시지를 선포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하느님께서 가까이 계시다는 것과 그분의 자비와 구원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또한 하느님 사랑의 힘은 악의 어둠을 물리치고 우리를 선의 길로 인도할 수 있다는 것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우리 시대의 사람들은 그들의 길을 환히 비추는 안전한 빛이 필요합니다. 이 빛은 오로지 그리스도와의 만남만이 가져다 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증언을 통하여, 사랑과 더불어, 신앙이 주는 희망을 이 세상에 전합시다! 교회의 선교 정신은 개종 권유가 아니라 선의 길을 밝혀 주는 삶의 증언에 있습니다. 이는 희망과 사랑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교회는 구호 단체나 기업이나 비정부 기구가 아니라 성령의 활동으로 활력을 얻는 사람들의 공동체입니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놀라운 만남을 체험하였고 체험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 깊은 기쁨의 경험, 곧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그 구원의 메시지를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이 길에서 교회를 이끄시는 분은 바로 성령이십니다.


5. 저는 여러분 모두 그리스도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일꾼이 되라고 격려하고자 합니다. 특별히 선교사들, 교구 소속 선교 사제들, 수도자들, 그리고 많은 평신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이들은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고국을 떠나 다른 나라와 문화들 속에서 복음에 봉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또한 젊은 교회들이 이제는 오히려 어려움에 놓인 교회들에 선교사들을 파견하는 데에 기꺼이 동참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어려움을 겪는 교회들 중에는 오랜 그리스도교 전통을 지닌 교회들도 드물지 않습니다. 젊은 교회들이 그 교회들에 새로움과 열정을 불어넣고 있습니다. 이 새로움과 열정으로, 삶을 쇄신하고 희망을 주는 신앙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이 보편적 차원에서,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라.”(마태 28,19) 하신 예수님의 명령에 응답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모든 개별 교회, 모든 공동체를 풍요롭게 하는 것입니다. 선교사 파견은 결코 손실이 아니라 이득이기 때문입니다. 이 부르심을 받고 있다고 느끼는 모든 이들에게 호소합니다. 여러분의 삶의 처지에 따라 성령께 기꺼이 응답하십시오. 주저하지 말고 아낌없이 주님을 도와드리십시오. 마찬가지로 저는 주교들과 수도 단체들, 공동체들과 모든 그리스도교 단체들이 통찰력과 세심한 식별을 가지고 만민(ad gentes) 선교 성소를 지원하고, 사제, 수도자, 평신도를 필요로 하는 교회들을 도와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강화시켜 나가기를 당부합니다. 또한 같은 주교회의나 같은 지역에 속한 교회들이 이러한 관심을 공유하여야 합니다. 성소가 풍요로운 교회들이 성소가 부족한 교회들을 아낌없이 돕는 일이 중요합니다.

또한 저는 선교사들, 특히 교구 소속 선교 사제들과 평신도들이 파견된 지역의 교회에서 그들의 소중한 봉사를 기쁘게 실천하기를 바랍니다. 또한 그들의 원래 소속 교회에는 그들의 기쁨과 경험을 가져다줄 것을 촉구합니다. 바오로와 바르나바가 그들의 첫 번째 선교 여행을 마무리하면서 “하느님께서 자기들과 함께 해 주신 모든 일과 또 다른 민족들에게 믿음의 문을 열어 주신 것을 보고”(사도 14,27)한 것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선교사들은 그리스도교 전통이 오래된 교회에 젊은 교회의 새로움을 가져다주어 일종의 신앙의 “회복”을 위한 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오랜 전통의 교회는 주님의 길을 따르는 여정에서 서로를 풍요롭게 해 주는 교류를 통하여 신앙을 나누는 열정과 기쁨을 되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로마의 주교가 형제 주교들과 함께 모든 교회에 대해 지니는 관심은 교황청 전교 기구의 활동에서 중요한 표지를 발견합니다. 교황청 전교 기구는 세례 받은 모든 그리스도인과 모든 공동체의 선교 의식을 촉진하고 강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교황청 전교 기구는 하느님 백성 전체에 대한 한층 깊은 선교 교육의 필요성을 일깨우고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세상에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기여하도록 독려합니다.


끝으로 저는 세계의 여러 지역에서 자신의 신앙을 공개적으로 고백하고 합당한 방식으로 그 신앙을 실천할 법적 권리를 누리는 데에 어려움을 겪는 그리스도인들에 대하여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우리의 형제자매인 그들은 용감한 증인들입니다. 심지어 초세기 순교자들보다 더 많은 이들이 불굴의 사도 정신으로 현대의 온갖 박해를 견디어 내고 있습니다. 또한 많은 이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충실히 따르려고 생명의 위협도 감수하고 있습니다. 저는 폭력과 불용을 겪는 개인, 가정, 공동체와 기도 안에서 함께하고 있음을 거듭 강조하며, 다시 한 번 예수님의 위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 16,33).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은 이러한 희망을 밝히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이 빠르게 퍼져나가 찬양을 받고’(2테살 3,1 참조), 이 신앙의 해로 주님이신 그리스도와 우리가 맺은 관계가 더욱 굳건해지기를 바랍니다. 오직 주 그리스도 안에서만 미래에 대한 확신과 참되고 영원한 사랑이 보장되기 때문입니다”(?믿음의 문?, 15항). 이는 올해 전교 주일에 제가 바라는 것이기도 합니다. 저는 선교사들, 그리고 세상 끝까지 복음을 선포해야 하는 교회의 이 근본 사명에 함께하고 도움을 주는 모든 이들을 진심으로 축복합니다. 우리는 복음의 봉사자이며 선교사로서 “즐거움과 위안을 주는 복음화의 기쁨”(?현대의 복음 선교?, 80항)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바티칸에서

2013년 5월 19일

성령 강림 대축일에

프란치스코





교황 베네딕토 16세 성하의 전교주일 담화(요약)


-“진리의 말씀을 널리 퍼뜨리십시오”(자의 교서 '믿음의 문', 6항)



12/10/21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올해 전교 주일에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개막 50주년을 맞아 신앙의 해가 시작되고 새로운 복음화를 주제로 세계 주교 대의원 회의가 열립니다. 이는 더 큰 용기와 열정으로 만민 선교에 투신하여 세상 끝까지 복음을 전하려는 교회의 의지를 다지는 좋은 기회입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의 선교적 본질을 교회론의 중심으로 삼는 데 커다란 기여를 하였습니다. 이러한 교회관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저는 신앙의 해를 선포하면서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오늘날에도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세상의 길들을 통하여 모든 민족들에게 당신 복음을 선포하도록 우리를 보내십니다.”(「믿음의 문」, 7항)

우리는 초기 그리스도인 공동체들이 지녔던 사도적 열정을 되살릴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은 힘없는 작은 공동체였지만 선포와 증언을 통하여 당시에 그들이 알던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선교는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맡기셨고, 하느님 백성 전체가 투신해야 하는 사명입니다. 선교 사명은 개별 교회의 존재와 활동 전체를 포함하여야 합니다. 특히 끊임없이 변화하는 우리 시대에, 교회의 생활 방식과 사목 계획, 교구 조직도 선교에 맞추어 끊임없이 쇄신되어야 합니다. 교회의 모든 구성원은 어디서나 그리스도를 선포하여야 합니다.

복음화를 위한 열정적인 투신을 가로막는 것은 대부분의 인류가 겪고 있는 신앙의 위기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느님을 목말라하고 갈망하는 인류를, 생명수로 초대하고 인도하여야 합니다. 마음의 갈증을 풀어 주시는 살아 계신 그리스도를 만나면, 그러한 현존의 기쁨을 다른 이들과 나누고 그분을 알려 모든 이가 이 기쁨을 체험하게 하려는 열망이 솟아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복음화에 대한 관심이 그리스도인의 교회 활동과 개인 생활의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곧 그들은 자신이 복음화의 대상이고 동시에 복음 선교사라는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선포의 핵심은 언제나, 세상 구원을 위하여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선포(케리그마)입니다.

신앙은 우리의 삶에서 받은 가장 중요한 선물이며, 이 선물은 우리만 간직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세계 각지의 수많은 사제와 수도자, 평신도, 심지어 온 가족이 고국을 떠나 다른 교회로 가서, 그리스도의 이름을 증언하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저는 세계 교회의 보편 선교에 협력하는 교황청전교기구들을 기억하고 감사를 드립니다. 그들의 활동으로, 복음 선포는 이웃을 돕는 발언이 되고, 가장 가난한 이들을 위한 정의가 됩니다. 또한 오지에 교육 기회를 주고, 벽지에 의료 지원을 하며, 가난에서 벗어나도록 돕고, 소외된 이들을 받아들이며, 민족들의 발전을 지원하고, 인종 갈등을 극복하며, 모든 단계의 인간 생명을 존중하게 해 줍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저는 특히 선교 일꾼들에게 성령께서 함께하시어, 하느님의 은총으로 선교가 세계의 역사 속에서 확고한 진전을 이루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교회의 어머니이시고 복음화의 별이신 동정 마리아께서 모든 복음 선교사들과 함께하시기를 빕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



교황 베네딕토 16세 성하의 전교주일 담화(전문)


-“진리의 말씀을 널리 퍼뜨리십시오”(자의 교서 '믿음의 문', 6항)

12/10/21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올해 거행하는 전교주일은 매우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개막 50주년을 맞아 신앙의 해가 시작되고 새로운 복음화를 주제로 세계 주교 대의원 회의가 열리기 때문입니다. 이는 더 큰 용기와 열정으로 만민 선교에 투신하여 세상 끝까지 복음을 전하려는 교회의 의지를 다지는 좋은 기회입니다.

세계 모든 곳의 가톨릭 주교들이 참석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 보편성의 참으로 빛나는 표징이었습니다.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 오세아니아에서 그토록 많은 공의회 교부들이 참석한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비그리스도인들 사이에 흩어져 사는 공동체의 목자들, 곧 선교사 주교들과 본토인 주교들은 모든 대륙에 존재하는 교회의 모습을 공의회에 전하며, 이른바 ‘제3세계’의 복잡한 현실을 알려 주었습니다. 그들은 하느님 나라를 전파하려는 열정을 지닌 신생 교회와 젊은 교회의 목자들로서 겪은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만민 복음화의 긴급한 필요성을 강조하여 교회의 선교적 본질을 교회론의 중심으로 삼는 데 커다란 기여를 하였습니다.

선교 교회론

이러한 교회관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이미 신학적이고 사목적으로 풍요로운 성찰을 거친 이 교회관은 아직도 그리스도를 모르는 이들이 많기에 다시금 절실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요한 바오로 2세 복자는 교회의 불변하는 선교 사명에 관한 회칙 ?교회의 선교 사명?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다.”고 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처럼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받았지만 여전히 하느님의 사랑을 모르고 사는 수많은 형제자매들을 생각하면 우리는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86항). 저 또한 신앙의 해를 선포하면서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과거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세상의 길들을 통하여 모든 민족들에게 당신 복음을 선포하도록 우리를 보내십니다”(?믿음의 문?, 7항). 하느님의 종 바오로 6세가 교황 권고 ?현대의 복음 선교?에서 말씀하셨듯이, 복음 선포는 “교회가 해도 좋고 안 해도 좋은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주 예수님의 명령으로 모든 이가 믿고 구원을 얻을 수 있도록 교회에 맡겨진 의무입니다. 이 메시지는 필요한 것일 뿐만 아니라 유일하며 대체될 수 없는 것입니다”(5항). 따라서 우리는 초기 그리스도인 공동체들이 지녔던 사도적 열정을 되살릴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은 힘없는 작은 공동체였지만 선포와 증언을 통하여 당시에 그들이 알던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그 뒤를 이은 교도권이 특별히 선교 사명을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이 선교는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맡기셨고, 주교, 사제, 부제, 수도자와 평신도, 곧 하느님 백성 전체가 투신해야 하는 사명입니다. 온 세상에 복음을 선포하는 임무는 그 누구보다 먼저 주교에게 있습니다. 주교단의 일원이며 개별 교회의 목자인 주교는 세계 복음화에 직접적인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사실 주교는 “한 교구만이 아니라 온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축성되었고”(?교회의 선교 사명?, 63항), “새로운 제자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신앙의 선포자”(선교 교령 20항)이며, “하느님 백성의 선교 정신과 열성을 마치 눈으로 볼 수 있듯이 드러내어, 온 교구가 선교하게 하여야 합니다”(선교 교령 38항).

최우선 과제인 복음화

따라서 복음 선포의 사명은 주교가 자신의 사목적 배려에 맡겨진 하느님 백성에게 관심을 기울이거나 교구 소속 선교 사제나 평신도들을 파견하는 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선교 사명은 개별 교회의 모든 활동과 분야, 다시 말해서 개별 교회의 존재와 활동 전체를 포함하여야 합니다. 이것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분명히 밝혔고 그 이후의 교도권도 강조한 것입니다. 특히 끊임없이 변화하는 우리 시대에, 교회의 생활 방식과 사목 계획, 교구 조직도 교회 존재의 이 근본 차원인 선교에 맞추어 끊임없이 쇄신되어야 합니다. 봉헌 생활회와 사도 생활단이나 교회 단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의 모든 구성원은 복음을 선포하라는 주님의 강력한 호소를 받아들여 어디서나 그리스도를 선포하여야 합니다. 우리 사목자들과 수도자들과 모든 그리스도 신자들은 “그리스도 예수님 때문에 이민족을 위하여 수인이 된”(에페 3,1) 바오로 사도의 발자취를 따라야 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민족들에게 복음을 전하려고 노력하고 고통 받고 싸웠으며(콜로 1,24-29 참조), 그리스도의 메시지를 알리는 데에 온갖 방법과 모든 시간을 아끼지 않고 온 힘을 다 쏟았습니다.

오늘날에도 만민 선교는 모든 교회 활동의 일관된 전망과 전형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의 정체성은 바로, 우리에게 구원을 가져다 주시려고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드러내신 하느님의 신비에 대한 믿음에 있고, 또한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주님을 증언하고 세상에 선포하는 사명에 있기 때문입니다. 바오로 사도처럼 우리도 멀리 있는 이들, 아직 그리스도를 모르고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을 체험해 보지 못한 이들에게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오늘날 선교 협력에는” 복음화를 위한 “경제적 지원뿐만 아니라 직접적 참여와 같은 새로운 형태들이 포함된다.”(?교회의 선교 사명?, 82항)는 것을 인식하여야 합니다. 신앙의 해를 거행하고 새로운 복음화에 관한 세계 주교 대의원 회의를 개최하는 것은, 특히 복음화에 직접 참여하는 선교 협력을 새롭게 시작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신앙과 선포

그리스도를 선포하려는 열정은 또한 우리가 역사를 이해하여 인류의 문제와 열망과 희망을 깨닫도록 촉구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분명히 인류를 치유하시고 정화하시고 당신의 현존으로 채워 주실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메시지는 언제나 시의적절하고 역사의 중심에 들어가 모든 인간 존재의 가장 심오한 의문에 답을 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교회의 모든 구성원은, “교회 사명의 광활한 지평과 오늘날의 복잡한 상황은 하느님의 말씀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새로운 방법들을 요청”(교황 권고 ?주님의 말씀?, 97항)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는 무엇보다도 “현재 인류가 겪고 있는 이 커다란 변화의 시기에”(?믿음의 문?, 8항) 개인과 공동체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더욱 충실히 믿고 따르도록 요청합니다.

사실, 복음화를 위한 열정적인 투신을 가로막는 것은 서양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인류가 겪고 있는 신앙의 위기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느님을 목말라하고 갈망하는 인류를, 야곱의 우물에 물을 길으러 왔다가 그리스도와 대화를 나눈 사마리아 여인처럼, 생명의 양식과 생명수로 초대하고 인도하여야 합니다. 요한 복음사가가 전한 대로 이 여인의 이야기는 특별한 의미를 지닙니다(요한 4,1-30 참조). 그 여인은 예수님을 만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여인에게 마실 물을 달라고 하시고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새로운 물에 관하여 말씀하십니다. 처음에 그 여인은 이해하지 못하고 물질적인 차원에 머물렀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 여인을 서서히 신앙의 여정으로 이끄시어 주님께서 메시아이심을 알아보도록 하셨습니다. 이에 관하여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주님이신 그리스도를 마음에 받아들인 그 여인이 물동이를 버리고 고을로 달려가 기쁜 소식을 전하지 않고 견딜 수 있었겠습니까?”(?설교집?, 15,30).

마음의 갈증을 풀어 주시는 살아 계신 그리스도를 만나면, 그러한 현존의 기쁨을 다른 이들과 나누고 그분을 알려 모든 이가 이 기쁨을 체험하게 하려는 열망이 솟아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랜 그리스도교 전통을 지녔지만 하느님을 잊어 가는 공동체와 국가들에서 새로운 복음화를 촉진하도록 신앙을 전하는 열정을 되살려, 그들이 신앙의 기쁨을 되찾게 하여야 합니다. 복음화에 대한 관심이 그리스도인의 교회 활동과 개인 생활의 뒷전으로 밀려 나서는 안 되고 오히려 그 활동과 생활의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곧 그들은 자신이 복음화의 대상이고 동시에 복음 선교사라는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선포의 핵심은 언제나 같습니다. 세상 구원을 위하여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선포(케리그마)입니다. 이는 모든 인간을 위한 하느님의 절대적이고 완전한 사랑의 선포입니다. 그 사랑은 당신의 영원하신 외아들 주 예수님을 보내 주신 사건에서 정점을 이룹니다. 주 예수님께서는 비천한 우리 인간 본성을 기꺼이 짊어지시고 사랑하시어 십자가 봉헌으로 우리를 죄와 죽음에서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이 사랑의 계획 안에서, 하느님에 대한 믿음은 무엇보다도 우리가 마음과 삶에 받아들여야 하는 선물이며 신비입니다. 이에 우리는 언제나 주님께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신앙은 나누라고 받은 선물입니다. 신앙은 열매를 맺도록 받은 탈렌트입니다. 신앙은 감추어질 수 없는 빛입니다. 그 빛이 온 집안을 비추어야 합니다. 신앙은 우리의 삶에서 받은 가장 중요한 선물이며, 이 선물은 우리만 간직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선포는 사랑이 됩니다

“내가 복음을 선포하지 않는다면 나는 참으로 불행할 것입니다”(1코린, 9,16). 바오로 사도의 이 말씀이 오늘날 온 세상의 모든 그리스도인과 모든 그리스도교 공동체에 힘차게 울리고 있습니다. 선교지 교회들은 대부분 최근에 생겨난 젊은 교회로서 여전히 선교사들을 필요로 하지만, 그들에게도 선교 의식은 공통된 본질이 되어 왔습니다. 세계 각지의 수많은 사제와 수도자, 평신도, 심지어 온 가족이 고국과 지역 공동체를 떠나 다른 교회로 가서, 인류에게 구원을 가져다주는 그리스도의 이름을 증언하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는 지역 교회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깊은 친교와 나눔과 사랑의 표현으로, 모든 사람이 구원의 복음을 듣고 또 들어 참 생명의 원천인 성사들을 받을 수 있게 해 줍니다.

사랑으로 변화된 이 탁월한 믿음의 표징을 보며, 저는 세계 교회의 보편 선교에 협력하는 교황청 전교 기구들을 기억하고 감사를 드립니다. 그들의 활동으로, 복음 선포는 이웃을 돕는 발언이 되고, 가장 가난한 이들을 위한 정의가 됩니다. 또한 오지에 교육 기회를 주고, 벽지에 의료 지원을 하며, 가난에서 벗어나도록 돕고, 소외된 이들을 받아들이며, 민족들의 발전을 지원하고, 인종 갈등을 극복하며, 모든 단계의 인간 생명을 존중하게 해 줍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저는 만민을 향한 복음화 사명에, 특히 선교 일꾼들에게 성령께서 함께하시어, 하느님의 은총으로 선교가 세계의 역사 속에서 확고한 진전을 이루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존 헨리 뉴먼 복자와 함께 다음과 같이 기도드립니다. “주님, 복음을 전하는 곳에서 선교사들과 함께 하시어 그들의 입에 올바른 말씀을 담아 주시고 그들의 노고가 열매를 거두게 해 주소서.” 교회의 어머니이시고 복음화의 별이신 동정 마리아께서 모든 복음 선교사들과 함께하시기를 빕니다.

바티칸에서

2012년 1월 6일

주님 공현 대축일에

교황 베네딕토 16세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전교주일 담화문


-선교, 세상의 생명을 위하여 나누어진 빵

05/10/23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1. 성체성사에 바쳐진 올해의 전교주일은, 우리가 예수님께서 당신을 세상에 내어주셨던 수난 전날 밤의 다락방의 분위기를 재현하면서 우리 삶의 ‘감사’의 의미를 더욱 잘 이해하도록 도와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잡히시던 날 밤에 빵을 손에 드시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다음 빵을 떼시고 ‘이것은 너희들을 위하여 주는 내 몸이니 나를 기억하여 이 예를 행하여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1고린 11,23-24).

저는 최근 발표한 교서 '주님 저희와 함께 머무소서'(Mane nobiscum Domine)에서, 인류 전체를 위하여 ‘빵을 나누시는’ 예수님을 묵상하도록 여러분에게 권고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모범을 따라 우리도 형제자매들, 특히 가장 가난한 이들을 위하여 우리 생명을 내어주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성체성사는 ‘보편성의 표지’를 지니고 있으며, “인간성을 나누어받은 모든 이가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새로 태어나 한 마음으로 하느님의 영광을 바라보며 ‘우리 아버지’ 하고 부를 수 있게”(선교 교령, 7항) 될 그 때를 성사를 통하여 예표합니다. 이렇게 성체성사는 선교의 의미를 더욱 완전하게 이해할 수 있게 도우면서, 모든 개별 신자, 특히 선교사가 ‘세상의 생명을 위하여 나누어진 빵’이 되게 합니다.

‘나누어진 빵’인 그리스도를 필요로 하는 인류

2. 오늘날 인간 사회는 비극적인 사건들에 휘청거리고 자연 재해의 참사에 산산조각이 나면서 어두운 그림자에 뒤덮여 있는 듯합니다. 그럼에도 “잡히시던 날 밤”(1고린 11,23)과 마찬가지로 오늘도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성찬례에서 “빵을 나누시고”(마태 26,26 참조) 모든 인류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나타내는 성사적 표징 아래서 당신을 내어 주십니다. 따라서 저는 “성체성사는 교회 생활에서 친교의 표현일 뿐만 아니라 전 인류를 위한 연대의 계획”('주님 저희와 함께 머무소서', 27항)이라고 강조하였습니다. 성체성사는 영원한 생명을 주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빵”(요한 6,33 참조)이며, 인간의 마음을 활짝 열어 커다란 희망을 품게 합니다.

성체성사 안에 현존하시며, “목자 없는 양과 같이 시달리며 허덕이는”(마태 9,36) 가난한 군중을 보시고 연민에 사로잡히셨던 바로 그 구세주께서는 가난하고 고통 받는 인류에게 수세기 동안 끊임없는 연민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바로 그분의 이름으로 사목 종사자들과 선교사들은 구원의 ‘빵’을 모든 사람에게 전달하기 위하여 미지의 길을 헤쳐 나가고 있습니다. 그들은 “교회의 역사뿐 아니라 인류 역사의 중심(에페 1,10; 골로 1,15-20 참조)”('주님 저희와 함께 머무소서', 6항)인 그리스도와 일치될 때 인간 마음의 가장 깊은 갈망을 충족시킬 수 있는 것을 알기 때문에 힘을 얻습니다. 예수님께서만 사랑에 굶주리고 정의에 목말라하는 인간의 갈망을 충족시켜 주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만 모든 인간이 영원한 생명에 동참할 수 있게 해 주실 수 있습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 온 살아 있는 빵이다. 이 빵을 먹는 사람은 누구든지 영원히 살 것이다”(요한 6,51).

그리스도와 하나 되어 ‘나누어진 빵’이 되는 교회

3. 특히 주님의 날인 주일에 성찬례를 거행하면서 교회 공동체는 신앙의빛 안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만나는 소중한 경험을 하며, 성찬의 희생 제사는 “많은 사람을 위하여”(마태 26,28) 바쳐진 것임을 더욱 깊이 깨닫게 됩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주님의 몸과 피를 자양분으로 하여 살아가는 우리는 이 ‘선물’을 우리만을 위하여 간직하고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 선물을 나누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 대한 열렬한 사랑은 그리스도를 용감하게 선포하도록 하고, 그러한 선포는 순교를 통하여 하느님과 인류에 대한 사랑의 최상의 봉헌이 됩니다. 성체성사로 우리는 더욱 정의롭고 형제애가 충만한 세상을 건설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투신하는 헌신적인 복음 선포자가 됩니다.

저는 모든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성체성사의 해를 계기로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형태의 가난 가운데 하나라도 형제적 관심을 가지고”('주님 저희와 함께 머무소서', 28항) 대응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서로 사랑하고 특히 가난한 사람들에게 관심을 보일 때에 우리는 그리스도의 참 제자로 인정받을 수 있기”(요한 13,35; 마태 25,31-46 참조) 때문입니다. “이것은 성찬례 거행의 진정성을 판단하는 기준이 될 것입니다”('주님 저희와 함께 머무소서', 28항).

세상의 생명을 위하여 ‘나누어진 빵’인 선교사들

4. 오늘도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제자들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마태 14,16)하고 촉구하십니다. 전 세계의 선교사들은 그분의 이름으로 복음을 선포하고 증언합니다. 그들의 노력 덕분에 “내가 바로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고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요한 6,35) 하신 구세주의 말씀이 다시 한 번 울려 퍼집니다. 선교사들도, 때로는 목숨을 바치기까지 하면서, 그들 형제들을 위하여 ‘나누어진 빵’이 됩니다.

우리 시대에도 얼마나 많은 선교사들이 순교를 하였습니까! 그들을 본보기 삼아 많은 젊은이들이 그리스도께 대한 영웅적인 충성의 길을 걸을 수 있기를 빕니다. 교회는 복음의 대의에 자신을 온전히 봉헌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필요로 합니다.

전교주일은 우리에게 지역 공동체와 여러 교회 기구들, 특히 교황청 전교기구와 선교회들이 수행하는 복음화 사명에 동참할 시급한 필요성을 일깨우는 좋은 계기입니다. 이러한 선교는 기도와 희생뿐 아니라 구체적인 물질적 봉헌으로도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저는 이 기회에 교황청 전교기구의 소중한 봉사를 다시 한 번 기억하며, 여러분께서도 정신적 물질적 협력으로 이들의 활동을 아낌없이 지원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하느님의 어머니 동정 마리아께서 우리가 다락방의 체험을 되살려 우리 교회 공동체가 참된 ‘가톨릭’ 공동체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빕니다. 참된 가톨릭 공동체는 “그리스도와 이루는 긴밀한 일치”인 “선교 영성”('교회의 선교 사명', 88항)이 “성체성사의 여인”('교회는 성체성사로 산다', 53항)이신 성모님을 본보기로 삼는 “성체성사의 영성”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는 공동체이며, 성령의 소리와 인류의 요구에 언제나 깨어 있는 공동체이고, 신자들, 특히 선교사들이 “세상의 생명을 위하여 나누어진 빵”으로 자신을 봉헌하는 데에 주저함이 없는 공동체입니다.

모든 분께 사도로서 축복을 보냅니다.

바티칸에서

2005년 2월 22일

성 베드로 사도좌 축일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

마태 28, 16-20; 2004/10/24

지난 주간에 사제 피정을 하면서 묵주기도의 신비를 묵상했다.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라는 관점에서 묵상을 하였다. 특별히 환희의 신비 4단과 5단이 새롭게 다가왔다. 예전까지는 그냥 예수님을 성전에 바치는 성모님과 성모님께서 하느님의 집인 성전에서 아기 예수를 찾으신 것을 묵상했지만, 이번엔 나와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바라볼 수 있었다.

그래서 4단에서 성모님께서 예수님을 아버지께 바치셨듯이 우리도 우리 자신을 주님께 바치고 살아가는데 우리가 주님께 살면서 바치는 것을 주님께서는 기꺼이 받아주시고 축복해 주신다는 것을 느꼈다. 우리가 바치는 것이 보잘것없어도 아주 작은 것도 주님께서는 기쁘게 받아주시고 흐뭇해하신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5단에서는 주님께서는 우리의 봉헌을 받아주시고 우리를 거룩하고 충만하게 해주신다는 것을 깨달았다. 주님께서는 작은 우리의 봉헌을 보시고는 커다란 은총으로 사람들 앞에 주님과 주님 복음의 증거자로 세워주신다는 것을 보았다. 주님은 사람들 앞에서 우리를 주님의 사제요 주님을 증거하는 신자들로 만들어 주신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되로 받으시고 말로 베풀어주시는 주님의 사랑이랄까, 주님께서는 우리를 한없이 사랑해주시고 우리의 아주 작은 봉헌에 비해 주님께서는 전적으로 모두를 베풀어주시고 계신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선배, 동료, 후배 신부님들과 피정을 함께하고 모임을 하면서 신자들과 함께할 때와는 또 다른 느낌으로 오랜만에 주님과 형제들 안에서 행복하고 편안했다. 그러면서도 좋은 소식을 들을 때는 좋았지만, 좋지 않은 소식을 들을 때는 마음이 무거워져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숙제를 주시고 풀어나가도록 요청하신다는 것을 느꼈다.

산소에도 갔었는데, 일년만에 할아버지 산소 오른쪽이 떼가 떨어져나가고 흙이 패인 것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다. 일년만에 이러니 내가 없으면 이 산소가 어떻게 될까 하는 마음에 우울하기도 했다.

마지막날 막내 동생이, "오빠, 뭐 필요한 것 없어?"하고 물을 때, 내가 "빨리 집에 가서 쉬고만 싶다."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동생이 으아해 하면서 "어디가 집이야?"하고 묻길래, 내가 "내가 일하는 곳이 내 집이지"하고 대답하자. 동생들이 서운해 하는 것 같았다. 일년 동안 해외에 나갔다가 집에 들어와서는 집에 간다고 하니 어이가 없었던 모양이다. 나도 나갈 때는 내가 미국에 파견 근무 왔다가 고국으로 돌아간다는 기분으로 한국에 들어갔는데, 정작 내 몸과 마음은 내가 한국에 여행갔다가 돌아오는 것이구나 하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오늘은 전교주일이다. 주님께서는 "너희는 가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내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것을 지키도록 가르쳐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19-20)고 하셨다.

우리는 살면서 오래 전에 우리가 태어나고 살았던 곳에서 떠나 왔고, 또 앞으로도 떠나갈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하늘나라로 떠날 것이다.

우리가 한 개인으로서는 각자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복음을 묵상하고 연구하고 잘 따라야 하겠지만, 동시에 우리가 일정기간 동안 한 곳에 머물러 살면서 그 곳에 함께 사는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복음을 함께 실천해 나가면서 하늘 나라의 영광을 드러내도록 해야겠다.

늘 우리와 함께해 주시면서 우리를 지켜주시고, 우리의 믿음과 봉헌을 받아주시고 우리를 거룩하게 해주시며 축복해 주시는 주님께 감사드리며, 하늘 나라의 영광을 드러내기로 하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성하의 2003년 전교주일 담화-"선교는 용서의 선포입니다."

2003/10/19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1. 저는 교황직을 시작할 때부터, 저의 교황직을 성모님의 특별한 가호에 맡기고자 하였습니다. 더 나아가 저는, 제자들이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를 비롯하여 ...... 마음을 모아 기도에 힘썼던”(사도 1,14) 다락방의 경험을 상기하도록 온 신자 공동체에 자주 요청해 왔습니다. 저의 첫 회칙 ?인간의 구원자?(Redemptor hominis)에서 이미 저는 열렬한 기도의 분위기에서만 우리는 “우리 위에 내려 오시는 성령을 받게 되고, 오순절에 예루살렘의 다락방을 뛰어나온 그들처럼 ‘땅 끝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의 증인이 될”(22항)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교회는, 성모님께서 어머니이시듯 자신도 ‘어머니’임을 더욱 깊이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2000년 대희년을 맞아 발표한 칙서 '강생의 신비'(Incarnationis mysterium)에서 지적하였듯이, 교회는 “마리아께서 예수님을 모든 민족의 흠숭과 묵상의 대상이 되게 하신 요람”(11항)입니다. 교회는 새로운 복음화의 별이시며 찬란한 새벽이시고 우리 발걸음의 확실한 안내자이신('새 천년기'[Novo Millennio ineunte], 58항 참조) 복되신 동정 마리아와 함께 이 영적 사명의 길을 계속 갈 생각입니다.

성모님과 묵주기도의 해의 교회의 사명

2. 지난 10월 저는 교황 재위 제25주년을 맞아, 대희년 영성의 지속으로서, 그리스도교 전통에 너무도 친숙한 묵주기도를 재발견하도록 하기 위한 특별한 해를 선포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신비로운 계획에 따라 하느님께 ‘순종’하심으로써 인류의 구원을 가능하게 하셨고 특히 삶의 가장 어려운 시기에 당신께 의지하는 사람들을 지금도 천상에서 잊지 않고 보호해 주시는 성모님께서 지켜 보시는 가운데 한 해를 보내게 됩니다.

저는 묵주기도의 해가 모든 대륙의 신자들에게 그리스도인의 소명의 의미를 심화시키는 좋은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복되신 동정 성모님을 배우고 그분의 모범을 따른다면 모든 공동체는 자신의 ‘관상적’이고 ‘선교적’인 활동을 더 잘 부각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이 특별한 성모님의 해가 끝나는 바로 그 시점에 거행되는 전교주일을 잘 준비한다면, 전교주일은 이러한 교회 공동체의 노력에 더욱 박차를 가하게 할 것입니다. 성모님을 믿고 의지하면서 날마다 묵주기도를 바치며 그리스도 생애의 신비를 묵상할 때 우리는 교회의 사명이 무엇보다도 기도에서 힘을 얻어야 한다는 것을 더욱 깊이 깨닫게 될 것입니다. 묵주기도를 바침으로써 길러지는 ‘경청’의 태도는 신자들을 “모든 일을 마음속 깊이 새겨 오래 간직하셨던”(루가 2,19) 성모님께 더 가까이 데려다 줍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자주 묵상할 때 우리는 “이를테면 성모님의 마음을 통하여 예수님과 생생하게 결합되어”('동정 마리아의 묵주기도'(Rosarium Virginis Mariae), 2항) 살아가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얼굴을 더욱 열심히 바라보는 교회

3. Cum Marie contemplemur Christi vultum! 성모님과 함께 그리스도의 ‘얼굴’을 바라보자는 이 말씀을 저는 자주 떠올립니다. 그리스도의 ‘얼굴’이라고 할 때, 그것은 무한한 영광이 빛나는(요한 1,14 참조) 성부의 외아들의 인간적인 모습을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얼굴에서 하느님의 영광이 빛납니다”('동정 마리아의 묵주기도', 21항). 그리스도의 모습을 바라봄으로써 우리는 내적으로 그분의 신비를 더욱 잘 이해하게 됩니다. 신앙의 눈으로 예수님을 바라봄으로써 우리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신비를 꿰뚫어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를 보았으면 곧 아버지를 본 것이다.”고(요한 14,9) 말씀하십니다. 묵주기도를 드리면서 우리는 “지극히 거룩하신 성모님과 일치하여, 성모님의 학교에서”('동정 마리아의 묵주기도', 3항) 이 신비의 여정을 계속합니다. 사실, 성모님께서는 우리의 스승이시며 안내자이십니다. 성령의 활동에 힘입어, 성모님께서는 우리가 신자로서 다른 사람들에게 예수님께 대한 체험과 우리에게 동기를 주는 희망에 대하여 말해 줄 수 있는('교회의 선교 사명'(Redemptoris misssio), 24항 참조) ‘차분한 용기’를 얻게 해 주십니다.

비할 데 없는 모범이신 성모님을 언제나 바라봅시다. 모든 복음 말씀은 성모님을 통하여 놀라운 반향을 얻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우리 사회에 더욱 깊은 영향을 미치고자 신랑이신 그리스도와 깊이 일치되기를 갈망하며 살아가는 교회가 관상하는 ‘기억’이십니다. 심각한 문제들, 무고하게 고통받는 사람들, 무례함과 오만함으로 저질러지는 불의에 우리는 어떻게 대처하여야 하겠습니까? 우리의 어머니이신 성모님의 순종을 본받을 때 신자들은 외견상의 ‘하느님의 침묵’ 속에서 우리 구원을 위하여 조용히 울려 퍼지는 말씀을 알아들을 수 있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얼굴을 닮아가고 사랑하는 더욱 거룩한 교회

4. 세례를 통하여 모든 신자는 성덕으로 부름 받았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 '인류의 빛'(Lumen Gentium)에서, 성덕에 대한 보편적 소명은 모든 사람을 사랑의 완덕으로 부르는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성덕과 선교는 세례 받은 모든 신자의 불가분의 소명입니다. 더욱 거룩해지려는 노력은 구원의 메시지를 전파하려는 노력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교회의 선교 사명'에서 저는 “모든 신자는 성덕과 선교로 부르심을 받았다.”(90항)고 상기시킨 바 있습니다. 묵주기도의 신비를 묵상하면서 신자들은 그리스도를 따르고 그분의 삶에 동참함으로써 바오로 성인의 말씀대로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가 내 안에서 사신다.”(갈라 2,20)고 말할 수 있게 됩니다.

묵주기도의 모든 신비가 성덕과 복음화를 가르쳐 주는 중요한 학교라면, 빛의 신비는 우리 복음의 ‘골자’인 특별한 장면들을 부각시킵니다. 예수님께서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받으신 것은 세례 받은 모든 신자가 “성자 안에서 하느님의 자녀”가 되도록(에페 1,5; 사목 헌장, 22항 참조) 선택받았음을 상기시켜 줍니다.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성모님께서는 하인들에게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고(요한 2,5) 이르시며,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따르라고 당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고 회개를 권유하셨던 것은 성덕의 길을 추구하라는 명백한 명령입니다. 세례 받은 신자는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변모를 묵상하며 그분을 기쁘게 기다립니다. 또한 성체성사의 제정을 묵상하면서 신자들은 거룩하신 스승께서 제자들에게 당신의 가장 소중한 선물을 남기신 다락방을 자주 떠올리게 됩니다. 그 선물이란 바로 제대의 성체 안에 계신 그리스도 자신이십니다.

복되신 동정 성모님께서 가나에서 하신 말씀은, 어떤 의미에서, 빛의 신비 전체가 펼쳐지는 마리아 배경이 됩니다. 사실상,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선포와 회개와 용서에 대한 촉구, 다볼산에서의 영광스러운 변모와 성체성사의 제정은 성모님의 마음을 통하여 특별한 반향을 얻습니다. 성모님께서는 그리스도께 시선을 고정시키시고 그분의 모든 말씀을 소중히 간직하시며 우리에게 당신 아드님의 참된 제자가 되는 법을 보여 주십니다.

그리스도의 얼굴을 선포하는 더욱 선교적인 교회

5. 사회 커뮤니케이션 수단의 발달로 교회가 예수님을 선포할 수 있는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습니다. 따라서 오늘날 교회는 더욱 빛나는 성덕으로 신랑이신 그리스도의 얼굴을 비추도록 요구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힘든 노력에서, 교회는 성모님의 도움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성모님에게서 교회는 배필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완전히 헌신하는 ‘동정녀’가 되고 많은 자녀들을 영원한 생명으로 태어나게 하는 ‘어머니’가 되는 법을 ‘배웁니다.’

어머니의 주의 깊은 눈길 아래, 교회 공동체는 성령을 가득 받아 다시 태어난 가정처럼 번성하고, 새로운 복음화의 도전을 받아들이면서 형제 자매들, 특히 가난하고 궁핍한 사람들과 신앙과 복음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 안에서 예수님의 자비로운 얼굴을 바라봅니다. 특히 교회는 그리스도야말로 “길이요 진리요 생명”(요한 14,6)이심을 용감하게 소리 높여 세상에 외칩니다. 교회는 “사람이 되신 말씀이시며 유일한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가르침이 바로 기쁜 소식의 핵심”('동정 마리아의 묵주 기도', 20항)임을 담대하게 즐거이 선포합니다.

유능하고 거룩한 복음 선포자들을 양성하여야 합니다. 특히 만민 선교에 대한 사도들의 열정이 식지 않도록 하여야 합니다. 묵주기도는, 온전히 재발견되고 평가받는다면, 방대한 사도직 활동 분야에서 일할 하느님 백성을 양성시켜 줄 일상적이면서도 효과적인 교육적 영성적 도구가 됩니다.

분명한 명령

6. 선교 활성화의 임무는 세례 받은 모든 신자와 모든 교회 공동체의 진지하고 일관된 의무가 되어야 합니다. 교황청 전교 기구는 분명 구체적이고 특별한 역할이 있으며, 저는 헌신적으로 그 역할을 수행하는 교황청 전교 기구에 감사 드립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에게, 교회와 인류가 특별히 필요로 하는 은총을 주님께 얻을 수 있도록 개인으로나 공동으로 열심히 묵주기도를 바칠 것을 권유하고 싶습니다. 이는 어린이, 어른, 젊은이, 노인, 가정, 본당, 수도 공동체 할 것 없이 모든 사람에게 드리는 권유입니다.

여러 가지 지향 가운데서도 저는 평화에 대한 지향을 잊지 않고자 합니다. 전쟁과 불의의 근원은 ‘갈라진’ 마음에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신비를 이해하는 사람은 누구나 평화의 비결을 알게 되고 이를 자기 삶의 목표로 삼습니다. 이는 또한 묵주기도의 목표이기도 합니다”('동정 마리아의 묵주기도', 40항). 묵주기도가 우리 생활의 일부가 된다면, 사람들의 마음과 가정 안에, 그리고 민족들간에 평화를 건설하는 특별한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성모님과 함께, 우리는 그 아드님이신 예수님에게서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성모님의 도움을 받아, 우리는 땅 끝까지 기쁜 소식을 전파하는 일에 주저 없이 헌신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으로 여러분을 모두 진심으로 축복합니다.

바티칸에서

2003년 1월 12일

주님 세례 축일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성하의 전교주일 담화-"선교는 용서의 선포입니다."

2002/10/20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1. 교회의 복음화 사명의 본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인류에게 보여 주신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와 용서를 선포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하느님의 사랑의 자비 안에 모든 사람이 일치되기를 바라시며, 하느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시듯이 우리도 우리에게 큰 잘못을 저지른 이들을 용서하기를 바라신다는 기쁜 소식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바오로 성인께서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죄를 묻지 않으시고 그리스도를 내세워 인간과 화해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화해의 이치를 우리에게 맡겨 전하게 하셨습니다."(2고린 5,19)고 말씀하신 것처럼, 이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화해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십자가 위에서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루가 23,34)고 하셨던 그리스도의 저 마지막 진솔한 외침을 되풀이하여 상기시켜 줍니다.

종합적으로, 우리가 올해 10월 20일에 "선교는 용서의 선포입니다."라는 고무적인 주제로 거행하게 될 전교 주일의 근본적인 내용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전교 주일은 해마다 찾아오지만, 그 특별한 의미와 중요성은 시간이 흘러도 조금도 줄어들지 않습니다. 선교는 예수님의 지상 명령에 응답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가서 이 세상 모든 사람을 내 제자로 삼아 ……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것을 지키도록 가르쳐라"(마태 28,19).

2. 그리스도교 제삼천년기를 시작하는 지금, 선교의 의무는 더욱 절실해집니다. 제가 회칙 [교회의 선교 사명](Redemptoris Missio)에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그리스도를 모르고 교회에 속하지 않은 사람의 수는 계속 증가하고 있으며, 공의회 폐막 이후 거의 두 배가 증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사랑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당신 아들을 파견하신 인류의 거대한 부분을 보면 교회의 선교가 긴급함을 알 수 있습니다."(3항)

위대한 사도이며 복음 선포자인 바오로 성인의 말씀을 우리도 따라야 합니다. "내가 복음을 전한다 해서 그것이 나에게 자랑거리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나에게 화가 미칠 것입니다. …… 하느님께서 그 일을 내 직무로 맡겨 주신 것입니다"(1고린 9,16-17). 인종과 민족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을 형제 자매로 만들어 주시는 하느님의 사랑만이 분열의 상처와 이념적 갈등, 경제적 불균형, 아직도 인류를 짓누르고 있는 폭력을 치유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지난 세기를 피로 물들였던 끔직한 전쟁과 혁명들, 그리고 안타깝게도 아직도 거의 고질적으로 세계를 괴롭히고 있는 분쟁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또한 비참한 정신적 물질적 가난 중에도 하느님과 그분의 사랑의 자비를 애타게 목말라 하는 사람들의 염원 또한 부인할 수 없습니다. 복음을 선포하라는 주님의 부르심은 오늘날에도 유효할 뿐 아니라 어쩌면 훨씬 더 절실합니다.

3. 저는 교황 교서 [새 천년기](Novo Millennio Ineunte)에서 고통과 영광의 그리스도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리스도교 메시지의 핵심은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를 선포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의 고통스러운 얼굴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그분의 마지막 시간에 십자가 위에 드러난 그분 신비의 가장 역설적인 측면과 마주치게 됩니다"(25항). 하느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우리에게 당신의 모든 사랑을 드러내 보여 주셨습니다. 십자가는 "이 세상의 지혜나 이 세상에서 곧 멸망해 버릴 통치자들의 지혜와는 다른 …… 하느님께서 미리 마련하여 감추어 두셨던 심오한 지혜"(1고린 2,6.7)에 자유로이 다가서게 해 주는 열쇠입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얼굴이 이미 비치고 있는 십자가는 우리를 충만한 신앙 생활과 완전한 사랑으로 이끕니다. 십자가는 당신의 생명 자체와 당신의 사랑, 당신의 거룩함을 인간과 나누고자 하시는 하느님의 바람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교회의 신비에 비추어 볼 때,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같이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라."(마태 5,48) 하신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는 것은 충만한 신앙 생활, 곧 완전한 사랑과 성덕에 이르지 못하면 교회의 사명은 의미가 없다는 것을 더욱 분명하게 이해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겸손과 용서를 실천하며 평화와 친교를 이루어 살아가는 것을 배웁니다. 이것은 바오로 성인이 경험하였던 것이기도 합니다. 그는 에페소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을 위해서 일하다가 감옥에 갇힌 내가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불러주셨으니 그 불러주신 목적에 합당하게 살아가십시오. 겸손과 온유와 인내를 다하여 사랑으로 서로 너그럽게 대하십시오. 성령께서 평화의 줄로 여러분을 묶어 하나가 되게 하여 주신 것을 그대로 보존하도록 노력하십시오"(에페 4,1-3). 바오로 성인은 골로사이인들에게 이렇게 덧붙입니다. "여러분은 하느님께서 뽑아주신 사람들이고 하느님의 성도들이며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백성들입니다. 그러니 따뜻한 동정심과 친절한 마음과 겸손과 온유와 인내로 마음을 새롭게 하여 서로 도와주고 피차에 불평할 것이 있더라도 서로 용서해 주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해야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사랑을 실천하십시오. 사랑은 모든 것을 하나로 묶어 완전하게 합니다. 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을 다스리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려고 여러분은 부르심을 받아 한 몸이 된 것입니다"(골로 3,12-15).

4.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십자가 위에서 하신 예수님의 외침은 절망에 빠진 인간의 고통이 아니라 모든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성부께 당신 생명을 바치신 성자의 기도입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용서의 조건들을 보여 주십니다. 당신을 십자가에 못박은 박해자들의 증오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위한 기도로 응답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용서하실 뿐 아니라 변함 없이 그들을 사랑하시고 그들의 유익을 바라시며 그들을 위하여 중개하십니다. 그분의 죽음은 완전한 사랑의 실현이 되었습니다.

십자가의 위대한 신비 앞에서 우리는 무릎을 꿇고 경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에게 아버지의 얼굴을 보여 주시고자 인간의 얼굴을 받아들이셨을 뿐만 아니라 죄의 '얼굴'을 덮어쓰셔야 하셨습니다. '우리를 위해서 하느님께서는 죄를 모르시는 그리스도를 죄 있는 분으로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께 무죄 선언을 받게 되었습니다'(2고린 5,21)"([새 천년기], 25항). 그리스도의 완전한 용서는, 그분을 박해한 사람들에게도, 모든 이를 위한 하느님 나라의 새로운 정의의 시작입니다.

최후의 만찬에서 구세주께서는 사도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주겠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세상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요한 13,34-35).

5.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에게 평화를 주십니다. 주님의 계명에 충실한 교회는 끊임없이 주님의 평화를 선포하고 전파합니다. 신자들은 복음화 활동을 통하여, 사람들이 우리는 모두 한 형제 자매이며 지상의 순례자로서 걷는 길은 서로 다르더라도 모두 같은 고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도록 돕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방법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끊임없이 이 길을 가르쳐 주십니다. 성실한 대화는 선교의 주요 방법입니다(선교 교령, 7항; 비그리스도교 선언, 2항 참조). "대화는 교활한 계략이나 이기적 관심에서 나올 수 없으며"([교회의 선교 사명], 56항), 그 자체로 목적이 될 수도 없습니다. 그 대신, 대화는 우리가 믿는 원칙들을 설명하고 기쁨과 희망과 삶의 의미라는 신앙의 가장 심오한 진리들을 사랑으로 선포하며, 다른 이들을 존중하고 이해하면서 말을 건넵니다. 사실 대화는 "내적 정화와 회심으로 이끄는" 영적 자극의 실현으로서, "성령께 대한 순종으로 이런 것을 추구하면 영적으로 유익할 것입니다"([교회의 선교 사명], 56항). 진지하고 정중한 대화를 위한 노력은 하느님의 구원의 사랑을 참되게 증언하는 데에 결코 없어서는 아니 될 조건입니다.

대화는 기꺼이 용서하는 마음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용서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열고 남들과 조화를 이루어 그들을 사랑하고 이해하는 법을 배우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본받는 용서의 행위는 마음을 두드려 열어 주며, 죄와 분열의 상처를 치유하고, 참된 친교를 이루어 주기 때문입니다.

6. 전교 주일의 거행은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무한하신 사랑의 요구 앞에서 자신을 성찰하는 기회가 됩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믿음을 요구하며, 하느님께 우리의 모든 신뢰를 두도록 촉구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로 가까이 가는 사람은 하느님이 계시다는 것과 하느님께서 당신을 찾는 사람들에게 상을 주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히브 11,6).

해마다 거행되는 전교 주일에 우리는 선교를 위하여 끊임없이 기도하고 "영원하고 보편된 나라, 진리와 생명의 나라, 거룩함과 은총의 나라, 정의와 사랑과 평화의 나라"(그리스도왕 대축일 감사송)인 하느님 나라를 온 세상에 세우기 위하여 일하는 교회의 활동에 모든 방법으로 협력하도록 부름받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그리스도와 그분의 복음을 온전히 따르고 있다는 것을 무엇보다도 우리의 삶을 통하여 증언하도록 부름받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복음을 부끄러워해서는 안 되며, 신앙을 숨기고 우리가 그리스도인임을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우리는 더욱 널리 구원을 선포하는 노력을 계속하여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시겠다고 약속하셨으며 실제로 언제나 당신 제자들 가운데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전교 주일은 우리의 개인적 공동체적 소명의 가치를 발견하도록 도와 주며, 세상 모든 곳의 선교사들을 통하여 "가장 보잘것없는 형제들"(마태 25,40 참조)에게 다가가도록 우리를 재촉합니다. 이것은,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들에게도 말씀의 빵을 나누어주고 구세주의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끊임없는 사랑의 선물을 전달해 줄 사람들이 부족하지 않도록 하면서 언제나 교회의 선교를 위하여 일해 온 교황청 전교회의 임무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이러한 복음 선포 노력과 교회의 모든 복음화 활동을 선교의 모후이신 지극히 거룩하신 성모님께 맡겨 드립시다. 인류를 용서하시고 평화를 주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발견하고 선포하고 증언하는 우리의 여정에 성모님께서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이러한 마음을 안고 저는 온 세상의 모든 선교사들에게, 또 선교사들을 위하여 기도하며 형제로서 도와 주는 사람들에게, 오랜 전통의 교회와 새로 세워진 그리스도인 공동체들에게 기쁜 마음으로 사도로서 축복을 보내 드리며, 주님의 무한한 보호가 언제나 여러분과 함께 하기를 기도합니다.

바티칸에서, 2002년 5월 19일,

성령 강림 대축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2002년 주교회의 복음화위원장 담화문 -'우리는 선교사'

2002/10/20

친애하는 420만 교형자매 여러분!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서의 소임을 마치시고 승천하시기 전 당신의 제자들에게 "너희는 가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내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어라"(마태 28,19)하고 명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주님께서 우주적 통치권을 가지시고 온 누리에 선교함으로써 교회 공동체를 건설하라는 뜻입니다. 아울러 이것은 우리 모두에게 내리신 선교 사명입니다. 그리스도 신자란 하느님으로부터 이 세상을 하느님의 뜻에 맞는 세상으로 만들라는 사명을 떠맡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뿐 아니라 전세계의 구원에 대하여도 책임과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이렇게 그리스도 신자로 부름 받은 우리는 또한 선교사로 부름 받은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선교사인 것입니다.

선교 공동체인 교회는 우리가 실현해야 할 선교 사명을 위해 교형자매들에게 다음과 같이 권유합니다.

첫째, 교회 활력의 표지인 선교에 열정을 가지도록 합시다. 교회를 새롭게 하고 새로운 열성과 자극을 주는 것은 무엇입니까? 선교입니다. 신자 수가 줄고 열성이 식고 냉담자가 늘며 갈등이 생기는 가장 큰 이유는 선교 열정의 감퇴에 있다고 하겠습니다. 지난 6월에 개최되었던 월드컵 축구대회를 되새겨 보십시오. 모두가 한 마음으로 '대~한민국'을 외치며 온 나라 전체를 신명나고 뜨거운 감동의 소용돌이로 변화시켰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잠재된 열정과 적극적인 사고방식에서 기인된 기적이고 신화였던 것입니다.

둘째, 선교에 있어 사제와 수도자, 평신도는 동반자가 되어야 합니다. 연대 의식과 친화력은 훨씬 많은 열매를 맺게 합니다. 한국 천주교회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선교사가 찾아오기 전에 이미 평신도의 자발적인 선교로써 시작되었습니다. 오늘날의 평신도 여러분들께서도 자율적이고 창의적으로 꾸준히 선교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 본당의 사제, 수도자와 함께 21세기의 새로운 한국 교회를 위하여 보다 열성적이며 적극적으로 선교에 헌신하도록 합시다.

셋째, 사제·수도자·평신도가 하나가 되어 적극적으로 이웃을 찾아 가도록 합시다. 선교, 이제 앉아서 기다릴 수만은 없습니다. 선교는 직접 복음을 전달하는 활동이며, 초자연적 신앙의 은혜를 주는 사도직의 수행이며, 예수님과 사도들이 함께 하신 활동입니다. 오순절 날 사도들을 파견하신 성령께서 우리를 교회 밖으로 파견하시기에, 언제 어느 곳에서든지 찾아가 교회 안내용 홍보물을 나누어 주거나 호소력 있는 대화와 만남으로 복음의 씨앗을 뿌립시다. 그리하여 누구나 갖고 있는 종교심을 일깨워 주도록 합시다. 믿음은 그리스도를 전하는 말씀에서 비롯됩니다. 말씀으로 설명되지 않고서는 참된 복음 선교란 있을 수 없습니다. 성령의 능력을 받고 있는 우리는 교회의 문턱을 낮추고 세상의 구원을 위해 대담하게 나아갑시다.

넷째, 새로운 의사 소통의 기술인 인터넷의 바다에 뛰어들어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합시다. 지금은 인터넷의 시대입니다. 인터넷은 사회 커뮤니케이션의 혁명입니다. 우리 한국의 정보 기술은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좋은 기술을 가진 우리 교형자매님들께서는 이 시대 "하느님의 선물이며, 현대의 첫째가는 아레오파고인 인터넷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얼굴이 드러나고 그리스도의 목소리가 들릴 수 있도록 구원의 기쁜 소식을 알려 주도록 합시다"(교황 요한 바오로 2세 홍보주일 담화).

다섯째, 해외 선교사들에게 영적, 물적으로 격려와 후원을 보내도록 합시다. 역동적인 한국 교회는 아시아 교회의 희망이며 미래입니다. 교황님께서도 아시아 선교를 한국 교회에 맡긴다고 하셨습니다. 이제는 한국 교회가 세계 어느 나라에나 사제와 수도자를 파견할 수 있는 '만민 선교'의 교회가 되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좀 도와주십시오."(사도 16,18) 라고 간청하는 민족들을 찾아가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열렬히 선교하는 우리의 장한 선교사들에게 영적·물적으로 격려와 후원을 보내도록 합시다.

420만 형제 자매 선교사 여러분!

교회의 핵심적인 소명은 선교입니다. 선교사인 우리 모두는 주님의 얼굴입니다. 힘찬 선교 열정으로 새롭게 깨어납시다.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라."고 하시는 주님의 이 호소에 응답합시다.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입니다.

2002년 전교의 달에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복음화위원회 위원장 경갑룡 주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성하의 전교주일 담화

2001/10/21

하느님의 사랑을 영원토록 노래하리라(시편 89[88], 2).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1. 온 교회에 은총의 시간이었던 구원의 대희년을 우리는 충심으로 기뻐하며 경축하였습니다. 신자 개개인이 경험하였듯이 하느님의 자비가 우리를 "깊은 데로 가도록" 재촉하여,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제나 오늘이나 또 영원히 변하지 않으시는 분"(히브 13,8)이심을 확신하며 감사의 마음으로 과거를 회상하고, 열정적으로 현재를 살며, 신뢰의 마음으로 미래를 바라봅니다(교황 교서, [새 천년기][Novo Millennio ineunte], 1항 참조). 이러한 미래 지향적인 자세는 새 천년기에 모든 교회 활동의 토대가 되어야 합니다. 미래는 희망으로 빛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10월 21일에 거행될 전교주일을 맞아 제가 모든 가톨릭 신자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입니다.

2. 이제는 정말 우리의 눈을 예수님께 고정시키고 미래를 바라볼 때입니다(히브 12,2 참조).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우리의 생각을 우리 앞에 펼쳐진 미래로 향하게 하고"([새 천년기], 3항) 그리스도를 증언하고 선포하며,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하신 '놀라운 일들'에 대하여 감사하며 '하느님의 사랑을 영원토록 노래하라.'(시편 89,2)고 촉구하십니다"([새 천년기], 2항). 지난 해 전교주일에 저는 선교에 대한 투신은 예수님을 열렬히 관상하는 데서 생겨난다고 일깨워 드린 바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관상해 온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분의 광채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없고([축성 생활][Vita consecrata], 14항 참조) 인류의 유일한 구세주이신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언하는 일에 투신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님의 얼굴을 바라봄으로써 제자들은 이 시대 사람들의 모습을 주시하게 됩니다. 실제로 주님께서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 것없는 사람"(마태 25,40.45 참조)과 당신을 동일시하셨습니다. '최초의 가장 위대한 복음 전파자'([현대의 복음 선교][Evangelii Nuntiandi], 7항)이신 예수님을 바라봄으로써 우리도 복음 전파자로 변화됩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아버지께서 당신께 맡기신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고자 하시는 예수님의 바람을 깨닫게 됩니다(요한 17,2 참조).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다 구원을 받게 되고 진리를 알게 되기를"(1 디모 2,4) 바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다른 고을에도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 당신에 대한 아버지의 뜻임을 아시고, "하느님께서는 이 일을 하도록 나를 보내셨다."(루가 4,43)고 말씀하십니다.

"형제 중에 가장 보잘 것없는 사람"을 바라봄으로써 우리는 모든 사람이 자신을 창조하시고 사랑하시는 하느님을 신비한 방식으로 찾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예수님의 첫 제자인 베드로는 이 사실을 알고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모두들 선생님을 찾고 있습니다"(마르 1,37). '그리스인들'은 미래 세대를 대신하여 이렇게 외칩니다. "예수님을 뵙게 하여 주십시오"(요한 12,21). 그렇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모든 사람을 비추시는 참 빛이십니다(요한 1,9 참조). 인류는 자신들도 그 근원을 알지 못하는 내적인 힘에 이끌려 하느님을 '더듬어'(사도 17,25) 찾고 있습니다. 내부에서 끌어당기는 그 힘은 보편적 구원에 대한 열망이 고동치는 그곳 하느님의 심장 안에 숨어 있습니다. 그 힘으로써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증인이자 전달자로 만드십니다. 이를 위하여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새로운 성령 강림에서처럼 성령의 불과 당신 사랑, 그리고 "내가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20)고 하셨듯이 당신의 현존으로 우리를 채워 주십니다.

3. 대희년의 또 다른 성과는 주님께서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요구하시는 태도, 곧 믿음과 바람으로 앞을 내다보는 태도입니다. 명예롭게도 주님께서는 자비를 보여 주시며 우리 안에 당신께 대한 신뢰를 심어 주시고 각자의 직분으로 우리를 부르십니다(1디모 1,12.13 참조). 이러한 부르심은 소수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생활 신분에 따라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교황 교서 [새 천년기]에서 저는 이렇게 썼습니다. "이러한 열정은 교회 안에 새로운 선교 의식을 불러일으킬 것입니다". 선교는 '전문가들'에게만 맡겨둘 수 없는 것입니다. 하느님 백성의 모든 구성원에게 선교의 책임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진정한 만남을 가진 사람들은 그분을 자기 안에만 가두어 둘 수 없으며, 그분을 선포해야만 합니다. 새로운 사도적 활동이 요구되는데, 이것은 그리스도인 공동체와 단체가 기울이는 매일의 노력으로 실천될 것입니다. …… 확신을 가지고 모든 사람에게 그리스도를 알려야 합니다. 우리는 어른과 가족들, 젊은이와 어린이에게 복음의 메시지를 전할 때 그것의 근본적인 요구들을 감추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어떤 사람을 대하든지 그들처럼 된 것은 어떻게 해서든지 그들 중에서 다만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려고 한 것입니다."(1고린 9,22) 하고 말한 바오로의 모범을 따라, 각 사람의 요구와 그들의 감수성, 언어 등을 고려하여야 합니다(40항).

선교에 대한 부르심은 특히 아직도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거나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을 볼 때 특별한 절박성을 띠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만민(ad gentes) 선교는 오늘날 그 어느 때보다 타당성을 지닙니다. 저는 순례 여행 동안 지켜 볼 수 있었던 인류의 모습을 제 마음 깊이 새겨 두고 있습니다. 그것은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의 얼굴에 반영된 그리스도의 얼굴이며, '목자 없는 양'(마르 6,34)처럼 사는 사람들 속에 비친 그리스도의 얼굴입니다. 모든 사람은 '여러 가지'(마르 6,34)를 배울 권리가 있습니다.

인간의 명백한 연약성과 불완전성에 직면하여 사도에게서도 볼 수 있는 인간적 유혹은 사람들을 멀어지게 합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에 예수님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우리 각자는 "그들을 보낼 것 없이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하신(마태 14,16; 마르 6,37 참조) 예수님의 말씀에 다시 한 번 귀기울여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인간의 나약함과 주님의 은총을 동시에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안에 깊이 새겨진 어쩔 수 없는 나약함을 깨닫고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해 주신 것과 또 당신 은총으로 우리에게 해 주실 모든 것에 감사를 드려야 할 필요를 느낍니다.

4. 이러한 상황에서, 만민(ad gentes) 선교와 평생(ad vitam) 선교를 자신의 존재 이유로 삼아 온 모든 선교사, 사제, 수도자, 평신도들을 어찌 기억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들은 삶 자체로써 '하느님의 은총을 영원토록'(시편 88) 선포합니다. 이 '영원토록'은 흔히 피를 흘릴 지경에까지 이른 경우가 많았습니다. 지난 세기에 얼마나 많은 '신앙의 증인들'이 있었습니까! 하늘 나라가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그들의 아낌없는 자기 봉헌 덕분입니다. 우리는 기도 안에서 그들을 기억하며 감사 드립니다. 그들의 모범은 모든 신자에게 자극과 힘이 되어, 자신들이 '수많은 증인들에게 구름처럼 둘러싸여'(히브 12,1) 있는 것을 보고 용기를 얻게 합니다. 그 증인들은 말과 행동으로 모든 대륙에 복음이 울려 퍼지게 하였고 계속해서 울려 퍼지게 합니다.

그렇습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는 우리가 보고 들은 것에 대하여 침묵해서는 안 됩니다(사도 4,20 참조). 우리는 성령의 활동과 하느님의 은총이 나약함 속에서 드러나는 것을 보았습니다(2고린 12; 1고린 1 참조). 오늘날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헌신적인 희생으로 우리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설득력 있게 드러내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들에게서 우리는 믿음을 얻고, 대신에 신비의 선포자이자 증인이 되도록 촉구받고 있습니다.

5. 선교는 '모든 사람을 위한 선물, 그리고 각 사람의 자유를 최대한 존중하며 모든 사람에게 제시되는 선물' 곧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 주신"(요한 3,16) 하느님, 사랑이신 하느님의 계시의 선물에 대한 기쁜 선포입니다. …… 그러므로 교회는 세상 만민에 대한 선교 활동을 멈출 수 없습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요한 14,6)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선포하는 것은 만민 선교의 일차적 임무입니다?([새천년기], 56항). 이것은 모든 사람에 대한 초대이며, 즉각적이고 아낌없는 대답을 요구하는 절박한 부르심입니다. 우리는 출발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처럼, 천사가 알려준 첫 소식에 이끌린 목자들처럼, 부활하신 주님을 본 막달라 여자 마리아처럼 지체없이 출발하여야 합니다. '새로운 세기를 시작하는 우리는 세상의 길을 걸으며 우리의 발걸음을 재촉하여야 합니다. ……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다시 한 번 다락방에서 당신을 만나도록 요청하십니다. "안식일 다음날"(요한 20,19) 저녁 그리스도께서는 다락방에 모여 있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그들에게 생명을 주는 성령을 "불어넣어 주시고" 복음을 선포하는 위대한 모험에 나서게 하셨습니다([새천년기], 58항).

6.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선교는 기도와 구체적인 투신을 요구합니다. 구석 구석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서는 많은 것이 요구됩니다.

올해는 교황 비오 11세께서 전교 주일을 제정하신 지 75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교황 비오 11세께서는 교황청 전교회의 요청을 받아들여 "하루를 선교를 위하여 기도하는 날로 정하고 모든 교구와 본당, 가톨릭 기관에서 같은 날에 이를 거행하고 …… 선교 헌금을 권장하도록 하였습니다"(예부성성: 전교 주일 제정, 1926년 4월 14일. 사도좌 관보[AAS] 19(1927), 23항 이하). 그 때부터 전교 주일은 모든 하느님 백성이 선교 명령의 영구한 효력을 기억하는 특별한 기회가 되었습니다. "선교 활동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일이며 모든 교구와 본당과 교회 기관과 단체의 일"(회칙 [교회의 선교 사명][Redemptoris Missio], 2항)이기 때문입니다. 전교 주일은 또한 "선교가 헌금만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 선포와 가난한 이들에 대한 애덕 활동에 참여할 것을 요구하며, 생명과 재물뿐 아니라 우리가 하느님께 받은 모든 것은 우리의 것이 아니다."([교회의 선교 사명], 81항)는 것을 재확인하는 적절한 기회이기도 합니다. 이 날은 교회 생활에서 중요한 날입니다. "주는 방법을 가르쳐 주기 때문입니다. 이 날은 성찬 거행을 통하여 세상의 모든 선교를 위하여 하느님께 바치는 봉헌과 같은 날입니다"([교회의 선교 사명], 81항). 75주년을 맞는 이번 전교 주일이 선교 정신을 증진시키기 위하여 더 많은 공동 노력의 필요성을 성찰하고, 선교사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물질적 도움을 제공하기 위한 적절한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7. 2001년 1월 6일에 있었던 대희년 폐막 강론에서, 저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우리는 성령 강림의 열의와 새로운 열정으로 그리스도에게서 새로 출발하여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성덕에 대한 매일의 노력과 기도하며 그분의 말씀에 귀기울이는 태도로 그분에게서 출발하여야 합니다. 그분의 사랑을 증명하기 위하여 그분에게서 출발하여야 합니다"(8항).

그러므로,

자비를 얻은 여러분, 그리스도에게서 새로 출발하십시오.

용서하고 용서받은 여러분, 그리스도에게서 새로 출발하십시오.

아픔과 고통을 겪은 여러분, 그리스도에게서 새로 출발하십시오.

열의가 식어가려는 여러분, 그리스도에게서 새로 출발하십시오.

은총의 해는 끝이 없습니다.

새 천년기의 교회여, 그리스도에게서 새로 출발하십시오.

노래하며 나아가십시오!(2001년 주님의 공현 대축일 폐막 미사 참조).

교회의 어머니이시며 복음화의 별이신 성모님께서 성령 강림일에 제자들과 함께 계셨던 것처럼 우리의 여정에 함께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신뢰로써 성모님께 의지합니다. 또한 그분의 전구를 통하여 주님께서 우리에게 모든 교회 공동체의 사명인 선교 의무를 끈기 있게 수행할 수 있는 은혜를 내려 주시기를 빕니다.

이러한 마음으로 여러분에게 축복을 드립니다.

바티칸에서, 2001년 6월 3일, 성령 강림 대축일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2001년 전교의 달 담화-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 16, 15)

01/10/21

친애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에게 "너희는 온 세상을 두루 다니며 모든 사람에게 이 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 16, 15)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세례 성사를 통해서 그리스도인이 된 우리 모두에게도 해당됩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 분은 모든 사람이 복음의 말씀으로 참된 삶을 살아가고 마침내 구원되기를 바라십니다.

이 복음적 부르심에 응답하여 우리 신앙 선조들도 가혹한 박해 가운데에서 신앙을 증거하고 복음말씀을 실천하며 이웃에게 입교를 열심히 권하였습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에는 예전과 같은 종교적 박해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교회 안에서는 많은 냉담자와 행방불명자가 발생하고 있어 교회 내의 구성원들에 대해서도 '새로운 복음화'가 요청되고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오늘날 한국 사회는 급속한 경제성장과 많은 변화를 겪으면서 전통적 가치관과 정체성을 잃어 가고 있습니다. 인간을 존중하고 더불어 평화롭게 살아가기보다는 이웃을 경쟁상대로 보며, 이기적인 욕심으로 물질과 재화만을 추구하는 풍조가 점차적으로 만연해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족 구성원간에도 재화에 대한 욕심이 개입되면서 가정이 무너지고 어린이들이 버려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 같은 시대상황은 그리스도의 복음 말씀이 신자들의 삶 속에 더 깊이 스며들고 또 주위의 사람들에게도 더욱 널리 선포되어 일상 생활 전체가 복음화될 수 있도록 요구하고 있습니다. 곧 그리스도인들이 지닌 복음의 빛을 우리 사회에 보다 적극적으로 비추어야 하겠습니다. 하느님의 사랑과 구원에 이르는 은총이 세례 받은 신자뿐 아니라, 그리스도를 모르는 이웃 형제들에게도 전해져야 합니다. 그리하여 복음적 기쁨을 함께 나누고, 주님의 거룩한 잔치에 다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하겠습니다.

일찍이 사도 바오로께서는 자신의 서간문에서 복음 전파의 강한 열정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다 구원을 받게 되고 진리를 알게 되기를 바라십니다"(1디모 2,4), "나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라도 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과 다 같이 복음의 축복을 나누려 하는 것입니다"(1고린 9, 23). 또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도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진리를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일은 신앙의 선물을 받은 모든 사람의 숭고한 의무"(「아시아 교회」제10항) 라고 권고하셨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은 신자 개인에게는 자신의 신앙 생활을 되돌아 볼 수 있도록 하며, 신앙심을 고취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되고, 또한 우리 사회를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과 은총으로 축복받도록 이끌어 줍니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기쁜 마음으로 전하고 실천하여 우리의 이웃들을 복음의 길로 이끌어 주어야 합니다. 나아가 우리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북한의 동포들 더 나아가 세계의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도 구원의 복음이 전파되도록 기도하고 관심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과거 우리가 어려웠던 시절에, 우리는 외국의 여러 교회들로부터 물질적, 정신적으로 커다란 도움을 받았습니다. 이제는 우리도 우리보다 훨씬 더 곤란한 처지에 있는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아울러 정성어린 기도와 아낌없는 희생으로써 열악한 상황에서 선교활동에 여념이 없는 선교사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희생을 드리도록 노력합시다.

이러한 선교열의와 선교활동이 전국 교구와 모든 신자들과 각 단체에 활기를 불어넣으면서 꾸준히 계속되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신앙의 씨앗을 심기 위해 애쓰는 만큼, 내일의 우리 후손들이 더욱 풍성한 신앙의 결실을 유산으로 꽃피울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바로 이러한 노력이 우리 신앙 선조들이 우리에게 목숨 바쳐 귀하게 물려준 신앙유산을 열매맺게 하는 것이며, 하느님의 은총에 보답하는 길이라 하겠습니다. 끝으로 교우 여러분의 가정에 하느님의 축복이 늘 함께 하시어 행복하고 축복받은 삶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2001년 전교의 달에 주교회의 복음화위원회 위원장 경 갑 룡 주교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

마태 28, 16-20: 2000/10/22

이번에 제2차 AsIPA(Asian Integral Pastoral Approach-아시아의 통합적인 사목정책) 총회가 있었다. 총회기간 중에 갑자기 아파서 병원신세를 지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이렇게 저렇게 애써 보았지만 몸이 아플 땐 정말 누워 있는 것 밖에는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세상 돌아가는 것 모르고 자고 깨어나 보니 오히려 다른 나라 신부들이 한국 소식을 들려주었다. 아픈 저를 위해 기도해주면서 서로 자기 나라에 오라고 인사하는 신부들을 보면서 문득 우리 집에 오면 무엇을 보여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 집에 자기가 살기 편하고 행복하다면 놀러오라고 말할 때 적극적이고 자신만만하겠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그냥 인사치레로만 건넬 뿐이다. 아마 우리 신자들도 같은 마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분은 이웃에게 성당에 나오라고 하면서 무엇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우리 성당에 가면 어떤 면에서 좋다고 말하겠는가? 우리 성당이 편하고 행복하다면 우리는 적극적이고 기쁘게 형제 자매들에게 함께 가자고 초대할 것이고, 그렇지 못하다면 잘 초대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 이웃들이 정말 우리 이야기를 듣고 또 우리의 생활을 보고서 정말 오고 싶을 정도로, 우리 본당을 소개할 수 있을까? 또 실제로 그런가? 우리의 장점은 무엇인가? 천주교 중에서도 우리 본당만이 지니고 있는 장점은 또 무엇인가?

물론 사람 사는 곳이라 단점들도 많겠다. 그것은 세상 어느 곳에서나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불완전한 인간 공동체에 있어서, 단점이랄 수 있는 아픔을 얼마나 서로 껴안고 함께 아파하면서 부둥켜주느냐가 사실 장점일 수 있다. 서로 자신의 아픔을 터놓고 이야기해도 뒷소리 듣지 않고, 서로를 아끼고 도와주면서, 실수를 하면 벌보다 용서를 받고, 잘하면 시샘보다는 칭찬을 받으며 또 내가 어려움을 겪을 때 누군가가 반드시 자신의 아픔에 동참해줄 것이라는 신뢰가 경험적으로 있을 때 그것은 더 이상 단점이 아니라 장점이다.

오늘은 전교주일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내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것을 지키도록 가르쳐라"(19-20절)고 하십니다. 내가 언제라도 찾고 싶고, 또 이웃 중 누구를 데려와 함께하고 싶고 오기만 하면 정말 편안하고 행복해서 집에 가기 싫을 정도로 좋은 본당을 만들자.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를 가리키며 남의 탓만하고 요구하지만 말고, 우리 각자가 그렇게 되어야겠다고 생각하는 그 모습을 스스로 희생하면서 만들어 나가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성하의 전교 주일 담화

2000/10/22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1. 올 10월 22일에 거행될 연례 전교 주일은 교회의 선교 차원을 새롭게 인식하도록 요청하는 동시에, '만민' 선교 활동의 절박성을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만민' 선교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일이며, 모든 교구와 본당, 모든 교회 기관과 단체의 일"(회칙 [교회의 선교 사명], 2항)입니다.

올해의 전교 주일은 하느님께서 자비로운 사랑으로 모든 인류에게 베풀어 주시는 구원을 경축하는 은총의 해인 대희년의 빛 안에서 더욱 풍부한 의미를 지닙니다. 예수님의 탄생 2000년을 되새기는 것은 선교의 기원을 경축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 아버지께서 파견하신 최초의 가장 위대한 선교사이시기 때문입니다. 말씀의 강생과 함께 시작된 선교 활동은 교회의 선포와 증언을 통하여 시간 안에서 계속되고 있습니다. 희년은 교회 전체가 성령께 힘입어 새로운 선교 열정으로 일할 수 있는 은총의 시간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세례를 받은 모든 분에게 주님의 부르심과 우리 동시대인들의 요구에 응답하여 겸허한 용기로 복음 선포자가 되어 주시기를 특별히 또 진심으로 호소합니다. 저는 여러 주교님, 신부님, 수도자, 평신도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서로 다른 차원에서 커다란 어려움들을 참고 견디며 '만민' 선교를 자신의 존재 이유로 삼고 있는 교리 교사들과 여러 사목 활동가들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눈물을 흘리며 씨뿌리는"(시편 126, 6 참조) 모든 사람들의 헌신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노력과 고통이 헛되지 않을 것이며, 참으로 다른 사도들의 가슴에 복음의 고귀한 목적을 위하여 투신하려는 열망을 불러일으키는 누룩이 될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를 대신하여 저는 그분들께 감사 드리며, 하느님께서 그들의 고결한 인내에 대하여 풍성히 보상해 주실 것이라는 말로 격려를 드립니다.

2. 저는 또 생명의 복음을 선포하는 활동을 시작하거나 더욱 확대하였던 다른 많은 분들을 생각합니다. 모든 사람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교회 안에서 예수님의 사명을 계속해 나가도록 부름받고 있습니다. 이것은 영광스러운 자격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요한 14, 12) 하고 말씀하셨듯이, 파견받은 사람은 그리스도와 특별한 방식으로 결합되어 그분과 똑같은 일을 하는 것입니다. 각 사람은 자신의 특별한 생활 여건에 따라 협력하도록 요청받고 있습니다. 은총과 자비의 시간인 이 때에, 저는 특히 온 교회의 힘이 새로운 복음화와 '만민' 선교로 모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떠한 신자도, 어떠한 교회 기관도 만 백성에게 그리스도를 선포할 이 숭고한 의무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회칙 [교회의 선교 사명], 3항 참조). 그 누구도 자신이 교회 안에서 계속되고 있는 그리스도의 사명에 협력할 의무에서 면제되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당신들도 내 포도원으로 가서 일하시오"(마태 20, 7) 하신 예수님의 명령은 그 어느 때보다도 시의 적절한 것입니다.

3. 우리는 여기서 특별히 그리스도와 마찬가지로 목숨을 바쳐 피로써 신앙을 증언한 순교자, 그 많은 선교사들을 깊은 감동과 애정으로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교회가 다시 한 번 순교자들의 교회가 되었던"([제삼천년기], 37항) 20세기에도 이러한 순교자들은 무수히 많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십자가의 신비는 그리스도인의 삶 안에 끊임없이 현존합니다. 제가 회칙 [교회의 선교 사명]에서 말하였듯이, "그리스도교 역사에는 순교자들 곧 증인들이 무수히 많았으며, 이는 복음 선포의 과정에서 필수적인 것이었습니다……"(45항). 바오로가 필립비인들에게 한 말이 생각납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믿을 특권뿐만 아니라 그분을 위해서 고난까지 당하는 특권, 곧 그리스도를 섬기는 특권을 받았습니다"(필립 1, 29). 바오로는 또한 그의 제자인 디모테오에게 부끄러워하지 말고 하느님께서 주시는 능력을 가지고 복음 전파를 위하여 자신과 함께 고난에 참여하라고(2디모 1, 8 참조) 권합니다. 교회의 모든 사명, 특히 '만민' 선교는 자신이 받은 사명에 충실하여 그리스도께서 가신 그 길, 곧 "가난과 순명과 봉사의 길, 그리고 죽음에 이르는 자기 희생의 길"(선교 교령, 5항)을 인내하며 끝까지 따라가고자 하는 제자들을 필요로 합니다. 우리가 기념하는 신앙의 증인들이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모범과 격려가 됨으로써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일이 모든 그리스도인의 고유한 의무로 여겨지기를 바랍니다.

4. 이 일에서 그리스도인은 혼자가 아닙니다. 사실 인간의 능력과 선교 활동의 성과는 비례하지 않습니다. 선교 활동을 할 만한 자격이 없다고 느끼는 것은 아주 흔히 있는 솔직한 경험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힘은 우리를 "새 계약의 일꾼"(2고린 3, 5-6 참조)으로 만드신 하느님에게서 나온다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을 섬기도록 부르신 사람들을 결코 저버리지 않으십니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내 제자로 삼아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 18-20) 하고 주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당신 교회 안에, 특히 말씀과 성사 속에 영원히 현존하심은 선교의 유효성을 보장해 줍니다. 오늘날 이러한 선교는 자신의 연약함과 나약함 속에서 구원을 경험한 사람들에 의하여 수행되고 있습니다. 그들은 모든 사람이 충만한 생명으로 부름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구원의 경험을 자기 형제 자매들에게 증언하는 것입니다.

5. 앞에서 말씀 드렸듯이, 현재 우리가 경축하고 있는 대희년은 앞으로 '만민' 선교에 더욱더 투신하도록 요구합니다. 선교가 시작된 지 2000년이 되었지만, 지리적 문화적 사회적으로 그리스도와 그분의 복음이 아직 미치지 않은 지역이 지금도 상당히 많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이러한 상황에서 오는 부르심을 외면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스도를 만나는 기쁨을 체험한 사람은 그것을 혼자서만 간직할 수 없습니다. 그 기쁨을 다른 사람과 더불어 나누어야 합니다. 우리는 전세계에서 들려 오는 복음에 대한 소리 없는 요청에 응답하여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사도 바오로가 두 번째 전도 여행에서 받은 요청이기도 합니다. "마케도니아로 건너 와서 우리를 도와 주십시오"(사도 16, 9). 복음화는 사람들에게 베풀어지는 '도움'입니다.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사람이 되시어 사람이 혼자서는 이룰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게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 초자연적 생명만이 인간 마음 속의 가장 깊은 열망들을 이루어 줄 수 있습니다...... 참 하느님이시며 참 사람이신 나자렛 예수님을 선포하는 교회는 모든 사람에게 '하느님을 닮는 길' 곧 '더욱 인간답게 되는 길'을 열어 줍니다. 이는 고귀한 부르심을 깨닫고, 하느님께서 이루신 구원 안에서 그 소명을 온전히 이루도록 인류를 이끌어 주는 길입니다"(칙서 [강생의 신비], 2항).

우리는 또한 복음화가 인류에 대한 가치 있는 봉사라는 사실을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복음화는, 모든 인간을 당신께 결합시키시어 불의에서 해방되고 진정한 연대감으로 충만한 형제 자매로 만들고자 하시는 하느님의 계획을 성취하도록, 인류를 준비시켜 주기 때문입니다.

6. 이제 저는 특별히 '만민' 선교를 수행하는 많은 사람들에게로 시선을 돌리고자 합니다. 먼저, 저는 주교님들과 그들의 협력자인 성직자들, 동시에 남녀 선교 단체들의 활동을 떠올립니다. 선교 지역에서 활동하는 교리 교사들에게는 다음과 같은 특별한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교리 교사'라는 단어는 누구보다도 선교지의 교리 교사들에게 해당되는 말입니다. ...... 그들이 없었더라면 오늘날 날로 번창하고 있는 저 많은 교회들이 세워지지 못했을 것입니다"(교황 권고 [현대의 교리 교육], 66항).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선교 교령은 그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만민 선교 활동에 크게 공헌한 저 수많은 교리 교사들, 곧 사도 정신에 충만하여 커다란 노고로써 신앙과 교회의 확장을 위하여 독특하고도 반드시 필요한 도움을 준 남녀 교리 교사들은 찬사를 받아 마땅합니다"(선교 교령, 17항). 커다란 노고와 선교 열정으로 일하는 교리 교사들은 여러 가지 임무를 맡고 있는 선교사들에게 확실히 매우 실질적인 도움을 줍니다. 성직자의 부족으로 교리 교사들이 넒은 지역을 책임지면서 소공동체들을 이끌어 가고, 기도와 말씀의 전례를 주관하며, 교리를 설명하고 자선 활동을 계획하는 일이 많습니다.

교리 교사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교리 교사 양성, 곧 "더욱 철저한 교리 교육과 교육학 훈련, 지속적인 영성 쇄신과 사도적 쇄신"(회칙 [교회의 선교 사명], 73항)은 더욱더 필요합니다. 그들의 일은 언제나 필요한 일입니다. 저는 온 교회가 교리 교사 양성 임무에 더욱 투신하기를 바랍니다. 교리 교사 양성은, 모든 선교 인력의 양성과 마찬가지로, 사목의 우선 과제입니다. 그것은 말하자면, "인력 투자"인 셈입니다. 자신의 일을 위해 잘 준비된 복음선교자와 교사들만이 교회를 건설하는 데 효과적으로 기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7. 밭은 넓고 할 일은 아직 많이 남았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의 협력이 필요합니다. 사실 아무 것도 줄 게 없을 만큼 가난한 사람은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전례에서나 혼자 방에서 드리는 기도를 통해서, 또 우리의 고통을 하느님께 희생 제물로 봉헌함으로써 선교 활동에 동참합니다. 이것은 모든 사람이 할 수 있는 첫 번째 종류의 협력입니다. 수많은 개별 교회에 절대 필요한 경제적 지원을 소홀히 하지 않는 것 또한 중요합니다. 전교 주일 헌금은 모두 교황청 전교기구의 책임 아래 전세계의 선교 원조에 쓰입니다. 이 기회에 저는 74년 동안 해마다 전교 주일을 준비하고 하느님의 모든 백성에게 선교 의식을 불어넣으며, 어린이에서 어른, 주교에서 신부, 수도자에서 평신도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에게 지역 공동체에서 선교사가 되어야 할 소명을 일깨워 주고 동시에 보편 교회의 요구에도 마음을 열도록 해 준 이 훌륭한 교회 기관에 대하여 깊이 감사 드리고 싶습니다. 교황청 전교기구가 촉진하는 선교 의식 고취와 협력은 하느님 백성에게 선교 활동을 하나의 선물로 제시합니다. 곧, 선교는 자신을 선물로 내어놓는 것이며, 온 교회를 위하여 자신의 영적 물적 재화를 선물로 내어 놓는 것입니다(회칙 [교회의 선교 사명], 81항 참조).

더욱이 올해의 전교 주일은 세계 선교 대회 거행과 함께 로마에서 특별히 장엄하게 지내게 될 것입니다. 이 대회에는 예수님의 구원 메시지의 보편성을 나타내는 상징으로서 모든 대륙의 지역 교회들을 대표하여 세계 곳곳에서 교황청 전교기구 회원들이 모이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허락하신다면, 아마도 제가 이 중요한 행사를 주재하는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8.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제가 드린 말씀들이 선교 활동을 갈망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격려가 되기를 바랍니다. 거룩한 2000년 희년을 경축하면서 "전체 교회는 새로운 선교 상황에 더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우리는 빛과 신앙의 즐거움을 다른 이들과 나누려는 사도적 열성을 배가하고, 하느님의 백성 전체를 이 높은 이상으로 교육하여야 하겠습니다"(회칙 [교회의 선교 사명], 86항). 하느님의 성령은 우리의 힘입니다!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 주님의 은총의 해를 선포하도록"(루가 4, 18) 파견되신 예수님의 사명 안에서 그 능력을 드러내시는 성령께서 모든 신자들의 마음을 가득 채우시어(로마 5, 5 참조) 우리가 주님의 일을 증언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어머니이시며 신자들의 어머니이시고 성령께 온전히 순종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서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든 새로운 복음화를 위한 하느님의 계획에 "예" 하고 대답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시기를 빕니다.

이러한 마음으로, 위대한 '만민' 선교에 노력을 아끼지 않으시는 여러분 모두와 여러분 공동체에 기꺼이 사도좌에서 특별한 축복을 드립니다.

바티칸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전교주일(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

마태 28,16-20; 99/10/24

지난 예비자 환영식 때 우리 본당에 새로 찾아온 예비자들이 30명이었습니다. 처음에 그 소리를 듣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여러 가지 면에서 관찰해 볼 수 있지만, 주님이 주시지 않으면 얻을 수 없다는 측면에서 보면 결국 주님이 보시기에 우리 공동체가 비신자를 책임질 수 있는 역량이 30명밖에 안 된다는 결론이 납니다. 주셔도 우리가 받지 않아서 적은 것인지, 안 주셔서 적은 것인지. 다소 충격적인 숫자입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너희는 가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내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것을 지키도록 가르쳐라."(28, 19-20) 라고 하시며, 우리에게 전교하도록 명하십니다. 사도 바오로도 "들어 보지도 못한 분을 어떻게 믿겠습니까? 말씀을 전해 주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로마 10, 14) 라고 하심으로써 우리가 왜 전교해야 하는지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교황님께서도 "우리가 모범적으로 사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우리가 왜 이렇게 사는지 그 이유를 말해주어야 합니다."라는 말로써 복음선포의 중요성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이렇듯 선교는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일이 아니라 꼭 해야 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교회 신자 숫자를 늘리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혼자서는 갈 수 없는 구원의 하느님 나라에 함께 나가기 위해서 전교합니다. 그래서 나와 함께 사는 "모든 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으로 구원될 수 있다는 진리와 이 구원을 위해 주님께서 우리들 가운데 세워 마련해 주신 천주교회가 필요하다는 진리를 확신해야 합니다"(교회의 선교사명 9항). 그러므로 "가톨릭 교회에 합체된 사람은 누구나 형제들에게 대한 봉사와 하느님께 대한 보답으로 신앙과 그리스도인 생활을 증거할 특전과 책임을 지고 있다는 것을 느껴야 한다"고 합니다.(11항)

주님께서는 "내가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 20)고 하십니다. 그래서 주님의 성령께서는 우리를 선교할 사람들에게 인도하셔서 우리에게 선교대상자를 눈에 띄게 하시고 만나게 하시며 복음을 전하도록 하신다. 그리고 우리가 주님과 주님의 말씀을 전할 때 우리의 입을 통해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께서 우리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안내해주는 사람을 거부하거나 주저하지 말고 기꺼이 응답하여 주님처럼 겸손하게 그리스도 우리 주님께서 교회를 사랑하신 것처럼 그 선교대상자를 사랑하여 함께 교회를 이루고 성모님의 중재 아래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기로 합시다.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 (전교주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성하의 전교 주일 담화

99/10/24

1. 해마다 돌아오는 전교 주일은 교회에 그 선교적 본성에 대하여 성찰해 볼 좋은 기회를 줍니다. "너희는 가서 이 세상 모든 사람을 내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어라."(마태 28,19) 하신 그리스도의 명령을 교회는 늘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으며, 모든 시대, 모든 장소의 사람들에게 한 분이신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을 선포하도록 부름받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흩어져 있는 당신 자녀들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한데 모으시기를 원하십니다(요한 11,52 참조).

금세기의 마지막인 올해에, 2000년 대희년을 준비하면서 우리가 "성자께서 우리에게 계시하여 주신 하느님의 모습 그대로"([가톨릭 교회 교리서], 2779항) 하느님을 알기 위해서는 우리의 눈과 마음을 아버지께 들어 높여야만 합니다. 하느님이신 스승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직접 가르쳐 주신 '주님의 기도'를 이러한 견지에서 해석할 때, 교회의 사도직 활동의 원천을 이해하고 교회가 "세상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가 되어야 하는 근본 이유들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2. 교회가 선교하는 목적은 하느님께서 모든 인류에 대한 사랑이 넘치는 아버지이시라는 것을 끊임없이 선포하기 위해서입니다. 모든 개인과 모든 민족은 때때로 자기도 모르게 신비에 싸인 하느님의 얼굴을 찾습니다. 그러나 그 얼굴은 하느님과 똑같으신(요한 1,18 참조) 하느님의 외아들을 통해서만 우리에게 드러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시며, "모든 사람이 다 구원을 받게 되고 진리를 알게 되기를 바라십니다"(1디모 2,4). 그분의 은총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한 아버지의 자녀들임을 알고 놀라며, 따라서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선포할 책임이 있음을 느낍니다.

그러나 현대 세계의 많은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하느님께서 창조주이시며 아버지이심을 깨닫지 못합니다. 때로는 신자들의 잘못으로 냉담자나 무신론자가 되는 사람들도 생깁니다. 또 어떤 막연한 종교심을 키워서 자신의 모습을 닮은 신을 만들어 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신을 전혀 다가갈 수 없는 존재로 여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사람이 가까이 갈 수 없는 빛 가운데 계시는 분"(1디모 6,16)이시지만, 동정 마리아에게서 태어나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당신 아들을 통하여 모든 인류에게 가까이 다가오시어 사람들이 "당신께 응답하고 당신을 깨닫고 사랑할 수 있게"([가톨릭 교회 교리서], 52항) 하셨습니다. 이를 선포하고 증언하는 것이 신자들의 의무입니다.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3. 하느님과 만남으로 인간의 존엄이 증진되고 고양된다는 것을 아는 그리스도인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하고 기도 드립니다. 이는 곧 "저희가 아버지를 알 수 있는 빛을 받아, 아버지께서 주시는 풍성한 은혜와 엄청난 약속, 아버지의 숭고한 주권과 심오한 지혜를 깨닫게 하소서."(성 프란치스코, Fonti Francescane, 268항) 하고 기도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느님께서 당신 자녀들을 통하여, 또 아직 당신의 계시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통하여 거룩히 찬양을 받으시도록 기도 드리며, 하느님께서 바로 성화를 통하여 모든 창조물을 구원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이름이 모든 나라에서 거룩히 빛나도록 하기 위해서 교회는 인류와 창조물을 창조주의 계획에 참여시키고자 노력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사랑으로 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도록 하셨습니다(에페 1,9.4).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4. 신자들은 이렇게 하느님 나라의 도래와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재림을 기도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바람이 이 세상에서 그들이 맡은 일상의 의무를 소홀히 하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거기에 더욱 투신하게 합니다. 하느님 나라의 도래는 주님께서 보내 주신 성령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성자께서는 믿는 이들에게 성령을 첫 열매로 보내셨나이다. 성령께서는 성자의 구원 사업을 세상에서 이루시며 모든 것을 거룩하게 하시나이다"(로마 미사 전례서, 감사기도 제4양식).

현대 문화에는 평화, 행복, 연대, 인권 존중, 보편적 사랑의 새 시대에 대한 기대가 널리 퍼져 있습니다. 성령의 빛을 받아 교회는 복음에 이미 선포되어 있는 정의, 평화, 사랑의 나라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신비롭게 실현되고 있음을 선포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참 행복의 정신으로 철저하게 실천하고자 하는 개인, 가정, 공동체들의 덕택입니다. 그들의 노력으로, 현세 사회는 더 큰 정의와 연대의 지평을 향하여 나아갈 힘을 얻습니다.

교회는 또한 아버지께서는 "모든 사람이 다 구원을 받게 되고 진리를 알게 되기를 바라신다."(1디모 2,4)는 것을 선포하며, 그리스도와 그분의 계명,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신 계명에 응답합니다. "이 계명은 다른 모든 계명을 요약하고, 그분의 뜻을 온전히 밝혀 줍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2822항 참조).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당부하시며, "주님, 주님!" 하고 부른다고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라야 하늘 나라에 들어간다고 가르쳐 주십니다(마태 7,21 참조).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5. 오늘날에는 모든 사람이 생명 유지에 필요한 '일용할 양식'을 얻을 권리가 있다는 의식이 커지고 있습니다. 또한 온 인류를 결합시키는 연대와 공평의 요구도 더욱 공감을 얻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이 인간의 품위와는 거리가 먼 조건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몇몇 대륙에 존재하는 빈곤과 문맹, 주택과 보건 시설과 일자리의 부족, 정치적 억압, 그리고 지구 곳곳에서 사람들을 짓밟고 있는 전쟁 등을 생각하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비극적인 상황에서 그리스도인들은 무엇을 하여야 하겠습니까? 살아 계신 참 하느님께 대한 믿음이 인류를 괴롭히는 문제의 해결과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일까요? 제가 [교회의 선교 사명]에서 말씀 드린 대로 "한 민족의 발전은 돈이나 물질적 원조나 기술적 방법에서 우선적으로 초래되는 것이 아니라, 양심과 정신과 행동 방식의 성숙에서 기인하는 것입니다. 돈이나 기술이 아니라 바로 인간이 발전의 주역입니다. 교회는 사람들이 찾으면서도 알지 못하는 하느님을 백성들에게 알려 줌으로써, 또 하느님의 모습을 따라 창조되고 사랑받는 인간의 위대함과 하느님의 자녀로서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것을 알려 줌으로써 인간의 양심을 형성합니다"(58항). 교회는 인류가 같은 아버지의 자녀이며 따라서 모두 형제 자매라는 사실을 선포함으로써 진정한 형제애가 넘치는 세계를 건설하는 데에 이바지합니다.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인간 진보를 위한 활동을 통하여, 또 젊은이들을 위한 교육 기관을 통하여, 그리고 온갖 형태의 억압과 불의에 대한 끊임없는 고발을 통하여 발전과 평화에 협력하도록 요청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구체적인 기여는 복음을 선포하고, 개인과 가정, 공동체에 그리스도교 교육을 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복음을 통하여 인간의 양심을 깨우쳐서 '더 많이 가지기'보다는 '더욱 인간답게 되는' 기회를 사람들에게 제시하는 것"이 본연의 사명임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참된 발전은 더 깊은 복음화에 근거를 두어야 합니다"(같은 곳).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6. 교회는 선교 활동에서 말로써만이 아니라 특히 선교사들과 하느님 백성의 성덕으로써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을 실제로 확인시켜 주도록 요청받고 있습니다. "만인 선교의 새로운 자극은 거룩한 선교사를 요구합니다. 사목 방법을 쇄신하거나, 교회의 역량을 조정하거나 신앙의 성서적 신학적 기초를 더욱 깊이 파고드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합니다. 참으로 필요한 것은 선교사들과 그리스도교 공동체 전체에 성덕에 대한 '새로운 열성'을 불러일으키는 일입니다"([교회의 선교 사명], 90항).

신자들은 갖가지 끔찍한 죄의 결과에 맞서 용서와 사랑의 징표를 제시할 의무가 있습니다. 삶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경험한 신자들만이 너그럽고 조건 없는 사랑으로 다른 사람들을 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용서는 하느님 사랑의 최고 형태 가운데 하나이며, 끈기 있게 청하는 사람들에게 선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7. 인류 역사의 시작부터 죄가 존재해 왔습니다. 죄는 피조물과 하느님의 원초적 유대를 끊어 버리고, 죄를 지은 개인은 물론 다른 사람의 삶에도 심각한 결과를 초래합니다. 게다가 오늘날에는 수많은 형태의 죄와 악이 흔히 사회 커뮤니케이션 수단과 결탁되어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한 사회 커뮤니케이션 수단들이 "정보와 교육의 주요 도구가 되었고, 개인과 가정과 사회의 행동 규범과 발상의 주요 도구"([교회의 선교 사명], 37항, 다)가 되었다는 사실을 어찌 무시할 수 있겠습니까?

선교 활동은 개인과 모든 민족에게 주님의 사랑과 자비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것입니다. '잃었던 아들의 비유'(루가 15)에서도 분명히 알 수 있듯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좋으신 분이십니다. 그분께서는 회개하는 죄인을 용서하시며 그의 죄를 잊으시고 평온과 평화를 되찾아 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자비로우신 아버지 하느님의 참 모습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악을 선으로 이길 힘을 주시고, 당신 사랑에 응답하는 이들에게 세상 구원에 참여할 능력을 주십니다.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8. '주님의 기도' 마지막 청원에서 우리는 하느님께 죄의 길에 들어서지 않게 해 주시고, 악에서 구하여 달라고 기도 드립니다. 악은 흔히 하느님의 계획과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시는 구원을 방해하는 인격적 존재인 사탄이 조장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죄와 악의 지배를 받고 있는 세상에 구원의 소식을 전하도록 부름받았음을 알기에 하느님께 자신을 맡기고,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이 세상의 권력자(요한 14,30 참조)를 이기신 것처럼 자신도 일상사에서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 드립니다.

권력과 폭력의 논리에 지배되는 사회 상황에서, 교회는 증오와 복수, 이기주의와 무관심을 녹여 버리는 하느님의 사랑과 복음의 힘을 증언할 사명이 있습니다. 오순절의 성령께서는 그리스도의 피로 몸값을 치른 그리스도인들을 새롭게 하십니다. 이 작은 양떼가 전세계에 파견되어, 비록 인간적인 수단은 빈약하지만 어떠한 힘에도 굴하지 않고 새로운 인류의 누룩이 될 것입니다.

맺는말

9.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전교 주일은 우리 각자에게 공동의 선교 사명을 더욱 강조할 기회를 줍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공동의 선교 사명을 통하여 화해와 평화를 전하는 복음의 사도가 됩니다. 구원의 사명은 보편적입니다. 곧 개개인과 모든 인간을 위한 것입니다. 그것은 하느님 백성 전체와 모든 신자에게 해당되는 임무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그리스도인은 선교에 대한 열정을 지녀야 합니다. 곧 세상을 구원하려는 열정을 지니고 아버지 나라가 오게 하는 진지한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모든 이에게 그리스도를 전하고자 하는 마음을 키워 주시도록 끊임없이 기도하여야 하며, 구세주의 고통과 하나 되어 자신의 고통을 바쳐야 합니다. 또한 선교 협력 기구를 지원하기 위한 개인적 노력도 필요합니다. 그 가운데서도 저는 교황청 전교 기구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도록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이 기구에서 하는 일은 선교를 위한 기도를 권장하고, 선교 활동을 장려하며, 복음화 활동을 위한 기금을 모으는 것입니다. 교황청 전교 기구는 인류복음화성과 긴밀히 협력하여 일합니다. 인류복음화성은 개별 교회, 그리고 교회 공동체 전체의 다양한 선교 단체와 뜻을 모아 선교 노력을 조정합니다.

우리는 오는 10월 24일에 한 천년기의 마지막 전교 주일을 거행합니다. 지난 천년기 동안 교회의 복음화 활동은 참으로 눈부신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미래로 눈을 돌려 가슴을 열고 새 날의 새벽을 기다리며 선교사들이 이룬 엄청난 업적에 대하여 주님께 감사 드립시다.

교회의 전초지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하느님 도성의 성벽을 지키는 파수꾼과 같습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파수꾼아, 얼마나 있으면 밤이 새겠느냐?"(이사 21,11) 하고 묻습니다. 그러면 그들은 "들어라, 저 소리, 보초의 외치는 소리. 시온으로 돌아오시는 하느님과 눈이 마주쳐 모두 함께 환성을 올리는구나"(이사 52,8) 하고 대답합니다. 지구 곳곳에서 그들의 무수한 증언이 울려 퍼집니다. "인류 구원의 제삼천년기가 임박한 이때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교의 새로운 봄을 준비하시고 우리는 이미 그 새벽을 보고 있습니다"([교회의 선교 사명], 86항).

샛별이신 성모 마리아님, 우리가 언제나 새로운 열정으로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 "예" 하고 따르도록 도와 주시어, 온갖 말을 쓰는 모든 민족이 하느님의 영광을 볼 수 있게 하소서(이사 66,18 참조).

이러한 바람으로 저는 선교사들과 선교를 위하여 일하는 모든 이에게 기꺼이 사도좌에서 특별한 축복을 보냅니다.

바티칸에서 1999년 5월 23일 성령 강림 대축일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1999년 전교의 달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선교위원장 담화문

99/10/24

친애하는 교형 자매 여러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강생 2000주년을 눈앞에 두고서 이번 10월을 기하여 금세기 마지막 전교의 달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지난 1922년에 교황 비오 11세께서 처음으로 전교의 달을 선포하신 이후 성교회는 지금까지 해마다 전교의 달을 지내면서 복음 선교의 중요성을 특별히 강조하고 실천해 왔습니다. 우리 한국 천주교회도 1970년부터 해마다 10월 전교의 달을 맞이하여 교회의 복음 선교에 대하여 새롭게 묵상하고 그 중요성을 깊이 있게 인식하여 민족과 사회의 복음화 활동을 꾸준히 해 왔습니다. 특별히 1970-80년대에는 한국 사회가 요청하는 시대의 징표(마태 16,3)를 받아들여, 한국 사회 안에서 빛과 소금과 누룩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경제가 성장하고 물질적 풍요로움이 도래하자, 하느님에 대한 신앙의 열기가 식어 가고 이와 맞물려 있는 복음 선교에 대한 관심이 약해진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교회의 복음 선교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가 복음 선교를 해야 함은 선택 사항이 아니라 마땅히 해야 하는 필수 사항입니다. 교회는 태어날 때부터 복음 선교를 위하여 태어났고, 선교 행위는 교회의 주변적 외곽 요건이 아니고, 교회의 본성(선교 교령, 2항 참조)을 이루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한국 사회는 이러한 복음화를 그 어느 때보다도 갈망하고 있습니다. 흔히들 이 시대를 가치관이 전도되고 도덕과 윤리가 부도 당한 시대라고 일컫습니다. 이것은 가치의 기준이 그 자리를 잃고 도덕과 윤리의 제반 가치가 명목상으로는 인정되지만 실제로는 지켜지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한국 사회도 예외가 아니어서 선조들로부터 이어오던 미풍양속과 가치들이 위협 당하고 도외시 당하면서, 많은 사람이 전통적 가치관으로부터 벗어나 현시적인 결과에만 연연하고 사로잡혀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더구나 배금주의에서 비롯된 황금 만능주의와 물질주의는 하느님 모습으로서의 인간 품위와 존엄성마저 적지 않게 위협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가족 구성원간에 또한 이웃간에 물질과 재화에 대한 욕심이 개입되면서 가정이 무너지고 어린이들이 버려지는 일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 마음 아픈 상처를 남긴다고 하겠습니다.

바로 이러한 시대 상황에서 주 그리스도의 말씀이 땅위의 모든 사람에게 선포되고 실제 생활에 영향을 미쳐 삶 전체가 복음화될 수 있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103위 성인을 포함한 우리 신앙 선조들은 대단히 어렵고 열악한 교회 상황과 가혹한 박해 가운데서도 굴하지 않고 신앙을 증거하고 복음 말씀을 실천하며 전파하였습니다. 그분들이 겪은 고통에 비하면 우리가 오늘날 복음 선교를 위하여 또는 신앙 생활을 위하여 겪어야 하는 어려움은 그렇게 큰 어려움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더구나 다른 나라와 달리 선조들이 스스로 신앙을 찾아서 후손들에게 물려 줌으로써 좋은 신앙의 토양을 갖고 있는 우리 나라에서는 노력한 만큼 분명한 결실이 나타나고 있다 하겠습니다. 이 같은 현상으로 생각해 볼 때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더욱 민족 복음화에 매진할 수 있도록 특별한 기회를 허락하신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사실 지금은 이승훈(베드로) 선조께서 처음으로 북경에서 세례 받은 이후 우리 교회 역사상 가장 선교하기 좋은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 하겠습니다. 하느님께서 베풀어 주신 이러한 복음화의 호기를 소극적으로 응답하여 허송해서는 결코 안 될 것입니다.

일찍이 성 바오로 사도께서 "나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라도 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과 다 같이 복음의 축복을 나누려는 것입니다."(1고린 9,23)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 교회도 그대로 실천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최근 국내 교회 안에서 들불처럼 번져 가는 예비신자를 위한 "새로운 가족 찾기 운동"과 냉담자를 위한 "우리 가족 찾기 운동" 등은 우리 교회 복음화 역사에 새로운 장을 펼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같은 선교 활동은 체험 부족으로 쉽게 신앙을 잃어버리는 교우들에게 신앙 체험을 얻는 소중한 기회가 되고 있어 신심 운동으로 정착될 수 있으리라 봅니다. 전국 교구와 본당 신자들과 각 단체에 활기를 불어넣는 이러한 선교 열의와 선교 활동이 항구하게 계속되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오늘 애써 뿌리는 신앙의 씨앗만큼, 내일의 우리 후손들이 신앙의 유산을 꽃피울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한국 천주교회가 누리는 신앙 생활의 자유와 선교 활동에 대한 하느님의 축복이 우리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세계 보편교회의 지향대로 하나의 인류 가족인 세계 만민을 위해서 구원의 복음을 전파하도록 노력합시다. 지금까지 받기만 하던 우리 교회도 이제는 명실공히 세계 교회와 함께 나누는 교회로 성숙하고 있습니다. 과거에 우리가 대단히 어려웠던 시절 외국의 다른 교회로부터 많은 물질적, 영신적 도움을 받았듯이, 우리도 이제는 보은의 정신으로 여전히 어렵고 부족한 가운데서도 우리보다 훨씬 더 곤란한 처지에 있는 다른 나라 교회를 도울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사제가 없어 어려움을 겪고 있는 데 비하여, 짧은 시기 안에 신학교 수가 7개로 증가하는 등 하느님께서 우리 교회에 베풀어 주시는 이러한 은총들이 오직 우리 한국 교회만을 위해서 베풀어 주시는 것이라고 단정할 수 있겠습니까? 가난한 과부의 동전 두 닢(루가 21,2 참조)처럼 없는 가운데서도 나눌 수 있는 마음을 가질 때 주님께서는 우리가 생각하지도 못했던 방법으로 우리에게 새롭게 베풀어 주시리라 믿습니다. 아울러 정성어린 기도와 아낌없는 희생으로써 오지에서 선교 활동에 여념이 없는 선교사들을 위하여 영적, 물적으로 지원하는 데 동참하도록 합시다. 이러한 노력이 우리 신앙 선조들이 목숨 바쳐 귀하게 물려준 신앙 유산을 세계 만방에 꽃피우는 것이며, 하느님의 은총에 보답하는 길이라 하겠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전파하시오.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 꾸준히 전하고 끝까지 참고 가르치면서 사람들을 격려하시오"(2디모 4,2).

1999년 10월 1일

포교 사업의 수호자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대축일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선교위원회 위원장 최 덕 기 주교



전교주일(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

마태 28,16-20 : 98/10/18

오늘은 전교주일입니다 이미 서울대교구에서 구역 반모임 공동체를 실시한지 20여년이 지났습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2000년대 복음화를 향한 소공동체 운동을 시작한지 10년이 가까워옵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초대교회의 신자들은 "모두 함께 지내며 서로 나누어주고 한 마음으로 성찬례를 지내며 하느님을 찬양하는 모습을 보고, 모든 사람이 그들을 우러러보게 되었다. (그래서) 주께서는 구원받을 사람을 날마다 늘려 주셔서 신도의 모임이 커갔다."(사도 2,44-47)고 쓰여 있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너희는 가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내 제자로 삼아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것을 지키도록 가르쳐라. 내가 세상 끝날 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19-20)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듣고 로마인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누구든지 구원을 얻으리라.'는 말씀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믿지 않는 분의 이름을 어떻게 부를 수 있겠습니까? 또 들어보지도 못한 분을 어떻게 믿겠습니까? 그러므로 들어야 믿을 수 있고 그리스도를 전하는 말씀이 있어야 들을 수 있습니다."(로마 10,13.14.17) 저는 여러분에게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면서 어떻게 주님의 말씀대로 살 수 있겠습니까? 더 나아가 구역 반모임에서 형제들과 함께 주님의 말씀을 듣고 주님의 말씀에 비추어 자신의 삶과 지역사회의 현실을 나누지 않고 어떻게 주님의 일을 하고 형제들을 위한 교회의 봉사직에 참여할 수 있겠습니까?

경애하올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를 세상에 내주시고 우리를 구원해주시기 위해 외아들 예수님의 죽음을 우리 죗값으로 받으시면서 까지 우리를 사랑해주시는 아버지 하느님과 또 그분의 뜻에 따라 인간으로 세상에 오셔서 우리에게 아버지의 말씀을 전해주시고 우리에게 전해주신 그 말씀대로 당신이 직접 사심으로써 우리를 구원해주시고 부활하셔서 하느님 아버지의 오른편에 앉으신 주 예수 그리스도님, 그리고 또 계속 우리에게 주님을 알게 해주시고 주님의 말씀을 깨우치게 해주시고 그 말씀을 실현하며 살 힘마저 주시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르기로 합시다.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해주셨고 또 주님의 자비에 힘입어 주님의 말씀대로 살면 구원된다고 믿기 때문에 지금 여기에 형제 자매들과 함께 교회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통하여 우리를 부르시는 주님께 응답하기로 합시다. 여러분 모두가 2000년대 복음화를 향한 교회의 구역 반모임 소공동체 운동에 교구장님의 뜻에 일치하여 적극적으로 참여하심으로써 이 민족과 나라의 복음화를 이루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전교주일(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

마태 28,16-20 : 97/10/19

우리가 지금까지 배워오고 또 믿는다고 고백해 온 신앙은 우리에게 말한다. "하느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에게 좋은 세상을 만들어 주셨고, 우리로 하여금 그 세상을 다스리라고 하셨다. 그리고 그것을 보시고 '하느님은 보시기에 좋았다.'고 하셨다." 이것이 바로 신앙의 진리이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며 제자들에게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마태 28,18)고 하신다.

그런데 우리가 살면서 경험해 온 세상은 그렇게 좋지만은 않았다. 뒤돌아보면 우리에겐 기쁨도 많았지만 슬픔과 괴로움도 많았다. 오늘도 그렇다. 한없이 일해서 돈을 벌고 성공하고 싶지만, 우리의 육체는 쉬어야 한다고 경고 한다. 그리고 술이나 과로로 인해 불성실하게도 된다. 그리고 터무니없는 욕심으로 낭패를 보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또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상도 우리를 괴롭힐 때가 있다. 우리에게 부정과 부조리를 요구하고 그리고 폭력과 경쟁이 판치는 세상. 이것이 우리가 살아온 세상의 경험이다. 주님의 승천을 보면서도 "그러나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었다."(17)는 것처럼.

그러면 이러한 '신앙의 진리'와 '경험의 진리'가 충돌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아주 적대적으로 상반되는 상황에 처한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가톨릭 노동 청년회 창설자 조셉 까르덴 추기경님은 "우리는 우리가 사는 어지러운 세상을 주님이 만들어 주신 세상으로 다시 좋게 변화시켜야 한다."고 했다. 이것이 '실천의 진리'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내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것을 지키도록 가르쳐라."(19-20?)

그래서 우리는 먼저 주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세상을 만드신 분이 주님이시고,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에게 좋은 세상을 주시고자 하셨다는 것과, 주님이 주신 좋은 세상에서 살기 위해서는 주님의 말씀을 따라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 다음 우리가 전하고 믿는 그 말씀을 실제로 실천하여 이 세상을 복음화 하여야겠다. 주님은 우리의 고민과 꾸준한 노력 속에 함께 하셔서 당신 나라를 만드시고야 말 것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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