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해) 루카 12,35-40; '21/02/12 금요일

지난 주 강론을 준비하면서, 저 어릴 때 아버님께서 집안에 걸어 두신 족자, 안효공 심온의 글 “나는 이렇게 열심히 일해도 이 정도밖에 못 사는데, 너희는 일도 하지 않으면서 어찌하여 부귀영화를 꿈꾸느냐?”를 떠올리면서, 부모님에 관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할아버님을 닮아 방랑벽이 있으셔서 만주로 떠돌아다니셨다던 아버님의 젊은 날의 기개는 어느 정도셨을까? 일제 징용은 어떻게 피하시며 사셨을까? 그 먼 방랑 생활을 하시다가 할아버지의 부고를 듣고, 황급히 달려와 전란 중에 황해도 어느 뒷산의 하얀 바위 밑에 할아버님을 묻으실 때, 그 마음은 어떠셨을까? 6.25 전쟁의 풍파는 어찌 넘기셨을까? 가평 고향 집이 수몰지역으로 선정되어 물에 잠기는 모습을 바라보시면서, 어떤 회한에 잠기셨을까? 전후에 그나마 사업이라고 하던 곳에서 회계 담당 천주교 신자가 횡령하고 떠났을 때, 어떻게 극복하셨을까? 그 직원이 양심의 가책으로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으시고는, 그나마 휘하의 직원이었다고 쫓아가 장사를 치뤄주시던 그 순간을 어떻게 견디셨을까?

어머님을 아내로 맞이했을 때 어떠셨을까? 아버지는 첫 집을 장만했을 때 어떠셨을까? 정작 자신은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채, 의사의 오진으로 아들 둘을 허망하게 잃어야 했을 때, 아버지는 어떠셨을까? 아버지의 정신적 지주는 누구셨을까? 어렵고 힘들 때 누구에게 가서 하소연을 하고 조언을 구하셨을까? 아버지의 친구분들은 누구셨을까?

외갓집에서 나름 딸이라고 고이 자란 어머님은 정신대 착취에 끌려가지 않으려고, 작은 일터에 이름을 올리시며 얼마나 가슴을 졸이셨을까? 6.25 전란은 어떻게 넘기셨을까? 아버님이 어머님의 뒤를 따르며, 일부로 구둣발 소리를 크게 내도 뒤돌아보지 않으시고, 작은 돌을 발치에 굴려 보내도 아무런 내색도 없이, 꼿꼿이 집으로만 향하셨다던 어머님의 속내는 어떠셨을까? “장애자라도 좋으니 자식 하나 있으면 좋겠다.”고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께 외갓집을 찾아, 다 늦은 아버지의 구혼을 지켜보던 어머님의 마음은 어떠셨을까? 간신히 가정을 꾸려 첫 집을 마련했을 때의 마음은 어떠셨을까? 열 달 배아파 낳은 아들 둘을 잃으셨을 때의 마음은 어떠셨을까?

아들 둘을 잃고 그나마 하나 남은 아들이 신부가 되기 위해서 신학교에 들어간다고 할 때 그 심란한 마음을 어떻게 넘기셨을까? 또 다 큰 딸이 수녀원에 입회할 때의 마음은 어떠셨을까? 막내를 시집보낼 때 어떠셨을까? 명동 대성당에서 부제서품을 받던 그 날, 얼굴 가득 주름을 피시며 환희 웃으시던 어머님의 용안이 떠오릅니다. 어머니의 정신적 지주는 누구셨을까? 어렵고 힘들 때 누구에게 가서 하소연을 하고 조언을 구하셨을까? 어머니의 친구분들은 누구셨을까?

그런가 하면, 비록 눈 앞에 현실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부모님들께서 원하시던 세상은 어떤 세상이었을까? 부모님들의 이상과 가치관은 무엇이었을까? 부모님들은 무엇을 하고 싶으셨을까? 꿈으로 끝났을지 모르는 부모님들의 꿈은 무엇이었을까? 이번에 동생 수녀와 설을 준비하면서, 부모님에 관해서 너무나도 모르는 것이 많구나 하는 기억에 부끄럽고 송구스럽기만 합니다.

여러분의 부모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여러분은 부모님을 어떻게 기억하십니까?

오늘 주 대전에서 부모님 영전에 부족하나마 감사의 정을 담아 겸손되이 성체성사를 올려드립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어라.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루카 12,35.40)

부모님 생각을 하다가 문득 제 자신을 돌아봅니다. 과연 저를 아는 이들은 저를 어떻게 기억할까? 선배 사제들은 저를 어떻게 기억할까? 동료와 후배 사제들은 저를 어떻게 기억할까? 가족과 친구들과 친지들은 저를 어떻게 기억할까? 우리 신자들은 저를 어떻게 기억할까?

오늘 설날입니다.

어찌 보면 살아온 지난 날보다 앞으로 살 날이 더 적을 수도 있는데, 얼마 남지 않은 생애,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왕 세상에 나와 사는 삶! 다시 주 대전에 돌아갈 때, 이 생애가 후회와 아쉬움보다 기쁨과 행복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 설날 가족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 잘 보내시고, 보람찬 생애를 위한 설계도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주님 사랑 안에서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십시오.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루카 12,40)






(가해) 루카 12,35-40; ’20/01/25 토요일

안녕들 하십니까? 설날 아침입니다.

설날 아침 반갑게 맞으셨는지요? 여기 할아버지 할머니 댁에 설 쇠러 오신 분들 계신지요? 박수로 맞이합시다. 여러분 모두 반갑습니다. 그리고 잊지 않고 이렇게들 찾아오셔서 감사드립니다.

혹시 여러분들 중에 어릴 때, “하루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 내가 어른이 되면 이러이러한 것을 하고 싶다.”라는 생각을 가지신 분들이 계십니까? 어릴 때 하루빨리 커서 무엇이 되어 어떤 것을 하고 싶다는 꿈을 꾸셨습니까? 빨리 어른이 돼서 지긋지긋한 시험은 그만 보고 싶다. 공부는 그만하고 싶다. 운전을 하고 싶다. 남자친구 여자친구 원 없이 사귀어 보겠다. 여기저기 못 가본 전 세계 여행을 다니고 싶다. 여러분들은 어떤 꿈을 꾸셨습니까?

그런가 하면, 어떤 분들은 “내가 부모가 되면 이렇게 살겠다.”라고 다짐하신 적이 있으십니까? 내가 부모가 되면 자식들에게 공부하라는 말하지 않겠다. 자식들을 혼내지 않겠다. 놀고 싶으면 놀고, 공부하고 싶으면 공부하고, 마음대로 제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면서 자유롭고 신나게 살게 하겠다. 여러분 여러분이 부모가 된 지금 자식들을 실제로 어떻게 기르고 계십니까?

또 “내가 은퇴하면, 이러저러한 일을 하겠다.”라고 꿈꾸신 분들이 계십니까? 자고 싶은 잠 실컷 자겠다. 여기저기 다니고 싶다. 아무런 제한 없이 하고 싶은 일 다 하고, 그동안 살면서 못다 한 것 다 해보겠다. 매일 직장 다니느라 못했던, 매일 미사 참례하겠다. 성체조배 하겠다. 성경공부 하겠다. 봉사활동 다니겠다. 여기저기 가난하고 어려운 이들에게 필요한 만큼 기부하겠다. 여러분은 어떤 꿈을 꾸셨습니까? 제가 파견되어 나갔던 어떤 나라에서는 은퇴하면, 부부가 함께 캠핑카를 사서 전국을 일주하는 것이 첫 번째 꿈이고, 두 번째 꿈은 그동안 먹고사느라 못했던 신학 공부를 하고 싶다는 것이 천주교 신자들의 꿈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나라의 신학 대학원에는 평신도 은퇴 노년 학생들이 참 많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지금 은퇴하신 분들은 어떻게 지내고 계십니까? 여러분이 계획한 대로 꿈을 잘 이루고 계십니까? 어떤 분들은 공식적으로 은퇴했지만, 은퇴 후에도 계속 경제생활을 해야만 살아갈 수 있어서 아직도 소소한 일을 하면서 사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막연히 오늘 못하는 일을 다음에, 은퇴 후에 하겠다고 다짐하는 일은 잘 못 하게 되는 경우가 다반사인가 봅니다. 오늘 못하는 일은 내일도 못 하기 쉽습니다. 안 해보았기 때문에 새삼 무엇을 시작한다는 것이 잘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아마도 그래서 ‘은퇴도 준비해야 한다.“고들 합니다.

사람들이 흔히 ’백 세 세대‘라고들 합니다. 그런데 가령 내가 오늘 80인데도 “늙었다.”라고 생각하고 새로운 도전을 하지 않으면, 더 위축되고 그 자체로 늙은이가 돼버립니다. ’이제 다 늙어서 무엇을 하나?‘ 하고 생각하면, 그냥 그 자체로 늙은이가 되어버리고, 여기저기 아픈 데만 늘고 삶이 피곤하고 힘겹기만 해서, 어서 빨리 죽기만을 기다리게 됩니다. 세상에 태어난 우리가 모두 죽는 것은 사실이지만, 죽기 위해서 오늘을 사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성당에 나와서 매일 미사 드리고 부지런히 봉사활동하고 열심히 선교하면서 살다 보면, 늙음이 늙어가는 세상이 아니라 우리 마음이 젊듯이 우리 몸도 더 이상 늙은이로만 남아 있지 않게 됩니다. 반모임하고 레지오 하고, 노인대학 다니면서 이것저것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찾아서 노력하다 보면 백 세 인생을 사는 사람이 될 것이지만, 만일 “늙어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늙었으니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이렇게 살다가 죽을란다.” 하면 백 세가 아니라 팔십 세 인생으로 마쳐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백 세까지 육체는 살아도, 우리의 삶은 피곤하고 고단할 뿐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미래를 건설해 봅시다. 오늘 우리 나이에서 멈추지 말고, 오늘 우리 나이에 미래를 준비하며 건설해 나갑시다. 그리고 가능하면 그 꿈이 나 하나뿐만 아니라 형제자매들과 교회와 인류의 구원과 정의 평화를 위한 것이면 더 좋겠습니다.

어려운 형제자매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기도하는 내 마음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품어 안음으로써 평화를 간직하고 살아갑시다.

어려운 형제자매들을 위해 봉사하면서, 나의 아픔과 한계를 잊고 주님께서 주시는 힘과 용기를 받아 힘차게 살아갑시다.

뜻을 같이하고 마음을 같이하는 형제자매들과 함께 활동에 나섬으로써, 함께하는 기쁨을 간직하고, 우리의 적은 노력과 정성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누군가에게 기쁨을 가져다주는 것을 바라보며, 우리의 삶을 기쁘고 보람차게 만들어 봅시다.

주님을 믿는 형제자매들과 함께 복음을 나누면서 그동안 시간이 없이 분주하게 살았기 때문에, 기도하거나 묵상하면서 잘 깨닫지 못했던 주님의 말씀을 되새기며 씹고 또 씹어서 그 말씀의 뜻을 깨닫고 새김으로써, 우리 삶의 영양가가 되는 삶의 양식으로 삼읍시다.

형제자매들과 선교에 나서면서, 우리 가슴 속에 주 예수님께서 나눠주신 사랑의 흔적과 기쁨이 무엇인지 되돌아보고, 그 기쁨과 사랑의 흔적을 나눔으로써 새 형제자매들과 함께 주님께 찬미와 영광을 올려드립시다.

춥다고 방안에 앉아만 있으면 더 약해지듯이, 늙어간다고 늙음과 세월과 환경에 뒤처지고 나약해져 우울하게 인생을 보내지 말고, 힘차고 거룩하게 살아 우리 인생을 꽃 피워 봅시다. 지는 해를 따라 피어나는 석양의 노을이 아름답듯이, 우리의 노년을 외롭고 힘겹고 피곤하게 병치레만 하면서 보내지 말고, 뜻깊고 거룩하게 보냅시다. 우리 인생을 죽음으로 어느 날 갑자기 허망하게 중단하지 말고, 인격적으로 풍요하고 거룩하게 마칠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

설날!

가족과 함께 흥겨운 한 때를 보내면서, 인간으로서 내 삶을 성찰해 봅시다.

‘내 삶을 통해 내가 이루고자 했던 꿈이 무엇이었는지?’

‘그동안 내가 이루었던 것과 이루지 못한 것들이 무엇인지?’

그와 동시에,

‘나와 우리 가정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나와 우리 가정의 기쁨과 슬픔 속에 주 하느님께서 어떻게 함께하시면서 은총과 축복을 내려주셨는지?’

‘주 하느님께서 우리 가정의 기쁨과 슬픔을 통해 우리에게 무엇을 깨닫고, 어떻게 이루도록 하셨는지?’

‘그때 그 기쁨과 슬픔이 오늘 나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고, 그 기쁨과 슬픔의 역사를 통해 주 하느님께서 나와 우리 가정을 어떻게 이끌어 오셨는지?’

아울러 그동안 우리 가정의 먹고사는 일 이외에도, 신자로서의 우리 삶도 돌아 봅시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어떻게 주님의 사랑에 보답하였는지?’

‘주님께서 신자인 우리에게 믿거라 하고 맡겨주신 선교사명과 복음화를 얼마나 어떻게 이루었는지?’

그리고

‘지금 이 시점에서 앞으로 선교화 복음화를 어떻게 이룰 것인지?’

도 성찰하면서, 우리 인생을 꽃피우고 우리 인생의 마지막을 풍요롭고 거룩하게 완성해 봅시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다해) 루카 12,35-40; ’19/02/05

지난 12월 이승준 프란치스코 신부님과 당시 박재성 시몬 부제님과 사목협의회원들과 함께 본당 설립 110주년을 맞아 역대 본당 주임사제님들을 모셔놓은 용산 성직자 묘지와 용인 성직자 묘지를 참배하였습니다.

서울대교구 용산 성직자 묘지에는 우리 본당에서 1909년 5월 본당 설립에서부터 1917년 9월까지 봉직하셨던 초대 김원영 아우구스티노 신부님을 비롯하여 1917년 10월부터 1918년 11월까지 봉직하셨던 제2대 김휘중 요셉 신부님, 1919년 5월부터 1923년 6월까지 봉직하셨던 제3대 황정수 요셉 신부님, 1926년 6월부터 1932년 9월까지 봉직하셨던 제5대 박우철 바오로 신부님, 1935년 1월에 부임하여 3월에 순직하신 제7대 이종순 요셉 신부님, 1937년 5월부터 1941년 1월까지 봉직하셨던 제8대 김유룡 필립보 신부님 그리고 1979년 6월부터 1983년 3월까지 봉직하셨던 제15대 박성종 프란치스코 신부님이 모셔져 있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초대 김원영 아우구스티노 신부님은 1869년 충청도 공주에서 태어나셔서 1882년 말레이반도 페낭신학교에서 유학하고 1892년 귀국하여 용산 예수성심 신학교에서 학업을 마치고 1899년 사제서품을 받으시고 제주의 첫 선교사로 파견되어 제주(중앙) 성당을 창설하시고, 서귀포(한논) 성당을 설립하셨습니다. 1901년에 황해도 봉산과 안변 등에서 사목하시다가, 1905년 5월 26일에 신자 682명의 당시 행주 성당 명의의 우리 본당 초대 주임사제로 부임하셔서 1910년 8월 17일에는 성모 승천 성당(행주 성당)을 건립하고 축성식을 가졌습니다. 신부님은 본당에 봉직하시면서 ‘경향신문’을 편집하시다가, 1914년에 수원교구 왕림(갓등이) 성당에서 봉직하시고, 1933년 황해도 신계 및 정봉에 새 성당을 건립하시는 과정에서 몸이 쇠약해져 1936년 주교관에서 휴양하시다가 그 해 10월 67세의 일기로 주님께 돌아가셨습니다.

이번에 참배하면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제2대 김휘중 요셉 신부님께서 1887년 태어나셔서 1917년 9월 22일 사제서품을 받으시고 10월 1일 우리 본당에 부임하셨는데, 11월에 환우 봉성체를 나가셔서 독감에 걸린 교우를 방문하시고 봉성체를 하는 과정에서 독감에 전염되시어 투병하시다가 다음해 11월 12일 약관 31세의 나이로 주님께 돌아가셨다는 사실입니다. 그 기록을 보면서 사제수품을 받고 봉성체 나가서 감염되어 일 년여의 사제생활을 병마와 싸우시다가 가셨다는 사실이 안타까웠고 한 쪽으로는 신부님의 사목적 열정과 신자들을 위한 헌신이 얼마나 깊었는가 하는 깨달음에 코끝이 찡해오는 감동을 받았습니다.

특별히 1923년 7월부터 1926년 6월까지 봉직하셨던 제4대 이순성 안드레아 신부님과 1932년 9월부터 1935년 1월까지 봉직하시며, 1866년 병인박해 전후 충청도 박해사를 기록한 실화소설 ‘은화’를 집필하셨던 제6대 윤의병 바오로 신부님은 민족상잔의 비극인 1950년 6월 25일 남북전쟁 때 각각 황해도 정봉과 은률에서 북한 공산당 정치보위부에 연행된 후 행방불명되어 현재 ‘한국천주교 근현대 신앙의 증인 하느님의 종 홍용호 프란치스코 보르지아 주교와 동료 80위’로 선정되어 시복절차 중입니다. 우리가 정성 어린 마음으로 기도를 올려 드려야할 분들입니다.

1942년 1월부터 봉직하셨던 제9대 이철연 프란치스코 신부님은 일제말 외국신부 국외추방과 성직자 부족 등을 이유로 5월 수원교구 안성 성당으로 이임하셨고, 현재 전주 치명자산 성직자 묘역에 모셔져 있습니다. 이후 6년여간은 성직자 부족으로 중림동 약현 성당의 도움으로 성사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1948년 2월부터 1950년 6월 전쟁 발발까지 봉직하셨던 제10대 김성환 빅토리노 신부님은 현재 대구 성직자 묘역에 모셔져 있습니다. 이 분들은 일제말기와 전쟁으로 흩어진 후 다시 재건되는 과정에서 각각 분할된 전주교구와 대구교구로 입적이 되어 현재 해당 교구 묘역에 모셔져 있습니다.

서울대교구 용인 성직자 묘지에는 1953년 11월 부임하여 전후 재건 과정에서 인구의 도시집중화에 따라 행주 성당의 공소였던 수색 지역으로 본당을 옮기고 행주 성당을 수색 성당의 공소로 변경하고 1968년 12월까지 봉직하셨던 제11대 임충신 마티아 신부님을 비롯하여 1968년 12월부터 1969년 9월까지 봉직하셨던 제12대 최서식 라우렌시오 신부님, 1969년 9월부터 1974년 5월까지 봉직하셨던 제13대 김윤상 베네딕토 신부님, 1983년 4월부터 1985년 4월까지 봉직하셨던 제16대 전용선 사도 요한 신부님, 1990년 9월부터 1993년 11월까지 봉직하셨던 제18대 홍인수 세례자 요한 신부님이 모셔져 있습니다. 최근에 돌아가신 주임사제분들은 여러분들도 아시는 분들이 많으시리라고 사료됩니다.

전년도 2018해에 우리는 성 원귀임 마리아 탄신 200주년을 맞아 서소문 성지를 참배했습니다. 올 한해는 본당 설립 110주년을 맞아 역대 주임사제님들의 노고를 기리고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용산이나 용인 또는 전주 치명자산이나 대구 성직자 묘역을 찾아 참배하면 좋겠습니다. 어디 놀러 갈 때도 많고, 가고 싶은 곳도 많고, 찾아 뵈어야할 곳도 많으시겠지만, 먼저 우리의 오늘이 있을 수 있도록 헌신하신 역대 신부님들과 수녀님들 평신도 지도자 등 신앙의 조상님들을 찾아 그분들의 삶을 기억하고 주 하느님께 찬미와 영광을 돌려드리며 그분들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우리의 도리라고 여깁니다. 특별히 조상님들의 은덕을 기리는 이 설 명절에 그분들의 피땀 어린 헌신과 열정이 가슴 속 깊이 절절이 저며오며, 새록새록 감사의 정이 샘솟습니다.

돌아가신 분들 뿐만 아니라 생존해 계신 신부님들도 계십니다. 1974년 5월부터 1979년 6월까지 봉직하셨던 제14대 김택암 베드로 신부님은 현재 혜화동 가톨릭대학교 이내수 사제관에 계시고, 1985년 4월부터 1990년 9월가지 봉직하시면 현 성당 건물을 건립하신 제17대 김창훈 바오로 신부님은 현재 역삼동 김성학 사제관에, 1993년 11월부터 1998년 9월까지 봉직하셨던 제19대 김득권 굴리엘모 신부님은 혜화동 가톨릭대학교 이내수 사제관에, 1998년 9월부터 2001년 12월까지 봉직하셨던 제20대 탁현수 아우구스티노 신부님은 은평 은퇴 사제관에, 2001년 12월부터 2006년 9월까지 봉직하셨던 제21대 유종만 바오로 신부님은 홍제동 성당 주임사제로, 2006년 9월부터 2011년 8월까지 제22대 남국현 사도 요한 신부님은 성북동 최양업 사제관에, 2011년 9월부터 2016년 8월까지 봉직하셨던 제23대 이기헌 사도 요한 신부님은 둔촌동 본당 주임사제로 사목하고 계십니다.

역대 주임사제분들 뿐만 아니라 보좌 신부님들, 수녀님들 그리고 사목협의회원분들과 평신도 지도자, 봉사자, 협조자, 일반 신자 모두가 이루어낸 결과가 오늘 우리의 신앙입니다.

지금까지의 수많은 사목활동 중 그래도 본당 설립 110주년을 맞는 우리가 선열들을 기억하며 할 수 있고, 또 해야만 하는 사목활동은 무엇보다 증산, 수색, 북가좌 지역의 ‘선교’와 ‘복음화’입니다.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분들에게 그리스도를 알리고 우리와 함께 주 하느님께 찬미와 영광을 돌려드리는 일이 최우선적인 일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웃 형제자매들에게 선포한 주님의 복음을 우리 가정과 직장과 지역사회 내에서 몸소 살아냄으로써, 우리 스스로 복음화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주 예수님께서 선포하시고 시작하시고 지금도 이루고 계신 하느님 나라를 향한 복음의 빛을 드러내게 됩니다.

올 본당 설립 110주년을 기념하여 우리가 준비하는 행사에 주님께서 함께해주실 수 있도록 기도와 나눔과 희생으로 공덕을 쌓고 주님께서 축복을 내려주시어 복음화의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각별히 노력합시다.

새해를 맞아 올 한 해 좋은 일만 가득하시길 기원합니다. 혹여 좋지 않은 일이나 힘겨운 일이 생기더라도 주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며 축복해주시는 사랑의 힘으로 능히 이겨냅시다. 그리고 설사 좋지 않은 일도 좋은 일처럼 받아들여 감싸주고 보다듬어 좋은 일로 만들어 갑시다. 올 한 해 주님 사랑 안에서 평안하시고 행복하소서.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수색 예수성심 성당 박재성 시몬 부제님 강론



(나해) 루카 12,35-40; ’18/02/16

찬미예수님 오늘 하루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족들에게도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길 빕니다.

며칠 전에 자동차 축복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기도문 중에 다음과 같은 문구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을 서로 결합시키는 것은 무엇이나 다 하느님 계획에 일치하는 것입니다.’ 걸어가기엔 너무 멀어서 만나지 못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동차는 그들을 만날 수 있게 하고, 사람을 결합시켜줍니다. 사람을 결합시키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기에 우리는 자동차 축복을 합니다.

오늘 우리는 설을 지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내고 있는 설도 사람들을 서로 결합시켜 주고, 하느님의 계획에 일치하게 해 줍니다. 우리는 설이 되면, 자신이 태어난 곳, 부모님이 계신 곳을 찾아 갑니다. 그렇게 가족과 친척이 서로 만나고 모입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어르신들이 많이 계신 우리 동네에는 설이나 추석이 되면 주차할 공간이 없습니다. 이 동네 주민으로서 주차 공간이 줄어드는 것은 불편한 것입니다. 하지만 멀리서 우리 동네를 찾아준 이들이 누굴까 생각해 보면, 부모님을 찾아뵙는 이들이고, 친척들에게 관심을 보이는 이들입니다. 그렇게 생각할 때, 그들은 하느님의 계획에 일치하고 있는 것이고, 하느님 보시기에 좋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저는 어르신들이 많이 계셔서 명절이면 북적이는 동네 모습이, 그리고 가족들이 서로를 챙기는 모습이 참 보기 좋습니다. 이처럼 가족의 모임이 가족을 서로 결합시켜주는 시간이 된다면 하느님의 계획에 일치하는 뜻 깊은 시간이 됩니다.

설은 살아 있는 사람만의 모임이 아니라, 우리보다 먼저 가신 분들을 기억하게 해줌으로써 그분들과도 결합됩니다. 우리는 설이 되면 차례를 지내고, 우리보다 먼저 가신 분들을 기억합니다. 사실 우리를 위하여 희생한 삶이 우리 앞에 있었기에, 우리가 여기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부모님과 선조들의 삶을 떠올리면, 그 분들이 보여주신 사랑과 헌신을 우리는 느낄 수 있습니다. 시대가 변하여 모습은 다를지 몰라도, 그 분들이 보여주신 것은 희생이며 가족을 위하는 삶이었습니다. 우리가 앞서간 이들을 기억하고 그 분들과 소중한 인연을 간직하고 있는 그만큼 우리는 그 사랑을 느끼며,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그 인연을 간직하려는 노력으로 우리가 차례를 지내며 그 사랑과 감사를 느끼고 사는 것도 그 분들과 끈끈한 관계로 결합하려는 노력이고 하느님의 뜻에 일치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어라.”(루카 12,35) 라고 말씀하십니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먼 거리를 움직이면서까지 와서 찾아뵙고, 또 미사를 통해 기억하고자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아마도 우리가 만나 뵙고자 하는 그분들이 자신들의 편의와 안락을 위해 살지 않고 언제나 깨어 기도하는 복음의 종들처럼 우리들의 안위와 편의를 세세히 살피며 돌보아 주셨던 분들이 때문 이지 않을까요.

우리들의 부모는 자식들이 끼니는 챙겨 먹는지 늘 걱정하셨습니다. 그 걱정의 마음은 여전하여 명절에 오랜만에 만난 자식에게 무엇이라도 더 먹이려 밥숟가락에 반찬을 얹어 주십니다.

부모는 자식이 밤늦게 다니는 것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의 주인을 기다리는 사람의 모습처럼 정말 그렇게 자식이 들어오길 기다리셨습니다. 시간이 흘러 자식을 출가 시켰지만, 이제는 언제나 한번 전화가 올까. 종종 전화기를 바라봅니다.

건강하던 자식이 어쩌다 아프기라도 하면 병 수발은 물론이고 자식의 짜증까지도 모두 받아 주셨습니다. 자식이 아플 때 하는 ‘내가 대신 아팠으면’ 이라는 드라마의 대사는 우리의 어머니들의 마음에 있는 말이기에 그토록 드라마에 많이 등장하나 싶기고 합니다. 자식이 앞에 있건, 멀리 떠나 눈에 보이지 않을 때도 부모는 자식생각입니다.

이 모든 모습이 오늘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어라”라는 말씀의 구체적인 모습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러한 모습으로 우리의 부모님 그리고 또 그 부모님의 부모님이 사셨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제 우리는 오늘 합동 위령 미사를 통해 그분들을 기억하며, 그분들이 우리에게 쏟아 부어 주셨던 사랑에 깊은 감사를 드리며 주 하느님께서 그분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시간이 갈수록 사람들이 모이고 만나기가 어렵다는 말이 많이 들립니다. 사람들은 점차 바빠지고, 가족에 대한 관심도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럴 때 일수록 공동체를 이루려 노력하는 신자들의 모습은 예수님께서 행복하다고 하신 깨어 있는 종들의 모습일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기다리는 사람의 모습이 되어 떠나간 이들, 함께 하는 이들을 위해 기도해야겠습니다.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어라.”(루카 12,35)






(가해) 루카 12,35-40; ’17/01/28

어떤 분들은 미국같은 큰 나라에 가서 살면 행복하겠다고 부러워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한 번은 스리랑카 신부님이 겨울 이맘 때였는데 우리나라에 놀러왔다가, 저보고 “한국 사람들은 부자!” 라고 감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분이 가리키는 손끝을 바라보니 집집마다, 굴뚝마다 연기가 나고 있었습니다. 그분은 “추운겨울에 얼어 죽지 않고 저렇게 집집마다 다 불을 때고 있으니 부자고 행복한 나라.” 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저는 우리나라의 산업근대화가 한창 진행되고 있던 1980년대에 구로공단이 있는 구로동 성당에서 신부생활을 하고 있어서 그 곳 신자들이 가난하다고 여겼었는데, 그 신부님의 눈에는 아주 부자로 보인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경제적, 물질적으로 더 풍요한 거주환경을 보고 행복할 것이라고 여깁니다. 그런데 제가 미국 서북미 워싱턴 주에서 살았는데, 그 곳은 미국에서 경치와 전경이 너무나 아름답고 평화로운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한국 신문에 나는 기사를 보면, 시애틀 타코마 지역에 한국사람이 13만 명 정도 살고 있었는데 평균 한 달에 한 명 이상의 한국인들이 살해되었고, 여러 가지 사고와 강도 등의 이유로 불안하고 녹녹치 않게 살고 있었습니다.

비단 나라뿐만 아니라 한 직장, 한 집안의 같이 사는 형제들 사이에서도 서로를 비교하면서 살게 되면 불행합니다. 서로 ‘남의 떡이 커 보인다.’고 남의 장점이 부럽고 내가 가지거나 누리고 있지 않은 것을 남이 갖고 누리고 있는 것을 보면 시샘과 질투를 하게 됩니다. 나의 부족한 면과 다른 사람의 장점을 보면 내 모습이 초라해 보이지만, 나의 장점과 다른 사람의 단점을 비교해보면 내 모습이 결코 초라하지 않습니다. 남이 부럽다고 해서 내가 남이 될 수 없습니다. 심지어는 내가 남의 것을 빼앗았다고 해도 그것은 내 것이 아닙니다. 가졌다고 여기는 사람은 빼앗기기 전에 나누어야 하고, 가지지 못했다고 여기는 사람은 자신이 무엇을 가지고 무엇을 가지고 있지 않은지 되돌아보면 좋겠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루카 12,40) 라고 말씀하십니다. 첫 독서에서 야고보 사도는 “여러분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생명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 버리는 한 줄기 연기일 따름입니다. 도리어 여러분은 “주님께서 원하시면 우리가 살아서 이런저런 일을 할 것이다.” 하고 말해야 합니다.”(야고 4,14-15) 라고 전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믿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우리를 만드셨다는 것을 믿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한 사람 한 사람 따로 따로 만드시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각기 다른 장점을 주셔서 공동체에 기여하도록 하셨다는 것도 믿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없는 다른 사람의 소명을 부러워하지 말고, 무엇보다도 우리 자신에게 주신 하느님의 선물이 무엇인지 알아 그 장점과 소질을 계발하여 소명을 실현하며, 스스로 행복하고 나름대로 인류공동체에 기여하며 자긍심을 가지고 스스로 서는 것이 좋겠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가정내의 사랑의 충실함에 대한 담화문



(다해) 루카 12,35-40; ’16/02/08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우리 민족의 명절인 설날을 맞아 여러분 가정에 주님의 축복과 은총이 가득하시기를 빕니다. 강론을 준비하면서 올 설에는 가정에 대해 이야기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가정의 충실성에 대한 교황님의 말씀들이 여기 저기 있어서 간략하게 모아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편안한 마음으로 들으시고 더 행복하시기를 기도합니다.

가정은 약속 위에 토대를 두고 있습니다. 가정은 남자와 여자의 사랑의 약속과 충실성의 약속을 살아간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부부의 약속은 인간의 공존과 공동선을 향한 관대한 개방을 통해 모든 어머니, 아버지, 자녀의 기쁨과 고통을 나누는 것으로 확장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가정생활의 약속에 충실한 것에 대한 존경이 매우 약화된 듯 보입니다. 한편으로는 모든 관계 안에서 그리고 모든 노력을 다해 자기만족을 추구하는 데 대한 잘못된 권리 주장이 자유와 타협할 수 없는 원리처럼 과장된 때문입니다. 다른 한쪽으로 공동선을 위한 의무와 관계가 지닌 구속력을 오직 법에 맡기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자유롭습니다. 자유가 없이는 사랑이 있을 수 없으며 혼인도 가정도 없습니다. 자유와 충실성은 서로 대립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상호 인격이나 사회적 관계 안에서나 서로를 지탱해 줍니다. 충실성은 자기가 “사랑하기로 서약한” 말에 자유로이 복종하는 가운데 성장하면서 자기를 실현해 나가는 의무의 약속입니다. 충실성은 실재로 나누기를 ‘원하는’ 신뢰입니다. 그리고 함께 가꾸고 싶어 하는 희망입니다.

어떤 분들은 “신부님, 우리는 가난한 가정입니다. 그리고 좀 부서진 가정입니다.” “우리는 힘이 없어요.” “우리 집에는 이미 너무나 많은 문제가 있어요.” 라고 말할지 모릅니다. 어쩌면 그 말이 맞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합당치 않고, 그 누구도 강한 힘을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은총 없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주님의 손에 우리를 내어 맡긴다면, 우리 사이에 기적이 이루어지게 하십니다.

사랑에 대한 언약을 충실하게 지키는 것은 이 시대의 기적입니다. 결혼할 때 “즐거울 때나 괴로울 때나, 성할 때나 아플 때나 일생 신의를 지키며 사랑하고 존경하겠다.”고 했던 그 서약에 대해, 상대의 행위에 흔들리지 않고 스스로 충실하게 명예를 지키는 것, 그 약속에 대한 충실성은 사고 팔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힘으로 강제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희생 없이는 수호할 수 없는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사랑의 진리를 가르칠 수 있는 학교는 가정 외에 없습니다. 만약 사랑과 출산 사이의 인격적 관계가 우리의 육신 안에 새겨져 있지 않다면 그 어떤 법도 인간의 존엄성이 지닌 이 보물의 아름다운 유산을 부과할 수 없습니다.

사랑의 충실성에 대한 사회적인 명예를 회복합시다. 사랑의 약속, 출산의 약속, 가정의 약속에 대한 이 충실성의 원리는 영원한 축복으로써 하느님의 창조와 구원 안에 새겨져 있습니다. 이 축복에 세상이 맡겨졌습니다. 약속에 대한 우리의 충실성은 하느님의 은총과 자비에 의탁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성실성에 전혀 흔들리지 않으시고 꾸준하고 충실하게 사랑해주셨음을 기억하며, 주님의 축복에 힘입어 우리 사랑의 기적을 이루어 나갑시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주님께서 내려주시는 그 풍성한 축복과 은총 안에서, 여러분의 가정이 갖가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난관과 시련을 겪게 되더라도, 가족 구성원들끼리 서로서로 충실하게 사랑함으로써 꿋꿋이 가정을 지켜나가 마침내 결실을 맺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연중 제5주일 설미사



'13/02/03

지난 주일 손님이 많아서 식사는 하고 가셨습니까? 많은 손님들이 여러분이 저를 아주 많이 사랑해주고 계시다는 정을 느꼈다고 하셨습니다. 부족한 저를 위해서 은경축을 준비해 주시고 기도해 주셔서 진정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더 열심히 살아서 여러분의 온정을 갚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설 명절입니다. 여러분은 설 하면 어떤 것이 생각납니까?

저는 떡국이 생각납니다. 어릴 때 어머니가 끓여주시던 떡국! 제가 떡국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대학 다닐 때 오퍼상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그 때 점심은 늘 회사 옆 건물의 분식집에서 떡국을 먹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주인 아주머니가 '청년이 왜 그렇게 떡국을 질리지도 않고 잘 먹느냐?'고 하시면서, 매일 점심 때 저를 위해 떡국을 특별히 끓여 준비해 주셨을 정도였습니다.

부모님께서 돌아가신지 20여년이 넘어 그 때 끓여주신 그 떡국의 맛이 지금 먹는 떡국의 맛과 어떻게 같고 어떻게 다른지는 잘 모르지만 그래도 떡국을 먹으면 부모님 생각이 납니다. 떡국을 끓이며 가족의 건강과 화목을 이루셨던 부모님의 사랑과 은덕을 기억합니다.

여러분은 이 설 명절에 무엇이 생각나십니까?

여러분이 그리는 설의 꿈과 추억과 기억이 오늘 여러분에게 가정의 화목과 평화를 인도합니까? 잠시 과거의 추억을 되살려 보면서 부모님과 은인과 후원자들, 그리고 알게 모르게 우리가 있도록 피를 흘린 순국자들이 베풀어준 온정이 오늘 여러분의 삶과 가정에 어떤 영향을 주고 새롭게 승화시켜 주고 있는지 되새겨 봅시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연중 제5주일



(가해) 마태 5, 13-16; '05/02/06

설날은 한 해의 첫날. 1월 1일을 지칭하는 것으로, 원단(元旦)·원일(元日)·정초라고도 한다.

설의 의미와 기원을 살펴보면, 설은 묵은 해를 떨쳐버리고 새로 맞이하는 한 해의 첫머리이다. 따라서 설이라는 말은 ‘설다’, ‘낯설다’ 등의 ‘설’이라는 어근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설은 묵은 해에서 분리되어 새해로 통합되어가는 전이과정으로서, 새해에 통합되기에는 익숙하지 못한 단계이다. 설이 ‘신일(愼日)’이라 하여 ‘삼가고 조심하는 날’로 기술된 것도 새해라는 시간질서에 통합되기 위해서는 조심하고 삼가야 된다는 뜻을 강조한 것으로 보이며, 이외에 세수(歲首)·세초(歲初)·연두(年頭)·연시(年始)라는 말에서도 나타난다. ‘설’이라는 말은 신라 때 민간에서 널리 사용되었다고 본다. 기록에 의하면 신라인들은 원일(元日) 아침에 서로 하례하고 일월신을 배례한다고 되어 있다. 설은 고려시대에는 9대속절(九大俗節)의 하나로, 조선시대에는 4대명절의 하나로서 유구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강제로 양력설을 쇠다가, 광복후에는 양력설인 신정에 비해 음력 1월 1일을 구정이라고도 했다가, 1985년부터 ‘민속의 날’로 바뀌고, 1989년부터는 3일 동안 쉬면서 ‘설날’이라는 공식 명절이 되었다.

설의 민속은 한민족의 오래된 민속과 중국에서 전래된 민속이 동화되어 이루어진 것으로 본다. 설날이 되면 남녀노소, 빈부귀천의 구분없이 일손을 놓고 객지에 살던 일가친척들이 고향으로 모여들어 어른들에게 세배를 하고 조상에게 차례를 지낸다. 설날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서 미리 마련해 놓은 새 옷을 입는데, 이 새 옷을 ‘설빔’이라고 한다.

설날의 제사는 차례(茶禮)와 성묘로 대별된다. 설날 아침 일찍 세찬(歲饌)과 세주(歲酒), 떡국을 마련하여 사당에 진설하고 제사지내는 것을 차례라고 한다. 자손들이 모두 장손집에 모여 함께 차례를 지내고, 어른에게 새해 첫인사를 드리는 세배를 한 후에 성묘를 한다. 성묘는 조상묘를 찾아가 간단한 세찬과 세주를 차려놓고 절을 한다. 요즘에는 주로 한식과 추석에 성묘를 하지만,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했다는 인사로서 조상에게 세배를 올린다.

설날에는 농한기인 정초에 한 해 동안 농사가 잘되기를 기원하는 민속놀이들이 행해졌다. 대표적인 놀이로는 윷놀이,·널뛰기,·연날리기,·돈치기,·승경도(陞卿圖)놀이 등이 있다. 설에 가장 널리 성행하는 윷놀이는 정초뿐 아니라 가을걷이가 끝나고 타작을 마치면 시작된다. 연에는 액(厄)자 한 자를 쓰거나 송액(送厄)또는 송액영복(迭厄迎福) 등의 글자를 쓰는데, 이것은 그 해의 재앙이나 못된 액을 연에 실어 날려보낸다는 의미를 지닌 풍속이다.

설의 절식으로 일반적인 것은 떡국이다. 떡국은 쇠고기 또는 닭고기 국물을 넣어서 끓이지만 원래는 꿩고기국에 끓였다. 정초에 서로 만나면 “떡국 먹었느냐”고 묻는다. 이것은 “설 쇠었느냐” 또는 “몇 살 먹었느냐”는 물음으로서, 이때 떡국 먹는 것을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는 뜻으로 말하고 있다. 한국 북부지방에서는 만두국을 많이 먹는다. 한국의 세주로는 약주·청주 또는 탁주가 쓰이고, 혹은 소주에 약미(藥味)를 가미한 것이 일반적으로 많이 쓰였고, 중국에서 온 초백주, 도소주 등이 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며 빛’이라고 하시면서, “등불을 켜서 됫박으로 덮어 두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등경 위에 얹어 둔다. 그래야 집 안에 있는 사람들을 다 밝게 비출 수 있지 않겠느냐?”(15)라고 말씀하신다.

미국에 사는 어느 민족은 자신들의 고유 명절에 명절을 세기 위해 학교를 안 가도 학교에서 결석으로 처리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만큼 미국 사회에 그 민족의 힘이 인정받고 있다는 모습이기도 하다.

우리는 과연 우리의 민족의 모습을 어떻게 드러내고 있는가?

명절에 가족끼리 모여 함께 가족의 일치와 화목을 위한 시간을 보내는 것도 중요하고, 고국에 있는 부모 친지와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어른들에게 소식을 나누는 것도 중요하다.

또 홀로 사는 할아버지, 할머니나 가족 없이 명절을 지내야 하는 한인 또는 유학생들을 초대하거나 방문하여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도 아름다운 일이다.

그런가 하면 우리 고유의 민속명절을 맞아 이웃에 사는 다른 민족들에게 우리 음식을 나누고 우리의 명절을 소개하는 것도 한국인에 대한 좋은 인상과 함께 적극적으로 우리 민족을 알리고 우리 한국인의 가치를 높이는 일이라고 하겠다.

특별히 이번 설날은 사순시기가 시작되는 재의 수요일과 겹쳐 있다.

우리가 재의 수요일을 맞아 마땅히 이마에 재를 바르고, 금육과 금식을 하면서 주님의 수난에 동참하여야 하겠지만, 우리의 민속명절과 겹치기 때문에 흥겹고 즐겁게 지내는 대신 우리 주위의 어려운 이웃들을 초대하고 방문하여 우리 금육과 금식의 몫을 기쁘게 나눔으로써 마음과 내용적으로 금육과 금식을 실현하면 좋겠다. 아무도 초대할 이가 없고 방문할 이가 없어, 양노원이나 사회복지시설에 수용되어 있는 어려운 이들을 방문한다면 더욱 더 빛나는 일이겠다.

우리 마음속에 가지고 있던 좋은 생각과 계획들을 이번 기회에 마음속에다만 담아두지 말고 빛을 밝히듯 동족과 이웃 민족들에게 펼쳐 보임으로써 설날을 기쁘게 보내고, 우리 한민족의 빛을 드러냅시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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