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의 대축일 경축 이동

루가 9,23-26; 16/09/18

추석 잘 세셨습니까? 명절 치르시느라 수고 많으셨죠? 예전에 혼자 살 때 먹는 것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다. 한 번에 많이 먹고 다시 배가 안고프면 좋을 텐데, 한 번에 하루치를 다 먹으면 과식으로 배가 탈이 나서, 매 번 일정양의 음식물을 취해야 한다는 인간 조건이 좋기도 했지만 부담스럽기도 했습니다. 또 그에 따라 매 번 남은 음식물을 치우고, 냄새가 나지 않도록 뒷정리를 해야 한다는 사실이 기쁘기도 했지만 귀찮기도 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루카 9,23) 라고 말씀하십니다. 과거에 한 번이 아니라 날마다, 크게 한 번이 아니라 매일 매 순간 주님의 복음 말씀을 증거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저는 지난 2014년 8월 16일 한국을 방문하셔서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신앙선조들을 복자품에 올려주시며,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께 향한 회개와 새로운 삶으로 이끄셨던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강론을 통해 오늘 우리의 신앙을 되새기고 싶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서울 광화문에서 시복미사를 봉헌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있겠습니까?’(로마 8,35). 성 바오로는 이 구절을 통해, 예수님을 믿는 우리 신앙의 영광에 대하여 말합니다. 그 신앙의 영광은, 그리스도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시어 하늘에 오르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를 당신과 결합시키시어 당신의 영원한 생명에 참여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순교자들은 모두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고, 그리스도를 위해 죽었습니다. 지금 그들은 환희와 영광 속에서 그리스도의 다스림에 함께 참여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아드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그 무엇보다도 위대한 승리를 우리에게 선사하셨음을, 순교자들은 성 바오로와 함께 증언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도, 권세도, 현재의 것도, 미래의 것도, 권능도, 저 높은 곳도, 저 깊은 곳도, 그 밖의 어떠한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로마 8,38-39)”

교황님은 ‘한국 순교자들의 시복미사’에서 교황님께서는 한국 천주교회를 평신도들이 자립적으로 세웠다는 사실을 칭찬하십니다.

“순교자들의 승리, 곧 하느님 사랑의 힘에 대한 그들의 증언은 오늘날 한국 땅에서, 교회 안에서 계속 열매를 맺습니다. …… 하느님의 신비로운 섭리 안에서, 한국 땅에 닿게 된 그리스도교 신앙은 선교사들을 통해 전해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한민족, 그들의 마음과 정신을 통해 이 땅에 그리스도교 신앙이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지적 호기심과 종교적 진리의 탐구를 통해 촉발되었습니다. …… 이러한 역사는 우리에게 평신도 소명의 중요성, 그 존엄함과 아름다움에 대하여 많은 것을 말해 줍니다.”

그러시면서 순교자들이 받아들인 복음의 열망에 대해 이야기 하셨습니다.

“복음과 처음으로 만난 한국의 첫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께 자신의 마음을 열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고난을 받으시고 돌아가셨으며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에 대해 더욱더 많이 알고자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에 대한 무언가의 깨달음은 곧 주님과의 만남으로 이어져, 첫 세례들과 더불어 충만한 성사 생활과 교회적 신앙생활에 대한 열망, 그리고 선교 활동의 시작으로 계속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전통적인 사회적 신분의 차별과 상관없이, 믿는 이들이 모두 한마음 한뜻이 되어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던 초대 교회의 삶(사도 4,32 참조)에서 영감을 받아, 한국의 신자 공동체들 안에서도 많은 열매를 맺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한국 천주교가 시작했던 조선 시대에는 양반과 중인 및 상인으로 반상의 신분차이가 엄격히 존재하고 남존여비가 남녀평등을 심각하게 저해하고 있던 시절이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회 상황 안에서, 조선시대 초기 천주교 신자들이 그리스도교 신앙을 갖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선택했다는 사실을 교황님은 지적하십니다.

“이 땅에 믿음의 첫 씨앗들이 뿌려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순교자들과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예수님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세상을 따를 것인가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만 했습니다. 그들은 당신 때문에 세상이 그들을 미워할 것이라는 주님의 경고를 들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제자 됨의 대가가 무엇인지를 알았던 것입니다. 많은 사람에게 이것은 박해를 의미했고, 또 나중에는 산속으로 들어가 교우촌을 이루게 됨을 의미했습니다. 그들은 엄청난 희생을 치를 각오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에게서 그들을 멀어지게 할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즉 재산과 땅, 특권과 명예 등 모든 것을 포기하고자 했습니다. 그들은 오직 그리스도 한 분만이 그들의 진정한 보화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서 교황님은 오늘 우리가 처한 사회상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고민을 대비하며, 현실 안에서 우리 천주교인들이 선택해야 할 복음 정신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오늘날 우리는 매우 자주 우리의 신앙이 세상에 의해 도전받음을 체험합니다. 우리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방식으로, 우리의 신앙을 양보해 타협하고, 복음의 근원적 요구를 희석시키며, 시대정신에 순응하라는 요구를 받게 됩니다.

그러나 순교자들은 그리스도를 모든 것 위에 최우선으로 모시고, 그 다음에 이 세상의 다른 온갖 것은 그리스도와 그분의 영원한 나라와 관련해서 보아야 함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줍니다. 순교자들은 우리 자신이 과연 무엇을 위해 죽을 각오가 되어 있는지, 그런 것이 과연 있는지를 생각하도록 우리에게 도전해 옵니다.”

교황님은 순교자들을 뒤를 이어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구분하지 말고 가난한 이들에게 사랑으로 다가가라고 하십니다.

“순교자들은 그들의 모범으로, 신앙생활에서 애덕의 중요성에 관한 가르침을 우리에게 줍니다. …… 마침내 당대의 엄격한 사회 구조에 맞서는 형제적 삶을 이루도록 그들을 인도하였습니다. 이는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이중 계명을 분리하는 데 대한 그들의 거부였습니다. 그들은 형제들의 필요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어려움에 처한 형제자매들에게 뻗치는 도움의 손길로써 당신을 사랑하고 섬기라고 요구하시며, 그렇게 계속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그렇게 주님을 믿는 신앙과 그에 따른 사랑의 실천에 이르는 기쁨을 이야기 해주십니다.

“순교자들의 모범을 따르면서 주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여 믿는다면, 우리는 순교자들이 죽음에 이르도록 간직했던 그 숭고한 자유와 기쁨이 무엇인지 마침내 깨닫게 될 것입니다.”

오늘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에 한국 순교자들에 대한 교황님의 강론을 되새기며, 우리가 매일 접하고 대면해야 하는 일상에서 주님의 말씀을 잘 실현하여, 형제자매들과 함께 하늘 나라를 이루어 나가는데 충실하기로 합시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루카 9,23)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의 대축일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회칙 ‘찬미를 받으소서’(Laudato Si’) VI

루가 9,23-26; 15/09/20

오늘은 회칙 ‘찬미를 받으소서’의 ‘제6장 생태 교육과 영성(202-246항)’을 살펴보겠습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인 오늘 현실에서 순교자적인 자세로 살아 나아가야 할 우리 교회의 새로운 희망을 향해 나아간다는 의미에서 교황님께서 제시하는 새로운 생활양식을 살펴보며 회칙을 마무리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 회칙의 마지막 장은 모든 사람을 생태적 회개로 초대하는 핵심 부분입니다. 문화 위기의 뿌리는 깊으며 습관과 행동을 바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교육과 훈련이 열쇠입니다. “동기 부여와 교육 과정 없이 변화는 불가능합니다”(15항). 모든 교육 분야의 참여가 있어야 하며 무엇보다도 “학교, 가정, 매체, 교리교육”(213항)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 6장은 새로운 생활 양식을 향하여(203-208항), 인류와 환경의 계약을 위한 교육(209-215항), 생태적 회개(216-221항), 기쁨과 평화(222-227항), 사회적 사랑과 정치적 사랑(228-232항), 성사의 표징과 안식일 거행(233-237항), 삼위일체와 피조물들의 상호 관계(238-240항), 모든 피조물의 모후(241-242항), 태양 넘어(243-246항)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I. 새로운 생활 양식을 향하여(203-208항)

현실적 상대주의와 소비의 문화가 존재하지만, “모든 것을 잃은 것은 아닙니다. 인류는 최악의 것을 자행할 수 있지만 또한 정신적 사회적 제약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서 벗어나 선한 것을 선택하여 새롭게 시작할 수 있습니다. …… 어떠한 체제도 선하고 참되며 아름다운 것에 대한 개방성, 곧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작용하는 하느님 은총에 응답하도록 하느님께서 주신 능력을 완전히 억누를 수 없습니다. 저는 온 세상의 모든 이에게 우리의 이러한 존엄을 잊지 말라고 호소합니다”(205항). 생활 양식과 소비자 선택의 변화는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힘을 발휘하는 이들에게 큰 압력을 행사”(206항)할 수 있습니다. “개인주의를 극복할 수 있다면 우리는 다른 대안적 삶의 방식을 참되게 발전시킬 수 있고, 사회에 엄청난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 것입니다”(208항).

II. 인류와 환경의 계약을 위한 교육(209-215항)

환경 교육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환경 교육은 행동과 일상 습관, 곧 물 절약, 쓰레기 분리 수거, 나아가 “필요 없는 전등의 소등”(211항) 또는 난방비 절약을 위한 따뜻한 옷 입기에까지 영향을 미칩니다(211항).

III. 생태적 회개(216-221항)

신앙과 그리스도교 정신은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의 모범을 따라서 “우리 세상의 보호에 더욱 깊은 관심을 갖도록”(216항) 깊은 동기 부여를 해 줍니다. 개인적 변화는 반드시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사회 문제는 공동체 관계망이 다루어야 합니다”(219항). 생태적 회개는 감사와 관대를 의미하며 창조성과 열정을 발전시킵니다(220항).

IV. 기쁨과 평화(222-227항)

‘복음의 기쁨’(Evangelii Gaudium)에서 제안된 것처럼 “자유롭게 의식적으로 발휘된 냉철함은 우리를 해방시켜 줍니다”(223항). 이와 마찬가지로 “행복은 우리를 해치는 일부 욕구를 억제하는 법을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삶이 줄 수 있는 많은 다른 가능성들에 열려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223항). “우리가 식사 전후에 잠시 멈춰 하느님께 감사드리는 것이 그것을 표현하는 한 가지 방식입니다.”(227항).

V. 사회적 사랑과 정치적 사랑(228-232항)

“온전한 생태계는 또한 폭력과 착취와 이기주의의 논리를 타파하는 단순한 일상 행위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230항). 그 사회적 정치적 차원에서 “사회를 사랑하고 공동선을 위하여 노력하는 것은” 애덕에 대한 “탁월한 표현입니다”(231항). 사회에서 자연과 도시 환경을 보존하면서 공동선을 위하여 활동하는 많은 단체들이 있습니다.

VI. 성사의 표징과 안식일 거행(233-237항)

우리는 또한 하느님을 가까이 만나 뵙고 또한 그분의 신비의 징표를 담고 있는 창조를 묵상하면서 그분을 만납니다. 성사들은 하느님께서 어떻게 자연을 받아들이시는지를 특권적인 방식으로 보여줍니다. 그리스도교는 물질과 육체를 부인하지 않으며 그것들에 완전한 가치를 부여합니다. 특히 성찬례는 “하늘과 땅을 결합시킵니다. 성찬례는 모든 피조물을 품고 그 안에 스며듭니다. …… 그러므로 성찬례는 또한 환경에 대한 우리의 관심을 위한 빛의 원천이며 동기로 모든 피조물에 대한 관리자가 되라고 우리를 이끌어줍니다”(236항).

VII. 삼위일체와 피조물들의 상호 관계(238-240항)

“그리스도인들은 삼위일체의 친교를 이루시는 한 분 이신 하느님을 믿으면서 삼위일체가 모든 피조물에 그 표징을 남겼다고 생각합니다”(239항). 인간은 또한 삼위일체의 역동성을 본받으라는 부르심을 받아 “하느님, 다른 이들, 모든 피조물과 친교를 이루며 살아가기 위하여 우리 자신에서 벗어납니다”(240항).

VIII. 모든 피조물의 모후(241-242항)

예수님을 돌보시는 마리아께서는 이제 예수님과 함께 사시며 모든 피조물의 모후가 되셨습니다. “모든 피조물은 그분의 공정을 노래합니다”(241항). 마리아 곁의 요셉은 복음에서 의로운 사람이며 노동자로 참으로 온유하고 강한 인물로 나옵니다. 마리아와 요셉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 세상을 보호하도록 가르치고 힘을 실어줄 수 있습니다.

IX. 태양 넘어(243-246항)

결국 우리는 하느님의 한없는 아름다움 앞에 서있는 우리 자신을 발견합니다. “영원한 삶은 경외를 함께 나누는 체험이 될 것이며, 그 경험 안에서 눈부시게 변모된 모든 피조물은 합당한 자리를 차지하고 궁극적으로 해방된 모든 가난한 이에게 줄 것이 있게 될 것입니다”(243항). 우리의 고난과 근심이 희망의 기쁨을 빼앗지 못할 것입니다. “이 세상 중심에는, 우리를 그토록 사랑하시는 생명의 주님께서 언제나 현존하여 계시기”(245항)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사랑은 우리가 언제나 새로운 길을 찾도록 해 줍니다. 주님께서는 찬미를 받으소서.

“기쁘면서도 불편한 이러한 긴 성찰의 결론으로”(246항), 교황님께서는 두 가지 기도, 곧 우리의 지구를 위한 기도와 그리스도인이 피조물과 함께 드리는 기도를 드릴 것을 제안하십니다.

103위 한국 성인의 날을 기념하는 오늘, 저는 교황님께서 새로운 길로 제시해 주신 이상의 회칙 내용을 마무리 하면서, 교황님께서 요청하신 두 기도 중 ‘우리의 지구를 위한 기도’를 함께 바치며 강론을 마무리 하고자 합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을 열고자 하시는 교황님의 지향에 우리 정성을 모아 함께 기도합시다.


전능하신 하느님,

하느님께서는 온 세계에 계시며

가장 작은 피조물 안에 계시나이다.

하느님께서 존재하는 모든 것을 온유로 감싸 안으시며

저희에게 사랑의 힘을 부어 주시어

저희가 생명과 아름다움을 보살피게 하소서.

또한 저희가 평화로 넘쳐 한 형제자매로 살아가며

그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게 하소서.


오, 가난한 이들의 하느님,

저희를 도와주시어

저희가 하느님 보시기에 참으로 소중한 이들,

이 지구의 버림받고 잊힌 이들을 구하게 하소서.

저희 삶을 치유해 주시어

저희가 이 세상을 훼손하지 않고 보호하게 하시며

오염과 파괴가 아닌 아름다움의 씨앗을 뿌리게 하소서.

가난한 이들과 지구를 희생시키면서

이득만을 추구하는 이들의 마음을 움직여 주소서.

저희가 하느님의 영원한 빛으로 나아가는 여정에서

모든 것의 가치를 발견하고

경외로 가득 차 바라보며

모든 피조물과 깊은 일치를 이루고 있음을 깨닫도록

저희를 가르쳐 주소서.

하느님, 날마다 저희와 함께해 주시니 감사하나이다.

비오니, 정의와 사랑과 평화를 위한 투쟁에서

저희에게 힘을 주소서.

아멘.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의 대축일

루가 9,23-26; 13/09/22

지난 주에 우리는 9월 28일 도보 성지 순례를 시작할 ‘절두산 순교 성지’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오늘은 우리가 도보 성지 순례의 도착지인 ‘새남터 순교 성지’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새남터는 한국교회 역사상 순교한 성직자 14분 중 11분이 순교하였으며 이 11분 중 8분과 교회의 지도급 평신자 3분이 성인품에 오른 한국의 대표 순교성지입니다. 조선인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 안드레아 성인, 최초로 한국에 들어왔던 신부인 중국인 주문모 신부, 최초로 한국에 들어왔던 주교 앵베르 성인, ‘기해일기’ 의 현석문 가를로 성인, 페레올 주교의 평신도 회장으로 한국 최초의 고아원인 성영회를 맡아 운영했던 정의배 마르코 성인 등이 포함되어 있으며 9분의 성인유해가 이 새남터 순교 성지에 모셔져 있습니다.

‘새남터’의 말뜻은 '새나무터'의 준말입니다. '새나무'는 '풀과 나무'가 울창한 곳으로, 조선시대 초기에는 이곳에 군사 훈련장으로 사용되다 국가에 대하여 중한 죄를 지은 사람, 국사범을 처형하는 장소로 사용되었습니다. 대표적으로 세조 2년, 1456년 단종을 다시 임금으로 올리려다 처형당한 성 삼문을 비롯한 사육신이 이곳에서 피를 흘렸습니다.

1801년부터 1866년까지 한국교회 4대 박해 기간 중 천주교 신자 일반 평신도들이 절두산 성지에서 주로 순교하였고, 평신도 지도자들이 서소문 성지에서 피를 흘렸다면, 새남터는 사제들의 순교 성지입니다.

한국 천주교회는 세계 교회사에 유래없는 네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 천주교회는 첫째, 선교사들의 선교 없이 평신도들이 자발적으로 세운 교회입니다. 둘째, 선교사들이 들어오기 전에 세례자가 생겨났고, 셋째, 선교사들이 들어오기 전에 순교자들이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그 박해를 피해 넷째, 선교사들이 들어오기 전에 교우촌이라고 하는 독특한 신앙 공동체가 생겨났습니다.

그러나 평신도만으로 교회가 이루어질 수는 없어 로마 교황청에 선교사제들을 요청했고, 1795년 인근 북경교구의 구베아 주교는 조선의 교우들을 위해 중국인 주문모 야고보 신부를 파견했습니다. 북경 신학교 제1회 졸업생인 주문모 신부는 한양에 들어와 배교자의 밀고로 쫓기면서도 여회장 강완숙 골롬바의 집에 숨어 사목하며 교세를 키웠고, 6년 만에 6,000여명의 신자가 늘어났습니다. 그러나 사제 대신 여러 신자들이 희생되자 스스로 의금부를 찾아 1801년 신유박해 때 새남터에서 순교하셨습니다. 황사영 백서를 보면, 주 신부님의 순교일에 하늘이 캄캄해지고 형장에는 강풍이 불고 흙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더니, 순교 후에는 아름다운 무지개가 찬란하게 빛났다고 백서에 썼습니다.

그 후 30년 뒤 1831년 조선교구가 북경교구로부터 독립하여 설립되었고, 1836년과 1837년 사이에 아시아 지역 선교를 위해 설립된 프랑스 파리외방전교회의 모방 신부, 샤스탕 신부, 엥베르 주교가 들어와 1년 동안 9,000여명의 신자를 늘리는 등 교세를 키웠으며, 최양업 토마, 최방제 프란치스코, 김대건 안드레아 소년을 마카오에 신학생 유학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1839년 헌종 5년 안동 김씨와 풍양 조씨간의 시벽파 싸움으로 인하여 기해박해가 시작되었고, 희생양이 된 천주교 신자들은 신앙을 지키다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 때 위 세 분의 외국인 성인 사제도 새남터에서 순교했습니다. 1846년 프랑스가 기해박해 때 순교한 세분의 프랑스 신부에 대한 항의로 프랑스 군함 3대를 충청도 외면도로 보내 항의문으로 압박을 가하자, 조선 조정은 체포되어있던 김대건 신부와 현석문 가를로 성인을 9월 16일과 19일 서둘러 처형하였습니다. 이것이 1846년 헌종 12년의 병오박해입니다.

지난 주에 살펴보았듯이 철종 임금의 즉위와 순원왕후의 섭정으로 천주교 교세가 확장되어 많은 성직자들이 들어왔고, 1850년 신자 일만 일천여명, 1855년 우리 나라 추정인구 일천이백만에서 일천육백만명 시대에 일만 사천여명의 신자가 생겨났고, 1857년에는 배론에 신학교까지 설립 운영하였습니다.

그러나 지난 주에 자세히 보았듯이, 20년 후 러시아의 남하를 막기 위한 이이제이 정책을 건의하다가, 프랑스 함대의 병인양요로 인해 대원군으로부터 척사윤음을 당해 1866년 고종 3년 병인박해가 시작되었고 베르뇌 장주교와 도리 김 신부, 볼리외 서 신부, 브르트니에르 백 신부도 체포되어 새남터에서 순교했습니다. 장 주교는 박해자들에게 “이제 누가 당신들에게 천국의 길을 가르쳐 줄 것인지” 안타까워하면서 순교하셨다고 합니다.

천주교에 대한 박해는 1873년까지 계속되었고, 1886년이 돼서야 ‘한불수호통상조약’으로 신앙의 자유를 얻게 되었습니다.

새남터 순교성지는 1950년에 순교기념지로 지정되었고, 1956년에는 ‘가톨릭 순교성지’라는 기념탑이 세워졌고, 1981년 한강 본당에서 분가하여 한국 순교 복자 성직 수도회에서 관리 운영하고 있습니다. 현재 새남터에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성 앵베르 주교, 성 모방 신부, 성 샤스탕 신부, 성 베르뇌 주교, 성 브르트니에르 신부, 성 볼리외 신부, 성 도리 신부, 성 우세영 알렉시오 등 9분의 유해가 모셔져 있습니다. 이 분들은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여의도 광장에서 103위 순교 성인으로 시성되셨습니다.

새남터의 첫 순교 사제인 주 문모 신부님은 하느님의 종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122위와 함께 내년 가을 우리 나라에서 124위 복자품에 오를 예정입니다.

많은 분들이 9월 순교자 성월이 되면 성지 순례를 갑니다. 성지에서 누가 돌아가셨는지, 왜 돌아가셨는지도 모른 채, 마치 들과 산으로 야유회나 여행이라도 가듯이 먹을 것 잔뜩 싸가지고, 관광버스를 대절해 시원한 에어컨 속에서 편안하게 성지관광을 가기도 합니다. 어떤 분들은 갈 때는 기도도 하지만 올 때는 놀면서 오기도 합니다.

지금 당장 천주교인이라고 해서 세상에서 죽이지도 않는데 뭐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느냐고 여길 수도 있지만, 우리가 성지순례를 가는 이유는 성지에 대해 알고, 성지에서 돌아가신 분들의 신앙과 그에 따른 신앙생활을 본받기 위해 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번 토요일 오후 2시부터 절두산에서 새남터까지 도보 성지 순례를 하며, 순교자들의 정신과 삶을 되새기며 오늘 우리의 삶에 적용해 보기로 합시다. 순교자들은 자신들이 처한 그 때 그 시절에, 그리스도교 신앙이 제시하는 새로운 하늘과 새로운 땅을 꿈꾸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일러주신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자신이 믿는 신앙을 행동으로 옮기며 살다가, 당대 사회로부터 단죄받고 배척받아 죽음으로 신앙을 증거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한국 순교자 대축일을 맞아 우리 삶 속에서 하느님을 믿는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각자 구체적으로 생각해 봅시다. 그리고 우리가 믿고 고백하는 신앙을 각자 자신의 삶 속에서 실현 가능한 만큼 이루면서, 이 땅에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고 인류 사회의 평화를 위해 헌신하기로 합시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루카 9,23-24)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대축일

루가 9,23-26; 12/09/23

오늘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입니다. 오늘 저는 늘 사제이신 김대건 안드레아 성인과 함께 이름을 같이 올리는 평신도 정하상 바오로 성인님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정하상 성인은 본관이 나주이며, 1795년에 남인 양반의 후예로 경기도 남양주시 마재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정씨 가문에서 최초로 신앙을 받아들인 정약종 아우구스티누스며 어머니는 유 세실리아입니다. 가족으로는 형 정철상 가를로와 누이 정혜가 있습니다. 아버지 정약종과 형 철상이 1801년 신유박해로 서소문 밖에서 순교하고 재산을 몰수당하자, 7세의 나이로 어머니와 동생을 데리고 작은아버지 정약용 요한의 집에 얹혀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20세에 상경하여 조증이 바르나바 집에 머물면서 한국 교회를 위해 자신을 봉헌합니다.

그분은 조동섬 유스티노에게 교리와 학문을 수학하고, 신유박해로 주문모 신부와 아버지 등 한국 천주교 주요인사들이 순교한 후 흩어진 교회를 다시 재건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분은 첫째로 흩어진 교인들을 찾아내 신앙의 불길을 다시 태우게 하고 신도들의 신앙생활을 조직화하는 한편, 한국 교회에 다시금 성직자를 파견해 주도록 북경의 주교님께 성직자를 보내달라고 청하게 됩니다. 그분은 이 어려운 사업을 현석문(가롤로)과 유진길(아우구스티노)등 희생적이며 유능한 동지와 힘을 모아 추진했습니다.

정하상 성인님은 1816년 이후 전후 아홉 차례나 구금의 위험을 무릅쓰고 왕복 5천리의 길을 엄동설한에 신분을 숨기고 노예로 들어가 부경사대사신과 함께 북경에 들어갑니다. 그러나 당시 북경교회의 사정도 여의치 못하여 성사되지 못합니다. 그래서 1823년부터 정하상은 국내 교회의 실질적 지도자의 일을 맡아보면서 역관으로 북경과의 연락이 용이한 유진길과 부경사행의 노복인 조신철(가롤로)을 밀사로 북경 교회와 꾸준히 교섭하도록 했습니다.

그러다가 1825년에는 세계 가톨릭의 교회의 책임자인 교황님께 한국 신자들의 영신사정을 돌보아줄 사제를 파견해 주시기를 청원하게 됩니다. 이 청원문은 북경주교의 동정어린 배려로 마카오 교황청 포교성성 동양경리부로 접수되었고, 포교성성장관 움피에레스(Umpoerres) 신부의 의견이 첨부되어 1827년 로마 교황청에 접수되었고, 교황 복자 그레고리오 10세는 마침내 1931년 9월 9일자로 조선교구를 설정하고 파리외방전교회의 선교사 브뤼기에르(Brugi re) 사제를 주교로 임명하며 파견하게 됩니다.

정하상 성인의 업적을 살펴보면,

첫째로 그분은 조선교구 설정의 직접적 계기를 이룬 진보적이고 세계적 안목을 가졌던 박해시대 한국 교회 평신도 지도자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둘째로 정하상 성인은 조선교구 설정 이후 조선교구로 부임해 오는 성직자를 계속 영입해 들였고, 그 성직자들의 충실한 협조자로의 평신도 회장 직무를 헌신적으로 수행하여 한국 교회 발전에 지극히 큰 공헌을 쌓았습니다. 즉 1834년말 중국인 유방제 신부를 비밀리에 영입했이고 1835년 모방(Maubant) 신부, 1836년에 샤스탕(Chastan) 신부, 그리고 1837년에 조선교구 제2대 교구장인 앵베르(Imbert) 주교를 영입했습니다. 이리하여 조선교회가 교구장 주교와 선교 사제 그리고 교구 신자로 이루어진 교회체제를 갖추게 했으며, 이들 성직자를 협조하여 한국 교회 발전을 위해 몸바쳐 일했습니다.

셋째로 앵베르 주교는 정하상 성인의 순교적 열성과 교리에 대한 지적 이해, 그리고 놀라운 신덕에 탄복하여 그를 박해하의 조선 교회에 필요한 방인 성직자로 양성하기 시작합니다. 학식과 수덕과 신망의 정하상 성인은 한국인 최초의 성직자가 될 것으로 기대되었습니다. 그러나 1839년의 기해박해가 일어나면서 앵베르 주교와 함께 정하상 성인도 순교하게 되어 그 희망이 이루어지기 전에 순교의 영광을 얻었습니다.

넷째로 정하상 성인은 한국인 최초의 호교론서인 '상재상서'를 써서, 박해자인 재상에게 천주교 입장을 밝히고 박해를 그치도록 주장했습니다. 재상에게 바치는 글인 '상재상서'는 불과 2,000여 자의 단문의 글 안에 천주교의 신앙과 교리를 잘 간추려 쓴 귀중한 소책자입니다.

다섯째로 정하상 성인은 순교로써 천주의 신앙을 증거하고 영생의 영광을 얻었으며 한국인의 신앙을 굳게 증거했습니다. 그분은 기해박해 때인 1839년 9월 22일 주님을 뵈올 기쁜 마음으로 얼굴에 미소를 가득 담고 형장으로 끌려가, 서소문 밖에서 45세를 일기로 순교했습니다. 그보다 두 달 늦게 79세의 노모 유세실리아도 옥사 순교했이고, 다음달에 누이동생인 정혜마저 순교했습니다. 이 세 분 순교자는 1925년에 복자로 시복되었고 1984년 5월 6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품에 시성되셨습니다.

우리는 기록을 통해 정하상 성인께서 신앙의 자유와 교회의 설립을 위해 온 생애를 바친 모습을 봅니다. 그럼 성인께서 그토록 중요하게 여기던 신앙이란 무엇입니까? 그 신앙은 우리가 하느님을 알아 모시고,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은혜에 감사드리며, 하느님께 찬미와 영광을 돌려드리고, 우리 각자에게 베풀어주신 하느님의 은혜를 가지고 서로를 위해 봉사하며, 지금 여기 우리 성가정 성당 식구들을 비롯하여 온 인류가족이 서로 사랑하고 서로를 배려하며 다 같이 행복하게 살아, 마침내 구원되기를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청하고 준비하는 것입니다. 성인들이 그토록 신앙과 교회를 위해 헌신한 이유는 바로 주님께서 약속하신 하느님 나라를 이 땅에 이루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오늘 한국 성인 대축일을 맞으면서 우리 모두는 세상의 주인이신 하느님을 제대로 알아 공경하고, 주님의 가르침을 따라, 이 땅에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실제로 또 이루어지도록 우리 몸으로 채워나가야겠습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대축일

루가 9,23-26; 11/09/18

오늘 우리 성당을 처음 찾아오신 예비신자 여러분 환영합니다. 여러분은 오늘부터 지루하다면 지루하고, 짧다면 짧은 예비신자 교리교육 과정을 받게 됩니다. 이 교과 과정을 통해 여러분은 우리 생의 주님이신 예수님과 예수님의 아버지이신 하느님과 그분의 영이신 성령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깨달음을 통해 여러분은 주 예수님께 대한 신앙을 간직하고 성숙시키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신앙이 날로 자라나 여러분 모두가 우리와 함께 하느님께 찬미와 영광을 드리게 되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여러분이 그렇게 되기 위하여, 삼위일체이신 우리 하느님께서 여러분 한 분 한 분에게 직접 나타나, 여러분이 하느님을 알고 굳게 믿게 되기를 우리 삼성동 성당 공동체 모두가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오는 9월20일은 우리 나라의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대축일’입니다. 오늘은 순교자의 순교신앙을 간략히 살펴보고, 오늘 우리 시대의 순교는 어떤 것인지, 그리고 우리 신앙 선조들의 순교정신을 오늘에 사는 방법은 무엇인지 각자 설계하고 실천해 봅시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아 돌아가신 후, 초대교회 신자들은 예수님과 같아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최고의 방법이 예수님처럼 하느님을 향한 믿음을 증거하고 죽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순교의 길을 택했습니다. 이것을 피의 순교라고 해서, 붉은 순교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기원후 313년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밀라노 관용령에 의해 그리스도교인들에게 종교의 자유가 주어지자 더 이상 믿는다는 자체로 죽음을 당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신자들은 예수님의 생애가 새겨져 있는 성지를 방문하고 예수님 생애 당시를 묵상하면서 예수님과 더 가까워지려고 했습니다. 또 분도 성인처럼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을 조용히 묵상하고 관상하기 위해 세상을 떠나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가서 홀로 기도하고 단식하면서 예수님과 하나되려고 했습니다. 하얗게 빛나는 성인들처럼 순교정신을 산다고 해서 이를 백색 순교라고도 합니다.

이 무렵에는 기도와 묵상과 희생으로 주님과 같아지려는 신자들이 많아지자 수도원이 생겨났고, 많은 수도자들이 희생과 자선과 기도로서 자기 생애를 주님께 바쳤습니다. 일반 신자들은 사제나 수도자들처럼 성서를 읽을 수도 없고 기도와 묵상과 희생으로만 살 수 없기 때문에, 나름대로 일반 신자들이 쉽게 할 수 있는 성인 공경이 활발하게 진행되었습니다. 일반 신자들이 보기에는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성직자나 수도자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느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성모님이나 성인들을 기억하며 주님을 직접적으로 따를 수 없는 자신들을 위해 기도해 달라는 전구기도를 드리곤 했습니다.

그 후 세상에 도시가 생기고 국제적인 교류가 활발해지고 대단위 공장들이 건설되면서 그에 따라 빈곤층이 계급적으로 형성되고 서로 돈을 많이 벌기 위해 경쟁과 싸움 그리고 민족과 나라간에 전쟁이 발발했습니다. 이렇게 세상이 급변하자 수도자들도 수도원 안에서 기도와 묵상하면서 얻은 말씀과 깨달음을 일반 신자들과 나누기 위해서 세상 한 가운데로 나와 복음을 선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일반 신자들도 성서를 자기나라 말로 읽을 수 있게 되자, 신자들도 예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고자 했습니다. 이렇게 세상의 요구대로 살지 않고, 각자의 삶 속에서 예수님의 말씀과 뜻을 실천하는 이러한 순교적 삶을 녹색순교라고 합니다.

박해시기에는 예수님처럼 죽는 것이 신앙을 증거하는 것이었고, 종교자유시기에는 예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예수님의 생애를 관상하며 기도하며 희생하며 자선을 베푸는 것이 신앙을 증거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이 시기에는 과연 어떻게 사는 것이 우리의 신앙을 증거하는 것일까? 순교는 그렇게 거창한 것이거나 믿음이 강하고 오랜 신앙생활을 한 신자들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순교는 은총이라고 합니다. 주님의 은총이 있지 않는 한, 누가 죽는 줄 뻔히 아는데, 죽음의 길을 걷겠습니까? 순교열전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순교자들이 죽음의 칼 날 앞에서 하늘에서 예수님이 자신을 부르고 천사들이 그 옆에서 월계관을 들고 기다리고 있는 장면을 보지 않는 한, 어떻게 인간의 본성이 살고 싶어하는 것인데 삶 대신에 죽음을 선택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우리에게도 주님의 은총이 다가오지 않는 한, 주님의 말씀대로 살면 우리 삶에 커다란 기쁨과 새 생명의 비전이 있다는 확실한 체험을 하지 않는 한, 어떻게 우리가 사회에서 남들이 사는 방향과 방법을 포기하고 거스르면서까지 주님께서 가르쳐 주시는 방향과 방법대로 살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신앙은 우리 생명, 우리 생애 그리고 우리에게 일어난 일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총이라는 것을 스스로 자각하는 체험으로부터 시작되지만, 신앙을 키우는 방법은 우리가 은총으로 받은 깨달음을 바탕으로 주님의 말씀을 실천해 나갈 때, 우리가 실천하는 그 만큼 성숙해 나가게 됩니다. 오늘 우리에게 들려주신 주님의 말씀을 어떻게 하면 우리의 생활에 적용하고 실천할 지를 깊이 생각하고 스스로 구현해 나감으로써 순교의 정신을 이어나가기로 합시다.

오늘 우리의 삶 속에서 우리에게 거슬리는 주님의 말씀은 무엇입니까? 오늘 우리가 살면서 가장 실천하기 어려운 주님의 말씀은 무엇입니까? 오늘 우리의 삶 속에 자극을 주는 주님의 말씀은 무엇입니까? 오늘 우리의 삶에 희망을 주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오늘 우리의 삶에 위로를 안겨주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오늘 우리의 삶에 힘을 실어주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각자의 삶 속에서 우리에게 들려오는 주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간절히 호소하시는 주님께 응답하여, 그 말씀을 실현함으로써 순교정신을 이어나가기로 합시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루카 9,23)

아멘.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동료 순교자 대축일

루가 9,23-26; 05/09/25

지난 주간에 시애틀 대교구 사제 연수가 있었습니다. 사제 연수 기간에 그 동안 어떤 면이 삶의 도전처럼 다가왔느냐는 질문을 받고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미국이란 나라는 풍요한 사회다. 미국 사람들은 하느님의 은총과 이웃의 사랑을 통해 인생에 필요한 것을 얻으려고 하지 않고, 사회제도를 만들어서 해결하려고 한다. 그리고 그 사회제도를 만들기 위해 여러 압력단체들이 서로 밀고 당기면서 협상을 한다. 그렇게 서로의 이득을 챙기기 위해 자기 스스로 싸워나간다. 그런 미국인들은 과연 하느님께서 어떻게 자신들안에 함께하시고 섭리하신다고 느끼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과연 물질로 풍요한 미국 사회에서 주님과 주님의 복음 그리고 교회가 과연 미국인들에게 어떤 가치를 가지고 어떤 의미와 어떤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아울러 주님의 말씀인 복음이 처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파될 때 가난하고 억압받고 소외된 이들 그리고 당대에 죄인으로 비난 받고 버림받는 사람들에게 참으로 기쁜 소식이었다. 그런데 물질과 제도로 뒤덮여진 미국 사회에서 복음이 어떤 의미로 미국인들에게 기쁜 소식일 수 있을지 고민스러웠다고 대답했습니다.

1777년 조선의 경기도 양평의 주어사란 불교 절의 천진암이란 암자에서 몇 명의 학자들이 서학이라는 천주교학문을 연구할 때 그들은 당시 정권을 빼앗긴 야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하면 다시 정권을 잡을 수 있을까 아니 어떻게 하면 정치를 제대로 할 수 있을까를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유교의 근본학문이라고 할 수 있는 성리학을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성리학을 연구하기 위해 중국에서 책을 구해왔는데, 그 책 중에 마태오 리치라고 하는 선교사가 쓴 천주실의, 칠극 등의 천주교 서적들이 함께 들어왔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그 천주교 책들이 학문서적이겠거니 하고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왜냐하면 마태오 리치 신부님께서는 천주교가 중국사회에 부담 없이 받아들여지기 위한 토착화의 선교 전략으로 자신의 책을 유교를 보충하는 책이라고 설명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보유론으로만 알고 공부해오던 이들이 차츰 그 책들이 천주교라는 종교의 교리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중의 한 명이 북경까지 가서 세례를 받고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신학문으로 천주교가 장안에 화제가 되던 중, 전라도의 윤지충이 부모님의 장례를 유교식으로 치르지 않고 천주교식으로 치르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조선인들에게는 천주교가 제사도 지내지 않는 패륜의 종교로 비치게 되었고, 그것을 빌미로 정부는 대대적인 박해를 시작했다. 그 결과 많은 사람이 순교한 것 외에도 많은 지식인들이 교회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중인과 상인은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천주교 교리를 통해 하느님을 알고 믿게 된 것이 첫째 이유겠지만, 그 밖에도 천주교라는 종교가 지금까지 자신이 몸담고 있는 사회가 자신들을 대하던 것과는 달랐기 때문이었다. 당시 조선사회는 양반과 중인 그리고 상인의 신분 구분으로 중인과 상인은 양반과는 달리 계급상의 차별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천주교는 양반이나 중인이나 상인 모두를 하느님께서 만드신 한 형제, 자매로 받아들이고 평등사회를 드러냈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명동 대성당은 중인인 김범우의 집이었습니다. 아울러 남녀를 구분하긴 했지만 남존여비 형태로 여자가 남자를 섬기야 하는 하등인간으로 취급하지 않고, 동등한 인간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성 정 하상 바오로와 같은 남자 회장뿐만 아니라 엄연히 김완숙 골롬바라는 여자 회장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천주교가 신분을 계급으로 구분하고 차별을 두었던 당시 조선 사회와는 다른 평등사회를 구현하는 일종의 대조사회였기 때문이었던 것도 커다란 이유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이 미국 사회에서 우리 교회 공동체는 어떤 면에서 사회와 다른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직장과 사회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성당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어떻게 다르다고 느껴집니까? 그리고 내가 만나는 사람과 천주교인인 나는 어떻게 다르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21세기 오늘 이 풍요로운 미국 사회에서 세상을 살아가는 천주교 신자인 여러분에게는 천주교회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이 천주교회를 통해 여러분은 주님을 만나십니까? 이 천주교회를 통해 여러분은 여러분 삶의 기쁨과 위안을 얻으십니까? 어떤 의미에서 이 교회가 여러분이 몸담을만하고 사람들에게 전교할만합니까? 그리고 여러분은 어떻게 전교하고 계십니까?

이번 교육기간 중에 시애틀 교구에서 통계자료를 가지고 왔는데, 한국인 중에 천주교 신자 비율이 20%라고 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의아하게 여겨 계산을 해 보았습니다. 공식적인 통계로는 한국인이 이 워싱턴 시애틀, 타코마 지역에 약 15만명이 살고 있다고 했는데, 시애틀 성당이 약 2000명 우리 성당이 약 1500명 합해야 전체 한인 인구에 약 2.3%에 불과합니다. 한국 평균 8%, 도시평균 20%는 못미치더라도, 그 수치를 바라보면서 참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은가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조선시대 천주교 첫 번째 박해의 빌미는 ‘제사’ 문제였습니다. 당시 중국에 나와 선교중이던 선교사들의 서로 어긋난 보고를 바탕으로 로마 교회가 결정을 잘못 내림으로써 동양의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개화된 후 제사가 조상을 섬기는 동양의 한 문화풍습으로 인정되었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이 죽은 후였습니다. 그러나 그 때 죽어간 한국 천주교 신자들은 죽으면서도 자신들이 제사 문제로 죽는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또 설사 그 문제로 죽어간다고 하더라도, 그 교회를 통해 자신들이 믿게 된 하느님을 섬기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 교회를 통해 맛본 새로운 사회가 자신들의 생명과도 맞바꿀 만큼 소중했기 때문에 그들은 죽어갔습니다. 자신들은 교회의 가르침을 따라 죽는 것이 순교라고 생각했고, 하느님을 만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느님을 믿는 믿음 때문에 죽는 것이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그리스도 예수님과 같이 죽는 것이라고 받아들였기 때문에 죽어갔습니다.

천주교는 좋지만, 천주교인인 나도 부끄럽고 우리 신자들을 소개시킬만한 자신이 없다고 느낀다면, 우리 교회는 선교와 이웃 사랑으로 죽어간 순교자들의 후손으로서 더욱 더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너를 탓할 것이 아니라 나를 채찍질하면서, 우리가 이 미국 사회에서 대조사회로서 그리고 순교적인 신앙공동체로서의 면모를 갖추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 못하다고 아파만할 것만이 아니라, 지금부터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를 그려봅시다. 우리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주님께 향한 굳건한 믿음의 바탕 위에 순교자의 후손으로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곰곰이 헤아려 보고 실천하기로 합시다.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매일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23)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대축일

2004/09/19

9월 20일 오늘은 우리 한국 천주교 순교 성인들을 기억하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오로 동료 순교자 대축일이다. 지난 1984년 한국 여의도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품에 오르신 한국의 103위 성인 중에 우리 타코마 본당의 주보 성인이 있다.

정하상 성인은 본관이 나주이며, 1795년에 남인 양반의 후예로 경기도 남양주시 마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정씨 가문에서 최초로 신앙을 받아들인 정약종 아우구스티누스며 어머니는 유 세실리아다. 가족으로는 형 정철상 가를로와 누이 정혜가 있다. 아버지 정약종과 형 철상이 1801년 신유박해로 서소문 밖에서 순교하고 재산을 몰수당하자, 7세의 나이로 어머니와 동생을 데리고 작은아버지 정약용 요한의 집에 얹혀 살았다. 그러다가 20세에 상경하여 조증이 바르나바 집에 머물면서 한국 교회를 위해 자신을 봉헌한다.

그는 조동섬 유스티노에게 교리와 학문을 수학하고, 신유박해로 주문모 신부와 아버지 등 한국 천주교 주요인사들이 순교한 후 흩어진 교회를 다시 재건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는 첫째로 흩어진 교인들을 찾아내 신앙의 불길을 다시 태우게 하고 신도들의 신앙생활을 조직화하는 한편, 한국 교회에 다시금 성직자를 파견해 주도록 북경의 주교님께 성직자를 보내달라고 청하게 된다. 그는 이 어려운 사업을 현석문(가롤로)과 유진길(아우구스티노)등 희생적이며 유능한 동지와 힘을 모아 추진하였다.

정하상은 1816년 이후 전후 아홉 차례나 구금의 위험을 무릅쓰고 왕복 5천리의 길을 엄동설한에 신분을 숨기고 노예로 들어가 부경사대사신과 함께 북경에 들어간다. 그러나 당시 북경교회의 사정도 여의치 못하여 성사되지 못한다. 그래서 1823년부터 정하상은 국내 교회의 실질적 지도자의 일을 맡아보면서 역관으로 북경과의 연락이 용이한 유진길과 부경사행의 노복인 조신철(가롤로)을 밀사로 북경 교회와 꾸준히 교섭케 하였다.

그러다가 1825년에는 세계 가톨릭의 교회의 책임자인 교황님께 한국 신자들의 영신사정을 돌보아줄 사제를 파견해 주시기를 청원하게 된다. 이 청원문은 북경주교의 동정어린 배려로 마카오 교황청 포교성성 동양경리부로 접수되었고, 포교성성장관 움피에레스(Umpoerres) 신부의 의견이 첨부되어 1827년 로마 교황청에 접수되었고, 교황 복자 그레고리오 10세는 마침내 1931년 9월 9일자로 조선교구를 설정하고 파리외방전교회의 선교사 브뤼기에르(Brugi re) 사제를 주교로 임명하며 파견하게 된다.

정하상 성인의 업적을 살펴보면 첫째로 그는 조선교구 설정의 직접적 계기를 이룬 진보적이고 세계적 안목을 가졌던 박해시대 한국 교회 평신도 지도자의 한 사람이었다.

둘째로 정하상 성인은 조선교구 설정 이후 조선교구로 부임해 오는 성직자를 계속 영입해 들였고, 그 성직자들의 충실한 협조자로의 평신도 회장 직무를 헌신적으로 수행하여 한국 교회 발전에 지극히 큰 공헌을 쌓았다. 즉 1834년말 중국인 유방제 신부를 비밀리에 영입하였고 1835년 모방(Maubant) 신부, 1836년에 샤스탕(Chastan) 신부, 그리고 1837년에 조선교구 제2대 교구장인 앵베르(Imbert) 주교를 영입하였다. 이리하여 조선교회가 교구장 주교와 선교 사제 그리고 교구 신자로 이루어진 교회체제를 갖추게 했으며, 이들 성직자를 협조하여 한국 교회 발전을 위해 몸바쳐 일하였다.

셋째로 앵베르 주교는 정하상 성인의 순교적 열성과 교리에 대한 지적 이해, 그리고 놀라운 신덕에 탄복하여 그를 박해하의 조선 교회에 필요한 방인 성직자로 양성하기 시작한다. 학식과 수덕과 신망의 정하상 성인은 한국인 최초의 성직자가 될 것으로 기대되었다. 그러나 1839년의 기해박해가 일어나면서 앵베르 주교와 함께 정하상 성인도 순교하게 되어 그 희망이 이루어지기 전에 순교의 영광을 얻었다.

넷째로 정하상 성인은 한국인 최초의 호교론서인 '상재상서'를 써서, 박해자인 재상에게 천주교 입장을 밝히고 박해를 그치도록 주장하였다. 재상에게 바치는 글인 '상재상서'는 불과 2,000여 자의 단문의 글 안에 천주교의 신앙과 교리를 잘 간추려 쓴 귀중한 소책자이다.

다섯째로 정하상 성인은 순교로써 천주의 신앙을 증거하고 영생의 영광을 얻었으며 한국인의 신앙을 굳게 증거하였다. 그는 기해박해 때인 1839년 9월 22일 주님을 뵈올 기쁜 마음으로 얼굴에 미소를 가득 담고 형장으로 끌려가, 서소문 밖에서 45세를 일기로 순교하였다. 그보다 두 달 늦게 79세의 노모 유세실리아도 옥사 순교하였고, 다음달에 누이동생인 정혜마저 순교하였다. 이 세 분 순교자는 1925년에 복자로 시복되었고 1984년 5월 6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품에 시성되었다.

우리는 기록을 통해 정하상 성인께서 신앙의 자유와 교회의 설립을 위해 온 생애를 바친 모습을 본다. 그럼 성인께서 그토록 중요하게 여기던 신앙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하느님을 알고 하느님을 찬미하며,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청하고 준비하는 것이다. 성인들께서 그토록 신앙을 위해 헌신하고 교회를 설립하기 위해 헌신한 이유는 바로 주님께서 약속하신 하느님 나라를 이 땅에 이루기 위한 것이었다.

오늘 한국 성인 대축일을 맞으면서 우리 모두는 세상의 주인이신 하느님을 제대로 알아 공경하고, 주님의 가르침을 따라, 이 땅에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실제로 또 이루어지도록 우리 몸으로 채워나가야겠다.



한국 순교자 대축일

루가 9, 23-26; 2003/09/21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아 돌아가신 후, 초대교회 신자들은 예수님과 같아지는 최고의 방법이 예수님처럼 믿음을 증거하고 죽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순교의 길을 택했다.

그런데 기원후 313년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밀라노 관용령에 의해 그리스도교인들에게 종교의 자유가 주어지자 더 이상 믿는다는 자체로 죽음을 당하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신자들은 예수님의 생애가 새겨져 있는 성지를 방문하고 예수님 생애 당시를 묵상하면서 예수님과 더 가까워지려고 했다. 또 분도 성인처럼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을 조용히 묵상하고 관상하기 위해 세상을 떠나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가서 홀로 기도하고 단식하면서 예수님과 하나되려고 했다.

이 무렵에는 기도와 묵상과 희생으로 주님과 같아지려는 신자들이 많아지자 수도원이 생겨났고, 많은 수도자들이 희생과 자선과 기도로서 자기 생애를 주님께 바쳤다. .일반 신자들은 사제나 수도자들처럼 성서를 읽을 수도 없고 기도와 묵상과 희생으로만 살 수 없기 때문에, 나름대로 일반 신자들이 쉽게 할 수 있는 성인 공경이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일반 신자들이 보기에는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성직자나 수도자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성모님이나 성인들을 기억하며 주님을 직접적으로 따를 수 없는 자신들을 위해 기도해 달라는 전구기도를 드리곤 했다.

그 후 세상에 도시가 생기고 국제적인 교류가 활발해지고 대단위 공장들이 건설되면서 그에 따라 빈곤층이 계급적으로 형성되고 서로 돈을 많이 벌기 위해 경쟁과 싸움 그리고 민족과 나라간에 전쟁이 발발했다.

이렇게 세상이 급변하자 수도자들도 수도원 안에서 기도와 묵상하면서 얻은 말씀과 깨달음을 일반 신자들과 나누기 위해서 세상 한 가운데로 나와 복음을 선포하게 되었다. 그리고 일반 신자들도 성서를 자기나라 말로 읽을 수 있게 되자, 신자들도 예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고자 했다.

박해시기에는 예수님처럼 죽는 것이 신앙을 증거하는 것이었고, 종교자유시기에는 예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예수님의 생애를 관상하며 기도하며 희생하며 자선을 베푸는 것이 신앙을 증거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오늘 이 시기에는 과연 어떻게 사는 것이 우리의 신앙을 증거하는 것일까? 순교는 그렇게 거창한 것이거나 믿음이 강하고 오랜 신앙생활을 한 신자들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순교는 은총이기도 하다. 오늘 우리에게 들려주신 주님의 말씀을 어떻게 하면 우리의 생활에 적용하고 실천할 지를 깊이 생각하고 스스로 구현해 나감으로써 순교의 정신을 이어나가기로 하자.



한국 순교자 대축일

루가 9, 23-26; 2002/09/22

주님을 죽기까지 따르는 것이 순교라면, 오늘날엔 어떻게 주님을 따를까? 일상에서 순교신앙을 살아보자.

운전을 하면서 생각해본다. 앞차가 늦게 간다고 생각하면 이 차선 저 차선 옮겨가며 어떻게든 추월하고, 운전대만 잡으면 스트레스를 푼다고 과속을 일삼다 경찰이나 무인단속카메라 앞에서만 속도를 줄이고, 길이 막힌다 싶으면 어떻게든 이 골목 저 골목을 찾아 앞서고 심지어는 갓길이나 중앙선 침범이나 무단 유턴도 일삼아 자기 때문에 결국 전체 교통질서가 문란해지고 더 체증만 더하게 하는데도 자기 편의와 눈앞의 이익만을 찾고자 하는 욕심을 포기하고 양심대로, 규정대로, 순서대로 안전운행을 하는 것이 거리의 순교다.

거리에서뿐만 아니라, '말 한 마디만 하면!', '전화 한 통화만 하면!', '돈만 좀 쓰면!' 얻을 수 있는 특권을 포기하고 공정한 판정과 절차를 기다리는 것도 순교의 또 다른 삶이다.

자기 광고와 피알의 시대에 겉으로 드러나는 외모와 외적 활동 그리고 남들의 평가에 연연하지 않고 마치 포장지보다 상품의 질을 높이려는 본질적인 노력과도 같이, 겸손히 주님 안에 자신을 숨기고 내실을 기하면서 자기 힘을 기르는 것도 순교다.

모두 남을 밟고 일어서야만 성공할 수 있고, 앞사람이 죽어야만 승리할 수 있다는 무한 경쟁사회에서 사람과 경쟁하지 않고 목표의 성취도와 경쟁하면서 완성도를 향해 갈고 닦으며, 자기를 희생하고 보이지 않는 보다 더 큰 영원을 위해 현재의 자리를 양보하는 것 역시 커다란 순교다.

조그만 한 눈 팔면 뒤쳐지고 밀려나는 것만 같은 사회에서 자기를 포기할 수 있는 것은 자기보다 더 큰 주님을 얻기 위해서이다. 사장이 되었다고 평생의 먹거리가 보장된 것이 아니고 정치인이 지도자가 아니듯이, 성공의 길이 반드시 인간의 진보와 동일하지 않다. 더군다나 인격의 성숙과는 아주 다르다.

사도 바오로는 "누가 감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떼어놓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분의 도움으로 이 모든 시련을 이겨내고도 남습니다."(로마 8, 35. 37)라고 한다. 그리스도 우리 주님과의 일치와 자기 인격의 완성이라는 목표를 향해, 갖추어야만 할 개인의 예의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규정과 질서를 존중하고 다 채우면서, 지금 자신의 위치와 상황에 자만하거나 나태함에 빠지지 말고 꾸준히 그리고 충실히 주님의 말씀을 하나씩 이루고 자기 계발을 위해 투신하는 것이 오늘날의 순교다.



한국 순교자 대축일

루가 7,31-35; 01/09/23

우리말에 "여자의 목소리가 집밖에 들리면 집안이 망한다. 집안이 편하려면 아내가 죽어줘야 한다." 한 동안 이 말은 우리나라 여성들의 위치를 사회적으로 비하시키고 스스로 희생하도록 요구했다. 이 말은 어릴 때는 아버지를, 커서는 남편을, 늙어서는 자식을 따라야 한다는 '삼종지도'와 아울러 남녀 차별의 대표적인 사례였다. 한시라도 빨리 없어져야 할 사상이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우리 가계를 되돌아보거나 우리 사회의 현실을 비춰보면 여성이 집안에서 참고 희생하는 실상이 그나마 우리의 오늘을 가능케 했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 순교자 대축일을 맞는 오늘 우리는 이렇게 말해야겠다. 이제는 이 여자라는 단어 대신 '신자'라는 단어를 집어넣어야겠다. 즉 "집안이 편하려면 신자가 참아야 한다."

또 과거엔 많은 사람들이 착하게 사는 사람을 보면, "너 천주교 신자냐? 천주교 신자라서 그렇게 착하게 사느냐?"고 물었다. 그런데 오늘 우리의 실상은 어떤가? 우리들에게도 우리 이웃이나 동료들이 그렇게 묻고 있는가? 그렇게 물을 정도로 착하고 성실하게 살고 있는가?

순교자들의 피의 거름 위에 세워진 우리 한국 교회의 현실에서 우리가 어떻게 하는 것이 그 순교정신을 사는 것인지 생각해 보아야겠다.

무엇보다도 기도해야겠다. 남들은 어떻게 하면 한 푼이라도 더 벌까 하고 궁리하는데 반해, 신자들은 자기의 이득보다 하느님의 뜻을 찾고 그 뜻을 헤아려 자신의 삶에 적용하고자 하는 기도에 몰입하는 것이 참으로 순교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매일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23절)

또 형제들 사이에서 양보하고 나누며 희생하는 것도 순교다. "제 목숨을 살리려고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살 것이다."(24절)

그리고 세상에서 우리를 자극하는 상황과 사건들과 부딪힐 때마다 우리 인간의 본능적인 자기 보호와 분노, 보복 등의 자기 중심적이고 폐쇄적인 감정을 멀리하고 주님의 말씀에 귀기울여야 한다. 그래서 우리게 들려주신 주님의 말씀을 가슴 깊숙이 받아들이고 새겨서 실행하는 것이 진정으로 순교하는 일이다.

상황을 탓하고 육신과 현세를 핑계삼아 주님의 말씀을 외면하는 우리에게 사도 바오로는 말한다. "죽음도 생명도… 현재의 것도 미래의 것도 능력의 천신들도 높음도 깊음도 그 밖의 어떤 피조물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나타날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로마 8,39)



한국 순교자 대축일

(나해) 루가9, 23-26: 2000/09/24

본당 신부들 모이면 주교님 욕한다고 한다. 문제가 발생하면, 남의 탓으로 돌리고 평가와 건의만 하면서 갖은 흉을 다 보다가 결국 문제는 해결하지도 못하고, 그냥 기분풀이만 하고 넘어가 버리는 경우가 많다.

옛날 신자들은 주님과 같아지는 길이 예수님처럼 신앙을 위해 죽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그야말로 줄줄이 순교했다. 믿음을 증거하는 길로 죽음을 택한 것이다. 우리에게도 103위 순교성인이 계신다. 그 후 신앙의 자유가 인정되자 더 이상 죽음으로 믿음을 증거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래서 신자들은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 성지순례를 하고 고행과 극기의 생활을 하며, 주님을 더 자세히 깊이 알아모시기 위해서 토굴 속에 들어가 기도하면서 살기도 했다. 그러다가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믿음을 마음속에 간직하지만 말고 현실에서 실현하자는 운동이 불어, 교회의 사회참여라는 활동을 시작했다.

이러한 신앙생활의 변화는 주님과 같아지려는 신자들의 노력의 역사였다. 기도나 활동이 어느 한쪽에 지나치게 강조되면 행동없는 신심주의나 신앙 없는 활동주의로 흐르는 부작용도 나았지만, 교회사를 보면 이러한 흐름이 교회를 지탱해오는 주춧돌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엔 복음을 깊이 묵상해서 주님을 자세히 알고, 자신이 만나고 알게 된 주님과 주님의 말씀을 자신의 삶속에 구현하며 하늘 나라를 이루려는 그리스도교 신자생활이 주님을 따르는 길로 제시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자신이 가지고 싶고 하고 싶은 것을 자기 수준에서 한 단계 씩 내려잡고, 그 대신 자기가 해야하고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한 단계 씩 더 충실히 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인간 세상은 건의하고 청한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 실제로 그 일을 해야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일을 해야 할 사람은 바로 그 문제를 느끼고 고쳐져야 한다고 지적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 사람이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다. 하늘나라를 꾸미기 위해 꾸준히 그리고 충실히 기도하면서 자신이 해야하고 되어야 한다고 여기는 일을 실현해 나가면, 언젠가 주님은 우리가 열매를 맺도록 이끌어주실 것이다. 그 일이 이루어질 상황이 되고 그 일을 할 자격과 능력이 되었을 때 이루어질 것이다. 주님께서 "자기를 버리고 매일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9, 23)고 하셨듯이, 우리의 불완전성과 한계에 편승하는 악마의 멍에를 짊어지고 주님의 말씀을 실현함으로써 오늘 우리의 시대에 순교의 정신을 이어나가야 하겠다.



한국 순교자 대축일

(가해) 루가 9,23-26; 99/09/19

오늘은 한국 순교자 대축일입니다. 과거에는 순교가 믿느냐 안 믿느냐의 여부에 달려있었습니다. 그래서 배교하면 살고 주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 죽음에 처해졌습니다. 그런데 순교자들은 기꺼이 죽음을 맞이하였을 뿐만 아니라, 자기를 죽이는 휘광이들에게 "이렇게 머리를 대면 자르기 좋으냐 저렇게 머리를 돌리면 자르기가 쉽냐?"고까지 물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경이감을 안겨주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1886년 한불 수호조약이 맺어져 종교자유가 이 땅에 허락된 뒤, 오늘날까지 우리가 천주교 신자이기 때문에 박해받는 일은 없어졌습니다. 그럼 오늘날 우리는 어떻게 선조들의 순교정신을 이어 살 수 있습니까? 순교 즉 예수님을 따라 죽은 행위는 주님을 믿는다는 것을 증거하기 위해 선택한 신앙행위입니다. 한 10년전만 해도 "과연 천주교 신자는 뭐가 달라도 달라!"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살았습니다. 그 때는 남들이 "아, 천주교 신자야?"라고 할 때 도둑질 안 하고, 정직하고, 남에게 해 안 끼치고 착하게 사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전부 다 착했던 것만은 아니지만 사회에서 천주교 신자들을 바라보는 평이 전반적으로 좋았습니다. 물론 이러한 사실이 지금에도 마찬가지입니다만, 오늘날에 와서는 사회환경이 아주 급격하게 변하여 천주교 신자인 사람들과 아닌 사람들과 외견상으로는 별로 차이가 없어 보이는 듯해 보일 정도입니다.

그런데도 굳이 우리가 천주교 신자로서 순교정신을 사는 신앙생활이 무엇이냐고 꼬집어 묻는다면 우리는 이렇게 대답할 수 있습니다. 전에는 "뭐, 뭐 하지 말라!"라는 소극적인 윤리 계명에 충실했다면, 이제는 "뭐, 뭐, 하라!"는 적극적인 사랑의 계명에 충실해야 하겠습니다.

그 가운데 무엇보다 먼저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주님 말씀 실천하기'입니다. 우리가 현대 세계 안에서 주님을 믿어서 순교하는 마음으로 할 수 있고 또 해야 하는 것은 주님의 말씀을 우리의 일상에서 실현하는 것입니다. 일종의 좌우명처럼 자신의 삶에 생명을 가져다주는 주님의 말씀을 가슴속 깊이 새기고 그 말씀을 실현하는 일은 오늘날의 순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다 자신들의 이익과 자기 주장을 펼치고자 할 때 자신을 버리고 주님의 뜻을 찾는 이들은 참으로 주님을 증거하는 자입니다.

그래서 비리와 부정 및 뇌물 사슬을 포기하고, 태아와 장애아를 비롯한 모든 생명을 수호하고 이웃을 대신해서 고통받고 양보하며 희생하는 일이 오늘날 순교의 꽃으로 우리 신앙생활을 빛내줄 것입니다.



성 안드레아 김대건과 성 바오로 정하상과 동료 순교자 대축일

루가 9,23-26: 98/09/20

로욜라의 이냐시오 성인님은 영신수련에서 세 가지 타입의 사람들에 대해 말합니다.

"첫째 타입의 사람들은 평화 중에 우리 주 하느님을 만나고 자기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그들이 취득한 재물에 대한 애착심을 떼어버리기를 원하기는 하되, 죽는 시간까지 아무 방법도 쓰지 않는 사람들을 말한다."(153항) 주님의 말씀이 옳고 좋은 것이며 또 그래야 하는지는 알면서도 막연한 결심만 하고 구체적으로 계획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리고는 한편으로 그저 복이나 내려주시기를 바라고 있는 사람들이다.

"둘째 타입의 사람들은, 애착심을 없애려고는 하나, 취득한 재물도 그대로 가지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묘사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들은 자기에게 제일 좋은 생활이 무엇인지를 알면서도, 방해되는 물질을 버리고 그 신분을 선택함으로써 하느님께 나아가겠다는 결심은 하지 않고 도리어 그들 자신이 가고 싶은 곳으로 하느님께서 오시기를 원하고 있는 셈이다."(154항) 이들은 자기 삶의 방식을 합리화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주님 말씀대로 나도 열심히 살아보겠다. 하지만 모든 것이 나와 합치되고 나에게 이익이 될 때만 하겠다.'는 사람들이다. 루가 복음 18장 18절부터 30절에 나타난 '부자청년'의 경우와도 같다. 이런 사람을 향하여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가기를 버리고 매일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루가 9,23)
이 사람들은 왜 버리지 못할까? 그것은 주님께서 삼십 배 백 배로 갚아주시고 채워주시는 것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도 바오로는 말한다. "환난도 역경도 박해도 굶주림도 헐벗음이나 칼도 높음도 깊음도 그 밖의 어떤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나타날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놓을 수 없습니다."(로마 8,35.39)

"셋째 무리는, 마침내 모든 올바르지 못한 애착심을 끊어 버리려고 하는데, 취득한 금전에 대해서는 그것을 가지거나 버리는 데 있어서, 그 어느 쪽으로도 특별히 마음이 기울어지지 않고, 다만 우리 주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일러주시는 대로, 그리고 또 각자에게 하느님을 섬기고 찬미하는 데 보다 나은 것으로 여겨지는 대로 결정하기를 원한다. 또 그 동안 그들은 오로지 우리 주 하느님을 받들어 섬기는 것만이 자기를 움직이지 않는 한, 현재 갖고 있는 금전이나 다른 아무 물건도 원하지 않기로 힘을 다하여 결심을 거듭하면서, 아무 것에도 마음을 빼앗기지 않도록 깊이 생각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오로지 하느님을 보다 낮게 섬길 수 있는 이유만이 그들이 금전을 취하거나 포기하게끔 할 수 있을 것이다."(155항) 주님을 믿고 주님께 의지하며 사는 사람들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그런 분들이 되십시오.



성 안드레아 김대건과 성 바오로 정하상과 동료 순교자 대축일

루가 9,23-26 : 97/09/21

우리 신자들은 주님께서 승천하시면서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것을 지키도록 가르쳐라."(마태 28,20?) 라고 하신 명령에 따라 주님을 증거 해야 할 제자로서의 사명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주님을 증거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우리의 삶 속에서 주님의 모습을 담아야 한다. 주님처럼 아침 일찍 이나 하루 일과를 마치고 또는 활동 전과 후에 아버지께 기도하시는 모습이라든지 늘 아버지의 뜻이 무엇인지 찾고 공부하는 모습을 우리도 하루 일과 속에 가져야 한다. 기도하고 성서를 통해 주님의 뜻을 찾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연구하고 주님께 그 일을 이루도록 힘과 영을 주시도록 청해야 한다. 그것도 구체적인 하루 24시간 동안 우리 행동으로 드러나야 한다. 잠을 줄이고(?), 주님께 관심을 가지고 주님을 모시는 행위를 습관을 들여가며 또 주님을 모시는 방법을 스스로 채우면서 배워나간다. 그냥 주일미사나 어느 때 좋은 강론이나 커다란 체험이 있어 나를 변화시킬 때를 기다리며 하루를 막연히 그냥 그렇게 보낼 수는 없다. 그리고 주님을 섬기는 것이 무슨 특별활동이 아니기 때문이다. 신앙은 어느 때에 한 번 하고 마는 행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매일 제 십자가를 지고"(루가 9,23?遁)서야 주님을 따를 준비가 된 것이다. 자기의 편의와 이익을 챙기고 난 후에? 또는 자기의 육신적인 삶과 애써 구분하면서 신앙생활을 취미생활 정도로 격하시킨 상황에선 주님을 따를 수 없다. 주님을 "따르기"(루가 9,23) 위해서는 먼저 주님을 내 삶의 모든 영역에서 첫 자리를 마련해 드려야 하고 그러한 신앙생활을 기꺼이 아니 자신의 삶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20) 시던 주님의 말씀대로 주님은 우리의 힘이 되어 주실 것이고, 실제로 우리의 삶 속에 함께 하신다. 그래서 우리를 주님의 힘으로 살게 해 주신다. 그러나 그렇게 살지 못한다면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 사람의 아들도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거룩한 천사들을 거느리고 영광스럽게 올 때에 그를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루가 9,26) 하신 주님을 무섭고 두려운 마음으로 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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