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의 밤

2000/05/27

"어머니,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요한 19, 26-27)

서울대교구 공항동 성당 17:00

요새 다리를 다치고 난 다음 집안에 있으면서 많은 시간 동안 어머니 생각을 했습니다. 시동생과 시누이 줄줄이 그야말로 말많은 집안에 들어오셔서, 남편 하나 바라고 사셨고 자식 하나 잘 되기를 바라면서 사셨던 어머니. 자식 등록금 하나 제 때에 못내는 형편인데도 시동생들과 시누이들이 와서 우는소리를 하면 여기 저기 변통해 내주시면서까지 맏며느리 역할을 다 해주셔야 했던 어머니, 그러고도 시누이들의 뒷소리를 들으면서 남 모르게 우셔야 했던 어머니... 그래도 자식의 성적이 조금이라도 오르거나 남의 칭찬을 받을 때 마치 자기 일처럼 기뻐하시며 자신의 노고를 잊으시고 보람을 느끼셨던 어머니가 생각납니다. 그런 어머니이셨기에 돌아가신 후 몇 년이 지난 오늘도 할아버지 할머니 앞에 서면 부모님 생각에 눈물만이 앞을 가립니다. 이것은 비단 저만의 느낌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환경의 차이는 있었을 망정 우리 모두의 어머니에게 해당하는 아니 우리 모두에게 해당하는 어머니에 대한 느낌이요 관계입니다. 우리에게 어머니는 참으로 누구와도 비교하거나 가름할 수 없는, 진정 우리 삶과 떼어놓을래야 떼어놓을 수 없는 분이십니다. 어머니는 무어라 묘사하거나 형용할 수 없는 진정 어머니이십니다.


저는 오늘 성모의 밤을 맞아 어머니를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이런 어머니를 주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예수님께서는 돌아가시기 전에 십자가 위에서 사랑하시는 제자를 보시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머니,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요한 19, 26)하시고 그 제자에게는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27)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에 어머니가 생겼습니다. 우리 각 개인이 오늘 이렇게 살 수 있도록 낳아주시고 길러주시고 이끌어주셨던 어머니처럼 우리 교회에 어머니를 주셨습니다.

이 교회의 어머니께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고통을 받으시고 제자들이 무서움에 떨고 있을 때 함께 아파하셨습니다. 마치 자식이 아플 때 대신 아프기라도 하실 것같이 더 애타하시고 아파하시는 어머니처럼! 또 사도행전 2장 14절에 나오듯이,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시기로 약속하시고 승천하셔서 제자들이 주님 말씀대로 성령께서 내려오시기를 희망을 걸고 이제나 저제나 기도하고 있을 때 어머니께서는 함께 기도하셨습니다. 마치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정한수 한 잔 떠놓고 기도하시는 그 모습처럼!


오늘 성모의 밤을 맞으면서 저는 우리 모두가 이 어머니께 대한 정을 우리 교회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에게서 찾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의 어머니이신 마리아님께서 나 하나가 아닌 나와 적대적인 이해관계에 놓인 사람들까지도 포함한 우리 인류 모두에게 어머니이시길 기도합니다.

또한 동시에 우리 모두가 이 시대에 마리아님처럼 어머니가 됩시다. 우리 모두 이 각박하고 혼탁한 세상에서 신음하는 사람들의 어머니가 되어, 세상 사람들에게 우리가 결코 잊을 수 없는 그 사랑으로 그리는 바로 그 어머니의 정으로 삶의 의지와 위로 그리고 희망과 보호를 안겨주기로 합시다.

교황님께서는 1994년 1월 1일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평화의 날 담화문에서 그리스도인들이 가정이 없는 이들에게 가정이 되어 주도록 요청하신 바 있습니다. 그리고 또 자식이 없는 부모와 여인들에게 세상에 버림받은 어린이들에게 부모와 어머니가 되 주기를 청하신 바가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 성모의 밤에,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느끼고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감사의 정을 간직한 채 감히 거역할 수 없는 윤리와 생명의 보루이신 어머니처럼, 세상 모든 이에게 우리의 헌신 봉사를 통해 어머니가 됩시다. 인간적인 모든 고통과 한계를 신앙으로 극복하시고 교회의 어머니가 되신 마리아님께서 우리를 보호해주시고 마리아님의 전구로 주님의 뒤를 따라 우리를 세상의 어머니가 되도록 이끌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아멘



성모의 밤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95년 성모의 밤


이 말씀은 성모 마리아께서 하느님의 아들을 가지리라는 천사의 예언에 대한 대답입니다. 우리는 마리아의 이 응답에 대해 다시 한 번 되새겨보아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별히 성령강림을 기다리는 우리의 이 시점에서 마리아의 이 응답은 우리를 새로운 삶으로 인도합니다.


마리아는 자신을 '주님의 종'으로 봉헌하고 있습니다. '이 몸은 주님의 종'이라는 표현 속에서 우리는 마리아가 주님을 얼마나 기다리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마리아의 기다림은 마치 구원을 기다리는 우리 인간 모두의 갈망을 대변하고 있는 듯합니다. 주님께서 오셔서 우리를 구원해 주시기를! 이 어려움 속에 있는 우리를 건져 주시기를! 매일 아침 일어나서 밥먹고 일하고 집으로 되돌아오는 것을 반복하는 이른바 일상의 단조로움을 넘어, "뭔가 새롭고 화끈한 것이 없을까?" 뭔가 뿌듯하고 흐뭇하게 잠자리에 들, 인생을 참으로 값지고 생기 있게 꾸미고 싶어하는 현대인들의 갈망을 대변하는 듯합니다. 그러기에 마리아는 "지금 말씀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하고 응답합니다. 정말 그렇게 되었으면, 주님께서 오셔서 우리 모두를 새로운 삶으로 인도해 주시기를,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살았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염원이 담겨져 있는 청원응답입니다.


마리아의 일생을 보면서 우리는 마리아의 영적 성숙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마리아는 처음 아기를 밸 때부터, 아기를 낳고 목동들과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께 경배하러 왔을 때(루가 2,8-20<19>, 마태 2,1-12)나 아기 예수를 성전에 봉헌할 때 시메온이 아기를 향해 기쁨에 넘친 찬미의 노래를 불렀을 때 그리고 '이 아기는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을 넘어뜨리기도 하고 일으키기도 할 분이시며, 이 아기는 많은 사람들의 반대를 받는 표적이 되어 당신의 마음은 예리한 칼에 찔리듯 아플 것'이라는 예언을 들었을 때!(루가 2,22-35<34-35>) 또 아기 예수를 잃어버렸다가 성전에서 사흘만에 되찾고 "얘야, 왜 이렇게 우리를 애태우느냐?"하고 혼내려할 때 어린 예수가 태연한 자세로 "왜, 나를 찾으셨습니까? 나는 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할 줄을 모르셨습니까?"하고 되물었을 때(루가 2,41-52<48-49>)에도 평범한 여인 중의 한 어머니에 그치지 않았던 마리아로서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챌 수 없었습니다. 그냥 자기도 모른 채 마음 속에 이상한 사건으로써, '참 대담한 아이로구나!'하는 당혹감을 가지고 하나씩 하나씩 차곡차곡 쌓아 두어야만 했습니다. 마리아는 이렇게 주님께서 자신들을 찾아 오셔서 세상을 변화시켜 주시기를 기다렸지만, 매 번 주님의 뜻을 알아듣지 못했고, 그냥 마음 속에 담아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마리아가 그렇게 마음 속에 담아 두었다고 해서 그것이 마리아에게 명확하게 어떤 의미를 지닌 채 자리를 잡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성전에서 예수를 다시 찾은 후, 예수는 부모에게 자기가 지닌 하느님의 모습을 더 드러내지 않고 그냥 나자렛으로 돌아와 부모에게 순종하며 지냈습니다.(루가 2,51)

마치 이런 어머니 마리아의 모습은 우리가 가끔 집에서 아이를 키우다가 새삼스레 아이가 컸다는 식으로, "아, 어제 얘가 글쎄 ∼ ∼ 소리를 하잖아, 참 모를 일이야!" 등등의 상황 이상의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머니인 자신도 모르는 새에 지금까지 아기인 줄로만 여겨왔던 아기가 어느새 커, 자아를 갖게 되었다든지, 의식이 깨었다든지 정도로 받아들였다는 이야기가 되겠습니다. 예수 아기는 거듭 자신의 모습을 동방박사들을 통해 그리고 시메온이나 성전 학자들을 통해 자신을 드러냈지만 그의 부모는 알아차리지 못했고, 게다가 성전에서 예수가 "왜 나를 찾으셨습니까? 나는 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할 줄을 모르셨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반항까지 하였건만 그의 부모에게 예수는 단지 어린애에 불과했고, 내 뱃속에서 난 내 아이! 내가 키우고 가르쳐야할 내 아이! 그 이상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의 어린 시절을 책임지고, 보호하고, 키웠던 어머니 마리아에게는 예수가 좀 키우기 까다롭고 말썽꾸러기 사내아이에 지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는 자신의 때를 기다리면서 묵묵히 양아버지 요셉을 따라 묵묵히 나자렛 시골 동네에서 목수일을 하며, 인간 세상을 바라보면서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하나의 독립된 인간으로 바라볼 때까지 인간이 되어나갈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 마리아는 예수가 어른이 되어 공생활을 시작한 후에도, 예수가 악령에 들려 미쳤다(마르 3,31-35<30>)는 다른 사람들의 소리를 듣고, 그를 잡아 집으로 데려가기 위해 예수의 사촌들과 함께 예수님을 잡으러 다니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자신의 때를 시작했던 예수는 사람들 앞에서 공공연히 자신의 독립을 선포합니다. 마르코 복음 3장 31절부터 34절을 보면, "그 때 예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밖에 와 서서 예수를 불러 달라고 사람을 들여보냈다. 둘러앉았던 군중이 예수께 '선생님, 선생님의 어머님과 형제분들이 밖에서 찾으십니다.'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는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형제들이냐?'하고 반문하시고 둘러앉은 사람들을 돌아보시며 말씀하셨다. '바로 이 사람들이 내 어머니이며 내 형제들이다.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 곧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다.'"


예수님의 이 독립선언을 들으면서, 우리는 다시 한번 처음으로 돌아가 봅시다. 마리아는 자기가 천사에게 했던 청원응답을 아들 예수의 입을 통해 다시 전해 들으면서, 비로소 그 창원이 자기 안에서 이루어지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마리아는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고 청했던 것입니다. 그런 마리아가 이제 아들의 입에서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형제들이냐?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 곧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다."라는 소리를 듣고는 깨어나게 된 것입니다. 자신의 입으로 한 그 기도의 뜻과 내용이 무엇이었는지를 깨달은 것입니다. 바로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아버지의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는 그리고 아버지의 말씀을 우리에게 알려주시고 또 그 말씀대로 살도록 해 달라는 그것만이 자신이 아버지께 청할 수 있는 유일한 기도하는 사실을 알아차리게 된 것입니다.


일단 여기서 마리아의 영적성숙의 일단계를 마칩시다. 이 단계는 우리가 영적성숙의 첫단계로서 '깨어남' 또는 '새로봄'의 단계가 되겠습니다. 좀 더 풀어서 말한다면, 자신의 일상에서 하느님과 하느님의 뜻을 발견하는 단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자신의 것으로 삼고 싶어하고 그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지향의 단계입니다.


그럼 우리의 일상에서 이 일단계를 적용해봅시다.

여러분은 청소하고 빨래하고 집안에서 일하며, 그 일이 하느님의 구원사 안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 발견하고 의식하면서 사십니까? 여러분은 직장에서 일하며, 그 일이 하느님의 구원사 안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 발견하고 의식하면서 사십니까? 그리고 그렇게 살면서 만나는 사람들 안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마치 마리아가 마음에 두는 것처럼 마음에 담아 놓습니까? 그리고 처음에는 무슨 뜻인지 잘 모르고 또 모든 일 안에서 하느님의 뜻과 그 일을 통해 하느님이 무엇을 말씀하시는 지 정확히 알아들을 수 없지만, 여러분의 의식세계 안에서 그 상황과 그 상황들의 변화의 의미를 인식하고 그 때마다 그 사람들을 통해 드러나는 하느님의 뜻과 말씀을 받아들이려고 되새김질하고 있습니까?

이러한 작업이 바로 여러분이 신앙에 눈뜨는 첫단계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의 말씀인 복음을 여러분의 삶 안에서 깨닫고 받아들여 믿는 신앙생활의 시작입니다. 단지 성서를 읽고, 기도를 하고, 미사를 드림으로써 다되는 것이 아니라, 영세를 받은지 몇 년이 되었다고, 나이가 들었다고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구체적인 상황 안에서 말씀을 새로 볼 수 있게되는 것이 신앙생활의 처음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하느님을 향해 눈뜨고 깨어나는 영적성숙의 첫 단계입니다.


여러분이 주님께 청하는 기도와 지향의 내용이 실제로 여러분의 삶 속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인지 오늘 이 순간부터 확인하십시오. 그리고 나서 성모 마리아의 일생을 모범삼아, 가톨릭 교회를 통해 주님의 신자가 되십시오.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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