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담화문


이 나라 이 땅에 잃어버린 평화를 되찾게 하소서


“보라, 나 이제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리라. 예전의 것들은 이제 기억되지도 않고 마음에 떠오르지도 않으리라.”(이사 65,17)

마태 18,19ㄴ-22; 17/06/25


남북 분단 72년이라는 긴 시간 속에서 우리는 다시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같은 시기 전범 국가로서의 책임 때문에 분단의 멍에를 받아들여야 했던 독일은 과거의 상처를 딛고 통일국가로서의 위상을 떨치며 유럽연합의 중심에 서 있습니다. 그러나 전쟁에 대한 아무런 책임도 없이, 아니 오히려 전쟁의 피해자로서 식민지배 상태에서 원치 않는 분단의 아픔을 겪었던 우리는 아직도 대결과 갈등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분단의 직접적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들의 세력다툼 속에 한반도 통일과 관련한 우리의 입지는 점점 더 좁아져 왔습니다.

지난 몇 달 동안 우리는 격동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건국 이래 초유의 국정농단 사태에 분노한 시민들의 대규모 촛불시위가 이어졌고, 결국 헌정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이 탄핵당하고 구속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그 과정에서 크고 작은 갈등들이 있었지만 큰 불상사 없이 보궐선거를 통해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하여 안정적으로 정권교체를 이루었습니다. 세계 각국의 외신들에서는 대한민국의 성숙한 민주주의 의식에 찬사를 보내고 있지만, 국민의 손으로 직접 뽑은 지도자를 국민적 저항으로 내보낼 수밖에 없었던 권력 내부의 비정상적인 상황들이 우리 모두에게 큰 충격과 상처를 준 것도 사실입니다.

비정상적 분단구조

전 세계 모든 나라들은 제각각 여러 가지 문제들을 안고 있습니다. 사회적 양극화를 비롯해 환경, 인권, 종교, 그리고 최근에 두드러지게 대두되는 테러리즘 등이 있습니다. 그러나 남과 북은 분단된 한반도라는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단순한 분단이 아니라 휴전선을 마주 대고 총부리를 겨누며 극도의 위기감 속에 정전체제를 유지한 체 64년이라는 긴 시간을 살아오고 있는 것입니다. 정전체제 속에 각종 위협과 도발이 끊임없이 이어져 왔고, 세계적으로 이미 사라진 냉전논리가 우리 사회 전반을 물들이며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비정상적 모습이 남과 북 모두에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런 비정상적인 냉전논리는 우리 신앙인 안에도 깊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우리 신앙인은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1요한 4,16)’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남기신 분명하고도 유일한 계명은 바로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4)’라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이웃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거짓말쟁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또 믿음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1요한 4,20 참조).

그러나 이상하게도 우리 신앙의 핵심인 사랑의 계명이 북한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면 완전히 사라져버리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그들을 사랑받을 자격조차 없는 사람으로 규정하고 저주와 증오의 대상으로 낙인을 찍어버립니다. 또한 사랑의 실천을 말하는 사람들을 오히려 매도하거나 심지어 성직자들에게도 ‘종북’ 딱지를 스스럼없이 붙이기도 합니다. 냉전논리가 신앙에 우선하는 상황이 생기면서 이념의 우상화에 깊이 빠져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악에 대항할 때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것 중 하나는 나 스스로 악해지는 것입니다. 악은 선으로 극복해나가야 합니다(마태 5,44 참조).

평화체제로의 전환

정전체제에서 비롯된 냉전 구도가 사회,정치,경제,문화,종교 등에 영향을 주면서 많은 폐단을 낳고 있습니다.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냉전논리를 악용하기도 하고, 안보위기를 부추기며 온갖 적폐들을 양산하기도 합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 검열을 강화하고, 그 기준에 어긋나는 사람들을 너무도 쉽게 적으로 규정하여 매도하는 일이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긴 냉전의 시간이 공동체와 개인의 삶을 병들게 만들었고, 짙은 어둠 속에서 우리 미래는 더더욱 불투명해지고 있습니다. 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해,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서는 평화체제로의 전환이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새로운 정부가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는데 힘을 기울여달라고 당부합니다. 확실한 안보는 평화가 항구적으로 유지되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는 첨단무기나 대량살상무기로 무장하여 상대에게 위협을 가하는 세상의 불안한 평화가 아니라, 사랑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주님의 평화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상태를 일컫는 것입니다(요한 14,27 참조).

불완전한 정전체제 속에서 한반도는 늘 긴장과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습니다. 최근 북한의 핵과 미사일, 그리고 남한의 사드배치와 관련된 논쟁은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동북아시아에 전쟁위기를 더더욱 고조시키고 있습니다. 북한과 미국 사이의 치열한 설전과 무력시위가 자칫 큰 충돌로 이어져 우리 삶의 터전에 큰 재앙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커지고 있습니다. “평화로 없어질 것은 아무 것도 없으나, 전쟁으로는 모든 것이 멸망할 것이다.”라는 교황 비오 12세의 충고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 삶을 위하여, 나아가 자라나는 우리 미래세대를 위하여 전쟁위기를 극복하고 평화를 정착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국민의 힘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음을 우리는 이미 체험했습니다. 그 연장선에서 국민적 열망이 참된 평화를 가져올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서로를 공멸로 밀어 넣는 대결구도에서 벗어나 상생의 길을 찾아야 합니다. 한반도에서의 완전한 전쟁종식을 선포하고, 활발한 교류와 협력을 통한 평화의 시대를 열어나갈 때, 경제적 동반성장과 더불어 통일의 그날도 성큼 다가올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이사야 예언자를 통해 전해주신 하느님의 말씀을 함께 노래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리라.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거슬러 칼을 쳐들지도 않고 다시는 전쟁을 배워 익히지도 않으리라(이사 2,4).”

평화로 향한 길

먹구름이 짙게 드리운 가운데 새 정부가 출범하였습니다. 소통과 통합이라는 기치 아래 출범한 새 정부가 국민과의 활발한 소통을 바탕으로 세대와 지역을 아우르는 참된 통합을 이룰 수 있기를 염원합니다. 그리고 참 평화를 이루기 위한 외교적인 노력과 더불어 남북관계의 획기적인 변화를 기대합니다.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가까운 혈육이라 하더라도 만남이 없으면 마음으로부터 멀어지고, 남남이라 하더라도 자주 만나면 혈육 이상으로 가까워질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남과 북도 마찬가지입니다. 우선적으로 종교와 민간차원에서 남과 북의 활발한 만남을 통해 서로가 한 형제임을 확인해 나갈 수 있도록 정부차원의 적극적인 노력을 당부합니다.

하느님의 자녀로서 평화의 일꾼으로 불림 받은(마태 5,9 참조) 교우 여러분! 평화의 여정은 기도와 함께 이루어가야 함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평화에 대한 간절함을 바탕으로 마음을 모아 기도해야 합니다. 해봐야 소용없다는 냉소적인 생각은 무서운 유혹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느님에게는 불가능이란 없습니다(루카 1,37 참조). 인내와 용기를 갖고 기도 운동에 동참해주시길 청합니다. 매일 저녁 9시 어디에서든 잠시 시간을 내어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에 참된 평화와 나아가 통일을 위해 주모경을 함께 봉헌해 주시기 바랍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이름으로 이들을 지키시어, 이들도 우리처럼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요한 17,11).” 십자가 죽음을 앞두시고 간절히 기도하시는 주님의 뜻을 기억하며 2016년 춘계 주교회의에서는 각 본당에 ‘민족화해분과’를 설치할 것을 권고하였습니다. 화해와 일치, 평화와 통일이라는 시대적 소명은 분단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따라서 평화운동을 각 본당 단위에서부터 적극적으로 실천해 나가야겠습니다. 냉전논리에 젖어 돌처럼 굳은 마음을 살처럼 부드럽게 만들기 위해(에제 36,26 참조) 각종 교육과 체험 프로그램들을 활용할 수 있어야 하고, 남북 교류협력에 교회가 선도적으로 참여하기 위한 재원 마련에도 힘써야 할 것입니다.

올해는 파티마에서 성모님이 발현하신 지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세 목동을 통해 전해주신 성모님의 메시지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의 평화와 구원을 위해 회개하고 묵주기도를 봉헌하라는 말씀은 분단과 갈등의 삶을 살아가는 오늘의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이라 생각합니다. 평화의 모후이신 성모님을 모시고 평화가 강물처럼 넘실거리는 한반도를 함께 만들어 갑시다.

“보라, 나 이제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리라. 예전의 것들은 이제 기억되지도 않고 마음에 떠오르지도 않으리라.”(이사 65,17)

2017년 6월 25일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한국천주교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위원장 이기헌 주교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분단 70년을 맞는 한국 천주교회의 반성과 다짐

마태 18,19ㄴ-22; 15/06/21

친애하는 교우 여러분!

올해는 우리나라가 광복의 기쁨과 남과 북으로 분단된 아픔을 겪은 지 70년이 되는 해입니다. 7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우리 민족이 겪었던 분단의 고통스러운 현실 앞에서 우리는 이스라엘 민족의 바빌론 귀양살이 70년을 기억하게 됩니다. 이스라엘이 70년의 귀양살이에서 풀려나 은총의 새 시대를 맞이하였듯이(2역대 36,21 참조), 올해 2015년이 분단과 갈등의 70년을 마감하고 새로운 평화를 여는 해가 되기를 염원합니다.

그동안 남북한은 ‘7·4 남북공동성명(1972년)’을 비롯하여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 협력을 약속한 ‘남북기본합의서(1992년)’, ‘6·15 남북공동선언(2000년)’, ‘10.4 남북공동선언(2007년)’ 등을 통하여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그러나 최근 정치적 이해관계로 얽힌 남북 관계와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는 우리의 미래를 어둡게 만들고 있습니다. 과거의 유물이어야 할 냉전의 극한 상황이 한반도를 에워싸고 있으며, 내부적 이념 갈등도 이미 도를 넘어선 듯 보이고, 또한 비정상적인 상황들이 사회 전반을 병들게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분단 70년을 맞이하면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삶의 자리에서 민족의 분열과 갈등을 극복하기 위하여 예언자적 소명에 얼마나 충실했는지 반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십자가 죽음을 통해서 우리에게 ‘화해의 직분’(2코린 5,18)을 소명으로 남겨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거짓 평화와 자기 위안에 빠져 남북 분단의 갈등이 빚어내는 왜곡된 현실을 눈감아버린다면 신앙인의 소명을 저버리는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지난해 우리나라를 방문하시어, 분단된 남북한이 ‘평화의 기초이며 평화로 향하는 길인 형제애’를 회복할 것을 바라셨고, 모든 신자에게 현대 사회의 가장 큰 죄악인 “무관심의 세계화”를 경계하라고 강력히 권고하셨습니다. 점점 심해져 가는 경제적 양극화 현상과 탐욕적 이기주의는 민족의 화해와 평화통일에 대하여 무관심하도록 부채질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여러 가지 사정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 이웃인 북녘 동포들을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마음으로 도울 때, 우리 믿음이 구체적인 사랑의 실천이 됨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야고 2,14 참조).

우리는 정부와 북한 당국에 간절히 요청합니다.

민족의 화해와 평화로운 공존, 그리고 미래에 이루어질 통일로 가는 지름길인 남북 간 교류와 협력은 정부 차원은 물론 민간 차원에서도 활발하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특히 인도적 차원에서의 협력은 정치적 이념이나 이익에 우선되어야 합니다. 종교단체와 민간단체들을 통한 상호 교류와 협력 사업이 활발해져 참된 평화의 길로 나아가도록 정부가 지속적으로 지원하고 협조해 줄 것을 요청합니다. 또한 남북한 당국자들이 기존의 합의들을 서로 존중하여 분단과 냉전체제가 안고 있는 모순들을 극복해 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서로 용서와 화해를 앞세워야 합니다. 조건 없는 용서만이 민족 화해의 길이라고 믿습니다. 힘과 무기로써가 아니라 진정한 대화를 통하여 군비를 축소하고 한반도에 평화체제가 정착될 수 있는 방안을 함께 모색하고 실천할 것을 요청합니다. 동북아 분쟁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한반도가 평화의 중심이 되도록 관련 당사국들이 적극적으로 협력한다면, 분단 상황에서 비롯된 긴장과 대립을 넘어 한반도의 평화와 민족의 화해와 일치로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부활의 증인인 교우 여러분!

죽음의 어둠을 넘어 부활하신 주님의 영광은, 십자가 위에서 자비하신 하느님 아버지께 온전히 의탁하신 예수님의 전적인 신뢰에서 비롯되었음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비록 우리의 현실이 어둡더라도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한반도에 화해와 평화의 기쁜 소식이 울려 퍼지도록 주님께 간청합시다.

이 땅에 평화를 이루고자 애쓰는 모든 분들이 용기를 잃지 않고 참된 평화의 도구로 살아갈 수 있도록 주님께서 축복을 내려주시기를 청합니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마태 5,9).

2015년 6월 1일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

김희중 대주교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담화문

마태 18,19ㄴ-22; 13/06/23

한국 천주교회에는 매년 6월이면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 주일이 있고 남북통일기원미사를 드리지만, 올해는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금년은 정전 6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난 춘계 주교회의 총회에서도 해마다 지내오던 6월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달에 특별 기도를 바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같은 민족끼리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치러 수많은 사상자를 내었고 또 고향을 떠나 타향살이를 한 지 60년이란 세월이 흘러 이제는 많은 분들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뿐 아니라, 전쟁의 상처는 미움과 증오라는 부산물을 우리 민족의 가슴에 남겨주었으나 그 부산물을 떨쳐버리는 것이 그토록 힘이 드는 가봅니다. 같은 민족끼리 이렇게 오랫동안 화합을 이루지 못하고 적대감정을 가지고 으르렁거리는 나라가 이 세상에 어디 또 있겠습니까? 이제는 남과 북이 과거의 미움과 증오를 잊어버리고 화해의 손을 잡고 함께 살아가는 평화의 길을 모색해야 합니다.

용서와 화해를 통해 상생의 길로

정전 60주년을 맞은 우리가 무엇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은 회개를 통한 용서와 화해입니다.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비롯하여 남북관계와 통일을 논하는 자리에서 많이 나오는 이야기가 바로 용서와 화해입니다. 용서와 화해를 통한 대화와 교류 및 상호협력 없이는 우리 한반도에 쌓여있는 불신과 불안, 더 나아가 전쟁의 위기는 멈출 수가 없습니다. 그동안 남과 북은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을 비롯하여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와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들을 통해 화해와 협력을 모색해왔습니다. 그러나 결실을 거두지 못하고 서로 헐뜯고 비방하였고, 급기야 핵이라는 카드로 위협받고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동안 남북 갈등의 어떠한 사태에서도 존속시키며 남북경제협력의 큰 상징이 되어왔던 개성공단마저 중단되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지금까지 남북관계의 과정과 그동안 일어났던 여러 가지 돌발 사태 등을 보면 참으로 어렵고 힘든 일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남북관계는 우리 민족의 생존이 걸린 일이고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될 중요한 과제이기에 온 민족이 함께 마음을 모으고 인내하며 풀어나가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 교회의 역할도 매우 중요합니다.

오늘 우리는 교회에 맡겨진 민족 화해의 사명을 기억하면서 먼저 우리 자신이 이 사명에 충실하였는지 반성해 보아야겠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교회에 남북이 적대 관계를 청산하고 본래 한 형제였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도록 화해의 임무를 맡기셨습니다. 우리 교회는 이 사명을 마음에 새기며 그동안 기도와 희생을 바쳐왔습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기도와 희생은 소수의 일이었을 뿐, 대부분은 분단의 고통에 무관심하고 북한주민들의 고통에 무심하게 살아왔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제 남과 북 우리 모두가 지나간 시간들을 떨쳐버리고 용서와 화해로 손을 잡고 이 땅에 평화와 통일을 이루는데 한마음이 될 것을 다짐합시다.

새 정부에 바랍니다.

그동안 대북정책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달라졌습니다. 각 정권은 나름대로 의미 있는 대북정책을 펼쳐가며 많은 난관을 극복하고 관계개선을 위해 노력하였지만, 다시금 대결의 길로 돌아섰습니다. 더욱이 남북 대화가 단절되고 남한은 물론 국제사회가 대북제재와 압력을 가하는 동안 북한의 핵 능력만 향상되는 결과를 초래하였습니다. 이제는 북한이 먼저 비핵화해야 한다는 것에 매달리지 말고 평화협정과 비핵화를 융합할 수 있는 지혜로운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그뿐 아니라 남북교류와 경제협력을 지속적으로 확장해 나가는 길만이 화해와 평화를 모색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독일통일을 위해 서독정부는 입으로만 통일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동독지역에 사회간접자본과 물류체계를 구축하였으며 분단 상황에서도 고속도로 4개, 국도, 국경을 통과하는 철도, 내륙운하는 물론 항공로도 3개나 건설하였다고 합니다. 통일을 지향하며 경제협력과 동서교류를 위한 서독정부의 이러한 지속적인 노력이 통일을 이루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생각합니다.

이제 새롭게 출발한 새 정부의 대북정책인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도 신뢰를 위해 북의 행동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우리가 먼저 손을 내밀고 신뢰의 끈을 제공함으로써 새로운 남북관계의 길이 열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북한정부에 바랍니다.

북한은 어리석은 전쟁위협과 대한민국 체제를 부정하는 태도를 버리고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합니다. 북한의 핵 개발 전략이 오히려 미국의 동북아 전략에 힘을 실어주는 결과를 초래하였으며, 일본의 군국주의화에도 빌미를 제공하여 바람직스럽지 못한 결과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그 뿐 아니라 지난 기간 긴장 고조와 제재 그리고 대화의 악순환이 이제는 더 이상 국제사회에 통용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한반도 평화와 민족번영을 위해서 시도했던 개성공단과 그 밖의 남북협력사업도 다시 재개해야하며, 지극히 인도적인 사업인 이산가족상봉이 하루빨리 재성사되어 이산가족의 한을 풀어 주어야 합니다.

교형자매 여러분,

남북관계가 갈수록 어려워지는 상황 속에서 신앙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역할이 무엇인지 다시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신앙인들에게 가장 큰 무기는 기도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그 어떤 것도 이룰 수 없다(마르 9,29)고 주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독일이 통일의 길로 나아갈 때, 독일교회는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였습니다. 인도적 지원과 교류 협력사업도 활발하게 펼쳤지만,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지속적인 기도운동을 펼쳤다는 것입니다. 매주 월요일 라이프찌히의 니콜라이 교회에서는 평화와 통일을 위한 기도회가 있었습니다. 이 기도운동이 독일통일의 원동력이 된 ‘월요기도회’였습니다.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도 우리의 노력에 기도가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정전 60주년을 맞이하여 우리 교회가 참회해야 할 일이 바로 민족의 화해를 비롯한 북한주민들을 위해 바쳐야 할 기도의 소홀이라고 생각합니다.

통일은 과정의 결실입니다. 힘을 키우는 방식으로는 평화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마음을 열고 대화하고, 함께 교류하고 협력하는 남과 북이 될 수 있도록 평화의 주인이신 하느님께 기도드리며 그분의 축복을 구합시다.

남과 북의 모든 형제자매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함께하시기를 기원합니다.

2013년 6월

한국천주교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위원장 이 기 헌 주교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담화문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마태 18,19-22; 12/06/24

화해는 그리스도인들의 소명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요한 20,19)

이 말씀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가장 먼저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제자들의 일치, 세상이 하나 될 것을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셨던 주님(요한 17,11 이하 참조)을 기억한다면, 평화란 화해와 일치를 향한 노력의 결실임을 우리 신앙 안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신 이유를 하느님과 화해시켜 주기 위해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로마 5,10-11 참조) 하느님과 우리를 참사랑으로 화해시켜 주시고, 그 사랑의 힘으로 세상을 화해시켜 참된 일치를 가능케 하시고자 세상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우리 신앙인이 무엇을 위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명백히 제시해 줍니다.

세상을 화해시켜 하느님께로 이끌어 주는 것이 우리 신앙인의 근본적인 삶이라면, 분단의 상황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 한국 교회에 주어진 시대적 소명은 더욱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갈등과 분열을 극복하고 참된 일치를 향해 나아가도록 함께 기도하고, 노력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더욱 깊어가는 분단의 아픔

민족 해방과 더불어 시작된 분단, 그리고 이어진 끔찍한 전쟁, 그 후 지속된 이념 갈등의 역사가 벌써 60년의 세월을 넘어섰습니다. 휴전의 상황 속에서 언제든 전쟁이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위기감이 늘 한반도를 감싸고 있고, 그로 인한 크고 작은 충돌 속에 아픔과 상처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잠시 동안의 화해의 기운이 엿보이기도 하였지만, 세상의 악은 그 소중한 기회를 늘 앗아가기만 하였습니다.

분단이라는 상황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아직도 큰 상처가 되어 남아 있습니다. 곧 다시 돌아오겠다는 굳은 약속이 마음속에 피맺힌 응어리가 되어 가족과 고향 땅을 그리며 하루 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는 이산가족들이 있습니다. 벌써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한을 풀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고 있고, 다시 만날 그날을 가슴 졸이며 기다리는 사람들 역시 세월의 무게를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념의 문제와는 아무 상관 없이 오로지 생존을 위해 국경을 넘어 탈북하는 사람들도 무수히 많습니다. 낯선 땅에서 갖은 인권 유린을 당하면서도 저항할 수 없는 참담한 현실 속에서 하루하루를 근근이 버티는 그들도 역시 우리의 동족이며 가족들입니다. 불법체류자의 신분으로 늘 불안하게 생활하다 북송의 위기를 맞아 절규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남북분단의 처참함을 다시금 보게 됩니다.

목숨을 걸고 험난한 국경을 넘고 또 넘어 우리나라에 정착한 북한이탈주민의 수가 벌써 23,000명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차가운 시선을 무릅쓰고 새로운 체제에 정착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도 힘겹지만, 정작 그들 마음 안에 남아 있는 큰 상처는 두고 온 가족과 고향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입니다. 그들 역시도 분단의 시대가 만든 새로운 형태의 이산가족임에 틀림없습니다.

한반도의 현재

지난해 말 북한 지역에서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북한의 권력체계와 남북관계에도 어떤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예측이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6개월이 흐른 지금 북한 내부의 상황은 과거와 다름없이 움직여 나가고 있는 듯 보입니다.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 강경한 모습으로 남과 북이 대치 상황을 이루며 서로를 자극하는 말들을 쏟아내고 있는 실정입니다.

현재 한반도가 처해 있는 상황을 ‘위기’로 진단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위기’란 위험과 기회를 동시에 내포하는 표현입니다. 위험을 고조시켜 전쟁과도 같은 끔찍한 공멸의 상황을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함께 마음과 지혜를 모아 현 상황을 미래를 위한 기회로 만들 수 있어야 합니다.

국가적 차원에서 위기관리란 전쟁의 승리를 위해 힘을 무한대로 키워나가는 것이 아니라, 갈등과 분쟁이 생기지 않도록 슬기롭게 상황을 조율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한 차원의 위기관리가 그 어느 때 보다 필요한 시점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한반도가 위험천만한 군비경쟁의 장이 아니라, 사랑과 나눔이 넘쳐나는 평화지대가 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야 합니다.

통일을 향한 발걸음

암울한 상황 속에서도 통일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통일비용’과 관련한 현실적인 이야기를 공론화시키려는 시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참된 통일은 지역과 지역이 합쳐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만나 하나를 이루는 것입니다. 즉 주민통합이 그 핵심이 되어야 합니다. 20여 년 전 통일을 맞이하고, 그에 따른 어려움을 아직까지도 겪고 있는 독일의 경우를 살펴볼 때, 주민통합의 중요성이 더욱 잘 드러납니다.

따라서 통일을 위해 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잦은 만남, 즉 활발한 교류와 협력입니다.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하나로 나아갈 수 있는 민간 차원의 교류가 활성화되어야 합니다. 종교·사회·문화 등에서의 만남이 활발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정부의 허용과 나아가 적극적인 지원을 촉구합니다.

더 나아가 현재 남한이든 북한이든 우리가 안고 있는 경제문제의 가장 확실한 해법은 남북 경제 교류와 협력에 있습니다. 함께 머리를 맞대고 마음을 모은다면 경제적 동반 성장이 충분히 가능할 것이며, 또 그것이 남북 주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에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남과 북의 주민들이 함께 협력하고, 함께 성장하며 서로를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이 넓어진다면 그것이 통일 시대에 겪을 수 있는 혼란을 줄여주는 중요한 토대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더욱 절실한 기도

친애하는 교우 여러분! 평화는 우리 신앙인들이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중요한 가치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에 평화를 정착시키는 일은 단지 일부 정치인들의 몫이 아니라, 바로 우리 신앙인에게 주어진 기본 사명입니다. 이웃의 불행과 아픔 그리고 상처를 외면하는 완고함(마르 3,5 참조)에서 탈피하여야 합니다. 마음을 열고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5,17) 하신 주님의 유일한 계명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한반도에 먹구름이 짙게 드리워져 있습니다. 이 위기의 순간에 ‘기도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마르 9,29 참조)는 주님의 가르침을 기억합시다. 분열과 갈등의 먹구름을 걷어내기 위해 우선적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함께 마음을 모아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평화의 길’(루카 1,79 참조)로 이끌어주시는 주님께 간절한 마음을 모아 봉헌한다면 주님께서 기꺼운 마음으로 응답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또한 우리는 평화의 사도로 불리움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 몸에서 돌처럼 굳은 마음을 도려내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심어주시는(에제 36,26 참조) 주님께 의탁하며 세상의 평화 특히 우리가 살아가는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됩시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우리의 간절한 기도와 노력은 주님의 은총으로 놀라운 결실을 맺게 될 것입니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마태 5,9)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위원장

이기헌 주교



남북통일 기원미사/삼위일체 대축일

(가해) 마태 18,19ㄴ-22; 2011/06/19

1980년대 말에 중고등학생 미사를 드리면서 ‘남한과 북한이 통일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을 때, 그 때 중고등학생들의 대부분은 통일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대답했고, 그 이유를 우리 민족은 하나이기 때문에 통일이 되어야 한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다가 1990년대에 접어들어서는 중고등학생들의 대부분이 통일이 안 되었으면 좋겠다고 대답했습니다. 그 이유는 통일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오늘 여러분(우리 학생들)은 어떤 대답을 할지 궁금합니다. 여러분은 우리 나라의 통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오늘 우리가 처한 상황을 보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차라리 남이면 사랑이라도 할 텐데, 서로 같은 한 민족, 한 나라 국민이라고 외치면서도 적과 원수보다도 더 경계하고 원망하면서 수십 년을 보내는 우리의 답답하고 괴로운 현실이 아프기만 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의 책임과 의무를 서로가 서로의 탓으로 돌리며, 스스로 풀지 못하는 문제가 생기면 서로가 그 문제에 직접적인 원인관계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미해결의 원인과 책임을 상대에게 떠 넘기면서, 자기의 문제조차도 남에게 돌려버리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겪는 모든 문제의 한 쪽 끝에는 늘 이 국토의 분열과 민족의 불화인 분단과 통일의 문제가 우리의 한 쪽 발목을 잡고 있어, 아무리 도망치려 해도, 아무리 벗어나려 해도, 우리를 죄와 악처럼 옭아매고 있습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마태 18,19-20) 라고 말씀하십니다. 서로 마음이 맞는 둘이나 셋이 서로의 간절한 염원을 위해 빈다면 주님께서는 지체 없이 들어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그 둘이나 셋이 북이나 남처럼,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서로 다른 꿍꿍이를 가지고 있다면, 마음을 모으기 조차 어려울 것이고,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기도 어려울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 자체도, 기도 자체도 주님께서 내려주시는 은총만으로 가능한 것이라고 고백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기에 이렇게 얼키설키 엉키고 뒤섞인 현실 속에서 신음하면서, 우리 한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남과 북으로 갈라진 국토의 통일을 위해 우리는 주님께 청합니다.

아울러 오늘 우리는 삼위일체 대축일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하늘에 계신 성부 하느님은 땅에 있는 성자 예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모든 권한을 다 주십니다. 땅에 있는 성자는 자신이 받은 권한을 행사하며 그 열매로 얻어진 모든 영광을 전적으로 다 아버지께 돌립니다. 그리고 성령은 하늘과 땅을 헌신적으로 오가며 그 둘 사이를 끊임없이 일치시켜 줍니다. 그래서 삼위의 하느님께서 한 분 하느님이 되십니다. 이렇게 사랑으로 하나되신 하느님 그분의 사랑이 넘쳐 흘러 우리에게까지 다다르고 그 사랑의 힘으로 우리가 오늘을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 사랑의 방법론이 우리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걸어나갈 길입니다.

우리가 집에서 가장은 집안 일을 아내에게 맡기고, 아내는 남편의 신뢰와 전적인 위임을 바탕으로 집안 일을 하고 자녀를 키우면서, 자녀에게 이 모든 것이 다 아버지께서 자녀인 너에게 주라고 하신 것임을 밝힐 때, 자녀는 아버지의 존재와 사랑을 느끼며, 아버지와 어머니와 자녀가 삼위일체적인 사랑으로 한 가족이 됩니다.

또 우리가 활동을 하면서 하느님의 일꾼으로서, 우리의 활동 대상자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전할 때, 우리는 우리 활동 대상자가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게 할 수 있고, 우리 활동 대상자는 우리와 하느님과 자신 사이에 흐르는 삼위일체적인 사랑의 일치를 느끼게 됩니다.

이러저러한 현실적인 이유로 말미암아 지금 당장 우리 국토의 통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서로 적처럼 죽이고 비난하면서 평화를 깨트리는 일 없이, 같은 민족으로서 서로 용서하고 껴안고 도와주면서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스도교 재일치를 위한 운동까지 하는 같은 그리스도교 신자이면서도 이교인들 앞에서 나는 개신교인이 아니라 천주교인이라는 것을 굳이 말해야 하는 서글픈 상황처럼, 같은 한국인이면서도 세상 사람들 앞에서 나는 북쪽이 아니라 남쪽 사람이라는 것을 굳이 차별하여 말해야 하는 서글픈 상황이 되풀이 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주님,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사랑의 힘으로, 우리 민족의 상처들을 보듬어 주시고 치유해 주시어, 주님께서 내려주시는 은총의 힘으로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22)시던 주님의 말씀을 이루어 서로 화해하고 일치하도록 허락하시고 주님께서 내려주시는 평화 안에서 살아가게 하소서.

아멘.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남북통일 기원 미사(나해) 마태 18,19-22; 06/06/25

2005/06/19

오늘은 우리가 1950년 한국전쟁으로 수많은 동포들이 죽어가고 희생됐으며 결국 오늘날까지도 국토가 분단되어 떨어져 살고 있는 우리 민족의 아픔을 되새기며 다시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기도하고 남북의 통일을 기원하는 미사를 드리는 날입니다.

오늘 저는 전쟁이 누구에 의해, 누구를 위해 저질러지는가 등등의 전쟁자체에 대해서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오늘 단지 우리 한국전쟁에 참전한 외국인들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우리 민족의 아픔도 크지만, 우리 민족의 전쟁 속에 끼어들어 죽어간 외국인들을 기억하고 싶습니다.

작년에 서울교구 사제모임을 워싱턴 D.C.에서 했을 때 한국전쟁 기념 공원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 공원 안에는 한 겨울에 한 여름에 입는 판초우의를 입고 소총 한 자루를 지고 전쟁터를 향해 걷고 있는 군인들의 모습이 새겨져 있고, 그 밑의 기념판에는 이런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우리 국가는 그들이 결코 알지 못했던 나라와 그들이 결코 만난 적이 없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국가의 부름에 응답한 이 나라의 아들과 딸들을 기린다.” (Our nation honors her sons and daughters who answered the call to defend a country they never knew and a people they never met.)

그 글귀를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세상에 사는 사람 어느 누구 하나도 일찍 죽고 싶지 않고 가족과 일가친척끼리 그리고 이웃들끼리 오순도순 행복하고 살고 싶은 것이 모든 사람의 마음인데, 꽃다운 나이에 자기 돈 벌기 위해서도 아니고 자기 잘 살기 위해서도 아닌 죽음의 전쟁터로 나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계의 평화라는 이름아래, 자유 민주주의라는 이름아래 그저 소총 한 자루만을 들고 전쟁터로 나갔던 외국 참전군인들을 기억합니다. 실제로 그들은 전쟁이 어느 나라에서 일어났는지, 그 나라가 얼마나 추운지, 얼마나 더운지도 모른 체, 그리고 그 나라 사람들이 왜 싸우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 나라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체 전쟁에 나왔습니다. 그리고 서로 알지도 못하는 적을 향해, 원수도 진 적이 없는 이들에게 총을 쏘고 자신들도 죽어갔습니다.

우리는 매년 우리 민족의 화해를 위해 그리고 우리 국토의 통일만을 기원해 왔는데, 그 기념판의 글귀를 바라보면서 우리와 함께 했던 많은 외국인들을 기억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1950년 6월 25일 시작된 북한의 무력 침공에 대해 UN 안전보장이사회는 7월 7일 군대와 기타 원조를 제공하는 국가들이 미국이 지휘하는 ‘통합사령부’에 집결할 것을 요구하는 결의를 채택하고, 맥아더 장군을 UN군 총사령관으로 임명했습니다. 미국 1,789,000명과 영국 56,000명, 캐나다 25,687명, 터키 14,936명, 오스트레일리아 8,407명, 필리핀 7,420명, 타이 6,326명, 네덜란드 5,322명, 콜롬비아 5,100명, 그리스 4,992명, 뉴질랜드 3,794명, 이디오피아 3,518명, 벨기에 3,498명, 프랑스 3,421명, 남아프리카 공화국 826명, 룩셈부르크 83명, 총 16개국 1,938,330명의 전투 군인과 스웨덴 160명과 인도 627명, 덴마크 630명, 노르웨이 623명, 이탈리아 128명, 총 5개국 2,168명의 의료진이 1953년 7월까지 참전했습니다.

천주교회는 교황님께서 1950년 9월 27일 미군종교구 산하에 세계 각국의 천주교 군종 신부님들이 활동하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전쟁 중에 932분의 신부님들이 활동하셨고, 427분의 협조자가 있었습니다.

그중 미국에서는 샌 루이스 교구 소속의 육군 ‘Lawrence F. Brunnert 신부님’께서 군종사제로 한국 전에 참전하셨다가 1951년 5월 27일 선종하셨고, 보스톤 교구소속의 육군 ‘Francis X. Coppens 신부님’께서 1951년 5월 27일 선종하셨고, 도미니코회 소속의 육군 ‘Leo P. Craig 신부님’께서 1951년 4월 5일 선종하셨고, 프란치스코회 소속의 육군 ‘Herman G. Felhoelter 신부님’께서 1950년 7월 15일에 선종하셨고, 위치타 교구 소속의 육군 ‘Emil J. Kapaun 신부님’께서 1951년 5월 6일 선종하셨고, 부룩클린 교구 소속의 공군 ‘William E. Maher 신부님’께서 1951년 9월 27일 선종하셨습니다. 미국 군종교구의 기록에 의하면 이렇게 6분의 군종 신부님께서 전사하셨습니다.

매주 우리 미사에 오시는 케니 신부님도 6.25 참전 군종사제였습니다. 지금 병상에 누워계신 케니 신부님을 뵈러 갈 때마다, 마치 우리 민족의 짐을 대신 짊어지고 계신 듯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으며, 우리 민족의 숙제를 안겨드린 것만 같아 송구스럽기까지 합니다. 주님께서 그 병고를 가볍게 해주시고 주님 품 안에서 누릴 수 있는 평안을 허락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하루, 6.25의 비극을 되새기면서 세계 인류 가족들이 우리와 함께했던 그 노고를 함께 기억하기로 합시다. 자기 민족의 전쟁도 아닌 남의 전쟁에 와서 마치 가족처럼 대신 죽어가고 희생된 이국인 병사들을 기억하며 주님께 기도합시다. 그리고 그 유가족들도 주님께서 보듬어 안아 주시고 지켜주시기를...

“주님, 그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아멘.”

“주님, 그들의 병고를 가볍게 해주소서. 아멘.”

“주님, 그들의 마음을 위로해주시고, 지켜주소서. 아멘.”



남북 통일 기원 미사 2005년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담화문

2005/06/19

사랑하는 교형 자매 여러분.

올해는 우리 민족이 광복의 기쁨을 맞이한 지 60년 회갑이 되는 뜻 깊은 해이고 남한과 북한의 두 정상이 6.15 남북공동선언을 발표한지 5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러나 남북관계는 아직도 유아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서로 대립의 높은 벽을 실감하고 있으며 긴장 상태에서 불안감을 갖고 있습니다.

지난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관계는 빠르게 성장해 나갈 것 같은 기대감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남북한은 나라의 통일 문제를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하기로 하였고 이산가족들이 서로 상봉할 수 있도록 인도적 문제를 조속히 풀어가며 남북한은 경제협력을 통하여 민족 경제를 균형 발전시키고 상호간에 협력과 교류를 활성화하여 서로의 신뢰를 다져 나가기로 하였으나 지난해에는 조문파동과 대량 탈북자 입국 등으로 경색국면을 맞았으며 올해 초에는 북한이 핵무기보유를 선언함에 따라 남북관계는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상황이 되었습니다. 특히 미국은 6자회담을 통해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경우 유엔안보리에 북핵문제를 회부해 경제제재를 하겠다는 암시를 하고 있으며, 북한은 이에 반발하여 경제제재를 선전포고로 간주하겠다고 맞서고 있습니다.

참으로 어려운 현실을 바라보면서 남북의 분단이 가져온 상처의 깊이를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됩니다. 우리는 오랜 기간 동안 불신과 반목의 시절을 보내면서 사소한 일에도 쉽게 상처를 주게 되었으며 그 깊은 불신의 상처를 치유하는 일은 힘들게만 느껴집니다.

안타까운 사실은, 분단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치유하는데 우선해야 할 남한 사회에서도 좌파 · 우파 · 진보 · 보수라고 서로 불신하고 배척하는 분열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우리 교회 안에서도 북한과 북쪽 교회를 바라보는 시각, 북한을 지원하는 방식과 화해와 협력에 대한 의견에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형 자매 여러분,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사랑으로 창조된 사람들이 서로의 다양한 모습을 너그럽게 포용하고 서로 인격을 존중하며 화해하여 평화를 실현하기를 바라십니다.

이제는 남북한이 서로 벽을 쌓고 극한 대립으로 치닫기 보다는 자기와 다른 의견을 수용할 수 있는 주님 안에서 열린 공간을 마련하여 남북한과 남남의 냉전 문화를 해소하는데 힘을 모아 대립의 문화에서 공존의 문화로 바꾸어야 하겠습니다.

가치관이 다르면 적이고 보수고 혁신이라고 폄훼하기보다는 서로 합의의 기반이 정착 할 수 있도록 진정한 대화를 나누어야 하겠습니다. 우리 한민족은 좌파와 우파로 갈라지기 이전으로 되돌아가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하나 되어 한반도의 평화와 남북의 화해·일치를 실현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몸을 바쳐서 유다인과 이방인이 서로 원수가 되어 갈리게 했던 담을 헐어버리시고 그들을 화해시켜 하나로(에페소서 2장 14절)” 만드셨기에 우리의 정성 어린 기도를 들어주실 것입니다.

특별히 교회는 신앙 안에서 남북이 함께 살아가는 일을 준비하는 사업들에 형제자매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다시 한번 교형 자매 여러분께 주님의 사랑과 평화를 빌며, 북측의 형제·자매에게도 따뜻한 마음으로 사랑과 평화의 인사를 보냅니다.

‘평화를 빕니다.’

2005년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에

김 운 회 주 교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위원장)



남북 통일 기원 미사

2004/06/27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지금 남과 북 모두에서는 정치·경제·사회 여러 분야에서 극심한 변화를 맞고 있습니다. 북한의 경우에는 경제·사회의 변화가 공식·비공식적 방식을 통해서 매우 빠르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남한의 경우도 정치권을 중심으로 계층간, 세대간, 지역간에 상생에의 방향으로 변화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지난 4월 우리는 북한 룡천군에서 있었던 엄청난 사고를 접해야 했습니다. 이 사고는 남북으로 갈린 우리 민족을 하나로 모으는 계기가 되었다고 봅니다. 남쪽의 보수, 진보, 남녀노소 등 모든 계층의 많은 이들이 고통받고 있는 룡천군 주민들의 모습을 보면서 한마음이 되었습니다. 우리도 어렵지만 고통받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가만히 있을 수 없기에, 무엇인가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을 고민하였고, 기꺼이 그 사랑을 나누어주었습니다. 룡천군은 전 세계 곳곳과 특히 남한의 도움으로 하루하루 자리가 잡혀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관심은 룡천군의 빠른 복구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북한의 형제자매들을 위해 계속 되어야 할 것입니다.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기원하며 기도를 드리는 오늘, 남북한의 화해와 일치에 앞서 자신과의 화해, 이웃과의 화해, 지역간의 화해, 다양한 사회계층간의 화해 그리고 교회 안에서의 일치를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당연히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나,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흔하지 않다고 합니다. 또 사람들은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이기적인 인간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만이 이웃을,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도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마태 19, 19)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용납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자신의 단점과 싸우려고 하거나 미워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먼저 내안에 계시는 하느님과 화해하고 '그리스도의 평화'를 받아드리도록 합시다.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현재 남북관계는 커다란 변화를 보이고 있습니다. 남북의 3대 경협사업인 동해/경의선 도로 철도연결, 금강산 관광사업, 개성공단사업이 질적 양적으로 확대되기에 이르렀으며, 남북 군사회담을 통해 서해상 우발적 충돌방지와 군사분계선 지역에서의 선전활동중지 및 선전수단을 제거하기로 합의하였습니다.

북한사회는 대규모 시장이 개설되어 일반인과 국영기업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물건을 판매하는가 하면, 개인들이 건물을 임대하여 식당 등을 운영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상업자본가가 등장한 반면에 다른 쪽에서는 굶어 죽는 사람도 증가하고 있다고 합니다. 한편 남한사회는 대화와 타협보다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려는 현상도 점점 늘어가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합니다. 아울러 서민들이 느끼는 서민경제는 더욱더 사회안에서 격차를 드러내고, 그 격차는 날로 고착되어가고 있습니다.

남북간에 놓여졌던 분단의 가시적인 흔적들은 이제 역사의 한 부분으로 그 자리를 바꾸어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흔적들이 우리 눈앞에서 사라진다고 우리 민족이 화해와 일치를 이루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진정한 화해와 일치는 서로의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수용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눈앞에 놓여졌던 분단의 그 흔적들은 사라져가고 있지만, 남과 북 내적 분단의 흔적을 지우기 위하여 우리는 더 힘껏 노력해야 합니다. 우선 남과 북은 진지하게 서로의 있는 그대로를 바로 알아가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분단 59년 동안 쌓여진 남과 북 마음의 장벽을 허물어 "정의와 평화와 기쁨"(로마 14, 17)의 씨앗을 심어가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이러한 남북한의 변화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사회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소명이 있습니다. 그러나 걱정스러운 사실은 우리 사회의 갈등이 교회 내에서조차 재연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점입니다. 이에 따라 교회내의 일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의 고통을 앞에 두고 믿는 이들의 일치를 위해 바치신 기도가 있습니다. "아버지, 이 사람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과 같이 이 사람들도 우리들 안에 있게 하여 주십시오."(요한17, 21) 우리 교회는 이제 예수님의 간절한 이 기도에 화해와 일치의 구체적인 삶으로 응답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평화'가 교우 여러분과 남북한 형제·자매 모두에게 함께 하시길 간구합니다.

2004년 6월 27일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위원장 김 운 회 주교



남북 통일 기원 미사

(마태 18,19-11) 2002/06/23

어느 부부가 부부싸움을 하고 나서 주님 앞에서 기도했다고 합시다. 만일 부부가 서로 "주님, 저 이가 제 말을 좀 듣게 해주세요."라고 하면서 자기 중심적으로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식으로 기도한다면, 모든 이의 주인이신 주님께서 어떻게 한 쪽에게만 이익이 되도록 해 주실 수 있겠는가?

오늘 우리가 기원하는 남북 통일도 마찬가지다. 남과 북 서로가 상대보다 더 나은 조건에서 서로를 자기 쪽에 유리하게 끌어들이면서 통일이 되기를 바란다면, 다른 한 쪽에서 기꺼이 승낙하겠는가? 안된다. 오히려 서로가 서로를 이기기 위한 경쟁만 더 심화되고 서로의 차이는 더 깊어질 뿐이다.

현실적으로 서로가 서로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져야 한다. 타협이라기 보다는 협상을 통해 상대가 받아들일 수 있는 상대에게 유리한 조건들을 제시해야만 한다. '아주머니 떡도 싸야 사 먹는다'고 하듯이, 서로 잡아먹으려 하면서 단순히 한 민족이라는 개념만으로는 합치기 힘들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너희 중에 두 사람이 이 세상에서 마음을 모아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는 무슨 일이든 다 들어 주실 것이다. 단 두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19-20)라고 말씀하신다.

'민족의 동일성'이라는 조건과 '외세의 이해관계'라는 환경 속에서, 우리의 목표인 민족의 화해를 통한 국토의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고 그 처지를 헤아리고 안아주는 배려가 필요하다. 주님은 이러한 배려의 마음을 용서의 방법론으로 풀라고 한다.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여라."(22절) 현실적으로 줄 수만 있다면 주고, 용서할 수만 있다면 용서하라는 것이다. 마치 연인이 서로를 호감을 얻기 위해 선물 공세를 바치듯, 남북이 하나 되기 위해서는 서로를 얻기 위한 자기 버림을 해야 할 것이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신앙의 관점에서 용서와 자비를 베풀어야 할 것이다.

매년 맞이하는 6·25, 하루 빨리 통일의 염원을 이루려는 우리의 마음이 결실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의 마음 속에 쌓인 울분과 북한을 비롯한 서로 다른 문화와 환경에 대한 증오와 경계를 풀고, 북한에 있는 형제들에게 남한 사회에 대한 불신을 해소시키기 위해서라도 탈북자들에 대한 선입견 없는 관심과 배려를 나누며, 북한의 형제들을 위한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겠다.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2001/06/24

현대 세계는 과거 어느 시대보다 각 민족의 문화와 역사를 서로 존중하며 자주적인 발전을 보장하고 협력함으로써 공존하는 통합적인 지구촌 문명을 창조해 나가고 있습니다. 아직 가공할 무기를 보유하고 생산하며, 끊임없는 분쟁의 고통을 겪고 있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과거 어느 시대보다도 평화의 중요성을 더 깊이 공감하고 이를 위해 진지하게 노력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정보화의 덕택으로 지구촌 어느 한 곳에 지진이나 홍수가 발생하면 즉시 세계 각 국에서 인도적인 지원 인력과 물품이 쇄도합니다. 그만큼 인류는 과거 역사의 많은 고통을 통하여 서로를 아끼고 도울 줄 아는 역량을 키워 온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반도에는 아직 이러한 국경을 넘어선 폭 넓은 교류와 협력의 물길이 크게 다가오지 못하고 있음을 보며 우리는 가슴아파 합니다. 지난 해 6월 15일 남북의 정상이 역사적인 만남을 이루면서 새시대의 막이 올랐음을 우리는 모두 함께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지난 1년 간 우리는 분단된 이 민족의 땅이 화해와 일치를 이루는데는 우리들의 결정이나 노력만으로는 어렵다는 사실을 지켜보았습니다. 한반도는 지정학적으로 세계 열강의 정치, 경제, 외교상의 이해관계가 민감하게 교차하는 급소이며 이로 인하여 남북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노력이나 시도들이 교착 상태에 빠져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다시 한번 이 땅에 하느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며 참된 화해와 일치의 은총을 간구 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모두가 하나되기를 간절히 소망하시며 당신 목숨을 내놓으셨습니다. "그분은 자신의 몸을 바쳐서 유다인과 이방인이 서로 원수가 되어 갈리게 했던 담을 헐어버리시고 그들을 화해시켜 하나로 만드셨습니다. ......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희생하여 유다인과 이방인을 하나의 새 민족으로 만들어 평화를 이룩하시고 또 십자가에 죽으심으로써 둘을 한 몸으로 만드셔서 하느님과 화해시키시고 원수 되었던 모든 요소를 없이하셨습니다." (에페소 2. 14-16)

예수께서는 정치적 이해관계에 의하여 당신을 중죄인으로 몰아세운 유다인과 로마인들의 음모에 자신을 희생제물로 내놓으시고 그들을 용서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도 누구를 탓하고 책임을 추궁하기보다는 용서하는데서 시작해야 합니다. 6.25 전란으로 인하여 공산 치하에서 신앙 때문에 60여명의 사제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적지 않은 수도자, 평신도들이 같은 이유로 순교하였습니다. 그 뿐 아니라 신앙의 자유가 허락되지 않는 북한 땅에서는 교회 공동체의 전례를 집전할 수 있는 성직자가 한 명도 없어 북한 땅의 하느님 백성은 오랜 세월 동안 하느님을 찬미할 수 있는 기쁨도 영광도 맛보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서도 다행스러운 것은 북한 당국이 한국이나 외국의 사제들이 여행 중 평양에 세워진 장충성당을 방문할 때 비정규적이긴 하지만 미사 집전을 허락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장충성당은 제한적이긴 하지만 북한 땅에서 유일하게 성찬의 전례가 거행되고 있는 자리입니다. 한국교회는 과거 6년 동안 장충성당을 통하여 식량난과 경제난에 고통받고 있는 북한 동포를 지원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왔습니다. 북한의 사정이 특별히 호전되지 못한 이상 우리들의 관심과 지원은 계속되어야 하리라고 봅니다. 우리와 이념과 체제를 달리하는 이들이지만 지금 생존권을 위협받고 있는 동포를 모른 체 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내 가장 작은 형제 중 하나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고 가르치신 그리스도를 섬기는 사람들로서 이렇게 고통 중에 있는 형제들을 손놓고 바라볼 수만은 없는 것입니다.

친애하는 교형 자매 여러분, 한국 사회도 경제위기를 아직 완전히 극복하지 못한 상태에서 적지 않은 사람이 실업과 저소득의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 동포들은 우리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어려움에 처해 있습니다. 여전히 국민 대다수가 만성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있고 의료체계 붕괴로 질병에 걸려도 대책 없이 죽음을 기다리는 엄청난 고통을 강요당하고 있습니다.

먼저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합시다. 그리고 주님의 도우심을 청하며 한 마음으로 기도합시다. 세상 역사를 주도하시는 주님께서 이 땅에 참된 평화를 내려주시기를 간청합시다.

아울러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북한 당국에도 호소합니다. 북한 동포들도 하느님을 믿고 예배할 수 있는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를 허용하고 이를 위해 지속적으로 봉사할 수 있는 가톨릭 사제의 상주 허락을 호소합니다. 그리고 지역교회의 목자인 주교가 방문하여 신자들을 만나고 성사를 집행할 수 있도록 획기적인 조처가 있기를 간절히 희망합니다. 이러한 결단과 조처는 북한이 국제 공동체의 일원으로 환영받고 성숙한 국제사회의 구성원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분단의 상처를 화해와 일치의 노력으로 치유하며 이 땅에 참된 평화를 이룩합시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위원장 강 우 일 주교



남북통일 기원미사

(다해) 마태 18,19-22 : 98/06/21

덥습니다. 이 더운 여름에 전쟁을 했다는 것이 이해가 안 갈 정도로 6.25전쟁은 지금 우리 생활과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듯 합니다. 심지어는 우리 민족의 재일치와 국토 통일이 경제적인 부담이 아주 많으므로 그냥 떨어져서 사는 것이 더 낳겠다고 말할 정도로 우리는 북쪽 지방의 식구들과 멀리 떨어져서 아주 남 같이 지내고 있습니다. 남과 북이 하나로 합쳐서 사는 것보다 떨어져 사는 것이 도움이 되는 사람들은 통일 비용을 운운하며 백성들에게 부담을 주어 백성들로 하여금 우리 민족이 다시 합쳐지는 것을 꺼려하도록 유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남쪽 지방의 사람들이 더 잘산다는 식으로 자기 자랑만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실상 우리가 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어떤 사람들은 순진하고 어리석다고 말할 지 모르지만 우리가 원하는 것은 아주 작은 것입니다. 우리는 통일 조국을 만들어 세계를 제패하려고 하거나 자본주의가 공산 계획경제보다 났다는 것을 자랑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소박합니다. "남쪽에 사는 우리가 북쪽에 사는 친지들에게 가고 싶을 때 가고 만나고 싶을 때 만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가서 함께 만나고, 같이 밥도 먹고, 같이 술도 마시면서 어울리는 것. 더 나아가서 함께 일하고 함께 살 수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내가 남을 이용하려고 하고 지배하려고 하면 누가 나에게 응해주겠습니까?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이 되어주려고 해도 반갑게 맞이하기가 쉽지 않은데, 더군다나 내 밑에 와서 살라고 하면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오히려 전쟁과 분단만이 고착되고 말겠지요.

화해는 서로 같은 마음과 같은 생각을 갖게 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화해는 사랑의 한 표현입니다. 그러므로 화해는 서로가 서로의 처지와 서로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고 인정해 줌으로써 시작됩니다. 우선 내가 너에게 '내 말을 듣고, 내가 하자는 대로해라.'하고 싶은 욕심을 버리고 그 욕심을 품는 나를 용서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가 나에게 그런 욕심을 부릴 때 그를 너그러이 용서함으로써 시작되는 것이 화해가 아닙니까?

"너희 중의 두 사람이 이 세상에서 마음을 모아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는 무슨 일이든 다 들어주실 것이다."(마태 18,19)하신 주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기도합시다. 우리가 화해와 용서의 은총을 입을 수 있도록. 그래서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를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마태 18,22)합시다. 이렇게 화해를 이루고 나서 서로가 함께 서로에게 좋은 일을 모색해 나감으로써 일치의 문을 열 수 있겠습니다.



남북 통일 기원미사

(나해) 마태 18,19-22 : 97/06/22

지금 우리는 분단된 조국, 분열된 민족으로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조국은 우리의 뜻과 필요에 의해 분단된 것이 아니라, 1950년대의 국제 정세와 깊은 연관관계가 있습니다. 그때는 2차대전이후 동서의 냉전체제와 그에 따른 반공(무력) 이데올로기로, 소련을 중심으로한 동유럽의 공산주의와 미국을 중심으로한 서양의 자본주의가 서로를 적으로 삼고, 서로의 영역을 상대에게 질세라 확장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세력확장의 물결이 부딪힌 것이 우리의 한 반도였습니다. 다시 말해 6.25전쟁 종결이후 휴전선이 생기기도 전에 이미 북위 38도선을 기준으로 강대국들에 의해 한반도는 남과 북으로 나뉘어지도록 결정되었습니다. 우리 민족은 그러한 세력들의 대리전쟁을 치른 셈이죠. 물론 대리전쟁이라 하더라도 그 대리전쟁을 치른 것은 우립니다. 누가 대신시킨 것이 아니죠. 남 북의 소수 정치가들이 세계의 양대 세력을 등에 업고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고 남을 지배하려 했으니까요.

그런데 이것은 과거의 지나가 버린 사건만은 아닙니다. 오늘 날에도 우리는 우리에게 이익이 되는 것을 받아들이고 실생활에 적용하는 데 있어, 우리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것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내가 애써서 소개하고 적용하여 모두 잘 살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나의 지위를 향상시키고자 하거나 나에게 도움이 되도록 이용하고자 하는 유혹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결과는 바로 분열인데 말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 중에 두 사람이 이 세상에서 마음을 모아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는 무슨 일이든 다 들어주실 것이다."(마태 18,19) 우리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하고 위하고 아낀다면 우리는 다시 우리 민족의 일치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단 두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20절) 그리고 그 일치를 이루기 위해 주님께서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여라."(22절)고 하신 대로 용서하여 한 마음이 되도록 합시다. 특별히 요즘 북한은 아주 어렵게 살고 있답니다. 우리 모두 불쌍한 마음을 가지고 연민을 정을 바쳐 도우며 일치를 향한 지속적인 사랑을 실천하기로 합시다. 그리고 '북한의 굶주림 해결을 위한 2,000만단 묵주기도 바치기 운동'에도 적극 참여합시다.



E-mail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