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성탄 대축일 서울대교구장 성탄 메시지

“어둠 속을 걷던 백성이 큰 빛을 봅니다.

암흑의 땅에 사는 이들에게 빛이 비칩니다.”(이사 9,1)

(가해) 마태 11,2-11; 16/12/11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절망의 어둠 속에 희망의 빛으로 오신 구세주의 탄생을 기리는 예수 성탄 대축일을 맞이하였습니다. 성탄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이 세상에 오신 구세주의 은총이 여러분과 온 세상에 충만하기를 기원합니다. 특별히 북녘의 우리 형제자매들, 고통 중에 신음하는 이들, 버림받고 소외된 이들에게 구세주의 자비와 사랑이 충만하기를 빕니다.

올해도 예수님께서는 아기의 모습으로 인간과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이 아기를 세상을 밝히는 빛이요, 절망과 고통을 극복하여 구원으로 이끌어 주는 구세주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구세주께서 스스로 자신을 낮추어 사람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셨다는 것은 큰 희망을 선사합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은 외국과의 전쟁에서 참혹한 피해를 입고 침략자들에게 짓눌려 완전히 희망을 잃고 살면서도 구세주께서 오시기를 간절히 기다렸습니다. 이때 이사야 예언자는 “어둠 속을 걷던 백성이 큰 빛을 봅니다. 암흑의 땅에 사는 이들에게 빛이 비칩니다”(이사 9,1)라며 희망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그 빛의 힘으로 변화된 사람들은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갑니다. 인간의 욕심이 아닌 하느님의 뜻, 사랑과 자비를 중심으로 살게 되면 모든 것이 정의롭게 이루어져 평화로운 왕국이 될 것입니다.(이사 11,4-8 참조)

그런데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점점 더 물질만능주의와 이기주의에 빠져 피폐해져 가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흐름도 자국의 이익만을 챙기려는 극단적 이기주의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런 와중에 현재 우리나라는 정치 지도자들의 문제로 심각한 정치적 불안정의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경제 상황도 점점 더 나빠져 서민들의 고통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습니다. 많은 국민들이 정의를 세우려는 노력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적 불안정과 혼란이 장기화되는 것을 크게 염려하는 실정입니다.

정치가들은 공동선 추구를 통한 국민의 행복을 위해 존재합니다. 현재의 혼란스럽고 어지러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정치인들이 당리당략과 개인의 욕심을 뒤로 하고 공동선을 먼저 생각하면서 국민들을 안심시키고 국민들을 마음으로부터 섬기는 본래의 직분에 충실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고 국정을 책임진 지도자들이 자신에게 부과된 엄중한 책임을 자각하여 하루빨리 정국 안정을 확립하고 국민들의 안정과 행복을 추구하는 데 앞장서기를 부탁드립니다.

아울러 이번의 현실이 우리나라의 정치와 모든 분야가 한 단계 발전하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이사이의 그루터기에서 햇순이 돋아나고 그 뿌리에서 새싹이 움트게’(이사 11,1)하시는 하느님은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만들어주시는 분입니다. 그 하느님께서 희망의 빛으로 당신의 외아들 구세주를 우리에게 보내주셨습니다. 구세주께서 우리나라가 새롭게 변화될 수 있도록 은총으로 돌보아 주시기를 간청합시다. 특히 주님의 은총이 정치인들과 함께 하시어 그들이 지혜와 바른 선택, 용기와 절제의 덕을 지녀 우리나라를 바르게 이끌어나가도록 열심히 기도합시다.

우리 교회 역시 겸손하게 자신을 되돌아보는 자성의 자세를 지녀야 합니다. 우리 자신이 이 성탄의 정신에 맞게 살아가고 있는지 반성해야 합니다. 어둠 속을 헤매는 사람들에게 희망의 빛을 비추어 줄 사람은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우리 교회가 스스로 성탄의 정신대로 사랑과 희생, 자비와 정의의 행동을 보여줄 때 우리 교회는 참으로 한국 사회 안에 구세주께서 살아계심을 보여줄 수 있을 것입니다. 사회가 힘들고 어려울수록 사람들은 교회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우리는 겨레와 사회를 위한 사랑의 봉사자들로서, 성탄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면서 성탄의 신비를 살아야 할 때입니다. 교회의 존재 이유는 구세주의 세상 구원사업에 협력하는 데에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들레헴 마구간에 태어나셨을 때 양을 치던 목자들은 천사의 전갈을 듣고 아기 예수님을 찾아가 경배하였습니다.(루카 2,15-20 참조) 우리도 그 목자들처럼 세상에 오신 아기 예수님께 다가가 경배드립시다. 희망의 빛으로 오신 그분을 우리 마음 안에 받아들여서 혼란과 절망을 털어버리고 힘차게 일어섭시다. 그리고 그 빛 안에서 신앙인답게 살면서 그리스도의 빛을 세상에 비출 수 있도록 작은 빛이 되도록 노력합시다.

우리 모두 늘 “주님의 빛 속에 걸어갑시다.”(이사 2,5) 그 빛의 힘으로 우리는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새롭게 태어나 세상을 비추는 또 다른 빛이 될 수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아기 예수님의 성탄을 축하드립니다. 주님의 무한한 사랑과 자비가 이 시대 모든 사람들과, 특히 고통받고 소외된 이들과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

2016년 12월 25일

천주교 서울대교구

교구장 염수정 추기경




예수 성탄 대축일 서울대교구장 성탄 메시지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루카 2,14)

(다해) 루카 2,1-14; 15/12/25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아기 예수님의 거룩한 탄생의 기쁨과 축복이 이 땅의 모든 이들에게, 특히 북녘의 동포들과 세상 곳곳에서 고통과 슬픔에 빠져있는 이들에게 함께하시기를 빕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실 때 모든 피조물 가운데서 인간을 당신의 모상으로 창조하시고(창세 1,26 참조) 사랑으로 돌보아주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하느님의 뜻을 거역하여 죄를 지었고 그 결과 죽음의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죄와 죽음의 질곡에 있는 인간을 구원하시고자 당신 아들을 보내주셨습니다. “당신의 외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주시어 우리는 그분을 통해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1요한 4,9 참조) 그래서 예수님의 성탄은 우리 모두에게 큰 위로와 기쁨이 됩니다.

이 밤에 탄생하신 구세주 예수님은 죽음과 고통, 불안과 두려움을 이기는 평화와 구원을 주십니다. 이사야가 예언한 대로 구세주는 평화의 왕국을 이루기 위해 오신 분입니다.(이사 11,1-16 참조) “우리의 평화”(에페 2,14)이신 주님의 탄생으로 온 세상에 평화가 실현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합시다.

평화는 하느님의 축복이며 은총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평화와는 요원한 상태입니다. 세계 곳곳에서는 여전히 무자비한 테러로 인해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되고, 많은 이들은 전쟁과 폭정을 피해 세상을 떠돌며 극심한 불안과 고통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생명 경시와 환경 파괴, 물질만능주의와 특히 집단 이기주의 등은 우리가 사는 세상을 더욱 병들게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주님께서 주시는 참된 평화를 누릴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주님의 뜻에 응답하여 실천하는 자세를 지녀야 합니다.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니고 정의의 실현이며 무엇보다 다른 사람의 품위를 존중하려는 확고한 의지와 형제애를 실천하는 사랑의 결실입니다.

첫 번째로 진정한 평화의 실현을 위해 우리 자신의 회심이 필요합니다. 평화를 원한다면 회심을 통해 하느님과 화해하고 올바른 관계를 회복해야 합니다. 옛 인간을 그 행실과 함께 벗어 버리고, 새 인간을 입어 자기를 창조하신 분의 모상에 따라 끊임없이 새로워져야 합니다.(콜로 3,9-10 참조) ‘네 이웃을 네 자신처럼 사랑하라’(마태 22,39)는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자신의 생명과 인격을 소중히 여기면서 타인의 생명과 인격도 존중해야 합니다.

두 번째로 진정한 평화의 실현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이웃과의 화합입니다. 예수님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라.’(루카 6,36 참조)고 명하십니다. 우리는 하느님으로부터 용서와 자비를 입은 사람들로서 어려운 이들에게 자비를 베풀고, 잘못한 이들을 용서하고 용서를 청함으로써 이웃과 화합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선으로 악을 이기는 길이며 평화를 이룩하는 길입니다. 선의를 지닌 사람들은 악을 물리치기 위한 싸움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이 싸움은 오직 사랑을 무기로 삼을 때만 효과적으로 이끌 수 있으며 사랑이 승리하는 곳에는 평화가 가득할 것입니다. 사랑은 역사의 흐름이 미움과 증오를 넘어서 선과 평화를 향해 갈 수 있도록 인도하는 유일한 힘입니다.

세 번째로 진정한 평화를 위해서 필요한 것은 자연과 공존하며 환경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이웃과 후손에게도 큰 피해를 주는 자연환경의 파괴는 집단 이기주의와 이기심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건강한 환경 속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공존의 노력은 인류가 평화로운 세상을 건설하는 데에 없어서는 안 되는 요소입니다. 이사야 예언자가 노래한“늑대가 새끼 양과 함께 살고,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지내며 송아지가 새끼 사자와 더불어 살쪄 가는”(이사 11,6 참조) 바로 그런 세상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진정한 평화의 추구는 어느 한 민족이나 정치 공동체만의 문제가 아니라 온 인류 전체에 영향을 주는 기후나 식량, 자연환경 등 공동선을 위해 함께 고민하고 풀어야 할 과제입니다.

진정한 평화로 가는 길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기에 끈질긴 인내가 필요합니다. 이 과정에는 우리 신앙인들의 책임과 의무가 막중합니다. 우리 신앙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참된 회심을 바탕으로 자기 자신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 자연과의 관계를 하느님의 뜻 안에서 다시 올바로 세워야 할 것입니다. 정치 지도자들은 평화를 갈망하는 국민의 열망에 귀 기울여서 당리당략을 넘어 참된 평화와 정의의 실현을 정치 활동과 정책 결정의 중심으로 삼기를 촉구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아무리 죄악과 증오, 폭력이 기승을 부린다고 해도,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화해와 용서의 실천을 통해 한가족이 되는 길을 가야 합니다. 그것만이 인류의 생존을 가능하게 하고 미래를 열어주기 때문입니다.

구유에 누워계신 아기 예수님을 바라보고 그분께 의탁하면서 모든 두려움을 이겨내고 평화의 길로 나아갑시다. 성탄절을 맞이하여, 특별히 북녘의 동포들에게도 하느님의 은총과 축복을 청하며 분단의 상처와 아픔을 극복하고 한반도에 화해와 평화를 이루도록 기원합니다. 또한 북한 교회의 한 성당에 마음의 신자가 되어 그 성당의 회복을 위해서 매일 기억하는 기도운동에도 적극적으로 협조해주시기 바랍니다. 어두운 세상에 평화의 빛으로 오시는 아기 예수님의 성탄을 다시 한 번 축하드립니다.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성탄의 기쁨과 은총이 충만하시기를 기원합니다.

2015년 12월 25일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

예수 성탄 대축일 한국인에게 보낸 프란치스코 교황 메시지

루카 2,1-14; 14/12/25

사랑하는 한국의 형제 자매 여러분!

지난 8월 한국을 방문했던 것에 대한 즐거움과 감사함을 되새기면서 성탄절을 맞아 한국 국민들에게 안부를 전하게 돼 기쁘기 그지 없습니다. 순교자들에 대한 시복과 젊은 신자들과의 만남, 그리고 한국 방문 시의 다른 순간들이 기억 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베들레햄에서 탄생하신 아기 예수의 빛이 전 세계를 비추는 것처럼 한국민들의 가슴 속과 여러분의 가정과 사회를 비춰줄 것을 기도드립니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예수께서는 다시 한번 당신께로 인도하고 계십니다. 예수께서는 선(善)이시며 지선(至善)이십니다. 인류에게 진정한 행복을 주실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의 존재뿐입니다. 예수께서 항상 삶을 새롭고 아름답게 만드실 수 있기 때문에 예수님이 없다면 어떤 것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친애하는 친구 여러분! 저를 위해 기도해주실 것을 부탁드리며 평화와 성스러운 크리스마스가 여러분과 함께 하기를 마음 속으로부터 기도드립니다.

2015년 12월 24일

성탄 대축일에

바티칸에서 교황 프란치스코



예수 성탄 대축일 서울대교구장 성탄 메시지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요한 1,14)

(나해) 루카 2,1-14; 14/12/25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아기 예수님의 기쁜 성탄을 맞이하여 여러분과 온 세상에 하느님의 은총과 평화가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외아들 예수님을 이 세상의 구세주로 보내시어 우리와 함께 살게 하셨습니다.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나약하고 부족한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성탄은 가장 약하고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하시고 그들을 구원하시겠다는 하느님 사랑의 신비가 담겨 있습니다. 이처럼 주님의 성탄은 우리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을 드러내며, 모든 사람들을 예외 없이 영원한 생명으로 초대하시는 기쁜 사건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올해는 특별히 국민 전체가 뜻밖의 참사로 인해 어려움과 슬픔을 많이 겪었던 한 해였습니다. 이런 비극이 다시는 재발되지 않도록 정부 당국과 관계자들, 그리고 모든 국민이 함께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상처받은 이들의 슬픔을 위로해 주시고 그들의 눈물을 닦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이번에 참사를 겪으면서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인간의 생명이나 가치보다 세속의 물질적 가치만을 추구하고 있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물질만능주의에 젖어 있는 것은 아닌지 성찰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우리가 겪은 슬픔과 고통 안에서 지혜롭게 하느님의 뜻을 찾고, 함께 어려움을 극복할 힘을 얻어야 하겠습니다.

지난 8월,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우리나라에 오셔서 슬픔과 고통 중에 있는 많은 이들을 위로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교황님께서는 ‘교회는 기억과 희망의 수호자, 선조들로부터 받은 신앙의 불꽃을 전해주는 하나의 가족’이라고 하시며, 과거 순교자들의 기억은 현재에서 새로운 증언이 되고, 또 미래의 희망이 되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도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방문을 통해 기쁨과 사랑 그리고 설렘과 새로남에 대해 느꼈고, 특별히 자신을 낮추는 희생적 사랑을 기억하게 됩니다.

무엇보다 4박 5일간의 방한 기간 중 교황님이 보여주신 말씀과 행동을 통해 약하고 가난한, 지금 곤경 중에 있는 이들을 향한 예수 그리스도의 위로와 사랑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교황님은 지난 11월30일 ‘봉헌생활의 해’를 시작하면서 ‘증거하는 삶을 통해 온 세상을 복음으로 깨우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복음적 권고를 서원하고 살아가는 수도자들과 사제품을 받은 사제들뿐만 아니라 세례로 축성을 받은 모든 신자들이 봉헌생활의 해를 통해 하느님의 부르심에 더 성실하게 응답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맞이한 예수님의 거룩한 성탄은 신자들의 봉헌생활 안에서 더욱 깊은 의미를 갖게 될 것입니다. 봉헌생활의 해를 지내는 목적은 과거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지니고, 열정적으로 현재를 살며, 희망의 미래를 지니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따르는 우리 신앙인들은 신앙의 기쁨을 보여주고 세상의 어둠을 밝게 비추는 증거의 빛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비록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 성탄을 맞이하지만, 그런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빛이 되어 오신 주님을 향해 용기 있게 나아가며 사랑을 실천합시다. 그리스도 십자가의 힘을 믿고 모든 이를 화해시키는 은총을 기쁘게 받아들이며, 또한 그 은총을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눕시다. 예수님께서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친구가 되셨던 것처럼, 우리도 그들의 희망과 위로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아기 예수님의 모습을 바라보며 서로 나누고 사랑하며, 섬기고 용서하는 삶을 살 때, 바로 그곳에 구세주께서 오시어 우리와 함께 하실 것입니다. 특별히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따뜻한 은총과 사랑이 함께 하시기를 청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성탄의 기쁨이 우리나라 방방곡곡에 전달되기를 기원합니다.

아울러 남북으로 갈라져 고통받고 있는 우리 민족이 믿음과 화해를 바탕으로 하루빨리 함께 민족의 미래를 열어나갈 수 있게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2014년 예수 성탄 대축일에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안드레아 추기경



예수 성탄 대축일 서울대교구장 성탄 메시지

“어둠 속을 걷던 백성이 큰 빛을 봅니다.” (이사 9,1)

13/12/25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어두운 세상에 구원의 빛으로 오시는 아기 예수님의 성탄을 맞이하여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하느님의 축복이 충만하시기를 기원합니다. 특별히 소외되고 가난하고 병든 이들과 북녘의 동포들에게 성탄의 사랑과 축복이 충만하게 내리기를 기원합니다. 또한 올 한 해 동안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선의의 뜻을 가지고 가족들과 사회를 위해 열심히 달려온 모든 분들에게 격려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하느님은 외아들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시어 무한하신 하느님의 사랑을 드러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이천여 년 전 유다 지방 베들레헴이라고 불리는 작고 보잘 것 없는 한 시골마을에서 탄생하셨습니다. 나자렛에서 온 마리아와 요셉은 여관을 전전하다 빈 방이 없어 결국 허름한 마구간에서 아이를 낳아야 했고, 아기 예수님을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뉘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가장 비천하고 가난한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루카 2,1-7) 이것은 주님께서 사람들 가운데서도 가장 약하고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을 구원하시고 그들과 함께 하시겠다는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성탄은 바로 생명의 빛이신 주님께서 우리 인간 가운데 임하셨다는 것을 기리는 것입니다. 주님은 방황하고 헤매는 우리들을 어둠에서 당신의 놀라운 빛 가운데로 이끌어주십니다. (1베드 2,9)

사랑과 평화, 생명과 구원을 전하는 아기예수님의 탄생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세상은 무신론적인 물질주의가 극성하고, 세상곳곳에는 분쟁과 분열이 줄어들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도 대화와 타협보다는 대립과 이기적인 자기주장만을 일관하는 모습이 이어져 안타깝습니다. 각박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자살률과 이혼율은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어 적지 않은 가정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또한 청소년들은 늘 경쟁과 시험에 내몰려 힘들어하고, 많은 청년들은 취업의 어려움으로 불안한 미래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동안 우리의 관심에서 멀어진 이웃들이 있습니다. 추운 거리의 노숙자와 이곳저곳에서 차별을 겪는 장애인, 외국인 노동자와 도시 빈민들이 여전히 고통과 불안 속에 인간의 존엄성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어둡고 답답한 세상에 빛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주님께서 가장 가난하고 비천한 인간의 모습으로 태어나신 것이 과연 우리 시대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깊이 묵상해야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랑의 주님을 닮아 좀 더 겸손하고 낮은 자세로 이 세상의 고통을 품을 수 있길 바랍니다. 우리는 이 세상이 안고 있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 인간적이고 세속적인 방법에만 의존하지 않아야 합니다. 해결책은 하느님이 손수 인간이 되셔서 인간의 고통을 경험하셨던 성탄의 신비 안에 있습니다. 주님 모습을 닮아 우리도 겸손하게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마음을 이해하고 존중하려고 노력할 때, 우리 사회는 화합과 소통, 통합과 공존의 길로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사회에 대한 우리 교회의 책임도 결코 적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교회가 외적인 발전과 사회적 영향력을 가진다 할지라도 내적으로 사랑이 없다면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1코린 13,2).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Evangelii Gaudium)에서 “가난한 이를 위한 교회가 되기를 바란다.”라고 하시며 가난한 이들의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한, 이 세상의 문제들에 대한 어떠한 해결책도 찾지 못할 것이라고 단언하셨습니다. 교황님은 “어떠한 교회 공동체든 ‘가난한 이들을 잊어도 그만’이라고 믿는다면 붕괴의 위기를 자초하는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하셨습니다. 우리 교회도 이 말씀을 되새겨보아야 합니다. 가난하고 상처받은 이들을 치유하신 예수님의 모습에 좀 더 가까워지기 위해 우리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의 사랑으로써 소외된 이웃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보여줍시다.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사랑과 나눔을 실천해야 합니다. 이 어두운 세상에 구원의 빛을 보여줍시다. 우리들은 어떤 경우에도 두려움이나 좌절이 없이 신앙과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이웃 사랑이라는 밝은 빛을 어두운 세상에 비추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성탄의 의미를 기억할 뿐 아니라 몸으로 성탄의 의미를 살아야 할 것입니다. 서로 나누고 사랑하며 섬기고 용서하는 삶을 살 때, 바로 그 삶 속에서 아기 예수님께서 새롭게 태어날 것이며 예수님의 성탄은 이 시간, 우리의 삶속에서 구체적인 의미를 갖게 될 것입니다.

아기 예수님의 성탄을 통해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에 힘입어 우리 모두가 세상의 어두움을 밝히는 빛의 자녀로 다시 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성탄을 함께 축하하며 하느님의 끝없는 은총과 평화, 그 생명의 빛이 우리와 온 세상에 충만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2013년 예수성탄대축일

천주교 서울대교구

교구장 염수정 대주교



예수 성탄 대축일 서울대교구장 성탄 메시지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요한 1,14)

12/12/25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혼란과 어둠 속에서 손꼽아 기다리던 말씀이신 구세주 예수님께서 오늘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 기쁜 성탄 대축일을 맞아 주님의 사랑과 평화가 온 누리에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특별히 소외되고 가난하고 병든 이들,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모든 이들, 또한 북녘 동포들에게도 주님 성탄의 은총이 충만히 내리기를 기원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성탄을 맞아 하느님께서 참 사람이 되신 강생의 신비를 더욱 깊이 묵상하게 됩니다. 요한복음의 저자는 우리에게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요한 1,14)는 놀라운 신비를 알려줍니다. 구세주 예수님께서는 죄 많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우리와 같은 사람이 되신 것입니다.(필립 2,7 참조) ‘하느님께서 인간이 되셨다’는 것은 인간의 지성으로는 이해할 수도 상상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탄의 신비입니다.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을 낮추시고 비우셔서 사람이 되신 것은 인간에 대한 절대적이고 조건 없는 사랑 때문입니다.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은 세상의 고통과 비애를 차마 보고만 계시지 않고, 인간의 비참을 몸소 함께 나누시려고 말씀이신 예수님을 보내주셨습니다. 이처럼 예수 성탄은 모든 사람에게 기쁜 소식이지만 특히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 병들고 소외된 사람들에게는 더 큰 기쁨이 됩니다. 예수님의 탄생으로 우리는 죄와 죽음을 극복할 영원한 생명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또한 하느님의 모상으로 빚어진 인간 생명은 하느님으로부터 온 귀한 것이며 이보다 더 소중한 가치는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 교회는 교황 베네딕토 16세께서 선포하신 ‘신앙의 해’를 지내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넘치는 사랑으로 마치 친구를 대하듯이 인간에게 말씀하시고 인간과 사귀시며, 당신과 친교를 이루도록 인간을 부르시고 받아들이십니다. 이러한 하느님의 초대에 응답하는 것이 바로 신앙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신앙도 계속해서 성장하지 않으면 허약해지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 신앙인들은 그리스도를 삶의 중심에 모시고, 신앙의 기초를 굳건히 하고 말씀으로 꾸준히 성장해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은 하느님의 말씀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는 “복음 안에서 하느님의 의로움이 믿음에서 믿음으로 계시되고, 의로운 이는 믿음으로 살 것”(로마 1,17)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느님의 말씀은 교회에서는 지탱과 힘이 되고 신자들에게는 신앙의 힘, 마음의 양식, 영신생활의 마르지 않는 샘이 되는 힘과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계시헌장 21항) 또한 우리 신앙인들은 ‘말씀이 사람이 되신 주님’을 따라 사랑을 실천하여 성령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실천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기 때문입니다.(야고 2,17) 우리 신앙인들이 주님의 말씀을 귀담아듣고 이 말씀을 우리의 삶에서 사랑으로 실천한다면 구세주는 우리 안에 오실 것입니다. 그러면 세상은 어두움이 사라지고 그리스도의 충만한 빛으로 가득찰 것입니다.

지난 수개월 동안 온 국민의 관심을 모았던 대통령선거를 통해 앞으로 5년간 우리나라를 이끌어갈 새 대통령이 선출됐습니다. 새로운 대통령과 지도자들은 말씀이 사람이 되신 성탄의 정신을 깊이 깨달아 국민과의 약속을 그대로 실천해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국민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관용과 화해로 모든 사람들이 어우러져 아름답게 공존하는 사회가 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기 바랍니다. 사회 지도자들뿐만 아니라 우리도 각자의 자리에서 인간과 생명 중심의 사회가 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성탄을 기뻐하며 하느님의 은총과 평화, 그 생명의 빛이 우리와 온 세상에 충만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2012년 예수 성탄 대축일에

천주교 서울대교구 교구장

염수정 대주교



예수 성탄 대축일 밤미사

루카 2,1-14; 2012/12/24

한 해를 거의 마무리하는 요즈음 나라 안팎으로 벌어지는 일들을 바라볼라치면 편안하지 않고,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상황조차 그렇게 녹녹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부딪히며 살아나가는 이 세상은 어떤 시각으로 보면 마치 바위에 계란이라도 던지는 것처럼 무모해 보이고 비집고 들어갈 가능성이 잘 보이지 않지만, 그러나 또 다른 시각으로 볼라치면 자그마한 여지도 여전히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 삶 자체가 쉽지 않은 것처럼 우리가 바라보고 달려나갈 여지도 그냥 그렇데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피 튀기게 싸워나가야 할 정도의 실낱 같은 것이기에 다소 힘에 부치고 엄두가 안 나는 것이 사실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러한 처지 속에서 답답해하고 스스로는 어쩌지 못해 무기력감을 느끼고 있는 우리에게 힘을 가져다 주는 한 줄기 희망으로 오셨습니다.

우리가 지금 구유를 바라보고 있듯이 예수님은 연약하고 누군가가 도와주어야만 하는 연약한 아기로 태어나 초라한 구유 위에 자리하고 계시지만, 신앙의 눈으로 바라보는 우리에겐 오히려 무한한 가능성으로, 하느님과 함께하는 축복의 원천이요, 기적의 표본으로, 새로운 세상을 열어갈 구원의 표징으로 보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펼쳐 보여주시는 구원의 길은 세상 사람들이 꿈꾸고 설계하는 새로운 세상과는 다릅니다. 예수님이 설계하시고 이 땅에 이루시는 하느님 나라는 너를 살리기 위해 나를 죽임으로써 얻게 되는 용서와 평화의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다른 분들의 희생과 노고 덕분에 살아가고 있음을 겸허히 고백하고 감사드립니다. 오늘 성탄을 맞아 우리도 다른 이들의 생존과 구원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시는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전세계 곳곳에서 주님의 뒤를 이어 구원을 선포하고 이루는 주님 사도들의 대열에 들어서기를 다짐하고 우리 몸으로 실현하기로 합시다.



예수 성탄 대축일 낮미사 서울대교구장 담화문

“나는 그들과 함께 살며 그들 가운데에서 거닐리라.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2코린 6,16)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오늘 예수님의 성탄을 맞이했습니다.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하느님의 은총과 평화가 충만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예수님의 탄생이 특별히 버림받은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 가난하고, 병들고 약한 사람들에게 더 큰 희망과 기쁨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하느님은 외아들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시어 모든 인류에게 닫혀 있던 구원의 문을 열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살기 위해 가장 낮고 비천한 모습으로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사람들 가운데서도 가장 약하고 보잘것없는 사람들과 함께하신다는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처럼 주님의 성탄은 우리 인간에 대한 무한한 하느님 사랑을 보여주시면서 모든 사람을 구원의 길로 이끌어 주십니다.

우리가 성탄을 맞이하며 가장 깊이 묵상해야 할 부분은 “인류 공동체”라는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어떤 특정한 사람들이 아니라 만민의 구원을 위해서 오셨기 때문입니다. 현대는 온 인류가 서로 영향을 깊이 주고받으며 살 수밖에 없는 시대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탄생을 맞이하여 온 인류가 하나라는 공동체 정신의 회복이야말로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올바른 삶의 자세입니다.

사람은 본질적으로 사회적 존재로 창조되었기에 우연히 서로 모여 사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하느님을 우리 자신과 다른 이들의 존재의 가장 깊은 원천으로 인식하고 하느님 앞에서 책임 있는 태도로 살아가고자 노력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우리가 한 공동체라는 것을 깊이 인식한다면 평화로운 인류 건설의 초석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또한, 세상에는 사람들로 구성된 여러 가지 형태의 공동체들이 있을 수 있지만 어떠한 사회 공동체도 그 주체와 목적이 인간이어야 합니다.(사목 헌장 25항) 왜냐하면 세상에는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된 인간보다 더 앞선 가치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떠합니까? 우리는 예전에 비해 비교도 하지 못할 정도의 산업화 혜택을 마음껏 누리고 있지만, 비인간화가 거리낌 없이 성행되는 개탄할 풍조에 휩쓸려 살면서 인간이 물질의 노예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물질적인 가치를 인생의 최고 가치로 인식하는 한 함께 사는 공동체 의식보다는 집단과 개인의 권리 주장, 집단적 이익 추구에 더 몰두하게 합니다. 이러한 배타적인 자세는 사회적 갈등을 더욱 심화시키고, 다양한 계층 간의 갈등을 가져오며 상호 간의 소통을 어렵게 합니다. 우리 공동체가 하나가 되기 위한 첫걸음은 무엇보다 먼저 다른 이들의 고통과 아픔을 진정으로 느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가 사랑의 공동체가 되도록 고통 받는 이웃을 외면하지 않고 어떠한 생명도 소외되거나 경시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다행히 우리 사회에 많은 사람이 자기 것을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누는 봉사와 기부, 나눔의 문화가 점점 더 확산되고 있는 것은 희망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거룩한 성탄을 맞이하여 우리 사회의 지도자들부터 공동체의 일치를 위해 막중한 책임과 의무를 절감하고 국민 전체를 위해 자신을 온전히 바치는 참 봉사자로 태어나기를 기원합니다. 또한, 오늘날과 같은 가치관이 혼란스런 시대일수록 교회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집니다. 교회는 단순한 전례나 신앙의 공동체일 뿐만 아니라 사랑의 공동체로서 세상의 빛이(마태 5,13-16) 되어야 하는 사명을 띠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빛이 된다는 것은 이 사회 안의 어두운 곳을 찾아서 어둠을 없애고 공동체가 함께 나가야 할 길을 열어 주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신앙인들도 우리 사회를 개인의 울타리를 넘어서서 모든 이가 사랑과 행복의 공동체로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해야 할 것입니다.

아기 예수님의 모습을 바라보며 세상의 모든 사람이 사랑 가득한 새로운 마음으로 태어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 성탄의 은총이 이 시대 모든 사람, 특히 가난하고 소외당한 사람들에게 충만하게 내리기를 다시 한 번 기원합니다.

2011년 12월 25일

성탄절을 맞이하여

천주교 서울대교구 교구장 정진석 추기경



예수 성탄 대축일 밤미사

루카 2,1-14; 11/12/24

언젠가 첫영성체 교리를 하면서 초등학교 3학년 어린이들에게, 예수님께서 왜 부잣집에 태어나지 않으시고 가난하게 태어나셨는지 아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한 여자 어린이가 대답했습니다. “가난한 이들의 심정을 이해하기 위해서입니다.” 초등학교 3학년 어린이가 그 정도의 답변을 할 수 있으리라고는 저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조금 당혹스러웠습니다

여러분, 주님께서는 우리처럼 밥을 먹어야 하고, 쉬어야 하고, 잠을 자야 하는 한계를 가진 유한존재로, 누군가가 돌봐주어야 하는 어린 아기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와 같은 인간 조건과 삶의 환경을 선택하여 오셨습니다. 주님은 오늘 가난하고 연약하게 태어나셨으면서도, 다른 이들에게 자신을 위해 살아달라고 요청하지 않으시고, 개인적으로도 죄를 짓지 않으시고, 자기 자신의 생을 위해 살지 않으시고, 주변의 어려운 이들을 위해 사셨고, 급기야는 우리들의 연약함과 부족함으로 지은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우리를 살리기 위해 주님의 생명을 바쳐주셨습니다.

우리를 구하시기 위해 어린 아기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신 주님을 바라보면서, 우리가 가정과 일가친척 그리고 직장과 단체 동료의 처지와 형편을 헤아려 보면서, 우리가 그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함께할 수 있을지 다짐해 봅시다.



예수 성탄 대축일 한국 천주교 이주사목위원회 위원장 담화문

05/12/25

교형 자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우선 성탄 축하와 함께 한국주교회의 이주사목위원장 임무를 새로 맡게 된 주교로서 인사를 드립니다. “하느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은총과 평화” (1코린 1,3) 가 여러분 한 분 한 분과 가정, 소속 공동체, 그리고 하시는 일에 풍성히 내리시기를 빕니다.

1. 이제 성탄은 거의 인류 보편적 축제가 되었습니다. 신자 비율이 0.5%도 채 안 되는 일본에서도 성탄은 모든 사람들의 축제가 되어 있어서, 어떤 사람은 “교회에서도 크리스마스를 지냅니까?” 하며 놀라더라는 웃지 못할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식의 문화적 행사나 축제로서의 성탄은 구세주이신 그리스도를 마음속 깊이 모셔들이는 일과는 거의 무관한 것임을 우리는 잘 압니다. 백화점이나 대중 집회장에서 먼저 일기 시작하는 그런 식의 성탄 축제 분위기를 보면서, 우리 신앙인은 2천년 전 베틀레헴 들판에서 일어났던 일이 지금도 그대로 계속되고 있는 듯한 느낌마저 갖게 됩니다.

“아 당신께서 하늘을 찢고 내려오신다면!” (이사 63,19) ‘이스라엘 백성’은 이토록 간절한 심정으로 수백년 동안 메시아를 기다렸지만, 실제로 그분이 오셨을 때 그분을 알아본 사람은 추운 겨울 밤 들판에서 양떼를 지키던 목자들뿐이었던 것입니다.

2. ‘새로운 이스라엘 백성’인 우리 신앙인들이 옛날 그리스도께서 처음 오셨을 때의 이런 실수를 거울로 삼아, 그분께서 앞으로 다시 오실 때, 어떻게 하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제대로 맞이할 것인가? 우리에게는 이것이 생명과 죽음을 가르는 문제입니다. “영원한 생명은 곧 참되시고 오직 한 분이신 하느님 아버지를 알고 또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요한 17,3) 예수님 스스로 분명히 하신 이 말씀 그대로, 그분을 제대로 알아보고 맞아들이느냐 아니냐에 우리의 영원한 생명이 달렸기 때문에, 교회는 주님의 두 번째 오심을 주로 생각하며, 해마다 대림절을 거쳐서 성탄 대축일을 준비하게 합니다.

“어떻게 하면?”

이에 대해서 우리는 메시아께서 첫 번째 오셨을 때 그분을 알아보고 맞이하는 데 성공했던 극소수의 사람들에게서 배워야 하겠습니다. 이에 관해 루카 복음사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 근방 들에는 목자들이 밤을 새워가며 양떼를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 주님의 영광의 빛이 그들에게 두루 비치면서 주님의 천사가 나타났다. 목자들이 겁에 질려 떠는 것을 보고 천사는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너희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러 왔다. 모든 백성들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이다. 오늘 밤 너희의 구세주께서 다윗의 고을에 나셨다. 그분은 바로 주님이신 그리스도이시다. 너희는 한 갓난아이가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것을 보게 될 터인데 그것이 바로 그분을 알아보는 표이다.' 하고 말하였다.” (루카 2,8-12)

“밤을 세워가며 양떼를 지키고 있었다.” 목자들이 메시아를 맞이하는 데 성공했던 비결은 여기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잠을 자지 않고 깨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영광의 빛이 두루 비칠 때, 그들은 그것을 바로 알아보고 천사들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잠들어 눈이 닫혀 있었다면 주님의 영광의 빛이 아무리 두루 비쳐와도 그것을 감지하지 못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난 대림 첫 주일에 그리스도 바로 그분께서 당신의 두 번째 오심에 우리가 어떻게 대비할 것인지를 가르쳐 주시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너희는 조심하고 깨어 지켜라. 그 때가 언제 올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먼 길을 떠나는 사람의 경우와 같다. 그는 집을 떠나면서 종들에게 권한을 주어 각자에게 할 일을 맡기고, 문지기에는 깨어 있으라고 분부한다. 그러니 깨어 있어라. 집주인이 언제 돌아올지, 저녁일지, 한밤중일지, 닭이 울 때일지, 새벽일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 주인이 갑자기 돌아와서 너희가 잠자는 것을 보는 일이 없게 하여라.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은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다. 깨어 있어라.” (마르 13,33-37) 주님께서 거듭해서 “깨어있어라!”하고 당부하십니다.

3. 깨어있으면 어떻게 되는가?

의식이 참으로 깨어있고 눈이 활짝 뜨여있으면, 우리는 먼 앞날까지 기다릴 것도 없이, 지금 당장 주변에서 그리스도를 알아볼 수 있는 표지들이 널려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너희는 한 갓난아이가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있는 것을 보게 될 터인데 그것이 바로 그분을 알아보는 표이다.” 옛날 목자들에게 그리스도를 알아볼 수 있는 표로 천사들이 알려준 것이 이것이었다면, 그리스도 자신이 우리에게 주시는 표는 훨씬 더 구체적이고 다양합니다.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잡수실 것을 드렸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실 것을 드렸습니까? 또 언제 주님께서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따뜻이 맞아 들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입을 것을 드렸으며, 언제 주님께서 병드셨거나 감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저희가 찾아가 뵈었습니까?” 그리스도께서 두 번째 오셔서 우리가 그분 앞에 설 때 이렇게 물으면, 그분의 대답은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할 것입니다. “분명히 말한다.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마태 25,37-40)

우리가 깨어 눈을 정확히 뜨고 귀를 잘 기울이고 있으며, 2천 년 전 베틀레헴의 한 여관에서만이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도 오셔서 문을 두드리시는 주님의 소리를 듣게 될 것입니다. “들어라. 내가 문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 집에 들어가서 그와 함께 먹고, 그도 나와 함께 먹게 될 것이다.” (묵시 3,20)

주님의 이름으로 모인 곳 (마태 18,19), 말씀-성경 (요한 12,1; 루카 24,32), 성체성사 (요한 6,53-57), 나의 손길이 필요한 이웃 (마태 25,31-46). 이 모두는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주님을 알아볼 수 있는 표로서 항상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거기에서 그분을 제대로 알아보고 우리의 정신 깊숙이 받아 모시면 우리의 삶은 그 순간부터 하느님과 함께하는 잔치, 영원한 축제가 될 것입니다. 천국은 죽은 다음에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그 맛을 보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교형자매 여러분, 지금 뿐 아니라, 다가오는 새해 내내 여러분의 삶 속에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시고 함께 머무시는 성탄의 연속이 되기를, 그리하여 여러분의 삶이 천상적 축제가 되기를 빕니다.

2005년 성탄절에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이주사목위원회

위원장 이병호 주교



예수 성탄 대축일 한국 천주교 이주사목위원회 위원장 담화문

04/12/25

해외에 계신 교형 자매들에게,

주님 성탄을 맞는 설렘과 기쁨의 인사를 드립니다.

지난 한 해 세계 곳곳에 흩어져 살고 계신 여러분들은 나름대로 많은 일들을 겪으며 또 여러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보며 지내오셨으리라 생각됩니다.

지난 한 해 한국은 아주 힘들었습니다. 세계화로 인한 시장 자율화가 기업을 무한 경쟁으로 몰아가니 아직 얼마든지 일할 수 있는 연령의 가장들이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고 내일이 캄캄해진 가족들이 많습니다. 거대 자본이 만들어내는 대형 할인 매장 덕에 재래 상가의 점포나 동네 구멍가게들이 차례로 문을 닫고 있습니다. 빚에 쪼들리다가 보금자리를 내놓아야 하는 이웃이 적지 않고 퇴직금을 털어서 시작한 새로운 사업이 대부분 실패로 돌아가 빈손으로 돌아서는 사람이 많습니다.

노동자의 권익을 위해 만들어진 노동조합은 일부 노동자들의 고수익과 특혜를 고수하고 확대하기 위해 결과적으로 더 많은 노동자들을 일자리에서 몰아냅니다. 사회의 각종 단체와 집단은 자신들만의 이익을 독점하기 위하여 끝없는 집단 이기주의에 앞장섭니다. 이런 이기적 물결은 가정에까지 휘몰아쳐 가족들 간에도 자신만의 안락과 욕심을 내세우고 이기심에 뿌리를 둔 사소한 가족 간의 불화가 수많은 가정을 파국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사회의 비리와 부정으로부터 아직 깨끗해야 할 청소년들 중 적지 않은 학생이 학업과 수험 과정에서 별 양심의 가책도 받지 않고 습관적으로 집단적으로 부정행위를 저지른 것 또한 우리 모두를 슬프게 하고 있습니다. 국민 전체의 양심과 도덕심이 무디어지고 폐기처분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는 기성세대와 사회 지도층의 비양심적인 처신과 비리가 보통 사람들의 가치관까지 황폐하게 만들어 온 결과입니다.

그런데도 나라를 운영하는 지도자들은 독선과 아집으로 뭉친 공허한 정치 이념 때문에 서로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대립하고 싸우면서, 갈수록 심화되는 국민의 고통에 대해서는 아무도 책임지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습니다. 온 세상에 빛이 사라지고 짙은 어둠이 드리워져 우리 가슴을 답답하게 하고 있습니다. 이런 어둠 속에서 주님 성탄의 의미를 되새겨 봅니다. 며칠 전에 주교님들 몇 분과 함께 묵상을 하며 성탄 복음의 한 구절에 우리 모두의 마음이 머물렀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탄생은 이러했다. 그의 어머니 마리아는 요셉과 정혼했는데 그들이 같이 동거하기 전에 몸가진 사실이 드러났다.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었다”(마태. 1. 18).

2천 년 전 이스라엘 여성 마리아에게, 정혼한 사람과 같이 살기 전에 처녀의 몸으로 어느 날 갑자기 배가 불러왔다는 것은 아무리 천사의 축복이 있었다 하여도 정말 난감한 사건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리아에게는 눈앞이 캄캄하고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암담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누구에게 해명할 수도 없고 변명할 수도 없는 난처하고 황당한 일이었습니다. 무슨 낯을 들고 약혼자에게 그 사실을 말하고 납득하기를 바라겠습니까? 부모인들 그 사실을 용납할 수 있을 것입니까? 결국 천사의 축복은 잠시 지나간 꿈속의 이야기이고 시간이 흐를수록 축복이 아니라 저주로 변하고 있음을 마리아는 절감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마태오 복음사가는 이 난감하고 당혹스러운 마리아의 잉태 사건을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이렇게 우리를 난감하고 눈앞이 캄캄한 어둠 속으로 데려가십니다. 공생활을 시작하신 예수님을 광야로 데려가신 것도 성령이셨습니다.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을 곧바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지 않으시고 먹을 것도 없고 마실 것도 없는 황무지에서 40년이나 헤매도록 내버려두신 분이 하느님이십니다. 그러나 그 40년은 이스라엘 백성이 믿음을 배우는 데 반드시 필요한 시간이었습니다. 솟아날 구멍이 전혀 보이지 않는, 눈앞이 캄캄한 상황에서 오직 하느님께만 의지하여 구원을 얻는 진실한 믿음을 체험한 기간이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경험하는 다양한 어둠의 체험이나 역경의 엄습도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당장은 눈앞이 캄캄하고 솟아날 구멍이 안 보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러한 난감한 상황에서 우리는 우리를 구원해 주실 수 있는 하느님께 의지하며 그분의 도우심에 희망을 걸고 인내와 기다림으로 굳건히 걸어가야 하겠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상상치 못한 방법으로 구원하시고 반드시 풍성한 강복으로 감싸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뻐하십시오. 주님께서 가까이 오셨습니다!

2004년 성탄절에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이주사목위원회

위원장 강우일 주교



예수 성탄 대축일 서울대교구장 담화문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요한 1,4)

03/12/25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하느님의 크신 사랑을 통해 오늘 인류의 구세주께서 사람이 되시어 우리 곁에 오셨습니다.

아기 예수님의 기쁜 성탄을 맞이하여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하느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은총이 충만하시기를 기원합니다. 특별히 우리 사회에서 고통받고 소외된 사람들이 주님께서 주시는 사랑으로 위로받기를 빕니다. 또한 평화의 임금이신 주님의 탄생으로 우리나라와 온 세상이 평화롭게 살 수 있기를 간청하며 기도드립니다.

일찍이 하느님께서는 말씀을 통하여 온 우주를 창조하셨고, 모든 피조물 가운데 인간을 당신의 모상으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생명의 원천이신 하느님의 뜻을 거역함으로써 죄를 지었고 그 결과 고통과 죽음을 겪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자비로운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죄와 멸망의 상태에 버려 두지 않으시고 당신의 외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시어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인류에게 참으로 더할 수 없는 기쁨이요 축복입니다.

생명이신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셨지만, 죄악에 물들어 있는 세상은 여전히 어둠에 싸여 있습니다. 성탄을 경축하는 이 시간에도 세상 곳곳에서는 폭력을 일삼는 테러와 전쟁이 사람들을 죽음의 공포 속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북한 핵문제를 비롯하여 한반도를 둘러싼 온갖 문제들도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며 불안하게 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세속주의와 물질만능주의, 극도의 개인주의와 쾌락주의로 병들어 가고 있습니다. 하느님으로부터 부여받은 소중한 인간 생명은 낙태와 자살, 사형 등 실용성을 내세우는 사회풍조로 유린되고 있습니다. 성장과 개발의 이름으로 생태계가 무분별하게 파괴되는 등 삶의 환경은 더욱더 열악해지고 있습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말씀대로, 오늘의 세상은 생명의 문화와 죽음의 문화가 대치하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윤리와 도덕적인 권위는 점점 상실되고 세속적 욕망으로 가득 찬 그릇된 가치관이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습니다. 현대인들은 삶의 원천과 궁극적 의미를 추구하기보다 눈에 보이는 외적인 발전과 성장만을 끊임없이 찾고 있습니다. 인간존엄성을 말하면서도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는 인간의 품위가 땅에 떨어져 가고 있습니다. 그 예로 우리 사회는 여전히 노약자, 장애인, 이주 노동자들의 인권을 제대로 보호해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 의식보다는, 자신만 잘 살면 된다는 이기주의가 팽배해 있습니다. 가정불화와 이혼율의 증가로 사회를 구성하는 기본 단위인 가정 공동체가 해체되고 있으며, 이로 인하여 어린아이들과 노인들이 심한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제 또한 1997년 IMF 당시의 상황보다 더 심각하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찾지 못하여 방황하고, 실직과 경제적 파탄으로 고통받는 가정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나라의 살림이 이처럼 어려운데도 정치인들은 국가와 국민을 생각하기보다는 부정부패와 당리당략에 빠져 있습니다. 정치인들이 국민을 걱정하고 위로해 주어야 하는데도 오히려 국민이 정치인을 걱정하는 처지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이처럼 현실이 힘들고 어두운 때에 우리는 예수님의 성탄을 맞이하였습니다. 그분은 어둡고 죄 많은 이 땅에 연약한 아기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세상의 어둠을 이기는 힘은 사랑과 생명임을 보여 주셨습니다. 세상은 “그에게서 생명을 얻었으며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요한 1,4-5)이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맞이하는 성탄은 세상에 만연한 죽음의 문화에 맞서 생명의 문화를 창조하라는 부르심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사랑과 생명에로 불림받은 우리는 이 땅에 생명의 문화를 일구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하느님께서는 “보아라. 나는 오늘 생명과 죽음, 행복과 불행을 너희 앞에 내놓는다. 너희 하느님 야훼의 명령을 순종하며 너희 하느님 야훼를 사랑하고 그가 지시하신 길을 걸으면 너희는 복되게 살며 번성할 것”(신명 30,15-16)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참으로 행복과 생명을 얻으려면 하느님을 사랑하고 삶의 현장에서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충실히 따라야 합니다.

또한 우리 자신은 ‘비천한 인간이 되기까지 자신을 낮추신’ 예수님을 본받아 겸손과 사랑으로 새롭게 태어나야 합니다. 낡은 생활을 청산하고 나 자신부터 똑바로 살고자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가정생활의 소중함을 깨달아 신뢰와 사랑으로 가정을 지키고 가정 공동체의 성화를 위해 힘을 다해야 합니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의 아픔을 외면하지 말고 나눔과 사랑으로 함께해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이 보시기에 참으로 좋은 세상을 가꾸기 위해 자연을 사랑하고 생태환경을 잘 가꾸어 나가야 합니다. 태아의 생명 보존과 사형제도의 폐지 등을 위한 노력을 통하여 생명의 존귀함을 알려야 할 것입니다. 죽음의 문화를 양산하는 불의와 증오, 폭력과 전쟁의 사슬을 과감하게 끊어버리고 용서와 화해, 사랑과 정의에 바탕을 둔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끊임없는 관심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특히 정치인들은 누구보다도 높은 윤리의식과 책임의식을 가지고 솔선수범하는 자세를 보여 주어야 합니다.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처럼 자신을 낮추어 국민을 섬기고 고통을 함께 나눔으로써 신뢰와 사랑을 받는 참다운 정치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또한 우리 교회는 교구 시노드에서 나온 하느님 백성의 소리에 따라 그 정신을 실천하는 데 온갖 노력을 다해야 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복음에 비추어 자신을 쇄신하며 세상 구원의 도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의 성탄을 다시 한 번 기뻐하며 생명의 빛이 두루 비추어 지기를 기원합니다. 특히 갈라져 고통받고 있는 우리 민족의 하나 됨과 세상 구원의 평화를 위하여 모든 성인과 구세주의 어머니이신 성모 마리아의 전구를 청하며 기도드립니다.

2003년 예수 성탄 대축일에

천주교 서울대교구

교구장 정 진 석 대주교



예수 성탄 대축일 서울대교구장 담화문


“말씀이 참된 빛이셨으니

그 빛이 세상에 오시어 모든 사람을 비추고 있다”(요한 1, 9)

02/12/25

1. 친애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아기 예수님의 성탄을 맞이하여 교형 자매 여러분과 모든 사람에게 하느님의 축복이 충만히 내리시기를 기원합니다. 해마다 오늘이면 온 교회와 세상은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라는 성가를 부르며 구세주의 오심을 경축합니다. 일찍이 이사야 예언자가 “어둠 속을 헤매는 백성이 큰 빛을 볼 것이며, 캄캄한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빛이 비쳐 올 것”(이사 9, 1)이라고 외쳤듯이 예수님은 이 세상에 구원의 빛으로 오셨습니다. 이 구원의 빛이 우리 겨레와 온 누리에 내리기를 빕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은 가난한 사람들과 고통 중에 있는 이들 안에 드러난 구원과 해방의 신비였습니다. 베들레헴의 작은 말구유에서 터져 나온 생명의 빛은 눈먼 인간의 어리석음을 드러내는 하느님의 지혜였고 세상을 밝히는 빛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셨지만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요한 1, 10).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처음 맞이한 사람들은 하느님께서 이루실 구원과 해방을 기다리며 믿음과 신뢰를 저버리지 않았던 마리아와 요셉이었습니다. 또한 베들레헴 근처에서 동터오는 새벽을 기다리며 밤새 양떼를 지키던 가난한 목자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성탄은 모든 사람, 특별히 보잘것없는 이들에게 내리신 하느님의 무한하신 선물입니다.

2. 지구촌 곳곳에서는 해마다 평화의 왕께서 세상에 오심을 기리며 기쁨의 축제를 열고 있습니다. 그러나 왜 세상에는 여전히 가난한 자 억눌린 자 고통받는 자들의 신음 소리가 끊이지 않습니까? 왜 세상에는 종교적·인종적 갈등과 전쟁의 위협 속에서 불안과 공포의 나날이 계속되고 있습니까? 캘커타 빈민들의 거리에서 온 생을 바치신 마더 데레사 수녀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결코 가난과 고통을 창조하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을 만들어 낸 것은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하느님 앞에서 우리는 모두 죄인입니다.” 사실 우리 앞에 놓여진 가난과 고통은 개인적인 탓만이 아니라 힘있는 자들과 가진 자들의 끝없는 탐욕과 이기심의 결과입니다. 오늘날 힘있는 나라는 약한 나라를, 가진 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착취하고 억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작년에 미국에서 일어난 끔찍한 9·11 테러사건 이후에도 세계 곳곳에서는 전쟁과 폭력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테러와 테러국가를 응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득세하는 가운데 중동에 대한 전쟁의 위협은 증가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에도 긴장과 불안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참으로 인류가 소망하는 평화에 이르는 길은 멀고도 여전히 험난해 보입니다.

이제 우리 사회와 우리 자신의 모습을 성찰해 봅시다. 우리 사회에서 지역 간·계층 간의 불균형과 차별은 점점 더 심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또한 가난한 사람들을 더욱 가난으로 몰아넣는 불합리한 정치적·사회적 구조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한편에서는 온갖 사치와 향락을 추구하며 살아가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이 하루하루 생계를 걱정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흥청망청 먹고 마신 다음 내어버린 음식 쓰레기 처리를 두고 고심하고 있을 때, 우리의 동포인 북한 주민은 추위와 굶주림으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자유와 생계를 찾아 주변나라를 떠도는 많은 북한 이탈 주민들, 낯선 이국 땅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외국인 노동자들, 하루 하루를 걱정하는 일용 노동자들, 버려진 아이들과 노인들, 가난한 농민들이 우리의 관심과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성탄은 바로 우리 안에 있는 이러한 현실을 바라보고, 우리의 시선을 가난한 사람들 안에 계신 주님께로 돌려야 하는 때입니다.

예수님은 “마음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시고 권세 있는 자들을 그 자리에서 내치시고 보잘것없는 이들을 높이시기”(루가 1, 51-52) 위해 오신 분입니다. 주님은 먼저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묶인 이들에게 해방을 알리며, 눈먼 이들을 보게 하고 억눌린 이들에게 자유를 주기 위하여”(루가 4, 18) 오셨습니다. 죄와 절망에 빠진 세상, 불신과 반목, 대립과 폭력이 난무하는 세상, 그래서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이 어느 때보다 아쉽고 그리운 이 때 주님은 평화의 왕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성탄은 희망의 사건입니다. 하느님은 어둠과 절망에 쌓인 세상을 그대로 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여 당신의 외아들을 세상에 보내셨습니다(요한 3, 16). 이런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믿음은 샤를 드 푸코의 말처럼 우리로 하여금 “불가능을 없애 주며 불안·위험·두려움 등을 무의미하게” 만듭니다. 사실 한 해를 돌아보면 우리 민족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신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게 합니다. 지난 여름을 달구었던 월드컵 축구 경기는 온 세상이 화해와 사랑으로 하나가 될 수 있다는 희망과 자신감을 선물했습니다. 남북이 하나가 되어 참여했던 아시안 게임, 반세기 이상 끊겼던 남북 간의 철도 복구 작업 등 조금씩 우리에게 희망을 주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3. 친애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이제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우리는 새 대통령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바야흐로 새로운 정치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새 대통령은 우선 흩어진 국민의 마음을 모으고 남북의 화해와 평화 통일의 길을 열어 주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가난한 사람들과 소외된 이들의 눈물을 닦아 주며, 우리 사회에 만연된 부정부패를 일소하는 데 앞장서 모범을 보여야 할 것입니다. 또한 새 대통령은 정의롭고 깨끗하며 똑바른 사회를 이룩하는 데 모든 힘을 다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이번 대선에 나섰던 후보자들과 정당들, 그리고 모든 국민도 경제적으로 뿐 아니라 정신적·도덕적으로도 부강하고 아름다운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 한마음 한뜻으로 힘을 모아야 할 것입니다. 새 천년기에 걸맞는 새 나라는 한두 명의 힘으로가 아니라 온 국민이 합심할 때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서울대교구는 지난 10여 년 간 추진해온 소공동체를 통하여 활기찬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또한 세 분 주교님이 올해 탄생하셨고, 지역 중심의 작은 교구를 지향하며 교구의 구조적 개편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올해 준비 단계를 마친 교구 시노드는 내년에 본회의를 거치면서 교회의 쇄신과 발전을 위한 기틀을 마련하게 됩니다. 이 세상과 시대에 부응하는 깨어 있는 교회로 거듭나기 위하여 개최한 이번 시노드에 성령께서 빛을 비추시고 길을 인도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너희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러 왔다. 모든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이다”(루가 2, 10). 이 말은 천사들이 새벽을 기다리며 양떼를 지키던 목자들에게 전한 것입니다. 성탄절을 맞이하는 우리 겨레와 교회에 가슴 벅찬 이 기쁨의 소식을 전하며 아기 예수님의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 우리 사회와 남북한 민족 모두에게 충만하기를 기원합니다. 아울러 구세주의 어머니이신 성모 마리아와 103위 성인들과 천상의 성인들께서 구원의 여정에 있는 우리를 위해 천상에서 전구해 주시기를 간청합니다.

2002년 12월 25일 예수 성탄 대축일에 천주교 서울대교구 교구장 정 진 석 대주교



예수 성탄 대축일 서울대교구장 담화문



"어둠 속을 헤매는 백성이 큰 빛을 볼 것입니다.

캄캄한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빛이 비쳐 올 것입니다"(이사 9,2)



2001/12/25

친애하는 교형 자매 여러분! 새천년기의 첫번째 성탄을 맞이하여 교형 자매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 우리 민족과 모든 사람에게 하느님의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특히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크신 자비가 충만하시기를 청합니다. 또한 평화의 임금이신 주님의 탄생으로 남북이 분단되어 있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온 세상 곳곳에 하느님의 평화가 꽃 피기를 바랍니다.

때는 칠흑같이 어두운 밤이었습니다. 어두운 것은 밤만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온갖 불의와 고통에 시달리던 이스라엘 백성도 어두운 밤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 밤에 별 하나가 유다의 땅 베들레헴의 초라한 마구간을 밝게 비추었습니다. 그날 밤 천사는 목동들에게 말하였습니다.

“오늘 밤 너희의 구세주께서 다윗의 고을에 나셨다. 그분은 바로 주님이신 그리스도이시다. 너희는 한 갓난아기가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것을 보게 될 터인데 그것이 바로 그분을 알아보는 표이다”(루가 2,11-12).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였지만 그 가운데서도 특별히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 상처입고 병고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구원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수께서는 부유하셨지만 이처럼 소외받는 사람들을 위해서 가난하게 세상에 오셨습니다(2고린 8,9 참조).

평화의 임금님, 사랑의 왕께서 오늘 탄생하셨으니 우리 모두 기뻐합시다. 모든 사람이 오늘의 기쁜 잔치에 초대되었습니다. 여러분이 거룩한 사람이라면 기뻐하십시오. 월계관에 가까이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죄인이라면 기뻐하십시오. 죄의 용서를 받도록 초대받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믿지 않는 이라면, 그래도 용기를 내십시오. 생명에로 불림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제 깊은 잠에서 깨어나고 죽음에서 일어날 때가 되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구원의 빛을 비추어 주실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위하여 사람이 되셨습니다. 이 얼마나 기쁜 소식입니까?

2000년 전, 인간으로 태어나신 예수님은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시다가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고 사흘만에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구세주로서 오늘도 우리와 함께 머물러 계십니다. 앞으로도 주님께서는 영원토록 주권을 행사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또 영원히 변하지 않으시는 분입니다”(히브 13,8).

그러나 새 천년기의 첫 해를 보내는 인류사회는 어두운 먹구름으로 뒤덮여 있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폭력과 전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전쟁과 폭력, 긴장과 분쟁이 끊이지 않는 이 세상에 “나라마다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드는 날, 나라 사이에 칼을 빼는 일이 없어 다시는 군사 훈련을 하지 않는”(미가 4,3-4 참조) 평화로운 날을 그 어느 때보다도 간절히 염원하고 있습니다.

오늘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선포한 천사들은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가 사랑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루가 2,14) 라고 찬양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평화를 주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평화는 “전쟁이 없는 상태만도 아니고 적대세력 간의 균형 유지만도 아닙니다. 평화는 정의의 실현인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인간 사회에 부여하신 질서, 더욱 완전한 정의를 갈망하는 인간들이 실현해야 할 그 질서의 현실화가 바로 평화인 것입니다”(사목헌장 78항). “정의는 평화를 가져옵니다”(이사 32,17). 따라서 평화를 얻기 위해서는 정의를 실천해야 합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성하께서도 지난 9월, 미국에서 발생한 비극적인 테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염려하면서 세상의 평화를 위해서 모든 그리스도인이 기도할 것을 이렇게 당부하셨습니다. “교회는 사랑이 증오를, 평화가 전쟁을, 진리가 거짓을, 용서가 복수를 물리치도록 기도하며 모든 사람이 이를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또한 교황 성하께서는 “참 평화의 두 기둥은 정의와 용서하는 사랑입니다. 만일에 정의가 없으면 평화가 없고, 용서가 없으면 정의도 없을 것입니다”(제35차 세계평화의 날 담화문) 라고 하셨습니다.

모든 사람이 염원하는 완전한 해방과 평화는 폭력이나 힘에 의해 이룩될 수 없습니다. 완전한 평화는 인간이 하느님과의 관계를 회복할 때 가능합니다.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도 바로 모든 인간을 하느님과 화해시키기 위해서입니다. 그러기에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우리의 평화”(에페 2,14) 이십니다.

오늘 예수께서 탄생하셨듯이 우리도 죄악에 물들었던 어두운 삶을 청산하고 내적으로 새롭게 태어나야 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마음과 생각이 새롭게 되어 하느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새 사람으로 갈아입어야 합니다. 새 사람은 올바르고 거룩한 진리의 생활을 하는 사람입니다”(에페 4,22-24). 하느님 보시기에 더 좋은 세상, 정의와 사랑이 충만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은 선의의 모든 사람들, 특히 그리스도인들의 최우선적 책무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먼저 하느님의 말씀을 따라서 정직하고 진실된 삶, 정의롭고 성실한 삶, 나누고 섬기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올해에 한국 평신도사도직협의회는 우리 사회의 무너진 도덕성을 회복하고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도덕성 회복 캠페인 ‘똑바로 운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먼저 자기 자신부터 똑바로 살고자 하는 이 운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함으로써 우리 사회를 더욱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신 예수께서 교형 자매 여러분과 모든 사람에게 은총과 축복을 가득 베풀어 주시기를 기원합니다. 특히 남북으로 분단된 채 살고 있는 우리 민족이 오늘 태어나신 예수님의 축복과 구세주의 어머니이신 성모 마리아의 전구로 하나 될 수 있는 날이 하루 빨리 도래하도록 간구합니다. 오늘 우리는 평화의 왕이신 주님의 탄생을 다 함께 기뻐하면서 평화의 원천이신 주님께 “죽음의 그늘 밑 어둠 속에 사는 우리에게 빛을 비추어 주시고 우리의 발걸음을 평화의 길로 이끌어 주시기를”(루가 1,79) 청하며 기도드립니다.

2001년 12월 25일 성탄대축일에

천주교 서울대교구 교구장

정 진 석 대주교



예수 성탄 대축일 서울대교구장 담화문

2000/12/25

"하느님은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여 주셨다"(요한 3, 16)


1. 대희년에 맞이한 주님의 성탄

친애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늘 탄생하셨습니다. 2000년 대희년의 뜻깊은 해에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맞이하여 우리 모두 한마음으로 기뻐하며 이사야 예언자가 불렀던 기쁨의 노래를 함께 부르고 싶습니다. "반가워라, 기쁜 소식을 안고 산등성이를 달려오는 저 발길이여. 평화가 왔다고 외치며, 희소식을 전하는구나"(이사 52, 7).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축복이 여러분과 우리 민족 모두에게 충만하시기를 기원합니다. 특히 가정과 사회로부터 소외되어 고통 당하는 모든 사람에게 하느님의 자비가 함께 하시기를 청합니다. 아울러 남북으로 갈라진 우리 민족이 주님의 은총으로 불신과 대립에서 벗어나 화해와 협력을 통해 새롭게 민족의 앞날을 열어 갈 수 있기를 간청합니다.

2. 사랑 때문에 사람이 되신 하느님

성탄은 천주 성자 예수께서 우리와 똑같은 인간으로 태어나신 사건입니다. 예수님은 유다의 가장 작은 고을 베들레헴에서 비천한 아기로 태어나셨습니다. "그들이 베들레헴에 가 있는 동안 마리아는 달이 차서 드디어 첫아들을 낳았다. 여관에는 그들이 머무를 방이 없었기 때문에 아기는 포대에 싸서 말구유에 눕혔다"(루가 2, 6-7). 하느님께서 인간이 되어 오신 모습은 마땅히 머물 곳조차 없을 정도로 초라하고 비참했습니다.

예수께서 이처럼 초라한 모습으로 세상에 태어나신 까닭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우리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크신 사랑 때문입니다. 특별히 예수님은 가난한 사람들과 고통을 함께 나누시기 위하여 가장 소외된 장소에서 태어나셨습니다. "하느님은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여 주셨다. 하느님이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단죄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아들을 시켜 구원하시려는 것이다"(요한 3, 16-17).

예수님은 사랑 때문에 사람이 되신 하느님이십니다. 그분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 골고타에서 죽기까지 하느님 사랑과 인간 사랑을 사람들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사람들이 몸과 마음을 다하여 하느님을 섬기고 이웃을 아끼면 유한한 삶을 뛰어 넘어 영원한 생명에 들어갈 수 있다는 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분은 십자가에 매달려 죽기까지 모든 사람들을 한결같이 사랑하셨지만 그 가운데서도 병들고 고통 당하는 사람들,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사랑하셨습니다.

3. 어려움 속에서의 불안한 삶

친애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지금 우리는 새로운 천년기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지난 세기에 인류는 과학과 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큰 진보를 이룩하였으며 그로 인해 우리의 전반적인 삶은 풍요로워졌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물질을 우상처럼 숭배하며 극심한 이기주의에 사로잡혀 도덕적 가치와 정신적 가치의 소중함을 점점 잃어가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 전반에 만연해 있는 생명경시 풍조는 하느님의 모상을 닮은 인간의 존엄성을 근본적으로 흔들어 놓고 있습니다. 또 오늘날 지구촌은 신자유주의 물결에 휩쓸리면서 무한 경쟁을 일삼아 부유한 나라와 가난한 나라간의 격차가 더욱 벌어지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2000년 대희년에 하느님의 은총으로 분단 이후 최초로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열렸습니다. 그 결과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한 긴장완화 정책과 이산 가족들의 감동적인 만남 등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남북관계의 큰 진전에도 불구하고 국내적으로는 정치·경제·사회·문화·교육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극심한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많은 국민이 불안해하고 있으며 노동자들과 서민들이 맞이하는 이 겨울은 춥기만 합니다. 구조조정으로 말미암아 거리를 배회하는 실업자의 수가 나날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오늘도 갈곳 없는 많은 노숙자들은 낮이면 공원의 벤치에서 시름을 달래고 밤이면 보호시설이나 지하도에서 차가운 겨울밤을 보내고 있습니다.

4.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삶

오늘날 우리의 현실은 이처럼 어려운데도 불구하고 사회에서 큰 책임을 맡고 있는 정치인이나 지도층 인사들은 자신들에게 맡겨진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치인들은 민생문제보다는 당리당략에 사로잡혀 국민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지 못하고 실망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연이어 발생하고 있는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각종 부정과 부패 사건들은 하루하루를 성실히 살고 있는 대다수의 국민에게 불신을 가중시키고 있습니다.

이런 총체적인 위기 속에서 우리는 세례자 요한의 가르침을 듣고 실천해야 하겠습니다. "군중은 요한에게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하고 물었다. 요한은 '속옷 두 벌을 가진 사람은 한 벌을 없는 사람에게 주고 먹을 것이 있는 사람도 이와 같이 남과 나누어 먹어야 한다'하고 대답하였다. 세리들도 와서 세례를 받고 '선생님, 우리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하고 물었다. 요한은 '정한대로만 받고 그 이상은 받아내지 말라'하였다. 군인들도 '저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하고 물었다. 요한은 '협박하거나 속임수를 써서 남의 물건을 착취하지 말고 자기가 받는 봉급으로 만족하여라'하고 일러 주었다"(루가 3, 10-14). 이제 우리들 앞에 놓여 있는 생명과 죽음, 축복과 저주 사이에서 우리가 살 길은 야훼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그 분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충성을 다하는 것입니다(신명 30, 20 참조).

무엇보다도 정부는 출범 초기에 간직했던 정신을 되찾아 실천함으로써 국민으로부터 실추된 신뢰를 회복해야 하겠습니다. 정치인들은 사리사욕이나 당리당략에서 벗어나 민심에 귀를 기울이고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는 큰 정치를 펼쳐 보여야 할 것입니다. 사회 지도층에 있는 사람들 역시 윤리적·도덕적으로 모범을 보여야만 국민으로부터 존경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국민들도 오늘의 모든 문제를 남의 탓으로만 돌리지 말고 잘못된 삶을 회개하여 새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무심히 저지르는 부정과 부패, 사치와 과소비, 투기와 향락 같은 죄악과 죽음의 문화를 지양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서로 가진 것을 나누고 고통을 나눔으로써 함께 사는 사랑과 생명의 문화를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아울러 하느님의 모상을 닮은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을 훼손하는 구조적인 악과 제도에 대해서도 선의의 사람들과 연대하여 개선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특히 그리스도인을 포함한 모든 종교인이 본연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라 살고 있는지 회개하면서 나눔과 섬김을 통해서 사회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하겠습니다(마태 5, 13-16 참조).

5. 우리와 함께 계시는 주님

오늘 우리가 기리는 성탄은 예수님의 탄생을 경축하는 축일일 뿐 아니라 지금도 우리와 함께 계시는 임마누엘 주님을 깊이 느끼고 그분을 더욱 닮고자 노력하는 날이 되어야 합니다. 특히 본당차원에서 교우들은 지역의 결손가정 아이들, 독거 노인들, 병든 이들과 노숙자들을 돌보면서 성탄을 뜻깊게 보내기 바랍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먼저 이런 삶을 살지 못한다면 2000년 전 아기 예수님께 머무를 방조차 내어주지 않은 사람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일찍이 예수께서 수행하셨던 인류 구원 사업을 우리 자신이 실천하여 이 사회를 더욱 완성된 모습으로 변화시키는 것이야말로 우리들이 성탄을 뜻깊게 보내는 길이 될 것입니다.

다시 한번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탄생하신 예수님의 은총과 축복이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 우리 민족과 한반도에 충만하시기를 기원합니다. 특히 같은 민족이면서도 반세기 동안 분단된 채 살고 있는 우리 민족이 오늘 태어나신 예수님의 축복과 구세주의 어머니이신 성모 마리아의 전구로 하나될 수 있는 날이 하루 빨리 도래하기를 간구합니다.

구세주 강생 2000년 12월 25일

대희년 성탄절을 맞이하여

천주교 서울대교구 교구장 정 진 석 대주교



예수 성탄 대축일 서울대교구장 담화문

99/12/25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변하지 않으시는 분입니다"(히브 13,8)


1. 영원한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오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2000년 대희년을 맞이하여 이 땅의 모든 사람에게 하느님의 은총이 풍성히 내리기를 빕니다. 특별히 하느님의 자비가 우리 사회에서 고통받고 소외된 사람에게 충만하기를 기원합니다. 아울러 한 민족이면서도 지구상에서 유일한 분단국으로 남아 고통받는 우리 민족의 통일을 위하여 하느님께 자비를 청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다양한 방법으로 인류를 구원으로 이끌어 주십니다. 인간의 역사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과 구원 의지가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 사건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입니다. 이 천년 전 베들레헴 마구간에서 태어나신 "그리스도야말로 우리의 평화이십니다"(에페 2,14). 하느님이신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평화와 구원을 주시기 위해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셨습니다"(필립 2,7).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 주셨고,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여 주셨습니다"(요한 3,16). "그분은 부유하셨지만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셨고, 그분이 가난해지심으로써 우리는 오히려 부유하게 되었습니다"(2고린 8,9). 그러므로 우리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변하지 않으시는 예수님"(히브 13,8)의 탄생을 기뻐하며 경축하는 것입니다.

2. 은총과 평화의 2000년 대희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오늘 성탄 대축일부터 2001년 1월 7일 주님 공현 대축일까지를 은총과 평화의 대희년 기간으로 선포하셨습니다. "그리스도 탄생 후 2000년은 그리스도인뿐 아니라 온 인류에게도 특별한 대희년입니다"(「제삼천년기」15항). 교황께서는 대희년 교서를 통해 "이번 성탄시기는 새로운 복음화를 위한 성령의 풍성한 선물을 교회의 삶에 불어넣는 생동하는 심장과도 같으며, 모든 이에게 빛으로 충만한 축제"(「강생의 신비」6항)가 되어야 함을 강조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희년의 정신인 자유와 해방을 구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주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 주께서 나를 보내시어 묶인 사람들에게는 해방을 알려 주고, 눈먼 사람들은 보게 하고, 억눌린 사람들에게는 자유를 주며, 주님의 은총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루가 4,18-19). 오늘 교회가 대희년을 선포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으로 시작된 은총의 해를 지금 여기에 구현하여 생명의 빛을 밝히기 위한 것입니다. 보편 교회는 구세주 강생 2000년을 맞아 하느님 나라 선포의 새 지평을 열기 위해 힘을 모으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도 대희년을 합당하게 맞이하기 위해서 '새날 새삶 운동'을 통하여 모든 사람이 영적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운동을 펼쳐 왔고 우리 교구에서도 다양한 교육과 함께 기도를 바쳐 왔습니다.

3. 우리의 현실과 그 안에 있는 사람들

그러나 성탄과 2000년 대희년을 맞이하는 우리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말씀이 세상에 계셨고 세상이 이 말씀을 통해서 생겨났는데도 세상은 아직도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고 있습니다"(요한 1,10).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물질만능주의에 사로잡혀 정신적 가치의 소중함을 잃어버린 채 살아 가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 곳곳에는 생명 경시와 환경 파괴, 물질만능주의와 이기주의, 부정과 부패, 불의와 거짓, 허영과 사치 등이 만연해 있습니다.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은 자주 침해당하고, 우리 삶의 보금자리인 가정 공동체마저 급속히 와해되면서 사회의 안정 기반을 흔들고 있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이루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끊임없이 발생되는 비인간적인 사건으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신앙인은 물론 정치인, 공직자, 기업인, 교육자, 언론인 등 그 누구도 책임을 면할 수 없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발생되고 있는 부정적인 사건의 모든 책임을 지도자들에게 돌릴 수는 없지만 그들은 공인으로서 누구보다도 큰 책임이 있다는 것을 자각하여 더욱 올바르게 살아야 합니다.

4.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우선적인 사랑

정부에서는 국제통화기금(IMF)의 긴 터널을 벗어났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우리 주위에는 직장을 잃어버린 채 거리를 헤매는 실업자들과 그 가족들, 병고와 장애에 시달리는 사람들, 하루의 끼니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절대 빈곤층에 속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즐기며 사는 데에는 큰 관심을 갖고 있지만 가난한 사람들과 가진 것을 나누며 사는 데에는 관심이 부족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더욱 깊어져 가는 "부유한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들 간의 격차를 좁히며 불균형을 바로잡기 위해서, 새로운 연대성의 용기를 갖고 사고방식과 사회구조를 근본적으로 개혁하여"(「아시아 교회」32항) 진정한 인간발전을 이룩하는 데 힘을 모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나약한 인간으로 태어나셨음을 기억하며 가정과 사회 안에서 소외되고 버림받은 사람들을 끌어안아야겠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우선적인 사랑은 교회에 맡겨진 중요한 임무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 지상의 교회는 "가난한 이들과의 연대성을 통하여"(「아시아 교회」34항) 고통받고 상처 입은 사람들의 공동체가 되도록 부단히 노력해야 합니다. 이 시대에 소외된 사람들의 고통을 외면하는 것은 가난한 인간으로 태어나신 아기예수님을 외면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마태 25,41-46 참조).

5. 하느님의 크신 사랑과 용서를 믿고

먼저 우리는 구세주의 성탄과 2000년 대희년을 큰 기쁨의 해로 맞이하기 위해서 교회의 여러 성사 안에 현존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께 가까이 다가가야 하겠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크신 사랑과 용서를 믿고 개인 차원의 회개와 함께 공동체 차원의 회개를 통한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 합니다. 남에게 탓을 돌리기 전에 먼저 우리 그리스도인이 지난날 올바로 살지 못한 점에 대하여 하느님 앞에서 겸손되이 회개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따라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했다면 세상의 모습은 지금보다 훨씬 더 구원된 모습으로 변화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옷만 찢지 말고 심장을 찢고"(요엘 2,13), "옛 생활을 청산하여 낡은 인간을 벗어버리고, 새 인간으로 갈아입는"(골로 3,9-10)다면 우리에게 희망의 빛이 비칠 것입니다. 밤에도 깨어 양들을 지키다 아기예수님을 만난 평범한 목동들처럼 정직하게 이 시대를 살아 가는 사람들이 구세주의 기쁜 탄생을 알리는 또 다른 증인들입니다. 새 천년의 우리 교회는 이 땅에서 순교한 수많은 신앙선조들의 모범을 따라 이 시대에 온 몸으로 복음을 증거하는 '증인들의 공동체'(「아시아 교회」17항)로 새롭게 태어나야 할 것입니다.

6. 대희년의 기쁨이 북한의 형제 자매에게도

오늘 우리가 경축하는 성탄과 2000년 대희년의 기쁨이 북한의 모든 형제 자매에게도 전해지기를 바랍니다. 서울대교구장이면서 평양교구장 서리이기도 한 저는 북한 교회와 그곳의 형제 자매를 위하여 하느님께 기도 드립니다. 특별히 침묵의 교회에서 목자 없이 내적으로만 하느님을 믿으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을 교우 여러분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그 동안 우리 교구에서는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지속적인 기도와 함께 '민족화해위원회' 등을 통하여 고통받는 북한의 동포에게 긴급한 구호활동을 펼쳐왔습니다. "보편 교회도 한국 교회의 북한 동포 돕기와 민족화해를 위한 노력에 연대감"(「아시아 교회」28항)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정부 차원의 대북 햇볕 정책 못지않게 종교인 및 민간인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활발한 교류와 나눔은 우리 민족의 통일을 앞당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민족의 최대 과제인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 기도하고 사랑을 나누는데 더욱 앞장서야 할 것입니다. 남북으로 분단된 우리 나라가 하느님의 은총과 구세주의 어머니이신 성모 마리아의 전구로 하루 빨리 하나될 수 있기를 청하며 간절히 기도합시다. 다시 한번 아기예수님의 성탄과 대희년을 맞이하여 하느님의 축복이 우리 민족과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충만하시기를 기원합니다.

1999년 12월 25일

구세주의 성탄과 2000년 대희년을 맞이하여

천주교 서울대교구 교구장 정진석 대주교



천주 강생 2000년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담화문

99/12/25
은총과 평화의 대희년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이 되신 강생의 신비를 경축하며 온 세상에 은총과 평화를 선포하는 대희년이 밝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공생활을 시작하시며,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구원이 베풀어지는 '은총의 해', 하느님께서 특히 가난하고 뒷전으로 밀려난 이들을 따뜻하게 보살펴 주시는 자비의 때를 열어 주셨습니다. 2000년 대희년은 저마다 생명을 얻고 더 얻는 구원의 때임을 되새기면서, 모든 교형 자매 여러분이 그리고 구원을 갈망하는 세상의 모든 이가 참된 자유와 평화를 누리기를 빕니다.

교회는 사도 시대 이래 끊임없이 복음을 선포하여 왔습니다. 동서양이 만나는 곳에서 출발한 구세주의 복음 선포는 제1 천년기 동안 유럽 대륙에, 제2 천년기에는 세상 온 대륙에 그 씨앗이 뿌려졌습니다. 이 복음화의 과정에서 교회는 인간의 자유와 해방을 위하여 적지 않은 공헌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한계와 나약함 때문에 때로는 그리스도의 복음 정신에서 벗어난 언행으로 참된 복음화에 장애가 된 적도 있었습니다. 최근 교황님께서도 대희년의 은총을 가득히 받아 새 날에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지난날의 부족했던 것과 잘못을 반성하고 사과하며 새 복음화에 정진할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한국 교회도, 지난날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에 대하여 하느님께 감사하고 우리가 저지른 잘못에 대하여 참회하며, 대희년을 맞아 새 복음화의 사명을 다하여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주님께 너무나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수많은 순교 성인들의 피와 땀으로 세워진 한국 교회는 지난 200년 동안 크게 성장하였습니다. 교황님을 모신 가운데 103위 순교자 시성식과 제44차 세계성체대회를 개최하였습니다. 특히 지난 40여 년, 우리 나라 전체가 가난과 싸우며 여러 가지 난관을 헤쳐 나오는 동안, 평신도들의 아낌없는 노고와 희생은 매우 자랑스러운 것이었으며, 수도자들의 봉헌 생활과 사목의 협력은 보기 드문 것이었고, 사제들의 봉사는 참으로 헌신적인 것이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오늘의 한국 교회가 되었습니다. 사실 우리 교회는 세계의 주목을 받을 만큼 활발하고 빠른 성장을 거듭해 왔으며, 수도자와 성직자의 수도 크게 늘어났습니다.

그러나 한편, 한국 교회가 이렇게 발전하고 성장하면서도 한국 사회 속에서 참된 삶과 복음의 표지가 되지 못했던 점을 반성하여야 하겠습니다. 박해를 받는 동안에 애국 애족을 위한 우리의 의식과 처신이 적절하지 못하였으며, 민족의 수난기에는 자주 독립과 해방을 위한 노력에 크게 동참하지 못하였음을 반성하며 아쉽게 여깁니다. 국민이 분단과 전쟁으로 상처받았을 때 우리도 역시 많은 희생과 순교의 길을 걸었고 고통을 함께 하였으나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노력은 소홀히 하였던 점을 반성합니다.

현재 우리는 사회로부터 좋은 대우와 인정을 받기도 하지만 교세 확장은 중산층에 치중되었고, 예수님께서 가장 마음 쓰시고 사랑하시던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 대해서는 충분한 관심과 배려를 다하지 못하였습니다. 사회 속의 불의와 부정을 보면서도 우리 지도자들은 이해 관계나 공동체 안의 갈등을 우려하여 명백한 태도 표명을 하지 못한 때도 있었습니다. 이 부족하고 허약했던 생활을 반성하고 대희년을 새로운 마음으로 맞이하여야 하겠습니다.

친애하는 교형 자매 여러분, 이제 강생의 신비가 충만히 드러나는 대희년의 문턱에서 교회는 천주 성삼께서 이루시는 통교의 산 표징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평신도, 수도자, 성직자가 서로 존경하고 협력하며 사랑으로 친교의 공동체를 이루어 나가야 합니다. 은총의 선물은 여러 가지이지만 그것을 주시는 분은 같은 주님이십니다. 우리는 세례와 견진 성사로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 한 몸을 이룬(에페 4,7-13 참조) 선택된 민족이고 왕다운 사제들이며 거룩한 겨레이고 세상의 빛과 소금입니다(1베드 2,9-10; 마태 5,13-16 참조).

사제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목자로서 수도자들과 평신도들과 함께 책임과 권한을 나누며 교회 공동체에 봉사하기 바랍니다. 그리고 평신도들은 우리 교회 초창기의 자발적 활동과 열의를 되살려 교회와 사회에 자기 고유의 역할과 사명을 다할 수 있도록 필요한 지식과 지혜 그리고 용기를 갖추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수도자들은 복음 삼덕을 토대로 하느님 나라의 산 증인이 되고 고유한 은사를 살리면서, 한국 교회의 아름다운 전통을 따라 교구와 본당에서 사목 활동에 많은 협조를 계속해 나가기 바랍니다.

우리가 직면하는 새로운 천년기는 커다란 도전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과학 기술의 발달로 물리적인 시간과 공간이 더욱 줄어들어 이른바 '지구촌'을 이루게 되었으나, 사회의 기초인 가정이 파괴되고, 세대간 민족간 지역간 종교간의 갈등과 대립이 심화되고, 무한 경쟁의 시장 경제로 말미암은 빈부의 격차가 더욱 커지고, 경제적 선진국과 후진국의 골을 깊게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회 현실 속에서 교회는 사회 정의와 공동선을 위하여 연대 의식과 보조성의 원리를 고취하여야 합니다. 또한 자기만을 생각하는 이기심을 버리고 자기보다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며, 노사 관계의 대립을 피하고, 서로 화합하고 봉사하면서, 모두 평화와 행복을 누리며 기쁘게 살아가는 세상을 이룩하여야 합니다. 교회 일치 운동과 종교간 대화도 이러한 정신을 바탕으로 추진해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이 시대에 우리 민족의 가장 큰 과제는 평화 통일을 이루는 일입니다. 이를 위하여 우리가 먼저 진심으로 회개하고 우리들의 마음에서 모든 미움을 몰아 내어야 합니다. 교회가 앞장 서서 온 민족의 화해를 북돋우고, 동포애를 살려 온갖 지원을 아끼지 않으며, 평화 통일을 위한 진지한 대화와 화합의 길을 찾아 나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 나라는 경제 성장에 치중한 나머지 아름다운 금수 강산을 파괴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인간 생명의 터전으로 잘 지키며 관리하라고 주신 자연을 황폐하게 만들었습니다. 환경을 살리는 것은 곧 생명을 살리는 것이고, 생명을 살리는 것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신성한 사명을 이행하는 것입니다. 이는 지상에 사는 모든 사람과 연대하여 노력하여야 할 과제입니다.

제3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한국 교회는 이제 내적으로 더욱 성숙하여 새로운 단계로 도약할 때입니다.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깊은 애정을 쏟고 교육에 힘쓰며, 복음의 씨앗이 한국이라는 토양과 문화 속에 깊이 뿌리내리게 하고, 신앙 생활과 전례를 토착화하여 새로운 문화 창출에 이바지하며, 참된 생명 문화를 꽃피워야 하겠습니다. 아울러 세계 교회와 일치하여 온 인류를 구원으로 이끄는 선교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특별히 아시아 대륙의 복음화에 우리의 책임과 사명을 다하여야 합니다.

이 역사적 사명과 대희년의 축복을 이웃과 나누며 다 함께 새로운 천년기를 향하여 큰 걸음을 내딛읍시다. 각자 '나부터 새롭게' 되어 구세주의 마음과 일치하고, '참된 가정을 이루어' 사회의 기초를 튼튼히 하며, '좋은 이웃이 되어 주어' 이웃 사촌이라는 전통을 실감하며, 사회의 정의와 공동선이 이룩되도록 '함께 가요, 우리'를 구체적인 생활로 실천합시다. 하느님께서 필요한 은혜를 베푸시어 도와 주실 것입니다.

친애하는 교형 자매 여러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생 2000년을 진심으로 축하 드리며, 대희년의 은총과 평화를 빕니다. 이 대망의 2000년을 경축하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께서 풍성히 강복하여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2000년 대희년을 맞으며

1999년 12월 25일 예수 성탄 대축일에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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