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당 공동체의 친교를 향하여
‐친교 교회론 워크숍 자료
심흥보 신부 지음
위즈앤비즈
추천사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성령에 의한 친교인 교회를 선포합니다. “교회를 온전한 진리로 인도하시고(요한 16,13 참조) 친교와 봉사로 일치시켜 주시며, 교계와 은사의 여러 가지 선물로 교회를 가르치시고 이끄시며 당신의 열매로 꾸며 주십니다(에페 4,11-12; 1코린 12,4; 갈라 5,22 참조).”(「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 인류의 빛」[이하 교회 헌장] 4) 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영적 공동체인 교회는 성령 안에서 주님의 길이며 진리이며 생명의 친교로서 모든 사람의 구속을 위한 도구입니다. 이 친교는 성령 안에서 주님의 성체성사에서부터 성체성사를 통해 다가옵니다. 신앙 고백과 성사 그리고 교회의 통치와 친교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인 성령의 궁전(1코린 3,16; 6,19 참조)인 교회 친교의 보이지 않는 끈입니다. 1985년, 제2차 세계 주교 대의원회에서 친교인 교회를 설정했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성사와 같다. 교회는 곧 하느님과 이루는 깊은 결합과 온 인류가 이루는 일치의 표징이며 도구”입니다 (「교회 헌장」 1)
가톨릭 친교 교회론자 데니스 도일(Dennis M. Doyle)은 그의 책, 『친교 교회론』(communion ecclesiology)에서 친교 교회론이 “교회가 단순히 계시의 수용자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신비체로서 계시 그 자체와 연결되어 있다는데 역점을 두고 있다”고 말합니다. 진‐마리 로저 틸라드(Jean‐Marie Roger Tillard)는 초대 전승으로서의 교회의 본성을 친교로 압축합니다. 친교 교회론자들은 교회가 기본적으로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친교 또는 우정이라고 강조합니다. 도일은 바티칸 공의회가 친교 교회론과 연관하여 교회 쇄신을 위해, 첫째, 한 분 하느님 안에 세 분 위격의 사랑과 신적인 삶을 나누자는 초대로서, 둘째, 그리스도의 신비로운 몸과 성인들과 맺는 친교의 통공으로서, 셋째, 전체 교회의 구체화와 지역 교회에 동시에 존재하는 서로 사랑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성사적인 공동체로서, 넷째, 역사를 거쳐 순례하는 하느님의 백성으로서, 다섯째, 세상의 누룩으로서, 교회가 나아가야 한다는 다섯 가지 이정표를 제시했다고 말합니다.
이렇듯 친교는 삼위일체이신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친교를 원천과 정점으로 삼아 교황(전체 교회)과 주교단(지역 교회), 주교와 사제단, 사제와 수도자 평신도 신앙 공동체가 이루는 사랑과 일치입니다. 매일 성체성사를 통해 우리와 생명을 나누시는 예수님 그리스도와의 친교 안에서 본당 공동체가 화목하고 아끼고 서로 배려하면서 친교를 이루기를 바랍니다. 심흥보 신부님의 이 책이 평신도, 수도자, 성직자 모두의 하느님 백성을 친교의 공동체로 이끄는 데 도움이 되어 우리 교회가 한국 사회에 누룩이 되는 사랑의 공동체로 거듭 나길 바랍니다.
2008년 11월 26일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추기경
일러두기
미국 시애틀 대교구의 타코마 한인 성당에서의 교포사목과 시카고 가톨릭 연합 신학대학원에서의 유학을 마친 후 귀국해서 중견사제 연수원에 들어갔습니다. 프로그램 중에 김영남 신부님의 “사목자로서의 바오로” 강의를 듣고는 바오로 사도의 3차 전도 여행길을 따라 터키 성지순례를 다녀왔습니다. 성지순례 동안 바오로 사도와 요한계 소아시아 교회의 신앙 유산이 이민족의 침입이라는 외적 요인에 의해 몇 가지 문화 예술적 흔적만 남긴 채 산산이 사라져 버린 모습을 바라보면서 커다란 아픔을 겪었습니다. 그러면서 비록 외적 요인은 아니지만 공동체 내의 긴장과 갈등 그리고 분열에 이르는 내적 요인들이 우리 신앙 유산을 흔들고 있지는 않은지 자문하게 되었습니다.
성지순례 중에 바오로 사도가 코린토 교회의 분열상에 대해 사도적 부성으로 애타하며 눈물로 쓴 편지 10‐12장을 중심으로 묵상하면서, 우리의 현재 신앙 공동체에서 일어날 수 있고 또 부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현실상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함께 성지순례를 하던 신부님들의 조언과 지지로 이 원고를 쓰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중견사제 연수 동안 신부님들의 사랑과 지원을 받으면서 사랑과 격려로 드러나는 친교의 힘이 사람을 얼마나 행복하게 하고 새로워지게 하며 일치로 이끄는지를 새삼 느꼈습니다.
우리는 이 책 『본당 공동체들의 친교를 향하여』의 제1부 “요즘, 성당에선”에서 본당의 현실 진단을 통해 본당 공동체의 친교를 방해하는 요소들을 바라볼 것입니다. 제2부 “인류의 빛”에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론과 교회의 여러 모습과 모형 중에서 친교와 평신도들의 참여라는 관점에서, “하느님 백성,” “그리스도의 신비체,” “성령의 궁전”인 교회의 모습을 바라볼 것입니다. 그리고 “성사,” “청취자,” “제자들의 공동체,” “고난 받는 주님의 종인 교회” 그리고 소공동체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친교인 교회”의 모형을 개략적으로 살펴볼 것입니다. 그리고 제3부 “교회의 새로운 존재 양식”에서 친교 교회론에 대한 최근의 연구들과 교회 교도권에 드러난 “교회의 새로운 존재 양식”인 소공동체들에 대한 지침과 규정 및 각 지역 교회들에 생성된 소공동체들을 살펴볼 것입니다.
이 과정은 경험과 문화 그리고 신앙이라는 세 당사자의 경청과 대화를 통한 사목적 대응이라는 실천 신학적 방법론으로 진행하게 됩니다. 실천신학적 방법론은 교회 공동체가 마주친 사건과 상황에 대해, 교회 공동체가 지금까지 주고받은 경험은 무엇이고, 그러한 사건과 상황에 대한 또는 그와 상응하는 그 나라와 지역 사회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는 무엇이며, 그리고 그에 대한 주님의 말씀과 교회의 신학적 가르침은 무엇인지 경청하고, 이 삼자가 서로 대화를 통해 교회가 새롭게 마주친 사건과 상황에 대해 어떻게 사목적으로 대응할 것인가를 논의하여 선택합니다.
그래서 이 과정에서는 참가자들이 우선 ‘예제’에서 몇 가지 예를 보면서 그 과의 주제에 집중하며, ‘경청’에서 그 과의 주제에 대한 참가자 자신들의 경험과 한국 전통 및 현대 정치 경제 문화의 예와 그리고 성경과 교회의 가르침을 밝힙니다. 그리고 그 주제와 관련된 ‘주님 말씀’과 ‘교회의 가르침’에서 주님의 말씀과 교회의 가르침을 듣고, ‘실천 신학적 전망’에서 주제를 풀어가는 힌트와 팁을 얻고, ‘논의와 사목적 대응 선택’에서 최종적으로 참가자 자신들이 각자 또는 공동체적인 차원에서 어떻게 할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결정합니다. 결정할 때는 책 뒷부분에 있는 부록 1 ‘문제 해결 방식’과 부록 2 ‘사목 기획’을 참조하여 심도 있게 논의하고 교회적인 방법으로 실천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기도’에서 자신들이 선택한 실천이 잘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주님께 간구합니다.
이 「본당 공동체들의 친교를 항하여」 워크숍을 통해 본당 공동체가 사랑과 일치의 친교 공동체로 거듭 태어나게 되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우리 본당 공동체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사랑의 친교 신비 안에서 우리 한국 사회를 어떻게 복음화하며 또 한국 사회에 어떻게 봉사할 것인지를 찾아내어 실현하기를 바랍니다. 그 내용을 좀 더 깊이 새기고 싶으시면, 필자의 책, 『공동체들의 친교』(성바오로)와 『현대 실천사목신학 개론』(위즈앤비즈)에서 이론적인 내용을 더 살펴볼 수 있습니다.
추천해 주신 정진석 추기경님과 이 원고를 터키 성지순례 중에 카파도키아 구상이라고 칭하며 함께해 주시고 적극적인 성원을 아끼지 않으신 2008년 중견사제 연수원장 박기주 신부님을 비롯한 17기 신부님들과 임직원 여러분, 라병국, 김귀웅, 홍상표 신부님 및 교정해 주신 강 디모테아, 심 카타리나 수녀님과 두 본당 사목협의회원님들, 무더운 여름에도 불구하고 워크숍을 통해 충실히 참여해 주신 가톨릭 교리 신학원의 2009년도 성서영성학과 학생분들과 삼성동 성가정 성당 사무장님께도 깊이 감사드립니다. 아울러 이 원고를 지난 12월까지 월간 「사목정보」에 2년이라는 긴 기간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연재해 주시고 또 출간까지 해 주신 차동엽 신부님과 김양석 편집장님과 김숙향, 박진령 연구원님 및 위즈앤비즈 임직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2012년 1월 1일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천주교 서울대교구 삼성동 성가정 성당
주임사제 심흥보 신부
본당 공동체의 친교를 향하여 교과과정표
과 |
주 제 |
내 용 |
성 경 |
교회 문헌 |
기 도 |
1 |
본당 신부님이 바뀌면 |
복음 선포자의 역할 |
1코린 3,3‐10ㄱ. 16‐17. 21‐23 |
교회 헌장 4. 6 |
평화의 기도 |
2 |
점봐도 됩니까 |
성찬례와 이교 제사 |
1코린 10,14‐22 |
교회 헌장 3 |
그리스도인의 생활 규범 |
3 |
무엇이든 해도 돼요 |
무슨 일이든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
1코린 10,23‐33 |
교회 헌장 16‐17. 39‐40 |
봉헌기도 |
4 |
돈 없으면 성당도 못 가요 |
주님의 만찬 |
1코린 11,17‐34 |
교회 헌장 9 |
친구를 주셨기에 감사드립니다 |
5 |
다른 것은 틀린 것인가요? |
하나이신 성령과 여러 은사 |
1코린 12,1‐11 |
교회 헌장 12 |
존중하게 하소서. |
6 |
우리 없으면 안 돼 |
하나인 몸과 여러 지체 |
1코린 12,12‐14.21‐31 |
교회 헌장 32 |
종말과 공동체 생활 |
7 |
사제의 사목권과 친교 공동체 |
지도자와 봉사자 |
1티모 5,1‐3; 2티모 3,1‐5; 4,2‐5; 티토 1,6‐9; |
교회법전 511. 519. 536. |
봉사자의 자격 |
8 |
세상과 주님 교회 |
신비인 교회 |
마태 16,18‐19; 18,17 |
교회 헌장 5 |
주님을 찬미하여라 |
9 |
우리는 한 식구 |
하느님 백성인 교회 |
사도 2,42‐47 |
교회 헌장 9 |
그리스도를 통하여 베풀어진 은총 |
10 |
유기체의 각 부분들 |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
1코린 12,7.12 |
교회 헌장 7 |
그리스도 찬가 |
11 |
성령 안의 인간 공동체인 교회 |
성령의 궁전인 교회 |
1코린 3,16‐17; 6,19; 2코린 6,16; |
교회 헌장 4. 9. 17. 53 |
오소서, 성령님! |
12 |
거울 속의 우리 성당 |
성사인 교회 |
요한 13,34‐35 |
교회 헌장」 1 |
‘어느 사제의 기도’ 중에서 |
13 |
누구의 교회인가 |
청취자인 교회 |
신명 6,4‐9 |
계시 헌장 1;일치 교령 1. 23 |
말씀이신 그리스도 |
14 |
하느님 나라를 향한 인생의 순례자 |
제자들의 공동체인 교회 |
마르 3,14‐15; 마태 28,19‐20 |
교회 헌장 10. 15 |
의탁의 기도 |
15 |
고난 받는 하느님의 어린양 |
주님의 고난 받는 종인 교회 |
이사 53,4-6; 마태 20,28; 콜로 1,24 |
교회 헌장 7. 8. 11 |
충실한 하인 |
16 |
일치와 나눔 |
친교인 교회 |
요한 14,15-23 |
교회 헌장 4. 7-9. 13 |
주님을 찬양하라 |
17 |
갈등과 화해, 분열과 일치 |
친교인 교회‐시노드와 신앙교리성 |
요한 17,20-23.26 |
제2차 세계주교대의원희외 II.B.b.C.1; |
교회를 위한 기도 |
18 |
친교의 기쁨 |
친교 교회론의 최근 연구들 |
1요한 4,7.15-16 |
데니스 도일, 친교 교회론 |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
19 |
교회의 새로운 존재 양식 |
공동체들의 친교 |
요한 15,4-5. 7 |
현대의 복음 선교 58 |
주님은 나의 목자 |
20 |
세상을 사는 가난한 평신도 그리스도인들의 모임 |
라틴 아메리카의 기초 교회 공동체 |
로마 8,18-25 |
제2차 라틴 아메리카 주교회의, 10. 11 |
희년을 선포하시다 |
21 |
자발성과 책임성을 간직한 공동체 |
아프리카의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 |
사도 4,32-35 |
말라위의 패트릭 칼리롬베 주교 |
즈카르야의 노래 |
22 |
다문화 속의 조화 |
아시아의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 |
사도 15,7-11 |
제5차 아시아 주교회의 8.1.1; 9.5 |
마리아의 노래 |
23 |
본당 공동체의 친교 |
한국의 소공동체 |
로마 12,1-2 |
서울대교구 1993 사목교서 |
시므온의 노래 |
24 |
본당 사목 의사 결정 과정 |
본당 소공동체 운동의 과제 |
필립 2,1-11 |
희망을 안고 하느님께 28. 25-26. 38 |
주님의 기도 |
차 례
추천서
일러두기
제1부 요즘, 성당에선
‐ 현실 진단과 기초 교육
1. 복음 선포자의 역할
‐ 본당 신부님이 바뀌면
2. 성찬례와 이교 제사
‐ 절해도 됩니까
3. 무슨 일이든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 무엇이든 해도 돼요
4. 주님의 만찬
‐ 돈 없으면 성당도 못 가요
5. 하나이신 성령과 여러 은사
‐ 다른 것은 틀린 것인가요?
6. 하나인 몸과 여러 지체
‐ 우리 없으면 안 돼
7. 지도자와 봉사자
‐ 사제의 사목권과 친교 공동체
제2부 인류의 빛
–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회론
제2부에 들어가면서
8. 신비인 교회
‐ 사람 세상과 주님 교회
9. 하느님 백성인 교회
‐ 우리는 한 식구
10.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 유기체의 각 부분들
11. 성령의 궁전인 교회
‐ 성령 안의 인간 공동체인 교회
12. 성사인 교회
‐ 거울 속의 우리 성당
13. 청취자인 교회
‐ 누구의 교회인가
14. 제자들의 공동체인 교회
‐ 하느님 나라를 향한 인생의 순례자
15. 주님의 고난 받는 종인 교회
‐ 고난 받는 하느님의 어린양
16. 친교인 교회
‐ 일치와 나눔
제3부 교회의 새로운 존재 양식
‐ 친교 교회론과 소공동체
제3부에 들어가면서
17. 친교인 교회 ‐ 시노드와 신앙교리성
‐ 갈등과 화해, 분열과 일치
18. 친교 교회론의 최근 연구들
‐ 친교의 기쁨
19. 교회의 새로운 존재 양식, 공동체들의 친교
‐ 교회의 새로운 존재 양식, 공동체들의 친교: 기초 교회 공동체와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소공동체)
20. 라틴 아메리카의 기초 교회 공동체
‐ 세상을 사는 가난한 평신도 그리스도인들의 모임
21. 아프리카의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
‐ 자발성과 책임성을 간직한 공동체
22. 아시아의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
‐ 다문화 속의 조화
23. 한국의 소공동체
‐ 본당 공동체의 친교
24. 본당 소공동체 운동의 과제
‐ 본당 사목 의사 결정 과정
부록 의사 결정 과정
I. 문제 해결 방식
II. 사목 기획
제1부
요즘, 성당에선
‐현실 진단 및 기초 교육
제1부 요즘, 성당에선
‐ 현실 진단과 기초 교육
1. 복음 선포자의 역할
‐ 본당 신부님이 바뀌면
2. 성찬례와 이교 제사
‐ 절해도 됩니까
3. 무슨 일이든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 무엇이든 해도 돼요
4. 주님의 만찬
‐ 돈 없으면 성당도 못 가요
5. 하나이신 성령과 여러 은사
‐ 다른 것은 틀린 것인가요?
6. 하나인 몸과 여러 지체
‐ 우리 없으면 안 돼
7. 지도자와 봉사자
‐ 사제의 사목권과 친교 공동체
1. 복음 선포자의 역할
예제 본당 신부님이 바뀌면
신자1 본당 신부님이 바뀌면 모두 바뀝니다. 미사에서부터 성당 분위기 전체가 다 바뀝니다.
신자2 본당 신부님이 바뀌면 어떤 단체는 죽고 신부님께서 관심을 갖는 다른 단체는 살아납니다. 골고루 다 사랑해 주시면 좋겠어요.
경청
1. 경험: 이런 상황에 처한 적이 있습니까? 있다면, 어떤 것이었습니까?
왜 그랬습니까? 그에 대한 나의 생각도 말해 봅시다.
2. 문화: 이와 관련하여 우리 전통 문화나 현 한국 사회는 어떻습니까?
예를 들어 대통령이나 기관장이 바뀔 때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3. 신앙: 이와 관련하여 주님 말씀과 교회의 가르침을 알아봅시다.
주님 말씀 복음 선포자의 역할(1코린 3,3‐10ㄱ. 16‐17. 21‐23)
3 3여러분은 아직도 육적인 사람입니다. 여러분 가운데에서 시기와 싸움이 일고 있는데, 여러분을 육적인 사람이 아니라고, 인간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까? 4어떤 이는 “나는 바오로 편이다.” 하고 어떤 이는 “나는 아폴로 편이다.” 하고 있으니, 여러분을 속된 사람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까? 5도대체 아폴로가 무엇입니까? 바오로가 무엇입니까? 아폴로와 나는 주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정해 주신 대로, 여러분을 믿음으로 이끈 일꾼일 따름입니다. 6나는 심고 아폴로는 물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자라게 하신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7그러니 심는 이나 물을 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오로지 자라게 하시는 하느님만이 중요합니다. 8심는 이나 물을 주는 이나 같은 일을 하여, 저마다 수고한 만큼 자기 삯을 받을 뿐입니다. 9우리는 하느님의 협력자고, 여러분은 하느님의 밭이며 하느님의 건물입니다. 10나는 하느님께서 베푸신 은총에 따라 지혜로운 건축가로서 기초를 놓았고, 다른 사람은 집을 짓고 있습니다.
16여러분이 하느님의 성전이고 하느님의 영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모릅니까? 17누구든지 하느님의 성전을 파괴하면 하느님께서도 그자를 파멸시키실 것입니다. 하느님의 성전은 거룩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바로 하느님의 성전입니다.
21그러므로 아무도 인간을 두고 자랑해서는 안 됩니다. 사실 모든 것이 다 여러분의 것입니다. 22바오로도 아폴로도 케파도, 세상도 생명도 죽음도, 현재도 미래도 다 여러분의 것입니다. 23그리고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것이고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것입니다.
교회의 가르침 성령과 교회의 표상들(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회 헌장」 4. 6)
성령께서는 교회 안에 그리고 바로 성전인 신자들의 마음 안에 머무르시고(1코린 3,16; 6,19 참조), 그 안에서 기도하시며 그들이 하느님의 자녀라는 것을 증언하여 주신다(갈라 4,6; 로마 8,15-16,26 참조). 교회를 온전한 진리로 인도하시고(요한 16,13 참조) 친교와 봉사로 일치시켜 주시며, 교계와 은사의 여러 가지 선물로 교회를 가르치시고 이끄시며 당신의 열매로 꾸며 주신다(에페 4,11-12; 1코린 12,4; 갈라 5,22 참조). 복음의 힘으로 성령께서는 교회를 젊어지게 하시고 끊임없이 새롭게 하시며 자기 신랑이신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도록 이끌어 주신다.(「교회 헌장」4)
교회를 하느님의 집이라고 한다(1코린 3,9 참조). 주님께서 친히 당신을 돌에 비겨,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이 바로 모퉁이의 주춧돌이 되었다고(마태 21,42 병행; 사도 4,11; 1베드 2,7; 시편 118[117],22 참조) 하셨다. 그 기초 위에서 교회가 사도들을 통하여 지어졌고(1코린 3,11 참조), 그 기초 때문에 교회는 견고한 결속력을 지닌다. 그 건물은 여러 가지 이름으로 꾸며진다. 하느님의 집(1티모 3,15 참조), 곧 하느님의 가족들이 살고 있는 곳, 하느님의 신령한 거처(에페 2,19-22 참조), 하느님께서 사람들과 함께 계시는 장막(묵시 21,3 참조), 특히 거룩한 교부들이 찬미하는, 돌로 지은 지성소에서 표상되는 성전이라 불리며, 전례에서는 당연히 거룩한 도읍, 새 예루살렘에 비겨진다. 바로 그 안에서 우리는 이 세상의 살아 있는 돌로 쓰인다(1베드 2,5 참조). 그 거룩한 도읍이 새로운 세상에서 “신랑을 위하여 단장한 신부처럼 차리고”(묵시 21,1-2) 하느님께서 계시는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것을 요한은 보았다.(「교회 헌장」6)
실천 신학적 전망
사목정책을 세우고 사목적인 결정을 내리는 것은 주임사제의 몫입니다. 주임사제는 한 지역에 부임하여 부임된 곳의 상황을 살펴봅니다. 전임 주임사제의 사목 방향과 그 결과 등의 현실 분석을 통해 어떤 영적 보충을 주어야 할지를 교구장의 사목 지침과 관련하여 결정하게 됩니다. 어떤 사목 방향을 언제 시행할 것인지, 어떤 과정을 거칠 것인지 등. 아울러 그 과정에서 주임사제는 협력자들의 조언과 협력을 구하게 됩니다.
논의와 사목적 대응 선택
오늘 여기서 우리 본당의 사목환경 속에서 우리의 목자로 파견된 주임 신부님의 사목에 어떤 방법으로 참여할 수 있습니까?
기도 평화의 기도
주님,
저를 당신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신앙을
그릇됨이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둠이 있는 곳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는 자 되게 하소서.
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하고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며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써 용서받으며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게 됨을 깨닫게 하소서.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
2. 성찬례와 이교 제사
예제 점봐도 됩니까
신자1 예수님은 믿지만, 그래도 궁금하고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점집에도 가고 철학관에 가서 살짝 물어봤어요.
신자2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돈에 얽매여 예수님이나 사람들보다 먼저 돈에 의지하게 될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경청
1. 경험: 요즘 신앙생활을 하면서 문화 풍습이나 미신적인 행위 또는 주님의 가르침과 반대되는 사상과 충돌되어 곤란한 적이 있었습니까?
있다면 어떤 것이었습니까?
왜 그랬습니까? 그에 대한 나의 생각도 말해봅시다.
2. 문화: 이와 관련하여 우리 전통 문화나 현 한국 사회의 문화적 반응이나 입장은 어떻습니까?
예를 들어 굿이나 점을 보는 것에 대해서 우리 사회는 어떻습니까?
돈이나 권력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3. 신앙: 이와 관련하여 주님 말씀과 교회의 가르침을 알아봅시다.
주님 말씀 성찬례와 이교 제사(1코린 10,15‐20)
10 15나는 여러분을 슬기로운 사람으로 여겨 말합니다. 내가 하는 말을 스스로 판단하십시오. 16우리가 축복하는 그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동참하는 것이 아닙니까? 우리가 떼는 빵은 그리스도의 몸에 동참하는 것이 아닙니까? 17빵이 하나이므로 우리는 여럿일지라도 한 몸입니다. 우리 모두 한 빵을 함께 나누기 때문입니다. 18저 이스라엘 백성을 보십시오. 희생 제물을 먹는 이들은 모두 제단에 동참하는 이들이 아닙니까? 19그러니 내가 말하려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이 무엇이라도 된다는 말입니까? 우상이 무엇이라도 된다는 말입니까? 20아닙니다.
교회의 가르침 성자의 파견과 활동(「교회 헌장」 3)
성자께서는 성부에게서 파견되어 오셨다. 성부께서는 성자 안에서 천지 창조 이전에 우리를 뽑으시어 당신 자녀로 삼으시기로 미리 정하시고, 당신 뜻에 따라 성자 안에서 만물을 새롭게 하고자 하셨다(에페 1,4‐5.10 참조).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성부의 뜻을 이루시려고, 지상에서 하늘나라를 세우기 시작하시고 성부의 신비를 우리에게 계시하셨으며, 당신의 순명으로 구원을 성취하셨다. 신비 안에서 이미 현존하는 그리스도의 나라 곧 교회는 하느님의 힘으로 세상에서 볼 수 있게 자라고 있다. 그 기원과 성장은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창에 찔리신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흘러나온 피와 물로 상징되었고(요한 19,34 참조), 당신의 십자가 죽음을 두고 “나는 땅에서 들어 올려지면 모든 사람을 나에게 이끌어 들일 것이다”(요한 12,32 참조) 하신 주님의 말씀으로 예고되었다. “우리의 파스카 양이신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신”(1코린 5,7 참조) 십자가의 희생 제사가 제단에서 거행될 때마다 우리의 구원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동시에 성찬의 빵을 나누는 성사로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루는(1코린 10,17 참조) 신자들의 일치가 표현되고 실현된다. 모든 사람이 세상의 빛이신 그리스도와 이렇게 일치되도록 불리었으며, 우리는 그리스도에게서 나와 그리스도를 통하여 살며 그리스도께 나아가고 있다.(「교회 헌장」3)
실천 신학적 전망
돈이나 권력 등 현세적인 모든 것이 그 자체로 예수님과 반대되거나 죄악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의 말씀이나 교회의 가르침을 무시하거나 인간에 대한 애정이나 우정을 외면한 채 우리에게 현실적으로 도움이 된다고 느끼는 돈이나 현세적인 권력에 의지하게 된다면 그것은 우상숭배가 됩니다.
여기서 잠시 우상 숭배나 이교 제사로 간주되었던 제사 문제를 되돌아보면, 천주교회는 제사 문제로 조선사회에서 탄압을 받았던 1791년 신해박해 이후 1939년 교황 비오 12세가 ‘중국 의례에 관한 훈령'을 통해 제사에 대한 관용적인 조치를 내림으로써, 더 이상 제사는 미신이나 우상숭배가 아니라 조상을 기리는 미풍양속으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한국 천주교 사목 지침서」 제134조 제례).
신앙과 문화라는 연장선상에서 되돌아보면, 복음이 한 지역에 전해질 때 과거에는 주입식으로 이루어졌지만, 현재는 지역 문화 안에 융합되고 아로새겨지는 토착화( 「거룩한 전례에 관한 헌장 거룩한 공의회」 [이하 전례 헌장] 37-40 민족의 특성과 전통에 대한 적응 규범과 교구와 본당 사목구의 전례 적응 절차;「교회의 선교 사명」 52-54 복음과 민족 문화의 융합)를 거치게 됩니다. 한국 문화 안에 전래된 천주교회는 어떤 모습인지, 한국화된 천주교의 모습은 무엇인지 자문합시다. 어떻게 한국 천주교회가 한국 사회 내에서 복음의 빛을 드러내고 있는지 되새깁시다.
논의와 사목적 대응 선택
우리의 기대와는 다른 방향으로 변화하고 미래를 보장받을 수 없는 불확실한 세상에서, 미신과 우상 숭배의 유혹을 떨쳐버리기 위해 어떻게 하겠습니까?
자본주의 세상에서 돈이나 현실적인 권력에 얽매이거나 구애받지 않고, 주님의 가르침을 따라 물질과 권력을 유용하기 위해 어떻게 하겠습니까?
기도 그리스도인의 생활 규범(로마 12,9-18)
12 9사랑은 거짓이 없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악을 혐오하고 선을 꼭 붙드십시오.
10형제애로 서로 깊이 아끼고, 서로 존경하는 일에 먼저 나서십시오.
11열성이 줄지 않게 하고 마음이 성령으로 타오르게 하며 주님을 섬기십시오.
12희망 속에 기뻐하고 환난 중에 인내하며 기도에 전념하십시오.
13궁핍한 성도들과 함께 나누고 손님 접대에 힘쓰십시오.
14여러분을 박해하는 자들을 축복하십시오. 저주하지 말고 축복해 주십시오.
15기뻐하는 이들과 함께 기뻐하고 우는 이들과 함께 우십시오.
16서로 뜻을 같이하십시오. 오만한 생각을 버리고 비천한 이들과 어울리십시오.
스스로 슬기롭다고 여기지 마십시오.
17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에게 좋은 일을 해 줄 뜻을 품으십시오.
18여러분 쪽에서 할 수 있는 대로, 모든 사람과 평화로이 지내십시오.
3. 무슨 일이든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예제 무엇이든 해도 돼요
신자1 담배 피워도 돼요. 술 먹어도 돼요. 제사는 물론이고 아무 것도 금지하지 않아요. 하고 싶은 것 다 하면서 주님 안에서 신나게 사세요. 예수님께서 우리를 자유롭고 재미있게 살라고 오신 것이랍니다.
신자2 예수님께서 우리 신나게 살라고 돌아가신 것만은 아니잖아요?
신자3 기도와 희생과 자선. 이 세 가지가 그리스도교 신자 생활의 기본 축이 아닌가요? 하느님께서 내게 베풀어주신 모든 것에 감사하고 찬미하는 기도를 바치고, 주님께서 생명을 바쳐 살려주심에 보답하는 의미로 검소한 생활을 영위하며 절제하는 희생을 하고 그 희생으로 남은 것을 형제들과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는 자선이 우리 그리스도교 신앙생활의 근본이잖아요.
경청
1. 경험: 요즘 나를 비롯한 천주교 신자가 세상 사람들과 어떻게 다르게 삽니까?
왜 그렇게 삽니까? 그에 대한 나의 생각도 말해봅시다.
2. 문화: 이와 관련하여 우리 전통 문화나 현 한국 사회는 어떻습니까?
한국인들은 무엇을 추구합니까?
무엇이 삶과 활동의 최고 가치 기준입니까?
과거와 현재를 비교해볼 때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그리고 종교와 세대, 계층들 사이에 어떤 가치들이 서로 충돌하고 있습니까?
3. 신앙: 이와 관련하여 주님 말씀과 교회의 가르침을 알아봅시다.
주님 말씀 무슨 일이든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1코린 10,23‐33)
10 23“모든 것이 허용된다.” 하지만, 모든 것이 유익하지는 않습니다. “모든 것이 허용됩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성장에 도움이 되지는 않습니다. 24누구나 자기 좋은 것을 찾지 말고 남에게 좋은 것을 찾으십시오. 25시장에서 파는 것은 양심을 따져 보지 말고 무엇이든지 먹으십시오. 26“세상과 그 안에 가득 찬 것들이 주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27불신자 가운데 누가 여러분을 초대하여 여러분이 가고자 한다면, 양심을 따져 보지 말고 여러분 앞에 차려 놓는 것은 무엇이든지 먹으십시오. 28그러나 누가 여러분에게 “이것은 제물로 바쳤던 것입니다.” 하고 말하거든, 그것을 알린 사람과 그 양심을 생각하여 먹지 마십시오. 29내가 말하는 양심은 여러분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양심입니다. 사실 무엇 때문에 내 자유가 남의 양심으로 판단을 받아야 하겠습니까? 30내가 감사하는 마음으로 식사를 함께 하면, 내가 감사하는 그 음식 때문에 비난받을 까닭이 어디 있겠습니까? 31그러므로 여러분은 먹든지 마시든지, 그리고 무슨 일을 하든지 모든 것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십시오. 32유다인에게도 그리스인에게도 하느님의 교회에도 방해를 놓는 자가 되지 마십시오. 33무슨 일을 하든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애쓰는 나처럼 하십시오. 나는 많은 사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내가 아니라 그들에게 유익한 것을 찾습니다.
교회의 가르침 교회와 선교 특성 및 보편적 성화 소명(「교회 헌장」 16‐17. 39‐40)
하느님의 영광과 이 모든 사람의 구원을 증진하고자, 교회는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 16,15) 하신 주님의 명령을 기억하고 선교 촉진에 전력하고 있다.(「교회 헌장」16).
교회는 자신의 활동을 통하여, 사람들의 마음과 정신에 또는 민족들의 고유 외례와 문화에 심어져 있는 좋은 것은 무엇이든 없어지지 않도록 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하느님의 영광과 악마의 패배와 인간의 행복을 위하여 치유되고 승화되며 완성되게 한다. … 이렇게 교회는 동시에 기도하고 일하여, 온 세상이 모두 하느님의 백성, 주님의 몸, 성령의 궁전이 되어 만물의 머리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우주의 창조주이신 성부께 온갖 영예와 영광을 드린다.(「교회 헌장」17)
교회의 신비를 거룩한 공의회가 제시하는 대로, 교회는 흠 없이 거룩하다고 믿어진다. 성부와 성령과 더불어 “홀로 거룩하시다”고 칭송받으시는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당신의 신부로 삼아 사랑하시고 교회를 거룩하게 하시려고 당신 자신을 내어 주셨으며(에페 5,25-26 참조), 교회를 당신과 결합시켜 당신 몸이 되게 하시고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성령의 선물로 가득 채워 주셨기 때문이다. … 교회의 이 거룩함은 성령께서 신자들 안에서 맺어 주시는 은총의 열매로 끊임없이 드러나며 또 드러나야 한다. 그 거룩함은 자기 삶에서 사랑의 완덕을 지향하며 남들을 감화시키려고 노력하는 개인들에게서 여러 가지 형태로 표출되고, 흔히 복음적 권고라고 불려 왔던 권고의 실천에서 고유한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성령의 이끄심을 받아 개인적으로든 교회에서 인정받은 생활 형태나 신분으로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받아들인 복음적 권고의 실천은 이 거룩함의 빛나는 증거와 모범을 세상에 보여 주고 있으며 또 보여 주어야 한다.(「교회 헌장」39)
어떠한 신분이나 계층이든 모든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교 생활의 완성과 사랑의 완덕으로 부름 받고 있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자명한 일이며, 그 성덕으로 지상 사회에서도 더욱 인간다운 생활양식이 증진된다. 그 완덕에 이르고자 신자들은 그리스도께 받은 힘을 다하여 그분의 발자취를 따르며, 그분의 모습을 닮아 모든 일에서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따르고, 하느님의 영광과 이웃에 대한 봉사에 온 마음으로 헌신하여야 한다.(「교회 헌장」40)
실천 신학적 전망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자유를 선물해 주셨습니다. 그 자유로 선을 이루고 희생과 봉사를 선택한다면 우리는 이 땅에 하느님 나라가 완성되는데 협력하는 것이 되겠지만, 이익 추구와 목표 달성에만 사용한다면 각박함과 처절한 전투장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자기 계발과 이웃에 대한 봉사를 조화롭게 이루고, 자기 계발을 이웃 봉사의 길로 삼아 공동선을 이룩하도록 합시다. 온전히 자유로운 의지로 아버지께 충실하여 십자가를 지고 가신 예수님과 그로 인해 부활하셔서 우리의 주님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내 삶에서 실현합시다.
논의와 사목적 대응 선택
우리를 지어내신 하느님 아버지와 죄와 악에서 구해내 주신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와 함께하시면서 우리를 구원으로 이끄시는 성령께 감사드리며 우리 공동체가 세상에 빛처럼 드러낼 수 있는 거룩한 행동은 무엇입니까? 각자의 삶에서 오늘 해야 할 것 중에 실현 가능한 것을 구체적으로 찾아 실현합시다.
기도 봉헌기도
주여 나를 받으소서.
나의 모든 자유와
나의 기억과 지성과 의지와,
저에게 있는 모든 것과
제가 소유한 모든 것을 받아주소서.
주님께서 이 모든 것을 저에게 주셨나이다.
주여, 이 모든 것을 주님께 도로 바치나이다.
모든 것이 다 주님의 것이오니
온전히 주님의 뜻대로 주관하소서.
저에게는 주님의 사랑과 은총만을 허락하소서.
저는 이것으로 만족하리이다.
-성 이냐시오 로욜라
4. 주님의 만찬
예제 돈 없으면 성당도 못 가요.
신자1 신부님은 구역 모임 때 음식을 간단히 차리라고 하지만, 일 년에 한두 번 구역 모임 차례가 자기 집으로 돌아오는 데, 손님에게 잘 차린다고 문제가 됩니까?
신자2 돈 없으면 명함도 못 내밀고 회장되기도 힘들어요. 돈 없으면 몸으로 때우기만 해야 해요.
경청
1. 경험: 요즘 신자 생활을 하면서, 경제적인 문제로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까?
있다면, 어떤 것이 있습니까?
왜 그렇습니까? 그에 대한 나의 생각도 말해봅시다.
2. 문화: 이와 관련하여 우리 전통 문화나 현 한국 사회의 정치, 경제, 문화는 어떻습니까?
경제적인 면이 사회 생활하는 데 어떤 영향을 끼칩니까?
3. 신앙: 이와 관련하여 주님 말씀과 교회의 가르침을 알아봅시다.
주님 말씀 주님의 만찬(1코린 11,17-22.33-34ㄱ)
11 17이제 내가 지시하려는 문제와 관련해서는 여러분을 칭찬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의 모임이 이익이 아니라 해를 끼치기 때문입니다. 18우선, 여러분이 교회 모임을 가질 때에 여러분 가운데에 분열이 있다는 말이 들리는데, 나는 그것이 어느 정도 사실이라고 믿습니다. 19하기야 여러분 가운데에 분파도 있어야 참된 이들이 드러날 것입니다. 20그렇지만 여러분이 한데 모여서 먹는 것은 주님의 만찬이 아닙니다. 21그것을 먹을 때, 저마다 먼저 자기 것으로 저녁 식사를 하기 때문에 어떤 이는 배가 고프고 어떤 이는 술에 취합니다. 22여러분은 먹고 마실 집이 없다는 말입니까? 아니면, 하느님의 교회를 업신여기고 가진 것 없는 이들을 부끄럽게 하려는 것입니까? 내가 여러분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하겠습니까? 여러분을 칭찬해야 하겠습니까? 이 점에서는 칭찬할 수가 없습니다. 33그러므로 나의 형제 여러분, 여러분이 만찬을 먹으려고 모일 때에는 서로 기다려 주십시오. 34배가 고픈 사람은 집에서 미리 먹어, 여러분의 모임이 심판받는 일이 없게 하십시오.
교회의 가르침 새 계약, 새 백성(「교회 헌장」 9)
어느 시대, 어느 민족이든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경외하며 의로운 일을 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다 받아들이신다(사도 10,35 참조).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을 서로 아무런 연결도 없이 개별적으로 거룩하게 하시거나 구원하시려 하지 않으시고, 오직 사람들이 백성을 이루어 진리 안에서 당신을 알고 당신을 거룩히 섬기도록 하셨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당신 백성으로 뽑으시고 그들과 계약을 맺으셨으며, 차츰차츰 그들을 가르치시고 그 역사를 통하여 당신과 당신 계획을 드러내시며 그 백성을 당신 것으로 거룩하게 하셨다. …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당신 피로 새로운 계약을 맺으시고(1코린 11,25 참조), 유다인과 이방인 가운데에서 부르신 백성을 혈육에 따라서가 아니라 오로지 성령 안에서 하나로 모으시어, 하느님의 새로운 백성이 되게 하셨다.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은 썩어 없어지는 씨앗이 아니라 썩어 없어지지 않는 씨앗에서 살아 계시는 하느님의 말씀을 통하여 새로 났으며(1베드 1,23 참조), 혈육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물과 성령으로 새로 나(요한 3,5-6 참조), 마침내 “선택된 겨레고 임금의 사제단이며 거룩한 민족이고 그분의 소유가 된 백성으로서 … 한때 하느님의 백성이 아니었지만 이제는 그분의 백성이 된 것이다”(1베드 2,9-10).(「교회 헌장」9)
실천 신학적 전망
한국 천주교회 초기에는 양반과 중인은 물론이고 상인마저 한 자리에 앉아서 미사를 봉헌하고, 같은 성체를 받아 모시는 것에 대해 아주 감격했다고 합니다. 동시에 그 자체가 조선 사회 전반에 걸친 심각한 도전으로 비춰졌다고 합니다. 오늘 우리 구역 반모임에서 부자와 가난한 자가 한 자리에 앉아서 복음을 나눕니다. 하느님 나라는 사회에서 말하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있는 자와 없는 자, 윗사람과 아랫사람, 높은 자리와 아랫자리의 사람들이 모두 같은 한 인격으로 살아가는 새로운 세상입니다.
논의와 사목적 대응 선택
어떻게 하면 교회 내에서 빈부격차를 극복할 수 있습니까? 각종 모임과 행사에서 빈부의 격차로 차별을 받거나 소외되지 않고 모두 다 같이 참여하고 함께 그리스도 예수님을 모시고 기뻐할 수 있는 방안을 고안해 봅시다.
그리고 교회 내에서 권력과 명예와 돈이 우선되는 분위기보다 영이 우선하는 분위기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나누어 봅시다.
기도 친구를 주셨기에 감사드립니다
주님, 당신은 어려서부터 줄곧
모든 것을 나에게 주셨습니다.
당신은 우리가 기쁨 속에서
이 만찬을 나누도록 허락하셨으며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풍성히 베풀어 주셨습니다.
거룩한 당신 이름으로
나를 맞아들이시고 보살펴 준 사람을
축복해 주십시오.
당신 축복으로 그들을 가득 채우시고
마지막 날까지 지켜 주십시오.
-3세기 전례기도
5. 하나이신 성령과 여러 은사
예제 다른 것은 틀린 것인가요?
신자1 단체에 가입하고 싶은데요. 어떤 사람은 레지오가 좋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성령 기도회, 빈첸시오, 성모회… 가 좋다고 하니, 어떤 단체에 들어가야 좋을지 모르겠어요.
신자2 공동체라는 말 자체가 서로 다른 사람들의 모임이 아닌가요? 그리고 누구나 들어갈 수 있고, 희로애락을 함께해야 공동체라고 할 수 있지 않나요?
경청
1. 경험: 요즘 본당이나 단체 또는 소공동체 내에서 무엇인가 결정을 내릴 때, 서로 다른 생각과 의견들의 차이 때문에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습니까?
있다면 어떤 것이었습니까?
왜 그랬습니까? 그에 대한 나의 생각도 말해봅시다.
2. 문화: 이와 관련하여 우리 전통 문화나 현 한국 사회의 정치, 경제, 문화는 어떻습니까?
의견이 서로 다를 때 어떻게 합니까? 어떤 식으로 의견을 모으고, 일을 진행해 나갑니까?
3. 신앙: 이와 관련하여 주님 말씀과 교회의 가르침을 알아봅시다.
주님 말씀 하나이신 성령과 여러 은사(1코린 12,1‐11)
12 1형제 여러분, 나는 여러분이 성령의 은사에 관해서도 알기를 바랍니다. 2여러분이 이교인이었을 때에 말도 하지 못하는 우상들에게 이끌려 정신없이 휩쓸렸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고 있습니다. 3그래서 내가 여러분에게 일러둡니다. 하느님의 영에 힘입어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예수님은 저주를 받아라.” 할 수 없고, 성령에 힘입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님은 주님이시다.” 할 수 없습니다. 4은사는 여러 가지지만 성령은 같은 성령이십니다. 5직분은 여러 가지지만 주님은 같은 주님이십니다. 6활동은 여러 가지지만 모든 사람 안에서 모든 활동을 일으키시는 분은 같은 하느님이십니다. 7하느님께서 각 사람에게 공동선을 위하여 성령을 드러내 보여 주십니다. 8그리하여 어떤 이에게는 성령을 통하여 지혜의 말씀이,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에 따라 지식의 말씀이 주어집니다. 9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 안에서 믿음이, 어떤 이에게는 그 한 성령 안에서 병을 고치는 은사가 주어집니다. 10어떤 이에게는 기적을 일으키는 은사가, 어떤 이에게는 예언을 하는 은사가, 어떤 이에게는 영들을 식별하는 은사가, 어떤 이에게는 여러 가지 신령한 언어를 말하는 은사가, 어떤 이에게는 신령한 언어를 해석하는 은사가 주어집니다. 11이 모든 것을 한 분이신 같은 성령께서 일으키십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각자에게 그것들을 따로따로 나누어 주십니다.
교회의 가르침 하느님 백성의 신앙 감각과 은사(「교회 헌장」 12)
같은 성령께서는 성사와 교역을 통하여 하느님의 백성을 거룩하게 하시고 인도하시며 여러 가지 덕행으로 꾸며 주실 뿐 아니라 또한 당신 은혜를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각자에게 나누어 주시며”(1코린 12,11) 모든 계층의 신자들에게 특별한 은총도 나누어 주신다. 각 사람에게 주신 성령의 선물은 공동선을 위한 것이라는(1코린 12,7 참조) 말씀에 따라, 성령께서는 그러한 은총으로 교회의 쇄신과 더욱 폭넓은 교회 건설을 위하여 유익한 여러 가지 활동이나 직무를 받아들이는 데에 알맞도록 신자들을 준비시키신다. 그러한 은사는 뛰어난 것이든 더 단순하고 더 널리 퍼진 것이든 교회의 필요에 매우 적합하고 유익한 것이므로 감사와 위안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이례적인 은총은 함부로 간청하지 말아야 하며, 지레 그러한 은총에서 사도직 활동의 결실을 바라지도 말아야 한다. 그렇지만 은사의 진실성과 올바른 실천에 관한 판단은 교회를 다스리는 이들에게 속하며, 성령의 불을 끄지 않고 모든 것을 시험하여 좋은 것을 붙드는 일은 특별히 그들의 소관이다(1테살 5,12.19-21 참조) (「교회 헌장」 12).
실천 신학적 전망
하느님께서는 우리 인간들을 한 사람 한 사람 다르게 만드셨고, 그 다름을 사랑하고 아껴주십니다. 그러면서도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홀로 살게 하지 않으시고 같이 어울려 살게 하셨습니다(제2차 바티칸 공의회 「현대 세계의 교회에 관한 사목 헌장 기쁨과 희망」[이하 사목 헌장] 32 참조). 하느님께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각기 다른 장점과 재질을 주셔서 인류 공동체를 위해 봉사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자기 자신을 아낌없이 내어 주지 않으면 자신을 완전히 발견할 수 없다.” (「사목 헌장」 24) 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말합니다. 서로는 서로의 경쟁자요 적이 아니라, 서로가 완성되고 구원되기 위해 서로에게 절실히 필요한 선물이며, 우리가 다 함께 하나 되어 삼위일체의 신비에 참여하는 공동체로서 구원을 이룹니다(「사목 헌장」 24 참조).
논의와 사목적 대응 선택
서로의 성품이 다르고, 서로의 환경과 생각, 그리고 행동방식이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분란을 겪지 않고 함께 나아갈 수 있겠습니까?
기도 존중하게 하소서.
주님,
제가 가지고 있는 신앙 안에서 모든 사람을 바라볼 수 있게 하소서.
모든 사람의 인격과 그 인격을 지탱해 주는 그들만의 과거를 존중하게 하소서.
그들의 과거와 그 경험에 기초하여 세워진 가치관과 행위들을 이해하게 하소서.
그들이 원하는 것들이 죄가 아니라면, 존중하고 축복하게 하소서.
그들의 온전한 자유를 진심으로 존중하고,
그들의 선택을 기쁘게 지지하게 하소서.
내 사고방식과 행동방식과는 너무나도 다른 그들의 사고와 행동이
진정 나를 살찌우고 풍요롭게 해 준다는 것을 깨닫게 하소서.
그 모든 것이 주님께서 나를 채워주기 위해 보내주신 것임을 인정하게 하소서.
내가 보는 그들의 단점과 부족함 너머에 그들의 장점과 가치가 있으며
내가 느끼는 그들의 부정적인 영향이 오히려 나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을 깨닫게 하소서.
내가 바라보고 평가하는 그보다, 주님께서 고귀하게 만들어내신 그 자신이 있음을 알게 하소서.
내가 겪는 불편함, 손해, 거북함 등이 실제로는 정반대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바라보게 하소서.
이 모든 것을 통해 주님께서 나를 구원하시고자 하신다는 것에 순종하게 하소서.
이 모든 것이 주님을 향한 저의 신앙에 기초한 것임을 기꺼이 받아들이게 하소서.
내가 알고 내가 경험해온 세계 이외에도 그들의 다른 세계가 있음을 알게 하시고,
미지의 거룩함을 향해 봉헌하고자 하는 그들 나름의 지향을 존중하게 하소서.
그들의 모든 봉헌과 헌신이 주님께 다다르도록 기도하게 하소서.
그들의 삶 속에서 숨어 활동하시는 주님을 발견하게 하소서.
그들의 예식과 희생, 봉헌이 주님께 영광이 되게 하소서.
그들의 문화와 예식을 존중하고 주님의 너그러우심으로 받아들여 함께하게 하소서.
주님께서 특별한 사랑으로 서로 다르게 창조하신 모든 사람과 함께,
그들의 선함과 거룩함에 참여하여 주님의 영광이 이 땅에 드러나게 하소서.
주님, 이 세상 모든 이와 모든 것을 합하여 주님 나라를 완성하소서.
아멘.
6. 하나인 몸과 여러 지체
예제 우리 없으면 안 돼
“레지오가 최고에요. 레지오가 없으면 예비자는 누가 데려오고, 성당의 궂은 일은 누가 하나요?” “아니에요, 빈첸시오가 없으면 가난한 사람들은 누가 돌보나요?” “연령회가 최고에요. 연령회 없으면 선교도 안돼요. 누가 그 썩는 사체를 씻어주고 닦아주나요? 다 기피하고 꺼리는데…” “그럼 전례부는요? 전례부가 없으면 미사는 누가 준비하나요?”
경청
1. 경험: 본당 내에서 신자들이나 단체들 사이에 알력이나 긴장을 가져온 적이 있습니까?
있다면, 어떤 것이었습니까?
왜 그랬습니까? 그에 대한 나의 생각도 말해봅시다.
2. 문화: 이와 관련하여 우리 전통 문화나 현 한국 사회의 정치, 경제, 문화는 어떻습니까?
주도권을 잡기 위해 어떻게 합니까?
업무분담을 어떻게 합니까?
각 분야가 어떤 식으로 조화를 이룹니까?
3. 신앙: 이와 관련하여 주님 말씀과 교회의 가르침을 알아봅시다.
주님 말씀 하나인 몸과 여러 지체(1코린 12,12‐14.21‐31)
12 12몸은 하나이지만 많은 지체를 가지고 있고 몸의 지체는 많지만 모두 한 몸인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도 그러하십니다. 13우리는 유다인이든 그리스인이든 종이든 자유인이든 모두 한 성령 안에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습니다. 또 모두 한 성령을 받아 마셨습니다. 14몸은 한 지체가 아니라 많은 지체로 되어 있습니다.
21눈이 손에게 “나는 네가 필요 없다.” 할 수도 없고, 또 머리가 두 발에게 “나는 너희가 필요 없다.” 할 수도 없습니다. 22몸의 지체 가운데에서 약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이 오히려 더 요긴합니다. 23우리는 몸의 지체 가운데에서 덜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특별히 소중하게 감쌉니다. 또 우리의 점잖지 못한 지체들이 아주 점잖게 다루어집니다. 24그러나 우리의 점잖은 지체들은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모자란 지체에 더 큰 영예를 주시는 방식으로 사람 몸을 짜 맞추셨습니다. 25그래서 몸에 분열이 생기지 않고 지체들이 서로 똑같이 돌보게 하셨습니다. 26한 지체가 고통을 겪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겪습니다. 한 지체가 영광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기뻐합니다.
27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이고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지체입니다.
교회의 가르침 하느님의 백성 안에서 누리는 평신도의 품위(「교회 헌장」 32)
교회 안에서 모든 이가 똑같은 길을 가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이가 성덕을 닦도록 불리었고 하느님의 정의에 힘입어 똑같은 신앙을 가지게 된 것이다(2베드 1,1 참조).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의 뜻에 따라 남을 위하여 교사나 신비 관리자나 목자로 세워졌지만, 모든 신자가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공통된 품위와 활동에서는 참으로 모두 평등하다. 주님께서 거룩한 교역자들과 나머지 하느님 백성을 구별하셨지만 그 구별은 동시에 결함을 가져온다. 목자들과 다른 신자들이 공통의 필연 관계로 서로 묶여지기 때문이다. 교회의 목자들은 주님의 모범에 따라 서로 자기들과 다른 신자들에게 봉사하여야 하며, 신자들도 목자들과 교사들에게 기꺼이 협력하여야 한다. 이렇게 다양성 안에서 모든 이가 그리스도의 몸에서 이루어지는 놀라운 일치에 대한 증거를 보여 주고 있다. 실제로 은총과 봉사와 활동의 다양성 그 자체가 하느님의 자녀들을 하나로 모은다. “이 모든 것을 한 분이신 같은 성령께서 일으키시기”(1코린 12,11) 때문이다.(「교회 헌장」32)
실천 신학적 전망
우리는 기도할 때 삼위의 각 인격에 대해 말합니다. “사랑을 베푸시는 하느님 아버지와 은총을 내리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시는 성령께서 여러분과 함께”(미사 통상문; 2코린 13,13 참조). “성부께서 우리를 창조하시고, 성자께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성령께서 우리를 거룩하게 하신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278). 그리고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위격은 서로 다르지만, 천주성은 하나이고, 그 영광은 동일하고, 그 위엄은 다 같이 영원합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267 참조)라고 삼위일체의 신비를 밝히는 것처럼, 우리 인간의 인격도 서로 다르지만, 같은 인간이고, 똑같이 존엄하며, 함께 구원의 길로 초대받은 같은 피조물입니다. 이 구원의 길은 사랑으로 서로를 내줌으로써 하나되신 삼위일체 하느님의 신비에 따라, 우리 서로가 서로에게 사랑으로 내어줌으로써 다양성 안의 조화로 일치하는 길입니다.
논의와 사목적 대응 선택
본당 내 신자들이나 단체들 사이의 알력과 긴장 더 나아가서는 분열을 해소하고 하나 되기 위해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구체적인 방법을 체계적으로 모색해봅시다.
기도 종말과 공동체 생활(1베드 4,8-11)
4 8무엇보다도 먼저 서로 한결같이 사랑하십시오.
사랑은 많은 죄를 덮어 줍니다.
9불평하지 말고 서로 잘 대접하십시오.
10저마다 받은 은사에 따라,
하느님의 다양한 은총의 훌륭한 관리자로서
서로를 위하여 봉사하십시오.
11말하는 이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고,
봉사하는 이는 하느님께서 주신 힘으로 봉사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하느님께서 무슨 일에서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영원무궁토록 영광과 권능을 누리십니다.
아멘.
7. 지도자와 봉사자
예제 사제의 사목권과 친교 공동체
신자1 신부님은 가실 분이고, 우리는 여기에 계속 살 사람들인데, 왜 매사에 모든 일을 신부님 결정에 따라야 하나요? 신부님은 한 분이고 우리는 여럿인데 왜 신부님이 혼자 고집을 부리시나요? 백성들의 목소리가 하느님의 목소리가 아닌가요?
신자2 신자들이 신부님들의 사목 결정권에 도전하면, 신부님들은 심리적으로 방어적이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자기 결정을 더 강하게 밀어 붙이는 것 같아요. 그런데 신부님들의 결정권을 존중하고 순명하면, 반대로 신부님들이 그제야 우리 신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 같아요.
경청
1. 경험: 요즘 교회 내에서 사목적 결정 때문에, 사제와 신자들 사이에 긴장이나 마찰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까? 있다면, 어떤 것이 있습니까?
왜 그렇습니까? 그에 대한 나의 생각도 말해봅시다.
2. 문화: 이와 관련하여 우리 전통 문화나 현 한국 사회의 정치, 경제, 문화는 어떻습니까?
옛날에는 어떻게 의견을 모았고, 어떤 식으로 결정을 내렸습니까?
요즘은 어떻습니까?
3. 신앙: 이와 관련하여 주님 말씀과 교회의 가르침을 알아봅시다.
주님 말씀 지도자와 봉사자(2티모 3,1‐5; 4,2‐5; 티토 1,6‐9)
3 1이것을 알아 두십시오. 마지막 때에 힘든 시기가 닥쳐올 것입니다. 2사람들은 자신과 돈만 사랑하고 허풍을 떨고 오만하며, 남을 중상하고 부모에게 순종하지 않으며, 감사할 줄 모르고 하느님을 무시하며, 3비정하고 매정하며, 남을 험담하고 절제할 줄 모르며, 난폭하고 선을 미워하고 4배신하며, 무모하고 교만하며, 하느님보다 쾌락을 더 사랑하면서, 5겉으로는 신심이 있는 체하여도 신심의 힘은 부정할 것입니다. 이러한 자들을 멀리하십시오.
4 2말씀을 선포하십시오.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 꾸준히 계속하십시오. 끈기를 다하여 사람들을 가르치면서, 타이르고 꾸짖고 격려하십시오. 3사람들이 건전한 가르침을 더 이상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을 때가 올 것입니다. 호기심에 가득 찬 그들은 자기들의 욕망에 따라 교사들을 모아들일 것입니다. 4그리고 진리에는 더 이상 귀를 기울이지 않고 신화 쪽으로 돌아설 것입니다. 5그러나 그대는 어떠한 경우에도 정신을 차리고 고난을 견디어 내며, 복음 선포자의 일을 하고 그대의 직무를 완수하십시오.
1 6원로는 흠잡을 데가 없어야 하고 한 아내의 충실한 남편이어야 하며, 자녀들도 신자이어야 하고 방탕하다는 비난을 받지 않아야 하며 순종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7사실 감독은 하느님의 관리인으로서 흠잡을 데가 없어야 합니다. 또한 거만하지 않고 쉽사리 화내지 않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술꾼이나 난폭한 사람이나 탐욕스러운 사람이 아니라, 8손님을 잘 대접하고 선을 사랑해야 하며, 신중하고 의롭고 거룩하고 자제력이 있으며, 9가르침을 받은 대로 진정한 말씀을 굳게 지키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건전한 가르침대로 남을 격려할 수도 있고 반대자들을 꾸짖을 수도 있습니다.
교회의 가르침 주임 사제와 사목 평의회(교회법전 제511. 519. 536조)
(제511조 교구마다 사목적 사정으로 유용한 한도만큼, 주교의 권위 아래 교구 내의 사목 활동에 관한 것을 조사하고 심의하며 이에 대한 실천적 결론을 제시하는 소임을 가지는 사목 평의회가 설치되어야 한다)
제519조 본당 사목구 주임은 자기에게 맡겨진 본당 사목구의 고유한 목자로서 교구장 주교의 권위 아래 자기에게 맡겨진 공동체의 사목을 수행하는 자이다.
제536조 ① 교구장 주교가 사제 평의회의 의견을 듣고 합당하다고 판단하면, 본당 사목구마다 사목 평의회가 설치되어야 한다. 본당 사목구 주임이 주제하는 이 회에서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그 본당 사목구에서 자기 직책에 따라 사목에 참여하고 있는 이들과 함께 사목 활동이 증진되도록 협조를 제공한다.
② 사목 평의회는 건의 투표권만 있고 교구장 주교가 정한 규범으로 규제된다.
실천 신학적 전망
사제는 복음과 교회의 정신을 바탕으로, 역사를 통해 시대적 상황에 대응해온 교회의 경험을 토대로, 현대의 사회상과 지역적 문화적 요소들을 고려하여, 하느님 백성의 원의에 귀 기울이고 그에 사목적으로 부응하는 결정을 내립니다.
논의와 사목적 대응 선택
사제의 사목권을 침해하지 않으면서, 사제가 신자들 모두에게 유익이 될 좋은 결정을 내리도록 우리 신자들이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기도 봉사자의 자격(1티모 3,8‐13)
3 8봉사자들도 마찬가지로 품위가 있어야 하고,
한 입으로 두말하지 않으며,
술에 빠져서도 안 되고
부정한 이익을 탐내서도 안 됩니다.
9그리고 깨끗한 양심으로 믿음의 신비를 간직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10또 그들을 먼저 시험해 보고 나서
흠잡을 데가 없는 경우에만 봉사직을 수행하게 해야 합니다.
11여자들도 마찬가지로 품위가 있어야 하고,
남을 험담하지 않으며,
절제할 줄 알고
모든 일에 성실해야 합니다.
12봉사자들은 한 아내의 충실한 남편이어야 하고,
자녀들과 자기 집안을 잘 이끄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13사실 봉사직을 훌륭히 수행하는 이들은 좋은 명성을 얻고,
그리스도 예수님에 대한 믿음에 더욱 큰 확신을 얻게 됩니다.
제2부
인류의 빛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회론
제2부에 들어가면서
8. 신비인 교회(The Church as Mystery)
‐ 사람 세상과 주님 교회
9. 하느님 백성인 교회(The Church as people of God)
‐ 우리는 한 식구
10.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The Church as Body of Christ)
‐ 유기체의 각 부분들
11. 성령의 궁전인 교회(The Church as Temple of the Holy Spirit)
‐ 성령 안의 인간 공동체인 교회
12. 성사인 교회(The Church as Sacrament)
‐ 거울 속의 우리 성당
13. 청취자인 교회(The Church as Herald)
‐ 누구의 교회인가
14. 제자들의 공동체인 교회(The Church as Community of Disciples)
‐ 하느님 나라를 향한 인생의 순례자
15. 주님의 고난 받는 종인 교회(The Church as Suffering servant of the Lord)
‐ 고난 받는 하느님의 어린양
16. 친교인 교회(The Church as Communion)
‐ 일치와 나눔
제2부에 들어가면서
우리는 제1부 “요즘, 성당에선”에서 본당의 현실 진단을 통해 본당 공동체의 친교를 방해하는 요소들을 바라보았습니다. 제2부 “인류의 빛”에서는 변화하는 사회의 환경에서 시대의 징표를 읽고 그때마다 응답해온 교회의 역사를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드러난 여러 가지 교회의 모습과 모형들을 통해 살펴 볼 것입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의 다양한 모습들을 드러냈습니다. 클로펜버그는 공의회 문헌에서 교회의 모습을 하느님 백성인 교회, 그리스도의 신비체, 성령의 궁전, 포도나무, 양 떼, 결혼 잔치, 신부, 양우리, 농사, 건물과 성전, 영신의 집과 거룩한 도성, 기초, 동정 성모, 순결한 배우자, 열매 맺음으로 표현한다고 했습니다. 공의회는 이런 성경적인 모습을 통해 교회를 쇄신하고자 했습니다. 공의회의 공동체 교회론은 지난 시절보다 더욱 선명해졌습니다. 그 추세는 쉽게 사라지지 않을 예정입니다. 교회의 기본 뼈대로 「교회 헌장」에 나타난 교회의 모습은 위대한 희망을 간직하고 있는 교회의 역동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희망은 교회가 삼위일체의 표상으로서 교회의 본질이며, 모든 피조물에 대한 하느님의 위대한 미래이자, 하늘 나라를 가져오려고 한 창립자의 기본 취지를 계속하려는 그 사명입니다. 그 희망은 세상 끝까지 온전히 이루어질 때까지 교회가 잊지 말아야 할 본질이며 사명입니다.
공의회는 교회의 여러 가지 모형을 기술했습니다. 신학자 애버리 둘스(Avery Dulles)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다섯 가지의 모형: 제도인 교회, 신비스런 친교인 교회, 성사인 교회, 청취자인 교회, 종인 교회를 찾았습니다. 그는 훗날 제자들의 공동체인 교회의 모형을 추가했습니다. 신학자 제롬 테이슨(Jerome P. Theisen)은 교회의 열 가지 모형: 세상의 종인 교회, 구원의 징표인 교회, 하느님 말씀의 청취자인 교회, 하느님의 징표인 교회, 예배의 촉진자인 교회, 공동체 삶과 인간 일치의 상징인 교회, 화해의 원천인 교회, 세상의 예언자인 교회, 변화의 매개인 교회, 미래의 촉진자인 교회를 기술했습니다. 신학자 도일(Dennis Doyle)과 틸라드(J.‐M.R. Tillard)와 우드(Susan K. Wood)는 친교인 교회의 모형을 발견했다. 필자는 고난 받는 종인 교회를 더합니다.
제2부에서 우리 신자들이 교회의 모습들과 모형들을 통해 교회에 대한 자신들의 의식을 새롭게 하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해 교회가 추구한 친교의 공동체를 향해 성큼 다가가기를 바랍니다. 그 내용을 좀 더 깊이 새기고 싶으시면, 필자의 책, 『공동체들의 친교』(성바오로)와 『현대 실천사목신학 개론』(위즈앤비즈)에서 더 자세한 내용을 참고할 수 있습니다.
8. 신비인 교회
예제 세상과 주님 교회
신자1 어떤 사람은 본당 활동을 하다가 성당을 그만 다니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본당 활동을 하면서 더욱 더 신앙이 깊어지기도 합니다.
신자2 성당도 세상하고 똑같아서 사람들끼리 서로 싸우고 헐뜯는 경우도 있어요.
신자3 사람은 다 똑같은 것 같은 데도, 이상하게 성당엔 다른 뭔가가 있는 것 같아요.
경청
1. 경험과 문화: 성당에서 활동할 때와 세상에서 활동할 때 어떤 면이 다르고, 어떤 면이 같습니까?
왜 그렇다고 생각하십니까?
자기가 겪은 일을 구체적으로 나누면서, 그에 대한 자신의 생각도 말해봅시다.
3. 신앙: 이와 관련하여 주님 말씀과 교회의 가르침을 알아봅시다.
주님 말씀 교회와 하느님 나라(마태 16,18‐19; 18,17)
16 18나 또한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해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19또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18 17그가 그들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거든 교회에 알려라. 교회의 말도 들으려고 하지 않거든 그를 다른 민족 사람이나 세리처럼 여겨라.
교회의 가르침 신비인 교회(「교회 헌장」 5)
교회의 신비는 그 창립에서 드러난다. 주 예수님께서는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마르 1,15; 마태 4,17 참조) 하시며, 오래전부터 성경에서 약속된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왔다는 기쁜 소식을 선포하심으로써 당신 교회를 시작하셨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가 부활하셨을 때에… 성부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당신 제자들에게 부어 주셨다(사도 2,33 참조). 그러므로 교회는 그 창립자의 은혜를 받아 사랑과 겸손과 극기의 계명을 충실히 지키며, 하느님과 그리스도의 나라를 선포하고 모든 민족 가운데에 이 나라를 세울 사명을 받았으며 또 지상에서 이 나라의 싹과 시작이 된 것이다. 교회는 조금씩 자라나는 동안 하느님 나라의 완성을 위하여 분투하며, 온 힘을 다하여 자기 임금님과 영광스럽게 결합되기를 바라고 갈망한다(「교회 헌장」 5).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그리스도께서 교회에게 주신 사명, 즉 복음을 선포하고 그 복음을 채움으로써 이 세상 끝까지 하느님 나라를 세우라는 사명을 받았다고 확언한다.
—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구하시러 다시 오실 하느님 나라를 선포했다. 이 마지막 날에 대한 선포는 ‘종말론적인 공동체’를 하느님 나라에 속하게 한다. 이 공동체는 이스라엘이 되도록 기대되었고, 모였으며, 복원되었다. 하느님께서 모든 민족들을 구원해 주시기를 바라며 말이다.
— 이스라엘의 결집은 예수님께서 그분을 따르도록 초대하고 또 실제로 그 사명에 참여한 제자들에 대한 예수님의 직무(마태 10,5-6 참조)에서 비롯되었다. 그들은 곧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들이 연결될 첫 열매이다.
— 자신의 백성들을 위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전체 상황을 바꾸었다. 그분의 죽음은 이스라엘에게 회개하도록 새롭게 그 책임을 묻게 하였다. 구원은 첫째 이스라엘에게 제공되었다. 그러나 이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수반된 구원을 받아들이도록 요구하는 것이 포함되었다. 한 개인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세례를 통해 이 새로운 종말론적인 공동체에 들어갈 수 있다.
— 이스라엘이 하느님 나라를 받아들이는 것을 거부함으로써,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진행되었고, 제자들이 이방인들에게 나아가게 되었다. 예수님에 대한 거부는 새 상황을 만들어 냈다. 이 통찰은 하느님께서, 이제 이스라엘과 많은 민족들을 새 백성이 되도록 부르셨다는 것에서 출발한다. 이 새로운 인식은 예수님의 영이 공동체가 취해야 할 방향을 계시하신 구체적인 사건들을 통해 드러난다.
— 하느님의 구약시대의 백성에 뿌리 박혀 있는(“이스라엘이라는 올리브 나무에 접목된,” 로마 11,17) 반면에, 이 새로운 하느님의 백성은 모든 이들에게 하느님의 보편적인 구원의지를 전달하는 새로운 전달자가 된다. 이것은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신 예수님께 주어진 사명을 계속하는 것이다. 그 사명의 내용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실현된 하느님 나라를 유지하는 것이다
실천 신학적 전망
하느님께 대한 우리의 신앙이 신비인 것처럼, 우리 인간의 존재와 삶도 신비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인간들에게 당신 사랑의 사명을 실현하도록 명하시고, 당신의 신비를 맡기신 우리 교회도 신비입니다. 하느님의 거룩한 신비를 담고 있으면서도, 불완전하고 나약하며 죄마저 짓는 인간들의 모임인 교회에게 이 땅에서 구원의 신비를 실현하도록 그 임무를 맡기시고 허락하시며 또 그 신비를 실현할 수 있도록 함께하시면서 힘을 주시는 하느님 사랑의 거룩함과 그 완전성에 감사드립니다.
논의와 사목적 대응 선택
성당에 다니면서 내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주님께 대한 신앙이 더욱 불러일으켜지고, 교회에 대한 애정이 솟구치게 하기 위하여 어떻게 하겠습니까? 아울러 인간들이 모여 사는 교회가 더욱 거룩하고 신비스러워지도록 하기 위해 어떻게 하겠습니까?
기도 주님을 찬미하여라(시편 103,1-5.8-14.17.20-22)
103 1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내 안의 모든 것들아, 그분의 거룩하신 이름을 찬미하여라.
2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그분께서 해 주신 일 하나도 잊지 마라.
3네 모든 잘못을 용서하시고 네 모든 아픔을 낫게 하시는 분.
4네 목숨을 구렁에서 구해 내시고 자애와 자비로 관을 씌워 주시는 분.
5그분께서 네 한평생을 복으로 채워 주시어 네 젊음이 독수리처럼 새로워지는구나.
8주님께서는 자비하시고 너그러우시며 분노에 더디시고 자애가 넘치신다.
9끝까지 따지지 않으시고 끝끝내 화를 품지 않으시며
10우리의 죄대로 우리를 다루지 않으시고 우리의 잘못대로 우리에게 갚지 않으신다.
11오히려 하늘이 땅 위에 드높은 것처럼 그분의 자애는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 위에 굳세다.
12해 뜨는 데가 해 지는 데서 먼 것처럼 우리의 허물들을 우리에게서 멀리하신다.
13아버지가 자식들을 가엾이 여기듯 주님께서는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을 가엾이 여기시니
14우리의 됨됨이를 아시고 우리가 티끌임을 기억하시기 때문이다.
17그러나 주님의 자애는 영원에서 영원까지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 위에 머무르고
당신의 의로움은 대대에 이르리라,
20주님을 찬미하여라, 주님의 천사들아
그분 말씀에 귀 기울이고 그분 말씀을 실천하는 힘센 용사들아.
21주님을 찬미하여라, 주님의 모든 군대들아,
그분 뜻을 실천하는 신하들아.
22주님을 찬미하여라, 주님의 모든 조물들아,
그분 왕국의 모든 곳에서.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9. 하느님 백성인 교회
예제 우리는 한 식구
신자1 미사만 드리고 가니까 뭐 별로 가족이란 느낌을 갖기는 힘들어요.
신자2 어디 가서 누굴 만나도 신자라고 하면 무조건 반갑고 싸게 해 줘요.
신자3 예수님처럼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하고 도우면서 한 마음을 느껴요.
경청
1. 경험: 어느 누구를 한 가족처럼 대한 적이 있습니까?
있다면, 언제 어느 누구였습니까?
지금 그에 대한 나의 생각도 말해봅시다.
2. 문화: 이와 관련하여 우리 전통 문화나 현 한국 사회의 정치, 경제, 문화는 어떻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어떤 사람을 가족같이 생각합니까?
누구와 어울리기를 좋아합니까?
3. 신앙: 이와 관련하여 주님 말씀과 교회의 가르침을 알아봅시다.
주님 말씀 첫 신자 공동체의 생활(사도 2,42‐47)
2 42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고 친교를 이루며 빵을 떼어 나누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였다. 43그리고 사도들을 통하여 많은 이적과 표징이 일어나므로 사람들은 저마다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44신자들은 모두 함께 지내며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45그리고 재산과 재물을 팔아 모든 사람에게 저마다 필요한 대로 나누어 주곤 하였다. 46그들은 날마다 한마음으로 성전에 열심히 모이고 이 집 저 집에서 빵을 떼어 나누었으며, 즐겁고 순박한 마음으로 음식을 함께 먹고, 47하느님을 찬미하며 온 백성에게서 호감을 얻었다. 주님께서는 날마다 그들의 모임에 구원받을 이들을 보태어 주셨다.
교회의 가르침 하느님 백성인 교회(「교회 헌장」 9)
어느 시대, 어느 민족이든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경외하며 의로운 일을 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다 받아들이신다(사도 10,35 참조).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을 서로 아무런 연결도 없이 개별적으로 거룩하게 하시거나 구원하시려 하지 않으시고, 오직 사람들이 백성을 이루어 진리 안에서 당신을 알고 당신을 거룩히 섬기도록 하셨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당신 백성으로 뽑으시고 그들과 계약을 맺으셨으며, 차츰차츰 그들을 가르치시고 그 역사를 통하여 당신과 당신 계획을 드러내시며 그 백성을 당신 것으로 거룩하게 하셨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질 저 새롭고 완전한 계약, 바로 사람이 되신 하느님 말씀을 통하여 전하여질 더욱 완전한 계시의 준비와 표상이 된다…. 그 새로운 계약을 그리스도께서 세우셨다.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당신 피로 새로운 계약을 맺으시고(1코린 11,25 참조), 유다인과 이방인 가운데에서 부르신 백성을 혈육에 따라서가 아니라 오로지 성령 안에서 하나로 모으시어, 하느님의 새로운 백성이 되게 하셨다.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은 썩어 없어지는 씨앗이 아니라 썩어 없어지지 않는 씨앗에서 살아 계시는 하느님의 말씀을 통하여 새로 났으며(1베드 1,23 참조), 혈육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물과 성령으로 새로 나(요한 3,5‐6 참조), 마침내 “선택된 겨레고 임금의 사제단이며 거룩한 민족이고 그분의 소유가 된 백성으로서… 한때 하느님의 백성이 아니었지만 이제는 그분의 백성이 된 것이다”(1베드 2,9‐10).
이 메시아 백성은 그리스도를 머리로 모시고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잘못 때문에 죽음에 넘겨지셨지만, 우리를 우리를 의롭게 하시려고 되살아나셨으며”(로마 4,25), 지금은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받으시어 하늘에서 영광스럽게 다스리고 계신다. 이 백성은 그 신분으로 하느님 자녀의 품위와 자유를 지니며, 성령께서 마치 성전에 계시듯 그들의 마음 안에 머무르신다. 이 백성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사랑하여야 한다는 사랑의 새 계명을 그 법으로 지니고 있다(요한 13,34 참조). 마지막으로, 이 백성은 하느님의 나라를 그 목적으로 삼는다. 하느님께서 친히 이 땅에서 시작하신 그 나라는 세말에 또한 당신 친히 완성하실 때까지 끝까지 넓혀져야 한다….
사막을 헤매던 혈족 이스라엘이 이미 하느님의 교회라고 불렸던 것처럼(2에즈 13,1; 민수 20,4; 신명 23,1 이하 참조), 현세를 거닐며 미래의 영원한 나라를 찾고 있는(히브 13,14 참조) 새 이스라엘도 그리스도의 교회라고 불린다(마태 16,18 참조). 그리스도께서 이 교회를 당신 피로 얻으셨고(사도 20,28 참조), 당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셨으며, 이 교회에 가시적 사회적 결합의 적절한 수단들을 부여하셨기 때문이다. 구원의 주인이시며 일치와 평화의 원리이신 예수님을 믿고 바라보는 이들의 무리를 하느님께서 불러 모으시어 교회를 세우시고, 모든 사람과 개인의 구원을 이룩하는 이 일치의 볼 수 있는 성사가 되게 하셨다…(「교회 헌장」 9).
실천 신학적 전망
이 교회의 모습 안에서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들이 같은 세례성사를 받아, 똑같은 그리스도교 신자가 되어 모두 다 한 하느님의 백성을 이룹니다. 과거처럼 성직자만이 사제직과 예언직 그리고 왕직을 수행한다고 여기지 않고, 그리스도교 세례를 받은 모든 이들이 자신의 삶과 활동에서 그리스도의 사제직과 예언직 그리고 왕직을 수행합니다. 서품된 사제는 직무를 통해, 평신도들은 자기에게 주어진 소명과 자질에 맞는 삶을 통해 사회 한가운데서 사제직과 예언직 그리고 왕직을 수행합니다. 그래서 성직자는 명령하고 평신도는 명령에 따라 복종하는 형태가 아니라, 하느님 나라를 향해 다 함께 영과 마음을 모아 협력하며 나아가는 형태입니다. 이 모습은 교회의 구성원들이 높낮이가 없이 한 하느님을 아버지로 둔 다 같은 형제자매로 복음적인 공동체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복음에 나타나는 하느님 백성의 모습은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가 수평적인 차원에서 친교를 누리는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논의와 사목적 대응 선택
우리 교회 신자들 모두를 한 식구처럼 받아들이고, 가족같이 살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기도 그리스도를 통하여 베풀어진 은총(에페 1,3-10)
1 3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께서 찬미받으시기를 빕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온갖 영적인 복을 우리에게 내리셨습니다.
4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
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사랑으로 5예수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미리 정하셨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그 좋으신 뜻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6그리하여 사랑하시는 아드님 안에서 우리에게 베푸신
그 은총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셨습니다.
7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를 통하여 속량을,
곧 죄의 용서를 받았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그 풍성한 은총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8하느님께서는 이 은총을 우리에게 넘치도록 베푸셨습니다.
당신의 지혜와 통찰력을 다하시어,
9그리스도 안에서 미리 세우신 당신 선의에 따라
우리에게 당신 뜻의 신비를 알려 주셨습니다.
10그것은 때가 차면 하늘과 땅에 있는 만물을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머리로 하여
한데 모으는 계획입니다.
10.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예제 유기체의 각 부분들
신자1 성당에는 열심히 활동하는 신자와 주일 신자로 구분되어 있는 것 같아요.
신자2 눈에 드러나게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 신자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느껴요.
경청
1. 경험: 나는 교회 공동체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습니까?
내 자리는 어디입니까?
왜 그렇게 생각합니까? 그에 대한 나의 생각도 말해봅시다.
2. 문화: 이와 관련하여 우리 전통 문화나 현 한국 사회의 정치, 경제, 문화는 어떻습니까?
사회에서는 어떻게 소속감을 가지게 합니까? 언제 어떤 상황에서 소속감을 느낍니까?
3. 신앙: 이와 관련하여 주님 말씀과 교회의 가르침을 알아봅시다.
주님 말씀 하나인 몸과 여러 지체(1코린 12,7.12.27)
12 7하느님께서 각 사람에게 공동선을 위하여 성령을 드러내 보여 주십니다. 12몸은 하나이지만 많은 지체를 가지고 있고 몸의 지체는 많지만 모두 한 몸인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도 그러하십니다. 27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이고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지체입니다.
교회의 가르침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교회 헌장」 7).
하느님의 아들 성자께서는 당신과 결합시키신 인간 본성 안에서 당신의 죽음과 부활로 죽음을 이기시고 인간을 구원하시어 새사람으로 변모시키셨다(갈라 6,15; 2코린 5,17 참조). 모든 민족 가운데에서 불러 모으신 당신 형제들에게 당신의 성령을 주시어 신비로이 당신의 몸을 이루셨다.
그 몸 안에서 그리스도의 생명이 신자들에게 나누어지며, 신자들은 수난을 당하시고 영광을 받으신 그리스도와 성사들을 통하여 신비롭게 실제로 결합되는 것이다. 우리는 세례를 통하여 그리스도께 동화된다… 성찬의 빵을 나누어 먹으며 실제로 주님의 몸을 모시는 우리는 주님과 더불어 또 우리 사이에 친교를 이루도록 들어 높여진다. “빵이 하나이므로 우리는 여럿일지라도 한 몸이다. 우리 모두 한 빵을 함께 나누기 때문이다”(1코린 10,17). 이렇게 우리는 모두 그 몸의 지체가 되며(1코린 12,27 참조), “서로서로 지체가 된다”(로마 12,5).
사람 몸의 지체가 여럿이지만 모든 지체가 한 몸을 이루듯이 신자들도 그리스도 안에서 그러하다(1코린 12,12 참조). 그리스도의 몸을 이룰 때에도 지체들이 서로 다르고 그 직무가 서로 다른 것이다. 성령께서는 한 분이시다. 그 성령께서 당신의 풍요와 직무의 필요에 따라 여러 가지 선물을 교회에 유익하도록 나누어 주신다(1코린 12,1‐11 참조).[…] 이 몸의 머리는 그리스도이시다. 그리스도께서 바로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모습이시며, 그분 안에서 만물이 창조되었다. 그분께서는 모든 이에 앞서 계시며 만물이 그분 안에서 존속한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몸인 교회의 머리이시다.[…] 모든 지체는 그리스도를 닮아 그들 안에 그리스도께서 모습을 갖추어야(갈라 4,19 참조). 그리하여 우리는 그리스도의 생명의 신비 안으로 받아들여지고 그분과 동화되어 그분과 함께 죽고 함께 부활하여 마침내 그분과 함께 다스릴 것이다(필리 3,21; 2티모 2,11; 에페 2,6; 콜로 2,12 등 참조).[…] 그리스도에게서 “온몸은 이 머리로부터 관절과 인대를 통하여 영양을 공급받고 잘 연결되어,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자라는 것이다”(콜로 2,19).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몸에 곧 교회 안에 봉사 직무의 은총을 끊임없이 마련하여 주시므로, 우리는 그 은총을 받아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구원을 위하여 서로 봉사한다. 이로써 우리는 사랑 안에서 진리를 따르며 모든 것을 통하여 우리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향하여 자라나게 된다(에페 4,11‐16 참조).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끊임없이 새로워지도록(에페 4,23 참조)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당신 성령을 주셨으며, 머리와 지체들 안에 현존하시는 한 분이신 똑같은 성령께서는 온몸에 생명을 주시고 온몸을 일치시키시고 움직이신다…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충만한 몸인 교회를 당신의 신적 은총으로 채워 주시어(에페 1,22‐23 참조), 교회는 하느님의 온갖 충만함을 향하여 나아가 그 충만함에 이르게 된다(에페 3,19 참조)(「교회 헌장」 7).
실천 신학적 전망
바오로 사도의 그리스도의 신비체는 교회 구성원 모두가 서로 부족한 면을 채워주면서 교회를 이루는 모습입니다. “몸의 지체 가운데에서 약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이 오히려 더 요긴합니다. 우리는 몸의 지체 가운데에서 덜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특별히 소중하게 감쌉니다”(1 코린 12,22‐23)라는 말을 교회 내의 친교에 적용한다면, 성직자 수도자들이 평신도들을 더 돌보아 주어야 한다고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오로 사도가 “첫째가 사도들이고 둘째가 예언자들이며 셋째가 교사들입니다[…]”(1코린 12,28)라는 말씀을 통해 교회 내에 순서를 정한 것을 보면, 교계적이며 제도적인 질서를 만들고자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 신비체 친교는 외적인 교계적 질서 안에서 내용적으로 나누는 관계가 될 수 있습니다.
논의와 사목적 대응 선택
주님과 사제와 수도자 그리고 평신도 지도자들과 우리 신자들이 서로 연결되어 한 교회라는 느낌을 가지고 신앙생활 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어떻게 하겠습니까? 우리 자신이 주님의 몸의 좋은 부분이 되기 위해서 어떻게 하겠습니까?
기도 그리스도 찬가(콜로 1,15-20)
1 15그분은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모상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맏이이십니다.
16만물이 그분 안에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늘에 있는 것이든 땅에 있는 것이든
보이는 것이든 보이지 않는 것이든
왕권이든 주권이든 권세든 권력이든
만물이 그분을 통하여
또 그분을 향하여 창조되었습니다.
17그분께서는 만물에 앞서 계시고
만물은 그분 안에서 존속합니다.
18그분은 또한 당신 몸인 교회의 머리이십니다.
그분은 시작이시며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맏이이십니다.
그리하여 만물 가운데에서 으뜸이 되십니다.
19과연 하느님께서는 기꺼이 그분 안에
온갖 충만함이 머무르게 하셨습니다.
20그분 십자가의 피를 통하여 평화를 이룩하시어
땅에 있는 것이든 하늘에 있는 것이든
그분을 통하여 그분을 향하여
만물을 기꺼이 화해시키셨습니다.
11. 성령의 궁전인 교회
예제 성령 안의 인간 공동체인 교회
신자1 예수님께서는 교회를 하느님 나라로 만들고 싶으셨지만, 사람들은 교회를 단체나 조직으로만 보는 것 같아요.
신자2 교회사를 보면 어두운 적도 있었지만 사람들의 실수를 통해서도 성령께서 교회를 이끌어 가시는 것 같아요.
신자3 성당에 가면 목소리 큰 사람이 주인인 것 같아요.
경청
1. 경험: 성령께서 교회 안에 살아계시고 교회를 이끄시고 계시다고 느끼신 적이 있습니까?
있다면, 언제 어떤 것이었습니까?
왜 그렇다고 생각합니까? 그에 대한 나의 생각도 말해봅시다.
2. 문화: 이와 관련하여 우리 전통 문화나 현 한국 사회의 정치, 경제, 문화는 어떻습니까?
한국의 혼을 어디서 찾습니까? 한민족의 얼을 어디서 새깁니까?
3. 신앙: 이와 관련하여 주님 말씀과 교회의 가르침을 알아봅시다.
주님 말씀 성령의 궁전
“여러분이 하느님의 성전이고 하느님의 영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모릅니까? … 여러분이 바로 하느님의 성전입니다”(1코린 3,16‐17). “여러분의 몸이 여러분 안에 계시는 성령의 성전임을 모릅니까?”(1코린 6,19) “우리는 살아 계신 하느님의 성전입니다 … ‘나는 그들과 함께 살며 그들 가운데에서 거닐리라.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2코린 6,16; 에제 37,27; 레위 26,12 참조). “그리스도 안에서 전체가 잘 결합된 이 건물이 주님 안에서 거룩한 성전으로 자라납니다. 여러분도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거처로 함께 지어지고 있습니다”(에페 2,21; 2,22 참조).
교회의 가르침 성령의 궁전인 교회(「교회 헌장」 9. 17. 53)
그리고 성부께서 성자께 지상에서 이루시도록 맡기신 일이(요한 17,4 참조) 성취된 다음, 오순절에 성령께서 교회를 끊임없이 거룩하게 하시도록 파견되셨다. 또 이렇게 신자들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한 성령 안에서 성부께 가까이 나아가는 것이다(에페 2,18 참조). 이 성령께서는 바로 생명의 영, 곧 영원한 생명으로 솟아오르는 샘이시다(요한 4,14; 7,38‐39 참조). 이 성령을 통하여 성부께서는 죄로 죽은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시며 마침내는 그들의 죽은 육신을 그리스도 안에서 부활시키실 것이다(로마 8,10‐11 참조). 성령께서는 교회 안에 그리고 바로 성전인 신자들의 마음 안에 머무르시고(1코린 3,16; 6,19 참조), 그 안에서 기도하시며 그들이 하느님의 자녀라는 것을 증언하여 주신다(갈라 4,6; 로마 8,15‐16.26 참조). 교회를 온전한 진리로 인도하시고(요한 16,13 참조) 친교와 봉사로 일치시켜 주시며, 교계와 은사의 여러 가지 선물로 교회를 가르치시고 이끄시며 당신의 열매로 꾸며 주신다(에페 4,11‐12; 1코린 12,4; 갈라 5,22 참조). 복음의 힘으로 성령께서는 교회를 젊어지게 하시고 끊임없이 새롭게 하시며 자기 신랑이신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도록 이끌어 주신다. 성령과 신부가 주 예수께 “오십시오.” 하고 말씀하신다(묵시 22,17 참조).
이렇게 온 교회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일치로 모인 백성”으로 나타난다(「교회 헌장」 4). 성령께서 마치 성전에 계시듯 그들의 마음 안에 머무르신다(「교회 헌장」9). 교회는 동시에 기도하고 일하여, 온 세상이 모두 하느님의 백성, 주님의 몸, 성령의 궁전이 되어 만물의 머리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우주의 창조주이신 성부께 온갖 영예와 영광을 드린다(「교회 헌장」17). (동정 마리아께서는) 당신 아드님의 공로로 보아 뛰어난 방법으로 구원을 받으시고 아드님과 불가분의 긴밀한 유대로 결합되시어, 천주 성자의 모친이 되시고 따라서 성부께서 가장 사랑하시는 딸이 되시며 또한 성령의 궁전이 되시는 이 최고의 임무와 품위를 지니고 계신다(「교회 헌장」 53).
실천 신학적 전망
이 교회의 모습은 한계 지어진 인간 세상 안에 사는 교회에 강력한 지원을 주고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교회 안에 머물러 계시고 교회를 이끄실 뿐만 아니라 교회 안에서 주님의 힘으로 보이지 않게 활동하고 계십니다. 교회 공동체뿐만 아니라 교회의 각 신자들이 이 모습에서 자기 삶의 특별한 의미를 가집니다. 신자들은 더 이상 사적이거나 개인적이거나 익명으로 머무르지 않고, 성령께서 신자들 안에 머무르시기 때문에 사회에서 주님의 분신이자 대리자로 삽니다. 부족한 인간이 아니라, 성령의 힘으로 이 세상에 하느님의 나라를 짓는 주체가 됩니다. 피조물인 인간은 아버지 하느님께서 나약한 인간을 사랑해 주시기 위해 그리스도를 보내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부족한 인간에게 당신의 신적 사명을 맡기셨고, 성령께서는 신자들과 함께하시면서 신자들을 보호하시고 이끄시고 주님의 사명을 실현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십니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서는 마침내 하느님 나라를 완성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교회 안에 머물러 계신다고 해서 교회가 스스로를 완전하다고 자부하기엔 충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교회는 스스로 완전치 않고 하느님 나라를 온전히 실현시키지 못한 것에 대해 부끄러워해야 하며 책임을 져야 합니다.
이 교회의 모습은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성령께서 친교를 이루어주시고 계시다는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성령께서 사람들의 노력만으로는 드러나지 않고 완성되지 않는 일을 은총으로 채워주시고 친교를 맺어주십니다. 성령께서는 소공동체가 함께 모여 주님을 초대할 때마다, 주님께서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마태 18,19‐20)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함께하여 주십니다. 그리고 성령께서는 소공동체가 가난한 이들과 병자들과 어려움에 처한 이들, 고통 받는 이들을 위해 마음을 모아 기도하도록 이끌어 주시고 그들의 기도를 들어주심으로써 그들이 친교 안에서 일치와 기쁨과 평화를 누리도록 해 주십니다. 성령께서는 소공동체가 모임에서 복음을 읽고, 묵상하고, 나눌 수 있도록, 그들이 처한 환경과 조건들을 복음에 비추어 식별하고, 기획하고, 적용할 수 있도록, 그리고 그들의 삶의 현장에서 복음을 수행하고, 증거하고, 실현할 수 있도록 힘을 불어 넣어 주십니다. 이러한 복음화의 과정 속에서 소공동체원들은 성령의 도우심으로 함께 친교를 누리게 됩니다.
논의와 사목적 대응 선택
우리 신자들 사이에 그리고 우리 교회가 세상 안에서 성령께서 함께하시고 계시다는 것을 드러내고, 성령께서 이끄시는 대로 움직이기 위해 어떻게 하겠습니까? 결정은 우리가 내리면서도 성령께서 내리시는 거룩한 교회의 결정이 되도록 하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기도 오소서, 성령님!
오소서 성령이여 창조주시여
신자들 마음속을 찾아주시어
당신이 창조하신 우리가슴을
천상의 은총으로 채워주소서.
당신의 그이름은 위로자시니
높으신 하느님의 선물이시오
생명의 샘이시며 불이시옵고
사랑과 신령하신 기름이외다.
아멘.
12. 성사인 교회
예제 거울 속의 우리 성당
신자1 성당에 오면 예수님을 만난 것처럼 편안하고 행복해요.
신자2 성당에 와서 기도만 하고 갈 뿐, 교회 공동체 차원에서 지역 사회에 아무 것도 못 보여주는 것 같아 아쉬워요.
신자3 신부님이나 수녀님은 거룩해 보이는데, 우리는 왜 거룩해 보이지 않는지 모르겠어요.
경청
1. 경험: 여러분도 이런 느낌을 가진 적이 있습니까? 있다면, 언제 어떤 것이 있습니까?
왜 그렇게 생각했습니까? 그에 대한 나의 생각도 말해봅시다.
2. 문화: 이와 관련하여 우리 전통 문화나 현 한국 사회의 정치, 경제, 문화는 어떻습니까?
예를 들어, 선비나 종교 지도자들은 어떻게 자신의 사상과 정신을 드러냅니까?
3. 신앙: 이와 관련하여 주님 말씀과 교회의 가르침을 알아봅시다.
주님 말씀 새 계명(요한 13,34‐35)
13 34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35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교회의 가르침 성사인 교회(「교회 헌장」 1)
인류의 빛(Lumen gentium)은 그리스도이시다. 그러므로 성령 안에 모인 이 거룩한 공의회는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선포하며(마르 16,15 참조), 모든 사람을 교회의 얼굴에서 빛나는 그리스도의 빛으로 비추어 주기를 간절히 염원한다.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성사와 같다. 교회는 곧 하느님과 이루는 깊은 결합과 온 인류가 이루는 일치의 표징이며 도구이므로, 앞선 공의회들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교회의 본질과 보편 사명을 자기 신자들과 온 세상에 더욱 명백하게 선언하고자 한다. 오늘날 모든 사람이 다양한 사회적 기술적 문화적 유대로 더욱 가까이 연결되어 있으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일치를 이루게 하여야 할 교회의 이러한 직무는 현대의 상황에서 한층 더 절박해지고 있다(「교회 헌장」 1).
실천 신학적 전망
이 교회의 모형은 신학적으로나 우리 주 예수님을 묵상하고 교회 자신을 이해하는 데 아주 효과적입니다. 이 모형은 신자들이 세상에 그리스도를 보여주고 복음화하는 데 아주 강력한 동기를 부여합니다. 소공동체에서 신자들이 함께 복음을 읽고 자신의 삶을 복음의 빛으로 비추어 나누면서 형제적 친교를 누릴 때, 주님께서 성사적으로 현존하십니다. 신자들이 복음을 자신들의 삶에 적용하기 시작하면서 변화될 때, 주님께서 성사적으로 현존하시는 모습이 드러납니다. 신자들이 소공동체에서 복음 말씀에 따라 함께 자신들의 상황을 변화시키려고 함께 활동할 때 주님께서 성사적으로 드러나십니다. 소공동체는 주님의 교회의 성사적인 표징이 됩니다.
논의와 사목적 대응 선택
우리들이 모여서 함께 기도하고 신앙을 나누는 교회가 우리가 사는 이웃에 그리스도를 보여주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우리가 성당에 다니면서 바라는 것과 성당에 다니기 때문에 해야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기도 ‘어느 사제의 기도’ 중에서
주님,
주님께서 저의 매 순간 매 자리에 함께해 주셨음을 저는 압니다.
제가 양이고자 했을 때 주님은 저의 목자가 돼 주셨습니다.
제가 주님께 다가서려고 했을 때 주님께서는 저를 끌어 주셨습니다.
제가 주님을 알고자 했을 때 주님께서는 저를 깨우쳐 주셨습니다.
제가 주님을 뵈옵고자 했을 때 주님께서는 저에게 드러내 주셨습니다.
제가 주님을 느끼고자 했을 때 주님께서는 저를 안아 주셨습니다.
제가 주님께 저를 바쳤을 때 주님께서는 주님 자신을 주셨습니다.
제가 주님의 교리를 가르칠 때 주님의 지혜를 주셨습니다.
제가 주님의 미사를 드릴 때 주님의 생명을 주셨습니다.
제가 주님의 성사를 집전할 때 주님의 권능을 주셨습니다.
제가 환자를 방문할 때 주님께서는 기적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제가 사람들 앞에 섰을 때 주님께서는 제 입을 열어 당신을 찬미할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제가 곤경 중에 있을 때 주님께서는 제 편을 들어 주셨습니다.
제가 악에게 시달리고 있을 때 주님께서는 제 대신 싸워 주셨습니다.
제가 분노와 갈등으로 밤을 지새울 때 주님께서는 휴식을 주셨습니다.
제가 혼자 있을 때 주님께서는 저를 위로해 주셨습니다.
제가 고독해할 때 주님께서는 천사를 보내 주셨습니다.
제가 텅비고 허전해진 가슴으로 먹을 것을 찾아 헤맬 때 주님께서는 말씀으로 배불려 주셨습니다.
제가 목말라 할 때 주님께서는 성체성사로 적셔 주셨습니다.
제가 실수했을 때 주님께서는 못 본 체해 주셨습니다.
제가 피곤에 지쳤을 때 주님께서는 제 대신 일해 주셨습니다.
제가 잘못했을 때 주님께서는 채워 주셨습니다.
제가 유혹 중에 있을 때 주님께서는 안쓰러워 어쩔 줄 모르셨습니다.
제가 유혹에 걸려 넘어졌을 때 주님께서는 다시 일으켜 주셨습니다.
제가 다시 또 범죄하였을 때 주님께서는 저와 함께 아파하셨습니다.
제가 거듭 범죄하여 수치감과 죄책감으로 시달리고 있을 때 주님께서는 저를 불러 주셨습니다.
제가 제 죄의 무게에 짓눌려 절망했을 때 주님께서는 저에게 생기를 주셨습니다.
제가 주님 곁을 떠나 도망치고 싶을 때 주님께서는 성령의 힘으로 나를 휘감아 나도 모르는 새에 다시 주님 앞에 앉아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주님께서는 제가 다시 주님 사랑의 빛 안으로 나오도록
저를 용서해 주시고
저를 끌어내 주시고
이 모든 일들을 저에게 겪도록 하심으로써
저를 거룩하게 만들어 주시고 계십니다.
이 모든 제 생애의 순간순간들이 그리고 저의 전생애의 역사가
주님의 오묘한 섭리 안에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오늘 주님 앞에 다가와서 청합니다.
주님 저를 복음의 사도로 써주소서.
제 가슴 속에 꺼지지 않는 불을 지펴 주시어
주님을 사랑하게 해 주소서.
언제나 주님께 다가와 주님을 모실 수 있도록
저를 불러 주소서.
주님께서는 제 영혼의 주인이십니다.
주님 제게 오셔서 저에게 당신이 원하시는 일을 하소서.
아멘.
13. 청취자인 교회
예제 누구의 교회인가
신자1 결정을 내릴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은 사랑이에요.
신자2 우리 성당은 가난한 이들과 어려운 이들을 우선적으로 배려하는 것 같아요.
신자3 우리 성당은 신자들의 바람과 단체활동을 최고로 쳐요.
경청
1. 경험: 우리가 결정을 내릴 때 가장 중시하는 기준들은 무엇입니까?
왜 그렇습니까? 그에 대한 나의 생각도 말해봅시다.
2. 문화: 이와 관련하여 우리 전통 문화나 현 한국 사회의 정치, 경제, 문화는 어떻습니까?
우리나라 사람들이 즐겨듣는 가르침은 무엇입니까?
가장 중시 여기는 행동지침은 무엇입니까?
3. 신앙: 이와 관련하여 주님 말씀과 교회의 가르침을 알아봅시다.
주님 말씀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여라(신명 6,4‐9)
6 4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5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6오늘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말을 마음에 새겨 두어라. 7너희는 집에 앉아 있을 때나 길을 갈 때나, 누워 있을 때나 일어나 있을 때나, 이 말을 너희 자녀에게 거듭 들려주고 일러 주어라. 8또한 이 말을 너희 손에 표징으로 묶고 이마에 표지로 붙여라. 9그리고 너희 집 문설주와 대문에도 써 놓아라.
교회의 가르침 청취자인 교회(「계시 헌장」 1)
하느님의 말씀(Dei Verbum)을 경건히 들으며 신실하게 선포하는 거룩한 공의회는 성 요한의 말씀을 따르는 바이다. “우리가 여러분에게 그 영원한 생명을 선포합니다. 영원한 생명은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을 여러분에게도 선포합니다. 여러분도 우리와 친교를 나누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의 친교는 아버지와 또 그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나누는 것입니다”(1요한 1,2‐3 참조). 그러므로 트리엔트 공의회와 제1차 바티칸 공의회의 자취를 따라 하느님의 계시와 그의 전달에 대한 전통적 가르침을 천명하며 온 세상이 구원의 선포를 들음으로 믿고, 믿으며 바라고, 바라며 사랑하게 하고자 함이다(제2차 바티칸 공의회 「하느님의 계시에 관한 교의 헌장 하느님의 말씀」[이하 계시 헌장] 1).
“일치 운동 공동체에서 그들은 복음을 들었고 또 저마다 자기 교회이며 하느님의 교회라고 한다 … 이러한 형제들의 그리스도인 생활은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으로 자라나고, 세례의 은총을 받고, 하느님의 말씀을 들음으로써 길러진다”(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일치 운동에 관한 교령 일치의 재건」 [이하 일치 교령] 1. 23).
실천 신학적 전망
기초 교회 공동체는 하느님의 말씀을 자신들과 공동체 삶의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그들은 먼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들이 들은 말씀대로 자신들의 일상에서 실현하고자 하며 그들의 삶의 조건들을 복음의 빛에 비추어 변화시키고자 합니다. 그리고 그 복음 말씀은 주님과 교회 그리고 교회 구성원간의 친교의 원천이며 기준이 됩니다. 교회는 복음 말씀에 따라 스스로 복음화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복음화된 교회는 세상을 복음화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이러한 과정은 시간적 선후가 아니라, 영적인 선후입니다. 교회가 스스로 복음화 되는 만큼 세상을 복음화시킬 수 있고, 세상을 복음화하는 노력이 교회 스스로 복음화되도록 반영되고 요청됩니다. 이 복음화의 과정에서 말씀을 통해 주님과 교회 공동체가, 교회 공동체가 말씀에 의거한 복음화에 나서면서 공동체원들 사이에 그리고 세상과 친교를 맺게 됩니다.
논의와 사목적 대응 선택
일상과 성당 활동에서 주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동시에 주님의 말씀을 내 일상과 성당 활동의 첫 자리에서 이루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겠습니까?
기도 말씀이신 그리스도
말씀이신 그리스도님,
주님께서는 선하시고도 위대하시나이다.
누가 주님을 속속들이 알고 깨달을 수 있으리이까!
그리스도님, 주님을 알고 사랑하게 하여 주소서.
주님께서는 빛이시니,
이 가난한 영혼에 한 가닥 빛살을 보내주시어,
주님을 뵙고 주님의 마음을 깨닫게 하여 주소서.
무한히 선하신 주님,
단 한 번이라도 주님을 우러러 뵙게 하소서.
주님의 그 찬란한 광휘를 조금 낮추시어,
저의 눈이 주님을 우러러 뵙고
주님의 완전하심을 바라보게 하소서.
저의 귀를 열어 주시어, 주님의 거룩한 말씀을 듣게 하소서.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주님의 가르치심을 묵상하게 하소서.
저의 정신과 지력을 열어 주시어,
저의 마음에 들어오시는 주님의 말씀을
맛들이고 올바로 알아듣게 하소서.
주님께 크나큰 믿음을 갖게 하소서.
그리하면 주님의 모든 말씀이 빛이 되어 저를 비추어 주고
주님께 나아가게 하며,
오로지 정의와 진리의 길을 거닐며 주님을 따르게 하리이다.
말씀이신 그리스도님,
주님께서는 저의 주님, 저의 유일한 스승이시나이다.
주님, 말씀하소서.
말씀께서 하늘로부터 내리심을 아노니,
주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리이다.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묵상하고 실행하리니
주님의 말씀에 생명과 기쁨, 평화와 행복이 있기 때문이나이다.
주님, 말씀하소서.
저의 주님, 저의 스승이시여,
오로지 주님의 말씀 듣기가 소원이나이다.
아멘.
-앙뜨완느 슈브리에
14. 제자들의 공동체인 교회
예제 하느님 나라를 향한 인생의 순례자
신자1 성당에서 전례를 봉헌할 때 정말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같고 또 가장 행복해요.
신자2 전례고 성경이고 교리고 계속 공부해야 하는데 너무 바빠서요…. 신자라는 말이 부끄러워요. 이리 찾고 저리 찾아도, 이렇게 믿고 저렇게 믿어도 모르는 게 점점 더 많아지는 것만 같아요. 언제나 주님과 교회에 대해 잘 알게 될지….
신자3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할 때 내가 가톨릭 신자라든가 우리가 가톨릭 교회라는 말을 못하겠어요.
경청
1. 경험: 주님을 따르는 길이 고되고 버거우십니까?
아니면, 기쁘고 편안하십니까?
왜 그렇습니까? 그에 대한 나의 생각도 말해봅시다.
2. 문화: 이와 관련하여 우리 전통 문화나 현 한국 사회의 정치, 경제, 문화는 어떻습니까?
고구려의 조의선인과 백제의 무절 그리고 신라의 화랑은 누구이고, 무엇을 배웠으며 그 역할은 무엇이었습니까?
3. 신앙: 이와 관련하여 주님 말씀과 교회의 가르침을 알아봅시다.
주님 말씀 제자들을 부르시고 파견하시다(마르 3,13-15; 마태 28,19‐20)
3 13예수님께서 산에 올라가신 다음, 당신께서 원하시는 이들을 가까이 부르시니 그들이 그분께 나아왔다. 14그분께서는 열둘을 세우시고 그들을 사도라 이름하셨다. 그들을 당신과 함께 지내게 하시고, 그들을 파견하시어 복음을 선포하게 하시며, 15마귀들을 쫓아내는 권한을 가지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28 19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20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교회의 가르침 제자들의 공동체인 교회(「교회 헌장」10. 15)
사람들 가운데에서 뽑히신 대사제 주 그리스도께서는(히브 5,1‐5 참조) 새 백성이 “한 나라를 이루어 당신의 아버지 하느님을 섬기는 사제들이 되게 하셨다”(묵시 1,6; 5,9‐10 참조). 세례 받은 사람들은 새로 남과 성령의 도유를 통하여 신령한 집과 거룩한 사제직으로 축성되었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인간의 모든 활동을 통하여 신령한 제사를 바치며 그들을 어두운 데에서 당신의 놀라운 빛 가운데로 불러 주신 분의 능력을 선포한다(1베드 2,4‐10 참조).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모든 제자는 끊임없이 기도하고 하느님을 함께 찬양하며(사도 2,42‐47 참조), 자신을 하느님께서 기쁘게 받아 주실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고(로마 12,1 참조) 세상 어디에서나 그리스도를 힘차게 증언하며, 설명을 요구하는 사람들에게는 영원한 생명에 대하여 자신들이 간직하고 있는 희망을 설명해 주어야 한다(1베드 3,15 참조)(「교회 헌장」 10). 성령께서는 모든 이가 그리스도께서 정하신 방법대로 하나인 양 떼 안에서 한 목자 밑에 평화롭게 일치되게 하려는 열망과 활동을 그리스도의 모든 제자에게서 일으켜 주신다(「교회 헌장」15).
실천 신학적 전망
이 교회의 모형은 청취자인 교회와 성사인 교회 사이에 있습니다. 이 제자들의 공동체인 교회 모형은 파견을 준비하고 변화하는 세상에서 활동에 중점을 두는 교회의 모습입니다. 이 모형은 주님 앞에 선 교회의 기본적인 태도를 보여 주기에 아주 적합합니다. 이는 세상에서 활동하는 교회의 지침이 될 수 있습니다. 성 베네딕도의 말씀, “기도하고 일하라”와 연결시킬 수 있습니다. 사도로서 활동하기 전에 기도 중에 주님의 가르침을 듣고 배우는 것이 주님의 제자가 걸어야 할 첫 걸음입니다. 소공동체는 주님과의 깊은 친교 안에 그리고 주님의 가르침을 새기고 체험하는 제자단 내부의 친교를 통해 주님과 더욱 더 견고하게 결속됨으로써, 동료 제자들과 함께 친교 안에 연대하여 사도로서 세상에 파견됩니다. 소공동체가 주님의 말씀을 통해 양성되고 주님의 성체성사로 양육되어 주님과 떨어질 수 없는 친교를 맺고 주님과 일치하여, 주님의 대리자로서 주님의 사도로서 복음을 선포하러 세상 한 가운데로 나아갑니다.
논의와 사목적 대응 선택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당신과 함께 지내게 하시고, 그들을 파견하시어 복음을 선포하게 하시며, 마귀들을 쫓아내는 권한을 가지게 하시려”고 뽑으셨다고 하셨습니다. 나와 우리 공동체가 주님의 제자로서의 본분을 다하기 위해, 어떻게 주님과 함께하고, 어떻게 복음을 선포하며, 어떻게 나와 세상 그리고 교회에까지 배어있는 악의 세력과 행태들을 발견하고 물리쳐 극복할 수 있을지 구체적으로 짜서 발표하고 실천해 봅시다.
기도 의탁의 기도
하느님 아버지,
이 몸을 당신께 맡겨 드리오니
좋으실 대로 하십시오.
저를 어떻게 하시든지 감사드릴 뿐,
저는 무엇이나 준비되어 있고
무엇이나 받아 들이겠습니다.
아버지의 뜻이 제 안에서 이루어진다면
이 밖에 다른 것은
아무 것도 바라지 않습니다.
또한 아버지께서 보다 큰 선으로
앞으로의 제 삶을
이끌어 주시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하느님 아버지,
아버지를 온전히 신뢰하는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
당신은 저의 아버지시기에
끝없이 믿으며 남김없이 이 몸을 드리고
당신 손에 맡기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저의 사랑입니다.
아멘.
-샤를르 드 후꼬
15. 주님의 고난 받는 종인 교회
예제 고난 받는 하느님의 어린양
신자1 왜 그렇게 열심한 신자가 어려움을 겪는지 모르겠어요. 교회를 다니면 더욱 좋은 일만 생겨야 하는 것 아닌가요?
신자2 왜 교회가 세상에서 존중 받지 못하고, 핍박을 받나요?
경청
1. 경험: 좋은 말씀을 전하고 좋은 일을 하는 이들이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있습니까?
왜 그렇습니까? 그에 대한 나의 생각도 말해봅시다.
2. 문화: 이와 관련하여 우리 전통 문화나 현 한국 사회의 정치, 경제, 문화는 어떻습니까?
예를 들어 착한 사람이 왜 사회에서 어려움을 겪습니까?
3. 신앙: 이와 관련하여 주님 말씀과 교회의 가르침을 알아봅시다.
주님 말씀 고난 받는 주님과 교회(이사 53,4-6; 마태 20,28; 콜로 1,24)
53 4그렇지만 그는 우리의 병고를 메고 갔으며 우리의 고통을 짊어졌다. 그런데 우리는 그를 벌받은 자, 하느님께 매맞은 자, 천대받은 자로 여겼다. 5그러나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악행 때문이고 그가 으스러진 것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다. 우리의 평화를 위하여 그가 징벌을 받았고 그의 상처로 우리는 나았다. 6우리는 모두 양떼처럼 길을 잃고 저마다 제 길을 따라갔지만 주님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이 그에게 떨어지게 하셨다.
20 28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1 24이제 나는 여러분을 위하여 고난을 겪으며 기뻐합니다. 그리스도의 환난에서 모자란 부분을 내가 이렇게 그분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내 육신으로 채우고 있습니다.
교회의 가르침 주님의 고난 받는 종인 교회(「교회 헌장」 7. 8. 11)
“우리가 환난과 박해 속에서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르며 머리에 결합된 몸으로서 그분의 고난을 함께 받는 것은 그분과 함께 영광을 받으려는 것이다”(「교회 헌장」 7).
그리스도께서 가난과 박해 속에서 구원 활동을 완수하셨듯이, 그렇게 교회도 똑같은 길을 걸어 구원의 열매를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도록 부름 받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셨으며”(필리 2,6‐7), 우리를 위하여 “부유하시면서도 가난하게 되셨다”(2코린 8,9). 이렇게 교회는, 그 사명을 수행하려면 인간적인 힘이 필요하겠지만, 현세의 영광을 추구하도록 세워진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모범으로도 비움과 버림을 널리 전하도록 세워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찢긴 마음을 싸매 주며”(루카 4,18 참조),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루카 19,10) 하느님 아버지에게서 파견되셨다. 이와 같이 교회도 인간의 연약함으로 고통 받는 모든 사람을 사랑으로 감싸 주고, 또한 가난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 가운데에서 자기 창립자의 가난하고 고통 받는 모습을 알아보고, 그들의 궁핍을 덜어 주도록 노력하며, 그들 안에서 그리스도를 섬기고자 한다. “거룩하시고 순수하시고 순결하신”(히브 7,26) 그리스도께서 죄를 모르셨지만(2코린 5,21 참조) 오로지 백성들의 죄를 없애러 오셨으므로(히브 2,17 참조), 자기 품에 죄인들을 안고 있어 거룩하면서도 언제나 정화되어야 하는 교회는 끊임없이 참회와 쇄신을 추구한다.
교회는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주님의 십자가와 죽음을 전하며(1코린 11,26 참조), “세상의 박해와 하느님의 위안 속에서 나그넷 길을 걷는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의 능력으로 굳세게 되어, 안팎으로 당하는 고통과 난관을 인내와 사랑으로 이겨 내며, 마지막 때에 충만한 빛 속에서 드러날 주님의 신비를 어렴풋이나마 충실하게 세상에 보여 준다(「교회 헌장」8).
“온 교회는 병자들을 수난하시고 영광을 받으신 주님께 맡겨 드리며, 그들의 병고를 덜어 주시고 낫게 하여 주시도록 간청하는(야고 5,14-16 참조) 한편, 병자들도 자기 자신을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에 자유로이 결합시켜(로마 8,17; 콜로 1,24; 2티모 2,11-12; 1베드 4,13 참조) 하느님 백성의 선익에 기여하도록 권고한다”(「교회 헌장」11).
실천 신학적 전망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고난 받는 그리스도와 세상에서 고난 받고 있는 사람들을 매우 강하게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교회는 신자들이 가난한 이들 특별히 가난한 이들 중에서도 가장 가난한 이들과 슬퍼하는 이들, 그리고 정의를 위해 박해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증거하도록 가르칩니다. 이 고난 받는 이들은 고난 받는 그리스도와 일치하여 고난의 효과를 드러냅니다. 교회는 가난과 불안정에 처하고, 환자들과, 정의를 위해 일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어려움과 박해를 받는 사람들이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고난 받으시는 주님과 특별한 방법으로 일치한다는 것을 압니다. 만약 교회가 주님께 대한 믿음 안에서 모든 고난을 받아들이면, 그분과 협력하여 주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신 그 사랑을 보여주며 거룩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을 부르시고 복음 안에서 축복해주시면서 고난은 대단한 것이 아니며 하느님 나라를 향한 길에서 아주 잠시뿐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다른 한 쪽으로 하늘에 있는 죽은 이들이 교회인 주님의 몸을 위해 자신들의 몸으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우고 있습니다.
고난이 교회의 정확한 본성은 아니지만 부서진 세상을 바라보시는 그리스도의 엄연한 얼굴이며 부분입니다. 그것은 또한 교회의 길이며 하느님의 구원의지에 따라 세상을 구원하고자 하는 교회의 사명입니다. 이 교회의 모형은 주님의 인격에 아주 잘 부합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현세에서 고난 없이 그분을 따르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다소 불편하고 두려운 짐입니다. 적어도 부활의 그날, 아니 주님께서 다시 오실 마지막 날까지. 현세에서 고난 받는 이 모형은 무의미해 보이고, 그것이 부활의 희망 안에서 인정되고 존중받을 때까지는 실현되기 힘들어 보입니다. 종(servant)인 교회 모형이 세상을 위해 봉사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는 데 반해, 이 모형은 세상의 구원을 위해 세상(의 죄인들)을 대신하여 고난받고 희생하는 교회의 대속 역할에 그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소공동체는 주님과 소공동체원들과 그리고 세상과의 친교 속에 놓여있습니다. 소공동체는 세상의 축소판입니다. 소공동체는 소공동체원들이 세상 한 가운데서 겪는 기쁨과 희망, 슬픔과 번뇌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소공동체원들이 일터와 가정과 사회에서 살면서 겪는 모든 것이 소공동체의 나눔거리이며 복음의 빛으로 식별하고 주님과 형제들로부터 위로받고 변화시키기 위해 함께 협동해야할 활동거리입니다. 소공동체는 세상에서 오는 고통을 직접적으로 느끼며, 악이 지배하는 세상의 세력에 의해 희생당하기도 합니다. 주님께서 세상의 죄악을 대신 짊어지신 것처럼, 주님을 믿고 따르는 소공동체는 세상 한 가운데서 고통을 온 몸으로 체험하고 세상의 구원을 위해 목마르게 주님께 간구합니다. 주님의 고난 받는 종으로서의 소공동체는 말씀을 통한 주님과의 깊은 친교와 성체성사에서 맺는 주님과의 일치를 통해 힘을 얻어 세상에 구원을 향한 복음의 길을 걸어갑니다.
논의와 사목적 대응 선택
나 자신이나 우리 교회가 수난을 받을 때, 주님께서 세상을 구하고자 하시는 수난에 동참하고 있다고 느낍니까? 나 자신이나 우리 교회가 세상의 구원을 위해 어떤 희생을 바치겠습니까?
기도 충실한 하인(1베드 2,21-24)
2 21그리스도께서도 여러분을 위하여 고난을 겪으시면서,
당신의 발자취를 따르라고 여러분에게 본보기를 남겨 주셨습니다.
22“그는 죄를 저지르지도 않았고 그의 입에는 아무런 거짓도 없었다.”
23그분께서는 모욕을 당하시면서도 모욕으로 갚지 않으시고
고통을 당하시면서도 위협하지 않으시고,
의롭게 심판하시는 분께 당신 자신을 맡기셨습니다.
24그분께서는 우리의 죄를 당신의 몸에 친히 지시고 십자 나무에 달리시어,
죄에서는 죽은 우리가 의로움을 위하여 살게 해 주셨습니다.
그분의 상처로 여러분은 병이 나았습니다.
16. 친교인 교회
예제 일치와 나눔
신자1 주님과 하나되려면, 정말 마음으로부터 주님을 사랑하고, 기도하면서 주님의 말씀을 잘 듣고 헤아려, 현실에서 꼭 실현해야 되겠지요.
신자2 서로 좋고 행복하려면 어쩔 수 없어요. 참고, 용서하고, 사랑해야지…
경청
1. 경험: 본당과 교회 기관들은 구성원들이 하나되도록 하기 위해 어떻게 노력합니까?
본당과 교회 기관들은 믿음과 희망과 사랑을 어떻게 나눕니까?
왜 그렇게 합니까? 그에 대한 나의 생각도 말해봅시다.
2. 문화: 이와 관련하여 우리 전통 문화나 현 한국 사회의 정치, 경제, 문화는 어떻습니까?
우리 나라는 사회 통합을 위해 어떻게 합니까?
우리 나라는 사회 구성원들의 친교를 위해 어떻게 합니까?
3. 신앙: 이와 관련하여 주님 말씀과 교회의 가르침을 알아봅시다.
주님 말씀 성령을 약속하시다(요한 14,15-17.20-23)
14 15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킬 것이다. 16그리고 내가 아버지께 청하면, 아버지께서는 다른 보호자를 너희에게 보내시어, 영원히 너희와 함께 있도록 하실 것이다. 17그분은 진리의 영이시다.
20그날, 너희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또 너희가 내 안에 있으며 내가 너희 안에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21내 계명을 받아 지키는 이야말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를 사랑하고 그에게 나 자신을 드러내 보일 것이다.
22이스카리옷이 아닌 다른 유다가 예수님께, ‘주님, 저희에게는 주님 자신을 드러내시고 세상에는 드러내지 않으시겠다니 무슨 까닭입니까?’하자, 23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
교회의 가르침 친교인 교회(「교회 헌장」7. 8. 9. 13)
(성령께서는) 교회를 온전한 진리로 인도하시고(요한 16,13 참조) 친교와 봉사로 일치시켜 주시며, 교계와 은사의 여러 가지 선물로 교회를 가르치시고 이끄시며 당신의 열매로 꾸며 주신다(「교회 헌장」 4). 성찬의 빵을 나누어 먹으며 실제로 주님의 몸을 모시는 우리는 주님과 더불어 또 우리 사이에 친교를 이루도록 들어 높여진다(「교회 헌장」7). 이 (가시적이고 영적인) 교회는 이 세상에 설립되고 조직된 사회로서 베드로의 후계자와 그와 친교를 이루는 주교들이 다스리고 있는 가톨릭 교회 안에 존재한다(「교회 헌장」8). 그리스도께서는 생명과 사랑과 진리의 친교를 이루도록 세우신 이 백성을 또한 모든 사람을 위한 구원의 도구로 삼으시고, 세상의 빛으로서 땅의 소금으로서(마태 5,13‐16 참조) 온 세상에 파견하신다(「교회 헌장」9). 모든 사람은 하느님의 새로운 백성을 이루도록 불린다… 성령께서는 온 교회를 위하여 또 개인과 모든 신자를 위하여 사도들의 가르침과 친교에서 그리고 빵의 나눔과 기도에서 모임과 일치의 근원이 되신다(사도 2,42 참조)… 실제로 온 세계에 흩어져 있는 모든 신자가 성령 안에서 다른 이들과 친교를 이룬다… 하느님의 백성을 돋보이게 꾸며 주는 이 보편성은 바로 주님의 선물이다. 이로써 가톨릭 교회는 온 인류가 그 모든 부요와 함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그분 성령의 일치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하려고 힘껏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그러기에 또한 교회의 친교 안에는 고유한 전통을 지니는 개별 교회들이 당연히 존재한다. 그러나 베드로 교좌의 수위권은 온전히 보존된다… 교회의 여러 부분들 사이에는 영적 부요와 사도직 인력과 현세적 자원에 관한 긴밀한 친교의 유대가 존재한다… 하느님 백성의 이 보편적 일치는 세계 평화를 예시하고 증진하므로 모든 사람이 이 일치로 부름 받고 있다. 가톨릭 신자이든 그리스도를 믿는 다른 신자이든 모든 사람이 다 여러 모로 이 일치에 소속되거나 관련되어 있다. 하느님의 은총은 모든 사람을 구원으로 부른다(「교회 헌장」13).
실천 신학적 전망
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영적 공동체인 교회는 성령 안에서 주님의 길이며 진리이며 생명의 친교로서 모든 사람의 구속을 위한 도구입니다. 이 친교는 성령 안에서 주님의 성체성사에서부터 성체성사를 통해 다가옵니다. 신앙 고백과 성사 그리고 교회의 통치와 친교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인 성령의 궁전(1코린 3,16; 6,19 참조)인 교회 친교의 보이지 않는 끈입니다. 지역 교회들 사이에, 주교와 사제, 부제, 수도자, 그리고 신자들과의 관계 안에, 비가톨릭 그리스도인들과의 관계 안에, 순례하는 지상의 교회와 하늘의 교회 사이에, 성인들을 포함한 죽은 이들과의 관계 안에서 이 친교는 일치와 사랑과 평화의 주요소입니다.
정교회와 개신교회들은 이 친교 모형을 받아들였습니다. 세계 교회 협의회는 “친교라는 표현은 교회의 본성과 그 보이는 일치의 공통 이해를 소생시켜 주는 근본이 되었다 … 그 말은 교회의 본성과 목적을 이해하는 열쇠로서 오늘날 일치운동을 다시금 불러일으키고 있다”(세계 교회 협의회, 「교회, 신앙과 질서의 본성과 목적」, 181)라고 밝힙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주교들은 1985년 제2차 세계 주교 대의원회의 「하느님의 말씀 안에서 교회는 세상 구원을 위한 그리스도의 신비들을 거행한다」에서 친교 교회론을 이어 더 발전시키고, 1992년 교황청 신앙 교리성은 「교회를 친교로 이해하는 몇 가지 면에 대한 가톨릭 교회의 주교들의 편지」를 통해 친교의 교회를 공포합니다. 그리고 교황님들은 교회의 새로운 존재 양식인 기초 교회 공동체에 대한 지침을 발표했습니다.
논의와 사목적 대응 선택
삼위일체이신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서로 사랑하여 하나되신 신비에 참여하기 위하여, 세계전체교회와 우리 교구 그리고 우리 본당, 우리 교구와 우리 본당 그리고 나, 우리 본당과 우리 구역 반 그리고 나, 우리 본당과 우리 가정 그리고 나와의 관계에서 내가 할 일은 무엇입니까? 구체적이고 적극적으로 실현 가능한 일을 찾아 결심하고 실현합시다.
기도 주님을 찬양하라(시편 148)
148 1할렐루야! 주님을 찬양하여라, 하늘로부터. 주님을 찬양하여라, 높은 데에서.
2주님을 찬양하여라, 주님의 모든 천사들아. 주님을 찬양하여라, 주님의 모든 군대들아.
3주님을 찬양하여라, 해와 달아. 주님을 찬양하여라, 반짝이는 모든 별들아.
4주님을 찬양하여라, 하늘 위의 하늘아 하늘 위에 있는 물들아.
5주님의 이름을 찬양하여라, 그분께서 명령하시자 저들이 창조되었다.
6그분께서 저들을 세세에 영원히 세워 놓으시고 법칙을 주시니 아무도 벗어나지 않는다.
7주님을 찬미하여라, 땅으로부터. 용들과 깊은 모든 바다들아
8불이며 우박, 눈이며 안개 그분 말씀을 수행하는 거센 바람아
9산들과 모든 언덕들 과일나무와 모든 향백나무들아
10들짐승과 모든 집짐승 길짐승과 날짐승들아
11세상 임금들과 모든 민족들 고관들과 세상의 모든 판관들아
12총각들과 처녀들도 노인들과 아이들도 함께
13주님의 이름을 찬양하여라. 그분 이름 홀로 높으시다. 그분의 엄위 땅과 하늘에 가득하고
14그분께서 당신 백성 위하여 뿔을 세우셨으니 당신께 충실한 모든 이에게,
당신께 가까운 백성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찬양 노래이어라. 할렐루야!
제3부
교회의 새로운 존재 양식
‐친교 교회론과 소공동체
제3부에 들어가면서
17. 친교인 교회 ‐ 시노드와 신앙교리성
‐ 갈등과 화해, 분열과 일치
18. 친교 교회론의 최근 연구들
‐ 친교의 기쁨
19. 교회의 새로운 존재 양식, 공동체들의 친교
‐ 교회의 새로운 존재 양식, 공동체들의 친교: 기초 교회 공동체와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소공동체)
20. 라틴 아메리카의 기초 교회 공동체
‐ 세상을 사는 가난한 평신도 그리스도인들의 모임
21. 아프리카의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
‐ 자발성과 책임성을 간직한 공동체
22. 아시아의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
‐ 다문화 속의 조화
23. 한국의 소공동체
‐ 본당 공동체의 친교
24. 본당 소공동체 운동의 과제
‐ 본당 사목 의사 결정 과정
제3부에 들어가면서
우리는 제1부 “요즘, 성당에선”에서, 본당의 현실 진단을 통해 본당 공동체의 친교를 방해하는 요소들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제2부 “인류의 빛”에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론과 교회의 여러 모습과 모형 중에서 친교와 평신도들의 참여라는 관점에서 “하느님 백성,” “그리스도의 신비체,” “성령의 궁전인 교회”의 모습 그리고 “성사,” “청취자,” “제자들의 공동체,” “고난 받는 주님의 종인 교회” 그리고 소공동체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친교인 교회”의 모형을 개략적으로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제3부 “교회의 새로운 존재 양식”에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 라틴 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 등 각 지역 교회들이 변화하는 사회의 환경들에 마주칠 때마다 시대의 징표를 읽고 응답해온 지역 교회들의 역사들을 살펴 볼 것입니다.
1990년대부터 한국 천주교회는 소공동체 운동을 본당의 주요 사목 정책으로 삼아왔습니다. 이 제3부 “교회의 새로운 존재 양식”에서, 교회의 새로운 존재 양식인 소공동체 운동의 방향과 모습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보고, 어떻게 하면 성직자와 수도자 그리고 평신도들 사이에 친교를 나누는 하느님 나라를 건설할 것인지를 모색할 것입니다. 그래서 소공동체 사목의 기초 교회론으로 여겨지는 친교 교회론의 최근 연구들과 교회 교도권에 드러난 지침과 규정들을 통해 공동체들의 친교(공동체들로 이루어진 공동체)로서 교회의 새로운 존재 양식인 교회의 새 모형들(기초 교회 공동체와 소공동체)을 살펴보고, 남아메리카 기초 교회 공동체, 아프리카의 소공동체 그리고 아시아 소공동체를 각 주교회의 문헌들과 자료들을 통해 그리고 한국 소공동체를 서울 대교구장의 사목 교서와 공문에서 살펴 볼 것입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각 지역 교회는 자신들이 처한 상황에서 “교회의 새로운 존재 양식”(New way of being Church)들을 추구했습니다. 그것은 “공동체들의 친교”(communion of communities)입니다. 이를 “공동체들로 이루어진 공동체”로 번역해 써왔습니다.
기초 교회 공동체(Base Ecclesial Community)는 라틴 아메리카 천주교회에서 사제들의 수가 부족한 상황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들은 말씀 전례를 통해 복음을 듣고 나눔으로써 하느님을 찬미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공동체에서 듣고 마음속에 새긴 주님의 말씀을 실현하고자 합니다. 그것은 종교 생활에서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일상에서도 말씀을 적용하고 꾸준히 변화하게 됩니다. 복음적인 삶은 압박을 받는 사람들의 해방과도 연결됩니다. 기초 교회 공동체는 그들을 억압하고 종처럼 움켜잡고 있는 여러 가지 압박들에서 해방시키는 주체입니다. 교회는 더 이상 고립되고 쉬면서 자만자족하는 성인들의 그룹이 아닙니다. 교회는 이미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주창한 대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사회 중의 한 사회입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서와 1965년 「만민에게」(Ad Gentes; 선교 교령)가 발표된 이후, 아프리카 주교들은 동아프리카에서 자신들의 역할을 되돌아보며 동아프리카 주교회의를 설립했습니다. 아프리카 주교들은 바오로 6세 교황의 방문을 통해 독립하라는 말씀을 깨달았습니다. 아프리카 주교들은 주님 구원의 도구인 교회가 지역 교회가 되어야 하고,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Small Christian Commyunity: 소공동체)로 구성되어야 한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소공동체가 교회와 사회를 변화하고 변천하도록 하는 도구가 되자고 선언했습니다. 1982년 남아프리카에서 활동하는 외국인 선교사들을 위해 룸코 연구소가 설립되었습니다. 룸코 신학자들은 친교 교회론을 따라, 동아프리카 주교회의(AECEA) 정신 안에서 교회가 가장 지역적으로 육화된 형태가 소공동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것이 아시아 주교회의를 통해 한국 천주교회에 전래되었습니다.
1982년 타일랜드 방콕에서 열린 제3차 아시아 주교회의(FABC)의 「교회‐아시아의 신앙 공동체: 제3차 총회 선언」에서 친교와 그리스도인들의 사랑을 나누는 교회를 새로운 교회의 새로운 존재 양식으로 설명했습니다. 1990년 인도네시아의 반둥에서 열린 제5차 아시아 주교회의 총회에서 룸코 연구소의 소공동체 운동을 채택했습니다. 아시아의 문화와 부응하는 소공동체의 영성은 조화의 영성입니다. 이것이 1992년 서울대교구와 한국 천주교회에 도입되었습니다. 서울대교구는 교회 공동체의 내적 친교와 사회 복음화의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 소공동체 운동을 2000년대 복음화를 향한 사목 정책으로 잡아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이 공부를 통해 소공동체의 배경과 역사를 바라보고, 우리 본당 공동체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사랑의 친교 신비 안에서, 우리 한국 사회를 어떻게 복음화하며 또 한국 사회에 어떻게 봉사할 것인지를 찾아내어 실현하기를 바랍니다. 그 내용을 좀 더 깊이 새기고 싶으시면, 필지의 책, 『공동체들의 친교』(성바오로)와 『현대 실천사목신학 개론』(위즈앤비즈)에서 더 자세한 내용을 참고할 수 있습니다.
17. 친교인 교회 - 시노드와 신앙교리성
예제 갈등과 화해, 분열과 일치
신자1 죄를 지으면 하느님께 기도하기가 힘들어요.
신자2 마음 속에 섭섭함이 있으면 가까이 가기가 싫고, 여러 상황에서 왠지 모르게 주저하게 되요.
신자3 함께 피정을 하고 나면, 왠지 모르게 몇 년씩이나 잘 알고 있었던 사람들처럼 가깝게 느껴져요.
경청
1. 경험: 요즘, 우리 본당은 친교를 이루고 있습니까? 어떻게 합니까?
아니라면, 왜 그렇습니까? 그에 대한 나의 생각도 말해봅시다.
2. 문화: 이와 관련하여 우리 전통 문화나 현 한국 사회의 정치, 경제, 문화는 어떻습니까?
요즘 우리 사회의 일치와 화합을 저해하는 요인은 무엇이며 어떻게 극복하려고 합니까?
우리 사회는 계층간, 세대간의 차이를 어떻게 융합하려고 합니까?
3. 신앙: 이와 관련하여 주님 말씀과 교회의 가르침을 알아봅시다.
주님 말씀 대사제의 기도-믿는 이들을 위하여 기도하심(요한 17,20-23.26)
17 20저는 이들만이 아니라 이들의 말을 듣고 저를 믿는 이들을 위해서도 빕니다. 21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 아버지께서 제 안에 계시고 제가 아버지 안에 있듯이, 그들도 우리 안에 있게 해 주십시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셨다는 것을 세상이 믿게 하십시오. 22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영광을 저도 그들에게 주었습니다. 우리가 하나인 것처럼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23저는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는 제 안에 계십니다. 이는 그들이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시고, 또 저를 사랑하셨듯이 그들도 사랑하셨다는 것을 세상이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26저는 그들에게 아버지의 이름을 알려 주었고 앞으로도 알려 주겠습니다.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신 그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저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
교회의 가르침 친교인 교회‐시노드와 신앙교리성(「교회 헌장」11 등)
근본적으로 하느님과 맺는 친교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 안에서 이루어진다. 이 친교는 하느님의 말씀 안에서 그리고 성사들 안에서 이루어진다. 세례성사는 교회 안에서 친교의 문이며 기초다. 성체성사는 전체 그리스도인 삶의 근원이며 정점이다(「교회 헌장」 11 참조). 그리스도의 성체성사적인 몸의 친교가 나타나고 생겨난다. 즉 교회인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모든 신자들의 친밀한 친교가 세워진다(1코린 10,16 참조)(제2차 세계 주교 대의원회의 「하느님의 말씀 안에서 교회는 세상 구원을 위한 그리스도의 신비들을 거행한다」 II.B.b.C.1).
친교(koinonia)의 개념은 교회 신비의 핵심을 표현하는 데 아주 적절하다. 그리고 가톨릭 교회론의 쇄신을 위한 열쇠가 될 것이다. 교회가 친교라는 사실은 실로 아주 특별하고 중요한 과제이며, 교회 신비의 신학적 반성을 위한 넓디넓은 폭을 제공한다는 면에서 아주 높이 살만하다. “교회의 본성은 새롭고 보다 깊은 추구를 언제나 허용한다”(교황청 신앙 교리성, 「교회를 친교로 이해하는 몇 가지 면에 대한 가톨릭 교회의 주교들의 편지」 서문 1).
실천 신학적 전망
1985년, 제2차 세계 주교 대의원회의는 친교인 교회를 설정했습니다. “교회는 성사이다. 즉, 하느님과 그리고 인간과 다른 인간과의 친교와 화해의 표징이며 도구이다.” 만일 새로운 사도적 영성 운동들이 적절하게 교회의 친교 안에 자리하고 있다면, 그들은 커다란 희망의 전달자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친교 교회론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서의 핵심적이며 근본적인 개념이라는 것과 친교의 의미에 대해 위와 같이 적었습니다(II.B.b.C.1).
시노드는 친교 교회론을 또한 교회 질서의 기초이며, 교회의 일치와 다양성 속에서 올바른 관계라고 밝힙니다. 그것은 친교라는 측면에서 동방교회에까지 확장됩니다. 그리고 친교 교회론은 공동체들의 성사적인 기초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모든 구성원들은 참여와 공동 책임 의식을 가집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친교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주교들은 친교의 이름으로 기초 교회 공동체를 포용했습니다. “만일 새로운 기초 공동체들이 진실로 교회와 일치하고 있다면, 그들은 친교의 진실한 표현이며 보다 항구한 친교의 건설을 위한 수단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교회 삶의 커다란 희망의 근원이 될 것이다.”
1992년 신앙교리성은 친교의 교회를 위와 같이 공포했습니다(서문 1). 신앙교리성은 하느님 백성과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개념에 친교의 신비인 교회를 연결시킵니다. 친교의 개념은 교회의 자기이해의 중심에 놓여 있습니다. 신앙교리성은 교회가 같은 성령 안에서 성인들과 친교를 누리고 있다고 밝힙니다. 그리고 지역 교회와 전체 교회 사이의 교회적 친교 안에서 일치와 다양성에 관해 설명합니다. “교회의 전체성(보편성)은 한 손으로는 가장 견고한 일치와 그리고 다른 한 손으로는 일치를 저해하지 않는 오히려 ‘친교’의 성격으로 관련된 다양성과 복합성에 연계되어 있다.”
논의와 사목적 대응 선택
우리 본당과 사회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나나 우리가 지금 무엇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나와 우리 소공동체가 화해할 사람, 화해하도록 도와줄 사람들, 화해해야 할 상황은 구체적으로 누구이고 무엇이며, 어떻게 할 것입니까?(결정할 때는 책 뒷부분에 있는 부록 1 ‘문제 해결 방식’과 부록 2 ‘사목 기획’을 참조하여 심도있게 논의하고 교회적인 방법으로 실천할 수 있습니다)
기도 교회를 위한 기도(에페 3,14-21)
3 14이 때문에, 나는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15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종족이 아버지에게서 이름을 받습니다.
16아버지께서 당신의 풍성한 영광에 따라 성령을 통하여
여러분의 내적 인간이 당신 힘으로 굳세어지게 하시고,
17여러분의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마음 안에 사시게 하시며,
여러분이 사랑에 뿌리를 내리고 그것을 기초로 삼게 하시기를 빕니다.
18그리하여 여러분이 모든 성도와 함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한지 깨닫는 능력을 지니고,
19인간의 지각을 뛰어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이렇게 하여 여러분이 하느님의 온갖 충만하심으로 충만하게 되기를 빕니다.
20우리 안에서 활동하시는 힘으로,
우리가 청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보다 훨씬 더 풍성히 이루어 주실 수 있는 분,
21그분께 교회 안에서,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세세 대대로 영원무궁토록 영광이 있기를 빕니다. 아멘.
18. 친교 교회론의 최근 연구들
예제 친교의 기쁨
신자1 어떤 때 누군가가 나를 위해 기도해주고 있다고 느껴져요.
신자2 전 세계 어느 성당에 가서나 미사가 같고, 똑같이 성사생활을 할 수 있어서 좋아요.
신자3 성당이 크고 작고가 문제가 아니라, 서로 잘 알고 아끼느냐가 문제인 것 같아요.
경청
1. 경험: 이런 느낌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까? 있다면, 어떤 것이었습니까?
왜 그랬습니까? 그에 대한 나의 생각도 말해봅시다.
2. 문화: 이와 관련하여 우리 전통 문화나 현 한국 사회의 정치, 경제, 문화는 어떻습니까?
과거와 현재 우리민족을 하나로 묶어준 사상이나 문화는 무엇입니까
그리고 지금 언제 어떤 경우에 우리나라와 우리 민족이 하나라고 느낍니까?
3. 신앙: 이와 관련하여 주님 말씀과 교회의 가르침을 알아봅시다.
주님 말씀 사랑과 믿음(1요한 4,7.15-16)
4 7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이는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으며 하느님을 압니다. 15누구든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고백하면, 하느님께서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시고 그 사람도 하느님 안에 머무릅니다. 16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을 우리는 알게 되었고 또 믿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
교회의 가르침 친교 교회론의 정의와 요소
친교 교회론은 교회를 이해하는 하나의 접근이다. 그것은 교회의 신비적, 성사적, 역사적 차원을 강조함으로써 법적 제도적 이해를 넘어서는 시도이다. 그것은 삼위일체의 위격들 사이의, 인간들과 하느님 사이의, 성인들과의 통공을 이루는 구성원들 사이의, 본당의 구성원들 사이의,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주교들 사이의 관계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것은 지역교회와 전체 교회 사이의 역동적인 상호작용을 강조한다. 친교 교회론은 교회가 단순히 계시의 수용자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신비체로서 계시 그 자체와 연결되어 있다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친교 교회론은 첫째, 그리스 정교회와 로만 가톨릭과 개신교로 구분되는 그리스도교의 구분 이전 초세기 그리스도교인이 전제한 교회의 비전을 다시 소생시키고 있다. 둘째, 교회의 제도적 법적 측면들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접근들과는 대조적으로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영적 우정이나 친교의 요소를 강조한다. 셋째, 성체성사에 함께 참여함으로써 상징적으로 구현되는 것처럼 눈에 보이는 일치의 필요성에 높은 가치를 둔다. 넷째, 교회의 일치와 다양성 사이에 그리고 전체 교회와 지역 교회들 사이의 역동적이고도 왕성한 상호작용을 증진시킨다(데니스 도일, 「친교 교회론: 전망과 편형」, 12-13).
실천 신학적 전망
데니스 도일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과의 연관관계 안에서 공동체와 개인의 관계를 설명합니다. 수잔 우드는 다양성과 토착화 그리고 비중앙집권주의로 표기된 전체 교회와 지역 교회와의 관계를 은유적으로 표현합니다. 우드는 지역 교회가 전체 교회의 외부인이 아니라 하느님의 교회의 실체라고 말합니다. 그녀는 또 친교 교회론이 ‘친교’(koinonia)의 두 가지 성경적인 의미를 발전시킨다고 말합니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께서 쟁취하시고 성령께서 수여하신 구원의 선물에 참여하는 친교와 둘째, 하느님과 우리의 일치에서 우러나오는 그리스도교 공동체 또는 우정의 끈이다.” 진-마리 틸라드는 성령께서 지역 교회에 내려주신 것과 그 교회가 성찬례에서 선포한 것이 그 교회의 존재와 행위 안에 배어든 모든 진리라고 말합니다. 크리스토퍼 루디는 각 지역 교회가 특정 시간과 공간 안에서 하느님의 교회의 확장이라는 틸라드의 교회론적인 관점을 설파합니다. 루디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틸라드의 지역 교회 신학이 복음과 성체성사의 친교이며 믿음과 성사의 친교라고 말합니다.
지역 교회와 전체 교회 사이의 친교 안의 일치는 한국 천주교회 안에서 소공동체와 본당 공동체 사이의 친교 안의 일치와 연관됩니다. 소공동체의 네 번째 특징이 바로 전체 교회와의 일치입니다. 소공동체는 소공동체의 구성원마다 서로 다르지만 함께 복음을 나누고 사명을 실현함으로써 한 공동체를 이루고, 본당은 본당의 소공동체들이 각 지역별로 처해진 상황의 특이함 때문에 서로 다르지만 함께 본당 전례와 행사를 짜고 그 역할을 나누고 진행하면서 그 특질이 한데 어우러져 본당 공동체를 이룹니다. 한 소공동체 안에서 구성원들간의 친교가 다른 소공동체들과 더 나아가 본당이라는 커다란 공동체와의 친교로 확산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본당 공동체의 공동체들의 친교가 본당과 교구, 세계 교회와의 친교로 확산됩니다.
포스트 모더니즘 사회에서 사람들은 실현하기도 어려운 이상과 규정을 핑계로 차디차고 돌 같은 교회를 더 이상 바라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그들 각자가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직접 느끼기를 원합니다. 신자들은 커다란 교회를 좋아합니다. 그러면서도 각자가 개별적으로 인정받기를 바랍니다. 친교 교회론은 교회의 규모와 관계없이 주님과 교회 구성원들 그리고 구성원들 간의 친교를 강조합니다. 친교 교회론은 지상의 제도인 교회와 신자들이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하느님 아버지의 나라인 교회에 참여하고, 성령의 힘으로 가난한 이들과 연대하여 그들이 처한 삶의 조건 속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실현하여 공동체들의 친교(community of communities)를 이룹니다.
친교 교회론이 주님과 또 인간들 상호간에 맺는 친교 관계를 추구하는 반면, 기존의 구성원들은 그들이 접하는 현실에서 현세적인 하느님 나라를 찾는 것에 주력하고, 교회의 이상이나 사명을 그들의 현실과 상황에 맞춰 끌어 내리고, 종교적인 신심생활을 열심히 하면서, 현실에서 그들 사이에 친교를 누리는 것에 만족하여, 교회가 사회에서 수행해야 할 사명이 간과될 위험이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교회가 신자들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겪는 것이 무엇이고 또 그 과정 중에 신자들이 갈등하는 것이 무엇이고, 바라는 것이 무엇이며, 교회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헤아려 보살피는 것도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교회 신자들이 교회 내에서 기쁨과 희망, 그리고 슬픔과 번뇌를 나누고 함께 할 때, 교회가 진실한 친교를 맺는 공동체가 됩니다.
논의와 사목적 대응 선택
성인들과 돌아가신 분들이 하늘에서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고 있듯이, 우리도 이 땅에서 돌아가신 분들을 위해서도 기도합시다. 동시에 요즈음 우리 소공동체가 수호천사처럼 지켜주고 돌보아 주어야 할 사람과 상황은 구체적으로 누구이며 무엇입니까? 그리고 어떻게 함께 힘을 모아 실현하겠습니까?(결정할 때는 책 뒷부분에 있는 부록 1 ‘문제 해결 방식’과 부록 2 ‘사목 기획’을 참조하여 심도있게 논의하고 교회적인 방법으로 실천할 수 있습니다)
기도 하느님은 사랑이시다(1요한 4,7.9-13)
4 7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이는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으며 하느님을 압니다.
9하느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났습니다.
곧 하느님께서 당신의 외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시어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살게 해 주셨습니다.
10그 사랑은 이렇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 주신 것입니다.
11사랑하는 여러분, 하느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12지금까지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고
그분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됩니다.
13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영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로 우리가 그분 안에 머무르고
그분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신다는 것을 압니다.
19. 교회의 새로운 존재 양식, 공동체들의 친교
예제 교회의 새로운 존재 양식인 공동체들의 친교: 기초 교회 공동체와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소공동체)
신자1 소공동체 모임을 하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복음을 읽고 나누면서 복음의 길을 걷게 돼요.
신자2 소공동체 모임을 하다 보니까, 미사만 드리고 다닐 때는 잘 모르던 사람들을 깊이 알게 되고, 인생의 희로애락을 같이 나누면서 주님 안에서 새 식구가 되는 것 같아요.
신자3 소공동체 모임을 하다 보니까, 혼자서는 감당이 안돼 엄두를 내지 못해서 할 수 없었던 선교와 이웃 돕기, 봉사 활동을 부담 없이 할 수 있게 되었어요.
경청
1. 경험: 우리가 소공동체 모임을 하면서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까?
있다면, 어떤 것입니까?
우리는 어떻게 다릅니까? 그에 대한 나의 생각도 말해봅시다.
2. 문화: 이와 관련하여 우리 전통 문화나 현 한국 사회의 정치, 경제, 문화는 어떻습니까?
각 지역별 문화가 어떻게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하나의 한국 문화를 이룹니까?
날로 다양해지는 사회 현상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한 민족의 동질성과 통일성을 이룹니까?
3. 신앙: 이와 관련하여 주님 말씀과 교회의 가르침을 알아봅시다.
주님 말씀 나는 참 포도나무다(요한 15,4-5. 7)
15 4내 안에 머물러라. 나도 너희 안에 머무르겠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처럼, 너희도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 5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7너희가 내 안에 머무르고 내 말이 너희 안에 머무르면, 너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청하여라.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교회의 가르침 교회 기초 공동체(현대의 복음 선교 58항)
1974년에 복음화에 대한 주교 시노드가 있었고 이어 교황 바오로 6세가 1975년에 사도적 권고 「현대의 복음 선교」를 반포하셨다. 그 58항에서, 교황은 주교 시노드에서 언급된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소공동체)”나 “기초 공동체”의 생성 원인을 밝히고 그 성격과 특성을 정의하고 기준을 제시했다.
“어떤 지역에는, 거의 예외 없이, 그러한 공동체들이 교회 안에 생겨나 발전하면서, 교회 생활에 참여하고, 교회의 가르침에서 힘을 얻으며 교회 목자들과 일치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러한 경우에, 이들 공동체들은 교회 생활을 더욱 열심히 하여야 할 필요성에서, 또는 대규모 교회 공동체, 특히 집단화하고 익명화하기 쉬운 대도시의 교회 공동체 같은 곳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인간적인 상호 유대를 추구하려는 바람에서 생겨납니다. 이러한 공동체들은 종교적 영성적 차원에서 예배와 신앙 심화, 형제적 사랑, 기도, 목자들과 만남 등 마을과 같은 소규모 사회 공동체를 나름대로 확대해 나갈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공동체들은 말씀을 듣고 묵상하며, 성사들을 받고 사랑의 유대를 이루며 함께 모이거나, 부부, 젊은이, 직장인 등 나이나 교양, 생활 신분 또는 사회적 환경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또는 정의,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형제적 도움, 인간 발전을 위하여 노력하고자 결속된 사람들끼리 유대를 이루고자 함께 모일 수도 있습니다. 또 다른 경우로, 이들 공동체들은 사제가 부족하여 본당 공동체 생활이 정상적으로 운영되기 어려운 경우 신자들을 결합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모든 것은 교회가 세운 공동체들, 특히 개별 교회들과 본당 사목구 안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일들입니다.
교회 기초 공동체는 복음화의 못자리가 되고, 더욱 큰 공동체들 특히 개별 교회들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지난 세계주교대의원회의를 마치며 제가 말씀드렸듯이, 교회 기초 공동체들은 다음 조건을 충족시킬 경우 보편 교회의 희망이 될 것입니다.
- 하느님 말씀을 자양분으로 삼고, 인간의 무한한 잠재력을 이용하려는 정치적 양극화나 그때그때의 이데올로기에 유혹되지 않을 것.
- 진정성과 협력 정신을 구실로, 조직적으로 반항하거나 비판하려는 태도를 피할 것.
- 자신들이 속한 지역 교회와 보편 교회에 굳게 일치하여, 자신 안에 갇혀 고립되어 자기 공동체만이 유일하고 참된 그리스도의 교회라고 생각하며 다른 교회 공동체들을 단죄하려는 실제적인 위험을 피할 것.
- 주님께서 당신 교회에 주시는 목자들, 그리고 그리스도의 성령께서 이들 목자들에게 맡기신 교도권과 참된 친교를 유지할 것.
- 자기들만이 복음화의 은혜를 입었거나 복음화할 수 있는 유일한 주역으로 생각하거나, 심지어는 복음의 유일한 보유자로 생각하지 말 것. 반대로 교회는 훨씬 더 넓고 다양하다는 것을 깨닫고, 교회가 그들 공동체를 통해서가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구현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것.
- 선교 의식과 열성, 투신과 열의를 꾸준히 키울 것.
- 모든 일에서 보편적이되 결코 교파적인 모습을 보이지 말 것.
분명 힘들지만 고무적인 이러한 조건들을 잘 지키면, 교회 기초 공동체들은 자기들의 근본 소명, 곧 선포되는 복음의 경청자이며 복음화의 우선적 수혜자로서 자신들의 소명에 충실하고, 그들 자신이 복음의 선포자가 될 것입니다.”(「현대의 복음 선교」 58항)
실천 신학적 전망
교회의 교도권은 기초 교회 공동체나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소공동체)를 교회의 한 모형으로 기꺼이 환영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교회의 선교와 사명이라는 관점에서 교회성의 기준에 따라 천주교회와 일치하기를 바랍니다. 교회는 기초 교회 공동체와 소공동체가 잃어버린 어린 양(루카 15)처럼 되지 않고 주님께서 아버지 하느님께 붙어있고, 초기 교회 공동체가 주님께 붙어있듯이 천주교회에 붙어있기를 바랍니다(요한 15 참조).
논의와 사목적 대응 선택
위 지침과 관련하여 우리 소공동체(와 단체)의 현주소를 살펴봅시다. 그리고 위 지침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교회의 정신과 지침에 어떻게 부합할 수 있겠습니까?(결정할 때는 책 뒷부분에 있는 부록 1 ‘문제 해결 방식’과 부록 2 ‘사목 기획’을 참조하여 심도있게 논의하고 교회적인 방법으로 실천할 수 있습니다)
여유가 되면 교회의 새로운 존재 양식인 공동체들의 친교에 대한 가르침은 교황의 사도적 권고 「현대의 교리교육」 67항과 「평신도 그리스도인」 30항 그리고 「교회의 선교 사명」 51항도 참조하여 우리 공동체의 앞 길을 올바로 펼쳐나갑시다.
기도 주님은 나의 목자(시편 23,1-6)
23 1주님은 나의 목자, 나는 아쉬울 것 없어라.
2푸른 풀밭에 나를 쉬게 하시고 잔잔한 물가로 나를 이끄시어
3내 영혼에 생기를 돋우어 주시고 바른길로 나를 끌어 주시니 당신의 이름 때문이어라.
4제가 비록 어둠의 골짜기를 간다 하여도 재앙을 두려워하지 않으리니
당신께서 저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막대와 지팡이가 저에게 위안을 줍니다.
5당신께서 저의 원수들 앞에서 저에게 상을 차려 주시고 제 머리에 향유를 발라 주시니
저의 술잔도 가득합니다.
6저의 한평생 모든 날에 호의와 자애만이 저를 따르리니
저는 일생토록 주님의 집에 사오리다.
20. 라틴 아메리카의 기초 교회 공동체
예제 세상을 사는 가난한 평신도 그리스도인들의 모임
신자1 복음 나누기를 하다 보면, 신자들이 세상에서 어떻게 당하고 사는지 알게 돼요.
신자2 복음으로 삶을 되돌아보면, 우리가 세상사의 어려움 속에서도 주님의 보호와 도우심을 받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돼요.
신자3 성당이 없는 데 가서, 그나마 공소예절이라도 바치고 복음나누기를 하면서 얼마나 위안을 받았는지 몰라요.
경청
1. 경험: 세상에 살면서 어려움을 겪을 때, 소공동체 모임이 도움이 된 적이 있습니까?
있다면, 어떤 일이었습니까? 그에 대한 나의 생각도 말해봅시다.
2. 문화: 이와 관련하여 우리 전통 문화나 현 한국 사회의 정치, 경제, 문화는 어떻습니까?
과거 우리 선조들은 공동체적인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했습니까?
외적인 위협이나 자극에 지역사회가 어떻게 반응합니까?
사람들이 위험에 처했을 때, 지역사회가 어떻게 돕습니까?
3. 신앙: 이와 관련하여 주님 말씀과 교회의 가르침을 알아봅시다.
주님 말씀 고난과 희망과 영광(로마 8,18-25)
8 18장차 우리에게 계시될 영광에 견주면,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겪는 고난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19사실 피조물은 하느님의 자녀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20피조물이 허무의 지배 아래 든 것은 자의가 아니라 그렇게 하신 분의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희망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21피조물도 멸망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하느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영광의 자유를 얻을 것입니다. 22우리는 모든 피조물이 지금까지 다 함께 탄식하며 진통을 겪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23그러나 피조물만이 아니라 성령을 첫 선물로 받은 우리 자신도 하느님의 자녀가 되기를, 우리의 몸이 속량되기를 기다리며 속으로 탄식하고 있습니다. 24사실 우리는 희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보이는 것을 희망하는 것은 희망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을 누가 희망합니까? 25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희망하기에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립니다.
교회의 가르침 라틴 아메리카의 기초 교회 공동체(소공동체)
10.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이 “기초 공동체”로 불려져 그 친교 안에서 살아야만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즉, 그 구성원들이 서로 형제애로 접촉할 수 있는 정도 크기의 공동체 안에서, 지역적으로나 환경적으로나 동질성을 가진 집단에 부응하도록 불리었다. 결과적으로 교회의 사목적 노력은 이러한 공동체들이 설립 초기부터 핵과 같은 누룩이 되어 “하느님의 가족”으로 변화되도록 하는 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비록 그것이 작다 하더라도 믿음과 희망 그리고 사랑의 공동체가 되도록 하여야 한다. 그래서 그리스도교 기초 공동체(소공동체)는 무엇보다 교회의 근본적인 핵심이다. 그것은 예절에서 사용하는 표현처럼, 책임을 가지고 믿음이 풍요롭게 퍼져나가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공동체는 교회의 구조와 복음화에 초점을 맞춘 기초 조직이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 발전과 성숙의 가장 중요한 원천으로 협력하게 된다.
11. 그리스도교 기초 공동체(소공동체)를 실존케 하는 근본 요소는 지도자들과 책임자들이다. 이들은 사제일수도, 부제거나 남자 또는 여자 수도자거나 평신도들일 수도 있다. 이들이 자신들이 이끄는 공동체에 속해 있다면 좋겠다. 지도자들의 선택과 양성은 본당의 사제들과 주교들의 최우선적인 임무다. 이들은 자율적이면서도 책임감을 고양시키는 상황에서 도덕적 영적인 성숙을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한다.
이 공동체들의 구성원들은 하느님께서 자신들을 믿고 맡기신 “사제직, 예언직, 왕직을 수행하도록 불리었다는 사실에 합당하게 살아야 한다.” 그래서 자신들의 공동체를 세상에 ‘하느님께서 드러나시는 표징’으로 드러내야 한다”(제2차 라틴 아메리카 주교회의[CELAM], 10-11, 1968).
실천 신학적 전망
브라질 신학자 레오나르도 보프는 그의 책, 「교회: 은사와 권력: 해방 신학과 제도 교회」에서 기초 교회 공동체에 대해, “기초 교회 공동체(기초 그리스도교 공동체: 소공동체)는 라틴 아메리카에 그 기원을 둔 현상이다. 그들은 기초 교회 공동체라는 이름을 가졌다. 왜냐하면 그 공동체들은 낮은‐계급, 뿌리 인생, 사회의 기반인, 사회 권력의 피라미드의 절정과는 정반대에 있는 사람들이 우선적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기초 교회 공동체(소공동체)는 서품된 사제들이 거의 없고, 평신도들만이 복음을 전하고 그들의 믿음을 생생하게 지키는 라틴 아메리카의 가난과 억압된 사회 상황에서 태어났습니다. “기초 교회 공동체(소공동체)는 일반적으로 15~20가정으로 구성된다. 그들은 한 주간에 한 번 또는 두 번 같이 모여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자신들의 공통 문제를 나누고, 복음의 감도 아래 이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한다. 그들은 성경적인 구절에 자신들의 느낌을 나누고, 그들 자신의 기도를 자아내고, 그들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을 함께 결정한다. 침묵의 세기 후에 하느님 백성은 말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더 이상 그들의 본당에 단순히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교회론적 가치를 가지고 하느님의 교회를 재창조해 나간다.”
보프는 기초 교회 공동체(소공동체)를 성격 짓는 다섯 가지 기본 면모를 지적했습니다. “억압받으면서도 아직 하느님을 믿고”, “하느님의 말씀으로 태어나고”, “교회를 만드는 새로운 길이며”, “해방의 징표이자 도구며”, “믿음과 삶을 거행한다.”
「교회의 선교 사명」은 기초 교회 공동체(소공동체)를 사도행전 2장 42절부터 47절과 교황 바오로 6세의 말씀, “모든 공동체가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되려면, 그리스도 안에 자리를 잡고 그분과 함께 살아야 한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성찬례에 그 기도의 초점을 맞추고, 마음과 영을 다하여 친교를 이루고, 구성원들의 필요를 나누고, 부분 교회와 전체 교회와 일치하며, 고립을 두려워하지 않되 이데올로기적인 탐구를 피하며 선교에 대한 헌신으로 교회의 주임사제들과 직권자(Magisterium)들과 마음으로 다가오는 친교를 누려야 한다는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래서 요셉 라칭거(Joseph Ratzinger)와 신앙교리성은 기초 교회 공동체(소공동체)들이 교회적인 요소들을 간직하고 있지만 교회라고 부를 수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교회가 단순히 하나의 특별한 사회 계층이나 그룹, 가난한 이들과 억압 받는 이들만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부자들을 포함하여 모든 이들에게 문을 열고 끌어안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논의와 사목적 대응 선택
우리 소공동체원들이 단순히 성당 안에서의 종교 생활뿐만 아니라, 세상 안에서 평신도 그리스도인으로서 살면서 복음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현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소공동체원들 사이에서 문제를 겪고 있는 이가 있으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함께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우리 지역에서 일어나는 일 중에 우리 소공동체가 대처해야 할 일은 구체적으로 무엇이며, 어떻게 하겠습니까? (결정할 때는 책 뒷부분에 있는 부록 1 ‘문제 해결 방식’과 부록 2 ‘사목 기획’을 참조하여 심도있게 논의하고 교회적인 방법으로 실천할 수 있습니다)
기도 희년을 선포하시다(루카 4,18-19.21)
4 18“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19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21“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21. 아프리카의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
예제 자발성과 책임성을 간직한 공동체
신자1 과거에는 반장이 본당에서 나오는 공지사항만을 전달하였는데, 이제는 소공동체 차원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스스로 결정해서 실천하는 것이 기쁘고 보람된 것 같아요.
신자2 지금까지 전부 다 성당에 가서 특강 듣고, 성모의 밤이니 행사하고 그랬는데, 갑자기 소공동체 차원에서 자발적으로 알아서 계획하고 실천하라고 하니까 당황스럽기도 하고요, 다른 한 쪽으로는 우리 자신들 스스로의 모임이 교회라는 생각이 들어 사명감마저 들어요.
경청
1. 경험: 요즘 그리스도교 신자로서의 책임감과 사명감이 듭니까? 든다면, 어떤 것입니까?
왜 그렇습니까? 그에 대한 나의 생각도 말해봅시다.
2. 문화: 이와 관련하여 우리 전통 문화나 현 한국 사회의 정치, 경제, 문화는 어떻습니까?
현대 세계에서 우리는 어떻게 한국인의 정체성과 한국 사회의 경쟁력을 간직합니까?
3. 신앙: 이와 관련하여 주님 말씀과 교회의 가르침을 알아봅시다.
주님 말씀 초대 교회의 공동체 생활(사도 4,32-35)
4 32신자들의 공동체는 한마음 한뜻이 되어,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33사도들은 큰 능력으로 주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였고, 모두 큰 은총을 누렸다. 34그들 가운데에는 궁핍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땅이나 집을 소유한 사람은 그것을 팔아서 받은 돈을 가져다가 35사도들의 발 앞에 놓고, 저마다 필요한 만큼 나누어 받곤 하였다.
교회의 가르침 아프리카의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소공동체)
라틴 아메리카의 기초 교회 공동체가 아래로부터 시작된 반면에, 아프리카의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소공동체)는 위로부터 시작했다. 말라위의 패트릭 칼리롬베 주교는 위에서부터 아래로의 접근과 평신도 중심의 공동체에 대해 이렇게 지적한다. “우리는 교회의 기초 조직을 사람들의 일상 생활이 이루어지는 소공동체로 하는 새로운 조직을 채택했다. 만일 우리가, 교회가 공동체로서 살고 기능하기를 바란다면, 우리는 사람들이 매일 살아가며 마주치는 그 작은 수준으로 내려가야만 한다. 교회는 이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소공동체) 안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들의 친교를 의미 있게 표현할 수 있다. 그러한 기초 공동체는 교회의 존재와 의미라는 면에 있어서 오로지 실제적인 기반이 될 수 있다. 여기서 교회는 참 친교로 존재한다. 교회의 보다 넓은 차원은 단지 하나의 공동체가 아니라 공동체들의 친교가 되는 것이다. 본당은 본당 관할 구역내의 기초 공동체들의 친교이다.”
놀라(Ndola)교구는 교회가 살아 숨쉬는 교회의 가장 작은 세포인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소공동체)의 성격을 6가지로 규정했다. 첫째, 세포는 사람들이 개인적인 수준에서 서로 알고 지낼 정도로 작다. 둘째, 이러한 지역적인 수준에서, 형제애와 우정이 실재한다. 셋째, 하느님의 말씀을 통해, 성직자와 평신도가 서로 다른 직무를 통해 그리스도의 복음을 살아가고 선포하는 데 서로 협력하고 서로 책임을 짐으로써, 그리스도께서 공동체와 모든 신자들의 머리이시라는 것이 인식된다. 넷째, 구성원들이 서로 사랑함으로써, 가난한 사람들과 병자, 그리고 사별하여 홀로된 사람들을 사랑하고 돌보는 일을 자연스럽게 접하게 된다. 다섯째, 서로에 대한 염려와 배려를 통해 깊이 기도하게 된다. 여섯째,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그리스도의 몸의 한 지체인 것처럼, 그 전 생애와 존재의 실현으로서 새로운 방법으로 그리스도의 몸인 성체성사를 이해하게 된다.
실천 신학적 전망
1969년 교황 바오로 6세는 아프리카 교회를 방문하여 아프리카인들에게 “자립(self‐reliant)하라”고 말했습니다. 아프리카 교회는 그들의 새로운 교회 모형을 공동체인 교회로 정했습니다. 아프리카 주교들은 주님 구원의 도구인 교회가 되려면 지역 교회여야 하고 또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소공동체)여야 한다고 선포했습니다. 그리고 소공동체는 교회와 사회를 변화시키고 변혁시키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문서에 드러난 대로 본다면, 아프리카 주교들은 자신들의 교회가 아프리카 사람들의 교회가 되기를 바랐습니다. 더 이상 외국인 선교 사제와 수도자 그리고 그들의 방식대로 그들에게 교육받은 사제와 수도자들이 아니라, 아프리카의 문화 안에 자라났거나 적어도 그 문화 안에 정착된 이들이기를 바랬습니다. 라틴 아메리카 주교들이 외국의 발전된 나라들의 압박을 받고 있는 라틴 아메리카 사회 구조 체제의 가난하고 압박된 상황에서 기초 교회 공동체를 통해 해방되고 벗어나기를 바랬던 데 반해, 아프리카 주교들은 문화화와 토착화의 방법으로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소공동체)를 선택했습니다.
1962년 남아프리카에서 활동하고 있는 외국인 로만 가톨릭 선교사들을 위해 룸코 연구소를 설립했습니다. 룸코 신학자들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상 중에서 ‘하느님의 백성인 교회’ 모습과 ‘친교인 교회’ 모형을 선택했습니다. 그들은 삼위일체의 사랑 안에서 나누는 공동체를 발견했습니다. 공동체 건설 차원에서는 성령에 의해 주어진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교회 모습을 택했고,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소공동체)의 친교 차원에서는 친교인 교회 모형을 취했습니다. 그들은 동아프리카 주교회의의 정신에 따라 교회의 지역적 토착화로서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소공동체)를 설명합니다. 룸코 연구소는 공동체인 교회를 사목적인 차원에서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소공동체)와 연결시킵니다. 룸코의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소공동체) 모습은 아시아 주교회의를 통해 한국 천주교회에 전수되었습니다.
논의와 사목적 대응 선택
본당과의 친교 안에서 우리 소공동체가 자발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결정할 때는 책 뒷부분에 있는 부록 1 ‘문제 해결 방식’과 부록 2 ‘사목 기획’을 참조하여 심도있게 논의하고 교회적인 방법으로 실천할 수 있습니다)
기도 즈카르야의 노래(루카 1,68-79)
1 68“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는 찬미받으소서.
그분께서는 당신 백성을 찾아와 속량하시고
69당신 종 다윗 집안에서 우리를 위하여 힘센 구원자를 일으키셨습니다.
70당신의 거룩한 예언자들의 입을 통하여 예로부터 말씀하신 대로
71우리 원수들에게서,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것입니다.
72그분께서는 우리 조상들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당신의 거룩한 계약을 기억하셨습니다.
73이 계약은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하신 맹세로
74원수들 손에서 구원된 우리가 두려움 없이
75한평생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의롭게 당신을 섬기도록 해 주시려는 것입니다.
76아기야, 너는 지극히 높으신 분의 예언자라 불리고
주님을 앞서 가 그분의 길을 준비하리니
77죄를 용서받아 구원됨을 주님의 백성에게 깨우쳐 주려는 것이다.
78우리 하느님의 크신 자비로 높은 곳에서 별이 우리를 찾아오시어
79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아 있는 이들을 비추시고
우리 발을 평화의 길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22. 아시아의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
예제 다문화 속의 조화
신자1 시댁 제사 때만 되면 이중고를 겪어요. 큰집 개신교 신자라 절 안 한다고 한 바탕, 둘째 유교라 홍동백서 주장하고 격식 다 갖춰 곡하느라…
신자2 우리 집은 할 거 다해요. 초파일엔 절에 가고, 성탄 땐 성당 가고.
경청
1. 경험: 요즘 신앙 생활을 하면서 타종교나 문화 풍습과 충돌되어 곤란한 적이 있습니까?
있다면, 어떤 것이 있습니까?
왜 그렇습니까? 그에 대한 나의 생각도 말해봅시다.
2. 문화: 이와 관련하여 우리 전통 문화나 현 한국 사회의 정치, 경제, 문화는 어떻습니까?
한국 사회는 다양한 외래 문화와 종교 및 풍습들에 어떻게 반응합니까?
한국 사회 안에서 사람들이 자신들과 다른 것과 다른 면에 대해 어떻게 반응합니까?
3. 신앙: 이와 관련하여 주님 말씀과 교회의 가르침을 알아봅시다.
주님 말씀 예루살렘 사도 회의(사도 15,7-11)
15 7오랜 논란 끝에 베드로가 일어나 그들에게 말하였다. ”형제 여러분, 다른 민족들도 내 입을 통하여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하느님께서 일찍이 여러분 가운데에서 나를 뽑으신 사실을 여러분은 알고 있습니다. 8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하신 것처럼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시어 그들을 인정해 주셨습니다. 9그리고 그들의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정화하시어, 우리와 그들 사이에 아무런 차별도 두지 않으셨습니다. 10그런데 지금 여러분은 왜 우리 조상들도 우리도 다 감당할 수 없던 멍에를 형제들의 목에 씌워 하느님을 시험하는 것입니까? 11우리는 그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주 예수님의 은총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믿습니다.”
교회의 가르침 아시아의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소공동체)
아시아 교회는, 평신도, 수도자 그리고 성직자가 서로를 자매와 형제로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공동체들의 친교(communion of communities: 공동체들로 이루어진 공동체)가 이루어져야만 한다. 그들은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소공동체)를 건설하도록 그들을 이끄시는, 부활하신 주님의 준성사적 현존으로 간주된, 하느님 말씀에 의해 함께 불린다(즉, 이웃 그룹, 기초 교회 공동체들 그리고 “수도” 공동체들). 거기에서 그들은 ‘한 마음과 한 정신’으로 일치하여 서로를 지원하며 함께 일하는 그들의 일상에서 예수님의 복음을 살면서 함께 기도하고 복음을 나눈다(「제5차 아시아 주교회의 총회 최종문헌」 8.1.1, 1990).
교회의 새로운 존재 양식의 영성은 주님께 온전히 의탁하는 이들의 영성이다. 그것은 힘없고 버림받는 자(anawim)들의 영성이다. 포기와 단순함, 그리고 모두와 함께 특별히 가난하고 약하고 불쌍한 이들과 연대하고자 하는 연민의 정 – 비폭력주의의 행동 방식을 향상시키는 덕 ‐ 들은 우리가 필요로 하는 영성의 중요한 단면들이며, 아시아의 문화와 깊이 공감하는 복음의 가치들이다. 그것은 ‘조화(harmony)의 영성’이다. 그것은 우리 아시아인들의 세계에 부조화스러운 것들에 도전하는 것처럼 하느님과 긴밀하게 친교를 맺으며, 그분의 성령께 순응하면서 예수님을 따르라고 말하고 있다. 그것은 우리가 외부 조직과 힘 또는 세속적 효과로부터 단순함과 겸손함 그리고 봉사의 모습으로 나아가도록 요청하고 있다(9.5).
실천 신학적 전망
1977년 아시아 주교회의는 소공동체가, 적은 수의 사제들이 감당하기엔 너무 많은 신자들로 인하여 결과적으로 신자들에게 사목적인 면에서 깊이 다가가지 못하고, 신자들이 교회와 자신들의 소공동체에 대한 책임감을 고취시키고, 비그리스도교 세상인 아시아에서 신자들을 지원해야할 필요를 느끼는 등의 여러 가지 필요와 정황에 적합하다고 말했습니다. 1979년에는, 교회의 지역화와 구체화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뿌리에서 생겨난 교회 공동체로서 교회의 온전히 그리고 눈에 보이게 드러난 기초 그리스도교 공동체 안에서 발견된다고 보았습니다. 1982년에는 “교회, 아시아 믿음의 공동체”란 주제로 총회 최종 문서에서 그리스도인들의 사랑을 나누는 친교인 교회를 교회의 새로운 존재 양식으로 설명했습니다
1990년 인도네시아 반둥에서 열린 제5차 아시아 주교회의는 “삼천년기를 향해 함께하는 여정”이라는 주제로 총회 최종 문서에서, 교회의 새로운 존재 양식으로서 공동체들의 친교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아시아 주교들은 공동체들의 친교와 참여하는 교회의 비전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으로 룸코 연구소의 소공동체 사목 모형을 도입했습니다. 1993년 아시아의 주교들은 아시아인들의 사고와 기도 그리고 아시아인들의 독특한 그리스도 체험을 공유할 연구소의 필요성을 느껴, 룸코의 양성체험을 나누고, 아시아에 어떻게 정착시킬 것인가를 모색하여, 아시파(AsIPA)란 단어를 아시아에 교회의 새로운 존재 양식을 향한 과정을 위한 시도로 삼았습니다. “비전은 ‘참여하는 교회’이다. 전체 신자들의 공동체는 아시아의 복합적인 상황 안에서 그리스도의 통합적 세계관과 사명을 적극적으로 공유할 수 있다.”
아시아 주교들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본당과 교구 안의 친교와 참여를 증진시키는 효과적인 방법으로서, 그리고 복음화를 위한 진정한 힘으로서 기초 교회 공동체들의 가치를 강조하였습니다… 결과적으로 사랑의 문화의 새로운 표현인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려는 확고한 출발점인 것입니다”(「아시아 교회」, 25)라고 하신 말씀과, 2004년 한국 대전에서 “생명 문화를 지향하는 아시아 가정”이라는 주제로 열린 제8차 아시아 주교회의 총회의 최종문서에서 “사랑과 연대의 세계화”라는 구절을 인용하여 이러한 시도를 재확인했습니다.
실제로 경쟁 사회에서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소공동체)를 통해 복음화된 가정은 이웃을 복음화하여야 하고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소공동체) 활동을 통하여 피가 아니라 세례성사를 통해 초월적으로 연결되고, 이웃 가정에 다가가 어린아이들에게 복음을 전수하여 생명의 문화에 기여하는 사회의 누룩이 되어야 합니다.
논의와 사목적 대응 선택
우리 소공동체는 서로 다른 믿음을 가지고 서로 다른 문화생활을 하는 주변 이웃들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면서 살 수 있겠습니까?(결정할 때는 책 뒷부분에 있는 부록 1 ‘문제 해결 방식’과 부록 2 ‘사목 기획’을 참조하여 심도있게 논의하고 교회적인 방법으로 실천할 수 있습니다)
기도 마리아의 노래(루카 1,46-55)
1 46“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47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48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49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이름은 거룩하고
50그분의 자비는 대대로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미칩니다.
51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52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53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
54당신의 자비를 기억하시어
당신 종 이스라엘을 거두어 주셨으니
55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 자비가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히 미칠 것입니다.”
23. 한국의 소공동체
예제 본당 공동체의 친교
신자1 소공동체 모임을 하면서 본당 신자들 간에, 특별히 구역 반원들 사이에 더 깊은 친교를 나누게 되었어요.
신자2 소공동체 운동을 강조하다 보니까, 그동안 교회 내에서 활발했던 단체 활동이 다소 소원해진 것 같아요.
경청
1. 경험: 소공동체 운동을 도입함으로써 우리 본당에 어떤 변화가 있습니까?
있다면, 어떤 것입니까?
왜 그렇습니까? 그에 대한 나의 생각도 말해봅시다.
2. 문화: 이와 관련하여 우리 전통 문화나 현 한국 사회의 정치, 경제, 문화는 어떻습니까?
우리 나라에 지방 자치 단체제가 설정된 후 어떤 변화가 있습니까?
3. 신앙: 이와 관련하여 주님 말씀과 교회의 가르침을 알아봅시다.
주님 말씀 그리스도인의 새로운 생활(로마 12,1-2)
12 1그러므로 형제 여러분, 내가 하느님의 자비에 힘입어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여러분의 몸을 하느님 마음에 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십시오. 이것이 바로 여러분이 드려야 하는 합당한 예배입니다. 2여러분은 현세에 동화되지 말고 정신을 새롭게 하여 여러분 자신이 변화되게 하십시오. 그리하여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하느님 마음에 들며 무엇이 완전한 것인지 분별할 수 있게 하십시오.
교회의 가르침 한국의 소공동체
1993년 서울대교구장 김수환 추기경은 사목교서에서 한국 천주교회의 현황에 대해, “오늘의 한국 천주교회는 규모와 수적으로 엄청난 성장을 기록했다. 그러나 본당들의 기록적인 외적 성장에 비해, 우리 교회는 복음 정신에 기초한 친교(koinonia)와 봉사(diakonia)의 공동체 모습을 상실했다. 다른 말로 본당의 외적 성장에 비추어볼 때, 사목자들이 본당 신자들과 개인적인 면담을 하기 어려울뿐만 아니라 신자들이 자신이 본당의 신자라는 것과 신자들끼리 가족과 같은 연대성을 간직하기가 아주 어려워졌다 … 우리가 믿음과 삶의 구분을 극복하지 못했고, 온전히 복음화되지 않았으며, 점점 더 비인간화와 물질주의와 세속주의로 변화되어가는 이 사회를 복음화할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교회 공동체인 우리는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부패를 정화할 사명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가 가진 능력은 너무 미소하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몸인 우리 교회가 우리 안에 주님의 삶을 간직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현대의 복음 선교」를 인용하여 복음화를 설명한다. 교회의 복음화 활동은 단순히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설교하고, 교리를 가르치고, 세례를 주고 기타 다른 성사를 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17), 교회가 선포하는 메시지의 신적 능력으로 모든 개인과 집단의 양심, 그들이 관계하고 있는 활동, 그들의 생활과 구체적인 환경을 변혁시키는 것이다(18). 즉 하느님의 말씀과 구원 계획에 상반되는 인간의 판단 기준, 가치관, 관심의 초점, 사상의 동향, 사상의 원천, 생활 양식 등에 복음의 힘으로 역전시키고 바로잡는 것이다(19). 그것은 사회에서 사람들을 거룩하다고 간주되는 교회에 데려오는 것 뿐만 아니라, 복음의 힘으로 사회 자체를 복음화하는 복음화 방법론의 변화이다.
실천 신학적 전망
1984년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 사목위원회 사회조사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천주교회 신자들은 개인적인 성사생활 그리고 교회내의 활동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많은 신자들이 개인적인 믿음과 구원 그리고 미사와 성사생활에 만족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사회정의를 위해 활동하는 것이 교회의 사명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신자들이 많았습니다. 서울대교구는 세속화와 물질주의 그리고 교회의 불공정한 현상 그리고 신자들의 개인신심과 성직자의 권위주의에서 온 결과라고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의 가치를 따라 살고 있지 않다고 밝혔습니다. 신자들이 믿음과 행동을 구분하여 살고 있으며, 교회가 세계의 구원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 살고 있다는 부지중의 의식에서 비롯된 문제라는 것을 깊이 되새겼습니다.
그래서 1968년부터 1998년까지 서울대교구장으로 봉직했던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님은 복음의 가치로 신자들의 삶을 비추어 봄으로써 교회 공동체의 쇄신이 필요하다고 밝혔고, 서울 대교구에서 그 본당들에 소공동체를 세워야 한다고 강하게 역설했습니다. 이것은 본당의 평균 신자수가 7,000명이 넘는 경우에 공동체 체험을 하기가 아주 어렵다는 데서 기인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분은 서울대교구에 소공동체를 건설하는 목적이 복음화를 이루기 위한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서울대교구는 1992년부터 2000년대 복음화를 위한 운동에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사제들은 신자들이 복음을 나누면서 기쁨을 얻고, 그 말씀에 따라 헌신적으로 살게 되었으며, 복음적인 회개의 과정을 밟게 되었고, 평신도들이 능동적으로 교회 활동에 참여하게 되었다고 평가했습니다. 교회는 말씀을 기반으로 신앙을 증진시킬 수 있었고, 평신도 사도직이 활성화되었습니다. 그리고 교회가 평신도 사도직과 봉사하는 새 지도력을 통해 사회 현실 속에 새롭게 다가섰습니다. 가장 좋은 결과는 믿음을 증진시키고 말씀을 중심으로 한 평신도 사도직이 활성화되었다는 점입니다.
1987년과 1998년에 가톨릭 신문사에서 전체 신자의 종교 의식과 신자 생활에 대한 두 번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교구의 지원, 주임사제의 투신, 소공동체 지도자들의 자질 등. 일반적으로 구역 반모임에 참석하는 여성의 비율은 40대 이상이며, 저학력자이며, 소규모 마을의 거주자들이며, 가정주부, 실업자, 농부, 어부, 산림업자, 성인이 되어 세례받은 자, 자발적으로 입교한 자, 단체에 속한 사람들이 높았습니다. 그러나 남성의 참석 비율은 이십에서 삼십대 그리고 대학원 이상 졸업자, 커다란 도시의 시민들, 유아세례를 받은 신자들과 단체에 속하지 않은 신자들의 수가 낮았습니다. 그리고 저학력자와 노부인들의 참석률은 계속되었습니다.
논의와 사목적 대응 선택
본당의 신부님들과 신자들 사이의, 단체와 소공동체 사이의, 그리고 신자와 신자 사이의 친교를 위해 우리 소공동체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하겠습니까?(결정할 때는 책 뒷부분에 있는 부록 1 ‘문제 해결 방식’과 부록 2 ‘사목 기획’을 참조하여 심도있게 논의하고 교회적인 방법으로 실천할 수 있습니다)
기도 시므온의 노래(루카 2,29-32)
2 29“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30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31이는 당신께서 모든 민족들 앞에서 마련하신 것으로
32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며
당신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
24. 본당 소공동체 운동의 과제
예제 본당 사목 의사 결정 과정
신자1 우리 본당에서 주임 사제가 사목의 제반 사항을 결정할 때, 신자들의 의견을 어떻게 수렴합니까?
신자2 우리 본당에서 주임 사제가 사목의 제반 사항을 결정할 때, 신자들의 의견을 어떻게 반영합니까?
경청
1. 경험: 요즘 우리 본당에서 주임 사제가 교회 공동체의 사목을 위한 의사 결정을 내릴 때 어떤 과정을 밟습니까? 그에 대한 나의 생각도 말해봅시다.
2. 문화: 이와 관련하여 우리 전통 문화나 현 한국 사회의 정치, 경제, 문화는 어떻습니까?
과거와 현재 우리나라는 어떻게 여론을 수렴하고, 어떤 의사 결정 과정을 거칩니까?
3. 신앙: 이와 관련하여 주님 말씀과 교회의 가르침을 알아봅시다.
주님 말씀 일치와 겸손(필리 2,1-11)
2 1그러므로 여러분이 그리스도 안에서 격려를 받고 사랑에 찬 위로를 받으며 성령 안에서 친교를 나누고 애정과 동정을 나눈다면, 2뜻을 같이하고 같은 사랑을 지니고 같은 마음 같은 생각을 이루어, 나의 기쁨을 완전하게 해 주십시오. 3무슨 일이든 이기심이나 허영심으로 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겸손한 마음으로 서로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십시오. 4저마다 자기 것만 돌보지 말고 남의 것도 돌보아 주십시오. 5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바로 그 마음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
6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7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여느 사람처럼 나타나
8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9그러므로 하느님께서도 그분을 드높이 올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그분께 주셨습니다.
10그리하여 예수님의 이름 앞에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에 있는 자들이 다 무릎을 꿇고
11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라고 모두 고백하며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게 하셨습니다.
교회의 가르침 희망을 안고 하느님께
본당 사목구는 구체적인 하느님 백성이 살고 있는 삶의 현장이며, 그 지역 사회 복음화를 위한 사목의 중심이고, 친교의 공동체로서의 교회상을 구현하는 기초 입니다. 이러한 본당 사목구는 하느님의 가정, 성령으로 불타는 공동체로서 끊임없는 쇄신을 통하여 교회의 본질을 구현하기를 요청 받고 있습니다(정진석, 서울대교구 시노드 후속 교구장 교서 「희망을 안고 하느님께」, 28).
본당 사목구는 신자들이 복음화를 위한 교회의 사명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모든 신자들에게서 균형 있는 의견을 수렴하고 신자들이 능동적인 참여를 할 수 있는 구조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본당 사목구 주임은 본당의 기초인 구역과 반이 능동적이고 자율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배려하며, 자질과 능력이 있고 해당 구역 신자들의 의견을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을 구역장으로 임명하여야 합니다. 또한, 본당 사목구 주임은 구역장 회의에서 본당의 현안들을 논의하고, 본당 사목 평의회의 도움을 받는 것이 바람직하겠습니다. 그리고 본당 사목구의 전반적인 구조와 조직의 개편에 대해서는 좀 더 연구하고 논의하여야 하겠습니다(35).
본당 운영은 친교의 공동체로서의 교회상을 구현하고 지역 사회 복음화를 이루는 데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36).
본당 사목 평의회는 본당 사목구 주임이 주재하며, 평의회 회원은 자기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본당 현안들에 대하여 구체적 방안을 제시하여 사목구 주임이 효율적으로 사목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자문합니다(37). 구역장 회의는 구역을 대표하는 구역장들로 구성하며, 본당 사목구 주임과 함께 본당의 미래를 위한 사목적 예지와 대안을 공유하며, 정기적인 회의를 통하여 본당의 사목적 현안을 논의하고, 구역과 반의 자율성과 신자들의 능동적 참여를 촉진합니다(38).
실천 신학적 전망
2003년 서울 대교구 시노드 후속 문서, 「희망을 열고 하느님께」에서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니콜라오 추기경님은 교회의 모든 구성원들, 주교, 사제, 수도자, 신자들이 성령의 도우심으로 다 함께 참여하는 친교의 교회로서 복음을 선포하고 그 복음을 실현하며 사회 봉사를 통해 교회의 근본과 본성을 회복하고 교회와 현 세상을 복음화해야 한다고 밝힘으로써 소공동체 운동이 지속적으로 발전해 나가도록 했습니다.
1992년 이래 2000년대 복음화를 위한 소공동체 운동을 펼쳐왔던 서울대교구는 사제와 평신도들의 능동적인 참여율, 주임사제 사목 연계의 일관성, 소공동체와 단체의 연대와 균형적인 발전, 복음나누기의 내실화와 복음의 실질적인 구현, 의사 결정 과정에 있어서의 갈등 등이 과제로 드러났습니다. 긴장과 갈등은 또한 본당의 주요 사안들이 사목 평의회에서 다루어져야 하는가 아니면 구역장 회의에서 다루어져야 하는가, 누가 주임사제와 함께 사목정책을 결정할 것인가, 누가 본당 사목과 본당의 제반 사항을 주도하고 조정할 것인가, 어떻게 본당의 소공동체와 단체들 사이의 업무와 지도자의 역할과 자리 그리고 활동 시간이 중복되는 것을 결정할 것인가 등입니다. 소공동체 지도자들이거나 단체 지도자들이거나 그들은 모두 사제와 같은 교회 공직자들에게서 자신들의 노력을 인정받고 싶어하고, 그들의 의견이 본당 사목의 의사 결정 과정에 반영되기를 원하기 때문에 드러난 원인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어떻게 소공동체와 단체를 비롯한 본당 신자 모두가 친교를 통해 공동체들의 친교로 거듭날 것인가 하는가와 어떻게 성령의 도우심으로 이 땅에 하늘 나라를 완성시킬 것인가 하는 것이 새 천년기 한국 교회의 과제입니다.
논의와 사목적 대응 선택
우리 본당이 삼위의 하느님과 평신도, 수도자, 성직자들 사이에 친교를 이루고, 우리가 교회로서 세상 복음화를 위해 구체적으로 무엇(어떤 분야, 어떤 문제)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아울러 이러한 교회의 사명을 이루기 위하여, 주임 사제가 본당 사목의 제반 결정을 내릴 때, 우리들의 진솔한 의견들이 수렴되고, 그 의견들이 직접적으로 반영될 수 있는 방법과 조직 구조는 무엇입니까?(결정할 때는 책 뒷부분에 있는 부록 1 ‘문제 해결 방식’과 부록 2 ‘사목 기획’을 참조하여 심도있게 논의하고 교회적인 방법으로 실천할 수 있습니다)
기도 주님의 기도(마태 6,9‐15)
6 9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하늘에 계신 저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10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11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12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도 용서하였듯이 저희 잘못을 용서하시고
13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저희를 악에서 구하소서.’
14너희가 다른 사람들의 허물을 용서하면,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실 것이다.
15그러나 너희가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지 않으면,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허물을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
부록. 의사 결정 과정
I. 문제 해결 방식
1. 문제와 목표(이상) 표현
문제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문제를 풀어나가기 위한 구체적인 목표(이상)가 무엇인지 종이에 정확히 씁니다.
2. 각자 여러 가지 해결책 제안
각자 한 가지 해결책(즉시의견제시[Brain Storming])을 제시합니다(토론은 아직 하지 않습니다).
3. 주님께서 원하시는 해결책 선택
각자가 제시한 해결책의 장단점을 찾으며, 주님께서는 그 중에서 우리가 어떤 해결책을 행하기를 원하실지 생각하여 선택합니다(선택할 때는 가급적 만장일치로 선택합니다).
4. 선택한 해결책을 실현 가능하도록 모색
주님께서 원하시는 해결책을 우리 현실에서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지 모색합니다.
5. 시행할 사람과 방법 구체적으로 분담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을, 어떻게 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분담합니다. 그리고 그 해결책이 주님의 뜻대로 이루어지도록 기도합니다.
6. 추후 점검하고, 주님께 의지하는 지속적인 실천
언제 결과를 점검할지 정합니다. 그리고 예상치 않은 결과가 나오더라도 포기하거나, 작은 변화에 만족하지 말고, 새롭게 변화된 상황에 맞는 복음적인 방법을 골라, 주님께 의지하며 지속적으로 실행해 나갑니다.
‐복음나누기 7단계 중 6단계 문제 해결 방식 변형
II. 사목 기획
1. 사목의 대상 마주보기(Engaging the pastoral reality)
• 듣기(Listenning)
- 무슨 일인가? 언제, 누가, 어디서, 어떻게, 왜?
- 이 사건/상황에 관련된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 분석하기(Analyzing)
- 이 사건/상황의 내용과 맥락은 무엇인가? 문화, 사회적 배경
- 이 사건/상황에서 좋고 긍정적인 면과 요소들, 그리고 나쁘고 부정적인 면과 요소들은 무엇인가?
- 이 사건/상황이 계속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나겠는가?
자신에게, 이 사건/상황에 직, 간접적으로 관련된 사람들에게, 이것을 염려하는 이들에게, 다른 사람들에게
- 이 사건/상황에서 누가 이득을 얻고, 손해를 보는가?
- 이 사건/상황이 여러분에게 익숙한가 아니면 낯설은가?
- 이 사건/상황이 여러분에게 기쁘고 좋은가 아닌가? 왜?
- 이 사건/상황이 여러분에게 어떤 면에서 짐이고, 또 선물인가?
2. 신앙 공동체와 함께 식별하기(Discerning with Faith Community)
• 떠올리기(Imaging)
- 주님께서는 이 사건/상황을 어떻게 보실까?
- 주님께서는 왜 이 사건/상황을 우리가 겪도록 허락하시는가?
- 이 사건/상황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주님의 메시지는 무엇인가?
- 이 사건/상황을 통해 주님께서는 우리를 어디로 이끌고 계시는가?
- 주님께서는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하기를 바라시는가?
-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대응하셨는가?
• 기획하기(Planning)
- 이 사건/상황에서 무엇을, 어떻게 하기를 바라는가?
- 이 조정/기획 단계에서 누구를 부르겠는가?
- 기대하는 변화/결과는 무엇인가?
- 이 사건/상황과 관련된 사람들이 여러분의 기획에 어떻게 반응하겠는가?
- 기획의 내용이 교회와 복음의 정신에 부합하는가?
- 이 사건/상황에서 교회 공동체가 참여함으로써 얻고자 하는 교회 공동체의 목표는 무엇인가?
- 이 사건/상황에 예수님과 교회의 가르침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 어떻게 이 사건/상황 속에 주님을 현존시킬 수 있는가?
3. 사목적으로 대응하기(Responding pastorally)
• 맞추기(Negotiating)
- 어떻게 사목적으로 대응을 할 것인가를 결정하기에 앞서, 염두에 두어야 할 요소들은 무엇인가?
- 현실적으로 이 사건/상황에 걸맞은 최선의 사목적 대응 방법은 무엇인가?
- 이 사건/상황에 대한 단기적인 목표와 기획은 무엇인가?
• 조직하기(Organizing)
- 누가 우리의 협조자며 반대자인가?
- 지금껏 누구와 함께 일해 왔으며, 지금 누구와 함께 일하고, 앞으로 누구와 함께 일하고 싶은가?
- 여태까지 참석하지 않았고, 또 지금 참석하지 않으며, 앞으로도 참석하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이 누구인가? 왜? 그 사람(들)을 위해서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 어떻게 이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일할 수 있도록 할 것인가?
• 수행하기(Implementing)
- 이것을 수행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 그것들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 언제, 어디서, 누구와 함께, 무엇을, 어떻게 수행할 것인가?
이렇게 사목적으로 대응한 다음에, 이 사건/상황이 계속될 때에는 오늘 한 결과를 바탕으로 다시 처음 1단계로 되돌아가 마주 보기와 식별하기, 대응하기를 반복하며 복음화 과정을 밟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