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들의 친교

-교회와 소공동체

Communion of Communities

 

 

 

 

 

 

 

 

 

 

 

심흥보 신부 지음

 

 

 

 

 

 

 

 

 

 

 

 

 

 

성바오로 출판사

 

 

 

 

 

추천서

 

 

 

저는 지난 2003년 서울대교구 시노드 후속 교구장 교서 희망을 안고 하느님께에서 보편교회의 가르침을 따라 구역, 반 소공동체로 이루어진 본당 공동체에 대해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기초 공동체란 소수의 가정이나 인근 신자들이 함께 기도하며 성경 독서와 인간적, 교회적 문제에 대한 토론을 통하여 공동 책임을 도출하는 소수 신자들의 집회를 말하는 것이다. 이런 공동체들은 교회의 활력의 표지이고 신자 양성과 복음화의 도구이며 ‘사랑의 문화’에 바탕을 둔 새로운 사회의 출발점이다.”(『교회의 선교 사명』, 51)라고 선언한 바 있습니다. 이는 소공동체의 건설이 교회가 우선적으로 추진하여야 하는 사목 과제이며, 그리스도교 교육과 선교의 훌륭한 터전이며, 교회의 본질을 드러낼 수 있는 교회적 실체라는 사실을 말하여 줍니다. 실제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교회는 자신을 ‘성사적 존재’이며 ‘하느님의 백성’이라고 정의하면서,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특징지어지는친교의 공동체라고 자리 매김했으며, 이를 실현하는 것이 교회의 본질을 구현하는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이러한 보편교회의 가르침은 다양한 교회 구성원들의 진정한 참여와 공동 책임을 바탕으로 ‘친교의 교회론’을 실현하는 구체적 장소가 소공동체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보여 줍니다. 따라서, 우리 교구가 지난 10여 년 동안 추진하였던 사목 정책인 ‘소공동체를 통한 본당 공동체의 활성화’가 ‘친교의 공동체로서의 교회’를 구현하기 위한 실천적 방안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재확인하며, 이것이 우리 교구의 이천 년대의 사목 전망 안에서 구체적으로 수행하여야 할 사목적 대안이며 정책임을 선언합니다.”(43)

그리고 소공동체 운동을 통해 드러난 많은 성과와 동시에 소공동체 모임의 방법론과 한국인의 심성에 맞는 토착화된 형태의 소공동체 모델과 교재 및 프로그램 개뱔 등을 위해 지속적으로 연구 추진하여야 한다고 선언했습니다(44).

이번에 미국 시카고 가톨릭 연합 신학대학원에서 실천신학을 공부하고 있는 심흥보 신부가 『공동체들의 친교-교회와 소공동체』라는 제목으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제2차 세계 주교 대의원회의와 교황의 사도적 권고들에서 표방하고, 현대 신학자들이 심도 있게 연구하고 있는 친교 교회론과, 친교 교회론에서 이어지는 교회의 새로운 존재 양식New Way of Being Church으로서 라틴 아메리카의 기초 교회 공동체, 아프리카의 소고동체, 아시아 그리고 우리나라의 소공동체에 이르는 교회론과 본당의 사목결정 과정을 알기 쉽게 썼습니다.

어려운 유학생활 중에서도 이렇게 교구를 기억하고 헌신하는 모습이 아주 보기 좋습니다. 우리 신자들이 이 책을 통해 교회를 더 깊이 이해하고, 교회의 건설과 선교 사명에 헌신하며, 복음화 2020 운동을 잘 펼쳐 나갈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성당 건물이 교회가 아니고, 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평신도, 수도자, 성직자인 우리 자신이 교회라는 사실을 거듭 되새겨 왔습니다. 우리는 왜 모이고, 하느님과 이웃과 세상과 어떤 관계를 맺고 살고 있는가에 대한 우리 자신의 인식과 행동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한국 사회에 우리 교회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지난 200712월 한국 주교단 사도좌 정기 방문 때 교황 베네딕토 16세께서는 저를 비롯한 한국 천주교회 주교단을 맞이하신 자리에서, “특별히 가정 문제와 가난한 이들, 북한과 중국에 관심을 가져줄 것을 요청하시고, 또 교회 토착화를 강조하시면서 전례의 토착화가 신자들의 신앙생활에 열정을 불어넣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진행하고 있는 이 소공동체 운동을 통해 우리 교회가 하느님과 우리 신자들끼리 친교를 이루어 주님 안에서 새로 태어나고 우리 주변에서 주님의 손길을 간절히 기다리는 이들에게 다가가 하느님 구원의 도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각자 이 글을 읽으면서 우리 교회의 현 모습과 또 우리 자신의 교회 생활을 되새기고, 우리나라와 우리 민족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심성과 전통에 부응하는 한국 교회를 건설해 나갑시다.

 

 

 

2008429

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 동정 학자 기념일에

추기경

정진석

 

 

 

 

 

일러두기

 

 

 

사람들은 살면서 여러 가지 일을 겪습니다. 내가 살면서 겪는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 수 있겠습니까? 신자인 나는 내가 믿는 아버지 하느님과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주님의 영이신 성령께서 비춰 주시고, 알려 주시며, 이끌어 주시는 대로 나아가려고 노력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문제들을 풀기 위해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뜻을 교회의 가르침 안에서 찾습니다. 교회는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하느님의 신비를 간직하고 그 신비를 이 세상에서 구현하여 하느님 나라를 만들고자 합니다.

과연 내가 겪는 이 일을 선배 신앙인들은 어떻게 풀어 나갔는지 교회 안에서 알게 되고, 그 선배 신앙인들의 경험을 오늘 나의 삶 속에 어떻게 적용하고 풀어나갈 수 있을지를 교회와 함께 찾아 나가게 됩니다.

내가 겪는 일이 무엇인지에 따라, 그리고 내가 겪는 일에 대한 교회의 경험이 무엇인지에 따라, 우리의 신앙생활이 좌우됩니다. 내가 어떤 대답을 교회에 기대하고, 교회가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응답하는가에 따라 교회가 하느님 구원의 도구로서 현실에서 살아나갑니다.

교회는 하느님의 교회로서 변함없는 진리를 간직하고 있지만, 각 세대마다 그리고 또 각 사람들이 처한 환경에 따라, 사람들이 바라고 사람들이 꾸미는 대로 교회는 새로운 모습을 갖추게 됩니다. 교회라는 단어를 연상하면 어떤 모습이 떠오르는지, 그리고 나와 우리들의 각 세대 안에서 어떻게 교회를 꾸며가고 있는지를 살펴보기로 합시다.

이 글은 주임 사제가 본당을 신자들과 함께 친교의 공동체를 만드는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주임 사제가 본당의 단체원들뿐만 아니라 소공동체원들로부터 본당 신자들의 살아 있는 목소리와 갈망을 듣고, 어떻게 하면 가장 효과적으로 본당 사목 평의회와 소공동체 구역장 회의가 통합된 하나의 의사 결정 과정을 통해 소공동체와 전문 위원회 그리고 단체 출신 회원들이 서로 상의하여 본당 사목의 의사 결정 과정을 가장 효과적으로 내릴 수 있는지를 연구한 필자의 박사 학위 논문 한국 천주교회 본당 사목 의사 결정 과정The Parish Pastoral Decision Making Process in the Korean Catholic Church)’에 기초한 원고입니다.

이 책은 실천신학의 프락시스-이론-프락시스의 모형을 따르고, 위 논문의 경청논의그리고 사목적 제안이란 화이트헤드의 모형과 방법 중 경청의 한국 천주교회의 경험한국 문화그리고 교회의 전승과 신학적 가르침이란 대화 상대자 중 세 번째부터 출발합니다.

2차 바티칸 공의회 문서에 드러난 예수와 하느님 나라 그리고 교회, 공의회의 교회관, 교회의 모습image, 즉 하느님 백성인 교회,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그리고 성령의 궁전인 교회. 그리고 교회의 모형model, 즉 제도인 교회, 성사인 교회, 청취자인 교회, 종인 교회, 제자 공동체인 교회, 친교인 교회. 그리고 교회의 새로운 존재 양식으로 공동체들의 친교(공동체들로 이루어진 공동체)를 교회 교도권과 라틴 아메리카, 아프리카를 통해 살펴봅니다. 그리고 아시아의 주교교회와 아시아의 영성과 한국 천주 교회를 봅니다.

또 의사 결정 과정이라는 측면에서, 한국 천주교회의 경험과 한국의 문화와 교회 전승과 논의하고, 사목적 대안으로서 사목 평의회와 구역장 회의를 통합한 새로운 본당 사목 평의회와 함께하는 의사 결정 과정 및 본당에서 맺는 삼위일체적 친교를 모색하게 됩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 동안 내가 살아오면서 경험했던 교회는 어떤 모습이고, 내가 연상하고 기대하는 교회의 모습은 어떤 것이며, 또 나와 너 그리고 우리 모두가 어떻게 교회의 미래를 꾸며나갈 것인지 그려 보기 바랍니다.

이 책에 나오는 연구의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시거나 인용하시려면 필자의 위 논문을 참조하면 좋겠습니다(http://fr.catholic.or.kr/peters1/pt/PPDMP.htm). 그리고 이 책을 바탕으로 『본당 공동체의 친교를 향하여』라는 제목으로 워크숍 북이 나올 예정입니다. 두 본당 사목 평의회원들과 가톨릭 교리 신학원의 성서 영성학과 학생분들의 연구와 실습을 통해 다듬어질 새 책이 이 원론적인 책과 더불어 우리 본당의 친교를 위해 커다란 도움이 되길 기대합니다.

끝으로 세계 각 곳을 다니시며 강의하시느라 바쁘신 가운데서도 논문을 지도해 주신 미국 시카고 가톨릭 연합 신학 대학원(Catholic Theological Union at Chicago)의 로버트 슈라이터 신부님Fr. Robert Schreiter과 함께 심사해 주신 교수 로빈 랸 신부님Fr. Robin Ryan, 동료 프랭크 호어 신부님Fr. Frank Hoare과 융 빅토리아 교수님Prof. Victoria Yeung, 그리고 시카고의 가톨릭 연합 신학대학원장 에드워드 폴리 신부님Fr. Edward Foley과 박사과정 동료들과 영어교사 스티브 맥밀린Tutor Steve Mcmillen에게도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추천해 주신 정진석 추기경님과 바쁘신 가운데서도 한글 원고를 보아주신 플로리다 탬파 성당의 염동규 신부님, 서울대교구 통합 사목 연구소 노주현 선생님, 중앙대 의대 신종욱 박사님과 출판해주신 성바오로 출판사 서 안젤로 신부님과 서 eleh 수사님 및 임직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20094 12 부활 아침에

가톨릭 교리 신학원에서

심흥보

 

 

 

 

 

 

 

 

 

 

 

추천의 글

 

일러두기

 

 

교회론

1. 성경과 초대 교회

2. 초세기 교부 교회

3. 중세 교회

4. 근대 교회

5. 현대 교회

6. 2차 바티칸 공의회 『교회 헌장』 준비

 

1장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회론

1. 2차 바티칸 공의회

    1) 예수와 하느님 나라 그리고 교회

    2) 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관

2. 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 모습

1) 하느님 백성인 교회

    2)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3) 성령의 궁전인 교회

3. 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 모형

    1) 제도인 교회

    2) 성사인 교회

    3) 청취자인 교회

    4) 종인 교회

    5) 제자들의 공동체인 교회

    6) 주님의 고난 받는 종인 교회

    7) 친교인 교회  

       (1) 2차 바티칸 공의회, 시노드, 그리고 신앙교리성

       (2) 친교 교회론 최근의 연구들

4. 2차 바티칸 공의회 후 『교회법』에 나타난 본당 사목 평의회

 

2장 교회의 새로운 존재 양식, 공동체들의 친교

1. 교회 교도권에 나타난 기초 교회 공동체,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소공동체) … 

2. 라틴 아메리카의 기초 교회 공동체

3. 아프리카의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소공동체) …

4. 아시아의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소공동체) …

1) 아시아 주교회의 

2) 아시아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소공동체)의 영성인 조화의 영성

 

3장 한국 천주 교회

   1. 서울대교구 소공동체 도입 배경

   2. 서울대교구 소공동체 도입 과정

       1) 서울대교구 사목 정책 모색(1992-1993) …

       2) 소공동체 도입(1994) …

       3) 소공동체 수용(1995-1997) …

3. 소공동체 운동의 결과(1998-) …

   4. 소공동체 운동의 과제

1) 일반 과제

    2) 의사 결정 과정에 있어서의 갈등

    3) 사목 평의회와 구역장 회의

 

4장 본당 사목의 의사 결정 과정

1. 적절한 의사 결정 방식

2. 의사 결정 과정의 참여자

3. 의사 결정 과정 새 모형  

4. 의사 결정 과정의 변수들

 

사목적 제안

1. 의사 결정 과정의 방법

    1) 문제 해결 방식

    2) 사목 기획

2. 사목 현안을 푸는 참여자의 일반 원칙

3. 의사 결정 과정 구조의 새로운 모형

    1) 새 본당 사목 평의회 구조의 개념: ‘친교공유’ …

    2) 새 본당 사목 평의회 모형의 본당 사목팀’ …

    3) 새 본당 사목 평의회 모형의 모형의 기본 조직

    4) 새 본당 사목 평의회 구성을 위한 일반적인 지침

4. 주임 사제(본당 사목팀 또는 지도자)의 의사 결정 과정을 위한 이정표

5. 본당에서 맺는 삼위일체적인 친교

 

미주

 

참고 문헌

 

 

 

 

 

교회론

 

 

 

 

 

교회는 거룩한 진리를 품고 있지만, 교회 안에는 죄인들이 모여 있다. 그리고 교회는 천상을 향하면서도, 당장 눈 앞에 놓여있는 수많은 현실적인 인간사에 몰두해 있다. 그리고 세상과 대화하기 위해 문을 열려고 하지만, 전통 속에 잡혀 있는 듯하다. 이러한 모순은 육이 되신 말씀의 신비를 향해 인간 마음의 생각이 일상에 구체화되듯이 교회의 내적 진리가 외적 현실에서 이루어지기까지의 과정을 보는 듯하다. 지상 현실에서 새 하늘과 새 땅인 하느님 나라를 향해 순례하는 우리 교회의 모습이기도 하다. 까르댄 추기경은 이와 관련하여 노동 청년들에게 희망은 하늘에 두지만 발은 땅에 두어야 한다고 말했다.

교회는 하느님의 구원의지를 실현하는 그리스도 예수를 주님으로 모시고 성령의 인도를 따르기에 신비이다. 이 신비 안에서 그리스도 신자들은 교회를 믿는다.”고 고백한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교회를 세우시고, 구원의 도구로 삼으셨으며, 그 교회 안에서 활동하시기 때문에 교회를 믿는다고 말한다. 신자들은 교회를 통해 그리스도를 믿고, 교회를 통해 성경, 성사를 받으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하느님께 나아간다.[1]

 

 

 

1. 성경과 초대 교회

구약에서는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선택하셨다는 면에서 신약의 새로운 이스라엘을 준비하고 있다.[2] 히브리어, 퀘핼qehal의 그리스어 번역, 에클레시아ecclesia 70인역에서 70번 이상 사용되었다. 그 의미는 하느님을 따르고 하느님과의 계약을 갱신하고, 하느님의 바르심을 수행하기 위해 하느님께서 불러 모으신 하느님의 백성이다.

초기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에클레시아라는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하느님께서 자신들을 불러 모으시고, 그 모임에서 하느님과 만난다는 것을 강조했다. 성령에 충만한 하느님 백성이라는 성격이 강한 종말론적인 공동체를 드러내고 있는 신약의 교회론에서는, 에클레시아가 어느 곳에서는 한 지방의 특정 교회를 의미하고, 어느 곳에서는 모든 집단을 포함한 전교회를 지칭한다.

충만한 기쁨으로 특징지어진 하느님 백성은 메시아적 백성이다(루카 1,28; 갈라 4,4,; 2코린 5,17; 히브 4,1 참조). 성령의 은사를 받은 메시아적 백성은 성령에 의해 인도되고, 성령이 구원과 영원한 영광의 보증(2코린 1,22 참조)이 되어, 종말의 날에 성령으로 충만될 것이라는 생각이 초대교회에 가득 차 있었다. 초대교회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삼위일체적 신비와 결합하여 밀접한 사랑과 강한 일치를 맺고 있다(갈라 3,2; 1코린 10,17; 12,4; 6,12-13; 로마 15,5; 에페 4,1-6 참조). 초대교회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자신들이 교회로서 하느님으로부터 선택받은 백성이라는 강한 느낌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자신들의 회개를 통해 하느님의 자비로우신 부르심을 체험했기 때문이다(1베드 2,9-10 참조). 구약의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에제 37,27; 레위 26,12)라는 계약의 말씀이 자주 인용되고 있다(2코린 6,16; 히브 8,10; 묵시 21,3).[3]

사목 서간들에 의하면 교회 내에서 바오로를 협조하는 이들은 깨어 지키는 사람들인 감독들(episkopoi: 필리 1,1), 사목에 대한 과제들을 가지고 있는 원로들 또는 명사들(presbyteroi: 사도 11,30, 1베드 5,2), 공동체 형제들에게 헌신하는 주관자들(proistamenoi), 봉사자들인 부제들(diakonoi: 사도 6,2-6; 필리 1,1), 예언자들과 교사들(사도 13,1)이 있었다. 이들은 사도들의 지휘 아래 있었다. 그리스적 권한에서 유래한 감독들과 유다 회당에서 유래하는 원로들은 서로 겹쳐 드러나고 있어 동등한 가치를 가지며, 일종의 단collegium으로서 공동체의 지도와 안내를 맡았다. 예수의 승천과 재림 사이의 시기에 사명을 수행한다고 믿었던 사도들의 협력자들로서 감독들과 원로들이 활동했다.[4] 티모테오에게 보낸 첫째 서간 4 14절과 티모테오에게 보낸 둘째 서간 1 6절을 보면, 안수를 받고 일정한 책임을 갖게 된 티모테오와 티토는 본래적인 의미의 사도도 아니었고, 바오로적인 의미의 사도도 아니었지만 그들은 개별 교회들의 원로들과 감독들에 대한 권위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의 첫 번째 임무는 건전한 가르침을 따라(티토 1,9) 말씀을 선포하며(2티모 4,1-4) 이단을 거슬러 싸우는 것이다. 티모테오는 자기보다 높은 권위에 기대는 가운데 이를 실행하고(1티모 5,17-22; 티토 1,9; 2,1-15), 감독은 개별 교회들을 위해 원로들과 부제들을 준비해주어야 한다(1티모 3,1-13; 티토 1,5-9). 후에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에게서 드러나는 감독-원로-부제라는 삼중적인 어휘가 교회 내에 형성되어 가고 있었다.[5]

 

 

 

2. 초세기 교부 교회

클레멘스 교황은 기원 후 96-98년 사이에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적법하게 신적이고 사도적으로 안수된 사제직은 항구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로마 교황이 코린토라는 지역 교회의 사건에 권위적으로 개입한 첫 전승인 이 서간은 2세기 내내 보편교회 내에서 커다란 권위를 누렸다.[6] 2세기 초의 주교이자 신학자인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는 서기 107년경까지 아시아의 여러 교회에 서간을 보냈는데 거기에 주교, 사제, 부제라는 세 단계로 구성된 교계제도를 묘사했다. 그의 서간을 보면, 주교는 하느님의 가시적인 이미지로서 군주제적인 의미에서 그분의 권위를 수여받고, 지역 교회에 있어 성찬례를 거행함으로써 일치의 중심이자 이를 대표한다. 그가 이해했던 교회는 로마 교회와의 친교 안에 있는 교회이다.  그는 베드로와 바오로가 로마에 있었으며 거기서 복음을 설교했다는 면에서 로마 교회에 우위성을 둔다.[7]

라칭거의 설명에 의하면, 초대 그리스도교 세계에 있어서 교회라는 용어는 예배하는 회중,’ ‘지역 교회,’ ‘보편 교회라는 삼중 의미를 가지고 있다. 지역 교회는 보편 교회를 대변하며, 성찬례 안에서 이루어지는 예배 모임은 각 개별 교회가 갖는 교회성의 구체적인 실현으로 여겨졌다. 이러한 성찬례를 통해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고, 한 교회에는 한 주교가 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허틀링L. Hertling은 보편교회의 일치가 한 주교의 통치 아래 있는 각 지역 교회들간의 일치를 의미한다고 했다. 이러한 교회들은 흔히 평화라는 말로 지칭되는 친교 안에서 서로 일치한다. 그리고 죽은 이들의 무덤 위에 쓰여진 평화 안에서라는 말은 망자가 교회의 평화 안에서, 즉 그리스도교적인 친교 안에서 죽었음을 의미한다. 이 친교는 지역 주교와의 일치 그리고 그 주교가 가르치는 신앙과 일치하는 것이라는 본질적인 조건이 전제한다. 신앙고백에 이은 세례 그리고 성찬례의 친교가 이러한 친교의 가시적인 표현이었다. 로마 교회와의 친교로부터 제외된 이는 더 이상 교회에 속하지 않았다.[8]

2세기 말경에 사도성과 가톨릭성의 기준을 따라, 로마 교회가 지닌 고유한 가치와 권위의 힘을 바탕으로 다른 교회들을 통해 지속되어 왔던 기준, 즉 사도전승, 로마 교회의 전승에 의해 로마에서 신약 정경이 확정되었다. 그리고 빅토리오 교황(189-190)은 베드로와 바오로의 무덤이 로마에 있음을 근거로, 다른 교회들을 친교에서 제외할 것이라는 위협 속에, 로마의 수위권으로 부활절 날짜를 확정하여 지역 교회들이 따르도록 공포했다.[9]

3세기 교회에 가톨릭 신앙을 인간적인 인식과 지혜로 전락시킨 영지주의의 위기가 들이닥쳤다. 그래서 헤게시포Hegesipus와 테르툴리아노와 이레네오는 현실 안에서 안수를 통해 계승적으로 전해 내려온 사도전승에 호소하기 시작했다. 주교들은 사도(계승)전승을 만들었고, 리옹의 주교인 이레네오는 우리는 사도들로부터 유래하고 주교들의 계승을 통해 여러 교회들 안에 보존되고 있는 이 전승에 의지한다.”고 썼다.[10]

215년경에 쓰여진 히폴리토의 『사도전승』은 주교 서품에 대해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모든 면에서 흠이 없는 이들 가운데 서품될 주교는 모든 백성들에 의해 선택되고, 다른 사제들과 주교들에 의해 받아들여져야 하며, 다른 지역 교회 주교들에 의해 안수되어 주교단에 들게 된다.[11] 그리고 이단자에게 받은 세례는 무효이기 때문에 다시 받아야 한다는 아프리카 라프타고의 주교였던 치프리아노Ciprianus와 세례가 제대로만 수여됐다면 늘 유효하다(Epist. 74,1)는 스테파노Stephanus 1세 교황(254-257) 사이에 교황의 수위권primartus 문제로 갈등을 겪다가, 둘 다 서거 후 아프리카 교회는 로마의 가르침을 받아들였다.[12]

4-5세기 로마 교회는 베드로와 바오로가 로마에서 순교했다는 바탕 위에 325년 니케아 공의회 6항에서 처음으로 수위권을 확고히 한다. 그 수위권은 복수형으로 로마, 알렉산드리아, 안티오키아 주교좌를 언급하지만, 알렉산드리아좌와 안티오키아좌의 수위권이 지역적인 것에 반해, 로마좌는 지역적 범위를 넘어 보편적인 특징을 갖는 수위권을 누린다. 343-344년에 개최된 사르디카 공의회를 비롯한 여러 공의회에서 주교 파면에 대한 결정권을 로마 교회에 둔다고 정했다.[13] 이 로마좌의 수위권은 431년 에페소 공의회에서 거룩한 정경과 로마교회의 주교인 첼레스티노 교황 성하의 서신의 권위로네스토리아를 파문할 때, 451년 칼케돈 공의회에서 베드로의 후계자로서 로마좌의 레오 대교황에게서, 418년 카르타고 공의회와 밀레비 공의회, 868-879년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에서 재확인되었다.[14]

 

 

 

3. 중세 교회

로마 제국 시대의 그리스도교 신자는 신약 성경에서 발견되는 하느님 백성이라는 교회의 개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에게 교회는 성령의 역사이고, 그 때문에 초대교회의 신앙고백 가운데 교회를 믿는다는 표현이 발견되고, 그것으로써 교회가 하느님으로부터 선택된 이들의 신비스러운 공동체라는 신앙을 표현한 것이다. 성 토마스의 교회론은 신약의 교회론과 유사했다.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실제로 현존하시는 그리스도의 신비이고, 아벨 이후의 모든 의인이 속하는 신자의 집단으로 믿음, 희망, 사랑으로 살아가는 생활공동체이다. 교회는 영적이고, 내적인 현실이며, 그것이 눈에 보이는 외적인 교회 조직으로 되어 있는 유일한 공동체이다. 그러나 성 토마스 이후에는, 로마 제국이라는 현실적인 권위와 제도가 교회의 외적인 모습에 영향을 끼치게 되면서 가시적이며 법적인 제도로서의 교회론으로 바뀌게 되었다.[15] 중세 교회는 그리스도교 교리라는 하나의 사상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두를 지배하는 질서가 되었지만, 가난한 이들의 기쁜 소식이어야 할 교회가 물질적인 재화와 현세적인 권력을 취함으로써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할 교회의 본 모습을 잃게 되었다. 정치적인 이해관계에 휩쓸리게도 되고, 방대한 토지 등의 재산을 국가 또는 정부 권력으로부터 희사받게 되자, ‘사람들을 섬기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여 가난해지신 주님의 사랑이 퇴색되어 갔다.

이러한 교회의 고착되고 현세적인 모습을 개혁하고자 했던 여러 노력들이 개혁자들과 주변의 이해 관계로 인해 좌절, 변형되기도 하여 종교 분열을 가져왔다. 이러한 분열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으나, 끝없이 용서해 주시고 이끄시는 주님의 사랑을 신뢰, 의지하고 거듭 태어나려고 하는 신앙이 현실적인 안정과 물질적인 풍요 속에서 약해진 결과로 보인다. 가톨릭교회는 이러한 자극에 대항하여 한때 더 고착되기도 하였으나, 내적으로 쇄신과 선교 활동에 주력하여 다시금 교회의 본 모습을 되찾고자 했다.

 

 

 

4. 근대 교회

16세기에 시작된 프로테스탄트 신학자와 가톨릭 신학자의 논쟁은 서로의 교회론에 영향을 주고받았다. 프로테스탄티즘은 성도들의 모임에 의해 구성된 비가시적 교회를 사도신경의 고백과 성사들에 대한 참여를 통해 인식되는 외적인 교회사이와의 대립 구조로 잡는다. 칼빈Clavin은 하느님만이 아시는 하느님이 선택한 예정된 이들의 교회를 인간적인 표현으로 축소된 가시적인 교회로부터 구별한다. 호세 안토니오 사예스Jose Antonio Sayes는 벨라르미노Robert Belarmino가 가시적인 것과 비가시적인 것 사이의 분리를 피하고자 교회를 완전한 사회로 정의했다고 밝힌다.[16] 그런데 벨라르미노의 정의를 살펴보면 종말론적이며, 성령으로 충만된 하느님 백성, 그리스도의 신비스러운 현존으로서의 교회의 모습보다는 제도적이고 가시적인 교회의 모습을 더 강하게 드러내는 듯하다.

 

교회는 동일한 그리스도교 신앙을 선언하고, 정당한 사목자들, 특히 지상에서 그리스도의 대리자인 오직 한 사람인 로마 교황의 통치 아래, 동일한 성사들을 통한 친교로써 결합된 사람들의 집단이다.[17]

 

17-18세기 가톨릭교회론에는 프로테스탄트에 대한 호교적인 경향이 남아 있어서 교회의 가견적 면이 되풀이 강조되었다.[18] 또 다른 한 편, 십자군 전쟁 이후 활발히 전개된 세계 무역을 위한 대단위 공장 설립 및 기계화에 따른 노동자들과 도시 빈민들의 비인간적인 처지나 호소에 대해 복음적으로 응답하지 못함으로써, 사회로부터 교회 제도뿐만 아니라 주님마저도 부인, 거부당하는 무신론계몽주의공산주의의 출현을 유발시켰다.

 

 

 

0.5. 현대 교회

19세기 자일러J. B. Sailer, 드레이J. S. Drey, 히르셔J. B. Hirscher, J. E. Kuhn, 묄러J. A. Mohler 등의 튀빙겐 학파는 교회를 성령의 작용 아래 있는 신적 실재로 소개한다.[19] 그리고 묄러는 교회가 획일성이 아니라 여러 교회가 일치, 교류하는 것임을 지적하여, 교회일치운동에 관한 견해를 제공했다.[20] 페로네G. Perrone, 파살리아C. Passaglia, 슈라더C. S. Scharader, 프란첼린J. B. Franzelin, 뉴만John Henry Newman 등의 로마 학파는 교회가 갖는 신비의 내면적 전망, 곧 거룩함 속에서 교회를 제시한다.[21]

묄러 이후 교황 레오 13세가 그리스도의 신비체로서의 교회에 대해 자주 언급했다. 1920년까지는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설립했다는 것과 교회에는 눈에 보이는 조직으로서의 여러 특징이 있다고 강조했으나 교회의 본질에 대한 연구는 드물었다. 1920년 이후 전례 쇄신 운동, 성체 신심, 그리스도 중심적 사고방식들의 영향으로 교회론에 변화를 가져왔다. 신학자들은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교회, 성령께서 내재하시는 교회를 고찰하기 시작했다.[22]

20세기 들어 교황 비오 12세의 회칙 『그리스도의 신비체 (Mystici Corporis; 1943)』는 전례 운동을 통해 교회를 신자들이 믿고 성사들을 통해 참여하는 생명의 신비로 소개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관점은 제도적인 측면보다 성령의 선물을 통해 삼위일체의 친교 속으로 들어가도록 이끌어 주는 교회가 지닌 생명의 차원에 대해 강조했다.[23]

 

교회는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칠 강력한 조직 그 이상인 신앙의 신비이며, 계시에 의해서만 알 수 있는 것이다.[24]

 

교회의 눈에 보이는 면과 보이지 않는 면에 대한 논쟁 속에서, 프로테스탄트적 이상향과 가톨릭적 현실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비오 12세는 회칙 『그리스도의 신비체』와 『인류(인간 종족에 대하여Humani Generis; 1950)』에서 그리스도의 신비체와 가톨릭교회는 동일하다[25]고 쓰고 있다. 2차 바티칸 공의회는 이 가르침을 보존하면서, 비가톨릭 그리스도교 신자를 손상하지 않도록 새로운 표현양식으로 교회를 묘사한다. 그러나 현재의 가톨릭교회와 그리스도의 신비체라고 일컬어지는 시간을 초월한 참교회를 온전히 동일시하는 위험에서는 벗어나야 한다. 그래서 지상의 교회는 변화하는 세상에서 어떻게 하느님의 백성이며 그리스도의 신비체로서의 참교회가 될 수 있도록 자신을 끊임없이 쇄신해야 한다.[26]

 

 

 

6. 2차 바티칸 공의회 『교회 헌장』 준비

1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는 교회에 관한 의안의 1장 교황의 무류성만이 채택, 토의되었다. 주교들을 교황의 수하에 있는 조직으로 보았다. 그리고 탁발수도회의 탄생으로 수도회들이 각 지방 주교들의 관할을 벗어나는 면속이 되면서 교황의 재치권이 더 강조되었다. 그러나 주교의 권위와 재치권이 교황 성좌에서가 아니라 주교 성품 성사에 바탕하며, 아울러 교회의 권위가 공동체 전체와 함께 행사되는 것이고 이 공동체 안에서 참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 재인식되었다. 그래서 교황과 주교와의 단체성에 주목하게 되었다. 레퀴예J. Lecuyer, 봇테B. Botte의 연구에 의하면, 주교 서품으로 단체, 즉 주교들의 공동체에 가입하는 것이다. 이로써 훗날 주교협의회가 설립되어 활발하게 공동 연대 활동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주교 서품으로 주어진 은총에서 흘러나오는 첫 번째 임무가 바로 복음 선교라는 것도 되새기게 되었다. 이런 것들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회 헌장』 제3장에 채택되었다.[27]

『교회 헌장』을 준비하면서 준비 의안에 대해, 벨기에 브루쥬의 수에넨스Suenens 추기경은 교회 의안이 성직자 중심이거나 법적으로만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프랑스 아라스의 위그Huyghe 주교는 가톨릭 신자들이 교회의 모습을 흐리게 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의 모습을 발견한 수 없게 되었다고 반성했다. 그래서 교회란 무엇인가?’ ‘교회의 이상상이란 어떤 것인가?’하는 진지한 모색을 하기를 바랬다. 그래서 교회가 복음의 정신에 충만해 있다는 것, 교회가 모든 사람에게 대한 자신의 사명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는 것, 교회가 세계에 봉사하기를 바라고 있다는 사실을 명백히 드러내야 한다고 했다. 몬티니Montini 추기경은 교회와 머리이신 그리스도와의 충분한 관계를 표현해야 한다고 했고 그리스도에 의해 사도단이 제정되고, 사도 전승, 주교의 사명, 권위, 주교 서품의 성사성 순으로 전개되기를 바랐다. 볼로냐의 레르카로G. Lercaro 추기경은 교회가 다시 가난해져야 한다고 했다. 예수의 오심을 예언한 예언자들, 마리아, 예수께서 탄생한 베틀레헴은 모두 가난한 특징을 지니고 있고, 현대 세계의 3분의 2가 가난하다. 그래서 의안은 가난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 및 가난이 갖는 위대한 가치와 그리스도가 가난한 자 안에 그리고 다른 한 쪽으로는 그리스도가 교계제도와 성체 안에 현존한다는 사실을 다뤄야 한다고 했다. 슬리피Slipyi 주교는 교회가 가난한 자들과 사회에 보다 더 봉사하고, 사람들에게 영생을 가져다 주며, 모든 것을 그리스도를 위해 참아내야 한다고 했다. 교황 요한 23세는 교회가 그리스도의 빛, 인류의 빛Lumen Christi, Lumen Gentium”이 되기를 바랬다. 프링스J. Frings 추기경은 종말 공동체와 마리아의 역할 및 교회와의 관계를 다루도록 요청하며, 교회를 구원의 원성사로서 하느님 백성, 그리스도의 신비체라는 교회의 두 가지 묘사를 보충할 것을 제안했다. 비진스키Wysynski 추기경은 철의 장막 뒤에서 박해를 받음으로써 보이지 않는 교회로 남아 있는 이들을 기억하자고 했다. 식크Schick 주교는 그리스도께서 실제로 활동하시는 부분 교회가 전체 교회의 참실현이며,  마인츠의 포크Volk 주교는 교회가 하느님의 말씀을 들음으로써 살게 된다는 것과 교회는 마지막 승리의 날에 하느님 나라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28]

이러한 과정들을 통해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 헌장』은 1장 교회의 신비와 2장 하느님 백성, 3장 교회의 위계 조직, 특히 주교직, 4장 평신도, 5장 교회의 보편적 성화 소명, 6장 수도자, 7장 순례하는 교회의 종말론적 성격, 그리고 천상 교회와 그 일치, 8장 그리스도와 교회의 신비 안에 계시는 천주의 성모 복되신 동정 마리아로 구성되게 되었다, 이제 본론에 들어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들에 드러난 교회론과 그에 따른 교회의 새로운 존재 양식 모색 및 각 지역 교회들의 구체화 움직임들을 살펴보기로 하자.

 

 

 

 

 

1장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회론

 

 

 

 

 

이 장에서는 변화하는 사회의 환경에서 시대의 징표를 읽고 그때마다 응답해온 교회의 역사를 여러 가지 교회론을 통해 살펴볼 것이다. 1990년대부터 한국 천주교회는 소공동체 운동을 본당의 주요 사목 정책으로 삼아왔다. 교회 전승과 사목적 가르침이라는 면에서, 소공동체 운동의 방향과 모습을 살펴보고, 교회론들을 통해 어떻게 하면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고 성직자와 수도자 그리고 평신도들 사이에 친교를 나누는 하느님 나라를 건설할 것인지를 살펴본다. ‘친교인 교회론은 소공동체 사목의 기초 교회론이라고 불릴 수 있다.

이 장에서는 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론하느님 백성’, ‘그리스도의 신비체’, ‘성령의 궁전인 교회의 모습 그리고 제도’, ‘성사’, ‘청취자’, ‘’, ‘제자들의 공동체’, ‘주님의 고난 받는 종인 교회그리고 소공동체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친교인 교회를 볼 것이다. 그리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의 『교회법전』에 나타난 본당 사목 평의회도 볼 것이다.

 

 

 

1. 2차 바티칸 공의회

1) 예수님과 하느님 나라 그리고 교회

그가 그들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거든 교회에 알려라. 교회의 말도 들으려고 하지 않거든 그를 다른 민족 사람이나 세리처럼 여겨라.”(마태 18,17) 예수님께서 교회와 관련하여 성경에서 두 번 말씀하셨다. “나 또한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해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또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마태 16,18-19). 이 본문들은 교회를 하느님 나라와 연결시킬뿐만 아니라, 하느님 나라를 교회와 연결시키고 있다.

애버리 둘스는 마태오 복음서 16 18절부터 19절까지를 이용하여 설명했다. “같은 행위로 그리스도 교회의 기초가 베드로에게 놓여졌고, 하느님 나라의 열쇠를 담당하도록 했다.” 그는 마태오 복음서 18 18절의 본문을 이용하여 계속 설명한다. 그는 땅에서 교회가 내린 결정은 인간의 확실한 참여라는 면에서 하느님 나라라는 궁극적인 왕국에서도 유용하다.”[29]

성경에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교회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신 것”(에페 5,25)이라는 또 다른 표현이 있다. 레이몬드 브라운은 이 본문을 이용하여 말했다. “예수께서 어떤 공적인 형태의 사회를 전혀 고려하지 않으셨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아주 신속하게 공동체로 기울어져 갔다세례자들, 그들의 이름은 그들 스스로 규정한 길의 추종자란 그 첫 이름 중의 한 이름인 친교KOINONIA’ 공동체에 속한사람들로 예정되어 있었다.”[30]

한스 큉은 말했다. “예수께서는 교회를 선포하지도 않았고, 자신을 선포하지도 않았으며, 오직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셨다교회가 예수님에 의해 세워지지는 않았을 지라도, 그 기원은 그분에게 향해 있다. 그분은 십자가에 못 박히셨지만, 이미 나타나기 시작한 하늘 나라를 믿은 이들 안에 아직 살아 계시다.”[31] 푸엘렌바흐는 칼 라너와 게르하르드 로핑크는 한스 큉을 따른다고 밝혔다.[32] 그는 한스 큉은 우리는 그리스도의 부활과 성령강림으로 불리는 사건에서 출발하지 않는다면 교회에 대해 말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33]고 말했다.

리차드 맥브리엔은 교회가 예수님에 의해 설립되지 않았지만 교회의 기원은 예수께 있다고 했다. 예수께서는 그분의 복음을 받아들인 제자들을 모으시고, 세상에 그분의 사명을 실현하도록 보내셨다(마태 10,1-16 참조). 예수께서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분을 거부했기 때문에 그분을 믿고 하느님 나라를 향해 나아가기를 바라는 새로운 종말론적인 백성들을 만드셨다. 제자단은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함께 머물러 있었다.[34] 게하르트 로핑크는, 예수께서는 교회를 세우려고 하시지 않았다고 했다.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을 통해 교회를 설립하셨다.[35] 레오나드르 보프는 한스 큉처럼 예수께서는 교회보다 하느님 나라에 관심을 더 두셨다고 말했다.[36]

2차 바티칸 공의회는 예수님과 교회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교회의 신비는 그 창립에서 드러난다. 주 예수께서는 “때가 다 되어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왔다”(마르 1,15; 마태 4,17 참조)하시며. 오래 전부터 성서에서 약속된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왔다는 기쁜 소식을 선포하심으로써 당신 교회를 시작하셨던 것이다…. 예수께서는 사람들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가 부활하셨을 때에성부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당신 제자들에게 부어 주셨다(사도 2,33 참조). 그러므로 교회는 그 창립자의 은혜를 받아 사랑과 겸손과 극기의 계명을 충실히 지키며, 하느님과 그리스도의 나라를 선포하고 모든 민족 가운데에 이 나라를 세울 사명을 받았으며 또 지상에서 이 나라의 싹과 시작이 된 것이다. 교회는 조금씩 자라나는 동안 하느님 나라의 완성을 위하여 분투하며, 온 힘을 다하여 자기 임금님과 영광스럽게 결합되기를 바라고 갈망한다.[37]

 

2차 바티칸 공의회는 그리스도께서 교회에게 주신 사명, 즉 복음을 선포하고 그 복음을 채움으로써 이 세상 끝까지 하느님 나라를 세우라는 사명을 받았다고 확언한다.

푸엘렌바흐는 여러 신학자들의 공통점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예수께서는, 하느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구하시러 다시 오실 하느님 나라를 선포했다. 이 마지막 날에 대한 선포는 종말론적인 공동체를 하느님 나라에 속하게 한다. 이 공동체는 이스라엘이 되도록 기대되었고, 모였으며, 복원되었다. 하느님께서 모든 민족들을 구원해 주시기를 바라며 말이다.

   이스라엘의 결집은 예수께서 그분을 따르도록 초대하고 또 실제로 그 사명에 참여한 제자들에 대한 예수의 직무(마태 10,5-6 참조)에서 비롯되었다. 그들은 곧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들이 연결될 첫 열매이다.

자신의 백성들을 위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전체 상황을 바꾸었다. 그분의 죽음은 이스라엘에게 회개하도록 새롭게 그 책임을 묻게 하였다. 구원은 첫째 이스라엘에게 제공되었다. 그러나 이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수반된 구원을 받아들이도록 요구하는 것이 포함되었다. 한 개인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세례를 통해 이 새로운 종말론적인 공동체에 들어갈 수 있다.

이스라엘이 하느님 나라를 받아들이는 것을 거부함으로써,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진행되었고, 제자들이 이방인들에게 나아가게 되었다. 예수님에 대한 거부는 새 상황을 만들어 냈다. 이 통찰은 하느님께서, 이제 이스라엘과 많은 민족들을 새 백성이 되도록 부르셨다는 것에서 출발한다. 이 새로운 인식은 예수님의 영이 공동체가 취해야 할 방향을 계시하신 구체적인 사건들을 통해 드러난다.

하느님의 구약시대의 백성에 뿌리 박혀 있는(“이스라엘이라는 올리브 나무에 접목된,” 로마 11,17) 반면에, 이 새로운 하느님의 백성은 모든 이들에게 하느님의 보편적인 구원의지를 전달하는 새로운 전달자가 된다. 이것은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신 예수께 주어진 사명을 계속하는 것이다. 그 사명의 내용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실현된 하느님 나라를 유지하는 것이다.[38]

        

2) 2차 바티칸 공의회 교회관

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의 여러 가지 본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신비인 교회.’[39] 교회는 신적이고 초월적이며 구원의 도구이다. 하느님께서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하느님의 힘으로 하느님의 구원 사명을 실현하시기 위해 약한 사람들을 하느님 구원의 도구로 뽑으셨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교회를 통해 하느님의 영광과 영예를 볼 수 있게 한 것이다. ‘달의 신비인 교회.’[40] 그리스도께서 빛이시라면, 교회는 길이며, 진리이며, 생명이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빛을 반사하는 달이다. ‘그리스도의 성사인 교회.’[41] 그리스도께서 하느님과 일치하여[42] 하느님 아버지의 징표이며 성사인 것처럼, 교회는 그리스도와 일치한 그리스도의 성사이다. ‘삼위일체로부터의 교회.’[43] 하느님 아버지께서 성령의 힘으로[44] 사람들을 구원하라고 보내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인 삼위일체로부터의 교회이다. ‘하느님 나라의 근원이요 성사인 교회.’[45]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46] 가르쳐주시고 몸소 이루신 구원의 신비들을 선포하고 실현해 왔다. ‘그리스도의 신비로운 몸이신 교회.’[47] 그리스도께서는 다시 오실 때까지[48] 세상에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고 드러내도록 하기 위해, 몸의 머리로서 몸의 각 부분에 모든 신자들을 신비스럽게 결합시켜 교회를 만드셨다.

신학자 풀렌바흐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에 나타난 여섯 가지 다른 교회관을 조지 바움의 말을 인용하여, ‘가톨릭교회인 교회’, ‘지역 교회인 교회’(『교회 헌장』 23. 26), ‘세례 받은 이들의 공동체인 교회’(『친교 교령』 3. 22; 『교회 헌장』 14. 15), ‘이스라엘 백성과 연관된 교회’, ‘아벨로부터 이어 온 교회’(『교회 헌장』 1. 48), ‘가정 교회’(『교회 헌장』 11)[49]라고 설명했다.

2차 바티칸 공의회는 하느님 백성인 교회’, ‘그리스도의 신비체’, ‘성령의 궁전’, ‘포도나무’, ‘양떼’, ‘결혼 잔치’, ‘신부’, ‘양우리’, ‘농사’, ‘건물과 성전’, ‘영신의 집과 거룩한 도성’, ‘기초’, ‘동정 성모’, ‘순결한 배우자’, ‘열매 맺음[50] 등으로 교회의 다양한 모습을 드러냈다. 공의회는 이런 성경적인 모습을 통해 교회를 쇄신하고자 했다. 공의회의 공동체 교회론은 지난 시절보다 보다 더 선명해졌다. 그 추세는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교회의 기본 뼈대로 『교회 헌장』에 나타난 교회의 모습은 위대한 희망을 간직하고 있는 교회의 역동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 희망은 교회가 삼위일체의 표상으로서 교회의 본질이며, 모든 피조물에 대한 하느님의 위대한 미래이자, 하늘 나라를 가져오려고한 창립자의 기본 취지를 계속하려는 그 사명이다. 그 희망은 세상 끝까지 온전히 이루어질 때가지 교회가 잊지 말아야 할 본질이며 사명이다.[51]

공의회는 교회의 여러 가지 모형을 기술했다. 신학자 애버리 둘스는 자신의 책, 『교회의 모형Model of Church』에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다섯 가지의 모습을 찾았다. ‘제도인 교회’, ‘신비스런 친교인 교회’, ‘성사인 교회’, ‘청취자인 교회’, ‘종인 교회[52]가 그것이다. 그는 훗날 제자들의 공동체인 교회의 모형을 추가했다.[53] 신학자 제롬 테이슨은 자신의 책 중의 『교회의 직무』라는 부분에서 교회의 아홉 가지 모형을 기술했다.[54] 그는 세상의 종인 교회’, ‘구원의 징표인 교회’, ‘하느님 말씀의 청취자인 교회’, ‘하느님의 징표인 교회’, ‘경배의 촉진자인 교회’, ‘공동체 삶과 인간 일치의 상징인 교회’, ‘화해의 원천인 교회’, ‘세상의 예언자인 교회’, ‘변화의 매개인 교회’, ‘미래의 촉진자인 교회이다. 신학자 도일과 틸라드는 친교인 교회의 모형을 발견했다. 저자는 고난 받는 종인 교회를 바라본다.

앞으로 친교와 평신도들의 참여라는 관점에서 소공동체와 관련된 교회의 모습을 ① 하느님 백성인 교회, ②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교회, ③ 성령의 궁전인 교회로 살펴 볼 것이다. 그리고 둘스의 ① 제도인 교회외에도 친교와 평신도들의 참여라는 관점에서 소공동체와 관련된 교회의 모형을 ② 테이슨의 구원의 표징인 교회와 하느님의 표징인 교회와 유사한 둘스의 성사인 교회’, ③ 테이슨의 하느님 말씀의 청취자인 교회세상의 예언자인 교회와 유사한 둘스의 청취자인 교회’, ④ 테이슨의 공동체 삶과 인간 일치의 상징인 교회와 유사한 제자 공동체인 교회’, 그리고 ⑤ 테이슨의 세상의 종인 교회와 유사한 둘스의 종인 교회로 살펴볼 것이다. 종인 교회의 모형은 사회에 봉사하는 교회에서 세상을 위해 희생하고, 고난 받고, 봉사하며 구원하는 교회로 확산될 수 있다. 이 모형은 타이슨의 세상의 예언자인 교회’, ‘변화의 매개인 교회’, ‘화해의 원천인 교회’, ‘경배의 촉진자인 교회와 유사한 주님의 고난 받는 종인 교회라고 부를 수 있다. ⑦ 그리고 또한 소공동체, 즉 공동체들의 공동체인 모형의 근거가 되는 친교인 교회를 살펴볼 것이다.

 

 

 

2. 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 모습

다양한 교회의 모습 중에 소공동체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모습을 친교와 평신도들의 참여라는 관점에서 살펴 본다. 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관은 『교회 헌장』[55]과 『사목 헌장』[56]에 나타난다. 그리고 1964년 발표된 회칙 『교회에 관하여』[57]도 역시 교회론을 드러낸다. 이 문서들은 교회의 모습을 하느님 나라인 교회’,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성령의 궁전인 교회로 표현하고 있다.

 

이렇게 교회는 동시에 기도하고 일하여, 온 세상이 모두 하느님의 백성, 주님의 몸, 성령의 궁전이 되어 만물의 머리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우주의 창조주이신 성부께 온갖 영예와 영광을 드린다. [58]

 

1) 하느님 백성인 교회The Church as the people of God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요한 13,34-35). 그 제자들인 교회 공동체는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살고자 했고, 주님은 주님을 따르는 교회와 함께 해주셨다. 그래서 새로운 공동체가 생겨났고, 새로운 하느님의 백성으로 성경에 기록되었다.[59]

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가 하느님 백성이라고 밝힌다.[60] 그 백성은 주님을 믿는 백성과 주님께서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백성이다. 『교회 헌장』은 교회를 하느님의 새 백성[61]이라고 한다.  이 백성은 단순한 예식으로서의 세례성사만이 아니라, 성령의 도우심으로 실생활에서 제자의 길을 걷고 사도적 증거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다시 태어난 아브라함의 새로운 후손이다. 이 하느님 백성은 그리스도 안에서 주교와 사제, 수도자, 평신도가 사도로 살기 위해 그리고 서로 친교를 누리고 일치하기 위해 성체성사를 영적 양식으로 영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을 제자들에게 보내시고, 제자들과 함께하셔서, 제자들이 확장된 제자들과 사도들로 양성되어,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그 말씀을 신실하게 이룸으로써 마침내 그분의 왕국에서 그분과 함께 살고자 하셨던 주님의 사명을 계속해서 수행할 왕다운 사제로서 그들을 세상에 보내신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하느님 백성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화와 삶 속에서 주님을 알지 못하거나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까지 모두 구원하기를 원하신다. 하느님 백성은 주님께서 하느님 나라를 완성하실 때가지 동정 성모 마리아를 비롯한 모든 성인들과 주님의 사명을 실현한 죽은 이들과 연대한다.

이 교회의 모습 안에서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들이 같은 세례성사를 받아, 똑같은 그리스도교 신자가 되어 모두 다 한 하느님의 백성을 이룬다. 과거처럼 성직자만이 사제직과 예언직 그리고 왕직을 수행한다고 여기지 않고, 그리스도교 세례를 받은 모든 이들이 자신의 삶과 활동에서 그리스도의 사제직과 예언직 그리고 왕직을 수행한다. 서품된 사제는 직무를 통해, 평신도들은 자기에게 주어진 소명과 자질에 맞는 삶을 통해 사회 한가운데서 사제직과 예언직 그리고 왕직을 수행한다. 그래서 성직자는 명령하고 평신도는 명령에 따라 복종하는 형태가 아니라, 하느님 나라를 향해 다 함께 영과 마음을 모아 협력하며 나아가는 형태이다. 이 모습은 교회의 구성원들이 높낮이가 없이 한 하느님을 아버지로 둔 다 같은 형제자매로 복음적인 공동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복음에 나타나는 하느님 백성의 모습은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가 수평적인 차원에서 친교를 누리는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2)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The Church as the mystical body of Christ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께서 각 사람에게 공동선을 위하여 성령을 드러내 보여 주십니다. 몸은 하나이지만 많은 지체를 가지고 있고 몸의 지체는 많지만 모두 한 몸인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도 그러하십니다.”(1 코린 12,7. 12)라고 말씀했다. 2차 바티칸 공의회는 바오로의 이 관점을 따른다 그리스도의 신비로운 몸(신비체)인 교회,’[62]그리스도의 몸인 교회[63] 는 이 세상의 교계적이며 사회적인 몸, 그리고 보이는 사회체제일뿐만 아니라 하늘에 있는 영적으로 신비로운 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머리로서 성령을 통하여 그분의 생명과 은총을 그분을 따르는 이들에게 부어 주심으로써 몸을 만드신다. 이 몸은 세례성사로 시작하여 성찬례의 희생 제물 위에 세워진다. 교회는 그리스도와 모든 신자들 간의 일치의 원천이며 성체성사를 통해 하느님 아버지와 그분의 백성들을 화해시킨다.

신자들이 그리스도의 신비스런 몸 전체를, 특별히 가난하고 슬퍼하는 이들과 정의를 위해 일하다가 박해를 받는 사람들을 사랑하도록 가르쳐야 한다. 다양성 안의 일치 안에 전체 교회와 지역 교회 그리고 그 전체 몸 즉, 주교와 사제, 수도자, 평신도 각 구성원들이 일치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그리스도의 이 신비스러운 교회의 몸 안에 죽은 이들과 성인들 그리고 성모 마리아와 연대하여, 그리스도의 남은 고통을 채우며 세상의 구원을 위한 보편적인 도구가 되어야 한다.

바오로 사도의 그리스도의 신비체는 교회 구성원 모두가 서로 부족한 면을 채워 주면서 교회를 이루는 모습이다. “몸의 지체 가운데에서 약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이 오히려 더 요긴합니다. 우리는 몸의 지체 가운데에서 덜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특별히 소중하게 감쌉니다.”(1코린 12,22-23)라는 말을 교회 내의 친교에 적용한다면, 성직자 수도자들이 평신도들을 더 돌보아 주어야 한다고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바오로 사도가 첫째가 사도들이고, 둘째가 예언자들이며, 셋째가 교사들입니다….”(1코린 12,28)라는 말씀을 통해 교회 내에 순서를 정한 것을 보면, 교계적이며 제도적인 질서를 만들고자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그리스도 신비체 친교는 외적인 교계적 질서 안에서 내용적으로 나누는 관계가 될 수 있다.

 

3) 성령의 궁전인 교회The Church as the temple of the Holy Spirit

        사도 바오로는 코린토 공동체에게 말했다. “여러분의 몸이 여러분 안에 계시는 성령의 성전임을 모릅니까?”[64] 그리고 에페소 공동체에게도 말했다. “그리스도 안에서 전체가 잘 결합된 이 건물이 주님 안에서 거룩한 성전으로 자라납니다.”[65]

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가 성령의 궁전[66]이라고 밝힌다. 교회는 성령으로 세워졌다. 교회는 교회를 이끄시고, 그 몸의 지체들을 일치시키시고, 다양한 은총을 주시는 성령의 궁전이다. 이 성전은 구약의 성전이 돌로 지어진 반면에 아버지 하느님께 찬미를 드리는 성전이다. 교회는 성령께서 그분의 성전에 머물러 계심으로써 주님의 자유와 자긍심을 가지게 된다. 교회는 성령의 힘을 받아 성사적으로 영적인 집으로 축성되었다. 그리스도에 의해 교회의 어머니가 되신 성모 마리아는 아버지 하느님의 사랑스런 딸이며 성령의 궁전이다. 

이 교회의 모습은 한계 지어진 인간 세상 안에 사는 교회에 거대한 지원을 하고 있다. 성령께서는 교회 안에 머물러 계시고 교회를 이끄실뿐만 아니라 교회 안에서 주님의 힘으로 보이지 않게 활동하고 계신다. 교회 공동체뿐만 아니라 교회의 각 신자들이 이 모습에서 자기 삶의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신자들은 더 이상 사적이거나 개인적이거나 익명으로 머무르지 않고, 성령께서 신자들 안에 머무르시기 때문에 사회에서 주님의 분신이자 대리자로 산다. 부족한 인간이 아니라, 성령의 힘으로 이 세상에 하느님의 나라를 짓는 주체가 된다. 피조물인 인간은 아버지 하느님께서 나약한 인간을 사랑해 주시기 위해 그리스도를 보내 주신 것에 감사드린다. 그리스도께서는 부족한 인간에게 당신의 신적 사명을 맡기셨고, 성령께서는 신자들과 함께하시면서 신자들을 보호하시고 이끄시고 주님의 사명을 실현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신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서는 마침내 하느님 나라를 완성하실 것이다. 그러나 성령께서 교회 안에 머물러 계신다고 해서 교회가 스스로를 완전하다고 자부하기엔 충분하지 않다. 오히려 교회는 스스로 완전치 않고 하느님 나라를 온전히 실현시키지 못한 것에 대해 부끄러워해야 하며 책임을 져야 한다.

이 교회의 모습은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성령께서 친교를 이루어주시고 계시다는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성령께서 사람들의 노력만으로는 드러나지 않고 완성되지 않는 일을 은총으로 채워주시고 친교를 맺어주신다. 성령께서는 소공동체가 함께 모여 주님을 초대할 때마다, 주님께서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마태 18,19-20)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함께하여 주신다. 그리고 성령께서는 소공동체가 가난한 이들과 병자들과 어려움에 처한 이들, 고통 받는 이들을 위해 마음을 모아 기도하도록 이끌어 주시고 그들의 기도를 들어주심으로써 그들을 친교 안에서 일치와 기쁨과 평화를 누리도록 해주신다. 성령께서는 소공동체가 모임에서 복음을 읽고, 묵상하고, 나눌 수 있도록, 그들이 처한 환경과 조건들을 복음에 비추어 식별하고, 기획하고, 적용할 수 있도록, 그리고 그들의 삶의 현장에서 복음을 수행하고, 증거하고, 실현할 수 있도록 힘을 불어 넣어 주신다. 이러한 복음화의 과정 속에서 소공동체원들은 성령의 도우심으로 함께 친교를 누리게 된다.

 

신약과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에는 교회의 다른 모습들도 있다. 그리스도께 전력 투신하는 포도나무, 신뢰하고 추종하는 양 떼, 교회의 종말론적인 실재인 결혼 잔치, 그리스도께 온전히 속하는 친밀한 신부[67], 한 쪽 문인 양우리, 한 목자 아래 있는 많은 양들, 하느님의 씨를 뿌리는 농사(로마 11,16-22; 요한 15,1-15), 성전을 세움(1코린 6,19), 영적인 집(1베드 2,5), 거룩한 도성(묵시 21,10), 강함과 견고함과 기초를 세우고 다양성 안에 일치를 드러내는 기초(1 베드 2,4-5; 에페 2,20; 히브 3,6; 마태 16,18), 피나 욕정이나 인간의 의지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느님에 의해 선택되신 동정 성모(『교회 헌장』 63 참조), 깨질 수 없는 계약과 공동체와 순결한 배우자, 구겨지거나 오점이 없이 언제나 지켜지는 의무, 배우자에 대한 남편의 돌봄, 상호 사랑, 신심, 열매 맺음 등이다. [68] 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표현한 이러한 교회의 모습들은 교회가 스스로 쇄신하고자 하는 자기 표현이며 이정표다.

 

 

 

3. 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 모형

2차 바티칸 공의회는 여러 가지 종류의 교회의 모형을 드러내고 있다. 교회의 여러 모형에는 제도, 신비스러운 친교, 성사, 청취자, , 제자들의 공동체, 구원의 징표, 하느님의 징표, 경배의 촉진자, 공동체 삶과 인간 일치의 상징, 화해의 원천, 세상의 예언자, 변화의 매개, 미래의 촉진자인 교회의 모형이 있다. 공의회는 전통적인 교회론을 유지하면서 세상을 향해 문을 열고 사목적으로 대응하는 새로운 교회론을 드러냈다.

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모형들Models of the Church 중에서 친교와 평신도들의 참여라는 관점에서 소공동체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교회의 모형들을 지적한다면, ‘성사인 교회’, ‘청취자인 교회’, ‘제자들의 공동체인 교회’, ‘주님의 고난 받는 종인 교회’, ‘친교인 교회를 들 수 있다. 이 모형들이 소공동체가 탄생하는 데 영향을 끼치고, 주님과 하느님 백성 사이에 교회 구성원들 사이에 그리고 교회와 세상 사이에 친교와 평신도들의 참여라는 관점에서 특별한 관계를 보여준다. 

 

1) 제도인 교회The Church as institute

애버리 둘스는 로버트 벨라르미노의 말을 인용하여 교회의 고전적인 정의를 내린다.

 

하나이며 진리인 교회는 이 땅의 그리스도의 대리자인 교황과 합법적인 주임 사제들의 통치 아래 같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고백과 같은 성사의 친교로 연결된 사람들의 집회다. 참된 신앙 고백, 성사 안에서의 친교, 합법적인 주임 사제들께 순명 이 세가지 요소가 정의를 구성하고 있다.[69]

 

교황 비오 12세는 이 정의를 회칙 『그리스도의 신비체Mystici Corporis Christi』에서 확인했다. 8항과 22항에서 로마 교황과의 연계 안에서 교회의 교계제도와 합법적인 권위를 보여준다.

둘스는 교회의 제도적인 구조를 네 가지 영역으로 기술하고 있다. 첫째, 교회 지침과 규정(신조, 교의, 교회법적인 저술- 성경, 공의회 발표문), 둘째, 공적 예배의 형태(성사와 다른 승인된 예식), 셋째, 통치 구조(힘과 의무를 가진 당직자), 넷째, 법률과 관습(신자 행동 규정)[70] 이렇게 네 가지 영역으로 기술하고 있다.

2차 바티칸 공의회는 제도인 교회 모형[71]을 보았다. 그리스도께서는 유다인들과 이방인들을 모두 다 불러 모아 주님의 피로 그들을 하나로 만드시고 새로운 계약의 제도를 세우셨다. 그분은 새로운 하느님 백성인 교회 안에 주교, 사제, 수도자, 평신도 제도를 제정하셨다. 그분은 그분 교회의 전체 구성원들의 공동선을 위해 다양한 직무 제도를 신설하셨다. 그분은 또한 제자들 중의 한 사람에게 새로운 하느님 백성의 책임을 맡기셨고 그에게 베드로라고 이름을 붙여 주셨으며 그를 통해 보이는 교회의 일치와 친교를 이루어 내셨다. 교회는 사회에 봉사하는 제도들 중의 하나다. 교회 내에는 수도회 제도들도 많다. 초대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그리스도를 따라 새로운 삶을 살고자 했다. 그것은 일반사회와는 사뭇 대조되는 비젼과 가치 그리고 삶으로 증거하는 대조 사회였다. 수도 단체들은 14세기경 초대교회 공동체를 이어받아 자신들의 공동체 안에서 복음을 실현하고자 했다. 그들은 성령께서 자신들이 주님의 사명을 실현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이 수도 단체들은 세상과 제도 교회에 하느님 나라를 드러내는 새로운 표지였다. 그들은 정결과 가난과 순명이라는 복음 삼덕을 자신들의 삶으로 보여 주고 있고, 형제애와 자매애로서 자기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싸우는 이 세상에 하나의 대조사회를 드러내고 있다.

이 제도 교회 모형은 그리스도교 교계제도와 그 체제를 드러내고 있다. 이 모형은 교회의 보편성과 일치를 드러내는데 아주 유용해 보인다. 세계적인 조직 체계를 형성함으로써 그리스도교 권위와 힘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교회의 외부 구조적인 면을 전체적으로 볼 때 교회의 이 제도적인 모형은 교회가 성령의 이끄심에 적절하게 따르며, 부서진 세상의 필요에 응답하는 카리스마적인 제도가 될 때 이 땅에 하느님 나라를 구현하게 된다.

그런데 친교적인 면에서 바라보자면, 고위 성직자 계층에서 정보와 결정이 내려오기 때문에 평신도들이 다소 수동적으로 보인다. 본당에서도 본당 주임 사제와 소수의 평신도 지도자들간에 친교를 누리게 되고, 대다수의 평신도들이 주임 사제와 친교를 맺기에 적절한 구조와 제도가 없어 보인다. 그리고 평신도들끼리 서로 친교를 누리는 면에서는 소수의 단체에 가입한 신자들 간에만 가능하고, 시간이나 취향이 기존 단체의 여건과 맞지 않는 경우에는 그 친교의 범위가 한정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본당 내에서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들이 그리고 평신도들끼리 서로 친교를 누리기 위해서는 교회의 사목을 위한 수직적이고 전체적인 구조뿐만 아니라, 평신도들이 서로 친교를 누릴 수 있는 횡적인 조직도 필요해 보인다.

 

2) 성사인 교회The Church as Sacrament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성사이셨듯이, 교회도 그리스도의 성사다. 교회는 그분이 다시 오실 때까지 그분을 교회와 세상에 현존케 하며 사람들이 그분의 손길을 느끼도록 한다. 트리엔트 공의회는 성사는 거룩한 것의 표징이며 보이지 않는 은총을 보이게 한다.”고 정의했다. 그리스도의 생명이 교회의 성사를 통해 신자들에게 쏟아 부어졌다.

2차 바티칸 공의회는 성사인 교회 모형[72]을 기술하고 있다. 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성사와 같다. 교회는 곧 하느님과 이루는 깊은 결합과 온 인류가 이루는 결합과 일치의 표징이며 도구다.”(교회 헌장』 1, 9, 48) 교회는 구원의 보편적인 성사요 주님께서 내려주신 새로운 게명의 성사며, 교회가 근본적으로 모든 이들의 대속을 위한 도구라고 적혀 있다.

교회는 성사들을 통해 교회를 더욱더 교회답게 하고,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신비체 구성원들 간의 일치와 친교를 누리게 한다. 성령께서는 교회의 성사적인 표지를 통해 활동하신다. 교회는 찬미하고 기도하고 성사들 특히 성체성사를 거행하고 신자들이 성사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지원하는 그리스도의 사명을 이어가고 있다.

아버지 하느님께서는 교회가 주님을 세상에 드러낼 수 있도록 성령을 보내 주셨고 교회를 주님의 성사로 만드셨다. 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 개신교회들도 성사인 교회라는 표현을 썼다. “교회는 온 세상에 대한 하느님의 계획을 실현하는 표지이며 도구이다.”[73]

이 모형은 신학적으로나 우리 주 예수님을 묵상하고 교회 자신을 이해하는 데 아주 효과적이다. 이 모형은 신자들이 세상에 그리스도를 보여주고 복음화하는 데 아주 강력한 동기를 부여한다. 소공동체에서 신자들이 함께 복음을 읽고 자신의 삶을 복음의 빛으로 비추어 나누면서 형제적 친교를 누릴 때, 주님께서 성사적으로 현존하신다. 신자들이 복음을 자신들의 삶에 적용하기 시작하면서 변화될 때, 주님께서 성사적으로 현존하시는 모습이 드러난다. 신자들이 소공동체에서 복음 말씀에 따라 함께 자신들의 상황을 변화시키려고 함께 활동할 때 주님께서 성사적으로 드러나신다. 소공동체는 주님의 교회의 성사적인 표징이 된다.

 

3) 청취자인 교회The Church as Herald

2차 바티칸 공의회는 청취자인 교회[74]라는 개념을 언급했다. 『계시 헌장』[75]과 『일치 교령』[76]을 통해 2차 바티칸 공의회는 이 모형과 연관하여 하느님의 말씀인 복음을 듣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고 강조하였다. 주님의 말씀은 세상을 구해야 할 교회에게 있어서 커다란 선물이며 지침이다. 교회는 주님의 말씀 안에서 기쁜 소식을 듣고 또 찾아야 한다. 교회는 또한 교회의 미래를 주님의 말씀에 두고 그 말씀에 희망을 걸며 그 말씀을 사랑해야 한다. 교회는 성령의 감도 안에서 신심스럽고 헌신적인 태도로 성경과 사도적 전승을 듣도록 가르쳐야 한다. 사도들은 자기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들어온 기억을 전수했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새로운 하느님의 백성들을 새로운 청취자로 삼았다. 그것이 오늘의 복음이 되었고 현재까지 대대로 기쁜 소식이 되어 왔다.

 일치 운동 공동체에서 그들은 복음을 들었고 또 저마다 자기 교회이며 하느님의 교회라고 한다…. 이러한 형제들의 그리스도인 생활은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으로 자라나고, 세례의 은총을 받고, 하느님의 말씀을 들음으로써 길러진다.”(『일치 교령』 1. 23)

기초 교회 공동체들Basic Ecclesial Communities은 하느님의 말씀을 자신들과 공동체 삶의 기준으로 삼았다. 그들은 먼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들이 들은 말씀대로 자신들의 일상에서 실현하고자 하며 그들의 삶의 조건들을 복음의 빛에 비추어 변화시키고자 한다. 그리고 그 복음 말씀은 주님과 교회 그리고 교회 구성원간의 친교의 원천이며 기준이 된다. 교회는 복음 말씀에 따라 스스로 복음화되어야 한다. 그리고 복음화된 교회는 세상을 복음화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러한 과정은 시간적 선후가 아니라, 영적인 선후다. 교회가 스스로 복음화 되는 만큼 세상을 복음화시킬 수 있고, 세상을 복음화하는 노력이 교회 스스로 복음화되도록 반영되고 요청된다. 이 복음화의 과정에서 말씀을 통해 주님과 교회 공동체가, 교회 공동체가 말씀에 의거한 복음화에 나서면서 공동체원들 사이에 그리고 세상과 친교를 맺게 된다.

 

4) 종인 교회The Church as Servant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에서 교회 공동체는 주님의 미천한 종이다. “저희는 쓸모 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루카 17,10). 2차 바티칸 공의회는 이 모형의 개념을 종인 교회로 밝혔다.[77] 『교회 헌장』은 하느님의 종들의 종인 교황과 주교와 사제들은 하느님 백성을 위해 봉사하도록 선발된 그리스도의 종인 것처럼, 하느님의 사제적 백성인 교회는 세상을 위해 봉사하는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제시하고 있다. 주교가 교회의 종으로서의 대표인 것처럼, 교회는 세상 구원을 위한 종으로서 대표다.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벗이며 협력자로 제자들을 부르신 것처럼, 교회는 단지 종으로서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구원 업무의 벗이며 협력자들이다. 사목 헌장』은 교회가 스스로 인류 가족의 한 부분임을 자각하고 모든 인류의 은자로서 같은 관심을 나눌 것이라고 밝힌다. 교회는 세상에 봉사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진리를 증거하고, 세상을 판단하기보다는 세상을 구원하며, 섬김을 받기 보다는 섬기러 세상에 오셨다(사목 헌장』 3. 92). 교회는 이 세상에 하느님의 영광과 통치를 드러내기 위해 인간 사회를 위한 누룩과 일종의 영혼으로서 하느님과 그분의 나라를 위해 봉사하며, 수도자들도 인간 공동체를 건설하고 통합하는 교회의 사명에 참여한다.

둘스는 개신교와 성공회의 세속적 대화secular-dialogic” 신학에 대해 말했다.[78]교회는 시대의 징표를 식별하고 안내와 예언적인 비판을 제공할 수 있다.”[79] 세상의 구체적인 조건들은 복음을 선포하고 복음화하려는 교회의 사명을 드러내고 반영하고 실현시키는 교회 사명의 자료들이다. 교회는 사람들이 실제로 처한 세상과의 밀접한 관계 속에서 시대의 징표를 읽고,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 현실세계에 드러난 복음의 빛으로 사람들의 필요에 응답해야 한다.

이 모형은 세상에 그리스도의 육화와 수난과 부활을 드러내는 데 적합하다. 그것은 교회의 근본과 본성을 드러내고 있다. 이 모형은 가난한 이들에게서 환영을 받을 수 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현세의 권력을 등에 진 교회가 겸손해지는 모습을 볼 것이며, 교회에서 가난한 이들의 존재를 인정해 줄 것이며, 교회를 통하여 자신들의 필요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 모형은 성사인 교회 모형과 모습을 공유 한다. 다른 한 쪽으로 이 모형은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교회의 사회단체 역할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이미 내재되어 있다 하더라도 그리스도 중심적인 측면을 놓칠 수 있다. 그리고 교회가 전승적으로 강조해 왔던 각 개인의 회개 없이 사회체제 변화를 강조하는 경향도 있다. 종으로서 세상에 봉사하는 교회의 모습은 그 자체로 주님과의 친교를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세상에 봉사하기 위해 세상과 친교를 맺는 교회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5) 제자들의 공동체인 교회The Church as Community of Disciples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에서 그분께서는 산에 올라가신 다음, 당신께서 원하시는 이들을 가까이 부르시니 그들이 그분께 나아왔다. 그분께서는 열둘을 세우시고 그들을 사도라 부르셨다. 그들을 당신과 함게 지내게 하시고, 그들을 파견하시어 복음을 선포하게 하시며, 마귀들을 쫓아내는 권한을 가지게 하시려는 것이었다”(3,14-15). 예수님의 부르심은 주님과 함께 지내게 하기 위해, 그리고 복음을 선포하고 그 복음의 정신으로 교회와 세상을 복음화하기 위해 파견하시기 위함이다. 제자가 된다는 것은 주님과 함께 지내면서, 그분을 보고, 느끼고, 알고, 경험하여 사명을 준비하여 세상에 파견되는 것이다.

2차 바티칸 공의회는 제자들의 공동체인 교회[80]를 진행시킨다. 성령을 제자들에게 보내 주셨던 주님께서 다시 교회에 성령을 보내신다. 주님의 모든 제자들은 성령의 도우심에 힘입어 스스로 살아 있는 희생제물로서 거룩하고 기쁘게 하느님께 봉헌한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가 되고, 정화하고, 새로 나서, 기도하고, 바라고, 성사를 거행하고, 봉사를 통해 세상에 주님을 명백히 드러내 보인다. 그리스도는 그분의 제자들인 교회를 부르셔서 사랑과 겸손으로 아버지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여 거룩하게 되도록 부르셨다. 이 제자됨은 제자들 즉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요한 19,26) 하심으로써 교회의 어머니가 되신 성모 마리아와 수도 생활에서 또한 드러난다.

둘스도 제자들의 공동체인 교회를 본다.[81] 교회는 주님을 믿고 따르는 신자들이 성령의 힘으로 아버지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고 이루시는 주님을 따르도록 하기에, 교회가 제자들의 공동체가 된다. 제자양성은 한 순간의 결정이나 실천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가 완성될 때가지 매일매일 계속되는 삶의 연속이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자기를 버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 한다(루카 9,23). 예수님을 따르는 조건은 모든 것에서 떠나는 것이다”(마르 1,16-20; 2,13-14). 그리고 예수님을 사랑하고(요한 21,15-19), 그래서 그들이 부활의 기쁜 소식을 증거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사도 1,15-26; 6,1-7; 1 티모 3,1-7. 8-13; 티토 1,6-9 참조). 제자됨은 또한 공동체와의 연대 속에서 습득되는 것이다. 교회 제자단은 그들에게 내려진 주님의 사명을 기억하며 그것을 함께 채워나가기 위해 주님의 식탁에 끊임없이 다가오는 것이다(마태 26,29 참조).

이 모형은 청취자인 교회와 성사인 교회 사이에 있다. 이 제자들의 공동체인 교회 모형은 파견을 준비하고 변화하는 세상에서 활동에 중점을 두는 교회의 모습이다. 이 모형은 주님 앞에 선 교회의 기본적인 태도를 보여 주기에 아주 적합하다. 이는 세상에서 활동하는 교회의 지침이 될 수 있다. 성 베네딕토의 말씀, “기도하고 일하라.” 와 연결시킬 수 있다. 사도로서 활동하기 전에 기도 중에 주님의 가르침을 듣고 배우는 것이 주님의 제자가 걸어야 할 첫걸음이다. 소공동체는 주님과의 깊은 친교 안에 그리고 주님의 가르침을 새기고 체험하는 제자단 내부의 친교를 통해 주님과 더욱더 견고하게 결속됨으로써, 동료 제자들과 함께 친교 안에 연대하여 사도로서 세상에 파견된다. 소공동체가 주님의 말씀을 통해 양성되고 주님의 성체성사로 양육되어 주님과 떨어질 수 없는 친교를 맺고 주님과 일치하여, 주님의 대리자로서 주님의 사도로서 복음을 선포하러 세상 한 가운데로 나아간다.

 

6) 주님의 고난 받는 종인 교회The Church as Suffering servant of the Lord

필자는 교회의 또 다른 모형, ‘주님의 고난 받는 종인 교회의 모형을 소개하고 싶다. 이사야 예언서에 주님의 고난 받는 종으로서 세상을 구속하기 위해 대신 고난 받는 주님의 모습이 있다. “그렇지만 그는 우리의 병고를 메고 갔으며 우리의 고통을 짊어졌다. 그런데 우리는 그를 벌받은 자, 하느님께 매맞은 자, 천대받은 자로 여겼다. 그러나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악행 때문이고 그가 으스러진 것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다. 우리의 평화를 위하여 그가 징벌을 받았고 그의 상처로 우리는 나았다. 우리는 모두 양떼처럼 길을 잃고 저마다 제 길을 따라갔지만 주님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이 그에게 떨어지게 하셨다”(이사 53,4.5.6). 이에 앞서 희미하게나마 그 모습은 이사악의 희생 제사에서 드러나기 시작한다(창세 22 참조). 그리고 하느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벌하시려고 사릴 때 무죄한 이들을 위한 아브라함의 청원(창세 19 참조)에서도 드러난다. 또한 무고한 욥의 고난에서도 드러난다. 왜 죄없는 이들이 죄인들을 대신하여 고난 받아야 하는가 하는 질문이 솟아오른다. 그것은 주님의 고난 받는 종에게서 기술되기 시작해서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해결된다.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마태 20,28; 마르 10,45).

사도 바오로는 말했다. “이제 나는 여러분을 위하여 고난을 겪으며 기뻐합니다. 그리스도의 환난에서 모자란 부분을 내가 이렇게 그분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내 육신으로 채우고 있습니다”(콜로 1,24). 주님의 고난 받는 종은 다른 사람의 구속을 위해 고난을 받고 있다. 예수님은 다른 이들의 생명을 구하시기 위해 고난 받으셨다. 사도 바오로는 교회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우기 위해 고난을 받고 있다. 교회는 무죄한 이와 죄인들, 믿음과 정의와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 그리고 세상을 구하고자 하시는 하느님의 뜻에 의해 선택된 사람들을 위해 고난 받는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스스로 비우시고 종의 신분을 취하셔서 그분의 생명을 많은 사람들을 위한 속죄 값으로 내놓으셨다는 믿음이 고난 받는 교회에게 위로가 될 수 있다(필리 2,5-8; 마르 10,45).

2차 바티칸 공의회는 주님의 고난 받는 종인 교회의 모형을 밝힌다.[82]우리가 환난과 박해 속에서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르며 머리에 결합된 몸으로서 그분의 고난을 함께 받는 것은 그분과 함께 영광을 받으려는 것이다”(『교회 헌장』 7). 흠없는 어린양으로서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피로써 우리에게 그분의 생명을 내어 주셨고 그분께서는 고통의 한계를 극복하는 법을 알려 주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의 힘으로 죽음의 고통을 이겨 내 악과 싸울 수 있다. 그러나 신자들은 부활의 희망을 가질 수 있다. 그러므로 교회는 가난과 고통 받는 모든 이들을 사랑으로 감싸 안으며, 가난하고 고통 받는 이들 안에서 그리스도의 모습을 발견하고, 그들에게 봉사한다. 교회는 신적 희생 제물을 하느님께 바치고, 성체성사 안에서 자기 스스로를 제물과 함께 바친다. 병자들의 거룩한 도유와 사제들의 기도를 통해 온 교회는 병자들을 수난하시고 영광을 받으신 주님께 맡겨 드리며, 그들의 병고를 덜어 주시고 낫게 하여 주시도록 간청하는 한편, 병자들도 자기 자신을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에 자유로이 결합시켜 하느님 백성의 선익에 기여하도록 권고한다.”(『교회 헌장』 11)

2차 바티칸 공의회는 고난 받는 그리스도와 세상에서 고난 받고 있는 사람들을 매우 강하게 연결시키고 있다. 교회는 신자들이 특별히 가난한 이들 중에서도 가장 가난한 이들과 슬퍼하는 이들, 그리고 정의를 위해 박해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증거하도록 가르친다. 이 고난 받는 이들은 고난 받는 그리스도와 일치하여 고난의 효과를 드러낸다. 교회는 가난과 불안정에 처하고, 환자들과 정의를 위해 일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어려움과 박해를 받는 사람들이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고난 받으시는 주님과 특별한 방법으로 일치한다는 것을 안다.  만약 교회가 주님께 대한 믿음 안에서 모든 고난을 받아들이면, 그분과 협력하여 주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신 그 사랑을 보여 주며 거룩하게 될 것이다. 주님께서는 그들을 부르시고 복음 안에서 축복해 주시면서 고난은 대단한 것이 아니며 하느님 나라를 향한 길에서 아주 잠시뿐이라고 말씀하신다. 한편 하늘에 있는 죽은 이들이 교회인 주님의 몸을 위해 자신들의 몸으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우고 있다.

고난이 교회의 정확한 본성은 아니지만 부서진 세상을 바라보시는 그리스도의 엄연한 얼굴이며 부분이다. 그것은 또한 교회의 길이며 하느님의 구원의지에 따라 세상을 구원하고자 하는 교회의 사명이다. 이 모형은 주님의 인격에 아주 잘 부합한다. 그러나 그것은 현세에서 고난 없이 그분을 따르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다소 불편하고 두려운 짐이다. 적어도 부활의 그날, 아니 주님께서 다시 오실 마지막 날까지. 현세에서 고난 받는 이 모형은 무의미해 보이고, 그것이 부활의 희망 안에서 인정되고 존중받을 때까지는 실현되기 힘들어 보인다. servant인 교회 모형이 세상을 위해 봉사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는 데 반해, 이 모형은 세상의 구원을 위해 세상(의 죄인들)을 대신하여 고난 받고 희생하는 교회의 대속 역할에 그 초점이 있다.

소공동체는 주님과 소공동체원들과 그리고 세상과의 친교 속에 놓여있다. 소공동체는 세상의 축소판이다. 소공동체는 소공동체원들이 세상 한 가운데서 겪는 기쁨과 희망, 슬픔과 번뇌를 간직하고 있다. 소공동체원들이 일터와 가정과 사회에서 살면서 겪는 모든 것이 소공동체의 나눔거리이며 복음의 빛으로 식별하고 주님과 형제들로부터 위로받고 변화시키기 위해 함께 협동해야할 활동거리이다. 소공동체는 세상에서 오는 고통을 직접적으로 느끼며, 악이 지배하는 세상의 세력에 의해 희생당하기도 한다. 주님께서 세상의 죄악을 대신 짊어지신 것처럼, 주님을 믿고 따르는 소공동체는 세상 한 가운데서 고통을 온 몸으로 체험하고 세상의 구원을 위해 목마르게 주님께 간구한다. 주님의 고난 받는 종으로서의 소공동체는 말씀을 통한 주님과의 깊은 친교와 성체성사에서 맺는 주님과의 일치를 통해 힘을 얻어 세상에 구원을 향한 복음의 길을 걸어간다.

 

7) 친교인 교회The Church as Communion

(1) 2차 바티칸 공의회, 시노드, 그리고 신앙교리성

친교koinonia라는 단어는 신약에 19번 나온다. 바오로 사도가 그의 글에서 13번 썼다. 친교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과 신자 서로의 내적인 관계라는 것을 강조한다.

2차 바티칸 공의회는 성령에 의한 친교인 교회[83]를 선포한다. “교회를 온전한 진리로 인도하시고 친교와 봉사로 일치시켜 주시며, 교계와 은사의 여러 가지 선물로 교회를 가르치시고 이끄시며 당신의 열매로 꾸며 주신다.”(『교회 헌장』 4) 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영적 공동체인 교회는 성령 안에서 주님의 길이며 진리이며 생명의 친교로서 모든 사람의 구속을 위한 도구이다. 이 친교는 성령 안에서 주님의 성체성사에서부터 성체성사를 통해 다가온다. 신앙고백과 성사 그리고 교회적 통치와 친교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인 성령의 궁전(1코린 3,16; 6,19)을 따라 교회 친교의 보이지 않는 끈들이다.[84] 지역 교회들 사이에, 주교들 사이에, 주교들과 그들의 직무들과의 관계 안에, 주교들과 사제들 사이에, 사제들과 그들의 직무들과의 관계 안에, 부제들 사이에, 주교들과 사제 그리고 부제들 사이에, 부제들과 그들의 봉사 diakonia와의 관계 안에, 수도자들 사이에, 주교들과 사제들, 부제들, 그리고 수도자들 사이에, 신자들 사이에, 주교들과 사제들, 부제들, 수도자들, 그리고  신자들 사이에, 비가톨릭 그리스도인들과의 관계 안에, 지상의 순례하는 교회와 하늘의 교회 사이에, 성인들을 비롯한 죽은 이들과의 관계 안에서 이 친교는 일치와 사랑과 평화의 주요소이다.

1985, 2차 세계 주교 대의원회에서 친교인 교회를 설정했다.[85]교회는 성사이다. , 하느님과 맺는 친교의 표징이고 도구이며, 또한 인간들이 다른 인간들과 맺는 친교와 화해의 표징이며 도구이다.”[86] 만일 새로운 사도적 영성 운동들이 적절하게 교회의 친교 안에 자리하고 있다면, 그들은 커다란 희망의 전달자가 될 것이다. 시노드는 친교 교회론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서의 핵심적이며 근본적인 개념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친교의 의미에 대해 적고 있다.

 

근본적으로 하느님과 맺는 친교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 안에서 이루어진다. 이 친교는 하느님의 말씀 안에서 그리고 성사들 안에서 이루어진다. 세례성사는 교회 안에서 친교의 문이며 기초다. 성체성사는 전체 그리스도인 삶의 자원이며 정점이다(『교회 헌장』 11 참조). 그리스도의 성체성사적 몸의 친교가 나타나고 생겨난다. 즉 교회인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모든 신자들의 친밀한 친교가 세워진다(1코린 10,16 참조).[87]

 

친교 교회론은 또한 교회 질서의 기초이며, 교회의 일치와 다양성 사이의 올바른 관계다. 그것은 친교라는 측면에서 동방교회에까지 확장된다. 주교 시노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따랐고 친교 교회론이 공동체들의 성사적인 기초를 제공하고 있다. 그러므로 교회의 모든 구성원들은 참여와 공동 책임 의식을 가진다. 왜냐하면 교회는 친교이기 때문이다.

주교들은 친교의 이름으로 기초 교회 공동체를 포용했다. “만일 새로운 기초 공동체들이 진실로 교회와 일치하고 있다면, 그들은 친교의 진실한 표현이며 보다 항구한 친교의 건설을 위한 수단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교회 삶의 커다란 희망의 원인이 될 것이다.”[88] 교황 바오로 6세께서는 새로운 운동들이 신실할 것을 요구하셨다. 그 전제가 『현대의 복음선교』[89] 58[90]에 이어지고 있다. 2차 바티칸 공의회의 친교 교회론에 나타나는 일치 운동의 친교는 비가톨릭 교회와 공동체들과의 불완전한 친교에서 완전한 친교로 나아가는 운동에서 비롯되었다.

비록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때와는 달리 굶주림과 억압, 부정과 전쟁, 고통, 테러리즘과 다른 형태의 폭력이 증가하여 증거하기에는 너무나도 열악한 상황이라고 보여진다고 하더라도, 친교인 교회는 세상을 구원하는 성사다. 아울러 주교들은 친교인 교회 안에서 다양성과 일치 간의 토착화의 문제에 대한 신학적인 원칙들을 말했다. 주교들은 신앙 때문에 박해받고 죽은 이들과 그리고 정의를 증진하려는 노력 때문에 박해를 받는 이들과의 친교를 잊지 않았다. 시노드는 하느님께 그들을 위해 기도를 올린다.

1992년 신앙교리성(the Sacred Congregation of the Doctrine of the Faith: CDF)은 친교의 교회를 공포했다.[91]

 

친교koinonia의 개념은 교회 신비의 핵심을 표현하는데 아주 적절하다. 그리고 가톨릭 교회론의 쇄신을 위한 열쇠가 될 것이다. 교회가 친교라는 사실은 실로 아주 특별하고 중요한 과제이며, 교회 신비의 신학적 반성을 위한 넓디넓은 폭을 제공한다는 면에서 아주 높이 살 만하다. “교회의 본성은 이처럼 새롭고 보다 깊은 추구를 언제나 허용한다.”[92]

 

신앙교리성은 하느님 백성과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개념에 친교의 신비인 교회를 연결시킨다. 친교의 개념은 교회의 자기 이해의 중심에 놓여 있다. 그것은 인간 각자가 삼위일체 하느님과 그리고 인류의 남은 자들과 맺는 신비한 일치이다. 이 친교는 지상의 교회로부터 시작하여 하늘의 종말론적인 완성에까지 이른다. 시노드는 교회의 친교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모두라고 말했다. 그것은 구원의 성사인 교회로 제정되었고, 세례성사로 인한 영성체에 그 뿌리와 중심을 두고 있다.

신앙교리성은 교회가 같은 성령 안에서 성인들과 친교를 누리고 있음을 발견했다. 신앙교리성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말씀을 인용하여 지역 교회와 전체 교회 사이의 교회적 친교 안에서 일치와 다양성에 관해 설명한다. “교회의 전체성(보편성)은 한 손으로는 가장 견고한 일치와 그리고 다른 한 손으로는 일치를 저해하지 않는 오히려 친교의 성격으로 관련된 다양성과 복합성에 연계되어 있다.”[93] 신앙교리성은 1985년 주교 대의원회와 같은 일치운동 선언을 강조한다. 끝으로 신앙교리성은 복되신 동정 마리아가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과 사랑과 일치 안에서 교회적 친교의 모형이라고 밝힌다.

정교회와 개신교회들은 이 친교 모형을 받아들였다. 세계 교회 협의회는 친교라는 표현은 교회의 본성과 그 보이는 일치의 공통 이해를 소생시켜 주는 근본이 되었다…. 그 말은 교회의 본성과 목적을 이해하는 열쇠로서 오늘날 교회 일치 운동을 다시금 불러일으키고 있다.”[94]

 

(2) 친교 교회론의 최근 연구들

가톨릭 친교 교회론자 데니스 도일은 친교 교회론을 이렇게 정의한다.

 

교회를 이해하는 하나의 접근이다. 그것은 교회의 신비적, 성사적, 역사적 차원을 강조함으로써 법적 제도적 이해를 넘어서는 시도이다. 그것은 삼위일체의 위격들 사이의, 인간들과 하느님 사이의, 성인들과의 통공을 이루는 구성원들 사이의, 본당의 구성원들 사이의,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주교들 사이의 관계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것은 지역 교회들과 전체 교회 사이의 역동적인 상호작용을 강조한다. 친교 교회론은 교회가 단순히 계시의 수용자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신비체로서 계시 그 자체와 연결되어 있다는데 역점을 두고 있다.[95]

 

친교 교회론자 틸라드는, 초대 전승이 이해한 것처럼, 교회의 본성을 친교Koinonia로 압축한다.[96] 데니스 도일은 기존의 다양한 친교 교회론의 공통된 네 가지의 요소를 설명한다.

 

첫째, 친교 교회론은 그리스 정교회와 로만 가톨릭과 개신교로 구분되는 그리스도교의 구분 이전 초세기 그리스도교인이 전제한 교회의 비전을 다시 소생시키고 있다. 둘째, 친교 교회론은 교회의 제도적 법적 측면들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접근들과는 대조적으로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영적 우정이나 친교의 요소를 강조한다. 셋째, 친교 교회론은 성체성사에 함께 참여함으로써 상징적으로 구현되는 것처럼 눈에 보이는 일치의 필요성에 높은 가치를 둔다. 넷째, 친교 교회론은 교회의 일치와 다양성 사이에 그리고 전체 교회와 지역 교회들 사이의 역동적이고도 왕성한 상호작용을 증진시킨다.[97]

 

친교 교회론자들은 교회의 기원을 삼위일체 하느님과 위격들 사이에 그리고 예수와 제자들 사이에 공유했던 사랑에서 찾는다. 그것이 교회에 전승되었고, 그래서 그리스도교 공동체 안에 산다는 것은 한 분 하느님의 세분의 위격들의 사랑과 생명을 공유한다는 것이다. 틸라드는 하느님의 교회는 에페소인들에게 보낸 편지 3 6절에서 10절에 걸쳐 나오는 신적 친교인, 신비musterion로 계시되었다고 말했다.[98] 틸라드는 교회적 친교를 예수님의 제자들 사이에 이루어진 형제적 관계 안에서 삼위일체적인 친교의 표징이라고 정의 내렸다.[99] 친교 교회론자들은 교회가 기본적으로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친교 또는 우정이라고 강조한다. 교회의 본성은 개별적 인격과 내적 연결성을 기반으로 한다. “교회에 대한 사랑, 수용, 용서, 헌신, 그리고 친밀함.”[100]

틸라드는 또한 교회가 친교로 게시되었다고 말했다.[101] 성령강림절에 사도행전에 기술된 친교의 공동체가 교회, 즉 하느님의 교회로 드러났다.[102] 하느님의 교회는 스스로를 구원의 차원에서 찾았다.[103] 하느님께 있어서, 모든 것은 친교 안에서 구원으로 다 함께 연결되었다.[104] 성령강림절의 초세기 하느님의 교회는 구원을 친교라고 불렀다.[105] 이 친교는 성찬의 신비에서 그 온전한 실체를 드러냈다.[106] 성체성사는 단순히 은총의 샘이 아니라 그 본성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아버지 하느님과 그리고 구성원 각자가 서로 화해하여 여러 민족들이 모이기 위한 것이다.”[107]

틸라드는 하느님의 교회는 성령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고 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복음은 성령 없이 실천에 옮겨지지 않기 때문이다.[108] 이 교회들의 친교는 교회를 하늘나라와 연관시켜 준다.[109] 그는 교회가 신자들이 체험한 교회의 친교에 의거하여 신앙이 선포된다고 말했다.[110] 주님의 원초적인 친교가 아버지와 맺은 것처럼, 교회 친교, 특별히 사제적 공동체는 주님과 그 친교를 맺어야 하며,[111] 사도적 증언을 전파하여야만 한다.[112] 그래서 직무적 공동체적 연대가 직무의 등록 여부에 제한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것은 전례적인 거행에만 연관되는 것이 아니라 각 지역 교회의 봉사와도 연관된다고 했다.[113]

도일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과의 연관 관계 안에서 공동체와 개인의 관계를 설명한다. 세 분의 위격과의 관계 안에서 한 분의 하느님이 계시다. 하느님의 관계성과 유일성은 상호 의존적이며, 다른 위격보다 우선성이 없다.[114] 친교 교회론자인 수잔 우드는 다양성과 토착화 그리고 비중앙집권주의로 표기된 전체 교회와 지역 교회들과의 관계를 은유적으로 표현한다.[115] 우드는 허브 레그란드Herve Legrand의 말을 인용하여 지역 교회는 전체 교회의 외부인이 아니라 하느님의 교회의 실체라고 말한다.[116] 그녀는 또 패트릭 그란필드Patrick Granfield의 말도 인용하여 친교 교회론은 친교의 두 가지 성경적인 의미를 발전시킨다고 말한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께서 쟁취하시고 성령께서 수여하신 구원의 선물에 참여하는 친교와 둘째, 하느님과의 우리의 일치에서 우러나오는 그리스도교 공동체 또는 우정의 끈이다.”[117]

틸라드는 성령께서 지역 교회에 내려 주신 것과 그 교회가 성찬례에서 선포한 것이 그 교회의 존재와 행위 안에 배어든 모든 진리라고 말했다.[118] 친교 교회론자 크리스토퍼 루디는 틸라드의 말을 인용하여 말한다. “그러므로 하나이며, 거룩하고, 공번되며, 사도적인 예루살렘의 하느님의 교회는 성령강림절에 모든 이에게 내려진 충만한 하느님의 선물이 문화적으로 지역적으로, 그리고 역사적인 맥락 안에 토착화되어 지역이며 동시에 전체였다.” 루디는 각 지역 교회가 특정 시간과 공간 안에서 하느님의 교회의 확장이라는 틸라드의 교회론적인 관점을 설파한다.[119] 루디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틸라드의 지역 교회 신학이 복음과 성체성사의 친교이며, 믿음과 성사의 친교라고 말한다.[120] 루디에게 있어서, 틸라드의 하느님의 교회는 지역 교회들의 친교이다.[121]

지역 교회와 전체 교회 사이의 친교 안의 일치는 한국 천주교회 안에서 소공동체와 본당 공동체 사이의 친교 안의 일치와 연관된다. 소공동체의 네 번째 특징이 바로 전체 교회와의 일치이다. 소공동체는 소공동체의 구성원마다 서로 다르지만 함께 복음을 나누고 사명을 실현함으로써 한 공동체를 이루고, 본당은 본당의 소공동체들이 각 지역별로 처해진 상황의 특이함 때문에 서로 다르지만 함께 본당 전례와 행사를 짜고 그 역할을 나누고 진행하면서 그 특질이 한데 어우러져 하나의 본당 공동체를 이룬다. 한 소공동체 안에서 구성원들 간의 친교가 다른 소공동체들과 더 나아가 본당이라는 커다란 공동체와의 친교로 확산되는 것이다. 그리고 본당 공동체의 공동체들의 친교가 본당과 교구, 세계 교회와의 친교로 확산된다.

도일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친교 교회론과 연관하여 교회 쇄신을 위해 다섯 가지 이정표를 제시했다고 말한다. 첫째, 한 분 하느님 안에 세 분 위격의 사랑과 신적인 삶을 나누자는 초대로서, 둘째, 그리스도의 신비로운 몸과 성인들과의 통공으로서, 셋째, 전체 교회의 구체화와 지역 교회에 동시에 존재하는 서로 사랑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성사적인 공동체로서, 넷째, 역사를 거쳐 순례하는 하느님의 백성으로서, 다섯째, 세상의 누룩으로서 교회가 나아가야 한다.[122]

 

포스트 모더니즘 사회에서 사람들은 실현하기도 어려운 이상과 규정을 핑계로 차디차고 돌 같은 교회를 더 이상 바라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들 각자가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직접 느끼기를 원한다. 신자들은 커다란 교회를 좋아한다. 그러면서도 각자가 개별적으로 인정받기를 바란다. 친교 교회론은 교회의 규모와 관계없이 주님과 교회 구성원들 그리고 구성원들 간의 친교를 강조한다. 신자들은 사제나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자신들을 사랑하고 있다고 더 잘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친교인 교회 공동체를 통하여 하늘의 무한한 사랑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교회 공동체 안에서 서로가 그리고 하느님의 사랑을 갈구하는 사람들과 그들이 받은 사랑을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친교인 교회 모형에는 한 가지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다. 친교 교회론이 주님과 또 인간들 상호 간에 맺는 친교 관계를 추구하는 반면, 기존의 구성원들이 그들이 접하는 현실에서 현세적인 하느님 나라를 찾는 것에 주력하고, 교회의 이상이나 사명을 그들의 현실과 상황에 맞춰 끌어내리고, 종교적인 신심 생활을 열심히 하면서, 현실에서 그들 사이에 친교를 누리는 것에 만족할 수도 있다.

친교 교회론은 제도인 교회와 신자들이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하느님 아버지의 나라인 교회에 참여하고, 성령의 힘으로 가난한 이들과 연대하여 그들이 처한 삶의 조건 속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실현하여 공동체들의 친교community of communities를 이룬다.

신자들에게 교회가 추구하는 사명을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다. 교회가 신자들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겪는 것이 무엇이고, 또 그 과정 중에 신자들이 갈등하는 것이 무엇이고, 바라는 것이 무엇이며, 교회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헤아려 보살피는 것도 아주 중요한 일이다. 교회 신자들이 교회 내에서 기쁨과 희망, 그리고 슬픔과 번뇌를 나누고 함께할 때, 교회가 진실한 친교를 맺는 공동체가 된다.

교회가 신자들을 대신해서 무슨 일을 해결해 줄 수도 없고, 현실적인 일에 직접 개입할 수도 없다. 그러나 교회가 사람들의 아픔과 어려움을 함께해 주고 염려하고 위로해 주며 배려하는 친교를 맺을 때, 주님과 교회가 맺고 있는 친교가 아픔과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전달되고 확산되어 그들에게 커다란 힘이 된다. 그리고 소공동체의 기초 단위에서 감당하기 어려울 때, 반의 상위 단위인 구역과 지역에 협조를 청하여 함께한다. 그리고 소공동체들의 집합인 본당에 협조를 청하여 교회 공동체가 세상의 기쁨과 희망, 그리고 슬픔과 번뇌를 겪는 이들과 함께하고 그들을 통해 세상과 친교를 맺게 된다.

 

 

 

4. 2차 바티칸 공의회 후 『교회법』에 나타난 본당 사목 평의회

지역 교회로서의 교구에, 주교는 교회법에 따라 사목 직무 수행을 위해 사목 평의회를 설립한다, “교구마다 사목적 사정으로 유용한 한도만큼, 주교의 권위 아래 교구 내의 사목 활동에 관한 것을 조사하고 심의하며 이에 대한 실천적 결론을 제시하는 소임을 가지는 사목 평의회가 설치되어야 한다.”[123]

바티칸 공의회를 마친 후, 세계 천주교회의 모든 본당은 본당 사목 평의회를 설치했다. 그것은 교회법에서 근거한다.

 

교회법 536조 ① 교구장 주교가 사제 평의회의 의견을 듣고 합당하다고 판단하면, 본당 사목구마다 사목 평의외가 설치되어야 한다. 본당 사목구 주임이 주제하는 이 회에서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그 본당 사목구에서 자기 직책에 따라 사목에 참여하고 있는 이들과 함께 사목 활동이 증진되도록 협조를 제공한다.

② 사목 평의회는 건의 투표권만 있고 교구장 주교가 정한 규범으로 규제된다.[124]

 

사목 평의회에 대한 정의는 교회법 511조에 나타나 있다. “교구마다 사목적 사정으로 유용한 한도만큼, 주교의 권위 아래 교구 내의 사목 활동에 관한 것을 조사하고 심의하며 이에 대한 실천적 결론을 제시하는 소임을 가지는 사목 평의회가 설치되어야 한다.” 『주교 교령Christus Dominus』은 사목 위원회, ‘평의회Council’ 대신 위원회Commission’, 의 임무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 (사목)위원회의 임무는 사목 활동에 관한 것을 연구하고 심의하며 이에 대한 실천적 결론을 제시하는 소임을 가진다.”[125] 마크 피셔Mark F. Fischer 교수는 위 두 가지를 이용하여 말한다, “본당 사목 평의회의 목적은 ① 사목실재를 조사하고, ② 숙고하며, ③ 결론을 도출하여 주임 사제에게 추천한다.”[126] 『평신도 교령Apostolicam Actuositatem[127]은 사도 평의회, ‘사목pastoral’ 대신 사도apostolic’, 평의회의 평신도 조정 역할을 말한다.

 

각 교구에는 되도록, 복음화와 성화 활동, 자선 사업이나 사회 사업, 그 밖의 다른 분야에서, 사제들과 수도자들이 평신도들과 적절히 협력함으로써 교회의 사도직 활동을 돕는 평의회를 두어야 한다. 이 평의회는 평신도 단체들의 고유한 특성과 자율성을 유지하면서 그 다양한 단체들과 활동들의 상호 조화에 이바지할 수 있다.

이러한 평의회는 가능하다면 본당 사목구는 물론 본당 간, 교구 간 또는 국가나 국제 차원에서도 설치되어야 한다.[128]

 

피셔는 조정, 지도력에 관련하여, 26항이 사도 평의회는 평신도의 자치권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우선권을 조정한다. 조정이란 조직하고, 지도하고, 조성하는 것을 의미한다.”[129] 사목 평의회는 확고한 신앙과 덕망과 신중이 뛰어난 하느님 백성의 대표자로 선발된 그리스도교 신자, 사제, 수도자 특별히 평신도로 구성된다.[130] 사목 평의회는 임명 주교가 정한 임기제로 구성되고, 교구장좌가 공석이 되면 사목 평의회는 끝난다.[131] 사목 평의회는 건의 투표권만을 가지며, 1년에 적어도 한 번은 소집되어야 한다.[132]

본당에서는 주임 사제가 책임을 지고 사목 직무의 의사 결정을 한다. 하느님의 백성인 교회가 성장하면서, 주임 사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교회법의 정신에 따라 주임 사제에게 맡겨진 신자들을 사목적으로 돌볼 수 있도록 사목 실재들을 조사하고 숙고하고 그 결론을 도출하여 그에게 전달할 본당 사목 평의회를 설립하게 된다. 실제로, 본당 사목 평의회는 백성들의 대표로 구성된다. 본당 각 지역의 소공동체별 대표자들, 전례, 종교 교육, 청년, 노인, 사회 복지, 재정, 관리 등 교회 전문 분야의 전문가들, 레지오 마리애, 행복한 가정 운동, 꾸르실료, 성령 쇄신 운동, 성 빈센트 폴 회 등의 단체 대표자들로 구성되어야 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본당 사목 평의회는 주임 사제의 자문 기구일뿐만 아니라 주임 사제의 평신도 조정 기관이자 주임 사제와 함께 의사를 결정하는 그룹이며, 주임 사제의 이름으로 본당 사목 직무를 집행하는 기관이기도 하다.

 

 

 

 

 

2장 교회의 새로운 존재 양식, 공동체들의 친교

 

 

 

 

 

이 장에서는, 교회 교도권 문헌에 나타난 기초 교회 공동체와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소공동체)에 대한 규정과 지침 그리고 라틴 아메리카의 기초 교회 공동체와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소공동체)를 살펴 볼 것이다. 이 연구는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소공동체)가 무엇이며 그 배경과 역사를 보여줄 것이다. 그래서 한국 소공동체가 한국 사회를 어떻게 복음화하며 또 한국 사회에 봉사할 것인가를 모색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기초 교회 공동체는 라틴 아메리카 천주교회에서 사제들의 수가 부족한 상황에서 태어났다. 그들은 말씀 전례를 통해 복음을 듣고 나눔으로써 하느님을 찬미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들이 공동체에서 들고 마음 속에 새긴 말씀을 실현하고자 한다.  그것은 종교 생활에서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일상에서도 말씀을 적용하고 꾸준히 변화하게 된다. 복음적인 삶은 압박을 받는 사람들의 해방과도 연결된다. 기초 교회 공동체는 그들을 압박하고 종처럼 움켜잡고 있는 여러 가지 압박에서 해방시키는 주체이다. 교회는 더 이상 고립되고 쉬면서 자만자족하는 성인들의 그룹이 아니다. 교회는 이미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주창한 대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사회 중의 한 사회다.

2차 바티칸 공의회 문서와 1965면 『만민에게(Ad Gentes: 교회의 선교 활동에 관한 교령, 이하 선교 교령)』가 발표된 이후, 아프리카 주교들은 동 아프리카에서 자신들의 역할을 되돌아보며 동아프리카 주교회의(the Association of Episocopal Conferences of East Africa: AECEA)를 설립했다. 아프리카 주교들은 바오로 6세 교황의 방문을 통해 자립하라는 말씀을 깨달았다. 아프리카 주교들은 주님 구원의 도구인 교회가 지역 교회가 되어야 하고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소공동체)로 구성되어야 한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소공동체)가 교회와 사회를 변화하고 변천하도록 하는 도구가 되자고 선언했다.

1982년 남 아프리카에서 활동하는 외국인 선교사들을 위해 룸코 연구소가 설립되었다. 룸코 신학자들은 공의회의 하느님 백성인 교회 모습과 친교인 교회 모형을 선택했다. 그들은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소공동체)의 친교 안에서 친교인 교회 모형을 선택했다. 그들은 동아프리카 주교회의AECEA 정신 안에서 교회의 가장 지역적으로 육화된 형태가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소공동체)라고 설명했다. 룸코는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소공동체)와 함께 공동체 교회를 사목적으로 수행했다. 그들은 의사 결정 과정의 방법인 문제 해결 방식과 같은 많은 사목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이것이 아시아 주교회의(the Federation of Asian Bishops’ Conferences: FABC)를 통해 한국 천주교회에 전래된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소공동체).

 

 

 

1. 교회 교도권에 나타난 기초 교회 공동체와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소공동체)

사도 행전 2 42절부터 47절까지,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묘사되어 있다. 첫째,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는 일에 전념하였다”(42). 둘째, “사도들을 통하여 많은 이적과 표징이 일어나므로 사람들은 저마다 두려움에 사로잡혔다”(43). 셋째, “신자들은 모두 함께 지내며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42. 44). 넷째, “재산과 재물을 팔아 모든 사람에게 저마다 필요한 대로 나누어 주고”(45). 다섯째, “그들은 날마다 한 마음으로 성전에 열심히 모이고”(46). 여섯째,  이 집 저 집에서 방을 떼어 나누었으며, 즐겁고 순박한 마음으로 음식을 함께 먹고”(42. 46). 일곱째, “하느님을 찬미하며 온 백성에게서 호감을 받았다. 주님께서는 날마다 그들의 모임에 구원받을 이들을 보태어 주셨다.”(42. 47) 그들은 사도들을 중심으로 즐겁고 순박한 마음으로 함께 기도하고, 함께 먹고, 함께 살았다. 이것이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기본 모습이다. 2차 바티칸 공의회는 주교와 일치한 하나이며 유일한 가톨릭 교회와 가정 교회에 대해 말했다(『교회 헌장 23).

1974년에 복음화에 대한 주교 시노드가 있었고 이어 교황 바오로 6세가 1975년에 사도적 권고 『현대의 복음선포』를 반포하셨다. 58항에서, 교황은 주교 시노드에서 언급된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소공동체)”기초 공동체의 생성 원인을 밝히고 그 성격과 특성들을 정의했다.

 

이러한 공동체가 생기게 되는 것은 교회 생활을 더 열심히 하고자 하는 것과 또는 대도시의 교회 공동체 같은 곳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인간적인 상호 유대를 추구하는 데서 생긴다고 본다. 대도시의 생활은 집단화되고 익명화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공동체들은 오로지 자기들 나름대로 하느님 공경과 믿음에 대한 깊은 연구, 형제적 사랑의 실천, 기도 생활, 사목자들과의 일치 등 종교적 영성적인 문제에 관하여 적은 사회 단체나 마을 같은 단위에 확대해 나갈 수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공동체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묵상하는 것과 성사 배령, 사랑의 일치를 위하여 연령, 교양, 직분 또는 사회 환경이 비슷한 사람들의 모임인 부부, 청소년, 직장인의 단체들을 집합시키려고 한다. 또한, 정의를 위하여 가난한 사람들을 도우며 인간 발전을 위해서 뭉쳐진 사람들을 결속시킬뿐만 아니라 사제가 부족하여 정상적인 본당 생활 운영이 잘 안되는 경우 신자들을 결합시키기도 한다. 이러한 모든 것은 교회가 인준한 공동체 안에서 더욱 특수 교회나 본당 교회 내에서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133].

동시에 교황은 교회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반대를 하는 반-교회 공동체들과 기초 공동체에 대해 우려하면서,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소공동체)나 기초 교회 공동체에 대한 기준을 제시했다.

 

교회적 기초 공동체는 복음 선교의 못자리가 되고, 더욱 큰 공동체 특히 지역 교회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보편 교회의 희망이 될 것이다. 본인은 세계주교대의원회의 끝에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 기초 공동체는 하느님 말씀에서 그 양식을 구하고 인간의 위대한 가능성을 이용하려는 정치적 편향이나, 그때그때의 이데올로기에 좌우되지 말아야 한다.
  
─ 기초 공동체는 진정성을 찾고 협력한다는 구실로 조직적인 반항과 혹평하려는 태도를 언제나 피해야 한다.
  
─ 기초 공동체는 그가 속하고 있는 지역 교회와 보편 교회에 굳게 일치하여 스스로 고립시키는 것을 피해야 한다. 그런 일은 너무나 쉽게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다른 공동체를 이단시하고 자기들만의 공동체가 진정한 교회라고 생각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 기초 공동체는 하느님께서 교회에 주신 사목자들과 그리스도의 성령께서 맡겨주신 교회의 교도권에 진정한 일치를 보존하여야 한다.
  
─ 기초 공동체는 결코 자기들만이 복음화된 것이라고 생각하거나 자기들만이 복음 선교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도 안된다. 더욱 자기들만이 신앙의 유산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도 안된다.
  
오히려 교회는 더 넓고 다양하다는 것을 생각하고 이 공동체들을 통해서 여러 가지 형식과 표현으로 교회가 구체화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 기초 공동체는 날로 신심과 포교적 열성에 대한 책임 의식이 발전하도록 하여야 한다.

  ─ 기초 공동체는 언제나 전체를 생각하고 파벌적 행위를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한다.

 

이상의 조건들은 확실히 어려운 요청인 줄 아는 바이다. 그러나 잘 지킨다면 정신을 일깨워줄 것이고, 교회의 기초 공동체들은 자기들의 근본적 소명에 충실할 것이다. , 복음을 잘 듣고, 각별히 복음화를 받아들이며 지체하지 않고 그 자신이 복음의 선포자가 될 것이다.[134]

 

1977년 교리 교육에 대한 주교 시노드가 있었고, 이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1979년에 사도적 권고 『현대의 교리교육』을 반포하였다. 교황은 67항에서 어떤 이들은 시의적절하고 효과가 좋은 소규모 공동체들에 호감을 갖는 나머지 본당이란 머지않아 없어질 것이려니 여기거나 아니면 적어도 본당을 이미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쉽사리 단정하는 듯합니다.”[135] 교황의 이 표현은 본당을 공동체들의 친교로 바라본 것이다.[136] 교황은 또한 1985년 제2차 특별 주교 시노드 최종 문서에서 『현대의 교리 교육』 58힝을 참조하여 말했다. “교회는 친교이기 때문에, 만약 새로운 기초 공동체들이 진실로 교회와 일치하고 있다면, 그들은 친교의 진실한 표현이며 보다 항구한 친교의 건설을 위한 수단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교회 삶의 커다란 희망의 근원이 될 것이다.”[137]

1987년 평신도에 대한 주교 시노드가 있었고, 이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88년에 사도적 권고 『평신도 그리스도인』을 반포했다. 26항에 보면, 교황은 본당의 쇄신을 위하여 신자들이 하느님 말씀의 친교를 나누는 상호 봉사와 사랑 안에서 이를 드러낼 수 있는 소규모의 기초 공동체 또는 이른바 ‘생활’ 공동체; 그들의 사목자들과 친교를 이루는 이러한 공동체들은 교회적 친교의 진정한 표현이며 복음 선포의 중심이다.”[138] 라고 밝혔다. 30항에서 교황은 평신도 단체들을 교회의 친교와 사명이라는 관점에서 식별하고 인정하기 위한 다섯 가지의 교회성의 기준을 제시했다.

 

교회 안에서 평신도 단체들을 평가하는 기본적 기준들은 종합적으로 다음과 같다.

 

─모든 그리스도인의 성화 소명을 으뜸으로 삼는 우위성. 성덕은 “성령께서 신자들 안에서 맺어 주시는 은총의 열매로” 그리고 그리스도교적 생활의 완성과 사랑의 완덕을 향한 성숙으로 나타나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어떠한 평신도 단체이든 언제나 “회원들의 실생활과 신앙의 더욱 긴밀한 일치”를 강화하고 촉진함으로써 교회 안에서 성덕으로 나아가는 더 나은 도구가 되도록 부름 받고 있다.
─ 가톨릭 신앙 고백의 책임. 이는 교회의 교도권에 순종하여 교회가 진리를 해석하는 대로, 그리스도께 관한 진리, 교회에 관한 진리, 인간에 관한 진리를 수용하고 선포하여야 할 책임을 말한다. 이러한 연유에서 모든 평신도 단체는 신앙의 완전한 내용을 선포하고 또 배우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
─ 확고하고도 진정한 친교의 증언. 보편 교회의 영구적이고 가시적인 일치의 핵심인 교황에게 충성하는 자녀 관계 안에서, 그리고 개별 교회에 있어서 “일치의 가시적인 근원이며 토대”인 지역 주교와 더불어, “교회 안에서 온갖 형태의 사도직이 서로 존중”하는 가운데 이루는 확고하고도 진정한 친교를 증언하여야 한다.
  
교황과 주교와 더불어 이루는 친교는 교황과 주교의 교의적 가르침과 사목 지침들을 수용하는 충직한 자세로 드러나야 한다. 더 나아가, 교회적 친교는 교회 안에 있는 온갖 형태의 평신도 단체들이 지닌 정당한 다양성에 대한 인정을 요구하는 동시에 공동 노력에 기꺼이 협력하고자 하는 의지를 요구하고 있다.
─ 교회의 사도직 목적에 대한 순응과 참여. 곧 “사람들에게 복음을 선포하고, 사람들을 거룩하게 하며, 그들의 양심을 그리스도교적으로 형성하고, 다양한 공동체와 환경에 복음의 정신을 불어넣는” 그 사도직 목적을 따르고 그 목적에 참여하여야 한다.
  
이러한 전망으로부터 모든 형태의 평신도 단체는 각기 재복음화에 참여하여 그 효율성을 증진시킬 수 있는 선교 열정을 지니도록 요청받고 있다.
─ 인간 사회에서 교회의 현존을 위한 투신. 교회의 사회 교리에 따라 인간의 전인적 존엄성에 봉사하도록 투신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평신도 단체들은 사회 안에서 더욱더 정의로운 형제애의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참여와 연대의 효과적인 통로가 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언급한 근본적인 기준들은 다양한 형태의 단체들이 그 유기적인 생활과 활동 안에서 보여 주는 실질적인 결실로 확인되고 있다. 곧 기도, 명상, 전례와 성사 생활에 관한 새로운 존중; 그리스도인의 혼인과 직무 사제직과 봉헌 생활에 관한 소명의 재각성; 지역적, 국가적, 국제적 차원에서 교회의 활동과 사업에 대한 참여의 자세; 교리교육에 대한 투신과 그리스도인 양성과 교육의 역량; 사회 생활의 다양한 환경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 현존하고자 하는 열망과 자선 사업, 문화 사업, 영성 활동의 창시와 진흥; 모든 사람을 향한 사랑 안에서 더욱 관대한 헌신으로 나아가는 복음적 청빈과 초탈의 정신; 신앙으로부터 멀어졌던 세례 받은 사람들의 그리스도교적 생활로의 회개 또는 교회적 친교에로 복귀 등 단체 사도직 활동의 실질적인 결실 안에서 그 근본 기준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139]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90년 교회의 불변하는 선교 사명에 관해 회칙 『교회의 선교 사명』을 반포했다. 51항에서 교황은 교회의 기초 공동체는 복음화의 힘이다라고 밝혔다.

 

젊은 교회들 안에서 신속히 번창하고 있고 주교들과 주교회의들이 사목 활동의 우선적 과제로 추진하고 있는 것이 교회의 기초 공동체이다(다른 이름도 있다). 이것은 그리스도교 교육과 선교 추진의 좋은 중심처로 인정되고 있다. 기초 공동체란 소수의 가정이나 인근 신자들이 기도와 성경 독서와 교회 공부와 인간적 교회적 문제에 대한 토론을 하고 공동 책임을 도출하는 소수 신자들의 집회를 말하는 것이다. 이런 공동체들은 교회의 활력의 표지이고 신자 양성과 복음화의 도구이며 '사랑의 문화'에 바탕을 둔 새로운 사회의 출발점이다. 이 공동체들은 본당 공동체를 분권적으로 구성하면서도 항상 본당에 속하여 있다. 그들은 생활 주변과 촌락에 뿌리를 내려서 그리스도교 생활의 누룩이 되고 가난한 사람과 소외된 사람을 돌보고 사회 개량의 의무를 다한다. 이 공동체 안에서 각자는 공동체를 체험하고 그 안에서 능동적 역할을 한다는 것을 느끼고 공동체의 일에 각자의 노력을 접합시키도록 격려를 받는다. 그래서 이 공동체들은 복음화와 기초적 복음 선포의 도구가 되고, 새로운 직무의 기원이 되며,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고무되어 분열과 족벌과 종족주의를 극복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어떤 공동체든지 참으로 그리스도교적인 것이 되려면 그리스도께 의지하고, 그리스도 안에 생활하고,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성체성사를 중심으로 기도에 항구하고, 마음과 정신의 친교를 유지하고, 형제들의 필요에 따라서 물질을 공유하는 것이 요구된다(사도 2,42-47 참조). 교황 바오로 6세가 지적한 대로 모든 공동체는 지역 교회와 전체 교회와 일치하고, 교회의 목자들과 교도권에 일치하고, 선교에 투신하고, 모든 종류의 고립주의와 고정 관념을 배제해야 한다. 그뿐 아니라 주교회의의 선언도 명심해야 한다. "교회 자체가 친교인 만큼 새로운 기초 공동체들이 참으로 교회와 일치하여 산다면 그들은 이 친교의 증명이 되고 더 깊은 친교를 이루는 방법이 된다. 그래서 이러한 기초 공동체는 교회 생활에 크나큰 희망을 가져다 준다.[140]

 

교회의 교도권은 기초 교회 공동체나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소공동체)를 교회의 한 모형으로 기꺼이 환영한다. 그러나 교회는 교회의 선교와 사명이라는 관점에서 교회성의 기준에 따라 천주교회와 일치하기를 바란다. 교회는 기초 교회 공동체와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소공동체)가 잃어버린 어린 양(루카 15장 참조)처럼 되지 않고 주님께서 아버지 하느님께 붙어있고, 초기 교회 공동체가 주님께 붙어 있듯이, 천주교회에 붙어있기를 바란다(요한 15 참조).

 

 

 

2. 라틴 아메리카의 기초 교회 공동체

푸엘렌바흐는 집과 가정교회라는 뜻을 가진 오이코스’Oikos오이키아’Oikia라는 두 단어가 신약에 200번 쓰였다고 한다. 그는 버나드 리와 미카엘 코완의 말을 빌어 가정 교회의 네 가지의 성격을 정의한다. 코이노니아Koinonia/공동체, 디아코니아Diakonia/봉사, 케리그마Kerygma/복음-근거됨, 그리고 리뚜르지아Liturgia/성체성사.[141]

푸엘렌바흐는 라틴 아메리카 기초 교회 공동체Basic Ecclesial Community의 배경과 생성 상황이 프로그램이나 교회 교도권의 특별한 사목 기획을 따른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기초 교회 공동체는 사제의 부족, 교회 분열의 가속화, 사회와 경제적 압박과 종속, 그리고 만일 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손으로 만져보지 않으면 믿음이 사라질 것만 같은 느낌처럼 특별한 필요에 응답하는 과정에서 생겨났다. 늦게나마 성령께서 확실한 영감을 불어넣어 준 것이 명백하다.”[142]라고 했다.

1968년 메델린에서 열린 제2차 라틴 아메리카 주교회의CELAM는 기초 교회 공동체들이 하느님의 가족으로 변화되도록 요청했다. 그래서 복음화를 이루기 위한 교회의 첫 번째 근본적인 핵이 되라고 말했다(10). 주교들은 또한 사목적인 지침의 사목 구조의 혁신 부분에서 기초 교회 공동체의 지도자들이나 책임자들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리고 그들의 구성원들이 자신들의 공동체를 세상에 하느님께서 현존하시는 표징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11).

 

10.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이 기초 공동체로 불려져 그 친교 안에서 살아야만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 그 구성원들이 서로 형제애로 접촉할 수 있는 정도 크기의 공동체 안에서, 지역적으로나 환경적으로나 동질성을 가진 집단에 부응하도록 불리었다. 결과적으로 교회의 사목적 노력은 이러한 공동체들이 설립 초기부터 핵과 같은 누룩이 되어 하느님의 가족으로 변화되도록 하는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비록 그것이 작다 하더라도 믿음과 희망 그리고 사랑의 공동체가 되도록 하여야 한다. 그래서 그리스도교 기초 공동체는 무엇보다 교회의 근본적인 핵심이다. 그것은 예절에서 사용하는 표현처럼, 책임을 가지고 믿음이 풍요롭게 퍼져 나가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공동체는 교회의 구조와 복음화에 초점을 맞춘 기초 조직이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 발전과 성숙의 가장 중요한 원천으로 협력하게 된다.

11. 그리스도교 기초 공동체를 실존케하는 근본 요소는 지도자들과 책임자들이다. 이들은 사제 또는, 부제거나 남자 또는 여자 수도자거나 평신도들일 수도 있다. 이들이 자신들이 이끄는 공동체에 속해 있다면 좋겠다. 지도자들의 선택과 양성은 본당의 사제들과 주교들의 최우선적인 임무다. 이들은 자율적이면서도 책임감을 고양시키는 상황에서 도덕적 영적인 성숙을 염두를 두고 있어야 한다.

이 공동체들의 구성원들은 하느님께서 자신들을 믿고 맡기신 사제직, 예언직, 왕직을 수행하는 하도록 불리었다는 사실에 합당하게 살아야 한다.” 그래서 자신들의 공동체를 하느님께서 드러나시는 표징으로 세상에 드러내야 한다.”[143]

 

3차 라틴 아메리카 주교회의가 1979년 푸에블라에서 열렸다. 거기에서 주교들은 『제3부 라틴 아메리카의 복음화: 친교와 참여』라는 지역교회와 본당 그리고 기초 차원의 교회 공동체들CEBs에 대해 말했다. 주교들은 기초 교회 공동체를 기쁨과 희망의 근거”(96, 262, 1309)이며, “복음화의 중심이자 해방과 성장의 원동력”(96)으로 삼았다. 그들은 기초 교회 공동체가 보다 더 개인적이고도 내면적인 관계를 맺으며,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 말씀을 자신의 삶 속에 다시 한 번 적용하며, 복음의 빛으로 반영하여야 한다고 했다.”(629) 주교들은 『현대의 복음선교』 58항을 인용하여 기초 교회 공동체를 교회의 희망이라고 밝혔다.[144] 그들은 국가별, 세계적인 차원에서 그리고 기초 교회 공동체를 신학적인 차원에서 되새겼다.[145]

1992년 산토 도밍임고에서 열린 제4차 라틴 아메리카 주교회의에서는 기초 교회 공동체들이 라틴 아메리카 교회의 척도가 된지 오래되었다고 하더라도, 제도적인 지도자들의 지원 없이는 기초-단위의 교회 공동체들이 사라지거나 희미해진다.”고 말했다.[146] 두 번째 보고서에서 주교들은 본당의 구조가 기초 교회 공동체들의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기초 교회 공동체[comunidades eclesiales de base]는 교회의 운동이 아니라, 교회의 모형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기초 교회 공동체의 관찰-판단-실천에 대해 말했다.[147] 그들은 61-63항에서 기초 교회 공동체가 본당의 살아있는 세포이며 유기적인 선교 공동체로 이해된다.”고 밝혔다. 그리고 교회론적인 근본 정신을 잃지 말고 『현대의 복음선교』 58항의 가르침을 간직하라고 요구했다.[148] 그들은 메델린 회의에서 기초 교회 공동체를 교회의 기본 세포로 불렀던 데 반해 산토 도임고 회의에서는 본당의 세포로 불렀으며, 헤넬리는 마린을 인용하여 기초 교회 공동체가 본당에 봉사하거나 준본당의 되기조차 그 역할이 축소되었다.”고 보았다.[149]

브라질 신학자 레오나르도 보프Leonardo Boff는 그의 책, 『교회: 은사와 권력: 해방 신학과 제도 교회』에서 기초 교회 공동체에 대해 말한다.

 

기초 교회 공동체(또한 기초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라틴 아메리카에 그 기원을 둔 현상이다. 그들은 기초 교회 공동체라는 이름을 가졌다. 왜냐하면 그 공동체들은 낮은 계급, 뿌리 인생, 사회의 기반인, 사회 권력의 피라미드의 절정과는 정반대에 있는 사람들이 우선적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150]

 

기초 교회 공동체는 세계의 중심에 실재하면서 우리 믿음에 도전하는 라틴 아메리카의 가난과 억압의 굴레속에 탄생했다.[151] 요즘 사람들은 그들 스스로 좀 더 친밀한 관계를 맺기 위해 커다란 사회보다는 작은 그룹에 속하기를 원한다. 그리고 서품된 사제들이 거의 없고, 평신도들만이 복음을 전하고 그들의 믿음을 생생하게 지키고 있다. 기초 교회 공동체는 라틴 아메리카라는 특수 상황에서 태어났다.

 

기초 교회 공동체는 일반적으로 15에서 20가정으로 구성된다. 그들은 한 주간에 한 번 또는 두 번 같이 모여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자신들의 공통 문제를 나누고, 복음의 감도 아래 이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한다. 그들은 성경적인 구절에 자신들의 느낌을 나누고, 그들 자신의 기도를 자아내고, 그들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을 함께 결정한다. 침묵의 세기 후에 하느님 백성은 말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더 이상 그들의 본당에 단순히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교회론적 가치를 가지고 하느님의 교회를 재창조해 나간다.[152]

 

보프는 기초 교회 공동체를 성격짓는 다섯 가지 기본 면모를 지적한다. “억압받으면서도 아직 하느님을 믿고”, “하느님의 말씀으로 태어나고”, “교회를 만드는 새로운 길이며”, “해방의 징표이자 도구며”, “믿음과 삶을 거행한다.”[153] 보프는 기초 교회 공동체를 통해 교회의 미래에 대한 이정표를 제시한다. 교회는 성직자 중심에서 대화와 참여를 통한 신자들의 교회로, 가난하고 억압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교회로, 순종이 아니라 사랑의 형제애를 통한 공동체로, 예식과 성사 때뿐만 아니라 사회에 헌신하는 가난하고 억압받는 이들의 교회로 나아가야 한다.[154] 보프는 기초 교회 공동체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교회론의 구조를 설정한다. 그는 교계 제도와 수도회 같은 모형의 교회 구조 하느님그리스도사도주교사제신자에서부터 하느님 백성인 교회 모상 안에서 그리스도성령공동체하느님의 백성사제조정자인 수평 사회 모형으로 변화할 것을 제안했다.[155]

보프는 기존의 교회 모습을 이어받고 발전시킨 해방의 표징이며, 예언자이며, 해방의 도구인 공동체인 교회를 주창한다.[156] 마르셀로 아제베도Marcello de C. Azevedo는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인 선택과 사회와 정치적인 차원을 기초 교회 공동체의 신학적 차원에서 설명한다.[157] 해방 신학자 구스타보 구티에레즈Gustavo Gutierrez는 이상주의자와 영성주의자들의 접근과 얄팍한 분석과 프로그램을 피하기 위해 해방의 과정에 있어서의 세 가지 접근법을 언급한다. 해방은 억압받는 이들의 열망이다. 해방은 인간 역사 안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역사 안에서 인간의 해방자이다.[158]

『교회의 선교 사명Redemptoris Missio』은 기초 교회 공동체를 사도행전 2 42절부터 47절까지와 연관하여 존재하도록 그리고 교황 바오로 6세의 말씀 모든 공동체가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되려면, 그리스도 안에 자리를 잡고 그분과 함께 살아야 한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성찬례에 그 기도의 촛점을 맞추고, 마음과 영을 다하여 친교를 이루고, 구성원들의 필요를 나누고, 부분 교회와 전체 교회와 일치하며, 고립을 두려워하지 않되 이데올로기적인 탐구를 피하며 선교에 대한 헌신으로 교회의 주임 사제들과 직권자Magisterium들과 마음으로 다가오는 친교를 누려야 한다는 것을 요구했다.[159] 요셉 라칭거Joseph Ratzinger와 신앙교리성은 기초 교회 공동체들이 교회적인 요소들을 간직하고 있지만 교회라고 부를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들은 교회가 단순히 하나의 특별한 사회 계층이나 그룹, 가난한 이들과 억압 받는 이들만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부자들을 포함하여 모든 이들에게 문을 열고 끌어안아야 한다고 강조한다.[160]

 

 

 

3. 아프리카의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소공동체)

2차 바티칸 공의는 교회의 선교활동에 관하여 1965년 『선교 교령』을 반포했다. 22항에서 공의회는 그 교회들은 자기 민족의 풍습과 전통, 지혜와 지식, 예술과 예절에서 창조주의 영광을 찬양하고 구세주의 은총을 밝혀 주고 그리스도인 생활을 올바로 영위하는 데 이바지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얻어 온다.”[161] 이 『선교 교령』이후 아프리카 주교들은 동아프리카 교회와 동아프리카 주교회의에 있어서의 자신들의 역할을 다시 한 번 되돌아 보게 되었다. 자이레의 켄즈 교구장 디우돈 산다는 위 교령과 관련하여 1967 주교회의 총회 보고서를 인용하여 말했다. “전통적인 문화 속에 유보된 것과 그 문화의 기본적인 가치들을 명확하고 주의깊게 발견하도록 조직적인 노력을 기울어야만 한다아프리카 문화와 사고의 새로운 형식으로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뜻을 재구성하기 위하여, 아프리카인들의 실체와 관련된 신학적인 조사를 기울이는 것도 필요하다.”[162]

탄자니아에서는 마을(키지지, kijiji) 교회를 강력하게 추진했다. 대부분의 탄자니아 사람들이 실제로 살고 있는 마을에 대한 이 새로운 사목적인 주안점은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소공동체)의 발전을 위한 강조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메리놀 선교사 죠셉 힐리는 동아프리카 주교회의(the Association of Episcopal Conferences of East Africa: AMECEA)성명서를 편집하여 말했다.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소공동체)는 그리스도인들이 양성되어 나가는 돌봄과 나눔, 신앙적인 반성, 기도와 봉사 공동체이다. 다섯에서 열다섯 가족의 이웃 단체, 공동의 관심과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모인 기존의 공동체로 이루어진다. 지리적으로 가깝거나 혈연관계나 직장, 사회적인 연결이나 다른 관계로 인해 자연스럽게 모인 공동체나 단체이다. 그것은 복음화와 교리 교육의 기초적인 장이다.[163]

 

말라위의 패트릭 칼리롬베Patrick Kalilombe 주교와 탄자니아의 크리스토퍼 뭘레카Christopher Mwoleka 주교와 메리놀 사제들과 선교사들은 1969년부터 1973년까지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소공동체)를 세우려고 노력하였다. 1973 4월과 12월에 열린 동아프리카 주교회의의 주안점은 동아프리카라는 특정한 지역의 지역 교회 안에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소공동체)를 세우는 일이었다.[164]

 

우리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교회가 진실로 지역교회가 되기 위해) 매일의 삶과 직업 현장에 기초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기반으로 교회의 삶과 일을 건설하기를 주창한다. 구성원들은 실제로 상호-인격적 관계를 체험할 수 있고 삶과 일 양쪽에 다 공통적으로 느낄 수 있는 기본적이고 운영 가능한 사회 조직에 속하기를 바란다. 우리는 그리스도교 공동체들이 이 시점에서 가장 활발하게 발전될 수 있기를 그리고 그들의 자연적인 환경에서 효과적으로 증거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우리 본당이나 교구들은 모든 구성원들이 교의와 전례, 성사 그리고 사회 복지에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공동체들이 되는 그런 방법으로 조직되어야만 한다.[165]

 

1976 7월의 동 아프리카 주교회의 연구 회의에서 동 아프리카(케냐, 말라위, 탄자니아, 우간다와 잠비아)주교들은 이렇게 선언했다.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소공동체)에 대한 조직적인 양성은 동 아프리카에서 다가올 수년 간 중요한 사목적인 주안점이 되어야만 한다….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세우는 일은 교회의 새로운 구조를 세우는 일보다, 실제적인 조건과 관계에 있어서 우리 교회의 새로운 전망에 대한 의식이 생성되고 발전되는 아주 중요한 일이다.”[166] 이처럼 주교들은 스스로 공동체를 세우는 일을 사목적인 주안점으로 삼았다.[167] 그들은 본당의 기초 조직으로서의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소공동체)를 만들었다. 리롱위 교구는 각 본당은 각 공동체 안에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서로를 잘 알고 그리스도인들의 삶과 노력에 진실로 일치할 수 있도록 협력할 수 있는 정도의 공동체로 나뉘어져야 한다.”[168] 라고 발표했다. 라틴 아메리카의 기초 교회 공동체가 아래로부터 시작된 반면에, 아프리카의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소공동체)는 위로부터 시작했다.[169] 그러나 아프리카 주교들은 뿌리 교회에 대한 강조를 통해 평신도들이 자신들의 교회에 대해 진실한 책임감을 가지도록 만들었다. 위에서 아래로의 접근이 아래에서 위로의 접근으로 바뀌었다. 말라위의 패트릭 칼리롬베 주교는 이렇게 지적한다.

 

우리는 교회의 기초 조직을 사람들의 일상 생활이 이루어지는 소공동체로 하는 새로운 조직을 체택했다. 만일 우리가 교회가 공동체로서 살고 기능하기를 바란다면, 우리는 사람들이 매일 살아가며 마주치는 그 작은 수준으로 내려가야만 한다. 교회는 이 소공동체 안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들의 친교를 의미있게 표현할 수 있다. 그러한 기초 공동체는 교회의 존재와 의미라는 면에 있어서 오로지 실제적인 기반이 될 수 있다. 여기서 교회는 참친교로 존재한다. 교회의 보다 넓은 차원은 단지 하나의 공동체가 아니라 공동체들의 친교가 되는 것이다. 본당은 본당 관할 구역내의 기초 공동체들의 친교이다. [170]

 

놀라Ndola교구는 교회가 살아 숨쉬는 교회의 가장 작은 세포인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소공동체)의 성격을 여섯 가지로 규정했다.[171] 그런가 하면 힐리도 열 가지로 규정했다.[172] 첫째, 세포는 사람들이 개인적인 수준에서 서로 알고 지낼 정도로 작다(힐리는 ① 성인 15-20). 둘째, 이러한 지역적인 수준에서, 형제애와 우정이 실재한다(힐리는 ② 이웃 그룹). 셋째, 하느님의 말씀을 통해, 성직자와 평신도가 서로 다른 직무를 통해 그리스도의 복음을 살아가고 선포하는데 서로 협력하고 서로 책임을 짐으로써, 그리스도께서 공동체와 모든 신자들의 머리이시라는 것이 인식된다. 넷째, 구성원들이 서로 사랑함으로써, 가난한 사람들과 병자, 그리고 사별하여 홀로된 사람들을 사랑하고 돌보는 일을 자연스럽게 접하게 된다(힐리는 ⑦ 아프리카의 가치와 관습이라는 맥락에서 함께 나누고, 함께 일하고, 함께 축하하는 개인적인 관계와 연대를 강조한다. 그리고 ⑧ 기획된 실천 활동과 상호 협조와 사회봉사를 덧붙였다). 다섯째, 서로에 대한 염려와 배려를 통해 깊이 기도하게 된다. 여섯째,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그리스도의 몽의 한 지체인 것처럼, 그 전 생애와 존재의 실현으로서 새로운 방법으로 그리스도의 몸인 성체성사를 이해하게 된다(힐리는 ⑨ 본당 사목 평의회의 한 구조로 교회에 참여한다고 했다). 그리고 힐리는 ③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소공동체) 구성원들의 가정에서 만난다는 것과 ④ 주일 성체성사와 말씀의 전례에 참여햐며, ⑤ 그 자신들의 계층에서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소공동체)의 지도자가 생겨나며, ⑥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소공동체) 모임은 일종의 복음 나누기와 반성(되새김)을 하며, ⑩ 정규 모임과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소공동체) 지도자들을 위한 훈련 과정이 있다는 점을 추가했다.

아프리카 주교들은 1976년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소공동체) 건설에 사목의 주안점을 두었으며, 1979년에는 그것을 평가하고 재확인하였다.[173] 그들은 1975년에 발표된 『현대의 복음선교』에서 자신들의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소공동체)가 온전히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느꼈다. 그러나 로마의 오해에도 불구하고 동아프리카 주교회의는 1976년부터 1979년에 걸쳐 공동체 시작 방법, 성공과 실패 그리고 지도자와 교리교사 및 직무 양성에 주력했다.[174] 1976년 총회에서 주교들은 네 가지 주안점들을 되새겼다. 그것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175] 첫째, 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의 맥락 안에서 가톨릭에 대한 재교육. 둘째, 오늘날 교회의 정신과 마음에 대해 지도자들에게 명확하게 해 주어야 할 필요성. 셋째, 지도력은 성령께서 공동체에 주시는 선물. 넷째,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소공동체)는 교회 전체 신비의 가장 지역적인 표현이다. “본당을 쇄신하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 공동체들의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다….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소공동체)는 하나이며 거룩한(보편된) 교회의 지역적인 표현이다. 그래서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소공동체)는 본당에 비해 실제로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서로를 알고, 사랑하고 고통 받고 일하고 죽는 바로 그런 더 작은 지역 수준으로 내려가야만 한다. 그곳이 엠마누엘(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느님, 그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가장 진실되이 함께하시는 곳이다. 거기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그들에게 효과적으로 현존해야만 하는 곳이다. 그리고 조금 불안하고 조심스러운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소공동체) 지역 지도자들을 교육하고 양성시킬 책임을 가진 본당의 서품된 사제가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소공동체) 지도자들을 지도하고 세심히 이끌어야 한다.”[176]

1976년 총회가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소공동체)는 그리스도의 교회가 가장 지역적으로 육화한 것이라고 결론을 내린 반면에, 1979년 총회에서 데니스 드 종Dennis de Jong 주교는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소공동체)의 목적이 무엇이냐?” 는 질문을 던지고, 이렇게 답한다. 그는 다섯 가지 차원에서 설명한다. “첫째, 신학적으로 일치를 이루고자 하는 그리스도의 뜻이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소공동체)에서 실현된다. 둘째, 성경적으로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소공동체)는 공동체와 형제애에 대한 신약의 감각을 회복시키려고 노력한다. 셋째 사회적으로 사람들은 서로 나누고, 깊이 통교를 맺고자 하며, 기초 구룹이나 가정에 속하기를 바란다. 넷째, 선교적으로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소공동체)는 가장 지역적인 수준에서 자신들이 교회 복음화 사업의 일부라는 것을 진실히 느끼도록 하는 교회의 선교 차원을 발전시킬 효과적인 방법이다. 다섯째, 사회적 인간 개발면에서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소공동체)는 여러 면에서 보다 낳은 사람들의 삶을 향상시키도록 도와줄 수 있다[177] 그리고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소공동체) 안에서 사람들은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임마누엘께서 그들 가운데 계시다는 그리스도의 신비를 인식할 수 있다. 그 공동체들 안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세례성사와 고해성사를 통해 그들의 죄를 용서받음으로써 오는 기쁨과 자유를 체험한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형제적 사랑과 개인적인 믿음의 환경 속에서 살아 숨 쉬게 된다.” 그 공동체 안에서 그들은 새로운 존재 양식인 교회를 진실히 체험하게 된다. 그리고 그들이 희망 안에서 구원되었다는 것을 공동체 안에서 체험하게 된다.”[178]

1994년 동아프리카 주교회의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평신도들은 교회가 너무나 성직자 중심이어서 신자들과는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179] 1994년 아프리카 주교회의 특별 총회에서 하느님의 가족인 교회는 인간적인 차원에서 살아있는 또는 기초 교회 공동체로서의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소공동체)를 만드는데 주력해야 한다. 이렇게 개별적으로 가족인 교회는 사회를 변화시키는 일을 임무로 삼는다.”[180]고 밝혔다. 1995년 로마에서 열린 아프리카 주교 시노드에서 주교들은 두가지의 주제를 다루었다. 21세기를 향한 교회의 이미지 즉 가족인 교회’Church-as-Family이다. 그리고 아프리카에서 일하는 미국 메리놀 선교 사제인 조셉 힐리Joseph Healy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소공동체)는 지역 차원에서 하느님의 가족인 교회의 모형이며, 가족인 교회의 한 부분이다. 공동체들의 친교(공동체들로 이루어진 공동체) 교회론에서 각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소공동체)는 개별적인 교회 가족이다라고 말했다.[181]

 

1969년 교황 바오로 6세는 아프리카 교회를 방문하여 아프리카인들에게 자립self-reliant하라.”고 말했다.[182] 아프리카 교회는 그들의 새로운 교회 모형을 공동체인 교회로 정했다. 아프리카 주교들은 주님 구원의 도구인 교회가 되려면 지역 교회여야 하고 또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소공동체)여야 한다고 선포했다. 그리고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소공동체)는 교회와 사회를 변화시키고 변혁시키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문서에 드러난 대로 본다면, 아프리카 주교들은 자신들의 교회가 아프리카 사람들의 교회가 되기를 바랬다. 더 이상 외국인 선교 사제와 수도자 그리고 그들의 방식대로 그들에게 교육받은 사제와 수도자들이 아니라 아프리카의 문화 안에 자라났거나 적어도 그 문화 안에 정착된 이들이기를 바랐다. 라틴 아메리카 주교들이 외국의 발전된 나라들의 압박을 받고 있는 라틴 아메리카 사회구조 체제의 가난하고 압박된 상황에서 기초 교회 공동체를 통해 해방되고 벗어나기를 바랬던 데 반해, 아프리카 주교들은 문화화와 토착화의 방법으로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소공동체)를 선택했다.

 

1962년 남 아프리카에서 활동하고 있는 외국인 로만 가톨릭 선교사들을 위해 룸코 연구소’The Lumko Institute를 설립했다.[183] 외국인 선교사들이 있는 본당에서는 신자들을 방문하고 격려하며, 비신자들을 교회로 초대하고, 그들을 신앙으로 이끌고, 어린이들에게 교리를 가르치고, 환자들에게 봉사하고, 장례 절차를 이끌며, 여타의 다른 봉사직을 수행하기 위해 아프리카 남자 교리교사가 필요했다. 룸코는 선교사들에게 언어를 가르쳤고, 교리교사들에게는 공동체 직무를 훈련시켰다.[184] 1969년에 로젠탈Rosenthal 주교는 프리츠 로밍거Fritz Lobinger와 오스왈드 히머Oswald Hirmer 신부를 연구소로 초대하면서, 사목직무부를 신설하고 교리 교육뿐만 아리나 자립적으로 교회 공동체 건설과 사회 활동에 책임을 가지고 참여하는 수품 받지 않은 지도자들animators을 양성하기 위해 교리교사 교육과정을 시작했다. 그들은 이런 교육과정을 위한 책을 간행하였다.[185]

룸코 신학자들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상 중에서 하느님의 백성인 교회모습과 친교인 교회모형을 선택하였다. 그들은 삼위일체의 사랑 안에서 나누는 공동체를 발견하였다. 공동체 건설 차원에서는 성령에 의해 주어진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교회 모습을 택했고,[186]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소공동체)의 친교 차원에서는 친교인 교회 모형을 취했다.[187] 그들은 동아프리카 주교회의의 정신에 따라 교회의 지역적 토착화로서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소공동체)를 설명한다.[188] 룸코 연구소는 공동체인 교회를 사목적인 차원에서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소공동체)와 연결시킨다. 거기에는 네 가지의 특성이 있는데, 첫째는 그들의 가정에서 모이는 것이고, 둘째는 복음을 나누는 것이고, 셋째는 신앙으로 함께 일하는 것이며, 넷째는 전체 교회와 일치하는 것이다.[189] 그들은 교회 성장 다섯 단계를 지도력과 연결시켜 설명한다. 첫째는 창조적인 지도력으로 먹여주는 교회, 둘째는 지시하는 지도력으로 본당 사목 평의회 중심의 교회, 셋째는 위임하는 지도력으로 깨어나는 교회, 넷째는 조정하는 지도력으로 단체 중심의 교회, 다섯째는 협력하는 지도력으로 공동체들의 친교다.[190] 그들은 파울로 프레이리Paulo Freire의 교육 방법론을 원용하여, 한계 지어진 상황 속에 처한 인간 삶의 장면을 스켓치, 사진, 역할 놀이, 음악, 그림이나 이야기 등을 이용하는 자각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191] 그들은 또한 친교인 교회의 기초인 기초 교회 공동체처럼 말씀의 신학을 취했다. 그들은 공동체의 양성과 발전 과정으로 복음 나누기 7단계’, ‘공동응답’, ‘보고-듣고-사랑하기’, ‘생활 말씀 적기의 네 가지 복음 나누기 방법을 발전시켰다.[192] 그들은 사회에 봉사하고 평신도들이 책임을 가지고 교회의 행정에 참여하도록 격려하는 데 종인 교회의 모형을 채택했다.[193]

룸코의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소공동체) 모습은 아시아 주교회의를 통해 한국 천주교회에 전수되었다. 이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소공동체)는 외국인 선교사에 의해 운영되는 교회로, 재정이나 자원들이 그들과 성직자들에게 의존하고, 문맹자들이 많은 사회 환경, 신자들이 지역적으로 널리 흩어져 있고, 열악한 생활 조건에 처해있는 아프리카 교회의 상황에서 생겨났다. 그러나 이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소공동체) 운동은 적게는 4,000명 많게는 10,000명이 넘는 신자들을 가진 한국 천주교회의 커다란 본당 공동체의 작은 단위나 작은 세포로서 적용되고 운영될 수 있다.

 

 

 

4. 아시아의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소공동체)

이 항에서는 아시아에서 교회의 새로운 존재양식인 공동체들의 친교인 교회의 새 모형(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소공동체])을 살펴볼 것이다. 1982년 태국 방콕에서 열린 아시아 주교회의(Federation of Asian Bishop’s Conferences: FABC)의 『교회-아시아의 신앙 공동체: 3차 총회 선언』에서 그리스도인들의 사랑을 나누는 친교인 교회를 교회의 새로운 존재 양식New Way of Being Church으로 설명했다. 1990년 인도네시아의 반둥에서 열린 제5차 아시아 주교회의 총회에서 룸코 연구소의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소공동체) 운동을 채택했다. 아시아의 문화와 부응하는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소공동체)의 영성은 조화의 영성이다. 이것이 1992년 서울대교구와 한국 교회에 도입되었다.

 

1) 아시아 주교회의

1977년 홍콩에서 열린 아시아 주교회의는 『교회의 직무』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아시아에 기초 교회 공동체의 필요성을 강하게 피력하였다. 주교들은 기초 교회 공동체가 적은 수의 사제들이 감당하기엔 너무 많은 신자들로 인하여 결과적으로 신자들에게 사목적인 면에서 깊이 다가가지 못하고, 신자들이 교회와 자신들의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소공동체)에 대한 책임감을 고취시키고, 비그리스도교 세상인 아시아에서 신자들을 지원해야할 필요를 느끼는 등의 여러 가지 필요와 정황에 적합하다고 말했다. 신자들이 자기가 사는 마을이나 도시의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소공동체)에서 일치하고 함께하는 것이다. 주교들은 기초 교회 공동체가 부활하신 주님 안에 머물며 그분을 중심으로 삼고 성령께 문을 열어야 한다고 요청했다. 구성원들은 주님의 말씀을 나누고, 성체성사를 기초로 그리고 그 중심으로 삼아야 한다. 신자들 스스로 자신의 죄와 이기주의와 투쟁해야 하며, 정의와 자유와 진리와 사랑을 바탕으로 한 평화의 공동체를 설립하기 위해 다 함께 노력해야 한다. 주교들은 아시아 각 나라의 기초 교회 공동체의 체험과 발전과정에 대해 나누기를 원했고, 단지 아시아라는 지역 안에 있는 교회가 아니라, 아시아인의 긍지와 자유를 보다 더 증진시키기 위해 아시아의 지역과 아시아인들의, 아시아 지역 교회와 부합하는 지도력 스타일을 향상시키기를 원했다.[194] 그리고 기초 교회 공동체의 성찬례를 연구하기를 원했다.[195]

1979년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아시아 주교회의는 시간이 없어 총회에 상정하지는 못했지만, 『사명에 대한 국제회의: 워크숍 대표자 공동선언』에서 기초 교회 공동체와 지역 교회의 사목의 관계에 대해 말했다. 교회의 지역화와 구체화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뿌리에서 생겨난 교회 공동체로서 교회의 온전히 그리고 눈에 보이게 드러낸 기초 그리스도교 공동체 안에서 발견된다고 보았다.[196]

1982년 태국 방콕에서 열린 제3차 아시아 주교회의는 『교회-아시아의 신앙 공동체』란 주제로 총회 최종 문서에서 그리스도인들의 사랑을 나누는 친교인 교회를 교회의 새로운 존재 양식으로 설명했다.[197] 주교들은 작은 교회 공동체들이 교회 생활의 전반에 걸쳐 더 확산되고 중점적으로 돌보아지고, 그들의 사제들과 주교들과 밀접한 일치를 이름으로써 모든 믿는 이들이 복음화와 사회봉사, 대화 그리고 일치 운동과 상호 종교적인 협력을 통하여 사회에 문을 열고 사회에까지 뻗쳐 나가도록 규정지어져야 한다.”고 말했다.[198] 

1990년 인도네시아 반둥에서 열린 제5차 아시아 주교회의는 『삼천년기를 향해 함께하는 여정』이라는 주제로 총회 최종문서에서 아시아 교회의 평신도, 수도자 그리고 성직자들은 서로 자매애와 형제애로 뭉쳐 1990년대 교회의 새로운 존재 양식으로서 공동체들의 친교’(communion of communities: 공동체들로 이루어진 공동체)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거기에서 그들은 함께 기도하고 예수님의 복음을 함께 나누며, 그들의 매 일상의 삶 속에서 한 마음과 한 정신으로 일치하여 서로를 지원하며 함께 그것을 실현해야 한다.”고 말했다.[199] 모든 이가 참여하는 교회는 성령께서 그들에게 은사를 내려주셔서 교회가 건설되었으며 사명을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활성화시켜야 한다. 부활하신 주님을 증거하는 교회는 사람들의 마음 안에 지어져야 하며 모든 이의 총체적인 해방을 향하여 다른 이들과 대화해야 한다. 교회는 변화하는 누룩과 예언적인 표징으로 이미 시작했지만 아직 오지 않은 하느님 나라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200]

교회의 새로운 존재 양식의 중심에 계시는 성령께서는 신자들과 전체 교회 공동체가 진실한 영성인 성령 가득한 삶을 살도록 인도하시고 이끄신다.[201] 아시아 주교들은 교회의 새로운 존재 양식의 영성이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의 영성, 특별히 아시아 문화의 맥락에서 조화의 영성이라고 한다.

 

교회의 새로운 존재 양식의 영성은 주님께 온전히 의탁하는 이들의 영성이다. 그것은 힘없고 버림받는 자들의 영성이다. 포기와 단순함, 그리고 모두와 함께 특별히 가난하고 약하고 불쌍한 이들과 연대하고자 하는 연민의 정비폭력주의의 행동방식을 향상시키는 덕-들은 우리가 필요로 하는 영성의 중요한 단면들이며, 아시아의 문화와 깊이 공감하는 복음의 가치들이다. 그것은 조화의 영성이다. 그것은 우리 아시아인들의 세계에 부조화스러운 것들에 도전하는 것처럼 하느님과 긴밀하게 친교를 맺으며, 그분의 성령께 순응하면서 예수님을 따르라고 말하고 있다. 그것은 우리가 외부 조직과 힘 또는 세속적 효과로부터 단순함과 겸손함 그리고 봉사의 모습으로 나아가도록 요청하고 있다.[202]

 

아시아 주교들은 이러한 영성의 깊이를 교회 일치 운동과 상호 종교적 대화 차원으로 연결시킨다.[203]

총회 기간 중에 아시아 주교들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룸코 연구소의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소공동체) 사목 모형과 프로그램을 소개 받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아시아 주교들은 공동체들의 친교참여하는 교회의 비전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으로 룸코 연구소의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소공동체) 사목 모형을 도입하게 되었다.[204]

1993년 아시아의 주교들은 아시아인들의 사고와 기도 그리고 아시아인들의 독특한 그리스도 체험을 공유할 연구소의 필요성을 느꼈다.[205] 주교들은 ‘1990년대 교회의 새로운 존재 양식을 증진시키기 위한 통합 양성을 위해 아시아의 통합 사목적 접근(Asian Integral Pastoral Approach: AsIPA)’을 설정했다. 이 접근은 룸코의 양성체험을 나누고, 아시아에 어떻게 정착시킬 것인가를 모색하였다. 복음 나눔을 통해 체험된 말씀-중심의 공동체는 하느님 구원의 표징이요 도구다. 주교들은 아시파AsIPA란 단어를 아시아에 교회의 새로운 존재 양식을 향한 과정을 위한 시도로 삼고 있다. “비전은 참여하는 교회이다. 전체 신자들의 공동체는 아시아의 복합적인 상황 안에서 그리스도의 통합적 세계관과 사명을 적극적으로 공유할 수 있다.”[206]

아시아 주교들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본당과 교구 안의 친교와 참여를 증진시키는 효과적인 방법으로서, 그리고 복음화를 위한 진정한 힘으로서 기초 교회 공동체들의 가치를 강조하였습니다…. 결과적으로 사랑의 문화의 새로운 표현인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려는 확고한 출발점인 것입니다”(『아시아 교회』 25)라고 하신 말씀과 2004년 한국 대전에서 『생명 문화를 지향하는 아시아 가정』이라는 주제로 열린 제8차 아시아 주교회의 총회의 최종문서[207]에서 사랑과 연대의 세계화라는 구절을 인용하여 이러한 시도를 재확인했다.[208] 실제로 경쟁 사회에서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소공동체)를 통해 복음화된 가정은 이웃을 복음화하여야 하고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소공동체) 활동을 통하여 피가 아니라 세례성사를 통해 초월적으로 연결되고, 이웃 가정에 다가가 어린아이들에게 복음을 전수하여 생명의 문화에 기여하는 사회의 누룩이 되어야 한다.[209]

 

2) 아시아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소공동체)의 영성인 조화의 영성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문화의 기초인 논어와 중용에는 모든 권력과 영광 그리고 영예가 군자(지도자, 아버지, 정부, )에게 집중되어 있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아시아 사회체제가 중앙 집권적이며, 독재적이며, 강력한 가부장제라고 볼 수도 있다. 그래서 『논어』나 『중용』에서 그렇게 중요하게 군자(사목자)가 내적 정신 수양을 통해 백성들의 윤리적인 본보기가 되라고 강조한다. 논어와 중용에서 말하는 내용은 그 대상이 단순히 전체 공동체를 향한 가르침이 아니라, 도덕적으로 완전한 인격을 지녀야할 개인에 대한 것이다. 그러나 그 대상이 백성들을 다스리는 것을 전제로 한다는 면에서, 그것은 그냥 한 개인에 대한 가르침이 아니라, 공동체를 책임지며 양성하는 지도자인 개인에 관한 가르침이다. 논어와 중용의 가르침은 직무와 신원을 구분하지 않으며, 백성들을 돌봐야 하는 직무와 그 직무를 수행하도록 신분지어진 신원이 통합된 한 지도자에 대한 가르침이다.

그러므로 아시아 사회는 지도자들에게 어느 한 쪽으로 기울거나, 그 어느 한쪽에 특권을 주지 말고, 윤리적인 최상의 덕목으로서 중용(중도)을 지킬 것을 요구한다. 중용에 많이 나오는 말은 아니지만, 유교와 불교에 바탕을 두고 있는 한국 문화(한국 교회)는 지도자들에게 이렇게 가르친다. 백성들로부터 모든 권한을 받은 지도자는 백성들의 갈망과 요청을 겸손하게 듣고,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듣기 위해 자신의 의지를 절제하고, 백성들에게 필요한 것을 채우기 위해 백성들과 함께 모색하고 수행해 나가야 한다.

한 가지 더 기억해야 할 것은 복음의 전달자요, 선교사요, 주임 사제요, 수도자요, 평신도 지도자로서 군자가 지녀야 할 도와 개념, 사상, , 예와 인격이 다른 어떤 가르침과 주의보다 앞선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그의 가르침을 그의 삶에서 바라보고, 그 사람이 자신의 말을 얼마나 지키고 채우는가에 따라 그의 인격을 평가하고, 또 그를 신뢰하고 따를 것인가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아시아 주교들은 교회의 새로운 존재 양식인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소공동체)의 영성이 힘없는 사람들의 영성이며 특별히 아시아 문화와 연관하여 조화의 영성이라고 밝혔다.[210] 1988년에는 가톨릭 신자가 팔천사백삼십만 명이었던 반면에, 1997년에는 거의 35억 아시아인 중의 일억 오백이십만 명으로 전체 인구 중 2.9%를 차지하였다(가톨릭 신자 이천구십만 명 증가).[211] 주교들은 아시아 문화와 깊이 공명하는 복음의 가치는 조화의 영성이라고 선언했다. 조화의 영성은 타종교와 타문화를 적이나 악으로 간주하는 관계뿐만 아니라 존재 자체에 대해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실제로 아시아인은 다양한 종교 속에 살고 있다. 특별히 아시아의 어떤 지역에서는 한 종교의 신자로 산다는 것이 아주 위험하기까지 하다. 왜냐하면 그들은 21세기인 지금에도 다른 종교인들에 의해 박해와 살인의 위협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아시아인들이 외국인들에게 종교적인 관용과 다른 이들과의 평화로운 공존이 가능한 것처럼 보이더라도, 이것이 아시아의 현실이다.[212] 아시아 주교들은 한 종교인의 신자로 산다는 것이 아주 어렵고 위험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왜냐하면 종교는 현실에서 군사력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평화로운 삶을 위해서라면, 아시아인은 상호 인정의 바탕 위에 대화해야 한다. 몇 몇 아시아인은 위험을 느끼지 못한다 하더라도, 매일 다른 문화와 종교로부터 구분과 차별을 접하며 살고 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이자 아시아인으로서 산다. 그들은 그들을 둘러싼 세상과는 관계없이 그리스도인으로만 살 수 없다. 조화는 나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존재케 한다. 즉 어떻게 모든 상대자들과 함께 살 수 있는가에 관한 것이다. 각자의 양보에 의해 상호 인정과 존중을 통해 존재할 수 있다. 이 존중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말처럼 삶에 대한 심오한 문제들에 대한 답을 찾고 있는 인간에 대한 존중,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인간 안에서 이루시는 성령의 활동에 대한 존중[213]일 뿐만 아니라 그러한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종교 자체를 존중해야 할 것이다.

유다교, 그리스도교, 유교, 그리고 힌두교 등의 아시아 종교들은 자비와 용서뿐만 아니라 형평과 조화를 의미하는 중화, 중용 그리고 중도의 사상과 원칙들이 있다. 아시아의 형평은 어느 종교냐가 아니라 조화롭게 공존하고, 옳고 그르냐가 아니라 조화롭게 함께 사는 것, 진리냐 거짓이냐가 아니라 위아래의 상호이해를 바탕으로 한 우열이다. 그것은 또한 아시아의 맥락 안에서 각 종교가 지니고 있는 가르침이기도 하다. 이것은 주님의 말씀을 통해서도 이해될 수 있다. “’보라, 여기에 있다.’ 또는 저기에 있다.’ 하고 사람들이 말하지도 않을 것이다. 보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루가 17,21) 이 방법은 나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바탕으로 모든 사람들을 끌어안는 것이다. 주님의 사랑으로 모든 이를 껴안는 것은 가능하다. 그것은 창세기 13장에 1절부터 18절에 아브람과 롯이 그들의 종들이 서로 싸워 떨어져 살아야 할 때 각자 살 땅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나타난다. “네가 왼쪽으로 가면 나는 오른쪽으로 가고, 네가 오른 쪽으로 가면 나는 왼쪽으로 가겠다.”(창세 13,9). 아브람은 롯을 사랑했다. 그래서 아브람은 땅을 선택하는 데 있어 롯에게 우선권을 주었다. 성경에 나온 땅 선택 방법은 다양하고 복잡한 아시아의 상황에서 싸움 없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한 방법으로 간주될 수 있다.

만약 아시아인의 조화 영성이 아시아인의 문화와 적절하게 부응한다면, 가톨릭 교회는 인간 구원을 위해 애쓰는 다른 종교들과 함께 일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것은 타종교인들에게 내가 너를 존중하기는 하지만 내가 궁극적인 진리를 가지고 있으니 너는 나를 따라오라고 요구하는 큰 형님 같은 자세에서, 진리는 존재 자체로서만이 아니라 그것을 온전히 실현시켜야만 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 함께 진리를 구현해 나아가자.”고 타종교인들에게 제시하고 협조하는 동료 형제의 자세로 변화되어야 할 것이다.

 

 

 

 

 

3장 한국 천주교회 소공동체

 

 

 

 

 

이 장에서는 서울대교구가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이하 소공동체)를 도입하는 배경과 과정 그리고 결과와 과제를 살펴볼 것이다. 서울대교구가 소공동체 운동을 채택하게 된 이유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주교, 신부, 수도자, 신자, 모든 교회 구성원들이 함께 참여하는 친교의 교회로서 복음을 선포하고 사회봉사를 통해 실현함으로써 교회의 본질과 본성을 회복하고 교회와 현대 세계를 복음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서울대교구에 이어 한국 천주교회에 소공동체 운동이 퍼져나갔다.

소공동체 운동을 도입한 서울대교구장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의 후임인 정진석 니콜라오 추기경도 소공동체 운동을 이어 전개하였다. 정 추기경은 의사 결정 과정과 관련하여 시노드 후속 문서 『희망을 열고 하느님께』에서 구역장 회의와 본당 사목 평의회에 대해 말한다. “본당 사목구 주임은 구역장 회의에서 본당의 현안들을 논의하고, 본당 사목 평의회의 도움을 받는 것이 바람직하겠습니다

 

 

 

1. 서울대교구 소공동체 도입 배경

1984년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 사목위원회 사회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천주교회 신자들은 개인적인 성사 생활 그리고 교회내의 활동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고 밝혔다. 많은 신자들이 개인적인 믿음과 구원 그리고 미사와 성사 생활에 만족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214] 사회정의를 위해 활동하는 것이 교회의 사명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신자들이 많았다.[215] 서울대교구는 세속화와 물질주의, 교회의 불공정한 현상 그리고 신자들의 개인 신심과 성직자의 권위주의에서 온 결과라고 받아들였다.[216]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의 가치를 따라 살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신자들이 믿음과 행동을 구분하여 살고 있으며, 교회가 세계의 구원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 살고 있다는 부지중의 의식에서 비롯된 문제라는 것을 깊이 되새겼다.

1968년부터 1998년까지 서울대교구장으로 봉직했던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은 복음의 가치로 신자들의 삶을 비추어 봄으로써 교회 공동체의 쇄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의 통계를 보자면 신자 증가율이 1980년에 2,600, 1980년에는 3,700, 1990년에는 6,800명이 증가했고, 그들중 1/4이 쉬는 신자라고 발표했다.[217]

김 추기경은 『사목교서』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오늘의 한국 천주교회는 규모와 숫적으로 엄청난 성장을 기록했다. 그러나 본당들의 기록적인 외적 성장에 비해, 우리 교회는 복음 정신에 기초한 친교와 봉사의 공동체 모습을 상실했다. 다른 말로 본당의 외적 성장에 비추어볼 때, 사목자들이 본당 신자들과 개인적인 면담을 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신자들이 자신이 본당의 신자라는 것과 신자들끼리 가족과 같은 연대성을 간직하기가 아주 어려워졌다…. 우리가 믿음과 삶의 구분을 극복하지 못했고, 온전히 복음화되지 않았으며, 점점 더 비인간화와 물질주의와 세속주의로 변화되어가는 이 사회를 복음화할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교회 공동체인 우리는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부패를 정화할 사명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가 가진 능력은 너무 미소하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몸인 우리 교회가 우리 안에 주님의 삶을 간직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218]

 

그는 『현대의 복음선교』를 인용하여 복음화를 설명한다.[219] 교회의 복음화 활동은 단순히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설교하고, 교리를 가르치고, 세례를 주고 기타 다른 성사를 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220] 교회가 선포하는 메시지의 신적 능력으로 모든 개인과 집단의 양심, 그들이 관계하고 있는 활동, 그들의 생활과 구체적인 환경을 변혁시키는 것이다.[221] 즉 하느님의 말씀과 구원 계획에 상반되는 인간의 판단 기준, 가치관, 관심의 초점, 사상의 동향, 사상의 원천, 생활 양식 등을 복음의 힘으로 역전시키고 바로잡는 것이다.[222] 그것은 사회에서 사람들을 거룩하다고 간주되는 교회에 데려오는 것이 아니라, 복음의 힘으로 사회 자체를 복음화하는 복음화 방법론의 변화이다.

1993년 김 추기경은 서울대교구에서 그 본당들에 소공동체를 세워야 한다고 강하게 역설했다. 이것은 본당의 평균 신자수가 7,000명이 넘는 경우에 공동체 체험을 하기가 아주 어렵다는 데서 기인한다고 말했다.[223] 그는 서울대교구에 소공동체를 건설하는 목적이 복음화를 이루기 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224]

그는 『교회의 선교사명』[225]에서 제시한 복음화의 한 형태인 소공동체를 통해 이 체험을 성취할 수 있다고 확신햇다. 그는 서울대교구 신자들에게 교구를 쇄신하고자 하는 여정에 동참하도록 요청했다.[226] 서울대교구는 2000년대 복음화를 위한 소공동체 사목 운동을 시작했다. 그것은 사목적인 목적과 방법으로 소공동체를 촉진하여 교회를 쇄신하고자 한 것이며, 그것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채택된 친교의 교회론을 바탕으로 세워진 것이며, 1984년 『한국 천주교회 사목 위원회』의 주제 중의 하나였다.[227]

김 추기경은 1990년 제5차 아시아 주교회의 총회에 참석한 서울대교구 보좌 주교 강우일 베드로를 통해, 총회 최종 문서에 나타난 교회론에 의거하여 소공동체 건설의 필요성을 역설했다.[228] 인도네시아 반둥에서 열린 총회에서는 『아시아의 1990년대 교회의 새로운 존재 양식』이라는 주제하에 공동체들의 친교 교회론을 채택했다. 총회 최종 문서는 이렇게 선포한다.

 

아시아 교회의 평신도, 수도자 그리고 성직자들은 서로 자매애와 형제애로 뭉쳐 1990년대에 교회의 새로운 존재 양식으로서 공동체들로 이루어진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들은 부활하신 주님의 준성사적 현존으로 초대될 것이며, 신자들을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소공동체)(, 이웃 조직, 기초 교회 공동체와 계약공동체들)로 이끌 것이다. 거기에서 그들은 함께 기도하고 예수님의 복음을 함께 나누며, 그들의 매 일상의 삶 속에서 한마음과 한 정신으로 일치하여 서로를 지원하며 함께 그것을 실현해야 한다.[229]

 

 

 

2. 서울대교구 소공동체 도입 과정

이미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서울대교구에 도입된 소공동체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에 따라 구원의 도구로서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맺어지는 친교의 교회 모형에 바탕을 둔 것이다.[230] 소공동체의 요소들은 그들의 가정에서 모이고, 복음을 나누고, 신앙으로 함께 일하며, 전체 교회와 일치하는 것이다. 2000년대 복음화를 향한 소공동체 사목의 주안점은 말씀 중심의 친교 공동체’, ‘사회 복음화의 사명 실천을 하는 것이다. 서울대교구는 교회의 새로운 모델을 공동체들로 이루어진 공동체로 보았다. 서울대교구는 소공동체를 도입하면서,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Small Christian Community소공동체, ‘공동체들의 친교’Communion of Communities공동체들로 이루어진 공동체로 번역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서울대교구는 2000년대 복음화를 향한 사목의 세 단계를 설정했는데, 첫 단계는 1992년부터 1994년까지 사목정책 모색 및 소공동체 도입 시기, 둘째 단계는 1995년부터 1997년까지 소공동체 수용 시기, 셋째 단계는 1998년부터 2000년까지 소공동체 정착시기다.[231] 여기서는 서울대교구 사목 정책 모색(1992-1993)과 소공동체 도입(1994), 소공동체 수용(1995-1997) 순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1) 서울대교구 사목 정책 모색(1992-1993)

1992년 서울대교구는 사제, 수도자, 평신도 지도자들을 통해 한국 찬주교회의 문제점들과 도전들을 조사했다.[232] 이 연구 보고서 결과로 서울대교구는 『2000년대 복음화를 향한 본당 사목 구조에 관하여』라는 공식 문서를 통해 2000년대 복음화를 위하여 각 본당에 사목 업무와 구조를 효과적으로 실현하도록 요청했다.[233] 교구에는 “2000년대 복음화 사무국, 각 본당은 복음화 위원회를 신설하여 본당의 문제점을 조사하고 사목 위원회를 열었다. 두 명의 사제와 두 명의 수도자들이 룸코 세미나에 참석했고, 1992년 룸꼬 연구소의 오스왈드 힘머 신부Fr. Oswald Hirmer가 와서 교구 복음화 위원회 위원들과 사제 평의회원들을 가르쳤다. 이 교육 후에 서울대교구장은 소공동체 건설을 통한 복음화를 확신했다.[234]

서울대교구장은 사목 자료들과 토착화한 프로그램을 모으고, 사목 정보를 분석하고, 2000년대 복음화 사무국 산하에 소공동체의 평신도 지도자들을 위한 교육자료들을 만들 복음화 연구소를 신설했다.[235] 서울대교구는 2000년대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지를 찾은 것이다.[236]

       

2) 소공동체 도입(1994)

서울대교구는 『복음화와 소공동체』라는 주제로 두 번의 교육을 실행했다. 1994 10월에 7 8일의 연수가 힘머 신부에 의해 진행되었다. 그 주제들은 룸코 연구소의 교회의 새로운 모습’, ‘소공동체’, ‘복음 나누기 방법들’, ‘본당 성장 5단계’, ‘새 교리서-함께하는 여정등 이었다.

1994년 이후, 복음화 사무국과 평신도 사목국은 구역장과 반장 등 평신도 지도자들을 양성시켰다. 이 기간은 서울대교구가 소공동체를 받아들이는 과정이었다.[237]

      

3) 소공동체 수용(1995-1997)

서울대교구는 이 시기에 소공동체들로 이루어진 공동체인 새 교회상을 설정했다. 1996년에 많은 평신도 지도자들을 위한 세미나가 있었다. 교육의 내용은 교회론, 소공동체, 복음 나누기, 한국 천주교회 역사, 평신도 소공동체 지도자들의 역할과 신앙생활, 성령 안의 삶에 대한 것이었다. 2000년대 복음화 사무국의 자료에 의하면, 1993년에는 세 번에 걸쳐 799명이, 1994년에는 6번에 걸쳐 1,924명이, 1995년에는 네 번에 걸쳐 1,258명이, 1996년에는 여섯 번에 걸쳐 1,937명이 교육을 받았다. 이 교육을 통해 소공동체 지도자들의 이해와 의식이 깃들기 시작했으며, 평신도 지도자들이 교회의 직무와 사명을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고, 복음 나누기를 통해 소공동체의 활성화의 기초가 되었다.[238] 그리고 한국 천주교회의 각 교구에 소공동체가 도입되었다. [239]

 

 

 

3. 소공동체 운동의 결과(1998-)

서울대교구는 1992년부터 2000년대 복음화를 위한 운동에 심혈을 기울였다. 사제들은 신자들이 복음을 나누면서 기쁨을 얻고, 그 말씀에 따라 헌신적으로 살게 되었으며, 복음적인 회개의 과정을 밟게 되었고, 평신도들이 능동적으로 교회 활동에 참여하게 되었다고 평가했다.[240] 교회는 말씀을 기반으로 신앙을 증진시킬 수 있었고, 평신도 사도직이 활성화되었다. 그리고 교회가 평신도 사도직과 봉사하는 새 지도력를 통해 사회 현실 속에 새롭게 다가섰다. 가장 좋은 결과는 믿음을 증진시키고 말씀을 중심으로 한 평신도 사도직이 활성화되었다는 점이다.[241]

신학자 차동엽은 이렇게 말했다. 첫 번째, 평신도 지도자들이 소공동체 안에서 양성되었고, 두 번째, 소공동체는 말씀이 그들 가운데 살아계시는 믿음의 공동체로 성장해 나갔으며, 세 번째, 반모임의 숫자가 한 달에 한 번에서 한 주에 한 번으로 증가되었고, 네 번째, 남성 신자들의 소공동체 참석율이 증가하였으며, 다섯 번째, 복음 나누기와 기도에 소극적이던 신자들이 적극적으로 변화되었으며, 여섯 번째, 전례와 본당 활동에 신자들의 참여가 능동적으로 변화되었고, 일곱 번째, 본당 사목을 위한 신자들의 조직과 동원이 아주 쉬워졌으며, 여덟 번째, 소공동체 운동이 본당 차원만이 아니라 교구 차원의 사목정책을 세우는 통합적인 접근 방법이 되었다.[242]

1987년과 1998년에 가톨릭 신문사에서 『전체 신자의 종교 의식과 신자 생활』에 대한 두 번의 설문조사가 있었다. 두 번의 설문조사는 차이가 있는데, 첫 번째 1987년에 진행된 설문조사는 한국 천주교회의 내적 위기에 대한 증세가 드러나기 시작했던 시기였다. 당시 구역 반 모임의 신자 참석율이 1987년에는 49.2%였고, 1998년에는 46.5%였다. ‘더 참석하는 이들의 비율이 21.7%에서 24.2%로 늘었던 반면에, ‘덜 참석하는 이들의 비율이 24.3%에서 17.7%로 줄어들었고, ‘적극적으로 참석하는 이들의 비율이 27.5%에서 22.3%로 줄어들었고, ‘최소한 참석하는 이들의 비율이 26.5%에서 35.9%로 증가하였다.

이 외에도 교구의 지원, 주임 사제의 투신, 소공동체 지도자들의 자질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소공동체 운동을 평가하였다. 일반적으로 구역 반모임에 참석하는 여성의 비율은 40대 이상이며, 저학력자이며, 소규모 마을의 거주자들이며, 가정주부, 실업자, 농부, 어부, 산림업자, 성인이 되어 세례 받은 사람, 자발적으로 입교한 사람, 단체에 속한 사람들이 높았다. 그러나 남성의 참석 비율은 이십에서 삼십대 그리고 대학원 이상 졸업자, 커다란 도시의 시민들, 유아세례를 받은 신자들과 단체에 속하지 않은 신자들의 수가 낮았다.  그리고 저학력자와 노부인들의 참석율은 계속되었다. 이 조사 보고서는 첫째, 구역 반 모임의 평균 참석율 감소 상황은 소공동체를 활성화시키는 본당의 수가 적다는 사실로 설명될 수 있다. 둘째, 구역 반모임의 능동적인 참여층이 편향되고 제한적이라는 양상이 새로운 과제다.[243]

2003년 서울대교구 시노드 후속 문서, 『희망을 열고 하느님께』에서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니콜라오 추기경은 교회의 모든 구성원들, 주교, 사제, 수도자, 신자들이 성령의 도우심으로 다 함께 참여하는 친교의 교회로서 복음을 선포하고 그 복음을 실현하며 사회봉사를 통해 교회의 근본과 본성을 회복하고 교회와 현 세상을 복음화해야 한다고 밝힘으로써 소공동체 운동이 지속적으로 발전해 나가도록 했다.

 

 

 

4. 소공동체 운동의 과제

1) 일반 과제

1992년 이래, 서울대교구는 2000년대 복음화를 위한 소공동체 운동에 전력을 기울였다. 교회에 복음적인 회심이 많이 일어났기는 했지만, 많은 사제들은 소공동체 운동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리고 활동 단체에 참여한 본당 신자들의 수는 평균 10%인 반면, 51.2%의 평신도들이 소공동체에 능동적이고 정규적으로 참여하고 있다.[244] 그런데 한 본당에서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소공동체를 건설하던 주임 사제가 5년 후 임기가 차서 다른 본당으로 이임하고, 소공동체에 열심치 않는 다음 주임 사제가 소공동체에 관심과 주의를 집중해 주지 않으면, 소공동체는 약해지고 퇴색하기도 한다. 

많은 사제, 전문 기관, 그리고 활동 단체들이 소공동체 운동에 반발했었다. 왜냐하면 이 소공동체 사목 운동을 시작할 때 교구장이 관례처럼 위에서 아래로 명령하는 방식으로 내려왔기 때문이다. 교회의 많은 신학자들도 자기 교회의 미래를 결정하는 데 자신들의 의견을 반영시키지 못해 자신들이 무시되고 소외되었다고 느꼈다. 많은 주임 사제들이 그들이 평생을 걸쳐 자신의 사제직으로 복음과 교회를 위해 투신해왔던 지난 사목 수행이 무의미하다고 느꼈기 때문에 저항했다. 왜냐하면 교구 당직자들이 소공동체 운동만이 그리스도께 가는 교회의 유일한 길이라고 주장했고, 또 본당의 주임 사제들은 소공동체라는 새로운 짐이 하나 더 늘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245] 전문 기관들은 2000년대를 향한 복음화라고 하지만 정작 2000년대 사회 환경과 조건에 대한 깊고 충분한 고려가 없었다고 지적했다. 활동 단체들은 본당과 교회에는 소공동체뿐만 아니라 활동 단체들도 있다고 불평했다. 몇몇 평신도들은 소공동체 모임을 할 때 평안한 분위기에서 구성원들과 좀 더 친교를 누리도록 배려해야 하는데 너무 형식적이며 복음을 지나치게 강조한다고 말했다. 소공동체를 바라보는 이들 중에는 복음을 나누기만 하고 실제로 행동에 옮기지는 않는다고 지적한 이들도 있다.

 

2) 의사 결정 과정에 있어서의 갈등

서울대교구 사목 정책인 소공동체 운동은 본당 사목과 본당 사목 평의회 안에서 소공동체와 단체 사이에 긴장과 갈등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또한 본당의 주요 사안들이 사목 평의회에서 다루어져야 하는지 아니면 구역장 회의에서 다루어져야 하는지에 대한 갈등도 생겨났다.[246]

긴장과 갈등은 누가 주임 사제와 함께 사목정책을 결정할 것인가, 누가 본당 사목과 본당의 제반 사항을 주도하고 조정할 것인가, 어떻게 본당의 소공동체와 단체들 사이의 업무와 지도자의 역할과 자리 그리고 활동 시간이 중복되는 것을 결정할 것인가 등이다. 소공동체 지도자들이거나 단체 지도자들이거나 그들은 모두 사제와 같은 교회 공직자들에게서 자신들의 노력을 인정받고 싶어하고, 그들의 의견이 본당 사목의 의사 결정 과정에 반영되기를 원한다.

어떻게 소공동체와 단체를 비롯한 본당 신자 모두가 친교를 통해 공동체로 이루어진 공동체로 거듭날 것인가 하는가와 어떻게 성령의 도우심으로 이 땅에 하늘나라를 완성시킬 것인가 하는 것이 새 천년기 한국 교회의 과제이다.

 

3) 사목 평의회와 구역장 회의

서울대교구 시노드 후속 교구장 교서 『희망을 안고 하느님께』교회 운영편에서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추기경은 본당 사목구는 구체적인 하느님 백성이 살고 있는 삶의 현장이며, 그 지역 사회 복음화를 위한 사목의 중심이고, 친교의 공동체로서의 교회상을 구현하는 기초입니다. 이러한 본당 사목구는 하느님의 가정, 성령으로 불타는 공동체로서 끊임없는 쇄신을 통하여 교회의 본질을 구현하기를 요청받고 있습니다.”[247]라고 말하면서, 능동적인 참여 구조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본당 사목구는 신자들이 복음화를 위한 교회의 사명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모든 신자들에게서 균형 있는 의견을 수렴하고 신자들이 능동적인 참여를 할 수 있는 구조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본당 사목구 주임은 본당의 기초인 구역과 반이 능동적이고 자율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배려하며, 자질과 능력이 있고 해당 구역 신자들의 의견을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을 구역장으로 임명하여야 합니다. 또한, 본당 사목구 주임은 구역장 회의에서 본당의 현안들을 논의하고, 본당 사목 평의회의 도움을 받는 것이 바람직하겠습니다. 그리고 본당 사목구의 전반적인 구조와 조직의 개편에 대해서는 좀더 연구하고 논의하여야 하겠습니다.[248]

 

본당 신자들의 자율적 참여와 활동으로 생동감 넘치는 초대교회 공동체 모습을 구현하기 위하여 본당 운영은 친교의 공동체로서의 교회상을 구현하고 지역 사회 복음화를 이루는 데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249] 라고 말했다.

그리고 교회법 536조를 참조하여 사목 평의회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본당 사목 평의회는 본당 사목구 주임이 주재하며, 평의회 회원은 자기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본당 현안들에 대하여 구체적 방안을 제시하여 사목구 주임이 효율적으로 사목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자문합니다.”[250] 또한 사목 평의회와 아울러 본당의 구역, 반 소공동체 지도자들의 모임인 구역장 회의에 대해 특별히 언급했다. “구역장 회의는 구역을 대표하는 구역장들로 구성하며, 본당 사목구 주임과 함께 본당의 미래를 위한 사목적 예지와 대안을 공유하며, 정기적인 회의를 통하여 본당의 사목적 현안을 논의하고, 구역과 반의 자율성과 신자들의 능동적 참여를 촉진합니다.”[251]

주임 사제는 신자들의 창의적이고 자율적인 신앙의 활동들이 자라나게 하고, 지역사회를 복음화하는 본당 공동체의 기초 단위[252]인 구역 반 소공동체 모임과 교회법 제225조와 평신도 사도직에 관한 교령 2항을 참조하여 사도직 단체와 신심 단체들의 균형 있는 발전과 성장을 할 수 있도록 사목적 배려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253]또한, 본당 안에서 구역 반 소공동체와 다양한 사도직 단체들이 상호 보완적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소공동체와 각 단체들의 성격과 관계를 명확히 구분하는 지침을 마련하도록 하겠습니다.”[254]

이 교서에 드러난 구역장 회의는 본당의 미래를 위한 사목적 예지와 대안을 공유하며, 정기적인 회의를 통하여 본당의 사목적 현안을 논의하고, 구역과 반의 자율성과 신자들의 능동적인 참여를 촉진하는 회의다. 그리고 사목 평의회와의 관계에서는 구역장 회의가 본당의 사목적 현안을 논의하는 데 있어 본당 사목 평의회의 도움을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그리고 주임 사제는 소공동체와 사도직 단체들의 균형 있는 발전과 성장을 할 수 있도록 사목적 배려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본당 사목구의 전반적인 구조와 조직의 개편에 대해서는 좀 더 연구하고 논의하여야 하고, 소공동체와 각 단체들의 성격과 관계를 명확히 구분하는 지침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현실적인 면에서 『교회법』과 『희망을 안고 하느님께』에 따라, 사목 평의회와 구역장 회의를 주임 사제가 운영의 묘를 살려 별도로 운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책임자 한 개인의 역량에만 의존한다는 것은 조직이 너무 불안정하므로 구조화하고 제도화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다. 또는 사목 평의회와 구역장 회의를 결합한 제3의 구조를 신설할 수도 있다. 그런가 하면, 지금까지 유지해오던 사목 평의회의 구조를 변경, 보완하여 친교 공동체인 교회의 모형을 구현하기 위한 사목 평의회의 새 모형을 모색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고 현실적이기도 하다.

 

 

 

 

 

4장 본당 사목의 의사 결정 과정

 

 

 

 

 

이 장에서는 일러두기에서 밝힌 바와 같이 본당 사목의 의사 결정 과정을 결정하는 대화 상대자를 실천 신학적 방법론에 의거하여 세 대화 상대자를 둔다. 대화 상대자는,

첫째, 한국 천주교회 경험,

둘째, 한국 문화,

셋째, 신학 전승과 신학적 가르침

이 세 가지이다. 이 세 대화 상대자들은 협력적인 논의를 하기 위한 좋은 자료가 될 것이다.

경험과 문화 그리고 전승의 세 대화 상대자와 함께 잘 경청하고 의사 결정 과정을 진행시킴으로써 어떻게 하면 교회를 친교의 공동체로 만들 것인가에 대해 논의할 것이다. 각 대화 상대자와 논의할 요소는 다음의 네 가지이다.

첫째, 무엇이 적절한 의사 결정 과정인가?

둘째, 누가 의사 결정 과정에 참여하는가?

셋째, 어떻게 의사 결정 과정을 풀어 갈 것인가?

넷째, 본당에서 성직자와 수도자 그리고 평신도 지도자 사이의 의사 결정 과정을 가능하게 하고 불가능 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

각 요소들을 경험과 문화 그리고 전승의 세 대화 상대자들과 협력한다. 이 연구는 어떻게 하면 사목자가 의사 결정을 진행시켜 나갈 것인지 도울 것이다.

 

 

 

1. 적절한 의사 결정 방식

이 항에서는 경험과 문화 그리고 전승의 세 대화 상대자로부터 연구한 결과로 적절한 의사 결정 과정이 무엇인가에 대해 논의한다.

무엇이 적절한 의사 결정 방식인가?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그리고 각자 자기가 원하는 것을 이루는 방식이 있다. 사람이 모이면 그 원의와 그 원의를 실현하는 방식도 여러 가지다.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의 바램을 표현하는 형식과 그 바람을 듣고 모으는 형식 그리고 어떻게 그 바람들을 실현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형식이 필요하다. 그것이 만장일치제이든, 과반수이든, 다수결이든 또는 또 다른 어떤 형식의 의사결정이든.

한국 천주교회 경험에서 보면, 소공동체가 도입된 이후에 본당에서 소공동체와 단체 중에 그리고 사목 평의회와 구역장 회의 중에 누가 주임 사제와 함께 본당의 사목적 현안을 나눌 것인가를 두고 갈등과 긴장이 있었다. 그리고 의사 결정 과정을 밝히는 『2007년 본당 사목 의사 결정 과정에 대한 설문조사』[255]가 있었는데, 거기서는 구역, 반원이 구역 반모임, 구역 반장 모임, 총 구역장, 본당 사목 평의회 순으로 의사 결정 과정을 거치며, 동시에 의사 결정 과정에 주임 사제는 담당 사제와 수도자와 논의한다고 밝혔다.

한국 문화에서 보면, 과거에는 많은 사람들의 의견들을 수렴하여 왕이나 책임자가 최종 결정을 내리고 그 밑의 사람들이 그 결정을 따르게 된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는 하부 조직에 결정 권한과 실행을 위임하거나, 적어도 담당 실무자들과 의논하여 결정한다.

교회 전승과 신학적 가르침에 따르면, 룸코 소공동체 교회론의 의사 결정을 내리는 방식은 만장일치제다. 만일 투표로 결정을 내리게 되면, 공동체가 찬성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으로 양분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투표의 형식을 통해 비록 하나의 결정이 선택은 되었어도, 선택되지 않은 소수 쪽에서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을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교회는 이익을 추구하는 조직이 아니다. 그리고 교회의 일은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교회와 교회 사업의 운영과 관리고 또 다른 하나는 사람을 돌보는 사목이다. 특별히 사람들을 돌보는 사목은 그렇게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 다 같아질 수는 없어도, 의견을 하나로 모을 때까지 그리고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고 배려하는 가운데에서 이해 당사자 모두가 공감할 때까지 지속적인 대화와 협력을 모색하며 기다리는 것이 좋다. 그것이 섣불리 일을 진행시킴으로써, 결과적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소극적으로 참여하게 하는 것보다 좋다. 이 방식은 주님께서 모든 사람들을 다 끌어안기 위해 주님의 품안으로 돌아와 주님의 뜻을 따를 때까지 기다리시는 모습과도 부합한다(2 베드 3,9 참조).

주님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습니다”(2베드 3,8)하신 베드로 사도의 말씀처럼 교회는 모든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 열려있고, 마침내 하느님 나라가 완성될 그 날, “예수님의 이름 앞에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에 있는 자들이 다 무릎을 꿇고,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라고 모두 고백하며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게”(필리 2,10-11) 될 때까지 끊임없이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며 기다리고 있다. 왜냐하면 교회는 한 가지 일을 잘 처리하여 한 번 이 세상에 하느님 나라를 드러내는 것보다, 한 사람 한 사람을 모두 구원의 하느님 나라로 불러모으고 그 안에서 하느님 구원의 뜻이 이루어지게 됨으로써 교회가 하느님 나라로 변화되는 것이 교회의 본질이며 교회의 진정한 사업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회와 교회 사업의 운영과 관리는 해당 실무자들에게 과감히 권한을 위임하고, 사건과 상황의 이해 당사자들이 모두 호의적으로 참여할 수 있을 때까지 의견을 조율하고 하나로 모은 후에 사목을 위한 의사 결정 과정을 진행해 나가는 것이 적절한 의사 결정 방식이다.

 

 

 

2. 의사 결정 과정의 참여자

이 항에서는 경험과 문화 그리고 전승의 세 대화 상대자로부터 연구한 결과로 의사 결정 과정의 참여자가 누구인가에 대해 논의한다.

누가 의사 결정 과정에 참여하는가? 경험적으로 볼 때, 의사 결정을 하기 위해서는 그 의사 결정의 원인을 제공한 사람들 그리고 그 의사 결정을 통해 결론이 도출되어 혜택을 입을 사람들 그리고 그 의사 결정을 진행하고 수행할 사람들 모두가 참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국 천주교회 경험에서 그 역사를 보면, 조선조는 한국 천주교회가 기존의 신분 사회에 대한 도전이요 파괴의 시도라고 보고 한국 천주교를 박해했다. 그처럼 대조 사회인 교회의 가르침에 따른 의사 결정은 또다시 기존 사회에 대한 도전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 그리고 교회의 가르침에 따른 의사 결정이 한국 사회 문화 안에 토착화되어야만 한국 사회와 한국 교회 안에서 교회의 가르침에 따른 의사 결정이 효과적으로 자리잡을 수 있다.

한국 문화에서 보면, 그 의사 결정을 통해 주위에서 직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을 사람들도 가능하면 참여시키거나 적극적으로 고려하는 것이 좋겠다. 한국 사람들은 주위의 눈치를 많이 본다. 그 눈치를 본다는 것은 좋은 면에서는 서로를 배려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다른 면에서는 함께 사는 이들의 요청과 압박의 결과이기도 하다. 주위 사람들은 한 사건이 결정되면서 그것이 전통이 되고 다른 사건의 사례와 선험이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 결정이 훗날 자신들의 결정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고, 또 두고두고 자신들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사실에 주목하기 때문에 무언의 압력을 가해 의사 결정의 이해 당사자들이 눈치를 보게 만드는 것이다.

교회 전승과 신학적 가르침에 따르면, 무엇보다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은 바로 그 의사 결정을 신학적으로 점검해 줄 신학자와 좋은 신앙생활을 하는 신자다. 신학자와 좋은 신앙생활을 하는 신자는 그 의사 결정이 주님의 말씀과 교회의 가르침 안에 있는지의 여부를 점검해 주고, 그 의사 결정이 교회 가르침에서 벗어나 있다면 어떻게 복음과 교회의 정신에 맞추도록 할 것인가를 조정해 주어야 한다. 교회 내의 한 조직 그리고 한 소공동체나 한 단체가 결정을 내린다고 해서 그것이 그 해당 이해 당사자 그들만의 결정이 아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신비롭게 서로 연결되어 있는 유기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결정의 결과가 지역사회와 교회 공동선에 부합하도록 고려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사건과 상황의 해당자들과 이해 당사자들, 교회 신학자들과 좋은 신앙생활을 하는 신자들, 그리고 그 일에 관련된 것들을 수집하고 연구하여 사목적인 대응책을 찾아 주임 사제가 올바른 결정을 내리도록 제공하는 사람들이 의사 결정 과정에 참여해야 할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들이 다 함께 모여 논의하고 한 번에 결정할 수 없기 때문에 이를 지속적이고 심도 깊게 다룰 상설적인 조직이 필요하다. 이것을 위해 조직된 기구가 『교회법』과 서울대교구 시노드 후속 교구장 교서 『희망을 안고 하느님께』에 의하면 본당의 사목 평의회와 구역장 회의다. 『희망을 안고 하느님께』에 의하면, 구역장 회의는 본당 사목 평의회의 도움을 받아 본당의 미래를 위한 사목적 예지와 대안을 공유하며, 정기적인 회의를 통하여 본당의 사목적 현안을 논의하고, 구역과 반의 자율성과 신자들의 능동적인 참여를 촉진한다.

현실적인 면에서 『교회법』과 『희망을 안고 하느님께』에 따라, 본당 사목 평의회와 구역장 회의를 주임 사제가 운영의 묘를 살려 별도로 운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책임자 한 개인의 역량에만 의존한다는 것은 조직이 너무 불안정하므로 구조화하고 제도화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다. 또는 본당 사목 평의회와 구역장 회의를 결합한 제3의 구조를 신설할 수도 있다. 그런가 하면, 지금까지 유지해오던 본당 사목 평의회의 구조를 변경, 보완하여 친교 공동체인 교회의 모형을 구현하기 위한 본당 사목 평의회의 새 모형을 모색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고 현실적이기도 하다.

 

 

 

3. 의사 결정 과정의 새 모형

이 항에서는 경험과 문화 그리고 전승의 세 대화 상대자로부터 연구한 결과로 의사 결정 과정의 새 모형이 무엇인가에 대해 논의한다.

의사 결정 과정을 어떻게 풀어 나갈 것인가?

한국 천주교회 경험에서 기존의 사목평의회의 모형[256]과는 달리 한국 천주교회의 대구교구[257]수원교구[258], ‘춘천교구[259] 그리고 서울대교구 통합 사목 연구소[260]의 새로운 모형들이 추구하는 것들을 종합해 보면,

① 소공동체 중심의 사목을 펼친다.

② 소공동체와 사도직 단체 협의회 그리고 전문 위원회로 삼분한다

(재정 분야를 별도로 정한다).

③ 본당 사목 평의회를 회장단 모임인 상임 위원회로 축소하거나 의사 결정 과정을 단축시킨다.

④ 본당의 기초 단위의 조직들이 전보다는 더 많은 자치권을 가지고 활동한다.

이다.

그런데 반해 소공동체, 사도직 단체 협의회, 전문 위원회간의 사목적 연결과 공유가 조직도 상으로만은 모호하게 나타난다. 그리고 본당 신자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의사 결정 과정에 참여시키는 조직이나 제도가 있지만 공통적으로 불충분하다는 설문 조사가 있었다. 그러므로 공동체와의 친교 속에서 의사 결정을 진행해 가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왜냐하면 모든 의견이 다 받아들여지고 실현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임 사제(본당 사목팀)는 끊임없는 대화와 관심을 통해 본당 신자들과의 깊은 친교를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국 문화에서 보면, 군자(주임 사제)는 중용과 조화를 이루며 상황에 적절하게 대응함으로써, 한쪽(단체)으로 기울어서도 안되고 한쪽에 특혜를 주어도 안된다고 여긴다. 그리고 한국의 왕들은 백성들을 잘 다스리기 위해 각 계층과 각 특성에 맞는 모임, 조참(朝參: 아침 회의)을 가졌다. 모임에 참석하는 이들의 신분이나 회의의 안건에 따라 여러가지 조참이 있었다. 이것은 마치 사목 평의회와 구역장 회의처럼 모임에 참여하는 이들의 신분이나 모임 주제에 따라 여러 가지의 모임을 가지는 것과 같다.

교회 전승과 신학적 가르침에 따르면, 2차 바티칸 공의회는 친교의 교회론을 통해 삼위일체의 하느님과 백성들 사이에 그리고 하느님 백성들 사이에 친교를 이룬다고 했다. 그리고 본당 사목 평의회와 구역장 회의는 평신도들이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교회에 참여할 수 있는 참여하는 교회가 되기 위해 좋은 결정을 내려야만 한다. 아울러 본당의 친교 속에서 주임 사제와 함께 하느님 백성을 사목적으로 잘 돌볼 좋은 결정을 내려야 한다.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결과적으로 사목적 의사 결정은 교회와 복음의 정신 안에서 중용과 조화를 지켜야만 하며, 그 과정을 신속하게 하고, 그 결과를 본당의 하느님 백성의 친교 안에서 공유해야 한다. 각 기관들은 명백하게 독립적이지만 본당 내에서 하느님 백성 전체와 친교를 나누어야 한다. 중용과 조화를 지키고, 그 과정을 신속하게 하며, 본당의 친교 안에서 그 결과를 나누기 위한 새 구조를 짜는 노력을 계속 기울여야 한다.

 

 

 

4. 의사 결정 과정의 변수들

이 항에서는 경험과 문화 그리고 전승의 세 대화 상대자로부터 연구한 결과로 의사 결정 과정의 변수들이 무엇인가에 대해 논의한다.

무엇이 의사 결정 과정을 가능하게 하고 방해하는가?

한국 천주교회 경험에서 보면, 서울대교구장이 교회가 나아가야 할 길과 교회와 사회의 복음화를 위하여 소공동체 운동을 발견하고 그 운동을 교구의 사목 정책으로 정하고 그 정책을 열정적으로 추진했다. 그 결과 소공동체 운동이 활발히 전개되고 소공동체 복음화를 통한 교회와 사회의 복음화가 진행되었다. 이처럼 주임 사제가 본당 사목을 위해 신자들과 함께 가장 좋은 사목 정책이 무엇인지 모색하고 그 사목 정책을 신자들에게 교육하고 설득하여 그 사목 정책을 수행하고자 하는 적극적인 열성이 의사 결정 과정을 가능하게 한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주임 사제가 신자들과 함께하지 않고 혼자 찾고 혼자 결정하고 혼자 진행해 나갈 때 신자들의 반대를 가져올 수도 있다. 설사 그 사목 정책이 좋은 것이라고 할 때도 말이다. 이 모습은 서울대교구장이 소공동체 운동을 도입할 때 교구 사제들과 적극적으로 함께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결정하고 추진했기 때문에, 추후 교구 사목 정책을 모색하거나 사목 정책을 수행해 나가는 의사 결정 과정에서 많은 반발을 가져온 것과 같다. 그리고 주임 사제는 신자들의 의견을 더 잘 들으려고 하고 의사 결정 과정에 참여시키려는 적극적인 노력을, 신자들은 사목적 의사 결정 과정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도록 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한국 문화에서 『논어』와 『중용』을 읽어 보면, 군자(주임 사제)는 중용의 겸손이라는 면에서 신자 한 사람 한 사람을 존경하고, 중용의 절제라는 면에서 신자들에게 주임 사제의 의견을 따르라고만 요구하지 않고 신자들의 갈망과 원의를 기꺼이 들어주며, 중용의 형평과 조화라는 면에서 어느 한 단체나 소공동체 중 한 쪽을 더 편애하지 않고 모든 신자들을 돌보아야 한다. 현대 한국 사회로 오면서 사람들의 의식이 깨고 기대가 높아졌다. 그래서 왕과 조직의 우두머리들은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듣고 함께 논의하고 함께 결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람들이 자신들의 삶과 관련된 의사 결정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를 바랐다. 다른 한쪽으로 한 사람의 지도자가 결정을 내리는 데 필요한 충분한 정보를 다 얻을 수 없고, 또 현대 사회의 모든 부문과 각기 다른 처지에 놓여 있는 여러 다양한 사람들의 갈망과 원의들을 혼자서 다 채워줄 수 없다.

교회의 전승과 신학적 가르침에 따르면, 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의 모습 중의 하나를 하느님 백성으로 삼고 있다. 모든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같은 하느님의 백성이며, 자신들의 삶에서 그리스도의 사제직, 예언직, 왕직을 수행하도록 불림을 받았다. 아시아 주교회의는 아시아의 교회는 평신도, 수도자 그리고 성직자들이 서로를 자매와 형제로 인식하고 받아들여 공동체들의 친교를 이루어야 할 것이다. 그들은 부활하신 주님의 준성사적인 현존으로 간주되는 주님의 말씀으로 다같이 소명을 받았으며, 그 말씀은 그들을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소공동체)의 형태(즉 이웃 그룹, 기초 교회 공동체 그리고 계약공동체)로 이끄신다.” 고 밝혔다. 거기에서 그들은 함께 기도하고, 예수님의 복음을 나누고, 자신들이 일상에 그 복음을 적용하며, 한마음 한뜻으로일치하며 서로를 지원하고 함께 일한다. 주임 사제가 자신의 보좌 신부와 수도자 그리고 본당 신자들을 자매와 형제로 인식하고 받아들인다면, 주임 사제는 자신의 백성들과 함께 의사 결정 과정을 밟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우월감으로 인해 스스로 외로워질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주임 사제의 사목적 결정은 자기 신자들에게 기쁨을 안겨 주지 못할 것이다.

의사 결정 과정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주임 사제가 보좌 신부와 수도자 그리고 평신도를 통해서도 주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다고 깨닫고 의도적으로 추구하며 신뢰하는 것이다. 또한 성령께서 자신뿐만 아니라 본당의 하느님 백성 전체와도 일하고 계시다는 것을 주임 사제가 깨닫고 확신할 때 가능하다. 의사 결정 과정을 방해하는 것은 주임 사제의 확신의 결여나 미성숙이나 독재 또는 메시아니즘이며 신자들의 무지나 탐욕, 기득권과 이해관계 또는 이기심이다.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서로를 의사 결정 과정으로 초대하고 받아들일 만큼 변화될 때가지 식별하고 기다려야 한다. 주임 사제는 홀로 무엇이 신자들을 위한 최상의 것인가를 찾을 뿐만 아니라 의사 결정 과정에 자신의 신자들과 함께하는 것이 좋다. 주임 사제는 본당 신자들의 무지를 핑계로 주님과 신자들과의 친교 안에서 서로 이해하며 사목 직무에 참여하도록 하는 것을 포기하거나 도피하기 보다는 본당 신자들에게 복음과 교회의 정신을 가르치고 양성시키며 자신의 사목 정책을 설명하는 것이 좋겠다.

 

 

 

 

 

사목적 제안

 

 

 

 

 

지금까지 교회 공동체가 친교의 공동체가 되기 위하여 소공동체 운동과 관련된 자료들인 친교 교회론을 포함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회론, 공동체들의 친교인 교회의 새로운 존재 양식, 라틴 아메리카 교회의 기초 교회 공동체,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 및 한국 천주교회의 소공동체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러한 주제들을 주임 사제가 어떻게 하면 본당에서 신자들의 의견을 잘 수렴하고 의사 결정 과정을 잘 진행시켜 신자들 모두와 함께 사랑과 구원의 하느님 삼위일체적인 친교의 공동체를 만들 수 있는가 하는 관점과 연결시켜보았다. 평신도들에 의해 세워진 한국 천주교회의 경험 속에서, 소공동체 운동을 도입한 후 평신도들은 한층 더 복음을 따라 생활하게 되었고 교회 활동의 능동적인 참여가 두드러졌다. 그 반면에 본당 사목의 의사 결정 과정에서 소공동체와 단체 그리고 소공동체와 사목 평의회 사이에서 갈등도 생겨났다. 그래서 그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소공동체를 중심으로 사목 평의회를 재구성하고 의사 결정 과정을 통합해 보려는 노력도 보았다.

한국 문화인 『논어』와 『중용』에 나타난 가르침에 따라, 주임 사제가 본당 신자 한 사람 한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중용의 겸손과 자신의 의견을 앞세우지 않고 평신도들의 의견을 수렴하려는 중용의 절제 그리고 본당 신자들의 의견을 듣고 한쪽으로 기울거나 한쪽에 특혜를 주지 않으며 형평과 조화를 이루는 중용을 간직해야 한다는 것도 보았다.

교회의 전승과 신학적 가르침을 통해, 교회가 주님과 형제들 사이에 그리고 세상의 구원을 위해 삼위일체적인 친교를 이루는 친교의 교회관을 보았다. 그리고 남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 대륙의 기초 교회 공동체와 소공동체를 보았으며, 아프리카 룸코 연구소의 소공동체 운동이 아시아 주교회의를 통해 한국 천주교회에 접목되는 과정을 보았다.

또한 한국 천주교회의 경험과 한국의 문화 그리고 교회의 전승과 신학적 가르침 측면에서 서로 대화하며, 본당이 친교의 교회가 되기 위해 누가, 어떤 방법으로 가장 적절한 의사 결정을 할 것인지를 보았다.

이제 주임 사제가 본당의 단체원들뿐만 아니라 소공동체원들로부터 본당 신자들의 살아 있는 목소리와 갈망을 듣고, 어떻게 하면 가장 효과적으로 본당 사목 평의회와 소공동체 구역장 회의가 통합된 하나의 의사 결정 과정을 통해 소공동체와 전문 위원회 그리고 단체 출신 회원들이 서로 상의하여 사목적 의사 결정 과정을 내리는지 의견을 제시하겠다. 이 목표는 의사 결정 과정의 방법을 통해 얻을 수 있다. 그리고 누가 주임 사제와 함께 의사 결정 과정에서 참여할 것인가는 사목 현안을 푸는 참여자의 일반 원칙을 통해 얻을 수 있다. 주임 사제가 본당 사목에 있어서 소공동체와 단체들 사이에 그리고 구역장 회의와 본당 사목 평의회 사이의 갈등과 다툼을 최소화시키고, 소공동체뿐만 아니라 모든 신자들을 돌보기 위한 지침을 발전시킨다. 이것은 소공동체와 전문 위원회 그리고 단체들을 모두 다 포함시킨 본당 사목 평의회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한다. 새 본당 사목 평의회의 구조적 개념은 친교와 공유다. 그리고 본당 사목팀, 새 본당 사목 평의회 모형의 기본 조직 그리고 새로운 본당 사목 평의회의 구성을 위한 일반적인 지침을 통해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주임 사제가 어떻게 하면 의사 결정 과정을 효과적으로 진행시킬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주임 사제(본당 사목팀과 지도자)의 의사 결정 과정을 위한 이정표를 통해 얻을 수 있다.

이러한 것들은 주임 사제가 본당을 모든 신자들 사이에 친교가 이루어지는 공동체가 되도록 조직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를 본당의 삼위일체적 친교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1. 의사 결정 과정의 방법

무엇이 적절한 의사 결정 방식인가라는 반성에 대해, 교회와 교회 사업의 운영과 관리는 해당 실무자들에게 과감히 권한을 위임하고, 사건과 상황의 이해 당사자들이 모두 호의적으로 참여할 수 있을 때까지 의견을 조율하고 하나로 모은 후에 사목을 위한 의사 결정 과정을 진행해 나가는 것이 적절한 의사 결정 방식이라고 제시했다. 이제 의사 결정 과정의 한 방법으로 『문제 해결 방식』과 『사목 기획』을 제시한다.

사목상 세운 계획들이 실패하는 경우가 있다. 실패 이유는 대부분 의사 결정 과정과 관련하여 빚어진다. 공동체가 풀어야 할 문제가 공동체의 능력보다 크기 때문에, 공동체가 한 번에 세상이 변화되기를 바라기에, 공동체가 적절한 노력을 기울이지 못했을 때, 문제를 풀고자 하는 계획이 신자들의 갈망과 요구에 의한 것이 아닐 경우, 계획을 하면서 신자들과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는 것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을 경우, 계획이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설명되고 요구됨으로써 모든 구성원들에게 동의를 받지 못했을 경우, 모든 신자들이 동의했지만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자신들이 계획 속에 포함되었다고 느끼지 못했을 경우, 누가, 무엇을, 언제, 어디서, 어떻게, 왜 등 구체적인 세부 사항 없이 계획되었을 경우, 계획이 소수나 특정 단체 또는 특정 그룹에게만 혜택이 돌아가는 경우, 계획을 수행하는 데 너무 많은 돈과 노력이 들어가야 할 경우, 계획의 동기가 너무 약하거나 그 과정에서 변하거나 잃어버렸을 경우, 계획이 그리스도의 교회 정신에 부적절한 경우, 주님께서 공동체원 각자들과 이웃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하라고 하시는 가와 주님의 정신에 가장 가깝고 실현 가능한 계획인가를 찾지 않았을 경우, 구성원들이 계획의 첫 번째 단계를 실행하는데 너무 어려웠거나 실패한 경험이 있어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를 원하지 않는 경우등이다.[261]  

 

1) 문제 해결 방식

 

① 문제를 정확히 표현한다.

실제적으로 다룰 수 있는 구체적인 목표(대상)를 정확히 표현하여 종이에 쓴다.

② 여러 가지 해결책을 제안한다.

즉시의견제시Brain Storming: 각자 한가지 해결책을 제시한다. 토론은 아직 하지 않는다.

③ 몇 가지 해결책에 대해 토론한다.

몇 가지 해결책의 장점과 단점을 찾는다. 어떤 해결책이 가장 그리스도의 마음에 들 것인지 찾는다.

④ 해결책 하나를 정한다.

전체 모임에서 해결책 하나를 만장일치로 결정한다.

⑤ 시행할 사람을 정한다.

시행할 사람이 누구이고 어떤 일을 언제, 어디서 할 것인가를 결정한다.

⑥ 추후 점검한다.

결과를 보고하는 날짜를 정한다. 필요하다면 방법을 바꾸고 포기하지 말고 변화된 상황을 적응하게 한다.

 

룸코 연구소는 의사 결정 과정의 한 방법으로 『문제 해결 방식』을 만들었다.[262] 룸코 연구소의 문제 해결 방식은 첫 단계에서 문제를 정확히 표현한다. “문제 인식 하기. 실제적으로 다룰 수 있는 구체적인 목표(대상)를 정확히 표현하여 종이에 쓴다.” 공동체는 문제 해결을 위한 계획을 잡기 위해 문제와 상황을 더 잘 이해해야 한다. 공동체는 문제를 잘 아는 사람들, 공동체가 그런 문제를 가지고 있는 이유, 그런 상황이 계속되면 얻는 이들과 잃어버릴 사람들, 예견되는 어려움들. 이 단계는 문제를 구체적인 대상으로 잡는 단계다. 짧은 토론을 거친 후, 대상을 잡고 적는다. 그리고 공동체가 시간 계획을 짠다.[263]

두 번째 단계에서 여러 가지 해결책을 제안한다. “해결책 제안히기Brain Storming. 각자 한 가지 해결책을 제시한다. 토론은 아직 하지 않는다.” 이 단계에서는 각 공동체 구성원들이 토론 없이 그냥 생각나는 대로 해결책을 한 가지씩 제시하도록 초대한다.[264]

세 번째 단계에서 몇 가지 해결책에 대해 토론한다. “해결책 토론하기. 몇몇 해결책의 장점과 단점을 찾는다. 어떤 해결책이 그리스도의 마음에 들 것인지 찾는다.” 구성원들은 각 제안들의 장점과 단점을 발견하고, 어느 해결책이 그리스도의 마음에 가장 근접한 것인가를 고른다.[265]

네 번째 단계에서 해결책 하나를 정한다. “해결책 결정하기. 전체 모임에서 해결책 하나를 만장일치로 결정한다.” 투표에 부치면 공동체가 분열되므로 가능하면 모임 전체가 만장일치로 하나의 해결책을 고른다. 이 단계에서 사회를 하느님 나라로 변화시킬 것인지 단순히 교회의 신자들이나 사업소, 사목 영역을 넓힐 것인지 공동체의 원의를 고려한다.[266]

다섯 번째 단계에서 시행할 사람을 정한다. “수행하기! 시행할 사람이 누구이고 어떤 일을 언제, 어디서 할 것인가를 결정한다.” 누가, 무엇을, 언제(내일? 다음 주?...), 어디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문제 해결을 수행해 나갈 것인지 계획한다.[267]

여섯 번째 단계에서 추후 점검한다. “추후 점검하기! 결과를 보고하는 날짜를 정한다. 필요하다면 방법을 바꾸고 포기하지 말고 변화된 상황을 적응하게 한다.” 언제 공동체가 다시 모여 계획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할 것인지, 새로운 상황과 변수가 발생하여 변화할 것인지, 그리고 우리가 행한 행위에 따라 변화된 상황에 따라 어떻게 다시 대응할 것인지를 결정하기 위한 날짜를 정한다.[268]

이 방법은 의사 결정의 구체적인 과정을 잘 제공하고 있다.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들이 한 사람 한 사람 해결책을 내도록 초대하고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해준다. 공동체원들에게 그리스도의 정신에 가장 가까운 해결책이 무엇인지를 물음으로써, 공동체가 주님 안에서 자신들의 행동을 고려해 보도록 상기시킨다. 현재 취할 수 있는 가능성이 무엇인지를 모색함으로써 다른 방법보다 하느님 나라를 현실에 쉽게 적용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은 아주 구체적이기 때문에 계획에 따라 수행하기 쉽다. 또한 자기 점검 도구로 문제를 계속하여 풀 수 있도록 해준다.

 

2) 사목 기획

 

① 사목의 대상 마주보기Engaging the pastoral reality

  • 듣기Listenning

    - 무슨 일인가? 언제, 누가, 어디서, 어떻게, ?

    - 이 사건/상황에 관련된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 분석하기Analyzing

    - 이 사건/상황의 내용과 맥락은 무엇인가? 문화, 사회적 배경

    - 이 사건/상황에서 좋고 긍정적인 면과 요소들, 그리고 나쁘고 부정적인 면과 요소들은 무엇인가?

    - 이 사건/상황이 계속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나겠는가?

        자신에게, 이 사건/상황에 직, 간접적으로 관련된 사람들에게, 이것을 염려하는 이들에게, 다른 사람들에게

    - 이 사건/상황에서 누가 이득을 얻고, 손해를 보는가?

    - 이 사건/상황이 여러분에게 익숙한가 아니면 낯설은가?

    - 이 사건/상황이 여러분에게 기쁘고 좋은가 아닌가? ?

    - 이 사건/상황이 여러분에게 어떤 면에서 짐이고, 또 선물인가?

 

② 신앙 공동체와 함께 식별하기Discerning with Faith Community

• 떠올리기Imaging

    - 주님께서는 이 사건/상황을 어떻게 보실까?

    - 주님께서는 왜 이 사건/상황을 우리가 겪도록 허락하시는가?

    - 이 사건/상황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주님의 메시지는 무엇인가?

    - 이 사건/상황을 통해 주님께서는 우리를 어디로 이끌고 계시는가?

    - 주님께서는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하기를 바라시는가?

    -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대응하셨는가?

  • 기획하기Planning

    - 이 사건/상황에서 무엇을, 어떻게 하기를 바라는가?

    - 이 조정/기획 단계에서 누구를 부르겠는가?

    - 기대하는 변화/결과는 무엇인가?

    - 이 사건/상황과 관련된 사람들이 여러분의 기획에 어떻게 반응하겠는가?

    - 기획의 내용이 교회와 복음의 정신에 부합하는가?

    - 이 사건/상황에서 교회 공동체가 참여함으로써 얻고자 하는 교회 공동체의 목표는 무엇인가?

    - 이 사건/상황에 예수님과 교회의 가르침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 어떻게 이 사건/상황 속에 주님을 현존시킬 수 있는가?

 

③ 사목적으로 대응하기Responding pastorally

  • 맞추기Negotiating

    - 어떻게 사목적으로 대응을 할 것인가를 결정하기에 앞서, 염두에 두어야 할 요소들은 무엇인가?

    - 현실적으로 이 사건/상황에 걸맞은 최선의 사목적 대응 방법은 무엇인가?

    - 이 사건/상황에 대한 단기적인 목표와 기획은 무엇인가?

• 조직하기Organizing

    - 누가 우리의 협조자며 반대자인가?

    - 지금껏 누구와 함께 일해 왔으며, 지금 누구와 함께 일하고, 앞으로 누구와 함께 일하고 싶은가?

    - 여태까지 참석하지 않았고, 또 지금 참석하지 않으며, 앞으로도 참석하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이 누구인가? ? 그 사람()을 위해서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 어떻게 이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일할 수 있도록 할 것인가?

  • 수행하기Implementing

    - 이것을 수행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 그것들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 언제, 어디서, 누구와 함께, 무엇을, 어떻게 수행할 것인가?

 

이렇게 사목적으로 대응한 다음에, 이 사건/상황이 계속될 때에는 오늘 한 결과를 바탕으로 다시 처음 1단계로 되돌아가 마주 보기와 식별하기, 대응하기를 반복하며 복음화 과정을 밟는다.

 

『사목 기획』은 첫째, 사목 대상 마주 보기는 새롭게 계속되는 사건/상황을 인식하는 단계이다. 둘째, 신앙 공동체와 함께 식별하기는 그 사건/상황이 천주교회의 전승과 부응하느냐 않느냐를 비교하며 구분하고 어떻게 하면 주님을 따를 수 있는가를 확인하는 과정이다. 셋째, 그 사건/상황에 어떻게 사목적으로 대응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단계이다. 다른 한 쪽으로, 이 방법은 공동체가 주임 사제, 보좌 신부, 수도자, 평신도 지도자들로 구성된 사목 팀을 구성하게 한다. 이 방법은 문화와 종교 전승 그리고 공동체의 체험과 대화하고 마주하는 것이다.

첫 단계 사목 대상 마주보기는 사목 직무를 신학적으로 계획하는 과정이다. 그것은 신자들과 사회에 귀를 기울이고 그 사건과 상황의 문화적 사회적 배경 안에서 그것을 구체적으로 분석하기에 아주 좋은 단계다. 사건/상황의 분석뿐만 아니라 각 당사자들의 인격을 아주 중요하게 분석한다. 두 번째 단계 신앙 공동체와 함께 식별하기 위해서는, 계획하기에 들어가기 앞서 사건/상황에 대한 주님의 뜻과 교회의 가르침을 찾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왜냐하면 공동체는 그것이 큰 것이던 작은 것이던 교회의 공동체다. 주님께서 구체적인 상황에 현존하시도록 하고 각자가 서로의 관계를 배려하는 것이 좋다. 주님의 의지와 방법으로 사목 팀이 비교하고 풀려고 하는 의지와 방법이 주님 안에서 사건과 상황을 해결하려는 의미와 계획을 점검하고 확신을 상기시키는 것이다. 셋째 단계에서 현재 취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이상 중에 실현 가능한 것을 찾는다는 것이 아주 좋다. ‘맞추기단계는 어떻게 하면 주님의 영을 이 세상에 정착시킬 수 있을까 하는 토착화의 과정 중의 하나다. ‘조직하기단계는 현대 사회에서 일의 진행 과정보다 사람 사이를 더 필요로 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수행하기는 기획에 의거하여 나아가고 열매를 맺을 것이다. 이 번의 결과를 가지고 다시 첫 단계로 되돌아가 계속하여 사건/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이상의 두 방법론들은 기존의 대응 방식과는 다소 생소하기도 하고, 실제 상황에서 너무 많은 숙고를 요구하기 때문에 힘들고 다소 지루한 계획과정을 거친다고 느낄 수도 있다.

 

 

 

2. 사목 현안을 푸는 참여자의 일반 원칙

누가 의사 결정 과정에 참여하는가라는 반성에 대해, 사건과 상황의 해당자들과 이해 당사자들, 교회 신학자들과 좋은 신앙생활을 하는 신자들 그리고 그 일에 관련된 것들을 수집하고 연구하여 사목적인 대응책을 찾아 주임 사제가 올바른 결정을 내리도록 제공하는 사람들이 의사 결정 과정에 참여해야 할 사람들이라고 제시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의 조직이 바로 『교회법』과 서울대교구장 시노드 후속 교서 『희망을 열고 하느님께』에 근거해서 본당 사목 평의회와 구역장 회의라고 제시했다. 이제 사목 현안을 푸는 참여자의 일반 원칙을 제시한다.

 

의사 결정 과정에 있어 참여자와 관련하여 사목 현안을 풀어나가는 일반적인 원칙은 다음과 같다.

첫째, 사건과 상황의 당사자와 이해관계자 그리고 그것과 관련된 모든 사람이 참여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효과로 모든 이들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기초 단위별 다양한 모임을 만들고 그 모임을 전체 조직과 연결시켜야 한다.

둘째, 그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의사 결정 과정에 그들 모두가 참여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효과를 가져올 방법으로서 각 모임의 지도자들과 담당자들을 의사 결정 과정에 참여시켜야 한다.

셋째, 각 지도자들과 담당자들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고 의사를 결정함에 있어 반드시 복음과 교회의 정신에 따라 조정하여야 한다.

넷째, 본당 사목 평의회의 결정과정은 앞에서 말한 대로 다같이 뜻을 모으는 만장일치제를 원칙으로 하고, 『교회법』에 의거하여 주임 사제는 본당 사목 평의회원과 동등한 의견을 내는 한 사람으로 취급해서는 안 되며 또한 본당 사목 평의회원들은 자신들의 의견 모음을 근거로 본당의 주임 사제를 압박해서도 안된다. 그러나 주임 사제가 『교회법』의 정신에 따라 복음과 교회의 정신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평의회원들의 의견을 받아들이고 의사 결정 과정에 함께하는 것이 좋겠다.

 

 

 

3. 의사 결정 과정 구조의 새로운 모형

의사 결정 과정을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라는 반성에 대해, 사목적 의사 결정은 복음과 교회의 정신 안에서 중용조화를 지켜야만 하며, 그 과정을 신속하게 하고, 그 결과를 본당의 하느님 백성의 친교 안에서 공유해야 한다. 각 기관들은 독립적이지만 본당 내에서 하느님 백성 전체와 친교를 나누어야 한다. 중용과 조화를 지키고, 그 과정을 신속하게 하며, 본당의 친교 안에서 그 결과를 나누기 위한 새 구조를 짜야 한다고 제시했다.

구역장 회의를 통합한 사목 평의회의 새로운 구조의 개념은 친교와 공유다. 새 사목 평의회의 친교와 공유를 위해 주임 사제는 본당 사목 팀을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새 사목 평의회 모형의 기본 조직과 새 사목 평의회를 구성하는 일반 지침을 제시한다.

 

1) 새 본당 사목 평의회 구조의 개념: ‘친교공유

첫째, 이 새 모형은 피라미드식 구조를 피했다. ‘위’와 ‘아래’의 개념이 없고 원형 구조로 되어 있다. 주임 사제와 사목 협조자들이 자신들이 내린 결정 사항과 교회 운영의 원칙과 규정들을 설명하려고 하기 전에, 하느님 백성이 현재 바라는 것이 무엇이고, 어떤 것이 필요한지를 듣고 헤아려야 한다.

둘째, 구역장 회의와 통합된 새 본당 사목 평의회의 새로운 구조의 개념은 ‘친교’와 ‘공유’이다. 공동체 내의 어느 누구도 소외되지 않고, 서로에 대해 잘 알아야 하며 서로를 존중하고 서로를 배려하여야 한다. 그리고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서로의 정보를 가급적 공유해서, 우리 모두 공동체의 한 식구라는 것을 느끼고 참여하도록 해야만 한다.

셋째, 새 모형은 하느님의 일에 집중되지 않고 하느님 백성 각각의 인격에 집중되어 있다. 무엇이 언제까지 어떻게 행해져야만 한다는 시간적이고 공간적인 제약은 가끔 하느님 백성을 놓치고 만다. 경우에 따라서는 하느님 백성을 위해서 하는 일이 그 일의 논리에 빠져, 정작 하느님 백성을 소외시키고 손상시키는 경우가 발생한다.

넷째, 새 모형의 중앙에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서 계시고, 다른 모든 부분은 하느님 백성으로서 동등하며, 구분이 있을 뿐이다. 사람들은 모두 교회의 한 중심에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서 계시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러나 아직까지 기존의 본당 사목 평의회 구조도들에는 표현되지 않았다. 하느님은 당연히 함께하시고 내재하고 계시다고 여기기 때문이었다. 비록 그분께서 보이지 않고 또 교회의 모든 일이 그분의 주관하에 이루어지는 것만은 아니지만, 그래도 의도적이라도 본당 사목평의회의 중심에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놓는 것이 좋겠다.

교회 내에서 하느님을 잠시라도 잊게 되면 교회는 현실 세계에서 자칫 성공과 실패, 자만과 좌절, 성장과 퇴보라는 사회적인 논리와 잣대에 휘말리게 되어, 교회의 본모습을 잃게 된다. 교회는 세상 속에 존재하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고, 삼위일체 하느님께 속하여 세상에 하느님께서 다스리시는 하느님 나라의 완성을 그 목표와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많고 적고, 크고 작으며, 좋고 나쁜 것처럼 평가되는 현세적이고 물질적이며 당장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기준은, 보이지 않는 삼위일체 하느님과 하느님 백성 각각의 인격, 가난하고 고통 받는 이들 안에서 몸소 활동하시는 삼위일체 하느님의 신비와 그 신비에 응답하는 교회 신앙의 깊이와 성숙, 그리고 영원한 하느님 나라에 대한 믿음과 희망 그리고 그에 따른 교회의 사랑 행위를 손상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다섯째, 새 본당 사목 평의회 내에 두 개의 구조가 있다. 하나는 본당 사목 팀의 구조이고, 다른 하나는 본당 기본 조직의 일반적인 구조이다. 복잡하고 다양하며 전문화되는 세상 안에서, 교회는 이제 어느 한 카리스마적인 사제(지도자)뿐만 아니라, 오히려 여러 사목 협조자들의 협력을 통해 각자를 통해 드러나는 하느님의 지혜와 은총을 모으고, 사목 대상자들에게 풍요한 사목적 혜택을 가져다줌으로써 좋은 사목적 열매를 맺기 위해 사목 팀으로 함께 활동하는 것이 좋겠다.

여섯째, 새 모형은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 지도자들이 서로 친교를 나누는 교회 공동체가 될 수 있도록 그렸다. 그러자면 본당의 근간을 이루는 소공동체와 사도직 단체들 그리고 전문 위원회가 각자 독립적이면서도 서로 공유하면서 친교의 공동체를 이룰 수 있어야 한다.

벤 다이어그램구역장 회의와 통합된 새 본당 사목 평의회 기본 구조도는 다음과 같다:

 

 

 

 

 

 

 

 

 

 

 

 

 

 

 

<도표1. 새 본당 사목 평의회 기본 구조>

 

 

2) 새 본당 사목 평의회 모형의 본당 사목 팀

중용과 조화를 이루며 본당 내에서 친교를 이루는 길은 주임 사제와 보좌 신부, 수도자가 소공동체와 전문 위원회 그리고 사도직 단체 협의회 대표자들과 함께 모임을 가짐으로써 풀 수 있다. 이것을 본당 사목 팀 이라고 부를 수 있다. 소공동체와 전문 위원회 그리고 사도직 단체 협의회가 본당 사목 팀 안에서 각자 주임 사제와 본당 전체 신자들과 함께 친교를 나누고 자신들의 활동을 공유하며 결정 사항을 공유한다. 소공동체와 전문 위원회 그리고 사도직 단체 협의회가 각자 본당 신자들을 위한 좋은 사목적 결정을 내리는 데 있어 중용과 조화를 이루면서 과정을 신속하게 하고 그 결과를 본당의 친교 안에서 나누면서 하느님 백성 전체에게 좋은 사목을 펼칠 수 있다. 주임 사제와 함께 본당 사목 팀 안에서 하느님 백성 전체를 사목적으로 잘 돌보기 위해서는 이들이 서로 독립적이면서도 협조적인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본당 사목 팀 회합 후, 각자는 모임의 결과를 공지하거나 주보에 인쇄하여, 자기 단위에 그리고 본당의 전체 하느님 백성과 그 결과들을 공유하고 친교를 나누게 된다.

본당 신자들이 서로 친교를 이루면서 교회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주임 사제는 본당 신자들을 효과적으로 사목하기 위해 본당 사목팀을 구성할 수 있다. 본당 사목팀은 본당의 사목 현안에 대한 결정을 내린다. 그들은 기존 사목 평의회 모형의 총무와 기획의 역할을 맡는다. 이것은 일종의 집단적 공유의 지도력이다. 본당 사목 평의회 새 모형의 본당 사목팀은 주임 사제, 보좌 신부, 수도자, 본당 사목 평의회장과 본당 사목 평의회의 기본 조직의 지도자들인 부회장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기본 조직은 소공동체와 전문 위원회, 사도직 단체 협의회(그리고 사목의 특성과 지역적 특성에 따라 각 본당 마다 지역 사회 사목 위원회, 청소년 사도직 사목 양성 위원회, 그리고 노인 사목 위원회)를 둘 수 있다.

이 본당 사목팀은 각 교구의 새로운 모형들에 나타난 상임 위원회나 회장단 회의와 성격이 비슷하나, 본당 사목 팀은 단순히 의사 결정 과정의 한 단계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본당 사목팀은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 지도자들이 명령과 순종의 관계로서가 아니라, 하느님 백성을 향한 삼위일체적 사랑으로 함께 머리를 맞대고 마음을 모아 주임 사제를 도와 함께 본당 신자들을 사목적으로 돌본다. 그리고 함께 본당 사목을 책임지는 사목의 공동 협력 팀이다.

새 본당 사목 평의회 모형의 본당 사목 팀의 구조도는 다음과 같다.

 

 

 

 

 

 

 

 

 

 

 

 

 

 

 

 

 

 

 

 

 

 

 


<도표2. 새 본당 사목 평의회 모형의 본당 사목 팀>

 

 

본당 사목 평의회의 본당 사목 팀 안에 첫 번째 원(삼위일체 하느님)과 두 번째 원(주임 사제, 보좌 신부, 수도자) 그리고 두 번째 원과 세 번째 원(사목평의회장과 부회장단) 사이가 실선으로 구분되어 있다. 두 번째 원은 기본 조직과 사목적으로 직접 연결할 수 있다. 기본 조직은 점선으로 연결되어 상호 관계를 가지고 친교 안에서 서로 공유한다.

 

3) 새 본당 사목 평의회 모형의 기본 조직

그 지도자를 본당 사목 평의회의 부회장으로 하는 기본 조직은 다음과 같다.

① 소공동체는 지역장 회의, 구역장 회의, 반장 회의, 구역, 반모임으로 구성된다. 소공동체 모임을 통하여 신자들을 자신들의 삶을 복음의 빛으로 비추어 주님을 따르는 신자 생활을 한다. 소공동체는 신자 전체의 영신 성숙을 꾀하며, 신자들이 세상 안에서 살면서 겪는 어려움을 사목적으로 대응한다.

② 전문 위원회는 전례 위원회(미사 해설단, 독서단, 성가대, 성찬 봉사자회, 헌화회, 제대회, 복사단)와 교육 위원회(예비신자•견진 교리 교육, 대림•사순 피정 등 성경을 바탕으로 교육하므로 성경 공부 팀에서 봉사할 수 있다), 시설 분과 위원회 등으로 구성할 수 있다.

③ 사도직 단체 협의회는 레지오 마리애, 꾸르실료, 성령 쇄신 운동, 지속적인 성체 조배회, 행복한 가정 운동 등으로 구성할 수 있다.

(④ 청소년 및 청년 사목 양성 위원회는 초, , 고 주일학교와 교사회, 어린이 반모임,

청년 사도직 단체 등으로 구성할 수 있다.

⑤ 노인 사목 위원회는 노인 대학, 연령회, 노인 사도직 단체 등으로 구성할 수 있다.

⑥ 지역사회 사목 위원회는 가난한 이들과 지역사회를 위한 활동과 봉사로서 빈첸시오회와 연령회 등으로 구성할 수 있다.)

 

 

 

 

 

 

 

 

 

 

 

 

 

 

 

 

 

 

 

 

 

 

 

 

새 본당 사목 평의회 기본 조직의 기본 구조도1-소공동체는 다음과 같다.

 

 

 

<도표3. 새 본당 사목 평의회 기본 조직 기본 구조도1-소공동체>

 

새 본당 사목 평의회 기본 조직의 기본 구조도2-전문 위원회는 다음과 같다.

 

 

 

<도표4. 새 본당 사목 평의회 기본 조직 기본 구조도2-전문 위원회>

 

 

 

 

새 본당 사목 평의회 기본 조직의 기본 구조도3-사도직 단체 협의회는 다음과 같다.

 

 

 

<도표5. 새 본당 사목 평의회 기본 조직 기본 구조도3–사도직 단체 협의회>

 

이 새로운 모형에서는 각 소공동체와 전문 위원회 그리고 사도직 단체들이 가급적이면 주임 사제(또는 본당 사목 팀)와 사목적으로 직접 연결한다.

 

4) 새 본당 사목 평의회 구성을 위한 일반적인 지침

새 본당 사목 평의회를 구성하는 일반적인 지침은 이러하다.

첫째, 본당 사목 평의회는 자신들이 본당 안의 친교를 이루면서 하느님 백성을 사목적으로 잘 돌기 위해 주임 사제와 함께 중용과 조화를 이루며, 좋은 사목 결정 과정을 신속하게 내리고, 그 결과를 나누어야 한다는 것을 가슴 깊이 새겨야 한다.

둘째, 주임 사제는 보좌 신부와 수도자 그리고 평신도 지도자들과 함께 본당 사목 팀을 본당 사목 평의회 안에 둘 수 있다. 이 본당 사목 팀은 사목의 전반에 직접적인 책임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또 이 본당 사목 팀은 기획 조정 위원회의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래서 본당 내의 각 결정이 복음과 교회의 정신에 부합하는지 점검한다. 그리고 각 행사와 일정들이 중복되지 않고 또 전체 본당의 일정과 상황에 맞도록 조정할 수 있다.

셋째, 신자들의 지도자와 담당자는 복음과 교회의 정신에 부합해야 한다. 교회 내의 구성원들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남자와 여자 본당 사목 평의회장을 두거나, 남자와 여자 소공동체 최고 책임자(총구역장)를 본당 사목 평의회장이나 담당 부회장으로 두어 기획 조정 위원회에 참여시킬 수 있다. 그리고 신자들의 지도자들은 지역별 소공동체에서 선발되거나 지역이나 구역의 책임자들을 임명하는 것도 좋겠다.

넷째, 구역장회의는 구역장들과, 구역보다 더 넓은 단위인 지역의 책임자들이 있을 경우에는 지역장 회의로, 지역장들의 모임으로 정하는 것도 좋겠다. 구역장 회의에는 필요에 따라 임원들을 둘 수도 있고, 반장들도 참여시킬 수 있다.

다섯째, 전문 위원회의 장은 해당 위원회의 장이나 위원들 중에서 대표를 정하거나 해당 위원회에 오랜 경험을 쌓은 신자들을 뽑는 것이 좋겠다. 그리고 그 전문 위원회의 대표를 부회장으로 본당 사목 팀에 참여시킨다.

여섯째, 사도직 단체와 신심 단체들의 균형 있는 발전과 성장을 위해 사도직 단체 협의회를 구성하고 그 책임자를 부회장으로 본당 사목 팀에 참여시키는 것이 좋겠다.

(일곱째, 교회의 미래를 짊어질 청소년을 육성하고 교회를 짊어졌던 노인들과 지역사회 활동과 봉사를 사목적으로 고려하기 위해 그 책임자를 본당 사목 팀에 참여시키는 것이 좋겠다)

여덟째, 재무 평의회의 책임자도 필요에 따라 본당 사목팀에 참여할 수 있다.

 

 

 

4. 주임 사제(본당 사목 팀 또는 지도자)의 의사 결정 과정을 위한 이정표

우리는 4장 본당 사목의 의사 결정 과정‘4. 의사 결정 과정의 변수들에서 무엇이 의사 결정 과정을 가능하게 하고 방해하는가라는 반성에 대해, 가능하게 하는 것은 주임 사제가 보좌 신부와 수도자 그리고 평신도를 통해서도 주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다고 깨닫고 의도적으로 추구하며 신뢰하는 것이다. 또한 성령께서 자신뿐만 아니라 본당의 하느님 백성 전체와도 일하고 계시다는 것을 주임 사제가 깨닫고 확신할 때 가능하다. 그리고 방해하는 것은 주임 사제의 확신의 결여나 미성숙이나 독재 또는 메시아니즘이며 신자들의 무지나 탐욕, 기득권과 이해관계 또는 이기심이다.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서로를 의사 결정 과정으로 초대하고 받아들일 만큼 변화될 때까지 식별하고 기다려야 한다고 제시했다. 이제 주임 사제(본당 사목 팀 또는 지도자)의 의사 결정 과정을 위한 이정표를 제시한다.

 

본당 신자들을 살아있게 하고 능동적으로 교회에 참여하도록 하기 위해 신자들과 함께 일하는 주임 사제(본당 사목팀 또는 지도자)가 의사 결정 과정을 내리는 데 있어 마음속에 간직해야 할 이정표를 다음과 같이 꾸며본다.

① 주임 사제(본당 사목팀 또는 지도자)는 각 사람을 한 사람 한 사람 귀중한 존재로 여긴다.

② 주임 사제(본당 사목 팀 또는 지도자)는 주님께서 각 사람에게 맡겨주신 재능과 잠재성을 발견한다.

   ③ 주임 사제(본당 사목 팀 또는 지도자)는 각 사람의 갈망에 귀를 기울인다.

④ 주임 사제(본당 사목 팀 또는 지도자)는 그 사람이나 공동체를 위해 무엇을 하기 전에 그 사람이나 공동체와 상의한다.

⑤ 주임 사제(본당 사목 팀 또는 지도자)는 공동체를 위한 최상의 것이 무엇인지를 결정하기 전에 공동체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그 의견들을 수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안다.

⑥ 주임 사제(본당 사목 팀 또는 지도자)는 깊은 배려 없이 방향을 제시하기보다는 그 사람이나 공동체 스스로 자신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고 있고 또 어떻게 그것을 이룰 것인가를 찾아 낼 때가지 충분히 기다린다.

⑦ 주임 사제(본당 사목 팀 또는 지도자)는 하느님의 창조와 구원을 위한 사랑으로 돌보는 사람들의 갈망과 원의 그리고 그들이 처한 삶의 조건들을 명확히 안다.

⑧ 주임 사제(본당 사목 팀 또는 지도자)는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고 실행하기 전에 그 사람이나 공동체의 동의를 겸손히 구한다.

⑨ 주임 사제(본당 사목 팀 또는 지도자)는 자신의 제안이 실제 상황에서 그 사람이 이룰 수 있고 또 그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좋은 제안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⑩ 주임 사제(본당 사목팀 또는 지도자)는 자신의 좋은 의견을 따르도록 요구하기보다 제안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되새긴다. 그래서 사람()이 기쁘게 자신을 따를 수 있게 한다.

⑪ 주임 사제(본당 사목팀 또는 지도자)는 공동체의 원의가 복음과 교회의 정신에 부합하지 않을 때 공동체에게 아니오.” 라고 말한다.

⑫ 주임 사제(본당 사목 팀 또는 지도자)는 그 상황에서 그 사람에게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찾고 깨닫도록 도와주고, 그 결과를 함께 식별한다.

⑬ 주임 사제(본당 사목 팀 또는 지도자)는 주님의 뜻과 일치하는 경우에만 사람들의 목표가 온전히 이루어진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다.

⑭ 주임 사제(본당 사목 팀 또는 지도자)는 직무를 열매 맺게 하는 분은 사람이 아니라 주님이시라는 것을 새긴다.

 

 

 

5. 본당에서 맺는 삼위일체적인 친교

본당 신자들은 주임 사제(본당 사목 팀)가 자신들의 의견을 들어주고, 그 의견을 반영하여 결정을 내릴 때 신자들은 자신들이 사랑받고 있다고 느낀다. 그 때 본당 신자들은 주임 사제와 깊은 친교를 나누게 된다. 주임 사제는 또한 신자들의 의견을 들으면서 주님께서 그 의견에 대해 어떻게 여기실지를 묵상하면서 주님과 친교를 맺는다. 그리고 주임 사제가 주님과의 친교 안에서 자신이 묵상한 바를 신자들과 함께 복음의 빛으로 비춰 보고, 주님의 뜻 안에서 그 의견들을 나누고, 결정하고, 수행할 때 신자들과 진실한 친교를 누리게 된다.

주임 사제가 사목 팀과 함께 곤란에 처한 사목 대상이나 본당의 어려운 문제들을 발견해 내고, 의사 결정 과정을 거쳐 사목적인 대안을 마련하여, 그 대안을 사목 팀과 수행해 나가면서 주임 사제와 사목 팀과의 친교가 더욱 깊어지고 마침내 형제애를 느끼게 된다. 주임 사제와 사목 팀은 단순히 일을 위한 관계도 아니고, 책임 때문에 대응하는 관계도 아니다. 주님의 사랑으로 형제들을 감싸고 구원의 길을 제시하며 함께 구원의 길로 나아가는 공동 협력자의 관계이다. 복음이 현실에서 적용되고 복음에 따라 사목 대상이 변화되고 그 주변이 변화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기쁨과 희망, 슬픔과 번뇌를 함께 겪으면서 진정 하늘나라의 기쁨을 나누고 주님과 주임 사제와 사목 팀이 사목 대상자들과 함께 삼위일체적인 친교를 나누게 된다.

주님과 주님의 사도들이 주님의 기적을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는 관계와 똑같지는 않지만, 주님께서 제자들과 함께하고 싶으셨던 것처럼(마르 3,14 참조) 주임 사제도 사목 팀과 함께하고 싶어진다. 그리고 주님께서 제자들을 친구라고 부르시고, 주님 구원 사업의 협조자요 주님의 일을 계속하여 수행할 사도가 되길 바라셨던 것처럼(요한 15,15-17 참조) 주임 사제도 사목 팀을 주임 사제의 말씀에 순명해야할 평신도가 아니라 함께 주님의 부르심에 따라 구원의 사목을 펼칠 동료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또 실제로 그렇게 함께 사목을 펼쳐가면서 협조자와 동료로서 구원의 사목을 실현해 나가는 한 팀이 된다. 주임 사제가 사목 팀과 함께하게 되면 홀로 사제관에서 다 들을 수 없는 백성들의 소리를 더 깊숙이 들을 수 있게 된다. 이기적이거나 개인적인 관계에 의해서가 아니라 진정 함께 걱정해주고 사목적으로 대응하기에 적절한 의견들을 함께 모색하고 나눌 수 있다. 주임 사제는 홀로 하기엔 벅차고 부담스러운 일을 본당 사목 팀과 함께하면서 보다 쉽게 풀어나갈 수 있다. 이런 관계는 주임 사제와 일치한 사목 팀이 주님과 사목 대상자와 함께 삼위일체적 친교를 나누는 관계이다.

이렇듯 친교의 교회론에 있어서의 의사 결정 과정은 친교를 이루어가는 과정인 동시에 주님과 또 신자들과 함께 친교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며, 또 친교 안에서 주님의 사목을 실현해 나가는 과정이다. 주임 사제가 본당 사목 팀과 또 각 지역 소공동체의 지도자들과 전문 위원들과 사도직 단체 지도자들과 함께 본당 신자들과 본당의 현안들을 복음의 빛으로 비춰 보며 의사 결정 과정을 밟아 나갈 때, 이 친교는 성령의 안배하심 속에서 주님과 주임 사제 그리고 본당의 전 신자들과의 삼위일체적인 친교로 확산된다. 그 때 본당이 하늘나라에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께서 누리는 삼위일체적인 친교의 공동체가 된다.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요한 14,23).

 

본당 내에 이러한 삼위일체적인 친교의 관계가 이루어지기 위해서 주임 사제는, 하느님께서 구원 사업의 협조자로 성령을 교회에 보내 주셨음과 같이, 주님께서 평신도들을 주임 사제의 사목에 협력하여 함께하도록 보내 주셨다는 것을 굳게 믿어야 한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마태 18,19). 그리고 주임 사제는 평신도들을 통치나 구원해 주어야 할 사목의 대상만이 아니라, 이 땅에 하느님 나라를 완성하는 데 함께하는 동료요 협조자가 되기를 바라며 기다려야 한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희망하기에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립니다”(로마 8,25).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부르시고 양성시켜 마침내 주님의 친구로 만들어 주시고 주님의 일을 계속 수행하도록 하셨다. 주임 사제도 주님 사랑의 마음으로 평신도 지도자들이 주님과 교회의 참 좋은 제자요 사도가 되도록 교육하고 양성시켜 함께 일해야 한다.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은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 15,13).

 

지금까지 본당의 주임 사제(본당 사목 팀 또는 지도자)를 그 주 독자로 하여 연구한 이 사목적 제안이 각 본당의 구체적인 사목 상황에 실질적으로 적용될 수 있도록 깊이 모색되어, 한국 천주교회가 주임 사제와 신자들이 서로 친교를 누리며 서로와 세상의 구원을 위한 친교의 장이 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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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Jose Antonio Sayes, 위의 책, 67; 교회 헌장 2.

[3] Leo Elders , 19-21.

[4] Jose Antonio Sayes, 위의 책, 178-181.

[5] 위의 책, 181-185.

[6] 위의 책, 186-187.

[7] 위의 책, 188-190.

[8] 위의 책, 190-192.

[9] 위의 책, 195.

[10] 위의 책, 193-194.

[11] 위의 책, 196-198.

[12] 위의 책, 198-200.

[13] 위의 책, 200-203.

[14] 위의 책, 204-210.

[15] Leo Elders , 위의 책, 21-23.

[16] Jose Antonio Sayes, 위의 책, 32.

[17] Robert Belarmino, De Ecclesia Militante III, 2, Ingolstadt 1589, 192; Leo Elders , 위의 책, 23면 재인용.

[18] Leo Elders , 위의 책, 23-24

[19] Jose Antonio Sayes, 위의 책, 33-34.

[20] Leo Elders , 위의 책, 24.

[21] Jose Antonio Sayes, 위의 책, 34; Leo Elders , 위의 책, 24.

[22] Leo Elders , 위의 책, 25.

[23] Jose Antonio Sayes, 위의 책, 34.

[24] 비오 12, 그리스도의 신비체, 62; Leo Elders , 위의 책, 25-26면 재인용.

[25] 비오 12, 그리스도의 신비체, 63 “제도로서의 교회와 사랑의 교회는 마치 육체와 영혼과 같이 서로에 속한다.”; 비오 12세의 솔렘니스 콘벤티스, 1939. 6. 25; AAS 31, 1939, 250면 참조; Leo Elders , 위의 책, 서론 27면 재인용.

[26] Leo Elders , 위의 책, 서론 27.

[27] Leo Elders , 위의 책, 서론 28-30.

[28] Leo Elders , 위의 책, 3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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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위의 책,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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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2차 바티칸 공의회, 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이하 교회 헌장) 인류의 빛(Lumen Gentium), 5. 이하 교회 헌장.

[38] John Fuellenbach, 위의 책, 34-35.

[39] 신비인 교회와 관련된 자료는 마태 10,16; 요한 15,5; 에페 1,18-23; 1 코린 1,27-29; 2 코린 4,7; 12,7-10; 갈라 2,20; 교회의 선교 활동에 관한 교령(이하 선교 교령) 만민에게(Ad Gentes Divinitusy), 15; 16; 20; 21.; 현대 세계의 교회에 관한 사목 헌장(이하 사목 헌장) 기쁨과 희망(Gaudium et Spes), 2. 76. 40.; 교회 헌장, 5. 7. 8. 9. 21. 39. 44, 48. 63; 비그리스도교와 교회의 관계에 대한 선언(이하 비그리스도교 선언) 우리 시대(Nostra Aetate), 4; 사제 양성에 관한 교령(이하 사제 양성 교령) 온 교회의 열망(Optatam Totius), 서문; 9. 16.; 사제의 생활과 교역에 관한 교령(이하 사제 교령) 사제품(Presbyterorum Ordinis), 5. 12. 12.; 거룩한 전례에 관한 헌장(이하 전례 헌장) 거룩한 공의회(Sacrosanctum Concilium), 1. 2. 7. 35. 88. 102.; 일치 운동에 관한 교령(이하 일치 교령) 일치의 재건(Unitatis Redintegratio), 2. 20.

[40] 달의 신비인 교회와 관련된 자료는 마태 4,16; 5,14; 루카 1,79; 2,32; 요한 1,5. 9; 3,19; 8,12; 12,46; 에페 5,8; Ad Gentes, 15. 21. 21; 계시 헌장, 10; 사목 헌장, 10. 21. 43; 교회 헌장, 1. 3. 15. 25.

[41] 그리스도의 성사인 교회와 관련된 자료는 출애 33,11; 요한 15,14-15; 에페 1,9; 2,18; 콜로 1,15; 1 티모 1,17; 2 베드 1,4; 선교 교령, 1. 2. 5. 13; 계시 헌장, 2; 사목 헌장, 19. 21. 45; 교회 헌장, 9. 48; 전례 헌장, 5. 18. 26. 42. 43. 92.

[42] 교회 헌장, 1.

[43] 삼위일체로부터의 교회와 관련된 자료는 마태 10,16. 17. 22. 24; 요한 15,18-25; 17,21-23; 1 코린 15,28; 2 코린 13,4; Col 1,24; 에페 1,10. 5,27; 평신도 사도직에 관한 교령(이하 평신도 교령) 사도직 활동(Apostolicam Actuositatem), 8.: 선교 교령, 1. 2. 3. 4. 5. 7. 8. 9. 11; 계시 헌장, 5. 8. 16. 17; 사목 헌장, 3. 9. 10. 22. 22. 38. 39. 40. 45. 48. 78; 교회 헌장, 2. 3. 4. 5. 7. 8. 9. 12. 13. 15. 16. 17. 19. 22. 25. 39. 40. 41. 48; Patrologia Graeca(ed. by Jacques-Paul Migne. 161 Volumes, Paris, 1857-1866, 13. 96; Patrologia Latina(ed. Jacques-Paul Migne, 217 volumes and 4 volumes of Indexes, Paris, 1878-1890, 39. 54. 76; 일치 교령, 1. 2. 3. 4.

[44] 사목 헌장, 40 참조.

[45] 하느님 나라의 근원이요 성사인 교회와 관련된 자료는 마태 4,17; 마르 1,15; 사도 3,21; 1 코린 10,11; 15,28; 에페 1,10; 사목 헌장, 38. 39. 40; 교회 헌장, 3. 5. 48.

[46] 사목 헌장, 40 참조.

[47] 그리스도의 신비로운 몸이신 교회와 관련된 자료는 갈라 2,19; 3,28; 교회 헌장, 3. 7. 11. 26; 사제 교령, 5. 6; 전례 헌장, 6. 47; 일치 교령, 2. 3. 22.

[48] 교회 헌장, 7 참조.

[49] John Fuellenbach, Church Community for the Kingdom(Revised Orbis Edition), Manila, Logos Publications, 2004, 70-72.

[50] Bonaventure Kloppenburg O.F.M., Matthew J. O’Connell tr., Ecclesiology of Vatican II, Chicago, Franciscan Herald Press, 1974, 39-41. Ref. World Council of Churches, The Nature and Purpose of the Church, Faith and Order paper no. 181.

[51] John Fuellenbach, 위의 책, 61-66.

[52] Avery Dulles, Models of the Church, New York, Doubleday & Company. Inc, 1974.

[53] Avery, Dulles, A Church to Believe In: Discipleship and the Dynamics of Freedom, New York, Crossroad, 1982, 7.

[54] Jerome P. Theisen, The Ultimate Church and the Promise of Salvation, Minnesota, St. John’s University Press, 1976, 162-180.

[55] 2차 바티칸 공의회, 교회 헌장 인류의 빛(Lumen Gentium), 1964. 11. 21,

[56] 2차 바티칸 공의회, 사목 헌장, 기쁨과 희망(Gaudium et Sp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