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사목(직)과 사목신학


1장 사목(직)의 변천

    1. 신약성경

    2. 초대교회

    3. 교부시대

    4. 중세

    5. 트리엔트 공의회

    6. 근대

    7. 제2차 바티칸 공의회




1장 사목(직)의 변천




이 장에서는 교회 사목(직)의 시대적 변천을 1항 신약성경과 2항 초대교회 공동체, 3항 교부시대, 4항 중세, 5항 트리엔트 공의회, 6항 근대 그리고 7항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순으로 알아본다.



1. 신약성경

영국의 신학자 던Dunn은 「신약성경 안에 드러난 일치와 다양성: 초기 그리스도교 성격에 대한 탐구」에서, “우리는 초세기 그리스도교를 연구하면서 사목직의 개념이 너무나도 다양하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했다.1)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의 성경학자들은 사목직이 세 가지 단계를 거쳤다고 공통적으로 밝혔다. 첫째 단계는 부활 이전의 제자 시기이다. 이 시기에 사목직은 전적으로 예수님 그분 자체에 중심을 두었다. 둘째 단계는 첫 세대의 그리스도교 시기이다. 이 시기에 사목직은 두 개의 유형으로 갈라졌다. 첫 번째 유형은 예루살렘이나 코린토 교회에서와 같은 카리스마적인 사목직과 두 번째 유형은 유다교의 시나고가 모형에 기초를 둔 조직화된 사목직이다. 그리고 셋째 단계는 두번째 세대의 그리스도교 시기이다. 이 시기에는 앞의 두 유형들이 사도행전에서와 같이 혼합되었다가, 사목서간들(티모테오 전, 후서, 티토서) 또는 요한의 책들(제4복음서와 요한 1, 2, 3서)에서와 같이 더 갈라지게 되었다.

성경에는 ‘사목직의 다양성’, ‘혼합된 사목직의 다양성’ 그리고 ‘사목적 구조의 다양성’이 있다고 말한다. 코린토 1서 12,4-11과 로마서 12,6-8 그리고 에페소서 4,11-16을 보면 은총과 은사, 직무, 그리고 여러 가지 종류의 사목직이 드러난다. 즉, 사도나 선교자 그리고 주임사제로서의 사목직뿐만 아니라 설교하고, 교육하고, 치유하고, 기적을 행하고, 예언하고, 어느 것이 성령의 활동인지를 식별하고, 방언을 해석하고, 가르치고, 격려하고, 자선을 베풀고, 지도하고, 자비를 베풀고 그리고 집전하는 사목직이 있다. 그 가장 기초적인 형태는 말씀의 사목직이다.

히브리서에 나오는 hiereus(사제)라는 술어는 희생이라는 구약성경의 개념을 실현한 예수 그리스도께만 적용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훗날 베드로 1서 2,9에서 그리스도인들을 ‘선택된 민족이고 왕의 사제들’이란 표현을 썼고, 요한 묵시록 1,6; 5,10; 20,6에서도 썼다. 기원후 2세기 말엽에 이르러 이 단어는 그리스도교 공동체에서 공적인 임무를 수행하고 있던 사람들에 대한 공통적인 명칭이 되었다. 그것은 성체성사의 희생적 본질에 대한 인식이 성장하면서 생겨났고, 또한 성체성사를 집전하는 사람은 사제적 역할을 수행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교회 초기의 사목직들은 두 가지의 유형을 띄고 있다. 첫째는 선교 사업에서 생겨난 그리고 사도들과 예언자들 그리고 교사들을 포함하는 사목직과 둘째, 지역 공동체들 안에 거주하며 그들을 돌보는 일, 즉 유다계 그리스도인 공동체들에게 있어서는 주교들과 부제들로 이루어진 사목직이다.2)


신약성경에 드러난 사목자상은 착한 목자이다.3) 착한 목자는 자기 목소리로 양떼를 불러내어 푸른 풀밭으로 이끌고, 잃어버린 양들을 찾아나서며, 자신의 생명을 바쳐 늑대에게서 보호한다. 그리고 마침내 영원한 생명의 집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착한 목자와 양들의 관계는 서로를 알아보고 목소리를 알아듣고 서로 의지하는 관계이다.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의 사목적 태도는 예언직과 사제직과 왕직으로 드러난다.4)

1) 예언직: 하느님 나라의 선포자이신 예수님(루카 4,18-19 참조)

2) 사제직: 세상의 죄를 대신 짊어진 사제이시며, 중재자, 구원자, 부활하신 주님(로마 8,34; 히브 7,25 참조)

3) 왕직: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신 메시아(마태 20,28; 필립 2,7-8 참조)



2. 초대교회 공동체

이러한 예수님에 대한 체험을 간직한 초대 교회 공동체 역시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다.

①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는 예언적 공동체, 즉 선포 지향적인 공동체이다(사도 6,1-4; 2티모 4,1-5 참조).

② 사제적 공동체는 주님을 찬미하며 그분의 구원적 희생을 기념한다(사도 2,42-26; 20,7.11; 1코린 10,16-17; 11,23-34; 요한 20,26 참조).

③ 왕직을 수행하는 공동체는 친교와 사랑으로 봉사한다. 그래서 어느 누구도 빈곤하지 않다(사도 2,42 참조).

초대 교회 공동체의 ‘사목적 성격’은 주님의 사명에 일치함으로써 공동체적이고 형제적인 활동으로 규정되며 그리스도의 지체를 함께 건설하기 위한 직무의 다양성으로 규정된다(에페 4,11-12; 1코린 12,1 이하 참조)5)


초대 교회 공동체의 전례는 개인을 위한 것이 아니며(갈라 2,6 참조), 공동체는 사도들의 인도하에 형제적 친교와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에 뿌리를 박고 있다(사도 2,42-47; 4,32-35; 5,12-16 참조). 그러므로 초대 교회 공동체의 사목직은 다음과 같이 이루어졌다.


① 섬김과 봉사(diakonia)

신자들은 자신의 재산을 팔아 공동체에 바치고 필요만큼 나누어 받아씀으로써 그들 중에는 궁핍한 이들이 없었으며,6)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자는 벌을 받았다.7) 바오로는 선교 대상자들에게 동료로서 복음을 선포하고,8) 베드로는 지배가 아닌 섬김의 사도직으로 봉사할 것을 명한다.9) 그리고 무엇보다 성령께 의지하여 증언하고 예언한다.10)


② 친교(koinonia)의 영성

교회는 유다인과 이방인이라는 선교 대상의 차이에서 오는 서로의 차이를 지적하며(베드로의 위선: 갈라 2,1-2.11 참조) 존중하고, 공동체 운영을 위한 부제들과 같은 협조자들에게 협력한다(사도 6장 참조).


③ 성령과 함께

성령은 교회를 유다인들11)과 이방인들12)을 향한 선교 사목직13)에 전념하도록 이끈다.14)


착한 목자의 사명15)을 이어받은 초대 교회 공동체는 말씀의 선포와 성사 거행 그리고 친교와 사랑의 봉사와 같은 구원의 표징들을 전했다.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고 친교를 이루며 빵을 떼어 나누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였다.”(사도 2,42) 초대 교회 공동체의 활동에는 말씀의 우위, 공동체 차원, 교역성, 영적이고 선교적인 활력, 예언의 용기가 뚜렷이 드러난다. 특히 봉사와 말씀의 선포가 강조된다. 그리고 공동체는 부활의 기쁜 소식의 선포와 증언 및 가르침을 중심으로 하는 주일 성찬 모임을 핵심으로 삼았다.

그러므로 초대 교회의 활동은 신자들이 각자 다양한 은사와 임무를 가지고 ‘그리스도의 몸을 건설’16)하기 위하여 동등한 품위를 가지고 참여하는 친교의 공동체 활동으로 불린다. 이 참여는 교회의 선교적 활력의 살아있는 핵으로서의 지역 교회들의 인정과 교회 활동에서 평신도들이 공동책임을 지는 참여이다. 그리고 이 활동은 그리스도께서 사도들에게 맡기신 친교와 지도의 임무 및 특별한 사목적 열의를 가진 섬김과 교역성이라는 특징을 갖는다. 초대 교회 공동체의 선택과 신자들 사이의 상호관계는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과 우애로운 친교로 나타난다.

초대 교회 공동체의 사목 활동은 특별히 성령의 활동에 열려있고 강렬한 선교적 열정으로 가득 차 있다. 즉, 성령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와 개인과 백성들의 삶 안에서 능동적으로 현존하시는 일차적이고 공인된 주인공이시다. 성령의 활동에 기꺼이 내맡김으로써 예언의 용기와 진실하고 개방된17) 교회적인 대화가 활발하게 된다.18)



3. 교부시대

성경 후기 시대에 들어오면서 교회에는 여러 가지 사목직이 생겨났다.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우스(†108)의 서간들에는 지역 교회의 주교가 그 지역 장로회(연장자들의 의회)와 부제들에 대한 권위와 여러 성사집전에 대한 관할권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 드러난다. 로마의 끌레멘스(†96)의 작품에서 장로들은 그 공동체의 지도자(higoumneoi)들이라고 불렸다. 그런가하면, 필리피 공동체에 보낸 뽈리까르뿌스Polycarpus의 편지는 그 지역교회의 지도자들인 ‘장로(사제)들과 부제들’을 수신자로 삼았다. 그 편지에서는 주교(Eposcipe)가 없었고 ‘관리’ 혹은 ‘감독’이 장로들에 의해 수행되었다. 디다케(Didache)에도 주교에 대한 언급이 없고 대신 장로들 곁에 연로한 카리스마적 지도자들과 예언자들 그리고 교사들만이 나온다.

2세기 후에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장로들 중 한 사람이 장로들의 의회의 우두머리 혹은 첫째 집정관(또는 행정적 감독관 episcopos)이 되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행정 관료직의 사목직이라는 새로운 모델이 생겨나게 되었다. 공동체가 주교 없이는 모이지 않았고, 공동체 없는 주교도 없었다. 어떤 지역에서는 주교, 대주교, 총대주교라는 위계제도가 생겼고, 이것이 점점 발전되어 4세기 말에는 예루살렘, 알렉산드리아, 안티오키아, 콘스탄티노플, 로마 등의 다섯 개의 큰 관구가 생겨났고, 로마에 황제의 왕좌가 있었기 때문에 로마의 주교가 주교들의 지도자가 되어, 훗날 ‘교황’이라고 불리으며, 그가 신약성경에서 베드로에게 주어진 것으로 여겨지는 전체(보편) 교회와 관련된 그 직무들을 수행했다.19)

히뽈리뚜스(†235)의 「사도전승(Traditio Apostolica)」이 서품식 관습에 대해 다루고 있는 것으로 보아, 3세기 초반에 사목직이 교회법적, 전례적으로 제정되었다고 보여진다. 공동체는 주교의 임명을 성령의 은총으로 간주하여, 성 암브로시우스와 성 아우구스티누스처럼 해당 당사자가 반대하더라도 순명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는 안수와 성령의 내리심을 비는 기도(epiclesis), 혹은 성령께 대한 공동체의 기도로써 취임되었다. 안수는 이웃 공동체들로부터 온 주교들이 수행했다. 성직수여식(서품식)에 따르면 주교의 역할은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죄를 사하고, 성체성사를 집전하고, 장로(사제)들과 부제들의 임무를 감독하는 것이었다.

장로(사제)에 대한 성직 수여식(서품식)은 주교와 그 지역 공동체의 장로들의 안수로써 수행되었다. 그들은 성체성사를 집전할 때 주교 주위에 둘러서거나, 왕관 모습을 형성했고, 장로(사제)는 주교의 허락으로 성체성사를 집전하는 사목자로서 그 주교를 대신할 수 있었다. 당시에는 본당 대신 전체 성곽도시들을 담당하는 교구만 있었다. 그래서 장로(사제)들은 성곽 경계너머의 작은 시골 공동체에 대한 책임을 맡게 되었으며, 그 때부터 장로들 역시 사제(priest)들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부제에 대한 성직 수여식은 장로들과 관계없이 전적으로 그의 주교가 봉사직을 수행하는 데만 결합되어 있었다. 그는 장로들 집단의 일원이 아니라, 전적으로 주교에 의해 임무를 규정받았다.

451년 칼체돈 공의회에서는 교회법 제6조를 들어 특별한 신앙 공동체와 관계없는 어떤 형태의 성직 수여(절대적 성직 수여)도 단죄한다고 명시하였다. 그럴 경우 정부에서가 아니라20) 그에게 성직을 수여한 주교가 봉급을 주어야만 했다.

그리고 4세기에 그리스도교가 국교로 승인되고 성직이 일종의 시민 봉사직으로 변형됨과 동시에 계급과 신분에서 오는 정치적, 경제적 특권과 더불어 발전되기 시작했다.21) 현실을 보다 낮은 형태와 보다 높은 형태로 이루어진 단계적이고 위계적인 것으로 바라보는 신플라톤주의 세계관의 영향으로 평신도 계급(ordo laicorum)과 성직자 계급(ordo clericorum)으로 나눠지기 시작했다. 평신도 계급은 세속에 속한 세상 사람들, 성직 계급은 영신적 영역에 헌신하고 교회의 관리를 책임진 사람들로 구성되었다.22)


교회 교부들이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세우면서 그에 따른 사목활동과 사목구조도 새로 생겨났다. 또한 그들은 교회의 생활을 발생시키고 이어가고 성숙시키며 쇄신하는 복합적인 활동으로 다양한 장소와 문화 및 시대에 부응하는 방식으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현존케 하고 활동하게 만드는 사목 실천을 통해 신학적 반성을 했다.

교부시대 초기에 사목이란 주제가 ‘어머니이신 교회’라는 상징론에서 다루어졌다. 교회는 자식을 낳은 어머니가 되면서 진리와 생명의 중재자로서 사목 활동을 전개한다. 교회는 구원의 중재자이다. 교회의 사목적 배려는 어머니가 지니신 모성으로 교회 안에 있는 모든 것을 포용한다. 교부들의 사목 개념은 하느님께 봉사하기 위해 생명을 바치는 「헤르마의 목자」(Pastore di Hermes)와 「디다케」, 「사도헌장」(Costituzioni Apostoliche), 「사도전승」(Tradizione Apostolica)의 전례 지침들에서 살펴볼 수 있다. 말씀과 성사 생활은 단순히 윤리 생활의 반영이 아니라 그리스도인 생활과 교회 실천의 참 기반이 된다. 그리스도를 뒤 따르고 본받는 것이 신자가 되는 것이고, 예언적이고 성사적인 선물이자 과제가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말씀과 성사의 은총으로부터 시작된다.

교부 시대의 사목활동은 공동체의 면모를 보여준다. 평신도가 교회의 생활과 선교 사명에 깊이 참여하고 신앙의 선포와 가르침, 전례 및 사목 봉사 분야에서 신자 공동체의 활동과 교계적 교역이 깊은 상호 보충적 관계를 가진다. 성 치프리아노의 편지23)에서 치프리아노 주교는 자신의 결정에 대한 백성들의 동의를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구원론적이고 선교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교부 시대의 사목활동은 신앙 선포에 중점을 두고 교리교육을 발전시키며 새로운 백성들에게 선교사를 파견하고 그리스도교 역사관을 전개하는 능력을 갖추게 하고, 신앙과 여러 문화의 관계를 모색하며 필요할 때는 권력자들에게 저항하는 예언자적 용기를 가지게 하며, 구체적인 사랑을 통해 침해할 수 없는 인간의 존엄성과 그 성장에 봉사하고, 이 일을 더 가난한 사람들에서부터 시작하고자 사회 문제들과 정의에 적극적으로 투신하는 신앙을 가지게 한다.

교황 대 그레고리오는 「사목 규범(Regulae pastoralis liber)」에서 이상적인 사목자상을 제시하며, 하느님 말씀과 근본적이고 필수적인 관계, 믿을만한 확고한 증언, 정치 당국 앞에서 가지는 예언자적 자유, 가난하고 억압받는 사람들에 대한 옹호, 복음을 전하고 사도직을 수행하는 기능을 알린다. 그리고 지도자들이 자신의 성소에 대한 명확한 의식, 사목 활동을 향한 자기 행동의 동기에 대한 부단한 검증, 하느님 말씀을 듣고 가르치는데 우선적인 관심, 권력을 소지하지 않겠다는 봉사의 태도, 굳건한 내적 자유, 정의를 위한 진실한 사랑, 자신의 사목 활동에 대한 적절한 훈련과 사목 수행의 지속성을 부단히 검증하도록 요청한다.24)

아울러 이 시대에는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양성하는 예비신자들 위한 조직을 했고, 그레고리오 교황의 선교 사업을 통해 지역적으로 앵글로족과 게르만족에게 복음이 확산되었고, 신앙과 문화 사이의 조화로운 연구를 통해 토착화와 책임감이 불러일으켜졌다.25)



4. 중세

11세기 말 교회법 학자들은 성체성사를 집전하고 죄를 사하는 사제적 권한인 ‘신품권’과 교구와 본당, 혹은 수도 공동체에 관해 사제적 권한들을 행사하는 권위인 ‘관할권’을 구별했다. 이는 봉건제도 하의 로마제국과 율법주의적인 신학이 맞물려 생성된 것이다. 국교화된 그리스도교가 교회 공동체(나 공동체의 부르심) 없이 한 지역의 봉건 영주(성주)로 임명된 자에게 성직을 수여하게 되었다. 국가 권력이 주교에게도 주어진 것뿐만 아니라, 교회의 성직 권한이 국가권력에게 주어지기도 했다. 또한 로마법의 부흥으로 새로운 율법주의 영향하의 권위와 권한은 교회 공동체의 범위를 넘어서 독자적인 가치를 지니게 되었다. 그렇게 됨으로써 사제(사목)직이 그리스도교 공동체에 대한 사목직(봉사직) 보다는 “생활의 신분”으로 변형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사제직이 사제 수품을 받은 개인의 인격에 사제적 권한을 가지게 됨으로써(자유화, 개인화) 신품권과 관할권이 구별되고, 사제직에 “신성한 권한” 이라는 법률가들의 개념이 첨가되었다.26)


교부시대의 ‘어머니인 교회’가 국교화되고 법제화된 중세시대에 넘어오면서 ‘여왕이신 교회’(ecclesia regina)의 모습을 띄게 되고, ‘권한’(권력)의 교회론이 발전하게 된다. 이는 게르만족의 침입과 서구 제국의 붕괴, 문화와 제도의 변모라는 환경의 변화와 ‘신성제국’(sacrum imperium)으로서의 교회 창설로 교회 공동체의 제도적인 면모가 더욱 더 드러나게 되었다.27) 그래서 교회의 선교 사명은 그리스도의 법에 따라 세상에 질서를 부여하는 것이 되었다. 이것은 교회의 신비적인 전망과 분리된 인간에 대한 지배와 주권의식을 드러낸다.28) ‘권한’(potestas)의 교회론과 함께 그리스도교 백성의 생활에 대한 모든 결정의 원천으로 간주되는 교황의 권위에 종속된 단일한 사회로서의 교회라는 새로운 교회관이 전개된다.29) 인간은 누구나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제도 교회에 소속되어야 했고,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었다”(extra ecclesiam nulla salus).30)

이러한 교회론적 시간은 사목 실천에도 영항을 끼친다. 비록 이 시대의 그리스도교 사목이 하느님 나라의 진정한 의미를 전수하였는가에 대해서는 다른 평가를 받을 수 있을지라도, 교회가 그 시대의 인간 사회 공동체로 깊이 들어가고자 했다는 사실에서 교회가 구원의 관점에서 세상을 만나고 세상과 함께 걷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한 이유로 사목에서 신앙 선포의 중심성이 퇴조되고, 설교가 이따금 교회의 웅변술로 변질되며, 전례 및 성사 거행이 신학적으로 빈약해지고, 조직적인 면에서 법률적이고 행정적인 측면들이 두드러지게 되었다. 평신도들은 교회 운영과 활동의 공동책임자로서의 역할이 상실되고 자녀들의 신앙 교육이라는 가정 교육의 역할로 축소되며 교회 활동은 성직자 위주로 된다. 그래서 교회의 공동체 의식은 약화되고, 세속인들에 속하는 ‘세상의 일’과 성직자에게 속하는 ‘교회의 일’이 분명하게 구분되었다.31) 그라치아노는 ‘두 종류의 그리스도인’(Duo sunt genera christianorum)을 언급하게 되었고, 평신도들에게는 백성으로서 지상 재화의 소유와 결혼 및 교회 운영금 부담 등 세속에서 사는 데 필요한 것을 허용한 반면, 성직자는 자기와 다른 사람들을 자신의 '능력'(virtues-덕)으로 다스리는 ‘왕’으로서 하느님께 예배를 드리고 기도와 관상에 헌신하며 고된 세속 일로부터 해방된다.32)

중세 교회는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나 성 도미니코, 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와 같은 성인들이 교회의 본모습을 지키기 위해 헌신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교회 흐름은 현실적인 정치 권력에서 오는 물질적이고 현세적인 혜택과 제도적인 굴레로 말미암아 복음의 참 빛을 드러내지 못했다. 가난한 이들과 죄인들을 우선적인 사목대상으로 선택해야하는 본연의 사명과 본질을 상실하여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시고 가난하고 연약한 인간이 되어 오신 구세주 그리스도의 육화와 수난의 신비를 무색케 하였다.

중세 말기에 ‘생활의 상태’(stati di vita)와 ‘영혼의 돌봄’(cura d'anime)이라는 주제가 사목 안에 생겨나기 시작한다.33)



5. 트리엔트 공의회

교회의 자체 정화운동에도 불구하고, 위클리프와 후스, 1519년 루터, 츠빙글리, 칼뱅의 프로테스탄트(Protestant 개신교) 그리고 헨리 8세의 ‘영국 교회’(England Church 성공회) 등이 가톨릭 교회로부터 분열되어 나갔다. 이러한 교회의 제도적인 분열을 극복하고, 교회의 개혁과 신앙 생활의 쇄신을 통한 교회 재일치를 위해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를 개최했다. 트리엔트 공의회는 「개혁(De Reformatione)」 교령에서 '영혼의 돌봄'이라는 시각으로 그리스도교적 의미의 교회 ‘사목자’의 의무와 과제에 대해34) 가톨릭 신학과 교리교육, 예배, 영성, 신학교 교육이라는 분야에서 숙고하였다.35)

이 때 성 베드로 가니시오와 트레비르의 보좌주교 베드로 빈스펠드가 ‘사목신학’이란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36) 트리엔트 공의회는 대 그레고리오가 묘사한 이상적인 사목자상37)과 연관시켜 교회 생활의 중심이자 고무자로 간주한38) 주교상과 성직자의 양성39)을 교회 개혁의 주안점으로 삼았다. 트리엔트 공의회의 사목지침은 성 가를로 보로메오와 같은 위대한 ‘사목자’의 활동과 업적을 통해 구체적으로 실현되었다.40)

사목직, 특히 서품된 직무 사목(제)직은 ① 주교들과 주임 사제들의 임명에 대한 평신도 귀족들의 간섭과 ② 서품된 사제직에 대한 개혁자들의 반발 및 ③ 권위와 특권의 위계적 제도 형태의 봉건주의 강조와 함께 진행되었다. 그래서 20세기 중엽까지도 사제들이 회중이나 공동체에 대한 사목적인 헌신과의 별도의 독특한 영적 능력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종신부제 제도도 교황, 주교, 사제를 이은 피라미드식 구조 하에 들어가게 되었다. 서품된 사제직에 대한 트리엔트 공의회의 가르침은 17세기 프랑스 사제영성학파에 의해 강화되었다. 그들은 그리스도 자신의 사제직은 그의 인간성이 아니라 신성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에, 성직 수여식을 통해 사제들은 매우 신비스럽고 대단히 영적인 힘(능력)을 나누어 받는다고 했다. 이렇게 위로부터 내려오는 은총의 권한을 받은 주교들과 사제들을 봉사에 투신하는 사람들보다 특별한 영적 능력과 권위를 가진 ‘교회의 사람‘으로 묘사했다.41)

교회를 구원의 효과적인 도구나 제도라고 생각한 교회관은 구원사의 전망을 충족시키지 못했고, 역사 안에서 교회가 계속해서 구원의 사건이 되기보다는 객관적인 교회의 ‘안정성’을 더 고려하고 있기 때문에, ‘선교 사명’보다는 ‘수구’에 비중을 둔 사목을 펼치고, ‘보편적인 친교’보다는 ‘다각화’라는 범주에 치중했다. 성직 중심의 사목 교본들에 나온 의무들은 19세기 중반에 그리스도론적이고 교회론적인 예언직, 사제직, 왕직과 연결되었다.42)

그렇지만 이 시기의 사목은 프로테스탄트의 분열에 대한 영향으로 지나치게 호교론적이고 교회법적인 대응으로 교회의 강한 교계제도를 중심으로 한 중앙집권적이고 획일적인 교회구조를 더 강화했고, 성사의 ‘인효성’보다는 ‘사효성’(opus operatum)을 강조하면서 전승의 고수(nihil varietur)43)로 사목활동을 성직자 중심의 교계활동으로 국한시키고, 지역 교회들과 문화의 다양성 및 사회 복음화보다 우선시한 한계가 있었다. 그리고 근대 세계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사회의 변화에 대한 복음적인 대응을 충분히 다루지 못했다.



6. 근대

정하권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관」에서, 트리엔트 공의회가 나름대로의 제도 개혁과 성직자 양성과 생활 지침을 통해 중요한 기틀을 마련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정신의 적용에 있어서는 퇴행과 폐해가 뒤따랐다고 밝힌다. 스콜라 철학을 토대로 한 조직신학은 성경과 교부들을 바탕으로 했던 실증 신학을 약화시켰고, 교회론은 교계제도론으로 축소되었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을 바탕으로 한 윤리신학은 결의론적으로 흘렀고, 재속 성직자를 준봉쇄 수도자로 양성하고, 신자 개개인의 신앙생활 심화보다는 수계범절 준수에 매달리게 만들었고, 타교파를 열교와 이교로 낙인찍어 교회분열을 반영구화 시켰고, 현실세계에 대한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인식을 심어줌으로써 신자들이 신앙생활을 위해 현실 도피적인 태도를 가지도록 했다고 밝힌다.44) 17~18세기의 트리엔트 공의회의 개혁은 교회를 다소 윤리적이고 교회법적이며 엄격주의적인 신앙생활을 가져오는 부작용도 있었다. 

교회는 프로테스탄트의 종교분열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사회 정치, 문화에서 새로 발생하는 사상과 사조를 경계하고 불신하고 외면하고 교회의 유지와 보존에 더 신경을 씀으로써 교회가 역사 안에 구원의 사건이 되지 못했고 시대의 흐름에서 소외되기조차 했다. 16세기에는 시대의 선구자들을 종교분열로 잃었고, 17세기에는 갈리까니즘(Gallicanism)에 대항하는 헛수고로 지배층을 상실했고, 18세기에는 사고력의 빈곤으로 위대한 사상가들을 다른 영역에 양보하게 되었고, 19세기에는 교육의 후진성 때문에 과학자와 기술자들을 잃었으며, 마침내 20세기에 와서는 노동자와 대중을 잃어버렸다.45)

제도인 교회관46)은 1869~1870년에 열린 제1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절정에 다다랐다. 교황의 무류권을 가진 교회는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완전한 사회’(perfect society)의 모형으로 다른 사회로부터 구분되고 지배한다. 이 교회관은 평신도를 가르치고 은총을 전달하며 통치하는 성직주의(clericalism)와 법률주의(juridicism) 개선주의(triumphalism)의 경향이 강하다. 성직자 중심의 교회 사목활동은 영혼을 돌보는 일로 축소되고, 성직자들의 수덕과 영신수련 및 신자들의 법적, 윤리적, 영적인 삶을 살아나갈 지침을 만들어 제시하는데 치중하였다.47)

근대 각국의 신대륙으로의 여행과 식민지 개척은 교회의 선교 선교열풍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18세기 말까지 시민 사회의 발전과 계몽주의의 태동은 인간의 비판적인 이상을 바탕으로 전승과 권위에 도전하게 되었고, 교회 자체가 사유의 대상이 되었다.48) 근대의 교회는 급변하고 있는 세상과는 다소 거리를 두고 자체 제도 개혁과 성직자들의 내적 영신 수련 및 영혼의 구원이라는 사목 활동을 통해 교회를 유지하려고 했다. 이러한 교계의 노력은 시대의 징표을 읽고 사목적으로 복음의 빛을 밝혀야 하는 교획의 본질과 사명을 충족시키기에는 너무나도 미흡했다. 



7.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를 하느님 백성49)과 동일시하여 세례를 받은 모든 사람은 어떤 모양으로든 그리스도의 한 사제직에 참여한다고 선언했으며50), 서품된 사목직에 대해 신분보다는 오히려 봉사를 강조함으로써 봉사와 영적 권위를 분리했던 과거의 입장을 수정했다.51)

20세기가 시작될 무렵 성 교황 비오 10세 때에, 제2차 세계 대전의 경험과 함께 세속화와 무신론 현상에 맞선 다양한 활동들, 즉 성경, 전례, 교부에 대한 관심들이 태동한다. 또한 세상 안에 평신도 운동이 활발해졌다.52) 50년대 프랑스에서 이른바 ‘공동 사목 운동’이 발생했다. 이 운동은 전승적인 노동 사목과 지역에 만연되어 가는 비그리스도교화 사이에 존재하는 괴리, 분야에 대한 의식에서 생겨났다. 즉 노동자 계층이 전체적으로 교회에서 이탈하고 물질적인 변수에 동화되어 가는 듯한 일상적인 사고방식과 그리스도인의 신앙 사이에 분열이 생겨난 것이다.53)

사목의 쇄신은 여전히 본당을 기본 터전으로 하지만 주변 환경을 보다 차별화시켜 참된 관계를 맺는 데 있다. 사제와 더불어 열심한 평신도들과 전문화된 운동들이 공동 사목의 특별한 주체가 된다. 복음을 전하는 능력은 사회 구조에 들어가 그 구조를 변모시키면서 발휘한다. 사회구조를 복음화하는 데 충분한 자격을 갖는 사람은 본래 평신도임을 인식한다.54) 죠셉 까르댕 추기경은 가톨릭 노동 청년회원들에게 한 연설에서, 노동자들에게 복음을 가장 적절하게 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선교사는 노동자 자신이라고 말했다.

1950년부터 1960년대에 이루어진 이러한 교회 실천의 발전 노선에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스스로를 사목 공의회라고 칭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와 세상 안에서 교회의 선교 사명에 대한 비전, 계시를 파악하는 방식 및 신앙과 복음 선포의 역동성, 전례 개혁, 타종교와의 대화 등의 새로운 요소들을 제공하면서, 사목이란 일차적으로 교황과 주교들에 속하며55), 사제들은 주교들과의 결합을 통해,56) 그리고 평신도는 그들 나름대로 그리스도의 사제직, 예언직, 왕직에 참여한다고 밝힌다.57) 교회 구조는 ‘사목자-양떼’라는 기본틀에 따라 구성된다.58) 같은 선상에서 교계 구성원에 의한 ‘사목직’(pastoral)59)과 평신도들에 의한 ‘사도직’(apostolate)60)이 구별된다. 사목직은 ‘영혼의 돌봄’61)이란 의미를 지니고, 사도직은 ‘현세 질서와 관련’62)을 맺는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사목 쇄신에 대한 참된 정신은 「사목헌장」이라는 「기쁨과 희망」(Gaudium et spes)에서 드러난다. 사목헌장 머리말의 주석1을 보면 ‘헌장 제목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현대 세계의 교회에 관한” 사목 헌장은 두 부분으로 이루어진 것을 하나로 묶었다.

“사목” 헌장이라 한 것은 교리 원칙을 바탕으로 현대의 세계와 인간에 대한 교회의 태도를 밝히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제1부에 사목적 의도가 없는 것도 아니고, 또 제2부에 교리적 지향이 없는 것도 아니다.

제1부에서는 교회가 인간과 인간이 살아가는 세계에 관한 교리를 설명하고, 인간과 세계에 관한 교회의 태도를 밝힌다. 제2부에서는 현대 생활과 인간 사회의 여러 가지 측면들, 특히 우리 시대에 이 일에서 한층 더 긴급하게 보이는 문제들과 과제들을 더 깊이 고찰한다. 따라서 이 뒷부분에서 다루는 교리 원칙에 관련된 문제는 영구불변의 요소들만이 아니라 우연한 요소들도 지니게 된다.

그러므로 이 헌장은 신학적 해석의 일반 규범에 따라 해석하여야 하며, 특히 제2부에서는 본질적으로 관련되는 사물과 더불어 그 가변 상황을 고려하여야 한다.63) 


이 주석에 나타난 사목의 개념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사목은 세상과 현대인을 위한 전 교회의 책무이다. 그러므로 단순히 사목자들뿐만 아니라 전 교회의 활동이다.

② 사목의 내용은 교회 내부의 생활뿐만 아니라 오늘날 그리고 언제나 특정한 상황에서, 모든 사람과 관계를 맺는, 다시 말해서 교회의 보편적 구원 사명과 관계를 맺는 교회 ‘외부의’ 생활을 담고 있다.

③ 비교적 분명한 이론적인 계기와 역사적 상황에 대한 분석-논의의 계기가 모두 동등한 가치가 있음을 인정한다. 그래서 두 부분에는 상호 의존과 상호 보충의 관계가 있다.

④ 헌장 「기쁨과 희망」 전체에 붙여진 ‘사목’이란 명칭 자체가 원칙들과 경험적이고 역사적인 자료들의 만남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주제들을 사목의 영역으로 끌어들인다.

⑤ 인식의 원천인 인간 체험과 복음의 관계는 특히 ‘교회 교리의 보화들’을 언급하고 교회가 ‘시대의 표징들’에 주목하면서 역사로부터 배워야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그 배경에는 하느님의 현존과 선동(provocazione)이라는 시대의 표징들을 ‘읽고’ ‘식별하려는’ 노력이 있다.

⑥ 그리스도교 메시지를 모든 사람들이 접근하고 이해할 수 있게 만드는 의미있는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하다.64)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사목이라는 단어를 교회가 활동하는 구체적인 역사적 상황 안에서 자신의 구원 사명을 대오각성하고 능력을 발휘하여 실현시키려는 노력과 관련시켜 확정하고 정의하는 듯하다. ‘사목’의 핵심적인 뜻은,

-예수님과 초대교회 공동체의 복음 선포 실천

-복음 선포와 성사 거행, 일치와 친교, 사랑의 증언 중심

-그리스도교 생활에 고유한 활동성의 조직화와 ‘영혼의 사목자’의 의무 규정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주신 ‘권한’(potestas)의 수행이 '교역'(ministero)의 근거

-교회의 역사적 생성 과정에서 생겨나는 요구들과 의도적으로 채택하게 되는 문제들 및 교회와 신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에 비추어 역사 안에서 책임 있고 의미 있게 행동하고 유념해야 하는 과제65)

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사목신학’의 지시 대상은 역사적이고 경험적인 과정들의 주체라는 의미에서 교회이다."66) 이 교회의 사명은 역사(세상) 안에서 하느님 나라를 위해 봉사하는 것이다. 이러한 전망에서 ‘신앙의 토착화’ 요구, 그리스도인의 정체와 세속화된 서구의 문화적 상황에서 ‘새로운 복음화’의 문제, 라틴 아메리카 지역에서 강렬하게 지각된 ‘해방’의 문제,67) 아프리카 지역에서 일고 있는 ‘자립’의 문제, 아시아 지역에서 제기되고 있는 타종교와 비신자들과의 관계에서 오는 ‘조화’의 문제, 그리고 교회 내부의 쇄신을 통해 하느님과 형제들 그리고 세상과 맺는 ‘친교’의 문제, 그리고 선의의 세상 사람들과 결성하게 되는 ‘연대’의 문제들이 사목의 영역에 포함된다.

사목헌장의 신학적 의의는 사목헌장이 교회와 세상과의 대화의 첫걸음이며, 교회 차원이 아닌 일상의 일반적인 차원에서 문제들을 검토한다. 그리고 교회는 지상현실이 자립한 것임을 인정하고 인류가 그 자연적 목적에 도달하려고 하는 노력에 협력할 태세를 취했다.68)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사목헌장은 머리말과 현대 세계의 인간 상태라는 서론 그리고 부르심을 받은 교회와 인간이란 제1부에서 인간의 존엄성과 인간 공동체, 우주 안의 인간 활동, 그리고 현대 세계 안의 교회의 사명이라는 4개의 장을 다루고 있고, 몇 가지 긴급과제라는 제2부에서 혼인과 가정의 존엄성과 문화 발전의 촉진, 경제-사회생활, 정치 공동체의 생활, 그리고 평화의 증진과 국제 공동체의 촉진이라는 5개의 장과 맺음말로 이루어졌다.

머리말에서 현대인들이 느끼는 기쁨과 희망, 슬픔과 고민은 그리스도교 제자들도 느끼는 기쁨과 희망, 슬픔과 고민이기도 하며, 교회는 전인류와 연대성을 가진다고 선언한다. 그리고 현대 사회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 인류와 더불어 대화를 나누며 복음의 빛으로 해명해 주고, 교회가 성령의 인도로 그리스도의 구원을 인류에게 풍부히 제공하여 모든 사람들이 한 형제자매가 될 수 있도록 교회가 봉사해야 한다고 한다.

서론에서 인류는 희망을 안고서도 불안해하고 있고, 새로운 역사의 전환기에 세계 도처에서 발생하는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밝힌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으로 촉발된 이러한 변화는 사회질서를 변혁시키고 인간의 심리적, 도덕적, 종교적 태도에 영향을 끼치고 인간과 세계의 불균형을 가져왔다. 인간은 더 좋은 사회적, 도덕적 질서를 바라면서도 끊임없이 실패와 파괴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그러면서도 교회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영을 통해 인간에게 빛과 힘을 주고 그 최종 목적에로 인도할 수 있다고 굳게 믿는다.

제1부 부르심을 받은 교회와 인간에서 공의회는 정화되어야할 현대의 최고 가치들을 신앙의 빛으로 판단하여 그 원천이신 하느님께 연결시키고자 하는 뜻을 밝힌다. 제1장 인간의 존엄성에서 하느님의 모상을 담아 인간은 존엄하게 창조되었지만 죄를 지어 하느님과 이웃 그리고 자기 자신과의 부조화 속에 머물게 되었다. 하느님께 받은 최고의 지성과 존엄한 양심 및 우월한 자유로 자신의 완성을 이루려는 인간의 노력과 그 육적 한계인 죽음 그리고 정신적 죽음을 가져오는 무신론적 경향 등을 다루며 그에 대한 해답이요 이정표로 죄지은 인간의 구속자이신 새 인간 그리스도를 제시한다.

제2장 인간 공동체에서 하느님의 구원계획에 불린 인간은 공동체성과 상호 의존성을 간직하고 서로 자신을 내어줌으로써 완성되며 공동선에 이르게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간에 대한 존경과 반대자에게 대한 존경과 사랑, 본질적인 만인 평등과 사회 정의 실현, 개인주의적 윤리관을 극복, 책임감을 가지고 사회에 참여한다. 특별히 혈육을 취하셔서 사람 사회에 참여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 연대성을 발견하고 완성되는 날 공동체적으로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게 될 것이라고 한다.

제3장 우주 안의 인간 활동에서 공의회는 인간 활동의 의의와 가치가 무엇이고, 어떻게 사용될 것인지, 무슨 목적을 지향하는지 묻고, 노동으로 하느님의 창조사업을 계속하며, 무엇을 가졌느냐가 아니라 어떤 인간이냐와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데에서 인간 활동의 가치와 규범을 찾는다. 또한 인간에게 주어진 현세 사물의 정당한 사용과 자율성 그리고 죄로 인해 타락해버린 인간 활동과 이를 완성시키기 위한 예수님의 빠스카 신비와 그 신비에 참여하는 인간의 활동을 통해 새 하늘과 새 땅을 건설해 나간다는 것을 알리고 있다.

제4장 현대 세계 안의 교회의 사명에서 공의회는 교회와 세계의 상호관계와 교회가 개인과 사회에 주고자 하는 자선활동과 신자들이 현세적인 의무를 충실히 이행함으로써 인간활동에 기여하는 도움 등을 열거한다. 동시에 가정과 문화, 경제, 사회, 정치 각 분야에서 인간 공동체의 발전을 위해 수고하는 사람은 누구나 하느님의 계획을 따라 교회를 돕는 것이라고 밝히며, 시작이며 완성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이 세상과 교회 상관관계의 목적이라고 밝히고 있다. 

제2부 몇 가지 긴급 과제에서 공의회는 제1장 혼인과 가정의 존엄성을 다룬다. 하느님께서 제정해주신 결혼제도를 통해 부부가 서로 사랑하고 하느님의 선물인 고귀한 자녀를 낳아 하느님의 구원사업에 참여하는 가정이 행복을 누려야 한다고 선언한다.

제2장 문화 발전의 촉진에서 공의회는 현대 세계의 다양한 생활의 형태와 문화의 형태를 언급하며, 그 문화를 건설하는 인간과 신앙 안에서 올바른 문화를 발전시켜 나아가야 하는 인간의 소명 그리고 그리스도의 복음과 현대 문화의 다각적인 연관성을 밝히고 여러 문화의 조화로운 발전을 촉구한다. 문화 혜택에 대한 만민의 권리를 인정하고 그 실현을 위하여 인간 전체의 계발을 위한 교육과 문화와 그리스도교의 조화를 문화에 관한 크리스챤의 몇 가지 긴박한 임무로 설정한다.

제3장 경제-사회 생활에서 인간이 경제-사회 생활 전체의 건설자요 중심이며 목적이기 때문에, 인간의 존엄성과 인간의 온전한 사명과 전체 사회의 공동선은 존중되고 촉진되어 경제적 차별을 없애고 경제적 발전은 인간에게 봉사해야 한다고 선언한다. 그리고 경제-사회 생활 전체를 지배하는 몇 가지 원칙으로 노동과 노동 조건, 여가 그리고 기업 참여와 전 경제 조직 참여, 노동 쟁의를 다루고, 현세 재화는 만민을 위한 것이며, 인간의 개인 삶을 영위하기 위하여 재산을 취득하고 공공소유권을 저해하지 않는 사유권을 인정한다는 것도 밝힌다. 아울러 경제-사회 활동을 통해 그리스도 왕국을 건설하도록 촉구한다.

제4장 정치 공동체의 생활에서 공의회는 현대에 변화하는 정치 구조를 언급하며 개인과 사회의 완성에 쉽게 도달할 수 있는 모든 조건들의 총체인 공동선을 정치 공동체의 목적이라고 규정하며 공동 생활에서의 만인의 협력과 서로 독립적이면서도 인간 발전을 위해 봉사하는 정치 공동체와 교회의 관계에 대해 말하고 있다.

제5장 평화의 증진과 국제 공동체의 촉진에서 공의회는 평화가 전쟁 없음이나 적대세력간의 균형유지만도 아니며, 전제적 지배의 결과가 아닌 정의의 실현이며, 하느님께서 인간 사회에 부여하신 질서의 현실화라고 선언한다. 정당한 자기방어를 넘어 무죄한 주민을 살상하는 전쟁은 범죄라고 규정하며, 군비 경쟁을 포기하고 양심상의 이유로 무기사용을 거부하며 다른 방법으로 공동체에 봉사하려는 사람들을 법적으로 허용하라고 권장한다.

제5장의 제2절 국제 공동체의 건설에서 공의회는 과도한 경제적 불평등과 그 대책의 지연, 지배욕과 인간 경멸, 질투, 불신, 교만, 기타 이기적 사욕이 불화의 원인이 되며 폭력을 억제하기 위해 국제기관들의 협력과 조정을 추진하고 평화촉진을 위한 조직체를 구성하라고 요청한다.  그리고 경제와 정치, 인구 증가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국제적인 협력과 신자들과 교회의 원조사업 및 국제 공동체 내에서의 역할을 잘 수행하도록 촉구한다.

맺음말에서 교회는 복음을 각 민족의 상황과 사고방식에 적응시켜서 실천에 옮기도록 권장하며, 모든 사람들 사이의 대화를 통해 서로를 포용하고 그리스도인들의 너그럽고 효과적인 봉사를 통해 하느님 나라의 완성을 희망하도록 한다.







1) James G. D. Dunn, Unity and Diversity in New Testament: An Inquiry into the Character of Earliest Christianity, Philadelphia, Westminster Press, 1977, 103-123면. 리처드 P. 맥브라이언, 위의 책, 41면 재인용.

2) 리처드 P. 맥브라이언, 위의 책, 41-44면.

3) 1사무 17,34-37; 에제 34,1-31; 예레 23,1-3; 시편 22; 요한 10,1-16.

4) 세르지오 핀토르, 위의 책, 25-26면; 파올로 질리오니, 폴 주레너, 위의 책, 17면.

5) 파올로 질리오니, 폴 주레너, 위의 책, 18면.

6) 사도 4,34-35.

7) 사도 5,1-11.

8) 2코린 1,24; 4,5; 1티토 2,7.

9) 1베드 5,1-4; 마태 20,25-28; 23,8.

10) 사도 15,28; 1,8; 2,17-18; 5,32; 교회의 선교 사명 24.

11) 사도 2,33-39; 3,12-26; 4,9-12; 5,29-32; 10,34-43; 13,16-41

12) 사도 13,46-48.

13) 사도 4,20; 1코린 9,16; 2코린 5,14; 교회의 선교 사명 11. 26.

14) 파올로 질리오니, 폴 주레너, 위의 책, 38-39면.

15) 마태 28,18-20.

16) 에페 4,12; 1코린 12,1 이하.

17) 이방인 선교에 대한 예루살렘 공의회의 결정-사도 15,1; 갈라 2,7-9 참조.

18) 세르지오 핀토르, 위의 책, 28-30면.

19) 리처드 P. 맥브라이언, 위의 책, 46-49면.

20) 5세기부터는 그리스도교가 공적인 국가 종교로서 국가에서 봉급을 지급하였다. 리처드 P. 맥브라이언, 위의 책, 51면 참조.

21) 313년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밀라노 칙령으로 신앙의 자유가 선포되고, 395년 테오도시오 황제 때 그리스도교는 로마의 국교가 되었고, 제국 종교와 그리스도교 국가(Christianitas Christendom)가 되어, 지역과 종교의 일치(cujus regio, ejus religio)라는 원칙까지 생겨났다. 정일, 위의 논문, 56-57면 참조.

22) 리처드 P. 맥브라이언, 위의 책, 49-52면.

23) Cipriano, Lettere 14,4 참조.

24) 세르지오 핀토르, 위의 책, 30-33면; 정일, 위의 논문, 54-56; 파올로 질리오니, 폴 주레너, 위의 책, 20-22면.

25) 파올로 질리오니, 폴 주레너, 위의 책, 21면.

26) 리처드 P. 맥브라이언, 위의 책, 52-54면.

27) 세르지오 핀토르, 위의 책, 33면

28) Floristan-M. Useros, Teologia dell' azione pastorale, Paoline, Roma, 1970, 89-91 참조. 세르지오 핀토르, 위의 책, 33면 재인용.

29) Y. Congar, Dalla comunione delle chiese, 288-296; Floristan-Useros, Teologia dell' azione pastorale, 91 참조. "세르지오 핀토르, 위의 책, 34면 재인용.

30) 정일, 위의 논문, 58면.

31) Floristan-Useros, Teologia dell' azione pastorale, 95 참조. 세르지오 핀토르, 위의 책, 35면 재인용.

32) 7, CXII: PL 187, 884; S. Pintor, I laicinella missione della Chiesa, EDB, Bologna, 1987, 29-31 참조. 세르지오 핀토르, 위의 책, 35면 재인용.

33) 세르지오 핀토르, 위의 책, 35면.

34) 위의 책.

35) 리처드 P. 맥브라이언, 위의 책, 54면.

36) Pietro Binsfeld, Enchiridion Theologiae pastoralis et doctrinae necessariae sacerdotibus curam animanum administruntibus, Treviri 1591. 세르지오 핀토르, 위의 책, 35면 재인용.

37) Gregorio Magno, PL 77,13-128 참조. 세르지오 핀토르, 위의 책, 36면 재인용.

38) Conc. Trid. sees. VI, de fer C. 1; sees. XXIII, de fer. C. 1; sees. XXIV, de ref. C. 1 참조. 세르지오 핀토르, 위의 책, 36면 재인용.

39) Conc. Trid. sees. XXIII, de fer. C. 18 참조. 세르지오 핀토르, 위의 책, 36면 재인용.

40) P. Broutin, La lignee episcopale de S. Charles Borromee, Nouvelle Revue Theologique 69, 1947, 1036-1064; B. Seveso, Edificare la Chiesa, La teologia pastorale e I suoi problemi, LDC, Leumann 1982, 47-50 참조. 세르지오 핀토르, 위의 책, 36면 재인용.

41) 리처드 P. 맥브라이언, 위의 책, 55-56면.

42) 세르지오 핀토르, 위의 책, 36-37면.

43) 파올로 질리오니, 폴 주레너, 위의 책, 24면.

44) 정하권,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관, 제1부, 사목 2, 서울, 천주교 중앙 협의회, 1967, 24면.

45) 정하권, 위의 논문, 25-26면.

46) 예수회 신학자인 벨라르미노(R. Bellarmino, 1542-1621) 추기경은 교회를 제도로 보았다(3부 7장 교회론과 사목자 참조).

47) 정일, 위의 논문, 62-63면.

48) Paul Tillich, 19-20세기 Protestant 사상사, 송기득 역,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출판부, 1981, 35-50 참조.

49) 교회헌장, 2. 18. 30. 31 참조.

50) 그러나 제2차 공의회는 또한 일반(보편) 사제직과 직무(서품) 사제직이 ‘정도의’ 차이뿐 아니라 ‘본질적’ 차이로도 구별된다고도 표현했다(교회헌장 10항).

51) 리처드 P. 맥브라이언, 위의 책, 56-58. 60-61면.

52) 파올로 질리오니, 폴 주레너, 위의 책, 24면.

53) F. Boulard, Problemes missionnaries de la France rurale, 2 voll., Paris 1945; Id., Exigences sociologique; Pastorale oeuvre commune, Paris 1956, 21-44; H. De Lavallette, Reflexions sur la Theologie pastorale, Nouvelle Revue Theologique 83, 1961, 593-604; Seveso, Edificare la Chiesa, La teologia pastorale e I suoi problemi, LDC, Leumann 1982, 105-130면 참조. 세르지오 핀토르, 위의 책, 37면 재인용.

54) Pintor, I laici nella missione, 31-32면 참조. 세르지오 핀토르, 위의 책, 38면 재인용.

55) 교회헌장 13. 20. 21. 27. 31. 주교교령 2. 30-31. 35. 교회법 150조, 900조 1항, 965조, 1003조 1항은 사목과 사목직이 유효하게 서품된 사제만이 수행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56) 교회헌장 28, 사제교령 1-2.

57) 교회헌장 33; 주교교령 17; 평신도교령 1; 사제 교령 6; 선교 교령 15. 21.

58) 교회헌장 20-21; Enchiridion Vaticanum(이하 EV) 1/331-335; 주교교령 16. 30: EV 1/608. 652면. 참조.

59) 교회헌장 13. 28. 31: EV 1/318면. 354면. 362면 참조.

60) 교회헌장 33: EV 1/368면; 주교교령 17: EV 1/614면; 평신도교령 1: EV 1/912면; 사제교령 6: EV 1/784면. 선교교령 15. 21: EV 1126면. 1163면. 참조.

61) 교회헌장 27-28: EV 1/1185-1190: 주교교령 30-31: EV 1/652-663.

62) 교회헌장 31: EV 1/362면; 평신도 교령 2. 5. 10-14: EV 1/916면. 932. 949-968. 선교교령 21: EV 1/1163면. 사목헌장 43: EV 1/1454면. 참조.

63) 사목헌장, 머리말. 주석1.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7, 209면.

64) 사목헌장 91. 92: EV 1/1636-1642; 사목헌장 2: EV 1/1320면 참조.

65) 세르지오 핀토르, 위의 책, 40-42면.

66) Seveso, Teologia pastorale fondamentale, 133. 세르지오 핀토르, 위의 책, 42면 재인용.

67) 세르지오 핀토르, 위의 책, 42면.

68) H. V. 스트라렌, 현석호 역, 공의회문헌 해설 총서1-현대세계의 사목헌장, 비그리스도교에 관한 선언, 서울, 성바오로 출판사, 1987, 86면.



H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