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사목(직)과 사목신학


2장 사목신학의 변천

    1. 신약성경의 실천(praxis)

    2. 사목신학의 기원

    3. 사목신학의 태동

        1) 계몽-실용적 사목신학

        2) 성경-신학적 사목신학

        3) 교회론적 사목신학

        4) 성직적 사목신학

    4. 프로테스탄트 사목신학

    5.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 사목신학

        1) 노펠의 사목신학

        2) 아놀드의 사목신학

        3) 르에즈의 사목신학

        4) 체리아니와 스피아치의 사목신학




2장 사목신학의 변천




사목이란 단편적인 신학적 견해의 표명이나 개인적인 사고방식, 단순한 경험적 행동주의, 시대의 유행이나 논쟁적 태도가 되어서는 안 되며, 이론적인 정립에서나 실천적인 적용에서나 계시라는 총체적인 실재에 중심을 둔 신학의 표현이어야 한다. 지금까지 반복되는 사목적 반성과 실천은 ‘하느님 나라’와 ‘사랑’이라는 큰 개념이 우위를 차지하지 못하고, 교회법과 일련의 기술적 행정적인 배려에 바탕을 둔 윤리적, 사도적 활동에 제한되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사목적 반성은 그 기준을 끊임없이 계시와 시대 상황을 연결시켜 파악하여 하느님과 사람 모두에게 충실하고자 한다.

신학은 교회의 신앙 실천과 관련하여 자리잡아야 하고 사목적 목적을 뚜렷이 표현해야 한다. 그래서 사목신학이라는 특별한 신학적 반성이 좀 더 조직적이고 동기 부여를 하는 방식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사목을 고유한 대상으로 채택하는 하나의 특별한 반성이 정당성을 획득하는 길은 신학 전체가 사목을 지향하고 그것을 세분화시키는 데에 사목적 평가를 제시하는 하나의 신학 안에서 찾아야 한다. 신학 분야의 일치가 실제로 신학 내부에 반성적 접근들의 차별화가 있다는 사실을 배제하지는 않는다.

이러한 반성적 접근들은 분석의 윤곽을 확정하고 신학 전체에서 그 한계를 분명히 하는 특정한 인식적 관심과 상응해서 생겨난다. 즉 신학적 인식의 다른 측면들을 배제하지는 않지만, 그 측면들을 결정인자인 특정한 인식적 관심에 맞추어 정돈하는 것이다. 다른 모든 인간 지식의 영역에서처럼, 신학에서 인식을 세분화하여 비판적으로 고유한 대상에 도달하는 능력은 획일적이고 무차별적인 것이 아니라 다양한 반성적 접근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진다.1)


사목신학이라는 특별한 반성은 그리스도론적, 교회론적, 역사-인간학적 질서에 대한 다원적, 종합적 요구에 기인한다. 학자들에 의하면 성경과 교회사와 같은 역사적인 전망, 교의신학과 조직신학과 같은 본질적인 전망, 사목 혹은 실천신학과 같은 현실화 또는 실존적인 전망에서 그리스도의 신비를 다각적으로 바라보는 사목신학의 반성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또는 교회론적 요구와 성경적 주석 및 역사적 사실에 대한 신학 그리고 주님의 말씀이 교회의 사목활동을 통해 ‘지금 여기서’ 실현되어 가야하기 때문에 사목 혹은 실천신학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므로 사목신학이라는 특별한 반성은 교회의 본질과 그리스도적 신비의 기본적인 차원들 및 나아가 현 상황에 대한 신학적 분석에서 출발하는 학문적 반성으로 어떻게 이런 자기실현이 일어나고(비판적인 측면) 또는 어떻게 일어나야 하는지(규범적 측면)를 인식하게 된다. 나아가 교회의 ‘자기실현’에 대한 언명은 교회의 ‘내향성’에 대한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관계적’인 의미를 지닌다. 교회는 영광을 받으셔야 하고 구원계획에 도움이 되어야 하는 하느님과 구원의 봉사를 받을 사람들, 그 사람들의 세상과 역사의 관계에 깨어 일어나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역사는 역사 안에 실제로 살아계셨고 자신의 생명을 바쳐 사람들을 죄로부터 구속하여 구원을 실현하고 부활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영의 활동과 교회의 성사성을 통해 구세주 하느님과의 만남과 하느님의 현존을 체험하는 장소이다. 그래서 우리는 역사를 신앙의 지평과 신학-사목적 기준에 비추어 깊이 연구하고 바라보아야 한다. ‘신앙’은 최상의 ‘실천적’ 반성을 필요로 하며, 이 반성은 현재의 역사적, 인간적 상황에 대한 깊이 있고 정확하고 예언적인 비전과 해석, 그리고 말씀과 성사, 교회의 친교와 사랑의 행동을 하느님과 인간 및 인간과 하느님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일치를 구현할 수 있는 방식으로 구체적인 상황에 적응시키는 비범하고 은사적인 능력에서 형성된다.2)

사목신학은 기존의 사목 모델로 모든 지역의 모든 사람들에게 사목활동을 하려고 하기보다는 다양하고 새로워진 환경과 문화에 가장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깨어 일어나 역사 안에서 말씀하시고 개입하시는 성령의 현동을 바라보아야 하고, 교회의 신비적이고 은사적인 본질을 간직해야 하며, 그리스도론적이고 교회론적인 기반과 원리를 통해 사목적 반성을 진행해야 한다는 신학적 본질에 유념해야 한다.

사목활동은 결코 단순한 인간적인 활동이 아니라 언제나 ‘교회 선교의 사명이자 은총’이다. 사목활동은 신앙에 속하는 것을 ‘아는 것’과 신앙의 눈으로 ‘보는 것’을 내포한다. 이것은 하나의 신학적인 비전-해석이기에 ‘신앙의 지성’으로 이끌고, 이 신앙의 지성은 사목적 반성에서 교회 활동의 특정한 측면들을 유일무이한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상황과 관련시켜 ‘지금-여기’의 전망 안에서 주제로 삼는다. 따라서 사목활동의 검증과 진리의 기준은 효율성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사건에 대한 더욱 완벽한 충실성이 될 것이고, 여기서 사목의 실현과 예수님과 그분의 생명과 해방의 계획을 전폭적으로 받아들이는 것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를 보여주는 용기가 필요하다.3)

그러면 이제 오늘날 교회와 현실 상황 안에서 사목신학에 대한 반성의 기능, 내용 및 과제를 이해하기 위해 사목신학의 형성과정을 바라보기로 하자. 이 장에서는 사목신학의 시대별 변천 과정을 신약성경의 실천(praxis)(praxis)와 사목신학의 기원 및 사목신학의 태동으로서 계몽-실용적 사목신학과 성경-신학적 사목신학, 교회론적 사목신학과 성직적 사목신학을, 프로테스탄트의 사목신학, 그리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 사목신학으로서 노펠과 아놀드, 르에즈와 체리아니와 스피아치의 사목신학을 살펴본다.



1. 신약성경의 실천(praxis)(praxis)

게르벤 하이팅크Gerben Heitink는 「실천신학-역사, 이론, 영역」에서, 사도행전은 인간의 행위 안에서 활동하시는 하느님의 영의 역할을 강조한다고 밝힌다. 이 영의 힘으로 사람들은 복음(kerygma)을 선포하게 하고, 공동체 설립에 서로 지원하도록 하며(koinonia), 이 세상에 설립된 하느님 나라에 봉사하도록 하는(diakonia) 은사(charisma)를 받게 된다.

바오로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안에 은사의 다양한 스팩트럼으로 카리스마적인 공동체의 그림을 그린다(1코린 12,1-31 참조). 그리고 사도와, 예언자, 교사들 그리고 기적을 일으키는 사람들, 병을 고치는 은사, 도와주는 은사, 지도하는 은사, 여러 가지 신령한 언어를 말하는 은사를 받은 사람들로 공동체 내의 순서를 정한다.

티모테오 1, 2서와 티토서와 같은 사목서간들에서는 원로들과 주교들의 그룹이 교회를 넘어서는(over) 권위를 행사한다. 이 모형은 유다 그리스도교 배경을 담고 있다. 원로는 프로테스탄트의 '프레스비테르'(elder)가 될 프레스비테로스(presbyteros)이다. 그리고 가톨릭 전승에서는 사제로 발전한다. 감독이라는 단어는 에피스코포스(episkopos)로 주교이다. 두 번째 세기에 에피스코포스는 프레스비테로이들의 수장이 된다. 봉사하는 부제들은 주교의 협조자들이 된다. 교회가 위기에 처했을 때,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으로 돌아설 수 있게 했다. 테살로니카 1, 2서에 명확히 나오는 것처럼,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께서 곧 돌아오실 것이고 종말이 곡 닥쳐올 것이라고 확신했다.4)

 마태오의 탈렌트의 비유(마태 15,14-30)는 실천신학의 대헌장처럼 알려졌다. 주인은 멀리 여행하면서 종들에게 탈렌트(카리스마-은사)를 나눠준다. “주님의 종들은 지속적으로 그리고 인간의 봉사를 통하여 하느님께서 다시 오시도록 한다.”5) 인간은 구원 역사의 과정에서 주체가 된다. 룰러Ruler는 성령에 대해 말하면서, 하느님께서 인간을 통해 일하고자 하신다는 것을 강조한다. 인간은 하느님과 함께하며 하느님의 뜻을 따르면서 협력한다.6)

피렡Firet은 복음선포와 교리교육 그리고 사목의 발전된 것으로 케리그마(kerygma), 디다케(didache), 그리고 파라클레시스(paraklesis)로 구분한다.7) 볼케스타인Bolkestein은 감독하는(espiskopein: to oversee), 강화하는(stërizein: to strengthen), 성장하는(katartizein: to equip), 양성하는(nouthetein: to discipline), 방어하는(elenchein: to defend), 그리고 건설하는(oikodomein: to build) 동사와 관련하여 교회 양육을 설명한다.8)



2. 사목신학의 기원

신약 성경들의 사목노선들은 그리스도교 사목의 실천을 반성하는 초기 사목-산학자들의 저작들 안에 나타난다. 이러한 작품들은 공식적인 교육을 받지 못한 성직자들이 증가하는 초세기부터 중세 초기 교회의 선교 맥락에 커다란 도움이 되었다. 사목직무에 대한 반성은 교회의 교계제도적 개념에 중심 자리를 차지한다. 3세기 치프리아노는 “교회는 주교 안에 있다(Ecclesia est in episcopo).”고 선언한다. 이 선언은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Extra ecclesiam nulla salus).”로 이어진다.

뮐러Muller에 의하면 초세기 사목신학의 중심 주제는 “누가 그러한 임무에 적합한가?”라는 질문이라고 한다.9) 나지안즈의 그레고리오의 「펜 피게스(Pen Phyges)」와 요한 크리소스토모의 「펜 히에로시네스(Pen Hierosynes)」는 사목자가 되는 것이 세상을 떠난 금욕주의와 동정으로 표현되는 반면에, 성직자들을 평신도들에게서 떨어지도록 했다. 그레고리오 대 교황(540-604)의 「사목 규정집」(Liber regulae pastoralis)은 사목직무에 대한 세세한 신학을 제공한다. 중요한 것은 목자가 되는 일이다. 그러면서도 성령의 활동이 강조된다. 그리스도교 사목자는 신학자나 전문가가 아니라 성령으로 가득 찬 사람들이다. 아우구스티누스(354-430)의 「고백록」은 자서전적 사목신학 책이다. 예비자들을 위한 그의 책 「De Catechezandis rudibus」는 예루살렘의 치릴로의 ‘신비적 교리교육‘(mystagogical catecheses)과 함께 초기 교회의 가장 중요한 교리교육 안내서에 속한다.

초세기부터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한 여성들은 교회의 직무를 수행했다. 로마서 16장에 열거된 프리스카(Prisca), 트리패나(Tryphaena), 트리포사(Tryphosa) 그리고 페르시스(Persis) 같은 여성들을 포함하여, 부제 포이베(Phoebe)등이 그들이다. 남성들과 여성들은 공적 예배에서 예언의 은사를 나누었다(1코린 11,5). 사목서간들은 과부들의 특별한 역할(1티모 5,9)과 여성 부제(1티모 3,11)들이 있었다는 정황을 보여주고 있다. 초기 교회에서 여성들은 선교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들은 여성들을 가르치고, 사목적으로 돌보았다. 그러나 교회가 나라 교회가 되고, 사제들이 보다 많은 책임을 맡기 시작했을 때, 이 상황은 변했다.10) 그후로 수도회에 들어가지 않은 모든 여성들의 활동은 제한되었다.

콘스탄틴 황제(284-337)가 그리스도교로 개종하고, 380년 그리스도교가 국교가 되었고, 성직자의 임무와 책임이 증가했다. 히어링Heering은 그것을 교회가 세계의 권력과 결혼하는 신호로 보았다. 그는 이것을 ‘그리스도교의 추락’(the fall of Christianity)이라고 불렀다. 나라의 패턴을 따라 교회는 ‘디오케인’(dioikein 한 집안을 다스리는, 교구)로 구분되었다. 이 용어는 종말론적인 교회를 상기시키는 ‘빠로키아’(parokia 소외된 이들의 공동체, 본당)라는 단어를 대신하게 되었다.11) 교회의 미래는 보장되었지만, 그 교회는 세상의 것이 되었다. “한 장소, 한 건물, 한 사람”이란 이 지방분권적인 모형은 평신도들이 사제를 직접 만날 수 있게 됨으로써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효과적인 구조가 되었다.

중세시기에 사목신학은 더 조직화된 신학의 하부학문이 되었다. 1215년 네 번째 라떼란 공의회는 지역 교회가 “영혼을 돌보기” 위해 장로들과 평신도들을 이끄는 교사(magister)가 있어야 한다고 결정하였다. 그래서 '고백을 들어야할 필요성'(obligatory auricular confession)이 제기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교회법과 윤리신학이 사목신학에서 구분되었다. 후에 금욕주의적인 사제양성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고, 사목신학은(유혹을 어떻게 극복하는가에 대한) 묵상(meditatio)과 기도(oratio) 그리고 시험(tentatio)을 다루었다.

고백은 잘못된 것을 교정하는 셀틱 전승에 그 뿌리를 둔다 17세기 아일랜드 선교사들은 이 전승을 유럽 대륙에 가져왔다. 그것은 곧 초대 교회의 참회실천을 대신했다. “공적이고, 드문 고백을 대신하고, 회개는 사적이고, 자주, 그리고 모두에게 공통적인 것이 된다.”12) 규칙들은 참회 안내서에 쓰여졌다. 콜롬반의 규칙들은 그 부문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었다. 프로테스탄트는 고백보다는 ‘통회’와 ‘사죄’를 반대했다. 교리교육의 ‘문답’(question-and-answer) 모형은 참회의 책에서 원용되었다.13)



3. 사목신학의 태동

이 항에서는 사목신학의 태동을 계몽-실용적 사목신학과 성경-신학적 사목신학, 교회론적 사목신학 그리고 성직적 사목신학으로 나누어 살펴본다.


1) 계몽-실용적14) 사목신학

1554년 베드로 카니시오Petrus Canisius는 222조목의 교리문답이 실여있는 「그리스도교 교리대전」을 출판하여 실천적 교리교육을 진행하며 ‘사목신학’이란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했다. 1591년 베드로 빈스펠트 주교는 영혼을 돌보는 사제들에게 교리를 제시하고 본당 신부의 고해성사 시험에 필요한 자료를 수집 정리하여 교과서용 사전인 「사목신학교본」을 펴냈다. 이 책에는 성사집행 및 성직자의 의무 및 권리와 관련된 사례에 대해 교회법에서 다루는 지시사항을 취급한 것이다. 1661년 루드빅 엔젤Ludwig Engel은 본당 신부의 권리와 임무를 규정하고 안내한 「본당 신부 안내서」를 펴냈다. 이 책은 18세기 교회 내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 1698년 오프스트래트J. Opstraet는 「착한 목자」를 출간하여 착한 목자상을 사제의 모델로 제시하였고, 1777년 경에는 이 책이 오스트리아의 각 대학의 교과서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이미 1774년 오스트리아의 여제 마리아 데레사의 칙령에 의해 사목신학이 대학의 한 과목으로 설정되었다.15)

이 시기의 사목신학은 국가적이고 실용적이며 성직적이다. 사목신학은 국가와 교회의 공무원으로서의 사제, 사목자에 대한 윤리 규정 및 영성 규범 전집으로 이루어졌다. 사목은 성경적이 아니라 윤리적이었고, 전승과 관습에 바탕을 둔 실천적 면에 치중되어 있다.16)


2) 성경-신학적 사목신학

18-19세기 프랑스 합리주의와 독일 낭만주의 시대에 사일러J. M. Sailer(1751-1832)는 ‘그리스도 안에 계시는 하느님, 죄 안에 있는 세상의 구원’이라는 중심 주제를 바탕으로 설교와 교리교수에 관심을 기울임으로써 사목신학에 기여했다. 그는 합리주의적, 윤리주의적, 공리주의적인 사목에 이의를 제기하고, 성경적이고 복음 선포적인 설교를 통해 창세기에서 묵시록까지의 구원 역사적 흐름을 재발견하고자 했다. 그는 '요셉주의'Josephinism17)적인 사목 개편에 반론을 제기하고, 사제를 그리스도의 신비체 건설에 있어 그리스도의 협력자이자 교역자로 여겼다.

사목 활동의 주체는 윤리담당자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영과 계시를 따르는 ‘사목자’이다. 그는 공무원이 아니라 ‘착한 목자’의 인격과 활동을 이어가는 ‘제2의 그리스도’이다. 그는 사목자를 사목활동의 주체로 보고 성직자를 교회와 동일시함으로써 아직 전반적인 교회론을 이끌어 내지는 못하고 있다.18)


3) 교회론적 사목신학

튀빙겐의 가톨릭 대학 교수 그라프Anton Graf는 신학을 ‘교회의 비판적 자기인식’(the Church's critical self-awareness)라고 정의하고,19) 교회론적인 정향을 가진 ‘실천신학’의 필요성을 제기한다.20) 실천신학의 과제는 교회를 건설하는 데 영향을 끼치는 교회적이고 비교회적인 모든 요인을 연구하는 것이다. 실천신학의 ‘질료적 대상’(반성의 영역)은 ‘사목자’가 아니라 교회이다.21) 그라프는 교회를 성경학과 역사학으로 교회의 과거를 다루는 ‘역사적’ 시각과 교의신학과 윤리신학으로 교회의 현존하는 본질을 다루는 ‘이론적’ 시각 그리고 실천신학으로 미래 교회의 자기 건설을 다루는 ‘실천적’ 시각에서 신학적으로 성찰해야 한다고 했다.

그라프는 사목신학을 실용적 기술론이 아닌 교회가 사람들 사이에서 수행하는 신인적 활동에 관한 학문으로 정의했다. 그가 다룬 사목신학의 요소들을 보면 다음과 같다.

① 하느님, 그리스도, 성령, 은총, 자연 안에서 하느님의 계시 등과 같은 초월적 인자들.

② 축일, 성전, 성경 등과 같은 제도들.

③ 과거부터 이어온 공동체의 영성, 공동체 구성원 상호간의 영향, 교육 및 공동체의 그리스도교 생활과 같은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인자들.

그리고 그는 사목 활동의 주체 또는 동인을 사목자로서의 사제뿐만 아니라 ‘전체 교회’로 이해하기 때문에 ‘사목적’이라는 용어보다는 ‘실천적’이라는 형용사를 선호했다.


4) 성직적 사목신학

그라프는 교회법이 교회의 사목적 통치의 한 측면이기 때문에 사목신학은 교회법이 아니라 교회의 본질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 밝힌 반면에, 그의 제자 암베르게르J. Amberger는 실천신학을 교회법과 사목신학으로 나눈다.22) 교회법은 “백성들에게 영원한 구원을 가르치기 위해 하느님의 영이 교회에 부여한 힘을 통하여 교회를 부단히 건설하는 규범들”을 다룬다. 반면에 사목신학은 “이 일을 위해서 교회의 활동을 전개하며 교회의 자기 건설을 전체적이고 세부적인 면에서, 크고 작은 차원에서 구체적인 경로로 진행시킨다.” 따라서 교회법은 하늘과 공동체의 중개인인 '사목자'의 '실천 혹은 관리 운영(retrix) 신학'이 된다. 벤거Benger는 사목신학을 “사목자가 자신의 성무를 올바르게 운영하기 위한 학문적 입문”이라고 규정하기까지 했다.23) 이러한 복고적 경향은 제2차 세계대전까지 지속된다.

“사목신학은 점점 영성 교리에 대한 가르침이 되어갔고 영혼의 돌봄이 성직자 활동의 요체로 변모되었다. 사목의 내용은 규범들과 전례 규칙, 교회법, 영혼의 돌봄에 대한 구체적인 체험으로 체워졌다.”24) 사목신학의 원천이 역사, 교부들의 가르침, 공의회 및 지역 교회의 활동, 교회법, 성인들과 위인들의 경험들이지만, 교의신학에서 교회활동의 적용 원칙과 모델을 도출해내기 때문에, 사목신학은 부연 설명이 되어버렸다. 교회법은 교회활동을 규제하는 절대적인 권위를 갖게 되고, 사목신학은 교회법에 종속된다. 사회에서는 인간 상황에 대한 이해를 위해 심리학, 교육학, 의학과 정신병리학을, 개인 삶에 영향을 끼치는 사회 문화적인 요소들을 이해하기 위해 통계학과 사회학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교회 내에는 사목의 보조과목으로 사목 심리학, 사목 교육학, 사목 의학, 사목 정신병리학 등이 발전했다.25)



4. 프로테스탄트 사목신학

프로테스탄트 사목신학은 사목자의 사목직을 아주 강조한다. 신앙에 의해 의화되는 것에 대한 새로운 강조는 일곱성사를 관리하는 것에서 말씀을 선포하는 것으로 그 강조점이 바뀌었다. 루터의 쇄신 운동이 신자들의 보편 사제직에 그 강조점을 두었기 때문에 성직자의 역할은 옅어졌다.26) 칼빈John Calvin과 부처Martin Bucer는 다양한 교회 직무들의 차별화를 통해 민주화를 허용했다. 평신도 지도자들이 원로와 부제들로 임명될 수 있었다. 기본 사목모형은 가정방문과 교회를 지도하는 원로들과 사회적인 문제들을 다루는 부제들로 나뉘었다. 부제들에게는 병자와 요구호자와 가난한 이들을 돕는 책임이 주어졌다. 칼빈은 예언직(말씀의 직무자), 사제직(부제), 왕직(원로)에 박사직(교회의교사 또는 신학의 교수)을 추가했다.

프로테스탄트는 교회법, 전례, 선교, 교리교수, 사목직 그리고 교회발전과 관련하여 폭넓은 쇄신을 가져왔다. 부처Bucer는 1538년 ‘영혼에 대한 진실한 배려와 사목자의 적절한 봉사’에 관한 책에서 사목신학의 개관을 제시했다. 그는 말씀과 성사, 그리고 원칙들이 제자리를 잡아야만 하는 공동체로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강조한다. 그는 잃어버린 양을 찾고, 쫓기는 사람을 돌려보내며, 상처받은 이들을 치유하며, 약한 이들을 강하게 하고, 건강한 사람들을 보호하는 다섯 가지 사목적 배려의 영역을 잡는다. 마르부그Marburg의 교수인 안드레아스 히페리우스Andreas Hyperius는 그의 책27)에서 교회의 활동들을 교회 역사, 교회법, 교회 지도력, 상담 심리 그리고 전례로 나눈다. 그는 새로운 사목이 “영혼을 돌봄”(cura animarum)에 특별한 중요성을 부과한다. 보티우스Gilbertus Voetius(1589-1676)는 그의 책28)에서 사목신학 과정에 실천신학(practical theology)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다. 그는 실천신학을 윤리신학과 상황윤리(윤리)와 수덕신학(수덕과 영성), 그리고 교회 행정(전례, 교회법, 설교)로 나눈다.29)



5.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 사목신학

1864년 교황 비오 9세는 가톨릭 신자들이 읽지 말아야 할 '금서목록'(Syllabus of errors)을 발표했고, 1907년 비오 10세는 ‘현대주의’(Modernism)를 단죄했다.30) 제1차 세계대전(1914-1917)이후 교회는 정치, 경제, 사회와 문화적 변동 속에서 새로운 사목적인 문제들을 제기하게 되었다. 교계는 평신도들의 능동적인 협력을 필요로 하였다,31) 칼 막스의 사상이 노동자들 안으로 급속히 파고듦으로써 탈그리스도교화를 이끌었고, 당시 사회의 세속주의와 무관심주의도 교회를 곤경에 빠지게 했다. 그러한 상황에서 1920년 교황 비오 11세(1922-1939)는 가톨릭 활동 단체(Catholic Action)들의 결성을 장려하였다. 1921년 벨기에의 죠셉 까르댕은 “평신도들을 선두로!”라는 기치아래, 신자 노동자가 스스로 노동계에 파견된 복음의 투사가 되도록 가톨릭 노동 청년회(JOC/YCW)를 조직하여 노동계의 복음화를 위해 노력했다. 아울러 노동사제운동도 활발히 전개되었다. 교황은 이것을 ‘교계적 사도직에 평신도들의 협력과 참여’라고 표현했다.

신신학운동이 등장하여 성경과 교부들에게로 회귀하려는 교회의 쇄신운동이 일어났고 이 신학이 가톨릭 활동 단체들의 더 활발한 발전을 가져왔다. 실용주의와 성직중심주의에서 학문적, 신학적, 교회적인 면모를 복원하고자 하는 사목신학은 1943년 교황 비오 12세(1939-1958)는 회칙 ‘그리스도의 신비체’(Mystici Corporis Christi)의 발표를 계기로 ‘신비체’인 교회에 대한 연구들이 활발해졌다.32) 사목연구소가 발족되었고 사목연구 잡지들이 발간되면서 기존의 사목활동 교본들에 취약했던 이론적인 바탕을 더해주기 시작했다. 도시화 현상에서 제기되는 도시 본당의 대형화에 따르는 재편성, 본당이 기초 활동단위로 편성될 때 야기되는 본당 사목활동과 교회의 사목활동의 가능성과 어려움, 시대 상황이 제기하는 윤리문제나 사회 정치적 이데올로기 문제들에 대한 연구들이 이어졌다.33) 이 항에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 사목신학을 노벨의 사목신학과 아놀드의 사목신학, 르에즈의 사목신학 그리고 체리아니와 스피아치의 사목신학으로 나누어 살펴본다.


1) 노펠의 사목신학

1937년 예수회원 노펠Noppel은 「그리스도 몸의 건설」을 통해 묄러와 셰벤의 신학 작업에 기반을 두고 그라프의 정향을 다시 받아들여 사목신학을 “사목적 통치에 대한 가르침, 눈으로 볼 수 없는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직접 혹은 중재하여 세우신 지체들로 이루어진 하느님 백성(1베드 2,10)또는 신자 공동체인 교회를 돌보고 지도하는 가르침”34)으로 정의한다.

1939-1945년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 이 전쟁은 사회적, 정신적 얼개를 붕괴시킨 문화적 충격을 가져왔고, 근대와 현대를 가르는 분수령이 되었다. 이 전쟁은 식민체제의 종식을 가져왔고, 평등과 자유라는 인류공존의 새로운 지주가 되었으며, ‘이천 년대를 향해 열려있는 문’이 됨으로써 교회의 자기이해의 발전에도 분수령이 되었다.35)


2) 아놀드의 사목신학

전후 사목신학은 성직자 중심의 전레사목과 대중사목 및 교회법적인 사목이 지속되는 한편, 우유부단함과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인 쇄신과정이 시작되었다. 이 쇄신과정은 하강 방법론에서 상승 방법론으로 변화되었고, 실천과 체험을 활성화하고 이끌어 가는 원리들을 귀납적으로 규명하는 과학적 사목신학이 등장했다.36)

튀빙겐 대학 교수인 아놀드Arnold(1898-1969)는 사목신학이 고유한 개별적인 대상을 가지고 “말씀과 성사들 및 소위 ‘사목 활동들’이라고 하는 광범위한 내용을 지니는 사목 활동을 하는 교회의 활동 형태들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목신학은 ‘교회의 활동 형태와 관계있는 신학적 가르침’, 좀 더 간략하게 말하면, ‘교회 활동 신학’이다.37) 그는 신자들의 보편 사제직에 대해 강조한다. “모든 세례 받은 사람들은 신앙과 사랑, 기도와 참회를 통해서 죄인들의 용서와 구원의 중재에 협력한다. 그들은 스스로 교회 활동의 주체이자 교회의 활동 형태의 책임있는 주역이 된다. 모든 사람은 완전히 똑같은 방식은 아니지만, 말씀과 신앙, 성사와 전례의 구현에 봉사하도록 불렸다.”

아놀드는 자신의 교회론적인 비전의 기반을 신인 그리스도에 대한 ‘교의적 가르침’에서 발견하는데, 여기서 그리스도의 절대적 중재는 자신의 의지에 의해서 시간 안에서 말씀과 성사, 제단 안에서 교회의 교역을 통해서 확대된다.  “사목신학은 그리스도론과 구원론에 뿌리를 박아 육화의 원리(즉 인간적인 것과 신적인 것의 일치)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38) 그러므로 사목신학은 이 두 인자에 종속되고 인도되며, 이 두 인자 한가운데서 교회는 하느님과 그분의 계시, 인간과 인간의 구체적인 상황 사이에 중재자의 역할을 한다.39) 구원의 중개자로서 교회는 자신의 중재 활동을 통해서 구원 중재자로서의 자신을 실현시켜 나간다.


3) 르에즈의 사목신학

튀빙겐 학파의 도니미코 회원 르에즈Liege(1922-1979)는 1950년부터 1970년까지 프랑스에서 사목신학에 대한 학문적 연구와 반성을 전개한다. 그는 사회 분야를 주도하는 경향에 대해 별다른 사목적 중재 없이 신앙적으로 적응하려는 체험 중심 형태 혹은 자의적, 기술 관료적, 무비판적 형태의 사목적 실용주의와 반복적인 획일성과 현상 유지론을 순진하게 정통으로 간주하고 안주하려는 그릇된 안정감이라는 두가지 위험을 감지한다.40) 그는 교회론에 바탕을 두고 사목신학을 ‘교회 활동에 대한 신학적 학문’으로 정의내린다. 그의 사목신학의 반성 대상은 성직자와 평신도로 이루어진 교회이며, 신학적-사목적 영역은 역사적으로 변화되어 가는 교회 안에서 실행되는 모든 진행과 활동들이다.

르에즈의 사목신학은 기본적으로 교회의 개념과 사목의 과제들 사이에 관계를 맺고 있다. 그는 종말론적인 공동체인 ‘영원한 교회’와 종말론적 공동체의 선취이자 시작인 ‘역사적 교회’사이의 관계를 선택한다. 르에즈는 세상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주님의 명령(마태 28,18-20)에서 비롯된 교회의 선교 사명으로부터 예언적 교역과 전례적 교역 및 사랑의 교역이라는 세가지 교역을 발견한다. 그의 사목신학은 이 세가지 교역들 안의 세가지 원리들을 통해 그리스도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기술한다. 그는 사목활동의 매개변수로서의 그리스도론적 원리와 교회의 역사적 변화 안에서 점진적인 진보를 요청하는 교회론적 원리 및 교역자들의 일치와 성체성사의 극점으로 반드시 수렴되어야 할 선교사명 일치의 원리를 적용한다.41)

방법론적으로 르에즈의 이론 정립은 이러한 ‘그리스론적 혹은 규범적’ 기능 외에도 ‘회고적’ 기능과 ‘투시도적’ 기능을 규정한다. 그리고 최종 출구는 ‘쇄신되고 다시 방향을 잡은’ 실천계획이 된다. 이 모든 것은 근본적인 극단주의의 위험을 피하는 적절한 중개를 통해 이루어진다.

-무엇보다도 사실에 대한 역사적 설명과 구성

-사실에 대한 비판적 분석(역사적, 사회학적, 심리적, 문화적 분석).

-비판적 분석 자료를 사목적으로 해석하기 위해 신앙의 원천으로 돌아감으로써 얻게 되는 전체적인 기준틀 안에 배치.

-경험 자료를 기본적인 사목 기준에서 제시된 가치에 비추어 평가

-새롭게 떠오르는 전망에 따라 교회 활동 방향을 재정립42)


4) 체리아니와 스피아치의 사목신학

사목신학에 대한 반성은 독일, 벨기에, 프랑스에 이어 세계 제 2차 대전 전에 이탈리아에도 영향을 미쳤다. 체리아니Ceriani와 스피아치Spiazzi는 스콜라 신학의 전망에서 사목신학의 학문적인 규약에 대한 반성을 시작했는데, 이 사목신학의 대상은 교회의 직접적인 구원 활동 안에서 하느님 말씀에 비추어 연구된 교회의 신비로 규정된다.43) 체리아니는 사목신학을 ‘교회가 구원 활동을 하도록 만드는 원리들에 대한 학문‘44)이라고 말한다. 1972년에 그는 한 연구45)를 통해 사목신학을 ’실천적 활동성 안에서, 현실적 실천성 안에서 그리스도교 신비‘를 반성하는46) 학문적인 분야로 삼는다. 이러한 반성을 위해 그는 귀납적이고 연역적인 방법을 동시에 활용한다.47) 그는 인문 과학들 안에는 사목신학과 사목 기술의 내용을 이루는 초자연적인 수단들과 실재(교리교수, 성사, 전례, 수덕 실행)가 자리 잡을 곳이 없다“48)고 한다. 그러면서도 체리아니는 인간 경험을 중요하게 강조함으로써 사목신학을 오늘날의 역사 신학과 행동 신학으로 보는 듯하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직전에 체리아니와 더불어 라이몬드 스피아치는 토미즘의 개념을 따라 사목신학의 특성들을 사변적-실천적 학문이라고 기술하고 ‘사목 활동학’, ‘사도직학’, ‘행동신학’, ‘행동 관리 및 적용 신학‘이라고 부른다. 스피아치에 따르면 이런 의미를 지닌 사목신학은 “사제들이 연구된 교회론적 진리들에 비추어 사목직과 사도직에 대해 실천적인 정향을 갖게 하는 기능”을 지니고 개편된 교회론의 영역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사목신학을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 대해서 교회가 교역적으로 하는 협력을 신학적으로 규명하는 학문”이라고 정의내린다.49) 스피아치는 자신의 저작에서 사제직 후보자 양성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표명하고 교회론적 역동성과 신학 과목들 간의 상호교류, 사목 자체의 여러 부분들 사이의 호환성에 관심을 기울이는 적절한 사목 논술을 시도한다.50)








1) Seveso, Edificare la Chiesa, 383-384. 세르지오 핀토르, 위의 책, 43-44면 재인용.

2) BUSSL, La Teologia pastorale, 39. 세르지오 핀토르, 위의 책, 46면 재인용.

3) 세르지오 핀토르, 위의 책, 42-47면.

4) Gerben Heitink, Practical Theology-History, Theory, Action Domains-Maunal for Practical Theology, tr. Reinder Bruinsma, Cambridge, Willia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1999, 91면. 원본 Praktische Theologie, Kok-Kampen, 1993.

5) J. Firet, Spreken als een leerling: Praktish-theologische opstellen, Kampen, 1987. 30면. G. Heitink, 위의 책, 92면 재인용.

6) A. A. van Ruler, Reformatorische opmerkingen in de ontmoeting met Rome, Hilversum, 1965. G. Heitink, 위의 책, 92면 재인용.

7) J. Firet, Het agogisch moment in het pastoral optreden, Kampen, 1968, 60-61면. G. Heitink, 위의 책, 92면 재인용.

8) M. H. Bolkestein, Zielszorg in het Nieuwe Testament, The Hague, 1964, 87면. G,. Heitink, 위의 책, 92면 재인용.

9) A. D. Muller, Grundriss der praktischen Theologie, Gutersloh, 1950, 20면. G. Heitink, 위의 책, 93면 재인용.

10) A. J. Jelsma, Tussen heilige and helleveeg: De vrouw in het christendom, The Hague, 1975, 31면. G. Heitink, 위의 책, 94면 재인용.

11) F. X. Arnold, H. Suster, and K. Rahner, Hanboek van de pastoraltheologie: Praktische theologie over de kerk in haar huidige situatie, Hilversum, 1966, 15면. G. Heitink, 위의 책, 94면 재인용.

12) J. T. McNeill, A History of the Cure f Souls, New York, 1965, 112면. G. Heitink, 위의 책, 95면 재인용.

13) W. Neidhart, Psychologie des Religionsunterrichts, 2d ed. Zurich, 1967, 237-238면. G. Heitink, 위의 책, 95면 재인용.

14) 실용적(실용주의)이란 어떻게 하면 신학의 이론을 생활에 유익하도록 적용할 수 있는가를 가르친다는 의미이다. ‘영혼을 돌보기 위해 신학 이론의 사용’을 위한 지침들이 체계적으로 수집되고 정리되어 신학의 일부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사목신학’이라고 부른다. 정일, 위의 논문, 각주35 참조.

15) Floristan-M. Useros, Teologia dell' azione pastorale, 120. 세르지오 핀토르, 위의 책, 52면 재인용.

16) 세르지오 핀토르, 위의 책, 52면.

17) 오스트리아 황제 요셉 2세(1741-1790)의 종교 정책으로 국가는 교회에 대한 간섭권과 우위권을 갖는다. 교회 재산을 몰수하고 수도원을 해산했으며, 교회의 사목활동에 대해 구체적으로 간섭했다. 정일, 위의 논문, 각주 34 참조.

18) 세르지오 핀토르, 위의 책, 52-53면.

19) J. S. Drey(1777-1853)가 창시한 튀빙겐 학파의 J. A. Mohler(1796-1838)와 J. B. Hirscher(1788-1865)의 제자인 그는 가톨릭 진영에서 진정한 근대 사목신학 분야의 선구자이다. 그는 「실천신학의 현 상황에 대한 비판적 제언」(Kritische Darstellung des gegenwartigen Zustan des der praktischen Theologie, Tubingen, 1841)을 저술하였다. 정일, 위의 논문, 각주 36 참조.

20) A. Graf, Kritische Darstellung des gegenwa rtigen der praktischen Theologie, Tubingen, 1841. 세르지오 핀토르, 위의 책, 53면 재인용.

21) 슐라이어마허Friedrich Schleiermacher(1768-1834)는 실천신학을 ‘신학연구의 화관’으로서 ‘교회를 완성하고 유지 보존하는 방법’으로 보았다. 이것은 성경과 조직신학의 이론을 통하여 교회 생활을 살찌우는 교회운영 기술로서의 사목신학을 말한다. 이것은 성직자를 위한 사목신학을 답습하는 것으로 현존하는 교회의 구조에 대한 비판이 결여된 것이다. 정일, 위의 논문, 각주38 참조.

22) J. Amberger, Pastoraltheologie, 3 voll., Ratisbona, 1850-1857. 세르지오 핀토르, 위의 책, 55면 재인용.

23) M. Benger, Pastoral Theologie, Ratisbona, 1861. 세르지오 핀토르, 위의 책, 2장 주석8 참조.

24) Floristan-Useros, Teologia dell' azione pastorale, 126 참조. 세르지오 핀토르, 위의 책, 55면 재인용.

25) 정일, 위의 논문, 70면.

26) E. Thurneysen, Die Lehre von der Seelsorge. 2d ed. Zurich, 1957. 261(A Theology of Pastoral Care, tr. J. A. Worthington et al. Richmond, 1962). G. Heitink, 위의 책, 95면 재인용.

27) Andreas Hyperius, De Thologo sive de ratione studi theologici, 1556.

28) Gilbertus Voetius, Selectae disputationes theologiae, 1959.

29) G. Heitink, 위의 책, 95-96면.

30) 정일, 위의 논문, 주석41 참조.

31) C. Jamison OSB, u a, To Live is to Change, Rejoice Publications, 1995, 58-59. 정일, 위의 논문, 71면 재인용.

32) 세르지오 핀토르, 위의 책, 56면; 전광진, 교회헌장에 나타난 교회 개념으로서의 하느님 백성, 현대 가톨릭 사상, 대구 효성 가톨릭 대학교, 1988, 158-159면 참조; 전광진, 교회헌장에 나타난 교회 개념으로서의 그리스도의 몸, 현대 가톨릭 사상, 대구 효성 가톨릭 대학교, 1988, 184-187면 참조.

33) 정일, 위의 논문, 72면.

34) C. Noppel, Aedificatio Corporis Christi, Aufriss der Pastoral, Freibur, 1937, 1. 세르지오 핀토르, 위의 책, 56면 재인용.

35) 정일, 위의 논문, 72-73면.

36) 위의 논문, 74면.

37) F. X. Arnold, Was ist Pastoraltheologie, Anima 14, 1989, 194-198. 세르지오 핀토르, 위의 책, 57면 재인용.

38) F. X. Arnold, Grundsa tyliches und Geschichtliches zur der Seelsorge. Das Prinzip des Gott-Menschlichen, Freburg, 1949. 세르지오 핀토르, 위의 책, 57면 재인용.

39) 세르지오 핀토르, 위의 책, 57면.

40) P. A. Liege, Introduction, F. X. Arnold, Serviteurs de la foi, Toumai, 1957, VIII-IX; Id, Pour une Theologie pastorale cate chetique, Revue des sciences phlosophiques et theologique, 39, 1953, 3. 참조. 세르지오 핀토르, 위의 책, 59면 재인용.

41) P. A. Liege, Cours de Theologie pastorale. Theologie pastorale fondamentale, ISPC, Paris, 1969, 8-15 참조. 세르지오 핀토르, 위의 책, 61면 재인용.

42) 세르지오 핀토르, 위의 책, 61-62면.

43) G. Ceriani, Introduzione alla Teologia pastorale, Paoline, Roma, 1961; Id, Introduzione alla definizione della teologia pastorale, Seminarium 15, 1963, 633-694 참조; R. Spiazzi, Notula de Theologie pastoralis natura et ratione, Angelicum 34, 1957, 418-422; Id, Manuali di Teologia pastorale, 4 voll., Torino 1964-1967; Id, Il ministero pastorale oggi, IPAG, Manuali 1979 참조. 세르지오 핀토르, 위의 책, 62면 재인용.

44) G.  Ceriani, Introduzione alla Teologia, 153. 세르지오 핀토르, 위의 책, 62면 재인용.

45) G. Ceriani, La pastorale come scienza e l'esperienza umana oggi, Studi Pastorali 5, 1972, 21-40 참조. 그는 사목신학의 학문적인 특성들, 오늘날 사목신학에 대한 실증 과학의 기여들, 오늘날의 역사신학으로서의 사목신학에 대해서, 행동 신학으로서의 사목신학에 대해서 연구했다. 세르지오 핀토르, 위의 책, 62면 재인용.

46) G. Ceriani, La pastorale, 22. 세르지오 핀토르, 위의 책, 62면 재인용.

47) 위의 책, 24. 세르지오 핀토르, 위의 책, 62면 재인용.

48) 위의 책, 34. 세르지오 핀토르, 위의 책, 62-63면 재인용.

49) Spiazzi, Il ministero pastorale oggi, 24. 세르지오 핀토르, 위의 책, 63면 재인용.

50) 위의 책, 25-32 참조. 세르지오 핀토르, 위의 책, 63면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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