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사목(직)과 사목신학


3장 현대 실천사목신학의 동향

    1.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유럽 교회활동 실천사목신학

        1) 실존적 교회론과 사목신학

        2) 교회 활동의 신학인 사목신학

        3) 예수님의 일에서 출발하는 사목신학

        4) 변화를 위한 현재의 교회 실천에 대한 반성인 사목신학

        5) 그리스도교적 체험 해석인 사목신학

    2. 북 아메리카 관계-행동 실천사목신학

        1) 임상 교육으로서의 사목신학

        2) 관계의 전망 및 행동과학으로서의 사목신학

    3. 라틴 아메리카 해방 실천사목신학

        1) 해방 신학

        2) 라틴 아메리카 기초 교회 공동체

    4. 아프리카 육화-자립 실천사목신학

        1) 육화의 신학

        2) 아프리카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

        3) 룸코 연구소

    5. 아시아 조화 실천사목신학

        1) 아시아의 사목신학적 반성

        2) 아시아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

        3) 조화의 영성

        4) 아시아의 통합 사목적 접근

    6. 한국의 친교-참여 실천사목신학

        1) 가난하고 소외된 계층의 기쁜소식인 교회의 사목활동

        2) 한국 교회의 특징적인 사목활동

        3) 한국 소공동체




3장 현대 실천사목신학의 동향




이 장에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현대 실천사목신학의 동향을, 1항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유럽 교회활동 실천사목신학을 실존적 교회론과 사목신학, 교회 활동의 신학인 사목신학, 예수님의 일에서 출발하는 사목신학, 변화를 위한 현재의 교회 실천에 대한 반성인 사목신학, 그리고 그리스도교적 체험 해석인 사목신학으로, 2항 북 아메리카 관계-행동 실천사목신학을 임상 교육으로서의 사목신학과 관계의 전망 그리고 행동과학으로서의 사목신학으로, 3항 라틴 아메리카 해방 실천사목신학을 해방 신학과 라틴 아메리카 기초 교회 공동체로, 4항 아프리카 육화-자립 실천사목신학을 육화의 신학, 아프리카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 그리고 룸코 연구소로, 5항 아시아 조화 실천사목신학을 아시아의 사목신학적 반성과 아시아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 조화의 영성, 그리고 아시아의 통합 사목적 접근으로, 6항 한국의 친교-참여 실천사목신학을 가난하고 소외된 계층의 기쁜소식인 교회의 사목활동과 한국 교회의 특징적인 사목활동 그리고 한국 소공동체로 나누어 알아본다.



1.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유럽 교회활동 실천사목신학

이 항에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유럽 교회활동 실천사목신학을 실존적 교회론과 사목신학, 교회 활동의 신학인 사목신학, 예수님의 일에서 출발하는 사목신학, 변화를 위한 현재의 교회 실천에 대한 반성인 사목신학, 그리스도교적 체험 해석인 사목신학으로 알아본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에서 사목신학이라는 표현은 전례헌장에 단 한 번 나오지만,1) 모든 신학 과목들이 사목적 차원을 지녀야 한다고 요구하면서,2) 사목신학이 서품된 성직자와 다른 사도직 활동가들의 교역과 명확한 관련을 지닌 교회 생활의 전개에 대한 이론이란 의미를 지닌다고 정의한다. 「사제 양성 교령」에서는 교리교수, 설교학, 전례 사목, 사회구호 사목, 냉담 교우와 비신자 사목, 전체 신자와 수도자들의 영적 지도 등이 특수 사목신학 분야에 들어간다고 설명하며,3) 사목신학의 이론적 특성과 사목 기술과 연관한 실습과 훈련을 받도록 요구하고 있다.4) 그리고 인간 과학의 성과들을 이해하고 그것들을 사목 활동에 활용하도록 하는 것을 현대화된 사목신학의 새로운 과제로 삼았다.5)

미달리M. Midali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사목신학과 그 영역 및 인간 과학과의 관계를 금세기 전반기의 개혁 시도들과 가톨릭 교본의 작업을 수용하여 이해하고 있다. 그리고 반성의 영역을 교회일치 운동, 여러 종교들, 선교학을 비롯하여 광범위하게 확장함으로써 어떻게든 그것을 넘어서고 있다. 요컨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혁신적인 공헌은 사목신학에 대한 명시적인 표명을 통해서가 아니라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실행을 신학적-사목적 반성의 방식으로 해나감으로서 이루어졌다.”고 말했다.6) 아울러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변화된 환경과 다양한 문화들에 적절하게 복음을 선포하기 위한 방법들과 수단들을 찾고 개발해야 한다고 밝힌다.7)


1) 실존적 교회론과 사목신학

1960년대 독일에서 아놀드Arnold, 클로스터만F. Klostermann, 라너K. Rahner, 슈르V. Schurr, 베버L. M. Weber가 공동 편집한 「사목신학 교본, 오늘날 교회의 실천신학」(Handbuch der Pastoraltheologie. Praktische Theologie der Kirche in iher Gegenwart)이란 교본을 편찬한다.8) 이 책은 사회 안에서 일어나는 심각하고 광범위한 구조의 변화는 세상 안에서 교회의 입지를 개편해야 한다는 문제를 제기하면서, 사회학적, 교회론적, 실천-사목적인 다양하고 엄밀한 요구들에 대응하려고 했다.

라너(1904-1984)는 스콜라적 모델에 따라 사목신학의 학문성을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① 사목신학의 ‘질료적 대상’ 또는 반성의 일반적인 영역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제시된 바와 같이(사목자뿐만 아니라)교회 생활 전체이다.

② 사목신학의 ‘형상적 대상’ 또는 특수한 영역은 교회가 미래에 자신을 마땅히 건설해야 하는 방식을 구명하기 위해 현실 상황에 대한 신학적 반성 또는 신앙의 분석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 반성은 교회의 현실이 그 본질에 상응하는가를 신학적으로 판단하거나 식별하는 비판적 전망, 지금 여기서 하느님의 뜻을 어떻게 실현해야 하는가를 규정을 통해 바라보는 규범적 전망, 구체적인 상황에서 교회가 어떻게 복음을 선포할 것인가 하는 프로그램과 선택의 제안을 통한 전략적 전망이란 세 가지 방향으로 전개된다.9)

그는 “교회가 신앙과 희망, 그리고 사랑을 통해 그리스도 안에 궁극적(종말론적)이고 충만한 하느님의 계시(하느님의 자기 나눔)를 간직하고 있는 조직적이고 합법적으로 설립된 공동체로서 세상을 위하여 실재와 진리로서 존재한다.”10)고 한다. 그러므로 “사목신학은 교회가 교회로서 자신의 본성을 충만히 실현하는데 있어 자신에게 주어진 과업을 과학적이요 신학적으로 탐구하는 것이다.”11) 라너는 교회의 역사적 차원을 직시한다. 교회는 창립 이후 역사 안에서 현실이라는 상황의 변화에 대응하여 구성원들의 자유로운 선택에 의해 만들어져 왔고, 늘 성령의 인도로 그리스도의 교회가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사목신학은 현실 교회를 그리스도의 교회로 나아가도록 점검하고 평가하며 제안한다.12)


2) 교회 활동의 신학인 사목신학

스페인어권에서는 아놀드와 르에즈를 이어받아 플로리스탄과 후세로스가 책을 통해 사목신학을 전개한다.13) 그들은 ‘신학적 반성의 단계에서 사목 기준에 대한 하나의 종합’14)을 교본으로 제공하면서, 사목신학의 질료적 대상과 반성의 영역을 다음같이 나눈다.

① 예언자적 교역 혹은 모든 단계에서 하느님 말씀의 선포(복음화, 교리교수 또는 설교)

② 전례적 교역 혹은 성사, 성찬 및 하느님께 대한 찬미의 표현으로 나타나는 예배 교역 거행

③ 관리 운영적 교역으로 통치(지도)와 자선 및 그리스도교의 전반적 발전으로 나타나는 사목적 배려 또는 봉사의 사목15)

그들에게 있어 “사목신학이란 현재와 미래의 상황 안에서 교회의 활동 혹은 구원 활동의 실현을 신학적으로 점검하는 학문”16)이다.17)


3) 예수님의 일에서 출발하는 사목신학

슈스터H. Schuster는 사목신학의 강조점을 교회론에서 ‘예수님의 일’(die Sache Jesu)로 옮긴다.18) 예수님의 일은 ‘예수님의 복음’과 ‘하느님 나라’라는 표현, 그리고 예수님과 제자 공동체의 실천을 가리킨다. 예수님의 일은 인간의 일인 동시에 하느님의 일이다.

모든 사목 활동의 방향을 결정하는 규범적인 원리가 되는 예수님의 일에 비추어 사목신학은 교회의 표현 양식들이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구체적인 상황 안에서 예수님의 실재를 효과적으로 제시하는가, 혹은 실천이 예수님의 실재로 다가가려는 사람들에게 방해가 되는가, 또는 하느님 아버지께서 보내신 선물인 예수님 안에서 체험할 수 있는 사랑, 희망, 정의 및 자유라는 표현들이 오늘날도 여전히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표현인가를 비판적으로 검증하는 과제를 가지고 있다.19)


4) 변화를 위한 현재의 교회 실천에 대한 반성인 사목신학

클로스터만F. Klostermann은 ‘예수님의 공동체’가 오늘날의 사회 현상과 관계를 맺는 교회에 ‘종말론적 자극’(미래를 향한 긴장)과 ‘본질적인 공동체의 차원’이라는 특징을 가진다고 말한다.20) 사목신학의 과제는 ‘교회의 모든 생활이 어떻게 지금 여기서 그리고 자신의 역동성 안에서 미래에 실현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반성의 이유와 모델을 제공하는 것이다. 사목신학은 하느님과 그리스도의 영이 계속 활동함으로써 언제나 새롭게 미래에 건설되는 예수님의 공동체에서 계시와 신앙이 어떻게 구현되는가를 반성한다.

그는 이 책에서 첫째, 미래의 교회 모델을 전망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전승적인 교회 공동체의 모델을 점검한다.

① 교회를 최종적으로 창립하신 그리스도와 교회 간의 유대

② 교회의 사도직 구조와 예언적 구조 및 그들 상호간의 긴장.

③ 교회 생활에 뚜렷한 구조적 윤곽을 새겨 넣으시는 성령의 역할

④ 타인을 향한 교회의 직능, 즉 세상에 열려있는 대화적이고 선교적인 교회의 구조 및 정치적 구조

그리고 두 번째, 이런 기본 개념들에 비추어 현재의 ‘변화’ 상황 안에서 교회의 교역과 직능 및 그들의 상호관계를 서품 교역자와 수도 공동체, 평신도와 특별히 관련시켜 연구한다.

세 번째, 이런 기본 개념들이 여러 단체에서 구체적인 미래의 교회를 위해 갖는 의미들을 보여준다.21)


5) 그리스도교적 체험 해석인 사목신학

반 카스터M. Van Caster22)는 브루셀의 ‘생명의 빛’(Lumen Vitae) 센터와 간행물에서 삶에 대한 신앙의 해석에 바탕을 둔 교리교수적 전망에서 사목반성을 전개했다. 그는 특히 구원과 계시의 장소로 간주된 체험에 대한 접근 모델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두 가지 사목적 접근 유형을 제시한다.

첫 번째, 삶은 점진적으로 통합되어야 할 가치들을 옮길 수 있는 실재이다.

두 번째, 체험은 분명한 신앙의 응답과 그리스도교 책무를 요구하는 호소의 자리이다.

사목은 근본적인 물음(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을 제기하는 일상에서 출발해서 삶의 총제척인 의미를 파악하게 함으로써, 계시가 주는 응답을 쉽게 받아들이게 하고, 신앙의 내용들(특히 그리스도의 삶의 계획과 인격)을 구체적인 생활에서 제기되는 중대한 물음에 대한 적절한 대답으로 제시한다.23)



2. 북 아메리카 관계-행동 실천사목신학

이 항에서는 북 아메리카 관계-행동 실천사목신학을 임상교육으로서의 사목신학, 관계의 전망 및 행동과학으로서의 사목신학으로 알아본다.


1) 임상 교육으로서의 사목신학

1950년대부터 미국에서는 병원에서 환자들에게 사목적으로 봉사할 수 있도록 신학생들에게 임상 사목 교육(Clinical pastoral education: CPE)을 실시했다.24) 이 교육은 성직자와 신학생, 사도직 봉사자들을 위한 일련의 사목 상담(the pastoral-counseling movement)25)과 연관하여 사목 훈련 과정(Clinical pastoral training)으로 이어졌다.26) 이는 학문적인 교육 이후 훈련과 지도를 통한 지속적인 교육으로 이어지는 필수적인 사목기술로 간주되기도 했다.27) 이것은 또한 사목 훈련과 실습 및 경험을 통한 임상 사목 교육이 모든 사목자들에게 권장되기도 한다.28)

또한 이러한 전망은 그리스도-유다교의 전승 안에서 1985년 프라이드만E. H. Friedman에 의해 사목의 치료적 접근과도 연결된다. 그리고 카츠R. L. Katz의 사목 상담과 함께 진행되기도 한다.29) 그리고 영적인 접근 방법으로서, 메테Mette와 스타인캠프Steinkamp의 패러다임과 연관되어, 신적인 체험 안에서 행복과 갈망 또는 구원과 해방이라는 요소들 안에서 심리치료의 내면화를 생각하게 했다.30)


2) 관계의 전망 및 행동과학으로서의 사목신학

북 아메리카에서 발달된 사목적 전망은 사목신학을 ‘행동 과학’으로 정의한다. 대표적인 신학자는 장로교 심리학자인 서워드 힐트너Hiltner31)라 할 수 있다. 그는 그리스도교적 실천 안에 있는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의 계명에 바탕을 둔 ‘사목적 관심’이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그리고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관계는 분리시킬 수 없다고 한다. 그는 사목신학을 “신학적인 물음을 가지고 시작해서 사목자와 교회의 모든 행동들을 그리스도교의 사목적 관심이라는 전망에 비추어 신학적 답변을 끌어내는 활동적인 의미에 초점을 두는 신학 분야”라고 정의한다.

그는 사목신학을 비롯하여 현재 교회 실천을 다루는 ‘활동에 관심을 갖는 과목’과 교회 실천에 직접적인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그런 실천의 신학적 의미, 정당성 및 지원에 중점을 두는 성경, 역사, 조직, 윤리 등 ‘논리에 역점을 둔 신학 과목’으로 나눈다. 그러므로 사목신학은 교회 활동에 대한 신학적 반성이다. 그는 공동체 지도, 사목 사회학, 전례 사목 분야처럼 공동체 육성에 필요한 일치에 대한 봉사와 신약성경에서 교회에 맡겨진 봉사와 같은 ‘조직화’ 영역과 교리 교수법, 설교학, 교회 출판학과 같이 복음을 전달하는 과정과 관련된 ‘전달’ 영역, 그리고 사목 심리학이나 심리 치료를 동반하여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 대한 봉사인 ‘인간에 대한 봉사’ 영역으로 나눈다.32)

마르셀 르페브르Lefebvre 역시 사목신학을 ‘실천과학’으로 본다.33) 그는 교회 활동으로 분석할 구성 요소들은 도달해야 할 단순하거나 복잡한 목표, 사목활동이 도달하기 위해 지나야 할 경로, 경로를 따라서 목표를 통제하며 사목활동을 수행하면서 그 목표를 추구할 수 있는지 여부나 사목활동이 그 목표에서 벗어났는지를 검증, 계획된 활동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수단과 방법의 연구, 활동과 활동 진행에 대한 정보를 수행하기 위한 수단의 규정, 실행에 옮기기 위해 취해야할 선택 등이라고 한다.

그는 사목활동의 여정과 그 실현을 위해 활동가와 수용자 및 성취해야할 행동유형의 출발상황에 대한 분석 등의 ‘준비’와 과제의 배분, 활동의 관점에서 시간, 방식, 방법들의 프로그램화인 ‘조직화’, 특정활동을 여러 단계에서 가능한 한 최대로 첨가물을 붙여 보다 광범위한 활동계획 안에 넣는 ‘조정’, 배당된 과제에 대한 활동가들의 충실성, 결과들의 성질, 제기되는 난관, 조성된 상황의 새로운 국면들에 대한 ‘실시의 통제’, 여러 국면에서 결정 책임자들, 결정과 관계되는 동기 및 중요한 배경, 결정이 담고 있는 뜻들의 ‘결정’을 잡는다.

중부 유럽의 제르파스Zerfass34)가 힐트너의 사목적 이론 전개를 이어받아, 사목신학을 통해 ‘그리스도교 실천, 교회 실천의 변화를 위해 분석하는 과학적 과제’와 ‘사목활동가를 양성하는 교육적 과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그는 행동하고 상호 영향을 끼치는 인간 중심성으로서의 ‘주체성’과 모든 인간 행동이 사회적으로 제약된다는 ‘상호 주체성’ 그리고 인간 행동은 인간적인 사전 선택에 기반을 두고 있고, 미래를 향한 자유로운 선택에 열려있다는 ‘역사성’을 사목적 반성의 중심 분야로 삼는다.35)



3. 라틴 아메리카 해방 실천사목신학

이 항에서는 라틴 아메리카 해방 실천사목신학을 해방 신학, 라틴 아메리카 기초 교회 공동체로 알아본다.

라틴 아메리카인은 세상에서 자신들의 처지를 자각했다. 라틴 아메리카는 선진국 주도로 펼쳐지는 세계경제체제에 종속적으로 편입되어 마치 노예처럼 착취당하고 있다는 현실을 이해한 것이다. 그래서 자신들을 억누르는 종속적 노예 처지에서 해방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신자들은 자신들의 억압적 현실을 복음의 빛으로 비춰보고, 그 억압적 현실을 복음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나누고, 함께 실천하기 위해 모였고, 그 모임이 ‘기초 교회 공동체’Basic Christian(Ecclesial) Community: BCC/BEC였다. 기초 교회 공동체는 주교회의에서 사목정책으로 결정하여 만든 조직도 아니고, 캠페인이나 운동도 아니며, 선진국 경제체제에 대한 무력 투쟁의 점조직이거나 별동부대도 아니다. 훗날 라틴 아메리카의 주교들은 해방의 실천을 가져오는 주체는 기초 교회 공동체이고, 이 기초 교회 공동체의 해방 실천에 대한 반성이 해방신학Liberation Theology이다. 그러므로 이 항에서는 기초 교회 공동체의 해방 실천의 반성인 해방 신학과 기초 교회 공동체를 살펴본다.


1) 해방 신학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해방 신학의 영향과 노선 위에서 해방 실천에 기여하기 위해 많은 작품들과 사목적 반성들이 생겨났다. 1968년 라틴 아메리카 주교들은 ‘메델린 주교회의’에서 새로운 복음화를 위한 근본적인 선택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선택, 기초 공동체를 통한 전체적인 해방과 교회를 만드는 새로운 방식을 위한 책무.’36) 구티에레즈Gutierez는 신학을 신앙에 비추어 본 세상 안에 있는 교회 활동에 대한 비판적 반성으로 정의한다.  주교들은 기초 교회 공동체들이 자신들에게 가해지는 사회적 불의를 자각하고 대안을 만들어 스스로 해방을 이루는 주체이며, 전체 백성들에 해방의 기쁜 소식을 알리며 해방을 시작하는 ‘의식의 축’이라고 보았다.37)

해방을 향한 교회의 노력은 군사 정권의 탄압을 받게 되고, 유럽의 몇몇 공식적인 교회분야에서 비판적인 입장을 표명하면서 긴장이 조성되었다. 바오로 6세의 「현대의 복음선교」38)와 1977년 ‘인간발전과 그리스도교 구원’이라는 주제로 발표한 국제신학위원회의 선언문도 해방신학의 한계와 긍정적인 측면을 밝혀주고 있다.39)

1979년 푸에블라 모임은 해방신학의 이데올로기적인 위험성을 경계하면서도 해방신학의 많은 공헌을 받아들이고 친교와 참여의 관점을 지닌 복음화 및 문화 복음화의 전망과 함께 해방을 가져다주는 복음화의 전망을 펼친다. 그리고 메델린 모임에서 이루어졌던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인 선택을 재확인했다.

해방신학의 출발점은 세가지 전제에서 주어진다.

① 라틴 아메리카 대부분의 사람들이 처해있는 저개발과 부당한 종속 상황.

②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구조에서 고착된 죄의 상황이라고 평가된 이런 상황에 대한 그리스도교 해석.

③ 이런 상황에서 촉발된 해방의 역사적 실천 및 그리스도인들과 교회가 신앙의 이름으로 억압받는 사람들의 해방 과정에 모든 방향과 차원에서 전폭적으로 투신하도록 양심에 호소.

사목적인 차원에서 해방을 가져다주는 복음화는 민중 계층과의 연대성에 바탕을 두고 불의에 대한 비판적이고 예언자적인 고발과 그리스도교 형제애를 선포하는 역할을 하면서 전개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사목신학의 특별한 과제는 해방실천 안에서 다시 읽고 재해석된 복음에 비추어 라틴 아메리카의 현실에서 제기되는 사목적 선택들을 평가하고 더욱 효과적이고 신뢰할 만한 그리스도교적이고 교회적인 해방의 책무를 위한 행동 노선을 지적하는 것으로 나타난다.40) 이러한 노력들은 모든 교회와 교회 안의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향한 지속적인 회개를 불러일으키면서 다양한 이데올로기적 성질을 가진 환원론들의 위험, 교회와 사목이 육화되지 못한 비전, 친교적이고 교역적인 참여가 사실상 부족한 교회의 비전을 극복하도록 잘 도울 수 있는 전망이다.41)


2) 라틴 아메리카 기초 교회 공동체

푸엘렌바흐Fuellenbach는 「하늘나라를 향한 교획 공동체」에서, 라틴 아메리카 기초 교회 공동체Basic Ecclesial Community의 배경과 생성 상황이 프로그램이나 교회 교도권의 특별한 사목 기획을 따른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기초 교회 공동체는 사제의 부족, 교회 분열의 가속화, 사회와 경제적 압박과 종속, 그리고 자기가 직접 겪어보지 않고서는 믿을 수조차 없는 상황에 처한 사람들의 욕구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생겨났다. 성령께서 강력한 힘을 불어넣어 주셨다.”42)라고 했다.

1968년 메델린에서 열린 제2차 라틴 아메리카 주교회의CELAM는 기초 교회 공동체들이 하느님의 가족으로 변화되도록 요청했다. 그래서 복음화를 이루기 위한 교회의 첫 번째 근본적인 핵이 되라고 말했다(10항).43) 주교들은 또한 사목적인 지침의 사목 구조의 혁신 부분에서 기초 교회 공동체의 지도자들이나 책임자들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리고 그들의 구성원들이 자신들의 공동체를 세상에 하느님께서 현존하시는 표징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11항).44)

제3차 라틴 아메리카 주교회의가 1979년 푸에블라에서 열렸다. 거기에서 주교들은 「제3부 라틴 아메리카의 복음화: 친교와 참여」에서 기초 교회 공동체를 “기쁨과 희망의 근거”(96, 262, 1309항), “복음화의 중심이자 해방과 성장의 원동력”(96항)으로 삼았다. 그들은 “기초 교회 공동체가 보다 더 개인적이고도 내면적인 관계를 맺으며,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 말씀을 자신의 삶 속에 다시 한 번 적용하며, 복음의 빛으로 반영하여야 한다고 했다.”(629항) 주교들은 「현대의 복음선교」 58항45)을 인용하여 기초 교회 공동체를 “교회의 희망”이라고 밝혔다.46)

1992년 산토 도밍고에서 열린 제4차 라틴 아메리카 주교회의에서는 “기초 교회 공동체들이 라틴 아메리카 교회의 척도가 된지 오래되었다고 하더라도, 제도적인 지도자들의 지원 없이는 기초-단위의 교회 공동체들이 사라지거나 희미해진다.”고 말했다.47) 두 번째 보고서에서 주교들은 본당의 구조가 기초 교회 공동체들의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기초 교회 공동체Basic Ecclesial Community는 교회의 운동이 아니라, 교회의 모형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기초 교회 공동체의 관찰-판단-실천에 대해 말했다.48) 

브라질 신학자 레오나르도 보프Leonardo Boff는 그의 책, 「교회: 은사와 권력: 해방 신학과 제도 교회」에서 “기초 교회 공동체(또한 기초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라틴 아메리카에 그 기원을 둔 현상이다. 그들은 기초 교회 공동체라는 이름을 가졌다. 왜냐하면 그 공동체들은 낮은 계급, 뿌리 인생, 사회의 기반인, 사회 권력의 피라미드의 절정과는 정반대에 있는 사람들이 우선적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49)라고 말한다. 보프Boff는 기초 교회 공동체를 성격 짓는 다섯 가지 기본 면모를 "억압을 받으면서도 아직 하느님을 믿고“, ”하느님의 말씀으로 태어나고“, ”교회를 만드는 새로운 길이며“, ”해방의 징표이자 도구며“, ”믿음과 삶을 거행한다“라고 지적한다.50) 보프는 기초 교회 공동체를 통해 교회의 미래에 대한 이정표를 제시한다. 교회는 성직자 중심에서 대화와 참여를 통한 신자들의 교회로, 가난하고 억압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교회로, 순종이 아니라 사랑의 형제애를 통한 공동체로, 예식과 성사 때뿐만 아니라 사회에 헌신하는 가난하고 억압받는 이들의 교회로 나아가야 한다.51) 그는 교계제도 중심의 ”하느님→그리스도→사도→주교→사제→신자“에서부터 하느님 백성인 교회의 모상 안에서 기초 교회 공동체를 중심으로 하는 “그리스도→성령→공동체→하느님의 백성→주교→사제→조정자”인 수평 사회 모형으로 변화된 새로운 교회론의 구조를 제안한다.52)

이러한 라틴 아메리카 기초 교회 공동체의 움직임에 대해 교황은 교회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반대를 하는 반-교회 공동체들과 기초 공동체에 대해 우려하면서, 「현대의 교리교육」53)과 「평신도 그리스도인」54)을 통해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나 기초 교회 공동체에 대한 기준들을 제시한다. 그리고「교회의 선교 사명Redemptoris Missio」에서는 기초 교회 공동체를 사도행전 2장 42절부터 47절까지와 연관하여 존재하도록 요청하면서, 교황 바오로 6세의 말씀 “모든 공동체가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되려면, 그리스도 안에 자리를 잡고 그분과 함께 살아야 한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성찬례에 그 기도의 초점을 맞추고, 마음과 영을 다하여 친교를 이루고, 구성원들의 필요를 나누고, 부분 교회와 전체 교회와 일치하며, 고립을 두려워하지 않되 이데올로기적인 탐구를 피하며 선교에 대한 헌신으로 교회의 주임 사제들과 직권자Magisterium들과 마음으로 다가오는 친교를 누려야 한다는 것”을 요구했다.55) 요셉 라칭거Joseph Ratzinger와 신앙교리성은 기초 교회 공동체들은 교회가 단순히 하나의 특별한 사회 계층이나 그룹, 가난한 이들과 억압 받는 이들만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부자들을 포함하여 모든 이들에게 문을 열고 끌어안아야 한다고 강조한다.56)



4. 아프리카 육화-자립 실천사목신학

1969년 교황 바오로 6세는 아프리카 교회를 방문하여 아프리카인들에게 “자립self-reliant하라.”고 말했다.57) 아프리카 교회는 그들의 새로운 교회 모형을 공동체인 교회로 정했다. 아프리카 주교들은 주님 구원의 도구인 교회가 되려면 지역 교회여야 하고 또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소공동체)여야 한다고 선포했다. 그리고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소공동체)는 교회와 사회를 변화시키고 변혁시키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문서에 드러난 대로 본다면, 아프리카 주교들은 자신들의 교회가 아프리카 사람들의 교회가 되기를 바랬다. 더 이상 외국인 선교 사제와 수도자 그리고 그들의 방식대로 그들에게 교육받은 사제와 수도자들이 아니라 아프리카의 문화 안에 자라났거나 적어도 그 문화 안에 정착된 이들이기를 바랐다. 라틴 아메리카 주교들이 외국의 발전된 나라들의 압박을 받고 있는 라틴 아메리카 사회구조 체제의 가난하고 압박된 상황에서 기초 교회 공동체를 통해 해방되고 벗어나기를 바랬던 데 반해, 아프리카 주교들은 문화화와 토착화의 방법으로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소공동체)를 선택했다.58) 이 항에서는 아프리카의 육화-자립의 신학과 그 주체인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 그리고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지원하기 위해 설립된 룸코 연구소The Lumko Institute를 살펴본다. 이 룸코 연구소의 프로그램들이 아시아 교회와 한국 교회의 소공동체 사목정책으로 채택되었다.


1) 육화의 신학

아프리카의 사목 실천은 ‘미신자 회개의 신학’(영혼구원의 신학)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 그후 서구신학의 주입으로 ‘교회이식’ 신학이 영향을 끼쳤다.59) 1956년부터 아프리카의 현실에 대한 신학적이고 사목적인 반성을 시작했는데,60) 특별히 1960년대 킨샤사의 로바니움 대학 신학부에서 ‘적응의 신학’(theologie de l'adaptation)혹은 ‘임시변통의 신학’(theologie des pierres d'attente)을 전개하여 아프리카의 믿음과 관습, 상징들, 행동 및 제도들에 그리스도교 메시지를 넣는 그리스도교에 ‘아프리카의 얼굴’을 주고자 했다.61)

1974년 로마 주교 대의원회의에서 나온 ‘아프리카와 마다가스카르 주교들의 선언’에서 ‘육화의 신학’을 통해 적음의 신학을 극복하겠다고 표명한다.62) 육화의 신학은 토착화로서 육화와 해방으로서 육화라는 양극 주변에 다양한 강세를 가하면서 점진적으로 전개되어 나간다.63)


① 토착화로서의 육화

자이레의 신학자 오스카 빔웨니이-크웨쉬가 아프리카 신학의 기반들에 대해 깊은 연구를 했다.64) 이방 선교에서 이방인들에게 모세 율법과 그 세칙들을 요구할 수 없다고 한 사도행전 15장의 예루살렘 공의회의 결정과 관련하여, 그리스도교 유럽 전승을 존중하지만 그것들을 다 채택할 필요는 없다는 입장을 표명했다.65) 아울러 그는 ‘신적 본성’과 아울러 인간의 언어를 이용하는 ‘인간적 본성’에 주목한다.66) 그래서 하느님과 아프리카인들 사이의 창조적 만남의 조건이 무엇인지를 규명하고자 한다.67)

예수회원인 므파시의 론디 보카도 아프리카인의로서의 신원의식을 가지고 토착화 발전의 추진자와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68) 그리스도교 메시지가 하나의 문화에 녹아드는 토착화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에 대한 실질적인 동의의 기준과 조건이 된다. 우리의 구원이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오고 그분 안에 자리 잡고 있다는 확실성 때문에, 우리는 우리 문화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우리 문화의 가치와 대가에 만족하지 않고 질문을 던지며, 전체 인간에 대한 결정적인 구원계획을 확실히 신뢰하고 우리 문화의 가치와 대가를 받아들이게 되므로 그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다.69)


② 해방으로서의 육화

카메룬의 신학자 장 마르 엘라는 ‘대중의 소외를 고려하지 않고서’70) 민중 문화에 대해 관심을 기울일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는 “억압받고 있는 이들의 해방이야말로 모든 참된 그리스도교 메시지의 토착화를 위한 주된 조건이 아니겠는가?”71) 그리고 “교회는 매일 매일 복음의 이름으로 억압받는 사람들의 해방의 역사를 쓰는 것이다.”72)라고 언급한다. 그는 ‘문화적 주체성’과 ‘인간 해방과 발전’을 기준으로 하는 사목여정을 강조한다. 1991년 ‘3000년대를 향한 아프리카 교회’라는 주제로 열린 아프리카 주교 대의원회의 ‘개요’는 아프리카 교회의 시급한 사목과 복음화로 구원의 기쁜소식의 선포, 토착화, 종교 일치의 대화, 정의와 평화를 위한 책무, 사회 커뮤니케이션 도구에 대한 관심들을 강조하고 있다.73)


2) 아프리카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

2차 바티칸 공의는 교회의 선교활동에 관하여 1965년 「선교 교령」을 반포했다. 22항에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그 교회들은 자기 민족의 풍습과 전승, 지혜와 지식, 예술과 예절에서 창조주의 영광을 찬양하고 구세주의 은총을 밝혀 주고 그리스도인 생활을 올바로 영위하는 데 이바지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얻어 온다.” 이 「선교 교령」 이후 아프리카 주교들은 동아프리카 교회와 동아프리카 주교회의에 있어서의 자신들의 역할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게 되었다. 자이레의 켄즈 교구장 디우돈 산다Dieudome M. Sanda는 위 교령과 관련하여 1967 주교회의 총회 보고서를 인용하여 말했다. “전승적인 문화 속에 유보된 것과 그 문화의 기본적인 가치들을 명확하고 주의 깊게 발견하도록 조직적인 노력을 기울어야만 한다… 아프리카 문화와 사고의 새로운 형식으로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뜻을 재구성하기 위하여, 아프리카인들의 실체와 관련된 신학적인 조사를 기울이는 것도 필요하다.”74) 

1973년 4월과 12월에 열린 동아프리카 주교회의(케냐, 말라위, 탄자니아, 우간다와 잠비아)의 주안점은 동아프리카라는 특정한 지역의 지역 교회 안에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소공동체)를 세우는 일이었다.75) “우리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교회가 진실로 ‘지역’ 교회가 되기 위해) 매일의 삶과 직업 현장에 기초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기반으로 교회의 삶과 일을 건설하기를 주창한다. 구성원들은 실제로 상호-인격적 관계를 체험할 수 있고 삶과 일 양쪽에 다 공통적으로 느낄 수 있는 기본적이고 운영 가능한 사회 조직에 속하기를 바란다. 우리는 그리스도교 공동체들이 이 시점에서 가장 활발하게 발전될 수 있기를 그리고 그들의 자연적인 환경에서 효과적으로 증거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우리 본당이나 교구들은 모든 구성원들이 교의와 전례, 성사 그리고 사회 복지에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공동체들이 되는 그런 방법으로 조직되어야만 한다.”76)

라틴 아메리카의 기초 교회 공동체가 아래로부터 시작된 반면에, 아프리카의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소공동체)는 위로부터 시작했다.77) 그러나 아프리카 주교들은 뿌리 교회에 대한 강조를 통해 평신도들이 자신들의 교회에 대해 진실한 책임감을 가지도록 만들었다. 위에서 아래로의 접근이 아래에서 위로의 접근으로 바뀌었다. 말라위의 패트릭 칼리롬베 주교는 “우리는 교회의 기초 조직을 사람들의 일상생활이 이루어지는 소공동체로 하는 새로운 조직을 체택했다. 만일 우리가 교회가 공동체로서 살고 기능하기를 바란다면, 우리는 사람들이 매일 살아가며 마주치는 그 작은 수준으로 내려가야만 한다. 교회는 이 소공동체 안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들의 친교를 의미있게 표현할 수 있다.”78) 지적한다.

아프리카 주교들은 1975년에 발표된 「현대의 복음선교」에서 자신들의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소공동체)가 온전히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느꼈다. 그러나 로마의 오해에도 불구하고 동아프리카 주교회의는 1976년부터 1979년에 걸쳐 공동체 시작 방법, 성공과 실패 그리고 지도자와 교리교사 및 직무 양성에 주력했다.79) 1976년 총회에서 주교들은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소공동체)는 그리스도의 교회가 가장 지역적으로 육화한 것이라고 결론을 내리며 네 가지 주안점들을 되새겼다.80)

첫째,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의 맥락 안에서 가톨릭에 대한 재교육.

둘째, 오늘날 교회의 정신과 마음에 대해 지도자들에게 명확하게 해 주어야 할 필요성.

셋째, 지도력은 성령께서 공동체에 주시는 선물.

넷째,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소공동체)는 교회 전체 신비의 가장 지역적인 표현이다. “본당을 쇄신하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 공동체들의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다….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소공동체)는 하나이며 거룩한(보편된)교회의 지역적인 표현이다. 그래서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소공동체)는 본당에 비해 실제로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서로를 알고, 사랑하고 고통 받고 일하고 죽는 바로 그런 더 작은 지역 수준으로 내려가야만 한다. 그곳이 ‘엠마누엘(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느님, 그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가장 진실이 함께하시는 곳이다. 거기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그들에게 효과적으로 현존해야만 하는 곳이다. 그리고 조금 불안하고 조심스러운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소공동체)지역 지도자들을 교육하고 양성시킬 책임을 가진 본당의 서품된 사제가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소공동체)지도자들을 지도하고 세심히 이끌어야 한다.”81)

1979년 총회에서 데니스 드 종Dennis de Jong 주교는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소공동체)의 목적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던지고, 다섯 가지 차원으로 설명한다.

“첫째, 신학적으로 일치를 이루고자 하는 그리스도의 뜻이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소공동체)에서 실현된다.

둘째, 성경적으로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소공동체)는 공동체와 형제애에 대한 신약의 감각을 회복시키려고 노력한다.

셋째 사회적으로 사람들은 서로 나누고, 깊이 통교를 맺고자 하며, 기초 그룹이나 가정에 속하기를 바란다.

넷째, 선교적으로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소공동체)는 가장 지역적인 수준에서 자신들이 교회 복음화 사업의 일부라는 것을 진실히 느끼도록 하는 교회의 선교 차원을 발전시킬 효과적인 방법이다.

다섯째, 사회적 인간 개발 면에서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소공동체)는 여러 면에서 보다 낳은 사람들의 삶을 향상시키도록 도와줄 수 있다.”82)

1995년 로마에서 열린 아프리카 주교 시노드에서 주교들은 두 가지의 주제를 다루었다. 21세기를 향한 교회의 이미지 즉 ‘가족인 교회’Church-as-Family이다. 그리고 아프리카에서 일하는 미국 메리놀 선교 사제인 조셉 힐리Joseph Healy는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소공동체)는 지역 차원에서 하느님의 가족인 교회의 모형이며, 가족인 교회의 한 부분이다. 공동체들의 친교(공동체들로 이루어진 공동체) 교회론에서 각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소공동체)는 개별적인 교회 가족이다”83) 라고 말했다.


3) 룸코 연구소

1962년 남 아프리카에서 활동하고 있는 외국인 로만 가톨릭 선교사들에게 언어를 가르치고, 교리교사들에게 공동체 직무를 훈련시키기 위해 ‘룸코 연구소’The Lumko Institute를 설립했다.84) 룸코 신학자들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상 중에서 ‘하느님의 백성인 교회’ 모습과 ‘친교인 교회’ 모형을 선택하였다. 그들은 삼위일체의 사랑 안에서 나누는 공동체를 발견하였다. 공동체 건설 차원에서는 성령에 의해 주어진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교회 모습을 택했고,85)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소공동체)의 친교 차원에서는 친교인 교회 모형을 취했다.86) 그들은 동아프리카 주교회의의 정신에 따라 교회의 지역적 토착화로서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소공동체)를 설명한다.87) 룸코 연구소는 공동체인 교회를 사목적인 차원에서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소공동체)와 연결시킨다.

아프리카의 이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소공동체)는 외국인 선교사에 의해 운영되는 교회로, 재정이나 자원들이 그들과 성직자들에게 의존하고, 문맹자들이 많은 사회 환경, 신자들이 지역적으로 널리 흩어져 있고, 열악한 생활 조건에 처해있는 아프리카 교회의 상황에서 생겨났다. 훗날 룸코의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소공동체) 모습은 아시아 주교회의를 통해 한국 천주교회에 전수되었다.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소공동체) 운동은 적게는 4,000명 많게는 10,000명이 넘는 신자들을 가진 한국 천주교회의 커다란 본당 공동체의 작은 단위나 작은 세포로서 적용되고 운영된다.88)



5. 아시아 조화 실천사목신학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복음화를 위한 토착화의 다양한 체험을 통해 나타나는 요소들은 다음과 같다.

① 지역 문화와의 일차적인 관계들에서 출발하는 사목활동

② 다양한 문화들에 존재하는 ‘가치들’의 의미를 깊이 연구하고 그리스도께로 향하게 함

③ 복음화 활동에서 신앙-문화-발전을 통합하려는 노력

④ 교회의 친교를 표현하고 살아가는 새로운 방식의 연구

⑤ 인간 계발의 선택

⑥ 새로운 교역들의 이용

⑦ 교회 일치에 대한 관심.89)


1988년 아시아의 가톨릭 신자가 8,430만 명이었고, 1997년에는 거의 35억 아시아인 중의 1억 520만 명으로 전체 인구 중 2.9%이다.90) 아시아에서 가톨릭은 소수 종교이다. 주교들은 아시아 문화와 깊이 공명하는 복음의 가치는 조화의 영성이라고 선언했다. 조화의 영성은 타종교와 타문화를 적이나 악으로 간주하는 관계뿐만 아니라 존재 자체에 대해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실제로 아시아인은 다양한 종교 속에 살고 있다. 특별히 아시아의 어떤 지역에서는 한 종교의 신자로 산다는 것이 아주 위험하기까지 하다. 왜냐하면 그들은 21세기인 지금에도 다른 종교인들에 의해 박해와 살인의 위협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아시아인들이 외국인들에게 종교적인 관용과 다른 이들과의 평화로운 공존이 가능한 것처럼 보이더라도, 이것이 아시아의 현실이다.91) 몇 몇 아시아인은 위험을 느끼지 못한다 하더라도, 매일 다른 문화와 종교로부터 구분과 차별을 접하며 살고 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이자 아시아인으로서 산다. 그들은 그들을 둘러싼 세상과는 관계없이 그리스도인으로만 살 수 없다. 조화는 나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존재케 한다. 즉 어떻게 모든 상대자들과 함께 살 수 있는가에 관한 것이다. 각자의 양보에 의해 상호 인정과 존중을 통해 존재할 수 있다. 이 존중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말처럼 “삶에 대한 심오한 문제들에 대한 답을 찾고 있는 인간에 대한 존중,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인간 안에서 이루시는 성령의 활동에 대한 존중”92)뿐만 아니라 그러한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종교 자체를 존중하는 것이다.

유다교, 그리스도교, 유교, 그리고 힌두교 등의 아시아 종교들은 자비와 용서뿐만 아니라 형평과 조화를 의미하는 중화, 중용 그리고 중도의 사상과 원칙들이 있다. 아시아의 형평은 어느 종교냐가 아니라 조화롭게 공존하고, 옳고 그르냐가 아니라 조화롭게 함께 사는 것, 진리냐 거짓이냐가 아니라 위아래의 상호이해를 바탕으로 한 우열이다. 그것은 또한 아시아의 맥락 안에서 각 종교가 지니고 있는 가르침이기도 하다. 만약 아시아인의 조화 영성이 아시아인의 문화와 적절하게 부응한다면, 가톨릭 교회는 인간 구원을 위해 애쓰는 다른 종교들과 함께 일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것은 타종교인들에게 내가 너를 존중하기는 하지만 내가 궁극적인 진리를 가지고 있으니 너는 나를 따라오라고 요구하는 큰 형님 같은 자세에서, 진리는 존재 자체로서만이 아니라 그것을 온전히 실현시켜야만 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 함께 진리를 구현해 나아가자.”고 타종교인들에게 제시하고 협조하는 동료 형제의 자세로의 변화이다.93) 이 항에서는 아시아의 사목신학적 반성과 아시아의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 조화의 영성, 아시아의 통합 사목적 접근Asian Integral Pastoral Approach(AsIPA)을 살펴본다.


1) 아시아의 사목신학적 반성 

아시아의 신학적이고 사목적인 반성은 억압적인 빈곤 상을 드러내는 ‘제3세계성’이라는 극과 아시아의 문화와 종교라는 ‘아시아성’이라는 양극을 지니고 있다.94) 필리핀 가톨릭 신학자 카를로서 아베사미스C Abesamis는 1979년 범그리스도교 신학자 협의회에서 ‘제3세계성’을 강조한다.95) 실론의 가톨릭 신학자 타싸 발라수리야는 「지구신학」을 통해 “다른 종교들에 대한 대화와 존경을 무시하는 우월성으로 유럽 아메리카식 자본주의의 특성을 지닌 신성 로마 제국의 종교였던 그리스도교는 끝나야 한다.”고 인간 해방의 관점에서 말한다.96)

피어리스는 문화적, 아시아적 차원과 사회적, 제3세계적 차원의 종합을 꾀한다.97) 그는 “비그리스도교적 세계를 다루지 않는 신학은 소수 그리스도인의 사치스런 밀교 행위에 불과하다.”고 한다.98) 그리고 “4세기 동안 선교한 아시아에서 그리스도인의 숫자가 겨우 총인구의 2% 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그러므로 해방신학으로는 힘들고 제3세계의 전망에서 출발하여 새로 탄생하는 신학이 필요하다”고 한다.99) 아시아 종교성의 기반은 해방이지, 기본적으로 구원론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는 인격적 하느님께 대한 신앙이 아니다. 피어리스는 신학과 그리스도교 실천의 과제는 ‘비그리스도교적 해방 체험을 그리스도교적으로 밝히도록’100) 고양시키고 동반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하기 이해서는 교회가 “아시아 종교성이라는 요르단강에서 세례를 받은 만큼 매우 겸손해야 하며 아시아의 빈곤이라는 십자가 위에서 세례를 받을 만큼 대답해야 한다.”101) 이러한 발걸음은 제3세계의 전망 안에서 복음을 해석하며 살고자 하는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Small Christian Community에서 시작되었는데, 그들은 '왕국'(basileia), '회개'(metanois)및 '참여-증언'(martyrion)이란 범주를 그 중심에 두고 있다.102)

1983년 방콕에서 열린 아시아 주교회의에서 주교들은 복음화와 토착화 및 그리스도 신앙의 육화라는 문제들을 아시아 교회의 삶과 선교에 매우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로 선언했다.103) 요한 바오로 2세는 톰코 추기경이 대독한 아시아 주교들의 모임에 보낸 서간에서 “아시아의 하느님 백성이 오늘의 세계에서 그리스도를 따르려고 할 때 직면하는 도전이 무엇이냐?”고 물으면서 그 답으로 ‘세속화와 물질주의로부터 오는 인생의 영적, 초월적, 종교적 가치의 붕괴’, ‘공산주의의 폭압적인 지배와 인간 자유의 상실’, ‘인권유린과 종교적 불관용’, ‘빈곤’ 문제를 들었다.104) 그리고 1988 한국 수원에서 복음화가 복합적인 실재이며 많은 본질적인 측면들을 가지고 있음을 자각한다. 그 측면들은 복음을 증거하고, 하느님 나라의 가치들을 위해 일하고, 정의와 평화를 추구하는 사람들과 함께 투신하며, 대화, 공유, 토착화, 다른 그리스도인들 및 모든 종교인들과 함께 서로를 풍요롭게 하는 것이다.105) 또 교회가 구체적으로 살아있는 전승과 문화, 종교들이라는 아시아의 현실 안에 마땅히 육화되어 존재하고 행동해야 한다고 자각한다.106) "다양성으로 아로새겨지고 분쟁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아시아에서 교회는 특별한 방식으로 일치와 화합의 눈에 보이는 표징이자 도구인 하나의 성사가 되어야 한다.“107)


2) 아시아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

1977년 홍콩에서 열린 아시아 주교회의는 「교회의 직무」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아시아에 기초 교회 공동체의 필요성을 강하게 피력하였다. 주교들은 기초 교회 공동체가 적은 수의 사제들이 감당하기엔 너무 많은 신자들로 인하여 결과적으로 신자들에게 사목적인 면에서 깊이 다가가지 못하고, 신자들이 교회와 자신들의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소공동체)에 대한 책임감을 고취시키고, 비그리스도교 세상인 아시아에서 신자들을 지원해야할 필요를 느끼는 등의 여러 가지 필요와 정황에 적합하다고 말했다. 신자들이 자기가 사는 마을이나 도시의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소공동체)에서 일치하고 함께하는 것이다. 주교들은 기초 교회 공동체가 부활하신 주님 안에 머물며 그분을 중심으로 삼고 성령께 문을 열어야 한다고 요청했다. 구성원들은 주님의 말씀을 나누고, 성체성사를 기초로 그리고 그 중심으로 삼아야 한다. 신자들 스스로 자신의 죄와 이기주의와 투쟁해야 하며, 정의와 자유와 진리와 사랑을 바탕으로 한 평화의 공동체를 설립하기 위해 다 함께 노력해야 한다. 주교들은 아시아 각 나라의 기초 교회 공동체의 체험과 발전과정에 대해 나누기를 원했고, 단지 아시아라는 지역 안에 있는 교회가 아니라, 아시아인의 긍지와 자유를 보다 더 증진시키기 위해 아시아의 지역과 아시아인들의, 아시아 지역 교회와 부합하는 지도력 스타일을 향상시키기를 원했다.108) 그리고 기초 교회 공동체의 성찬례를 연구하기를 원했다.109)

1979년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아시아 주교회의는 시간이 없어 총회에 상정하지는 못했지만, 「사명에 대한 국제회의: 워크숍 대표자 공동선언」에서 기초 교회 공동체와 지역 교회의 사목의 관계에 대해 말했다. 교회의 지역화와 구체화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뿌리에서 생겨난 교회 공동체로서 교회의 온전히 그리고 눈에 보이게 드러낸 기초 그리스도교 공동체 안에서 발견된다고 보았다.110)

1982년 태국 방콕에서 열린 제3차 아시아 주교회의는 「교회-아시아의 신앙 공동체」란 주제로 총회 최종 문서에서 그리스도인들의 사랑을 나누는 친교인 교회를 교회의 새로운 존재 양식으로 설명했다.111) 주교들은 “작은 교회 공동체들이 교회 생활의 전반에 걸쳐 더 확산되고 중점적으로 돌보아지고, 그들의 사제들과 주교들과 밀접한 일치를 이름으로써 모든 믿는 이들이 복음화와 사회봉사, 대화 그리고 일치 운동과 상호 종교적인 협력을 통하여 사회에 문을 열고 사회에까지 뻗쳐 나가도록 규정지어져야 한다.”고 말했다.112) 

1990년 인도네시아 반둥에서 열린 제5차 아시아 주교회의는 「삼천년기를 향해 함께하는 여정」이라는 주제로 총회 최종문서에서 다음과 같이 선포한다.


아시아 교회의 평신도, 수도자 그리고 성직자들은 서로 자매애와 형제애로 뭉쳐 1990년대 교회의 새로운 존재 양식으로서 ‘공동체들의 친교’(communion of communities: 공동체들로 이루어진 공동체)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들은 부활하신 주님의 준성사적 현존으로 초대될 것이며, 신자들을 소공동체(예, 이웃 조직, 기초 교회 공동체와 ‘계약’ 공동체들)로 이끌 것이다. 거기에서 그들은 함께 기도하고 예수님의 복음을 함께 나누며, 그들의 매 일상의 삶 속에서 ‘한 마음과 한 정신’으로 일치하여 서로를 지원하며 함께 그것을 실현해야 한다.113)


모든 이가 참여하는 교회는 성령께서 그들에게 은사를 내려주셔서 교회가 건설되었으며 사명을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활성화시켜야 한다. 부활하신 주님을 증거하는 교회는 사람들의 마음 안에 지어져야 하며 모든 이의 총체적인 해방을 향하여 다른 이들과 대화해야 한다. 교회는 변화하는 누룩과 예언적인 표징으로 이미 시작했지만 아직 오지 않은 하느님 나라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114)


3) 조화의 영성

교회의 새로운 존재 양식의 중심에 계시는 성령께서는 신자들과 전체 교회 공동체가 진실한 영성인 성령-가득한 삶을 살도록 인도하시고 이끄신다.115) 아시아 주교들은 교회의 새로운 존재 양식의 영성이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의 영성, 특별히 아시아 문화의 맥락에서 조화의 영성이라고 한다.

교회의 새로운 존재 양식의 영성은 주님께 온전히 의탁하는 이들의 영성이다. 그것은 힘없고 버림받는 자(anawim)들의 영성이다. 포기와 단순함, 그리고 모두와 함께 특별히 가난하고 약하고 불쌍한 이들과 연대하고자 하는 연민의 정 – 비폭력주의의 행동방식을 향상시키는 덕 - 들은 우리가 필요로 하는 영성의 중요한 단면들이며, 아시아의 문화와 깊이 공감하는 복음의 가치들이다. 그것은 조화(harmony)의 영성이다. 그것은 우리 아시아인들의 세계에 부조화스러운 것들에 도전하는 것처럼 하느님과 긴밀하게 친교를 맺으며, 그분의 성령께 순응하면서 예수님을 따르라고 말하고 있다. 그것은 우리가 외부 조직과 힘 또는 세속적 효과로부터 단순함과 겸손함 그리고 봉사의 모습으로 나아가도록 요청하고 있다.116)

아시아 주교들은 이러한 영성의 깊이를 교회 일치 운동과 상호 종교적 대화 차원으로 연결시킨다.117)


4) 아시아의 통합 사목적 접근

5차 총회 기간 중에 아시아 주교들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룸코 연구소의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소공동체) 사목 모형과 프로그램을 소개 받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아시아 주교들은 ‘공동체들의 친교’와 ‘참여하는 교회’의 비전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으로 룸코 연구소의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소공동체) 사목 모형을 도입하게 되었다.118)

1993년 아시아의 주교들은 아시아인들의 사고와 기도 그리고 아시아인들의 독특한 그리스도 체험을 공유할 연구소의 필요성을 느꼈다.119) 주교들은  ‘1990년대 교회의 새로운 존재 양식’을 증진시키기 위한 통합 양성을 위해 ‘아시아의 통합 사목적 접근Asian Integral Pastoral Approach(AsIPA)’을 설정했다. 이 접근은 룸코의 양성체험을 나누고, 아시아에 어떻게 정착시킬 것인가를 모색하였다. 복음 나눔을 통해 체험된 말씀-중심의 공동체는 하느님 구원의 표징이요 도구다. 주교들은 아시파AsIPA란 단어를 아시아에 교회의 새로운 존재 양식을 향한 과정을 위한 시도로 삼고 있다. “비전은 ‘참여하는 교회’이다. 전체 신자들의 공동체는 아시아의 복합적인 상황 안에서 그리스도의 통합적 세계관과 사명을 적극적으로 공유할 수 있다.”120)

아시아 주교들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본당과 교구 안의 친교와 참여를 증진시키는 효과적인 방법으로서, 그리고 복음화를 위한 진정한 힘으로서 기초 교회 공동체들의 가치를 강조하였습니다…. 결과적으로 사랑의 문화의 새로운 표현인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려는 확고한 출발점인 것이다”(「아시아 교회」 25)라고 하신 말씀과 2004년 한국 대전에서 「생명 문화를 지향하는 아시아 가정」이라는 주제로 열린 제8차 아시아 주교회의 총회의 최종문서에서121) “사랑과 연대의 세계화”라는 구절을 인용하여 이러한 시도를 재확인했다.122) 실제로 경쟁 사회에서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소공동체)를 통해 복음화된 가정은 이웃을 복음화하여야 하고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소공동체)활동을 통하여 피가 아니라 세례성사를 통해 초월적으로 연결되고, 이웃 가정에 다가가 어린아이들에게 복음을 전수하여 생명의 문화에 기여하는 사회의 누룩이 되어야 한다.123)



6. 한국의 친교-참여 실천사목신학

토착화는 그 시대 그 상황의 사람들에게 복음의 메시지를 적절하게 전하기 위한 노력이다. 1992년 서울대교구장 김수환 추기경은 교회의 외적 성장과 아울러 스며들기 시작한 공동화(空洞化)와 익명화(匿名化)의 현상을 극복하기 위한 대응책으로, 2000년대 복음화를 위한 사목정책으로 소공동체 사목을 시작했다. 이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나타난 친교의 교회론과 이어지는 친교 교회신학을 바탕으로 한 ‘공동체들의 친교’를 추구하는 것이다. 서울대교구는 이를 ‘공동체들로 이루어진 교회(본당) 공동체’로 지칭했다. 서로를 사랑으로 받아들여 친교를 나누는 삼위일체의 신비처럼, 하느님과 친교를 누리러 모여든 신자들이 교회 내에서 서로 친교를 나누고 교회의 사목정책의 입안과 결정 및 실현 그리고 그에 따른 사목활동에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아울러 삼위일체의 하느님께서 각각의 구별되는 위격이면서도 한 하느님으로 일치하여 공동으로 구원사업을 펼치듯이, 교회도 그 친교로 흘러나오는 사랑의 힘으로 세상을 향한 애덕의 사목활동을 펼쳐나가고자 했다. 이 ‘친교-참여’ 신학이 교회 내의 조직 강화와 관리 운영으로 그치지 않고, 인간 개발을 위해 타종교와 문화 및 시민운동과 연대하여 교회의 세상 구원사업을 위한 사목활동을 수행해야 한다. 이제 ‘와서 보시오’로 만족하지 말고, ‘이 땅에 빛’을 밝혀야 하는 사명을 수행해야 한다.

이 항에서는 교회의 사목 활동의 하나인 사회복지 활동을 통해 교회 활동의 변천을 바라보고자 한다. 교회의 사목활동을 사회복지활동과 동일시하거나 후자에 국한시킬 수는 없다. 그러나 초기 교회 신앙정립과정에서 드러나듯이, 교회의 선교와 사회복지활동이 동떨어진 것이거나 간접적인 것이거나 부차적인 것으로 취급되지 않고 하나의 교회 사목 활동으로 삼았다. 일례로, 한 본당에서 어린이집을 지어 지역 사회의 어린이들을 보육하게 되면, ‘교회의 교리와 그리스도교 문화 전수’와 ‘신자 어린이들 종교 교육’ 그리고 ‘어려운 어린이들 돌봄’이라는 교회의 사목활동을 수행하게 된다. 교회의 활동을 본당 내의 그리스도교 신자의 신앙 교육으로 제한하지 않고, 시대별로 사회의 변화에 따른 욕구를 교회가 복음적으로 응답한다는 면에서 교회의 사회복지 활동은 사회에 그리스도를 현존시키는 사목활동의 일환으로 간주된다. 그러기에 먼저 ‘한국 천주교 사회복지사’124)를 통해 시대별로 교회의 전반적인 활동을 살펴보고, 한국 교회의 특징적인 사목활동과 2000년대 복음화 사명 수행을 위한 소공동체 사목을 살펴보기로 한다.


1) 가난하고 소외된 계층의 기쁜소식인 교회의 사목활동

① 초기교회 신앙정립과정의 활동(1777-1886)

1777년부터 시작된 한국 천주교회 초기에는 신자들이 책을 보고 신앙을 갖기 시작했고 비록 교회법적으로는 불법이었지만 중국교회에서 어깨너머로 보고 온 대로 1786년 가성직제도를 세워 교회공동체를 건설하면서, 하느님께 대한 신앙은 곧 형제들, 그 중에서도 가난한 이들에게 봉사하는 생활로 드러나는 것이라고 굳게 믿고 실현에 옮기며 살았다. 김대건 신부는 천연두로 고생하는 백성들을 고쳐주기 위해 그 치료방법을, 최양업 신부는 선교 보다 먼저 백성들의 공중위생을 위한 식수의 정화방법을 알려고 갈구했다. 1836년 파리외방전교회 모방 신부가 김대건, 최양업, 최방제 세 소년을 마카오로 유학시켜 근대적인 교육을 받도록 했으며, 매스트르 신부는 1855년 신학교의 설립보다 먼저 1854년에 프랑스 성영회의 재정지원으로 ‘영애회’ 고아원을 설립했다. 1857년에는 영애회의 어린이들과 가난한 이들을 위한 시약소를 설치 운영하였다.

이 시기 사목자들은 성당 건물보다 고아원이나 시약소, 양노원을 먼저 짓고 운영함으로써 사회복지활동을 선교보다 우선시하거나 적어도 동전의 양면과도 같이 동등하게 간주하였고 평신도들도 자신들의 삶으로 이러한 신앙을 살았다. 이러한 교회의 활동이 고난과 박해의 피난시절과 형장에까지도 그리고 박해자들에게까지도 드러남으로써, 한국천주교회는 초기교회 때부터 사회복지로 통칭되는 이웃 사랑을 하느님께 대한 신앙의 응답이요 증거로 삼았다. 그러므로 교우들은 자신의 몸을 바쳐 순교하듯이 가난한 이들에게 헌신하게 된 것이다.

한국의 초기 교회가 신앙 전파와 동시에 박해가 이어져 공개적으로 신앙활동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공개적으로 사회복지 시설을 운영할 수는 없어도, 이웃 사랑의 차원에서 드러나는 교회의 사회복지 활동은 단순히 가난한 이에게 대한 일회적인 적선으로 그치지 않고 교우촌을 이루어 공동체차원에서 ‘한줌의 쌀’ 운동 등을 통해 조직적으로 실현했다.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사제들이 들어와서는 근대식 사회복지 시설을 세우고 운영하기 시작했다.


② 종교자유획득과 수도회 결성이후의 활동(1886-1910)

1886년 한불 수호조약으로 인해 종교 자유를 획득한 후 천주교 사회복지 활동은 초창기 빈민구제와 고아 및 환자 치료 활동의 연속과 아울러 개화기라고 할 수 있는 한국 사회의 사회화와 문화화 및 문맹퇴치 등의 사회 기초 교육에 대한 교육복지에 힘썼다. 특히 1900년부터 교회의 선교와 복지 사업을 위해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를 비롯한 수도회들을 초빙하여 그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이들은 각 본당 주임사제의 초청으로 파견되어 본당마다 고아원과 시약소, 양로원, 학교, 야학 등을 담당하게 되었다. 서울 명동과 중림동, 인천의 제물포, 황해도의 매화동과 재령, 평양의 관후리와 진남포, 수원의 안성과 왕림 및 장호원, 강원도 이천 본당 등지에서 본당들이 세워지고 수도회들과 함께 교회의 선교와 복지 활동이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이 시기 천주교 사회복지사업의 특징은 그 사업의 주체가 교구가 아니라 각 본당이었다는 것이다. 신부들은 주교로부터 본당에 파견 받아 그 본당과 그 본당 관할구역 지역사회에 살고 있는 가난한 이들의 필요와 욕구에 적극적으로 응답해 고아와 문맹인, 빈민, 노인 등을 보호하고 교육했다. 그리고 1906년에 창간한 경향신문을 통해 일제의 침략을 저지하기 위한 민중계몽운동과 민족자립, 애국애족운동을 공개적으로 펼치다가 1910년 한일합방으로 폐간되었다. 교회는 그 시대의 사회가 요구하는 민족적인 욕구에도 민감하고도 충실히 그 사명을 다하고자 했다.


③ 일제식민시기의 활동(1910-1945)

1910년 한일합방으로 시작된 일제 식민정부 시기에는 조선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무엇보다 먼저 한일합방으로 인한 한국인의 주권상실이다. 그로 인해 한국인은 정상적이고도 성숙한 삶을 향한 모든 방편을 일본 식민지 지배정부로부터 제한 받아야만 했다. 개화기부터 펼쳐온 의식 개혁과 민족 자주 운동은 비록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이 주축인 교회의 책임자들에게는 우려와 주저함이 없지 않았지만, 한국인 성직자들과 수도자, 평신도들은 주체적으로 청년연합회를 결성하고 가톨릭 청년지를 창간하여 민족의식을 불러일으키고 사회 복음화 운동을 추진해 나갔다. 그리고 교육복지를 통해 근대화 운동과 반침략 운동을 전개했다.

교회 내에는 교구의 분할과 그로 인한 본당의 신설과 본당의 복음선포와 복지사업을 진행하기 위한 수도자들의 진출과 결성이란 변화가 있었다. 1884년부터 조선교구로 통칭되던 서울교구는 10개 교구로 분할되며, 분할 된 교구의 거의 모든 본당의 사목에 수도자들이 참여하였다. 특별히 여성 수도자들의 참여가 두드러졌다. 본당의 사목자들은 복음 선포의 일환으로 관할 구역 내의 가난한 이들에 대한 사목적 배려로 학교나 학원 또는 강습소를 통한 문맹 퇴치와 기술 교육복지, 육신의 건강을 통한 영적인 성숙을 가져오는 의료복지, 영유아와 고아를 위한 보육원과 유치원의 아동복지, 양로원을 지어 오갈 데 없는 노인을 돌보는 노인복지, 장애인들을 위한 장애인 복지 등의 사회복지사업을 교구나 수도회가 아닌 본당이 주체가 되어 그 본당이 위치한 관할 구역의 지역 사회 복지를 구현하였다.

한편 교회는 일제의 침략에 맞서 민족자립운동을 펼치고자 노력했다. 1927년 발간한 대구청년회의 「천주교회보」와 서울청년회의 「별」지를 통합하여 「가톨릭 청년」지를 통해 경제, 사회, 법률, 언어, 과학, 미술, 의학, 문예 및 방송용어 등을 통해 민족 자주와 자립을 위한 계몽운동을 펼쳤고, 공산주의와 히틀러 정권을 비판함으로써 일제 침략정부를 우회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1933년 조선어학회의 ‘한글맞춤법 통일안’을 경향잡지에 적용하였고, 이병기의 ‘조선어 강좌’를 청년지에 연재하고, 가톨릭과 민족문화를 접맥하기 위해 ‘다산 선생의 서세 백년을 맞이하며’라는 특집을 통해 조선 민족과 조선 민족 문화의 우수성을 고취시키고자 하였다. 그리고 그 동안 전국적으로 각 본당에서 실시해오던 고아원과 고아원 아이들과 지역사회 가난한 이들을 위한 시약소 차원에서 질 높은 의원수준으로 확장 개원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러한 교회의 선교와 복지 사업은 일제의 지속적인 탄압과정에서 위축되어 나갔다. 일제 치하의 교육복지 측면에서는 과거 성직자 수도자들의 무료 봉사 내지 저급 임금으로 운영되던 본당의 학교들이 정식 교원 자격증자를 채용토록 함으로써 교사 봉급이 상당한 재정적인 부담이 생겨나 운영상의 난관이 있었다. 그리고 1915년에 개정된 '사립학교규칙’에서 학교 교과시간이나 교내에서는 일체의 종교교육을 금하였으므로 학교 창설자의 목적과 의의가 위협을 받게 되었다. 그래서 교회는 독일의 성 오틸리엔 베네딕토 수도회를 초청하여 사범 교육기관 ‘숭신학교’를 세워 교사들을 양성하고자 했으나 이 역시 일제 식민정부의 탄압으로 5년만에 폐교하고 말았다. 이는 전문성을 위한 자격증 취득 여부의 문제가 아니라 식민 통치를 위해 교회의 사회복지 활동을 위축시키고 통제하기 위한 구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과거의 무료 시약소가 이제는 정식 자격증을 취득한 의사와 처방으로만 가능하게 되었고, 또 다른 복지분야에서도 모든 것을 인․허가제도로 묶어 둠으로써 사회의 인적․물적인 교류와 연대를 경직시켰다. 이러한 움직임이 교회 사회복지활동이 전문성을 띄게 되는 계기가 된 것은 긍정적인 면이지만, 그 취지가 자격증을 빌미로 봉사자들을 통제하려는 일제 식민정부의 의도였기 때문에 교회의 선교 및 복지 활동은 많은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그럼으로써 교육복지분야의 종교교육에 대한 조선총독부의 탄압으로 사제들과 수도자들과 평신도 선교사들은 교단에서 떠나야만 했었고, 특별히 여성 수도자들은 본당 내의 종교활동이나 예비자 교리, 가정방문, 제의실 담당 등의 일로 전환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그리고 이 시기부터는 수도회가 본당과는 별도로 어느 한 지역사회에 진출하여 그 지역사회의 필요와 요구를 복음적인 시각으로 채워주고자 하는 시도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④ 해방 후 활동(1945-1975)

1945년 8월 15일 해방 후에는 각 본당을 통한 미국의 ‘가톨릭 구제위원회’의 활동이 두드러졌다. 그리고 이 가톨릭 구제위원회의 자산과 후속 작업을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인성회’가 이어받았다. 1956년 윤을수(라우렌시오)신부는 사회사업여자전문학교인 ‘구산후생학교’와 사회복지 전문 수도회인 ‘인보 성체회’를 설립했다, 1958년 가톨릭 노동 청년회와 1964년의 가톨릭 농민회가, 1961년에는 사회복지 활동 전문 평신도 사도직 단체인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가 발족했다.

이 시기에는 나환우와 농아, 행려자, 기술교육, 고아원, 양로원, 노동자, 농민, 신용협동조합 운동 등의 분야에 사제들의 헌신과 수도회 및 전문 단체들의 활기찬 활동이 있었다. 반면에 한국 교회의 기초조직이랄 수 있는 각 본당에서 일제의 간섭과 탄압으로 인해 교회의 사목을 교회 공동체 안에 국한시키게 되어 버린 상황이 다시 복원되지 못하고, 오히려 고착화되는 상태에서 머물러 버렸다는 것이 전반적으로 드러난 현상이다.

이 시기의 교회 사목활동의 특징을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교회의 기본 사목조직인 본당에서는 지역사회인들을 위한 사회복지활동을 변화하는 사회 환경에 맞추어 더욱 더 창의적이고도 발전적으로 힘쓰기보다는 극빈자에 대한 자선차원에서 머물고 종교적인 의미로서만 축소되는 선교와 종교 행사에 더욱 치중하게 되었다. 외부의 많은 박해와 통제로 빚어진 환경 때문에 벌어진 상황이 오히려 본말을 뒤집어 놓은 것이다. 이렇게 됨으로써 과거에 본당 중심으로 이루어지던 지역사회복지는 결과적으로 축소되었다.

둘째, 교구와 본당의 이러한 흐름과는 별도로 전문화되고 사회화되는 사회 환경에 맞추어 수도회가 본당이나 교구에 의지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사회복지시설을 신설 운영하게 되었다. 아울러 전문화되고 체계화되고 체제화되어 가는 사회 환경에 맞추어 나가다 보니 교회인이라기보다는 전문가적인 모습이 두드러지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셋째, 교육복지의 경우에 일제말기부터 이어져온 종교인들에 대한 자격증 취득 요구는 결과적으로 교회가 가난한 이들을 비롯한 요구호자에 대한 복지 측면에서 벗어나 교육이라는 특수한 분야에 집중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러한 변화가 교육계나 의료계 등의 전문 분야에 기여하는 바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교회의 복음선포로서의 복지사업과는 별도로 진행되어 나갔다. 그래서 과거 모든 교회의 복지의 방향과 대상이 복음선포와 가난한 이 우선이었던 것이 점차로 공교육이란 미명아래 윤리와 인간 생명과 사회의 기반인 종교교육은 소홀해 지고 선착순 접수라는 경쟁 논리로 변화되고 변천하는 사회 속에서 점차로 벌어지는 입시전쟁의 틀 안에 편입됨로써 교회 사업의 복음적인 모습을 반감시키는 결과가 되었다. 이러한 추세는 교회의 모든 사목활동과 교회가 운영하는 모든 사회복지 사업에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모습이다. 사회에 봉사하기 위해 사회에 뛰어들지만, 반대로 사회 체제에서 요구하는 경쟁과 자본주의 경제 논리를 채워주어야 하기 때문에 교회의 사회복지라는 모습보다는 자본주의 경제사회의 기관으로 변모되어 가는 아픔을 겪게 되어, ‘소유’와 ‘봉사’ 차원의 분리 등이 논란거리로 등장하기도 했다.


⑤ 인성회 조직 이후의 활동(1975-1991)

1974년 교황청 사회복지위원회(Cor Unum)위원인 박희섭이 ‘한국 가톨릭 사회발전 심의회’ 설립을 주교회의에 제출하였고 또 미국 가톨릭 구제위원회가 활동을 마치면서 주교회의에 ‘한국 카리타스’의 부활을 요청하자,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는 교황청과의 협의 아래 두 제안을 통합하여 1975년 6월 26일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인성회’를 설립해 사회복지와 인간개발 업무를 연계했다. 아울러 이 시기에는 정의 구현 사제단을 주축으로 민주화를 위한 교회의 적극적인 사회 참여가 두드러져 그리스도 교회의 예언직 수행을 통해 사회에 가톨릭의 사회복음화 사명을 실현하는 기회가 되었다.

주교회의 인성회 설립 이후의 교회의 사목활동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교회 사회복지 활동의 주체가 완전히 뒤바뀐 형상을 드러내고 있다. 이제는 더 이상 본당 중심의 사회복지는 몇 몇 본당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그 대신 수도회들은 과감히 지역사회의 요구에 민감하게 움직여 본당의 초청이 아니더라도 지역사회와 사도직 단체의 초청으로 사회복지에 참여하게 되었다. 더 나아가서는 직접 사회복지 활동을 찾아 나서고 헌신하게 되었음은 고무할 만한 일이다.

둘째, 정부가 사회복지 시설을 설립하여 가톨릭 단체들에 운영을 위탁하는 사례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는 사회복지 시설 설치에 따르는 막대한 재원과 유지에 드는 재정적 지원이 교회가 종래에 가난한 이들과 함께한다는 의식에서 단순히 후원회원들의 소액 월정 후원금이나 기존의 재화를 희생과 절제 차원에서 나누는 정도의 규모에 그치지 않고, 하나의 사업과도 같은 차원에서 사회복지 시설 설비에 대한 투자를 요구하고 있는 실정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렇게 정부가 사회복지 시설의 운영을 천주교에 위탁하는 모습은 그 동안 천주교회가 이루어 왔던 사회복지 활동의 정신과 업적을 사회가 인정해 준 결과라고도 볼 수 있다.

셋째, 교회의 기본 조직인 본당의 구조가 책임자인 사제에게 집중되어 있는 형편인데 반하여 그 책임자인 사제들이 일정한 임기가 되면 교체되는 한국 교회 본당의 상황으로 보아 본당을 주체로 한 지속적이고 전문적인 사회복지 활동을 전개하는데 있어서 부담을 갖기도 하였다. 결국 다양하고 전문화되는 사회의 환경 안에서 일부 사제들은 본당을 떠나 특수사목이라는 형태로 사회복지 활동에 전념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시작하자 역으로 본당에서는, 사회복지 활동은 특수사목자들이나 수도회나 자격증을 가진 전문가들이 하는 것으로 여기게 되고, 단순히 사회복지 분과나 빈첸시오 아 바오로 회를 통한 극빈자에 대한 자선 차원에 머물게 됨으로써 오히려 지역사회의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이어야 할 본당의 우선적이고도 본질적인 모습은 상징적으로만 드러나게 되었다.


⑥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 조직 이후의 활동(1991-)

1991년 11월 주교회의 인성회가 사회복지위원회로 개칭되고 사회복지를 전담하게 된 후, 각 교구마다 사회복지회(국 또는 위원회)가 생겨났고 지도 신부가 임명되었으며, 다양한 사회복지 활동은 각기 분야별로 협의, 조정 및 공동 사업을 위하여 전국 협의체를 발족하여 주교회의의 인준을 받았으며, 각 본당 사목협의회 사회복지분과와 사회복지 전문 사도직 단체인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 활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그리고 전국적인 모금활동이 전개되었고 국내뿐만 아니라 국외까지도 공개적인 지원을 하기에 이르렀다.

1990년대에 들어와서 교회의 사회 복지 활동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드러내고 있다.

첫째, 교회의 사회복지 활동은 인구가 밀집한 대도시 지역의 ‘도시형 복지 활동 유형’을 따르고 있다. 아동복지는 보육원 중심에서 빈민 지역에서의 공부방과 어린이집, 유아원, 탁아원의 형태로 변모되고 있다. 노인 복지 분야도 전승적인 양로원보다는 노인 학교 쪽으로 변화되고 있으나 고령화 사회 및 핵가족 사회로의 문화 변천에 따라 양로원도 앞으로 활성화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다고 보여진다. 나환우 복지사업은 음성 나환자들의 공동자립터전인 정착마을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복지 수요에 비하여 늦게 시작된 결핵 사업은 요양원과 재활촌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의료 복지 분야에서는 빈민의료 차원에서 치료 활동도 활발해지고 있다.

둘째, 1979년 ‘세계 장애인의 해’ 이래 장애인 숫자의 증가와 아울러 복지 활동도 확대되고 세분화되고 있다. 구체적인 예로는 맹인선교회가 전국 협의체로 주교회의 인준을 받았고 농아선교회도 전국적 협의의 틀을 갖추고 있다. 이외에도 정박인, 지체장애인 등의 부문도 활발해지고 있다.

셋째, 무의무탁자를 위한 복지 활동도 두드러지고 있다. 숫자상으로도 증가하고 있을 뿐 아니라 양적으로는 대형 시설화 되는 경향을 띠고 있는데, 이들 대형 시설은 엄밀한 의미에서 종합 복지 시설 형태를 띠고 있다. 이 시설들은 무의무탁자를 위한 것이지만 사업 내용상으로는 노인, 장애인, 부랑인들에 대한 수용, 치료, 재활을 겸하고 있다.

넷째, 국민 의료보험이 실시되고 있지만 무료 자선 진료의 요구가 증대되고 있는 현실적 요청에 따라 자선 전문 의료 복지가 활발해지고 있다. 여성 복지 분야는 상담과 교육기관이 있는데 주로 산업화 과정에서 발생되고 있는 미혼모 문제를 다루는 활동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청소년 분야도 다양한 형태의 복지적 접근을 하고 있는데 비정기 교육 및 직업 훈련과 함께 일탈 청소년들을 위한 보호 기관(생활 공동체)이 대종을 이루고 있다.

다섯째, 1990년대에 들어서서 주목할 만한 현상의 하나는 시설의 대형화와 소규모 공동체적 접근이다. 일견 상충되어 보이는 이 두 경향은 교회 복지 활동의 다변화와 다양화를 드러내는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소규모 공동체는 법형식상의 사회복지시설이라고 부르기에는 부적합하지만 복지시설의 목적이 파기된 가정의 최소한의 대체라고 할 때 오히려 가정에 근접한 생활공동체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여섯째, 대형 시설의 추세 중의 또 다른 하나는 정부와 지방 자치 단체가 운영하던 시설을 교회-주로 수도회-가 운영권을 받아 위탁 운영하는 경향이다. 그리고 지역복지 중심의 복지사업으로 지역 사회 복지관의 설립이다. 이들 지역 중심의 복지 사업도 그 운영권을 민간에게 넘겨주고 있는데 몇 몇 교구와 수도회에서 지역사회 복지관의 운영을 시작하였다. 그런데 다른 한편 전국의 행정단위 수와 지역사회 복지관의 개수를 비교해 볼 때 그것도 교회에서 설립하거나 위탁을 받아서 지역사회 복지관을 교회가 운영하는 것 그리고 또 지역사회에서 운영하고 있는 복지관에 신자들이 참여하고 있는 것까지 다 합친다 해도 교회가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소식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도 거리가 멀다. 그리고 또 다른 면에서 볼 때 시설의 대형화와 전문성은 오히려 교회의 지역사회 복지를 일반화하고 대중화하는 측면이나 교회가 자신의 본질인 이웃사랑을 적극적이고도 주체적으로 참여하는 측면 모두에서 반대 영향을 끼치는 아쉬움도 드러내었다.


2) 한국 교회의 특징적인 사목활동

① 내면적 질적 선교

한국 교회의 초창기 주인공들은 천주교회를 신앙 공동체라기보다는 천주교 교리 연구를 통한 새로운 사회 구현이라는 목적으로 탐구하기 시작했다. 지도층뿐만 아니라 일반 평신도들도 교회가 제시하는 자비와 평등에 입각한 평화와 정의의 새 세상에 대한 동경이 그들을 신앙에 몰두하도록 했다. 그러나 곧이어 닥쳐온 혹독한 박해와 일제강점기와 독재정권의 박해로 인해 교회의 선교 사명을 적극적이고 활발히 전개할 수 없었던 역사적 환경 속이 오래 지속되었다. 그래서 교회의 복음 선교가 활동적이라기보다는 복음을 생활 속에 구현한다는 내면적이고 질적인 선교의 양상을 드러내게 되었다. 아울러 겸양지덕을 내세우는 동양 사상 안에서 자신을 드러내기 보다는 타인이 자신의 삶을 바라보고 스스로 깨닫고 따를 수 있도록 정도를 걷는 군자사상으로 말미암아 적극적이고 활발한 선교활동은 한국 천주교회의 사목활동으로는 적합한 것이 아니라고 여기기까지 했다. 그리고 개화기 이후의 개신교의 적극적인 선교활동이 이러한 사회의 문화 속에서 거센 반발과 부작용을 가져오자, 천주교회는 공적 선교활동을 아예 기피하게까지 되었다. 그러나 앞의 한국 천주교회 사회복지사 연구에서 살펴보았듯이 이웃을 향한 애덕 행위는 교회의 간접선교라기 보다는 우선적이고 실질적인 선교사목이 되었다.


② 죽은 이를 위한 봉사-연령회와 연도

이웃 돌보기란 애덕을 통한 사목활동은 죽은 이들을 돌보는 ‘연령회’(선종 봉사회)의 사도직 활동과도 깊은 연관관계를 맺는다.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돌보는 그리스도 교회의 왕직, 곧 섬김의 사도직의 수행을 통해, 특별히 죽은 이들의 장례 절차와 그 가족을 위로하고 돌보는 사목활동이 이웃 선교의 확실하고도 실질적인 효과를 가져왔다. 아울러 죽은 이를 위한 기도인 ‘연도’는 한국 교회만이 가지고 있는 유일한 제도이다. 일정한 시간에 장례식장에 모여 고인을 보고, 묵주기도를 바치며, 그 가족들에게 위로의 말을 건내고 장례식을 치루는 서방교회의 사목적 교회 활동과는 달리, 한국 교회는 마치 고리를 이어가듯 연도라는 형식의 기도를 통해 고인을 기리고, 유가족들의 아픔에 동참하고 위로하며, 유가족과 함께 문상자들을 돌보는 사랑의 애덕행위는 특이하다고 할 수 있다. 죽은 이들과 그 가족을 돌보는 교회 사목활동으로서의 연령회의 사도적 애덕 실천은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봉사로 그치지 않고 죽음으로 어려움을 겪는 이웃 어느 누구에게나 사랑으로 봉사한다. 그리고 그 연도라는 기도형태는 시편을 전승 민속 가락에 맞추어 가사처럼 바치기에, 일반인들에게 부담감보다는 친근감을 가져다 주어 한국 교회의 토착화에 크게 기여한다. 한국천주교 주교회의는 1838년 한글로 번역되어 1864년 이래 목판본으로 발행되어 왔던 위령기도인 연도,「천주 성교 예규」를 2002년 「상장예식」이라는 이름으로 발간하면서 구전으로 내려오던 음률을 악보화했다.125)


③ 토착화

한국 교회의 초기부터 창시자들은 주희의 신유교인 성리학보다는 실학사상의 영향으로 공맹(孔孟)의 유학을 연구하던중 중국에서 예수회 마태오 리치Mateo Ricci(1552-1610) 신부의 「천주실의(天主實義)」와 판토하Pantoja(1571-1618)의 「칠극(七克)」등의 서적을 구해와 탐구했다. 이 서적들은 유교를 보완하는 보유론/보유역불론(補儒易佛論)에 입각한 그리스도교 토착화 선교전략이었다. 이러한 전승이 한국 교회에 창립기에 대중들에게 자연스럽게 전승되었으나, 1791년 윤지충과 권상연이 전승 장례의식을 거부하고 천주교 장례의식을 거행한 사건으로 정부와 사회로부터 거부당하고 박해를 받기 시작했다. 그 후 최양업 신부의 천주가사 집필과 보급 등의 토착화 노력을 기울였으나, 전국적인 대규모 박해로 빛을 발하지는 못했다. 얀세니즘적인 선교사들이 활동하던 시기에는 토착화가 후퇴했고, 개화기의 서구화 과정에서는 오히려 서양의 문화를 간직한 천주교회의 모습을 고착화시켯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는 토착화의 노력을 적극적으로 기울이기도 했으나, 연구와 시도로 그쳤고 교회 사목활동에 토착화를 적용할만한 구체적인 결정을 내리거나 관습화되지 못함으로써 전체 가톨릭 교회계에 토착화된 독특한 한국적 모습을 드러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126) 전승 문화나 타 종교와의 관계에서 학문적인 연구가 주류를 이루었고 서로 피해를 주거나 마찰을 빚거나 걸림돌이 되지 않으려는 자세로 방관과 무관심하며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오히려 적절한 사목정책인 것처럼 비춰졌다. 오히려 ‘로마보다 더 로마적인 교회’라는 인상이 굳혀졌고, 한국 교회가 아직 민족 문화와 대중들에게는 이방인으로 비춰지고 있다.127) 어쩌면 현시대의 한국인들에게는 한국 교회의 그러한 서구적 이미지가 오히려 토착화되었는지도 모른다.

한국 프로테스탄트는 서남동과 안병무로 이어지는 ‘민중신학’과, 유동식과 김경재의 ‘접목신학’, 변선환의 ‘다원론적 종교해방신학’을 발전시켰다. 황종렬은 한국 토착화 신학을 ‘번역’론과 200주년 기념 사목회의의 ’육화‘ 토착화론 그리고 ’그리스도 중심의 적응-대화론‘으로 나눈다.128)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참석 하에 ‘200주년 기념 전국 사목회의’가 열렸다. 토착화가 “그리스도교의 복음이 각 시대와 각 장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 속에 복음화되는 것이므로 시대적인 적응과 장소적인 적응의 과정을 필요로 한다.”129)는 관점에서 보면,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가톨리 교회의 현대 세계에 적응과 쇄신을 가져온 것처럼, 한국 교회도 200주년 기념 사목회의를 통해 한국 사회 안에서 한국 교회의 쇄신과 적응을 가져오고자 했다. 이 의안들은 전례, 성직자, 평신도, 수도자, 신심 운동, 지역 사목, 가정 사목, 특수 사목, 선교, 교리 교육, 교회 운영 등 11개의 분과로 나뉘어 작성되었다. 이 사목회의는 많은 심혈을 기울여 작성하였지만, 그 실현은 미미하게 적용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서울대교구 시노드 후의 진행사항과 유사하다.

김웅태는 한국 교회의 토착화를 위해 ‘다종교 상황을 고려하는 한국 가톨릭 교회 공동체의 구조적 쇄신’과 ‘그리스도교 신앙의 질적인 발전과 성숙’ 그리고 ‘한국 천주교회의 정체성 확립’을 제안했다.130) 그리고 한국적 그리스도교 신앙을 위해 ‘민속 명절, 축제들의 토착화’와 ‘한국의 전승적 가치들의 토착화’, ‘조상 제사의 그리스도교적 토착화’ 등 신앙의 내적 요구로서의 지속적인 토착화의 과정을 요청했다.131) 그런가 하면, 박문수는 토착화가 아니고 한국화여야 한다고 주장한다.132) 한국 교회는 한국 사회에 가톨릭을 드러냄과 동시에, 가톨릭 계에 한국을 드러낼 수 있어야 하겠다. 한국 천주교회의 토착화를 한국 교회의 특징으로 내세우기엔 만족스럽지 않지만, 일반적으로 한 지역교회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토착화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기에 이 항목에 넣었다.


④ 중앙집권적인 교계구조와 사목권 위임

한국 가톨릭 교회는 일사불란한 교계제도로 사회에 비춰지고 있다. 교계구조가 평신도-사제-주교 및 본당-지구-교구라는 획일적인 중앙집권적 상하 조직체계를 간직하고 순명이라는 운영체계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는 조직체계의 경직성을 피하고 효율적인 사목을 위해 해당 교구의 사제뿐만 아니라 전국의 사제들에게 1986년 「전국공용 교구사제 특별권한」을 위임했다. 이는 교회법 규정에 따라 교구장이 아닌 사제는 직권이 없어서 교구장에게서 위임 또는 허락을 받아야 유효하고 합법적인 행위를 할 수 있는 사항들을 매 건 수마다 위임하기 보다는 교구장이 특정 사항에 관한 자신의 직권 중의 일부를 자기 소속 사제들에게 관례적(habitualiter)으로 위임하거나 허락할 수 있는데 이를 특별권한(Facultas)이라고 한다. 이 관례적 특별권한은 위임된 권한에 관한 법규정이 적용된다(교회법 제132조 제1항). 주교들은 한국과 같이 전국이 하루 생활권이고 언어나 풍속이 같은 지역에서는 여러 교구사제들이 공통되는 특별권한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목적으로 유리하다는 판단 하에 특별권한을 위임하게 되었다. 이는 종전까지 유효하였던 「전국공용 10년 기한부 권한」을 대체 갱신한 것이다.133) 이 특별권한 한국교회내의 교구별 이질감과 사목권의 제한으로 인한 신자들의 번거로움과 불편함을 사목적으로 고려한 한국천주교회의 대표적인 사목정책이다.


⑤ 사목평의회(사목협의회, 사목위원회, 사목회)중심의 교회 운영

천주교회법에 따르면, 지역 교회로서의 교구에, 주교는 교회법에 따라 사목직무 수행을 위해 사목 평의회를 설립한다, “교구마다 사목적 사정으로 유용한 한도만큼, 주교의 권위 아래 교구 내의 사목 활동에 관한 것을 조사하고 심의하며 이에 대한 실천적 결론을 제시하는 소임을 가지는 사목 평의회가 설치되어야 한다.”134)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마친 후, 세계 천주교회의 모든 본당은 본당 사목 평의회를 설치했다. 그것은 교회법에서 근거한다.

제 536 조 ①. 교구장 주교가 사제 평의회의 의견을 듣고 합당하다고 판단하면, 본당 사목구마다 사목 평의회가 설치되어야 한다. 본당 사목구 주임이 주제하는 이 회에서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그 본당 사목구에서 자기 직책에 따라 사목에 참여하고 있는 이들과 함께 사목 활동이 증진되도록 협조를 제공한다.

② 사목 평의회는 건의 투표권만 있고 교구장 주교가 정한 규범으로 규제된다.135)

사목 평의회에 대한 정의는 교회법 511조에 나타나 있다. “교구마다 사목적 사정으로 유용한 한도만큼, 주교의 권위 아래 교구 내의 사목 활동에 관한 것을 조사하고 심의하며 이에 대한 실천적 결론을 제시하는 소임을 가지는 사목 평의회가 설치되어야 한다.” 「주교 교령Christus Dominus」은 ‘평의회Council’ 대신 ‘위원회Commission’136)를 말한다. 그리고 「평신도교령(ApostolicamActuositatem)」은 사도 평의회, ‘사목’(pastoral)대신 ‘사도’(apostolic), 평의회의 평신도 조정 역할을 말한다.137)

마크 피셔Mark F. Fischer 교수는 위 조항들을 이용하여 말한다, “본당 사목 평의회의 목적은 ① 사목실재를 조사하고, ② 숙고하며, ③ 결론을 도출하여 주임 사제에게 추천한다.” 그리고 “조정, 지도력에 관련하여, 26항이 사도 평의회는 평신도의 자치권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우선권을 조정한다. 조정이란 조직하고, 지도하고, 조성하는 것을 의미한다.”138)

사목 평의회는 확고한 신앙과 덕망과 신중이 뛰어난 하느님 백성의 대표자로 선발된 그리스도교 신자, 사제, 수도자 특별히 평신도로 구성된다.139) 사목 평의회는 임명 주교가 정한 임기제로 구성되고, 교구장좌가 공석이 되면 사목 평의회는 끝난다.140) 사목 평의회는 건의 투표권만을 가지며, 1년에 적어도 한 번은 소집되어야 한다.141)

본당에서는 주임 사제가 책임을 지고 사목직무의 의사 결정을 한다. 하느님의 백성인 교회가 성장하면서, 주임 사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교회법의 정신에 따라 주임 사제에게 맡겨진 신자들을 사목적으로 돌볼 수 있도록 사목 실재들을 조사하고 숙고하고 그 결론을 도출하여 그에게 전달할 본당 사목 평의회를 설립하게 된다. 실제로, 본당 사목 평의회는 백성들의 대표나 전문가들로 구성된다.

한국 교회는 사목평의회(사목협의회, 사목위원회, 사목회)가 주임 사제의 자문 기구로서의 역할만을 하는 것이 아니다. 교회법이나 서구 교회의 전승처럼 사목평의회와 재정평의회가 구분되어 있지도 않으며, 행사나 예산집행을 위한 결제 시에도 주임사제와 재정담당자만 사인하는 것이 아니라, 가급적 해당 관계자들이 체계적인 결재과정을 거친다. 한국의 사목평의회는 주임 사제의 평신도 조정 기관이자 주임 사제와 함께 본당의 제 사목정책과 사목활동을 논의하고 결정하며, 주임 사제의 이름으로 본당 사목직무를 집행하는 기관이기도 하다. 이러한 전승은 한국 교회에 평신도들을 공동책임자로 참여하게 하여, 평신도들의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사도직 활동을 펼치는데 효율적인 사목정책이다.


⑥ 공소사목

한국 교회는 ‘공소’라는 독자적 기구 또는 제도를 만들었다. 공소는 천주교회에서 본당 보다 작은 교회의 단위를 의미하며 때때로 공소 신자들의 모임 장소를 가리키기도 한다. 공소에는 사제가 상주하지 않기 때문에 공소회장의 주도로 첨례를 보거나 공소예절이 행해지며, 정기적인 본당 신부의 방문 때 성사가 집전된다. 공소회장은 주일 공소예절의 진행 및 강론 시간의 말씀해설과 평일 기도모임을 주례하고, 예비신자 교리를 통해 세례자를 준비시키고, 경우에 따라서는 혼배의 주례도 선다. 한국 천주교회의 발전에 공소는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본당이 형성되기 이전에 공소는 하나의 교우촌이었다. 공소의 숫자는 한 때 본당의 10배를 훨씬 넘을 정도로 한국 천주교회에서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기도 했다. 그러므로 공소는 한국 천주교회사의 소중한 바탕이 되며 한국 교회의 여러 변화를 반영해주는 곳이었다.142) 박해시대 이래 공소는 신자들의 새로운 삶이 전개되는 현장이었으며, 그리스도교 신앙을 키운 못자리였고, 가톨릭 신앙이 토착화해 나가는 역사의 현장이었다. 공소는 신자들의 신앙이 그침 없이 증언되는 삶의 터전이었다. 삶을 통한 신앙의 증거는 그들에게 순교의 길을 걸을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신앙의 자유를 쟁취한 이후에도 공소는 참다운 믿음이 오롯이 간직된 교회의 보물창고였다.143) 그만큼 공소가 지방 신자들의 삶이나 신앙을 생생하게 간직한 곳이었다. 천주교 박해로 교우촌이 생겨 공소의 형태를 취하기 시작했고, 1887년 신앙의 자유를 얻은 이후에 공소 건물을 건축하기 시작했으며, 1910년 일제시대와 격동기에 공소가 발전했으며, 1953년 이래 공소의 전성기를, 1980년 이후 공소의 본당 전환기가 되었다.144)


⑦ 여성 수도자의 본당 사목협조

1888년부터 한국 교회의 본당에서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의 여성 수도자가 활동하게 되었다. 서구의 수도자들은 교회 안에서 특별한 역할을 수행하면서 본당 사목과는 긴밀한 관계를 맺지 않고 교육과 의료 및 사회복지 등의 전문적인 일과 수도승적인 삶의 형태를 취했다. 그러나 한국의 여성 수도자들은 교회가 보다 충실히 사목하고자 하는 본당의 시급한 사도직의 요청에 따라 본당에 거주하면서 다양하게 요구되는 역할을 수행해왔다. 본당 사목의 일선에서 사목자들의 중요한 협조자로 자리매김하면서 선교활동의 선봉에서 활동하였고, 신자들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지도하는 역할은 물론 어려움을 함께 나누고 이해하는 위로자이며 영적 동반자의 역할까지 수행했다.145) 경우에 따라서는 준사목자로, 본당 신자들의 어머니로, 영적여정의 지도자요, 가난, 순명, 정결이라는 복음적 삼덕을 드러내는 그리스도교 영성생활의 증거자로의 역할과 면모를 드러냄으로써 본당 사목의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다. 한국 교회 관계자들은 아무런 스스럼 없이 “한국천주교회는 수녀 없으면 쓰러진다.”고도 하며, 교황님의 강론에서도 “수도자 없는 한국 교회를 생각할 수조차 없다.“란 표현이 나올 정도였다.146)  여성 수도자들의 존재와 역할을 평가하는 일은 별도로 치더라도, 본당에 파견된 여성 수도자들은 선교와 교육을 통한 예언직 사도직과 전례와 성사 및 신심생활 지도를 통한 성화 사도직에, 단체 지도와 사회복지를 통한 애덕의 사도직에 헌신함으로써 한국 교회의 외적 성장과 내적 성숙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3) 한국 소공동체

① 서울대교구 소공동체 도입 배경

1984년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 사목위원회 사회조사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천주교회 신자들은 개인적인 성사생활 그리고 교회내의 활동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고 밝혔다. 많은 신자들이 개인적인 믿음과 구원 그리고 미사와 성사생활에 만족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147) 사회정의를 위해 활동하는 것이 교회의 사명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신자들이 많았다.148) 서울대교구는 세속화와 물질주의 그리고 교회의 불공정한 현상 그리고 신자들의 개인신심과 성직자의 권위주의에서 온 결과라고 받아들였다.149)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의 가치를 따라 살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신자들이 믿음과 행동을 구분하여 살고 있으며, 교회가 세계의 구원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 살고 있다는 부지중의 의식에서 비롯된 문제라는 것을 깊이 되새겼다.

1968년부터 1998년까지 서울대교구장으로 봉직했던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은 복음의 가치로 신자들의 삶을 비추어 봄으로써 교회 공동체의 쇄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의 통계를 보자면 신자증가율이 1960년에 6.1%, 1970년에 5.6%, 1980년에 7.6%, 1990년에는 3.8%가 증가했고, 그들중 1/4이 냉담 교우라고 발표했다.150)

김 추기경은 「사목교서」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오늘의 한국 천주교회는 규모와 수적으로 엄청난 성장을 기록했다. 그러나 본당들의 기록적인 외적 성장에 비해, 우리 교회는 복음 정신에 기초한 친교(koinonia)와 봉사(diakonia)의 공동체 모습을 상실했다. 다른 말로 본당의 외적 성장에 비추어볼 때, 사목자들이 본당 신자들과 개인적인 면담을 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신자들이 자신이 본당이 신자라는 것과 신자들끼리 가족과 같은 연대성을 간직하기가 아주 어려워졌다… 우리가 믿음과 삶의 구분을 극복하지 못했고, 온전히 복음화되지 않았으며, 점점 더 비인간화와 물질주의와 세속주의로 변화되어가는 이 사회를 복음화할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교회 공동체인 우리는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부패를 정화할 사명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가 가진 능력은 너무 미소하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몸인 우리 교회가 우리 안에 주님의 삶을 간직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151)

그는 현대의 복음선교를 인용하여 복음화를 설명한다.152) 교회의 복음화 활동은 단순히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설교하고, 교리를 가르치고, 세례를 주고 기타 다른 성사를 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153) 교회가 선포하는 메시지의 신적 능력으로 모든 개인과 집단의 양심, 그들이 관계하고 있는 활동, 그들의 생활과 구체적인 환경을 변혁시키는 것이다.154) 즉 하느님의 말씀과 구원 계획에 상반되는 인간의 판단 기준, 가치관, 관심의 초점, 사상의 동향, 사상의 원천, 생활 양식 등에 복음의 힘으로 역전시키고 바로잡는 것이다.155) 그것은 사회에서 사람들을 거룩하다고 간주되는 교회에 데려오는 것이 아니라, 복음의 힘으로 사회 자체를 복음화하는 복음화 방법론의 변화이다.

1993년 김 추기경은 서울대교구에서 그 본당들에 소공동체를 세워야 한다고 강하게 역설했다. 이것은 본당의 평균 신자수가 7,000명이 넘는 경우에 공동체 체험을 하기가 아주 어렵다는 데서 기인한다고 말했다.156) 그는 서울대교구에 소공동체를 건설하는 목적이 복음화를 이루기 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157)

그는 「교회의 선교사명158)에서 제시한 복음화의 한 형태인 소공동체를 통해 이 체험을 성취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는 서울대교구 신자들에게 교구를 쇄신하고자 하는 여정에 동참하도록 요청했다.159) 서울대교구는 2000년대 복음화를 위한 소공동체 사목 운동을 시작했다. 그것은 사목적인 목적과 방법으로 소공동체를 촉진하여 교회를 쇄신하고자 한 것이며, 그것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채택된 친교의 교회론을 바탕으로 세워진 것이며, 1984년 한국 천주교회 사목위원회의 주제중의 하나였다.160)

김 추기경은 1990년 제5차 아시아 주교회의 총회에 참석한 서울대교구 보좌주교 강우일베드로를 통해, 총회 최종문서에 나타난 교회론에 의거하여 소공동체 건설의 필요성을 역설했다.161) 2000년대 복음화를 향한 소공동체 사목의 주안점은 ‘말씀 중심의 친교 공동체’, ‘사회 복음화의 사명 실천’으로 잡았다. 서울대교구는 2000년대 복음화를 향한 사목의 세 단계를 설정했는데, 첫 단계는 1992년부터 1994년까지 사목정책 모색 및 소공동체 도입시기, 둘째 단계는 1995년부터 1997년까지 소공동체 수용시기, 셋째 단계는 1998년부터 2000년까지 소공동체 정착시기다.162)


② 소공동체 운동의 결과

서울대교구는 1992년부터 2000년대 복음화를 위한 운동에 심혈을 기울였다. 사제들은 신자들이 복음을 나누면서 기쁨을 얻고, 그 말씀에 따라 헌신적으로 살게 되었으며, 복음적인 회개의 과정을 밟게 되었고, 평신도들이 능동적으로 교회 활동에 참여하게 되었다고 평가했다.163) 교회는 말씀을 기반으로 신앙을 증진시킬 수 있었고, 평신도 사도직이 활성화되었다. 그리고 교회가 평신도 사도직과 봉사하는 새 지도력를 통해 사회 현실 속에 새롭게 다가섰다. 가장 좋은 결과는 믿음을 증진시키고 말씀을 중심으로 한 평신도 사도직이 활성화되었다는 점이다.164)

신학자 차동엽은 이렇게 말했다. 첫 번째, 평신도 지도자들이 소공동체 안에서 양성되었고, 두 번째, 소공동체는 말씀이 그들 가운데 살아 계시는 믿음의 공동체로 성장해 나갔으며, 세 번째, 반모임의 숫자가 한 달에 한 번에서 한 주에 한 번으로 증가되었고, 네 번째, 남성 신자들의 소공동체 참석율이 증가하였으며, 다섯 번째, 복음 나누기와 기도에 소극적이던 신자들이 적극적으로 변화되었으며, 여섯 번째, 전례와 본당 활동에 신자들의 참여가 능동적으로 변화되었고, 일곱 번째, 본당 사목을 위한 신자들의 조직과 동원이 아주 쉬워졌으며, 여덟 번째, 소공동체 운동이 본당 차원만이 아니라 교구 차원의 사목정책을 세우는 통합적인 접근 방법이 되었다.165)

1987년과 1998년에 가톨릭 신문사에서 전체 신자의 종교 의식과 신자 생활에 대한 두 번의 설문조사가 있었다. 두 개의 설문조사는 차이가 있는데, 첫 번째 1987년에 진행된 설문조사는 한국 천주교회의 내적 위기에 대한 증세가 드러나기 시작했던 시기였다. 당시 구역 반 모임의 신자 참석율이 1987년에는 49.2%였고, 1998년에는 46.5%였다. ‘더 참석’하는 이들의 비율이 21.7%에서 24.2%로 늘었던 반면에, ‘덜 참석’하는 이들의 비율이 24.3%에서 17.7%로 줄어들었고, ‘적극적으로 참석’하는 이들의 비율이 27.5%에서 22.3%로 줄어들었고, ‘최소한 참석‘하는 이들의 비율이 26.5%에서 35.9%.로 증가하였다.

이 외에도 여러 가지 측면에서 소공동체 운동을 평가하였다. 교구의 지원, 주임 사제의 투신, 소공동체 지도자들의 자질 등. 일반적으로 구역 반모임에 참석하는 여성의 비율은 40대 이상이며, 저학력자이며, 소규모 마을의 거주자들이며, 가정주부, 실업자, 농부, 어부, 산림업자, 성인이 되어 세례받은 자, 자발적으로 입교한 자, 단체에 속한 사람들이 높았다. 그러나 남성의 참석 비율은 이십에서 삼십대 그리고 대학원 이상 졸업자, 커다란 도시의 시민들, 유아세례를 받은 신자들과 단체에 속하지 않은 신자들의 수가 낮았다.  그리고 저학력자와 노부인들의 참석률은 계속되었다. 이 조사 보고서는, 첫째, 구역 반 모임의 평균 참석률 감소상황은 소공동체를 활성화시키는 본당의 수가 적다는 사실로 설명될 수 있다. 둘째, 구역 반모임의 능동적인 참여층이 편향되고 제한적이라는 양상이 새로운 과제다.166)

2003년 서울대교구 시노드 후속 문서 「희망을 열고 하느님께」에서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니콜라오 추기경은 교회의 모든 구성원들, 주교, 사제, 수도자, 신자들이 성령의 도우심으로 다 함께 참여하는 친교의 교회로서 복음을 선포하고 그 복음을 실현하며 사회 봉사를 통해 교회의 근본과 본성을 회복하고 교회와 현 세상을 복음화해야 한다고 밝힘으로써 소공동체 운동이 지속적으로 발전해 나가도록 했다.


③ 소공동체 운동의 과제

가. 일반 과제

1992년 이래, 서울대교구는 2000년대 복음화를 위한 소공동체 운동에 전력을 기울였다. 교회에 복음적인 회심이 많이 일어났기는 하나, 많은 사제들은 소공동체 운동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리고 활동 단체에 참여한 본당 신자들의 수는 평균 10%인 반면, 51.2%의 평신도들이 소공동체에 능동적이고 정규적으로 참여하고 있다.167) 그런데 한 본당에서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소공동체를 건설하던 주임 사제가 5년 후 임기가 차서 다른 본당으로 이임하고, 소공동체에 열심치 않는 다음 주임 사제가 소공동체에 관심과 주의를 집중해 주지 않으면, 소공동체는 약해지고 퇴색하기도 한다. 

많은 사제, 전문 기관, 그리고 활동 단체들이 소공동체 운동에 반발했었다. 왜냐하면 이 소공동체 사목 운동을 시작할 때 교구장이 관례처럼 위에서 아래로 명령하는 방식으로 내려왔기 때문이다. 교회의 많은 신학자들도 자기 교회의 미래를 결정하는 데 자신들의 의견을 반영시키지 못해 자신들이 무시되고 소외되었다고 느꼈다. 많은 주임 사제들이 그들이 평생을 걸쳐 자신의 사제직으로 복음과 교회를 위해 투신해왔던 지난 사목 수행이 무의미하다고 느꼈기 때문에 저항했다. 왜냐하면 교구 당직자들이 소공동체 운동만이 그리스도께 가는 교회의 유일한 길이라고 주장했고, 또 본당의 주임 사제들은 소공동체라는 새로운 짐이 하나 더 늘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168) 전문 기관들은 2000년대를 향한 복음화라고 하지만 정작 2000년대 사회 환경과 조건에 대한 깊고 충분한 고려가 없었다고 지적했다. 활동 단체들은 본당과 교회에는 소공동체뿐만 아니라 활동 단체들도 있다고 불평했다. 몇 몇 평신도들은 소공동체 모임을 할 때 평안한 분위기에서 구성원들과 좀 더 친교를 누리도록 배려해야 하는데 너무 형식적이며 복음을 지나치게 강조한다고 말했다. 소공동체를 바라보는 이들 중에는 복음을 나누기만 하고 실제로 행동에 옮기지는 않는다고 지적한 이들도 있다.

나. 의사결정과정에 있어서의 갈등

서울대교구 사목정책인 소공동체 운동은 본당 사목과 본당 사목 평의회 안에서 소공동체와 단체 사이에 긴장과 갈등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또한 본당의 주요 사안들이 사목 평의회에서 다루어져야 하는지 아니면 구역장 회의에서 다루어져야 하는지에 대한 갈등도 생겨났다.169)

긴장과 갈등은 누가 주임 사제와 함께 사목정책을 결정할 것인가, 누가 본당 사목과 본당의 제반 사항을 주도하고 조정할 것인가, 어떻게 본당의 소공동체와 단체들 사이의 업무와 지도자의 역할과 자리 그리고 활동 시간이 중복되는 것을 결정할 것인가 등이다. 소공동체 지도자들이거나 단체 지도자들이거나 그들은 모두 사제와 같은 교회 공직자들에게서 자신들의 노력을 인정받고 싶어하고, 그들의 의견이 본당 사목의 의사결정과정에 반영되기를 원한다.

어떻게 소공동체와 단체를 비롯한 본당 신자 모두가 친교를 통해 공동체로 이루어진 공동체로 거듭날 것인가 하는가와 어떻게 성령의 도우심으로 이 땅에 하늘 나라를 완성시킬 것인가 하는 것이 새 천년기 한국 교회와 한국 신학 정립의 과제이다.







1) 전례헌장 16: EV 1/27.

2) 사목헌장 46. 62: EV 1/1466면; 선교교령 22. 39: EV 1/1168면. 1227면.; 사제교령 14. 16: EV 1/800면. 805면. 참조.

3) 사제교령 19L EV 1/813s.

4) 사제교령 12,21: EV 1/798. 802면. 참조.

5) 사제교령 2, 02: EV 1/773면. 815; GE 1: EV 1/822면; 주교교령 14,16: EV 1/602면. 608면; 선교교령 34: EV 1/1209; 사목헌장 52. 62: EV 1/1485면; IM 15: EV 1/272면 참조.

6) 사제교령 12,21: EV 1/798. 802면 참조. 세르지오 핀토르, 위의 책, 69면 재인용.

7) Paolo VI, L'osservatore Romano, 22. 6. 1973. 세르지오 핀토르, 위의 책, 70면 재인용.

8) 이 책은 독일 프라이부르크에서 1964, 1966, 1968, 1969, 1972년에 걸쳐 5권의 책으로 출간되었다.

9) 세르지오 핀토르, 위의 책, 70-72면.

10) K. Rahner, Theological Investigation, vol XI, 118. 정일, 위의 논문, 89면 재인용.

11) K. Rahner, Theology of Pastoral Action, New York, Burns & Oates, 1968, 26-27. 정일, 위의 논문 89면 재인용.

12) 정일, 위의 논문, 89091면.

13) Floristan-Useros, Teologia dell' azione pastorale, 세르지오 핀토르, 위의 책, 3장 각주 17 참조.

14) 위의 책, 11. 세르지오 핀토르, 위의 책, 75면 재인용.

15) 위의 책, 163. 세르지오 핀토르, 위의 책, 75면 재인용.

16) 위의 책, 165. 세르지오 핀토르, 위의 책, 76면 재인용.

17) 세르지오 핀토르, 위의 책, 75-76면

18) H. Schuster, Die Praktische Theologie unter dem Auspruch der Sache Jesu, F. Klostermann-K. Zerfass, Praktische Theologie heute, Muchen-Mainz, 1974, 150-163 참조. 세르지오 핀토르, 위의 책, 76-77면 재인용.

19) 세르지오 핀토르, 위의 책, 77면.

20) F. Klostermann, Gemeinde-Kirche der Zukunft, These, Dienste, Modelle, 2 voll., Friburg, 1974 참조; Id, Kirche, Ereignis und Institution, Vienna 1976(tr. it. Chiesa, evento e istituzione, Cittadella, Assi, 1978)참조. 세르지오 핀토르, 위의 책, 3장 각주 23 참조.

21) 세르지오 핀토르, 위의 책, 78-80면.

22) M. Van Caster, La vie vecue selon son sens inte gral, Lumen Vitae 24, 1969, 89-105; Id., Pour un eclirage chretien de l'experience, Lumen Vitae 25, 1970, 429-446; Id., Aimer Dieu en animant les hommes, Lumen Vitae 28, 1973, 292-316. 세르지오 핀토르, 위의 책, 81면 재인용.

23) 세르지오 핀토르, 위의 책, 81면.

24) Gerben Heitink, 위의 책, 176면.

25) 사목 상담 운동의 창시자는 A. T. Boisen이다. Boisen은 인간을 그의 구체적인 실존에서 살아있는 인간 자료로 바라본다. 그는 Paul Tilich 신학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Carl R. Rogers의 심리학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신학자 Hiltner가 그 운동을 주도적으로 발전시켰다. Gerben Heitink, 위의 책, 115면; S. Hiltner, Preface to Pastoral Theology, New Yonk, 1958 참조; A. T. Boisen, Out of the Depths: An Autobiographical Study of Mental Disorder and Religious Experience, New York, 1960 참조.

26) Gerben Heitink, 위의 책, 269-270면; 291면 참조.

27) 위의 책, 320면.

28) 위의 책, 321면.

29) 위의 책, 78면.

30) 위의 책, 194면.

31) Serward Hiltner, Preface to pastoral theology, New York, 1958. 세르지오 핀토르, 위의 책, 82면 재인용.

32) 세르지오 핀토르, 위의 책, 82-84면.

33) M. Lefebvre, Vers une nobelle proble matique de la theologie pastoral, Nouvelle Revue Theologique 93, 1971, 29-50; Id, Theologie pastoral et agir ecclesial, Nouvelle Revue Theologique 93, 1971, 363-386. 84면 재인용.

34) R. Zerfass, Praktische Theologie als Handlungwissenschaft, Theologische Revue 69, 1973, 89-98면. 세르지오 핀토르, 위의 책, 85면 재인용.

35) 세르지오 핀토르, 위의 책, 86면.

36) G. Gutierrez, Theologia de la liberacion, Perspectivas, Salamanca, 1972; Id, Hacia una teologia del la liberacion, Montevideo, 1969; Id., Apuntes para una teologia de la liberacion, Lima, 1970; Id., Lineas pastorales de la Iglesiaoen America Latina, Lima, 1976.  세르지오 핀토르, 위의 책, 87면 재인용.

37) 세르지오 핀토르, 위의 책, 91면.

38) 현대의 복음선교, 29-30; EV 5/1621-1622. 교황은 현대의 복음 선교에서 그리스도교적 해방의 의미로 받아들일 수 없는 환원론과 모호함을 피하는 동시에, 교회의 선교사명이 “오늘날 해방에 관해 특별히 활기 넘친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있다”고 밝혔다.

39) COMMISIONETEOLOGICA INTERNAZIONALE, Dichiarazione sulla promozione umana la salvezza cristian, La Civilta Cattolica 3055, 1977, 39-44면 참조. 세르지오 핀토르, 위의 책, 88면 재인용.

40) 해방신학의 방법론적 전개는 다음과 같다.

① 억압과 불의의 상황을 읽고 설명하며 이런 억압을 낳는 체제를 분석

② 이런 체제가 낳은 미인간화 상태에 대한 각성.

③ 모든 사람들이 숙명적으로 겪고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충돌 상황을 주관화시키는 데 성공한 사람들의 집단인 ‘기초 교회 공동체’를 ‘의식의 축’으로 선택.

④ 해방을 가져다 주는 실천으로서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활동(전례적, 교리교육적, 애덕적)

⑤ 그리스도교 주제들의 선택은 성경과 사람들의 문제들에서 출발하여 해방의 전망 안에서 이루어진다.

⑥ 방법은 활동과 반성 사이의 균형이다. 하지만 언제나 활동으로부터, 활동 안에서, 활동을 위해서 시작된다.

⑦ 조직화란 매우 신축성이 있지만 다양한 단계로 파고드는 것이다. 세르지오 핀토르, 위의 책, 91-92면.

41) 세르지오 핀토르, 위의 책, 86-92면.

42) John Fuellenbach, Church Community for the Kingoom, Manila: Logos Publications, 2004, 178면.

43) Latin American Episcopal Council(CELAM), The Church in the Present-Day Transformation of Latin America in the Light of the Council, ed. Louis Michael Colonnese, Director, Division for Latin America Department of International Affairs United States CAtholic Conference, Washington, D.C., United States Conference of Catholic Bishops, 1970, 226-227면.

     10항.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이 “기초 공동체”로 불려져 그 친교 안에서 살아야만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즉, 그 구성원들이 서로 형제애로 접촉할 수 있는 정도 크기의 공동체 안에서, 지역적으로나 환경적으로나 동질성을 가진 집단에 부응하도록 불리었다. 결과적으로 교회의 사목적 노력은 이러한 공동체들이 설립 초기부터 핵과 같은 누룩이 되어 “하느님의 가족”으로 변화되도록 하는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비록 그것이 작다 하더라도 믿음과 희망 그리고 사랑의 공동체가 되도록 하여야 한다. 그래서 그리스도교 기초 공동체는 무엇보다 교회의 근본적인 핵심이다. 그것은 예절에서 사용하는 표현처럼, 책임을 가지고 믿음이 풍요롭게 퍼져 나가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공동체는 교회의 구조와 복음화에 초점을 맞춘 기초 조직이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 발전과 성숙의 가장 중요한 원천으로 협력하게 된다.”

44) 위의 문서, 11항.

      “그리스도교 기초 공동체를 실존케하는 근본 요소는 지도자들과 책임자들이다. 이들은 사제 또는, 부제거나 남자 또는 여자 수도자거나 평신도들일 수도 있다. 이들이 자신들이 이끄는 공동체에 속해 있다면 좋겠다. 지도자들의 선택과 양성은 본당의 사제들과 주교들의 최우선적인 임무다. 이들은 자율적이면서도 책임감을 고양시키는 상황에서 도덕적 영적인 성숙을 염두를 두고 있어야 한다.

      이 공동체들의 구성원들은 하느님께서 자신들을 믿고 맡기신 “사제직, 예언직, 왕직을 수행하는 하도록 불리었다는 사실에 합당하게 살아야 한다.” 그래서 자신들의 공동체를 ‘하느님께서 드러나시는 표징’으로 세상에 드러내야 한다.”

45) 이러한 공동체가 생기게 되는 것은 교회 생활을 더 열심히 하고자 하는 것과 또는 대도시의 교회 공동체 같은 곳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인간적인 상호 유대를 추구하는 데서 생긴다고 본다. 대도시의 생활은 집단화되고 익명화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공동체들은 오로지 자기들 나름대로 하느님 공경과 믿음에 대한 깊은 연구, 형제적 사랑의 실천, 기도 생활, 사목자들과의 일치 등 종교적 영성적인 문제에 관하여 적은 사회 단체나 마을 같은 단위에 확대해 나갈 수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공동체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묵상하는 것과 성사 배령, 사랑의 일치를 위하여 연령, 교양, 직분 또는 사회 환경이 비슷한 사람들의 모임인 부부, 청소년, 직장인의 단체들을 집합시키려고 한다. 또한, 정의를 위하여 가난한 사람들을 도우며 인간 발전을 위해서 뭉쳐진 사람들을 결속시킬뿐만 아니라 사제가 부족하여 정상적인 본당 생활 운영이 잘 안 되는 경우 신자들을 결합시키기도 한다. 이러한 모든 것은 교회가 인준한 공동체 안에서 더욱 특수 교회나 본당 교회 내에서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46) 현대의 복음선교

47) Latin American Episcopal Council(CELAM), Santo Domingo and Beyond Documentation and Commentaries from the Fourth General Conference of Latin American Bishops, Ed., Alfred T. Hennelly, New York, Orbis Books, 1993, 17면.

48) 위의 책, 32-33면.

49) Leonardo Boff, Church, Charism, and Power: Liberation Theology and the Institutional Church, tr. Diercksmeier, John W., London, SCM Press, 1985(원본 1981).125면.

50) Leonardo Boff, 위의 책, 125-130면.

51) 위의 책, 132면.

52) 위의 책, 133면.

53) 요한 바오로 2세, 현대의 교리교육(교리 교육에 대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성하의 세계 주교 대의원회의 후속 사도적 권고), 1979.

      58항. “교회는 친교이기 때문에, 만약 새로운 기초 공동체들이 진실로 교회와 일치하고 있다면, 그들은 친교의 진실한 표현이며 보다 항구한 친교의 건설을 위한 수단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교회 삶의 커다란 희망의 근원이 될 것이다.”

      67항. “어떤 이들은 시의적절하고 효과가 좋은 소규모 공동체들에 호감을 갖는 나머지 본당이란 머지않아 없어질 것이려니 여기거나 아니면 적어도 본당을 이미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쉽사리 단정하는 듯한다.” 교황의 이 표현은 본당을 공동체들의 친교로 바라본 것이다.“ 

54) 요한 바오로 2세, 평신도 그리스도인(교회와 세계에 있어서 평신도의의 소명과 사명에 관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성하의 세계 주교 대의원회의 후속 사도적 권고), 1988.

      26항. 본당의 쇄신을 위하여. “신자들이 하느님 말씀의 친교를 나누는 상호 봉사와 사랑 안에서 이를 드러낼 수 있는 소규모의 기초 공동체 또는 이른바 ‘생활’ 공동체; 그들의 사목자들과 친교를 이루는 이러한 공동체들은 교회적 친교의 진정한 표현이며 복음 선포의 중심이다.”

      30항. 교회성의 기준. “교회 안에서 평신도 단체들을 평가하는 기본적 기준들은 종합적으로 다음과 같다.

─모든 그리스도인의 성화 소명을 으뜸으로 삼는 우위성. 성덕은 “성령께서 신자들 안에서 맺어 주시는 은총의 열매로” 그리고 그리스도교적 생활의 완성과 사랑의 완덕을 향한 성숙으로 나타나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어떠한 평신도 단체이든 언제나 “회원들의 실생활과 신앙의 더욱 긴밀한 일치”를 강화하고 촉진함으로써 교회 안에서 성덕으로 나아가는 더 나은 도구가 되도록 부름 받고 있다.

─ 가톨릭 신앙 고백의 책임. 이는 교회의 교도권에 순종하여 교회가 진리를 해석하는 대로, 그리스도께 관한 진리, 교회에 관한 진리, 인간에 관한 진리를 수용하고 선포하여야 할 책임을 말한다. 이러한 연유에서 모든 평신도 단체는 신앙의 완전한 내용을 선포하고 또 배우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

─ 확고하고도 진정한 친교의 증언. 보편 교회의 영구적이고 가시적인 일치의 핵심인 교황에게 충성하는 자녀 관계 안에서, 그리고 개별 교회에 있어서 “일치의 가시적인 근원이며 토대”인 지역 주교와 더불어, “교회 안에서 온갖 형태의 사도직이 서로 존중”하는 가운데 이루는 확고하고도 진정한 친교를 증언하여야 한다.

  교황과 주교와 더불어 이루는 친교는 교황과 주교의 교의적 가르침과 사목 지침들을 수용하는 충직한 자세로 드러나야 한다. 더 나아가, 교회적 친교는 교회 안에 있는 온갖 형태의 평신도 단체들이 지닌 정당한 다양성에 대한 인정을 요구하는 동시에 공동 노력에 기꺼이 협력하고자 하는 의지를 요구하고 있다.

─ 교회의 사도직 목적에 대한 순응과 참여. 곧 “사람들에게 복음을 선포하고, 사람들을 거룩하게 하며, 그들의 양심을 그리스도교적으로 형성하고, 다양한 공동체와 환경에 복음의 정신을 불어넣는” 그 사도직 목적을 따르고 그 목적에 참여하여야 한다.

  이러한 전망으로부터 모든 형태의 평신도 단체는 각기 재복음화에 참여하여 그 효율성을 증진시킬 수 있는 선교 열정을 지니도록 요청받고 있다.

─ 인간 사회에서 교회의 현존을 위한 투신. 교회의 사회 교리에 따라 인간의 전인적 존엄성에 봉사하도록 투신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평신도 단체들은 사회 안에서 더욱더 정의로운 형제애의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참여와 연대의 효과적인 통로가 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언급한 근본적인 기준들은 다양한 형태의 단체들이 그 유기적인 생활과 활동 안에서 보여 주는 실질적인 결실로 확인되고 있다. 곧 기도, 명상, 전례와 성사 생활에 관한 새로운 존중; 그리스도인의 혼인과 직무 사제직과 봉헌 생활에 관한 소명의 재각성; 지역적, 국가적, 국제적 차원에서 교회의 활동과 사업에 대한 참여의 자세; 교리교육에 대한 투신과 그리스도인 양성과 교육의 역량; 사회 생활의 다양한 환경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 현존하고자 하는 열망과 자선 사업, 문화 사업, 영성 활동의 창시와 진흥; 모든 사람을 향한 사랑 안에서 더욱 관대한 헌신으로 나아가는 복음적 청빈과 초탈의 정신; 신앙으로부터 멀어졌던 세례 받은 사람들의 그리스도교적 생활로의 회개 또는 교회적 친교에로 복귀 등 단체 사도직 활동의 실질적인 결실 안에서 그 근본 기준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55) 요한 바오로 2세, 교회의 선교사명(교회의 불변하는 선교 사명에 관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성하의 회칙), 1990.12.7.

    51항. 교회의 기초 공동체는 복음화의 힘이다. “젊은 교회들 안에서 신속히 번창하고 있고 주교들과 주교회의들이 사목 활동의 우선적 과제로 추진하고 있는 것이 교회의 기초 공동체이다(다른 이름도 있다). 이것은 그리스도교 교육과 선교 추진의 좋은 중심처로 인정되고 있다. 기초 공동체란 소수의 가정이나 인근 신자들이 기도와 성경 독서와 교회 공부와 인간적 교회적 문제에 대한 토론을 하고 공동 책임을 도출하는 소수 신자들의 집회를 말하는 것이다. 이런 공동체들은 교회의 활력의 표지이고 신자 양성과 복음화의 도구이며 '사랑의 문화'에 바탕을 둔 새로운 사회의 출발점이다. 이 공동체들은 본당 공동체를 분권적으로 구성하면서도 항상 본당에 속하여 있다. 그들은 생활 주변과 촌락에 뿌리를 내려서 그리스도교 생활의 누룩이 되고 가난한 사람과 소외된 사람을 돌보고 사회 개량의 의무를 다한다. 이 공동체 안에서 각자는 공동체를 체험하고 그 안에서 능동적 역할을 한다는 것을 느끼고 공동체의 일에 각자의 노력을 접합시키도록 격려를 받는다. 그래서 이 공동체들은 복음화와 기초적 복음 선포의 도구가 되고, 새로운 직무의 기원이 되며,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고무되어 분열과 족벌과 종족주의를 극복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어떤 공동체든지 참으로 그리스도교적인 것이 되려면 그리스도께 의지하고, 그리스도 안에 생활하고,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성체성사를 중심으로 기도에 항구하고, 마음과 정신의 친교를 유지하고, 형제들의 필요에 따라서 물질을 공유하는 것이 요구된다(사도 2,42-47 참조). 교황 바오로 6세가 지적한 대로 모든 공동체는 지역 교회와 전체 교회와 일치하고, 교회의 목자들과 교도권에 일치하고, 선교에 투신하고, 모든 종류의 고립주의와 고정 관념을 배제해야 한다. 그뿐 아니라 주교회의의 선언도 명심해야 한다. "교회 자체가 친교인 만큼 새로운 기초 공동체들이 참으로 교회와 일치하여 산다면 그들은 이 친교의 증명이 되고 더 깊은 친교를 이루는 방법이 된다. 그래서 이러한 기초 공동체는 교회 생활에 크나큰 희망을 가져다 준다.

56) Dennis M. Doyle, Communion Ecclesiology: Vision and Versions, Maryknoll, New York, Orbis Books, 2000, 131면. 심흥보, 위의 책, 80-85면.

57) Augustine Miringl, Small Chrisian Communities in Eastern Africa with Particular Reference to Tanzania: Canonical Implications,. 108면.

58) 심흥보, 위의 책, 92면.

59) A. Shorter, African Christian Theology: Adaption or Incarnation?, London, 1975, 145-146면 참조. 세르지오 핀토르, 위의 책, 93면 재인용.

60) Des pe tres noris s interrogent, Paris, 1956 참조. 세르지오 핀토르, 위의 책, 93면 재인용.

61) V. Mulago, Un visage african di christianisme, L'union vitale bontu facea l'unite ecclesiale, Paris, 1965 참조. 세르지오 핀토르, 위의 책, 94면 재인용.

62) Evangelizzazione e corresponsabilita, Dichiarazione del verscovi d' Africa e Madagascar, presenti al IV Sinodo, II Regno-documenti 1, 1975, 6면 참조. 세르지오 핀토르, 위의 책, 94면 재인용.

63) O. Bimweny-Kweshi, Discours theologique, negro-african, Proglemedes fondaments, Paris, 1981. 참조.  세르지오 핀토르, 위의 책, 94면 재인용.

64) Bimweny-Kweshi, Discours theologique, 58, nota 37. 세르지오 핀토르, 위의 책, 94면 재인용.

65) 위의 책, 58. 세르지오 핀토르, 위의 책, 95면 재인용.

66) 위의 책, 80. 세르지오 핀토르, 위의 책, 95면 재인용.

67) 위의 책, 280; R. Bibelini, Theologia in Africa, Tutte le cose narrato di Dio, II Regno Attualita 18, 1987, 506-507 참조. 세르지오 핀토르, 위의 책, 95면 재인용.

68) Londi Boka di Mpasi, A propos dela theologie d' Eglises africaines, Spritus 104, 235-248 참조. 세르지오 핀토르, 위의 책, 96면 재인용.

69) E. J. Penoukou, Chiese d' Africa, EDB, Bologna 1987, 49-64 참조. A. J. Sanon, Fame di essere, Missione oggi 2월, 1986, 50-53 참조. 세르지오 핀토르, 위의 책, 95-96면 재인용.

70) J. M. Ela, Identie propre d'une theologie africanine, C. Geffre, a cura di, Theologie et choc des cultures(Colloque de l' Institut Catholicque de Paris), Paris, 1984, 23-54 참조. 세르지오 핀토르, 위의 책, 97면 재인용.

71) J. M. Ela, Ma foi d' africano, Paris, 1985, 17. 세르지오 핀토르, 위의 책, 97면 재인용.

72) J. M. Ela, Le cri de l' homme africain, Questions aux chre tiens et aux eglises d' Afrique, Paris, 1980, 166. 세르지오 핀토르, 위의 책, 97면 재인용.

73) La Chiesa in Africa e la sua missione evangelzzatrice verso l' anno 2000: "Saretemiei testimoni", Lineamenti del Sinodo per l' Africa, a cura della Segreteria generale del sinodo dei vescovi, in II Regno-document 1, 1991, 34-64 참조; 세르지오 핀토르, 위의 책, 98면 재인용.

74) Dieudonne M. Sanda, the Basic Christian Community as the normal setting for catechesis in Zaire, African Ecclaesial Teview(Afer)Vol. 18, 1976, 17면.

75) Halen Dillon, The Small Christian Communities of East Africa: Healing Agents to a Society Fractured by Modernization, MA thesis of the Catholic Theological Union at Chicago, 1980, 5-8면.

76) Quoted in Augustine Miringl, Small Chrisian Communities in Eastern Africa with Particular Reference to Tanzania: Canonical Implications, Doctor Thesis of the Catholic University of America, Washington,D.C., 1984, 52면.

77) John Fuellenbach, Church Community for the Kingoom, Manila, Logos Publications, 2004, 178면 참고.

78) Joseph G. Healey, 위의 책, 39면.

79) Halen Dillon, 위의 책, 8-9면.

80) Ralphael s. Ndingi Mwana ‘A Nzeki, Implementing AMECEA’s Pastoral Priority(Plenary Presentation Paper), African Ecclesial Review(Afer)Vol.21, 1979, 293-294면.

81) 위의 기사, 294면.

82) 위의 기사, 264면.

83) Joseph G. Healy, Church-as-Family and SCCs: Themes from the African Synod, African Ecclesial Review Vol. 37, no.1. Church of Africain Synod, February, 1995, 46-47.

84) Laurence Paul Prior, A Communion of Communities: The Mission and Growth of Local Church as Reflected in the Publications of the Lumko Institute, MA Thesis of the University of South Africa, 1993, 3면.

85) 위의 논문, 58-60면.

86) 위의 논문, 70. 80면.

87) 위의 논문, 78면.

88) 심흥보, 위의 책, 85-94면.

89) 세르지오 핀토르, 위의 책, 93면.

90) Quote in Peter C. Phan, “Reception of Vatican II in Asia: Historical and Theological Analysis,” FABC Papers No. 117, 111면: “Catholic Almanac(Our Sunday Visitor, Inc.), 국제 선교 보고서의 각 권 교회 통계(Vatican Press)와 세계 교회 선교의 연중 통계표,”에 나오는 것으로서, 2000년도 아시아 주교회의에 속한 각 나라들의 천주교인 수를 백만명 단위와 퍼센트로 표기했다. 방글라데쉬(145.8/0.27%); 부탄(1.8/0.02%); 버마/미얀마(48.8/1.3%); 캄보디아(10.3/0.02%); 중국(1,239.5/0.5%); 홍콩(6.9/4.7%); 인도(990/1.72%); 인도네시아(202/2.58%); 일본(127.7/0.36%); 북한(22.6/?); 대한민국(47.2/6.7%); 라오스(6.2/0.9%); 마카오(0.5/5%); 말레이시아(22/3%); 몽고(2.5/?); 네팔(23/0.05%); 파키스탄(142.6/0.8%); 필립핀(74.8/81%); 싱가폴(3.1/6.5%); 스리 랑카(20.8/8%); 대만(22.1/1.4%); 태국(61.6/0.4%); 베트남(78.2/6.1%).”

91) 요한 바오로 2세, 아시아 교회(아시아 주교 대의원회의 후속 권고), 6항, 뉴델리, 1999.

92) 위의 권고, 20항; 바오로 6세, 현대의복음선교(사도적 권고), 53항, 1975; AAS 68(1976)41ff.

93) 심흥보, 위의 책, 100-102면.

94) A. Pieris, Towards an Asian Theology of Liberation: Some Religion-Cultural Guidelines, Asia's Struggle for Full Humanity: Towards a Revelant Theology(Papers from the Asian theological Conference, January 7-20. 1979, Wennapuwa, Sri Lanka), New York, 1980, 74-95 참조. 세르지오 핀토르, 위의 책, 98면 재인용.

95) C. Abesamis, Faith and Life Reflections from Grassaoots in the Philippines, Asia's Struggle for Full Humanity, 134. 세르지오 핀토르, 위의 책, 99면 재인용.

96) R. Gilbelini, II Christianesimo fra poverta e religion, II Regno-attualito 16, 1987, 422. 세르지오 핀토르, 위의 책, 99면 재인용.

97) A. Pieris, Theologie der Berfreiung in Asien, Christentum in kontext der Armut und der Teligionem, Freburg-Basel-Wien, 1986 참조. 세르지오 핀토르, 위의 책, 100면 재인용.

98) A. Pieris, Theologie, 161-162. 세르지오 핀토르, 위의 책, 100면 재인용.

99) 위의 책, 225-238. 세르지오 핀토르, 위의 책, 100면 재인용.

100) 위의 책, 160. 세르지오 핀토르, 위의 책, 100면 재인용.

101) 위의 책. 세르지오 핀토르, 위의 책, 100면 재인용.

102) In Semi del Vangelo, IV sinodo dei vescovi, Bologna, 1975, 169. 세르지오 핀토르, 위의 책, 101면 재인용.

103) M. Zago, La Chiesa in Asia oggi, EMI, Bologna, 1983, 81. 세르지오 핀토르, 위의 책, 102면 재인용.

104) Lettera di Giovanni Paolo II, L' Osservatore Romano, 18. 7. 1990. 5 참조. 세르지오 핀토르, 위의 책, 102면 재인용.

105) FABC, Evangelizatin in Asia Today. A message to the Chruch, East Asian pastoral review 4, 1988, 334-335면 참조; Cardinal Tomko, Discorso all' apertura della V Assemblea plenaria della FABC, L'Osservatore Romano, 18. 7. 1990. 6 참조; Evangelizzarione in Asia oggi, Omnis terra 16, 1988, 223, no. 6. 참조; 세르지오 핀토르, 위의 책, 103면 재인용.

106) FABC, I, Statement, n. 12; FABC, Papers, n. 28. 16; D' Souza, L' Asia interpellata, 4; 세르지오 핀토르, 위의 책, 103면 재인용.

107) FABC, V, Documento conclusivo, nn. 4. 3, Asia News, 15. 9. 1990. 37; 세르지오 핀토르, 위의 책, 104면 재인용.

108) Francisco F. Claver, “The Church in Asia: Twenty and Forty Years after Vatican II,” FABC papers No. 117, Hong Kong: Federation of Asian Bishop’s Conference, 2006, 77.

109) “Conclusion of Asian Colloquium on Ministries in the Church in 1977, no.4 1-50 Developing Basic Christian Communities,” For All the Peoples of Asia Vol. 1: Federation of Asian Bishop’s Conferences Documents from 1970-1991, ed. Gaudencio Rosales D. D. and C. G. Arevalo, Maryknoll, New York, Orbis Books, 1992, 76-77.

110) “International Congress on Mission: Message of the Delegates Consensus Papers of the Workshops in 1979, no. Workshop V(D/CPW V): Basic Christian Communities and Local Ministries no. 1-11,” 위의 책, 148-152

111) Francisco F. Claver, “The Church in Asia: Twenty and Forty Years after Vatican II” FABC papers No. 117, 77면.

112) Satement and Recommendations of the Third Plenary Assembly of the Federation of Asian Bishops’ Conference: The Church-ACommunity of Faithin Asiain, 1982, The “Syllabus of Concerns” of the Plenary Assembly, no. I. Form of Christian Community-Livingin Asia; For All the Peoples of Asia Vol. 1: Federation of Asian Bishop’s Conferences Documents from 1970-1991, 63.

113) Statement of the Fifth Plenary Assembly of the Federation of Asian Bishops’ Conference: Journeying Together Toward the Third Millennium in 1990, no. 8.1.1. and 8.1.4. of Response at the Level of Being in no. 8.0. A New Way of Being Church in the 1990s; For All the Peoples of Asia Vol. 1: Federation of Asian Bishop’s Conferences Documents from 1970-1991, 287면.

114) Statement of the Fifth Plenary Assembly of the Federation of Asian Bishops’ Conference: Journeying Together Toward the Third Millennium in 1990, no. 8.1.2. and 8.1.4. of Response at the Level of Being in no. 8.0. A New Way of Being Church in the 1990s; For All the Peoples of Asia Vol. 1: Federation of Asian Bishop’s Conferences Documents from 1970-1991, 287-288면. 심흥보, 위의 책, 95-97면.

115) Statement of the Fifth Plenary Assembly of the Federation of Asian Bishops’ Conference: Journeying Together Toward the Third Millennium in 1990, no. 9.1. of Response at the Focal Point of the Spirit in no. 9.0. A Spirituality for Our Times; For All the Peoples of Asia Vol. 1: Federation of Asian Bishop’s Conferences Documents from 1970-1991, 288면.

116) Statement of the Fifth Plenary Assembly of the Federation of Asian Bishops’ Conference: Journeying Together Toward the Third Millennium in 1990, no. 9.5. of Response at the Focal Point of the Spirit in no. 9.0. A Spirituality for Our Times; For All the Peoples of Asia Vol. 1: Federation of Asian Bishop’s Conferences Documents from 1970-1991, 288-289면.

117) Statement of the Fifth Plenary Assembly of the Federation of Asian Bishops’ Conference: Journeying Together Toward the Third Millennium in 1990, no. 9.6. of Response at the Focal Point of the Spirit in no. 9.0. A Spirituality for Our Times; For All the Peoples of Asia Vol. 1: Federation of Asian Bishop’s Conferences Documents from 1970-1991, 289면. 심흥보, 위의 책, 97-98면.

118) 노주현, 가톨릭 교회의 ‘소공동체론’ 연구: 천주교 서울대교구의 실현노력을 중심으로, 서울: 서강 대학교 대학원, 2001, 35-36 면.

119) Peter C. Phan, “Reception of Vatican II in Asia: Historical and Theological Analysis,” FABC Papers No. 117, Hong Kong, Federation of Asian Bishop’s Conference, 2006, 126면.

120) Asian Integral Pastoral Approach towards a New Way of Being Church in Asia(ASIPA): Report of the Consultation on Integral Formation in 1993; For All The Peoples of Asia Vol. 2: Federation of Asian Bishops’ Conferences Documents from 1992 to 1996, ed. Franz-Josef Eilers, SVD(QuezonCity:ClaretianPublications, 1997, 107-108면.

121) Statement of the Eighth Final Plenary Assembly of the Federation of Asian Bishops’ Conference: the Asian Family towards a Culture of Integral life, no.99-100, 2004.

122)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평화의 날 메시지: 평화를 원하면 정의를 지켜라(From the Justice of Each Comes Peace for All), 1998. 1. 1 참조.

123) Arthur Pereira and Wendy Louis, “Small Christian Communities Promoting Family Life,” FABC Papers No. 113(FABC Office of Laity, Asian Resource Team for AsIPA Desk,2005). 심흥보, 위의 책, 98-99면.

124) 심흥보, 한국 천주교 사회복지사 연구, 가톨릭 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 사회복지학과 석사학위 논문, 1998, 300-310면; 한국 천주교 사회복지사, 천주교 중앙협의회, 2001, 59-78면. 여기 게재된 내용은 결론에 실린 요약부분을 정리한 것이므로 각주는 위 저작들의 해당 본문 주석을 찾아보기 바란다.

125) 참고적으로 연도에 관한 연구는 아래의 논문들을 참조할 수 있다. 강영애, 천주교 연도(위령기도)의 음악적 연구, 전남대학교 예술연구소, 2001; 강영애, 한국천주교 장례노래(연도)의 음악구조, 민족음악학회, 2004; 최종민, 천주교 연도의 음악구조 연구, 음악과 민족 27호, 민족음악학회, 2004, 177-204면; 김수정, 한국 문화로서의 가톨릭 교회 음악에 대한 재조명-연도의 선율짜임세에 대한 비교 연구를 중심으로, 한국음악학학회, 2006; 주은경, 한국 천주교 장례예식서를 통해 본 장례문화와 연도의 노래문화, 한국음악사학회, 2008: 주은경, 한국 천주교 장례예식서 성교예규와 상장예식의 연도, 민족음악학회, 2008.

126) 한국 교회의 토착화 노력과 요청이라는 면에서 참고할 연구들은, 박종대, 생명문화와 복음의 한국화’, 우리사상연구소 편, 한국 가톨릭 어디로 갈 것인가, 서광사, 1997, 396-425면; 이정배, 토착화와 생명문화, 종로서적, 1991 등이 있다. 김웅태, 종교의 현대적 적용-한국 그리스도교의 토착화를 중심으로, 서울, 가톨릭 대학교 출판부, 2001, 229면 참조.

127) 이제민, 한국 천주교회의 정체성과 그 실현, 신학전망 107, 광주가톨릭대학교출판부, 1994 겨울, 24-51면; 교회-순결한 창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한국천주교회, 분도출판사, 1995, 109-141면; 성염, 교계제도와 신도의 신원-한국 천주교의 신도는 얼마나 한국적인가?, 신학전망 107호, 광주가톨릭대학교출판부, 1994 겨울, 76-92면; 변진홍, 신치구, 교회의 정체성, 민족의 복음화, 가톨릭 신앙생활 연구소, 1996; 심상태, 제삼천년기와 한국 교회의 새복음화, 한국그리스도사상 3, 수원, 한국그리스도사상연구소, 1995, 191-192면 참조. 김웅태, 위의 책, 245면, 각주 64참조;

128) 황종렬, 한국 토착화 신학의 구조, 형성과학연구회, 서울, 국태원, 1996.

129) 김웅태, 위의 책, 224면.

130) 위의 책, 240-246면.

131) 위의 책, 252-255면.

132) 박문수, 한국신학(우리신학)의 과제-가톨릭의 한국화를 위한 우리사상연구소, 우리신학연구소 제2회 공동워크샵, 갈라진 시대의 기쁜소식 248호, 서울, 우리신학연구소, 1996. 7, 15면.

133) 정진석, 전국공용 교구사제 특별권한 해설, 사목 105, 서울,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86 5, 97-98면.

134)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교회법전 511항, 서울: 한국 천주교 중앙 협의회, 2000, 315면.

135)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교회법전 511항, 서울: 한국 천주교 중앙 협의회, 2000, 329면.

136)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주교들의 사목 임무에 관한 교령(주교 교령), 주님이신 그리스도(Christus Dominus), 1965, 27항. “이(사목)위원회의 임무는 사목 활동에 관한 것을 연구하고 심의하며 이에 대한 실천적 결론을 제시하는 소임을 가진다.”

137) 제2차 바티칸 공의회, 평신도 사도직에 관한 교령(평신도 교령), 사도직 활동(Apostolicam Actuositatem), 1965, 26항.

  “각 교구에는 되도록, 복음화와 성화 활동, 자선 사업이나 사회 사업, 그 밖의 다른 분야에서, 사제들과 수도자들이 평신도들과 적절히 협력함으로써 교회의 사도직 활동을 돕는 평의회를 두어야 한다. 이 평의회는 평신도 단체들의 고유한 특성과 자율성을 유지하면서 그 다양한 단체들과 활동들의 상호 조화에 이바지할 수 있다.

     이러한 평의회는 가능하다면 본당 사목구는 물론 본당 간, 교구 간 또는 국가나 국제 차원에서도 설치되어야 한다.”

138) 이메일을 통한 Mark F. Fisher 교수와의 면담, 2007.2.27.

139) 교회법, 512조.

140) 교회법, 513조.

141) 교회법, 513조.

142) 김수태, 연기 노송리 경주김씨의 천주교 수용과 공소, 역사와 담론 호서사학 42집, 청주, 호서사학회, 2005, 1-2면.

143) 조광, 박해시대의 공소생활, 경향잡지 1696호, 서울,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9. 7, 56면.

144) 김문수, 홍승재, 대전교구 공소의 변천과정과 건축특성에 관한 연구, 대한건축학회 논문집 13권, 서울 대한건축학회, 1997. 5, 129면.

145) 김혜숙, 본당 사도직 여성 수도자의 정체성, 경향잡지 1691호, 서울,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9. 2, 103-104면.

146) 이완영, 한국 여성수도자의 사명, 사목 95호, 서울,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84, 21면.

147) 한국 천주교 200 주년 사목위원회, 사회조사위원회, 서울, 1985, 355-357면.

148) 위의 보고서, 358-359면.

149) 위의 보고서, 170-171면.

150) 2000년대 복음화 사무국 자료 제공

151) 김수환, 서울대교구 사목교서, 1992, 2면.

152) 교황 바오로 6세, 현대의 복음선교(사도적 권고), 1975.

153) 김 수환, 서울대교구 사목교서, 1993, 1면. 현대의 복음선교, 17항 참조.

     “교회의 복음화 활동에 있어서 각별히 유의해야 할 요소와 국면이 있다. 그중에 어떤 것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그것만이 복음화 활동의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한 경우로써는, 복음 선교를,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설교하고, 교리를 가르치고, 세례를 주고 기타 다른 성사를 주는 것이라고 정의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복음 선교의 풍부하고 복잡하고 동적인 참모습을 부분적 또는 단편적으로 규정할 때는 그것을 빈약하게 하거나 그르치게 할 위험이 있다. 중요한 모든 요소를 한 가지로 포괄하지 않는다면 복음 선교를 파악하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이번 세계주교대의원회의에서 이러한 요소들이 깊이 논의되었고 그 자극을 받아 오늘도 계속 연구되고 있다. 기쁘게 생각하는 바로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본인에게 준 문헌, 특히 교회 헌장과 선교 교령의 방향과 일치한다는 것이다.”

154) 위의 교서. 위의 회칙, 18항 참조.

     “교회로서는 복음 선교의 기쁜 소식을 인류의 모든 계층에까지 전해주어 “보아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든다”고 한 것과 같이 그 힘으로 인류를 내부로부터 변혁시켜 새롭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만일 세례를 받아 새 생명을 받고 복음적인 생활로 새로워진 사람들이 없었다면 새로운 인류는 태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기에 복음 선교의 목적은 이 내적 변화의 성취에 두고 있다고 하겠다. 한마디로 표현해서 교회가 선포하는 메시지의 신적 능력으로 모든 개인과 집단의 양심, 그들이 관계하고 있는 활동, 그들의 생활과 구체적 환경을 변혁시키려고 노력할 때 교회는 복음 선교를 하고 있다고 하겠다.”

155) 위의 교서. 위의 회칙, 19항 참조.

     “교회로서 복음 선교를 한다는 것은 단순히 더 더욱 넓은 지역에서 또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선교하는 것만이 아니고, 하느님의 말씀과 구원 계획에 상반되는 인간의 판단 기준, 가치관, 관심의 초점, 사상의 동향, 사상의 원천, 생활 양식 등에 복음의 힘으로 영향을 미쳐 그것들을 역전시키고 바로잡는 데 있다고 하겠다.”

156) 김 수환, 서울대교구사목교서(1993), 2.

157) 신 경남, 소공동체와 종교교육: 서울대교구 운동에 관한 연구, 뉴욕, Fordham University, 2004, 36면.

158) 요한 바오로 2세, 교회의 선교사명(교회의 불변하는 선교 사명에 관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성하의 회칙), 1990.12.7, 51항,

159) 김수환, 서둘대교구 사목교서, 1992, 3면.

160) 노주현, 가톨릭 교회의 ‘소공동체론’ 연구: 천주교 서울대교구의 실현노력을 중심으로, 서울, 서강 대학교 대학원, 76-77면.

161) 차동엽, 공동체 사목 기초: 소공동체 원리와 방법, 서울: 가톨릭 출판사, 2001, 79면.

162) 김수환, 서울대교구 사목교서, 1991-1992; 경동현, 한국 천주교 직무 이해, 서강 대학교 대학원, 1998, 53면.

163) 서울대교구, ‘1997년 사제 총회 그룹토의’, 복음화 사무국, 1997. 

164) 정진석, 서울대교구 사목교서, 서울대교구, 1999.

165) 차동엽, 위의 책, 26-27면.

166) 위의 책, 27-30면.

167) 강우일, ‘교회는 공동체들로 이루어진 공동체’ 경향잡지, 1993. 3, 19면. 소공동체 운동 이후 51.2% 증가, 가톨릭 신문 2000, 47면.

168) 차동엽, 위의 책, 2001, p.82. 

169) 차동엽, 소공동체와 레지오 마리애의 신학적인 자리매김; 성준한, 레지오와 소공동체의 협력적 발전을 위한 의제 제기; 김종욱, 소공동체와 레지오의 관계 모색; 강영옥, 소공동체와 레지오 마리애의 협력과 발전을 위한 본당 조사 보고서, 제2차 소공동체 전국 모임, 1992, 251-321면; 한국 천주교 소공동체와 사도직 운동,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제6차 심포지엄, 2004. 7.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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