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부 실천사목신학과 사목직무 방법론


    1. 사도적 성찰 스타일

        1) 본다(See)-그리스도의 눈으로 현실을 바라봄

        2) 식별(Judge)-해방을 가져다 주는 판단(식별)

        3) 실천(Act)-하느님의 일에 함께 협력함(1코린 3,9)

    2. 사목직무 스타일

        1) 화이트헤드의 사목직무 방법론

        2) 세 단계의 방법론

        3) 경험의 타입

        4) 신학과 연결

        5) 계획된 실천

    3. 영적 지혜 스타일

        1) 그룸의 공유된 그리스도인 실천(praxis)

        2) 킬렌과 드 비어의 신학적 반성 구조

        3) 경험의 타입

        4) 신학과 연결

        5) 실천을 향하여

    4. 여성주의 스타일

        1) 비평적 의식

        2) 전승의 비평

        3) 복구와 재해석

        4) 새로운 실천에 헌신

        5) 경험의 타입

        6) 신학과 연결

        7) 실천을 향하여

    5. 토착화 스타일

        1) 슈라이터의 지역 신학

        2) 신학적 반성의 지도

        3) 문화에 귀기울임

        4) 토착화 신학

        5) 경험의 타입

        6) 신학과 연결

        7) 실천을 향하여

    6. 실천적 스타일

        1) 브라우닝의 기초실천신학

        2) 서술신학

        3) 역사신학

        4) 조직신학

        5) 전략적 실천신학

        6) 가정생활에 적용

        7) 체험의 형식

        8) 신학과 연결

        9) 실천을 향하여

    7. 신학적 반성의 세가지 요소

        1) 경험

        2) 신학적 상관관계

        3) 실천(praxis)




5장 교회의 사목활동에 대한 실천신학적 반성




이 장에서는 교회의 사목활동에 대한 실천신학적 반성을, 1항 사도적 성찰 스타일을 본다(See)-그리스도의 눈으로 현실을 바라봄과 식별(Judge)-해방을 가져다 주는 판단(식별) 그리고 실천(Act)-하느님의 일에 함께 협력함(1코린 3,9 참조)이라는 세 가지 항목으로, 2항 사목직무 스타일을 화이트헤드의 사목직무 방법론과 세단계의 방법론, 경험의 타입, 신학과 연결, 그리고 계획된 실천으로, 3항 영적 지혜 스타일을 그룸의 공유된 그리스도인 실천(praxis)와 킬렌과 드 비어의 신학적 반성 구조, 경험의 타입, 신학과 연결, 그리고 실천을 향하여로, 4항 여성주의 스타일을 비평적 의식과 전승의 비평, 복구와 재해석, 새로운 실천에 헌신, 경험의 타입, 신학과 연결, 그리고 실천을 향하여로, 5항 토착화 스타일을 슈라이터의 지역 신학, 신학적 반성의 지도, 문화에 귀기울임, 토착화 신학, 경험의 타입, 신학과 연결, 그리고 실천을 향하여로, 6항 실천적 스타일을 브라우닝의 기초실천신학, 서술신학, 역사신학, 조직신학, 전략적 실천신학, 가정생활에 적용, 체험의 형식, 신학과 연결, 그리고 실천을 향하여로 나누어 살펴본다. 그리고 7항 신학적 반성의 세가지 요소인 경험과 신학적 상관관계 및 실천(praxis)도 알아본다.


로버트 키나스트Robert Kinast는 「신학적 반성을 무엇이라고들 하는가?」에서, ‘신학적 반성’(Theological Reflection)은 지난 25년간 부각된 신학화의 특별한 형태를 가리키는 용어라고 밝힌다.1) 신학이라는 단어가 반성 행위의 몇가지 형식을 취한다. 신학적 반성은 대상-하느님과 모든-주제들을 포함한다. 신학화의 이러한 형태의 특성은 때때로 상황화신학(contextual theology), 경험신학(experiential theology), 실천신학(praxis theology) 등의 다른 용어들에 의해 좀 더 진행된다. 신학적 반성은 포괄적인 진리들을 다루기보다는 생생한 경험을 그려내고 있다. 그것은 신학적인 이상이 아니라 실천적 행위를 목적으로 한다. 그 특별함은 라틴 아메리카 해방신학, 여성학, 흑인과 히스패닉/라티노 신학, 교리교수 신학, 임상 사목 교육, 영적 쇄신과 일치 운동의 대화들이라는 여러 가지 자원에 의해 더 발전되었다.2) 이러한 자원과 동의어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은 경험과 신앙 전승 그리고 그리스도교 생활의 실천적 수행이라는 아주 단순한 세 가지 운동이다.

첫째, 경험(Experience): 어떤 형태의 경험이 신학적 반성에 적합한가? 누가 결정하는가? 어떻게 선택된 경험이 그것이 발생한 맥락에서 추출되었으며, 경험이 우선적으로 주어진 그룹과 공동체 안에서 다른 이들과 공유되는가? 모든 경험이 이미 신학적이거나 신앙의 자원과 관련되어 신학적으로 구성되는가?

둘째, 신앙 전승(Faith Tradition): 어떤 자원이 특별한 경험과 관련하여 사용되는가? 누가 결정하는가? 그러한 자원들이 어떻게 해석되고, 상호 관련성의 정밀도와 유효성을 누가 결정하는가? 대조되는 자원이나 해석들이 어떻게 처리되는가? 선택된 경험이 신앙의 전승을 해석하는데 어떤 역할을 하는가? 신학적 반성을 하기 전에 얼마나 많은 신학을 공부해야 하는가? 신학적 반성이 신학적 지식을 얻는 방법인가? 체계적이거나 포괄적인 전체 안으로 따로따로의 반성들을 어떻게 종합하는가?

셋째, 그리스도교 생활의 실천적 수행(Practical Implications for Christian Living): 사람이 반성의 수준에서 행위의 수준으로 어떻게 움직이는가? 제안된 실천이 그리스도교 신앙과 일치하는지의 여부를 누가 결정하는가? 이것을 어떻게 결정하는가? 실천이 반성으로부터 흘러나온다는 것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가? 주어진 실천이 어떻게 수행되고 평가되는가? 과정이 진행되는 데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어떻게 신학적 반성의 공통적인 형태가 정확하게 실천하는가? 무엇보다 먼저, 본질과 스타일의 상호 작용은 형태와 내용 사이의 관계성의 변수이다. 이 둘은 언제나 함께 간다. 그리고 그것들을 분리하는 것은 (감정-사고와 이론-실천 사이를 분리하는) 데이비드 트래이시David Tracy에 따르면, 현대 서구 문화의 세가지 운명적인 분리중의 하나이다.3) 감정-사고 그리고 이론-실천 간의 분열을 치료하려고 최근 몇 십 년간 노력해 왔지만, 형태와 내용(또는 스타일과 본체)의 분리는 거의 인식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사고는 언제나 경험에 충분한 주의를 기울여주지 못한다. 실제로 모든 사람은 어떤 스타일로 행동한다. 부모들은 자녀들을 사랑하고 지배하는 스타일을,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전달과 협동의 스타일을 전개한다.

사람이 채택하는 스타일은 그 사람이 평가하고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사람이 어떻게 다른 사람들과 상황에 반응하는지, 사람의 감정과 경향이 무엇인지 그리고 궁극적으로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가리킨다. 신학과 관련하여, 고백적이거나 복음적인 스타일은 신학적 진리를 다른 이들이 받아들이도록 선포한다. 호교론적 스타일은 신학적 믿음의 설득력을 갖도록 그래서 다른 이들이 확신을 가지도록 한다. 지적인 스타일은 인식을 강조하고, 헌신적인 스타일은 신학의 효과적인 차원을 강조한다. 교의적 스타일은 권위적인 정의를, 자유주의적 스타일은 모든 관점의 관용을 제시하고, 일치운동 스타일은 관점의 일치를 향해 다양한 의견에 개방한다. 그와 유사하게 신학적 반성 스타일은 그 스타일이 초점을 두고 있는 실천자들의 경험의 형태에 의해 결정된다. “신앙의 전승과 어떻게 협동하는가?” 그리고 “그들의 반성에서 생겨나 그들이 마음으로 그리는 실천(praxis)의 종류가 무엇인가?”

스타일들은 그 자체로 경험과 실천의 폭을 점차적으로 넓히도록 대응한다. 사도적 성찰 스타일은 유럽 교회의 전승처럼 내려오는 가톨릭 노동 청년회와 가톨릭 학생회 등의 복음화 사도직 방법론에서 발전되었다. 그 다음 최근에 발전되기 시작한 다섯 가지 스타일이 있다. 사목직무 스타일은 교회 직무의 맥락 내에서 경험과 실천에 가장 제한된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영적 지혜 스타일은 이를 넘어 그리스도교 양성과 신앙 전승의 호교론의 관점에서 삶의 경험의 전체 영역에 개방된다. 여성주의 스타일은 신앙 전승을 비평하고 재건설함으로써 한층 더 나아간다. 그것은 교회만이 아니라 사회에서 그리고 현재만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여성의 경험이라는 전망에서 이를 진행시켜 나간다. 똑같이 그것을 그려내는 실천은 여성과 남성 사이의 보다 전체적이고 통합적인 관계성을 향해 교회와 사회 양면의 변화를 그려나간다. 토착화 스타일은 지역과 전체 문화로 구성되고 또 그것에 기여하는 남성과 여성 둘 다의 경험을 포용하고 있다. 그것은 여성 스타일과 같은 비평과 건설적인 자극을 공유하며, 복음의 새로운 문화적인 표현을 향해 이 자극을 방향짓는다. 마지막으로 실천적인 스타일은 그들이 모든 면에서 사회에 시도한 것처럼 종교적 공동체와 세속적 공동체 둘 다의 경험을 시도한다. 주목표는 현재 실천(praxis)의 신학적 수행을 드러내고, 보다 효과적으로 실천(praxis)을 진행시켜 나가려는 전략을 짜는 것이다.4)



1. 사도적 성찰 스타일

1982년 올리비에 드 브랑제Eveque Olivie de Berranger 주교는 죠셉 까르댕Joseph Cardijn 추기경의 생활반성(Review of Life)을 교회 활동을 수행하는 이들에게 적용하여 ‘사도적 성찰’이란 신학적 반성의 스타일로 사용했다. 그는 죠셉 까르댕이 세상의 젊은이들이 ‘효능’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을 바라보고 젊은 노동자들이 매일매일 자기 생활환경을 변화시키려는 노력을 할 수 있도록, 이 관찰(본다), 판단(식별), 실천이라는 방법을 주었다고 말했다. 가장 작고 단순한 행동으로 시작하여 차츰 더 큰 행동으로 나아가, 결국에는 그들이 하느님의 아들과 딸로서 살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세상의 구조나 행동들을 변화시킬 정도가 되는 것이라고 한다. 브랑제 주교는 ‘사도적 성찰의 영성’5)이라는 주제로 풀어가면서 각 단계마다 두 가지 질문을 던진다.

가) 이 세 단계를 가장 지혜롭고 가장 효과적으로 밟아 통과하기 위해서 우리의 모든 인간적인 수단들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우리는 이 발걸음을, 그리스도인이건 아니건 우리의 소망을 함께 나누는 사람이면 누구와도 함께 옮길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신이 창조된 존재이며 책임감 있는 존재임을 아는 인간의 발걸음이기 때문이다.

나) 사도적 성찰(생활반성)의 역동성 안으로 어떻게 더 깊이 들어갈 것인가? 말하자면 어떻게, 그리스도의 눈으로 현실을 관찰(본다)하고 그리스도의 정신과 사고로 현실을 이해하려고 할 것이며, 어떻게, 그리스도의 인내와 특히 그가 언제나 우리에게 튼튼하게 뿌리깊이 심어주려고 하는 희망으로 현실을 변화시키려고 할 것인가? 그것은 ‘부르심을 받았음’을 아는 사람의 발걸음이다.

이 항에서는 교회의 사목활동에 대한 실천신학적 반성의 사도적 성찰 스타일을 본다(See)-그리스도의 눈으로 현실을 바라봄과 식별(Judge)-해방을 가져다 주는 판단(식별) 그리고 실천(Act)-하느님의 일에 함께 협력함(1코린 3,9 참조)이라는 세 가지 항목으로 나누어 알아본다.


1) 본다(See)-그리스도의 눈으로 현실을 바라봄

가. 사도적 성찰(생활반성)에서 ‘관찰(본다)’이라고 말할 때, ‘관찰(본다)’이라는 말은 육신의 눈으로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보고, 듣고, 이해하며, 기억에 담아 두고, 되새기며, 설명하고, 전달하는 모든 것이다. 전달의 정확성은 정보의 정확성에 달려 있다. 이 이중(二重)의 정확성이, 생활반성에서 ‘관찰(본다)’이라는 행위에 그 질(質)을 부여하는데, ‘반성(review)’이라는 말은 “다시 본다”는 뜻이다.

이 ‘관찰(본다)’이라는 단계의 목적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는 것으로, 이 때 그 사물의 변화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삶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어떤 상황에 관한 자료들을 정확하게 기록해 놓았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했다면, 우리는 그 변화들을 이해할 수 있으며, 필요할 때 그 변화들을 설명할 수 있다.

‘관찰(본다)’은 우리에게 상황들이나 사람들을 꾸준히 지켜 볼 것을 요구한다. 우리는 현실을 정직하게 바라보아야 한다. 우리 자신에게서 떠나는 것과 우리의 환상을 버리는 것을 배우게 된다. 우리는 점점 더 다른 삶에 대해서 민감하게 되고, 존중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들의 생활을 기록하려고 애쓰게 된다.


나. 기도가 되는 눈길

우리의 눈길이, 이러한 부르심을 받고 있으며 그 부르심에 응답하려 애쓰는 사람으로서의 눈길이라고 가정해 봅시다. 그러면 그 눈길은 조금씩 조금씩, 그리스도께서 사람과 사물을 바라보는 바로 그 눈길이 될 것이다. 그 눈길로 보면 우리는 지친 사람들, 방황하는 사람들을 바라보게 되기도 한다.

이것은 바로, “목자 없는 양들처럼 지쳐서 풀이 죽어 있는” 군중을 보시며 아버지를 향해 복음의 일꾼을 보내 달라고 청하는 예수님의 눈길이다(마태 9,36-38 참조). 그것은 강가에서 시몬과 안드레아가 능숙하게 자기 일을 처리하는 것을 바라보는 바로 그 눈길이다. 이것은 그들의 첫 번째로 부르심을 받는 출발점이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마르 1,16-17) 그러므로 우리도 예수님처럼 함께 있는 사람들(‘군중’)과 동시에 각 사람에게 깊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우리는 성격이나 우리가 받은 교육에 따라서, 어느 한 두 사람만을 보게 되는 유혹에 빠질 수 있는데, 그 때는 그들의 환경을 고립시킬 위험이 있다. 아니면 반대로 어떤 회사나 어느 구역의 생활을 올바르게 분석하기는 하지만, 그 때는 또, 직접 관련되어 있는 사람들이 그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하도록 부르심을 받고 있는지 보지 못할 위험에 빠질 수 있다. 예수님의 눈길은 사람들을 그들의 환경에서 고립시키지 않으며, 결코 막연한 분석에 만족하지도 않는다.

‘다시 본다는 것’은 단지 이미 지나간 상황을 주의 깊게 바라보는 것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고, 그보다 더 나아가, 미래를 똑바로 내다본다는 뜻도 있다. 사도적 성찰(생활반성)을 통해서 훈련된 시선은 차츰차츰 ‘사건’들에 대해서 주의를 기울일 수 있게 되는데, 그것은 그 사건들 안에서 어떤 개인이나 단체 또는 제도의 역사 안에 들어 있는 의미를 끌어내기 위한 것이다.


2) 식별(Judge)-해방을 가져다 주는 판단(식별)

가. ‘판단(식별)한다’는 것은 어떤 상황 안으로 깊이 들어가 이해하면서, 진실과 거짓, 가장 중요한 것과 부차적인 것을 분별하는 것이다. 그것은 반쯤 열려 있는 문과 막힌 길을 알아보는 것이며, 문제점과 가능성을 파악하는 것이다. 내가 혼자 생각할 때는 큰 문제처럼 보이는 것도 팀 안에서 이야기함으로써 그렇게 엄청난 문제는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될 때도 있다. 반면에 내가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은 이야기도, 남에게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듣고서는 함께 나눌 필요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판단(식별)’이라는 것은 진리 안에 들어가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우리를 해방시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내가 경험한 것을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겪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과거에 겪은 내 경험은 단지 짐일 뿐이다. 짐은 유용할 수도 있고 부담스러울 수도 있는데, 그것은 내가 그 짐을 어떻게 이용하느냐 하는 방법에 달려 있다.


나. 성령의 이끄심을 따르는 판단

판단은 누구의 잘 잘못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루가 6,37 참조). 바오로 사도는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하느님 마음에 들며 무엇이 완전한 것인지 분별할 수 있게 하십시오.”(로마 12,2)라고 말한다. 식별한다는 것은 다시 말하면, 옛날 수도원에서 말했듯이, 무엇이 인간에게서 나오고 마귀에게서 나오며 하느님에게서 나오는지 분류하거나 더 잘 분별하는 것이다. 하느님 마음에 드는 것이라고 해서 광신과 열광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평화, 기쁨, 온유, 친절이 따르는데, 이것은 바로 ‘성령의 열매’(갈라 5,22)이기 때문이다. 식별을 잘 하는 것은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 이루어지며 “주님의 성령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다.”(2고린 3,17).

판단은 ‘시대의 표징’을 살피듯이, 믿음 안에서 현대의 문제를 판단(식별)하라는 부르심이며, ‘그리스도의 바로 그 정신을 가지고 입장을 취하라’(1고린 2,15-16 참조)는 부르심이다. 예수님의 소망은 오직 하나, 인간의 역사 안에 감추어져 있는 하느님의 활동에 자신의 전존재를 투여하기 위해서 하느님의 뜻을 깨닫는 것이다


3) 실천(Act)-하느님의 일에 함께 협력함(1코린 3,9)

가. 사도적 성찰(생활반성)의 영성은 활동의 영성이다. 산다는 것은 활동하는 것이다. 아무리 사소한 행동(예, 이를 닦는 것, 핀을 줍는 것)이라도 ‘정신적인’ 행동이 될 수 있는데, 다만 그 행동을 인간으로서 해야 한다. 인간으로서 ‘행동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행동한다는 것은 원하는 것이다.

행동한다는 것은 선택하는 것이다.

행동한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이다.


‘행동한다는 것은 원하는 것이다.’ 우리가 정말로 무엇을 원한다면, 우리에게는 활기가 넘치며 또 그 활기는 누구나 다 볼 수 있을 정도로 드러난다. 반대로, 만일 우리의 의지가 병들어 있다면, 우리는 기운 없어 보이며 이 세상에 불이 난다 해도 움직일 수 없을 정도가 된다. 권력의 의지로 다른 사람들을 자기 계획대로 움직이게 하려는 유혹을 물리치지 않는 한, 다른 사람들과 협력할 수 없다. 그러나 참다운 행동은 자기의 의지를 다른 사람의 의지와 조화시킨다. 나아가 자제력 있는 의지는 체념에 빠지지 않는다. 그러한 의지는 침묵을 지킬 줄 알고, 들어야 할 때가 언제인지 알며 또한 필요하다면 크게 외칠 줄도 안다.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지 아는’ 것이다.

‘행동하는 것은 선택하는 것이다.’ 우리는 모든 것을 한꺼번에 다 할 수 없다. 의지는 ‘무한함’에로 열려 있다. 그러나 행동 안에서는 언제나 선택해야 한다. 경험을 쌓아 감에 따라 융통성을 발휘하게 되어, 상황에 적응할 수 있게 되고 때로는 아주 오랫동안 더 나은 조건들을 기다릴 수 있게 된다. 특히, 지혜로운 행동은, 목적을 더 잘 실현하기 위해서 자기에게 주어진 수단들을 바꿀 줄 안다. “우리는 환난도 자랑으로 여깁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환난은 인내를 자아내고 인내는 수양을, 수양은 희망을 자아냅니다.”(로마 5,3-4)

‘행동하는 것은 사랑하는 것이다.’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무엇을 원하는 지 잘 안다. 즉, 그것은 ‘서로간의 일치’이다. 우리를 진지하게 참여하도록 만드는 모든 활동에서, 사랑은 근원이기도 하고 동시에 지향이기도 하다. 활동할 때 기본적으로 필요한 태도는 있을 수 있는 모든 전망을 향해 개방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활동이 마비될 것이고 활동과 함께 우리도 침체될 것이다. 행동한다는 것은 말하자면 늘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나. 기억과 희망

개인 보고서나 주님께서 자신과 함께하신 영적역사를 작성해 보면, 누구나 다 자기 자신만의 유일한 개인사를 갖고 있으며, 하느님 앞에서, 믿음 안에서, 그리고 우리 자신 앞에서도 신성한 역사라는 것을 안다. 만일 내 삶에 이러한 움직임들이 있었고, 또 과거에 이러한 변화들이 있었다면, 그것들은 여기서 멈추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뜻하지 않은 일들도 있을 것이고 틀림 없이 고통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성 바오로의 말씀을 들어보자. “희망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 속에서 하느님 사랑을 부어주셨기 때문입니다.”(로마 5,5)

기도 안에서도, 자기가 무엇을 원하는지 아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활동에 기도가 동반되지 않거나 기도에 의해 활동이 인도되지 않으면, 그 활동은 언제나 흐지부지 될 위험이 있다. 사실 기도한다는 것은 우리 마음에 드는 것을 해 달라고 하느님께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기도한다는 것은 하느님의 생각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것을 사랑한다. 그런 사람은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원한다. 그 때부터, 틀림없이 그가 원하는 것이 기도 안에서 이루어지는데, 그것은 하느님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이렇게 물을 수도 있다. ‘참 좋은 말이기는 한데, 그것이 현실 속에서 어떻게 실현될 수 있는가?’ 그러나 경험의 기억을 되돌아 보면, 그때그때 해 온 활동들이나 오랫동안 해 온 활동들, 그것이 개인적이든 또는 집단적인 것이든, 그 활동들의 메아리를 다시 발견하게 될 것이며, 그 활동들 안에서 변화가 일어났던 것을 다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변화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갔을까? 그 변화들은 무엇을 건설하는가?”하고 자문해보라.

반성자와 실천자는 결코 혼자가 아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과 좋은 뜻을 가진 수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활동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마음으로부터 시작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께서는 우리를 노예가 아니라 당신 자녀들이 되게 하기 위해서(갈라 4,6-7) 우리에게 숨을 불어 넣으셨다. 주님께서는 지금도 우리 안에서, 또 우리를 통해서, 인류를 해방하시는 당신의 싸움을 계속하고 계시다. 그분의 부르심에, 사랑과 인내를 지니고서 응답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사도적 성찰 스타일은 그리스도의 눈으로 바라보고, 그리스도의 뜻에 따라 식별하며,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애덕을 실천하는 사목(사도)직무 수행을 위한 신학적 반성의 방법론이다.



2. 사목직무 스타일

키나스트는 ‘신학적 반성’이란 용어는 아마도 북미의 교회 직무를 수행하는 남성과 여성들을 교육하는데 가장 폭넓게 사용하는 것이며, 특히 신학적 반성에 가장 폭넓게 사용된 본문은 제임스와 에블린 이튼 화이트헤드가 쓴 「사목직무 방법론(Method in Ministry)」6)이라고 한다. 1980년에 발행되고 1995년에 개정된 이 책은 신학적 반성의 사목직무 스타일의 표본이다. 이 항에서는 교회의 사목활동에 대한 실천신학적 반성의 사목직무 스타일을 화이트헤드의 사목직무 방법론과 세단계의 방법론, 경험의 타입, 신학과 연결, 계획된 실천으로 나누어 알아본다.7)


1) 화이트헤드의 사목직무 방법론

화이트헤드는 신학적 반성을 “그리스도교 신앙 자원을 이용하여 사목직무의 실천적 결정을 가져오는 과정”8)으로 이해한다. 인간의 학문들은 인간들이 처한 상황과 관계성이 얼마나 복잡한 것인지, 신학의 비평적 방법론들은 신앙의 전승이 얼마나 복잡하고 다양한지, 행동학과 체계 분석은 생각을 실천으로 옮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꾸준히 드러내고 있다. 이 상황은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을 보다 명확히 이해하고 보다 효과적으로 가져오도록 돕는 반성적 방법론이다.

화이트헤드는 방법론에 모형(model)을 제시한다.9) 모형은 사목직무 결정과 실천에 관련된 세 가지 자원을 제시한다. ‘신앙 전승’과 ‘개인과 공동체의 경험’ 그리고 ‘현대 문화’이다. 신학적 반성의 이 스타일은 이 세 가지 자원 파트너 사이의 대화를 수반한다.10) 화이트헤드에게 있어 신앙 전승은 성경과 모든 그리스도교 유산의 자원을 포용한다. 그것들은 인간이 역사 안에서 하느님을 경험하는 증거들이다. 그 결과 신앙 전승은 처음부터 역사를 통해 그리고 그 인간-신적 제정 안의 표현과 실천의 다양성을 전개한다. 화이트헤드는 개인과 공동체의 경험을 강조함으로써 개인주의(와 성직주의를 향한, 사목직무 훈련의 영역에서)로 흐를 수 있는 문화적 경향을 벌충한다. 화이트헤드가 문화를 대화 파트너에 포함시킴으로써 신학적 반성을 일반화시켰다. 신앙 전승처럼, 문화 삶은 복잡하고 애매하다. 때때로 신앙 전승에 대한 도전이 되거나, 기여하거나, 대조된다. 이것은 극복되어야 할 처치와 문제가 아니라, 정직하고 실체적인 신학적 반성을 이끌어 내는 조건중의 하나이다.


2) 세 단계의 방법론

화이트헤드의 방법론은 세 단계의 신학적 반성을 거친다. 첫 단계는 반성자가 세가지 자원의 모형에게서 정보를 경청한다(attend-listen). 두 번째 단계는 반성자가 이 자원 사이에서 다른 관점에 개방하는 동시에 각자의 개별적 확신을 피력하여 생생하게 대화하도록 논의한다(assert-discuss). 이것이 적절한 사목적 대응(pastoral response)인 세번째 단계로 이끈다. 이 사목적 대응의 단계에는 반성자가 실천에 옮기기 위한 결정을 내리기 위해 계획하기, 수행하기, 그리고 평가하기를 포함한다.

이 단계들은 신학적 반성의 일반적인 세 단계 형태에 부응한다. 그들은 사회적 학문으로부터 가장 잘 도출된 이론적인 전망으로 각 단계를 다듬고, 그리고 사목 경우들로부터 도출된 실천적인 추천을 한다. 전자는 신학적 반성의 개방성을 명백히 하고 정보의 과학적이고 개인적인 반성의 지평을 돕는다. 후자는 사목직무의 실천을 지원하는 데 우선적인 목표를 둔 신학적 반성의 스타일을 유지하는데 도움을 준다.

방법(method)의 ‘경청’ 단계는 훈련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개인적인 느낌과 갈등, 편애와 편견과는 멀리 떨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진리를 향해 능동적으로 듣는 끊임없는 개방성과 사목직무적 금욕주의를 요청한다.11) 두번째 단계 ‘논의’도 중요하다. 왜냐하면 반성자는 비편향적인 대화 논의 안에서 각 모형에서 오는 모든 관련된 자원을 논의의 대상으로 내놓기 때문이다. 신학적 원리에 근거한 실천적 행위는 언제나 이상적인 그리스도교 사목직무이다. 신학적 반성은 신학적 자리가 실천에 옮겨지는 사목 상황과 연계된다. 결과적으로, 사목적 대응은 그것이 신학적으로 해석된 사목 직무에서 드러난다.


3) 경험의 타입

화이트헤드가 신학적 반성의 스타일에서 사용한 경험의 타입은 사목직무적이다. 무엇보다 먼저, 사목직무에서 오는 경험은 사목자에게 국한되지 않는다. 화이트헤드는 어떤 사목직무 결정에 포함된 사람의 폭넓은 순환고리에 주의를 기울이고, 그 예를 본당이나 신앙 공동체에 반영한다. 두번째, 사목직무 경험은 논리적으로 서술되고 분석될 수 있는 상황의 기록과 관련된 것만이 아니다. 그것은 또한 신앙인이 사건을 바라보고, 그 대상의 요소가 되는 느낌과 확신 그리고 통찰의 비정상적 기록과도 관련된다.12) 세번째, 사목직무 경험은 일반적인 인간 경험보다는 못하지만 특별한 신앙 공동체의 구체적인 사건들이다. 그것은 인간 윤리 개념과 인격 존엄성의 일반적인 용어를 반영한다.13) 네번째, 모든 사목직무 경험에는 인식된 사실들과 감추어졌거나, 인식되지 않거나 발표되지 않은 사건들이 있다. 가끔 후자는 전자보다 커다란 영향을 끼친다. 끝으로, 신학적 반성은 긴급하거나 절박한 사목 현안이어야 한다.

무엇이 이 사목직무 경험을 신학적으로 만드는가? “믿는 이들, 특별히 종교적인 유산에 의해 그리고 그 안에서 형성된 사람의 행위이다.”14) 그리고 신자들의 경험이 사목직무 경험의 본성이다.15) 이 사목직무 경험은 전승에 들어가는 열쇠이며 전승과 경험을 풍요롭게 하고 계발하는 기회이다. 이 전망은 또한 사목직무 경험과 신학 사이를 연결한다.


4) 신학과 연결

사목적 고려사항과 사목직무 경험의 현안이 신학적 반성의 주제가 된다. 반성자가 성경과 죄와 은총, 구원, 육화 그리고 공동체와 같은 주제에 기운다고 하더라도 주안점은 경험 그 자체가 신학과 연결된다. 사목적 전망이 전승을 확인한다. 어떤 때는 그것의 측면들을 명확히 하고, 어떤 때는 그것에 도전하며, 그것이 변화를 부르기도 한다. 거꾸로 전승은 사목직무적 경험의 의미를 확인하고, 그것을 대강 보았거나 감추어졌던 부분을 명확히 하며, 사람들의 상황과 행동에 도전하고, 변화에로 부를 수 있다.16)

여기서 대화의 수단은 논쟁적인 것이 아니라 논의하는 것이다. 필요한 기술은 지배가 아니라 친교다. 신앙 자원에 친근해지는 것이다. 사목적 상황에 부딪혀 신학적 반성자는 현재의 고려사항과 현안에 부응하기 위해 모범, 모습, 주제 그리고 역사적 판례를 성경에서 바라본다. 이것은 어떻게 하느님께서 사전에 경험해 오셨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느님의 백성들이 그 경험에 부응해 왔는지를 증거한다.


5) 계획된 실천

신학적 반성의 사목직무 스타일에서 나오는 실천(praxis)는 현안과 고려사항에 대한 사목적 대응이다. 그것은 경청과 논의의 단계를 통해, 통찰이 행동으로 전이된다. 경험과 반성 그리고 실천 행위의 반복을 통해 사목의 연속성이 유지된다. 통찰에서 행동으로 전이되는 과정에서 계획된 실천이 실질적으로 이루어지도록, 그리고 신학적 반성을 진행시키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17) 때때로 반성은 (응급)처치와 위험한 행동 타입으로 나아가는 것을 지적한다.

화이트헤드의 신학적 반성의 사목직무 스타일은 사목직무 경험을 포함한 실제-생활 경험의 복잡성과 애매함 그리고 복합성을 존중한다. 정보의 관련 자원을 규명하고 그들 사이의 상호 대화적 논의를 북돋음으로써, 그들이 긴박한 위기에서 사목적인 대응을 하게 되는 것보다 커다란 폭의 현안들과 긴 안목의 계획과 관련하여 결정을 하도록 제공하는 것이 낳다.



3. 영적 지혜 스타일

키나스트는 신학적 반성의 영적 지혜 스타일이 신자들의 일상 경험에 기초한다고 밝힌다. 이 스타일은 교리 교육과 신앙 형성 과정과 아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토마스 그룸Thomas Groome은 1991년 책 「신앙을 나누며(Sharing Faith)」에서 그 주요 사상을 발전시켰다.18) 1994년 파트리시아 오코넬 킬렌Patricia O’Connell Killen과 요한 드 비어John de Beer는 「신학적 반성의 예술(The Art of Theological Reflection)」을 출간했다. 수년간의 작업을 통해 그들은 신앙과 일상 경험을 연결시키고자 했다.19) 단기간 내에 그 책은 성인 교육에서 영적 지도로, 사목직무 훈련에서 각광받는 공동체 식별 프로그램이 되었다. 영적 지혜(또는 지혜 신학)는 신학과 신학 교육의 발전에 대한 에드워드 팬시Edward Fancy에 의해 서술된 신학의 근본 의미와 관련된다.20)

신학은 “신자들의 삶에 적절한 지혜”를 의미한다. 이 정의는 두 가지를 수반한다. 첫째, 믿음은 단순히 종교적 감정이나 느낌만이 아니며 또한 지식의 한 종류라는 것이다. 둘째, 믿음-지식은 하느님 앞에서 세상에 어떻게 현존하는지에 대한 실천적인 감각이다(그래서 영성적이다). 이 영적 지혜는 신앙 공동체에 전수되어 온 전승에서 구체화되었다.21) 이 항에서는 교회의 사목활동에 대한 실천신학적 반성의 영적 지혜 스타일을 그룸의 공유된 그리스도인 실천(praxis), 킬렌과 드 비어의 신학적 반성 구조, 경험의 타입, 신학과 연결, 실천을 향하여로 나누어 살펴본다.22)


1) 그룸의 공유된 그리스도인 실천

전통적으로 종교 교육이 믿음에 관한 인식을 배우는 것에 국한되어 왔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토마스 그룸은 지식과 존재 사이의 통합적 연결을 시작했다. 인간은 인간이 누구인지, 그리고 ‘인간이 누구인지’는 인간이 배우는 것에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확신은 그룸을 인간존재(존재론)에 기여하고 거기서 나오는, 배우고 아는(인식론) 방법인 “인식론적 존재론”을 찾도록 이끈다.23)

인식론적 존재론의 궁극적인 목표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과 세상과의 관계에서 그들의 존재를 실현하도록 하는 대리인-주체로서 그들 스스로에게 향하게 한다. 그룸은 이것이 ‘의욕’(conation)을 자아낸다고 보았다. 의욕은 유대 그리스도교 전승의 지혜와 신학적 반성의 일반적인 형태와 동의어이다. “지혜는 자기 삶의 반성에서, 다른 현명한 사람들의 대화와 표본에서, 그리고 성경과 전승을 통해서 계시된 하느님의 지혜의 반성에서 드러난다.”24)

인간에 기여하는 의욕적인 그리스도교 교육학은 다섯 가지 일을 한다. ① 사람들이 그들의 완전한 자기-신원에 적용한다. ② 사람들이 존재하는 곳-그들 삶의 사회 문화적 자리에 적용한다. ③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역사적 전승과의 대화 안에서 사람들의 사회 문화적 실존에 적용한다. ④ 자기-초월을 향한 인간 노력의 역동적인 구조에 적용한다. ⑤ 사람들이 그들 자신의, 그리스도교 믿음을 “살아있는” 신앙으로 적절하게 하는 데 적용한다. 이러한 목표들이 그룸의 공유된 그리스도인 실천(praxis)의 방법을 통하여 수반된다.

공유된 그리스도인 실천(Shared Christian Praxis)의 방법은 다섯 가지 연속적인 운동에로 이끄는 초점을 맞추는 행위로 시작한다.25) 그것은 현재 실천(praxis)(그들의 행위, 생활 경험)를 향하도록 기획된 훈련이다. 그리고 그들의 삶에 도입되고 의미를 가진 실천(praxis) 안에서 (일례로, 화해와 같은) “일반적인 주제”를 규명하도록 한다. 초점을 맞추는 행위는, 그것이 수반하는 주제와, 경험을 배우는 부분(함께 성경 이야기를 읽기)이거나 또는 배우는 경험이 외부로 드러(현장 체험)나거나, 상징적인 표현(성인들의 이야기)이거나 사람들이 이미 공유한 고려 사항(자기 어린이들의 부모들)이거나, 공식 종교(성사적 전례)이거나 또는 폭녋은 인간(노인을 위한 배려)이다.

초점을 맞추는 행위와 공유된 그리스도인 실천(praxis)의 전체 과정을 향한 신학적 반성은 두 가지의 확신을 가지고 있다. 첫째, 하느님은 하느님 자신과 의지를 확실하게 계시하시고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매일의 역사 안에 계시하신다. 둘째, 사람들은 하느님의 자기-계시의 사건 안에서 그리고 세계 안에서 그들의 현재 활동에 대한 반성을 통해 그들 자신의 역사 안에서 하느님의 계시를 능동적으로 마주하고 인식할 수 있는 대리-주체이다.26) 이것은 어떻게 사람들이 예수 안에 드러난 하느님의 계시를 사유하고, 그들의 현대 경험을 통해-그들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지 이다. 초점을 맞추는 행위에서 나오는 일반적인 주제(화해)는 배우는 경험과 이어지는 다섯 가지 운동의 초점이 된다.27)

다섯 가지 운동은, 첫 번째 일반적인 주제에 대한 경험 표현, 두 번째 그에 대한 비평적 반성, 세 번째 그에 대한 그리스도교 이야기/비전 연결, 네 번째 참여자와 그리스도교의 이야기/비전 대화,28) 다섯 번째 어떻게 그리스도교 신앙을 살 것인지에 대한 결정이다. 이렇게 공유된 그리스도인 실천(praxis)는 이어지는 (그리고 생명-오랜) 과정에서 믿음에 삶을 그리고 삶에 믿음을 가져오는 비평적 역동성이다. 그룸은 공유된 그리스도인 실천(praxis)를 융통성 있고 적절하게 드러내기 위해, 그는 그것을 전례와 설교, 정의와 평화 그리고 사목 상담의 사목직무와 연결시킨다. 그룸은 종교적 교육자로서 그의 개인적 신조로, 공유된 그리스도인 실천(praxis)에서 수집되어 영적 지혜로 읽힐 수 있도록 결론을 내린다.


2) 킬렌과 드 비어의 신학적 반성 구조

「신학적 반성의 예술」에서 파트리시아 오 코넬 킬렌과 존 드 비어는 “신학적 반성은 어떻게 우리가 우리 자신의 경험 그리고 종교적 전승을 이해하는지를 확신하고, 도전하고 규명하며 확산할 것이다. 거기서 새로운 진리와 삶의 의미가 생겨난다.”29)라고 규정한다. 통찰과 신학적 토대를 향한 운동은 버나드 로너간Bernard Lonergan의 작업에서 생겨난다. 통찰을 향한 운동은 하느님께서 사람들의 삶의 사건에 (계시되어) 나타난 길을 펼치고 발견하도록 촉진한다. 감정은 종종 경험을 상징화하고 질문과 경험에 의해 구체화된 가치와 통찰을 표현하는 모습을 제시한다.30) 효과적인 모습은 개인이 그것을 창조적으로 펼치도록 그리고 경험의 의미 안에서 통찰을 얻어내도록 하기 위하여 다른 시각을 가진 사람을 초대한다. 그러한 통찰은 보통 개인이나 그룹이 원한다면 실천에 옮기는 행위를 수반한다.

킬렌과 드 비어는 경험의 네 가지 자원을 나열한다. 행위나 생생한 구전(인간 삶의 이야기와 사건들), 전승(사람의 종교적 유산의 권위적인 지혜), 문화(인간 그룹의 상징/가치, 구조와 생태학적 환경), 그리고 자리(사람이 의식적으로 간직하고 수호하려는 태도, 의견, 믿음과 확신).31) 신학적 반성은 경험 그 자체의 느낌/모습에 의해 전달된 사건을 진술하게 된다. 경험의 선택된 자원 중 하나가 종교적 전승이거나 사건의 중심이 종교적 현안이라면, 그 과정은 이미 신학적 성격을 띠고 있다. 경험적 사건이 그리스도교 전승의 지혜와 연결되어, 교환과 비교, 대조, 심사, 발전 그리고 확산된다. 이러한 내적 행위를 통하여, 사람은 희망적으로 통찰에 이른다. 통찰은 이미 믿는 것이 무엇인지를 확인하고 깊어지게 한다. 그것은 사람의 삶과 경험에 다른 전망을, 삶의 완전히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다.


3) 경험의 타입

신학적 반성의 영적 지혜 스타일에 적절한 경험의 타입은 한 사람이 하느님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더 깊은 의미를 제시한 관심이나 느낌을 드러내는 삶의 어떤 경험이다. 그룸은 인간 실존의 인식적, 효과적 그리고 행동적인 차원과 관련하여 경험을 구체화하려고 노력한다. 킬렌과 드 비어는 경험의 네개의 자원(생생한 구전, 종교적 전승, 문화와 개인적인 자리)을 특화함으로써 구체화하려고 노력한다. 신학적 반성의 이러한 스타일의 목적 중의 하나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삶이 어떻게 진행되어 나가는지에 관심을 기울이도록 한다. 경험의 특별한 형식이 미리 결정되어 있지는 않다 하더라도 (신학적 반성의 사목직무 스타일에서와 같이) 경험의 특별한 재현이 추구되었다. 경험을 신학적으로 만드는가는 경험 속으로 신학적 자료를 포함시키거나 개입시키는 것이다.

동시에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지속적인 드러내심으로써 그들 삶의 사건들을 통하여 계시를 이해한다. 신자들이 자신들의 경험 속에서 하느님의 자기-계시 현존의 몇몇 감각들을 가져야만 한다. 공유된 그리스도인 실천(praxis)의 목적과 신학적 반성의 네 가지 구조는 사람들을 그 현존에 보다 구체적인 경험 안에서 계시된 하느님의 현존을 해석하게 한다. 경험은 잠재적으로 신학적이다. 왜냐하면 그 안에 하느님의 계시적 현존이 있고, 신자가 그 현존을 인식하고 확인할 때 그것은 실질적으로 신학적이다(그리고 영적 지혜라고 표현된다).


4) 신학과 연결

신학적 반성의 사목직무 스타일과 같이, 신학 자원을 사전에 선택하거나 요청하지 않는다. 신앙 전승은 그 표현이 의미를 발견하거나 통찰하도록 하는 데 가능하다. 이 특별한 접근은 신앙 전승이 들어가거나 접근하는 길이다. 그룸에게 있어 이것은 배우는 자들의 이야기나 비전을 통하여 생겨난다. (화이트헤드의 것처럼) 전승에 참여하는 것은 서로 영향을 미친다. 그룸은 대화적 해석학의 언어를 사용하여 이것을 서술한다. 그러나 헤겔과 막스의 전승적인 대화를 의미하지 않는다. 킬렌과 드 비어는 사람의 경험이나 믿음의 전승에 대한 인간 이해의 의미를 확인하거나 수정하거나 변화할 수 있는 협동의 용어를 말한다. 협동은 사람들이 통찰과 의미의 새로운 지평을 향해 움직이는 것처럼 고전과 현대의 창조적 종합을 수반한다.


5) 실천을 향하여

그룸은 반성의 전체 목적이 의식적, 효과적이거나 습관된 행위로 넓게 정의함을으로서 실천을 조성한다고 주장한다. 영적 지혜 스타일은 앎과 행위의 본능적인 인간적 방법에 대한 신학적 반성의 형태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 보다 깊은 의미를 갖게 하고 참다운 신앙 유산과 진실한 관계를 갖도록 한다.



4. 여성주의 스타일

키나스트는 신학적 반성의 여성주의 스타일은 현장을 규정하고 지배하는 하나나 둘의 제1세계 권역에 이어 세계 전체에 기여하는 목소리들을 모았다. 매리 대일Mary Daly, 로즈매리 래드포드 루터Rosemary Radford Ruether와 엘리자베스 세후슬러 피오렌자Elisabeth Sehussler Fiorenza와 같은 이름과 작업이 여성 신학과 동의어로 쓰이는 대표주자들이다. 여성주의 스타일은 국제적이고 협력적이다.32) 여성 신학(feminst theology)의 협동적인 스타일은 제한되고 파괴적인 사회 구조와 정치 하에서 지구와의 조화로 전체 인간 공동체, 특별히 가난한 이들을 해방시키려는 반성이다. 그것은 북 아메리카 해방 신학의 가장 온전하고 명확한 표현이다. 그러나 비단 여성 해방만이 아니라, 또한 남자들의 해방과 발전을 통해 지구 전체의 자유 획득에 그 목적이 있다. 여성 신학은 여성의 경험에 기초하며, 신학적 현안에 초점을 두고 있다. 그러나 성차별(sexism)을 극복하고 평등과 관련하여 상호성의 기초 위에 사회를 구성하고자 하는 사회적 노력의 일부이다.

첫째, (현재 실천(praxis)/경험을 경청하는 기준점을 동등하게) 현시대 세상 어느 곳에서든 여성의 조건과 경험에 대한 비평적 의식이 있다. 둘째, 이 비평적 의식은 (신학적 반성의 경험과 전승의 대화적 상관관계와 동등하게) 여성 경험의 전망에서 해석된 그리스도교 전승의 비평으로 나아간다. 셋째, 그리스도교 전승에 대한 비평은 (신학적 반성의 결과로 새로운 통찰을 구성하는 것과 동등하게) 그리스도교 신학으로 재해석된, 전승 그 자체 안에서 여성과 여성 전망들의 잊혀지거나 평가절하 되거나 억눌려진 표본들을 드러낸다. 마지막으로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재해석은 (신학적 반성의 실천적 법규와 동등하게) 실천(praxis)와 이해의 새로운 제안으로 전달된다. 이 항에서는 교회의 사목활동에 대한 실천신학적 반성의 여성주의 스타일을 비평적 의식, 전승의 비평, 복구와 재해석, 새로운 실천에 헌신, 경험의 타입, 신학과 연결, 실천을 향하여로 나누어 살펴본다.33)


1) 비평적 의식

신학적 반성의 여성주의 스타일은 여성들이 교회와 사회의 일정한 역할에서 배제되고, 일면 불공정한 물리적 감정적 추행들을 느슨하게 대해왔다는 경험의 모진 인식에서 시작한다. 그것은 교회와 사회 둘 다에 널리 퍼져있는 인간 관계성에 대한 근본적인 편향이다. 그리고 이 패턴은 그렇게 깊이 스며들었고 그렇게 오래-지속되어 왔기 때문에, 언제나 쉽게 인식되지 않았다. 이러한 이유로, 신학적 반성의 여성주의 스타일의 첫 번째 임무는 자신들이 어떻게 되어야만 하는가에 대한 사고와 자신들에 대한 기대가 맞는 것인지를 식별하기 위하여 남성과 여성 모두의 의식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현실은 남자들에게 혜택이 가도록 기획되고 유지되어 왔다. 의식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자극은 여성의 경험 그 자체이다. 그것은 좁고 자기 관찰적인 감각이 아니라 집단적이고 역사-비평적 감각이다. 성차별은 계층과 문화, 종교, 인종, 경제, 정치, 교육과 역사에 따라 중요한 차이가 있다. 이러한 이유에서, 여성의 일반적이거나 특별한 개인적 경험 보다는 그들의 ‘사회적 지위’를 규정하고 신학화한다.

신학적 반성과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것은 한계에 처하고, 배제되고, 억압받으며, 평가절하되고, 무시되고, 조종되고, 낭만적으로 되거나 조절되는 것처럼 다양하게 서술된 부정적 조건이다. 이 조건 뒤에 도사리고 있는 피의자는 성차별(sexism)이다. 성차별은 단순히 남자의 태도에 대한 경멸적인 용어가 아니다. 그것은. 남성의 전망으로부터 모든 것과 모든 이를 아래에 두고 구분하는 것이다. 성차별의 대표적인 문화적 표현은 가부장주의와 온정주의다. 교회적 표현은 교계제도이다. 역사적이고 실존적 감각에서 볼 때, 성차별주의는 그 자체로 사회적 죄가 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느님의 계시된 진리와 그리스도교의 본성 자체를 부정하며, 여성의 인간 발전을 비이성적이고 부정의하게 방해하기 때문이다.


2) 전승의 비평

신학적 반성은 언제나 그리스도교 전승과 현대 경험의 상관관계를 포함한다. 신학적 반성의 여성주의 스타일이 진리에 입각한 상관관계를 만들기 위해 그리고 그리스도교 전승의 성차별주의자의 편향을 덮어두지 않기 위해 절박하다. 이를 행하기 위해, 대부분의 여성 신학자들은 그들이 (그 유대교 근본과 다양한 문화적 맥락을 포함하여) 그리스도교 이야기를 다시 긋고 다시 읽는 것처럼 의심의 해석학을 사용한다. 이 접근은 성차별주의가 그리스도교 메시지를 어느 정도 수준에서 벗어나게 해왔다고 간주한다. 이 목표는 어디서 그리고 어느 정도 이것이 발생했는지 그리고 미래를 위해 무엇을 내포하고 있는지를 찾아내는 것이다.

3) 복구와 재해석

여성 신학자들의 그리스도교 전승의 재현은 두가지 중요한 형태를 취해왔다. 첫째는 신약성경을 포함한 잔존하는 기록 뒤에 놓여있는 여성의 실제상황이다. 성경 신학자 엘리자베스 쉬슬러 피오렌자Elisabeth Schussler Fiorenza는 그녀의 「그녀의 기억 안에서In Memory of Her」에서,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들을 재건설하고 그것들이 여성이 온전하고 효과적인 리더십을 수련하는 데 있어 인류평등주의의 파괴적인 모델이라는 것을 설득력있게 논증한다.34) 그것은 지배적인 가부장제도가 경험에 반하는 가면을 쓰고 억압해왔는지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재건설한다. 그것은 전승에 속하고 복음의 온전한 경험의 부분이다. 그처럼, 그것은 교회의 현재 신학과 실천에 대안을 건설하는 기초를 제공한다.

해석학적 재현을 취하는 두 번째 형태는 남자가 지배하는 역사의 과정에서 무시되어 오고, 경시해오고, 평가절하 해오거나 잊혀진 여성의 전망과 비유의 회복이다. 엘리자베스 존슨Elizabeth A. Johnson은 삼위일체 신학, 「그녀는 누구인가She Who Is」35)에서 삼위일체에 대한 이해가 전적인 남성의 용어에서 비롯된 것임을 인식하며, 여성의 전망에서 삼위일체의 이해를 건설하기 위해 지혜-지혜의 성경적 비유를 재현한다. 그녀는 여성과 보다 밀착한 성령-지혜의 토론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관계적이고 자비로우신 하느님을 향한 풍요한 암시를 그려내는 예수-지혜와 어머니-지혜를 토론한다.  여성 신학자들은 하느님과 창조, 죄, 은총 그리고 구원의 근본적인 개념에서 나아가 기도와 윤리, 교회 그리고 사목직무와 특별하게 관련된 여러 가지 현안에서 이 작업의 전망을 드러낸다.36)

대안적인 해석을 명확하게 하는데 있어, 여성 신학자들은 또한 예술과 음악, 춤 그리고 예절과 같은 모습과 상징, 논술과 시적 표현의 풍부한 사용을 만드는 신학적 언어들의 형태를 신장시킨다. 여성 신학의 상징적 언어는 환경 생태학의 여성의 신장과 구체화된 신학 그리고 여성-교회로 예증된 것처럼 반성에서 실천으로 더 효과적인 전이를 조성하고자 한다.37)

4) 새로운 실천에 헌신

신학적 반성의 여성주의 스타일의 출발점과 해석학적 추정에는, 교회의 현재 실천(praxis)를 변화시키는 깊은 헌신이 있다. 신학적 반성의 여성주의 스타일의 목표는 (그리고 그들을 떠받치는 지구의) 남성과 여성의 상호 이익을 위해 일방적인 방법을 사용하기 보다는 참여하는 방법으로 힘을 사용하는 것이다.38) 단순히 (남성이 여성에게 행해온 것을 여성이 남성에게 행하는 곳에) 힘을 되돌리거나 (여성이 아마 남성과 함께 갈등을 피하려고) 힘을 포기하는 것은 새로운 실천의 이상을 만족시키지 못할 것이다.

5) 경험의 타입

신학적 반성의 여성주의 스타일은 무엇보다 먼저, 성차별의 희생자로서의 여성의 경험에 집중한다. 이것은 이미 경험이 여성을 그들의 다른 종족, 문화적 그리고 사회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여성을 일치시키도록 해석하고 (또는 최소한 규범화하고), 그리스도교 전승을 비롯하여 모든 다른 것에서 이 전망이 해석되도록 세운다. 두 번째, 성차별을 당한 여성의 경험은 단순히 여성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또한 성차별 제도의 범죄자와 수혜자로서 남성이 그들이 알건 모르건 그들 스스로의 왜곡된 경험과 그들의 인간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포함한다. 그리고 세 번째, 성차별에 있어 여성의 경험은 인간의 관계뿐만 아니라 지구의 생존 그 자체를 위협하는 지배와 조절의 패턴의 한 부분이다. 성차별을 당한 여성의 경험은 언제나 인식하지 못한 생태학과 탄생적인 연결을 가지고 있다. 여성 신학의 국제적 영역은 이와 관련하여 거대한 자원이다.

여성의 경험을 신학적으로 만드는 것은 한 방향으로 보이고, 규범적으로 전수되고,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뜻으로 보다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계시된 복음의 관점을 왜곡시키는 것이다.  실존적인 면에서 여성은 복음의 진리와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여, 대조적인 경험을 구체화한다. 이것은 신학적 반성의 새로운 자원을 재현한다. 그것은 지금까지 적용되지 않은 그리스도교 역사의 해석전망을 제공한다. 그리스도교 전승 안에 표현되지 않고 발전되지 않은 통찰과 가능성의 풍요함을 포함한다.


6) 신학과 연결

전통적인 신학에 스며든 성차별주의는 또한 억압 속에서 해석된 의미의 해석학적이다. 그것은 신학의 여성 현안을 고려하는 것만이 아니라 여성의 관점에서부터 신학의 모든 것을 고려하는 것이다. 새로운 종류의 창조성을 위해 그리스도교 신학의 전체가 성차별주의의 영향에 의해 오염되었다고 가정한다. 여성 신학자들은 자연과 언어의 역할에 주의를 기울인다. 다른 세계관을 열고 그들이 어떻게 여성과 남성이 행동하고 서로를 위해 평등성과 상호성을 나눌 때 어떻게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지를 서술한다. 신학에 있어서, 언어는 그것이 말하고 있는 것을 지적하고 부분적으로 이루는 상징으로서 기능한다. 그러나 단어들은 하느님이나 그리스도, 은총, 구원 그리고 교회 같은 단어라 할지라도 절대로 온전한 실체가 아니다. 다른 경험을 상징하는 다른 단어들은 언제나 보충되고 더해질 수 있다. 여성들은 세상(실체)을 다르게 본다. 그것을 그리고 그것 안에서 어떻게 기능하는지에 대한 서술을 그들 자신의 언어로 창조하고자 한다.

7) 실천을 향하여

신학적 반성의 여성주의 스타일의 지향된 실천(praxis)는 여성과 남성 그리고 그들을 떠받치고 있는 세상 모두에게 해방과 변형이다. 초기에 그리고 더 긴박하게, 여성 신학은 (감정적으로, 육적으로, 지적으로, 개인적으로, 재정적으로, 전문적으로 등) 이것이 생겨난 모든 방법으로 남성의 지배에서 여성의 해방으로 헌신한다. 둘째, 여성 신학은 여성과 세상의 나머지와 관련된 왜곡되고 잘못된 길로부터 남성의 해방에 헌신한다. 셋째, 첫 번째 둘과 협력하여, 여성 신학은 성차별주의를 지속하고 여성의 발전을 막는 체제와 구조, 정치 그리고 제도를 변화시키는데 헌신한다. 네번째, 여성 신학은 육적인 세상의 구원과 지구의 자원을 없애는 착취적이고 불합리한 폭력에서 그것을 되돌리기 위해 헌신한다.

이것은 각 부분이 다른 이들에게 영향을 주는 통합된 실천이다. 그것은 또한 일련의 전략이다. 그것은 전체적이고 상호 의존적이다. 그리고 그것은 여성 홀로만의 작업이 아니다. 그것은 집합적인 일이고 그 성공은 여성의 경험 그 자체와 새로운 존재양식에 대한 증언을 납득시키는데 달려있다.



5. 토착화 스타일

키나스트는 토착화라는 단어가 제시하듯이, 사람들이 자신들의 경험을 반성하는 문화적 설정이 신학적 반성의 이 스타일의 주요 초점이라고 선언한다. 실제로, 문화적 설정 그 자체는 사람들이 반성해온 우선적인 경험이다. 신학적 반성이라는 용어를 종종 그리고 의도적으로 사용하는 이 접근은 그리스도인 문화적 맥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기쁜소식을 나누는 복음선포자들과 선교사들의 갈망에 의해 가장 넓게 발전되어왔다.39)

로버트 슈라이터Robert Schreiter는 통찰력 있고 포괄적으로 신학적 반성의 토착화 스타일을 전개한다. 그는 1985년 「신학의 토착화(Constructing Local Theologies)」와 1997년 「뉴 가톨릭시티(The New Catholicity)」를 발간한다.40) 미국의 다른 자원들, 특별히 히스패닉/라티노와 아프리카 아메리칸 문화와 관련된 현안들이 슈라이터의 분석과 관련된다. 이 항에서는 교회의 사목활동에 대한 실천신학적 반성의 토착화 스타일을 슈라이터의 지역 신학, 신학적 반성의 지도, 문화에 귀기울임, 토착화 신학, 경험의 타입, 신학과 연결, 실천을 향하여로 나누어 살펴본다.41)


1) 슈라이터의 지역 신학

신학의 토착화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문화적 환경과의 관계에서 복음에 대한 그들 자신의 해석을 건설하려는 신앙 공동체의 노력을 가리키는 로버트 슈라이터의 용어이다. 그는 “신학적 반성의 기본 목적은 같지만 -즉 그들 자신의 환경의 빛 안에서 복음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반성- 어떻게 그 환경들이 복음에 대한 응답으로 조성되기 위해 더 많은 주의를 기울이는지 이다.”라고 말한다.42)

슈라이터는 지역 신학의 세 가지 모형을 규명한다. 동등한 규범으로 신앙에 대한 하나의 문화(즉, 유럽인) 표현, 만약 그런 것들이 존재한다면 다른 문화(즉 아프리칸)에 대한 번역, 철학적 세계관이나 다른 문화의 고유한 구조 안에 한 문화 표현의 채택, 그리고 문화적 신원(인류학)의 형성에 집중하는 토착화 구성이나 억압의 완화 그리고 사회적 질병들(해방). 세개 모두가 복음과 교회 그리고 문화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반면, 슈라이터는 가장 효과적이고 적절한 것으로서 토착화의 접근을 확인한다.43)

「뉴 가톨릭시티」에서 슈라이터는 신학을 세우려는 보편적인 경향과 세계화의 효과라는 두 가지 요소가 지역신학을 대두시켰다고 본다. 모든 신학이 문화적 토착화라 할지라도, 기존의 신학들은 다른 문화에 대한 존중없이 자기 자리를 보편화하는 경향이 있다. “새로운” 세계를 발전시키기 위한 아프리카 흑인노예,44) 보편화와 세계화의 영향에 대한 신학적 대응은 신학적 흐름에 부응하면서 문화적 신학적 세계화 체계에 대항하거나 실패에 이어 나온 신학이다. 일례로, 가난한 이들에게 대한 세계 경제 원조 실패를 지적하는 해방 신학과 여성을 평등한 가치로 끌어올리려는 여성 신학, 환경의 파괴를 지적하는 생태 신학, 그리고 평등한 사상과 모든 이가 평등 사상에 도달하려는 인간 권리 신학이 있다. 세계화에 대한 다른 신학적 세계화를 반대하는 문화적 논리도 있다. 근본주의와 (빼앗긴 땅을 되찾는) 실지탈환, (잊혀진 신원을 회복하는) 민족주의 그리고 (초기 시간대로 되돌아가는) 원시주의 등.


2) 신학적 반성의 지도

지역 신학을 세우기 위해 (또는 신학적 반성의 토착화 스타일을 개발하기 위해), 슈라이터는 한 가지 방법보다 지도를 제공한다.45) 지역 신학을 발전시키기 위해 이전 지역 신학에 대항하거나, 새로운 문화 사건의 생성 또는 거대한 교회 전승의 필요나 개발이라는 세가지 자원들의 하나에서 나온다.

이상적으로 지역 신학은 그 문화에서 이미 활동하고 계시는 주님을 발견하기 위하여 문화에 주의 깊게 귀기울이는 것으로 시작한다. 일례로, 많은 히스패닉/라티노, 아프리칸 아메리칸 그리고 아시안 아메리칸 공동체들이 느낀 외국계와 소외된 실존의 체험이 “소외된 유다인”으로서의 예수님의 깊은 신원으로 이끌었다. 지역신학은 교회 전승과의 대화 안에서 세워진다. 일례로, 이스라엘의 노예살이에서의 탈출과 해방 경험과 아프리칸 아메리칸들의 해방사이의 흑인 신학, 히스패닉이 지금 인위적인 경계에 의해 구분되고 식민 침략자에 의해 조절된 조상들의 땅과 약속된 (거룩한) 땅 사이의 성경적인 병행이 아주 민감하다. 이러한 병행의 전개는 수정 또는 교정에 이르게 하며 지역신학을 확고하게 한다.


3) 문화에 귀기울임

위에서 언급했듯이, 문화에 귀기울이기는 신학적 반성의 토착화 스타일의 이상적인 출발점이다. 그것은 “무엇이 최고인가”하는 내리 누르기식의 부담을 피한다. 그리고 지역 문화에 대한 적절한 개방성과 예민함을 유지한다. 더 하여, 문화에 귀기울이기는 (단순히 요소들만을 택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 문화를 취하여) 거룩해지고, 문화 안에서 신원을 조성하도록 하는 힘에 순응하고, 그리고 사회 변화를 가져오는 힘에 응답하도록 해야 한다.

문화에 귀 기울이기의 통상적인 방법은 (부분을 어떻게 전체와 함께 조성하는지를 결정하는) 기능주의자. (어떻게 사회가 그 육적인 환경과 관련되는지를 결정하는) 환경주의자, (어떻게 육적 환경이 문화적 세계관과 욕구 그리고 사회 변화에 대한 응답에 영향을 끼치는지를 결정하는) 물질주의자. 그리고 (문화를 조성하는 무의식적 패턴을 결정하는) 구조주의자이다. 슈라이터는 기호적 접근을 설정한다.46) 문화에 귀기울이는 기호적 접근은 상징들과 메시지들 그리고 문화의 의미를 표현하는 코드들을 시험한다. 모든 경우에서 기호적 접근은 문화에서 의미를 표현하고 운반하고 심지어는 자극하는 상징들과 메시지들과 코드들을 분석한다. 일례로, 시장이 자본주의 경제 영역의 주요 비유가 되듯이, 십자가는 그리스도교 종교적 영역의 근본 비유이다.

「뉴 가톨릭시티」에서 문화에 귀기울이기의 과정은 말하는 이와 듣는 이 사이의 효과적이고 적절한 통교로 구성되는 문화 상호간의 해석학으로 서술된다. 그것은 개인 삶의 한 사건을 구술하는 것이나 개인적이거나 공동체적인 신학적 반성에서 문화적 요소들을 파악하는 것을 넘어선다. 토착화 스타일은 전승의 비평적 대화를 북돋아주기 위하여 초기 본문으로서 경험의 문화적 세팅을 취하고 그것을 분석하고 해석하는 복합적인 도구를 고용한다.


4) 토착화 신학

신앙 전승에로 돌아서서, 슈라이터는 어떻게 신학적 사고의 다른 형태들이 문화적으로 토착화 되는지를 살펴 지역신학 전승을 다시 다듬고 신학적 반성을 보다 적절하도록 한다(즉, 지역의 문화적 요소들에 민감하도록)고 말한다.

일반적으로 신학은 문화적 표현의 네가지 형태를 취한다. 첫 번째 형태는 거룩한 본문에 대한 변화로서의 신학이다. 변화들은 잠정적(예, 강론), 구술(예, 성인전) 또는 명문집(예, 학적 주석들)으로 나타난다. 두 번째는 지혜의 신학이다. 지혜로서의 신학은 사람과 세상의 통합된 감각을 지니고, 우주의 변화하지 않는 패턴에 대한 확인으로서의 인간 성숙을 정의하며, 내면성을 강조하고 그리고 궁극적인 실체로 두 가지-수준의 접근을 취하는 문화에서 최고의 역할을 한다. 세 번째는 참 지식으로서의 신학이다. 즉, 믿음의 이성화된, 질서잡힌 계정이다. 그것은 이종-문화간의 통교를 위한 역량을 가지고 있고, 분석과 설명을 요청한다. 네 번째는 실천(praxis), 사회적 관계성의 분석 그리고 그에 따른 특별한 문화의 사회적 의식을 구성하는 신학이다. 그 기본 임무들은 그릇된 의식(이데올로기)에서 진실을, 사회 조건들에 대한 지속적인 반성을, 신학적 반성이라고 불리는 변화 가능한 실천을 가져온다.

궁극적으로 지역 신학의 목표는 문화와 연관하여 그리스도교 신원을 확인한다. 슈라이터가 「뉴 가톨릭시티」에서 다섯가지 영역을 언급한다. 첫째, 그리스도교 행위의 응집력, 즉, 지역 신학이 어떻게 성경과 교회 전승과 만나는지, 둘째, 전례의 맥락에서 그리스도교 행위의 경험, 셋째, 공동체의 실천의 맥락에서, 넷째, 다른 교회들의 판단을 수용하기, 그리고 다섯째, 다른 교회들에게 판단을 주고자 하는 의지.

대중 종교는 지역 신학을 눈 뜨게 한다. 대중 종교는 그 문화 안에서 최고의 삶이 무엇인지를 드러낸다. 그리고 문화가 거룩하고, 공동체 체험의 모든 것들을 둘러싸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역 신학에 대한 도전은 혼합주의와 이중 종교 체계의 공존이다. 「뉴 가톨릭시티」에서, 슈라이터는 언제나 그리스도교를 성격 지어주고 사람들의 종교적 신원 양성에 기여했던 문화적 요소들의 통합으로 그것을 수평적인 차원에서 평등하게 하여, 혼합주의에 대한 긍정적인 이해를 갖도록 주장한다. 이것은 폭력과 착취, 긍정적인 문화적 요소들의 통합적 조합 또는 교계제도적인 영향(관용, 포용, 입법)의 다양한 형태 같이 문화적 힘을 부정하는 데에 대한 저항을 통해 일어난다.

슈라이터는 다른 이들과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통교하도록 하기 위해 모든 문화의 역량을 존중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통합된 경험에 대한 그들의 갈망에도 불구하고) 조각나고 부분적인 방법으로 문화를 체험하도록 강요된다는 것을 인식하고, 문화의 이익을 받는 이들과 배제되는 이들 사이의 경계에 서도록 하는 의지에 의해 지역과 전체성을 규정한다.


5) 경험의 타입

「뉴 가톨릭시티」에서 슈라이터는 문화의 두가지 -통합되고 세계화된- 넓은 개념을 시험한다.47) (서구 신학의) 통합된 개념들은 문화들의 자긍심과 사람들을 풍족하게 하는 능력과 각 민족 문화를 존중하고 그 권리를 확인한다. 동시에 그것은 문화의 역동적인 변화에 잘 응답하지 않고, 토착화의 가능성을 제한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고, 혼합주의의 두려움조차 있다. 어떤 경우에, 문화적 경험을 신학적으로 만드는 것은 그 문화 속에 이미 하느님의 말씀이 현존하고 계시다는 추정이다. 또는 최소한 모든 문화는 그 자신의 용어로 하느님의 말씀을 충실하게 표현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지고 있다는 가정이다. 문화의 통합된 개념은 말씀이 대상적으로 알려지고, 언제나 발전될 수 있는 문화의 그 형태 속에 이미 현존한다는 추정이다. 문화의 세계화된 개념은 말씀의 변화에 현존하며, 모든 것이 의외로 빨리 알려지거나 역사적 선례를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새롭고 창의적인 방법에서 그 자체로 건설하려고 노력하는 문화의 갈등 속에 있다는 것을 가정한다.

6) 신학과 연결

지역 공동체들의 옹호와 신학을 건설하는 언어에도 불구하고, 신학적 반성의 토착화 스타일은 자율적이거나 반항적인 일이 아니다. 그것은 언제나 전승과의 대화 안에 있다. 그러나, 전승은 지배하는, 초문화적인 신학적 형태 보다 지역의, 문화적 토착화된 신학들의 연속으로 이해된다. 문화적 출발점의 복잡성 때문에, 신학적 반성의 토착화 스타일은 독립적인 지역 신학이 아니라, 지역적으로 시발된, 세계적으로 연결된, 복수적으로 조성된 신학적 흐름이다.


7) 실천을 향하여

신학적 반성의 토착화 스타일은 그리스도교인의 신원을 더 효과적이고 적절하게 양성하고, 사회적 변화에 응답한다. 그리스도교인 신원의 양성은 문화적 영향과 떨어져 이루어지지 않고, 사회적 변화에 응답하는 그리스도교인은 문화에 대한 신학적 반성으로 귀결되며, 그러한 반성은 그것에 임하는 사람들에 대한 양성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48) 신학적 반성의 다른 스타일들과 같이, 삶의 패턴이나 사고의 궁극적인 완전한 체계의 과정에는 끝이 없다. 오히려 지속적인 신학적 흐름은 그리스도인 삶의 지속되는 전승의 한 부분으로서 지역 신학들의 건설에 기여하고 그로 인해 성장한다.



6. 실천적 스타일

키나스트는 신학적 반성의 특별한 스타일이 지난 25년간 다시 정의되고 집중되어온 실천신학의 분야를 규정한다고 말한다.49) 현대 실천신학은 두 가지 중요한 방법에서 전승적인 것과 구분된다. 그것은 실천(practice)에 대한 이론의 적용보다는 현대 실천(praxis)(praxis)에 대한 비평 신학적 반성이다. 그리고 그것은 사목자(보통 성직주의라고 부르는)와 공동체의 관계성에 집중하기 보다는 신앙 공동체와 더 큰 사회와의 관계성에 집중한다.

이 실천신학을 다시 활기있게 하는 주요 지도자들 중의 하나가 돈 브라우닝Don Browning이다. 1991년에 출간된 그의 주요 작업 「기초실천신학(A Fundamental Practical Theology)」을 토대로, 최근에 공저자로 기초실천신학의 방법을 적용한 「문화에서 공통지평에로의 전쟁: 종교와 미국 가정의 분쟁(From Culture Wars to Common Ground: Religion and the American Family Debate ; 1997)」으로 보충한다.50) 이 항에서는 교회의 사목활동에 대한 실천신학적 반성의 실천적 스타일을 브라우닝의 기초실천신학, 서술신학, 역사신학, 조직신학, 전략적 실천신학, 가정생활에 적용, 체험의 형식, 신학과 연결, 실천을 향하여로 나누어 살펴본다.51)


1) 브라우닝의 기초실천신학

「기초실천신학(A Fundamental Practical Theology)」을 시작하며, 브라우닝은 모든 신학이, 실천적 상황에 대한 이론적인 지식을 적용하는 면에서가 아니라, 그것들을 보다 일관적이고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서, 신앙 공동체의 이론-수반 실천들을 해석하는 면에서 실천적이라고 확신한다.

브라우닝은 한스 조지 가다머Hans Georg Gadamer의 실천 철학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 특별히 가다머의 인간 실천에 대한 출발점과 인간 이해의 기본 구조가 대화적이며, 효과적인 역사의 역할과 인간의 전이해에 대한 영향 그리고 의미를 융화시키는 지평의 역동성에 대한 주장이다. 브라우닝은 기초실천신학을 발전시키기 위하여 가다머의 사고를 채택하고 이를 재정의한 상호 관계를 트래이시David Tracy가 구체화되었다.52)

브라우닝이 정의하듯이 기초실천신학은 신앙 공동체의 종교적 실천을 가능하게 하는 규범을 만드는 조건을 조사한다. 이 과정들은 네 가지 운동을 수반한다.53) 첫째는 종교적이며 사회적 공동체들 모두의 단체적 개별적 실천에 적용되는, 종교적 의미들을 수반하지 않는, 서술 신학이다. 두 번째 운동은, 공동체의 실천에 기반한 규범적 제기들의 효과적인 역사(가다머)를 조사하는, 역사 신학이다. 세 번째 운동은, 첫번째 두 운동에서 생겨나는 의미의 새로운 지평을 (주제별로) 명확히 하고 이 새로운 지평의 유효성을 세우는, 조직 신학이다. 네 번째 전략적 실천신학은 네 가지 질문들에 응답한다. ① 우리가 행해야만 하는 구체적인 상황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②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무엇을 행동(실천(praxis))해야만 하는가? ③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행위의 규범을 어떻게 비평적으로 방어하는가? 그리고 ④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어떤 수단과 전략과 이론을 써야 하는가?


2) 서술신학

신학적 반성의 실천적 스타일의 출발점은 서술신학(descriptive theology)이다. 서술적이라는 용어는 반성된 상황의 중립적이며 대상적이다. 서술된 생생한 상황은 실천신학적 반성의 출발점이며 동시에 원천이기 때문에, 브라우닝은 경험의 “두터운” 서술(thick description)을 옹호한다. 이것을 획득하기 위하여, 그는 투입의 다섯 가지 형식과 수준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틀을 제안한다.54) 그것들은 비전이며, 의무, 인간 경향-욕구, 환경적-사회적 설정 그리고 규칙-역할이다. 이러한 스케마는 브라우닝의 방법의 네 가지 운동(서술, 역사, 조직과 전략신학) 모두에 적용할 수 있다.

실천적 사고의 수준에서 바라볼 때, 비전은 하느님과 창조, 죄, 은총, 구속 그리고 구원에 대한 그들의 이해와 같은 그들이 고백하는 궁극적인 종교 의미들과 공동체의 신학적 지평을 설정해낸다. 의무는 비전에서 흘러나온다. 비전과 의무 (어느 한 쪽에서) 사이의 불일치가 실천신학적 반성을 시작하게 한다.

경향-욕구는 음식과 쉼터, 안전, 관계성, 자기-자긍심 그리고 좋아하는 것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이 공유하는 자극이다. 실천신학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경향과 욕구는 공동체의 구체적인 행위와 대응, 결정과 해석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이것은 시대를 넘어 영향을 미치고 때때로 공동체의 비전과 의무에 대한 감각을 변경하는 그룹들 사이에서 변화된다. 이 때, 실천신학적 반성을 요청한다.

환경-사회적 설정은 이상을 추구함으로써 공동체의 비전과 의무 그리고 경향-욕구를 조성하도록 한다. 사회 환경은 인간 행위에 대한 비효율적, 공허한 맥락이 아니라 인간 실재의 일부이다. 같은 환경-사회적 설정 내에서 전망이 깨질 때, 실천신학적 반성을 요청한다.

규칙-역할은 어떤 환경에서, 무슨 권위와 어떤 수단으로 누가 행동 하는가를 밝히는 인간 행위의 가장 특별한 결정자이다. 그렇게, 규칙과 역할은, 환경-사회 조건 내에서 인간 경향-욕구에 응답하는 것을 통해 공동체가 고백하는 것이나 실천이 일치하거나 일치하지 않는, 비전과 의무에 대해 그들 자신의 내적 감각을 포함한다. 이러한 불일치는 실천신학적 반성의 또 다른 경우를 제공한다.

실천신학의 도구로서,  “두터운” 서술이 특별한 신앙 공동체의 종교적 믿음과 신학적 이해를 계시하고 신학적 반성을 부르는 주제를 정의할 때, 그것은 그리스도교적이 된다.

3) 역사신학

역사신학은 서술신학에 의해 드러난 질문들/이슈들에 대한 비평적 반성에서 시작한다. 그것은 이미 공동체-성경적 가르침, 고백적인 성명서, 교부들의 자리 그리고 공동체 전승 역사의 한 부분이 된 규범적인 기사들을 시험한다. 이 시험은 마음에서 공동체의 실천적인 질문/이슈의 관점에서 본문기사를 읽는 것이다. 그 상황을 이미 기술한 공동체는 이제 그 서술을 그 규범적인 기사가 선언했던 경향과 욕구, 그것들을 진행했던 사회적 설정, 그리고 그들이 촉진했던 규칙과 역할을 포함하는 의무와 비전으로 비교할 수 있다. 전체로서의 공동체는 이 역사적 요청을 전수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것을 행할 때, 의심할 바 없이 이해와 해석의 다른 수준이 있다. 이러한 이유로 확장된 대화는 현재, 실천적 상황에 대한 의미와 고전적 기사에 관한 일치에 도달해야만 한다.


4) 조직신학

조직 신학은 근본적으로 (서술 신학으로 드러난) 현재 실천에 내재하는 신학적 자리와 (역사 신학으로 다듬어진) 규범적인 그리스도교 기사에 함축된 신학적 자리 사이의 비평적이고 창조적인 대화와 규범적 사고의 한 훈련이다. 조직 신학은 현재 실천과 규범적 기사들이 공유하는 일반적인 주제들을 시험하고, 그런 고려 하에 실천적 상황에 대한 응답적인 새로운 해석을 조성한다. 조직 신학적 반성의 결과는 기초적이고 대상적인 어떤 판단이 아니라, 어떤 방법으로 행동하기 위해 합당한 이유들이다. 광범위한 개념적 용어들로 묘사된, 행위의 그 과정은 실천으로 전이되어야만 한다. 이것이 전략적 실천신학의 역할이다.


5) 전략적 실천신학

(브라우닝이 공동체의 실천적인 기술과 행위를 그려내고 과정을 완전하게 하기 때문에, 온전히 실천신학으로 부르는) 전략적 실천신학은 구체적인 상황에 대한 신학적 확신이 아니다. 실천적 고려는 – 상황의 서술에서, 역사적, 규범적 기사의 분석에서 그리고 의미 지평의 융합에서 - 과정을 통해 작용한다. 브라우닝은 전략적 실천신학에서 교육, 사목적 배려 그리고 변이(변화)를 언급한다 – 신앙 공동체뿐만 아니라 그들이 영향을 끼치는 더 커다란 사회 안에서도 역시.55) 이것이 결정된 실천에 대한 정당한 제기가 만족되는 곳이며, 새로운 실천이 시작되듯이, 그것은 실천신학적 과정의 새로운 질문과 이슈를 제기한다.


6) 가정생활에 적용

브라우닝의 실천신학적 성장 훈련은 「문화에서 공통 지평에로의 전쟁: 종교와 미국 가정의 분쟁(From Culture Wars to Common Ground: Religion and the American Family Debate)」에서 찾아볼 수 있다. 가정과 종교 그리고 문화에 대한 연속의 부분으로, 이 작업은 미국 가정의 위기를 선언한다. 그 책은 “이슈, 전승, 목소리 그리고 방향”을 언급하며, 19세기부터 현재까지 가정생활에서 ‘자기-희생적 사랑’, ‘자기-도취적 사랑’, ‘동등한 배려/상호 사랑’이란 이슈에 비평적 반성을 가한다.

저자들은, ‘가정-의-유일한-머리-이신-아버지’(에페 5,23; 콜로 3,18; 베드 3,1), 한-쪽으로 치우친 듯한 신약 성경의 기사를 재해석한다. ① 그리스도교 사랑은 상호적으로나 동등한 배려로 향해야만 한다. ② 자기-희생은 그것에 대체되는 것이 아니라, 상호 사랑의 부분이다. ③ 상호성의 구체적인 의미는 인간 삶의 주기 내에서 결정되어야 한다. 그리고 ④ 가정은 하느님 나라 또는 시민 사회의 선으로 비춰진 커다란 공동선에 속한다. 대화를 통해 저자들은 남편과 아내 사이의 온전한 동등성에 기반한 “새로운 비평적 가정주의와 결혼의 문화”라는 지평을 융합한다.

이 전망은 전략적 실천신학의 두 방법으로 귀결된다. 첫째, 공평한 사랑에 기반한 가정의 실천신학은 철학(남자와 여자의 공유된 합리성), 성경(하느님의 눈에서 남성과 여성이 동등하게 간주되는), 심리학(인간 삶의 주기에서 상호성), 그리고 그리스도교 신학(하느님 나라 내의 가정들)에서 그려진 유효성 제기로 분명해진다. 두번째, 이 신학은 총 열여섯가지 전략으로 수행된다. 각 전략은 가정생활의 현대적 실천에 대한 역사와 조직적 반성에 의해 구성된 실천신학의 일관된 표현이다.

7) 체험의 형식

브라우닝의 실천적 스타일이 초점을 맞추고 있는 체험의 형식은 공동체적이고 문제적이다. 그것은 신앙 공동체의 경험이다. 실천신학은 신앙 실천이 공동체(예, 전례, 종교 교육, 사목적 배려) 또는 더 큰 사회생활(예, 사회에서의 가정 위기, 문화적 영향에 대한 응답, 공공 정책에 대한 기여들)의 부분이던지 간에 지속되는 경험에 관심을 두고 있다.56) 이 스타일은 또한 실천이 지향하는 가치와 이상과 불일치하는 문제 지향적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이론과 실천 사이의 괴리는 분리가 아니라 구체적인 상황이 허용하는 최고의 조화를 요청한다. 실천신학은 그리스도교 신앙을 살기와 신학하기의 지속적인 방법이다. 

무엇이 경험을 신학적으로 만드는가? 경험은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실천에 적용하는 종교적 의미와 가치들 때문에 신학적이다. 이 숨겨진 신학적 차원은 그리스도인의 실천을 제한하지 않는다. 실천신학은 상황을 서술하면서 종교적 차원에 초점을 맞추고 그것들을 명확하게 주제화한다. 이것은 의미가 결여된 상황에 종교적 의미를 가져가는 것과는 다르다. 그것을 인식하거나 알아차리지 못했다 하더라도 이미 거기에 있는 것에 대한 반성이 직접적이고 즉각적으로 가능하도록 한다.


8) 신학과 연결

실천신학은 신앙 공동체의 실천에 용해된 신학적 의미를 찾음으로써 신학적 진리로 기울어진다. 실천적 출발점은 언제나 신학적 지평을 가진다. 신학적 요청은 언제나 실천적 관점을 가진다. 현재 실천의 빛 안에서 역사적 기사의 의미를 찾고, 역사적 기사의 빛 안에서 현재 실천의 의미를 찾는다. 이 상호 작용은 유효성과 진리에 제기된 새로운 지평의 융합을 가져온다. 이러한 제기들은 단지 신학적이 아니라 철학적이고 인간적으로, 이론적으로만이 아니라 실천적으로 시험되고 증빙되어야 한다. 이것이 신학적 윤리의 임무이다.57)

이러한 면에서, 신학적 윤리는 실천신학과 신학의 다른 부분들 사이의 중요한 연결이다. 실천신학이 우선적으로 서술한 실천은 실천자가 고백한 종교와 도덕적 가치와 더 또는 적게 일치하는 인간과 도덕적 행위이다. 신학적 의미의 비평적 시험이 관여된 이후에, 새롭거나 변화된 실천이 제안된다. 그들의 효과적인 수행은 통교와 동기 유발, 기획, 재강화, 등의 기술에 의존한다.

9) 실천을 향하여

실천신학에 의해 지향된 실천은 두가지 형태를 지닌다. 신앙 공동체 안에서의 실천과 더 큰 사회 안에서의 신앙 공동체의 실천. 어느 한쪽을 강조한다고 하더라도, 두 가지는 언제나 양립한다. 이것은 브라우닝이 그리스도교 교육의 목표를 제자양성과 시민권으로 말할 때나 비평적 여성주의가, 그리스도교 믿음이 그 의미에 의존하고 규명한다고 하더라도 (희생적인 사랑의 가치 확인이 가능한 면제로) 그리스도교 믿음을 요구하지 않는다고 할 때 명확해진다.58)

궁극적으로 실천신학의 실천은 변화가능하다. 그것은 현대 실천과 믿음 사이의 불일치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더 분명한 신학과 더 일치하는 실천을 제안함으로써 불일치를 극복하고자 한다. 실천신학의 과정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즉시 알 수는 없다. 그러나 형식의 몇몇 변화가 일어나고 사람들이 그들이 믿는 것을 실천에 옮기려고 노력하는 한 일어나고 알게 된다.



7. 신학적 반성의 세가지 요소

키나스트는 신학적 반성에 대해서 신학자들이 경험에서/경험과 신학화하는 중요성과 가치를 강조했을 뿐만 아니라, 어떻게 하는지를 제시했다고 밝힌다.59) 그들의 제시는 실제-삶 환경에서 믿음을 보다 효과적으로 실천하도록 하기 위해, 그리스도교 신앙의 원천과 상호연관된 생생한 경험의 일반 형태를 맞춘다. 전문가에게만 유보된 것이 아닌 모두에게 열린 신학적 반성의 스타일은 사목직무, 영적 지혜, 여성주의, 토착화 그리고 실천적이다. 이들의 가장 중요한 구분은 그들이 신앙 전승으로 경험을 어떻게 관련시키는가에 있다. 신학하기는 ‘경험’과 ‘신학적 상관관계’ 그리고 ‘실천(praxis)’라는 세 가지 주요소에 부응한다.60)


1) 경험

신학적 반성의 제안자들은 보통 철학 용어로 경험의 본성을 토론하지 않는다. 그들은 경험을 개인이나 공동체 삶에서 “무엇이 일어나는지”에 대해 마주서도록 한다.61) 가장 자주 선택되는 경험의 두 가지 타입은 새롭고, 창의적이며, 긍정적 사건과 문제적, 분열적, 위기적 사건이다. 공통 요소는 신학적 반성이 이성적 요소만큼 비이성적 요소(감성, 직관, 동기, 습관)를 다룬다는 것이다.62) 신학적 반성은 사람들에게 그들 자신의 경험과 그것이 간직하고 있는 (또는 계시하는) 잠재적 신학적 의미를 알린다. 이것이 경험을 경청하도록(화이트헤드), 현재 실천에 초점을 맞추도록(그룸), 상황을 인식하도록(킬렌-드 비어), 비평적 의식을 일으키도록(여성들), 문화 기사에 귀기울이도록(슈라이터), 또는 이론-수반 실천을 서술하도록(브라우닝) 다양하게 서술되었다. 인간 경험은 이미 신학적 의미를 가지고 있거나 그리스도교 신앙의 원천에 (이름뿐이거나 가설적인 것이 아니라) 실제로 연결되도록 할 수 있는 유사한 요소들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의 경험에 대한 기초 기술은 구술이다. 구술은 무엇이 생겨났는지를 말하는 사실적인 계정이고, 해석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말하는 개인적인 계정이다. 해석은 신학적 반성의 궁극적인 목표이다. 경험의 의미는 자기-증명이기 때문에, 그것은 다른 전망으로부터의 시험, 분석, 비교와 관찰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신학적 반성은 사람들의 경험에 대한 비평적 의식에 달려있다. 비평적 의식은 반성자들이 단지 무엇이 일어났는지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왜 그것이 저런 방법이 아니라 이런 방법으로 일어났는지 알고자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관련된 사람들보다 이 사람들이, 거기서가 아니라 여기서, 그 때가 아니라 바로 이 때에 일어난 사건들이 무슨 차이가 있는지, 비평적 의식은 그것이 무엇인지를 경험하도록 한 조건들을 명료화하고 경험이 의미하는 것에 대해 알려진 판단의 단계를 설정한다.

경험과 관련하여 신학적 반성의 가장 독특한 성격은, 신학적 의미의 원천이요 기준 모두로 기능하는, 그것이 가진 권위다. 원천으로서, 그것은 인간 삶에 대한 하느님의 계시와 구원의 현존의 구체적인 실현이거나, 그리스도교 역사 안에서 식별된 하느님 계시와 구원의 의미에 대한 반성이다. 모두의 경우에, 경험은 그 자체로 신학적 원천이며, 그 실체의 부분으로서 신학적 의미를 포함한다.

기준으로서의 경험은 그것과 상호 관련된 어떤 추가된 신학적 의미의 관련성과 적절함을 결정하는 기초를 제공한다. 신학적 반성이 그리스도교 신앙에 대해 주관주의자나 상대주의자 접근을 촉진하는 그릇된 동기가 되지 않도록 계속되어야만 한다. 아울러 신학은 어떤 주어진 경험의 구체적인 조건과 한계를 존중하여야만 한다.63) 모든 신학이 말해야만 하는 것이 특별한 경험에 적절하지도 않으며, 특별한 경험이 신학의 의미를 고갈시키지도 않는다. 이것이 방법론에서 명확해 지면, 경험은 신학과 상호 관계를 맺는다.


2) 신학적 상관관계

신학적 반성의 제안자들은 생생한 경험과 세워진 신앙 전승 사이의 역동적인 상호 관계성을 옹호한다. 이것은 경험과 전승의 상호 관계를 전형적으로 서술해온 과정이나 운동 또는 흐름의 모습으로 상징화된다. 신학적 반성은 전승과 잠정적 경험 둘 다에 질문과 실사들, 전개들 그리고 시험하는 협력적 접근을 북돋아 상관관계를 맺는다. 목표는 전승에 대한 공격이 아니라, 친밀해지는 것이다; 전승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접근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신학적 반성은 개인의 결점이나 한계를 다른 이들과 공동체나 그룹에 의해 보완되어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한다.

신학적 반성의 상호 상관관계를 위한 대화와 대담은 어디서 어떻게 나타나던지 진리에 대한 인식과 다른 관점을 존중하는 개방적인 면에서 제안된다. 믿음의 전승과 생생한 경험의 비평적 상관관계는 신학적 반성의 여성주의 스타일에서 보듯이 두가지로 드러난다. 하나는 전승의 억압되거나, 간과되거나, 가치절하된 요소들의 복구이며, 다른 하나는 잠정적인 경험에 의해 활성화된 대안을 통하여 전승적 가르침과 실천의 재구성이다. 그런데 신학적 반성의 여성, 토착화 그리고 실천적 스타일은 전승과 분쟁을 가져오며, 유효화 기준의 필요성이 보다 명확해진다. 그리고 그러한 기준에 대한 탐구는 신학적이거나 권위적인 논쟁보다 결과가 되는 실천을 향해 더 나아가게 된다. 

3) 실천(praxis)

실천적 고려는 외부로부터의 신학적 반성 과정을 조정한다. 매일의 실천에서 야기되는 긍정적인 경험들은 언제나 신학적 반성을 시작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행동을 위해 실천적 고려를 해야 하는 문제이며, 내려야할 결정이며, 극복되어야 하는 위기이며, 마주치게 되는 욕구이며, 교정되어야 하는 불일치이며, 올바르게 되어야 하는 잘못이며, 대답되어야 하는 질문이며, 해결해야만 하는 딜레마이며, 규명되어야 하는 모순이다. 실천적 고려가 신학적 반성의 각 경험을 시작하고, 토착화하며 기르기 때문에, 지속성을 제공하고, 신학적 반성이 우연적이고, 산발적인 사건이라기보다는 계속되는 행위가 될 것이라고 확신케 한다.

신학적 반성의 실천적 면에 세 가지 비평적 이슈가 있다. 첫째는 행동으로 나아가는 이상의 전환이다. 이상을 어떻게 실천에 옮기도록 할 수 있는지 기획하고 실천적 환경에서 같은 이상들을 인식하는 능력과 실현하는 서로 다른 능력이다. 두 번째는 반성에서 실천으로 옮기면서 장애를 예기하고 어떻게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지를 고안해내는 것이다. 세 번째는 실천이 행동의 반성에 관련되기 때문에, 행위가 (다시 해석학적이고 기호적 이슈에 대한) 반성으로서 같은 의미를 표현한다. 주어진 상황에서의 통교는 신학적 반성의 실천 국면에서 중요하다.

신학적 반성은 모든 실천이 변화의 어느 타입에 관여할 것이라는 것을 기대한다. 이것은 개인적이거나, 공동체적, 제도적이거나 사회/문화적 수준에서 일어날 것이다. 마지막 수준에서의 변화들은 광범위한 수행들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여성들과 경제적으로 압박받는 그룹들 그리고 문화적 소수자들에 의해 행해지는 신학적 반성의 상당한 충격은 신학적 반성이 언제나 폭넓고, 급진적인 변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 느낌을 줄 수 있다.

보다 형식적으로, 신학적 반성은 개인과 그룹의 그리스도교 신원과 믿음의 조성 안에서 점진적인 변화를 그린다. 이것은 보통 다른 삶의 형태에 간접적인 충격을 주는 복음의 보다 완전하고, 개인적인 충당의 형태를 취한다. 물론, 체제, 정치 그리고 공적인 실천의 변환은 언제나 가능하다. 그러나 그것은 우선적이 아니거나 단지 신학적 반성의 산출을 지향한다. 차라리, 실천의 목표는 반성이 가능하도록 만드는 것을 실현하는 것이다. 그것은 원초적 경험으로부터 자라나고, 신앙 전승과 비평적으로 상호 관련되며, 기술적으로 실천에 옮겨진다. 그것은 단지 신학자들이 말하는 것이 아니라 – 그것은 또한 그리스도교 신앙이 행하는 것이다.








1) Robert L. Kinast, What Are They Saying About Theological Reflection?, New York, Paulist Press, 2000, 1면.

2) Robert L. Kinast, If Only You Recognized God's Gift, Grand Rapids, Mich. Eerdmans, 1993, 1-3면 참조; Let Ministry Teach: A Guide to Theological Reflection, Collegeville, Minn., Liturgical Press, 1996, xi-xiv. 참조.

3) David Tracy, Traditions of Spiritual Practice and the Practice of Theology, Theology Today July 1998, 235면 참조.

4) Robert L. Kinast, What Are They Saying About Theological Reflection?, 2000, 1-5면.

5) Eveque Olivie de Berranger, 사도적 성찰(생활반성)의 영성, 가톨릭 노동 청년회 동아시아 모임, 서울, 1982. 전문은 심흥보, 일하며, 쉬며, 또!-직장인 예비자 교리서, 서울, 가톨릭출판사, 1994, 396-420면 참조.

6) James D. Whitehead and Evelyn Eaton Whitehead, Method in Ministry: Theological Reflection and Christian Ministry, Kanas City, Mo., Sheed and Ward, 1995.

7) Robert L. Kinast, 위의 책, 6-14면(이하 각주 재인용).

8) James D. Whitehead and Evelyn Eaton Whitehead, 위의 책, ix.

9) 위의 책, 3-23.

10) 대화로서의 화이트헤드의 방법론의 토론에 대해서는 Kathleen T. talvacchia, Finding God Experientially in the Tradition: Theological Reflection as Spiritual Formation, New Theology Review 11, November 1998, 43-53 참조.

11) 듣는 기술에 관해서는 Robert L. Kinast, Let Ministry Teach: A Guide to Theological Reflection, , 48-64면 참조.

12) 신학적 반성이 직면하는 직무적 경험의 모습들 중 하나는 신적 신비의 감각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Anthony F. Krisak, Theological Reflection: Unfolding the Mystery, in Robert J. Wicks, ed., Handbook of Spirituality for Ministers, Mahwah, Paulist Press, 1995, 308-330면을 보라.

13) 구체적인 경험과의 연결을 유지하기 위해, 신학적 반성의 사목직무 스타일은 사목직무 사건들의 구화 게정들과 케이스 연구들에 의존한다. 어떻게 이것을 행하는가에 대해서는  Jeffrey H. Mahan, Barbara B. Troxell and Carol J. Allen, Shared Wisdom: A Guide to Case Study Reflection in Ministry, Nashville, Abingdon Press, 1993, 75-91면을 보라.

14) Whiteheads, Methold in Ministry, 43면.

15) 과정-관계 세계관에 기초한 경험의 신학적 질에 대한 다른 설명은 Kinast, Let Ministry Teach, 16-23면 참조.

16) 조명과 적용 그리고 해석으로서의 신앙 전승에 대한 경험의 가능한 효과들은 Kinast, Let Ministry Teach, 68-152; 긍정과 적응, 회개로 기술된 것은 Making Faith-Sense: Theological Reflection in Everyday Life, Collegeville, Liturgical Press, 1999, 35-75 참조.

17) 반성에서 넘쳐오르는 행동을 평가하는 규범에 대해서는 Kinast, Let Ministry Teach, 175-177면을 보라.

18) Thomas Groome, Christian Religious Education: Sharing Our Story and Vision, San Francisco, Harper and Row, 1980과 Sharing Faith: A Comprehensive Approach to Religious Education and Pastoral Ministry, San Francisco, Harper Collins, 1991을 보라. 이 책에 나오는 공유된 실천(praxis)은 그룸 자신의 교과과정을 포함한 교리교육에 펼쳐져 있다. Thomas Groome, Coming to Faith, for grade K-6, William H. Sadlier Inc., New York.

19) Patricia O'Connell Killen and John de Beer, The Art of Theological Reflection, New York, Crossroad, 1994.

20) Edward Farley, Theologia: The Fragmentation and Unity of Theological Education, 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83; The Fragility of Knowledge: Theological Education in the Church and the University, 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88.

21) Edward Farley, The Fragility of Knowledge: Theological Education in the Church and the University, 88-89면.

22) Robert L. Kinast, 위의 책, 15-26면(이하 각주 재인용).

23) Thomas Groome, Sharing Faith: A Comprehensive Approach to Religious Education and Pastoral Ministry, 8, 80-82면.

24) 위의 책, 30-32면.

25) 위의 책, 155-175면.

26) 위의 책, 159-160면.

27) Groome의 공유된 그리스도인 실천(praxis)의 다섯가지 운동들은 Sharing Faith, 146-148면과 175-281면에 짧게 서술되어 있다.

28) John Shea, An Experience Named Spirit, Chicago, The Thomas More Press, 1983, 53-88면; Gospel Light: Hesus Stories for Spiritual Consciousness, New York, Crossroad, 1998 참조.

29) Patricia O'Connell Killen and John de Beer, The Art of Theological Reflection, New York, Crossroad, 1994. viii.

30) 신학적 반성에 있어 느낌의 중요성에 대한 다른 토론은 Robert L. Kinast, Making Faith-Sense, 12-13면을 보라.

31) 경험의 이 네가지 자원들과 종교적으로 관련된 정보(개인과 공동체적 경험, 신앙 전승, 문화)에 대한 화이트헤드의 세가지 자원들 사이의 명확한 유사성이 있다. 화이트헤드의 세가지 자원들처럼, 킬렌과 드 비어의 경험의 네가지 자원들은 언제 어떻게 그들의 경험이 신학적 반성을 초대하는지를 그리고 사람이 인식하고 특별한 맥락에서 반성을 위한 방법들을 고안하도록 하는 모형으로 봉사한다. 그러나 킬렌과 드 비어는 사람들이 잡은 자리들과 그들이 수행한 행동들 사이에 구분을 한다. 둘이 이상적으로 되어야만 하더라도 언제나 조화 속에 있지 않다.

32) 여성 신학의 협력적인 본성은 다양한 저자들의 작품들에서 드러난다.  Ann Lpades, ed., Feminist Theology: A Reader, Louisville, Westminster John Knox Press, 1990; Carol P. Christ and Judith Plaskow, eds., Womanspirit Rising: A Feminist Reader in Religion, San Francisco, HarperCollins, 1991; Maxine Glaz and Jeanne Stevenson Moessner, eds., Women in Travail and Transition: A New Pastoral Care, Minneapolis, Fortress Press, 1991; Catherine Mowry LaCugna, ed., Freeing Theology: The Essential of Theology in Feminist Perspective, San Francisco, HarperCollins, 1993; Rebecca S. Chopp and Sheila Greeve Devancey, eds., Horizons in Feminist Theology: Identity, Tradtion, and Norms, Minneapolis, Fortress Press, 1997.

33) Robert L. Kinast, 위의 책, 27-39면(이하 각주 재인용).

34) Elisabeth Schussler Fiorenza, In Memory of Her: A Feminist Theological Reconstruction of Christian Origins, New York, Crossroad, 1983; Discipleship of Equals: A Critical, Feminist Ekklesia-logy of Liberation, New York: Crossroad, 1993을 보라.

35) Elizabeth A. Johnson, She Who Is: The Mystery of God in Feminist Theological Discourse, New York, Crossroad, 1992; Anne Hunt, What Are They Saying About the Trinity?, Mahwah, Paulist Press, 1998, 22-35면을 보라.

36) 여성 신학의 성경적, 역사적, 실천적인 현안들에 대해서는 Ann Loades, ed., Feminist Theology: A Reader을 보라; 10가지 사목적 주제들의 논의에 대해서는 Maxine Glaz and Jeanne Stevenson Moessner, eds., Women in Travail and Transition을 보라; 9개의 신학적 주제들을 다룬 Catherine Mowry LaCugna, ed., Freeing Theology를 보라,

37) Sallie McFague, Metaphorical Theology: Models of God in Religious Language, Minneapolis, Fortress Press, 1982; Mary McClintock Fulkerson, Changing the Subject: Women's Discourses and Feminist Theology, Minneapolis, Fortress Press, 1994; Madonna Kolbenschlag, Kiss Sleeping Beauty Good-Bye, New York, Bantam Books, 1979; Megan McKenna, Not Counting Women and Children, Maryknoll, N.Y., Orbis Books, 1991; Rosemary Radford Ruether, Gaia and God: An Ecofeminist Theology of Earth Healing, San Francisco, HarperCollins, 1992; Elisabeth Moltmenn-Wendel, I Am My Body: A Theology fo Embodiment, New York, Crossroad, 1995; Rosemary Radford Ruether, Women-Church: Theology and Practice of Feminist Liturgical Communities, San Francisco, HarperCollins, 1985를 보라.

38) 여성 신학자들이 힘의 참여적 사용을 진작시키는 것은 외골수가 아니다. 과정들과 사목 신학자들은 이 입장을 일관적으로 견지해왔다. 일례로, Bernard Loomer, Two Kinds of Power, reprinted in Bernard J. Lee, The Future Church of 140 B.C.E., New York, Crossroad, 1995, 169-203; Larry Kent Graham, Dethroning the Demonic: Rearragning Power Through the Ministry of Care, Care of Persons, Care of Worlds, Nashville, Abingdon Press, 1992, 138-159면을 보라.

39) 토착화의 전망은, 그리스도교 문화들에 전승적으로, 적용할만하고 가금 필요하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이러한 문화들 안에서 “새로운 복음화”에 대해 강조했다. The Vocation and the Mission of the Lay Faithful in the Church and in the World, Washington, D.C., U.S.C.C. Publishing and Promotion Service, 1988, 95-99. The Mission of the Redeemer, reprinted in Origins January 31, 1991, 541-568.

40) Robert J. Schreiter, C.P.P.S., Constructing Local Theologies, Maryknoll, N.Y., Orbis Books, 1985(신학의 토착화, 황애경 역, 서울, 가톨릭출판사, 1991); The New Catholicity: Theology Between the Global and the Local, Maryknoll, N.Y., Orbis Books, 1997(세계화 시대의 교회와 신학, 임상필 역, 서울, 도서출판 패스터스하우스, 2007). 저자의 다른 저서 Reconciliation: Mission and Ministry in a Changing Social Order, Maryknoll, N.Y., Orbis Books, 1992; The Ministry of Reconciliation, Maryknoll, N.Y., Orbis Books, 1998(화해의 사역, 임상필 역, 서울, 한국장로교출판사, 2004) 참조.

41) Robert L. Kinast, 위의 책, 40-51면(이하 각주 재인용).

42) Robert J. Schreiter, Constructing Local Theologies, 1면을 보라.

43) 다섯 가지 다른 모델을 포함한 상황화 신학의 논의에 대해서는 Stephen B. Bevans, Modes of Contextual Theology, Maryknoll, N.Y., Orbis Books, 1992(상황화 신학, 최형근 역, 서울, 죠이선교회출판부, 2002)를 보라.

44) 고전 흑인 신학은 James H. Cone, Black Theology and Black Power, Maryknoll, N.Y., Orbis Books, 1997 ed; God of the Oppressed, Maryknoll, N.Y., Orbis Books, 1997 ed. 여성 신학의 대표작은 Katie Geneva Cannon, Katie's Canon: Womanism and the Soul of the Black Community, New York, Continuum, 1995; Emilie M. Townes, ed., Embracing the Spirit: Womanist Perspectives on Hope, Salbation, and Transformation, New York, Continuum, 1997, 히스패닉/라티노와 남미 해방신학(mujerista)에 대해서는 Justo L. Gonzalez, Manana: Christian Theology from a Hispanic Perspective, Nashvill, Abingdon Press, 1991; Robero Goizueta, Caminemos Con Jesus: Toward a Hispanic/Latino Theology of Accopmaniment, Maryknoll, N.Y., Orbis Books, 1995. Ada Maria Isasi-Diaz, Mujerista Theology: A Theology for the Twenty-First Century, Maryknoll, N.Y., Orbis Books, 1996. 아시아 아메리카노 신학자들의 작품은 Jung Young Lee, Marginality: The Key to Multicultural theology, Mineapolis, Fortress Press, 1995; Peter C. Phan, Jesus the Christ with an Asian Face, Theological Studies 57, 1996, 399-431; Journal of Asia and Asian American Theology, the Center for Pacific and Asian american Ministries at the Claremont School of Theology in California.

45) Robert J. Schreiter, Constructing Local Theologies, chapter 2, 22-39.

46) Raymond F. Collins, Models of Theological Reflection, Lanham, University Press of  America, 1984. Alex Garcia Rivera, St. Martin de Porres: The "Little Stories" and the Semiotics of Culture, Maryknoll, N.Y., Orbis Books, 1995.

47) Robert J. Schreiter, The New Catholicity, chapter 3, 46-62.

48) Michael Warren, At This Time, in This Place: The Spirit Embodied in the Local Assembly, Harrisburg, Trinity Press International, 1999; George M. Furniss, The Social Context of Pastoral Care, Louisville, Westminster John Knox Press, 1994 참조.

49) 실천신학의 기초에 대해서 Don S. Browning, ed., Practical Theology: The Emerging Field in Theology, Church, and World, San Francisco, Harper and Row, 1983; Lewis Mudge and James Poling, eds., Formation and Reflection, 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87; Barbara G. Wheeler and Edward Farley, eds., Shifting Boundaries: Contextual Approaches to the Structure of Theological Education, Louisville, Westminster John Knox Press, 1991, Gerben Heitink, 위의 책을 보라.

50) Don S. Browning, A Fundamental Practical Theology: Descriptive and Strategic Proposals, Minneapolis, Fortress Press, 1991; Don S. Browning Bonnie J. Miller-McLemore, Pamela D. Couture, K. Brynolf Lyon and Robert M. Franklin, From Culture Wars to Common Ground: Religion and the American Family Debate, Louisville, Westminster John Knox, Press, 1997; Don S. Browning, David Polk and Ian S. Evison, eds., The Education of the Practical Theologican, Atlanta, Scholars Press, 1989.

51) Robert L. Kinast, 위의 책, 52-63면(이하 각주 재인용).

52) 브라우닝의 영향을 받아 트래이시는 학계, 교계, 그리고 사회의 공공성에 부합하는 기초, 조직 그리고 실천의 세가지 신학을 재정의한다. David Tracy, The Analogical Imagination: Christian Theology and the Culture of Pluralism, New York, Crossroad, 1981, 47-99면.

53) Don S. Browning, A Fundamental Practical Theology, 47-58면.

54) Don S. Browning, Religious Ethics and Pastoral Care, 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83, 53-72면; James N. Poling and Donald E. Miller, Foundations for a Practical Theology of Ministry, Nashville, Abingdon Press, 1985, 70-82면.

55) Don S. Browning, A Fundamental Practical Theology, 209-295면.

56) 공통 실천들의 열린 신학적 의미의 다른 예들은 Dorothy C. Bass, ed., Practicing Our Faith: A Way of Life for a Searching People, San Francisco, Jossey-Bass Publishers, 1997을 참조하라.

57) 실천신학과 신학적 윤리들 사이의 연결에 대해 McCann and Swain, Polity and Praxis, 145-178면.

58) Don S. Browning, A Fundamental Practical Theology, 213-215면; From Culture Wars to Common Ground, 306-335면.

59) 경험의 신학화에 대한 비평적 시도는 Donald L. Gelpi, The Turn to Experience in Contemporary Theology, Mahwah, Paulist Press, 1994. 겔피는 에두아르트 스킬레벡스와 해방신학의 경험적 접근들을 발견하고, 신학과 초월적인 토미즘을 보충하며, 대안으로서의 Charles S. Peirce의 작업에 기초한 기호적 접근을 지행한다.

60) Robert L. Kinast, 위의 책, 64-71면(이하 각주 재인용).

61) 토마스 그룸은 경험에 대해 가장 철학적인 접근을 취한다. 화이트헤드, 킬렌과 드 비어, 그리고 돈 브라우닝은 경험의 자원들이나 타입들 또는 수준들을 이야기 한다. 여성 신학자들과 토착화 신학자들은 그들의 귀중한 경험들에 대해 더 현상론적인 접근을 취한다. 과정-관련 세계관의 용어에서 본 경험에 대한 철학적 논의는 Kinast, Let Ministry Teach, 17-22면.

62) 신하적 반성은 반성의 유일한 형태가 아니다. 의미의 탐구라면 면에서, 그것은 다른 해석학적 흐름들과 함께 기초 해석학적 동기를 공유하고 공통 해석학적 원리들과 기술들을 그려낸다. 이것은 그룸과 킬렌-드 비어, 슈라이터 그리고 브라우닝의 작업에서 명확히 확인된다. 신학적 반성의 특성은 신학적 자원과의 상관관계와 그 신학적 동기 안에서 나타난다.

63) 경험들 각각의 의미를 강조하는 신학적 반성(보편 교의)과 모든 경험들이 해석자들의 (사회적) 전망들에 의존하는 다양한 의미들에서 나온다는 그 가정은 포스트모더니즘의 그와 같은 측면과에 어떤 친숙함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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