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부 사목 영성


11장 교구 사목사제 영성

    1. 교구 사제 사목 지침

        1) 직무 사제직의 원천

        2) 복음 선포자요 사목자로서의 신분

        3) 교구 사제의 영성

        4) 사제 생활 규칙

    2. 한국 교회 초기 사목자 영성

        1) 한국 교회 초기 사목사제 서한

        2) 교회 공동체 사목활동인 자선활동

        3)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영성

        4) 초대 조선교구장 브뤼기에르 소 주교의 영성

    3. 교구 사목사제의 영성

        1) 교구 사제 영성의 모델

        2) 공동체 영성

        3) 관계성과 친교의 사제영성

    4. 본당 사목사제 영성

        1) 제자와 목자로 불린 본당 사목사제

        2) 본당 사목사제의 세가지 영성

        3) 오늘날 본당 사목사제 영성




11장 교구 사목사제 영성




이 장에서는 교구 사제 영성을, 1항 교구 사제 사목 지침을 교황청 인류복음화성 산하 교회의 교구 사제 사목 지침에 따라 직무 사제직의 원천과 복음 선포자요 사목자로서의 신분, 교구 사제의 영성, 사제 생활 규칙으로, 2항 한국 교회 초기 사목자 영성을 한국 교회 초기 사목사제 서한과 교회 공동체 사목활동인 자선활동,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영성, 그리고 초대 조선교구장 브뤼기에르 소 주교의 영성으로, 3항 교구 사목사제 영성을 교구 사제 영성의 모델과 공동체 영성, 그리고 관계성과 친교의 사제영성으로, 그리고 4항 본당 사목사제 영성을 제자와 목자로 불린 본당 사목사제와 본당 사목사제의 세가지 영성 그리고 오늘날 본당 사목사제 영성으로 나누어 살펴본다.



1. 교구 사제 사목 지침

이 항에서는 교구 사제 사목 지침을 교황청 인류복음화성 산하 교회의 교구 사제 사목 지침에 따라 직무 사제직의 원천과 복음 선포자요 사목자로서의 신분, 교구 사제의 영성, 사제 생활 규칙으로 나누어 알아본다.


1989년 10월 1일, 예수 아기의 성 데레사 동정 대축일에 교황청 인류복음화성 장관 요젭프 톰쿠 추기경의 이름으로 발표된 「교황청 인류복음화성 산하 교회의 교구 사제 사목 지침」은 “사제들의 성덕에 대한 인격적인 증거는 특별한 중요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다른 어떠한 지역에서보다도, 성덕의 증거는 신빙성의 표지가 되고 사도직 활동의 효력에 대한 보장이 됩니다.”1)라고 하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우리 모두 함께 ‘하느님 아버지의 선교사’이신 그리스도를 더욱 더 충실하게 본받을 수 있도록 성령의 도우심을 간청합시다.”2)라는 머리말로 시작하고 있다.

톰코는 역동적인 성장 과정에 있는 젊은 교회들에게 각별한 중요성을 지니는 측면들로서, 비그리스도인들에게도 증인으로서 봉사하여야야 할 사제의 근본적인 내적 가치와 그 생활 양식, 주교와 동료 사제들 그리고 그리스도교 공동체와 이루는 긴밀한 친교, 비그리스도인들의 일차적 복음화에 헌신하겠다는 각오, 교회의 생활과 성장 그리고 복음화에 있어서 평신도들의 참여를 위한 훈련, 젊은이들에 대한 특별한 관심,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우선적인 사랑, 인간의 진보와 정의의 수호를 위한 감수성, 토착화 증진을 위한 자세, 타종교와의 일치 대화 등을 언급한다.3)


1) 직무 사제직의 원천

직무 사제직의 원천을, 아버지의 뜻대로 세상에 파견되시어 아버지의 뜻을 성취하신 그리스도께서 사도들을 교역자로 삼으시어 공동체 안에서 성품의 거룩한 권한을 지니게 하시고, 사도들과 그 후계자들을 주님의 축성과 사명에 참여시키고 사제들에게 직무를 위임하도록 하셔서, 세상에 살면서도 그리스도께 속한(요한 17,14-15 참조) 축성된 사제들이 친교이신 성령께 힘입어 새롭고 영원한 계약의 사제요 그 제물이신 그리스도(히브 9,11-15 참조)의 사명에 참여하여 하느님 나라의 시작을 선포하고(마르 1,15 참조) 하느님 백성을 다스리고 가르치고 성화시키면서 존재와 생활이 일치된 인격으로 봉사하도록 하는 삼위 일체적인 토대(2항)와 구원의 보편적 성사인 교회의 말씀과 성사 특히 성체성사를 통해 교황과 주교단, 주교와 사제단의 친교를 통해 그리스도를 현존케 하며, 교구에 입적하여 교구사제가 되어 교회의 표현이며 교회 구원 계획을 성취하고 사제직은 교회에 대한 결속 의식, 그 구원 사업에 대한 참여, 그리고 여러 사목 종사자들 특히 로마 교황과 주교, 다른 사제들과 부제들과 더불어 이루는 정신과 행동의 친교를 모두 포괄하는 교회의 성사적인 토대(3항)로 삼는다.


2) 복음 선포자요 사목자로서의 신분

복음 선포자요 사목자로서의 신분을, 비그리스도인들에게 복음을 선포하는 일선의 사도이며 타지역 타민족에게까지 복음을 선포하러 가야하는 사제의 선교 의식(4항), 복음을 선포하고 신자들을 사목하고 하느님께 예배를 드리기 위하여 축성된 사람으로서 영속적이고 교계적인 친교를 주교와 사제단과 이루는 사제의 목자 의식(5항), 복음화의 과정에서 주교와 동료 사제들과 한 몸을 이루며 우애를 간직하고 성사적 형제애를 나누는 사제의 형제애(6항), 하느님의 백성을 가르치는 신앙의 교사로서 그리스도의 에언직에 참여하여 말씀의 힘으로 신자들의 공동체로 모아들이는 지칠 줄 모르는 복음 선포자, 말씀의 봉사, 교리 교육에 참여하는 말씀의 직무(7항), 성사, 특별히 성체성사를 거행하며 참회 성사를 정성껏 규칙적으로 인내롭게 또 열성적으로 수행하며 세례와 견진의 효과를 강조하면서, 전례의 우선적인 과제로서 공동체 의식을 중시하며, 전례에 능동적으로 참여케 하며, 전례와 생활를 연계하도록 하며, 토착화를 이루고 전례규범을 충실히 준수하며 주제하며 사제 부재시의 주일 예절의 거행에 관심을 기울이는 전례 거행의 주재자, 성사의 집전자(8항), 복음화와 연결되어 있는 인간발전을 위하여 종교적인 질서에 관하여 인간을 억압하는 온갖 죄악과 사회적 불의를 고발하며, 해방, 인간 발전과 정의에 있어서 효과적인 사목직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사회교리와 교회 지침과 사목적 선택을 숙지하고 민중과의 연대와 일치의 결속으로 의식화하며, 전쟁과 자연재해로 인한 탈출의 고통, 가족들과의 이별, 고독, 극도의 궁핍 등으로 이상의 붕괴 및 실의와 좌절로 이어지는 난민에 대해 가져야할 교회 공동체의 목자다운 사랑으로 해방, 인간 증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우선적인 사랑(9항), 여러 차원의 역량을 지닌 사람들과 교계적으로 이루어진 공동체의 사목협의회와 재무위원회 그리고 기초 그리스도교 공동체, 단체, 운동 등을 상황분석, 전체적인 목표와 구체적인 목표의 설정, 판단기준, 활동전략 및 방법등의 활용을 통하여 활성화시킬 협력의 증진자(10항), 가톨릭 신앙에 근거한 그 가치, 신념, 태도, 표현과 더불어 대중 신심 등의 토착화로 문화의 복음화에 대한 헌신(11항), 교회 안에서 생동하는 활기찬 구성원이자, 교회의 관심과 사랑 그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는 교회의 희망인 젊은이들의 벗이요 인도자(12항), 성령께서 특별한 성소의 은사들을 끊임없이 부어주시고 그리스도께서 당신이 사랑하시는 젊은이들을 계속하여 부르고 계시다(마르 10,2 참조)는 사실을 확인하고 젊은이들과 기꺼이 함께 지내며, 방학을 맞은 신학생들, 특히 사목 실습 중인 부제들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성소의 증진자(13항), 같은 주님의 제자들로 오늘날 점점 부각되는 세속적인 성격들을 고려하여 그리스도의 예언직, 사제직, 왕직에 참여하는 평신도 신분에 대한 관심(14항), 사랑이신 하느님의 모습이 되며, 부부를 사랑으로 결합시키고 열매를 맺게하는 사랑으로 사회의 활력있는 기초 세포가 되고 교회의 가정적 성소가 되도록 육성하는 가정 사도직(15항), 성체 배령을 비롯하여 특별한 사목적 배려를 요청하는(마태 25,36.43; 마르 16,18; 루가 9,11 참조) 육체적 심리적 허약성과 내적 외적 고통의 차원에서 일치되어 있는 병자들과 노인들의 편에서(16항), 하나되길 원하셨던 그리스도의 기도가 실현되기를 희망하며, 기존의 지역적 장애와 오해로 위축되지 않으며, 세상의 결림돌이 되고 복음 선포에 지장을 초래하는 그리스도교 분열을 논쟁이나 종교적 경쟁이 아니라 일치와 사랑을 유지하려는 일치 운동의 촉진자(17항), 말씀의 씨앗으로서 그리고 복음을 위한 준비로서 그 종교가 포용하고 있는 가치들을 알아 모든 종교들이 가지고 있는 평화, 정의, 발전, 인권 등 인간을 위한 위대한 대의 안에서 서로 대화하고 협력하는 비그리스도인들과의 대화에 대한 관심(18항)이란 측면에서 바라본다.


3) 교구 사제의 영성

교구 사제의 영성을 사제 영성의 요체와 본질(19항)과 사제적 영성의 차원(20항), 영성의 복음적 특징(21항) 그리고 영성 생활의 수단(22항)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사제적 영성이란, 사제가 주교의 은사와 일치하여 지역 교회와 보편 교회에 봉사하는 가운데 그리스도의 특유한 인격적 표지가 되는, 성령 안에서의 생활을 의미한다. 사제의 영성은 예언자요 사제요 왕이신 그리스도의 축성(존재)과 사명(행동)에 대한 참여로서 성령의 은총으로부터 솟아 나온다. 사제적 영성 안에는 그리스도의 인격적 표지요 도구라는 새로운 이름 아래서, 사제들이 그리스도의 성령 안에서 성실하고 지칠줄 모르는 헌신으로 자신의 고유한 임무를 수행할 때에 그 완덕에 이르게 되는 소명이 포함된다(레위 11,44-45; 마태 5,48; 2티모 1,9; 1베드 2,5 참조). 교구 사제들은 주교들과 사제가족과 이루는 친교 안에서 교회에 봉사하고 보편적 구원 사명에 이바지하면서 탁월한 교회적 선교적 영성을 발견한다. 사제이시요 착한 목자이신 그리스도와 긴밀하게 일치하여 사제 고유의 영성에 따라 드높은 성덕을 목표로 하는 강인한 영성 생활과 헌신적인 사도직 투신이 없다면, 결코 자신의 사제적 신원을 구현할 수 없고, 그 직무를 원활하게 수행할 수 없다는 사실에서 사제 영성의 요체와 본질을 확인하게 된다(19항).

재속 교구 사제 영성은 하느님 아버지께서 파견하시고 성령께서 축성하신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의 집착과 헌신적인 추종, 성체성사의 핵심적인 신비와 마리아의 전형적 현존에 대한 특별한 신심, 로마 교황과 지역 주교에 대한 충심의 일치와 헌신적인 순명, 지역 ‘사제단’의 사제들과 이루는 긴밀한 형제애, 지역 교회 신자들에 대한 사도적 봉사, 다른 가난한 교회들을 도와주고 비그리스도인들을 복음화하겠다는 의지 등에 토대를 두고 있다. 그러므로 재속 교구 사제의 영성은 삼위일체적 교회적 선교적 전망 안에서 성모신심으로 생활화되어야 한다. 사제이신 그리스도의 어머니요 협조자, 성령의 역사에 충실하신 분, 교회의 전형이요 어머니이신 마리아께서 사제의 직무와 생활에 항상 가까이 계신다. 사제 영성의 특징적인 표지는 목자다운 사랑이며, 그 사랑은 거룩하다. 그리스도와 함께 있도록(마르 3,14 참조) 부름받은 성소는 사제가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동참하게 하고, 자기 자신의 삶에서 이 거룩함을 드러내게 한다(요한 17,10 참조). 사제의 영성은 교회와의 친교이며, 사제적 인호를 가지고 그리스도의 대리로 자신의 직무 안에서 구원하시는 사랑을 드러내게 하는(로마 15,5 참조) 사명이다. 그리고 모든 것을 버리는 완전한 포기와 그리스도께 대한 철저한 추종(마태 19,27 참조), 사도직을 위하여 이 세상 끝가지 가겠다(마르 16,20 참조)는 헌신적인 자세, 사제 가족의 구성원들로서 상호 협력과 형제애(요한 17,12 이하; 사도 1,13-14 참조) 등으로 이루어진 사도들의 복음적 생활을 본받는 모방에서 사제 영성의 차원을 발견한다(20항).

복음에 따라 진정한 사제상의 구현에 근본이 되는 명확한 영성적 특질은 예수님과의 우정과 주님과 교회의 봉사자로서 사도적 열성, 격무를 감당할 수 있는 역량, 어떠한 사목 임무도 기꺼이 받아들이겠다는 각오, 개인적인 영예나 보상을 바라지 않는 겸손, 그리스도의 양 우리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선포하는 선교 자세 등으로 드러나는 교회적 봉사이며, 일상의 직무를 통한 성화이며, 그리스도께 대한 일치는 사제의 내적 생활과 사도적 활동 사이에 균형을 갖추어 줄 것이다. 착한 목자에게 고유한 덕행, 목자다운 사랑을 행동으로 실천하여야 한다. 그 사랑은 열성을 통하여(로마 12,11; 1베드 3,13; 1티모 4,14-16 참조), 순명과 정결과 청빈의 생활 속에서 그리스도를 본받아 기꺼이 십자가를 지겠다는 각오 안에서 영성의 복음적 특징이 드러난다(마태 10,38; 16,24; 마르 8,34; 루카 14,27 참조: 21항).

그리스도교 영성 생활의 공통 수단은 사제의 영성에 있어서도 필수적인 것이며, 실질적으로 자신의 직무와 연결된 행위들로 이루어지는 특수한 수단들이 주어진다. 사제들은 교회의 정신과 그 지침에 따라 자신의 직무를 수행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성체성사는 사제 생활 전체의 중심이요 그 근본이다. 미사 거행과 성체 조배, 기도 안에서 묵상하고 또 선포하는 하느님의 말씀, 전공동체를 위하여 전공동체와 친교를 이루며 바치는 성무일도, 힘을 북돋아 주고 정화시켜 주는 화해의 성사, 그리스도와 교회에 헌신적으로 봉사하도록 도와주는 성모 신심, 빈번하고도 규칙적인 개인 기도와 묵상, 피정과 영신 수련, 양심 성찰, 영성 지도, 신학연구, 영성적 사도적 사제 단체에 대한 적극적인 참여 등으로 서로의 체험을 나누며 성사적인 형제애를 이루는 것이 영성 생활의 수단이다(22항).


4) 사제 생활 규칙

사제직의 기원이며 신원과 의미이며, 사제의 신앙 활력과 영성 생활을 위한 양식인 하느님의 말씀은 사제에게 더 깊이 알고 의미를 깨닫기 위해(필리 3,8; 에페 3,19; 4,13 참조) 독서와 연구, 기도 속에서 끊임없이 응답을 요구하며(23항), 사제 영성 생활의 수단이며 표현인 기도 생활은 공동체의 신앙과 기도에 대한 참여이며, “늘 살아계시어 그들을 위하여 빌어주(중재자의 일을 하)시는”(히브 7,25) 그리스도를 본받아 형제 자매들을 위하여 규칙적으로 기도해야 하며, 기도를 위하여 필요하다면 활동을 제한하더라도 기도와 미사 성제에 충실하며, 듣고 기도하고 응답하는 자세로 바치는 묵상 기도는 말씀과 자신의 삶이 대면하는 높은 상태이며, 묵주 기도와 성모 신심을 통해 자신의 직무와 사람들을 성모님의 보호에 의탁하며, 스스로 화해의 성사를 받고, 자신에게 부여된 십자가를 받아들여, 내적 생활과 사도적 생활의 일치를 유지하며(24항), 성령의 도우심으로 신학적 쇄신, 변천하는 현대 사회를 신앙 안에서 이해하여야 할 필요성들을 인식하여 복음의 메시지를 적절한 교리교육적 언어로 표현하며, 신학의 토착화에도 개방적인 관심을 기울여 교구 사도직을 위한 지적 생활을 하며(25항), 단순히 몸만 모여 사는 것이 아닌 영성적·사목적·인간적 차원에서 함께 살아가면서 사제들이 서로 도와주고 협력하는 공동생활을 영위하며(26항), 자신의 뜻을 찾지 않고 자신들을 파견하신 하느님의 뜻을 따르려는 부단한 결심으로(요한 4,34; 5,30; 6,38 참조)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아들이셨지만 고난을 겪음으로써 복종하는 것을 배우”(히브 5,8 참조)신 것처럼 흩어져 있는 하느님의 자녀들을 일치시켜 한 데 모으는 일(요한 11,52 참조)을 계속하도록 자신을 파견하신 그리스도와 교회에 순종하는 가운데 자신의 사명을 성취하여 교회적 순명으로 교도권에 대한 충성, 임명의 수락, 의식의 요구와 규범을 준수하고, 본당 사목구 대장들을 관리하며, 성직자 복장을 입고, 사목구 관할 지역에 상주하고 독서와 휴식을 위하여 주일 휴간과 연중 휴가를 가지는 사제의 순명(27항), 복음적 가난에 대한 일관성과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최우선의 선택을 하고, 사제들에 대한 재정적인 보장과 사제들의 자발적인 검소한 생활, 교회의 재산을 예배와 사도직의 증진, 사목자들의 정당한 생활보장,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원조를 정당하게 사용하고, 공동체의 재정 자립과 원조 요청 그리고 질병 및 노후를 보장하며, 유언장을 작성하여 가난과 재화를 사용하도록 하며(28항), 새롭고 숭고한 이유로써 “갈림없는 마음으로”(1코린 7,32-34 참조) 더욱 쉽게 주님께 일치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부성의 풍부한 은총을 받아 한층 더 자유롭게 더욱더 효과적으로 자신의 형제 자매들을 위한 봉사에 헌신하게 하는 하느님 나라를 위한 독신의 정결(29항), 자기 가족들과 친교를 이루며 가족들을 도와주면서도 직무상의 자유를 잃어버리지 않고 살아갈 수 있으려면 친척들과 복음적인 태도를 취해야 하며(30항), 사목자로서 사제들은 사람들 사이에 보전되어야 할 정의에 근거한 평화와 화합을 조성하기 위해 시민적으로 참여하며, 국가 권력에 참여하는 어떠한 정치적 공직이나 평신도의 재산과 관련된 세속직무와 관련된 어떤 직무도 맡지 말며, 자기 재산이라도 보증서는 것이 금지되며, 자신이 직접 또는 타인을 시켜 영업이나 상행위를 할 수 없으며(31항), 그리스도인 생활과 사제 생활의 성장 요구, 거룩한 학문과 세속적 학문의 쇄신 요구, 사회 발전에 보조를 맞추어야 하는 요구가 사제들에게 생활의 모든 차원, 곧 인간적 영성적 사제적 교리적 사도적 전문적 차원 등의 끊임없는 계속 교육(32항), 늘 분망하지만, 기도와 사도적 봉사, 연구, 휴식,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을 위한 시간을 가져 사제 생활의 일치와 조화 그리고 열정을 가져,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사시는 것입니다.”(갈라 2,20)와 “만일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나에게 화가 미칠 것입니다.”(1코린 9,16)라고 고백할 수 있는 통일성을 간직하도록 요청한다(33항).



2. 한국 교회 초기 사목자 영성

이 항에서는 한국 교회 초기 사목자 영성을 한국 교회 초기 사목사제 서한과 교회 공동체 사목활동인 자선활동,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영성, 그리고 초대 조선교구장 브뤼기에르 소 주교의 영성으로 나누어 알아본다.


1) 한국 교회 초기 사목사제 서한

김대건 신부는 서울 한양에서 1845년 3월 27일 외방전교회 대표 리브와 신부에게 보낸 열 번째 서한에서, “조선에서는 어린 아기들의 대부분이 반점으로 얼굴이 흉해지는 병(즉 천연두)으로 죽어 가는데, 그 병을 퇴치할 수 있는 처방을 저에게 명확히 적어 보내 주시기를 스승님께 청합니다.”4)고 적고 있다.

최양업 신부는 “이 모든 질병이 물의 비위생 상태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믿어집니다. 그러니 물을 정화하는 방법을 아시면 분명하게 일러주시기 바랍니다.”5)고 적고 있다. 최양업 신부가 도양골에서 1850년 10월 1일 그의 마카오 신학교 시절 스승인 르그레주아 신부에게 보낸 이 일곱 번째 편지에는 최 신부가 고국에서 선교하면서 필요한 두 가지 청을 담고 있는데 그 첫 번째가 ‘공중 위생을 위한 물의 정화 방법’을 알려달라는 것이었고 두 번째가 ‘선교에 필요한 성물’ 등을 보내 달라는 청이다. 천주교 사목자인 최 신부가 선교를 하면서 스승에게 청하는 내용에서 직접 선교에 필요한 성물이나 상본 등에 앞서 일반인들의 공중 위생을 위한 물의 정화 방법을 청하는 내용은 참으로 천주교회와 교회의 선교에 대한 폭넓은 시각을 제시해주고 있다.

김대건 신부와 그는 당시 프랑스 외방선교회 선교사제들의 신학 원칙과 종교 신심에 지나치게 충실하다고들 하는 얀세니즘적인 엄격한 신학교육을 받았다. 그런데도 그들이 고국에 귀국하여 선교하면서 그들에게 신학과 사목을 가르친 스승에게 이러한 청을 한다는 것은 그들이 사회복지를 교회 선교의 구체적이고도 직접적인 한 방편이라고 교육받았거나 그들이 보아온 사목의 형태를 선교지에서도 자연스럽게 적용하고자한 것이라고 하겠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죽음을 앞둔 박해의 선교 현장 속에서도 사람들의 어려운 처지를 풀어주고 보다 나은 삶으로 나아가도록 도와주려는 노력을 교회 사목의 일차적인 선교 목표요 방법으로 삼았던 것이다. 한편 이들이 받은 교육은 정통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예수님도 제자들을 파견할 때 첫 번째로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라는 ‘교리교육’과 두 번째 그 교리가 현실로 드러나는 이른바 하느님 사랑에 응답하는 이웃사랑으로서의 ‘사회복지’ 그리고 세 번째로 그러한 사업을 계속할 ‘사도양성’을 지시하였다(마태 9,35-38 참조).6)

최신부의 이러한 사목 영성은 계속 이어진다. 그는 열성적인 교우 최경환 프란치스코에 대해 보고하는 1851년 10월 15일의 여덟 번째 편지에서 프란치스코가 몇 시간 기도하고 몇 시간 신심독서를 하는지를 말하기에 앞서 이웃사랑의 형태로서의 사회복지 활동을 언급하고 있다. “흉년이 되면 프란치스코는 주변에 사는 가난한 이들을 백방으로 도와주었습니다. 과일을 추수할 때가 되면 가장 좋은 것을 골라 이웃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습니다.”7)

그는 일반 대중의 문맹을 극복하기 위한 한글교육을 강조했으며,8) 또 교우들을 위해 ‘천주성교공과’(天主聖敎工課)와 같은 기도서와 ‘성교요리문답’(聖敎要理問答)등의 천주교 교리서를 한글로 번역하는데 주력했다. 그리고 또 서민들에게 맞는 수준에서 교리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쉬운 한글로 된 ‘천주가사’를 지어 보급했다.9) 최신부는 1859년 10월 11일에 보낸 열일곱 번째 편지에서, 1857년 8월 2일에 ‘장 주교 윤시 제우서’(張主敎輪示諸友書)라는 제목의 사목 교서에 나타난 매스트르 신부가 세운 아동복지시설 ‘영해회’에 대한 한국 내의 활동과 한국적인 상황에 대해서도 관심 있게 기술하고 있다.10) 그는 또한 선교사들이 조선에서 사목하기 위해서는 당시 조선의 언어인 한글을 익혀와야 한다는 것을 언급했다. 아울러 당시 조선의 문화와 사회제도를 설명하면서 양반제도에 대해서 신분적인 차별과 무노동 고소득이란 면에서 비판적인 이해를 가져야 한다고 일러둠으로써, 만민이 평등하고 부지런히 일해 사는 건전한 사회상을 펼치고자 하였다.11)

리델Ridel 이 주교는 옥중일기에 이렇게 적고 있다. “나는 돌아가기를 원하지 않소, 이 나라에 머물게 두시면 이 땅에서 죽을 것이오. 그 동안 자선사업을 하겠고. 예건데 병원이나 고아원 같은 것을 설치하여 빈궁한 병자들을 무료로 치료해 주며, 무의무탁한 고아들이나 내버린 아이들을 거두어 양육하여 주는 등 갖가지 박애사업에 노력하겠소.”12)

이상의 한국 초기 교회 사목자들의 서한들을 보면 당시 사목자들은 이웃사랑인 사회복지에 대한 명확한 시각과 교회 선교와 복지의 통합된 사목의 방향을 뚜렷하게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836년에 모방신부는 김대건, 최양업, 최방제 3명의 소년을 중국 마카오에 유학시켜 신학을 공부하도록 하였으며, 1855년 매스트르 신부는 충청도 제천의 배론에 신학당(현 가톨릭대학교의 시효)을 세워 한국교회의 복음선포를 위한 방인(한국인) 성직자를 배출하고자 교육하기 시작하였고, 1866년에는 서울에 일반학교를 세워 운영하기 시작하여 가난한 이들의 문맹퇴치를 위한 교육복지를 하였다.13)

영해회14)를 세운 매스트르 신부가 파리 성영회 본부에 보낸 1854년 10월 22일자 서한에서, 초기에는 3명의 여인들이 고아들에게 세례를 주고 아주 어린아이들에게 접근하기 쉬운 독실한 여교우 2명 총 5명이 자원봉사의 형식으로 돌보도록 하다가 자원봉사만으로는 늘어나는 고아들을 다 돌볼 수 없어, 유모에게 매달 8프랑씩 지불했다고 밝히고 있다.15) 1859년 11월 7일자 포교 성성에 보낸 장주교의 보고서에 따르면 미신자로서 대세를 받고 죽은 아이가 701명, 프랑스의 고아원 본부에서 보내온 경비로 양육하는 고아가 43명에 달한다. 이 사업은 1859년까지는 서울에 유모(乳母)를 둔 고아원으로 발전하였다. 그러나 천주교에 대한 1866년 병인박해로 장주교가 순교한 후 중단되었고,16) 1880년에 블랑(Jean Blanc)주교에 의해 영해회가 다시 시작되었다.17)

당시 조선교구장 베르뇌Simeon Berneux, 장경일 주교가 로마 교황청에 보낸 11월 7일자 서한을 보면, “한 중요한 도시에 세운 시약소 덕택으로 저희는 더 많은 우상 숭배자 자녀들에게 천국의 문을 열어 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시약소는 1866년 대박해로 중단되었다.18) 장 주교는 전국의 중요 도시마다 시약소를 두어 가난한 이들을 위한 사목활동을 하였다.19)

1882년 9월 조선(현 서울대)교구 6대 교구장이던 리델(Felix Ridel, 李福明, 1830-1884) 주교가 종현(현 명동) 성당 관할 인현동에 인현서당을 세웠다. 이 서당은 훗날 계성초등학교의 전신이 되었다. 1882년부터 1883년도 조선교구 통계표에 당시 종현본당 신부였던 블랑 신부가 “1882년 본당 관할에서 운영되던 학교가 하나있고 11명의 학생이 재학 중이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1883년 8월에는 인현서당을 종현으로 옮겨 종현성당 한한학원 또는 종현학원 등으로 불렸는데, 이 서당은 천주교회의 전액 부담으로 운영되면서 1886년에는 40명 가량의 학생들에게 국어와 한문 읽기, 쓰기 등을 가르쳤다. 그 후 1906년에 본당신부였던 프와넬 (Victor Poisnel, 朴道行, 1855-1925) 신부의 적극적인 재정 후원과 최봉섭의 협조를 얻어 종현학원을 개편 확장하여 비로소 신식교육기관인 계성지정보통학교로 탈바꿈하였다.20)

블랑주교는 1885년에는 7월 2일에는 종로 똥골(현 관철동)에 큰 기와집 한 채를 매입하여 양로원을 설치하여 노인복지를 시작하였다.21) 설립 당시 “남녀 노인들의 수는 20여명에 달하며, 현재 입원 신청자의 수도 상당합니다.[...] 그러나 동냥으로 연명하거나, 외교인 집에 살면서 죽을 위험에 있어도 성사마저 받을 수 없는 불쌍한 노인들의 사정은 얼마나 딱한지요!”22) 1886년 블랑주교가 파리외방전교회 본부에 보낸 보고서에는 “양로원은 계속해서 교우들과 외교인들로 꽉 차 있습니다.[...] 상황에 따라서 이 양로원 사업에 다른 목적을 첨가할 필요가 생겼습니다. 즉, 이 양로원은 시약소를 겸하게 되었습니다. 젊을지라도 중한 환자이면 이 시약소에 입원시켜 치료해 주고 있는데<하략>” 라고 썼다.23) 이를 보면 양로원은 노인들과 오갈 데 없는 환자들을 위한 시약소도 겸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1892년 블랑 주교의 후임인 뮈텔 주교의 일기 1892년 1월 31일자와 6월 2일자, 18일자, 19일자에는 양로원에서 미사를 드리고, 성체강복과 종부성사를 주었고, 식사를 했다는 내용이 쓰여있는 것으로 보아 이 양로원은 꽤 오래 지속된 것으로 보인다.24)


2) 교회 공동체 사목활동인 자선활동

교회 공동체 사목활동인 이웃사랑의 자선활동이라는 면에서 살펴보자면, 달레는 한국 초기 교회의 “교우들이 재산을 몰수당하고, 박해를 피해 이 산 저 산으로 숨어 다니면서도 굶어죽는 일이 없었다.”고 전하고 있다. 이는 이들이 교우촌을 이루어 식사 때마다 얼마 안되는 음식도 나누어 먹었으며, 또 식사를 준비할 때마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 그 끼니에 먹을 쌀의 양에서 한줌의 쌀을 꺼내어 별도로 저장했기 때문이라고 했다.25) 이를 “좀도리 쌀” 혹은 “줌쌀”이라고도 하고,26) 이는 현재 천주교회의 모든 자선 헌금과 헌미 운동의 근간을 이루는 행동 정신이다. 이들은 박해 속에서 사람들의 밀고로 재산을 몰수당하고 심한 경우에는 교우촌 전체가 불에 타서, 다른 교우촌으로 도망을 다녀야 했고, 또 전염병에 시달려야 했다. 형편이 좀 나은 교우들은 이들을 한 식구로 받아들여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하였다. 특히 체포된 교우들의 석방을 위해 모금을 하고 사식을 넣어 주었으며, 순교한 이들의 가족 중에 과부, 홀아비, 노인, 고아가 된 이들이 생기면 격려하는 등 박애정신은 물론 가톨릭 교회의 기본 원리인 사랑을 실천하여 두터운 공동체적 연대를 보여주었다.27)

그리스도교 신앙을 가지기 시작함으로써 신자들 중에는 천주교회의 사목활동으로 이웃사랑이라는 형태의 사회복지를 실현하게 되었다. 박해시대의 신도들은 스스로 가난하였지만 굶주리고 헐벗고 병든 이를 보살폈으며, 감옥에 있는 이를 돌보고 죽은 자를 묻어 주었다. 그들은 자선행위가 ‘사랑의 의무’인 동시에 ‘정의의 의무’를 실현한 것임을 알 수 있다.28)

홍유한은 “하루는 그가 말을 타고 질퍽한 길을 가다가 무거운 짐을 진 한 노인을 보았다. 동정심이 일어, 말에서 내려 자기 대신 그를 말에 태우고 자기는 걸으면서 그를 인도하였다.” 이 모습은 당시 신분사회의 엄격한 구분 아래에서도 신분의 차이를 넘어 사회의 금기를 깨면서까지 어려운 처지에 놓인 노인을 돌보는 애덕을 실천한 행위이다. 또 “자기가 판 밭이 방금 산사태로 인하여 없어졌다는 말을 듣고 그 값을 산 사람에게 보내어 그 사람이 사양함에도 불구하고 억지로 받게 하였다.”29)고 나타나 있다. 원베드로는 가난한 이들에게 자기 재산을 나누어주어 그들을 구해주었고,30) 박취득(라우렌시오)은 형조의 심문에 “제4계는 부모와 어른과 임금과 관장을 공경하고 형제와 이웃을 사랑하라고 우리에게 명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인륜이 아니겠습니까? [...] 얼마 안 되는 제 재산을 헐벗고 곤궁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도우기 위해 쓰고 있으니, 그것은 재산을 쓸데없이 낭비하는 것이 아닙니다.”31)라고 응대함으로써 교회의 이웃사랑의 정신을 실현했다고 본다. 그뿐 아니라 강완숙(골롬바)는 “비상한 정력과 활동력을 타고났고 하늘의 특별한 은총의 도움을 받아 모든 자선사업을 고무하고 지도하였다.”32)고 기술함으로써 그가 이미 그 형태와 내용이 명확치는 않지만 어떤 자선사업을 지속적이고도 체계적으로 운영하거나 최소한 직접적으로 관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33)

김시우(알렉스)는 오른쪽 몸이 반신불수였으나 너무 가난하여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신자들의 애긍시사로 연명할 수 있었고,34) 김명숙 부자는 애긍시사를 많이 하여 갖가지 자선행위를 하였다.35) 김종한(안드레아)는 경상도 안동고을 우련밭이라는 산골 깊숙한 속에 숨어살면서 오로지 애긍시사에만 힘쓰다 1815년에 체포되었다.36) 그는 자선의 실천을 강조하면서 “애덕이 있으면 우리가 무엇인들 못하겠습니까? 하느님께서도 애덕을 위해 이 세상을 세우셨습니다. 만일 서로 사랑하는 마음이 없어진다면 이 세상이 어떻게 보존되겠습니까?”라고 말할 수 있었다.37) 그는 자선이 애덕의 실천이며 세상을 만드신 하느님의 뜻 안에 있다고 생각했다. 1839년 순교한 조신철(가를로)는 동지사로 북경에 가서 세례를 받고 온 후, 애긍시사로 신입교우들을 도움으로써 모범이 되었고, 박사의는 부조를 자기보다 더 가난한 신자들에게 희사하였다.38)

신자들이 자선을 베풀었던 대상은 일차적으로 동료 신자들이었다. 그러나 불우한 이웃을 돌보는 데는 제한을 두지 않았으며, 심지어는 자신을 박해하고 밀고했던 사람들까지 도와줌으로써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마태 5,44) 하신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실천해 나갔다. 죽음의 위협 앞에서 신앙을 버리고 배교하면서 신자들을 밀고했던 배교자 전지수가 잘못을 저질러 자신이 고발했던 신자들이 수감되어 있는 감옥에 투옥 당하는 신세가 되었을 때, 그가 고발하여 옥에 갇혀 있던 신자들이 매일 매일 그들의 얼마 안 되는 배급을 나누어주어 그의 목숨을 건져주었고, 그가 석방되어 거의 알몸으로 나갈 때도 신자들은 그가 옷을 가릴 옷을 주어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모습을 증거 하였다.39)

1839년에 순교한 최경환(프란치스코)은 자선을 하느님에 대한 신앙과 결부하여 인식하고 실천했다.40) “하느님이신 스승의 영광을 위한 그분의 열정은 이웃에 대한 정다운 애정과 결부되어 있었다.”고 기록되었다.41) 또 그는 “장을 보러갈 때는 그중 나쁜 것을 골라서 사며 그것을 비난하는 자들에게는 ‘찌꺼기를 사는 사람이 없으면 이 불쌍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소’하고 대답했다.”42) 1839년에 순교한 최해성(요한)은 “몹시 가난하게 살며, 재산이 보잘 것 없는데도 자기보다 더 가난한 사람들에게 애긍하는 것을 결코 있지 않았습니다.”라고 했다.43) 그의 이 모습은 자신이 가진 것 중에서 남은 부분을 희사한 것이 아니라, 불우한 이웃을 위해 자신에게 필수적으로 요청되는 것까지도 희생하고 나누는 것이 자선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들의 나눔은 ‘다른 사람들은 다 넉넉한 데서 얼마씩 넣었지만, 구차하면서도 있는 것을 다 털어 넣어 생활비를 모두 바친 과부의 동전’(마르 12,44 참조)과도 같다.44) 그리고 자신의 하나뿐인 목숨을 바쳐 사람들을 구하신 주님의 뒤를 따라 자기의 모든 것을 불우한 이웃을 위해 희생하려는 구원을 위한 희생제사를 자신들의 몸으로 산 것이다.

이문우(요한)은 1839년 박해 때 모금운동을 벌여 갇힌 사람들에게 전달했다.45)) 민극기(스테파노)는 교우들을 찾아다니며 가르치고 자선사업에 힘써 선교사들이 그의 열성과 박애심을 높이사 그를 회장으로 임명하기까지 하였다.46) 김옥현은 대야불에 살았는데 그가 기르다 죽은 영애와 걸아들을 달성 넘어 말무덤에 손수 이장했는데 그 수가 60여명이었고 기미년 흉년에는 배고파 쓰러지는 노파들을 자택으로 업어다가 수용 구호한 수가 수십 명에 달했다.47) 서상돈은 사람을 대할 때 빈부귀천의 차별을 두지 않고 그의 사랑채에는 식객이 항상 십여명씩 있었고 주일에는 수십 명씩 있었는데 이들에게 용돈까지 주어가며 환대했다. 또 매년 춘추로 빈민들에게 양곡 수백 석씩을 희사하여 가난한 이들의 아버지가 되었다.48)

이상의 모습은 한국천주교회사 초창기에 간행된 서적들을 통하여 교회 사목활동에 있어서 자선을 애덕의 중요한 부분으로 제시한 결과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성기략」이라는 양심성찰에 관한 책에서는 애덕과 관련하여 자선을 설명하면서 자선을 실천하지 않는 행위를 경계하고 있다.49) 또한 초기 신자들의 가성직제도에서 이미 드러났듯이, 천주교 사목 사제의 고해성사를 통해 죄의 사함에 이어 잠벌을 없애주는 보속의 형태로 의무적으로 주어졌고, 한편 가난한 이들에게 대한 자선행위를 교회 신자생활의 권장행위로 사목한 결과임을 알 수 있다.

이상의 한국 천주교 초기 교회 사목사제들의 서한들과 교회 공동체 사목활동인 자선활동에서 들어난 사목영성은 ① 신자뿐만 아니라 만민에게 베풀어지는 구원영성이며, ② 교리교육을 통한 복음선포와 자선활동을 통한 이웃사랑 그리고 신학생들과 평신도 지도자들을 양성하고자 했던 사도양성인 통합영성이며, ③ 사회복지라는 이웃사랑을 전면으로 내세운 선교영성이라 볼 수 있다.


3)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영성

서봉세는 「초대 한국 교회 안에 나타난 사목자의 직무와 영성」에서, 파리외방전교회에 입회하는 학생들은 이미 교구 신학생들이었다고 밝힌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묵상하고, 전례력을 잘 지키고, 성무일도를 잘 바치며, 예수님과 성모 성심에 대한 깊은 신심을 가졌다.50) 하지만 이들에게는 선교지방에 대한 정보와 열정이 있었는데, 그것은 월 2회 아프리카나 아시아에서 활동하던 선교사들의 기사를 실어 각 나라의 선교 상황과 그 나라 문화와 역사를 다룬 선교 잡지인 「포교사업후원회 기관지(Les Annales de la Propagation de la Foi)」와 성영회였다. 성영회는 유럽 어린이들이 먼 나라의 어려운 어린이들을 돕기 위한 어린이 상대의 모금이었는데, 이 모금에 동참한 어린이들은 사제성소보다 먼저 성영회를 통해 선교성소를 꿈꾸게 되었다. 브뤼기에르 주교는 “내가 한국 교회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들은 것은 어렸을 때이다. 불쌍한 신자들의 비참한 상황이 그들에게 갈 깊은 갈망을 내 안에 불러일으켰다.”고 썼다.51)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제들에게는 여행 자체가 대단한 영적 체험이었다. 떠나긴 떠나는데 선교지에 도착한다는 보장이 없었고, 심지어는 입국이나 밀입국 자체가 목숨을 걸고 해결해야 할 과제였다. 죽음에 대해 얼마나 자주 묵상했겠는가. 입국을 해도 그들은 선교지에 숨어 살며 말을 그럭저럭 배우고 병이나 순교로 죽을 때까지 직무를 수행했다. 이들이 선교지역에서 살며 선교의 열정을 계속 불태우고 선교를 계속해 나갈 수 있었던 것은 충실한 기도이다. 그리고 1년에 한 번 선교사들끼리 만나는 것, 1년에 한 번 유럽에서 오는 편지 뿐이었다.52)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제들의 길잡이는 포교성성이 1659년에 대목구장들을 처음 파견할 때 작성한 「Instructiones ad vicarios apostolicos」와 파리외방전교회 주 창성자인 팔루Pallu 주교가 태국에 와서 1665년 작성한 「Monita ad missionarios apostolicos」라는 지침서이다. 이것이 선교사제들의 선교 생활의 영성적 원천이 되었다. 그 후 태국에서 선교하던 라네아우Laneau 주교가 1887년 쓴 「De deificatione justorum per Christum」가 있다.53)

브뤼기에르 소B. Bruguiere 蘇(1792-1835) 주교를 비롯하여 처음 한국에 들어와 선교활동을 한 성직자들의 모습은 ① 근본적으로, 인류의 상황을 보고 선교의 절대적 필요성을 깨닫고, ② 세상 끝가지 안가도 선교가 아닌 것은 다 제쳐놓고 선교를 위한 생각과 행동으로 자기를 온전히 바치고, ③ 주님의 십자가의 신비까지 자기 것으로 받아들여 정해진 자리에서 그리스도의 모습을 나타내고, ④ 이를 위해 기도로 그리스도와 하나 되도록 사는 사람들이었다.54)


4) 초대 조선교구장 브뤼기에르 소 주교의 영성

브뤼기에르 소 주교는 1827-1829년 로마 교황청과 파리외방전교회에서 조선 선교 문제를 거론하였을 때 자원하여, 1831년 9월 9일 조선교구 설정과 함게 초대 조선교구장으로 임명되어, 1832년 8월 4일 말레이시아 반도 서해안 페낭 섬에서 출범하여 싱가포르→마닐라→마타오→복건→남경→직예→산서→서만자를 거쳐, 마침내 내몽고 마가자에 이르러 자신의 교구인 조선입국을 모색하다가 1835년 10월 20일 이역만리에서 객사하셨다.55)

브뤼기에르 주교는 “내가 누구를 보낼까?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가리오?”라는 주님의 말씀에 “제가 있지 않습니까? 저를 보내십시오.”(이사 6,8)라고 자원했던 이사야 예언자의 말처럼 하느님의 일을 하는데 기꺼이 자원했다. 그는 파리외방전교회가 선교기금이 없고, 선교사가 없고, 다른 포교지에도 급한 일이 많고, 조선을 뚫고 들어가기가 힘들며, 너무 많은 일을 하면 하나도 제대로 못한다는 다섯가지 이유 때문에 조선교구 선교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히자, 1829년 5월 19일 피리외방전교회 본부 지도신부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 이를 조목조목 반박하며 조선교구 선교의 필요성을 밝히며 자신의 자원을 표명했다. 그는 ① 선교기금이 없다는 이유에 대해, 하느님의 전능이 작아지지도 우리의 신덕과 망덕이 줄어들지도 않았으니, 하느님께 새로운 재원을 마련해주실 것을 믿고 선교에 나서야 한다고 했고, ② 선교사가 없다는 이유에 대해, 과거에 비해 지금 더 많은 선교 지망사제들이 나오고 있고, 위험한 포교지에서 봉착하게 될 가지가지의 어려움은 프랑스인들의 열성을 자극하고 그들에게 새로운 용기를 불어넣어주는 구실을 할 것이기에 지원자 한 사람을 구하면 열명이 올 것이라고 했으며, ③ 다른 포교지에도 급한 일이 많아서 안된다는 이유에 대해, 자기 자식을 먹일 빵을 조금 떼어 겨우 숨을 쉬는 불쌍한 나그네를 도와주는 것을 의무로 여기듯이, 신부 한 두 명쯤 뺀다고 커다란 공백이 생기지 않는다고 반박했고, ④ 그 나라를 뚫고 들어가기가 힘들다는 이유에 대해, 세속의 자식들이 자기 이해관계를 위해서는 물불을 안 가리는데 광명의 자식들이 하느님의 영광과 사람의 구령사정에 겁을 내고 소극적이어야 할 이유가 없으며, 1800년 중국인 주문모 신부는 조선에 들어가 순교까지 했는데, 서양 신부들은 아무도 못갈 정도로 겁이 많으냐고 반박했고, ⑤ 너무 많은 일을 하면 하나도 제대로 못한다는 이유에 대해, 불행한 조선 사람들을 위해 자기가 일하는 방콕 주교님께서 신부하나 기꺼이 내놓을 것이며 이미 허락했다며, 방콕의 보좌주교로 임명 될 자기를 보내달라고 허락을 청한다.56)

정양모의 브뤼기에르 주교의 영성 네가지 중에 ‘예수님처럼 하느님 신심으로 살다’와 ‘예수님처럼 죽음조차 감수하다’ 그리고 ‘예수님처럼 앞날을 준비하다’ 세가지를 살펴본다.57)


① 예수님처럼 하느님 신심으로 살다

예수님은 보물의 비유와 진주 장사꾼의 비유(마태 13,44 참조)를 통해 모든 것을 버리고 하느님을 알리고 체현하는 일에 헌신하신다는 것을 가르치셨다. 소명에 충실하다 보면 으레 고난과 희생이 따르는 것처럼 브뤼기에르 주교는 선교사로서 선교의 첫걸음을 떼면서부터 고난과 희생을 겪어야 했다. 브뤼기에르 주교는 1833년 8월 13일 황하를 건너고, 8월 17일 배를 타고 다른 강을 건널 때의 참상을 다음과 같이 적었다. 인용문이 다소 길지만, 오늘 우리의 처지에서 주교님의 노고를 되돌아본다는 면에서 의미있다고 하겠다.


“언제나 그랬듯이 아침나절 내내 물과 진흙 속을 걷고 나자 우리는 걸어서는 건널 수 없는 강물을 만났습니다. 배를 타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내가 거느리는 사람들은 점심을 먹었으나, 나는 굶어야 했습니다. 시장에 도대체 성한음식이라고는 없었던 것입니다. 어쨌건 바로 이것이 내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청했을 때 그들이 내세웠던 핑계입니다.

우리가 냇물로 들어섰을 때 나는 보통 때보다 훨씬 심하게 열이 오르는 고통을 겪었습니다. 불타는 갈증 때문에 매우 괴로웠습니다. 내 입술이 아래위로 어떻게나 꽉 달라붙었던지 손으로 떼어내야만 입이 벌어질 지경이었습니다. 나는 물을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내게 물을 줄 수 있거나 주려고 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우리가 강 복판에 있었는데도 말이지요. 그런데 나는 내가 누워 있던 나무판때기 아래로 손을 슬며시 집어넣었다가 뱃바닥에 물이 스며든 것을 알아냈습니다. 나는 이런 발견을 했다는 것이 몹시 기뻤습니다. 나는 자꾸 손가락을 물에 적셨다가 그것으로 혀와 입술을 축였습니다. 그때 나는 사악한 부자를 떠올렸고(루카 16,19-31 참조), 그의 처지보다는 내처지가 훨씬 나은 것으로 여겼습니다. 나는 숯불 위에 누워 있지도 않았고, 내목을축일 만한물이 여러 방울 있었으나, 그 사악한 부자에게는 이런 조그마한 위안도 영원토록 제공될 바 없으니 말입니다.

배에서 내릴 때 안내자들은 둔치까지 나를 안아서 내려놓았습니다. 나는 임종에 처한 해소병자처럼 숨을 헐떡였습니다. 숨이 어찌나 확 막히던지 약 20분 동안은 꼭 마지막 숨을 거두게 되는 줄 알았습니다. 나는 발작하는 사람처럼 먼지 속에서 뒹굴었습리다. 이런 특이한 광경과 괴상한 옷차림 때문에 내주위로 중국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습니다. 더럭 겁이 난 내 안내자들은 부랴부랴 나를 옮겨 놓았습니다. 나는 어떤 초막의 그늘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바람이 잘 통하는 데에서 공기를 마시게 한답시고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밭 가운데로 나를 보냈습니다. 이 장면을 완벽하게 연출하기 위해 안내자 하나가 내 얼굴에 중국 모자를 얹어 놓았습니다. 하지만 이 모자 때문에 바깥 공기가 조금도 통하지 않게되어 하마터면 그나마 붙어 있던 미약한 숨길마저 아주 끊어질 뻔하였습니다. 드디어 선하신 하느님께서는 차를 좀 구해 올 수 있도록 허락하셨습니다. 나는 거의 데일 정도로 뜨거운 차를 여러 잔 들이마셨습니다. 차를 마시니 숨은돌리게 되었지만, 그래도 기운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나는 '힘내자, 오늘은 죽지 말아야지' 하고 스스로 다짐하였습니다”58)


주교가 서만자(지금의 하북성 장가구시 송례구 서만자진)에서 마가자(지금의 내몽고 적봉시 송산구 동산항)로 떠나가 열흘 전인 1835년 9월 28일자로 프랑스 에르 교구 총대리 부스케 신부에게 써 보낸 통신 제13신에서 그의 하느님 신심이 잘 드러난다.


“신부님은 이렇게 대충 보고한 내용을 보시고, 제가 처한 상황이 인간적으로 말해서 좋지 않다는 것을 파악하셨겠지요. 그러나 저는 제 선교 임무가 하느님께로부터 나왔고 바로 교황 성하께서 저를 직접 파견하셨다는 것을 확신하는 까닭에 오직 하느님만 믿습니다. 저는 강제로 도중에서 도리 없이 체포되기 전까지는 제가 가야 하는 땅(조선)을 향해 하느님 섭리의 품에 몸을 묻고머리를 숙이며 위험을헤쳐 나갈 것입니다”59)


② 예수님처럼 죽음조차 감수하다

예수님께서는 죽음을 앞두고, “아빠!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무엇이든 하실 수 있으시니,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가 원하는 것을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것을 하십시오.”(마르 14,36)라고 기도하면서 결코 죽고 싶지는 않지만 그래도 아버지의 뜻이라면 기꺼이 그 뜻을 따르겠다고 애원했다. 브뤼기에르 주교는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이 아니라, “시련과 고통의 강물이 흐르는 약속의 땅 조선으로 들어가기를” 간절히 청한다.60) 그러나 1835년 7월 28일자 서만자에서 마카오 주재 파리외방전교회 경리부장 르그레즈와 신부에게 보낸 편지, “제 다리가 부었다가 가라앉았다가 하는 일이 매우 자주 일어납니다. 특히 습한 날시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제가 수종증에 걸려 있거나 아니면 걸리게 될 것이라고들 합니다.”61)에서 보듯이 이미 그는 중병을 앓고 있었다. 서만자를 떠나기 전날 1835년 10월 6일 다시 보낸 편지에는 “저는 동상에 걸여 있습니다. 이 지방(내몽고)은 오래 전부터 날씨가 공꽁 얼어붙어 있습니다.”62)라는 표현이 나온다. 전에 산서 보좌 주교 알폰소 데 도나토에게 쓴 편지에서 “나는 외지인 달단(내몽고)에서 죽을 것입니다.”63)라고 당신의 죽음을 에감하며 밝혔듯이, 수종증에다 동상을 앓는 몸으로 10월 7-19일까지 내몽고의 겨울철에 13일 동안 여행을 강행했던 그는 10월 20일 저녁 그렇게도 그리고 열망하던 선교지 조선입국을 앞두고 순직하고 만다.64) 그러나 그가 1829년 5월 19일 피리외방전교회 본부 지도신부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언급했듯이 “지원자 한 사람을 구하면 열명이 올 것이라.”는 예언같은 말처럼 많은 파리외방전교회 신부들이 조선선교를 자원하여 줄을 잇게 되었다.


③ 예수님처럼 앞날을 준비하다

예수님은 당신의 사명을 이어나갈 12명의 제자를 뽑아 사도로 임명하셨고, 그들에게 온 세상 끝까지 가서 복음을 선포하도록 명하셨고 사도들은 이를 따랐다. 브뤼기에르 주교는 당신이 죽더라도 조선 선교는 지속되어야겠기에, 파리외방전교회가 조선 대목구를 맡아줄 것을 끈질기게 주창했다. 주교의 노력으로 마침내 1833년 파리 외방전교회가 조선 대목구를 떠맡았다. 그 결과 1835년 10월 20일 브뤼기에르 주교가 내몽고 마가자에서 순직한 다음에 모방 신부 · 샤스탕 신부 · 앵베르 주교가 속속 조선에 들어와서 전도했고, 그들이 1839년 9월 21일 한강 백사장에서 처형된 다음에도 파리 외방전교회 회원들이 계속해저 조전 교회를 돌보았다. 프랑스 남부 마리냔 출신으로서 중국사천 대목구에서 신학교를 운영하다가 조선 전도를 자원한 제2대 조선 대목구장 앵베르 주교는 그 인품과 학식과 영성이 빼어났다.65) 그는 1837년 12월 18일 조선에 밀입국하여 3년도 못 채우고 1839년 9월 21일에 순교했지만 그 짧은 기간에 이룩한 업적은 실로 눈부시다.66) 요즘 마르세유 국제공항이 있는 마리냔 한촌에는 앵베르 성인 주교 기념 신축 성당(1992년 완공)이 있고, 중년의 본당 신부 티에리 데스트르망이 성인 주교에 대한 신심을 가꾸고 있다.67) 국내에서는 천주교 서울대교구 개포동 성당 현양위원회의 노력으로 2005년 8월 서울대교구 총대리 염수정 주교가 마가자를 순례하여 현양비 축복식을 거행하였고, 2006년 5월 염주교의 마가자에 모셔있는 원묘비 축복식을 거행했으며, 9월 13일에는 브뤼기에르 소 주교 현양 감사 미사를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추기경의 주례로 거행했다.68)



3. 교구 사목사제의 영성

데니스 에드워즈는 「친교의 인격적 표지인 사제」에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에 사제들에게 가장 영향을 끼쳤던 영성이 ‘제2의 그리스도’(alter Christus) 영성이었다고 밝힌다. 이 영성은 모든 면에서 사제가 중심이 되는 기본적인 교회 신학과 관련되어 있었다. 신학적으로, 교회법적으로 그리고 실천적으로까지 성품성사를 받은 교역자의 사명은 교회의 사명과 동일시되었다. 그러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맞으면서 그리스도의 빛을 세상에 드러내는 것은 사제만이 아니라 세례 받은 모든 사람의 공동체이다. 세상을 위한 그리스도의 얼굴, 구원의 성사는 성품 받은 교역자가 아니라 전체 공동체이다. 교회 그 자체가 그리스도의 성사인 것이다.69) 이 항에서는 교구 사목사제의 영성을 교구 사제 영성의 모델과 공동체 영성 그리고 관계성과 친교의 사제영성으로 나누어 알아본다.


1) 교구 사제 영성의 모델

케네스 E. 은터너는 「교구 사제 영성의 모델」에서, 오랫동안 수도생활이 그리스도인 성덕의 가장 충만한 표현으로 간주되어 왔다고 전언한다. 그런데 이모델은 세상에 사는 평신도들에게나 교구 사제들에게는 맞지 않았다. 모든 영성의 문제는 그 출발점이 어떤 특정한 영성 모델이 아니라 하느님과 사람의 관계에 있다. 그동안 적절치 않게, 교구 사제들은 스스로 부족하다고 생각하게 할 수도 있는 영성모델로 판단되었고, 평신도들 역시 그들을 이류로 만들 수도 있는 영성모델로 판단되어 왔던 것이다.70)

초기 교회에는 오직 하나의 동일한 교회적 영성을 실천했다. 그러나 수도회가 설립되면서 수도 공동체들은 기도를 중심으로 일을 조정하고 기도를 가장 우선시했다. 이에 반하여 사목활동을 하는 사제들은 기도의 횟수와 장소를 사목활동의 요구에 부합하도록 할 필요가 있음을 깨달았다. 또한 수도회들은 하느님과의 직접적인 관계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결정한다는 것을 알았기에 하루의 특정한 시간 동안에 또는 하루 대부분 침묵을 했다. 이에 반하여 오늘날 교구 사제 생활은 대부분 바쁘고 번잡하다. 심지어 식사시간조차 불규칙적이 되기 쉽다. 따라서 그들은 이제 규칙적인 스케줄, 곧 규칙적인 기도시간, 규칙적인 영성생활을 제대로 실천할 수 없다. 그리고 그러한 생활은 오히려 나는 기도를 잘 하지 못하고 있다는 잘못된 평가를 가져온다.71)

온터너는 평신도 영성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별도의 새로운 영성이 아니라 본래 그리스도교의 본래적 영성이라고 말한다. 공동체의 영성. 신약성경이 말하는 근본적인 영성에 해당하는 것이다. 평신도는 교회 영성의 모든 풍요함에 접근할 수 있다. 수도회적 영성이 등장하기 이전에 그리스도인의 영성은 교회적인 것이었다. 그것은 예수님의 제자됨에 토대를 두고 있었고, 말씀이 선포되고 성체성사가 베풀어지는 공동체 안에 단단히 뿌리를 박고 있었다.

교구 사제의 영성 역시 교회적 영성이고 본래적 영성이다. 교구 사제는 교회 공동체 안에서 지도자, 전례 집전자, 사목자로서의 특수한 전망 안에서 이 영성을 살아낸다. 사제를 위한 교회적 영성은 그가 들은 복음을 가르치고, 그 역시 사목자로서 이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성체성사를 집전하는 것을 포함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느님과의 관계이다. 하느님과의 대화가 일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면 다양한 방법을 통해 반복적으로 하느님과의 대화로 되돌아갈 것이다. 교구 사제가 자기 하루의 중심에 하느님을 만나는 기도를 놓게 되면, 하느님과의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그리고 기회를 마련하여 피정을 통해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를 더욱 깊게 하고, 우리의 삶과 직무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이 무엇인지를 더 진지하게 대화할 수 있다. 바쁜 삶에 기도라는 하나의 직무를 덧붙이기보다, 이미 우리 삶에 존재하는 강론준비, 미사, 본당 신자들을 위한 봉사, 성사집행 등을 받아들여 이를 기도라는 계속적인 대화로 이어가는 것이 좋겠다. 그러면 기도시간이 하느님과 함게하는 좋은 대화의 시간이 될 수 있다. 이것이 우리 영성의 핵심을 가장 잘 실천하는 것이다.

그는 영성이 기도 이상이며, 현실의 비전이고 세계관이며 사물을 보는 방식이라고 밝힌다. 영성은 머릿 속의 개념이 아니라, 삶의 행위 안에 있다. 하느님 뿐만아니라 세상, 타인, 나 자신을 향한 신념과 이상 그리고 행동을 포함한다. 영성은 초월에 대한 나의개방성, 사람과 세계와 하느님을 향한 기꺼움, 나의 변화를 포함한다. 교구 사제들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직으로서, 자신들의 삶의 환경양식에 걸맞는 교회적인 영성을 건설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72)


2) 공동체 영성

로버트 M. 슈바르츠는 「교구 사제의 영성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에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사제들이 신앙 공동체의 사목지도자라고 언명했다고 말한다. 성품성사를 통해 교회는 공동체의 중추가 되는 사목자들을 임명하고 그들에게 권한을 부여한다. 공동체와의 관계는 사제의 신원과 영성에서 핵심적인 요소이다. 참된 사제 영성은 공동체 안에서의 역학을 위해 자신을 포기하여 봉사하고, 자신이 봉사하는 사람들로 말미암아 풍요로워지고 활력을 얻도록 스스로를 개방하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는 교회에서 성품성사를 받았지만, 내용적으로는 산살바도르 민중이 로메로가 주교직을 수행하도록 했고, 로메로는 그들을 하느님의 백성이 되게 하였다. 로메로는 자신이 죽음을 당한다면 산살바도르 민중 안에서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로메로는 수품을 통해 그리고 백성의 신뢰에 의해 목자가 되었다. 그는 착한 목자의 성사적 현존이지만, 그의 목자로서 역할은 공동체 전체의 세례 은총을 촉진시켰을 때 유효해질 수 있었다. 공동체의 목자인 사제는 자신의 교역을 통해 탁월한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현존하게 할 뿐 아니라 목자이신 그리스도의 모습을 대신함으로써 전체 공동체를 변화시키고 지원하며 권한을 부여한다.73)

오천명을 먹이신 기적에서 예수님께서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루카 9,13)고 말씀하시자, 제자들은 음식을 줄 방법이 없어 어쩔 줄 몰라 당혹해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목자 임무를 대신하지 않으셨고, 또한 그들만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어떤 일을 하도록 내버려두지도 않으셨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능력을 주셨고, 그들과 함께 그들을 통해서 기적을 행하셨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께서 목자들이 흔히 갖게되는, 평신도의 목자 임무를 대신하려는 유혹과 경험과 기술, 자원 등 그 어느 것도 소유하지 못한 공동체를 그대로 방치하는 유혹 두가지를 떨쳐내 보이셨다고 말한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협력하여 군중들의 배고픔을 해결하셨다. 이런 상호성은 제자들이 교회 안에서 목자로서 적절한 자기 자리를 찾는데 도움을 주었다.

사목자는 공동체에 힘을 불어넣기 위해 존재한다. 사목자로서 사제는 자신이 표현하는 하느님 모습 안에서 스스로 변화를 경험한다. 이것이 사제가 거룩해지는 방법이다. 전체 공동체에 주어진 선물을 활성화하면서, 사제 역시 목자적인 교회로부터 사랑받고 보살핌을 받으며 지원받고 있음을 경험한다. 지도자는 종종 힘든 중압감과 외로운 책임감에 놓일 수 있다. 사목자는 십자가를 짊어지고 인기 없는 입장을 취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사제는 공동체 안에서 자기 자리를 차지해야할 뿐만 아니라 공동체와 맞서기도 해야 한다. 그럼에도 사목자는 공동체에 봉사하고 그들을 인도하기 위해서 존재하고, 동시에 사제는 교회의 보살핌 안에서 하느님과 자신의 사제 생활에 대한 후원을 발견한다고 말한다.74)

이미 앞에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사제의 생활과 직무에 관한 교령」을 통해 바라본 바와 같이, 사제의 첫 번째 의무는 모든 사람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이다. 공의회 이후에 나온 전례서와 예식서에는 말씀의 선포와 강론을 각 성사 거행에 맞추어 결합시켰다. 슈바르츠는 사제가 성경에 흠뻑 젖어야 하고, 교회는 사제의 강론 안에서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통찰을 얻기를 갈망한다고 한다. 사제는 하느님과 동시에 평신도들이 처한 상황과 그들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것들에 대해 충분히 알아 세상과 하느님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해야 하며, 복음의 능력을 통한 공동체의 변화와 자신의 예언자적 임무와 사명에 대한 공동체의 자각을 목적으로 가르쳐 일상적인 현실 한가운데서 하느님을 만나고 섬겨야 한다. 사제의 영성은 하느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기도하고 내면화하여, 기도의 결실이자 교회 체험의 증언으로 강론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75)

사제의 성찬례 영성에 대한 적절한 이해는 세상을 향한 예수님의 사명과 교회의 변화 안에서 성찬례의 역할에 그 바탕을 둔다고 한다. 그래서 성찬례는 단지 주어진 선물이나 흠숭을 받는 현존만이 아니라 우리의 삶에 탁월하게 힘을 불어넣는다. 성찬례를 통한 그리스도의 현존과 성품성사를 받은 사제를 통한 그리스도의 현존 그리고 세례 받은 신자들의 사제적 공동체를 통한 그리스도의 현존을 서로 관련을 맺고 불가분한 실재를 이루는데, 본당 신부로서 하느님께 이르는 가장 중요한 길은 교회 안에 있는 그리스도 현존의 이 상호 관련된 차원을 살아내는 것이라고 전한다. 사제는 세상 안에서 하느님의 구원하시는 사랑의 표지이다. 사제직은 기능과 역할이 아니라 존재로서의 성사적 현존이다. 사제는 오늘날 자신의 타고난 재능과 성품을 받음으로써 이루어지는 표지가 되고, 어떤 것도 다룰 수 있는 비전과 확신, 용기를 지닌 지도자, 경청하는 사람, 일치시키는 사람,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사제는 오늘날 착한목자가 되는 길에서 만나는 문제들을 다루면서 거룩해진다. 착한 목자가 되는 길은 긴 회개의 과정이다.

수도사제들과는 달리 교구 사목 사제들은 사제가 되도록 평신도 중에서 선발되었고, 평신도 속에서 지속적으로 살아가고, 남녀 평신도 공동체를 지도하고, 평신도의 사명과 영성에 교역의 초점을 맞추도록 선택되었다. 수도자와 수도공동체들이 세상을 순례하는 교구 사제들과 평신도들에게 필요한 종말론적 전망과 귀중한 통찰력, 필요한 지원을 제공하며, 평신도와 교구사제들은 세상 속에 빠지지 않으면서도 세상 안에 머물며 일상의 불가예측성과 하느님을 멀리하도록 하는 세상의 무질서와 혼란 한 가운데서 하느님을 찾게 되며 그 과정에서 평신도와 사목자는 서로를 이해하고 함께 성덕의 길로 걸어 나간다.76)


3) 관계성과 친교의 사제영성

슈바르츠는 이제 삼위일체 신비를 캐는 일에서 동방교회처럼 삼위일체의 신비를 모범으로 삼아 사랑의 친교와 일치를 살아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삼위일체 하느님께서 동등한 세 위격으로서 서로 구별되지만 상호 관련된 방식 안에서 하나의 구원 사명을 공유하는 사랑의 친교인 것처럼, 교회 또한 다양하지만 상호 관련된 방식으로 같은 사명에 참여하는 동등한 인격체들의 친교이다.77)

예수님께서는 “그날, 너희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또 너희가 내 안에 있으며 내가 너희 안에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요한 14,20)라고 말씀하심으로써 관계적인 모습으로 하느님을 보도록 했고,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요한 14,23)라고 하심으로써 예수님과 성부 사이의 상호 관계는 인간 존재를 포옹하는 것에 이른다. 그리고 예수님과 성부 사이의 관계가 내적인 하느님의 세계로 고립되는 것이 아니라, 제자들의 공동체 안에 내재하는 것이며,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4; 15,2)라며 제자들의 공동체가 세상을 향해 제시하는 표지로 상호적인 사랑을 제시하신다.

이 주제는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 아버지께서 제 안에 계시고 제가 아버지 안에 있듯이, 그들도 우리 안에 있게 해 주십시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셨다는 것을 세상이 믿게 하십시오.”(요한 17,21)라는 예수님의 기도를 통해 삼위일체의 친교가 이웃을 향해 나아가는 것으로 드러난다. 하느님의 단일성은 “저는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는 제 안에 계십니다. 이는 그들이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시고 또 저를 사랑하셨듯이 그들도 사랑하셨다는 것을 세상이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요한 17,23)라는 말씀 안에서 성부와 예수님 사이의 친교로 이해된다. 그 가운데서 하느님 사랑의 친교로 부르는 분은 성령이시다(요한 14,15-24 참조).

에드워즈는 하느님의 존재가 근본적으로 관계적이라면, 창조된 존재도 근본적으로 관계적임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이 상호 친교 안의 삼위일체 위격들에 관심을 갖는 신학은 교회의 자기 이해를 구체화한다. 교회의 사명은 상호적이고 평등하며 놀라운 사랑의 신적 관계들의 표지이며 대리자가 되는 것이다. 교회의 존재는 친교이다. 교회는 상호적 관계이며, 관계적 하느님의 증인이 되도록 불린 관계의 성사이다. 이것이 교회가 세상을 위해 존재하는 은총이다.78)

그러므로 사제는 지역교회 친교의 공적인 표지이며 동인이다. 그리고 사랑의 삼위일체적 관계의 표지이다. 사제는 주교와의 관계성과 그 친교 안에서 함께 사제단을 구성한다.79) 친교의 인격적 성사인 사제는 친교의 가장 큰 전례 행위의 성찬례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성찬례는 근본적인 포괄성과 관계성의 사건이다. 친교의 다양성은 인종, 성, 연령의 차이를 포용하고, 부와 권력, 사회적 지위, 그리고 영성적 은사의 차이를 극복한다. 그리스도론 중심의 직무신학은 위로부터 오는 직무로, 성품받은 사목자들과 관련된 신분의 차이를 전제하고, 성령론 중심의 직무신학은 아래로부터 오는 직무로 공동체에서 생겨나는 직무로, 사목직무라는 기능과 역할로 바라보는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삼위일체 중심의 직무 신학은 그리스도 중심, 교회 중심, 성령 중심의 직무신학을 초월하여 차이나 차별을 배제하고 근본적인 포괄성을 포함하며, 다양한 방식과 다양한 종류의 팀사목을 통한 모범적인 공동체의 구성을 포함하는 상호 협조적이다. 교구 사제로서의 영성이 근본적으로 관계적이고 친교적이기 때문이며, 우정의 하느님, 친교의 하느님 모습을 담고 있다.80)

삼위일체 중심의 직무신학은 상호 내재적 사랑의 전망으로 힘을 얻는다. 버나드 루머Bernard Loomer의 통찰에 의하면, 일방적 권력은 자신의 영향력이나 지위를 유지하거나 증가시키려는 하나의 목표 안에서만 작동한다. 그러나 관계적 권력은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고 다른 사람에 의해 영향를 받기 위한 포용력이다. 그것은 다른 사람의 통찰을 받아들이고, 그들의 감정과 가치를 고려하는 역량이다. 관계적 권력은 협박을 받거나 자신의 정체성과 자유를 상실하지 않으면서 영향을 받고 협력적으로 행동하도록 사람을 자유롭게 한다.81) 에드워즈는 공동생활과 직무는 침묵과 기도 속에서 오는 자유 안에서 유지될 때만이 참될 수 있으며, 사랑 안의 하느님깨 대한 사제의 인식이 성장함에 따라, 사람들과의 친교가 사제의 영성과 존재에 더욱더 중심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아, 사제는 교회의 실존인 삼위일체적 친교의 가시적 표지이며 동인이라고 주장한다.82)



4. 본당 사목사제 영성

서춘배는 「본당 사제의 영성」에서, 영성이란 하느님 체험을 우리에게 불어넣어주는 정신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수도 영성과는 달리, 본당 사제의 영성은 본당이라는 지역교회의 사목자로서 복음화라는 교회의 사명을 수행하는 정신을 말한다. 하느님 체험은 기도만이 아니라 활동과 함께 두 가지 불가분의 요소로 이루어진다. 기도와 활동(삶)은 참된 영성의 본질적인 요소이다. 참된 기도는 현실 삶에 투신하도록 이끌고, 현실 삶은 강력한 기도를 필요로 한다. 참된 영성으로 하느님 체험을 갖게 되면 우리는 자기 신원에 맞는 삶을 힘있게 살 수 있으며 기쁘게 투신하게 된다. 요한복음 17장의 대사제이신 예수님의 기도를 따라, 본당 사제는 세상에 매이지 않지만 세상에 속해있다. 본당 사제들은 세상 속에서 복음화라는 교회의 사명을 수행하고자 존재한다. 본당 사제의 영성은 복음화와 사목자의 영성이다.83) 이 항에서는 본당 사목자가 지녀야할 영성을 제자와 목자로 불림과 본당 사목사제의 세가지 영성 그리고 오늘날 본당 사목사제 영성으로 나누어 알아본다.


1) 제자와 목자로 불림

서춘배는 본당 사제가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야할 제자로 불림을 받았을 뿐만아니라, 백성들을 위해 자신을 바칠 사목자로 불리었다고 말한다.


① 스승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

가. 기도하는 사제

제자인 본당 사제가 사목활동을 하며 체험하는 하느님은 사람들의 삶 속에 현존하시는 분이시요, 그 안에서 활동하시는 분이시다. 본당 사제는 사람들의 삶 속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발견하고 그분의 현존을 드러내기 위한 관상과 기도를 한다. 세상 속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알아차리려면 더욱 깊은 기도가 요청된다. 사목활동은 먼저 성부로부터 파견된 예수 그리스도를 관상하는데서부터 시작된다.


나. 복음연구와 관상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되는 사제

제자인 본당 사제의 영성은 예수 그리스도를 앎에서부터 시작된다. 그 앎의 깊이를 더하면 더할수록 복음화란 교회의 사명은 더욱 풍성한 열매를 맺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 위한 복음 연구와 개인적인 관상은 우리를 기능적인 사제직에서 해방시켜 준다.


다. 성사집전자인 사제

제자인 본당 사제는 성사집전자로서 성사의 은총을 먼저 자신에게 적용한다. 스스로 고해성사를 받으면서 얻은 은총으로 신자들에게 기쁘게 성사를 집전하며, 성체성사로 주님을 봉헌하면서, 자신을 주님과 신자들에게 봉헌한다. 자신의 가르침으로, 자신의 기도로, 자신의 모범으로, 자신의 삶으로 자신에게 맡겨진 사목대상자들을 위해 온전히 자기 자신에 대해 죽는다.


② 착한 목자

가. 모든 이의 모든 것이 되는 사제

사목자인 본당 사제는 스스로 잃어버린 양 한 마리인 자신을 찾아주신 아버지의 은총을 되새겨 거듭 감사드리고 감격에 찬 찬미를 드리게 될 때, 그분의 음성에 자신의 모든 존재를 내어맡기고 한 발 한 발 내딛는 겸손한 사목자가 되어 모든 이의 모든 것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장 약하고 버려진 한 사람까지 품에 안아야 한다.


나. 세상에 투신하는 사제

예수님의 강생은 그 옛날 말구유에서부터 오늘 매일의 삶 속에서 계속된다. 예수님은 사람들 속에서 가르치고 먹고 마시며 사람들을 벗으로 여겨 그들 생활 속으로 들어가셨다. 특별히 가난한 사람과,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가 되셨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목자의 이러한 선택은 영성생활과 하느님 체험의 출발점이 된다. 오늘 예수님은 어디 사는 누구에게 강생하실지 찾아 돌보아야 한다.


다. 위로와 희망의 전달자인 사제

사목자인 본당 사제는 신자들이 본당을 전례의 거행 장소요, 단체 모임의 장소로 여기고 자신의 직접적인 삶과는 유리된 곳으로 여기는 신자들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신자들 중에는 성당과 사목자보다는 점집과 점쟁이에게 자신의 갈증을 해소하려고 하는 이들도 있다. 본당 사제가 사목자려면 신자들을 찾아 나서야 한다. 그래서 「사목 헌장」 1항에 나오듯, 신자들의 삶 속에서 고통과 기쁨을 나누고 그런 과정을 통해 주님의 현존을 드러내 보여주어야 한다.


라. 신자들과 역동적이며 생동적인 관계를 맺는 사제

사목자인 본당 사제는 어버이 마음으로 백성을 대한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수혜자에서 동반자로 그리고 수급자로 변화되듯이, 본당 사제와 평신도들과의 관계도 변화될 수 있다. 평신도들이 처음에는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양성되지만, 스스로 일하면서 점차 주인의식을 가지고 임하게 되며, 대화를 나누고 책임을 함께 짊어지는 관계가 되어 역동적이고 생동적인 관계를 맺게 된다.84)


2) 본당 사목사제의 세 가지 영성

서춘배는 본당 사목사제가 지니는 영성의 세 가지 중요한 요점을, 공동체로서 당신을 계시하시는 삼위일체 하느님은 모든 영성의 기본이고, 평신도와 함께하는 공동체를 통한 복음화는 시대적인 요청이며, 그리고 예언적인 복음 선포는 진전된 복음화로 영성의 심화가 필요하다로 잡는다.


① 영성의 기본인 삼위일체

교회는 친교라고 한다. 친교는 단지 함께 살거나, 함께 일한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친교를 이루는 공동체는 그리스도 안에 하나가 되는 것이다. 본당의 사제들과 수도자들 그리고 평신도 지도자들이 함께 기도하고 복음을 나누면서 친교의 공동체가 된다. 한 주님을 믿고, 같은 신앙을 고백하고, 하나의 사목적 목표를 향해 가는 사람들로서 서로를 사랑하고 존중하며, 일보다 사람을 소중히 여기며 영신적인 가족이요 대체 가정이 된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 세 위격이 서로 존중하고 서로를 기꺼이 내어주는 공동체로서 당신 모습을 계시하신다면, 본당 사목자들도 그 신비를 산다.


② 평신도와 함께

사목자인 본당 사제는 공동체와 함께 복음화를 모색하면서, 공동체를 건설하고 공동체를 활기차게 만든다. 이 때 평신도를 신뢰하고 평신도와 함게 평신도를 선두로 복음화의 길을 나서야 한다. 평신도 사도 양성은 사목자의 중요한 역할이다. 교회의 사명인 세상의 복음화를 이루려면 세상 속에서 일상을 사는 평신도들을 그 주역으로 삼아야 한다. 그들의 가장 중요한 삶의 자리요, 성당에서 받은 에너지로 복음화 활동을 벌이고 잘못된 곳을 수리하여 복음화의 열매를 맺을 곳은 가정과 이웃 그리고 일터이다.


③ 복음화로서의 사회교리

“복음화란 그리스도를 모르는 이에게 교리를 가르치고 세례를 주고 기타 성사를 베푸는 것만이 아니라 그들의 삶의 현장에 복음의 힘으로 영향을 미쳐 구체적인 변혁과 역전이 전개되도독 하는 것이다.”85) 정교분리의 원칙은 교회가 정치적인 문제에 전혀 관여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오히려 일정한 간격을 두고 복음적인 식별을 통해 예언자적인 태도를 취해야 한다. 교회는 1891년 「새로운 사태(Rerum Novarum)」를 기점으로 사회교리를 시작했다. 이렇듯 사목자는 복음화의 관점에서 사회에 관심을 갖고 투신한다.86)


3) 오늘날 본당 사목사제 영성

본당 사제는 한 지역의 복음화를 책임진 사목자로서 효과적인 복음화 전략과 구체적인 방법을 모색하고 시도해야 한다. 사람들의 삶 속에 육화하고 약한 이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하는 착한 목자는 그 자체로 훌륭한 복음 선포이다. 그리고 신자 개인적으로 일상에서 쉽게 할 수 있는 수행법과 나눔, 기도 등도 개발해야 한다. 복음을 바탕으로 한 예언자적인 활동은 원하지 않아도 반대받는 표적이 될 수 있다. 사제는 십자가에 못박히는 사람이지만 그것은 하느님의 일을 한다는 표지가 될 것이다.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 5,10) 모든 교회 지체와 함께하는 공동체를 통한 복음화, 삼위일체 하느님께서 보여주시는 그 사랑의 영성, 그 신비로 이 세상 모든 이를 초대하여 복음화를 이루는 것이 본당 사목사제의 영성이요 목표이다.87) 가톨릭 교회 교리서는 인격 존중에 대한 공권력과 교회의 역할에 대해 이렇게 밝히고 있다. “인격 존중은 인간의 존엄성에서 비롯하는 권리에 대한 존중을 내포한다. 이 권리는 사회보다 앞서 있으며 사회가 받아들여야 할 권리이다. 이 권리는 모든 공권력의 도덕적 정당성의 근거가 된다... 선의의 사람들에게 이 권리를 상기시키고 이 권리를 부당하거나 그릇된 요구와 구별하는 것은 교회가 할 일이다.”88)

그는 또 「육화의 영성, 사목의 시작」에서, 사도 바오로의 “그분께서는 부유하시면서도 여러분을 위하여 가난하게 되시어, 여러분이 그 가난으로 부유하게 되도록 하셨습니다.”(2코린 8,9)란 말씀을 따라, 공동체에 육화하는 영성, 즉 겸손하게 평신도들을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하며 공동체에 육화하는 것이 사목의 시작이라고 한다.89) 정일은 「협력 사목을 위한 영성」에서, 오늘날의 사목자 영성의 출발점을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가 함께 친교로서 교회를 실현하는 협력사목(collaborative ministry)으로 잡는다. 성숙한 신앙을 바탕으로 하느님 백성의 동등함을 인지하며 모두가 교회의 직무와 사명에 나름대로 공헌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진리와 공동선을 추구함으로써 하느님 나라 건설에 참여한다. 그러므로 삼위일체가 제시하는 대화, 협력, 연대를 실천할 수 있고, 일치를 바탕으로 하는 쇄신된 친교 교회관을 실천하며 살 수 있도록 서로 개방하며, 사목자로서의 사제가 공동체에 활기를 불어넣어주는 사람(animator)이 되는 것이 오늘날의 사목사제의 영성이라고 한다.90) 그리고 서춘배는「세상 안에 살아가는 사목자의 영성」에서 사목자는 사목 직무, 성체성사와 성체성사적 세상 구원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삶을 통해 성화되며, 말씀이신 주님 안에 머무르면서 말씀이신 주님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주님의 마음으로 느끼고, 주님과 함께 활동하며 사목자로서의 신원과 사명을 재확인하며, 사목현장에서 살아계신 하느님을 만나도록 초대되었으며 이에 응답하여 사목직무에 투신함으로써 주님을 뵈옵고, 사목현장에서 접하는 모든 이들과 그들을 기억하며 주님께 봉헌하면서, 기도를 활동 중의 활동이고 활동 또한 기도중의 기도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91) 헨리 나우웬Henri J. M. Nouwen은 「마음의 길: 사막의 영성과 현대의 사목직」에서, 성 안토니오 수사의 말과 삶을 따라 고독하면서도 공감적인 사목영성과 평신도들과 혼란 속에서 평화롭고 편안한 침묵 안에 드러나는 하느님의 신비에 집중하는 침묵의 사목영성 그리고 여러 가지 사목적 활동 가운데서 진정 어느 것이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낼 것인가를 찾아 기도 안에서 하느님을 뵈오며, 하느님의 뜻을 깨닫는 마음의 기도영성을 알려준다.92)

신현만은 「사목자로서의 영성 여정」에서, 자녀들 때문에 삶의 의미를 찾고, 자녀들 때문에 기쁨과 슬픔이 얼룩진 아버지, 자녀의 행복 안에서 기쁨의 근거를 마련하는 부성, 되찾은 아들을 얼싸안는 아버지(루카 15,11-32 참조)같이 사목자로 길들여지면, 그 안에 사목자의 영성이 살아있게 된다고 한다. 그리고 교우들 안에서 행복해지는 사목자가 된다. 그리고 사목자는 다양성의 표현이자 완전을 향한 부르짖음이며, 하느님을 향한 세상의 소리이자 하느님의 뜻을 알려주는 시대의 징표인 불만을 불편 없이 들어주며 두려워하지 않을 때, 사람들은 희망을 갖게 된다. 겟세마니에서 고뇌하셨던 주님처럼 이 세상에서 하느님 나라를 가로막는 세력과 사조들 앞에 고뇌하는 사제들 때문에 교회의 희망은 되살아날 것이라고 말한다.93)









1) 교황청 인류복음화성 산하 교회의 교구 사제 사목 지침, 머리말.

2) 위의 지침.

3) 위의 지침, 1. 서론.

4) 한국교회사연구소 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서한, 서울, 한국교회사연구소, 1996, 169면.

5) 최양업, 정진석 옮김, 너는 주추 놓고 나는 세우고, 서울, 바오로딸, 1995, 77면.

6) 마태 9,35-38 : “예수께서는 모든 도시와 마을을 두루 다니시며 가시는 곳마다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셨다. 그리고 병자와 허약한 사람들을 모두 고쳐주셨다. 또 목자 없는 양과 같이 시달리며 허덕이는 군중을 보시고 불쌍한 마음이 들어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으니 그 주인에게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달라고 청하여라.”

7) 최양업, 위의 책, 99면.

8) 위의 책.

9) 위의 책, 31면.

10) 위의 책, 165면.

11) 위의 책, 88면.

12) 박충신 역, 신부들의 편지, 서울, 가톨릭 출판사, 1966.

13) 노길명, 위의 책, 188-213면.

14) 영해회는 1843년 프랑스 파리에서 홀본 잔송(Holbon Jansong)에 의해 창설되어, 죽음의 위험에 처해있는 어린이들에게 세례를 주고 살아나면 그리스도교 가정에 맡겨 이를 키우도록 하는 어린이 구호사업인 성영회(Sancta Infantia)의 한국명이다. 가톨릭대사전, 650면.

15) 박석돈, 위의 논문, 34면.

16) 달레, 위의 책, 392면.

17)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100년사 편찬위원회, 한국 샬트르 성바오로 수녀회 100년사, 왜관, 분도인쇄소, 1991, 156면.

18) 위의 책, 158면.

19) 최석우, 1682, 215면.

20) 샬트르 성바오로 수녀회 100년사 편찬위원회, 위의 책, 793면.

21) 유홍렬, 증보 한국천주교회사, 서울, 가톨릭출판사, 1962, 289면.

22) 서울교구연보, 1885.

23) 샬트르 성바오로 수녀회 100년사 편찬위원회, 위의 책, 183면.

24) 뮈텔 주교 일기I, 34. 60. 61. 62면.

25) Ch. Dallet, Historie do l'Eglise de Coree. Paris : Victor Parme, 1874, 안응렬 최석우 역주, 한국천주교회사 상․ 중․ 하권, 한국교회사연구소, 1996.

26) 서울대교구 사회사목부 공문 제97-3, 1997.

27) 노길명, 박해기 개화기의 한국천주교회와 사회개발, 한국교회사논문집1, 한국교회사연구소, 1984, 172면.

28) 서울대교구 사회사목부 공문 제97-3, 1997.

29) 달레, 위의 책, 296-297면.

30) 위의 책.

31) 위의 책, 410-411면.

32) 위의 책, 392면.

33) 위의 책.

34) 위의 책, 56면.

35) 위의 책, 60면.

36) 위의 책, 16면.

37) 서울대교구 사회사목부 공문 제97-3, 1997.

38) 위의 책, 171면.

39) 서울대교구 사회사목부 공문 제97-3, 1997.

40) 달레, 위의 책, 430-431면. 위의 공문.

41) 최양업, 위의 책, 99면.

42) 달레, 위의 책, 430-431면.

43) 위의 책, 474면.

44) 서울대교구 사회사목부 공문 제97-3, 1997.

45) 달레, 위의 책, 490면.

46) 위의 책, 527면.

47) 권정복, 대구천주교회사, 대구 대건출판사, 1952, 51면.

48) 위의 책, 58-59면.

49) 서울대교구 사회사목부 공문 제97-3, 1997.

50) 서봉세, 초대 한국 교회 안에 나타난 사목자의 직무와 영성, 복음과 문화 11호, 대전가톨릭대학교출판부, 2007, 103면.

51) 위의 논문, 104면.

52) 위의 논문, 106면.

53) 위의 논문, 107-108면.

54) 위의 논문, 111면.

55) 천주교 개포동 성당 현양위원회 편, 정양모 역, 브뤼기에르 주교의 여행기와 서한집, 서울, 천주교 개포동 성당, 2005, 23면.

56) 위의 책, 283-291면.

57) 천주교 개포동 성당 현양위원회, 브뤼기에르 주교 현양 사업의 징검다리: 현양 사업과 이장기, 그리고 순례 길, 서울, 천주교 개포동 성당, 2006, 49-55면.

58) 천주교 개포동 성당 현양위원회 편, 정양모 역, 브뤼기에르 주교의 여행기와 서한집, 126-127면.

59) 위의 책, 355면; 천주교 개포동 성당 현양위원회, 브뤼기에르 주교 현양 사업의 징검다리: 현양 사업과 이장기, 그리고 순례 길, 49-51면.

60) 위의 책, 354면.

61) 위의 책, 352면.

62) 위의 책, 364면.

63) 달레, 한국천주교회사, 중, 324면.

64) 천주교 개포동 성당 현양위원회, 브뤼기에르 주교 현양 사업의 징검다리: 현양 사업과 이장기, 그리고 순례 길, 51-53면.

65) 달레, 한국천주교회사, 중, 344. 359. 361면.

66) 한국교회사연구소 편, 한국가톨릭대사전, 8권, 5898-5900면.

67) 천주교 개포동 성당 현양위원회, 브뤼기에르 주교 현양 사업의 징검다리: 현양 사업과 이장기, 그리고 순례 길, 53면.

68) 위의 책, 41면.

69) 데니스 에드워즈, 엄재중 역, 친교의 인격적 표지인 사제, 사목 314호, 서울,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5. 3, 123면(origin Donald B. Cozzens ed., Personal Symbol of Communion, The Spirituality of the Diocesan Priest, The Liturgical Press, 1997, 73-84면).

70) 케네스 E. 운터너, 엄재중 역, 교구 사제 영성의 모델, 사목 312호, 서울,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5. 1, 117-118면(origin Donald B. Cozzens ed., Using the Wrong Measure?, The Spirituality of the Diocesan Priest, The Liturgical Press, 1997, 20-26면)

71) 위의 논문, 117-118면.

72) 위의 논문, 119-120면.

73) 로버트 M. 슈바르츠, 엄재중 역, 교구 사제의 영성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사목 310호, 서울,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4. 11, 8-9면(origin Donald B. Cozzens ed., Servant of the Servants of God A Pastor's Spirituality, The Spirituality of the Diocesan Priest, The Liturgical Press, 1997, 1-19면).

74) 위의 논문, 9-10면.

75) 위의 논문, 10-14면.

76) 위의 논문, 14-18면.

77) 위의 논문, 18-19면.

78) 에드워즈, 위의 논문, 125-128면.

79) 인류의 빛, 28항.

80) 에드워즈, 위의 논문, 128-132면.

81) Bernard Loomer, Two Kinds of Power, Criterion 15, 1976. 에드워즈, 위의 논문, 132면 재인용.

82) 에드워즈, 위의 논문, 132-133면.

83) 서춘배, 본당 사제의 영성, 사목 310, 서울,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4. 11, 21면.

84) 위의 기사, 22-25면.

85) 현대의 복음 선교, 17-19항 참조.

86) 서춘배, 본당 사제의 영성, 25-28면.

87) 위의 논문, 28-29면.

88) 가톨릭 교회 교리서, 1930항.

89) 서춘배, 육화의 영성, 사목의 시작, 사목 322호, 서울,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6. 9, 89면.

90) 정일, 협력 사목을 위한 영성, 사목 338호, 서울,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7. 3, 129-130면.

91) 서춘배, 세상 안에 살아가는 사목자의 영성, 사목 324호, 서울,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6. 1, 58-62면 참조.

92) 헨리 J. M. 나웬, 이봉우 역, 마음의 길: 사막의 영성과 현대의 사목직, 왜관, 분도출판사, 1989.

93) 신현만, 사목자로서의 영성 여정, 사목 329호, 서울,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6. 6, 75-7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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