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부 사목 영성


12장 사목직무 영성

    1. 영신수련

    2. 영성지도

        1) 영성지도의 정의

        2) 영성지도의 목표

        3) 영성지도자

        4) 영성지도자의 과제

        5) 영성식별

    3. 영성상담

        1) 사목상담과 영성상담의 정의

        2) 인간 본성에 대한 관점

        3) 사목상담과 영성상담의 특성

        4) 사목상담의 목적과 목표

        5) 영성상담의 방법과 기술

        6) 영성상담자의 자세와 태도

        7) 사목상담의 관계

        8) 사목상담의 근원이신 예수 그리스도

    4. 사목직무 영성의 새로운 접근




12장 사목직무 영성




이 장에서는 사목직무 영성을, 1항 영신수련과 2항 영성지도를 영성지도의 정의와 영성지도의 목표 및 시대별 영성지도자, 영성지도자의 쇄신과 과제, 그리고 영성식별로, 3항 영성상담을 사목상담과 영성상담의 정의와 인간 본성에 대한 관점, 사목상담과 영성상담의 특성, 사목상담의 목적과 목표, 영성상담의 방법과 기술, 영성상담자의 자세와 태도, 사목상담의 관계, 그리고 사목상담의 근원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4항 사목직무 영성의 새로운 접근으로 나누어 살펴본다.



1. 영신수련

류병일은 「사목자들의 영성과 기도 생활」에서, 사목자에게 요구되는 영신 수련이란 주제를 통해 그리스도께서 선포하시는 복음을 받아 전하는 사목자들은 자신들이 그리스도인이요 사목자로서 갖추어야하는 그리스도 신앙의 신비를 배워 익히고 깨달아 앎으로써 교회 공동체 안에서 실현해 나아가야 할 중요한 신심생활을 다음과 같이 열거한다.1)

① 삼위일체 신심 : 사제직에 불리움을 받고, 축성되고 사명을 받는 것은 성령으로 축성되시고 성부께로부터 그리스도(루카 4,18; 요한 10,36 참조)의 실재인 교회에서 계속되고 있는 그리스도의 삶(마태 28,20; 에페 1,23 참조)을 분유(分有)하며, 교회 안에 현존하시는 성령의 도움으로 이루어진다. 이에 따라 사목자 자신이 성삼의 하느님과 개성 있는 만남의 생활을 구체적으로 일상에서 드러내야 한다.

② 그리스도 사제직과 성사에 대한 신심 : 사제 영성의 출발점은 사제이신 그리스도의 축성에 대한 사제 특유의 직무적 참여이다. 그리스도의 축성은 성령의 역사 아래 마리아의 태중에서 말씀이 사람이 되신 육화의 그 순간에 이루어지고 빠스카의 신비 안에서 완전하게 드러난다. 그리스도와 함께 있도록(마르 3,14 참조) 부름받은 성소는 사제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동참하게 하고, 자기 자신의 삶에서 이 거룩함을 드러내게 한다(요한 17,10 참조).2) 그러므로 자신이 행하는 사제의 직분 안에서 그리스도의 사제직의 개성을 깨닫도록 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각 성사가 표시하는 그리스도의 표지를 잘 드러내는 삶이 되어야 한다.

③ 십자가의 신심 : 사목자들은 십자가에 봉헌되신 어린양의 피를 분유하고, 자신 또한 자기 자신의 십자가를 받아들여야 한다(2코린 4,10; 6,4-5; 갈라 6,17 참조). 바오로 사도는 "이제 나는 여러분을 위하여 고난을 겪으며 기뻐합니다."(콜로 1,24) 또한 "나는 위안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우리의 그 모든 환난에도 기쁨에 넘쳐 있습니다."(2코린 7,4)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사제는 일상에서 자기의 십자가를 언제나 지고, 그리스도께로부터 이 신비를 배워야 한다.

④ 말씀에 봉사 : 신앙의 교사요, 그리스도의 예언직을 분유한 사목자는 하느님을 섬기는 자로, 어떤 인간적인 지혜가 아니라 바로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복음 선포자이다.3) 그러므로 모든 사목자는 ‘살아 계시는 하느님과 또 그분이 모든 사람의 구원을 위하여 파견하신 예수 그리스도’(l테살 1,9-10; l코린 1,18-21 참조)를 전해야 할 절대적인 의무를 지니고 있다. "그렇게 하여 비그리스도인들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마음이 열리고(사도 16,14 참조) 믿어 자유로이 죽님께 회심하게 될 것이다."4) 사목자의 말씀의 봉사 중에서 설교는 "성경, 전승, 전례, 교회의 교도권과 생활에 근거하여야 하는 말씀의 교역에서 그리스도의 신비가 완전하고 충실하게 제시되어야 한다."5) 또한 일상생활과 일관성이 있어야 하고, 그럼으로써 자신의 신앙 증거가 되는 힘을 가져야 한다(마태 5,16 참조). 또한 관상을 통하여, 하느님의 말씀이 이 세상에 새롭게 강생하시는 그리스도를 알아볼 수 있게 되고, 그 구원의 신비를 깊이 깨닫고, 우리의 삶 속에서 그 강생하시는 말씀을 드러내야한다.

⑤ 마리아신심 :그리스도의 어머니요 협조자, 성령의 역사에 충실하신 분, 교회의 전형이요 어머니이신 마리아께서 사제의 직무와 생활에 항상 가까이 계신다. "우리의 사제적 봉사는 구세주의 어머니요 교회의 전형이신 마리아께 우리를 결합시켜 준다."6)

마리아의 하느님께 대한 봉헌과 말씀을 듣고, 기도와 봉헌의 전형이신 마리아를 바라보고, 자신의 생활 안에서 성모님의 현존을 체험하여야 한다. 그렇게 하여 그분께로부터 배우고 일치할 수 있도록 그분께 의탁의 기도를 잊어서는 안되겠다.

⑥ 사도들에 대한 신심 : 베드로와 요한처럼, 예수께 관한 기쁜 소식을 주저없이 선포하겠다는 불굴의 의지를 천명해야겠다. "우리로서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사도 4,20). 주님께서 바오로 사도에게 하신 말씀을 받아들여 "두려워하지 마라. 잠자코 있지 말고, 계속 말하여라. 내가 너와 함게 있다."(사도 18,9-10)고 하신 이 당당한 사도들의 신앙생활의 정신을 이어받을 수 있도록 사도들에게 도움을 청해야 한다.

⑦ 사목자의 선교 사명 : 그리스도의 사제직을 분유하는 사목자는 주님의 합당한 대리자로서 자신의 직무 안에서 주님의 구원하시는 사랑을 드러나게 한다(로마 15,5 참조). "주교의 권위 밑에서 주님의 양몌 일부를 맡아 거룩하게 하고 다스리며 그 곳에서 보편 교회를 볼 수 있게 만들며, 그리스도의 몸 전체를 건설하는데(에떼 4,12 참조) 공헌한다. 사제들은 항상 하느님의 자녀들의 선익을 도모하며, 교구 전체와 또한 교회 전체의 사목 활동에 이바지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7)

사목자는 교회가 역사와 문화의 장(場)에서 살아가고 있으므로, 경제, 사회와 정치의 영역에 복음과 하느님 나라의 가치를 적용하는 것은 평신도 특유의 임무다.8) 사제들은 평신도들에게 이러한 임무를 가르치고, 평신도들이 현세 현실 분야에서 그들 고유의 책임을 떠맡도록9) 도와주고 후원하고 촉구하여야 할 의무를 지니고 있다. 사제들은 이러한 사도직 분야에서 용기를 가져야 하고 균형을 갖추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실에 너무 무지해서는 안된다. 또한 사회발전을 위한 노력에 있어서도, 사제들은 경제적 수단의 힘을 통해서가 아니라 복음의 초자연적 가치를 통하여 복음화가 이루어진다는 것을 확신하여야 한다. 교회의 사명을 수호함으로써, 신자들 가운데서 그리고 그리스도교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서 극히 세속적인 유발을 피하게 될 것이다,10) 비그리스도적 정신세계 속에서 그리스도의 성령의 현동(現動)에 민감하게 함께할 수 있어야 한다.

⑧ 사제들의 성무일도 : “그리스도께서는 '인류를 구원하시고 하느님께 완전한 영광을 드리는 일'11)을 미사 성제를 바치거나 성사를 집전할 때만이 아니라 다른 어떤 방법보다도 성무일도를 바칠 때,12) 성령 안에서 당신 교회를 통하여 성취하신다. 교회 공동체가 함께 모일 때, 하느님의 말씀이 전해질 때, 그리고 '교회가 기도하고 노래할 때'13) 당신 친히 그 전례 안에 현존하신다."14) 이렇게 성무일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사제직은 실현되어 나아간다. 이에 따라 사제는 교회공동체와 함께 성무일도를 각 시간에 따라 의무로 바쳐야 하며,15) 그렇게 함으로써 주님의 더 완전한 제자가 되고 그리스도의 헤아릴 수 없는 보화를 더 깊이맛보게 될 것이다.16) 그리고 언제나 교회와 함께 있게 된다.

⑨ 묵상 및 관상 기도 : "묵상 기도에 규칙적으로 몰두하고”17) 그 안에서 자신들의 생활과 직무의 온갖 어려움에 대한 빛과 위로를 찾고 치유를 받게 된다. 관상생활을 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은 강생하신 말씀의 신비에 머물기 위한 시간과장소를 매일 일정하게 가져야 하며, 또한 지속적으로 하느님의 은총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자신을 재발견하는 양심 성찰을 함으로써 이루어져 나아간다.

그리고 그는 사목자가 영성 지도를 할 수 있도록 훈련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니코데모(요한 3,1 이하 참조), 사마리아 여자(요한 4,1 이하 참조), 바리사이파 사람 시몬(루카 7,36 이하 참조) 등과의 개인적 대화에서 가르치고, 예수님께서 사람들과 개성 있는 만남을 가지셨듯이 사목자들은 자신들과 대화를 하는 사람들과 그리스도 안에서 신앙인다운 개성 있는 만남을 이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2. 영성지도

이 항에서는 박재만의 「영적지도: 그리스도인 성숙을 위한 도움」18)에서 밝힌 영적지도에 대한 관점을 바탕으로 영성지도를 그 영성지도의 정의와 영성지도의 목표, 시대별 영성지도자, 영성지도자의 쇄신과 과제 그리고 영성식별로 나누어 살펴본다.


1) 영성지도의 정의

박재만은 「영적지도: 그리스도인 성숙을 위한 도움」에서, 오늘날에는 인간들의 감수성과 인간에 관한 학문들의 발전에 촉진되어, 영성지도는 점차적으로 그리스도인의 완성을 향한 형성의 진보를 돕는 인간 상호관계의 측면으로 이해되며 발전하고 있다고 밝힌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영적지도’(spiritual direction)라는 용어를 ‘영적상담’ 혹은 ‘영적조언’, ‘영적 도움의 관계’라는 용어로 바꾸고자 하며, ‘영성지도자’라는 말 대신에 ‘영적상담자’, ‘영적협조자’라는 말을 선호한다고 한다. 그 이유는 권위에의 심리적 거부반응과 인간은 단지 협조자일뿐이며 성령만이 유일한 지도자이심을 고백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19) 영성지도가 필요한 이유는 오늘날 인간들이 개인적으로 확신을 가질 수 있는 신앙을 원하는 반면에 개인에게 의미를 주지 못하는 개략적이며 일반적인 형식의 신앙을 거부하고자 하는데 그 중요한 동기가 있다. 그리고 미래의 사목자들이 개인을 만나 이해하고 도와주고자 하는 연장선에서 사목상담과 카운슬링을 사목에 도입하고자 하는 특수 상황이 영성지도 또는 영성상담, 사목상담을 부각시키고 있다고 한다.20)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영성지도를 그리스도인이 신자다운 생활을 의식적으로 영위하도록 그리고 자기의 신분과 생활상태에 따른 본분을 이행하도록 돕는 것이다. 그래서 그가 열성으로 그리스도를 따르고 모든 이와 온갖 사물 안에서 하느님을 찾으면서 복음 정신에 입각하여 건전하고 훌륭한 신심과 기도의 삶을 기르고 덕을 실천하여 사도적 열성을 키우도록 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21)

영성지도는 영적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에게 일시적 도움이나 우정어린 충고로부터 시작하여 생활의 방향과 지침을 찾는 이에게 베푸는 정기적이고 지속적인 안내와 점진적 교육 및 양성의 봉사까지 포함한다. 영성지도는 첫째로, 자기이해와 성소식별 그리고 자기봉헌을 위한 준비자세를 키워주며 하느님의 이끄심을 방해하는 내적 난관들을 극복하도록 도와주는 영적 발전을 위한 양성 혹은 교육이며, 둘째로 사람의 내면에 진정한 방향 설정 및 하느님의 성령께 충만한 순응자세를 갖추도록 도와주는 순응교육이란 두 측면이 있다. 영적 지도자는 성령께서 진정한 의미의 지도자임을 의식하고, 지도받는 이들이 하느님께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과정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므로 영성지도란 한 사람이, 다른 어떤 사람이 개인적으로 의사를 전달하고자 하시는 하느님께 응답하며 그분과의 친교를 깊게 하고 그 관계에 바탕을 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가도록 베푸는 도움이라고 할 수 있다.22)


2) 영성지도의 목표

인간 성숙의 현대 심리학적 동의어는 심리적 균형, 적응능력, 정상성, 정신적 건강, 성년(成年)상태 등이며, 교육 심리학자들은 개성(personalitas)과 연결시켜, 개체의 고유 성격의 구성 요소들 전체의 조화와 가치들의 통합과 가치 서열의 항구적 확립, 유기체의 알맞은 적응을 촉진시키는 성장과 발전의 상태, 처음에 있었던 것에 비해 변형이나 성장을 포함한 진화의 어떤 단계, 신체, 지성, 감성 그리고 의지의 성숙된 사용, 가치(사물, 자신, 이웃 그리고 절대자)에 대한 명확한 이해와 그 가치에 대한 적합한 응답 및 그에 따르는 생활, 그리고 신체적 심리적 사회적 및 영성적 발전에 있어 완성 단계 등으로 정의내린다. 이상의 정의들을 종합하면, 인간 성숙이란 인간적 충만성으로 성인적 성격을 갖추고 신체적 심리적 사회적 및 영성적으로 조화를 이루는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앨포트G. W. Allport23)는 ① 사랑의 성숙에 따른 자아(ego) 개념의 확장과 ② 마음의 개방 및 교류관계, 우정, 적응력, 협동자세들의 사회성의 발전도인 타인 관계의 친밀도, ③ 지나친 반응을 피하고 좌절을 극복하는 능력인 정서적 안정, ④ 현재 생활의 과제와 임무를 수행하며 문제점을 이해하고 해결해 나가는 능력인 현실 이해와 임무 수행 능력, ⑤ 현재 자신의 정적 체험을 과거의 것과 이상적인 것과 연관시켜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능력인 자아 객관화(자신에 대한 이해와 유머 능력) 그리고 ⑥ 인간의 근원과 목적 및 목표를 명확히 이해하고 삶의 뜻과 가치를 일관성 있게 추구하며 현재의 고통과 좌절을 올바른 가치관에서 전망하며, 남에게 조정되거나 예속되지 않으면서 생활의 자율성을 이루는 일관적 생활관을 인간 성숙의 척도에 대한 여섯 가지 목록으로 잡는다.24)


② 그리스도인의 성숙

박재만은 성숙된 인간이 신앙으로 조명되고 애덕의 초자연적 질서에 높여짐으로써 그리스도인 성숙이 이루어진다고 밝힌다.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태 5,48)는 말씀에 따라,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 헌장」 40항에서 그리스도인의 동의적 표현으로 ‘성성(sanctitas)’, ‘사랑의 완성’, ‘그리스도인 생활의 충만성’을 언급하고 있다. 같은 항에서 그리스도인의 성숙 혹은 완성을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르고 그 모습을 닮아’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면서’ ‘하느님의 영광과 이웃 봉사를 위해’ 부여된 ‘자신의 힘과 능력을’ 개발하고 사용함으로써 은총 중에 ‘성령의 결실인 성성’에 도달하는 것이라고 밝힌다. 그리고 완덕에 이르는 길을 하느님과 이웃 사랑의 길로 밝힌다(마르 12,28-34; 마태 22,34-40 참조). 사랑은 그리스도인의 완성 혹은 성숙의 본질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25)


③ 그리스도인의 성숙인 성성 단계

성성은 그리스도인 존재를 구성하고 있는 일차적이고 기본적인 선물이며, 단순한 인간적 피조물을 천상적 존재로 들어 높이면서 하느님의 자녀가 되도록 하는 은총의 신비로서, 생활의 어떤 충만성을 포함한다. 「교회 헌장」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스스로의 업적 때문에 불린 것이 아니라, 오직 하느님의 계획과 은총으로 불려 주 예수로 말미암아 의화되었으며, 믿음의 세례로써 하느님의 진정한 자녀가 되고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였기에 참으로 거룩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거룩하게 삶으로써 받은 성성을 보존하며 완성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라고 한다.26)

그리스도인의 성성에는 하느님이 무상적 선물로서, 인간을 그리스도화 하고 성화하여 본질적으로 새롭게 하는 존재론적 성성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태어난 생활 안에서 은총에 협조하며 구체적 선행을 통해 표현되는 윤리적 성성 그리고 성화된 그리스도인이 비록 현실에서는 한계를 지닐 수 있지만 끊임없이 성장하면서 하느님이 본성과 생명에 참여하면서(1요한 3,9; 1베드 1,23; 2베드 1,4 참조) 성덕에의 완성에로 이르는 단계를 거친다.27)

그러므로 영성지도자는 신자들의 영성적인 성숙을 위하여, 첫째 신자와 관계에서 예언적 역할을 가지고 있다. 즉 계시나 초월세계에 대한 증거를 직분, 삶, 태도, 말 등으로 주게 되고, 둘째 영성적인 목적을 향한 방항이나 가치를 제시하며, 셋째 자신이 말하는 모든 것에 대한 증언으로 개인적인 체험을 제시함으로써 개인적으로 대화에 깊이 개입하고, 넷째 필요하다면 자신의 신앙 혹은 자신의 신분을 선택하게 된 동기들을 사용하기도 한다. 영성지도자는 복음의 증인으로 현존하면서 은총에 의해 인도된 신앙인이요 경우에 따라서는 죄인을 진리 안에서 주님을 만나도록 이끈다.28)


3) 시대별 영성지도자

박재만은 영성지도자들의 활동과 주요 영성사상들을 교부시대와 중세, 근세,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순에 따라 시대별로 그려내고 있다.


가. 교부시대

동방교회에서는 영성지도자들을 하느님의 부성에 참여하면서(갈라 4,9; 에페 3,14-15 참조) 성사들과 영적 교육을 통해 영적 자녀들을 태어나도록 한다는 의미에서 ‘아버지(abbas, pater)’, 그리고 성령을 모시고 살아긴다는 의미에서 ‘영적 아버지(pater spiritualis)’라고 불렀다. 영적 아버지들은 인내와 온유 및 자비로운 엄격을 낳는 아버지의 애덕과 모든 덕의 기초인 겸손 그리고 악한 성향에 대한 승리 등을 갖추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식별의 능력이다. 영적 아버지는 자녀들을 위해 기도해주어야 한다. 그리고 영적 자녀들은 자신을 절제해야 한다. 자신의 욕구에 대한 포기 없이는 하느님의 뜻에 순응할 수 없고 또 덕에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악습을 극복하고 주님께 나아가려는 의지를 키우기 위해, 성령의 뜻을 전해주며 그분께 인도하는 영적 아버지를 자유롭게 선정하지만 그에게 순종해야 한다.

서방교회에서는 영성지도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없지만, 성 암브로시오와 성 예로니모, 성 아우구스티누스 등의 영성지도자들이 상담과 편지를 통해 생활이 상태와 조건이 다른 사람들을 완덕에 나아가도록 도왔다. 성 그레고리오는 「사목 규범(Regula Pastoralis)」에서, “모든 이에게 적용할 수 있고 적응될 수 있는 사목적 방법이나 양상이 하나만 존재한다고 생각될 수 없음을 나는 확신한다... 어떤 이에게 유익한 것이 다른 이에겐 해롭다는 것을 가끔 깨닫게 된다.”고 말한다. 성 베네딕토는 수도생활의 햇수나 연령보다 모범적 생활과 하느님께 대한 깊은 인식을 가진 영적 아버지로서의 원장을 원했다. 성 골롬반에 의해 잦은 고해성사가 강조되었고, 영적 의사들인 고해사제들 및 영성지도자들이 영혼의 다양한 질환에 대해 각기 적절한 방법으로 치료하라고 강조한다.29)


나. 중세

12-15세기까지의 영성지도는 수도원적인 성격을 띤다. 성 베르나르도는 영성지도에 있어 성령의 활동에 큰 비중을 두고 식별의 선물을 중요시 하면서, 자비로운 영성지도를 강조했다. 도미니코회와 프란치스코회는 평신도들에게까지 영성지도를 했다. 그 외에도 성 보나벤뚜라, 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 빈첸시오 페라리, 피렌체의 안토니오 등이 출중한 영성지도자들이었다. 토마스 아 캠피스의 「준주성범(De Imitatione Christi)」은 영의 식별과 순명을 강조한다. 1215년 제4차 라테란 공의회에서 신자들에 대한 사목적 배려에 큰 관심을 기울여 연중 고해성사를 법으로 규정했고, 사제들은 고해성사 중에 신자들의 영성교육 및 지도하고, 영적 의사로서 신자들의 영적 진보를 위해 고백자의 연령, 상황, 내적 상태를 진단하여 그에 따라 알맞은 치료 방법을 적용할 줄 알아야 한다고 요청했다.30)


다. 근대

16세기에는 필립보 네리, 아빌라의 데레사, 십자가의 요한, 로욜라의 이냐시오 등이 특수한 카리스마와 성덕을 지니고 영성지도 분야에 커다란 공헌을 했다. 십자가의 성 요한은 영성지도자를 성령께 의지하는 하느님의 증인이요, 그리스도의 영성 여정에서 보여 주는 교회의 현존으로 여겼다. 로욜라의 성 이냐시오도 영성지도자를 창조물 안에 드러나는 하느님의 활동을 관상하는 하느님의 증인으로 본다.

17-18세기에는 프런치스코 드 살, 꽁드렝, 올리에, 뜨랑송, 페넬롱, 십자가의 바오로 등의 영성지도자들이 활약했고, 영성지도의 이론과 방법이 체계화되고 영성지도에 대한 수많은 저작들이 쏟아져 나왔다. 영성지도는 신자 개개인을 돕기 위한 봉사가 되었고, 더욱이 하느님께 나아가는 길로 인도하기 위해 흔히 고해성사와 연결되었다.

19세기에는 돈 보스코, 샤미나드, 요셉 코톨렌고, 요한 비안네, 샤를르 드 푸코, 프라씨네티 메르시에, 마르미옹, 탕크레 등이 활약하였다.31)


라.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황 레오 13세의 「Testem Benevolentiae」과 비오 12세의 「Menti Nostrae」에서 영성지도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강조해왔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이 정신을 이어받아 사람들의 성화를 위한 사제들의 직무 수행에 있어 영성지도라는 방법을 이용해야 한다고 말한다.32) 「사제 양성 교령」 8항에서, 영성지도는 “신학생들이 성령 안에서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부와의 긴밀한 일치와 친교 속에서 생활할 줄 배우도록” 해야 하고, “하느님의 말씀을 성실히 묵상하며, 교회의 지극히 거룩한 신비들 속에 깊이 잠김으로써, 특히 성체성사와 성무일도 속에서 그리스도를 찾는 법도 배우도록” 요청하면서, 19항에서는 신학교 교수들이 장래의 사제들이 영혼들의 지도방법을 배우도록 해야 하며, 그 방법으로 신자들에게 의식적이며 사도적인 생활을 가르치고 각기 신분의 책임을 다하도록 교회의 모든 자녀들을 교육할 수 있어야 한다고 권면한다. 「수도생활 쇄신 적응에 대한 교령」은 장상이 공동체 형제 자매들을 성성에의 여정 중에 잘 안내해 주고 보살펴 줄 능력 있는 영성지도자들을 신중히 선택하고 배려할 것을 권한다. 「사제의 직무와 생활에 관한 교령」 6항은 신앙을 길러 주는 교사들의 의무가 신자들이 “이기적으로 살지 말고 사랑의 새 계명의 요청에 따라 각자가 하느님으로부터 은혜를 받은 것처럼 이웃에게 서로 베풀어야 하며, 그럼으로써 모든 사람이 인간 사회에서 자기 의무를 그리스도 신자답게 수행하도록” 즉, “그리스도인 원숙에 이르도록” 교육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1983년 새 교회법은 “신학교에서 학생들의 영성적 교육(양성)과 학문적 교육이 조화롭게 편성되어야 한다. 또한 그들이 각자의 자질에 따라 인간성숙과 함께 복음의 정신과 그리스도와의 밀접한 친분을 갖도록 해야 한다”33)고 밝히며, “신학생들은 영성적 교육(형성)을 통하여 사목 직무를 효과적으로 수행하는 적임자가 되며, 선교정신을 함양하게 된다. 따라서 언제나 산 신앙과 애덕으로 수행하는 직무는 자기 자신의 성화에 이바지하는 것임을 배우게 된다. 또한 인간관계에 있어 고귀한 덕행을 닦음으로써 인간적 가치와 초자연적 가치가 원만한 조화를 이룰 수 있게 된다.”34)고 한다. 그리고 신학생들에게 매일 미사 참여와 성무일도, 성모 신심, 고해성사와 영적 지도 그리고 연중 피정의 다섯가지 영성생활을 위한 지침을 제시힌다. 그리고 영성상담자(director spiritus)와 영성생활의 지도자(moderator vitae spiritualis) 그리고 고해사제(confessarius)의 임무에 대해 언급한다.35)

「평신도 그리스도인」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그리스도인 교육이란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따라 성령의 인도 아래서 이루어지는 신상의 개인 성숙과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지속적 과정”36)임을 상기시키고, “인간 생활에 있어 영성교육이 특권적인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는 것은 의심 없는 사실이다. 모든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친밀한 일치 안에서, 하느님 아버지의 뜻에 맞갖게, 사랑과 정의로써 다른 사람에게 헌신하는 가운데 지속적으로 성장하도록 부름 받고 있다.”37)라며 교육의 여러 가지 측면 중에서 영성교육의 중요성을 가르친다.38)


4) 영성지도자의 쇄신과 과제

박재만은 오늘날의 사회현상 속에서 제기되고 있는 영성적인 위기와 그에 대처하여 영성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쇄신과 과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① 영성적인 위기

박재만은 오늘날의 신자들은 계시적 교리 이론보다는 신앙의 산 체험을, 성경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것보다 그에 따른 신앙생활을 통해 체험적이고 증거적인 측면들을 보고자 한다고 한다. 그리고 오늘날의 시대는 권위의 위기와 하느님에게서 벗어나가려고 하는 빗나간 인간관의 문제, 그리고 오늘날의 사람들은 집단이나 구조 또는 제도들에 속하기를 원하면서도 또한 그것에 억압되거나 소외될까봐 걱정하며 평형을 잃은 비판을 가하거나 목표 없는 해방을 부르짖으며 막연히 그것을 추구하는 기준 잃은 판단력 등의 가치 평가의 혼란을 가져오는 위기들이 영성지도자들에게 제기된다. 또한 민주적 사고방식 및 수덕적 실천을 갖춘 지도자를 기대하면서도, 기술과 생산 및 효율을 중시하는 사회의 경향 속에서 의미를 잃어가고 있는 교회의 성사들, 눈에 결과를 보려하고 과학적이고 증명되는 것을 확신하고자 하는 가운데 희미해지는 신비에 대한 이해 등이 세속주의를 부축이고 있다.

현대 사회 안에서 영성지도 및 영성상담 역시 정신분석적, 심리학적 카운슬링 등으로 대치되고, 삶의 인도자가 정치, 사회 및 문화적 지도력으로 대치되며, 개인적 카리스마가 교회의 제도를 대신할 수 있다고 기대하거나 오도하는 등의 위기를 겪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영성지도자들이 영적으로 적절한 카리스마를 갖추어야 하고, 인간 및 영성적인 그리스도인 성숙에 힘써야 하며, 신학 및 영성학적인 지식에 충실해야 하며, 인간에 대한 학문들에 대해서도 충분한 이해를 갖추고, 많은 내적 체험과 이웃을 돕는 오랜 경험을 가진 영성지도자가 되어야 한다.39)


② 영성지도자의 과제

영성지도자의 첫 번째 과제는 그리스도인이 세례성사 때에 받은 신앙 안에서 그리스도인의 보편적인 성성에 대한 응답에서부터 성소식별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소명과 그에 따르는 삶의 목적을 깊이 사고하고 인식하며 또한 그에 정진하도록 돕는 것이다. 두 번째는 각자가 하느님께 받은 자신의 탈렌트를 발견하고 키우도록 돕는 것이다. 세 번째는 주님을 따르기 위하여 자신의 십자가가 무엇인지, 주님께 나아가는 데 방해되는 요소가 무엇인지를 명확히 바라보며 기꺼이 그 십자가를 짊어지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좇아 주님의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아 주는 것이다.40)


5) 영성식별

윌리엄 배리William A. Barry는 사람들이 죽음과 소멸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두려움은 우호적인 상호 관계와 적대적인 상호 관계의 도식 안에 머물게 만든다. 요한의 첫째 편지에서 말하듯이 완전한 사랑만이 두려움을 쫓아버리며, 우리는 그 완전한 사랑을 얻어야 평화를 누리거나 적어도 평화를 향해 나아갈 수가 있다(1요한 4,18 참조). 그 완전한 사랑은 하느님의 뜻이다. 두려움은 우리를 일치에서 벗어나게 하는 주범이다. 사랑보다 두려움에 의해 지배되고, 마음이 자신을 위한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면,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고 끊임없이 경계해야 나를 구할 수 있다는 착각, 즉 나 자신이 바로 나의 구원자라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바꾸어 말하면. 나를 구원하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이라는 착각에로 이끌리게 된다. 통합되지 않은 두려움은 착각으로 나아가며 , 우리의 행동을 좌절시키려는 의도로 나아가게 된다.41)


① 현대의 위기

맥머레이는 서양이 위기를 맞게된 원인은 인간의 정서적인 면이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지적으로는 문명화되고 정서적으로는 원시화되었다. 그리고 지식의 발달이 우리 자신을 파괴할 위험한 지점에 도달했다고 한다. 맥머레이는 우리의 느낌들이 실재와 조화를 이룰 수 있으며 ,그런 의미로 이성적인 느낌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통의 권위가 아닌 삶 자체의 권위에 의한 느낌의 훈련을 감수해야 한다. 사고가 아니라 느낌이 삶을 통제하도록 해야 한다. 그리스도교를 세우신 분의 가르침은 이념이 아니라 감정인 사랑을 선한 삶의 기초로 삼으셨다. 하느님 외에 우리가 기대해왔던 대상들은 우리의 열망을 만족시켜 주지 않았으며, 만족시킬 수도 없었다. 물론 우리는 세계의 조건들을 정확하게 평가하기 위해 정신을 활용해야 한다. 하지만 행동의 동기를 유발하는 것은 바로 느낌이다. 나아가서, 이 세상 안에 계시는 사랑의 영인 성령과 일치를 이루는 느낌은, 하느님이 의도하시는 것(모든 사람들이 이루는 진실한 사랑의 공동체)을 지향하는 행동을 촉발시킨다. 우리의 두려움을 사랑에 종속시킨다면, 이 우주를 창조하고 계시는 하느님의 지향과 우리들의 지향들을 더 쉽사리 일치시킬 수 있게 된다.42)


② 영의 식별

성 이냐시오 로욜라는 「영신 수련」 속에 나오는 '선신과 악신을 분별하는 규범들 I'에서 우리의 동기와 느낌을 하느님의 단일한 행동과 일치시키는 방법을 제시한다. 하느님의 단일한 행동과의 일치에서 벗어나는 그만큼 소외되고 불행하며 충만하지 못한 자신을 체험할 것이다. 즉 다른 사람을 위한 사랑보다는 자신을 위한 두려움 때문에 행동할 때에는 하느님의 행동을 듣기 싫은 소리로 체험하게 된다. 말하자면 내가 좋은 마음을 먹고 있는 순간에는 양심의 자극이라고 받아들이지만, 나쁜 마음을 먹고 있는 순간에는 가능한 한 그 자극을 덜 느끼려고 노력한다. 「영신수련」의 ‘선신과 악신을 분별하는 규범들 II’는 '자기의 죄를 정화하고 우리 주 천주께 봉사하는 데에 있어 더욱 완덕으로 나아가기를 진심으로 노력하고 있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느님의 현존과 일치된다면, 인간은 지금 여기에 있는 그대로의 인간으로 존재한다. 그리고 자신이 유한하고, 미소하며, 광대한 세계 역사 속의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는 인식을 편안하게 느끼며 살고 행동한다. 하느님의 단일한 행동, 그분의 뜻과 일치를 이루는 것은 슬픔과 고통의 세상 한가운데에서도 지극히 자유롭고, 행복하고, 충만해지는 것이다.

모든 인간이 형제 자매로 사는 것을 바라시는 하느님의 단일한 행동과 우리의 행동이 일치할 때, 우리는 자신이 흐름 안에서, 과거와 미래에 대한 상대적인 두려움에서 벗어나 현재에 살고 있음을 체험하며, 우리가 만나는 신비한 현존께 말을 건다. 우리는 그분을 당신(thou)이라고 부르게 된다. 우리의 행동이 하느님의 단일한 행동과 일치를 이루지 못할 때, 불편과 부조화를 체험하며, 그 부조화가 의식에까지 이르게 되면 우리는 자신에게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더 높으신 힘' 을 부르게 된다.43)

하느님은 당신의 목적을 위해서 우리를 사용하시지는 않는다. 우리는 하느님의 목적을 위한 도구가 아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단일한 행동과 완전히 일치를 이룰 수 있다면 완전한 행복을 누릴 것이며, 사랑하는 사람들의 공동체를 지향하는 이 단일한 행동의 공동 창조자들이 될 것이다. 일치를 이루는 그만큼 행복해지고 충만해지며 그 공동체의 공동 창조자가 된다. 생명의 길이 주는 보속이다. 삶 안에 계시는 하느님의 활동을 식별하는 가장 좋은 기준은 내적, 외적 조화의 발달 감각과, 여러 중요한 사람들과, 자신의 세계와, 자신의 하느님과 연결은 되어있지만, 구별되고 독립된 자아의 성장 감각이다. 내 자신과 나의 반응을 신뢰하는 것과 내가 자신을 얼마나 쉽게 속일 수 있는가를 깨닫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식별을 위해서는 하느님께서 체험 안에서 당신 자신을 보여주심을 믿어야 하며, 한편으로는 그 체험을 생각없이 쉽게 믿어버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44)


③ 식별 과정

내 삶의 어떤 시점에서라도, 마음을 훈련하는 이 식별 과정을 시작할 수 있다. 참회와 회심을 향한 문은 언제나 열려 있다. 이냐시오는. 「영신수린」에서, 어떤 사람들은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을 이미 선택했고 따라서 마음대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을 위해 생활의 개혁을 제안한다. 내 미래의 많은 부분이 하느님의 단일한 행동과 온전히 일치하기 위해서 가능한 한 빨리 마음의 훈련을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엎질러진 우유를 한탄할 것이 아니라, 미래를 위하여 지금 하느님의 뜻을 찾아야 할 장소로 받아들이는 지혜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45)


가. 양심성찰

이냐시오는 사람들이 ‘기도’ 시간에 주기적으로 성찰을 하는 방법을 통하여 활동 속에서 관상하는 사람이 되기를 희망했다. 나는 그분과 일치를 이루기 위해서 하느님과의 의식적인 관계 안으로 들어가기를 기도하며, 의도와 행동에서 그분과 하나가 되도록 기도한다. 내가 하느님과 함께 미래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미래는 나에게 달려있다. 최선을 다하고 부활은 아버지께 맡긴다. 하느님의 단일한 행동에 내 행동의 '성공'이나 '실패' 를 맡기는 것이다.46)


나. 개인적인 식별을 넘어서

현재의 내 환경은 과거의 내 선택이 만든 산물만이 아니라 다른 많은 이들의 산물이며, 다른 사람들의 행동에 의존하고 있는 내 의도들의 '성공'과 '실패'의 산물이기도 하다. 현대 세계의 의사소통 구조와 경제 구조는 우리 모두를 상호 의존적으로 만들며 그러한 의존 관계를 의식하게 한다. 내가 역사상의 어떤 지점에서 행동하든 나는 우주 역사의 산물인 환경에 의해 구체적으로 가능한 범위 안에 제한되어 있다. 그리고 더 구체적으로는 인류의 산물에 의한 제한을 받는다. 그런 점에서 볼 때 같은 환경 안에서 행동하고 있는 사람들의 제한도 받는 것이다. 말하자면, 내가 그 역사의 바퀴를 다시 만들어내려고 해도 불가능한 일이다.

이러한 성찰들은 공동 식별이라는 문제로 나아가게 된다. 우리의 환경을 형성하는 대부분의 제도는 공동 결정의 산물이거나, 적어도 그 제도들에 대한 공동 묵인의 산물이다. 우리는 서로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더욱더 깨닫고 있다. 오늘날 가장 시급한 문제는 이러한 제도와 구조들을 하느님의 의지와 더욱 일치시키는 것이다. 결국 이 문제는 인간들 안에 어떻게 하면 더욱 많은 사람들이 공동 식별을 열망하고 그럴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하느냐 하는 문제로 귀착된다. 오늘날 종교가 직면한 도전들 중에서 그러한 공동 식별을 가능하게 하는 여건을 촉진하는 것이 가장 큰 도전일 것이다.

그런데 1970년대 초에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킨 공동 식별의 열풍이 사라진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덧없는 일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도 희망의 징표들은 있다. 브라질의 '기초 공동체'(commumdades de base)와 남아메리카의 다른 지역들에서 이루어지는 기초적인 움직임은 평범한 사람들의 모임이 사회나 사회의 일부분을 형성하는 자신들의 힘을 믿을 수 있을 만큼 서로를 신뢰하게 하려는 것이며, 복음적 가치에 더욱 순응하게 하려는 것이다. 더욱더 많은 하느님의 백성들이, 모든 사람들이 한 공동체를 이루도록 의도하시는 하느님의 추진력과 사랑의 힘이 하느님의 단일한 행동을 방해하려고 애쓰는, 지옥 쪽으로 기울어있는 이 세계의 힘보다 더 위대하다는 것을 굳게 믿어야 한다. 우리 시대의 가장 큰 죄는 하느님의 힘을, 사랑의 힘을, 우리들 마음 안에 머무르시는 성령의 힘을 믿지 않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마음 안에 머무르시는 성령은 하느님의 행동이라는 음악의 소리굽쇠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성령께서 우리 마음 안에서 연주하는 음악을 더욱더 깨닫게 됨으로써 하느님의 단일한 행동에 일치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우리는 그 음조와 음색에 행동을 일치시킬 수 있으며, 우리의 체험을 나눔으로써 하느님의 단일한 행동이라는 음악 전체에 더욱 일치할 수 있다. 우리는 체험을 나눔으로써 최상의 의미로서의 교회, 즉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이 우리 안에 현존하신다는 표징이 된다. 그러나 그러한 일치는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겸손, 금욕, 정직, 기도를 향한 투신. 성찰, 공동체의 나눔 등이 절대로 필요하다. 하느님의 단일한 행동인 음악에서 우리를 끌어내려고 하는 불협화음은 시끄럽고 집요하다. 우리는 제자들이 쫓아낼 수 없었던 악마에 대해 예수께서 “그러한 것은 기도가 아니면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나가게 할 수 없다.”(마르 9,29)고 말씀하신 것을 기억해야 한다.47)


다. 식별 기준

영성 식별에 있어 교회 전통의 가장 중요하고 확실한 기준은 결과를 보고 확인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마태 7,20)라고 하셨다. 사도 바오로의 스승인 가말리엘은 복음을 전하는 사도들을 잡아놓고 어떻게 다뤄야 할지를 고민하며 식별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스라엘 최고 의회원들에게 말한다. “이스라엘인 여러분, 저 사람들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 잘 생각하십시오. 얼마 전에 테우다스가 나서서, 자기가 무엇이나 되는 것처럼 말하였을 때에 사백 명가량이나 되는 사람이 그를 따랐습니다. 그러나 그가 살해되자 그의 추종자들이 모두 흩어져 끝장이 났습니다... 저 사람들 일에 관여하지 말고 그냥 내버려 두십시오. 저들의 그 계획이나 활동이 사람에게서 나왔으면 없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에게서 나왔으면 여러분이 저들을 없애지 못할 것입니다. 자칫하면 여러분이 하느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사도 5, 34-39)

둘째로, 그러한 결정이 내려졌을 때, 그 결정으로 누가 이익을 얻고 누가 손해을 보는가? 바오로 사도는 참된 은사들은 교회(의 발전)에 도움을 주고(1코린 14,4.12.26 참조), 공동 이익을 위하여(1코린 12,7 참조) 그리스도의 몸의 성장과 일치에 기여한다.48) 십자가의 신비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네가 살기 위해 너를 죽이는 세상의 방법이 아니라, 너를 살리기 위해 나를 죽이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셋째로, 성경의 기적들처럼 주님께서 직접 베푸셨다는 확실한 표징이다. 그런데 어떤 이는 세상 자연 질서가 잠시 멈추거나 변화된 것을 기적으로 보고, 어떤 이는 자연이 애초에 주님께서 만들어 주신 그 질서에 따라 움직이는 것을 기적으로 보는 이도 있다. 그리고 이런 면에는 인간적으로 할 수 없다는 확실한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결과이기도 하다. 사도 바오로는 “너는 내 은총을 넉넉히 받았다. 나의 힘은 약한 데에서 완전히 드러난다.”(2코린 12,9)고 함으로써 나약한 인간에게서 드러나는 하느님의 영광에 대해 언급한다. 또한 이 연장선에서 우리는 약할 때, 인간이 자기 힘으로 이것 저것을 다 하다 하다 못해서 포기할 정도가 되었을 때 하느님께서 임하신다, 아니 그 때서야 인간은 하느님께 귀를 기울이게 된다고도 말할 수 있다.

넷째로, 하느님의 계시는 교회에 위탁된 신앙의 내용이 되는 기존의 계시와 조화를 이루며 또한 그것을 풍부히 한다(1코린 14,37-38; 15,3-8; 갈라 1,15-16; 필립 3,12 참조).49)

다섯 번째로, 식별의 과정에 불안보다 그리스도께서 내려주시는 평화가 깃들었는가? 사도 바오로는 “하느님의 뜻에 맞는 슬픔은 회개를 자아내며, 구원에 이르게 하므로 후회할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현세적 슬픔은 죽음을 가져올 뿐입니다.”(2코린 7,10)라고 합니다. 자끄 퀼레는 참된 선물은 빛과 평화로 드러난다고 한다(1코린 12,2; 14,32-33; 2코린 7,10; 로마 8,5; 14,17-18 참조).50)

여섯째로, 형제적 사랑은 성령의 열매 중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1코린 3,3; 8,13; 로마 14,15; 2코린 6,4-7 참조). 사도 바오로는 성령의 열매를 “사랑, 기쁨, 평화, 인내, 호의, 선의, 성실, 온유, 절제”(갈라 5,22-23)라고 말한다.

일곱째로, 사랑은 성령의 변화없는 표지인 동시에 식별과 관련된 하나의 원칙이다(1코린 13,4-5; 에페 4,14-15 참조). 사도 바오로는 기도한다. “여러분의 사랑이 지식과 온갖 이해로 더욱더 풍부해져 무엇이 옳은지 분별할 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순수하고 나무랄 데 없는 사람으로 그리스도의 날을 맞이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오는 의로움의 열매를 가득히 맺어, 하느님께 영광과 찬양을 드릴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필리 1,9-10)51)

여덟째로, 사도 바오로는 식별의 최고의 기준을 예수 그리스도와 맺는 관계에 둔다(1코린 2,10.15; 11,29 참조). “나는 여러분 가운데에 있으면서 예수 그리도 곧 십자가에 못박히신 분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기로 결심하였습니다.”(1코린 2,2) 그리고 “하느님의 영에 힘입어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예수는 저주받아라.’할 수 없고, 성령께 힘입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님은 주님이시다.’할 수 없습니다.”(1코린 12,3)52)

필자는 영의 식별이라는 관점에서, 언제나 무엇을 결정하기 전에 다음과 같은 사항을 점검해 보도록 권하고 싶다.

첫째, 내가 완전한 정보의 바탕 위에 결정을 내리게 된 것인가? 불완전하거나 왜곡되거나 추측된 정보를 가지고 결정을 내리지는 않는지 확인해야 한다.

둘째, 충분한 검토와 나의 최소한의 손실을 감안한 결정인가? 감정에 휘말리거나 한 쪽으로 기울고 있거나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이상만을 가지고 빨리 결정해 버림으로써 속단과 경거망동의 폐해를 피해야 한다.

셋째, 긍정적인 시각과 진취적인 지향을 가지고 결정하는가? 가급적 만사를 긍정적으로 보고, 가능하면 좋은 쪽으로 해석하려고 노력하고 무엇보다 그 모든 것이 주님의 안배 속에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결정을 내릴 것. 악의 유혹과 난동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내가 생각하는 것 너머나 아니면 다른 방향에서 충분히 검토해야 한다.

넷째, 우리의 현실에서 주님의 뜻을 찾기 위해 기도하는가? 결정을 내리기 전에, 내리는 과정에 그리고 결정을 내린 후에 주님의 뜻에 맞는지를 때닫도록 주님께 식별의 은총을 내려주시고 우리의 결정이 주님의 뜻안에 있다면 그 결정이 열매를 맺을 수 있는 힘을 내려 주시도록 기도했는지? 내 결정이 주님의 뜻 안에 있는 지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주님의 뜻은 무엇인지 별도로 생각해 보고, 주님의 뜻이 확인될 때까지 깊이 숙고하고 기다리면서 천천히 결정을 내린다.

다섯째, 우리를 용서해주시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현실에서 우리에게 내려주시는 평화와 위안 속에서 살기 위해 노력하며, 모든 것은 주님께서 주시는 은총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가?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 말한다.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1데살 5,16-18)



3. 영성상담

이 항에서는 영성상담을 조옥진의 「사목상담의 이론과 실제」와 「영성과 심리상담: 영성심리상담 입문서」를 통해, 사목상담과 영성상담의 정의와 인간 본성에 대한 관점, 사목상담과 영성상담의 특성, 사목상담의 목적과 목표, 영성상담의 방법과 기술, 영성상담자의 자세와 태도, 사목상담의 관계, 그리고 사목상담의 근원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나누어 살펴본다.


1) 사목상담과 영성상담의 정의

조옥진은 「영성과 심리상담: 영성심리상담 입문서」에서 사목상담의 목적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성숙과 성령이 활동하시도록 갖추어야 할 자세를 준비시키고, 하느님과 이웃과의 관계를 촉진시키는 것이라고 밝힌다. 따라서 사목자는 사목상담자로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하여 일반 상담이론을 배워야 한다. 또한 심리학에 관심을 가지고 인간의 특성에 대해서 이해하며 상담에 임해야 한다. 그러나 사목자는 이러한 지식들에 집착하기 보다는 신축성 있고 융통성 있게 상황에 대처하도록 항상 기도하는 자세로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53)

그리고 그는 그리스도교적 측면에서 바라본 사목상담으로서 영성상담은 인간적 및 복음적 성숙을 지향하는 이와 그를 돕는 이 사이에 이루어지는 영적 만남의 일환이라고 정의내린다. 영적 만남은 상담을 통하여 내담자의 영적 생활을 돕고, 어떻게 영성 생활을 할 것인지 안내해 준다고 한다. 나아가 내담자는 영성상담을 통해 그의 영적인 상태를 점검, 파악하고, 더 나은 영적인 현재와 미래를 볼 수 있거나 제안 받을 수 있다. 즉, 영성상담자는 상담을 통하여 내담자에게 인생의 의미와 문제뿐만 아니라 영적인 발전, 성장, 진보의 길을 제시한다. 상담이 한 개인의 자아 발견과 성장을 위한 도움을 주는 것뿐만 아니라 그 상담 안에서 영적인 것들이 주류를 이룰 때, 이것을 영성상담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아울러 영성상담은 상담을 통한 과정 안에서 영적인 성장의 길을 찾고 추구하기에 일반상담에서의 원리, 기술, 방법 등이 거의 그대로 적용된다고 한다.54)


2) 인간 본성에 대한 관점

그는 「사목상담의 이론과 실제」에서 사목자가 특정한 위치나 관점에서 자신의 모든 상담을 행하며, 그리스도인적 신앙과 인간에 대한 그리스도인적 전망 안에서 모든 사람을 대한다고 한다. 인간본성에 대한 관점을 더 깊게 자극시키는 사항들은 다음과 같다.

① 인간은 하느님의 자녀로서 그분의 모습대로 창조되었고 그분의 사랑의 대상이다. 이것은 사목자를 찾아가는 모든 사람이 다 하느님의 자녀임을 의미한다. 따라서 한 개인은 내담자나 본당신자이기 이전에 하느님의 자녀이다. 그는 하나의 문제나 사례의 주체자가 아니라 하나의 인간인 것이다. 그가 어떤 짓을 했던 그리고 매우 천하고 부당하며 적대적이고 또한 사목자의 봉사를 거부하더라도 그는 여전히 하느님의 자녀이며 또한 그렇게 여겨야 한다. “아버지께서 얼마나 큰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셨는지 보시오.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라 불리게 되었으니, 과연 우리는 그분의 자녀들입니다.”(1요한 3,1 참조)

② 인간은 유한하고 의존적이다. 인간의 지식은 한정되어 있고그의 능력도 제한적이다. 따라서 인간은 자신의 존재 가치와 삶의 의미, 그리고 궁극적인 성취를 위하여 다른 사람이나 하느님께 의존하고 있다.

③ 인간은 은총과 구원이 필요한 죄인이다. 이것은 내담자 뿐만아니라 상담자에게도 신자뿐만 아니라 사목자에게 해당된다 :"실상 모든 이가 범죄하였고 그래서 하느님의 영광을 빼앗겼다."(로마 3,23 참조) 하느님의 은총과 용서가 인간에 내려진다. 이것이바로 복음의 핵심이다.

④ 인간은 과정(process)중에 있다. 인간은 되어가고 있는(becoming) 지속적인 상태에 놓여 있다. 그는 과거와 미래를 자연스럽게 바라 볼 능력이 있고, 그의 현재는 그에게 자유로워진 과거와 그가 나아갈 미래 사이에 표류한다. 인간은 성장의 가능성과 결정할 능력, 그리고 사랑에 반응할 능력을 가지고 있다. 예수께서는 언제나 진실되어 있고 더 나아질 수 있는 관접에서 인간을 보았다. 한 인간이 사목자를 찾아간다는 사실은 바로 그가 변화하고 성장하기를 원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⑤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다. 자기(self)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 안에서만 존재한다. 인간은 사랑할 수 있고 사랑에 응답하는 존재이다. 이 사랑은 하느님의 사랑과 인간의 사랑 모두를 말한다. 하느님은 당신의 사랑에 대하여 인간이 응답하기를 바란다. (이것은 탕자의 비유와 착한 목자의 비유, 그리고 신약성경의 전반에 걸쳐 잘 나타나고 있다) 사람들은 또한 인간의 사랑에도 반응한다. 이것은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고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사목자는 사랑을 통한 구원의 전파자가 될 수 있다.

⑥ 심리치료와 사목심리학 모두는 배려(care)와 관심(concern)의 대상으로서 인간의 견해를 논한다. 따라서 인간에 대한 사목자의 이해는 반드시 성경과 신학적 가르침, 그리고 행동과학의 이론을 포함시켜야 한다. 왜냐하면 모든 진실한 이해는 하느님 안에 다 주어지기 때문이다.

⑦ 인간에게 베푸는 봉사는 신앙의 행위이다. 아우틀러A.Ouder는 "우리의 최종적인 확신은 우리 자신이나 인간 혹은 자연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안에 있다. 하느님은 당신 스스로 우리를 만드셨고 우리를 존재하게 하셨고 당신의 업적을 미완성으로 남겨두신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신앙의 행위는 "인간의 가능성이 충분히 실현되는 것들, 즉 하느님의 선제적인 사랑과 은총의 전수, 충만한 믿음에 대한 지적 협력, 그리고 인간에 대한 헌신 등을 통하여 치루어진다."라고 하였다.

⑧ 인간에 대한 봉사는 하느님께 대한 봉사이다. 월리암스D. D. Williams는 삶의 고통과 번민, 증오를 가지고 사목자를 찾아오는 사람은 누구인가를 질문을 던지고, "봉사자 앞에 서있는 사람은 바로 그리스도 자신이다."라고 답했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그리스도가 바로 인간이 필요로 하는 바로 그곳에 있는 분이다."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 있다. 그래서 월리암스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회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인용하며, 이러한 사실이 바로 사목적 관계를 더욱 깊게 하는 데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55)


3) 사목상담과 영성상담의 특성

조옥진은 사목상담과 영성상담의 차이와 영성상담과 심리학적 상담과의 차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① 사목상담과 일반상담과의 차이

가. 사목자는 교회와 하느님의 모습을 드러내는 상징적인 역할을 한다.

나. 병원이나 사회기관이 아닌 성당에 온다는 사목적인 배경이 내담자의 행동에 영향을 끼친다.

다. 사목자는 사제로서의 그의 신분 덕분에 가정이나 병원 등에 언제든지 사목적인 방문이 가능하기 때문에, 내담자와의 관계를 착수할 수 있다.

라. 한 개인의 교육훈련은 사람이나 상황을 보는 관점, 중요한 현안들을 평가하는 방법, 그리고 어떤 절차에 대해 결정하는 방법에 큰 영향을 미친다. 사제로서 교육을 받는 사목자는 사람에 대한 그의 교의적인 측면이나 종교적 진리에 대한 이해의 전망안에서 사태를 바라본다.

마. 공동체에서의 그의 역할 때문에 사목자는 어떤 영역에 대해선 전문가로 여겨진다.

바. 신학적 교육과 교회적 역할을 갖춘 사목자는 얼마든지 종교적 자원을 활용할 수 있다.

사. 사목자는 설교, 예배, 그리고 봉사단체의 지도 등 상담에 대해 보충적이거나 평형적인 다른 기능을 수행한다.

아. (본당) 사목자는 당면한 문제가 발생하기 전부터나 문제가 해결된 후에도 만남을 이룰 수 있는 한 내담자와의 지속적인 관계를 형성한다. 이러한 관졔는 사목자에게 그 내담자에 대한 인식배경과 사후검토의 기회를 주게 한다. 반면에 내담자가 (상담소) 사목자를 본당내의 활동영역에서 만나지 않기 때문에 내담자가 그에게 솔직하게 또는 개인적인 이야기를 더욱 편안하게 털어 놓을 수 있기도 하다.56)


② 영성상담과 심리학적 상담과의 차이

영성상담은 그리스도인의 성숙을 위해서 이웃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하느님과 영적 가치 추구를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심리학적 상담과 다르다. 또한 상담의 구성 요소에 있어서 심리학적 상담이 내담자와 상담자의 관계라면, 영성상담은 3주 관계를 이룬다. 즉 내담자, 상담자 그리고 성령의 관계이다. 영성상담의 장점은 내담자로 하여금 보다 더 직접적이고 내밀한 영적 체험을 할 수 있도록 돕는 데 있다. 이때에 영성상담자는 영적인 도움으로 내담자가 감정적이거나 감정적인 치유뿐만 아니라 진정한 자아를 인식하고 발견해 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무엇보다 영성상담의 핵심은 그 어느 것보다도 성령께서 내담자 안에 작용하시도록 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따라서 영성상담자는 내담자가 성령의 힘과 도움으로 내담자 자신의 문제, 자아 발견, 자아 성장, 치유에 도움을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는 영성상담과 심리상담은 다음과 같은 유사점과 차이점이 있다고 한다.

가. 넓은 의미에서 보면 영성상담과 심리상담은 유사한 형태이기에 이 둘은 서로 연결되고 질서와 법칙이 비슷하게 작용하기도 한다. 좁은 의미에서 보면 영성상담자는 내담자가 그리스도인의 참모습과 하느님·이웃·교회 공동체와의 올바른 관계를 회복하게 하여 종교적 ·윤리적 의무를 다하게 하는 것이다.

나. 가장 완전한 형태의 영성상담은 사제에게서 이루어진다. 왜냐하면 사제는 상담자로서 뿐만 아니라 고해성사나 미사, 전례, 여러 성사들을 통해 내담자를 영적으로 풍요롭게 하며 영흔의 치유를 도울 수 있기 때문이다.

다. 영성상담은 인간적 차원보다는 신앙적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하기에 내담자가 하느님의 말씀에서 위로를 받도록 해야 한다.

라. 영성상담자는 내담자를 하느님의 현존과 성령의 역사에 내맡겨드리도록 인도한다. 즉, 영성상담자는 자신과 내담자 외에 제3의 인격(하느님의 성령)의 현존을 의식하며 그분의 뜻을 따르고자 해야 한다.

마. 영성상담 안에서도 심리상담의 원리나 원칙 그리고 방법과 기술 등을 적절히 조화시켜야 한다.57)


4) 사목상담의 목적과 목표

그는 영성상담의 목표가 “성숙한 사람이 되면 그리스도의 충만한 경지에 다다르게”(에페 4,13)하는 것이라고 선언한다. 즉, 하느님의 은총이 인간 안에 작용하기 위해서는 그 본성을 전제하듯이 그리스도인의 성숙은 은총이 효율적으로 수용될 수 있는 응답적 기본 바탕으로 인간 성숙을 요구한다. 영성상담의 핵심 과제 및 과정은 내담자의 하느님에 대한 그리움, 하느님을 찾고 만남, 영적 생활에 대한 추구와 갈망, 불신앙, 의심, 혼돈, 교회에서의 혼란과 분열과 상처, 삶의 길, 신앙과 인생의 의미와 위기 등 실로 다양하다. 혹은 사목상담과 마찬가지로 개인적인 삶의 문제에 대하여 어떠한 영적 조명을 받을 필요가 있을 때, 영성상담은 내담자의 전반적이거나 부분적인 영적 생활에 관하여 상담을 하게 된다고 밝힌다.58)

사목상담의 목적은 다음과 같다.

① 과도한 긴장 감소 : 대부분의 내담자들은 어느 정도의 긴장을 가지고 있고 몇몇의 내담자들은 참으로 과도한 긴장을 가지고 있다. 사목자의 목적은 내담자의 정서를 안정시키고 그를의 불만을 감수시키도록 하는 데 있다.

② 해로운 갈둥 해소 : 사목자를 찾아오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배우자나 자녀들, 부모, 선생, 직장상사, 그리고 이웃사람들과의 관계로 인한 잘등을 안고 있다. 이러한 사람들의 갈등이 해소되지 않을 때 다른 사람에 대한 적개심이 일어난다. 그러나 절제된 분노는 오히려 그 결과에 있어 긍정적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그러한 분노는 상대방을 이해하고 사랑으로 숭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③ 통찰과 자기이해 개선 : 통찰력은 자기 자신을 아는데 있어 지식이상의 능력이다. 그것은 개인 자신의 감정과 긴장들을 이해할 수 있는 정서적 이해력이다. 자기이해를 촉진시키는 일은 내담자에게 커다란 도움이 된다. 그러나 통찰이 내담자에게 너무 위협적이거나 위태로울 수도 있고 그것이 행동으로 이끌 때 부적절한 경우도 있다.

④ 자기수용 증대 : 대부분의 내담자들은 빈약한 자기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한다. 수용은 설득에 의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담자 자신의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자신의 욕구와 문제들에 대한 깊은 이해를 통해서 주어진다.

⑤ 내적 자원 방출 :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 자신 안에 강한 자력을 가진다. 때때로 이러한 자원들은 외부로 방출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약간의 격려나 지지, 그리고 확신에 의해 내담자들은 그들 자신의 자기 강함을 습득케 할 뿐만 아니라 그들 자신의 문제를 극복케 하기 때문이다.

⑥ 정보 제공 : 흔히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정보는 제한되어 있거나 잘못되어 있고 정서에 의해 혼동되어 있다. 어떤 문제들은 혼동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고 해결되지 않는다. 또 어떤 결정들은 정확한 정보제공 엄이 원하는 결심에 도달할 수가 없다. 따라서 사목상담자의 역할은 "우정어린 교사"로서 주어진다.

⑦ 지속적인 성장 촉진 : 사람들은 그들의 즉각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즉각적인 결정을 만들 뿐만 아니라 그러한 과정 안에 성장되어야 한다. 즉, 그들은 행동의 새로운 수준에 도달해야만 하는 것이다. 지속적인 성장을 촉잔하는 것은 당면한 상황에 대한 보상의 증표이다.

⑧ 현실적인 선택 만듦 : 어떤 사람들은 그들에게 당면한 결혼관계나 진로안내, 혹은 직업선택 등에 대하여 사목자에게 상담하러 온다.

⑨ 인간관계 개선 : 모든 사목활동의 기본 목적은 인간 서로 간의 이해와 수용을 돕는 데 있다. 바꾸어 말하면, 인간 서로 간에 사랑하고 사랑받도록 돕는 데 있다.

⑩ 자기달성과 자기실현에 도달함 : 사목상담은 문제(갈등)해결 뿐만 아니라 개인의 잠재력에 대한 성취나 삶의 의미와 목적에 대한 실현을 향한 운동에 관련된다.

⑪ 영적 자원 심화 : 사람들은 자신의 영적 자원들을 발견할 필요가 있고 그들의 영적 자원들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키고 신앙의 삶을 영위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삶의 형태는 쉬운 것은 아나다. 그러나 영적 자원들은 개인이 자라온 배경과 상담자 자신의 폭넓은 경험에 따라 성장 변화될 수 있다. 따라서 영적자원들을 심화시키는 것이 사목상담의 최종적인 목적이다.59)


5) 영성상담의 방법과 기술

그는 영성상담의 방법 및 기술은 일반상담의 원리나 기술과 거의 같은 방법으로 적용되지만, 영성상담에는 다음과 같은 특징적인 기술들이 있다고 한다.

먼저 내담자로 하여금 신앙이나 인생의 문제에 대하여 진솔하게 털어놓게 한다. 보통 일반 본당에는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시공간적으로 충분히 어려움을 들어주거나 상담할 수 있는 사목자가 많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영성상담은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주는 것이 우선적으로 중요하다. 이야기를 들으며 대화나 토론을 하기도 하는데, 가능하면 너무 신학적이거나 전문적인 교회 용어의 표현은 피해야 한다.

영성상담을 하는 동안에 필요하면 영적인 발전, 성장, 진보에 관하여 가르쳐줄 수도 있다. 그리고 어떻게 영적으로 거듭나고 새로워질 수 있는지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제안하고 토론하고 가르치기도 하며,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영적인 부분의 필요성과 중요성에 대하여 일깨우게 한다. 또한 기도, 묵상, 성경 말씀을 활용하기도 한다. 영성상담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영적인 조명이기에, 영성상담자는 내담자가 성령의 이끄심 안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성령께의탁하고 기도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일반상담과 마찬가지로 영성상담자도자신의 진실성, 개방성, 생동성, 심리적 건강등에 대해 영성상담을 통하여 내담자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해야 한다.60)


6) 영성상담자의 자세와 태도

① 영성상담자의 자세

영성상담자는 시대와 상황에 따른 새로운 요구에 응할 수 있는 쇄신적 자세와 알맞은 자질을 갖추어야 한다. 동시에 교회의 정통 및 전통적 정신에서 벗어나서는 안 됨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데 있어 다른 이에게 도움을 주며, 동행해주는 영적협조자에게는 본질적으로 두 측면의 조화가 요구된다. 하나는 하느님이 그를 도구로 쓰시고자 주시는 선물로서 초자연적 가치, 즉 카리스마이며. 다른 하나는 그 선물을 잘 활용하려는 노력 및 준비 태세로서 구원 사업의 협조 자세이다. 영성상담자는 각별하고 적절한 카리스마를 받으며 사명을 받지만. 한편 천부적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초자연적 방법에만 의존할 수 없는 능력과 자격을 갖추기 위해 후천적으로 힘써야 한다.

영성상담자가 갖추어야 할 자세는 다음과 같다.

가. 적절한 카리스마: 영성상담에 필요한 인내, 사랑, 지혜의 말씀 그리고 특별히 영의 식별력이 있어야 한다.

나. 인간 및 영적 상숙: 다른 사람의 인격의 신비를 이해하고 성숙하도록 돕기에 앞서, 자기 자신의 인격의 신비를 먼저 알고 성숙해야한다.

다. 신학 및 영성적 지식: 영적 가르침을 위한 스승이어야 하겠기에 영적 체험에 이어 이론 및 실천적 영성을 알아야 한다.

라. 인간에 대한 학문의 이해 : 인간에 관한 여러 분야의 지식을갖춘다면, 그것은 참으로 유용하고 가치 있는 일이다.

마. 경험 혹은 체험 : 많은 내적 체험과 이웃을 돕는 데 오랜 경험을 가진 이가 좋은 자격을 갖춘 영성상담자가 될 수 있다. 따라서 기도의 체험과 봉사적 경험은 훌륭한 영성상담자의 기본이다.61)


② 영성상담자의 태도

사목상담에서 기술과 기법도 중요하지만 가장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인은 사목상담자의 태도이다. 태도는 모든 것을 감싸고 한 개인의 전체적인 접근을 형성하게 한다. 다음의 태도들은 자기평가와 성장을 위한 지침으로 사용될 수 있고 또한 발전시키고 유지되어야 한다.

가. 집중 : 어떤 중요한 분야에 있어 성취는 강한 집중력으로 요구한다. 운동, 학업, 연구, 예술, 상담 등에서도 집중의 요구는 마찬가지다. 내담자는 상담자가 그에게 집중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느낄 때 상담의 효과를 맛보게 된다.

나. 이해 : 어떤 누구도 다른 사람들을 완전하게 이해하지 못한다. 오직 부분적인 이해를 할 뿐이다. 그러나 부분적인 이해라 하더라도 상담자가 내담자를 이해하기 위하여 모든 노력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내담자가 느낀다면 두 사람간의 관계는 대단히 촉진적일 수 있라,

다. 존경 : 여기서 이 개념은 종교적인 측면에서 사용된다. 사목상담자는 모든 사람을 하느님의 자녀로 보기 때문에 내담자에 대한 그의 노력과 의도는 가치가 있다.

라. 수용 : 모든 사람들은 무조건적인 가치의 사람으로서 받아들여져야 한다. 그러나 수용이라는 것이 악의적인 것을 방관하고 잘못된 행동을 무조건 너그럽게 봐 준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여기서 수용은 사목상담자가 내담자의 행동이나 의견, 신념이 어떻든 간에 상관치 않고 무조건 그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따라서 수용은 성의가 있는 진정한 것이어야 한다. 만약 내담자가 사목상담자에게 진실로 수용되어 있는 자신의 모습을 느긴다면 그는 도움을 받게 될 것이다.

마. 객관성 : 이것은 냉담함이나 전문성, 그리고 무관심의 태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사목상담자는 내담자와의 관계에 있어 보다 심도있게 항상 객관적인 측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객관적인 태도만이 사목상담자의 가장 큰 봉사의 하나가 된다. 왜냐하면 한 개인은 그 자신에 대채서 객관적일 수가없기 때문이다.

바. 인내심 : 상담은 시간을 요한다. 그리고 진전은 매우 천천히 주어진다. 그래서 상담과정에는 인내가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삶을 변화시키는 것은 느리고도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그것을 견디고 인내할 사람이 드물다. 따라서 사목상담자는 자신의 인내심에 의해서 상담의 성공여부를 가질 수 있다.

사. 확신감 : 사목상담자는 확신감을 가지고 상담에 임해야 한다. 또한 그는 자신의 상담기법에 대한 확신감도 가져야 한다. 뿐만 아니라 그는 상담과정에 있어서도 확신감을 가져야 한다. 이러한 확신감은 철저하고 사려 깊으면서도 지속적인 준비와 연구를 함으로써 가능하다.

아. 낙관성 : 낙관주의는 피상적인 것도 아니고 감수성적인 것도 아니다. 그것은 순수하고 진심에서 우러난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탕자의 비유(루가 15, 11-32 참조)에서 처럼 탕자가 다시 아들로 원상복귀 된다는 확고함으로 그들의 미래를 낙관한다. 일반적으로 내담자는 자신의 삶에 대한 확고함이 부족하거나 비관적이고 쉽게 좌절한다. 그래서 일반적인 심리치료자들은 성장과 변화, 그리고 이해가 생길 수 있다고 믿고 상담을 시작한다. 사목상담자도 그렇게 할 수 있다. 따라서 사목상담자는 자신의 낙관성을 내담자의 삶안에 반영시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자. 사랑 : 사랑 역시 피상적이고 감수성적인 개념으로 간주하는 것이 아니고 객관적이고 실제적인 것이다. 사목상담자는 내담자를 돌보는 자이다. 그것도 진정한 관심과 연민의 관계안에 상담자 자신이 먼저 스스로 솔선수범하는 가운데 내담자를 돌보는 것 이다.

차. 헌신 : 맥키니F.Mckinney는 「개인적응을 위한 상담」 이라는 책에서 상담자의 사무실은 "신성한 곳"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예배 장소가 거룩한 곳이라고 불리우는 것은 그 곳에서 신성한 일들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와 같이 상담실도 역시 성스러운일들이 일어난다. 왜냐하면 신자들이 상담실을 통하여 고백성사, 선택결정, 하느님 안에 자기각성, 참회의 표출 등이 일어나기 때문에 거룩한 사목적 배려의 한 요소이다. 따라서 이러한 신성함의발생은 그리스도인의 영성생활에 기초가 되기 때문에 사목상담자의 헌신은 그리스도적 사명감 안에서 필연적이다.

카. 신앙심 : 사목상담자는 자신보다 하느님이 신자들(내담자)에 대해 더욱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믿는다. 따라서 사목상담자가 하느님의 역할을 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그는 비록 하느님의 말씀이 상담과정 안에 직접적으로 언급되지 않는다하더라도 하느님이 그 과정 안에 함께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따라서 사목상담자가 인내하고 수용하며 낙관할 수 있는 것은 하느님 체험에 의한 그의 신앙심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사람을 섬기는 것을 마치 하느님을 섬기는 듯이 한다. 그것은 바로 그의 신앙심에 기초하기 때문이다.62)


7) 사목상담의 관계

사목상담에서 일어나는 사목자와 내담자의 관계에 대해 조옥진은 이렇게 말한다. 맥키니는 그의 저서 「개인적응을 위한 상담」에서 "상담에 영향을 주는 모든 요인들 중에서 대인관계(interpersonal relationship)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로저스C. Rogers는 "만약 우리가 어떤 종류의 인간관계를 제공할 수 있다면 성장과 변화는 반드시 일어날 것이다."라고 말함으로써 인간관계의 중요성을 언급하였다. 일반 상담자들의 진실은 동등하게 사목상담자들의 진실이기도 하다.

이런 진실한 관계는 "친밀한 일치감"(rapport)이라고 간주한다. 사전에 의하면 그것은 사람들간의 관계로서 "가까운 이해나 상호의존 속에 일하는 것"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관계는 "좋은"(good) 관계로 칭할 수 있다. 흔히 좋은 관계일 때 좋은 결과가 생긴다는 것은 과장된 표현이 아니다. "친밀한 일치감"에 대한 강조는 비록 사목자들이 상담에 대한 훈련을 받지 않았고 심리학적인 기술지식을 익히지 않았어도 왜 그들이 이전의 세대들에서 상담을 높은 성공률로 이끌었는가를 잘 설명해 주는 이유이다. 그것은 그들이 상담에 임할 때마다 무엇보다 먼저 철저하게 "친밀한 일치감"으로 관계를 성립시켰기 때문이다. 그래서 본당신자들과의 관계를 형성한 사목자들은 이해와 연민, 그리고 관심으로 특징지었고 그 겪과 훌륭한 상담의 결실을 낳게 하였다.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 결코 상담의 가치나 기법훈련의 필요성, 그리고 행동의 역동성을 감소시키거나 경시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관계가 이러한 것들의 중요성을 더욱 드러내게 한다. 왜냐하면 이해와 기법들을 통하여 더 좋은 관계가 수립되기 때문이다. 경우에 따라서 사목자는 관계가 좋지 못한 사람들과도 함께 일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마치 심리치료자가 그의 내담자들을 선택해서는 안되는 것처럼 사목자도 그의 본당신자들을 선택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적절한 기법을 사용하는 것과 함께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 지에 대한 그의 이해 때문에 사목자는 비록 관계가 원만하지 못한 신자라 하더라도 그에게 계속해서 도움을 줄 수 있다. 또한 그렇게 함으로써 관계가 호전되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상담관계에 있어 반드시 마음에 새겨두어야 할 특정한 요소들이 다음과 같이 주어진다.

① 불완전한 관계 : 모든 대인관계는 압박감과 긴장을 초래한다. 왜냐하면 서로 다른 성장배경, 상이한 느낌, 제한된 시간 ,그리고 다른 많은 일들이 전제되고 있기 때문에 두 사람의 관계는 언제나 완전한 일치, 조화, 그리고 바람으로 이루어질 수가 없다. 그렇다고 이러한 요소들이 좋은 결과를 일으킬 수 없다는 것으로 의미하지는 않는다.

② 가변적인 관계 : 상담관계는 결코 항구적일 수 없다. 또 다른 어떤 관계가 형성됨으로써 스트레스나 압박감이 주어진다. 때때로 모든 것이 순조롭게 풀릴 수도 있고 때로는 긴장이 더 속출할 수도 있다.

③ 전문적인 관계 : 사제서품에 의한 덕성과 신학교육을 이수한 사목자는 그의 품위와 직위에서 특정한 역할을 담당한다. 따라서 신자들은 그가 사목자이기 때문에 그에게 다가오는 것이다.

④ 정서적인 관계 : 심충적인 감정의 문제는 토의된다. 왜냐하면 인간의 삶 안에 엄청난 현안들은 감정에 의한 문제이다. 즉감정은 인간의 행동방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따라서 감정의 전이(transference)와 역전이(counter transference)는 언제나 마음 안에서 이루어진다.

⑤ 감정이입의 관계 : "감정이입"(empathy)이라는 말은 상담문헌에서 동정, 연민(sympathy)을 대신해 온 개념이다. 그것은 낙담에 대한 위로라기보다 낙담 그 자체에 함께 공감하는 "사람의 내적 준거체제 속으로 들어가는" 상담자의 시도이다. 따라서 감정이입은 어떤 기술, 훈련, 상상, 관심, 그리고 객관성을 요구한다.

⑥ 유일(독특)한 관계 : 두 사람(상담자와 내담자)중의 한 사람은 서로의 가장 깊은 관심, 희망, 두려움, 목적, 의심, 그리고 신앙에 집중한다. 어떤 것도 적당한 시간 속에 배제될 수 없다. 죄책감, 분개, 적의감, 희망, 그리고 열망들 모두가 고려되는 유일(독특)한 것들이다. 이런 유일(독특)한 것이 발생하는 데 있어 인간의 삶 안에 거의 다른 관계가 있을 수 없다.

⑦ 목적추구의 관계 : 이것은 우정관계와는 다르다. 예를 들면, 우정관계는 우정 그 자체를 위하여 존재한다. 그러나 상담관계에 있어 두 사람은 스트레스 해소, 현실적인 삶의 영위를 지도,문제를 이해하고 해결하도록 시도, 행동수정, 그리고 신앙을 심화시키는 데에 집중한다.

⑧ 상호관계 : 주요 목적이 본당신자의 어려움을 해결하는데 있지만 양쪽 모두에게 유익이 되며, 두사람 모두가 관여되므로 양쪽 다 그들의 역할과 능력에 따라 책임을 나누고 상담과정 안에서 함께 배우고 성장을 일깨운다.

⑨ 이해적인 관계 : 이것은 언제나 불완전하며 좀 더 많은 지식과 통찰이 주어져야 한다. 사목자는 이해력을 돋구기 위하여모든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비록 사목자의 이해가 불완전하더라도 사목자가 내담자 자신을 이해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내담자에게는 도움이 된다.

⑩ 수용의 판계 : 수용은 심리치료나 신학의 문헌에 나오는 핵심적인 낱말이다. 로저스는 내담자가 무조건적으로 가치가 있는 사람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말했다. 틸리히P. Tillich는 "비록 우리가 받아들여 질 수 없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받아들여져야 한다. "고 말했다. 수용은 또한 기본적인 단어이다. 많은 이들이 용서라는 용어와 혼동을 일으킨다. 한 인간을 수용한다는 것이 그의 행동을 용서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초보 상담자들은 종종 사람을 수용한다는 것을 쉽게 생각한다. 실제로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상담자에게 협조하는 사람들 뿐만아니라 항거하는 사람들도 수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즉, 행동과 사고, 목적이 상담자와는 다른 사람들까지도 수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단련과 연습, 실천, 이해가 필요하다. 그러나 수용은 많은 내담자들이 다른 어떤 곳에서도 경험하지 못한 것으로 상담관계에 있어서 대단한 활력이 될 수 있다.

⑪ 그리스도교적 관계 : 이 관계는 무엇보다 신약성경에 나오는 사랑에 근거한다. 사랑은 "참아주고 친절하며‥‥시기하지 않고 자랑하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고 무례하지 않습니다. 사심을 품지않고 성을 내지 않으며‥‥ 앙심을 붐지 않고 악을 보고 기뻐하지도 않으며‥‥ 진리를 보고 기뻐합니다. 모든 것을 덮어 주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I코린 13,4-7). 사목자는 그의 원동력과 영감을 그리스도의 모델과 영으로부터 얻는다. 그리스도께서 증명하고 계시하신 사랑과 연민, 이해와 인내, 그리고 믿음 안에서 사목자의 궁극적인 희망이 있다. 그러나 아무도 그리스도를 완전히 본받지는 못한다. 실제로 모든 인간은 그저 그리스도에 대한 흥내를 내려고 노력할 뿐이다. 따라서 우리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적 관계를 향하여 움직임으로써 어느 정도의 그리스도화에 도달할 수 있다. 그러므로 사목자는 무엇보다 먼저 그리스도인적 성숙과 영성생활에 대한 자기성장에 기반을 두고 있다면 그가 제공할 수 있는 도움을 내담자에게 전하여 진실한 그리스도교적 관계로 성립될 것이다.63)


8) 사목상담의 근원이신 예수 그리스도

조옥진은 사목삼담의 근원을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찾는다. 그래서 그는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에 대한 깊은 관심을 지니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문제를 해결해 주는 진정한 사목상담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비록 성경의 본문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와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이 짧게 축약되어 보고되고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와 인간의 만남 속에는 사목상담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사고와 감정, 그리고 행동의 변화가 수반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한다.


① 예수님의 인간관

무엇보다도 예수님은 인간을 존귀한 피조물로 보았다. 달리 말해 예수님은 자신과 하나가 된 성부의 눈으로 이 세상을 보고 인간을 파악했다. 따라서 인간이 하느님의 모상을 따라 창조된 피조물이라는 사실은 예수님이 인간을 이해했던 대전제이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민족적, 종교적, 사회적 편견을 뛰어넘어 다른 민족, 다른 종교, 그리고 사회의 어떠한 계층이거나를 따지지 않고 그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다가섰다. 예수님은 인간을 죄의 고통에 시달리는 존재로 파악했다. 실제로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이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바로 죄와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는 인간을 해방시키려는 데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따라서 예수님은 상담을 통해서 죄책감으로 부터 인간을 해방시켰다.

예수님은 인간을 심리적 존재로 파악했다. 인간은 내적 욕구와 충동을 지니고 그러한 충동에 의해 비합리적으로 행동하기도 하며,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하지 못하기도 하는 복잡한 내면세계를 깊이 있게 이해하고 있었다. 달리 말해 예수님은 인간의 외적인 행동 뿐만아니라 그의 내적인 세계까지 꿰뚫어 보는 심안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예수님은 인간을 사회적 존재로 보았다. 따라서 예수님은 그 당시 사회로부터 소외되고 따돌림을 받았던 많은 사람들을 찾아내어 그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다시 그가 버림받았던 사회로 되돌아가게 하셨다.

상담에서 상담자가 지닌 인간관은 자주 중요하다. 왜냐하면, 상담자가 인간을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서 상담의 방법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인간을 어떻게 보느냐 하는 것은 내담자의 문제를 어떻게 규정하느냐 하는 문제와 결부되고 내담자의 문제를 규정하는 각도에 따라서 그 치료방법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정신분석에서는 인간을 비합리적이고 결정론적인 존재로 보았고, 행동주의에서는 인간의 행동은 어떤 것이나 환경 안에서 학습된 것으로 보고 환경론적 결정주의의 입장에서 인간을 파악했으며, 인본주의 심리학에서는 인간은 자신의 존재로 보았다. 예수님의 인간관은 전체적이고 통합적이며 영적이다. 예수님은 심리학에서 주장하는 심리학적 인간관을 포함하여 영적 관점에서 인간을 이해하고 있다.


② 예수님의 상담기법

상담은 상담자와 내담자가 만나는 순간부터 시작되지만, 실제적인 의미에서 상담의 시작은 상담자가 내담자의 문제를 파악하는 것에서 부터 시작한다고 볼 수 있다. 상담자가 내담자의 문제를 파악함에 있어 메이May는 "상담자는 내담자에게 민감하게 반응해야 한다. 특히 그들의 희망, 공포, 긴장을 주의해서 살펴야하며, 내담자의 사소한 표현, 목소리의 고저, 자세, 얼굴표정, 옷차림, 몸의 움작임 등에 대해서도 예리하게 관찰해야 한다."고 말했다. 예수님이 만난 여러 사람과의 상봉 속에서 예수님은 내담자의 진술과 행동 그리고 그 이면에 숨어 있는 내면적인 상황까지 포함하여 다양하고 종합적으로 ·문제를 파악하고 있다.

첫째로, 예수님은 일반상담에서 일어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내담자의 행동을 통해서 문제를 파악하고 있다. 고민스러운 얼굴로 달려와서 참된 삶의 길에 필요한 것을 질문하는 부자청년의 몸짓에서, 은유와 비유로만 설명되는 참 생명의 길과 다시 나는 삶의 자세에 대해 당혹스러워 하는 니코데모와의 대화에서,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적시며 자신이 살아온 삶의 자세를 그대로 보여주는 죄지은 여인의 행동에서 예수님은 내담자들의 행동 이면에 숨어있는 심리적인 동기마저도 파악하는 민감성을 보여주고 있다. 예수님은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이면에 있는 숨은 동기가 문제파악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임을 알고 계셨다.

둘째로, 예수님은 내담자의 문제를 그가 처한 상황, 환경적 분위기를 통해서 총체적으로 파악하고 있다. 달시 말해 내담자가 지닌 문제의 맥락을 함께 이해함으로써 문제를 보다 포괄적으로 보고자 하였다. 이러한 능력은 일종의 영감(intuition), 달시 말해 예리한 영적 통찰력을 통해서 문제를 종합적으로 파악하는 상담자로서의 민감성을 보여주고 있다. 예수님은 자신을 만나고 싶어 하는 세리 마태오의 영적 갈망을 읽으셨고, 군중 앞에 내동댕이 쳐진 간음한 여인의 마음과 이중적인 행동의 도사가 된 군중들의 심리상태를 한꺼번에 파악하신 후 전혀 새로운 방법, 어쩌면 현재 상담에서 많이 사용하고 있는 역설적인 방법에 비길 수 있는 새로운 기법으로 위기에 처한 죄지은 여인을 구해주셨다.

셋째로, 예수님은 혼란된 상태에 있는 내담자의 문제를 새롭게 정리하도록 유도한다. 이는 상담 장면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로서 내담자가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때 상담자는 내담자가 자신의 문제를 볼 수 있도록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하는 데 예수님은 때로 내담자 스스로에게 긴장상태를 유발시키거나, 해석의 방법을 통해서 문제를 내담자 스스로가 파악할 수 있게 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사마리아 여인에게 "가서 네 남편을 불러오라"(요한 4,16)고 명한 것이나, 부자청년에게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마르10, 21-22)고도 전하심으로써 자신의 문제를 바로 보도록 지적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지적할 것은, 예수님은 어떠한 내담자든지 진정한 사랑의 마음으로 이해하고 바라봄으로써 내담자의 문제를 깊이 있게 파악하고 있다. 이는 상담자가 지녀야 할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내담자의 문제에 진실하게 귀를 기울여 경청하고, 있는 그대로의 내담자를 수용하며, 비판과 판단이 없이 내담자를 이해하고 바라보는 상담자의 태도는 바로 내담자에 대한 사랑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더욱이 상담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의 하나인 공감적 이해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내담자에 대한 사랑의 마음은 필수적이다. 예수님은 하느님 아버지로부터 파견된 자신의 소명이 바로 그분이 창조하신 인간을 자유롭게 해방시키는 일임을 잘 알고 계셨다. 달리 말해서 예수님의 소명은 바로 하느님 아버지이신 성부의 인간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요, 예수님의 삶과 죽음 자체가 바로 이러한 사랑의 표현임을 기도와 성찰을 통해서 깨달았다. 따라서 그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어려운 처지에 처한 사람, 병자, 소외된 사람들, 외로운 사람들 편에 서서 그들의 상담자가 되어 문제를 해결해주거나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주려는 사랑의 마음을 성경 곳곳에서 읽을 수 있다.


③ 예수님의 상담사례

예수님은 제자들과 전도여행을 하던 도중 그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이 상종하기를 꺼리던 사마리아 여인을 만났고 그 여인에게 마실 물을 청했으며(요한 4,7-30 참조), 죄인으로 손가락질 당하던 간음한 여인을 위기에서 구해 주셨고(요한 8,1-12 참조), 재산 때문에 을바른 가치관을 실행하는 데 주저하던 젊은이에게 삶의 참된 가치를 지적해 주셨고(마르 10,17-22 참조), 세리 자캐오(루카 19,1-10 참조)에게는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고 회심의 삶을 살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다. 또 한 가지 중요한 형태의 상담은 오늘날 정신이상으로 분류할 수 있는 마귀들린 사람들과 정신신체증상(psychosomatic disorders)으로 시달리고 있던 많은 병자들을 고쳐주시는 장면이다. 이러한 예는 마귀와 돼지떼(마르 5,1-20 참조), 중풍병자를 고치신 예수님(루카 5,17-26 참조), 소경과 벙어리를 고치심(마태 9,27-34 참조) 등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그 외에도 스승을 배반한 경험으로 괴로워하던 수제자 베드로와의 만남은 인상적이다. 이러한 형태의 상담은 죄책감이 가져을 수 있는 여러 가지 심리적 장애를 실제로 제거해서 보다 적극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효과를 보여주고 있다(요한 21,2-19 참조). 조옥진은 위기상담의 예(간음한 여자: 요한8, 1-12)와 실존주의적인 상담사례(부자청년: 마르 10,17-22 참조), 그리고 정신분석적 관점에서의 상담사례로 볼 수 있는 베드로와 부활하신 예수님의 상봉(일곱 제자에게 나타나신 예수님 : 요한 21,2-19 참조)에 대해 살펴보자고 한다.


가. 간음한 여자의 사례(요한 8,1-12)

그는 간음한 여자에 대한 이야기가 위기상담으로 분류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다고 한다. 우선 상황이 긴박하면서도 당장의 해결책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위기상담의 카테고리에 포함시킬 수 있다. 예수님은 이 당혹스러운 장면을 간음한 여자를 고소하는 종교계 지도자들과 군중들에게 자신들의 실상을 발견하도록 함으로써 가련한 여인이 처한 위기에서 그녀를 구해주셨다. 또한 이 상담은 집단상담으로서의 효과를 겸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유대사회에서 가장 중요하게 지켜져 왔던 모세의 율법에는 간음한 자는 돌로 쳐 죽이도록 되어 있었다(레위 20,10; 신명 22,22-24 참조). 그러나 이 상황의 맥락은 전혀 다른 곳에 존재하고 있다. 사실은 유대교의 지도자들이 간음한 여인을 예수님 앞으로 끌고온 것은 그들의 교활한 음모가 그 배경이 되고 있다. 그들은 예수님으로 하여금 모세의 율법을 깨뜨리게 함으로서 고소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고, 이를 통하여 백성들에 대한 그의 명성과 영향력을 파괴하기 위한 동기에서였다. 만일 예수님이 돌로 치라고 말하면 로마법을 어기게 된다. 왜냐하면 유대인에게는 처형 할권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 뿐만 아니라 사랑을 설교하며 전파하는 예수님이 도덕적인 잘못 때문에 사람을 죽이라고 한다면 그의 가르침과 주장은 그의 행위와 어긋나는 모순을 범하게 된다. 반면에 예수님이 돌로 치지 말라고 한다면 그는 모세의 율법을 어기는 것이 된다. 이는 바로 딜레마적인 상황으로 예수님 앞에 엎드려있는 가련한 여인 뿐만아니라 예수님 자신도 위기에 처한 절박한 상황이었다.

예수님은 오랫동안 침묵하셨다. 이는 상담에서 자주 일어나는 현상인데 예수님은 인간으로서 저지를 수 있는 잠깐의 잘못으로 죽음에 직면한 내담자와 한편으로는 종교지도자들과 군중들의 잘못된 동기를 생각하면서 침묵을 지키셨다. 사실 이 장면에서 침묵은 내담자와 군중들 모두에게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직시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효과를 가져오고 있다. 예수님은 오랜 침묵을 깨뜨리고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요한 8,7) 하시고 다시 침묵에 들어가셨다. 단 한마디의 무게있는 말씀으로 예수님은 간음한 여자 뿐만아니라 군중들 모두에게 자신을 비추어볼 수 있는 거울을 만들어 주셨다. 두번째의 침묵 동안에 나이 많은 사람부터 하나하나 사라졌다. 아무런 선입견에도 치우침이 없이 죄인으로서의 인간본성을 인정하는 예수님의 인간관이 이 상담장면에 잘 나타나 있다. 사실 효과적인 상담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는 바로 자신이 지닌 가치관에서 벗어나서 아무런 편견이나 선입견 없이 내담자를 볼수 있는 자질이다. 예수님은 바로 인간을 도덕적으로 정죄하지 않는 상담자로서의 자질을 지녔으며, 위기상담에서 가장 중요한 총체적인 상황판단과 적절한 대응책을 빠르게 찾아내는 순발력을 이 사례에서 잘 보여주고 있다.


나. 부자청년의 사례(마르 10, 17-22)

마르코 복음서가 전하고 았는 이 젊은이는 부잣집 아들이며 관리였고 고위층에 속하는 지위도 가지고 있는 풍요를 누리고 있는 가정에서 자라난 사람으로 보여진다. 그는 재산도 있었고, 지위도 가졌으며, 명예도 누리고 있었는데 왜 갈등을 겪고 있고 욕구불만의 상태에 놓여있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는가? 왜 남들이 부러워하는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공허함과 채워지지 않는 인생의 빈 그늘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가? 무엇이 이 청년의 문제인가? 이 청년의 문제는 바로 도치된 인생관에서 오는 것처럼 보인다. 돈과 명성이 자기의 인격적 욕구를 채워주는 것으로 착각하며 살아왔으나 결국은 그 모든 세속적인 재물이나 명예가 채워줄 수 없는 빈 공간이 있음을 체험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진다. 따라서 이 젊은이도 절박한 심정으로 예수님의 도움을 청하고 있다.

내담자인 젊은이의 자세는 진지하다. 무언가 변화된 삶을 살고 싶어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부와 명예에 대한 애착으로 이중적인 갈등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어떻든 내담자의 적극적인 참여는 상담과정을 원활하게 풀어준다. 상담자인 예수님은 내담자의 행동과 그의 자세를 통하여 문제를 파악하고나서 그의 실존적인 공허를 채워줄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문제에 단계적으로 접근해 나간다. 예수님은 문제의 핵심이 젊은이의 근본적인 결단에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인생의 성공은 선택의 문제이다. 더구나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은 어려운 선택의 기로위에서만 정립된다. 이 세상이 줄 수 있는 부귀와 영화냐, 아니면 하느님만이 주실 수 있는 참되고 진실된 평화냐, 둘 중에 하나를 택해야 한다. 신앙은 바로 이러한 결단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재산이 많은 이 젊은이는 한편으로는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참된 신앙인의 자세를 갖고 싶어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가 누려왔던 부와 명예가 주는 안락에 젖어있는 상태에서 실제로 빠져나오기를 두려워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므로 내담자는 자신의 문제가 무엇이며 어떻게 하면 그의 공허가 채워진다는 것을 알고 나서도, 그를 위해 치러져야 하는 대가 때문에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슬픈 표정으로 근심하며 떠나갔다. 그 다음에는 어떤 행동이 뒤따랐을까? 상담의 효과는 상담장면 그 자리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상담이 끝난 후에도 계속 지속된다. 아마도 이 젊은이도 계속 자신의 잘못된 인생관을 점검하면서 새로운 삶의 길을 찾았을 수도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다. 일곱 제자에게 나타나신 예수님과 베드로의 사례(요한 21, 2-19)

이는 그리스도께서 자기 제자들에게 사명을 부여해 주는 이야기의 전개이다. 특히 부활하신 예수님은 스승을 세 번이나 배반한 베드로의 내면적 갈등을 깊이 보셨다. 인간의 내면을 좀먹는 죄책감에 대한 갈등이 미칠 수 있는 심리적 역효과를 미리 간파하셨던 것이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였다. 그렇게도 자신만만하였고, 당신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지 목숨이라도 내놓겠다고 장담하던 그가 무참히도 주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였다. 비록 눈물자국 때문에 얼굴에 흠이 패일 정도로 통회의 눈물을 흘렸다 하더라도 사랑하던 주님을 배반한 그 기억은 오래도록 그를 괴롭혀 왔을 것이다. 그보다 더한 것은 베드로 사도 자신이 그러한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했을 것 같다. 낙심과 절망에 빠져서 모든 회망을 잃어버린 베드로는 결국 자신의 생업이었던 어부의 생활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상담자이신 예수님은 매우 인상적인 사건을 재현시켰다. 3년전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을 처음 부르실 때와 똑같은 장면을 연출하셨다. 그런 후에 예수님은 손수 음식을 마련하시고 회망을 잃고 있었던 그들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셨다. 이 상담의 핵심은 바로 상담자 예수님이 베드로의 내면적 갈등을 직시하고 그가 죄책감을 느끼고 있던 주님께 대한 배반의 기억을 세번의 "너는 이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요한 21,15)는 질문에 스스로 답하게 하심으로써 깨끗이 상쇄시켜 주셨다. 과거의 외상적 경험 때문에 올 수 있는 위축에서 베드로 사도를 미리 해방시켜 주시고 그의 내면적 갈등을 세 번의 사랑의 응답을 통해서 깨끗이 씻어주신 그리스도는 바로 인간의 내면적 갈등을 깊이 들여다 볼 수 있었던 숙련된 상담자의 역할을 보여주고 계신다. 베드로 사도는 이 상담을 통하여 자신으로 부터 해방되어 초대교회를 세우는 데 큰 공헌을 하고 결국은 주님을 위해 순교하셨다. 조옥진은 그리스도와의 대면을 통한 자기변화의 과정이 이 상담에서 이루어졌다고 말한다.64)



4. 사목직무 영성의 새로운 접근

현대 사목직무 영성이라고 해서 새로운 무엇이 생겨난 것이 아니라, 사제의 수가 부족하고 평신도 지도자들의 활동이 활발해지는 교회의 새로운 현상이 일어나자 그에 따라 변화된 새로운 영성적인 시도가 생겨나는 것이다. 이는 과거 사목사제 중심의 전통적인 사목사제 영성 일변도에서 평신도 사목자에게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그들을 포함한 모든 그리스도인의 사목직무 영성으로 확장하는 것을 주축으로 한다. 그리고 영성의 개인적인 차원보다는 공동체적인 차원을, 교육적인 면보다는 진실한 회개와 삶의 변화를 강조하는 경향이 짙다.

바식James J. Bacik은 「사목직무 영성: 일곱 가지 전망(Spirituality for Ministry: Seven Persepectives)」에서 비록 세상의 문화가 세상을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목자들이 사목직무가 가치있고 중요한 것이라는 자기 확신을 가져야 한다고 한다. 그는 포스트 모더니즘 문화에 전통적인 가톨릭 영성이 교회 직무를 통해 이기주의를 극복해야 한다는 인간 실존에 대한 공감, 소비주의를 극복하는 전통적인 금욕주의, 전체적 상대주의에 반하는 자연법적 윤리, 물질주의 문화를 넘어서는 풍요한 영적 전승 등의 가치를 발휘할 수 있다고 한다. 사목자들은 복음의 전달자이기에 사람들의 탄생과 결혼, 죽음 등 생의 순간순간에 복음을 가져가야 한다. 겸손은 사목자들이 인간적인 한계를 인정하고 하느님께 온전히 귀의하게 해주며, 성령이 우리의 나약함과 한계들을 다른 사람의 영적성장과 치유의 도구로 변화시켜준다. 그리고 그는 사목직무 영성은 꾸준한 기도를 통해 다양한 사목 상황과 구조 속에서 하느님의 은총과 협력하여 영적 성장을 가져올 수 있다고 한다.65) 그는 또 영성의 육화적 본질을 강조한다. 사목직무 영성은 사목직무를 행하는 데서 그 모습을 갖춘다고 한다.66)

로널드 롤헤이서Ronald Rolheiser는 같은 책에서 사목직무 영성을 마라톤에 비유하며 다섯 가지 사목직무 영성 운동을 전개한다. 첫째, 자기 염려에서 벗어나 세상에 빵이 되어 주는 것으로. 사목자는 소진이 문제가 아니라 상처받을까 두려워하는 자기 염려와 자기보호에서 벗어나 세상에 생명의 빵이 되어야 한다. 둘째, 옳게 되고자 하는 것에서 공동체를 건설하고자 하는 것으로. 사목자는 자기와 다르고, 상처받고, 불완전하고 적절하지 않은 길로 나아가는 것을 그리스도께서 지니셨던 그 연민의 정으로 포용하여야 한다. 셋째, 경력과 안전 추구에서 벗어나 가난한 사람들과의 연대로. 가난한 사람들의 자리는 그리스도 십자가의 자리이다. 가난한 사람들과의 연대 없이 예수님의 사목직무를 진실히 수행할 수 없다. 넷째, 정통성과 교의 및 프로그램 등에 치중하는 것에서 벗어나 그리스도의 배려와 연민으로. 사목자는 법과 규정에 얽매이지 않고 그 너머에서 활동하셨던 그리스도의 초대에 귀기울여야 한다. 다섯째, 보상에서 벗어나 열정적인 기도로. 그리스도께서 사랑스럽게 내 이름을 부른다는 것을 느낄 때 우리는 비로소 나를 증거할 필요가 없어진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사목직무의 진정한 연료이며 원천이다.67) 그래서 그는 우리를 향한 하느님 사랑의 독특한 체험에 근거하여 우리가 자신을 버리고 세상과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설 수 있다고 한다.68)

도넬리Doris Donnelly는 우리 인간을 향한 하느님 구원의지의 계시에 귀기울이고 현실 안에서 식별의 가치를 강조하고, 리빙스톤Patricia H. Livingston은 사목직무자가 영성의 모서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과 더불어 죽음과 부활이라는 파스카 신비의 패턴을 나누는 것이라고 밝히며, 한넨베르그Edward P. Hahnenberg는 모든 이들에게 교회를 대리하는 사목직무 영성의 특별함을 발견하고, 도우니Michael Downey는 삼위일체 하느님을 찬미하는 사목직무 영성을 말한다.69)

이 사목직무 영성의 특징들을 살펴보자면, 첫째,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상징하는 세례성사의 영성으로 시작된 그리스도인의 사명을 그리스도인 삶과 사목직무와 제자양성의 영성으로 통합하고자 하며, 둘째, 공인으로서 사목자는 자신을 버리고 교회의 사목직무를 수행하고자 하며, 셋째, 사목직무를 교회 내의 사목직에 국한시키지 않고 하느님의 영역인 세상을 향한 사목직무로 파견하고자 하며, 넷째, 사목직무 영성은 평생 성령의 은사를 식별하고 사목자 자신의 삶으로 하느님 아버지를 흠숭하고자 한다.70)








1) 류병일, 사목자들의 영성과 기도 생활, 사목 155, 서울,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91. 12, 56-61면.

2) 사제 직무 교령, 2. 6항 참조.

3) 위의 교령, 4항.

4) 선교 교령, 13항.

5) 교회법 제760조.

6)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성 목요일 사제들에게 보내는 서한, 1988 3. 25, AAS 80, 1988, 1290면.

7) 교회 헌장, 28항.

8) 평신도 그리스도인, 41-43항 참조.

9) 교회 헌장, 31항; 평신도 그리스도인, 15항 참조.

10) 교황청 인류복음화성 산하 교회 교구 사제 사목 지침, 9항.

11) 전례 헌장, 5항.

12) 위의 헌장, 83. 98항 참조.

13) 위의 헌장, 7항.

14) 성무일도에 관한 총지침, 13항.

15) 위의 지침, 28항.

16) 위의 지침, 29항.

17) 교회법, 제26조.

18) 박재만, 영적지도: 그리스도인 성숙을 위한 도움, 서울, 가톨릭대학교출판부, 1996.

19) 위의 책, 14-15면.

20) 브루노 죠르다니, 박영호 역, 죠르다니 신부의 영성지도: 영성생활을 위한 심리학적 도움, 도서출판 미루나무, 1994, 57면.

21) 사제 양성 교령, 8. 9.항; 사제의 직무와 생활에 관한 교령, 6항; 수도생활의 쇄신 적응에 관한 교령, 18항.

22) 박재만, 위의 책, 16-17면.

23) G. W. Allport, Psicologia della persona, Roma, LAS, 1977, 235-262면, 박재만, 위의 책, 30면 재인용.

24) 박재만, 위의 책, 28-32면.

25) 위의 책, 33-35면.

26) 교회 헌장, 40항.

27) 박재만, 위의 책, 48-52면.

28) 브루노 죠르다니, 위의 책, 66면.

29) 박재만, 위의 책, 55-60면.

30) 위의 책, 60-62면.

31) 위의 책, 62-64면.

32) 교회 헌장 28.37항; 수도생활 쇄신 적응에 관한 교령, 18항; 사제의 직무와 생활 교령, 6.8.14항; 평신도 사도직에 관한 교령, 3.7.25.30항 참조.

33) 교회법, 제244조.

34) 교회법, 제245조 1항.

35) 교회법, 제246조.

36) 평신도 그리스도인, 57항.

37) 평신도 그리스도인,, 60항.

38) 박재만, 위의 책, 64-68면.

39) 위의 책, 68-79면.

40) 위의 책, 79-86면.

41) 윌리엄 베리, 김창훈 역, 하느님과의 만남과 영성 지도: 윌리엄 배리(William A. Barry)의 신학적 연구, 서울, 이냐시오 영성연구소, 도서출판 빅벨, 1998, 109-110면.

42) 위의 책, 111-115면.

43) 위의 책, 115-120면.

44) 위의 책, 121-124면.

45) 위의 책, 124-125면.

46) 위의 책, 125-126면.

47) 윌리엄 베리, 위의 책, 126-131면.

48) 자끄 퀼레, 영의 식별에 관한 바오로의 사상, 신학전망 129호, 광주가톨릭대학교출판부, 2000. 여름, 53면.

49) 위의 논문, 55면.

50) 위의 논문.

51) 위의 논문, 56면.

52) 위의 논문, 56-57면.

53) 조옥진, 영성과 심리상담: 영성심리상담 입문서, 서울, 가톨릭출판사, 2005, 13-14면.

54) 위의 책, 47-48면.

55) 조옥진, 사목상담의 이론과 실제, 부산가톨릭대학출판부, 1998, 165-168면.

56) 위의 책, 163-164면.

57) 조옥진, 영성과 심리상담: 영성심리상담 입문서, 52-53면.

58) 위의 책, 48-51면.

59) 조옥진, 사목상담의 이론과 실제, 168-170면.

60) 조옥진, 영성과 심리상담: 영성심리상담 입문서, 51-52면.

61) 위의 책, 53-54면.

62) 조옥진, 사목상담의 이론과 실제, 170-173면.

63) 위의 책, 173-177면.

64) 위의 책, 177-185면.

65) Smith, Karen Sue ed., Spirituality for Ministry: Seven Persepectives, Liguori, Liguori Publication, 2006, 21-22면.

66) 위의 책, 86면.

67) 위의 책, 53-62면.

68) 위의 책, 86면.

69) 위의 책.

70) 위의 책, 86-8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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