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재발견
-가정의 눈으로 본 창세기 피정
심흥보 신부
성바오로 출판사
추천서
저는 올 한 해의 사목 목표를 전년도의 “가정은 생명의 터전”이라는 주제에 이어 “신앙의 터전인 가정”이라고 정했습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사회 공동체를 평화롭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가정 공동체의 기초가 되는 가치들에서 영감을 이끌어낼 필요가 있습니다. …… 부부가 바로 서면 가정이 바로 서고, 가정이 바로 서면 교회와 나라가 바로 서기 때문입니다.”(2008년 세계 평화의 날 담화)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교회는 예수, 마리아, 요셉의 나자렛 성가정을 그리스도인 가정의 모범으로 삼고 있습니다. 성가정은 신앙을 충실히 증거하는 순교적 삶의 모범입니다. 목숨을 버리고 피를 흘리는 순교뿐만 아니라 신앙을 위해 서로 희생하고 봉사하는 삶 역시 훌륭한 순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순교는 ‘우리의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입니다(마르 12,31). 그리고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가까운 이웃은 바로 사랑하는 가족입니다. 가족이 서로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이 시대가 원하는 진정한 순교의 정신에 동참하는 길입니다. 서로의 다른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믿어 주며 기도를 통해 서로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함께 나눠지고 하느님을 향해 나아가는 가정의 모습 안에서 우리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올 “신앙의 터전인 가정”의 해, 특별히 가정의 달 5월에 심흥보 신부가 쓴 이 묵상서가 여러분 가정에, 특별히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여러분들이, 경제적인 어려움을 신앙의 힘으로 극복하여, 영적인 풍요를 누리며 행복한 성가정을 꾸며나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신앙이 가정안에서 건강하게 자라나고 완성되어 세상 모든 이에게 빛과 소금이 되기를 바랍니다.
2009. 4. 29.
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 축일에
서울대교구장 추기경 정진석 니콜라오 추기경
일러두기
이 원고는 피정 강론 원고였습니다. 몇 본당에서 피정 강론을 한 후에 원고 내용을 책으로 내주면 좋겠다는 신부님들의 요청에 따라 정리해서 만들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가정사 안에 일어났고 또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통해 하느님께서 우리와 어떻게 관계를 맺으시고 어디로 이끄시고 계신지를 되돌아보는 기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준비했습니다.
난센스 퀴즈가 하나 있습니다. 구약 성경에서 가장 행복한 여인은 누구입니까? 그 답은 하와랍니다! 왜냐하면 하와는 시어머니가 없었으니까. 그리고 신약 성경에서 가장 행복한 여인은 누구입니까? 그 답은 마리아랍니다! 왜냐하면 마리아는 며느리가 없었으니까. 시어머니도 며느리도 없이 살면 정말 행복한 것인가요?
서울대교구는 전년도 2008년 사목목표를 “가정은 생명의 터전”으로 정했고, 올 2009년도 사목 목표를 “신앙의 터전인 가정”으로 삼았습니다. 서울대교구뿐만 아니라 많은 교구들이 올 사목 목표를 가정과 관련된 주제를 잡았습니다. 또한 베네딕토 교황님은 2008년 국제연합의 ‘세계 인권 선언’(1948) 선포 60주년, 교황청의 ‘가정 권리 헌장’(1983) 채택 25주년, 첫 ‘세계 평화의 날’ 거행(1968) 40주년이 되는 해를 맞이하여, “평화의 공동체인 인류 가족”이라는 주제로 ‘세계 평화의 날’ 담화문을 발표하셨습니다. 그 담화문에서 “우리는 우연히 서로 모여 사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씀을 통해 세상 사람들 모두가 더불어 살아가는 하나의 인류 가족 구성원이라는 인식을 가지라고 당부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가정이라는 시각에서 창세기를 살펴보고, 주님을 모시는 기회를 갖도록 하겠습니다. 진행은 먼저 성경을 살펴보고, 그 성경 본문에서 우리가 묵상해야 할 점들을 살펴보고, 우리 가정에 비춰 성찰하는 시간을 갖도록 했습니다. 한 주제와 한 묵상거리가 마음에 들어온다고 느끼면, 그 주제에 멈춰 깊이 묵상해도 좋습니다. 피정하는 마음으로 읽고 여러분 가정에 주님을 맞이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참고로 각 꼭지 끝에 나오는 기도의 시편은 ‘성무일도서’에 실린 최민순 신부님의 번역문을 사용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바쁘신 가운데서도 기꺼이 추천해 주신 정진석 추기경님과, 이 원고를 읽고 다듬어 주신 강 디모테아, 심 가타리나 수녀님과 가톨릭 교리 신학원 성서영성학과 세미나반 학생 분들께, 그리고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책으로 내주신 성바오로 출판사 서 안젤로 신부님과 서 디도 수사님과 임직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2009 사순절에
가톨릭 교리 신학원에서
심흥보 신부
차례
추천의 글
일러두기
1.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
2. 내 살에서 나온 살이로구나
3. 너 어디 있느냐
4.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
5. 너를 떠나지 않겠다
6. 나를 이곳으로 보낸 것은 하느님이십니다
1.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
성경 본문
천지 창조I(창세 1,1‐2,4ㄱ)
1 1한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 2땅은 아직 꼴을 갖추지 못하고 비어 있었는데, 어둠이 심연을 덮고 하느님의 영이 그 물 위를 감돌고 있었다.
3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빛이 생겨라.” 하시자 빛이 생겼다. 4하느님께서 보시니 그 빛이 좋았다. 하느님께서는 빛과 어둠을 가르시어, 5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셨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첫날이 지났다.
6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물 한가운데에 궁창이 생겨, 물과 물 사이를 갈라놓아라.” 7하느님께서 이렇게 궁창을 만들어 궁창 아래에 있는 물과 궁창 위에 있는 물을 가르시자, 그대로 되었다. 8하느님께서는 궁창을 하늘이라 부르셨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튿날이 지났다.
9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늘 아래에 있는 물은 한곳으로 모여, 뭍이 드러나라.” 하시자, 그대로 되었다. 10하느님께서는 뭍을 땅이라, 물이 모인 곳을 바다라 부르셨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 11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땅은 푸른 싹을 돋게 하여라. 씨를 맺는 풀과 씨 있는 과일나무를 제 종류대로 땅 위에 돋게 하여라.” 하시자, 그대로 되었다. 12땅은 푸른 싹을 돋아나게 하였다. 씨를 맺는 풀과 씨 있는 과일나무를 제 종류대로 돋아나게 하였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 13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사흗날이 지났다.
14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늘의 궁창에 빛물체들이 생겨, 낮과 밤을 가르고, 표징과 절기, 날과 해를 나타내어라. 15그리고 하늘의 궁창에서 땅을 비추는 빛물체들이 되어라.” 하시자, 그대로 되었다. 16하느님께서는 큰 빛물체 두 개를 만드시어, 그 가운데에서 큰 빛물체는 낮을 다스리고 작은 빛물체는 밤을 다스리게 하셨다. 그리고 별들도 만드셨다. 17하느님께서 이것들을 하늘 궁창에 두시어 땅을 비추게 하시고, 18낮과 밤을 다스리며 빛과 어둠을 가르게 하셨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 19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나흗날이 지났다.
20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물에는 생물이 우글거리고, 새들은 땅 위 하늘 궁창 아래를 날아다녀라.” 21이렇게 하느님께서는 큰 용들과 물에서 우글거리며 움직이는 온갖 생물들을 제 종류대로, 또 날아다니는 온갖 새들을 제 종류대로 창조하셨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
22하느님께서 이들에게 복을 내리며 말씀하셨다. “번식하고 번성하여 바닷물을 가득 채워라. 새들도 땅 위에서 번성하여라.” 23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닷샛날이 지났다.
24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땅은 생물을 제 종류대로, 곧 집짐승과 기어 다니는 것과 들짐승을 제 종류대로 내어라.” 하시자, 그대로 되었다. 25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들짐승을 제 종류대로, 집짐승을 제 종류대로, 땅바닥을 기어 다니는 온갖 것을 제 종류대로 만드셨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
26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우리와 비슷하게 우리 모습으로 사람을 만들자. 그래서 그가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집짐승과 온갖 들짐승과 땅을 기어 다니는 온갖 것을 다스리게 하자.”
27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당신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하느님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그들을 창조하셨다.
28하느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내리며 말씀하셨다.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하여 땅을 가득 채우고 지배하여라. 그리고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을 기어 다니는 온갖 생물을 다스려라.”
29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제 내가 온 땅 위에서 씨를 맺는 모든 풀과 씨 있는 모든 과일나무를 너희에게 준다. 이것이 너희의 양식이 될 것이다. 30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땅을 기어 다니는 모든 생물에게는 온갖 푸른 풀을 양식으로 준다.” 하시자, 그대로 되었다. 31하느님께서 보시니 손수 만드신 모든 것이 참 좋았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엿샛날이 지났다.
2 1이렇게 하늘과 땅과 그 안의 모든 것이 이루어졌다. 2하느님께서는 하시던 일을 이렛날에 다 이루셨다. 그분께서는 하시던 일을 모두 마치시고 이렛날에 쉬셨다. 3하느님께서 이렛날에 복을 내리시고 그날을 거룩하게 하셨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여 만드시던 일을 모두 마치시고 그날에 쉬셨기 때문이다.
4하늘과 땅이 창조될 때 그 생성은 이러하였다.
묵상 요점
1.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
하느님께서는 6일 동안 세상 만물을 하나하나 만드시고, 그 창조의 하루를 마치실 때마다 하느님께서 만드신 세상을 보시고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고 하셨습니다. 하늘, 땅, 물, 뭍, 씨, 풀, 해, 달, 새, 물고기, 들짐승, 집짐승, 그리고 기어 다니는 것 등 모두.
2. 나의 탄생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 하느님이나 부모님에게 세상에 나가겠다고 청하지도 않았는데 우리는 세상에 나왔습니다. 그리고 세상에 나와서는 매일매일 밤에 잠 들 때마다 아침에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하지 못하면서도 그냥 그렇게 눈을 감습니다. 그리고 아침이면 마치 자연스럽다는 듯이 눈이 떠지고, 자리에서 일어나 또 하루를 시작합니다.
3, 내가 살아갈 수 있도록 배려해주신 하느님께 감사.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내가 살 수 있도록 얼마나 많은 것을 만들어 주셨습니까! 공기, 물, 땅, 하늘, 자연, 그리고 수만 가지 물질들과 무엇보다도 동료 이웃들.... 그러므로 내가 살면서 하느님 사랑에 보답하는 일은 함께 살아가도록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가족과 이웃 그리고 자연을 잘 돌보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귀한 ‘나’들이 나 하나뿐만 아니라 세상 곳곳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또 인정받으며, 존중하고 또 존중받으면서 더불어 사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성찰
1. 1장 26절 “우리와 비슷하게 우리 모습으로 사람을 만들자. 그래서 그가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집짐승과 온갖 들짐승과 땅을 기어 다니는 온갖 것을 다스리게 하자.”
- 가족을 살펴보면, 우리가 선택하지도 않았는데도 함께 살라고 엮어 주셨음을 봅니다. 가족이 서로 닮는다고들 하는데, 자세히 살펴보면 어떻게 하나같이 그렇게 성격이 다른지!
- 우리가 하느님의 모습대로 창조되었다고 하는데, 우리 가족에게서 어떤 하느님의 모습을 발견하십니까? 우리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하느님은 어떤 소질과 장점을 주셨습니까? 그것을 통해 하느님은 우리 가족이나 자녀들을 통해 무엇을 하기를 바라신다고 생각하십니까?
- 나는 어떻게 우리 가정을 다스리고 기여하고 있습니까?
2. 2장 3절 “하느님께서 이렛날에 복을 내리시고 그날을 거룩하게 하셨다.”
‐ 우리 가족이 어떤 의미에서 나에게 내려 주신 복이며 하느님의 선물입니까? 우리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이 언제 어떻게 좋았습니까? 어떤 장점이 있습니까?
‐ 하느님께서 우리 가정에 어떤 복을 내려주셨습니까? 찬찬히 되새겨 봅시다.
3. 욥이 말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에게 좋은 것을 받는다면, 나쁜 것도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소?”(욥 2,10)
-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우리 가족과 이웃을 복으로 보내 주셨는데, 진정 복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아니면, 우리에게 현세적이고 물질적으로 도움이 되느냐 안 되느냐 하는 관점으로 따져서, 복이 아니라 치우고 없애 버려야 할 걸림돌이나 방해물로 여기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봅시다.
기도
조물들의 찬가(시편 148,1-15)
1주님을 찬미하라 하늘로부터.
높고 높은 곳에서 찬미들 하라.
2천사들아, 모두 다 주님을 찬미하라
하늘의 군대들아, 주님을 찬미하라.
3해야 달아, 주님을 찬미하라
반짝이는 별들아, 너희 모두 찬미하라.
4하늘들 위의 저 하늘들아, 하늘 위의 물들아
너희는 주님을 찬미하라.
5주께서 명하심으로 창조된 것이기에
모두 다 그 이름 찬미들 하라.
6주님은 그 모든 것 영원히 다지시어
변치 않을 법에다 매어 주셨도다.
7주님을 찬미하라, 땅으로부터
바다의 괴물들아, 깊고 깊은 물들아.
8불이며, 우박이며, 눈이며 안개
주님의 영을 좇는 거센 바람이며,
9산과 산, 모든 언덕, 과일 나무, 체드루스들
10맹수야 가축이야, 길짐승에 나는 새들
11세상의 임금들과 모든 백성들이며
대관들과 세상의 모든 판관들이며
12숫총각들 숫처녀들, 늙은이들 어린이들
13너희는 주님 이름 찬미들 하라.
당신의 이름만이 홀로 높으시도다
하늘 땅 아득 높이 찬란하신 그 영광!
14당신의 백성에게 높은 영광 주셨으니,
성도들의 자랑이 아닐쏜가
15주님이 괴옵시는 이스라엘의,
그 백성 후예들의 자랑이로세.
2. 내 살에서 나온 살이로구나
성경 본문
천지 창조II(창세 2,4ㄴ‐25)
2 4주 하느님께서 땅과 하늘을 만드시던 날, 5땅에는 아직 들의 덤불이 하나도 없고, 아직 들풀 한 포기도 돋아나지 않았다. 주 하느님께서 땅에 비를 내리지 않으셨고, 흙을 일굴 사람도 아직 없었기 때문이다. 6그런데 땅에서 안개가 솟아올라 땅거죽을 모두 적셨다. 7그때에 주 하느님께서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
8주 하느님께서는 동쪽에 있는 에덴에 동산 하나를 꾸미시어, 당신께서 빚으신 사람을 거기에 두셨다. 9주 하느님께서는 보기에 탐스럽고 먹기에 좋은 온갖 나무를 흙에서 자라게 하시고, 동산 한가운데에는 생명 나무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자라게 하셨다.
10강 하나가 에덴에서 흘러나와 동산을 적시고 그곳에서 갈라져 네 줄기를 이루었다. 11첫째 강의 이름은 피손인데, 금이 나는 하윌라 온 땅을 돌아 흘렀다. 12그 땅의 금은 질이 좋았으며, 그 고장에는 브델리움 향료와 마노 보석도 있었다. 13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인데, 에티오피아 온 땅을 돌아 흘렀다. 14셋째 강의 이름은 티그리스인데, 아시리아 동쪽으로 흘렀다. 그리고 넷째 강은 유프라테스이다.
15주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데려다 에덴 동산에 두시어, 그곳을 일구고 돌보게 하셨다. 16그리고 주 하느님께서는 사람에게 이렇게 명령하셨다. “너는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에서 열매를 따 먹어도 된다. 17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는 따 먹으면 안 된다. 그 열매를 따 먹는 날, 너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18주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그에게 알맞은 협력자를 만들어 주겠다.” 19그래서 주 하느님께서는 흙으로 들의 온갖 짐승과 하늘의 온갖 새를 빚으신 다음, 사람에게 데려가시어 그가 그것들을 무엇이라 부르는지 보셨다. 사람이 생물 하나하나를 부르는 그대로 그 이름이 되었다. 20이렇게 사람은 모든 집짐승과 하늘의 새와 모든 들짐승에게 이름을 붙여 주었다. 그러나 그는 사람인 자기에게 알맞은 협력자를 찾지 못하였다. 21그래서 주 하느님께서는 사람 위로 깊은 잠이 쏟아지게 하시어 그를 잠들게 하신 다음, 그의 갈빗대 하나를 빼내시고 그 자리를 살로 메우셨다. 22주 하느님께서 사람에게서 빼내신 갈빗대로 여자를 지으시고, 그를 사람에게 데려오시자, 23사람이 이렇게 부르짖었다.
“이야말로 내 뼈에서 나온 뼈요
내 살에서 나온 살이로구나!
남자에게서 나왔으니
여자라 불리리라.”
24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된다.
25사람과 그 아내는 둘 다 알몸이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묵상 요점
1. 창세기 1장 1절부터 2장 4절 첫째 문장까지의 제관계 문헌에서는 맨 마지막에 인간을 만드시고, 여기 2장 4절 둘째 문장부터의 야휘스트 문헌에서는 맨 처음에 사람부터 만드십니다. 앞에서는 말씀으로 무(無)에서 유(有)로 만드시고, 여기서는 진흙으로 빚어 그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어 생명체가 되게 하십니다.
2. 2장 21절 “그래서 주 하느님께서는 사람 위로 깊이 잠이 쏟아지게 하시어 그를 잠들게 하신 다음, 그의 갈빗대 하나를 빼내시고 그 자리를 살로 메우셨다.”
‐ 성경의 이 구절에 빗대어 모 방송국의 퀴즈 프로그램에서 “남자와 여자의 갈비뼈 숫자는 어느 쪽이 더 많은가요?”하는 질문을 던진 적이 있었습니다. 어느 쪽이 많은가요? 남자의 것을 여자에게 하나 주어서 여자가 하나 더 많은가요? 아니면 하느님께서는 남자가 여자에게 하나를 주어도 남자에게 채워 주시니까 똑같은가요? 답은 남자의 갈비뼈 수나 여자의 갈비뼈 수는 똑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 이 성경의 접근 방식은 과학적인 접근 방식과는 다릅니다.
말씀으로 한 창조냐 물질에 숨을 불어 넣으시는 창조냐, 어느 창조가 맞느냐 하는 과학적인 진리가 아니라, 누가 창조했느냐 하는 신앙의 진리에 대한 접근이기 때문에 그 내용이 달라도 문제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 내용은 단지 우화나 예화의 비유이기 때문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런 방식으로 그리고 또 다른 경우와 다른 상황에서는 저런 방식으로 하느님의 창조 진리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 유다인 랍비들이 구약 성경을 설명한 탈무드를 보면, 이 기사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남자에게서 여자를 만들 때, 남자의 갈비뼈로 여자를 만드셨다고 했는데, 만일 남자의 다리로 여자를 만들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렇다면, 평생 여자가 남자의 노예처럼 살아야 할 것이고, 만일 남자의 머리로 여자를 만들었다면, 여자가 평생 남자를 지배하려고 했을 것입니다. 남자의 갈비뼈로 여자를 만들었다는 것은 여자가 남자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있으면서 평생 서로를 보호하고, 인생의 동반자요 배우자요 반려자로서 함께 살아가라고 하는 의미입니다.
성찰
1. 2장 18절‐20절 “주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그에게 알맞은 협력자를 만들어 주겠다.’ 그래서 주 하느님께서는 흙으로 들의 온갖 짐승과 하늘의 온갖 새를 빚으신 다음, 사람에게 데려가시어 그가 그것들을 무엇이라 부르는지 보셨다. 사람이 생물 하나하나를 부르는 그대로 그 이름이 되었다. 이렇게 사람은 모든 집짐승과 하늘의 새와 모든 들짐승에게 이름을 붙여 주었다.”
- 우리 집에 동물이나 식물을 키웁니까? 그 이름은 무엇입니까? 왜 그 이름을 지어주었습니까?
- 나는 무엇을 가지고 일합니까? 어떤 연장, 어떤 도구…? 내가 일하는 데 가장 자주 쓰는 도구나 자연은 무엇입니까? 나는 그것에게 어떤 이름을 붙여주었습니까? 왜 그 이름을 붙여 주었습니까? 어떤 이는 자기 차에 ‘애마’, ‘천리마’ … 등의 이름을 붙여 주고, 강아지는 캐리, 메리, 찐콩 … 등의 이름을 지어 줍니다. 또 요즘 핸드폰에 보면, 자기 가족이나 친지의 별명을 ‘마왕,’ ‘애물단지,’ ‘공주,’ ‘해님’등으로 짓기도 하고, 심지어는 컴퓨터나 청소기, 냉장고에도 이름을 붙이기도 합니다. 공식적인 이름 말고도, 그 사람 그 물건이 내 마음 속에서 차지하고 있는 선입견이나 비중 그리고 가치는 무엇입니까? 어떤 관계, 어느 비중, 어느 자리? 찬찬히 되새겨 보기로 합시다.
2. 2장 20절‐23절 “그러나 그는 사람인 자기에게 알맞은 협력자를 찾지 못하였다. 그래서 주 하느님께서는 사람 위로 깊은 잠이 쏟아지게 하시어 그를 잠들게 하신 다음, 그의 갈빗대 하나를 빼내시고 그 자리를 살로 메우셨다. 주 하느님께서 사람에게서 빼내신 갈빗대로 여자를 지으시고, 그를 사람에게 데려오시자, 사람이 이렇게 부르짖었다. ‘이야말로 내 뼈에서 나온 뼈요. 내 살에서 나온 살이로구나! 남자에게서 나왔으니 여자라 불리리라.’”
‐ 내 배우자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나는 내 배우자를 무엇이라고 부르고, 어떤 별명을 붙여 주었습니까? 내가 내 배우자를 어떻게 여기고 바라봅니까?
‐ 또 내 자녀들에게는 어떤 이름을 붙여 주었습니까? 그 의미는 무엇입니까? 왜 그 이름을 붙여 주었습니까? 그 이름을 지어 주면서 기대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3. 23절에서 사람이 아내에게 “이야말로 내 뼈에서 나온 뼈요. 내 살에서 나온 살이로구나!”고 말합니다.
오늘 나는 내 배우자를 위해 무엇을 내어 주고 있습니까? 동시에 내 배우자가 오늘 나에게 어떻게 힘이 되어 주고 있습니까? 서로 무엇을 주고받고 있습니까? 서로에게 서로의 인격을 주고, 서로를 위한 희생이라는 헌신적인 사랑을 주고받지 않는다면 ….
4. 2장 24절에서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된다.”
‐ 나는 내 배우자를 하느님께서 나에게 보내 주신 둘도 없는 짝이라고 여기며 삽니까? 어떤 면에서 나의 짝입니까? 나는 나의 배우자와 나의 자녀들, 내 가정에 온전히 결합되어 있습니까? 내 배우자는 하느님께서 나에게 보내주신 천사입니까, 아니면 단순히 내가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고 필요한 전자 밥솥, 혹은 냉장고이거나 진공청소기입니까?
어느 부인이 남편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왜 당신은 나만 보면 밥 달라고 해요? 내가 밥순이도 아닌데.... 하루 종일 들어오기만 기다렸는데 들어오면서 하는 말이 항상 밥 달라는 것이니 내가 무슨 밥해주는 식모야? 그리고 당신은 꼭 나만 먼저 일어나서 음식 차리고, 당신을 깨워 주어야 해? 당신은 먼저 일어나 준비할 수 없어? 잔치를 해도 내가 밤늦게까지 설거지 다 하고 집안 일 다 하고 자는데, 당신은 먼저 자면서 당신이 먼저 일어나면 죄야?”
- 우리 부부는 어떤 의미에서 어떻게 결합되었고, 지금은 어떻게 결합되어 있습니까?
- 언제 우리 부부가 하나라고 느낍니까?
5. 2장 25절 “사람과 그 아내는 둘 다 알몸이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 성경에서 알몸과 부끄러움은 ‘나약성,’ ‘보호받지 못함’과 ‘패배’를 나타낸다(아모 2,16; 미카 1,8; 시편 6,11 등). 이 기사에 나오는 남자와 여자는 서로의 나약성을 악용하는 일 없이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 내 배우자가 어떤 면에서 자랑스럽고 부끄럽습니까? 인간은 누구나 본성적으로 한계를 가지고 있고 또 마찬가지로 나약하기 때문에 남자와 여자는 무엇인가 문제가 생깁니다. 어떻게 그 문제를 이겨 내고 부끄러워하지 않습니까? 우리 부부 사이를 부끄럽게 하는 개인적인 결함이나 사회적인 상황과 환경이 있습니까? 있다면, 우리 부부는 그것 때문에 서로의 관계가 어렵습니까? 심지어는 그 나약성과 약점을 이용하여 배우자를 괴롭히고 있습니까? 아니면, 그 부족함을 서로 채워주면서 극복하고 있습니까?
기도
주님 좋으시다. 영원하신 그 사랑(시편 99,2-5)
2온누리 반기어 주님께 소리쳐라.
기쁨으로 주님 섬겨 드려라,
춤추며 당신 앞에 나아가라.
3주님은 하느님, 너희는 알라.
우리를 내셨으니, 우리는 당신의 것,
당신 백성이어라, 기르시는 그 양떼이어라.
4고마우심 노래하며 당신 문으로,
찬미하며 들어가라, 그 뜰 안으로.
주님께 감사하라, 그 이름을 찬양하라.
5주님 좋으시다, 영원하신 그 사랑,
당신의 진실하심, 세세에 미치리라.
3. 너 어디 있느냐
성경본문
인간의 죄I – 하느님께 대한 죄(창세 3,1‐24)
3 1뱀은 주 하느님께서 만드신 모든 들짐승 가운데에서 가장 간교하였다. 그 뱀이 여자에게 물었다. “하느님께서 ‘너희는 동산의 어떤 나무에서든지 열매를 따 먹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다는데 정말이냐?” 2여자가 뱀에게 대답하였다. “우리는 동산에 있는 나무 열매를 먹어도 된다. 3그러나 동산 한가운데에 있는 나무 열매만은, ‘너희가 죽지 않으려거든 먹지도 만지지도 마라.’ 하고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4그러자 뱀이 여자에게 말하였다. “너희는 결코 죽지 않는다. 5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 너희 눈이 열려 하느님처럼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될 줄을 하느님께서 아시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6여자가 쳐다보니 그 나무 열매는 먹음직하고 소담스러워 보였다. 그뿐만 아니라 그것은 슬기롭게 해 줄 것처럼 탐스러웠다. 그래서 여자가 열매 하나를 따서 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자, 그도 그것을 먹었다. 7그러자 그 둘은 눈이 열려 자기들이 알몸인 것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서 두렁이를 만들어 입었다. 8그들은 주 하느님께서 저녁 산들바람 속에 동산을 거니시는 소리를 들었다. 사람과 그 아내는 주 하느님 앞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다. 9주 하느님께서 사람을 부르시며, “너 어디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10그가 대답하였다. “동산에서 당신의 소리를 듣고 제가 알몸이기 때문에 두려워 숨었습니다.” 11그분께서 “네가 알몸이라고 누가 일러 주더냐? 내가 너에게 따 먹지 말라고 명령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따 먹었느냐?” 하고 물으시자, 12사람이 대답하였다. “당신께서 저와 함께 살라고 주신 여자가 그 나무 열매를 저에게 주기에 제가 먹었습니다.” 13주 하느님께서 여자에게 “너는 어찌하여 이런 일을 저질렀느냐?” 하고 물으시자, 여자가 대답하였다. “뱀이 저를 꾀어서 제가 따 먹었습니다.”
14주 하느님께서 뱀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이런 일을 저질렀으니 너는 모든 집짐승과 들짐승 가운데에서 저주를 받아 네가 사는 동안 줄곧 배로 기어 다니며 먼지를 먹으리라. 15나는 너와 그 여자 사이에, 네 후손과 그 여자의 후손 사이에 적개심을 일으키리니 여자의 후손은 너의 머리에 상처를 입히고 너는 그의 발꿈치에 상처를 입히리라.”
16그리고 여자에게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네가 임신하여 커다란 고통을 겪게 하리라. 너는 괴로움 속에서 자식들을 낳으리라. 너는 네 남편을 갈망하고 그는 너의 주인이 되리라.”
17그리고 사람에게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에게 따 먹지 말라고 명령한 나무에서 열매를 따 먹었으니, 땅은 너 때문에 저주를 받으리라. 너는 사는 동안 줄곧 고통 속에서 땅을 부쳐 먹으리라. 18땅은 네 앞에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돋게 하고 너는 들의 풀을 먹으리라. 19너는 흙에서 나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양식을 먹을 수 있으리라.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가리라.”
20사람은 자기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하였다. 그가 살아 있는 모든 것의 어머니가 되었기 때문이다. 21주 하느님께서는 사람과 그의 아내에게 가죽 옷을 만들어 입혀 주셨다.
22주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자, 사람이 선과 악을 알아 우리 가운데 하나처럼 되었으니, 이제 그가 손을 내밀어 생명 나무 열매까지 따 먹고 영원히 살게 되어서는 안 되지.” 23그래서 주 하느님께서는 그를 에덴 동산에서 내치시어, 그가 생겨 나온 흙을 일구게 하셨다. 24이렇게 사람을 내쫓으신 다음, 에덴 동산 동쪽에 커룹들과 번쩍이는 불 칼을 세워, 생명 나무에 이르는 길을 지키게 하셨다.
묵상 요점
1. 인간의 범죄: 교만 ‐ 원죄
‐ ‘악의 유혹’(유혹은 악으로부터); ‘유혹(하는)자’(마태 4,3); ‘사탄’(마르 1,13); ‘악마’(루카 4,2)
‐ 뱀(악)의 제안이 왜 유혹입니까?
하느님께서 “동산 한가운데에 있는 나무 열매만은, ‘너희가 죽지 않으려거든 먹지도 만지지도 마라.’ 하고 말씀하셨다”에 대해, 뱀은 3장 4-5절에서 “너희는 결코 죽지 않는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 너희 눈이 열려 하느님처럼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될 줄을 하느님께서 아시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라고 말합니다. 뱀의 말이 맞습니까? 그렇다면 그것은 유혹이 아니라 진실입니다. 그런데, 유혹은 일하지 않아도, 고생하지 않아도,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는 ‘허망한 꿈’을 약속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자기희생과 노력에 의해 이루지 않은 성과는 허상이며, 인간에게 재앙을 가져다줍니다. 그래서 뱀의 이야기는 유혹인 것입니다.
2. ‘인간의 응답’: 착각, 허망한 꿈에 대한 갈망
3장 6절 ”여자가 쳐다보니 그 나무 열매는 먹음직하고 소담스러워 보였다. 그뿐만 아니라 그것은 슬기롭게 해 줄 것처럼 탐스러웠다. 그래서 여자가 열매 하나를 따서 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자, 그도 그것을 먹었다.”
3. 유혹의 결과
자기가 무엇인가 얻으려 하고, 또 무엇인가 되고 싶어서 행한 자기 시도와는 전혀 다른 결과를 얻게 됩니다. 3장 7절을 보면, “그러자 그들은 눈이 열려 자기들이 알몸인 것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서 두렁이를 만들어 입었다.”고 나옵니다.
‐ 그들은 하느님과 같아지려고 했지만, 결과는 선과 악을 구별하는 능력을 얻은 게 아니라 자신이 알몸이라는 자각과 그에 따른 수치심을 얻게 되었습니다. 즉 지식을 얻게는 되지만, 자신이 나체라는 이른바 자신의 나약성과 약점을 알게 된 것입니다
‐ 단절과 도피. 그들은 하느님을 피해 달아납니다 3장 10절에서 그들은 “동산에서 당신의 소리를 듣고 제가 알몸이기 때문에 두려워 숨었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 핑계와 배신(?). 남자는 여자에게(3장 12절 “당신께서 저와 함께 살라고 주신 여자가 그 나무 열매를 저에게 주기에 제가 먹었습니다”), 여자는 뱀에게(3장 13절 “뱀이 저를 꾀어서 제가 다 먹었습니다”) 핑계를 대고 자신의 책임을 돌립니다,
- 결국 하느님과 인간 서로에게 자기를 숨기려 하고 피하게 됩니다.
4. 죄지은 인간에게 하느님이 하신 일
‐ 찾으심: “너 어디 있느냐?”
‐ 하느님께서 벌을 내리심.
뱀에게는 3장 14-15절 “네가 이런 일을 저질렀으니 너는 모든 집짐승과 들짐승 가운데에서 저주를 받아 네가 사는 동안 줄곧 배로 기어 다니며 먼지를 먹으리라. 나는 너와 그 여자 사이에, 네 후손과 그 여자의 후손 사이에 적개심을 일으키리니 여자의 후손은 너의 머리에 상처를 입히고 너는 그의 발꿈치에 상처를 입히리라.” 고,
여자에게는 3장 16절 “나는 네가 임신하여 커다란 고통을 겪게 하리라. 너는 괴로움 속에서 자식들을 낳으리라. 너는 네 남편을 갈망하고 그는 너의 주인이 되리라.” 고
사람에게는 3장 17-19절 “네가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에게 따 먹지 말라고 명령한 나무에서 열매를 따 먹었으니, 땅은 너 때문에 저주를 받으리라. 너는 사는 동안 줄곧 고통 속에서 땅을 부쳐 먹으리라. 땅은 네 앞에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돋게 하고 너는 들의 풀을 먹으리라. 너는 흙에서 나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양식을 먹을 수 있으리라.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가리라.” 고.
그런데 사람에게 내린 벌을 자세히 보면, 하느님은 죄지은 인간을 저주하지 않고, 인간이 죄를 지은 상황과 환경인 땅을 저주하셨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노동이 ‘기쁨’이요 ‘삶의 한 부분’이 아니라, 인간에게 내려진 ‘벌’이며 ‘살기 위해 해야만 하는 의무와 수고’로 변했습니다. 그리고 죽음이라는 것으로 지상 삶에 한계를 두십니다. 인간 행복에 한계를 그으신 것입니다. 자승자박이라고나 할까요. 인간 스스로 하느님께서 주신 행복을 차버린 셈이 되어 버렸습니다.
5. 그러나 죄지은 인간에게 베푸시는 하느님의 자비
‐ 3장 15절 하느님께서는 죄를 지어 하느님 안에서 누리는 행복을 잃어버린 인간에게, 구세주를 통해 우리 인간을 창조하실 때 주신 에덴동산의 삶을 다시 회복하도록 해 주시겠다는 약속을 하십니다. 이것을 ‘원복음’이라고 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부활 찬송(Exsultet)에서 성 암브로시오는 ‘구세주를 오시게 한 복된 죄’라고 노래합니다. 비록 아담이 죄를 지어 하느님에게서 멀어지고 스스로 행복을 놓쳐 버렸지만, 이를 용서하시고 회복시켜 인간을 다시 은총의 지위로 올려 주기 위해 인간에게 구세주가 오신 것입니다.
‐ 인간이 죄를 지어 에덴 동산을 떠나야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불쌍히 여기시어 가죽옷을 지어 주십니다. 3장 21절 “주 하느님께서는 사람과 그의 아내에게 가죽 옷을 만들어 입혀 주셨다.”
6. 벌 이후 아담이 한 일
사람은 아내의 이름을 지어줍니다. 3장 20절 “사람은 자기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하였다. 그가 살아 있는 모든 것의 어머니가 되었기 때문이다.”
성찰
1. 우리 부부가 살면서 내 배우자나 가정의 어떤 비밀이나 약점을 알게 되었던 적이 있습니까? 만일 있다면, 마치 선과 악을 구별하는 나무 열매를 따 먹고 사람과 여자가 한 것처럼 핑계를 대며 책임을 미루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 앎이 내 부부생활이나 가정생활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까? 그리고 그 때문에 서로 협력하여 그 난관을 헤쳐 나가려고 합니까? 아니면 그 난관에 빠져 헤매고 있습니까?
2. 사람과 아내가 벌을 받음으로써 아내와 뱀을 원망하기도 했지만, 인간은 하느님으로부터 다시 회복의 기회를 주시리라는 약속을 얻고, 새 옷을 얻어 입고, 새로운 환경의 새로운 조건에서 살도록 하느님의 자비를 얻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가족사에서, 우리 부부사에서, 그때 그 일이 오늘 우리를 어떻게 이끌고 있습니까? “그 때 당신이 그렇게만 안 했어도, 우리가 이 모양 이 꼴로 살지는 않았을 텐데...”라고 서로를 원망하면서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그때 그 일로 주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심으로써 우리가 이렇게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라고 고백하며 감사하고 있습니까?
3. 하느님께서 사람과 아내에게 가죽옷을 입혀주셨는데, 우리 부부와 가정에는 어떤 옷을 입혀주셨습니까? 우리 부부와 가정에 내려 주신 하느님의 축복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우리의 나약성으로 실수를 저지르는 데 반해, 하느님께서는 그 나약성과 실수를 통해 우리 부부와 가정에 어떤 축복을 내려주셨습니까?
기도
주님의 위엄과 인간의 존엄성(시편 8,2-10)
2하느님 내 주시여
온 땅에 당신 이름 어이 이리 묘하신고
하늘 위 높다랗게 엄위를 떨치셨나이다.
3원수들 무색케 하시고자
불신자 복수자들 꺾으시고자,
어린이 젖먹이들 그 입에서마저
어엿한 찬송을 마련하셨나이다.
4우러러 당신 손가락이 만드신 저 하늘하며
굳건히 이룩하신 달과 별들을 보나이다.
5인간이 무엇이기에 아니 잊으시나이까
그 종락 무엇이기에 따뜻이 돌보시나이까
6천사들보다는 못하게 만드셨어도
영광과 존귀의 관을 씌워 주셨나이다.
7손수 만드신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삼라 만상을 그의 발 아래 두시었으니,
8통틀어 양떼와 소들과 들짐승하며
9하늘의 새들과 바다의 물고기며
바닷속 지름길을 두루 다니는 것들이오이다.
10하느님 내 주시여
온 땅에 당신 이름 어이 이리 묘하신고
4.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
성경본문
카인과 아벨(인간의 죄II – 이웃에 대한 죄) (창세 4,1‐16)
4 1사람이 자기 아내 하와와 잠자리를 같이하니, 그 여자가 임신하여 카인을 낳고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주님의 도우심으로 남자 아이를 얻었다.” 2그 여자는 다시 카인의 동생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치기가 되고 카인은 땅을 부치는 농부가 되었다. 3세월이 흐른 뒤에 카인은 땅의 소출을 주님께 제물로 바치고, 4아벨은 양 떼 가운데 맏배들과 그 굳기름을 바쳤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아벨과 그의 제물은 기꺼이 굽어보셨으나, 5카인과 그의 제물은 굽어보지 않으셨다. 그래서 카인은 몹시 화를 내며 얼굴을 떨어뜨렸다. 6주님께서 카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어찌하여 화를 내고, 어찌하여 얼굴을 떨어뜨리느냐? 7네가 옳게 행동하면 얼굴을 들 수 있지 않느냐? 그러나 네가 옳게 행동하지 않으면, 죄악이 문 앞에 도사리고 앉아 너를 노리게 될 터인데, 너는 그 죄악을 잘 다스려야 하지 않겠느냐?”
8카인이 아우 아벨에게 “들에 나가자.” 하고 말하였다. 그들이 들에 있을 때, 카인이 자기 아우 아벨에게 덤벼들어 그를 죽였다. 9주님께서 카인에게 물으셨다. “네 아우 아벨은 어디 있느냐?” 그가 대답하였다. “모릅니다.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 10그러자 그분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무슨 짓을 저질렀느냐? 들어 보아라. 네 아우의 피가 땅바닥에서 나에게 울부짖고 있다. 11이제 너는 저주를 받아, 입을 벌려 네 손에서 네 아우의 피를 받아 낸 그 땅에서 쫓겨날 것이다. 12네가 땅을 부쳐도, 그것이 너에게 더 이상 수확을 내주지 않을 것이다. 너는 세상을 떠돌며 헤매는 신세가 될 것이다.” 13카인이 주님께 아뢰었다. “그 형벌은 제가 짊어지기에 너무나 큽니다. 14당신께서 오늘 저를 이 땅에서 쫓아내시니, 저는 당신 앞에서 몸을 숨겨야 하고, 세상을 떠돌며 헤매는 신세가 되어, 만나는 자마다 저를 죽이려 할 것입니다.” 15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아니다. 카인을 죽이는 자는 누구나 일곱 갑절로 앙갚음을 받을 것이다.” 그런 다음 주님께서는 카인에게 표를 찍어 주셔서, 어느 누가 그를 만나더라도 그를 죽이지 못하게 하셨다. 16카인은 주님 앞에서 물러 나와 에덴의 동쪽 놋 땅에 살았다.
묵상 요점
1. 공동체의 범죄: 시기와 질투, 살인.
‐ 아벨은 양치기가 되고, 카인은 농부가 되었습니다.
‐ 카인은 땅의 소출을 주님께 제물로 바치고, 아벨은 양 떼 가운데 맏배들과 그 굳기름을 바쳤습니다.
‐ 그런데 주님께서는 아벨과 그의 제물은 기꺼이 굽어보셨으나, 카인과 그의 제물은 굽어보지 않으셨습니다.
- 그러자 카인은 몹시 화를 내며 얼굴을 떨어뜨렸습니다(자기 혼자라면 견딜 수 있는데, 타인과 비교하니까 시기와 질투가 생긴 것입니다).
‐ 카인이 아벨을 꼬드겨서 들로 데리고 나가 죽여버립니다.
2. 죄지은 인간을 향한 주님의 마음
‐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4장 6-7절 “너는 어찌하여 화를 내고, 어찌하여 얼굴을 떨어뜨리느냐? 7네가 옳게 행동하면 얼굴을 들 수 있지 않느냐? 그러나 네가 옳게 행동하지 않으면, 죄악이 문 앞에 도사리고 앉아 너를 노리게 될 터인데, 너는 그 죄악을 잘 다스려야 하지 않겠느냐?”
누굴 반기든 반기지 않든, 기쁘게 맞아주던, 그렇지 않든, 그건 주님인 내가 할 일이고, 너는 네가 할 일을 다 했으면 그만 아니냐? 네가 할 바를 다 했다면, 왜 화를 내느냐? 죄악을 잘 다스려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십니다.
‐ 주님께서 물으십니다. “네 아우 아벨은 어디 있느냐?“(왜 그 부모가 묻지 않고 주님께서 물으시겠습니까?)
‐ “모릅니다.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
3. 카인에게 내리는 주님의 벌
-4장 10절 “네가 무슨 짓을 저질렀느냐? 들어 보아라. 네 아우의 피가 땅바닥에서 나에게 울부짖고 있다.”
비록 네 앞에서는 너에게 직접 대놓고 대들지 못하지만, 약하고 어려운 이들이 울부짖고 있고, 그 소리를 나는 귀여겨 듣는다. 나는 가난하고 억울한 이들의 하느님이다.
- 카인에게 내리신 주님의 벌. 4장 11·12절 ”이제 너는 저주를 받아, 입을 벌려 네 손에서 네 아우의 피를 받아 낸 그 땅에서 쫓겨날 것이다. 네가 땅을 부쳐도, 그것이 너에게 더 이상 수확을 내주지 않을 것이다. 너는 세상을 떠돌며 헤매는 신세가 될 것이다.”
4. 카인에게 내리는 주님의 자비
- 카인은 자기가 죄를 짓긴 했지만, 그 벌을 감당할 수 없다고 하느님께 간청합니다.
4장 13-14절 ”카인이 주님께 아뢰었다. ‘그 형벌은 제가 짊어지기에 너무나 큽니다. 당신께서 오늘 저를 이 땅에서 쫓아내시니, 저는 당신 앞에서 몸을 숨겨야 하고, 세상을 떠돌며 헤매는 신세가 되어, 만나는 자마다 저를 죽이려 할 것입니다.’”
그러자 하느님께서는 4장 15절에서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아니다. 카인을 죽이는 자는 누구나 일곱 갑절로 앙갚음을 받을 것이다.’ 그런 다음 주님께서는 카인에게 표를 찍어 주셔서, 어느 누가 그를 만나더라도 그를 죽이지 못하게 하셨다.” 하시며 카인을 보호해 주십니다.
5. 생명과 복수
‐ 하느님께서 주신 생명을 빼앗음. 살인과 보복 살인, 사형제도.
생명은 하느님의 것입니다. 주님만이 인간 생명의 주인이시고 주관자이십니다.
- 주님께서 주시고 주님께서 갚아 주십니다. 복수는 하느님이 하실 일입니다. 인간은 단지 자기 할 바만 하면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스스로 복수할 생각을 하지 말고 하느님의 진노에 맡기십시오. 성경에서도 ‘복수는 내가 할 일, 내가 보복하리라.’ 하고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오히려 ‘그대의 원수가 주리거든 먹을 것을 주고, 목말라하거든 마실 것을 주십시오. 그렇게 하는 것은 그대가 숯불을 그의 머리에 놓는 셈입니다.’ 악에 굴복당하지 말고 선으로 악을 굴복시키십시오.”(로마 12,19-21)
6. 성경 사회학적 풀이
이 성경 구절에서 우리는 이스라엘 역사의 변화와 그에 따른 환경과 문화에 따른 신관과 신앙생활의 변화를 볼 수 있습니다. 아벨은 유목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의 공동체 문화(사막 전통 유목 민족 문화 ‐ 공동생산, 공동분배)를 상징하고, 카인은 이집트 탈출 이후 가나안 땅에 정착한 이후의 개인 문화(가나안 경작 정착 문화 ‐ 개인소득 개인 사유재산)를 상징합니다. 성경 사회학자들은 유다인 민족이 역사를 통해 삶의 조건과 문화가 변함에 따라 신관과 신앙생활이 변했다고 이 성경 구절을 해석합니다.
개인 별로 땅을 나누어 주고 개인 소득을 인정해 주었다면, 전체를 위해 일하다가 죽은 이들의 미망인과 가족 그리고 사회적으로 가난한 이와 노인, 고아, 과부, 장애자들은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하는가? 사회적으로 뒤처진 이들의 문제는 누구의 문제인가? 그리고 그것은 사회문제인가 가정과 개인의 문제인가? 등등 여러 가지 문제들이 발생합니다.
7. 차별과 편애
‐ 이 성경구절의 주제는 인간 공동체에서 서로 간에 비교함으로써 드러나는 시기와 질투라는 죄악의 문제입니다. 동시에 이 구절을 통해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차별과 편애에 대한 이해입니다.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아프지 않은 손가락 없다지만, 부모님에게도 경우에 따라서는 마음이 더 가는 자녀가 있습니다. 예뻐서 사랑하고, 마음에 들어서 사랑하고, 사랑하지 않으면 안 돼서 사랑하고 … . 이유는 어떻든 간에 말입니다!
‐ 차별과 편애 그리고 그 결과에는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첫째, 누가 다른 사람보다 더 사랑받고 있다면, 사회적으로 분열이 일어나고 전쟁이 터지기도 합니다. 사랑받고 인정받아서 기쁜 일이기도 하지만 사랑받고 인정받기 때문에 형제들과 이웃들 사이에서 질시의 대상이 되는 나쁜 일이기도 합니다.
둘째, 육체적, 정신적 장애자들처럼 특별히 더 사랑받지 않으면 동등해지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셋째, 맏아들이나 또는 가족과 여러 사람들을 책임져야 하는 사람이나, 사회적 업무의 양과 질에 따라 차이가 나는 사랑과 배려도 있습니다.
넷째, 누가 다른 사람보다 더 사랑받고 인정받아서 형제들에게 더욱더 봉사한다면, 그건 바람직하고 권장할만 합니다.
8. 죄악에서 희망으로
죄를 지은 인간은 특별한 경우를 죄외하고는 죄책감을 느끼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사람과 세상에 끼친 폐해를 바라보며 괴로워합니다. 그러면서 죄를 지은 죄인은 또한 그 죄를 뉘우치며 자기 죄의 결과를 회복시키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경우에 따라서는 사람과 세상에 끼친 자기 죄의 결과를 바라보며 놀라 어쩔 줄 몰라서 자신을 저주하기조차 합니다. 또 자기 죄가 드러났을 때 자기가 받게 될 벌 때문에 두려움에 떨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시는 주님을 믿고, 그분의 자비로운 사랑을 기억하고 느낄 때 우리는 주님께 되돌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힘만으로는 자신의 죄를 끊거나 그 죄의 유혹을 극복하지도 못하여 점점 나약해지고, 심지어는 마치 중독처럼 자연스럽게 빠져들어 죄짓기를 되풀이하는 자기 자신을, 죄악의 노예가 되어버린 무능력한 자신을 바라보며, 우리는 주님께 간청합니다. ‘주님 저를 이 죄악에서 건져주소서!’ 그 때 주님께서는 죄인인 우리를 향해 다가오실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께 돌아갈 때 우리는 주님 사랑의 힘으로 변화되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결심과 의지만으로 이룰 수 없는 회개와 새로운 삶의 희망을 주님의 자비로운 사랑 안에서 받고, 주님 은총의 힘으로 변화되어 새로 나기로 합시다.
성찰
1. 자라오면서 지금까지 가정과 가족, 친구, 이웃에게 품었던 시기와 질투가 있었습니까? 왜 부모님은 동생(형)만 사랑하십니까? 왜 나보다 동생(형)을 더 사랑하십니까?
2. 학교나 사회에서, 그리고 먼 옛날이 아닌 지금 나는 사랑받고 인정받고 있습니까? 그래서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3. 지금 우리 가정에서 가장 어렵고 힘든 이가 누구입니까? 또 가족 중에 자신은 사랑받지 못하고 소외당하고 있다고 느끼는 이가 있습니까? 또 나는 내 자녀 중에 누구를 더 사랑하고 있습니까? 그래서 가족 관계가 어떻게 형성되고 있습니까?
4. 카인이 “모릅니다.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라고 말했듯이, 지금 “내가 가난한 이들을 돌보는 사람입니까?”라고 말하며 살고 있지 않습니까? 요즘, 내 친척, 친지, 이웃 중에 어려운 이들은 누구입니까? 주님께서 그들을 내 눈에 띄게 하심으로써, 내가 책임지도록 초대받는 이들은 누구입니까? 어떻게 주님과 가족에게 선물을 드리듯이 그와 함께할 수 있습니까?
5. 하느님께서는 다른 사람들이 카인을 죽이지 못하도록 징표를 찍어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느님께서는 우리 부부와 가정의 약점과 허물을 어떻게 덮어 주고 보호해 주고 계십니까?
기도
하느님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시편 51,3-21)
3하느님, 자비하시니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애련함이 크오시니 내 죄를 없이 하소서.
4내 잘못을 말끔히 씻어 주시고
내 허물을 깨끗이 없애 주소서.
5나는 내 죄를 알고 있사오며
내 죄 항상 내 앞에 있삽나이다.
6당신께, 오로지 당신께 죄를 얻었삽고
당신의 눈앞에서 죄를 지었사오니
판결하심 공정하고
심판에 휘지 않으심이 드러나리이다.
7보소서, 나는 죄 중에 생겨났고
내 어미가 죄 중에 나를 배었나이다.
8당신은 마음의 진실을 반기시니
가슴 깊이 슬기를 내게 가르치시나이다.
9히솝의 채로 내게 뿌려 주소서.
나는 곧 깨끗하여지리이다.
나를 씻어 주소서, 눈보다 더 희어지리다.
10기쁨과 즐거움을 돌려주시어
바수어진 뼈들이 춤추게 하소서.
11내 죄에서 당신 얼굴 돌이키시고
내 모든 허물을 없애 주소서.
12하느님 내 마음을 깨끗이 만드시고
내 안에 굳센 정신을 새로 하소서.
13당신의 면전에서 날 내치지 마옵시고
당신의 거룩한 얼을 거두지 마옵소서.
14당신 구원, 그 기쁨을 내게 도로 주시고
정성된 마음을 도로 굳혀 주소서.
15악인들에게 당신의 길을 가르치오리니
죄인들이 당신께 돌아오리이다.
16하느님, 날 구하시는 하느님이여
피 흘린 죄벌에서 나를 구하소서.
내 혀가 당신 정의를 높이 일컬으오리다.
17주여 내 입시울을 열어 주소서.
내 입이 당신의 찬미 전하오리니
18제사는 당신이 즐기지 않으시고
번제를 드리어도 받지 아니하시리이다.
19하느님, 나의 제사는 통회의 정신
하느님께서는 부서지고 낮추인 마음을
낮추 아니 보시나이다.
20주여, 인자로이 시온을 돌보시고
예루살렘의 성을 다시 쌓아 주소서.
21법다운 제사와 제물과 번제를 그 때에 받으시리니
그때에는 사람들이 송아지들을
당신 제단 위에 바치리이다.
5. 너를 떠나지 않겠다
성경 본문
야곱과 에사우(창세 25,19‐33,20)
28 10야곱은 브에르 세바를 떠나 하란으로 가다가, 11어떤 곳에 이르러 해가 지자 거기에서 밤을 지내게 되었다. 그는 그곳의 돌 하나를 가져다 머리에 베고 그곳에 누워 자다가, 12꿈을 꾸었다. 그가 보니 땅에 층계가 세워져 있고 그 꼭대기는 하늘에 닿아 있는데, 하느님의 천사들이 그 층계를 오르내리고 있었다. 13주님께서 그 위에 서서 말씀하셨다. “나는 너의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느님이며 이사악의 하느님인 주님이다. 나는 네가 누워 있는 이 땅을 너와 네 후손에게 주겠다. 14네 후손은 땅의 먼지처럼 많아지고, 너는 서쪽과 동쪽 또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 나갈 것이다. 땅의 모든 종족들이 너와 네 후손을 통하여 복을 받을 것이다. 15보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면서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켜 주고, 너를 다시 이 땅으로 데려오겠다. 내가 너에게 약속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않겠다.” 16야곱은 잠에서 깨어나, “진정 주님께서 이곳에 계시는데도 나는 그것을 모르고 있었구나.” 하면서, 17두려움에 싸여 말하였다. “이 얼마나 두려운 곳인가! 이곳은 다름 아닌 하느님의 집이다. 여기가 바로 하늘의 문이로구나.”
18야곱은 아침 일찍 일어나, 머리에 베었던 돌을 가져다 기념 기둥으로 세우고 그 꼭대기에 기름을 부었다. 19그러고는 그곳의 이름을 베텔이라 하였다. 그러나 그 성읍의 본 이름은 루즈였다. 20그런 다음 야곱은 이렇게 서원하였다. “하느님께서 저와 함께 계시면서 제가 가는 이 길에서 저를 지켜 주시고, 저에게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마련해 주시며, 21제가 무사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해 주신다면, 주님께서는 저의 하느님이 되시고, 22제가 기념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은 하느님의 집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당신께서 주시는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당신께 바치겠습니다.”
묵상 요점
1. 공동체의 권력 찬탈 사건
‐ 에사우 형의 축복을 가로챈 야곱의 비열한 이야기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사악도 생명의 위협에 처했을 때는 아내를 누이라고 속여 이민족에게 바쳤던 적이 있습니다. 우리의 가족사에도 어쩌면 살기 위해서, 가정을 지키고 아이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무슨 일이라도 했어야 했던 상황과 그 상황 속에서 치러야만 했던 과거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과거가 어떠했느냐가 아니라, 그 과거를 통해 오늘 주님께서는 우리를 어디로 이끌고 계시느냐가 우리가 풀어 나가야 할 과제입니다.
2. 힘세고 활동적인 에사우와 곱상하고 얌전한 야곱의 탄생이야기
- 25장 29-34에서 형 에사우가 허기찬 배를 움켜쥐고 들어오면서 야곱이 끓이고 있는 붉은 콩 죽을 달라고 하자, 야곱이 “먼저 형의 권리를 내게 파시오.”라고 말합니다. 맏아들의 권리라는 것이 형이 판다고 하여 형이 동생이 되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 형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맹세를 하고서 빵과 붉은 콩죽을 받아먹었습니다. 우리 속담에도 매에게 쫓겨 방에 들어온 꿩은 잡아먹지 않는다는데, 야곱은 남의 약점을 이용해서 자기 욕심을 채웁니다.
‐ 그리고 27장 1‐29절을 보면, 이사악이 죽을 때가 되어, 이스라엘의 관습대로 맏아들에게 축복을 전수해 줄 때가 되자. 이사악은 에사우에게 축복을 내리기 전에 함께 시간을 가지기 위해 자기가 먹고 싶은 것을 가져오라고 합니다. 그래서 형 에사우가 아버지의 소원을 들어주려고 짐승을 잡으러 나간 사이에, 이사악의 아내이자 두 아이의 어머니 레베카는 동생 야곱에게 형 에사우처럼 꾸미고 이사악에게 들어가 형 에사우의 축복을 대신 받고 나오라고 시킵니다. 이스라엘의 축복은 단순히 손만 얹어주는 안수가 아니라, 그 안수를 통해 자기가 가지고 있던 땅과 사람들 그리고 그 관련 소유물을 안수를 받는 자에게 넘겨주는 일종의 후계자 지명식과 유산 상속과도 같은 것입니다.
‐ 27장 30‐40절에서, 에사우는 아버지의 소원대로 짐승을 사냥해서 돌아왔다가 야곱이 자신의 축복을 대신 가로챈 것을 알아내고 야곱을 죽이려고 합니다.
‐ 그러자 27장 41에서 그 어머니 레베카는 형 에사우의 화가 가라앉을 때까지 잠시 피하라고 야곱을 하란에 살고 있는 아이들의 외삼촌 그러니까 자기 오빠 라반에게로 보냅니다.
‐ 28장부터 축복을 가로챈 야곱의 힘든 도피 생활이 시작됩니다. 자기 꾀로 자기가 원하는 것을 차지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야곱은 자기가 차지한 복 때문에 도피해야만 하는 신세가 됩니다.
3. 왜 하느님께서는 이러한 죄악을 허락하십니까?
‐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시면서, 왜 영화에 나오듯이 사전에 막지 않으셨을까요?
‐ 하느님께서는 선한 이들의 선한 일을 보고 흐뭇해 하시듯이, 악한 일을 하는 이들을 아파하시면서도 막지 않으십니다. 그 대신 죄인 스스로가 인간 세상에서 발각과 처벌 그리고 보복의 두려움과 공포 속에서 기워 갚으라고 하시는 듯이 그냥 내버려 두십니다.
‐ 그러나 선택받은 사람이라고 해서 다 잘 살고, 행복하게 사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 선택받은 것 같은 사람이 겉으로 보이는 그 화려함 뒤에서, 또는 그 말년에 홀로 외롭고 힘겹게 자기 행위의 결과를 대면함으로써 스스로 자기 분열의 고통을 짊어지고 겪고 있습니다.
‐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공한 사람들이 바로 자신이 취한 그 성공 때문에 형제들과 세상에서 그 대가를 치르는 모습을 우리는 역사 안에서 보아 왔습니다. 여기서는 야곱의 도피생활이 펼쳐집니다.
4. 에사우는 반발로 가나안 여자와 결혼합니다.
에사우 역시 자신의 억울함을 핑계로 올바르지 못한 선택의 과정을 거칩니다. 야곱과 어머니가 어떤 일을 했던지 간에, 에사우는 자기 길을 곧게 갈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에사우는 홧김에 이민족인 가나안 여자와 결혼해 버립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마태 5,45)는 말씀처럼 언젠가는 죄를 뉘우치고 당신께로 돌아오기를 기다리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한 가지를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습니다. 어떤 이들은 미루신다고 생각하지만 주님께서는 약속을 미루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여러분을 위하여 참고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회개하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이러한 것들을 기다리고 있으니, 티 없고 흠 없는 사람으로 평화로이 그분 앞에 나설 수 있도록 애쓰십시오. 그리고 우리 주님께서 참고 기다리시는 것을 구원의 기회로 생각하십시오”(2베드 3,8-9. 14-15).
5. 야곱은 베텔에서 자기의 허망하고 불안한 도피 생활을 시작하면서 하느님께 빌고 또 빕니다.
야곱의 청원을 받은 하느님께서는 하와와 카인 그리고 아브라함 등 모든 죄인들에게 그러하셨듯이, 죄를 뉘우치는 죄인에게 자비를 베푸십니다. 28장 13-15절에서 하느님께서는 야곱에게 “나는 너의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느님이며 이사악의 하느님인 주님이다. 나는 네가 누워 있는 이 땅을 너와 네 후손에게 주겠다. 네 후손은 땅의 먼지처럼 많아지고, 너는 서쪽과 동쪽 또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 나갈 것이다. 땅의 모든 종족들이 너와 네 후손을 통하여 복을 받을 것이다. 보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면서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켜 주고, 너를 다시 이 땅으로 데려오겠다. 내가 너에게 약속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않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래서 야곱은 그곳을 베텔이라고 이름 짓고 제사를 지냅니다. 28장 20-22절에서 야곱은 “하느님께서 저와 함께 계시면서 제가 가는 이 길에서 저를 지켜 주시고, 저에게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마련해 주시며, 제가 무사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해 주신다면, 주님께서는 저의 하느님이 되시고, 제가 기념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은 하느님의 집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당신께서 주시는 모든 것에서 십 분의 일을 당신께 바치겠습니다”라고 서원합니다.
6. 고달픈 도피생활
‐ 그러나 도피자의 생애가 외삼촌의 집이라고 해서 결코 편안할 리 없습니다. 29장부터 야곱은 외삼촌에게 속임을 당해서 두 딸을 아내로 얻기 위해 7년에 7년 더해 14년을, 재산을 모으기 위해 또 6년을 외삼촌의 집에서 노예처럼 살게 됩니다.
‐ 30장을 보면, 거기서 야곱은 꾀를 부려서 자기 재산을 불리지만, 다시 장인과 외갓집 사람들의 의심과 질시를 사서 떠나게 됩니다.
‐ 31장에서, 야곱은 아내 라헬과 레아 그리고 아들들을 데리고 산악 지방을 통해 도망쳤습니다. 장인 라반의 추격을 받고 잡혀서 장인과 다시 화해를 하고 계약을 맺긴 했지만, 야곱이 돌아갈 길이 평탄하지 않습니다.
‐ 32장에 보면, 야곱은 고향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형 에사우를 다시 마주칠 생각을 하니 걱정이 앞섰습니다 그래서 형이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았으면 어떻게 하나’하는 마음으로 종들에게 선물을 들려 먼저 보내어 형의 환심을 사서 혹시나 남아 있을지 모르는 형의 화를 누그러뜨리려고 합니다.
‐ 32장 23‐33절에서, 그 날 밤, 야곱은 그 유명한 ‘하느님과의 씨름’사건을 체험하게 됩니다. 프니엘이라는 곳에서 야곱은 이스라엘이 되고, 새 땅에 다시 들어갈 신고식 같은 것을 치릅니다.
‐ 33장에서, 야곱은 에사우의 환심을 얻어 용서를 받고, 스켐에 자리 잡게 됩니다. 그리고 35장에서 훗날 베텔로 올라가 자리를 잡습니다. 마치 자기의 죗값을 다 치르기라도 하듯이, 갖은 고생을 다 하고서야 뒤늦게 자기 자리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성찰
1. 야곱이 에사우의 복을 가로채고 그 대가로 20년간의 도피생활을 채워야만 했습니다. 나를 배반하고 나의 것을 가로챈 사람이 있었습니까? 그는 지금 어떻게 되었습니까? 또는 그 반대의 경우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2. 그럼 에사우는 그럼 벌을 받았습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선택을 못 받았다고 벌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그냥 에사우는 에사우대로 자기 삶에 주어진 축복을 받고 자기 삶을 살면서 자기에게 주어진 역할을 하며 살아나갑니다. 그리고 훗날 야곱에게서 보상을 받습니다. 그 보상이 자기가 기대한 축복을 대신할 수는 없었을지라도 말입니다. 나는 어떤 면에서 선택받은 사람입니까? 나뿐 아니라 내 가정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의 생애를 되돌아봅시다.
3. 축복을 받은 사람은 복받은 사람입니까? 축복을 받지 못한 사람은 벌 받은 사람입니까?
아닙니다. 축복은 또 다른 의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비열한 행동을 통해서라도 당신의 일을 계속하십니다. 인간의 잘못으로 당신의 구원 사업을 그치지 않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야곱이나 에사우에게 축복을 가로채라고 하지도 축복을 빼앗기라고 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축복을 빼앗은 야곱에게 탄탄대로를 약속하지도 않으셨고, 그렇다고 에사우에게 이류와 차등의 인생을 살라고 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인간사 안에서 인간은 각자 자신이 선택하고 저지른 일들에 대해 책임을 지고 자기가 치러야 할 것을 치르며 살아갑니다. 누가 누구의 것을 빼앗고 누가 누구에게 빼앗긴 것이 아니고, 인간 각자 스스로 서로 다른 역할을 선택하고 그 선택에 따라 서로 다른 길을 가는 것뿐입니다.
4.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 한가운데 함께하십니다.
하느님의 뜻은 보물찾기나 숨바꼭질하듯 숨겨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동시에 하느님의 선택을 인간이 헤아릴 수 없고, 그 자유로운 선택을 인간이 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무슨 짓을 어떻게 저지르든 간에 주님께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시고, 그 때까지 인간의 청을 들어주시고 계십니다. 또 하느님께서는 죄인이든 선인이든, 선택받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이든 선택받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이든 그 역경과 고통 속에 함께하시면서 인간을 결국 구원하고 말겠다는 하느님의 사랑을 이어 나가시며, 마침내 구원해 내시고야 맙니다.
그럼 인간에게 내리는 하느님의 축복은 무엇입니까? 처음에는 야곱이나 에사우가 하느님의 축복이 자기에게 재물과 행운을 가져다 주는 것으로 믿고 청했습니다. 그러나 일생을 마칠 지금에 와서 다시 돌아보는 에사우와 야곱에게 있어 축복이란 하느님의 도우심과 구원하심 그리고 그 인간 구원을 준비하시고 수행해 나가는 데 있어서 축복받은 인간을 하느님 구원의 도구로 쓰시기 위한 선택이며 그 선택을 실행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선택하시고 축복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축복은 개인의 현세적이고 물질적인 영달이 아니라, 하느님 구원 사업의 도구로서 살아가야만 하는 새로운 사명입니다.
그러면 과연 나와 내 가정에 주신 하느님의 선택과 축복은 무엇이며, 지금 이 시대와 이 상황을 살아가는 나와 내 가정에 주신 사명은 무엇입니까?
기도
주님은 나의 목자(시편 22,1-6)
1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노라
2파아란 풀밭에 이 몸 누여 주시고
고이 쉬라 물터로 나를 끌어 주시니
3내 영혼 싱싱하게 생기 돋아라.
주님께서 당신 이름 그 영광을 위하여
곧은 살 지름길로 날 인도하셨어라
4죽음의 그늘진 골짜기를 간다 해도
당신 함께 계시오니 무서울 것 없나이다
당신의 막대와 그 지팡이에
시름은 가시어서 든든하외다.
5내 원수 보는 앞에서 상을 차려 주시고
향기름 이 머리에 발라 주시니
내 술잔 넘치도록 가득하외다.
6한평생 은총과 복이 이 몸을 따르리니
오래오래 주님 궁에서 살으오리다.
6. 나를 이곳으로 보낸 것은 하느님이십니다
성경 본문
요셉이야기(창세 37,1‐45,15)
37 1야곱은 자기 아버지가 나그네살이하던 땅 곧 가나안 땅에 자리를 잡았다. 2…… 요셉은 (다른 형제)들에 대한 나쁜 이야기들을 아버지에게 일러바치곤 하였다. 3이스라엘은 요셉을 늘그막에 얻었으므로, 다른 어느 아들보다 그를 더 사랑하였다. 그래서 그에게 긴 저고리를 지어 입혔다. 4그의 형들은 아버지가 어느 형제보다 그를 더 사랑하는 것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정답게 말을 건넬 수가 없었다. … 27자, 그 아이를 이스마엘인들에게 팔아 버리고, 우리는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 말자. 그래도 그 아이는 우리 아우고 우리 살붙이가 아니냐?” 그러자 형제들은 그의 말을 듣기로 하였다. … 36한편 미디안인들은 이집트로 가서 파라오의 내신으로 경호대장인 포티파르에게 그를 팔아넘겼다.
45 3요셉이 형제들에게 말하였다. “내가 요셉입니다! 아버지께서는 아직 살아 계십니까?” 그러나 형제들은 요셉 앞에서 너무나 놀라, 그에게 대답할 수가 없었다. 4그래서 요셉은 형제들에게 “나에게 가까이 오십시오.” 하고서는, 그들이 가까이 오자 다시 말하였다. “내가 형님들의 아우 요셉입니다. 형님들이 이집트로 팔아넘긴 그 아우입니다. 5그러나 이제는 저를 이곳으로 팔아넘겼다고 해서 괴로워하지도, 자신에게 화를 내지도 마십시오. 우리 목숨을 살리시려고 하느님께서는 나를 여러분보다 앞서 보내신 것입니다. 6이 땅에 기근이 든 지 이태가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다섯 해 동안은 밭을 갈지도 거두지도 못합니다. 7그래서 하느님께서는 나를 여러분보다 앞서 보내시어, 여러분을 위하여 자손들을 이 땅에 일으켜 세우고, 구원받은 이들의 큰 무리가 되도록 여러분의 목숨을 지키게 하셨습니다. 8그러니 나를 이곳으로 보낸 것은 여러분이 아니라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께서 나를 파라오의 아버지로, 그의 온 집안의 주인으로, 그리고 이집트 온 땅의 통치자로 세우셨습니다. 9그러니 서둘러 아버지께 올라가 아버지의 아들 요셉의 말이라 하고 이렇게 전하십시오. ‘하느님께서 저를 온 이집트의 주인으로 세우셨습니다. 지체하지 마시고 저에게 내려오십시오. 10아버지께서 고센 지방에 자리 잡게 되시면, 아버지께서는 아들들과 손자들, 그리고 양 떼와 소 떼 등 모든 재산과 더불어 저와 가까이 계실 수 있습니다. 11기근이 아직도 다섯 해나 계속될 터이니, 제가 그곳에서 아버지를 부양해 드리겠습니다. 그러면 아버지와 집안, 그리고 아버지께 딸린 것들이 궁핍해지지 않을 것입니다.’ 12지금 형님들은 내가 여러분에게 직접 말하고 있는 것을 내 아우 벤야민과 함께 바로 눈으로 보고 있습니다. 13내가 이집트에서 누리는 이 영화와 그 밖에 무엇이든 본 대로 다 아버지께 말씀드리십시오. 서둘러 아버지를 모시고 이곳으로 내려오십시오.” 14그러고 나서 요셉은 자기 아우 벤야민의 목을 껴안고 울었다. 벤야민도 그의 목을 껴안고 울었다. 15요셉은 형들과도 하나하나 입을 맞추고 그들을 붙잡고 울었다. 그제야 형들은 그와 이야기하였다.
묵상 요점
1. 야곱의 열두 아들
‐ 야곱은 늘그막에 얻은 아들 요셉을 무척 사랑했습니다. 요셉은 다른 형제들의 잘못을 아버지께 고자질함으로써 형제들의 미움을 샀고, 또 다른 형제들은 아버지가 요셉을 편애하는 것을 보고 시기하여 요셉을 없애 버리려다가 이집트로 가는 상인들에게 팔아 버렸습니다. 이집트로 팔려간 요셉은 하느님이 함께해 주셔서 보디발의 꿈을 해석해 주고 또 왕의 꿈을 해석해 주고서 재상이 됩니다.
‐ 그러다가 이스라엘에 흉년이 들어 요셉을 팔아버린 형제들이 먹을 것이 없어서 이집트로 내려와 요셉에게 먹을 것을 구걸하는 처지에 놓이게 됩니다.
‐ 그때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요셉은 자기 형제들에게 말합니다. “내가 형님들의 아우 요셉입니다. 형님들이 이집트로 팔아 넘긴 그 아우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저를 이곳으로 팔아 넘겼다고 해서 괴로워하지도, 자신에게 화를 내지도 마십시오. 우리 목숨을 살리시려고 하느님께서는 나를 여러분보다 앞서 보내신 것입니다. 이 땅에 기근이 든 지 이태가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다섯 해 동안 밭을 갈지도 거두지도 못합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나를 여러분보다 앞서 보내시어, 여러분을 위하여 자손들을 이 땅에 일으켜 세우고, 구원받은 이들의 큰 무리가 되도록 여러분의 목숨을 지키게 하셨습니다. 그러니 나를 이 곳으로 보낸 것은 여러분이 아니라 바로 하느님이십니다”(45, 4‐8).
2. 반성의 역사
우리는 성경을 반성의 역사라고 합니다. 이 반성은 잘못된 것을 뉘우치는 반성이 아니라 지나간 일을 하느님의 시각으로 되돌아보는 반성입니다. 요셉 이야기를 이에 연결시켜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첫째, 피해를 입힌 형제들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피해를 끼친 상대에게 가서 고개를 조아리고 용서를 청하기보다는 벌을 받는 것으로 대신하고 싶다.’고도 합니다. 삐뚤어진 자존심과 왜곡된 양심의 결과입니다. 이런 태도는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죄로 인해 상처받은 상대의 마음을 기워 갚을 마음이 없는 것입니다. 뉘우침이 없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자신이 저지른 과오를 솔직히 바라보고, 그 과오로 인해 상대에게 끼친 피해에 대해 진심으로 뉘우치고, 상대가 입은 피해와 상처에 대해 용서를 청하고 보상함으로써 자신과 세상의 질서를 실제로 되돌이키려는 용기가 없는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아예 자기가 저지른 과오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저지른 죄악이 드러났을 때, 자신이 감당해야할 인격적이고 물질적인 벌과 손상을 두려워합니다. 자신이 비록 죄를 지었더라도 자신이 지금 누리고 있는 특권과 혜택을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 탐욕 때문에, 또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고 보상하고자 하는 마음은 있어도 세상 사람들이 자신을 용서해 줄 것이라는 확신이 없기 때문에 자신의 과오를 자인하고 돌이키지 못합니다. 그러나 자기가 죄를 지었다는 사실을 덮고, 자기가 기워 갚아야 할 책임을 외면하고, 자기 주장과 자기 체험만을 강조할 때 결국 회개나 화해도 새 세상의 인간관계도 가져오지 못합니다.
용서와 도움을 베푸는 것만이 사랑이 아니라, 용서를 청하고 도움을 받아들이는 것도 사랑의 행위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 둘째, 피해를 당한 요셉
일반적으로 피해를 입힌 사람은 피해를 당한 사람이 얼마나 괴로워하는지 잘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피해를 입은 사람이 그 피해를 기워 갚을 보상 조건을 제시해주기 전에는 기워 갚지 못합니다. 손상된 재물은 보상하면 됩니다. 그러나 이미 엎어진 물을 주워 담을 수 없듯이, 되돌릴 수 없는 사람과 상황 그리고 그에 따른 상처를 어떻게 보상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면에서 용서는 피해를 당한 사람이, 용서를 할 수 있는 큰 사랑을 가진 사람이 베풀 수 있는 것입니다. 용서를 해 주어야 용서 받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가하면, 우리가 겉으로는 용서하겠다고 다짐하고 마음 속에서 의지적으로 용서를 한다고 되뇌고 또 되뇌어도, 다시 부딪히면 용서하겠다는 결심은 언제 그랬냐는 식으로 사라지고 다시 미움과 원망이 북받쳐 오를 때가 많습니다. 그 사람을 보지 않을 때는 용서했다고 생각했지만, 그 사람과 그 상황을 마음속에 감추고 덮어버린 것이지 결코 용서하지 못했다는 것을 발견하고 자인하게 됩니다. 경우에 따라서 우리는 용서하지 못하는 그와 또 그렇게 용서하지 못하는 나의 나약한 모습 때문에 이중고를 겪기조차 합니다.
그런데 창세기에 나오는 요셉은 자신의 생애를 자기 개인과 자기를 팔아버린 형제들과의 관계 안에서 바라보는 데 그치지 않고, 하느님의 구원 계획 안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되었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자기 생의 역사를 다시 해석하게 됩니다. 이러한 반성을 통해 그는 자기가 아버지의 편애와 이에 대한 형제들의 시기에서 비롯된 희생양이 아니라, 하느님 구원사업의 도구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설사 인간이 비윤리적이고 비정상적인 행동을 저질러 세상에 악이 들어오고 또 인간의 지속적인 죄로 인해 악이 확산되어 세상에 왜 악이 존재하고 또 하느님께서는 왜 악이 이렇게까지 창궐하도록 내버려 두시느냐고 물을 정도가 된다고 하더라도, 하느님께서는 오히려 그러한 상황을 통해 당신의 구원사업을 이루십니다. 이러한 반성 속에서 하느님의 신비를 깨닫게 된 요셉은 자신을 저버린 형들을 기꺼이 용서할 수 있게 됩니다.
용서는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이들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받은 이들은 자신의 인생 역사 안에서 세상과 자기 자신의 자리를 다시 잡게 됩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은총으로 자신을 채우고 자신의 슬픔과 처지를 극복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자신의 생애를 하느님 구원계획 안에서 바라보게 된 이들은 자신에게 피해를 끼친 사람들에게 보복하려 하지 않고 용서할 수 있게 됩니다. 또한 이런 용서는 상대의 뉘우침을 동반하게 하고 화해를 이루게 합니다. 요셉의 이런 용서는 예수님에게서 완성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죽이려는 사람들을 용서해 주십니다.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들은 자기들이 하는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루카 23, 34). 이런 면에서 그리스도는 인간이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뒤엉켜버린 세상에 하느님께서 내려주신 새로운 빛이며 희망입니다. 우리는 인간의 교만과 탐욕스런 행위로 세상에서 물러나신 듯한, 쫓겨나신 듯한 하느님께서 엄연히 살아 움직이시며 당신 사랑의 구원사업을 계속하고 계시다는 섭리를 깨닫습니다. 인간이 바라보고 또 바라볼 수 있기 때문에 자신들이 지배할 수 있고 또 온전히 지배하고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한껏 교만에 빠져 있을 때에도, 그리고 그 상대 쪽에서 그 지배와 소유의 대열에 들지 못하거나 오히려 이용당하고 희생되어 밀려났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인간 세상에서 한없는 절망으로 생과 희망에 대한 포기에 젖어들 때에도, 하느님께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그 한계를 일깨워 주시고 이러한 인간 영역을 초월한 새 하늘과 새 땅의 영역에 대해 눈을 뜨게 해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께 의탁하여 새 하늘과 새 땅인 하느님 나라로 나아가게 됩니다.
- 셋째, 화해의 기쁨과 축복의 확산
하느님 구원 계획 안에서 자신의 역사를 재해석함으로써 우리는 다음 네 가지의 열매를 얻게 됩니다.
1) 아버지의 사랑은 피해를 당해 망가진 영혼과 피해를 줌으로써 발목이 잡힌 우리 영혼을 상처와 ‘한’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를 억누르는 악의 세력에서부터 해방시킵니다.
2) 아버지의 사랑은 형제를 화해시켜 서로를 받아들이고 한 가족이 되게 합니다.
3) 한 사람에게 내려진 하느님의 축복은, 축복받은 인간이 자신에게 내려진 하느님 축복의 신비를 깨닫게 됨으로써 그 축복을 나누는 이들과 함께 공동체를 이루고 확장시켜 나갑니다(요셉에게 내려진 축복이 보디발과, 파라오에게 그리고 자기 민족과 온 인류를 구하는 축복으로 확장되고 퍼져 나갑니다).
4) 우리의 신앙은 우리를 눈에 보이는 인간 영역에 그치지 않게 해 주며, 새로운 하늘과 새로운 땅이라는 하느님의 영역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해 주고 그리로 향해 나아가게 합니다.
- 넷째, 화해의 성사: 고해성사
하느님의 자비는 사람의 용서와는 다릅니다. 사람들은 자기의 생애나 행위는 돌아보지 않고 다른 사람의 잘못은 속속들이 들추어내며, 용서하는 데 있어서는 지나치게 완고한 데 반해, 주님께서 내려 주시는 자비는 그야말로 무상으로 주어지는 하느님의 은총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루카 6,36) 하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실제로 요한 복음서 8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여자에게 아무 조건 없이 자비를 베푸십니다.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요한 8,11). 주님께서는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할 기회조차 없었던 현행범에게 묵묵히 자비를 베푸십니다. 우리가 자신을 기준으로 상대를 바라본다면, 우리는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요한 8,7)하신 주님의 말씀을 되풀이하여 듣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상대를 기준으로 자신을 바라본다면, 지금까지 내가 살아오면서, 주님과 형제자매들에게 얼마나 많이 나의 과오와 죄를 용서받고 살아왔는지를 깨닫게 될 것이며, 주님 은총의 힘으로 살아왔다는 것에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하느님의 자비가 뉘우침 없는 사면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고해성사는 자신의 잘못을 기워 갚지 않은 채, 단순히 그 잘못을 없던 것으로 만들어 주는 면죄부가 아닙니다. 하느님의 자비를 입은 사람은 자신이 입은 자비에 걸맞은 행위를 통해 새로운 길을 걸어야 합니다. 자캐오는 말합니다. “보십시오, 주님!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른 사람 것을 횡령하였다면 네 곱절로 갚겠습니다.”(루카 19,8) 우리는 고해성사를 보기 전에, 자기가 잘못한 것을 뉘우치고, 자신이 잘못을 저질러 피해와 상처를 입힌 사람에게 용서를 청하고 보상해야 합니다. 가능하면 직접적으로. 영적인 시간의 순서대로라면, 죄를 사해주시는 하느님의 은총이 먼저 있기에 우리가 회개하고 뉘우치는 것이지만, 이미 죄를 사해 주시는 주님을 믿는 우리는 고해성사 이전에 또는 현세 시간적으로는 그 후라 할지라도 꼭 돌이킬 수 있는 것은 돌이키고, 되돌려 놓은 다음에 주님 앞에 나와야 합니다.
우리가 고해성사에서 자신의 과오와 죄악을 인정하고, 뉘우치고, 고백하며, 용서를 받고자하는 이유는 지금까지 자기가 살아왔던 방식을 버리고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방법대로 살고자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과 형제들에게 자신이 지은 죄를 용서받고 화해하여, 주님과 형제들과 함께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죄 사함의 은총과 새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은총을 얻고자 고해성사를 받는 것입니다. 자기 과오를 인정하게 되는 것도 은총이지만, 자신의 과오를 드러내고 용서를 구하며, 자신의 과오로 생겨난 죄악을 씻고, 다시 자신의 과오로 빚어진 폐해를 회복시키는 것도 주님 은총의 힘으로 가능합니다. 사도 바오로는 필립비인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여러분 자신의 구원을 위하여 힘쓰십시오. 하느님은 당신 호의에 따라 여러분 안에서 활동하시어, 의지를 일으키시고 그것을 실천하게도 하시는 분입니다”(필리 2,12-13; “여러분 안에 계셔서 여러분에게 당신의 뜻에 맞는 일을 하고자 하는 마음을 일으켜 주시고 그 일을 할 힘을 주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공동번역판 참조). 자기의 올바르지 못한 생활 방식을 끊음으로써 자기 죄에서 죽고,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새 생활 방식대로 살기 시작함으로써 주님 부활에 참여하기로 합시다.
성찰
1. 요셉은 자신의 불행을 하느님의 시각 안에서 되돌아봄으로써, 자신이 자기 민족을 살리기 위해 미리 준비된 섭리로서 오히려 하느님의 계획안에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내 과거 중에 억울하고, 슬프고, 손해 보았다고 생각했던 사건이 지금 와서 하느님의 눈으로 되돌아보면 오히려 나의 성숙에 도움이 되었다고 느끼는 사건이 있습니까?
2. 그 사건과 상황 속에서 배반과 상처를 주고받은 사람과 화해하고 싶은 생각이 있습니까?
3. 그 동안 아버지로서, 어머니로서, 자식으로서 마땅히 해야 했고, 또 하고 싶었던 일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우리 가정에 기쁘게 맞이할 수 있도록 시도해 봅시다.
4. 그리고 시간과 여유가 되신다면, 피붙이 가족뿐만 아니라 세상 이웃사촌들과 자연도 가족으로 삼아 우리를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우리를 대신해서 돌아가시는 예수님의 형제자매가 되길 바랍니다.
기도
주님은 샅샅이 보고 아시나이다(시편 139,1-18.23-24).
1주님 당신은 나를 샅샅이 보고 아시나이다.
2앉거나 서거나 매양 나를 아옵시고
멀리서도 내 생각을 꿰뚫으시나이다.
3걸을 제도 누울 제도 환히 아시고
내 모든 행위를 익히 보시나이다.
4말소리 내 혀끝에 채 오르기 전에
주님은 벌써 모든 것을 알고 계시나이다.
5앞뒤로 이 몸을 감싸 주시며
내 위에 당신 손을 얹어 주시나이다.
6아심이 너무나 놀랍고도 아득하와
내 힘이 미치지 못하나이다.
7당신의 얼을 떠나 어디로 가오리까
당신 얼굴 피해 갈 곳 어디오리까.
8하늘로 올라가도 거기 주는 계시옵고
지옥으로 내려가도 거기 또한 계시나이다.
9새벽의 날개를 이 몸이 친다 하여도
저 바다의 먼 끝에 산다 하여도,
10거기에도 당신 손은 나를 인도하시고
그 오른손 이 몸을 잡아 주시리다.
11“어둠이나마 저를 덮씌워서
빛인 듯 밤이 나를 휘감는다면” 할 때에도,
12어두움 그것마저 당신께는 어둡지 않아
밤 또한 낮과 같이 환히 밝으며
캄캄함도 당신께는 빛과 같으오리다.
13당신은 오장 육부 만들어 주시고
어미의 복중에서 나를 엮어 내셨으니,
14묘하게도 만들어진 이 몸이옵기
하신 일들 묘하옵기 당신 찬미하오니
당신은 내 영혼도 완전히 아시나이다.
15은밀한 속에서 내가 지음 받았을 제
깊숙한 땅속에서 내가 엮어졌을 제
당신은 내 됨됨이를 알고 계셨나이다.
16내 행위를 당신 눈이 환히 보시고
낱낱이 당신 책에 적으셨으니,
평생의 첫 하루가 있기도 전에
내 날수는 미리부터 정해 두셨나이다.
17하느님 당신 생각은 알아듣기 힘드오며
헤아릴 길 없을 만큼 많사오이다.
18세어 보자 하여도 모래보다 더욱 많고
끝까지 닿는대도 도로 당신이오이다.
23주여 나를 샅샅이 보시고
내 마음을 살펴 주소서
나를 시험하시고 내 은밀한 생각들을 아시옵소서.
24나쁜 길을 걸을세라 보아주시고
영원의 길을 따라 나를 인도하소서.
기도 많이 바치고 좋은 일 많이 하면서 여러분 가정에 주님을 기쁘게 맞이하기를 바랍니다.
사도 바오로가 하신 말씀으로 마무리 하겠습니다.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1테살 5,16‐18)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