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사람들의 벗

-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 양성자료

제 1단계 우리가 사는 세상


심흥보 지음






추천의 말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은 참으로 교회의 사명이며 또한 본질입니다. 그런데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하기란, 그렇게 생각만으로 시작될 간단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밤거리를 걷다가 술에 취해 길에 쓰러진 사람을 만났다고 합시다. 혼자 가다가 그런 모습을 보면 도와주고 싶지만, 한편으로는 '오히려 저 사람이 일어나서 나에게 피해를 주면 어떻게 하나?' 하는 마음에, 그리고 '일어나서 그냥 집에 가지 않고 계속 헤매면 어떻게 하나?' 하면서 당황해하고 외면하면서 지나치게 됩니다. 그러나 만일 자신의 힘이 세거나 여럿이 함께 가다가 그런 일을 목격했다면 더 손쉽게 그를 도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단순히 돕는 이의 숫자뿐만 아니라, 도울 때마다 새롭게 발생하고 등장하는 상황들은 우리에게 길을 가다가 술에 취해 쓰러져 있는 사람을 보면 어떻게 하면 되는지 가르쳐 줍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우리의 선생님이 되는 셈이죠. 물론 그 사건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를 이끄시는 것이겠지만요.

그러나 한편 우리는 일반 사람들이 취객들을 대하는 방식이 아닌 그리스도교 신자로서 대해야 합니다. 그러자면 우리가 그리스도교 신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자가 되는 것은 다만 세례를 받아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그리스도 예수께서 어떻게 가난한 이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하셨고 대하셨는지를 성서와 성전에서 배우고 알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이렇게 한 단계씩 차츰 차츰 우리는 성숙한 그리스도교 신자가 '되어 가는 것'입니다.

지난 1970년도에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를 위하여 '영적독서'란 이름으로 회원들의 양성교재를 준비했습니다만, 후속 자료를 주지 못해 항상 부담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젊은 심흥보 신부의 '가난한 이들의 벗'이란 이름으로 빈첸시오 회원들과 가난한 이들에게 헌신하는 동반자들을 위한 글을 보고 참으로 우리 회원들을 양성하는데 커다란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하여 권해 드립니다.

이 양성과정은 한 주제를 한 달 내내 다루면서도 지루하지 않도록, 첫 주에 일상 생활의 예를 통해 주제를 잡고, 둘째 주와 셋째 주에는 주님의 말씀과 강론을 통해 그리스도교적으로 풀어나갑니다. 그리고 마지막 주에 그 주제의 결론으로 회원들 스스로가 실천적인 선택을 내리도록 꾸며졌습니다. 이러한 양성과정은 회원들로 하여금 여러 가지 시각을 갖도록 해줌과 동시에, 각 주제와 그 주제에 해당하는 현실에 매 번 새로운 마음으로 다가서서 보다 더 깊이 들어갈 수 있도록 해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실천 면에서 그 동안의 활동을 주님 안에서 되돌이켜 보게 함으로써 스스로 주님의 방법을 찾게 합니다. 이렇게 자신이 찾은 주님의 방법을 자신의 수준과 능력에 맞춰 수용함으로써 더 힘차게 활동할 수 있도록 합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양성과정은 직접 활동하는 그 회원의 활동능력을 고려하지 않고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며 누가 말로 가르쳐 주는 방법이 아닙니다. 이 방법은 회원 자신이 활동하면서 겪은 경험들을 모임에서 주님을 모시고 회원들 모두와 함께 다시 종합하고 정리하여 거듭 주님의 뜻을 찾고 그 뜻대로 활동하도록 이끌고 있습니다. 참으로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난한 이들에게 헌신하는 이들을 양성하는 것도 가난한 이들에게 직접 헌신하는 이들 못지않게 중요한 사도직입니다. 앞으로 계속하여 좋은 내용들이 우리들을 이끌어 가리라고 생각하고 우선 3단계 중에 제 1단계라도 빨리 내도록 종용했습니다. 가난한 이들에게 헌신하는 본당의 빈첸시오 회원들과의 경험을 통해 회원들의 양성자료를 준비해 주신 심흥보 신부님께 감사드리고, 이 양성자료가 말이나 생각으로 그치지 않고 실천으로 삶으로써 마침내 우리 인격의 본질적인 방향을 변화시켜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 전국협의회 지도신부

김정남 바르나바





도움의 말

구로 본동 본당에 부임한지 며칠 안 되었을 때였습니다. 하루는 저녁미사를 마치고 본당 사무실에서 어떤 분을 만났는데, 그 분은 자신의 처지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시골에서 친지를 만나러 올라왔는데, 그만 돈이 떨어져서… 제가 내려가서 꼭 갚아 줄 터이니… !"

성당에 와서 신부를 보자는 낯선 분들이 만나서 하는 으례적이고 상투적인 말과 공식처럼 똑같았기에, 저는 머리 속으로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분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자니, 한편 믿어 주는 제가 바보 같고. 또 다른 한편 너무나 상투적이어서 못 믿겠다고 할 수도 없고. 그냥 본당의 습관대로 애긍이나 몇 푼 집어 주고 말아야 하나 하는 이런저런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곁에서 그 분의 말을 듣고 있던 신자분들 중 한 젊은이가 나서서 "신부님, 제가 이분과 함께 나가서 알아보고 오겠습니다." 하고는 그분을 모시고 나갔습니다. 그 젊은이는 빈첸시오 회원이었는데, 그분을 모시고 윽박지름이나 순간적인 적선을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분과의 깊은 인격적인 대화를 통해 결국 그 분이 사시는 곳을 방문할 수 있었고 그분의 사정을 보고 들었고 계속 방문하기로 약속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그 후 계속 빈첸시오 회원들과 그분과 그분의 가정을 방문하여 함께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젊은이와 빈첸시오 회원들은 그분과 함께한 결과를 저에게 알려 주었습니다.

저는 그날부터 아무런 부담없이 가난한 사람들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 동안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이 당연하고 또 사도로서의 제 소명임에도 불구하고 어딘지 마음 한 구석에서 망설여지고 꺼려지던 부담을 씻을 수 없었습니다. '이거 또 사기 아닌가? 그냥 돈 몇 푼 집어준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닌데…!' 등등의 부담. 그런데 그날 이후 이런 고민과 아쉬운 멍에들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다행히도 교회에는 '빈첸시오 아 바오로 회'와 같이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사도직 단체가 있었습니다. 그 회원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직접 방문하고 그 사정을 듣고 그 사정을 함께 풀어나가기 위해 활동합니다. 그러므로 한 순간의 처리(?)도 아니오, 말로는 걱정하는 체하면서 그가 처한 아픔에 아무런 구체적인 노력도 없이 외면해 버리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빈첸시오 회원들은 참으로 가난한 사람들의 동반자요, 벗입니다. 빈첸시오 회원들과 함께하는 활동은 참으로 보람되었고 의미있었습니다. 그 순간들은 주님의 제자요, 사도로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을 제게 보장해 주었습니다.

기꺼이 그리고 열정 가득히 복음을 이루기 위해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마태 25,40) 하신 말씀에 따라 가난한 사람들을 찾아 나섰을 때의 기쁨이란! 그리고 마침내는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마태 5,3) 하신 말씀을 한 걸음 한 걸음씩 살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그 빈첸시오 회원들을 위해 조그만 양성자료를 준비했습니다. 주님의 사도로서 가난한 사람들을 기꺼이 그리고 인격적으로 맞이할 수 있도록 나를 양성시켜 주었던 선배 신부님들과 그 회원들에게 보답하는 자세로…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도 하나의 기술(?)이라면 기술입니다. 이 기술을 우리는 복음서에서 주 예수님으로부터 배웠습니다.

가난한 사람과 함께하려면,

가난한 사람을,

인격적으로 맞이할 수 있어야 하고,

그와 그가 처한 상황에 진지하게 귀기울여야 하며,

함께하고 싶은 사도적 열정이 주님의 영에 힘입어 내 마음 속에서 울려퍼지기 시작하고,

그의 삶에 다가가고,

그와 함께 그의 삶의 동반자가 되어,

그와 함께 인생을 살아나가는 복음적인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과정에 들어가기 위해 우선 첫 주 '일상'에서 자신의 일상을 되돌아보면서 자신의 현실을 되돌아봅니다. 한 상황에 대해 반응하는 자신의 생각과 태도 그리고 그것들이 주님께로부터 온 것인지 아니면 사회나 악으로부터 온 것인지를 살핍니다. (한편 '나눔' 시간에는 거기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함께하여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에게 커다란 감명을 줄 만한 훌륭한 인간적인 체험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각기 다른 체험을 통해 하느님께서 각기 다른 방법으로 각자에게 다가서시는 하느님의 이끄심을 나누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서 둘째 주 '말씀'에서 복음을 묵상하여 주님의 가르침에 귀기울이고 그 상황에 다가가시는 주님의 모범을 배우게 됩니다. (이 복음 말씀을 묵상하실 때 '복음 나누기 7단계'를 적용하시면 처음 복음을 접하는 분들은 아주 쉽게 복음에 맛들일 수 있습니다.)

셋째 주 '성찰'에서 듣고 배운 주님의 가르침과 모습을 성서의 풀이 안에서 그리스도교적으로 정리하게 됩니다. 곧 가난한 사람과 함께한 교회의 경험들인 전승 안에서 정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넷째 주 '관찰'(주님의 눈으로 보고), '판단'(주님의 말씀을 듣고), '실천'(주님처럼 사랑하기)에서 방문자와 함께 새 하늘과 새 땅을 건설해 나가는 사도가 되어갑니다. 이 네 번째 주제는 그 달의 결론 부분입니다. 한 달간의 활동과 모임을 마치고 정리하며 새로운 비젼을 얻는 시간입니다. 이 주제는 교황 회칙 '40주년'(Quadragesimo Anno-노동헌장 반포 40주년 기념회칙)에서부터 평신도 사도직 단체의 활동과 복음화의 방법인 '관찰', '판단', '실천'을 따라 진행됩니다. 즉, 나나 너 또는 사회의 어떤 사상의 가치관이 아닌 그리스도의 눈으로 보고, 부활하신 주님의 현존을 느끼며 주님의 뜻을 성서와 성전을 통해 찾아 심화시켜 판단하고, 애덕의 열정으로 구체적이고 단계적인 계획을 세워 실천해 나가는 방법입니다.. 한 가지 이 단계에서 주의할 것은 지나치게 설문에 의존할 필요는 없지만, 한 항목을 빼먹으면 결과적으로 실천이 바른 방향과 적절한 대응이 되지 못하므로 설문이 가리키는 의미를 충실히 다루어야 합니다. 특별히 관찰 부분에서 사건과 상황을 보는 자신의 감정과 선입견에 의하지 않고, 그 사건과 상황을 있는 그대로 구체적이고도 정확하게 알려야 합니다.

그동안 1970년에 '영적독서(와 회칙과 그 해설)'이란 이름으로 김 정남 신부님께서 마련해 주신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 교재 이후 마땅한 후속 자료들이 나오지 않아 고민하면서 본당에서 나름대로 한 주제씩 준비하고 시도해 왔습니다. 그러던 중 다른 본당 협의회의 요청이 있어 전국지도신부님이신 김정남 신부님의 허락과 추천을 얻어 우선 전 3단계의 양성과정 중 준비된 제 1단계 '우리가 사는 세상' 부분을 먼저 책으로 꾸며내게 되었습니다. 곧 제 2, 3단계의 완결편을 마련해 드리겠다는 약속과 함께 부끄러운 손으로 건네 드립니다.

끝으로 과다한 업무 중에도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동반자들을 기억하셔서 바삐 출판해 주신 성바오로 출판사 이창욱 신부님과 편집실에 진심으로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1995년 9월 27일

빈첸시오 드 폴 사제 기념일에 진건 성당에서

심흥보 베드로








차 례


추천의 말 3

도움의 말 6

제 1 단계 우리가 사는 세상

1. 차별대우

2. 가난한 사람은 모자라는 사람인가

3. 하느님은 가난한 사람들을 선택하셨다

4. 평등사회를 향하여

5. 위선

6. 가난과 고통은 죄인가

7. 깨끗해질 것이다

8. 내 삶에서의 진리-진실을 향하여

9. 멍에

10. 부자의 멍에

11.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라

12. 해방을 위하여

13. 탐욕

14. 어린석은 자야

15. 네 것은 누구의 차지가 되겠느냐

16. 자유를 향하여

17. 헌신

18. 가난한 사람들의 헌신

19. 가진 것을 전부 바친 것이다

20. 나눔을 향하여

21. 부정

22. 세속의 자녀들

23. 빛의 자녀들

24. 정의 사회를 향하여

25. 악의 노예

26. 악령에게 사로잡혀

27. 성령과 악령

28. 악과의 투쟁

29. 기다림

30. 하느님은 왜 심판을 미루시는가?

31. 천 년도 하루같이

32.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신 것같이

33. 유혹1-필요와 충족

34.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돈으로

35. 하느님의 말씀으로 살리라

36.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거든

37. 유혹2-허상에의 꿈

38.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현혹시켜서

39. 하느님을 떠보지 말라

40.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거든

41. 유혹3-권력에의 의지

42.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힘으로

43. 그분만을 섬겨라

44.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거든

부록 1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란

부록 2 빈첸시오 회원 활동의 성서적인 지향

부록 3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 기도문

부록 4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 회가








제 1 단계 우리가 사는 세상


1. 차별대우( 1주)

2. 위 선( 5주)

3. 멍 에( 9주)

4. 탐 욕(13주)

5. 헌 신(17주)

6. 부 정(21주)

7. 악의노예(25주)

8. 기 다 림(29주)

9. 유 혹 1(33주)

10. 유 혹 2(37주)

11. 유 혹 3(41주)





차례..

1. 차별대우


일 상

한 어머니에게 아들과 딸이 있었다. 그런데 그 어머니는 아들을 딸보다 더 귀하게 여겼다. 하루는 외국산 분말 주스가 선물로 들어왔는데, 귀한 것이라고 생각한 어머니는 딸들의 불만을 외면하고 아들만 타 주었다.

한 달이 지난 후 텔레비전 뉴스에서, 그 외국산 분말 주스에는 인체에 해로운 성분이 들어 있다는 방송을 하였다.

그 결과,

어머니는 아들을 딸과 갈라 놓아 서로 맞서게 했다.

어머니는 아들과 딸 중에 더 대우를 해준 아들에게 독을 주었다.

그 어머니는 아들과 딸 모두에게서 원망을 들어야 했다.

나눔

1. 나는 지금 누구와 누구를 향해, 어떤 차별 대우를 하고 있습니까?

2. 차별 대우가 …을 분열시키고 망친다는 사실을 보면서, 사람들을 일치시키고 살리는 사랑을 내 일상 생활 안에서 구체적으로 다짐하고 나눕시다.

*여기 여백들은 나와 동료들이 영적 성숙과정을 기록하는 란입니다. 매월말에 한 주제를 마칠 때마다 이 기록들을 되돌아 보면서 정리 종합하는 시간을 가지시면 주님과 더욱 가까워져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차례..

2. 가난한 사람은 모자라는 사람인가


말씀 차별 대우를 하지 말라(야고 2,1-9.13.)

2 1나의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우리 주님이신 영광의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으니 사람들을 차별해서 대우하지 마십시오. 2가령 여러분의 회당에 금가락지를 끼고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과 남루한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 왔다고 합시다. 3그 때 여러분이 화려한 옷차림을 한 사람에게는 특별한 호의를 보이며 "여기 윗자리에 앉으십시오." 하고 가난한 사람에게는 "거기 서 있든지 밑바닥에 앉든지 하시오." 하고 말한다면 4여러분은 불순한 생각으로 사람들을 판단하여 차별 대우를 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5내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잘 들으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의 가난한 사람을 택하셔서 믿음을 부요하게 하시고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약속해 주신 그 나라를 차지하게 하지 않으셨습니까? 6그런데 여러분은 가난한 사람들을 업신여겼습니다. 여러분을 압박하는 자들은 바로 부자가 아닙니까? 또 여러분을 법정으로 끌고 가는 자들도 그들이 아닙니까? 7하느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그 존귀한 이름을 모독하는 자들도 바로 그들이 아닙니까? 8여러분이 성경 말씀을 따라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최고의 법을 지킨다면 잘하는 일이지만 9차별을 두고 사람을 대우한다면 그것은 죄를 짓는 것이고 여러분은 계명을 어기는 사람으로 판정됩니다 13무자비한 사람은 무자비한 심판을 받습니다. 그러나 자비는 심판을 이깁니다.

※복음을 나눌 때 말의 성찬보다는, 자신의 구체적인 일상과 연관하여, 깊은 묵상과 성찰 속에서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들이도록 하십시오.

나눔

1. 성당에서 지역주민을 위한 행사를 할 때, 예비자 환영식 때 어떤 사람이 오기를 바랍니까? 낯설고 가난한 사람들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입니까?

2. 가난한 사람들과 일해 본 경험이 있습니까?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일하면서 희망을 이루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3. 야고보서 2장 5절에 나오는 말씀처럼, 왜 하느님은 가난한 사람들을 택하셨을까요?




차례..

3. 하느님은 가난한 사람들을 선택하셨다


성찰 하느님은 가난한 사람을 선택하셨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나쁜 것보다는 좋은 것을, 흉한 것보다는 아름다운 것을 향해 마음이 움직인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 것을 좋고 아름답다고 하며, 어떤 것을 나쁘고 흉한 것으로 여기는가? 무엇을 기준으로 그렇게 구분하는가?

"화려한 옷차림을 한 사람에게는 특별한 호의를 보이며"(야고 2,3a) 반기는 사람은 화려한 옷차림을 한 사람은 좋고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판단기준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보통' 또는 '대개' 심지어는 '누구나 상식적으로'라고 말하는 가치관을 자세히 살펴보면 자신의 것만도 아니고, 다 같지도 않으며, 반드시 그렇지도 않다. 우리가 판단 기준으로 삼는 가치관은, 우리가 살아왔고 머물고 있는 사회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시민의식과도 연관된다. 가령 가지면 가질수록(돈과 재물…), 올라가면 올라갈수록(자리와 권좌…), 누리면 누릴수록(특혜와 편이…) 좋다고 생각하는 사회가 있는가 하면, 그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자본주의와 노동주의 사회, 동양과 서양의 문화,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가치관 등.)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의 가난한 사람을 택하셔서 믿음을 부요하게 하시고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약속해 주신 그 나라를 차지하게" 하셨다. 그래서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오히려 가난한 사람을 대우한다. 만일 그리스도교 신자들이면서도 "가난한 사람에게는 '거기 서 있든지 밑바닥에 앉든지 하시오.'하고 말한다면"(야고 2,3) 그는 "불순한 생각으로 사람들을 판단하여 차별 대우를 하는 것"(야고 2,4)이다.

하느님께서 가난한 사람들을 택했다는 말은 가난하지 않은 사람을 버리셨다는 말이 아니다. 교실에서 선생님이 앞자리에 앉아 있는 학생들만 들릴 정도로 작은 소리로 말한다면, 그 선생님은 앞에 있는 학생들과 뒤에 있는 학생들을 차별하는 것이고, 결과적으로 뒤에 앉은 학생들을 버리는 결과가 된다. 그러나 선생님이 "거기 뒤에 있는 학생들 내 말이 들리니?" 하고 묻는다고 해서, 앞에 있는 학생들이 "그럼 앞에 있는 우리는 안 들려도 된다는 말인가?" 하면서 섭섭해하지 않는다. 뒤에서 들리면 앞에도 들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회에서 주로 뒤떨어지고, 성당에서 뒤에 앉아 있는 이들은 누구인가? 부족한 사람들이고 가난한 사람들이다. 가난한 사람들을 택하셨다는 말은 곧 모두를 택하셨다는 말이다. 만일 가난한 사람에게 특별한 호의를 보이며 환영한다면, 화려한 옷차림을 한 사람도 환영하는 것이 된다.

"차별을 두고 사람을 대우한다면 그것은 죄를 짓는 것이고 여러분은 계명을 어기는 사람으로 판정됩니다."(야고 2,9) 야고보 사도는 차별대우를 '죄'라고까지 하시면서, 이웃사랑의 계명을 언급하신다. 그리고 또 "자비는 심판을 이깁니다."(야고 2,13)고 하심으로써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일이 곧 무자비한 심판을 피하는 길이라고 가르쳐 주신다.

가난한 사람들을 모두 다 함께 반기는 교회가 되자!

나눔 우리의 가치관에 대해 말해 봅시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을 무시하고 열등하게 보는 가치관을 어떻게 하면 바꿀 수 있는지도 나누어 봅시다.



차례..

4. 평등사회를 향하여


관찰(주님의 눈으로 보고)

1. (나나) 내가 방문한 사람들 중에 차별 대우를 받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나나) 그 사람은 어떤 면에서 차별 대우를 받고 있습니까?

2. 왜 (나나) 그 사람은 차별 대우를 받고 있습니까?

3. 또 그대로 두면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어떤 결과가 나타나겠습니까?

(※각자가 발표한 여러 상황과 사례 중에, 모두가 동의하는 한 상황만을 선택하여 판단에서 다룹니다.)

판단(주님의 말씀을 듣고)

1. (나나) 그 사람이 받고 있는 차별 대우가 그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합니까? 아니면 부정적인 영향을 줍니까?

2. (나나) 그 사람이 이 상황에서 무엇을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까?

3. 주님은 이럴 때 어떻게 하실까요?(성서를 살펴봅시다.)

4. 그 상황 안에서 부활하신 주님께서 함께 계시다는 것을 느끼고, 주님의 호소를 듣습니까?

실천(주님처럼 사랑하기)

1. 이 상황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까요?

2. 언제, 어디서, 누가, 어떤 방법으로?

*여기 여백들은 나와 동료들의 영적 성숙과정을 기록하는 란입니다. 매월말에 한 주제를 마칠 때마다 이 기록들을 되돌아 보면서 정리 종합하는 시간을 가지시면 주님과 더욱 가까워져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차례..

5. 위선



일상

김 사장은 세례 받은 지 20여년이 훨씬 넘었어도 지금까지 주일미사를 걸러본 적이 없었다. 아무리 급한 일이 있어도 항상 주님을 먼저 섬겨야 한다는 생각으로 주일미사를 거르지 않았다. 그것은 사장이 되기 전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그가 의지하고 지켜온 생활의 신조처럼 되어 버렸다. 김 사장은 지금 본당의 구역장이고 선교분과 사목위원으로 열심히 일하고 있다. 그리고 본당에 무슨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발벗고 나선다. 그리고 교무금은 물론이요, 가끔 어려운 이들을 위한 특별 헌금에도 성의를 아끼지 않는다. 그리고 더 나아가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 손이 모르게 하려는 것같이, 부인 몰래 개인적으로 용돈을 아껴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장애자의 집에 매월 10여만원씩 보낸다. 그리고 돈만 보내는 것이 아니라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과 빈첸시오 회원들과 함께 틈나는 대로 노력봉사를 하러 다닌다. 그리고 자신의 신앙성숙을 위해 매주 월요일마다 성서공부를 다닌다. 명절이 되면 본당의 신부님들과 수녀님들께 보낼 선물을 잊지 않고 꼭 챙긴다.

그런데 김 사장의 회사 직원들은 '김 사장'을 그렇게 흡족하게 바라보지 않는다. 그는 냉정하리만큼 수하의 잘못을 엄격하게 꼬집고, 주일이나 공휴일에도 쉬지 못할 만큼의 일거리를 가져다 주기 때문이다. 게다가 임금은 3개월 치나 밀려 있다.

나눔

1. 나의 종교생활과 사회생활 사이에 어떤 괴리가 있습니까?

2. 내가 하는 활동이 내가 사는 모든 영역에 걸쳐 나를 복음적으로 변화시키고 있습니까?




차례..

6. 가난과 고통은 죄인가


말씀 책망받은 사람들(루가 11,37-46)

11 37예수께서는 말씀을 마치시고 어느 바리사이파 사람의 저녁 초대를 받아 그 집에 들어 가 식탁에 앉으셨다. 38그런데 예수께서 손씻는 의식을 치르지 않고 음식을 잡수시는 것을 보고 그 바리사이파 사람은 깜짝 놀랐다. 39그래서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이 닦아 놓지만 속에는 착취와 사악이 가득 차 있다. 40이 어리석은 사람들아, 겉을 만드신 분이 속도 만드신 것을 모르느냐? 41그릇 속에 담긴 것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모든 것이 다 깨끗해질 것이다. 42너희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화를 입을 것이다.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그 밖의 모든 채소는 십분의 일을 바치면서 정의를 행하는 일과 하느님을 사랑하는 일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구나. 십분의 일을 바치는 일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되지만 이것도 실천해야 하지 않겠느냐? 43너희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화를 입을 것이다. 너희는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를 즐겨 찾고 장터에서는 인사받기를 좋아한다. 44너희는 화를 입을 것이다. 너희는 드러나지 않는 무덤과 같다. 사람들은 무덤인 줄도 모르고 그 위를 밟고 지나 다닌다."

45이 때 율법교사 한 사람이 나서서 "선생님, 그런 말씀은 저희에게도 모욕이 됩니다." 하고 투덜거렸다. 46그러자 예수께서는 "너희 율법교사들도 화를 입을 것이다. 너희는 견디기 어려운 짐을 남에게 지워 놓고 자기는 그 짐에 손가락 하나 대지 않는다."

※복음을 나눌 때 말의 성찬보다는, 자신의 구체적인 일상과 연관하여, 깊은 묵상과 성찰 속에서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들이도록 하십시오.

나눔

1. 내가 예의를 지킬 수 있고, 부담없이 대할 수 있는 사람은 경제적이나 사회적으로 어떤 위치에 있는 사람인가요?

2. 가난한 사람들이 예의를 잘 지키지 못하고, 어려운 문제로 고민하는 사람들이 자주 화를 내고 불안해 보이는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까?

3. 우리 자신은 하지 않으면서도 우리의 자녀들이나 도움을 줄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므로 '꼭 하라!'고 요구하지는 않습니까?




차례..

7. 깨끗해질 것이다


성찰

예의를 잘 알고 또 지키는 사람을 만나면 편안하고 부담이 없다. 그리고 또 한편 다시 만나고 싶어진다. 그러나 예의도 지킬 줄 모르고 말이나 행동을 세련되게 하지 못하는 사람을 만나면 불안하고 다시 만나고 싶지 않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친구를 만나면 반갑고 낯선 사람을 만나면 경계하듯이, 예의를 잘 지키는 사람은 나와 비슷한 경제적 사회적인 위치를 가진 사람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경제적이고 사회적인 서열이 나보다 낮은 사람이다. 또 그런 사람을 나보다 못한 사람이라고 여긴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또 예의를 잘 지키지 못한다고 여겨지는 사람은 왜 그렇게 행동하는 것일까? 그리고 예의를 잘 지키는 것이 하느님 앞에 깨끗하고 의롭게 사는 방법일까?

유대인들은 음식을 먹을 때 손을 씻는 것이 상식이라고 생각했고, 그것을 하나의 예절로 만들어 '정결례'라는 형태의 의식마저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유대인들의 그런 관습에 대해 주님은 말씀하셨다.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이 닦아 놓지만 속에는 착취와 사악이 가득 차 있다. 그릇 속에 담긴 것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모든 것이 다 깨끗해질 것이다."(루가 11,39.41) 주님은 종교적으로 거룩해지려는 노력만큼이나 다른 한편의 영역도 거룩해야 한다고 하신다. 현대적으로 본다면 기도하는 거룩한 모습에 반하여 사회적인 불의와 부정 속에 잠겨 있는 사람이라고나 할까?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그 밖의 모든 채소는 십분의 일을 바치면서 정의를 행하는 일과 하느님을 사랑하는 일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구나."(루가 11,42a)

주일미사도 드리고, 구역·반모임과 단체활동도 하고 성서공부도 하고 여기저기 봉사활동도 잘하려면, 그 사람이 특별히 신앙적으로 어느 수준에 도달한 사람이 아니라면, 보통 사람들은 그렇게 활동할 만한 시간과 여유가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런데 신앙도 깊지 않고 시간도 경제적인 여유도 없는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은 어떻게 평가받아야 하는가? 그런 사람들은 열심히 일하는 듯한 사람들을 보면 부러워하면서 머리를 숙이고 존경한다. 그리고 자신은 죄를 지었다고 생각해 주눅이 들어 자연스럽게 행동하지도 못하고 오해마저 받는다.

하지만 존경받는 사람의 삶은 어떤가? "너희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화를 입을 것이다. 너희는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를 즐겨 찾고 장터에서는 인사받기를 좋아한다. 너희는 견디기 어려운 짐을 남에게 지워 놓고 자기는 그 짐에 손가락 하나 대지 않는다."(루가 11,43.46b)

또한 주님은 예의를 잘 지키는 것과 하느님과의 관계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제시하신다. 여기서 우리는 바리사이파 사람과 세리의 기도를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예수께서는 자기네만 옳은 줄 믿고 남을 업신여기는 사람들에게 이런 비유를 말씀하셨다. 바리사이파 사람은 보라는 듯이 서서 '오, 하느님! 감사합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욕심이 많거나 부정직하거나 음탕하지 않을뿐더러 세리와 같은 사람이 아닙니다. 저는 일주일에 두 번이나 단식하고 모든 수입의 십분의 일을 바칩니다.'하고 기도하였다. 한편 세리는 멀찍이 서서 감히 하늘을 우러러보지도 못하고 가슴을 치며 '오, 하느님! 죄많은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하고 기도하였다. 잘 들어라. 하느님께 올바른 사람으로 인정받고 집으로 돌아 간 사람은 바리사이파 사람이 아니라 바로 그 세리였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면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면 높아질 것이다."(루가 18,9.11-14)

주님은 자신의 처지에서 할 만큼 다했다고 안심하는 사람보다, 해도 해도 다 할 수 없는 사랑의 의무 앞에 겸손한 사람을 더 의로운 사람으로 여기시고 받아들이신다. 주님은 그 사람이 어떤 일을 얼마만큼 했는가보다 어떤 사람인가를 더 중시하신다.

겉으로 드러나는 예의와 품위보다 인격과 영혼의 거룩함을 추구하자!

과거의 업적과 위치보다 현재의 삶에 충실한 사람이 되자!

나눔

1. 정작 중요한 것인데도 중요하게 여기지 못하고 무의식적으로 지나가는 것이 있습니까?

2. 우리가 예의라고 하는 것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수준이 뒷받침되어야 합니까?

3. 주님 앞에 의로운 사람이란 어떤 사람입니까?




차례..

8. 내 삶에서의 진리-진실을 향하여


관찰(주님의 눈으로 보고)

1. (나나) 내가 방문한 사람들 중에 업신여김을 받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나나) 그 사람은 어떤 면에서 업신여김을 받고 있습니까?

2. 왜 (나나) 그 사람은 업신여김을 받고 있습니까?

3. 또 그대로 두면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어떤 결과가 나타나겠습니까?

(※각자가 발표한 여러 상황과 사례 중에, 모두가 동의하는 한 상황만을 선택하여 판단에서 다룹니다.)

판단(주님의 말씀을 듣고)

1. (나나) 그 사람이 받고있는 업신여김이 그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합니까? 아니면 부정적인 영향을 줍니까?

2. (나나) 그 사람이 이 상황에서 무엇을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까?

3. 주님은 이럴 때 어떻게 하실까요?(성서를 살펴봅시다.)

4. 그 상황 안에서 부활하신 주님께서 함께 계시다는 것을 느끼고, 주님의 호소를 듣습니까?

실천(주님처럼 사랑하기)

1. 이 상황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까요?

2. 언제, 어디서, 누가, 어떤 방법으로?



차례..

9. 멍에



일상

박 부장은 기쁘게 일할 뿐만 아니라, 일을 아주 좋아했다. 자신이 무엇인가 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마다 그는 위안을 얻고 흡족해 했다. 그는 살아 있다는 느낌을 그는 일하는 데에서 찾아왔다. 또한 그가 일하고 있을 때 그는 삶의 보람과 자부심을 가질 수 있었다. 그는 영업실적도 좋고 회사에도 많은 공헌을 했다. 그에겐 일 외엔 다른 것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매일 일에 빠져 있다가 밤늦게서야 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마흔을 넘어선 그의 집안이 갑자기 삐꺽거리기 시작했다. 아내가 예전 같지 않다. 뭔지 모를 불만투성이의 얼굴이다. 아이들도 어느새 커서 자신들의 영역을 가져 버렸는지 아버지를 바라보는 눈이 냉랭하다. 갑자기 몰아닥친 혼란으로 그는 멍해졌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자기 일을 상의할 사람조차 없고, 부모나 형제, 자녀들 중 어느 누구도 자신을 편들어 줄 사람이 없는 것 같다. 공허하게 하늘만 바라보며 자신의 삶을 되돌이켜본다.

그가 처음 직장을 얻고 일을 시작했을 때 일을 한다는 것이 무척 기뻤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 일은 참으로 이상했다. 오늘 일을 많이 했기 때문에 그 다음 날은 일이 적어야 하는데, 막상 그 다음날 그에겐 일이 어제보다 더 많이 쌓여 있었다. 일을 하면 할수록 그의 책상엔 서류더미가 줄어들기는커녕 마냥 늘어나기만 했다.

결혼하고도 일만 열심히 하고 집에 돈만 갖다주면 다 되는 줄 알고 지금까지 살아왔는데, 이게 무슨 꼴인가? 아내가 왜 그럴까? 결혼이후 대화다운 대화를 나눈 적이 별로 없기 때문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풀어나갈 재간이 없다. 곰곰이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그는 아내가 무엇을 하고 싶어하는지 남편인 자신에게 무엇을 바라는지 자신은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또한 아이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지금까지 한 가족으로 살아 왔지만, 이런 면에서 자신은 이방인이었다.

어처구니가 없다. 그리고 맥이 빠지고, 지쳤다. 그는 일의 노예였던 것이다

이렇게 살다가 인생을 마치는 것인가? 너무나 아쉽고, 한편으론 억울하기까지 하다. 그가 지금까지 해왔던 것이 다 어디로 사라져 버린 것일까? 누가 이렇게 했는가? 이 보상을 어디서 받을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다시 회복할 수 있을까?

나눔

1. 나의 주인은 누구(또는 무엇)입니까(무엇의 노예입니까)? 자신의 관심사를, 자신이 가장 중요시하는 것을, 자신이 가장 시간을 많이 투자하는 것을 살펴보십시오.

2. 왜 그리고 무엇 때문에 주님의 자녀가 되기를 두려워합니까?



차례..

10. 부자의 멍에


말씀 부자청년-낙타와 바늘귀(루가 18,18-27)

18 18유다의 지도자 한 사람이 "선하신 선생님,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겠습니까?"하고 예수께 물었다. 19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왜 나를 선하다고 하느냐? 선하신 분은 하느님 한 분뿐이시다. 20'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한 계명들을 알고 있지 않느냐?" 21그 사람은 "어려서부터 저는 이 모든 것을 다 지켜 왔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2예수께서는 이 말을 들으시고 "너에게는 아직도 해야 할 일이 하나 더 있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어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그러면 하늘에서 보화를 얻게 될 것이다."하셨다. 23그러나 그는 큰 부자였기 때문에 이 말씀을 듣고 무척 마음이 괴로웠다. 24예수께서는 그를 보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재물이 많은 사람이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른다. 25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를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쉬울 것이다." 26사람들이 이 말씀을 듣고 "그러면 구원받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27예수께서는 "사람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지만 하느님께서는 하실 수 있다." 하고 대답하셨다.


※복음을 나눌 때 말의 성찬보다는, 자신의 구체적인 일상과 연관하여, 깊은 묵상과 성찰 속에서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들이도록 하십시오.

나눔

1. 가진 것 때문에 고민해 본 적이 있습니까?

2. 내가 가진 것이 나로 하여금 주님을 만나고 주님의 일을 하는데 부담이 된 적이 있습니까?




차례..

11.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어라


성찰

우리가 공부하고, 일하고, 돈버는 이유는 무엇인가? 자신의 인생을 풍요하고, 여생을 행복하게 보내기 위한 것이 아닌가? 그런데 실제로 그런가?

차창 밖으로 지나가는 고급 승용차를 보면 참으로 안쓰러워 보인다. 차 속에 누가 타고 있는지도 보이지 않을 정도의 짙은 색으로 코팅을 하여 마치 죄수처럼 숨어 지내는 사람들 같다. 또한 자신의 집 방까지 들어가기 위해 수많은 열쇠가 필요하고, 경비견에 경비원까지 그래도 모자라 감시 카메라까지 설치하고 살아야 하는 인생들이다. 가진 것을 계속 누리기 위해 불안과 긴장 속에서 유지해야 하는 보조장치들이 점점 그를 이웃으로부터 고립되게 만든다.

재물을 가진 사람들뿐 아니라, 사회의 일정한 자리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가려지고 제한된 영역 속에 묻혀 지낸다. 닫힌 문. 경계와 긴장의 눈빛과 숨 소리. 질식할 것만 같은 분위기! 보기는 좋지만 몸담기는 어려운 것은 단지 자연의 경치만은 아닌가 보다.

나의 삶은 자유로운가? 우리의 사회는 어두운 밤에도, 어느 곳에도 홀로 걸을 수 있는 상호신뢰가 형성되어 있는가? 그리고 이렇게 사는 것이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행복한 삶인가?

한 부자 청년이 주님께 물었다. "선하신 선생님,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겠습니까?"(루가 18,18) 그러자 주님은 그에게 십계명을 다 지켰느냐고 반문하셨다. 그 사람은 "어려서부터 저는 이 모든 것을 다 지켜 왔습니다."하고 대답하였다.(루가 18,21) 그러나 주님은 그를 칭찬하지 않는다. 주님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너에게는 아직도 해야 할 일이 하나 더 있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어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그러면 하늘에서 보화를 얻게 될 것이다."(루가 18,22) 영원한 생명에 이르려면, 단지 자신의 의무를 다한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주님은 주님 자신이 하느님으로서 누릴 수 있는 것을 다 버리시고 사람이 되셨다. 그리고 또 인간에게 자신의 전부를 내 주셨다. "여러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얼마나 은혜로우신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분은 부요하셨지만 여러분을 위하여 가난하게 되셨습니다. 그분이 가난해지심으로써 여러분은 오히려 부요하게 되었습니다."(2고린 8,9) 이렇게 주님을 따르라고 하신다.

"그러나 그는 큰 부자였기 때문에 이 말씀을 듣고 무척 마음이 괴로웠다."(루가 18,23) 그렇다 우리는 자기기 가진 것에 의지하는 만큼 이웃과 멀어지고 또 주님과 멀어져 간다. 게다가 자기가 가진 것에 의지하면 할수록 그는 자신이 가진 것에 종속되어 노예가 되어 버린다.

"예수께서는 그를 보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재물이 많은 사람이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른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를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쉬울 것이다.'"(루가 18,24.25) 그러면 부자는 그냥 자기 소유의 노예가 되어 버리고 마는 것인가? 그렇치 않다. "사람들이 이 말씀을 듣고 '그러면 구원받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하고 물었다. 예수께서는 '사람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지만 하느님께서는 하실 수 있다.' 하고 대답하셨다."(루가 18,26.27)

하느님은 인간을 구원하신다. 처녀 마리아에게 성령으로 예수를 잉태하게 하신 것처럼, 바오로 사도를 눈멀게 하심으로써 회개시키신 것처럼, 세상과 자기 인생의 굴레 속에 노예가 되어 있는 인간을 변화시키신다. 그러므로 부자를, 무엇인가 자신이 가진 것을 대단한 것으로 여기는 가진 자를 탓하지 말고 주님의 힘에 맡겨야 한다. 오히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 자신의 해방이다. 그리고 그 해방은 자신의 굴레를 과감히 버리고 주님을 따름으로써 시작되고, 우리를 창조하실 때에 주신 자유를 누리게 된다.

나눔

1. 가진 것이 없으면 가진 것이 없어서 신앙생활을 잘 못한다는데, 가진 것이 많으면 왜 주님과 더 멀어지게 됩니까?

2. 주님의 은총을 받아 주님의 종이 되시렵니까?

(그렇습니까? 망설여집니까? 부담스럽습니까?)



차례..

12. 해방을 위하여


관찰(주님의 눈으로 보고)

1. (나나) 내가 방문한 사람들 중에 자신이 만든 멍에를 지고 고생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나나) 그 사람은 어떤 면에서 멍에를 지고 있습니까?

2. 왜 (나나) 그 사람은 멍에를 메고 있습니까?

3. 또 그대로 두면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어떤 결과가 나타나겠습니까?

(※각자가 발표한 여러 상황과 사례 중에, 모두가 동의하는 한 상황만을 선택하여 판단에서 다룹니다.)

판단(주님의 말씀을 듣고)

1. (나나) 그 사람이 지고 있는 멍에가 그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합니까? 아니면 부정적인 영향을 줍니까?

2. (나나) 그 사람이 이 상황에서 무엇을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까?

3. 주님은 이럴 때 어떻게 하실까요?(성서를 살펴봅시다.)

4. 그 상황 안에서 부활하신 주님께서 함께 계시다는 것을 느끼고, 주님의 호소를 듣습니까?

실천(주님처럼 사랑하기)

1. 이 상황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까요?

2. 언제, 어디서, 누가, 어떤 방법으로?



차례..

13. 탐욕



일상

김 군은 올해 29세이다. 그는 어릴 때 아주 어렵게 살았기 때문에 어떻게든 돈을 벌어서 홀로 남은 어머님을 행복하게 해드리고, 자기 자녀들에게는 진절머리 나는 가난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각오로 열심히 일했다. 오후 5시까지는 일당 좋은 공사판의 인부로, 저녁엔 자기가 하고 싶었던 음악실의 디제이로, 밤엔 야간업소에서 악착같이 일했다. 친구가 만나자고 해도, 또 자신이 친구를 만나고 싶어도 꾹 참고 그저 수입만 괜찮은 곳이라면 어디든지 쫓아다니며 돈을 긁어모았다. 그렇게 3년이 지난 후 그는 집 한채를 마련할 돈을 모았다. 그리고 이젠 가정을 꾸미기 위해 더 열심히 일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이 그렇게도 바라고 원했던 집을 사 이사하기로 했던 며칠 전 갑자기 어머니께서 쓰러지셨다. 그에겐 날벼락 같은 일이었다. 이제 겨우 집을 장만하여 어머니의 맺힌 한을 풀어 드리려고 했는데, 그만 그 어머니가 돌아가시게 된 것이다. 어머니를 살리려고 여기 저기 병원을 다 돌기도 전에 결국 어머니는 돌아가시고 말았다. 차라리 어머니 살아 생전에 휴가라도 내서 제주도로 효도관광이라도 다녀올 걸, 아니 주일날 어머님과 동생과 함께 동네 앞 공원에라도 갈 걸…. 어머니를 위해 지금까지 뛰었건만 정작 어머니에겐 단 한 순간의 웃음도 선사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 동안 어머니 한 분께 기쁨을 선물하기 위해 갖은 고생을 마다하지 않았던 자기 수고의 의미를 잃고 방황하기 시작했다.

진정한 기쁨은 어떤 것인가?

어떻게 하면 한 인간에게 기쁨을 안겨 드릴 수 있는가?

자신이 그려왔고 계획해 왔던 행복의 성취가 참으로 행복으로 제시되는가?

인간에게 이웃은 누구인가? 또 하느님은?

나눔

1. 미래의 행복을 위해 오늘의 불행을 감수하는 방식이 진정한 행복을 약속해 줍니까? 경제적이고도 이론적인 사고방식이 살아있는 인간에게 행복을 허락해 줄 수 있습니까?

2. 오늘 살아있는 우리에게 진정한 행복은 어떤 것입니까?




차례..

14. 어린석은 자야


말씀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루가 12,13-21)

12 13군중 속에서 어떤 사람이 예수께 "선생님, 제 형더러 저에게 아버지의 유산을 나누어주라고 일러주십시오." 하고 부탁하자 14예수께서는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관이나 재산분배자로 세웠단 말이냐?" 하고 대답하셨다. 15그리고 사람들에게 "어떤 탐욕에도 빠져들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사람이 제아무리 부요하다 하더라도 그의 재산이 생명을 보장해 주지는 못한다." 하시고는 16비유를 들어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떤 부자가 밭에서 많은 소출을 얻게 되어 17'이 곡식을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떻게 할까?' 하며 혼자 궁리하다가 18'옳지! 좋은 수가 있다. 내 창고를 헐고 더 큰 것을 지어 거기에다 내 모든 곡식과 재산을 넣어 두어야지. 19그리고 내 영혼에게 말하리라. 영혼아, 많은 재산을 쌓아 두었으니 너는 이제 몇 년 동안 걱정할 것 없다. 그러니 실컷 쉬고 먹고 마시며 즐겨라.' 하고 말했다. 20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이 어리석은 자야, 바로 오늘 밤 네 영혼이 너에게서 떠나 가리라. 그러니 네가 쌓아 둔 것은 누구의 차지가 되겠느냐?'고 하셨다. 21이렇게 자기를 위해서는 재산을 모으면서도 하느님께 인색한 사람은 바로 이와 같이될 것이다."

※복음을 나눌 때 말의 성찬보다는, 자신의 구체적인 일상과 연관하여, 깊은 묵상과 성찰 속에서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들이도록 하십시오.

나눔

1. 왜 기도하십니까? 우리는 주님께 무엇을 주로 청합니까?

2. 내가 어떤 것을 염두에 두고 계획하였던 것이 물거품이 된 적이 있었습니까?




차례..

15. 네 것은 누구의 차지가 되겠느냐


성찰

사람들은 욕심을 가졌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도 그것이 욕심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경우에 따라서는 어릴 때부터 가난했기 때문에, 돈 때문에 너무나 설움을 받았기 때문에 사랑보다는 우선 자신이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사는데 필요한 것 이상으로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미래를 위해 저축해야 한다. 그러나 그 불안한 미래를 위해 얼마를 간직하면 된다는 것도 생각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불안한 미래는 그를 결코 만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 어떤 이는 평생 돈을 써보지 못했기 때문에 제대로 돈을 쓸 줄도 모른다. 단지 그에겐 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힘이 될 뿐이다. 결국 그에겐 돈이 자기 생명의 주인(하느님)인 셈이다.

"선생님, 제 형더러 저에게 아버지의 유산을 나누어주라고 일러주십시오."(루가 12,13) 이 사람이 왜 예수께 이런 청을 했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그가 유산을 받지 못하면 굶어 죽을 처지이기 때문에 달라는 것인지 아니면 자기가 당연히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인지, 형이 독차지하는 것을 용납하기 어려운 것인지 아니면 정말 자기가 가지고 싶은 욕심 때문인지?

우리의 현실에서 우리는 이 사람의 청에 대해 이렇게 되물을 수도 있다. 왜 그는 아버지의 유산을 달라고 하는가? 왜 아버지의 무덤 관리권이나 제사를 드리게 해달라고 청하지 않는가? 왜 사회에 환원되어야 할 재산을 자식이 가지려고 하는가? 왜 형에게 직접 달라하지 않는가? 구지 남의 동의나 다른 이의 힘이 필요할 정도로 명분이 서지 않거나 힘이 없는가? 등….

주님은 이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어떤 탐욕에도 빠져들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사람이 제아무리 부요하다 하더라도 그의 재산이 생명을 보장해 주지는 못한다."(루가 12,15) 또 "이 어리석은 자야, 바로 오늘 밤 네 영혼이 너에게서 떠나가리라. 그러니 네가 쌓아 둔 것은 누구의 차지가 되겠느냐?"(루가 12,20) 우리는 재산이 결코 생명을 보장해 주지도 못할 뿐더러, 무리하게 재산을 모았을 때 추한 모습만을 간직하게 되거나 그 재산 때문에 목숨을 잃을 것이고("이렇게 자기를 위해서는 재산을 모으면서도 하느님께 인색한 사람은 바로 이와 같이될 것이다."<루가 12,21>), 자신이 모은 재산으로 인해 오히려 그의 자녀들이 재산 싸움으로 분열되거나 물려 받은 재산 때문에 그의 자녀들이 건전한 사고방식으로 살지 못하고 마침내는 타락과 가난에 빠져들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우리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재산을 지니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재산을 지녔으나 하느님께 인색하지 말라는 것이다. 하느님께 인색한 사람이란 곧 이웃에게 몰인정하고 무자비한 사람을 말한다. 이웃의 아픔과 호소에 눈감는 사람은 하느님께로부터 눈길을 받지 못할 것이며, 자기 자신의 영혼과 인격에게도 눈뜨지 못할 것이다..

나눔

1. 나의 미래를 위해 현실의 호소를 거절한 적이 있습니까?




차례..

16. 자유를 향하여


관찰(주님의 눈으로 보고)

1. (나나) 내가 방문한 사람들 중에 탐욕에 빠진 사람이 있습니까? (나나) 그 사람은 어떤 면에서 탐욕에 빠져 있습니까?

2. 왜 (나나) 그 사람은 탐욕에 빠져 있습니까?

3. 또 그대로 두면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어떤 결과가 나타나겠습니까?

(※각자가 발표한 여러 상황과 사례 중에, 모두가 동의하는 한 상황만을 선택하여 판단에서 다룹니다.)

판단(주님의 말씀을 듣고)

1. (나나) 그 사람이 빠져있는 탐욕이 그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합니까? 아니면 부정적인 영향을 줍니까?

2. (나나) 그 사람이 이 상황에서 무엇을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까?

3. 주님은 이럴 때 어떻게 하실까요?(성서를 살펴봅시다.)

4. 그 상황 안에서 부활하신 주님께서 함께 계시다는 것을 느끼고, 주님의 호소를 듣습니까?

실천(주님처럼 사랑하기)

1. 이 상황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까요?

2. 언제, 어디서, 누가, 어떤 방법으로?




차례..

17. 헌신



일상

리디아 자매는 올해로 57세다. 그 자매는 빈첸시오 회원으로 아주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리디아 자매는 동네 가난한 사람들을 발견하면, 몸으로 뛴다. 누워 있는 할머니에게 가서는 목욕도 시켜 주고, 홀로 사는 할아버지에게 가서는 빨래도 해준다. 한 번은 다 찢어진 비닐 하우스 속에서 추운 겨울을 여름 이불과 풍로 하나로 지내는 할아버지를 보고는 본당에 이야기해서 다 쓰러져갈 듯한 창고라도 회원들과 함께 수리를 하여 추위라도 막을 수 있는 작은 방 한 칸을 마련해 드리기도 했다. 리디아 자매의 도움을 받는 이들은 그 자매의 정성스러운 손길에서 어머니 같은 사랑을 받는다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리디아 자매는 자식도 없고, 취로사업을 통해 생계를 겨우 유지해 나간다. 그 자매가 빈첸시오 회원이 되어 이렇게 열심히 활동하게 된 것은 본당 빈첸시오 회원들이 그 자매의 외롭고 쓸쓸한 여생을 함께하고자 방문하여 벗이 되자, 어느 날 갑자기 성당에 찾아와 세례까지 받게 된 것이다. 처음 성당에 왔을 땐 빈첸시오 회원들은 신자가 되지 않아도 우리는 계속 찾아갈 것이며, 생계 보조금도 계속 줄 것이라고 말렸다. 그러나 리디아 자매는 웃으면서 그 동안 본당에서 지출되었던 생계 보조금을 되돌려주면서 감사헌금으로 내달라고 했다. 그리고 자신은 이제 사는 것의 의미를 알았고 기쁘다고 했다. 더 이상 가난이 자신을 궁핍하게 할 수 없다며, 자기는 부자라고 했다.

그렇게 열심히 사람들을 돕던 리디아 자매가 어느 날 취로사업 중 다쳐서 병원에 입원했다. 가난한 본당의 빈첸시오 회원들은 리디아 자매를 병원에 입원을 시키기는 했지만, 간병료를 댈 처지가 아니었기 때문에 안절부절 못했다. 그런데 리디아 자매는 정작 자신이 돕고 있던 분들을 누가 돌보겠느냐고 걱정을 하고 있었다. 회원들은 그 자매의 모습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할 수 있었다. 회원들의 걱정이 기우라도 되듯이 매일 리디아 자매가 돌보던 분들이 한 분씩 돌아가며 간병을 자청해 왔고, 리디아 자매는 주님으로부터 백배의 상을 받았다고 기뻐했다.

나눔

1. 경제적인 궁핍으로 고생해 본 적이 있습니까?

2. 내가 어려우면서도 이웃과 나눔으로써 주님께서 주시는 기쁨을 느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차례..

18. 가난한 사람들의 헌신


말씀 과부의 헌금(루가 21,1-4)

21 1어느 날 예수께서는 부자들이 와서 헌금궤에 돈을 넣는 것을 보시고 계셨는데 2마침 가난한 과부 한 사람이 작은 동전 두 닢을 넣는 것을 보시고 3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이 가난한 과부는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은 돈을 넣었다. 4저 사람들은 모두 넉넉한 데서 얼마씩을 예물로 바쳤지만 이 과부는 구차하면서도 가진 것을 전부 바친 것이다."

※복음을 나눌 때 말의 성찬보다는, 자신의 구체적인 일상과 연관하여, 깊은 묵상과 성찰 속에서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들이도록 하십시오.

나눔

1. 주님께 드리는 예물 액수에 부담을 느낀 적이 있습니까?

2. 어떻게 과부는 구차하면서도 가진 것을 전부 바칠 수 있었을까요?




차례..

19. 가진 것을 전부 바친 것이다


성찰

신자들의 의무 중에 하나로 교회의 유지비를 내야 하는 것이 있다. 이를 교무금이라고 한다. 교무금은 자기 수입의 10분의 1을 내는 구약의 십일조 정신에서부터 왔다고도 한다. 교회의 현실 안에서 신자들은 대개 자기 수입의 30분의 1을 낸다는 조사도 있었다. 그런데 정부는 '도시 근로자의 '95년 한달 평균 생활비'는 약 150여만원 정도라고 발표했다. 그 발표가 맞는 것이라면 교무금의 평균은 5만 원 정도여야 한다. 그런데 실제로 그런가?

이런 말을 하는 사람도 있다. "교무금을 내는 사람 중에 5만 원 이상을 내는 사람은 사회에서나 교회에서나 책임감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돈이 있는 곳에 마음도 있기 때문이다." 만일 평균 생활비가 실제로 150만 원이라고 가정해본다면, 이 말은 어떤 면에서 논리적이다.

교무금을 책정하거나, 성전 건립금이나 교회의 필요에 의해 돈을 모을 때 느끼는 것은 부자에 비해 가난한 사람들은 그야말로 "구차하면서도 가진 것을 전부 바친"(루가 21,4b) 셈이다. 부자는 가졌으면서도 언제 어떻게 될지 몰라서 그리고 그 가진 것을 유지하고 가진 것만큼의 품위를 유지하기 위해서 선뜻 돈을 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날품팔이 아저씨, 행상 아주머니, 공장의 여공들은 자기 수입의 비율로 따진다면 부자에 비해 엄청난 출혈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지금 교무금을 어느 정도 수준에서 얼마 내고 있느냐 하는 것도 문제겠지만, 한편 교회에 모여진 교무금을 어디에다 쓰고 있느냐도 문제 거리이다. 서울 대교구에서는 본당 전체 예산의 약 40퍼센트 정도를 교구 납부금으로, 나머지는 인건비와 교육비 및 운영비 그리고 단체 보조비로 쓰고 있다. 그런데 항상 빡빡하고 여유가 없다. 게다가 시설 투자와 유지비로 빚까지 져, 많은 본당이 빚을 안고 있다. 그나마 10퍼센트의 찬조비를 가난한 이웃과 나누기위해 책정하고 집행하는 것만도 다행이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한 가지 기억할 것이 있다. 과거에 우리가 못살았을 때는 교회도 가난했다. 그렇지만 교회에서는 자선병원이나, 학교, 유치원 등의 사회복지 및 교육시설을 운영했다. 물론 외국원조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럼 현재는 어떤가? 우리가 가난했을 때는 큰 본당마다 사회복지시설을 운영했는데, 지금 풍족하지는 않다하더라도 더 많은 돈이 교회에 들어오고 있는데, 왜 사회복지기금으로 나가는 '찬조비' 10%마저도 힘들어하는가? 가난한 과부의 헌금과도 비교할 수 있다. 우리 본당이 지금 외국의 가난한 교회에 원조를 하느라 그런가? 본당에서 교구 사회복지회를 통해 가난한 사람들에게 보내는 것은 일년에 한 두번 정도의 특별헌금뿐이다. 그러면 나머지 예산의 배분상태는 과거에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가던 몫이 현재는 교회 자체내의 유지와 운영에 들어가버렸다. 그렇다면 교회는 지금 예수님이 바라보고 있던 헌금궤 앞에서 부자들이 그랬듯이, 가난한 사람과 자신을 동일시하신 주님께 "넉넉한 데서 얼마씩을 예물로 바"(루가 21,4a)치고 있는 것이다.

주님께 대한 헌신이 복음 선포와 전례와 성사생활로 그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또한 하느님께 바치는 예물이 교회의 성물봉헌과 교무금에 그칠 수만도 없는 것이다. 그리고 신자 한 명이 하나씩 들고 있는 후원회만으로 그치는 것도 아니다.

근본적인 변화를 향한 결단이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 예수는 하느님과 본질이 같은 분이셨지만 굳이 하느님과 동등한 존재가 되려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의 것을 다 내어놓고 종의 신분을 취하셔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 당신 자신을 낮추셔서 죽기까지, 아니, 십자가에 달려서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필립 2,6-8) 가난한 교회는 가진 것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가진 것을 어려운 이웃과 나눔으로써 구차해지는 상태이리라. 가난한 사람과 함께하는 교회의 모습은 구호가 아니라 교회의 본질이다. 가난한 사람과 함께하려는 노력은 바로 자기에게 주어진 것이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과 나누도록 주어진 것이라는 의식의 변화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그리스도 우리 주님께서 자신을 내주심으로써 죽으셨듯이, 가난한 사람과 함께 나눔으로써 비로소 주님의 교회가 되는 것이다.

주님은 사람에게가 아니라 하느님 아버지께 희망을 두셨기 때문에 가난해지실 수도 있었고 죽을 수도 있었다는 부활신앙을 살아나가자!

나눔

1. 주님은 "돈이 있는 곳에 마음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나는 어디에 중점을 두고 돈을 쓰고 있습니까?

2. 자신의 미래를 주님께 맡김으로써 헌신할 수 있습니까?




차례..

20. 나눔을 향하여


관찰(주님의 눈으로 보고)

1. (나나) 내가 방문한 사람들 중에 자기를 나누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나나) 그 사람은 어떤 면에서 나누지 못하고 있습니까?

2. 왜 (나나) 그 사람은 자기를 나누지 못합니까?

3. 또 그대로 두면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어떤 결과가 나타나겠습니까?

(※각자가 발표한 여러 상황과 사례 중에, 모두가 동의하는 한 상황만을 선택하여 판단에서 다룹니다.)

판단(주님의 말씀을 듣고)

1. (나나) 그 사람의 인색함이 그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합니까? 아니면 부정적인 영향을 줍니까?

2. (나나) 그 사람이 이 상황에서 무엇을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까?

3. 주님은 이럴 때 어떻게 하실까요?(성서를 살펴봅시다.)

4. 그 상황 안에서 부활하신 주님께서 함께 계시다는 것을 느끼고, 주님의 호소를 듣습니까?

실천(주님처럼 사랑하기)

1. 이 상황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까요?

2. 언제, 어디서, 누가, 어떤 방법으로?



차례..

21. 부정



일상

정 대리는 수납창구를 맡고 있는 터라 마감시간이면 항상 긴장한다. 그날 들어오고 나간 돈이 수많은 전표와 장부 그리고 현금의 액수와 다 맞아야 하기 때문이다. 액수가 맞는 날에는 정시 퇴근이 가능하지만, 틀리는 날이면 어디서 틀렸는지를 찾느라고 밤 늦게까지 고생하기가 일쑤다. 어쩌다 들어 온 돈이 장부보다 많을 경우에는 회사에 넣어 버리면 되지만, 모자랄 경우에는 자기가 물어내야 하기 때문에 긴장감 이상의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오늘도 정 대리는 마감처리를 위해 웃옷을 벗고, 와이셔츠의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어젖히고 수시간 매달려 있지만 좀처럼 틀린 곳이 나와 주지 않아 고생하고 있다. 벌써 몇 번씩 서류들을 들쳐 보았는지 모른다. 다른 직원들은 퇴근하고 수납창구 여직원은 너무 늦어 보내 버렸다. 마음 착한 김 대리만 옆에 남아 '끝나면 술 한 잔 사!' 하며 지켜 주고 있었다. 이것 참 낭패로군! 평소 푼돈 같으면 그냥 자기가 물고 말면 되는데, 이번엔 액수가 컸다. 담배에 불을 붙이고는 잠시 쉬면서 서류를 바라보는 순간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문득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한 번 머리 속에 입력된 생각은 자꾸 꼬리를 물뿐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어째서 모자랄 땐 사원이 물고, 남을 땐 그냥 회사로 들어가야 하는가?! 똑같은 사람의 실수로 인해 빚어진 일인데! 이익이 되면 회사 것이고, 모자라면 사원이 책임져야 하는가?' 팽개치고만 싶었다.

같이 남아 있어 주던 김 대리가 야참이라도 사온다고 나가고, 주위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 정 대리는 장부를 고쳐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퇴근을 하며 괴로움에 소주방으로 시작한 마음의 도피 행각은 나이트 클럽까지 끌고 갔다. 쓰러지다시피 해서 자고 난 다움 날 자신이 재작성한 장부를 알아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그날도 오차가 났다. 어제와는 달리 이젠 남은 것이다. 그것도 아주 많이. 주위를 보며 그냥 마감처리를 해버리고 남은 돈을 챙겼다. 훗날을 위해서!

이렇게 시작된 정 대리의 장부조작과 손실금 처리방식은 점점 깊어만 갔고, 이상하게 챙길 때보다, 아니 챙긴 금액이 다시 들어가기보다는 장부 재작성 경우가 많아져만 갔다. 결국 감사에서 지적을 받게 되었고, 정 대리는 시말서와 함께 그 돈을 변상하도록 경고조처를 당했다. 그러나 그 동안 꿀꺽한 돈에 비해 물어야 할 돈은 너무나 많았고, 꿀꺽한 돈이 그 때까지 남아있지도 않았다.

그래서 그는 이제 본격적으로 재작성 작업을 시작했다. 으례 마감시간이면 아래 직원들을 웃으며 돌려 보내고, 혼자 남아 간 크게(?) 고쳐 나가기 시작했다. 물어야 할 액수에 도달할 때까지!

나눔

1. 부당한 제도는 부정을 가져올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까?

2. 업무상 선택을 해야할 때, 사적인 감정이 개입된 적이 있습니까?



차례..

22. 세속의 자녀들


말씀 약은 청지기(루가 16,1-8)

16 1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또 말씀하셨다. "어떤 부자가 청지기 한 사람을 두었는데 자기 재산을 그 청지기가 낭비한다는 말을 듣고 2청지기를 불러다가 말했다. '자네 소문을 들었는데 그게 무슨 짓인가? 이제는 자네를 내 청지기로 둘 수 없으니 자네가 맡은 일을 다 청산하게.' 3청지기는 속으로 생각했다. '주인이 내 청지기 직분을 빼앗으려 하니 어떻게 하면 좋을까?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먹자니 창피한 노릇이구나. 4옳지, 좋은 수가 있다. 내가 청지기 자리에서 물러날 때 나를 자기 집에 맞아 줄 사람들을 미리 만들어 놓아야겠다.' 5그래서 그는 자기 주인에게 빚진 사람들을 하나씩 불러다가 첫째 사람에게 '당신이 우리 주인에게 진 빛이 얼마요?' 하고 물었다. 6'기름 백 말이오.' 하고 대답하자 청지기는 '당신의 문서가 여기 있으니 어서 앉아서 오십 말이라고 적으시오.' 하고 일러주었다. 7또 다른 사람에게 '당신이 진 빚은 얼마요?' 하고 물었다. 그 사람이 '밀 백섬이오.' 하고 대답하자 청지기는 '당신의 문서가 여기 있으니 팔십 섬이라고 적으시오.' 하고 일러주었다. 8그 정직하지 못한 청지기가 일을 약삭빠르게 처리하였기 때문에 주인은 오히려 그를 칭찬하였다. 세속의 자녀들이 자기네들끼리 거래하는 데는 빛의 자녀들보다 더 약다."

※복음을 나눌 때 말의 성찬보다는, 자신의 구체적인 일상과 연관하여, 깊은 묵상과 성찰 속에서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들이도록 하십시오.

나눔

부자의 일처리 방식과 약은 청지기의 일처리 방식을 비교하고, 오늘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연관시켜 나누어 봅시다.




차례..

23. 빛의 자녀들


성찰

"주인이 내 청지기 직분을 빼앗으려 하니 어떻게 하면 좋을까?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먹자니 창피한 노릇이구나. 옳지, 좋은 수가 있다. 내가 청지기 자리에서 물러날 때 나를 자기 집에 맞아 줄 사람들을 미리 만들어 놓아야겠다."(루가 16,3b-4) 주님은 이미 2천 년 전에 오늘의 부정을 예견하신 것인가? 아니면 사람의 속성이 예나 지금이나 다 그런 것인가? 굳이 정경유착이라는 단어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공직자와 기업 간의 연결고리는 공직자의 퇴임과 재직당시의 담당 및 연관회사에로의 취임을 보장하는 것인가? 또한 납품과 허가의 판단기준은 제품의 질과 가격인가 아니면 담당자간의 인간관계인가? 새로운 정책의 계발과 시행은 국민들의 편의를 위한 것인가 아니면 일부 업자들의 투자손실이나 운영폐해의 보상을 위한 것인가? 특혜는 차별대우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부정과는 손바닥과 손등의 관계다.

흔히 부정은 그릇된 제도에서 온다고들 한다. 그래서 그릇된 제도 밑에서 살아남으려면 거기에 맞추어야 하고 그러려면 그릇된 방법이 동원될 수밖에 없다는 말은 다소 논리적이기까지 하다. 그러나 그 그릇된 제도는 누가 만든 것인가? 그릇된 제도를 만드는 주체가 인간이라면, 부정을 저지르는 것도 인간이다. "한 사람이 죄를 지어 이 세상에 죄가 들어 왔고 죄는 또한 죽음을 불러 들인 것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죽음이 온 인류에게 미치게 되었습니다. 율법을 주시기 전에도 죄는 세상에 있었습니다. 다만 율법이 없었기 때문에 그 죄가 법의 다스림을 받지 않았을 뿐입니다. 그러나 죽음은 아담으로부터 모세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을 지배하였는데 아담이 지은 것과 같은 죄를 짓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그 지배를 받았습니다."(로마 5,12-14a)

부정에서, 그릇된 제도에서 헤어날 길은 아니 이 것을 고칠 수 있는 주체는 사람뿐이다. 용기있는 사람, 그는 바로 하느님과 하느님이 주신 양심의 내면소리에 순종하는 사람이다.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이 된 것과는 달리 한 사람의 순종으로 많은 사람이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게 될 것입니다. 법이 생겨서 범죄는 늘어 났지만 죄가 많은 곳에는 은총도 풍성하게 내렸습니다. 그래서 죄는 세상에 군림하여 죽음을 가져다 주었지만 은총은 군림하여 우리 주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에 있게 하고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합니다."(로마 5,19-21절)

하느님을 향한 인간의 올바른 자세를 갖출 수 있는 사람이라면, 죽음을 쳐부수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인이라면, 인간을 그릇되게 하는 그릇된 제도에 맞서서 정의를 사는, 주님과 주님께서 주신 순수한 양심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새 하늘과 새 땅을 이룰 수 있다. 그는 주님의 은총 안에 머물게 될 것이며, 주님은 그를 하느님 나라의 건축가로 만들어 주실 것이다.

나눔

1. 부정의 유혹어린 요청 앞에 섰을 때 어떤 갈등과 부르심을 느끼십니까?

2. 부정에 맞서서 싸워보신 적이 있습니까?

3. 그 때 주님의 도우심을 청한 적이 있습니까? 주께서 어떻게 함께하셨습니까?



차례..

24. 정의 사회를 향하여


관찰(주님의 눈으로 보고)

1. (나나) 내가 방문한 사람들 중에 부정을 저지르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나나) 그 사람은 어떤 면에서 부정을 저지르고 있습니까?

2. 왜 (나나) 그 사람은 부정을 저지르고 있습니까?

3. 또 그대로 두면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어떤 결과가 나타나겠습니까?

(※각자가 발표한 여러 상황과 사례 중에, 모두가 동의하는 한 상황만을 선택하여 판단에서 다룹니다.)

판단(주님의 말씀을 듣고)

1. (나나) 그 사람이 저지르고 있는 부정이 그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합니까? 아니면 부정적인 영향을 줍니까?

2. (나나) 그 사람이 이 상황에서 무엇을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까?

3. 주님은 이럴 때 어떻게 하실까요?(성서를 살펴봅시다.)

4. 그 상황 안에서 부활하신 주님께서 함께 계시다는 것을 느끼고, 주님의 호소를 듣습니까?

실천(주님처럼 사랑하기)

1. 이 상황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까요?

2. 언제, 어디서, 누가, 어떤 방법으로?



차례..

25. 악의 노예



일상

고 형제는 평소에 동료들과 그를 아는 신자들 사이에서, 아주 성실하고 진지한 사람이라는 평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남다른 아픔과 갈등이 있다. 그것은 바로 주벽이다. 그는 마음이 독하지 못해서, 다른 사람이 주는 술을 거절하지 못한다. 그래서 그는 언제나 술자리에서 취하게 되고, 앉아서 마실 때는 잘 모르다가도 술자리를 떠나 돌아오는 길은 언제나 부담스럽다. 왜냐하면 취한 상태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다음 날 자신이 취했을 때의 행동에 대해 동료들의 말을 들으면 부끄럽기 그지없어 "죄송했었습니다."란 말만 되풀이할 수밖에 없었다.

마침내 언젠가 한 번은 술이 만취된 상태에서 형제들과 헤어져, 어디 가서 어떤 짓을 하고 돌아왔는지 그 다음날 아무런 기억이 없었던 적이 있다. 차의 미터계는 평소에 집으로 돌아오던 거리만큼의 수치에 이미 세 배가 넘었고, 옷은 찢어져 있었는데도 말이다. 자기가 한없이 미웠고 원망스러웠다. 그래서 몇 번씩 술을 끊으려고 했지만, 생각과 결심대로 잘 되지 않았다. 한편으론 술자리가 좋았고 그 자리를 떠났을 때 오는 소외를 견딜 수도 없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남자가 술 좀 마시고 취한다고 그렇게 큰 흉이 되지는 않는다.'고 자위도 하면서 지내고 있지만, 거듭되는 실수 때문에 마음 한 구석에 커다란 멍에를 지고 있다. 술에 취해서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강한 힘을 가지고, 마구 울부짖는 맹수처럼 이리저리 거리를 방황하는 자신의 모습을 두려워하면서….

나눔

1. 술이나 기타의 중독으로 인해 악에 사로잡혀 본 일이 있습니까? 반복해서 계속 행하는 습관적인 죄가 있습니까?

2. 사회의 관습과 처세술이란 명목으로 악의 세력에 부딪혀 본 적이 있습니까?




차례..

26. 악령에게 사로잡혀


말씀 악령에게 사로잡힌 아이(마르 9,17-29)

9 17"선생님, 악령이 들려 말을 못하는 제 아들을 선생님께 보이려고 데려 왔읍니다. 18악령이 한번 발작하면 그 아이는 땅에 딩굴며 거품을 내뿜고 이를 갈다가 몸이 빳빳해지고 맙니다. 그래서 선생님의 제자들에게 악령을 쫓아내 달라고 했더니 쫓아내지 못했습니다." 하였다. 19예수께서는 "아, 이 세대가 왜 이다지도 믿음이 없을까! 내가 언제까지 너희와 함께 살며 이 성화를 받아야 한단 말이냐? 그 아이를 나에게 데려 오너라." 하셨다. 20그들이 아이를 예수께 데려 오자 악령이 예수를 보고는 곧 아이에게 심한 발작을 일으키게 했다. 그래서 아이는 땅에 넘어져 입에서 거품을 흘리며 딩굴었다. 21예수께서 그 아버지에게 "아이가 이렇게 된 지 얼마나 되었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어렸을 때부터입니다. 22악령의 발작으로 그 아이는 불 속에 뛰어 들기도 하고 물 속에 빠지기도 하였읍니다. 그래서 여러 번 죽을 뻔하였읍니다. 선생님께서 하실 수 있다면 자비를 베푸셔서 저희를 도와 주십시오." 23이 말에 예수께서 "'할 수만 있다면'이 무슨 말이냐? 믿는 사람에게는 안되는 일이 없다." 하시자 24아이 아버지는 큰 소리로 "저는 믿습니다. 그러나 제 믿음이 부족하다면 도와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25예수께서는 사람들의 몰려드는 것을 보시고 더러운 악령을 꾸짖으시며 "말 못하고 듣지 못하게 하는 악령아, 들어라. 그 아이에게서 썩 나와 다시는 들어가지 말아라." 하고 호령하셨다. 26그러자 악령이 소리를 지르며 그 아이에게 심한 발작을 일으켜 놓고 나가 버렸다. 그 바람에 아이가 죽은 것 같이 되자 사람들은 모두 "아이가 죽었구나!" 하고 웅성거렸다. 27그러나 예수께서 아이의 손을 잡아 일으키시자 그 아이는 벌떡 일어났다. 28그 뒤 예수께서 집으로 들어 가셨을 때에 제자들이 "왜 저희는 악령을 쫓아 내지 못하였습니까?" 하고 넌지시 물었다. 29예수께서는 "기도하지 않고서는 그런 것을 쫓아 낼 수 없다." 하고 대답하셨다.

※복음을 나눌 때 말의 성찬보다는, 자신의 구체적인 일상과 연관하여, 깊은 묵상과 성찰 속에서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들이도록 하십시오.

나눔

1. 악의 세력을 느끼십니까?

2. 주님께서 나에게 덮쳐 오는 악에서 나를 구하실 수 있다고 믿습니까?




차례..

27. 성령과 악령


성찰

누구든지 한 번쯤은 술을 끊어야겠다고 생각해 본 경험이 있다. 그리고 실제로 끊은 사람도 있다. 왜 그런가? 술이 나쁜 것이기 때문은 아니다. 물론 그 외에 건강 때문에나 다른 이유로 끊은 사람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술을 먹고 실수한 경험이 있어, 부끄러움과 죄책감으로 다신 그런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끊고자 한다.

단순히 술을 지나치게 먹고 주정을 하거나, 실수 정도가 아니라, 자기가 자신을 제어하고 통제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러 자기도 원치 않고 자기가 받아들이기도 어려운 행동을 하고 난 후 사람들은 그것을 부정하거나 그로 인한 죄책감으로 시달리게 된다. 술을 취하면 "술이 술을 먹는다."는 소리를 한다. 그러나 술은 물체이지 사람의 행동을 움직이는 힘은 아니다. 그러면 무엇인가? 술을 먹는 것도 술을 먹고 그런 행동을 하는 것도 틀림없이 사람인 자기 자신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행동이 자기도 인정할 수 없을 정도의 일이었던 것이다. "왜 내가 그랬을까? 어떻게 내가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라는 물음을 던져도 정리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된 것인가? 복음에 나오는 악령들린 아이의 현상을 보면, "악령이 한번 발작하면 그 아이는 땅에 뒹굴며 거품을 내뿜고 이를 갈다가 몸이 빳빳해지고 맙니다."(마르 9,18) 누가 이러한 현상을 그 아이가 원해서 하는 행동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이와 연관하여 우리는 사도 바오로의 말씀을 연상할 수 있다. "내 속에 곧 내 육체 속에는 선한 것이 하나도 들어 있지 않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마음으로는 선을 행하려고 하면서도 나에게는 그것을 실천할 힘이 없습니다. 나는 내가 해야 하겠다고 생각하는 선은 행하지 않고 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는 악을 행하고 있습니다. 그런 일을 하면서도 그것을 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결국 그런 일을 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속에 들어 있는 죄입니다. 여기에서 나는 한 법칙을 발견했습니다. 곧 내가 선을 행하려 할 때에는 언제나 바로 곁에 악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입니다."(로마 7,18-21) 그러므로 이러한 현상은 사도 바오로의 말씀처럼, 그 행동은 그가 하지만 그가 원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악령'이 그를 사로잡고 그로 하여금 그렇게 하도록 조종하는 것이다. 이것이 악령에 의해 또는 악령의 노예가 된 사람의 비참한 모습이다. 악령이 부추기는 "육정이 빚어내는 일은 명백합니다. 곧 음행, 추행, 방탕, 우상 숭배, 마술, 원수 맺는 것, 싸움, 시기, 분노, 이기심, 분열, 당파심, 질투, 술주정, 흥청대며 먹고 마시는 것, 그 밖에 그와 비슷한 것들입니다."(갈라 5,19-21a) 그리고 습관적으로 계속 반복하여 저지르는 죄도 같은 유형에서 보아야 한다.

그런데 인간의 더 비참한 모습은 자신의 행동을 악에 사로잡혀서 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그 행동의 책임을 자기에게 돌림으로써 오는 문제이다. 한편은 '내가 언제 그랬냐?' '술 취해서 한 일이다.'는 식의 부정과 도피로 현상에 대한 거부의 형태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거부할 수 없는 맑은 양심 속에서 지는 죄책감 때문에 자신을 저주하고 좌절하는 형태이다. 그 어느 것도 올바른 해결책이 아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통제하거나 책임질 수도 없는, 이른바 악령에 사로잡힌 문제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악령을 지배할 수는 없지 않는가?. 게다가 또 다른 하나의 문제는, 그 행동을 자신도 원치 않으면서도 악의 유혹으로 '다시 하고 싶어지는 것'이고, 마침내 '다시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어쩔 수 없다…." 또 "그래야만 살 수 있다…."고 까지 합리화하기도 한다. 이러한 입장을 개인의 차원을 넘어 사회적으로 바라본다면, 사회악이요 구조악이라고 하며 신학적으로는 원죄에 해당한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면 인간의 힘으로 악령을 이겨낼 수 없어 생기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그 방법은 첫째 자신이 악령에 사로잡혀 그런 일을 하게 된다는 사실을 스스로 알아차려야 하고, 둘째 또 다시 악에 사로잡힐 유혹의 연결고리를 끊고자 노력해야 할 것이며, 셋째 성령께 그 도움을 청해야한다. "고맙게도 하느님께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구해 주십니다. 나는 과연 이성으로는 하느님의 법을 따르지만 육체로는 죄의 법을 따르는 인간입니다."(로마 7,25) 예수께서 "'할 수만 있다면'이 무슨 말이냐? 믿는 사람에게는 안되는 일이 없다."하시자 아이 아버지는 큰 소리로 "저는 믿습니다. 그러나 제 믿음이 부족하다면 도와주십시오!"하고 청하였다.(마르 9,23-24) 악의 세력이 집요하고 강력하게 다가오더라도, 좌절하거나 두려워하지 말고 주님의 빛을 찾아 따라가야 한다. 설사 주님께서 우리를 향해 비춰 주시는 빛을 실날처럼 희미하게밖에 발견할 수 없을지라도 결코 중단하지 말고 따라가야만 이길 수 있다. 주님은 우리를 심판하러 오시지 않고 구하러 오셨다는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지 않고서는 그런 것을 쫓아 낼 수 없다." 하신 주님의 말씀처럼 주님께 희망을 걸고 성령께서 도와 주시기를 청하자!

그리고 그러한 사람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눈도 '그'가 아니라, '악'이 그를 사로잡아 그를 그렇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그를 비판하기보다 악령 들린 아이의 아버지처럼 그의 고통을 감싸 안고 그를 위하여 주님께 간구하자!


나눔

1.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다가오는 악의 세력에 대항하여 투쟁해 본적이 있습니까? 악을 이기기 위한 인간의 노력과 하느님의 도우심에 대한 그 경험을 나누어 봅시다.

2. 성령이 악령을 이긴다는 신앙을 개인뿐 아니라 사회 안에서도 이루어지리라는 희망과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까?




차례..

28. 악과의 투쟁


관찰(주님의 눈으로 보고)

1. (나나) 내가 방문한 사람들 중에, 또 내가 근무하는 직장에 악에게 사로잡혀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나나) 그 사람은 어떤 면에서 악에 사로잡혀 있다고 할 수 있습니까?

2. 왜 (나나) 그 사람은 악에 사로잡혀 있습니까?

3. 또 그대로 두면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어떤 결과가 나타나겠습니까?

(※각자가 발표한 여러 상황과 사례 중에, 모두가 동의하는 한 상황만을 선택하여 판단에서 다룹니다.)

판단(주님의 말씀을 듣고)

1. (나나) 그 사람이 사로잡혀 있는 악이 그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합니까? 아니면 부정적인 영향을 줍니까?

2. (나나) 그 사람이 이 상황에서 무엇을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까?

3. 주님은 이럴 때 어떻게 하실까요?(성서를 살펴봅시다.)

4. 그 상황 안에서 부활하신 주님께서 함께 계시다는 것을 느끼고, 주님의 호소를 듣습니까?

실천(주님처럼 사랑하기)

1. 이 상황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까요?

2. 언제, 어디서, 누가, 어떤 방법으로?



차례..

29. 기다림



일상

신 신부는 오늘 한 학년을 마치고 새 학년으로 올라가는 학생들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다.

신 신부는 부모가 신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3년간의 교리기간을 거쳐 겨우 국민학교 3학년 때 영세를 했다. 그리고 곧바로 4학년에 올라가면서 유치원 때부터 그를 지도해주셨던 수녀님의 특별배려로 부모가 신자고 특별한 아이만 뽑는 복사단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부모의 뒷받침도 없었고, 스스로 충실하지도 못했던 그는 복사를 곧 그만두고 말았다. 그리고 그는 주일미사도 주일학교도 충실하게 다니지 않았다. 주일마다 텔레비전에서 방영되던 '타잔'이란 외화에 빠져 뒤늦게 성당에 와 영성체만 살짝 하고 도망갔다. 그런데 그 다음 해 2월 4학년 수료식 때, 그는 표창장을 받았다. 신부님으로부터 표창장을 받아들고 기뻐하긴 했지만, 어린 나이에도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떻게 나 같은 아이가 표창장을 받을 수 있을까?

신부가 된 지금도 교회의 그 지극한 배려와 사랑에 감사할 뿐이다. 표창장을 받을 그때, 주일학교 힉셍 중에 그보다 잘난 아이가 없었을까? 아마도 지극히 유교적인 비신자 가정이라는 환경을 고려한 수녀님의 강력한(?) 요구가 있었겠지만, 선생님들이 그것을 기꺼이 동의할 수 있었을까? 어느 선생님이나 자기가 주고 싶고, 또 정말 표창장을 받을 만한 학생이, 그것도 여러명 중에 누구를 주어야 하는가 하며 고민할 정도였을 텐데! 하물며 주일학교에는 이름만 올리고 잘 나오지도 않던 아이에게 벌을 주어도 모자랐을 텐데, 상을 주어야 하다니?! 그것도 한 학년에 한 명뿐인 표창장을….

그런 그가 지금 신부가 되어 이렇게 앉아 있다.

오늘 수료식을 거행하며 지난날 자신에게 베풀어졌던 교회의 자비를 품고 선언하는 신앙은, '오늘, 여기서,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느냐?'보다 언젠가는 돌아오리라는 기대와 또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아버지 하느님의 사랑을 믿는 것이다. 신앙생활의 주체는 '내'가 아니라 하느님이다. 그것도 죄많은 인간이 청하지도 않았는데 무한한 자비를 베푸시는 하느님! 바로 그분이 우리의 주님이시다.

'하느님의 사랑에 감사드린다. 벌보다는 상을 주셨던 교회에 감사드린다. 그리고 나 때문에 표창장을 받지 못했던 훌륭한 신자들의 몫을 빼앗은 빚을 하느님 사랑으로 갚으며 살련다.'

나눔

1. 자신의 잘못을 용서받아 감사의 눈물을 흘린 적이 있습니까?

2. 기대하지 않았던 선물이나 영예를 받아 감격해 본 적이 있습니까?




차례..

30. 하느님은 왜 심판을 미루시는가


말씀 모든 이가 회개하여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하느님(2베드 3,8-15a)

3 8사랑하는 여러분, 이 한 가지를 잊지 마십시오. 주님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습니다. 9어떤 이들은 주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미루신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은 여러분을 위해서 참고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회개하게 되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10그러나 주님의 날은 도둑처럼 갑자기 올 것입니다. 그 날에 하늘은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사라지고 천체는 타서 녹아 버리고 땅과 그 위에 있는 모든 것은 없어지고 말 것입니다. 11이렇게 모든 것이 다 파괴될 것이니 여러분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해 보십시오. 거룩하고 경건한 생활을 하면서 12하느님의 심판날을 기다릴 뿐 아니라 그날이 속히 오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그날이 오면 하늘은 불타 없어지고 천체는 타서 녹아 버릴 것입니다. 13그러나 우리는 하느님의 약속을 믿고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정의가 깃들어 있습니다.

14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그 날을 기다리고 있으니만큼 티와 흠이 없이 살면서 하느님과 화목하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십시오. 15그리고 우리 주님께서 오래 참으시는 것도 모든 사람에게 구원받을 기회를 주시려는 것이라고 생각하십시오.

※복음을 나눌 때 말의 성찬보다는, 자신의 구체적인 일상과 연관하여, 깊은 묵상과 성찰 속에서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들이도록 하십시오.

나눔

1. 세상 사람들을 바라보며 질투 어린 비난을 하다가도,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보며 쓴웃음을 지어 본 적이 있습니까?

2. 우리가 잘못했을 때마다 주님께서 우리를 탓하신다면 우리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차례..

31. 천년도 하루같이


성찰

우리는 다른 사람의 잘못을 보면 "왜 하느님께서는 저런 인간을 벌하지 않고 그냥 내버려두실까?" 하고 탓하고 저주하면서, 오랫동안 그리고 뼈에 사무칠 정도로 담아 두기도 한다. 그러나 자신의 경우에는 "이번 한 번만 한 번만 (더) 용서해 주십시오!" 하고 빈다. 또 자신의 지난 과거 어려운 시절이나 자신의 잘못을 돌이켜 볼라치면, 심한 부끄러움보다는 추억 거리로 여유 있게 받아들인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과오나 작은 실수도 잊지 않고 두고 두고 기억해 내며 또 한편 '지금 그가 어떤 사람인가'와 관계없이 그를 그 전의 실수와 과오를 바탕 삼아 평가한다. 더욱이 자기의 후배이거나 자기보다 못하다고 느끼는 사람의 변화에 대해 인정하기에는 너무나 인색하다.

이웃이나 사회가 변하지 않으면 망하고, 지옥벌을 받을 것이라고 아니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자신은 변하기를 두려워하고 자꾸만 미룬다. 실제로 변화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기의 삶 하나 뜯어고치기가 그렇게도 힘든데 어떻게 이웃이나 사회가 변하지 않는다고 탓할 수 있을까? 게다다 이웃이나 사회의 변화가 자신의 마음에 맞거나 자기에게 이익이 되도록 변하도록 기대한다는 것은 애초에 어리석은 생각이다. 왜냐하면 하느님이 서로 다르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세상을 바라보고 판단하는 기준도 자기가 아니라 하느님의 눈이다.

이러한 개인적이거나 이기주의적인 기준을 넘어서더라도 자기 자신은 물론 우리 모두는 변해야 한다. 그리고 실제로 변하고 있다. 그것이 경우에 따라서는 좋은 쪽으로 변하지 않아 문제 거리가 더 생기기도 하지만, 보이지 않게 변하고 있다.

한편 어떤 선생님은 "아무리 점수를 주려고 해도 학생들이 노력하지 않아 걱정이라!"는 고민을 한다. 선생님뿐 아니라 사랑을 주려고 해도 받지 않는, 아니 그 사랑을 받을 수 없을 정도로 심한 상처를 안고 사는 사람들이거나 다른 사랑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그 사랑이 속수무책으로만 보인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랑이 무의미한 것이거나 거기서 그냥 끝나버리는 것은 아니다. 그 사랑은 사랑 그 자체로서 남아있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 사랑에 감사하게 된다. 바닷물에 소금이 약 3퍼센트가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그 3퍼센트밖에 안되는 소금이 바닷물을 썩지 않게 하고 바다로서 존재하게 만든다. 우리는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신 주님의 사랑'을 기억한다. 아직도 그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믿는 이들 안에서 그 사랑이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면서 세상을 이겨나가고 또 변화시키고 있음을 본다. 그리고 세상의 주인이신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끝없는 자비를 베풀며 우리가 변화되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신다. 모든 이가 다 변화되어 하느님께로 돌아오기를…. "우리 주님께서 오래 참으시는 것도 모든 사람에게 구원받을 기회를 주시려는 것이라고 생각하십시오."(2베드 3,15a)

우리가 '한 번만, 한 번만 더' 하며 용서를 청할 때마다 그분은 심판을 미루시고 계신다. 그리고 그 심판이 사랑의 구원이 되어 모든 이가 다 새 하늘과 새 땅을 이루어 하느님 나라에 들어오기를 바라시면서. "어떤 이들은 주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미루신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은 여러분을 위해서 참고 기다리시는 것입니다."(2베드 3,9) "어른이 되면 철이 들겠지!" 하며 우리의 모든 잘못과 과오를 덮어 주시고 기다려 주시던 우리의 부모님과 선생님, 동네 아저씨·아주머니들처럼 천 년을 하루같이 생각하고 기다려오시던 하느님께 이제라도 되돌아 가자. 그리고 주님께서 몇 번이고 벗어나고 쓰러져 믿지 못할 나를 다시 일으켜 주시고 믿고 기대하고 계시듯이 우리도 우리의 이웃을 신뢰하며 주님께로 나아가자. 인간의 선함과 인간에게 심어 주신 하느님의 모상을 신뢰하며 함께 걸어 나가자. "그분은 은혜를 모르는 자들과 악한 자들에게도 인자하시다. 그러니 너희의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신 것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루가 6,35c-36)

내가 변한다고 세상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세상은 세상이 갈 길만을 계속 걸어갈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내가 변하면 세상은 내가 변한 만큼의 몫을 잃어 약해질 것입니다. 내가 너와 함께 우리가 되어 함께 변화되기 위해서는 오늘 내가 주님께 돌아가는 결단과 그 결단을 실천할 용기를 가져야겠다. 그리고 주님께 청하라. 주님께 돌아가는 길을 비춰 주시고 또 이끌어 주시기를!

나눔

1. 인간의 변화 가능성을 믿고 기대할 수 있습니까?

2. 사랑은 실제로 아이를 더 오냐오냐하며 키우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하느님의 자비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습니까?




차례..

32.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신 것같이


관찰(주님의 눈으로 보고)

1. (나나) 내가 방문한 사람들 중에 이웃이나 사회를 원망하거나 무시하며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나나) 그 사람은 어떤 면에서 그렇습니까?

2. 왜 (나나) 그 사람은 이웃이나 사회를 원망하거나 무시하며 용서하지 못하고 있습니까?

3. 또 그대로 두면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어떤 결과가 나타나겠습니까?

(※각자가 발표한 여러 상황과 사례 중에, 모두가 동의하는 한 상황만을 선택하여 판단에서 다룹니다.)

판단(주님의 말씀을 듣고)

1. (나나) 그 사람의 감정과 태도가 그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합니까? 아니면 부정적인 영향을 줍니까?

2. (나나) 그 사람이 이 상황에서 무엇을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까?

3. 주님은 이럴 때 어떻게 하실까요?(성서를 살펴봅시다.)

4. 그 상황 안에서 부활하신 주님께서 함께 계시다는 것을 느끼고, 주님의 호소를 듣습니까?

실천(주님처럼 사랑하기)

1. 이 상황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까요?

2. 언제, 어디서, 누가, 어떤 방법으로?



차례..

33. 유혹1-필요와 충족



일상 하느님께 대한 갈망과 빵에 대한 배고픔

-마더데레사, 박 재만 역, 우리는 사랑을 깨달았습니다, 28쪽, 성바오로 출판사, 1992

사람들은 하느님을 갈망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빵에 굶주리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의식합니까?

그것을 압니까?

그것을 봅니까?

그것을 볼 수 있는 눈이 있습니까?

우리는 흔히 보지만 관찰하지는 않습니다.

우리 모두는 이 세상을 지나가는 나그네입니다.

여러분은 수사들로부터 많은 것을 받았습니다.

사랑의 선물을,

여러분은 그들의 삶을 통해 실천적 사랑을 보았습니다.

그 모범을 배우십시오,

희생으로 주는 모범을.

먼저 여러분이 사는 집에서,

그리고 길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찾으십시오.

집이 없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뉴욕에서는 우리의 자매들이 행려병자들 사이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그들을 보는 것이 얼마나 큰 고통인지요!

방의 번호로 그들을 식별합니다.

그들 모두는 누군가의 자녀들입니다.

한때는 누군가가 그들을 사랑했습니다.

그들 자신들도 그들의 삶에서 누군가를 사랑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지금 그들은 방의 번호로 식별됩니다.

나눔

1. 사람을 돕기 위해 일하면서도 그 사람의 이름과 나이 등 그의 인격은 잃어버리고, 단순히 내가 도와 주어야 할 불쌍한 사람 중의 하나로 일처리하듯 대한 적은 없습니까?(예를 들어 수용실과 수용자 번호)

2. 내가 이웃을 도와주기 위해서 부정을 저지르거나 불의한 상황을 외면한 적이 있습니까? 그 이웃은 나를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차례..

34.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돈으로


말씀 유혹(마태 4,1-11)

4 1그 뒤에 예수께서 성령의 인도로 광야에 나가 악마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2사십 주야를 단식하시고 나서 몹시 시장하셨을 때에 3유혹하는 자가 와서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거든 이 돌더러 빵이 되라고 해보시오."하고 말하였다. 4예수께서는 "성서에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리라.'고 하지 않았느냐?"하고 대답하셨다.

※복음을 나눌 때 말의 성찬보다는, 자신의 구체적인 일상과 연관하여, 깊은 묵상과 성찰 속에서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들이도록 하십시오.

나눔

1. 돈만 많으면 가난과 굶주림을 해결할 수 있을까요?

2. 나에게 필요한 것을 다 얻을 수 있습니까? 또 필요한 것을 다 얻으면 만족할 수 있을까요?




차례..

35. 하느님의 말씀으로 살리라


성찰

"이 돌더러 빵이 되라고 해보시오."(마태 4,3) 가난한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빵(재물)만이라고 판단하면 오산이다. 당장 굶어 죽어가고 있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먹을 것이라고 하겠지만, 그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나는 나의 자존심이 상할 뿐만 아니라 '아직 덜 배고파서….' 하면서 오히려 그를 비난하고 멸시하며 괴롭힐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또 한편 그가 자신이 처해있는 가난으로 인해 무력감에 빠져 있다면 우리가 주는 빵조각만으로는 그에게 '너는 거지다! 너는 낙오자다!'라는 씁쓸한 실패감과 자멸감을 안겨주는 것 외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

또 한편 우리는 가끔 "…만 있으면", "…만 해결되면" 하고 말한다. 그러나 자기가 원하는 '…만 있으면' 자기 문제가 다 해결될 것 같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다. '…만 있으면' 그것으로 인해 또 다른 문제가 생기고, 게다가 더 큰 것을 원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당장은 '…만 해결되면' 다 될 것 같지만 해결되는 방식과 과정에서 또 다른 예기치 못한 문제가 발생하고, '…만 해결되면' 다 될 것 같지만 실제로 그것이 해결됨으로 인해 또 다른 문제가 생기고, 게다가 더 큰 다른 문제가 우리로 하여금 해결하도록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 안되는 일이 내일 될 리가 없고, 어떤 것을 취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안 취한다고 안 이루어지는 것은 없다. 있다면 그것은 물질적인 상황의 변화와 기분뿐이다. 삶이 바뀌지 않는데, 상황만이 바뀐다고 그가 변화될 수 있겠는가?

가난한 사람들, 결핍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우선 필요한 것은 인격적인 사랑이다. 그리고 그 사랑을 주기 전에 우리는 준비해야 한다. 곧 "무엇보다도 민중과 함께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요점은 민중의 기쁨과 희망, 슬픔과 고통을 우리 자신의 기쁨, 희망, 슬픔과 고통으로 하는 데 있다. 우리가 돕고자 하는 민중의 경험에 우리의 심장이 메아리쳐야 한다. 가장 중요한 과제는 소외받은 자들과 진정하게 연대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연대란 형태는 호주 원주민인 릴라 왓슨이 한 말 속에 잘 나타나 있다. '만약 당신이 나를 도우러 왔다면 그것은 시간낭비다. 하지만 당신의 해방이 나의 해방과 뗄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에 왔다면, 좋다. 같이 일해 보기로 하자.'"(조스안토니 조셉, 아시아 공동체 제6호 3쪽, '극복해야 할 적은 가난이 아니라 무력감이다.', 아시아 가톨릭 연합통신(UCAN), 1995. 5. 15)

우리는 이 원주민의 표현을 잘 새겨 보야야 한다. 그는 자신이 처하게 된 가난이 어느 누가 자신에게 돌아와야 할 세상의 재물을 대신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당해야만 하는 가난이라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가 방문하는 한 사람이 겪고 있는 결핍 자체보다 그 결핍의 원인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경제사회의 구조적인 소득 재분배와 특혜와 권리상의 문제를 넘어 그 제도 뒤에 숨어서 강하게 인간을 조정하고자 하는 '악의 세력'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악의 세력은 제도 안에 숨어서 위력을 발휘하고 있고 또 우리 안에 숨어서 우리를 유혹하며 충동질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싸워야 할 적은 바로 악의 세력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사람이 가질 수 있는 것을 다 갖고도 모자라 더 갖고자 하는 사람?)이 아니라 바로 악이다.

그 악을 이기려면 우선 우리는 우리 안에서 악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이 누리고 있는 화려함과 힘을 부러워하며 자신도 그렇게 누리고자하는 유혹과 그를 시기하고 비난하고자 하는 유혹을 포기해야 한다. 그리고 내가 방문하는 이들이 겪고 있는 가난과 소외, 결핍과 같은 조건을 선택하는 일이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우리가 선택한 조건을 사는 사람들과 함께,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 5,3)하신 주님의 말씀과 생애처럼 수난을 받으며 부활에로의 희망을 살기 시작하는 것이다.

현실적인 필요성에 응하다 보면 우리의 몸은 산산조각이 나고 만다. 예수님은 빵의 기적 후에 당신을 찾아 온 군중들에게 말한다.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너희가 지금 나를 찾아 온 것은 내 기적의 뜻을 깨달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영원히 살게 하며 없어지지 않을 양식을 얻도록 힘써라. 내가 바로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고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요한 6,26-27.35.) 우리는 인간에게 생명과 길을 주신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고 제시해 주시는 말씀을 따라야만 살 수 있다.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리라."(4절; 70인역 신명기 8,3)

나눔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1고린 13,2ef)하신 사도 바오로의 말씀이 우리의 활동 안에서 어떠한 의미를 가집니까?



차례..

36.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거든


관찰(주님의 눈으로 보고)

1. (나나) 내가 방문한 사람들 중에 돈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이 있습니까?

2. (나나) 그 사람은 왜 그런 방법을 쓰고 있습니까?

3. 또 그대로 두면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어떤 결과가 나타나겠습니까?

(※각자가 발표한 여러 상황과 사례 중에, 모두가 동의하는 한 상황만을 선택하여 판단에서 다룹니다.)

판단(주님의 말씀을 듣고)

1. (나나) 그 사람이 시도하는 방법이 그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합니까? 아니면 부정적인 영향을 줍니까?

2. (나나) 그 사람이 이 상황에서 무엇을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까?

3. 주님은 이럴 때 어떻게 하실까요?(성서를 살펴봅시다.)

4. 그 상황 안에서 부활하신 주님께서 함께 계시다는 것을 느끼고, 주님의 호소를 듣습니까?

실천(주님처럼 사랑하기)

1. 이 상황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까요?

2. 언제, 어디서, 누가, 어떤 방법으로?



차례..

37. 유혹2-허상에의 꿈



일상

오늘도 미스 김은 무엇을 입고 출근해야 할 것인지를 몰라 벌써 20분 동안이나 옷장 앞에서 이것 저것 만지고 있다. 오늘 여직원들이 한데 모여 사장님을 만나는 날인데… 야하다고 하지 않을까? 아냐 튀어야 돼. 그렇지 않으면 여성에겐 아직 이렇다 할 자리도 없는데…. 어떤 방법으로든지 튀어야 성공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직장에 다닌답시고 여직원이 하는 일이 무엇인가? 매일 뒷정리나 하고 차나 타주는 인생일 뿐! 나이 들면 끽 소리 못하고 물러나거나 천덕꾸러기인 사횐데! 지금은 당장 남의 밑에서 일하지만, 이 회사 사장에게만 인정받으면 곧 일처리를 배워 독립할 수 있다.

미스 김의 하루는 너무나 바쁘다. 그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짜놓은 계획대로라면 그는 경쟁사회가 요구하는 모델에 자신을 뜯어 맞추는 복제품에 불과했다. 이미 쌍꺼풀 수술은 했고, 아침은 물론 매일 저녁을 줄여가며 에어로빅까지 하면서 몸을 날씬하게 단련(?)해 왔다. 토요일엔 자신의 직장과 거래처의 상사들과 어울려 볼링장과 외국 음식집, 나이트 클럽을 돌며 틈틈이 윗사람들의 사회 생활을 연습해 왔다.

그가 추구하며 연습하는 자리의 사람은 윗사람에겐 고개를 숙여 무조건적으로 순종해야 하고, 아랫사람에겐 눈을 내리깔며 냉정하리만치 차게 대해야 자기 자리를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다. 머리는 언제나 이름 있는 미용사의 미용원에서 해야 하고, 옷은 언제나 패션 디자이너의 작품이어야 하며…, 쉽게 웃지도 놀란 모습도 보여서는 안되고, 결코 자신의 본심을 드러내서도 안되며….

아랫 것(?)들을 거느리며 세상을 지배하는 듯한 자신의 이런 모습을 상상할라치면 미스 김은 오늘도 힘이 솟는다.

나눔

1. 미스 김이 추구하는 자리의 사람이 갖추게 되는 인(간)성에 문제가 있습니까? 있다면 어떤 것입니까?

2. 나는 미스 김에게 내 삶으로 새로운 이상을 제시할 것이 있습니까?



차례..

38.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현혹시켜서


말씀 유혹(마태 4,1-11)

4 5그러자 악마는 예수를 거룩한 도시로 데리고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6"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거든 뛰어 내려 보시오. 성서에,

'하느님이 천사들을 시켜

너를 시중들게 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너의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시리라.'

하지 않았소?" 하고 말하였다. 7예수께서는 "'주님이신 너의 하느님을 떠보지 말라.'는 말씀도 성서에 있다."하고 대답하셨다.

※복음을 나눌 때 말의 성찬보다는, 자신의 구체적인 일상과 연관하여, 깊은 묵상과 성찰 속에서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들이도록 하십시오.

나눔

1. 쇼(화려한 의상과 조명 그리고 매끈한 연기)나 처세술로 친구를 얻을 수 있습니까?

2. 나를 사랑하는 사람의 사랑을 시험해보거나 의심해본 적이 있습니까?



차례..

39. 하느님을 떠보지 말라


성찰

누구나 사랑 받기 위해서는 사랑받을 만한 짓을 해야한다. 얼굴에 화장을 한다고 해서 그 사람의 인격 자체가 아름다워지는 것이 아니며 그의 인격을 보는 이는 오히려 그에게 혐오감을 지니게 된다는 사실은 알면서도 왜 겉으로만 그리고 밖에서 남에게만 거룩하려 하는가? 왜 자신의 삶은 변하려고 하지 않으면서 다른 이의 삶이 변하기를 그렇게도 아쉬워하고 안타까워하면서 기대하고 요구하는가?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거든 뛰어 내려보시오. 성서에, '하느님이 천사들을 시켜 너를 시중들게 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너의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시리라.'(시편 91,11-12) 하지 않았소?"(마태 4,6) 아무런 안전장치도 없이 높은 곳에서 뛰어 내리면 누구나 다치거나 죽게 마련이다. 그런데 만일 유혹하는 자의 말대로 뛰어 내렸는데 천사가 와서 떠받들어 땅에까지 무사히 내려온다면, 그 광경을 바라 본 모든 사람은 예수를 모두 신으로 볼 것이다.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거든"(마태 4,6a) 예수님은 인간으로 오셨다. 그분은 다른 인간과 똑같이 배고파 하시고, 피곤해서 쉬셨으며, 슬퍼서 우셨고, 위선자들을 향해 화를 내셨다. 이렇게 한계를 안고 사셨으면서도 그 한계에 굴복하지 않으셨다. 결국 인간 한계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죽음마저도 두려워하지 않으시고 받아들이셨다. 그분은 당신이 걸어가야 할 인간의 길을 끝까지 걸어가셨다.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당신에게 준 사명을 그대로 사셨다.

여기 나오는 유혹은 단순한 말다툼이 아니라 예수의 생애 마지막에 실제 상황으로 등장한다.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달린 죄수 하나가 예수께 묻는다. "당신은 그리스도가 아니오? 당신도 살리고 우리도 살려 보시오!"(루가 23,39b) 모두가 자신을 외면하는 상황에서, 이제 죽고 나면 자신의 노력이 모두 수포로 돌아가고 잊혀지고 말 듯한 상황 앞에서도 예수님은 당신의 사명에 충실하셨다. 하느님의 사랑은 쇼도 아니고 시험해 볼 수도 없다. 마찬가지로 인생 역시 쇼가 아니고 시험해 볼 만한 여분의 생애가 따로 존재하지도 않는다.

하느님과 같으신 분이 하느님의 권리와 능력을 포기하고 인간으로 오셨고 또 인간으로서 하느님 아버지를 따르기 위해 악마를 쫓아냈을 때,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거든 뛰어 내려보시오. 성서에, '하느님이 천사들을 시켜 너를 시중들게 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너의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시리라.'(시편 91,11-12) 하지 않았소?" 하면서 악마가 제시했던 그 성서의 말씀이 비로소 진실로 이루어진다. "마침내 악마는 물러가고 천사들이 와서 예수께 시중들었다."(마태 4,11)

우리가 사랑받을 짓을 하지 못해도 사랑해 주시는 분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한 분이시다. 왜냐하면 그분은 사랑 자체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 우리는 우리가 방문하는 가난한 사람들보다 더 낫거나 특별하지 않다. 우리는 모두 부족한 점과 한계를 지니고 사는 인간에 불과하다. 단지 우리의 부족한 점이 오늘의 이 사회 안에서 그렇게 문제시되지 않고 있다는 것뿐이다. 만일 내가 방문하는 이들의 부족한 점이 사회보장제도로 충족될 수 있다면, 그에게서 드러나는 다른 문제는 무엇인가? 오늘 그가 겪고 있는 가난이 그의 문제라면 훗날 나의 성격이나 외모나 삶의 방식이 문제시될 사회가 올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다 같은 하느님의 자녀이다. 그러면서도 우리가 활동하고 사랑을 쏟는 이유는 단지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사랑을 받는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고 있다는 한 가지 사실뿐이다. "주님이신 너의 하느님을 떠보지 말라."(마태 4,7; 70인역 신명기 6,16)

나눔

1. 내가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은 이들의 사랑을 받기 위해 나는 어떻게 합니까?

2. 오늘 (남들이 보기에는) 주님을 따르는 바보 같은 짓이 인간의 길이라는 확신을 주님으로부터 받고 있습니까?




차례..

40.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거든


관찰(주님의 눈으로 보고)

1. (나나) 내가 방문한 사람들 중에 비현실적인 허상을 쫓는 사람이 있습니까?

2. (나나) 그 사람은 왜 그런 방법을 쓰고 있습니까?

3. 또 그대로 두면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어떤 결과가 나타나겠습니까?

(※각자가 발표한 여러 상황과 사례 중에, 모두가 동의하는 한 상황만을 선택하여 판단에서 다룹니다.)

판단(주님의 말씀을 듣고)

1. (나나) 그 사람이 시도하는 방법이 그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합니까? 아니면 부정적인 영향을 줍니까?

2. (나나) 그 사람이 이 상황에서 무엇을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까?

3. 주님은 이럴 때 어떻게 하실까요?(성서를 살펴봅시다.)

4. 그 상황 안에서 부활하신 주님께서 함께 계시다는 것을 느끼고, 주님의 호소를 듣습니까?

실천(주님처럼 사랑하기)

1. 이 상황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까요?

2. 언제, 어디서, 누가, 어떤 방법으로?



차례..

41. 유혹3-권력에의 의지



일상

이 대리의 입사 동기는 모두 8명이었다. 그런데 요즈음 이 대리는 심기가 편치 않다. 왜냐하면 지난 번 인사 때도 진급을 못했는데 이번 인사철에도 자신을 찾는 이들이 없기 때문이다. 옆에 있는 정 대리만 해도 뻑하면 위에 불려 올라갔다 오는데 자기는 아무도 찾지 않는다.

이 대리는 그 동안 인정받기 위해서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지 모른다. 제일 먼저 출근하고 제일 늦게 퇴근하는 것은 물론이고, 회사일이라면 항상 집안일도 제쳐놓고, 그야말로 발벗고 뛰었는데… 평소에는 여기 저기서 부탁하느라 자기만 찾더니 이상하게 인사철만 되면 자신을 찾는 이가 없다.

이 대리는 어릴 때 어머님의 치맛바람으로 반장을 한 것을 제외하고는 단 한 번도 장자리에 앉지 못했다. 자기가 보기에는 다 별 볼일 없는 사람인데, 어떻게 그런 친구들이 장자리에 버젓이 올라앉는지 이해도 안 가고, 자신을 인정해주지 못하는 사회와 이웃들이 싫기만 하다. 동창회를 가도 아직 대리 자리에 있는 친구는 자기밖에 없었다. 어제 동창회에서는 취한 김에 부아마저 치밀어 올라, 이 사람 저 사람의 단점만 거론하며 부당성을 외치다가 혼자 외로이 되돌아왔다.

이 대리의 눈에는 더 이상 상사나 동료들을 인정할 수도 곱게 볼 수도 없었다. 옳고 그름보다도,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 보다도 만사가 다 사장과의 인연과 지연으로 얽히고 곪힌 이해관계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만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던 차에 오늘 회의 때는 박 부장이 내놓은 안건에 하도 구멍이 많아 보여, 문제점과 대응책을 그렇게 명확히 설명했는데도 아무도 귀담아 들어 주지 않았다.

왜 문제가 발생하리라는 것이 뻔히 보이는 데도 좋다고 우겨 댈까? 어떻게 저런 사람이 장자리에 앉았지? 저런 사람이 앉아 있으니 될 게 뭐야? 자기는 기본적인 것도 지키지도 않으면서 남보고는 더 높은 수준에 오르라고 요구나 하니, 누가 따라가? 자신 없으면 넘기기나 할 것이지, 하지도 못하면서 꽉 움켜잡고 생색만 내고 있으니… 속 보인다. 속 보여!

어느 것이 좋은지를 보고 결정해야지, 모두 자기 사리사욕에 빠져서 끼리끼리 편들어 하는 일하고는…

나한테 맡겨 주면 그런 어리석은 일은 벌리지 않을텐데… 에이! 하는 일이라곤 모두 눈 꼴 사나운 ××들!

나눔

1. 다른 이들의 성공이나 성숙이 나 자신에게 소외감을 가져 왔다고 느끼고 그를 비난하거나 원망한 적이 있습니까?

2. 다른 사람의 시각과 인간관계나 이해 등 구애받거나 상처받지 않고, 내 안에서 다른 이의 가능성과 장점을 발견할 만한 여력과 여유와 자유가 있습니까?



차례..

42.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힘으로


말씀 유혹(마태 4,8-10)

4 8악마는 다시 아주 높은 산으로 예수를 데리고 가서 세상의 모든 나라와 그 화려한 모습을 보여 주며 9"당신이 내 앞에 절하면 이 모든 것을 당신에게 주겠소." 하고 말하였다. 10그러자 예수께서는 "사탄아, 물러가라! 성서에 '주님이신 너희 하느님을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고 하시지 않았느냐?" 하고 대답하셨다.

※복음을 나눌 때 말의 성찬보다는, 자신의 구체적인 일상과 연관하여, 깊은 묵상과 성찰 속에서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들이도록 하십시오.

나눔

1. 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힘과 불의에 고개를 숙여 본 적이 있습니까?

2.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설사 그 사람을 망치는 방법이라도 사용할 수 있습니까?

3. 나는 무엇을 섬기고 있습니까?




차례..

43. 그분만을 섬겨라


성찰

"당신이 내 앞에 절하면 이 모든 것을 당신에게 주겠소."(마태 4,9) 역사이래 많은 사상가들이나 운동가들이 인간의 보다 나은 삶을 약속하고 또 그것을 실현시키기 위해 노력해왔다. 하지만 한 가지 물음이 항상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나라를 위해, 국민을 위해, 민족을 위해, 인류의 미래를 위해 수고한다는 그 사람들에게 한 인간은 어떤 존재일까? 계도 받아야 할 대상인가? 아니면 자기가 생각하는 이상을 실천하기 위한 도구인가? 과연 그 사람들이 생각하는 방법과 그 사람이 그린 유토피아 안에 한 인간의 자유가 허용될 수 있을까?

또 한편 힘없고 가난한 사람을 위하여 우리가 또 다른 힘과 재물을 들고 찾아간다고 하자. 그러면 가난한 사람들은 애초에 자신들을 억압하던 힘에서 해방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은 또 하나의 다른 힘의 지배에 놓이게 될 뿐이다. 또한 그 힘은 다른 힘을 불러들일 것이고, 힘의 논리에 따라 다른 힘을 배제하고 더 큰 힘을 갖기 위해 힘이 보호하고자 했던 애초의 역할에서 벗어나 자리를 유지하기 위한 자기 혼란 속에 빠지게 된다. 그 혼란은 시기와 질투, 단죄와 멸시 그리고 분열이다.

"봉사하고 싶다고 외쳐대는 우리가 스스로 힘의 소용돌이에 빨려 들어간다면, 힘을 행사하려는 자들의 손아귀에 들어 있는 힘없는 자들은 도대체 어디에서 희망을 찾아야 할 것인가? 만일 부처가 왕위에 다시 앉았다면 민중을 위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간디가 수상이 되어 봉사했다면 인도를 위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예수가 돌로 빵을 만들고 민중들이 자기에게 바치려던 왕관을 받아 썼다면 민중을 위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아니 마지막 순간에라도 십자가에서 내려와 권능을 보여 주었더라면?"(조스안토니 조셉, 아시아 공동체 제6호 3쪽, '극복해야 할 적은 가난이 아니라 무력감이다.', 아시아 가톨릭 연합통신(UCAN), 1995. 5. 15)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평화를 원하면 모든 사람의 양심을 존중하라!"('91. 1 .1 세계 평화의 날 교황 담화문)고 했다. 자기가 자기와 다른 의견과 삶의 방식을 지닌 인간을 설득하여 그를 변하게 할 수 있다는 신념은 오만이요, 폭력이란 사실을 기억해야겠다. 그 신념은 너와 나의 관계 속에서 내가 너를 지배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너의 방식을 따르자니 내가 피곤하고, 내 방식을 따르자면 상대가 피곤할 뿐이다. 이는 어느 한 편이 상대의 희생을 강요하거나 다른 한 편이 희생을 강요당하는 것이다. 우리는 너와 나의 어느 한 편이거나, 사물을 취하고 취하지 못하는 상황이거나, 이 방식과 저 방식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 안에서 하느님께서 보여 주시고 불러 주시는 길과 방향을 걸어나가야 한다.

이러한 면에서 우리 활동의 의미는 고통의 현장 속에 있는 한 인간에게 하느님께 사랑을 받은 한 이웃으로서 다가 설 뿐이요, 함께할 뿐이다. 언제나 내가 함께하는 이들의 자유와 인격을 존중하지 않으면 그와 그 공동체의 인격은 자신과 악의 굴레에서 해방되지도, 지금보다 나아지지도 못한다. 그리고 우리는 아무리 하찮아 보이고, 없어져야 한다고 보이는 인간이라도 그 사람을 만드시고 구원하시려는 하느님의 영역을 침범할 수도 없고, 침범하려 해서도 안된다. "주님이신 너희 하느님을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마태 4,10; 신명기 6,13)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나(빌라도)에게도 말을 하지 않을 작정인가? 나에게는 너를 놓아줄 수도 있고 십자가형에 처할 수도 있는 권한이 있는 줄을 모르느냐?' 이 말에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네가 하늘에서 권한을 받지 않았다면 나를 어떻게도 할 수 없을 것이다.'"(요한 19,10-11b) 예수님의 꿋꿋함과 당당함을 보라. 죽음의 위협과 위험 앞에서도 개의치 않으며 흔들리지 않는 소신과 힘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하느님을 섬김다는 것은 나약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 외에 그 어느 누구나 무엇도 자신을 지배할 수 없다는 사실로 인하여 가장 커다란 힘을 가진 사람이다. 인간 세계의 눈에 보이는 모든 것과 일의 굴레로부터 해방된 사람. "너희가 내 말을 마음에 새기고 산다면 너희는 참으로 나의 제자이다. 그러면 너희는 진리를 알게 될 것이며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요한 8,31b.32)라는 말씀에 의해 세상에 살면서도 "세상에 속해 있지 않"(요한 17,14b)고 세상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다. 이들은 "아버지의 말씀이신 진리를 위하여 몸을 바치는 사람"(요한 17,17)이다.

나눔

1. 하느님께서 인간을 서로 다르게 만들어 주셨다는 것을 무시한채, 나 혼자, 내 마음대로 일하면 편할 텐데 하면서 상대를 귀찮게 여긴 적은 없었습니까?

2.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폭력이나 힘을 사용하고 싶었던 적이 있습니까?



차례..

44.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거든


관찰(주님의 눈으로 보고)

1. (나나) 내가 방문한 사람들 중에 힘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이 있습니까?

2. (나나) 그 사람은 왜 그런 방법을 쓰고 있습니까?

3. 또 그대로 두면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어떤 결과가 나타나겠습니까?

(※각자가 발표한 여러 상황과 사례 중에, 모두가 동의하는 한 상황만을 선택하여 판단에서 다룹니다.)

판단(주님의 말씀을 듣고)

1. (나나) 그 사람이 시도하는 방법이 그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합니까? 아니면 부정적인 영향을 줍니까?

2. (나나) 그 사람이 이 상황에서 무엇을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까?

3. 주님은 이럴 때 어떻게 하실까요?(성서를 살펴봅시다.)

4. 그 상황 안에서 부활하신 주님께서 함께 계시다는 것을 느끼고, 주님의 호소를 듣습니까?

실천(주님처럼 사랑하기)

1. 이 상황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까요?

2. 언제, 어디서, 누가, 어떤 방법으로?





부 록


1.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란

2. 빈첸시오 회원 활동의 성서적인 지향

3.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 기도문

4.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가



차례..

부록 1.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란



평신도들의 형제적 단체로서 회원들은 곤경에 처해 있는 자기 이웃 안에서 하느님께 봉사함으로서, 그리스도교적 사랑의 존재를 증거한다. 세계 122개국에 140만 명에 달하는 남녀 회원으로 구성된 국제적인 조직체이며 회원들은 매주 여가를 이용하여 남을 도움으로서 주님의 증인이 되고 있다.

본회는 교황청의 인가와 교권으로서 운영한다.

창립

본회는 프레데릭 오자남과 소르본 대학교의 5∼6명의 학생들에 의해 1833년 프랑스 파리에서 창설되었다. 그들은 당시의 "그리스도교적 사랑이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시대적 사조에 대한 응답에 도전함으로 시작했다.

주보성인

자선 사업에 일생을 바치신 빈첸시오 아 바오로(원선시오) 성인을 주보 성인으로 모심

회원

빈첸시오회 방법으로 애덕을 실천하고자 하는 그리스도교적 형제들은 누구나 본회에 입회할 수 있으며, 활동회원이 되거나 혹은 명예회원이 될 수 있다.

활동의 동기

그리스도는 우리 이웃들 가운데서 계속 생활하시고 고통을 받고 계신다. 도움을 받는 사람을 개종시키기 위해서나 개심시키기 위해서 베풀어지는 것이 아니고, 바로 그 이웃을 봉사하는 길이 그리스도를 만나는 길임을 알기 때문이다.

활동

본회는 다만 물질적 궁핍에만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니고, 영신적이건, 물질적이건, 혹은 육체적이건, 정신적이건, 본회 회원들의 인격적 봉사로서 경감시킬 수 있는 것이라면 어떠한 인간적 곤경이든 본회의 활동 범위에 속한다. 도움의 형태는 회원의 개별적 봉사 형태에 의한 것이며 제한된 어떤 방법이 따로 있지 않다. (즉, 자신의 시간을 할애하여 주고, 자기 돈을 나누어 주고, 자기 지식을 분배하여 주고, 자기의 건강을 활용하고, 또 자기 인품으로 남에게 안정감을 주는 등…)

구조

그리스도교적 공동체의 가장 일반적인 형태인 본당 안에서는 전통적으로 '협의회'라고 하며, 지방 단위로는 지구 이사회, 교구 단위로는 중앙 이사회, 전국 단위로는 전국 이사회, 전 세계적으로는 총이사회라 한다.

국제적 관계

세계적 기구 속의 단체임. 총이사회 본부는 프랑스 파리에 있으며 아시아 지역 본부는 오스트레일리아이며 우리 나라는 현재 뉴질랜드와 자매결연을 맺어 상호 물적, 영적으로 돕고 있다.

본회의 가난 정신

본회는 기구 전체로서 전통적으로 가난하다. 즉, 축적하지 않는다. 본회는 회원들이나 은인들에게서 받은 것을 매일매일 환경에 따라 적게 혹은 많이 베푼다.

우리와 같이 이 사랑의 활동에 참여합시다. 신앙인이라면 누구나 다 사랑의 실천이 있어야 하겠지만 우리 모두 빈첸시오 아 바오로 성인의 모범을 따라 구체적인 자선행위를 중히 여겨 스스로 이를 실천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사랑을 모든 이에게 보여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기도와 미사, 고해 성사와 영성체만으로 신앙생활을 다했다고 자부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과 은총의 생활이 헐벗고 굶주린 형제들에게 자선행위로 옮겨지지 않는다면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사랑의 공동체로서 내적 생명을 계속 영위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나더러 '주님, 주님!' 하고 부른다고 다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간다."(마태 7,21) "어떤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그날 먹을 양식조차 떨어졌는데 여러분 가운데 누가 그들의 몸에 필요한 것은 아무것도 주지 않으면서 '평안히 가서 몸을 따뜻하게 녹이고 배부르게 먹어라'고 말만 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믿음도 이와 같습니다. 믿음에 행동이 따르지 않으면 그런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야고 2,15) 우리 모두 주님의 사랑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자선사업의 일익을 맡은 회원으로 가입하여 영원한 생명을 키워 나가지 않으시렵니까?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 정신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는 마음으로 가난한 형제들이 모여, 보다 가난한 형제들, 즉 영신적이건, 물질적이건, 혹은 육체적이건, 정신적이건, 가난한 형제들의 어려움을 경감시킬 수 있는 것이라면 어떠한 곤경에 처해 있는 어떠한 사람이든지 가리지 않고 모두 돕고자 한다. 빈첸시오 방법으로 애덕을 실천하고자 하는 그리스도교적 형제들은 누구나 본회에 입회할 수 있다. 빈첸시오 방법은 애덕의 실천을 온유와 겸손과 인내로 그리스도의 덕성 가운데서 실천하는 것이다. 이것에 대한 사랑은 자발적이고, 직접적이고, 인격적인 친절 속에서만 그 가치를 발견한다. 그리스도는 우리 이웃들 가운데서 계속 생활하시고 고통을 받고 계신다. 바로 그 이웃들을 사랑하고 봉사하는 길만이 그리스도를 만나는 길이다. 그리고 우리가 도울 수 있는 형제들이 우리를 은인으로 보기보다는 그들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다. 즉 그들이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만날 기회를 만들어 준다. 빈첸시오 회원은 겸손하고 신중한 방법으로 가난한 형제들에게 봉사한다. 그리고 말보다 행동으로 그리스도인의 신앙을 증거한다. 또한 그들이 누구이건, 그들의 고통이 어떤 종류의 것이든 상관하지 않는다. 그 불행한 사람이 곧 우리 형제임을 믿는다. 그 불행한 형제들 안에서 고통받고 계시는 그리스도를 뵌다. 그리고 그들을 사람으로서 뿐 아니라 하느님의 자녀로서 사랑한다. 가난한 형제들과 인격적 접촉을 가졌을 때, 애덕이 정의 가운데서 실천됨을 알게 된다. 또 가난한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들과 함께 가나해질 필요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과의 이러한 인격적 접촉에서 사는 것, 이러한 일치 속에서 사는 것, 이것이 바로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의 본질이며 근본 성격이다.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 애덕의 근원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것, 그것이 곧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사랑이란 분명, 행위임에 틀림없다. 행동이 따르지 않는 사랑, 주는 것이 없는 사랑, 관념적인 사랑이란 죽은 사랑이다. 내가 애인을 , 벗을 진정 사랑할 때, 내가 아끼는 것, 내게 소중한 것을 주고 싶어지고 또 그렇게 된다.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이웃을 미워하는 사람은 곧 하느님을 미워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이웃이란 귀찮은 존재, 괴로움을 주는 존재, 없는 것보다 못한 존재일 때가 대부분이다. 그렇기에 어떤 사람은 "이웃은 지옥이다." 라고 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이웃을 거치지 않고는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함을 알고 있다. 우리 이웃의 가장 미소한 자, 가장 보잘 것 없는 자, 가장 버림받은 자, 그가 곧 그리스도라고 그분은 말씀하신다. "기아로 죽어 가는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라. 먹을 것을 주지 않으면 그대가 그 사람을 죽인 것이다."라고 교부들은 말씀하신다. 또 "하느님께서는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모든 사람들과 모든 민족들이 이용하도록 창조하셨다. 따라서 창조된 재화는 사랑을 동반하는 정의에 입각하여 동정하게 풍부히 나누어져야 한다. 그러므로 가난한 이들을 도와 줄 의무는 모든 사람에게 있다."고 가르치신다. 또한 암브로시오 성인은 "내 것을 가난한 사람에게 희사하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의 것을 그에게 돌려 주는 것뿐이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함께 사용하도록 주어진 것을, 내가 독점하였기 때문이다. 땅은 모든 사람의 것이지, 결코 부자들만의 것은 아니다."라고 하셨다.

회원 선서문

나의 힘이 다하는 데까지

1. 그리스도의 사랑이 인류 속에 충일할 것을 목적으로 하여 물심양면으로 자선사업을 함에 나의 모든 힘을 다하며,

2.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 회원으로서의 나의 임무를 완수하기에 더욱 합당한 자 되기 위하여 자주 미사에 참례하고, 성사를 받음으로써 자신을 거룩하게 하며,

3. 매주 회합에 충실히 나가 회칙의 지도를 따르며,

4. 가난한 사람들이나, 병자들의 가정이나 단체를 방문하여 물심양면으로 그들의 곤란한 사정을 돌보며,

5. 남의 영혼을 돌볼 열성을 다하기 위하여 매년 피정에 참석하고, 일 년에 한 번 있는 총회에 참석하며,

6. 산 이와 죽은 빈첸시오 형제 자매들과 본회 사업의 성공을 위하여 날마다 기구할 것을 나는 약속하나이다.

지상의 낙원도 천국에서와 같이 애덕으로서만 이루어진다. 하느님을 진실로 사랑한다는 것은 곧 가난한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이며, 하느님께 충실히 봉사하는 길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봉사를 잘하는 길이다.

우리는 빈첸시오 회원이다.

우리들 가난한 사람들은 하느님의 양자이며 상속자들이다.

우리는 깊은 형제애로 이루어진 공동체다.

우리는 그리스도교적 평신도로 이루어진 가정이다.

우리는 젊은이의 기백을 가진 영원한 젊음의 회다.

우리는 일치와 다양성의 보편적인 회다.

우리는 변천하는 세계에 대한 다양한 적응 안의 일치를 도모한다.

우리는 보다 복음적인 생활에 대한 열망을 갖는다.

우리는 가난 정신이 무엇보다 나눔의 정신임을 안다.

우리는 가난 정신이란 재화를 무용하게 쌓아두지 않고, 그것을 유용하게 사용하는 마음임을 안다.

우리는 우리의 재화와 재능이 공동선을 위한 봉사에 무조건 사용되어야 하며, 우선 우리의 이웃인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봉사에 사용되어야 함을 안다.

우리는 나눔의 정신이 곧 주는 것이며, 나눔이 결코 동냥이나 선사와 다르며, 그것은 상부상조와 교환으로 이루어 짐을 안다.

우리는 정의에 대한 욕구와 인류의 결속을 발전시켜야 할 의무를 갖는다.

우리는 사회 정의를 방해하는 것들, 굶주린 불행한 사람들, 미개발 상황에서 고통 당하는 사람들, 이런 것들을 외면할 수 없다.

우리는 성체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현존에 대하여는 최대의 신심을 갖고 있으면서도, 가난한 사람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현존에 대하여는 무관심한 것을 악표로 보고 이를 배척한다.

우리가 "당신께 대한 사랑으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가진 바를 내어주며 그들의 영혼을 위하여 헌신하게 하소서…."


활동시 유의사항

1. 가능하면 두세 명씩 방문하며, 혼자 사시는 젊은 분일 경우 이성으로서 혼자 방문은 삼가라.

2. 가능한 한 단정한 옷차림으로 체면을 유지하며, 너무 화려한 옷차림은 피하라.

3. 먼저 자기 소개를 분명히 하라(이름, 소속, 교회)

4. 대화는 친절하고 희망을 주는 내용으로 하되, 자연스럽게 하며, 자기 얘기보다는 상대편의 이야기를 들어 주도록 하라.

5. 설교나 가르치는 태도는 버리고, 토론이나 논쟁을 절대로 피해야 하며, 미소를 잃지 말라.

6. 자신의 이야기나 불필요한 대화로 시간을 낭비하지 말며, 자기의 신앙 체험이나 투병기 등을 말하는 것은 효과적이다.

7. 대화 중에는 그 가정이나 노인, 어린이에게 관심을 집중해서 하라.

8. 대화에 있어서 상식에 벗어나지 않도록 유의하며, 부정적인 질문을 삼가하라.

9 한 사람이 대화하면 나머지 사람은 이를 듣고 마음 속으로 기도하라

10. 종교나 신앙의 이야기로만 일관하지 말고, 사회나 주변에서의 일에도 관심을 가지고 대화하라.

11. 상대가 반박하거나 기분을 상하게 할지라도 결코 분개하지 말라.

12.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등, 대화에 장애물이 있으면 끄도록 청하는 것이 좋다.

13. 방문의 목적은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분명히 하라. 물질적인 도움은 사랑 실천의 일부라는 것을 얘기하며, 그 사랑이 계속되도록 유도하라. 즉, 환자나 노인은 기도로 주님께 받은 사랑을 다른 사람을 위해 바치도록 유도하며, 빈자는 희망을 주고 더 어려운 이웃을 위해 사랑을 실천하도록 유도하여 받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받았으니 되돌려 주도록 유도하여야 한다.

14. 환자 방문 때나 병원 단체방문시 가능하면 환자에게 병명을 묻지 말라. 방문자마다 묻게 되면 환자는 괴롭기 때문이다. 기도나 성가도 그분들께 승낙을 받은 후 하도록 한다.

15. 방문자의 고통이나 어려움에 대해서 처리를 못할 때, 혼자 가슴 아프게 생각하지 말고, 주님께 기도하며, 주님께 맡기고, 인내와 용기로 대하라.



차례..

부록 2. 빈첸시오 회원활동의 성서적인 지향



우리 활동의 힘을 주님으로부터 얻기 위하여, 그리고 우리 활동을 주님께서 받아 주셔서 열매 맺을 수 있도록 다음 성서 구절을 자주 묵상합시다.

구약성서

하느님께서 백성의 울부짖음을 들으시다 (출애 2,23-25)

2 23이스라엘 백성은 고역을 견디다 못하여 신음하며 아우성을 쳤다. 이렇게 고역에 짓눌려 하느님께 울부짖으니 24하느님께서 그들의 신음 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 이사악, 야곱과 맺으신 계약을 생각하시어 25이스라엘 백성을 굽어 살펴 주셨다.

하느님께서 억압받는 백성에게 희망을 주시다 (출애 3,(7.) 8-10)

3 (7야훼께서 계속 말씀하셨다. "나는 내 백성이 에집트에서 고생하는 것을 똑똑히 보았고 억압을 받으며 괴로워 울부짖는 소리를 들었다. 그들이 얼마나 고생하는지 나는 잘 알고 있다.) 8나 이제 내려가서 그들을 에집트인들의 손아귀에서 빼내어 그 땅에서 이끌고 젖과 꿀이 흐르는 아름답고 넓은 땅, 가나안족과 헷족과 아모리족과 브리즈족과 히위족과 여부스족이 사는 땅으로 데려 가고자 한다. 9지금도 이스라엘 백성의 아우성 소리가 들려 온다. 또한 에집트인들이 그들을 못살게 구는 모습도 보인다. 10내가 이제 너를 파라오에게 보낼 터이니 너는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에집트에서 건져내어라."

가난한 이들에게 돌아갈 몫을 남겨라 (신명기 24,19-22)

24 19밭에서 곡식을 거둘 때에 이삭을 밭에 남긴 채 잊고 왔거든 그 이삭을 집으러 되돌아가지 말라. 그것은 떠돌이나 고아나 과부에게 돌아 갈 몫이다. 그래야 너희 하느님 야훼께서 너희가 손수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려 주실 것이다. 20올리브나무 열매를 떨 때, 한 번 지나간 다음 되돌아가서 가지들을 샅샅이 뒤지지 말라. 그것은 떠돌이나 과부에게 돌아 갈 몫이다. 21포도를 딸 때에도, 한 번 지나간 다음 되돌아가서 다시 뒤지지 말라. 그것은 떠돌이나 고아나 과부에게 돌아 갈 몫이다. 22너희가 에집트 땅에서 종살이하던 일을 생각해 보아라. 그래서 내가 이렇게 명령하는 것이니, 너는 반드시 이를 지켜야 한다.

가난한 사람에게 베푸는 자비 (집회서 3,30-31)

3 30물은 뜨거운 불을 끄고 자선은 죄를 없앤다. 31은혜를 갚는 사람은 미래를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가 넘어질 대에 도움을 얻으리라.

가난한 사람에게 베푸는 자비 (집회서 4,1-2)

4 1너는 들어라, 곤궁한 사람에게 먹을 것을 거절하지 말고 가난한 사람에게 피눈물을 흘리게 하지 말아라. 2배고픈 사람을 더 배고프게 하지 말고 굶주림에 허덕이는 사람을 더 고달프게 하지 말아라.

가난한 사람과 역경에 처한 사람들을 대할 때

(집회서 7,32. 34-36)

7 32가난한 사람에게도 후하게 하여라. 그러면 주님의 충만한 축복을 받으리라. 산사람 모두에게 너그럽게 은덕을 베풀 것이며 34우는 사람들을 내버려 두지 말고 슬퍼하는 사람들과 함께 슬퍼하여라. 35병자 위문을 게을리 하지 말아라. 그러면 네가 사랑을 받으리라. 36무슨 일을 하든지 너의 마지막 순간을 생각하고 절대로 죄를 짓지 말아라.

가난한 사람에게 베푸는 이가 받을 상 (시편 41,1)

41 1복되어라, 딱하고 가난한 사람 알아주는 이여, 불행한 날에 야훼께서 그를 구해 주시리라.

가난한 이들이 청할 때 (잠언 3,27)

3 27도움을 청하는 손을 뿌리치지 말고 도와 줄 힘만 있으면 망설이지 말아라.

가난한 이들을 대하는 자세 (잠언 14,21)

14 21배고픈 사람을 멸시하면 죄를 받고 불쌍한 사람을 가엾게 여기면 복을 받는다. 가난한 이들에게 하는 것은 야훼께 하는 것이다. (잠언 19,17)

19 17없는 사람에게 적선하는 것은 야훼께 빚을 주는 셈. 야훼께서 그 은혜를 갚아주신다.

가난한 사람에게 베푸는 자선은 하느님께 드리는 예물이다.

(토비트 4,7-11)

4 7옳은 일을 행하는 모든 사람에게, 너에게 있는 것으로 자선을 베풀어라. 자선을 베풀 때에는 아까워하는 마음을 갖지 말아라. 가난한 사람을 만나거든 그가 누구든지 외면하지 말아라. 그러면 하느님께서도 너에게서 얼굴을 돌리시는 일이 결코 없을 것이다. 8네 재산 정도에 맞게 힘닿는 데까지 자선을 베풀어라. 네가 가진 것이 적더라도 주저하지 말고 적은 대로 자선을 베풀어라. 9이렇게 하는 것은 네가 곤경을 당하게 되는 날을 대비하여 좋은 보물을 쌓아 두는 일이 된다. 10자선은 자선을 베푸는 사람을 죽음에서 건져내고 암흑에 빠지지 않게 해 주는 것이다. 11누구든지 자선을 베풀면 그 자선은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께 바치는 좋은 예물이 된다.

신약성서

참된 행복 (마태오 5,3-7. 11-12)

5 3"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4슬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5온유한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6옳은 일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만족할 것이다.

7자비를 베푸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11나 때문에 모욕을 당하고 박해를 받으며 터무니없는 말로 갖은 비난을 다 받게 되면 너희는 행복하다. 12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받을 큰 상이 하늘에 마련되어 있다. 옛 예언자들도 너희에 앞서 같은 박해를 받았다."

자선은 하늘 나라에 쌓는 재물이다. (마태오 6,1-4. 19-21)

6 1"너희는 일부러 남들이 보는 앞에서 선행을 하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그렇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게서 아무런 상도 받지 못한다."

2"자선을 베풀 때에는 위선자들이 칭찬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듯이 스스로 나팔을 불지 말라. 나는 분명히 말한다. 그들은 이미 받을 상을 다 받았다. 3자선을 베풀 때에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4그 자선을 숨겨 두어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아 주실 것이다."

19"재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아라. 땅에서는 좀먹거나 녹이 슬어 못쓰게 되며 도둑이 뚫고 들어 와 훔쳐 간다. 20그러므로 재물을 하늘에 쌓아 두어라. 거기서는 좀먹거나 녹슬어 못쓰게 되는 일도 없고 도둑이 뚫고 들어 와 훔쳐 가지도 못한다. 21너희의 재물이 있는 곳에 너희의 마음도 있다."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은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것이다

(마태오 7,12. 21-23)

7 12"너희는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 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

21"나더러 '주님, 주님!'하고 부른다고 다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간다. 22그 날에는 많은 사람이 나를 보고 '주님, 주님!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고 또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행하지 않았습니까?'하고 말할 것이다. 23그러나 그 때에 나는 분명히 그들에게 '악한 일을 일삼는 자들아, 나에게서 물러가라.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시편 5,5; 6,8)고 말할 것이다."

하느님께서 바라는 이웃사랑을 실천하라 (마태오 12,6-7. 46-50)

12 6잘 들어라.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7'내가 바라는 것은 나에게 동물을 잡아 바치는 제사가 아니라 이웃에게 베푸는 자선이다.'(호세아 6,6)라는 말씀이 무슨 뜻인지 알았더라면 너희는 무죄한 사람들을 죄인으로 단정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46예수께서 아직 군중에게 말씀하고 계실 때에 예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밖에 와서 예수와 말씀을 나눌 기회를 찾고 있었다. 47그래서 어떤 사람이 예수께 "선생님, 선생님의 어머님과 형제분들이 선생님과 이야기를 하시겠다고 밖에 서서 찾고 계십니다."하고 알려 드렸다. 48예수께서는 말을 전해 준 사람에게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형제들이냐?"하고 물으셨다. 49그리고 제자들을 가리키시며 "바로 이 사람들이 내 어머니이며 내 형제들이다. 50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다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다."하고 말씀하셨다.

부자 청년의 슬픔 (마태오 19,16-26)

19 16한번은 어떤 사람이 예수께 와서 "선생님, 제가 무슨 선한 일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겠습니까?"하고 물었다. 17예수께서는 "왜 너는 나에게 와서 선한 일에 대하여 묻느냐? 참으로 선하신 분은 오직 한 분뿐이시다. 네가 생명의 나라로 들어가려거든 계명을 지켜라."하고 대답하셨다. 18그 젊은이가 "어느 계명입니까?"하고 묻자 예수께서는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하지 말라. 19부모를 공경하라.'(출애 20,12-16; 신명 5,16-20) 그리고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레위 19,18)하는 계명이다."하고 대답하셨다. 20그 젊은이가 "저는 그 모든 것을 다 지켰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무엇을 더해야 되겠습니까?"하고 다시 묻자 21예수께서는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어라. 그러면 하늘에서 보화를 얻게 될 것이다. 그러니 내가 시키는 대로하고 나서 나를 따라 오너라."하셨다. 22그러나 그 젊은이는 재산이 많았기 때문에 이 말씀을 듣고 풀이 죽어 떠나갔다.

23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부자는 하늘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렵다. 24거듭 말하지만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쉬울 것이다." 25제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깜짝 놀라서 "그러면 구원받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하고 물었다. 26예수께서는 그들을 똑바로 보시며 "그것은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무슨 일이든 하실 수 있다."하고 말씀하셨다.

가장 중요한 계명들 (마태오 22,34-40)

22 34예수께서 사두가이파 사람들의 말문을 막아 버리셨다는 소문을 듣고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몰려 왔다. 35그들 중 한 율법교사가 예수의 속을 떠보려고 36"선생님, 율법서에서 어느 계명이 가장 큰 계명입니까?"하고 물었다. 37예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님이신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라.' 38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고, 39'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둘째 계명도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 40이 두 계명이 모든 율법과 예언서의 골자이다."

가난한 이들에게 해준 것은 곧 주님께 해드린 것이다

(마태오 25,31-46)

25 31"사람의 아들이 영광을 떨치며 모든 천사들을 거느리고 와서 영광스러운 왕좌에 앉게 되면 32모든 민족들을 앞에 불러 놓고 마치 목자가 양과 염소를 갈라놓듯이 그들을 갈라 33양은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자리잡게 할 것이다. 34그 때에 그 임금은 자기 오른편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너희는 내 아버지의 축복을 받은 사람들이니 와서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한 이 나라를 차지하여라. 35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나그네 되었을 때에 따뜻하게 맞이하였다. 36또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으며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고 감옥에 갇혔을 때에 찾아 주었다.' 37이 말을 듣고 의인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잡수실 것을 드렸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실 것을 드렸습니까? 38또 언제 주님께서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따뜻이 맞아 들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입을 것을 드렸으며, 39언제 주님께서 병드셨거나 감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저희가 찾아가 뵈었습니까?' 40그러면 임금은 '분명히 말한다.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하고 말할 것이다. 41"그리고 왼편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 저주받은 자들아, 나에게서 떠나 악마와 그의 졸도들을 가두려고 준비한 영원한 불 속에 들어가라. 42너희는 내가 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지 않았고,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지 않았으며 43나그네 되었을 때에 따뜻하게 맞이하지 않았고,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지 않았으며, 또 병들었을 때나 감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아 주지 않았다.' 44이 말을 듣고 그들도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주님, 주님께서 언제 굶주리고 목마르셨으며, 언제 나그네 되시고 헐벗으셨으며, 또 언제 병드시고 감옥에 갇히셨기에 저희가 모른 체하고 돌보아 드리지 않았다는 말씀입니까?' 45그러면 임금은 '똑똑히 들어라. 여기 있는 형제들 중에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 곧 나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다.'하고 말할 것이다. 46이리하여 그들은 영원히 벌받는 곳으로 쫓겨 날 것이며, 의인들은 영원한 생명의 나라로 들어 갈 것이다."

주님께 바쳐야할 찬미와 감사의 특별한 자리 (마태오 26,11)

26 11가난한 사람들은 언제나 너희 곁에 있겠지만 나는 너희와 언제까지나 함께 있지는 않을 것이다.

어려움에 처한 이웃에게 사랑을 실천한 착한 사마리아 사람

(루가 10,30-37)

10 30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리고로 내려 가다가 강도들을 만났다. 강도들은 그 사람이 가진 것을 모조리 빼앗고 마구 두들겨서 반쯤 죽여 놓고 갔다. 31마침 한 사제가 바로 그 길로 내려 가다가 그 사람을 보고는 피해서 지나가 버렸다. 32또 레위 사람도 거기까지 왔다가 그 사람을 보고 피해서 지나가 버렸다. 33그런데 길을 가던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그의 옆을 지나다가 그를 보고 가엾은 마음이 들어 34가까이 가서 상처에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매어 주고는 자기 나귀에 태워 여관으로 데려가서 간호해 주었다. 35다음 날 자기 주머니에서 돈 두 데나리온을 꺼내어 여관 주인에게 주면서 '저 사람을 잘 돌보아 주시오. 비용이 더 들면 돌아오는 길에 갚아 드리겠소'하며 부탁하고 떠났다. 36자, 그러면 이 세 사람 중에서 강도를 만난 사람의 이웃이 되어 준 사람은 누구였다고 생각하느냐?" 37율법교사가 "그 사람에게 사랑을 베푼 사람입니다."하고 대답하자 예수께서는 "너도 가서 그렇게 하여라."하고 말씀하셨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를 찾아라 (루가 12,22-32)

12 22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러니 잘 들어라. 너희는 무엇을 먹고살아 갈까, 또 몸에다 무엇을 걸칠까 하고 걱정하지 말라. 23목숨이 음식보다 더 귀하고 몸이 옷보다 더 귀하지 않느냐? 24저 까마귀들을 생각해 보아라. 그것들은 씨도 뿌리지 않고 거두어들이지도 않는다. 그리고 곳간도 창고도 없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먹여 주신다. 너희는 저 날짐승들보다 훨씬 더 귀하지 않느냐? 25도대체 너희 중에 누가 걱정한다고 목숨을 한 시간인들 더 늘일 수 있겠느냐? 26이렇게 하찮은 일에도 힘이 미치지 못하면서 왜 다른 일들까지 걱정하는가? 27저 꽃들이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해 보아라. 그것들은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온갖 영화를 누린 솔로몬도 결코 이 꽃 한 송이만큼 화려하게 차려 입지는 못하였다. 28너희는 왜 그렇게도 믿음이 적으냐? 오늘 피었다가 내일이면 아궁이에 던져질 들 꽃도 하느님께서 이처럼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에게야 얼마나 더 잘 입혀 주시겠느냐? 29그러니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고 염려하며 애쓰지 말라. 30그런 것들은 다 이 세상 사람들이 찾는 것이다. 너희의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잘 알고 계신다. 31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를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32내 어린 양떼들아, 조금도 무서워하지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하늘 나라를 너희에게 기꺼이 주시기로 하셨다."

어린이를 축복하신 예수 (루가 18,16-17)

18 16예수께서는 어린 아기들을 가까이 오게 하시고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린이들이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말고 그대로 두어라. 하느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17잘 들어라. 누구든지 어린이와 같이 순진한 마음으로 하느님 나라를 맞아들이지 않으면 결코 거기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초대 교회의 공동생활 (사도행전 4,32-37)

4 32그 많은 신도들이 다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고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사용하였다. 33사도들은 놀라운 기적을 나타내며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였고 신도들은 모두 하느님의 크신 축복을 받았다. 34그들 가운데 가난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땅이나 집을 가진 사람들이 그것을 팔아서 그 돈을 35사도들 앞에 가져다 놓고 저마다 쓸 만큼 나누어 받았기 때문이다. 36키프로스 태생의 레위 사람으로 사도들에게서 '위로의 아들'이라는 뜻인 바르나바라고 불리는 요셉도 37자기 밭을 팔아 그 돈을 사도들 앞에 가져다 바쳤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 (로마서 13,10)

13 10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은 이웃에게 해로운 일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한다는 것은 율법을 완성하는 일입니다.

사랑 (1고린토 13,1-13)

13 1내가 이제 가장 좋은 길을 여러분에게 보여 드리겠습니다. 내가 인간의 여러 언어를 말하고 천사의 말까지 한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나는 울리는 징과 요란한 꽹과리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2내가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 전할 수 있다 하더라도 온갖 신비를 환히 꿰뚫어 보고 모든 지식을 가졌다 하더라도 산을 옮길 만한 완전한 믿음을 가졌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3내가 비록 모든 재산을 남에게 나누어준다 하더라도 또 내가 남을 위하여 불 속에 뛰어 든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모두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4사랑은 오래 참습니다. 사랑은 친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자랑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교만하지 않습니다. 5사랑은 무례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사욕을 품지 않습니다. 사랑은 성을 내지 않습니다. 사랑은 앙심을 품지 않습니다. 6사랑은 불의를 보고 기뻐하지 아니하고 진리를 보고 기뻐합니다. 7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주고 모든 것을 믿고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 8사랑은 가실 줄을 모릅니다. 말씀을 받아 전하는 특권도 사라지고 이상한 언어를 말하는 능력도 끊어지고 지식도 사라질 것입니다. 9우리가 아는 것도 불완전하고 말씀을 받아 전하는 것도 불완전하지만 10완전한 것이 오면 불완전한 것은 사라집니다. 11내가 어렸을 때에는 어린이의 말을 하고 어린이의 생각을 하고 어린이의 판단을 했습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서는 어렸을 때의 것들을 버렸습니다. 12우리가 지금은 거울에 비추어 보듯이 희미하게 보지만 그 때에 가서는 얼굴을 맞대고 볼 것입니다. 지금은 내가 불완전하게 알뿐이지만 그 때에 가서는 하느님께서 나를 아시듯이 나도 완전하게 알게 될 것입니다. 13그러므로 믿음과 희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언제까지나 남아 있을 것입니다. 이 중에서 가장 위대한 것은 사랑입니다.

자선의 열매를 맺어주시는 하느님 (2고린토 9,10)

9 10뿌릴 씨와 먹을 빵을 농부에게 마련해 주시는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에게도 뿌릴 씨를 마련해 주시고 그것을 여러 갑절로 늘려 주셔서 열매를 풍성히 맺게 해 주십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뿌린 자선의 열매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이는 어려운 이들을 돌보는 사람

(야고보 1,26-27)

1 26누구든지 자기가 신앙생활을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자기 혀를 억제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자기 자신을 속이는 셈이니 그의 신앙생활은 결국 헛것이 됩니다. 27하느님 아버지 앞에 떳떳하고 순수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고아들과 과부들을 돌보아 주며 자기 자신을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게 하는 사람입니다.

행동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 (야고보 2,14-17. 24. 26)

2 14나의 형제 여러분, 어떤 사람이 믿음이 있다고 말하면서 그것을 행동으로 나타내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런 믿음이 그 사람을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15어떤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그 날 먹을 양식조차 떨어졌는데 16여러분 가운데 누가 그들의 몸에 필요한 것은 아무것도 주지 않으면서 "평안히 가서 몸을 따뜻하게 녹이고 배부르게 먹어라 "고 말만 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17믿음도 이와 같습니다. 믿음에 행동이 따르지 않으면 그런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

24그러므로 여러분은 사람이 믿음만으로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가지게 되는 것이 아니라 행동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을 알아두십시오.

26영혼이 없는 몸이 죽은 것과 마찬가지로 행동이 없는 믿음도 죽은 믿음입니다.

사랑이신 하느님께서 주시는 사랑으로 세상을 이겨나가자

(1요한 4,7-5,5)

4 7사랑하는 여러분에게 당부합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하느님께로부터 났으며 하느님을 압니다. 8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9하느님께서 당신의 외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 주셔서 우리는 그분을 통해서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가운데 분명히 나타났습니다. 10내가 말하는 사랑은 하느님에게 대한 우리의 사랑이 아니라 우리에게 대한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보내셔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려고 제물로 삼으시기까지 하셨습니다. 11사랑하는 여러분, 명심하십시오. 하느님께서 이렇게까지 우리를 사랑해 주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12아직까지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면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에 계시고 또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서 이미 완성되어 있는 것입니다.

13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당신의 성령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느님 안에 있고 또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4우리는 아버지께서 당신의 아들을 구세주로 보내신 것을 보았고 또 증언하고 있습니다. 15누구든지 예수께서 하느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을 인정하면 하느님께서 그 사람 안에 계시고 그 사람도 하느님 안에 계십니다. 16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을 알고 또 믿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있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있으며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계십니다. 17이 세상에서 우리가 그리스도처럼 살게 되었으니 사랑이 우리 안에서 완성된 것이 분명합니다. 이제 우리는 자신을 가지고 심판날을 맞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18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몰아 냅니다. 두려움은 징벌을 생각할 때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두려움을 품는 사람은 아직 사랑을 완성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19하느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사랑을 합니다. 20하느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기의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거짓말쟁이입니다.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가 어떻게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21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의 형제도 사랑해야 한다는 이 계명을 우리는 그리스도에게서 받았습니다.

5 1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아버지를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그 자녀를 사랑합니다. 2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하고 또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면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3하느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곧 하느님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계명은 무거운 짐이 아닙니다. 4하느님의 자녀는 누구나 다 세상을 이겨냅니다. 그리고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길은 곧 우리의 믿음입니다. 5세상을 이기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예수께서 하느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을 믿는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차례..

부록 3.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 기도문


협의회 회합 순서

1. 개회 기도

2. 영적 독서 (가난한 사람들의 벗)

3. 출석 호명

4. 결석 이유 설명

5. 전번 회합의 회의록 낭독과 정정

6. 신입회원 환영 (신입회원이 있을 경우에)

7. 서신 보고

8. 회계 보고 (은행 예금 및 현금 상황 보고)

9. 활동 보고와 다음 활동 방문 지시

10. 기타 토의

11. 비밀 헌금

12. 지도 수녀, 지도 신부 훈화 및 강복

13. 폐회 기도

개회기도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 아멘

⊙ 오소서 성령이여, 믿는 이들의 마음을 충만케 하시며, 그들 dks에 사랑의 불을 놓으소서. 당신의 얼을 보내소서. 이에 창조가 이루어지고, 누리의 모습을 새롭게 하시리이다.

† 기도합시다.

⊙ 성령의 비추심으로, 신자들의 마음을 가르치신 천주여, 우리로 하여금 성령의 힘으로 바른 것을 맛들이고, 그 위안을 받으며 항상 기뻐하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아멘

그리스도교 재일치를 위한 기도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님, 주께서 돌아가시기 전날 밤에, 성부께 기도하신 대로, 당신 안에 성부 계시고, 성부 안에 당신이 계심같이, 모든 사도들이 하나가 되기를 원하셨나이다. 우리도 같은 믿음 안에서, 한 세례를 받고, 한 주님을 모시면서도, 서로 갈라져 있음을 가슴 아프게 여기나이다. 이제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따라 주님 안에서 마음과 입을 모아, 끊임없이 주님께 기도하며, 맞갖은 방법으로 일치를 도모하려 하오니, 우리를 도우시어, 서로의 냉담과 불신과 적개심을 버리고, 사랑과 진리 안에서 일치의 길을 찾아, 주님 안에서 웃는 낯으로 서로 다시 만나게 하소서. 아멘.

⊙ 주님의 기도 (합송)

평화의 기도

⊙ 저를 당신의 도구로 써 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신앙을

그릇됨이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두움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는 자 되게 하소서

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여 주소서

저희는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써 용서받으며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폐회 기도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 아멘

○ 성 요셉

⊙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

⊙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 기도합시다.

⊙ 지극히 착하신 예수여, 당신은 교회 안에 성 빈첸시오를 들어 올리시어 가장 뜨거운 사랑의 사도로 삼으셨나이다. 당신 종인 우리에게도 같은 사랑의 불을 놓으시어, 당신께 대한 사랑으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가진 바를 내어 주며, 그들을 위하여 헌신하게 하소서. 성자는 성부와 성령과 함께 세세에 영원히 살아계시며 다스리시나이다. 아멘.

은인들을 위한 기도

⊙ 지극히 사랑하올 예수여, 당신 때문에 가난한 이들을 도와 준 사람들에게는 백배의 갚음과 하늘 나라를 약속하셨으니, 우리 은인들에게 당신의 은총을 베푸소서. 아멘

프레데릭 오자남의 시복을 청하는 기도

⊙ 천주여, 당신은 프레데릭 오자남과 그 벗들의 마음을, 가난한 이들에게 대한 사랑으로 채우시고, 밝히 비추시어, 가난한 이들의 영육간 궁핍을 덜어 주기 위하여, 한 회를 창립하게 하셨나이다. 삼가 비오니, 이 사도적 애덕 활동에 축복하소서. 또한 성교회가 당신의 독실한 종 프레데릭 오자남을 시복하는 것이 당신의 뜻이라면, 그가 당신 면전에서 누리는 행복을 인자로이 드러내 보이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아멘.

⊙ 천주의 성모님, 당신 보호하심에 저희를 맡기오니, 어려울 때에 애원하는 우리를 물리치지 마시고, 모든 위험에서 항상 구하소서. 복되시고 영화로우신 동정녀님

○ 죽은 우리 형제들과 죽은 모든 교우들의 영혼이 천주의 자비하심으로 평화의 안식을 얻게 하소서.

⊙ 아멘

※ 자매 결연 협의회를 위하여 (성모송 한 번)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 아멘.

성 빈첸시오 아 바울로회는 자신의 애덕 생활을 증진시키고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을 증거하는 활동에 형제적으로 참여함으로써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을 드러내고자 하는 그리스도교적 평신도로 구성된다.

- 회칙 제 1 조



차례..

부록 4.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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