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학

노 인 학

노인 공경 양속 뿌리내리자!

교포사회가 급진적인 발전을 하는 것과 반비례 자녀들을 따라 이국만리 이 땅으로 이민온 노인들의 설 땅이 없어 한국전래의 경로사상이 무색할 만큼 노인들에 대한 문제가 심각한 과제로 대두되고 있다. 대다수 미국에 와서 사는 아들이나 딸들의 초청으로 이 땅으로 온 교포노인들은 낯선 문화의 충격에서 오는 좌절감과 소외감에 덧붙여 자식들로부터도 소외당하는 잉여인생의 설움을 맛보고 있다. 이들 인생의 쓰디쓴 상념만 되씹으며 남은 여생을 고독과 좌절에 빠져 지내는 노인들은 자신들의 무력한, 존재가치가 주위로부터 귀찮고 거추장스럽게 푸대접을 받으면 받을수록 남은 여생 마져도 회의, 때로는 극단적인 자기학대와 체념을 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자기현실로 귀착, 서글픈 나날을 살아가고 있다. 이처럼 노인들이 가족과 주위로부터 소외받는 이유가 자식들의 불효가 작위시킨 결과라고 단정할 수만도 없는 것이 미국의 생활구조이고 미국인들의 생활방식이라면 대가족 제도에 의한 경로사상을 익혀 온 교포노인들이 받는 이질문화에의 충격과 좌절감을 1세대들로서도 익히 그 심도를 상상할 수 있는 일이다. 아들과 며느리의 초청으로 미국에 온 L모 할머니는 외아들과 미국에서 결혼한 며느리와 손자손녀를 만났다는 기쁨도 잠깐. 전혀 다른 생활 속에 젖어있는 며느리의 식모 역할을 감수해야했다. 미국에서는 놀고 먹는 사람이 없다며 시어머니를 식모처럼 부리는 며느리보다 마누라에 매여 사는 아들이 더 원망스러울 수 밖에 없었고 차차 주위의 노인들과도 사귀게 된 L할머니는 "베이비시스터를 얻는게 더 낳겠다"며 아이들을 돌봐주지 않는다고 투정을 부리는 며느리를 떠라 룸메이트와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경제력이 없는 L모 할머니는 그 뒤 미국에 온지 1년도 못되어서 결국 자살로 인생을 끝맺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L할머니를 죽음으로까지 몰로 간 좌절감은 이들과 며느리의 탓으로 돌릴 수만은 없다고 말하는 한 교포는 그러나 한국에 살았으면 자식들의 온갖 효도를 받았을 L할머니가 낯선 미국으로 와서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했던 사실에 대해 허망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한국에서 상류생활을 하던 H할아버지(71세)는 가산을 정리, 부인과 함께 아들이 있는 미국으로 왔다. 미국에서 의과대학을 졸업한 아들이 병원 개업을 하게 되어 자신이 한국에서 가져온 돈을 몽땅 넘겨줬다. H할아버지는 병원이 개업 초기라 운영을 겨우 한다며 우는 소리를 하는 아들로부터는 용돈조차도 타내기가 힘들어 졌으나 함께 병원 걱정을 해주며 아들을 격려해 주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아들로부터 무시당하는 느낌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소일 삼아 나가는 노인회에서 만나는 친구들에게 날마다 대접을 받기만 했던 H할아버지는 이들에게 점심이라도 사고 싶어 어느날 아침 아들에게 용돈을 요구했다가 "한국에서 고생 못해 보셨으니 여기서라도 고생 좀 해 보시라"며 돌아서는 아들을 대하는 순간 부인과 함께 집을 나와 한동안 길거리를 방황했다. 딸의 초청으로 미국에 온 C할머니는 미국에 온지 한 달만에 집에서 뛰쳐나오고 말았다. 평소에 장모를 탐탁히 여기지 않는 사위 집에서 더 이상 살 수 없어 차라리 가족처럼 지내며 가정부 생활을 하겠다고 집을 나온 C할머니의 얘기는 듣는 이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하다. "정신적인 고통도 고통이지만 배가 고파 못 살겠다"고 말하는 C할머니는 "집에는 빵, 치즈 등 양식용 식품 밖에 없어 거의 굶다시피 한다. 어디에 가야 내가 먹을 것을 살 수 있는지 조차 알 수 없어 죽을 지경이다. 미국 생활을 해야 한다는 딸이 야속하기만 하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한국에 있는 아들이 미국에 가서 영주권을 얻은 뒤 자신을 초청해 달라는 간곡한 요청을 했기 때문에 한국에 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여기에 머무를 수도 없다고 자신의 처지를 하소연하는 C할머니는 설 땅을 찾지 못해 방황하고 있다. 화목한 가정의 노인들도 나름대로 겪는 문제들이 많다. S할아버지는 아들 내외와 손자들과 함께 퀸즈에 살고 있다. S할아버지는 혼자 남게 되는 낮시간이 두렵다. 대화를 나눌 상대도 없고 알아듣지 못하는 말만 늘어 놓는 TV나 라디오가 원망스럽기만 하다. 가까운 동네에 친구라도 있었으면 하는게 큰 소망이다. 노인회에라도 나가 소일하고 싶으나 미국 온지 1년이 넘어도 지리를 모르니 마음 뿐이다. K할아버지는 2년전 미국에 왔다. 유학와서 이곳에 정착한 아들 초청으로 부인과 함께 미국으로 온 K할아버지는 손자, 손녀와 대화를 나눌 길이 없다. 영어만 쓰는 애들이라 손짓, 몸짓도 이젠 쑥스럽다. 따뜻한 정을 나룰 수 없어 안타깝다 못해 스태튼 아일랜드에 있는 양로원에 들어가 같은 처지로 이곳에 들어온 동료 노인들과 옛날 얘기를 주고 받으며 나날을 살아가고 있다. 대화의 단절, 소외감과 무력감의 엄습, 고독과의 투쟁에서의 돌파구를 찾기 위해 양로원으로 향하는 노인들은 호의호식이나 모든 것이 아무리 풍부한 미국 생활일지라도 결코 이곳이 찌든 한국생활보다는 나을 수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외로운 삶을 살아간다. 이곳에서 Q대학에서 강의하고 있는 K씨는 "한국의 전통적인 미풍양속을 거론하기에 앞서 노인들은 젊은이와 아이들에게 산 교훈을 전할 수 있는 소중한 가교이며 한 집안의 기둥이라 할 수 있다. 세대차이를 운운하며 이들을 기피하는 사람일수록 자녀교육에 문제가 많은 경우를 보아왔다. 교포 2세에게 한국의 전통과 얼을 심어줄 귀중한 교사이기도 한 노인들에 대해 교포사회의 관심이 모아져야 할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경제력 상실에서 오는 무력감, 언어 장벽에서 오는 좌절, 고독감, 소일거리가 없어 지루한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각종 상념과 갈등이 내면에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노인들의 현실은 이것이 비단 당사자인 노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교포전체의 심각한 문제이며 모든 교포 사회가 힘을 모아 이들에게 설 땅을 마련해 주어야 하는 것이 또한 이민 1세들의 과제이기도 하다. 한 봉사단체에서 상담을 맡고 있는 L씨는 "노인문제의 원인은 대화의 단절에서 온다고 본다. 가족들의 사랑과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일거리를 만들어 드리고 즐거운 마음으로 지낼 수 있도록 해드려야 할 것이다. 지식에게 효도를 바라는 것 보다 부모 섬기는 모범을 보여야 화목한 가정을 유지 할 수 있다고 본다"고 잊혀져 가는 우리의 경로사상을 이 땅에 재현시킬 것을 강조했다. 한편 노인들의 친목단체인 뉴욕 상록회의 김달수 회장은 "나이 들었다고 소극적인 자세로 현실에 임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는데 무엇이든 적극적인 자세로 해나가는 정신무장이 필요하다고 본다"며 "자식, 며느리로부터 대우를 못 받는다고 하소연하는 사람들은 자식 탓하기에 앞서 자신의 가정교육에 문제가 있었다고 반성해야 한다. 또한 젊은이들도 머지 않아 노인이 된다는 점을 명심하여야 한다. 노인은 특수계층이 아니라 자연적으로 형성되는 인생의 흐름에 의한 것이다."라며 서로의 각성을 촉구했다. 김회장은 또한 "교포사회의 밝은 면을 많이 발굴해서 이를 널리 알려 귀감으로 심는 풍조가 이루어져야 어두운 문제들이 서서히 사라져 갈 것으로 본다"며 특히 선행이나 효행 등 숨은 미담을 찾아내 교포사회에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만하탄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교포 K모씨는 "젊은이들의 정열과 투지가 노인들의 원숙과 경륜에 이어져 승화되어야 교포사회의 발전으로 이를 수 있다고 본다.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문제는 아니나 교포 모두가 이런 방향으로 힘을 모을 때 우리의 전통 미풍양속이 후세에 이어질 것이고 그 길만이 미국 속에서 교포들이 떳떳이 한국인의 자세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것이라고 본다"며 교포들의 각성을 촉구, 이 땅에 노인들의 설 땅을 마련해 주고 우리의 미풍양속을 뿌리내리도록 전 교포가 뜻을 모아 노력해 줄 것을 당부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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