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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시기 / 공현(nativity/epiphany)
김인영 신부 역

I. 성탄시기
 
원래 성탄과 공현 축일은 말씀의 육화를 주제로 하는 동일한 축일이었으나, 동방과 서방교회에서 각각 공현(동방)이란 이름으로 1월 6일에 또는 성탄(서방)이란 이름으로 12월 25일에 이 축일을 지냈다. 이 두 축일의 내용이 달라지게 된 것은 4세기 말에서 5세기 초에 이르러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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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탄 축일의 역사
 
336년경 이래로 로마교회에서 12월 25일을 성탄축일로 지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문헌이 있다. 성 아우구스띠노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아프리카1)에서도 거의 동시대에 12월 25일을 성탄축일로 지냈다. 4세기 말에는 북 이딸리아에서도 성탄축일을 대축일 가운데 하나로 지내게 되었는데, 그러한 사정은 스페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가 행한 강론에 의하면 그 당시 안티오키아에서도 로마교회에서 유래한 성탄축일을 12월 25일에 지냈는데, 이 축일은 1월 6일에 지내는 공현축일과 구별되는 것으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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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성탄 축일의 기원
 
성탄축일이 나타나게 된 데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다고 본다. 12월 25일이 예수께서 태어난 날이 아님은 분명하다. 하지만 로마교회는 12월 25일 (로마에서  이교도들이 지내는) "무적의 태양신 탄생축일"(Natalis solis invicti)을 누르기 위해서 이 날을 선택했다. 퇴폐적 이교도가 판치던 이시기에 태양신 예배가 대단히 유행하였으며, 동짓날(12월 25일) 성대한 축제들이 행해졌다. 이 같은 우상 숭배 축제로부터 신도들을 멀리하게 만들 목적으로 교회는 각 사람을 비추시는 참된 빛이신 그리스도의 탄생에 대해 생각하도록 촉구하였다. 4-5세기에 일어난 그리스도론에 대한 이단들에 맞서 열린 4번의 보편공의회(니체아, 에페소, 칼체도니아, 콘스탄티노플)와, 특히 레오 대교황의 저서들은 성탄축일을 육화 신비에 대한 참된 신앙을 선언하는 기회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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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성탄시기의 구성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따른 전례개혁은 성탄시기의 구조를 거의 그대로 유지하였다. 다만 이시기의 전례 본문들과 다음과 같은 축일들이 추가되고 더욱 풍부해졌다: 성탄 전야미사; 옛 전통에 따라 성탄 8부에 복구된 천주의 모친 성 마리아 대축일; 예수께서 받으신 세례의 신비에 큰 비중을 두고 공현 다음 주일에 지내는 주의 세례 축일; 성탄 이후의 주일에 지내는 성가정 축일. 성탄시기는 성탄전야부터 공현 다음 주일 또는 1월 6일 이후의 주일까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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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성탄 전례거행의 신학
 
성탄 대축일, 즉 하느님의 아들이 인간이 되어 오심을 기리는 이 축일에, 마리아로부터의 예수의 탄생과 그의 유년시기를 기억한다. "주의 탄생"(Natale Domini)이라는 말 자체가 이 축일의 역사적, 구체적 특성을 드러내 주고 있다. 하지만 성탄축일 거행은 (예수의 탄생이라는) 역사적 사실에 머물지 않고, 이로부터 그 참된 근저, 즉 육화 신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ㄱ) 구원의 신비로서의 성탄
 
성 아우구스띠노는 성탄 축일을 빠스카(부활) 축일과 같은 하나의 '성사'가 아니라 단지 (예수 탄생을 기리는) 단순한 하나의 '기념'으로 여겼지만, 성 레오 대교황은 이 축일에 참된 신학적 기초를 놓았다. 그는 이 사건(탄생)의 구원적 가치를 드러내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탄생의 신비'(sacramentum nativitatis Christi)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성 레오 대교황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 신비를 선포하고 있는 복음 구절들은,"우리를 열광케 하며, 말씀이 사람이 되신 주의 성탄은 과거에 대한 기억이 아니라 현재 그러한 것으로 나타남을 우리에게 가르친다."2)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지내는) 축일은 우리를 위하여 예수의 거룩한 탄생을 새로이 (재현)한다."3)
 
결국 성탄은 '구원의 성사'이며 이 성탄이 (예수) 부활을 지내는 것이 아님이 분명해진다. 성탄은 우리 구원을 위하여 그리스도의 육체 안에서 완성된 것(구원 사업)의 출발점임이 드러나고 있다.
 
ㄴ) 말씀의 육화
 
성탄대축일의 내용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주님이 사람(육;肉)으로 나타나심'이라는 말 안에 표현된 이 축일의 본래 의미를 상기하는 것이 필요하다. 칼체도니아 공의회의 교황인 성 레오 대교황4)과 함께 성탄 축일은 영지주의, 아리우스주의, 도체티즘(그리스도 假現說), 마니케이즘, 단성설 등 이단적 해석을 반대하여 교회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에 따라 육화의 신비를 드러내는 축일이 되었다. 현재의 전례 본문들은 아직도 육화 신비에 대한 신앙을 정확히 드러내는 교의적 표현들로 가득 차 있다.
 
ㄷ) 인성과 신성의 놀라운 교환
 
"사람이 신이 되도록 사람이 되신 하느님"5)의 놀라운 교환에 대한 주제는 로마교회의 풍부한 성탄 전례의 중심을 차지한다. 이 같은 교환의 첫 결과는 그리스도의 인성 안에 나타난다. 즉 말씀이 당신 것(신성)을 우리에게 주기 위하여 우리 것(인성)을 취하셨던 것이다. 이 교환으로 이루어진 두 번째 결과는, 우리가 말씀의 신적 본성에 실제적으로 그리고 긴밀하게 참여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즉 오늘(성탄) 태어나신 세상의 구세주께서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게 하셨던 것이다.
 
ㄹ) 빠스카와 성탄
 
그리스도 신비를 성서학-신학적으로 깊이 연구하게 되면 육화 신비가 빠스카를 향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하느님의 아들이 육신을 취하신 것은, 성부께 실존적, 개인적 희생 제사를 드리고자 함이었다. 우리는 부활과 성탄 축일에 주님의 영광이라는 동일한 전망이 자리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두 축제는 베들레헴과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두 사건의 역사적 연속성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에 확연히 드러나 있듯이 교회가 그리스도에 대해 이해하고 있는 것을 다루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신학적 전망 아래서 우리는 성탄을 교회의 시초이자 모든 인류의 연대성의 시초라고 보아야 한다. 그리스도의 태어나심은 레오 대교황이 선언하고 있듯이 그리스도 백성의 기원이 된다. 다시 말해서 머리(그리스도)의 탄생은 몸(하느님 백성)의 탄생 또한 되는 것이다. 육화를 통하여 어떤 식으로든 하느님의 아들이 각 사람과 결합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성탄은 우주의 쇄신을 가져오는 신비이기도 하다. 즉 말씀은 모든 피조물을 타락으로부터 들어올리고 성부의 계획에 따라 우주를 다시 완전하게 하기 위하여 자신 안에 그들을 받아들이신 것이다(제2 성탄 감사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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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성탄시기의 영성
 
성탄 신비가 구유에 누워 계신 주님의 가난함과 겸손 안에서 우리가 따라야 할 어떤 모범을 제공하는 데 한정되지 않고, 주님과 닮을 수 있는 은총을 제공한다. 주님이 (인간의 몸으로) 나타나심은 인간이 신적 생명에 참여하도록 이끈다. 성탄의 영성은 하느님의 자녀로 입양되는 것에 대한 영성이다. 이러한 것은 '밖으로부터' 주님을 모방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닮고, 그분이 순결하고 가난하며, 겸손하고 순명적임을 드러내는 가운데 일어나야 한다. 성 레오 대교황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품위를 깨달아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는 가운데 이전의 합당치 못한 자신의 품행 때문에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졌던 그러한 (과거)에로 돌아가는 일이 없도록 촉구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하느님께서 우리를 교회 몸의 지체로 가입시켜 그리스도 안에서 당신 자녀로 만들어주셨기 때문에 성탄의 은총은 우리가 형제적 친교의 삶을 살도록 요청하고 있다.
 
사목자는 신도들이 그리스도에 대한 참된 신앙을 갖도록 성탄 예절을 활용해야 할 것이다. 이 신앙은 인간에 대한 참된 관점과는 떨어질 수 없으니, 왜냐하면 "육화하신 말씀의 신비 안에서만 인간 신비의 참된 빛을 발견하기 때문이다"(사목헌장 22). 오늘날 성탄은 인간의 위대한 축제처럼 지내야 할 것이다. 사실 새 아담이신 그리스도는, "성부와 그 사랑의 신비를 알려주는 그 계시로써 인간을 인간에게 완전히 드러내 보여 주시고 인간이 높이 불리었음을 밝혀 주신다"(사목헌장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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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공현
 
(주의 공현 축일을 가리키는) 그리이스어 epifania 또는  teofania는 스스로를 드러냄, 유명한 존재가 됨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면서 왕이나 황제의 도착(오심)과 관련되어 있다. 이밖에도 이 용어는 신(神)의 발현 또는 기적적인 신의 개입을 가리키는데 사용되기도 한다. 동방 교회에서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심'을 기리는 주의 성탄 축일을 epifania라고 불렀다는 사실이 놀랄만한 일은 아니다.
 
 
1. 공현 축일의 역사
 
이미 2세기에 영지주의자들이 1월 6일에 예수의 세례를 지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6) 4세기 후반 에삐파니오(Epifanio)는 (동방교회의) 정통적인 공현축일에 대해 전해주고 있는데, (이날 동방교회는) 주님이 오심, 또는 주께서 인간으로 태어나심과 완전한 육화를 기념하였다. 요한 크리소스토모(+407) 시대에 안티오키아와 에집트에서 이 축일을 지냈으며, 축일의 대상은 예수의 탄생과 그의 세례였다.
 
공현 축일이 서방교회에 전해졌을 때 그 뜻의 변화가 있었으니, 이날 (서방교회는) 동방박사들이 새로 태어나신 구속주를 경배하기 위해 베들레헴에 온 것을 지내면서, "이교 세상에 예수께서 드러나심"을 기념하였다. 이 일화(동방박사의 방문)에 예수 세례와 가나에서의 첫 기적을 덧붙여 지냈다. 한편, 성탄축일이 동방교회에 들어가면서 공현축일의 본래 뜻이 사라지고 대신 공현축일에는 예수의 세례를 두드러지게 지내게 되었다.
 
동방에서 공현축일이 나타나게 된 데는 서방에서 성탄축일이 나타나게 된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서방에서와 마찬가지로) 동방에서도, 특히 에집트에서 동지에 지내는 축일이 있었다. 그리스도인들은 빛이 확연히 더 길어진 때, 즉 동지(12월 25일)로부터 13일 후인 1월 6일 (주의) 성탄을 지냄으로써, 예수께서 참된 빛으로 드러나셨다는 것을 명백히 하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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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현행 공현 전례거행의 대상
 
서방에 공현축일이 도입되면서 대부분의 서방 교회들은 주로 동방박사의 방문을 기념하면서, 이들 동방박사들은 인류를 대표하는 이들이며 따라서 예수께서 모든 민족의 주님으로서 드러났다는 것을 나타내고자 하였다. 이런 식으로 성탄과 공현축일이 확연히 구별되었으니, 성탄에는 그리스도의 탄생을, 공현에는 온 민족의 경배를 기념하였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개혁 이후 거행하고자 하는 그리스도의 신비는, 공현 감사송에 잘 나타나 있다. "주는 그리스도로 이루어질 우리 구원의 신비를 오늘 이교 백성들의 빛으로 계시하셨으니...."
 
미사전례서나 시간전례서들에 제시된 모든 전례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구원의 보편성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교회를 깨끗하게 만들고 거룩하게 만들기 위하여 교회와 결합하신 신랑이신 그리스도의 신비와, 길을 잃고 흩어진 하느님의 자녀들을 다시 모으기 위하여 모든 백성 위에 세워진 표지인 선교하는 교회의 신비가 그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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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譯註- 지금의 알제리, 튀니지아에 있었던 북아프리카 교회를 일컬음.
2) 레오 대교황, 성탄 9 강론(XXIX), 1.
3) 레오 대교황, 성탄 6 강론(XXVI), 2.
4) 譯註. 레오 대교황(441-461)은 그리스도의 단성설(單性說), 즉 그리스도의 인성을 부인하는 대신 신성만을 인정하는 에우티케스(Eutyches)와 그의 지지자인 알렉산드리아의 총대주교 디오스쿠르에 반대하여 칼체도니아 공의회를 열도록 마르치아노 황제(450-457)에게 요청하여 마침내 451년 공의회가 열리게 되었다.
5) 아우구스띠노, 강론 198: PL 39,1997.
6) 譯註. 영지주의자들이 이 날 예수의 세례를 지낸 까닭은, 예수가 세례를 받는 순간 바로 하느님의 아들로 입양되었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서였다. 이는 예수가 태어나기 이전부터 하느님의 아들이시요 바로 하느님이라는 정통적 신앙과는 대치되는 것이었고, 따라서 이들의 이단에 맞서 동방교회는 1월 6일 예수의 세례를 기념하면서, 이날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로 입양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아들이심이 '드러났다'는 것을 선언하였다. 예수의 세례 사건에 대한 서로 다른 해석은 이후 교회 안에서 계속 제기되었고, 이 같은 교의상의 투쟁은 성당 예술에까지 나타나고 있다.
 
[A. Bergamini, 이 글은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고 김인영 신부님께서 번역하신 전례학 사전 항목입니다. 현재 전례학 동호회를 중심으로 사전 번역 작업이 진행중입니다. 좋은 의견이 있으신 분은 수도원이나 전례학 동호회로 연락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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