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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외로웠던 신앙 생활

한국 천주교회가 창립된 것이 1784년, 이보다 30여 년 전에 이미 천주 신앙을 받아들여 심신을 연마한 선각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홍유한이다. 비록 물로 세례를 받지는 않았다 할지라도 그가 천주교를 대하는 입장은 단순히 신학문으로서가 아니라 천지만물의 이치를 밝히는 종교적 요소를 갖고 있었다는 점에서 스스로 신앙 생활을 시작한 첫 인물로 꼽힌다.
 
경북 영주군 단산면 구구리는 바로 그의 자취가 남아 있는 곳이다. 그는 실학자 성호 이익의 문하에서 천주학을 처음 접한 뒤 유교와 불교에서 구할 수 없었던 진리를 발견하고 바로 이곳에서 1775년부터 1785년까지 10년간 학문을 통해 깨달은 신앙의 진리를 실천했다.
 
본래 구구리는 순홍부 동원면 지역으로 마을 뒷산에 무학봉이 있는데 "학이 구고(九皐)에서 우니 소리가 하늘에 들린다."는 시전(詩傳)에 있는 옛 뜻을 따라 '구고'라 하였다 한다. 그 후 1914년 군면 페합에 따라 오현리, 이목리와 등영리, 상암리 각 일부를 병합해 '구구리'라 하여 영주군 단산면에 편입됐다.
 
홍유한은 안동의 풍산 홍씨 명문가의 16대손으로 이미 8세 때 사서 삼경, 백가 제서에 통달한 신동으로 전해진다. 그의 조부모는 손자의 장래를 위해 고향인 충청도 예산을 떠나 서울로 이사를 했고 16세 때인 1742년 그는 당시 유명한 실학자인 성호 이익의 문하에서 순암 안정복, 녹암 권일신, 복암 이기양 등과 함께 수학했다.
 
1751년 성호 이익이 "천주 실의"와 "칠극" 등 서학을 연구할 때 그의 제자들도 이 신학문과 종교 서적을 탐독하게 됐고 이때 그는 천주교 진리를 받아들이게 된다. 당시 성호 이익은 서학을 받아들임에 있어 피상적인 보유론적 입장에 머물렀고 함께 수학하던 순암 안정복은 천주교 신앙에 대해 극히 비판적이고 배격하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홍유한은 유교와 불교에서 발견하지 못한 진리를 여기에서 발견하고 1757년 고향 예산으로 다시 내려가 1775년까지 18년간 혼자 신앙을 연마했다. 그러던 중 다시 1775년 더욱 조용한 곳을 찾아 경상도 소백산 아래 있는 순흥 마을 고들미(현재의 영주군 단산면 구구리)로 옮겨 가서 1785년 60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열심한 신앙을 키웠던 것이다.
 
그는 천주교의 진리를 처음 깨달은 후부터 스스로 신앙 생활을 시작해 "칠극"에서 터득한 덕행을 쌓기 위해 7일마다 하루를 주일로 정해 세속일을 전폐하고 기도와 묵상에 전념했다. 나아가 욕정을 금하여 30세 이후는 정절(貞節)의 덕을 실천했다. 그리하여 천진암 강학회가 시작되기 전부터 그는 서학을 읽고 묵상하는 가운데 스스로 신앙 생활을 시작했던 최초의 사람으로 기록된다.
 
현재 구구리의 하이목에는 그 당시 그가 사용하던 대문이 아직도 보존돼 있고 경종4년(1724년) 갑진년에 홍유한의 조부인 홍중명이 하사받은 효자문이 잘 보존돼 있다. 또한 그밖에 순교자 권일신과 서신 왕래하던 친필 서찰들이 후손에 의해 보존돼 있다가 현재는 천진암의 전시관에 보관돼있다. [출처 : 주평국, 하늘에서 땅 끝까지 - 향내나는 그분들의 발자국을 따라서, 가톨릭출판사,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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