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자료실 > 가톨릭 전례 > 전례거행의 장소

제 5 장1)  전례거행의 장소2)
장신호 신부 역

앞에서 예배의 성서적 개념을 종합적으로 살펴볼 때, 거룩한 공간의 본성에 대해 언급하였다. 같은 주제를 가지고 더욱 깊이 살펴보면서, 이 장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의 예배를 위한 건물이 이방 종교의 성전의 개념뿐만 아니라 유다 성전의 개념과도 얼마나 많은 차이를 가지고 있는지를 우선 살펴볼 것이다. 이어서, 전례 거행의 순서에 따라 그리스도교 예배를 위한 건물의 여러 공간들과 전례용구들에 대해 간단하게 살펴볼 것이다.
 
 
5.1. 그리스도교 예배를 위한 공간
 
5.1.1. 성서에 나타난 예배를 위한 건물
 
로마인들과 마치 한가지로 그리스인들에게 있어서 성전은 우선 신상으로 형상화 된 신이 머무는 집이었다. 작은 방이어도 충분했다. 힌두교 전통에도 동일한 현상이 나타난다. 모일 필요가 없었으니: 신은 사제들에게 맡겨진 희생제사와 신도들의 개별적인 봉헌물들을 기다리고, 또한 그뿐이었다.
 
구약성서에서, 거룩한 장소는 다른 모든 종교에서와 동일하게 신의 현존과 행위의 눈에 보이는 경계일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선택의 표지였다3): 즉 온 땅의 하느님께서 특별한 한 장소에 나타나시고, 특별한 한 백성을 선택하신 것이다. 이스라엘에게 거룩한 장소는 성서적 종교를 특징 지우는 두 개의 커다란 긴장이 함께 하는 장소로 위치한다: 하느님의 불가시성과 가까운 현존, 보편성과 고유성.
 
다른 모든 거룩한 장소는 마지막에 하느님의 현존과 그분과의 만남의 최상의 장소가 된 예루살렘 대성전의 중요성 앞에 그 기능이 약화된다. 성전을 봉헌하면서 솔로몬은 하느님의 가까운 현존과 동시에 그분의 초월성에 대한 인식을 갔고 있었다: "하느님, 하느님께서 이 땅에 사람과 같이 자리잡으시기를 어찌 바라겠습니까? 저 하늘, 저 꼭대기 하늘도 주를 모시지 못할 터인데 소인이 지은 이 전이야말로 말해 무엇하겠습니까?"(1열왕 8, 27).
 
예언자들의 유명한 비판들은 성전을 능가하려는 것이 아니라 계약의 생생한 내용 속에서 성전을 유지하려는 것이었다. 결국 성전은 하느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체결된 계약의 위대한 표지요, 계시의 역사성과 선택의 표지가 되었다.
 
모든 유다인처럼 예수께서도 성전에 다녔고 그것을 존경하셨다. 그러나, 복음사가들은 예수 또한 예언자들처럼 성전을 비판했음을 기억하는데 일치하고 있다(참조. 마태 21, 12-13; 마르 11, 15-19; 루가 19, 45-48, 요한 2, 14-16). 성전에 대한 예수의 비판은 의회 앞에서 열린 재판에서 그분에게 부과된 고발들 중의 하나였다(참조. 마르 14, 58). 또한 예루살렘의 첫 번째 그리스도교 공동체도 평화롭게 성전을 받아들이고 거기에 다닌다(참조. 사도 2, 46). 그러나, 그리스계 집단의 대변인인 스테파노는 더욱 비판적인 태도를 나타낸다(참조. 사도 7). 성전을 받아들이면서도 비판하는 이런 모순적인 태도는, 구약성서적 환경, 즉 예언자들의 노선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신약의 참신성은, 인간들 사이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드러내는 참된 공간이 더 이상 예루살렘의 성전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인식을 가진 것이다(참조. 요한 2, 21; 1, 14). 예루살렘 대성전은 미리 보여주는 표지(= 예표)였다(참조. 히브 9). 거기에 이어서 바오로는 약간 다른 관점을 가지고 말하기를, 그리스도교 성전은 그리스도의 몸을 건설하기 위해 그리스도와 결합된 공동체라고 말한다: "온 건물은 이 모퉁이돌(그리스도)을 중심으로 서로 연결되고 점점 커져서 주님의 거룩한 성전이 됩니다. 여러분도 이 모퉁이돌을 중심으로 함께 세워져서 신령한 하느님의 집이 되는 것입니다"(에페 2, 21-22; 참조. 2고린 6, 16). 또한 공동체뿐만 아니라 신자 각자가 바로 하느님의 성전이다(참조. 1고린 6,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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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2. 예배를 위한 건물의 역사
 
초세기 그리스도인들이 전례를 거행하기 위해서 건물들을 사용하기는 하지만, 이 건물들은 신을 위한 성전이나 기념물이 아니었다. 그것들은 기도를 위해 전례회중이 모이기 위해 마련된 '전례회중의 집'(= '교회의 집'domus ecclesiae, oikoi ekkles as)이다.4) 여기에서 유래한 '교회'라는 이름은 나중에 건물 자체에 주어진다. 결국 예배를 위한 건물은 지역교회가 공간 속에 드러나는 이콘이며, 생생하고 선택된 돌로 건설된 영적 건물을 위한 필수적인 은신처이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말한다: "이 교회는 여러분을 위해 건설되었지만, 여러분 자체가 교회입니다".5)
 
교회가 자유롭게 움직이고 수단들을 사용할 수 있을 때, '성전'을 건설하지 않고 대중집회를 위해 마련된 광대한 구조물들인 '바실리카basilica'들을 예배를 위한 건물로 변용한다. 그리스도교 바실리카들은 넓고 장엄하고 고상한 공간이며, 동시에 거리의 소음으로부터 분리되어, 회중이 모이기에 적합하게 되었다. 내부공간은 다른 모습으로 정돈되어; 전례거행의 각 행위자들과 모든 이들의 참여를 위해 각 부분들이 체계적으로 배치되었다. 4세기의 바실리카 양식은, 전례가 거행되는 제단presbyterium을 향해 모든 이의 시선을 끄는 '거룩한 길via sacra'과 함께 길이방향의 지평선을 강조한다. 반면에 비잔틴 양식의 교회는 원형의 돔cupola에 의한 중앙부의 강조를 선호하면서 보다 역동적인 건축을 이룬다.
 
역사의 흐름에 따라 전례의 영향에 따른 변천은, 옛 그리스도교 바실리카들과 이어지는 예배장소들의 개념과 배치를 아주 많이 변화시켰다. 역사적 양식들은 각 시대와 각 나라에 따른 참으로 다양한 영성을 표현한다. 서방에서 로마식 바실리카는 후대의 낭만파 양식을 발전시키게 되는 샤를르(카롤링) 왕조와 오토 제국의 양식으로 변천한다. 낭만파 양식은, 수평선과 수직선, 단순성과 장엄성, 로마식 고정성과 독일-프랑코 민족의 역동성 사이의 조화에 성공한 양식이다. 고딕양식은 12세기 전반부터 지배적인 건축양식이 된다: 그것은 극적이고 활동적인 것에 대한 강조와 함께 그리스도교 기질을 드러내는 유일한 표현이다. 이미 15세기에 고딕양식을 능가하려는 시도들이 있었다. 그리고 옛날로 돌아가려는 르네상스 문예부흥 시대에 도달한다. 트렌트 공의회 이후에, 신앙의 승리와 성취의 열정을 강하게, 가끔씩 비이성적으로, 표현하는 바로크 양식이 발전한다. 이어서 계몽주의와 나란히 신고전주의가 나타난다. 이것은 항상 풍성했던 바로크 양식에 대한 반작용으로 이성적이고, 단순하고, 절제하는 양식으로 나타난다. 낭만주의 문화와 관련 속에 19세기 전반에는 중세와 그 예술적 취향에 대한 새로운 열정이 일어나 그것들을 모방하게 되는 데, 바로 '부흥restaurazione의 시대'6)이다.
 
근대 예술은 이전부터 제의적 공간의 새로운 표현들을 찾고 있었다. 전례헌장에서 바탕이 되는 기준을 발견할 수 있다: "성당들을 건축함에 있어서는 전례의 집전과 신자들의 능동적 참여를 실현하기에 적합하도록 힘써 배려하여야 한다"(전례헌장 124). 오늘날 보다 현대적인 기준에 따라 건설되는 거룩한 건물들은, 공동체가 전례거행의 중심에 더욱 가깝게 위치하고 또 밝은 환경 속에서 느끼고 활동할 수 있게 배치된 공간을 추구한다. 교회 건축의 이상은 역할성, 단순성, 아름다움, 장식 등이지만, 예배장소의 상징적 가치를 포기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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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예배를 위한 건물의 공간배치
 
예배장소의 요소와 공간들의 배치는, 전례회중에게 정확한 장소를 제공하여 전례거행과 전례회중의 필요에 적합한 용도로 되어야 할뿐만 아니라, 그 배치를 통해서 '전례회중의 신비' 자체를 표현하는 역할도 함께 맡아야 한다.
 
하느님의 백성의 이상적인 위치는 제단presbyterium과 본채navata 사이인데, 이것은 분리가 아니라 통교를 드러내는 표현이다.7) 제단presbyterium8)과 본채와 그 밖의 여러 구성 요소들의 그리스도교 건축의 역사는 예배를 위한 건물의 거룩한 공간 배치를 지배한 각 시대의 다양한 교회론을 비추어 준다. 환경의 통일성은 전례행위에 대한 체계적이고 공동체적인 참여를 위해 중요하다.
 
역사로 되돌아와서, 강한 벽과 세 개의 본채를 가진 로마식 바실리카와 로마네스크식 바실리카를 살펴보자. 바실리카는 모든 사람을 이미 내부 구조에 반영된 여러 계층의 교계제도로 조직하여, 말씀과 성체를 통해 신자들을 양육하는 그리스도께서 다스리시는 후진abside(後陣)으로 향하게 한다. 그와 반대로 단 하나의 본채를 가진 고딕식 건물은, 우선 말씀의 선포를 위한 하나의 거대한 공간이었는데, 설교에 전념한 탁발수도회로부터 선호되었다. 바로크 건축의 제의적 건물에서는 환경의  통일성이 사라져버린다. 여러 신심들이 각자의 환경을 조성하는 데 관심을 가져 무수한 작은 경당들과 제단들이 조성된다.
 
제단, 본채라는 두 이름을 통해 살펴본 전례거행공간의 정돈은 또한 제대altare, 사제석sedes, 독서대ambo 라는 세 이름을 통해서 살펴볼 수 있는데, 이들은 감사제사(성찬례)eucharistia, 집전praesidentia, 말씀의 선포annuntiatio verbi Dei의 특징적인 장소들이다. 또한 여기에 감실tabernaculum, 세례대baptisterium를 추가할 수 있다.
 
거룩한 공간 속에 이런 다양한 장소들의 배치를 이끌고,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 요소는, 우리가 이미 살펴본 것과 같이,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특히 전례헌장과 교회헌장에서 나타나는 '통교communio의 교회론'이다. 구체적으로 "미사에 모여 온 하느님의 백성은 위계적 질서에 따라 미사의 각 부분에서 여러 직무와 여러 행동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성당의 구조 자체가 집회의 본 모습을 드러내고 적당한 질서를 유지하며 각자의 직무를 적절히 수행할 수 있게 마련되어 있어야 한다".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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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1. 제대
 
전례헌장 41항은 '단 하나의 제대unum altare'에 대해 언급한다. 또한 교회법도 더 이상 '중앙 제대'와 '측면 제대'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 그저 '제대'라고만 표현한다.10) 제대의 단일성은 그 강한 상징적 힘을 되찾는다. "성사의 표지로 십자가상 제사가 재현되는 제대는 주님의 식탁이요, 이 식탁에 참석하기 위하여 하느님의 백성이 미사에 모여 온다. 또 제대는 성체성사로 완성되는 감사의 중심이기도 하다".11)
 
제대는 성찬례의 희생적 가치와 통교적 가치를 표현한다. 그러므로 그것은 식탁일 뿐만 아니라 또한 희생제사의 제단이다. 역할이 분명하므로 그렇게 큰 제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 드러난다. 제대는 "벽에서 떨어지게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다. 즉 쉽게 관심을 집중할 수 있도록 중심을 이루는 장소에 놓여야 한다".12) 그렇게 해서 사제와 신자들은 마치 옛 로마감사기도문의 표현처럼 제대 '주변에 둘러서게'circumstantes 된다. 그러나 제대의 중심성은 물리적 측면에서보다 영성적 측면에서 알아들어야 한다.
 
5.2.2. 사제석
 
"주례자의 좌석은 집회의 사회 직무와 기도를 인도하는 직무를 나타낼 수 있을 만한 자리라야 한다".13) '주례하다presiedere'라는 단어는 이미 3세기 중엽의 주일 성찬례에 대한 유스티노의 묘사에 언급되고 있다.14) 주례석의 우월한 위치는, 그리스도의 표지(참조. 전례헌장 7)요, 전례회중의 우두머리 격인 주례자에게 주어진 영예이며, 전례회중의 이름으로 또 전례회중을 위해서 활동하는 사제에 대한 가시적이고 실용적인 필요에 의해 배치되었다. 주례자가 주교일 때에는 '주교좌cathedra'를 사용한다.
 
5.2.3. 독서대
 
독서대는 하느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장소이다. 독서대ambone의 그리스 어원 아나바이네인anabainein(오르다)은 몇 계단 위에 배치된 독서대의 전통적 위치를 기억한다. 시나고가(회당)의 영향을 보다 직접적으로 받은 시리아 전통의 교회에서 독서대는 전례회중의 한 가운데에 배치되었다. 그리스도교 바실리카는 전례에 도입되기 전 시민 바실리카에서 후진abside의 강단에 배치된 독서대의 위치를 그대로 보존한다. 독서대에 대한 현행 규정 중, "... 독서대는 원칙적으로 고정된 자리에 마련할 것이요, 이동식 가설물이 아니어야 한다. 독서대는 성당 구조에 따라, 거기서 말씀을 선포하는 주례자나 부제나 평신도를 교우들이 잘 바라볼 수 있고 그 말씀을 잘 알아들을 수 있는 자리에 마련되어야 한다..."15)는 부분은 유동적인 면이 없지 않다.
 
5.2.4. 감실
 
감실은 성체를 보존하는 장소이다. 16세기 이후 (벽에 붙은) 제대의 중앙에 위치한 감실에 성체를 보존하는 관습이 우세하였다. [성체성사의 신비에 대한 훈령Eucharisticum mysterium]16)은 성체를 보존하는 목적들을 제시하고 (병자 영성체의 집전, 미사 밖에서의 영성체, 성체 공경 등), 성체 앞에서 기도할 것을 권고하였다. 그리고 성체를 보존할 장소를 묘사한다. 같은 맥락에서 [로마 미사경본]은 "신자들이 사사로이 성체께 조배를 드리며 기도를 바치기에 알맞은 경당에 성체 모시는 자리가 마련되는 것이 매우 바람직하다"17)라고 말한다.
 
5.2.5. 세례대 혹은 성세의 샘
 
4세기 이후 주요한 성당 밖 가까이에 세례를 집전하기 위한 건물이 세워진다. 그러나 어른 세례자의 감소와 특히 침수예식의 소멸은, 크기를 축소시킨 세례대를 본당 입구 근처, 내부의 제한된 공간에 배치하게 만든다. 교회법에서는 '세례대baptisterium'라 표현하지 않고, 다만 '성세의 샘fons baptismalis'이라 표현한다.18) 1984년의 축복예식서 라틴 표준판De benedictionibus은 '새로운 세례대 혹은 성세의 샘의 축복'을 위한 기도양식을 제공하고, 일러두기praenotanda에서는 "성당의 주요 부분 중에서 성세대와 성세수를 보관하는 장소는 특히 중요하다... 성세성사가 신자 생활의 시작이므로, 모든 주교좌 성당과 본당들은 각기 성세대, 즉 성세의 샘이 흘러나오거나 보관되는 장소가 마련되어 있어야 한다"19)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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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제의적 건물의 전례제구들
 
제의적 건물의 전례제구들에 대해 간단하게 언급하면서 이 장을 마치도록 한다. 전례용구들에는 전례용기, 전례복과 그밖에 직접적으로 전례적 용도를 위해 마련된 십자가(十字架), 성화상(聖畵像), 종 등이 있다. 이 영역에 필요한 기준들은 전례헌장의 제 7장 '성미술(聖美術)과 전례제구(典禮祭具)'에 제시되어 있고, 그에 이어 미사경본의 일러두기praenotanda에 명확하게 설명되어 있다.20)
 
예배를 위한 건물에 배치된 성화상들은 특별한 중요성을 가진다. 이들은 그리스도교 신심의 역사에서 교리교육적이고 신비교육적인 역할을 뛰어나게 수행하였다. 어떤 면에서 성화상은 친밀감을 형성하고, 현존의 매개체가 되며, 통교로 이끌어 준다. 성화상의 숫자는 지나치게 많아서는 곤란할 것이며, 전례거행을 위해 적합한 공간을 방해하지 않도록 배치되어야 한다.21) 성화상은 결국 고립된 요소가 아니라, 성음악(聖音樂)과 성가의 언어와 함께, 성사적 행위와 함께, 기도와 함께, 선포되는 말씀과 함께 하는 것이다. 그 중에 십자가는 특별한 중요성을 가진다. 그것은 성찬례 거행을 주도하기에, 꼭 제대 위는 아니라 할지라도 잘 보이는 장소에 배치해야 한다.
 
전례제구들과 같은 보다 덜 중요한 물건에서도 예술적 요구는 존중되어야 한다. 모든 물품은 정해진 용도에 따라 적응되어야 하기 때문에, 이 영역에서 각 백성의 고유한 전통과 문화에 따른 적응의 보다 광범위한 자유가 주어졌다.22)
 
성당과 제대의 봉헌, 그리고 주요 전례용품들의 축복은 그들이 의미하는 가치를 더욱 풍성하게 하려는 상징적 행위들이다. 성당의 봉헌예식은 아주 오래된 전통을 가지고 있다.23) 성당 봉헌 축일들은 제 2천년기의 전례실천의 특징을 이루는데, 금세기의 전례개혁에서는 많이 간소화되었다. [성당과 제대 봉헌 예식서](1977년 5월 22일 공포)는 교회 공동체를 표현하는 다양한 문화적 상징들을 종합하고, 특히 '교회-성전'과 '교회-하느님의 백성'의 주제를 깊이 살펴봄으로써 모든 형태의 (외형적) 성역화sacralizzazione를 극복한다.24) 그리고 같은 동작과 표지의 반복을 제거함으로써 성찬례가 성당 봉헌 예식의 중심역할을 다시 맡도록 하였다. 예식서는 이런 식으로 '교회-건물'은, '교회-신자 공동체'가 가시적으로 또 물질적으로 드러나는 형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 글은 현재 로마 안셀모 대학에서 전례학을 전공중인 대구대교구 장신호 요한보스코 신부님께서 번역하신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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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역주. 이 부분은 마티아스 아우제(Matias AUG )의 저서 Liturgia - Storia, Celebrazione, Teologia, Spiritualit , Edizoni Paoline, 1992 Milano, pp. 73-83 의 번역이다.
2) J. Dani lou, Il segno del tempio o della presenza di Dio, Morcelliana, Brescia 1960; Y.-M.-J. Congar, Il mistero del tempio. L'economia della presenza di Dio dalla Genesi all Apocalisse, Borla, Torino 1963; Aa.vv., La Chiesa: spazio liturgico della comunit  cristiana, numero monografico di RL, 66(1979), fascicolo n. 4; P. Jounel, Luoghi della celebrazione, in: NDL, pp. 783-799; Aa.vv., Gli spazi della celebrazione rituale (a cura della Facolt  teologica di Sicilia), Edizioni O.R., Milano 1984; A. Adam, Corso di liturgia, 위의 책, pp. 339-364; G. Grasso, Edificio sacro, in: Enciclopedia di pastorale, 3: Liturgia, 위의 책, pp. 91-96; J.  venou, Celebrare nello spazio, in: Aa.vv., Assemblea santa, 위의 책, pp. 116-131.
3) 유다 성전은 자연적 성전에 대해 발전을 나타내지만, 그것을 없애지는 않는다. (참조. J. Dani lou, Il segno del tempio, 위의 책, pp. 22-23).
4) 참조. C. Mohrmann, Les d nominations de l'glise en tant qu'edifice en grec et ne latin au cours des premiers si cles chr tiens, in: RevSR 36(1962) 155-174.
5) "Facta est vobis haec ecclesia: sed vos magis estis Ecclesia"(Augustinus, Sermo 359, 9 in: PL 39, 1597).
6) 역주. 쇄신, 복원, 복고라도 번역할 수 있으며, 문예부흥과 구별하기 위해 '가톨릭 부흥'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7) 참조. C. Militello, Il popolo di Dio tra navata e santuario, in: Aa.vv., Gli spazi della celebrazione rituale, 위의 책, pp. 11-39.
8) Presbyterium은 사제들이 앉는 장소이다. 자주 이곳에 제대가 배치되기도 한다. 그러나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역주. 예를 들어, 성 베드로 대성당의 교황제대는 건물의 십자가형 평면이 서로 교차하는 곳(성 베드로의 무덤 바로 위)에 위치하고 있다.
9) 미사경본 총지침, 257; PNTL, p. 182.
10) 참조. 교회법, 1235-1239.
11) 미사경본 총지침, 259; PNTL, p. 183.
12) 미사경본 총지침, 262; PNTL, p. 183.
13) 미사경본 총지침, 271; PNTL, p. 185
14) 참조. 유스티노, 호교론 I, 67, in: San Giustino, Le Apologie, Introduzione e traduzione di I. Giordani, Citt  Nuova, Roma 1962, p. 125.
15) 미사경본 총지침, 272; PNTL, p. 185
16) 참조. EDIL I, nn. 899-965.
17) 미사경본 총지침, 276; PNTL, p. 186.
18) 참조. 교회법전, 858조. (역주. 한글판 교회법전에는 '세례소'라 번역되어 있다).
19) 축복예식서, 832-833.
20) 참조. 미사경본 총지침 287-312; PNTL, pp. 188-192.
21) 참조. 미사경본 총지침, 278; PNTL, p. 187.
22) 참조. 미사경본 총지침, 287; PNTL, pp. 188. 192.
23) 참조. P. Jounel, Dedicazione delle chiese e degli altari, in: NDL, pp. 352-367.
24) 교회법은 항상 예배를 위한 장소의 '봉헌dedicatio'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지금까지 사용해오던 '축성consacratio'라는 표현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다.
 
[출처 : 전례학 동호회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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