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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 장1)  전례행위: 예식, 표지, 상징
장신호 신부 역

그리스도교 환경에서 '전례거행', '전례를 거행하다'라는 용어들은 참되고 고유한 전례행위만을 배타적으로 특징짓는다.2) 그러므로, '전례거행'이라 말할 때, 고유하게 전례행위로 이해된다. 전례거행은 함께 모인 전례회중의 행위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구원 사건을 명상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예식의 광대한 다양성 속에 실현된 내용들을 비추어줄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교회의 행위이다. 전례를 거행하는 것은 예식의 형태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다. 전례거행은 결국 고유한 언어를 가진 개별 예식들로 구성되어있다.
 
 
6.1. 예식3)
 
전례거행을 신앙의 참된 체험의 순간으로 만들어보려는 그리스도인들이 겪는 가장 큰 어려움들은 개별 예식들의 불분명성과 같은 것들이 아니라, 전례적 언어 그 자체에 대해 현 시대의 감수성이 느끼는 일반적인 소외 현상이다. 오늘날 전례적 경험을 어렵게 하는 태도들 중에 대표적인 것으로 개인주의, 영성주의, 세속주의 등이 있다.4) 그러므로 예식을 교육하고, 전례적 행동의 의미를 계발하는 것이 필요하다.
 
예식에 대한 일의적(一意的)인 정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 개념을 분석하는 것은, 종교적 경험의 일반적인 의미와 가치들에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기에, 예식에 대한 협의적 개념보다 오히려 더 큰 문제를 초래한다. 예식은 결국, 인간적 의미를 갖는 행위와 전통적으로 고정된 양식에 따른 종교적 의미를 갖는 행위를 모두 포함하는 폭 넓은 용어이다. 문제의 용어 '예식'은, 우주질서와 그 질서에 따른 신들의 행위를 가리키는 인도-유럽어원 '르탐R tam'으로부터 유래한다는 것이 어원학으로부터 확인되었다. 예식은 질서에 순응하여 조화를 이루는 것이요, 이미 제정된 구조에 따른 행위이다. 두르크하임E. Durkheim에 따르면, '집단의 소개(대표)'라는 사회학적인 전망 속에서, 예식은 한 공동체가 스스로를 소개하고, 고유한 확신, 가치, 믿음을 살아가고, 거울처럼 스스로를 비추어보고, 고유한 계획을 선포하고, 거행하고, 확인하는 순간이다.5) 예식의 형성은 쉽게 이해된다. 사람은 또한 그의 '세속적' 삶에서도 이미 정해진 예식의 형태에 따라, 인격 상호간의 통교와 의무를 확립하고, 돕고, 측정하고, 함께 한다. 예식성ritualitas은, 특정한 문화 체계 안에서 스스로를 자리 잡게 하고, 또 다른 사람과의 관계 안에 자리잡게 하고, 관계를 확립하게 하고, 가치를 인정하게 해주는 '상징의 영역'을 이끌어 가는 일관된 모든 것을 말한다.
 
예식의 가장 큰 특징은 반복성이다.6) 예식은 반복 가능하게 계획된 행위이다. 이 관점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예식의 행위가 다른 사람들과 결합하기 위한 항구하고 반복 가능한 과정들의 총체라는 사회화의 넓은 배경의 한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예식은, 특정 집단이 더욱 깊은 통합(결속) - 자기 구성원 사이나 다른 인간 집단과의 결속뿐만 아니라, 재배를 받고 있으면서도 결코 완전하게 지배할 수 없는 실재들의 총체와의 결속 - 의 필요성을 느낄 때, 발생한다. 이것은 거룩함(성성) 혹은 초월자와 (결속을 이루는) 사회화의 한 형태이다.
 
그리스도교 예배의 반복성은 유다 예배의 경우와 동일하게 기념memoriale o commemoratio이다.7) 전례거행을 구성하는 예식화된 상징적 행위들을 통하여 교회는, '하느님이 전례행위 안에서 기념되는 역사적 과거의 행위의 (현재적) 구원 효과를 이루신다'고 선언한다. 당연히 그리스도교적 관점에서 기념예식의 중심은 그리스도라는 사건이다.
 
종교적 예식은 서로 구별되지만 상호 의존적인 두 가지 단계로 충만한 결합을 이룬다. 첫 번째 그리고 보다 깊은 단계는 거룩함(성성) 또는 초월자와 이루는 것이고, 두 번째 단계는 자신이 속한 집단과 이루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 어떤 종교가 예식의 주기와 의미를 잃어버린다면 도덕주의나 영지주의로 전락하거나 혹은 아예 사라져버릴 것이라고 확언할 수 있다. 종교적 예식이 우선 인간과 초월자 사이의 관계를 표현하는 언어로 이해된다는 것은 근본적인 사실이다. 하느님에 대한 신앙, 하느님의 의미, 하느님에 대한 경청 그리고 하느님께 간청하는 것 등은 참된 종교적 예식의 근원적 토대이다. 만약 하느님에 대한 이런 확신이 없거나, 예식을 통해 이룩하지 못한다면 이 예식은 형식주의로 전락한다. 신앙은 삶으로 실천되어야 하는 만큼 (예식으로) 거행될 것을 요구한다. 신앙인이 하느님과 자신이 맺는 통교를 표현하는 언어로서 역할을 다하지 못할 때, 종교적 예식은 그 의미를 잃어버린다.
 
앞에서 말한 것을 요약하면, 예식은 반복과 공동 참여를 돕는 전통적 성격으로 이미 형성되고 조직된 체계에 의하여 말과 행위로 구성된 상징적 행위이다. 결국, 상징의 개념과 상징으로서 예식의 개념을 자세히 살펴보는 것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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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표지와 상징8)
 
상징 그 자체를 분석하거나 그 본성에 대해 숙고하려는 것이 아니라 전례 거행 행위의 영역에서 가지는 역할과 위치로부터 출발하여 상징에 접근할 것이다. 사실, 상징은 상징적 행위가 되지 않는다면 충만하게 드러나지 않은 것이다. 이렇게 해서 물의 상징은 정화를 위한 씻음이 되고, 기름의 상징은 도유가 된다.
 
모든 전례적 상징의 핵심은 바로 성사들에 의해서 구성되었다. 오늘날 고전 신학teologia classica은 성사가 '의미하는 것의 효과적 표지significando causant'라고 정의한다. 이런 이유로 몇몇 저자는 성사를 '전례적 표지'라 말하기를 선호한다.9) 전례헌장은 전례를 설명하면서 '가시적 표지'라고 말한다(전례 7). 그러나 현직 저자들의 대다수는 표지의 개념이 아니라 상징의 개념이 보다 성사들에게 적합하다고 믿는다: 즉, 성사들은 은총을 의미하는 단순한 도구에 불과한 사물들이 아니라, 은총을 요청하고 실현하는 상징적 행위들이라는 것이다. 표지는, 그 자체로는, 자신밖에 존재하는 한 실재를 가리킨다: 연기는 불의 존재를 가리키고, 푸른 신호등은 진행을 가리킨다. 상징은 함축적 의미를 더욱 많이 가진 언어이다. 우리가 알도록 할뿐만 아니라, 그의 역동성에 우리가 개입되도록 한다. 상징이 역동적인 것은 관계를 유발시키기 때문이다: 다른 실재를 요청하면서, 반향을 불러일으키면서, 일련의 관계를 촉발시키면서 활동한다. 전례거행은 다만 통교와 의사전달을 실행시키는 것으로만 이해되고 실행될 수 있다. 어떤 면에서 예식은 이미 나타내는 것 그것이고, 예식이 속하는 존재의 등급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표지와 상징이 구체적으로는 항상 섞여 사용된다 할지라도, 현대 신학의 인간학적 사색은 표지에 부여된 관습적이고 자유의지적인 의미에 반대하여 '의미하는 실재res significans'가 자연적으로 가지는 요청하는 힘(능력)을 강조하려고 '상징'이란 용어를 선호한다. 그러나, "현재 상태에서, 상징주의의 재평가가 성사신학의 숙고에 얼마만큼 정보를 제공하였는지 결정하는 것은 아직 불가능하다".10)
 
6.2.1. 상징이란 무엇인가?
 
'상징'이란 용어는 보는 각도에 따라 다양한 의미와 어감을 갖는다. 다의적(多義的)인 대지를 정리하기 위해 용어의 어원론을 다시 정립하는 것이 유용하다. 그리스 어근에서 이 말은 두 부분이 함께 놓여진 것을 말한다. 동사 심발레인symb llein은 '함께 두다'를 의미한다(이 뜻의 반대말은 디아볼로스di bolos, 분리하다). 고전적 의미에 따르면 명사 심볼론symbolon은, 계약체결자들이 한쪽씩 가지도록 둘로 잘라진 물건을 말한다. 그의 상징적인 가치는 다른 한 편과의 관계 속에서만 주어진다. 그러나 동사 심발레인은 '함께 두다'라는 뜻 이외에 '함께 재배열하다'라는 다른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이미 이전에 함께 있었고, 지금 그렇지 못한 것들을 함께 배치한다. 상징은 일치를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이전의 일치를 재정립하는 것이다. 마치 사람이 자신의 존재의 단일성으로 인해서 육체적인 것들(예를 들어서, 일, 활동 등)을 영성화 할 필요가 있는 것처럼, 같은 이유로 또한 사람은 영적인 것을 육체화할 필요가 있다. 상징을 통해서 사람은, 늘 함께 하면서도 그들의 다른 본성으로 인해서 사람과 분리되어 있는 그런 실재들을, 자신 안에 재통합한다. 상징이란 용어의 의미론적인 영역은, 한 집단 안에 수용되어 그렇게 각 개인에게 인정되고 인식되어지는 모든 요소들(즉 사물, 음성, 동작, 인격 등)로 확대된다. 각 집단과 동일하게 교회도, 신앙의 상징(즉 신경)이라 불려지는 신앙 고백문으로부터 시작하여 고유한 상징을 통하여 자기 자신을 식별한다. 그러므로 상징은 특정한 세계에 속한 사람들 사이에 상호 식별과 인정의 수단이다.
 
6.2.2. 상징의 역할
 
사람이 행하는 실재의 해석들은 상징적인 성질의 것이고, 사람이 자신의 해석을 표현하는 언어도 이미 상징적이다. 상징주의 속에서 실재와 새로운 관계를 발견하고,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실재들과 다른 양식으로도 의사를 전달할 가능성을 발견한다. 그러므로 인간의 상징적 능력은 말하거나 특정한 것을 행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물을 특정한 양식으로, 즉 사물들을 의미적으로 광범위하게 통합하는 양식으로 바라보는데 있다.
 
사람은 초월적인 지평을 향해 자신을 개방할 때만 실재에 대한 일관되고, 통일되고, 의미 있는 전망을 가지게 된다. 그러므로 '상징적 인간'의 더욱 특징적인 관점은 그의 종교적 차원, 즉 거룩함과 하느님께 대한 그의 피할 수 없는 지향이다. 종교적 상징은, '나'라는 한계를 극복하고 이성의 단계에서 체계화하기 어려운 새로운 경험으로 열리게 하는, 인간 존재의 더욱 내밀한 필요성의 표현이다. 사람은 이성적이고 개인적인 존재일 뿐만 아니라, 자신의 육체성과 사회적 성질에 따라 (또한 교회 공동체 내에서도) 말과 행동으로 표현하고 이를 통해서 실재를 이해하는 사회적이고 상징적인 존재이다.
 
자연과 초자연, 역사와 종말, 내재성과 초월성 사이에 존재하는 변증법적 긴장은 상징주의 속에서, 근본적인 대립으로부터 벗어나 상호 인정과 실천의 상황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발견한다.
 
6.2.3. 전례적 상징.
 
예식을 상징적 행위라고 위에서 언급한 것을 상기하면서, '모든 제의적 체계를 구성하는 상징적 구조에 대한 입문은 해당 공동체의 상징적 경험이 시작된 사회화의 과정을 통해 성숙한다'는 것을 기억하자. 구체적으로, 그리스도교 전통과 성서를 통하여 그리스도교 예배의 상징주의에 접근한다. 베르나C. Bernard가 강조하는 것처럼 "상징적 활동과 신앙 사이의 관계들은 우선적으로 성서적 계시의 구조 위에 세워진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교회적 표현과 더욱 조화되는 자신의 표현을 찾아낸 교회에 의해 선택되고 전해지고 해석되는 상징적 언어를 받아들일 것을 요구한다".11)
 
전례적 상징주의는, 하느님이 자신을 계시하고, 자신의 말씀과 이 세상의 사물인 표지들을 통하여 의사를 전달하고, 사람들을 신앙으로 초대하고, 계약을 통해 사람들을 자신과 결합시키는 구원의 역사와의 긴밀한 관계 속에서 우선적으로 살펴야 한다. 지금, "이 계시의 경륜은 업적과 말씀이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실현된다. 즉 구원의 역사 속에서 하느님이 행하신 업적은 말씀으로 표시된 교훈과 사물을 밝혀 주며 확인하고, 말씀은 업적과 거기에 포함된 신비를 밝히 선포한다"(계시헌장 2).
 
그러므로 신적 계시에서 '역사적 사건'과 '해석하는 말씀'은, 다른 하나 없이는 그들의 계시 임무를 수행할 수 없을 정도로, 상호간에 긴밀한 관계에 있다. 이와 유사하게 전례 안에서, '상징적 행위'와 '신앙의 말'은 서로 긴밀하게 결합되고 서로 보충한다. 성서와 전례 사이에는 상징적 의사전달과 표현의 감동적인 연속성이 존재한다.12) 두 번째로, 전례적 상징주의는 근본적인 관점을 구성하는 교회적 전통에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다. 여러 요소들이, 교회의 삶과 신앙의 발전과의 조화 속에서 그리스도교 전례를 발전적으로 풍성하게 한다.13)
 
최소한 어원학적 관점에서 상징의 고유한 특징이 일치시키고 특정한 상황을 재정립하는 것이라면, 전례적 상징주의는 당연하게 사람과 구원의 신비 사이에, 이념적이거나 개념적인 것이 아닌 생생한 통교를 확립한다.
 
6.2.4. 상징적 창조성
 
앞에서 본 것처럼, 정확한 그리스도교 전례 안에 있는 상징들의 총체를 다시 세우거나 재정립하는 것보다, 몇몇 요소를 적응시키거나, 변형을 가하거나, 여기 저기의 잘못을 고치는 것이 훨씬 쉽다. 가변적인 요소와 불변적인 요소를 함께 가진 전례 개혁에 대한 문제를 전례적 상징주의에 대한 입문의 문제와 혼동해서는 안된다.
 
사목적 관점에서, 전수된 상징적 유산의 현명한 사용에 대한 관심을 촉구해야 한다. 예식은 언어로 이루어진 것이기에, 의사전달의 모든 가능성을 향상시킬 필요가 있다. 그것은 예식 자체를 실행하여야 할 계획으로가 읽을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감수성으로 실현하여야할 제안이나 예시로써 다시 읽을 것을 요구한다.14) 예식은 자동으로 이루어지는 효과를 가진 소비 상품처럼 이해될 것이 아니라, 유연하게 또 지혜롭게 연출을 통해 공연되어야 할 대본처럼 이해되어야 한다.
 
전례적 창조성의 주제는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헌장 37-40 항에서 다루어 졌는데, '다양한 백성의 전통과 성격에 적응하기 위한 규범'을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다. 적응의 일반 원칙들이 정립된 후에, 그 실천의 다양한 단계들이 지시되었다.15) 토착화와 적응으로 이해되는 창조성은 결코 '자발성improvvisazione'과 같은 것이 아니라, 전통적 재료로부터 출발하여, 심화하고 생활하고 나서, 다양한 백성의 문화적 요구를 향해 개방되는 오랜 시간이 걸리고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다. 기도하고 전례를 거행하는 교회는, 현대 문화에 이룩된 인간학적 전환의 긍정적인 측면에 전례라는 총체를 잘 접목하는데 성공하는 만큼, 현대 인류에게 의미 있는 선포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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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신앙을 표현하고 양육하는 전례거행16)
 
계시헌장의 가르침을 상기하면서, '신적 계시는 신자 공동체의 품에서 활동적이고 생생한 전통을 통하여 시간과 공간 속에서 그의 보편적인 목적지에 도달한다'는 것을 이해하였다. 사실, 전통의 전달에서 하느님의 말씀은 근본적으로 중요하다; 그러나, 말씀의 본성에 따르면 그것은 경청되도록 되어있다. 그러므로 전통은 교회의 교의와 삶과 전례를 또한 포함한다: "교회는 교의와 생활과 전례에 있어서 교회 자신의 모든 것과 또한 교회가 믿는 모든 것을 영구히 보존하며 모든 세대 사람들에게 전한다"(계시헌장 8).
 
그러므로 교회에 맡겨진 '계시의 유산'의 전달과정 속에서, 신앙과 전례와 생활 사이에, 즉 믿는 법lex credendi과 기도하는 법lex orandi과 사는 법lex vivendi 사이에, 긴밀한 관계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전례는 교회의 교의와 삶과 긴밀한 관계를 가진다. 전례는 신비의 로고스logos(말씀, 즉 교의)도 신비의 에토스ethos(윤리)도 아니지만,  자신(전례)의 충만한 진실성을 유지하기 위해 함께 필요로 하는 교의와 윤리와 관계를 설정하고 동시에 그들을 함축하는, 신비의 심볼론symbolon(상징)이다.
 
전례헌장은 "성사들은 신앙을 전제로 할 뿐 아니라, 말과 사물로 신앙을 기르고, 굳세게 하고, 또한 드러낸다. 그래서 신앙의 성사들이라고 불린다"(전례헌장 59)라고 가르친다. 그러므로, 성사성은 '믿어진' 신앙과 또 '생활하는' 신앙과 함께 움직여야 한다.
 
신앙은,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세상의 그리스도교적 변화를 향한 성소를 따라 고유한 삶을 정돈하는 모든 신자들의 방향잡기이다. 또한 신앙은 사람이 "계시하시는 하느님께 [신앙의 복종]을 드러내고, 이로써 계시하시는 하느님께 [지성과 의지의 완전한 순종]을 드러내고 하느님이 주신 계시에 자의로 찬동함으로써 자기를 온전히 하느님께 자유로 의탁하는"(계시헌장 5) 태도이다.
 
사람은 생명을 그에 대한 다양한 관점과 함께 하느님의 선물로써 받아들인다. 매일의 존재의 일상적인 삶 안에서뿐만 아니라, 또한 자신을 직면하고 확인하는 특별한 순간에도 생명을 받아들인다. 후자는 신앙인의 삶의 중요한 순간이라 불릴 수 있는 성사적 순간이다. 교회의 임무는 '시대의 표지(징표)'를 관찰하고 성서에 비추어 그것을 해석하는 것이다(참조. 사목헌장 4). 그러므로 교회는 '시대의 표지'에 대해 예언자적 관점에서 바라본다. 그리고 신앙에 비추어 분명해진 이것들은 "하느님의 현존과 계획의 진정한 표지"(사목헌장 11)가 된다. 이 가르침은, 창조와 역사의 고유한 성사성에까지 확대하는 방향으로, 성사적 차원에 대한 우리들의 이해를 새롭게 한다. 사실 성사들은, 하느님의 현존의 표지인 역사적 사건들과 함께 사람을 접촉하게 하는 그런 양식으로 구성되었고 진행되어진다. 특히, 성사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하느님의 사건들을 부르고 그것을 전례적으로 재생한다고 이해된다. 사람은 성사 안에 자신의 모든 삶을 투신하고 미래의 나라의 실현을 미리 맛본다.
 
이런 전망에서, 성사들은 또한 신앙을 증거하는 장소가 된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성사들이란 신앙을 선언하는 방식이다quaedam fidei protestationes"라고 말한다.17) 그러므로 '성사적 삶은 신앙의 참된 고백이다'라고 확언할 수 있다.
 
지금까지 말한 것은, 전례 안에서 거행되는 신앙의 신비에 대한 숙고를 위해서도 또한 중요한 결과를 제시한다. 왜냐하면 전례는 신앙의 참된 고백이요, 전례가 "제의적 실천이라는 단계에서 바라본 신앙의 실재의 재성찰인 한"18) 신학의 역할을 수행한다. 그러나 전례는 인간의 성화와 하느님 예배라는 우선적 관점에서 신학을 표현하며, 전례가 신학적이거나 사변적인 목적을 직접적으로 혹은 우선적으로 가지지 않았다는 것을 잊어버려서는 안된다. 안드로니코프C. Andronikof는 전례를 "교회 안에 살아있는 신학"이라고 부른다.19)
 
이런 생각들은, 교회적 통교와 동조되어 또 전통에 대한 완전한 충실성으로 전례가 거행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우리로 하여금 알아듣게 해준다. 다만 이렇게 될 때, 전례는 신앙을 양육하고 동시에 신앙의 참된 증언이 될 것이다. 초세기의 교회는 전례적 영역에서 규율의 자유를 더욱 광범위하게 누렸지만, 사도전통을 충실하게 보존하고 표현하는 영역에 항상 주의를 기울였다. 사도전통은 교회적 통교의 보증으로 간주되었다.20)
 
'교회적 통교'에 대해 말할 때, 교회의 삶에 있어서 이차적인 체계의 관점에 우선적으로나 혹은 그것만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교회 자체 혹은 교회의 신비를 가리킨다. 교회헌장이 교회의 신비를 '통교의 신비'로, 보다 정확하게는 '모든 구원 역사의 종착점인 신적 생명과의 통교', 즉 '그리스도 안에서 아주 특별한 방식으로 역사 안에서 실현되었고, 성령을 통하여 교회 안에서 또 신자들의 마음 안에서 이루어지는 통교'로 묘사한다. 그러므로, 교회가 하느님과 또 자신에게 속한 백성들 사이에 일치와 통교가 되는 것은 오로지 성령의 능력이다. 그러므로, 통교는 아래로부터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은총이요 선물이다. 즉 통교는 한 분이신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한 아버지의 선물이 단일한 신앙과 단일한 세례를 통하여 주어지고, 단일한 성체성사로 의미를 찾고 실현되는 것이다. 성사적 표지는 완전한 차원에서 교회적 통교를 이룬다.
 
결론적으로 '전례는 교의와 윤리와 동시에 관계를 맺으며, 그들을 동시에 함축하는 상징적 중개이다'라고 우리는 확언할 수 있다. 다른 말로, 기도하는 법은 그 자신의 성질로 믿는 법과 생활하는 법과 완전한 동조를 이룬다. 예배에 관한 모든 것은 또한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삶과 신앙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주교는 이런 동조의 봉사자이며 보증인이다. 그의 임무는 사도교회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을 충실히 보존하는데 있다. 전례서의 규정들은, 이런 원칙에 비추어, 예식주의의 장벽도 또 쉬운 자발성도 피하면서 해석되어져야 한다.
[이 글은 현재 로마 안셀모 대학에서 전례학을 전공중인 대구대교구 장신호 요한보스코 신부님께서 번역하신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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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역주. 이 부분은 마티아스 아우제(Matias AUG )의 저서 Liturgia - Storia, Celebrazione, Teologia, Spiritualit , Edizoni Paoline, 1992 Milano, pp. 84-96 의 번역이다.
2) 참조. M. Sodi, Celebrazione, in: NDL, p. 233.
3) A. M. Di Nola, Rito, in: Enciclopedia delle religioni, 5, Vallecchi, Firenze 1973, pp. 428-440; G. Gevaert, La dimensione antropologica dei riti cristiani, in: Aa.vv., Fede e rito. La dimensione rituale nell'esperienza di vita cristiana, Edb, Bologna 1975, pp. 45-79; F. Isambert, Rite et efficacit  simbolique, Cerf, Paris 1979; L. Bouyer, Il rito e l'uomo. Sacramentalit  naturale e liturgia, Morcelliana, Brescia 1984; S. Maggiani, Rito/Riti, in: NDL, pp. 1223-1232; S. Rosso, Rito e celebrazione, in: Enciclopedia di pastorale, 3: Liturgia, 위의 책, pp. 25-37.
4) 이에 대한 더욱 광범위한 문제제기를 보려면, C. Di Sante, Il rinnovamento liturgico: problema cultuale, Edb, Bologna 1978, pp. 248-250.
5) 참조. E. Durkheim, Le forme elementari della vita religiosa, Edizioni di comunit , Milano 1963, pp. 38-44; 405-424.
6) 참조. Eliade, Il mito dell'eterno ritorno, Borla, Roma 1968; A. M. Di Nola, Ripetizione rituale, in: Enciclopedia delle religioni, 5, 위의 책, pp. 383-420.
7) 기념의 개념에 대해서, 제 1장을 보라.
8) A. Kirch ssner, La puissance des signes. Origines, formes et lois du culte, Mame, Paris 1962; A. M. Di Nola, Simbolismo, in: Enciclopedia delle religioni, 5, 위의 책, pp. 1064-1085; L.-M. Chauvet, Linguaggio e simbolo. Saggio sui sacramenti, Ldc, Torino-Leumann 1982; D. Sartore, Segno/simbolo, in: NDL, pp. 1370-1381; J. Aldazabal, Somboli e gesti. Significato antropologico biblico e liturgico, Ldc, Torino-Leumann 1988; L.-M.Chauvet, Simbolo e sacramento. Una rilettura sacramentale dell esistenza cristiana, 위의 책, 특히 p. 79이하.
9) 참조. A. G. Martimort, in: Aa.vv., La chiesa in preghiera. Introduzione alla liturgia, I, 위의 책, pp. 195이하.
10) E. Ruffini, Sacramentaria, in: Nuovo dizionario di teologia, Edizioni Paoline, Cinisello B. 19885, p. 1366; 또한 다음 책도 참조할 것. R. Gerardi, I sacramenti della fede cristiana, Istituto di Teologia "Ut Unum Sint", Pontificia Universit  Lateranense, Roma 1985, pp. 42-45.
11) C. Bernard, La foncion symbolique en spiritualit , in: NRT 95(1973) 1119-1136.
12) 예를 들어 참조. E. Urech, Dictionnaire des symboles chr tiens, Delachaux et Niestl , Neuch tel 1972.
13) 참조. D. Sartore, I fondamenti della liturgia cristiana nella problematica contemporanea, in: Aa.vv., Fede e rito. La dimensione rituale nell'esperienza di vita cristiana, 위의 책, pp. 17-44. 성서적 상징에 대해서는 참조. R. Riva, Simbolo, in: Nuovo dizionario di teologia biblica, 위의 책, pp. 1472-1490.
14) 참조. A. Pistoia, Creativit , in: NDL, p. 330.
15) 이 부분에 대한 참조. A. J. Chupungco, L adattamento della liturgia tra culture e teologia, Piemme, Casale Monferrato 1985; Aa.vv., Liturgia e adattamento. Dimensioni culturali e teologico-pastorali. Atti della XVIII Settimana di studio dell associazione professori di liturgia, Edizioni Liturgiche, Roma 1990; A. J. Chupungco, Liturgie del futuro. Processo e metodi dell inculturazione, Marietti, Genova 1991.
16) C. Vagaggini, Il senso teologico della liturgia, Edizioni Paoline, Roma 19654, pp. 477-508, 819-829; D. Power, Due espressioni di fede: culto e teologia, in: Concilium 2(1973) 141-150; Aa.vv., La liturgie expression de la foi, Conf rances Saint-Serge, XXVe Semaine d'etudes liturgique, Edizioni Liturgiche, Roma 1979; A. Donghi, Nella lode la chiesa celebra la propria fede, in: Aa.vv., Mysterion, 위의 책, pp. 161-192; F. Brovelli, Fede e liturgia, in: NDL, pp. 543-555; Aa.vv., Fede e sacramenti, problema aperto, numero monografico di RL 76(1989) fascicolo n. 1; J. Lopez Mart n, In spirito e verita , 위의 책, pp. 385-422.
17) Summa teologia, III, q. 72, a. 5, ad 2.
18) S. Marsili, Liturgia e teologia. Proposta teoretica, in: RL 59(1972) 456.
19) C. Andronikof, Le sens de la liturgie. La relation entre Dieu et l homme, Cerf, Paris 1988, p. 15.
20) 참조. Ignazio di Antiochia, Agli Smirnesi, 8, in: I Padri Apostolici, 위의 책, p. 136.
 
[출처 : 전례학 동호회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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