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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예배의 충만1)
장신호 신부 역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느님과 우리의 화해가 완전히 성취되었고, 우리는 하느님께 풍족한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되었다(전례헌장 5).
 
이번 장에서 우리는 구원 경륜의 전망 속에서 전례의 본성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교회의 전례와 그 중요성에 대해 성서적이고 실증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전례 거행으로부터 멀어지고 실천을 동반하지 않는 개념 만의 신학을 펼친 중세 이후 잃어버린 그리스도교 신비의 거행에 대한 올바른 전망을 회복하게 해 주었다.
 
이러한 복구에서, 예배의 일반적 개념은 위기를 맞이했으니, 교부학과 신약성서에서 발견되는 개념 사이에 유사점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 제 2차 바티칸 공의회는 옛 감사기도문에서 영감을 얻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하느님께 풍족한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되었다"(전례헌장 5)고 선언한다.
 
 
I. 예배
 
'예배'라는 단어는 교회임무의 다른 관점들과 서로 대조되게 해 놓으면, 많은 호감을 얻지 못한다.2) 성서는 형식적인 예배들을 비판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 전례행위에 적용된 이 단어 '예배'의 뜻을 분명히 밝히는 일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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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본개념
 
예배(라틴어로 cultus; 어원은 colere)는 종교적 언어 영역에서 아주 일반적인 단어이다. 예배는, 하느님과 인간을 이어주는 근원적인 관계를 나타내는 종교적인 힘의 구체적 표현이다.3) 예배는 그 관계를 실현하는 내적이고 외적인 행위들을 포함한다. 이러한 관계는, 하느님에 대해 인간이 가지는 피조물적 조건을 이해함으로써 생겨난다. 이 관계는 인간을 하느님과 완전히 다른 범주로 분류하게 하지만, 숭배 행위, 봉헌 행위, 청원 행위 그리고 종교학에서 분석되어져야 할 민감한 다른 여러 행위들을 통하여 하느님에 대한 자신의 의존성을 인정하게 한다.4)
 
예배의 기본 요소들은 복종subiectio, 경배latria, 신심devotio, 종교직무officium으로서의 신심행사pietas, 그리고 거룩함이나 다른 신비들의 '놀라움'과 '끌림' 에 대한 정서적 반응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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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자연적' 예배에서 '계시된' 예배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절정에 도달하는 성서적 계시의 전망에서, 계시된 예배의 독창성은 예배의 형태에서가 아니라 예배의 내용에서 찾아진다. 그러나, 계시된 종교는 다른 종교들의 표현 양식과 형태를 받아들이는 데 있어서, 초월자에 대한 탐구 속에서 인류가 얻어낸 결과들을 받아들이고 그 경험을 자신의 것에 합한다. 이런 의미로, 인류의 종교적 역사에서 계시된 예배 이전 단계,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에게서 그 정점에 도달하게끔 점진적으로 성장하는 역동성의 단계를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
 
가. 종교들 안에서의 예배 : 위와 같은 전망 속에서 제 2차 바티칸 공의회는 비그리스도교 종교 안에서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 진리를 반영하는 섬광"(비그리스도교에 관한 선언 2)을 발견하도록 초대한다. 이들 종교는, 하느님 체험을 통하여(참조. 사목헌장 7),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들을 인도하며, 또한 진리의 빛(참조. 요한 1, 9)에 도달하기도 하는 그들의 교리와 계명들을 준수하면서 정직하게 살도록 노력한다.5) 그러므로 이들 종교들의 예배 형태를 이해하는 것은 그리스도교 전례의 인간학적 실체에 깊이 파고드는데 아주 유용하다.
 
나. 구약성서의 예배 : 이스라엘의 특징적인 예배요, 유일신 하느님의 경배에 치중하는 이 예배의 출발점은 출애굽 사건으로 잡아야 한다.6) 사실, 이 예배는 모세에게 주어진 계시와 연관되어 있고, 에집트 탈출(참조. 출애굽 3, 12.18 등)을 가능케 한 종교적 원동력의 한 부분을 형성한다. 사막으로 진입은 또한 주님을 만나기 위해 이방신들로부터 멀리 떨어져야할 필요성 때문이었다. 약속된 땅에 정주하고나서, 몇몇 희생제사와 우상을 금지하는 것으로 특징지위지는 예배를 조직하였고,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중심이 되게하는 성전의 건축에 이른다. 이 백성의 역사는 주변 백성들의 영향으로 인하여 넘어짐과 후퇴로 가득차게 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주님은 이 백성을 정화시켰다. 바빌론 유배는, 그 귀환 이후에 예루살렘으로 예배를 집중시키는 과정을 낳는다는 의미에서 큰 위기를 의미한다. 구약성서의 예배 속에 그리스도교 예배에서 충만함에 다다르게도리 몇몇 특징들이 두드러져 보인다.
 
1) 예배의 공동체적 차원은 우선 사회, 정치 그리고 종교의 공생관계에서 드러난다. 백성은 주님께 속해있으며, 계약을 지킬 의무가 있다는 자의식을 가지고 있었다(참조. 출애굽 19, 5-6; 신명 6, 4-9; 시편 33, 12). 축제, 예절 그리고 예배의 모든 행위들은 하느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분의 현존 속에서 살아가겠다는 백성의 제안들을 드러내도록 방향잡고 있다.
 
2) 예배의 내적 차원은 봉헌이나 희생제사같은 예절들을 제외시키는 것을 의미하거나, 영적 예배라고 표현되는 것들이 불가능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적 정결의 필요성과 계약에 충실할 필요성은 성서에서 계속 언급되고 있다. 예언자들은 예배에 있어 필수 불가결한 이런 요청들을 계속 주장한다(참조. 1사무 15, 22; 호세 6, 6; 미가 6, 8; 예레 7, 22-23).
 
예배는 관대하고 올바른 영혼(참조. 집회 35, 1-10), 즉 회개하는 마음(참조. 시편 40; 시편 50)의 봉헌으로 행해지는 것이다. 유배 이후에 종교 생활의 영성화(참조. 다니 3, 29-41)가 주를 이루게 된다. 하느님께서 원하는 예배는, 또한 가난하고 억압받는 이들과의 연대성과 사회 정의와 연결된다(참조. 신명 10, 12-13; 이사 29, 13; 58, 6-11: 아모 5, 21-24).
 
3) 예배의 종말론적 차원은 기념적 차원과 긴밀하게 연결된다. 과거의 모든 사건들은 주님께서 항상 그분의 약속을 지킬 것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축제에서 그리고 예절에서 그것들은 앞으로의 계속적인 성취에 대한 보증으로 기억된다. 성서를 봉독하는 것과 구원 사건들을 열거하는 것은(참조. 시편 78; 80; 105; 106 등), 구세주 하느님(참조. 출애굽 3, 7-10; 20, 1), 새로운 탈출(참조. 이사 43, 16-21; 48, 20-21) 그리고 인간의 양심에 새겨진 새로운 법(참조. 예레 31, 31-34; 에제 36, 17-32)에 대한 경험을 강하게 하였다.
 
다. 신약성서의 예배 : 앞에서 살펴본 구약성서의 예배에 대한 관점들은 신약에서 실재적인 연속성을 가진다.7) 이러한 의미에서 이스라엘 백성의 제의적 규정들을 대하는 예수님의 태도는 결정적이다(참조. 마태 5, 17). 이후에 그분의 모든 삶은 성서의 빛으로 제자들의 공동체로부터 해석되었다(참조. 루가 24, 27.44-45).
 
1) 예배와 예배의 모든 표현의 토대는 이제 참된 예배의 '성전'이신 예수 그 자체이시다(참조. 요한 2, 19-22). 사도들의 설교는 그분에게 성취된 구원의 기쁜 소식을 선포한다(참조. 사도 1, 4; 2, 33.38-39; 갈라 3, 14). 하느님의 선물은 마음의 회개와 신앙에 연결되어, 신적 거룩함을 본받는 삶을 영위하게 한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같이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라"(마태 5, 48; 참조. 1베드 1, 15-16). 사실 이 선물들은 성화시키고 거룩하게할 능력이 전혀 없던 제사들을 대체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빠스카 희생제사의 열매이다(참조. 히브 9, 13). 세례(참조. 마르 16, 16: 로마 6, 4-10), 성체(참조. 1고린 11, 23-26; 사도 2, 42.46) 그리고 그 밖의 성사들은 이 희생제사의 구원능력을 가지고 있다.
 
2) 새 예배또한 사회적이고 공동체적이다. 이전에 '왕다운 사제요 거룩한 겨레'(1베드 2, 9; 참조. 묵시 1, 6: 5, 10)로 모였던 백성들은 이제 성령 안에서 하나의 형제로서 모이게 된다(참조. 사도 2, 42-45; 4, 32-35 등).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고(참조. 1 고린 1, 2), 전례회중으로 모이는(참조. 1고린 11, 18.20; 14, 28) 이들 공동체는 "교회"(참조. 사도 5, 11; 신명 4, 10), "주님의 교회"(사도 20, 28; 1 고린 1, 2), "그리스도의 교회"(로마 16, 16)등으로 불린다.
 
3) 새 예배는 이제 더욱 큰 이유로 내적이고 영성적이다. 새 예배는 성령의 활동으로 백성들 속에서 성장하지만, 무엇보다도 '성령과 진리' 안에서의 예배이다. 예수와 사마리아 여인의 대화(참조. 요한 4, 7-26)는 예배에 대한 신약성서의 가르침을 압축한다. 예배 장소에 대한 논란(20절)은 하느님 자신이 어떻게 경배되어지기를 바라시는 지를(22절), 다시 말해서, 새로운 성전이신 부활한 예수 자신 속에서 경배되어지기를 바라시는 지를 지적하는 예수님에 의해 반박되었다(참조. 요한 2, 21-22; 묵시 21, 22).8)
 
요약하면, '그리스도교 예배는 신자들과 공동체가 그리스도에 대해 표현하는 존재론적 연관과 함께, 자신의 삶을 신앙과 사랑 속에서 아버지께 합당한 영적 예배가 되도록 성령의 힘으로 변화를 이루는 내적이고 외적인 행위이다'라고 정의된다.9) 예배의 세속화에 대한 비판은, 예배가 사람이 된 말씀이신 그리스도의 근원적인 성성에 연결되어 있음에, 그리고 그리스도의 성사인 교회에 연결되어 있기에 사그러들고 만다.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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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전례
 
전례라는 단어는 교회의 성화작용을 언급하기 위하여 현 시대에 많이 사용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례라는 말은 이전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용법과 의미에 있어 흥미있는 변천을 이룩하였다.
 
 
1. '전례'라는 단어
 
개념을 공부하기 전에 이 단어에 부여되었던 의미와 어원을 살펴보자.11)
 
가. 그리스어권에서의 어원과 용법 : '전례'의 라틴말 리뚜르지아Liturgia는 라오스laos(백성)과 에르곤ergon(일)의 두 단어의 합성어인 그리스어 레이뚜르기아leitourgia에서 유래한다. 이 단어와 그들의 파생어인 레이뚜르게인leitourgein(봉사하다), 레이뚜르고스leitourgos(직무자)는 목적어를 뚜렷하게 밝힐 필요 없이 절대적인 용법으로, 백성으로부터 유래하거나 또는 백성에게 향하는 행위나 제안(어떤 식으로 그것이 행하여 지든지 간에)을 가리키는데 사용되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대중적인 직무는 자발적인 성격을 상실하고 그저 사회를 위해 행해지는 명예로운 봉사를 의미하게 되었다. 결국 리뚜르지아는 공적인 봉사를 명시하게 되었다. 이러한 봉사가 종교의 영역에 전해졌을 때, 리뚜르지아는 신들에 대한 공식적인 예배를 의미하게 되었다. 모든 경우에 있어 이 단어는 전문적인 의미를 가진다.
 
나. 성서에서의 용법 : 70인역 구약성서로 제한해서 볼 때, 동사 레이뚜르게인leitourgein과 명사 레이뚜르기아leitourgia는 사제들과 레위인들의 성전봉사를 명시하기 위해 각각 100회 그리고 400회에 사용되었다. 즉, 히브리어 쉐렡(참조. 민수 16, 9)과 압핟, 압호다를 번역하기 위해 레이뚜르게인, 레이뚜르기아를 사용하고, 아론의 자손들과 레위인들로부터 성전에서 수행된 참된 하느님에 대한 제의적 봉사를 항상 특별히 명시한다. 사적인 예배와 백성 전체의 예배를 위해서 70인역 성서는 라트레이아와 둘리아(경배와 영예)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결국, 그리스어 본문에서 레이뚜르기아는 레위들의 제의와 같은 의미를 가진다(참조. 지혜 18, 21; 집회 4, 14; 7, 29-30; 24, 10 등).
 
이러한 용법은 이미 레위인들의 직무와 주님께 마땅히 드려야할 백성 전체의 예배(참조. 출애굽 19, 5: 신명 10, 12)를 구별하는 해석이 첨가된 것이다. 제의적인 역할이 비록 사제들과 레위인들에의해 공식적으로 또 대중적으로 수행되었다 할지라도, 이 역할은 이스라엘 백성 전체에게 속하는 것이었다.
 
신약성서의 성서 희랍어에서 레이뚜르기아는, 사도행전 13, 2을 제외하고, 그리스도교 예배와 동의어로 나타나지 않는다.
 
레이뚜르기아는 신약성서에서 다음과 같은 뜻으로 사용되었다.
 
1) 고전 희랍어에서처럼 '영예로운 공적 봉사'라는 사회적인 의미(참조. 로마 13, 6; 15, 27; 필립 2, 25.30; 2고린 9, 12; 히브 1, 7.14).
 
2) 구약성서의 '사제들과 레위인들의 예배'라는 전문적 의미(참조. 루가 1, 23; 히브 8, 2.6; 9, 21; 10, 11). 히브리서는 이 단어를 그리스도에게 그리고 단지 그분에게만 한정하여 사용하는데, 이러한 용법은 신약의 사제직의 가치를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3) '영적 예배'라는 의미. 성 바오로는, 그의 설교를 받아들인 이들이 행하는 신앙의 복종과 같은 복음화로 나타나는 직무를 언급하기 위해 '레이뚜르기아'라는 단어를 사용한다(참조. 로마 15, 15; 필립 2, 17).
 
4) '공동체적 그리스도교 예배'라는 의미. "그들이 단식을 하며 주님께 예배드리고 있을 때에 성령께서..."(사도 13, 2)의 소절은 신약성서에서 레이뚜르기아라는 말을 제의적이고 예배적인 의미로 알아들을 수 있는 유일한 본문이다. 공동체는 기도하기위해 모였고, 바오로와 바르나바를 선교사로 파견하기 위한 기도가 안수와 함께 행해진다(참조. 사도 6, 6).
 
신약성서가 레이뚜르기아라는 단어의 사용을 자제하는 것은 그 단어가 레위 사제직과(그 자체는 이미 새로운 계약에서 존재가치를 상실하기는 했지만) 가진 연관성 때문이라 할 것이다.
 
다. 후대의 발전 : 유대계 그리스도인을 중심으로 하는 초기 그리스도교 저자들은 리뚜르지아Liturgia라는 단어를 다시 구약성서적인 의미로 사용하지만, 이미 새 계약의 예배에 적용한다(참조. 디다케 15, 112); 끌레멘스의 첫 번째 편지 40, 2.5).
 
그리고 나서 리뚜르지아Liturgia라는 단어는 아주 다른 용도로 사용되게 되었다. 즉, 동방 교회는 그리스어 레이뚜르기아로 성찬례를 가리킨다. 그러나, 라틴 교회에서 리뚜르지아는, 라틴화된 그리스어원의 다른 종교용어들과 반대로 잊혀지게 되었다. 리뚜르지아 대신 직무나 봉사를 나타내는 다른 라틴어들(munus, officium, ministerium, opus)이 사용되었다. 그러나 성 아우구스티노는 '라트레이아'와 동일시하면서 예배 직무를 언급하기 위해 이 단어를 사용한다.13)
 
16세기를 지나면서 리뚜르지아는, 교회의 예절의 역사나 그 설명에 대한 몇몇 서적의 제목에 다시 등장한다. 그러나 이런 의미가 덧붙여진 리뚜르지아는 예식이나 예절서와 동의어로 받아들여진다. 전례운동이 현재의 용법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19세기 중반이후, 리뚜르지아라는 단어는 교회의 언어에서 폭넓게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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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제 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의 전례의 정의
 
앞에서 살펴본 것에도 불구하고 전례의 개념을 정의하기는 쉽지 않다. 이런 의미에서 전례헌장은 역사적인 이정표를 남겼다. 이전 단계부터 살펴보자.
 
가. 정의를 위한 접근들 : 전례운동이 시작된 이후 제안된 정의들은 미적, 법적, 신학적 등 세 가지 종류였다.14)
 
1) 미적 정의: 이 부류의 정의에 의하면, 전례는 '예배의 외적이고 감가적 형태', 즉 예절과 예식을 합한 것을 말한다. 전례의 외형적 대상은 종교적 심성의 미적이고 외적인 관점에서 찾아진다. 전례는 신앙 진리의 감각적이고 장식적인 표현이다. 그러나 이 정의는 전례의 본성이란 측면에서 살펴볼 때 불충분하고 불완전하다. 그래서 교황 비오 12세는 회칙 [하느님의 중재자Mediator Dei]에서 이 정의를 분명하게 거부한다.
 
2) 법적 정의: 여기에서 전례는 '교회 권위에 의해 조정된 것으로서의 교회의 공적 예배'로 나타난다. 그러나 이 정의에 따르면 전례는 예절의 실행을 조절하는 주서rubrica나 전례법과 동일시되고 만다. 회칙 [하느님의 중재자]는 이 정의도 부족한 것으로 본다. 사실상 이 혼란은, 교회를 하느님께 공적 예배를 드릴 의무를 가진 완전한 사회로 파악하던 당시의 불완전한 교회론적 전망에서 유래한 것이다.
 
3) 신학적 정의: 이런 정의들은 전례를 '교회의 예배'로 표시하나, 예배의 교회적 성격을 서품된 봉사자들의 활동으로 제한한다.15) 그러나 이 부류의 몇몇 정의는 같은 생각에서 출발하여, 그리스도교 전례의 핵심, 다시 말해서 "예배를 통해 표현되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신비 라는 생각에 도달하려고 노력한다.16) 전례는 교회의 제의적인 상징들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구원업적이 현재화되고 활동적이게 하는 예절 행위이거나 신비이다.17)
 
이러한 전망 속에서 다음의 정의가 만들어진다: "전례는 교회 예배의 그리고 성화의 감각적이고 효과적인 표지들의 총체이다".18) 제 2차 바티칸 공의회 [전례헌장]에 이 정의의 영향이 드러난다(참조. 전례헌장 7).
 
나. 회칙 [하느님의 중재자] 안에 나타난 정의 : 제 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에 나타난 전례의 정의 중에, 회칙 [하느님의 중재자]가 제공하는 정의는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전례의 토대는 그리스도의 사제직이니(참조. 회칙 4), 교회는 그 창립자의 명령에 충실하여 지상에서 그분의 사제적 직무를 계속하는 것이다(참조. 회칙 5). 이런 전망에서 회칙은 다음과 같이 전례를 정의한다: "거룩한 전례는 우리 구세주가 교회의 머리로서 아버지께 드리는 공적 예배이며, 신자들의 사회가 그 창립자에게 드리며, 또 그분을 통하여 영원하신 아버지께 드리는 공적예배이다. 간단하게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체 전체, 즉 머리와 지체들이 함께 드리는 예배이다"(회칙 29; 참조. 회칙 32). 이 기본 개념은 [전례헌장] 7항에 다시 나타난다.
 
동시에 회칙은 그리스도를 교회의 경배와 예배의 중심에 배치한다. 모든 전례 행위에 그리스도께서 현존한다고 명시적으로 선언한다(참조. 회칙 26-28). 그러나 이런 현존들과 구원의 역사 사이의 관계와, 또 전례주년에 대해 말하면서 주님의 신비들과 그들의 전례 거행과의 관계가 드러남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관계에 대해 검토하는 단계에 도달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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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의 개념
 
공의회 문헌중 특히 [전례헌장Sacrosanctum Concilium]은, 전례를 하느님의 백성들이 살아가는 현 상황을 결정하는 교회 생활의 본질적인 요소로서 말한다: "그런즉 전례는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의 사제직의 수행으로 간주된다. 전례 안에서 인간의 성화는 감각할 수 있는 표징으로 드러나고, 그것은 각각 고유한 방법으로 실현되며, 또한 그리스도의 신비체 즉 머리와 지체에 의하여 완전한 공식 흠숭이 수행되는 것이다"(전례헌장 7).
 
전례의 이런 엄밀한 신학적 - 또한 인간학적인 측면도 잊어버리지 않은 - 정의는 교회의 신비와 강생한 말씀의 신비에 긴밀히 의존하고 있다(참조. 전례헌장 2; 5; 6; 계시헌장 1; 7; 8 등). 역사 속에서 하느님의 효과적인 현존인 강생은, 그 의미를 성서에서 찾고(참조. 전례헌장 24) 그 지상 연속성을 하느님의 아들의 인성에서 찾는, 전례의 `행위와 말씀'(계시헌장 2; 13) 속에 지속된다.19)
 
공의회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실현된 구원의 전례적 차원을 한 편으로, `구원업적'이 그 충만에 달하게 하는 상징적이고 성사적인 양상을 다른 편으로, 분리하기를 원하였다.
 
이리하여 제 2차 바티칸 공의회가 제공하는 전례의 개념에서 다음과 같은 관점들을 살펴볼 수 있다:
 
1) 전례는 그리스도가 주요하게 그리고 교회가 함께 참여하는 모양으로 하여, 그리스도 신비체 전체의 업적이다.
2) 전례의 목적은 사람들의 성화와 아버지께 대한 예배이니, 그리스도의 사제직이 이러한 두 관점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3) 전례는 세례의 힘으로 전례 행위에 참여할 의무와 권리를 동시에 가지는 하느님의 모든 백성에게 속한다.
4) 전례는 구원을 효과적으로 의미하고 실재화하는 `행위와 말씀'들로 구성되는 한, 그 자체로 강생하신 말씀의 성사인 교회가 스스로를 드러내는 사건이다.
5) 전례는 종말론적 관점에서 교회의 시간을 결정하고 형성한다.
6) 이 모두로 전례는 '교회 활동이 지향하는 정점이며, 모든 힘이 흘러 나오는 원천이다'(참조. 전례헌장 10; 계시헌장 11).20)
 
종합적으로 전례는, 그리스도의 재림까지 시간 속에 그분을 현존케 하는 표지들을 통하여 그분의 업적을 계속하기 위해, 강생하신 말씀의 사제적 신비체요 정배인 교회가 수행하는 예배와 성화활동이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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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전례와 비전례
 
전례의 더욱 명확한 이해를 위해서, 전례행위와 흔히 신심행사라고 불리는(참조. 전례헌장 13) 비전례행위를 확실히 구분하는 것이 적합하다.22)
 
1. 전례(Liturgia)와 신심행사(Pietas)
 
사실, "전례는 예수 그리스도나 그의 이름으로 교회가 제정한 거룩한 행위로, 하느님과 성인들과 복자들에게 합당한 예배를 드리기 위해, 교황청으로부터 인가된 전례서에 준하여,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합당하게 선발된 사람들에 의해서 실행되는 것이며; 그 이외의 거룩한 행위들은, 교회 안에서 혹은 밖에서 실행되건 아니건, 그런 행위를  주관하고 함께하는 사제가 있건 없건, 항상 신심행사라고 부른다".23)
 
그렇다면, 전례와 신심행사 사이의 구별은 엄밀하게 교회법적인 것은 아니다. 그 차이는 신학적 요소에 의한 것이다. 이에 따르면, `전례적인 것'은 교회 신비체 전체에 속하고 그것을 드러내는 것이다(전례헌장 26 참조). 그렇다면 전례는 다만 그리스도의 신비와 강생하신 말씀의 정배인 교회의 성사적 본성을 표현하는 예절들 뿐이다(참조. 전례헌장 2; 7; 26; 41). 그 밖의 것은 공동체적이건 사적이건 신심행사이다.24)
 
두 번째 요소는 예배행위의 객관적 효과이다. 전례나 신심행사는 둘 다 동일한 구원사건들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모든 형태의 신심행사가 표지의 계획 속에서 이런 사건을 실현하고 요청하는 것은 아니다. 신심행사가 그리스도의 신비를 단지 관념적이고 감성적으로 요청한다면, 다시 말해서 주관적이고 심리적으로 요청한다면, 전례는 그리스도의 신비를 실현하되, 무엇보다도 예절을 통하여 구원사건의 현존으로 실현한다.25) 전례의 효과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제정의지와, 그 유효성을 위해 필요한 조건들을 현실적으로 실행함에 달려있다. 신심행사의 효과는 다만 그것을 실천하는 개인의 자세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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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신심(Devotio)
 
신심의 개념은 신심행사들에 대한 개념과 상통한다. "신심은 적절한 사회적이고 조직적인 표현을 가지면서도 전례에 합해지지 않은 종교적 실천과 기도행위를 모두 총체적으로 명명한 것이다".26)
 
사실 신심은, 성 토마스 아퀴나스와 그에 따르는 비오 12세의 회칙 [하느님의 중재자]에 의하면, "하느님을 섬기기위해 자신을 봉헌하는 원의에 따른 행위"(회칙 46)이다. 이런 의미에서 기본적인 내적 태도로서 신심은 더욱 효과적으로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는 '전례의 능동적 참여'를 지향한다.
[이 글은 현재 로마 안셀모 대학에서 전례학을 전공중인 대구대교구 장신호 요한보스코 신부님께서 번역하신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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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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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부분은 Juli n L pez Mart n 주교의 저서 La Liturgia de la Iglesia - Teolog a, historia, espiritualidad y pastoral [= BAC Manuales 6], Madrid 1994, pp. 31-42를 번역한 것이다.
2) 참조. Cox, H., La ciudad secular, Barcelona 1986; Maldonado, L., Secularizaci n de la liturgia, Madrid 1970; Pannikar, R., Culto y secularizaci n, Madrid 1979.
3) 참조. Chatillon, J., Devotio, in: DSp 3, pp. 702-716; L pez Mart n, J., "Adoraci n", in: DTDC, pp. 5-11.
4) 참조. Eliade, M., Historia de las creencias y de las ideas religiosas, 1-4, Madrid 1978-1984; Leeuw, G. Van Der, Fenomenolog a de la religi n, M xico D.F.-Buenos Aires 1964; Mart n Velasco, J., Introducci n a la fenomenolog a de la religi n, Madrid 1979; Sahag n, J. de, Interpretaci n del hecho religioso, Salamanca 1982; Waal, A. de, Introducti n a la antropolog a, Estella 1975; Windengren, G., Fenomenolog a de la religi n, Madrid 1976 등.
5) 참조. Lotz, J.B., "El cristianismo y las religiones no cristianas en su relaci n con la experiencia religiosa", in: Latourelle, R., Vaticano II: Balance y prespectivas veinticinco a os despu s(1962-1987), Salamanca 1989, pp. 905-919; Rossano, P., "Religiones no cristianas", in: NDL, pp. 1714-1721.
6) 참조. Chary, Th., Les proph tes et le culte   partir de l  xil, Tournai 1955; Eichrodt, W., Teolog a del Antiguo Testamento, Madrid 1975, pp. 89-161; Kraus, J.H., "Gottesdienst im Alten und Neuen Bund", in: Evangelische Theologie 25 (1965) 171-206; Rad, G. von, Teolog a del Antiguo Testamento, 1, Salamanca 1972, pp. 295-531.
7) 참조. Garc a, J.M., "El culto en Jes s y en la Iglesia primitiva", in: Aa.vv., Espiritualidad lit rgica, Madrid 1986, pp. 21-46; Hess, K., "Servicio (latre  , leitourg  )", in: DTNT 4, pp. 216-219(bibl.); Stenzel, A., "El servicio divino de la comunidad reunida en Cristo. Culto y liturgia", in: MS IV/2, pp. 26-59 등.
8) 참조. Potterie, I. de la, "Adorer le P re dans l Esprit et le v rit  (Jn 4,23-24)", in: La v rit  dans Saint-Jean, 2, Roma 1977, pp. 673-706; Braun, F.M, "Le culte en esprit et en v rit ", in: Jean le th ologien, 3/2, Paris 1972, pp. 249-271; L pez Mart n 1, pp. 44-55.
9) "culto"라는 항목을 찾아보라, in: Cath 3, pp. 359-368; in: DETM, pp. 158-171; in: DTI 2, pp 208-223; in: LThK 6, pp. 659-667; in: NDT 1, pp. 285-298; in: SM 2, pp. 92-97 등; 참조. Mazza, E., "L interpretazione del culto nella Chiesa antica", in: Associazione Professori Liturgia (dir.), Celebrare il mistero di Cristo, 1, Roma 1993, pp. 229-279; Sodi, M., "Cultus-colere nei documenti del Vaticano II", in: Dell Oro, F.(dir.), 위의 책, pp. 49-63.
10) 참조. Sodi, M., "Secularizaci n", in: NDL, pp. 1892-1908.
11) 참조. Hess, K., "Servicio (latre  , leitourg  )", 위의 책; Rodr guez, F., "El t rmino  liturgia , su etimolog a y su uso", in: CiTom 97(1970) 147-163; Romeo, A., "Il termino leitourg a nella grecit  biblica", in: Aa.vv., Miscellanea L.C. Mohlberg, 2, Roma 1949, pp. 467-519; Stratmann, H., Leitourg  , in: TWNT 4, pp. 221-238 또한, in: GLNT 6, pp. 589-636.
12) 참조. [열두 사도들의 가르침. 디다케], 정양모 역주, 분도출판사, 왜관 1993.
13) "종교적 직무나 봉사는 그리스어로 리뚜르지아나 라트리아라 부른다: ministerium vel servitium religionis, quae graece liturgia vel latria dicitur". 성 아우구스티노, Enarr. in Ps. 135, in: PL 39, 1757.
14) 참조. Schmidt, H., 위의 책, pp. 48-60.
15) "전례는 가시적 교계제도의 사제적 행위이다.", in: Beauduin, L., "Essai de manuel fondamental de liturgie", in: QLP 3 (1912-3) 56-58.
16) 참조. Casel, O., El misterio del culto cristiano, San Sebasti n 1953, pp. 83. 105이하.
17) 참조. O atibia, I., La presencia de la obra redentora en el misterio del culto, Vitoria 1953.
18) Vagaggini, C., El sentido teol gico de la liturgia (= BAC 181), Madrid 1959, p. 32. 이 정의는 더욱 광범위한 다른 정의의 종합이다: 같은 책, p. 30.
19) 참조. 교리 1070, 1103.
20) 참조. Marsili, S.,  "La teologia della liturgia nel Vaticano II"와 "La liturgia culto della Chiesa", in: Anamnesis 1, pp. 85-105, 107-136.
21) 이 개념에 대해 광범위하게 살펴볼려면, 항목 "liturgia"를 다음의 책들에서 찾아보라: Cath 7, pp. 862-902; CFP, pp. 580-594; DE 2, pp. 489-507; DETM, pp. 591-599; DPAC 2, pp. 1279-1280; DSp 9, pp. 873-884; DTDC, pp. 813-829; DTI 1, pp. 62-83; DVatII, pp. 1294-1342; LthK 6, p. 1083; SM 4, pp. 324-353; 또한 다음 책들도 참조. Fern ndez, P., "Qu  es la liturgia en nuestra cultura secular", in: CiTom 98(1971) 377-414; Le Gall, R., "Pour une conception int grale de la liturgie", in: QL 65(1984) 181-202; "Cuadernos Phase" 29, Barcelona 1991.
22) 교회법 839, 2. 이 문제에 대해서 참조: Bouyer, L., La vie de la liturgie, Paris 1956, pp. 299-314; Leclercq, J., Etudes de pastorale liturgique, Paris 1944, pp. 149-173; Marsili, S., "Liturgia e non liturgia", in: Anamnesis 1, pp. 137-156; Schmidt, H., 위의 책, pp. 88-98, 118-129.
23) 성음악 훈령 6, in: AAS 50(1958) 630-663.
24) "지역 교회의 종교적 실천"(전례헌장 13)은 전례 행위로 해석될 수 있다. 긍정적인 견해는: Marsili, S., 위의 책, pp. 154-156.
25) 참조. 마리아 공경 48, in: AAS 66(1974) 157.
26) Verheul, A., 위의 책, p. 215.
 
[출처 : 전례학 동호회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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