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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례거행1)
장신호 신부 역

"전례 행위는 사적 행위가 아니라 '일치의 성사'인 성교회의 식전이다" (전례헌장 26).
 
여기서부터 '신비의 거행' 또는 '행위로써의 전례'에 대해 다루는 두 번째 단원이 시작된다. 이 장과 다음 장에서는, 구체적인 시간과 장소에서 의미적, 제의적, 축제적 행위인 전례행위들을 살펴본다. 전례거행은, 전례를 구원역사와 그리스도의 신비를 드러내고 현재화하는 행위라고 정의하기 위한 기본 범주이다.
 
제 2차 바티칸 공의회는 전례행위가 성교회와 관계되고, 모든 하느님의 백성이 그 주체라고 가르친다(참조. 전례헌장 26). 또한 [가톨릭 교회 교리서]는 두 번째 단원에서 이 범주를 제목으로 사용하며, 이 개념을 하나의 장으로 다룬다.2)
 
 
I. '전례거행'이라는 단어
 
'전례거행'이란 단어는 사람의 축제적이고 표현적인 차원에 근거하지만, 또한 중요한 신학적 관점을 가진다.
 
1. 어원과 초기용법
 
'전례거행'과 '거행하다'(라. Celebratio, celebrare)는 단어들은 어원학적 관점에서 볼 때 '모이다'와 같은 의미이다. 즉, 동일한 장소에 여러 사람이 집합하는 행위를 말한다. 또한 '거행하다'는 항상 공통의 기억이나 공감각을 불러일으키는 사건을 전제한다.3)
 
일반 라틴어에서 이 단어들은 공동체적이고 대중적인 혹은 종교적인 색채도 함께 가지는, 이방축제, 서커스놀이, 구경거리 등을 목적어로 가진다. '거행하다'라는 단어와 그 파생어는, 경배나 영예의 외적 표현 등을 은연중에 상징하면서, 신들과 전쟁영웅이나 체육영웅과 같은 사람들에 대한 영예로운 관점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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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리스도교 라틴어에서
 
이런 의미들은 그리스도교 라틴어에 전달되었다. 그리고 그리스도교 신앙과 라틴 문화 사이에 일어난 공생으로 언어가 풍부하여졌다. 그 결과, '전례거행'과 '거행하다'등은, 성서의 라틴어 번역에, 성인(聖人) 교부들의 라틴어 저술에, 그리고 라틴어 전례서 등에 사용된다.4)
 
가) 성서의 라틴어 번역은 고정된 용어 사용의 결정을 미루었다.
 
사실, 동사 '거행하다(라. Celebrare)'가 그리스어 '포이에오(만들다)'를 번역할 때에는, 오로지 제의적이고 종교적인 의미를 가지며, 구원 사건의 기념 속에서 일치의 상징이 되는 (출애굽 12, 48; 13, 5; 신명 16, 10-13 참조) 파스카 혹은 다른 축제들 그리고 몇몇 예배 등을 특별히 목적어로 취한다.
 
그러나, 그리스어 '에오르타조(축제를 하다)'를 번역할 때에는 축제의 대중성과 주님께 영광 드리기 위해 모인 군중들을 암시한다 (출애굽 12, 14; 23, 14; 레위 23, 39.41; 민수 29, 12; 1고린 5, 8).5)
 
'칼레오(부르다)'를 '거행하다(라. Celebrare)'로 번역하는 것은, 전례 집회가 그 기원을 신적 부르심(레위 23, 24)에 두고 있다는 것을 가리킨다. 이런 용법은 아주 의미 있는데, 그것은 이 용법이 단어 '에클레시아(주님의 부르심)'와 연관되기 때문이다.6)
 
반면, 동사 '사바티조(안식일을 준수하다)'를 '거행하다'로 번역하는 것은, 주님의 업적을 기념하기 위한 신적 부르심의 반복(매주마다; 레위 23, 32; 2고린 36, 21)을 암시한다.
 
끝으로, '아고(결과를 얻다)'를 '거행하다'로 번역하는 것은 안식일이나 성전의 봉헌 같은 구체적인 예절을 드러낸다 (2마카 2, 12; 6, 11).
 
나) 교부 라틴어 : 라틴 교부들은 이방 예배들을 언급할 때에 '전례거행'과 '거행하다'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또 그리스도교 전례에 대해서도 이러한 단어들을 사용하였다.
 
테르툴리아노와 성 치프리아노는 이렇게 사용하는 초기의 사람들로, 그들은 [하느님과의 만남]과 [전례거행을 위해 모인 이들이 사랑 안에 이루는 통교]를 분리하는 입장을 취한다.7)
 
성 암브로시오는 '거행하다'라는 단어에 더욱 고유한 전례적 내용을 실어, 그리스도인의 혼인(을 거행하다), 삼위일체적 삶의 형상(을 거행하다), 주님의 파스카의 생활(을 거행하다) 등과 함께 사용하였다.8)
 
카시아노는 수도승들의 전례적 모임 안에 일치라는 의미에서 '직무(officium)'와 '거행하다(celebrare)'의 단어를 합하여 'celebrare officium'으로 사용한다.9)
 
성 아우구스티노는 거행되어지는 대상(그리스도, 순교자 등)을 본받을 것을 권유한다.10)
 
성 레오 대교황의 강론집에서 '거행하다'라는 동사는 항상 그리스도교 축제들에 존재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를 언급한다.11) 또한 그의 강론집에서 이 동사는 신심(devotio), 기쁨(gaudio)과 같이 거행되어야 하는 영적인 활동이나 혹은 그 이후에 뒤따라야 하는 도덕적 품행을 암시하는 데 사용되기도 한다.
 
끝으로, 아퀼레이아의 성 크로마시오는 '거행하다'라는 단어와 그 동의어로, 구약성서의 표지로부터 그리스도의 구원활동에 이르는 전 구원역사의 새로운 현존으로 전례거행을 생각한다.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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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전례서에서
 
역사를 통하여 이런 용어들의 의미가 쌓인 것은 또한 전례서에서도 발생하였다.13) 전례거행의 대상은 주님의 신비, 특히 파스카의 신비에서부터 성모 마리아와 성인들의 기념, 그리고 신자들의 실천으로 넘어간다. 그렇다면, 여러 언어로 전례서를 편찬하는 것은 (지역교회의) 교회적이고 공동체적인 관점을 특별히 부각시키는 것이다 (전례 7, 9, 26-28, 41장; 교회 26장).
 
 
4. 소결론
 
종합하면, '거행하다'는, 어떤 이에게 영광 돌리거나 어떤 사건을 축하하기 위해 동일한 장소에 모이는 것으로 출발하는 공동체적이고 사회적인 행위를 행하고, 실현하는 것을 말한다. 여기에 덧붙여, 그리스도교의 영역에서 '거행하다'는, 전례에 참석하는 이들에게 공통인 행위와 예절을 수단으로 하여, 특별하고 의미 있는 시간을 주님께 봉헌하고, 삶의 일관된 품행과 제의적 활동들에 자신을 봉헌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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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전례거행의 개념을 향한 접근들
 
전례거행과 같은 풍부하고 복잡한 현상은 인간학적으로 살펴보고 나서 신학적으로 살펴보아야 한다.
 
 
1. 인간학의 관점에서
 
인간의 행동에 대한 연구에 있어서 전례거행은, 개인의 영역과 그가 이루는 다른 이들과의 관계의 영역에서 동시에 이해되어져야 하는 사건이다. 이런 의미에서, 전례거행은 본질적으로 사회적이고 공동체적인 현상이며, 관계와 만남의 수단으로 정의되어질 수 있다. 전례거행은 개방성을 형성하고 하나의 이상이나 공통의 관심사를 바탕으로 하여 상호접근을 유발한다.14)
 
종교적인 관점에서 전례거행은, 사람들이 거룩하고 초월적인 가치에 대한 자신의 감정과 확신에 따라, 종교적이고 제의적인 차원에서 같은 수준으로 응답하는 단계에 도달하도록 하려고, 그들의 삶에 연관되어있다. 전례거행은 자신의 언어로 모든 의미 있는 요소들(장소에서부터 사물, 동작, 상징, 순간, 환경 등)을 포함하고, 그들을 의미의 전달자로 바꾸어 원할 때마다 기념되어지고 현재화되어지는 능력을 갖게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전례거행은 어떤 한 집단이 미적, 정치적 혹은 종교적으로 동일한 경험을 공유하게 하고, 어떤 특정한 임무를 채택하게끔 통일시켜주는 요소이다. 전례거행의 요소들은, 특정한 목적을 향해 끌리고 그것을 향하는 의지가 존재하는 만큼, 거기에 참석하는 사람들에게 교육적이고, 집단의 도덕적 촉매역할을 한다.
 
비본질적인 목적을 위해 전례거행을 이용할 위험에도 불구하고, 거행한다는 것은 상징하는 것의 본질 속에, 개념으로도 또 규정으로도 축소될 수 없는 한 실재를 담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거행한다는 것은 비이성적이고 감성적인 어떤 양상으로, 논리 이전의 충동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다. 거행한다는 것은, 반복되어지는 전례거행의 경우나, 집단의 규정이나 관습에 의해 정해진 것이나, 즉흥성과 강한 경이를 수반한다. 전례거행은 무엇인가 생생한 것을 요구하며, 차가운 논리에 의해 구속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은 전례거행이 무질서하거나 파괴적인 것이어야 한다는 소리는 아니다. 그와 반대로 전례거행은, 스스로 실현하고 스스로 살아갈수록, 더욱 창조적이 된다. 예절과 본문은 다만 전례거행의 목적에 봉사하는 수단이다.
 
한편, 거행한다는 것은 '축제를 벌리다', 또는 어휘의 긍정적인 측면에서 살펴보아 '놀다'라는 단어와 동의어이다. 그래서, 거행한다는 것은 자유롭고, 거저이고, 자신의 이익에 구애받지 않고, 다른 목적이 필요 없는 활동이며, 다시 말하면 의미로 충만한 것이고, 아름다움으로, 자유로, 선으로 개방하려 직접적인 일상을 초월하도록 능력과 영혼의 에너지들이 움직이게 하지만, 결코 비본질적인 목적을 위해 사용되어서는 안돼는 것이다. 거행한다는 것은 영원의 맛보기이며 느낌 이전의 것이다.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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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전례신학의 관점에서
 
전례거행의 이러한 인간학적인 가치들은 그리스도교 전례의 특성 속에 흡수되었다.   
 
가) 전례거행은 [구원의 현재화 차원]을 가진다 : "종교적 거행의 특징은 신적 생명이 확실히 참석자들에게 통교된다는 점이다. 그것은 단순한 기억이 아니라, 하나의 현존이다. 신성(神性)은 축제의 거행에 현존하고, 그 효과를 통하여 알아차리고 확인할 수 있다. 종교적 관점에서 풍성한 그리스어는 이런 현상에 '에피파니아(제의적인 의미에서 나타남)'라는 명사를 사용한다".16)
 
그렇다면, 전례거행 속에서 '히에로파니아(인간에게 신비와의 통교를 제공하는 중재)'가 주어질 뿐만 아니라, 또한 교회의 기도가 드려지는 예배 행위를 통하여 구원의 효과적인 현존을 이룬다. 교회의 기도는 주님에게 사제의 행위를 효과적으로 실현할 것을 청한다(에피클레시스epiclesis; 청원). 하느님을 현존케 하는 마술과 같은 모방(미메시스mimesis)은 없다. 오로지 있는 것은, 항상 선포된 말씀에 뒤따라, 의미 있는 행동에 동반되어 나타나는 청원이다. 이들을 모두 합하면 예절ritus이 된다.17)
 
나) [종말론적 차원] : 구원 사건 속에서 신적 행위의 현존은 이제 전례거행이 되고, 거기에서 이 세상의 한계를 넘어서는 하느님의 선물들의 충만함을 미리 맛보게 한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이 지상의 전례에 참여할 때, 우리 순례의 목적지인 성도 예루살렘에서 거행되는 천상의 전례를 미리 맛보고 그것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곳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성전과 참된 장막의 사제로서 성부 오른편에 앉아 계신다. 그리고 우리는 지상의 전례에서 하늘의 만군의 무리와 더불어 주께 영광의 찬미가를 부르며, 성인들을 기억하고 공경하면서 그들의 일치에 한 몫 끼이기를 희망하며, 구세주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생명으로서 나타나시고, 우리도 그이와 더불어 영광 중에 나타날 때까지, 그이를 기다리는 것이다". (전례헌장 8).18)
 
동방전례는, 전례거행에서 이루는 천상교회와의 통교를 많이 강조하는데, 특히 성전건물, 전례복 그리고 예절 그 자체가 천상 영광의 가시화를 상징한다. 또한, 로마 전례도 전례거행에서 이런 본질적 관점을 실현하는 충분한 요소를 가지고 있다.19)
 
다) [공동체적이고 교회론적인 차원] : 전례거행은 그리스도와 교계적으로 구성된 하느님의 백성의 행위이다. 다시 말하면,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그 지체인 신비체 전체의 행위이다. 이런 이유로, 전례거행은 교회의 존재 이유이고 그 표현이며, 모든 이로 하여금 고유의 신분과 직책에 따라 하나의 행위에 참여하도록 방향 지워져 있다.20)
 
한편, 전례거행과, 사회적이고 공적인 삶을 포함한 교회의 선교와 사목의 상호관계를 잊어버릴 수 없다.21)
 
라) [전례거행의 첫 번째 목적]은 더욱 효과적으로 메시지나 가르침을 전달하는 교육학 방법이 아니다. 사실, "전례거행은 말씀과 행위를 통하여, 성령의 능력으로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실현된 하느님의 구원을 현재화하는 것이다. 전례거행에서, 현재화하기 위하여, 구원역사의 사건들, 특히 주님의 탄생, 죽음과 부활, 승천과 오순절에 제자들에게 행하신 성령강림을 기념한다. 이 모든 것은 전례를 거행하는 백성이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또 그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거행하다'라는 동사는 성서적 표현 '기념하다'의 번역이다".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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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전례거행의 정의
 
전례거행의 성질을 다루던 인간학적이고 신학적인 요소들을 종합하여, 이토록 복잡한 사회적 현상에 대한 정의로 향한다. 우선 드러나는 첫 번째는 총체적인 행위라는 전례거행의 특징이니, 다시 말하면, 전례거행이 개인적 단계에서나 공동체적 단계에서나 표현적이고도 의미적인 행위라는 것이다. 둘째는 이런 행위가 전례거행에 개입하는 모든 요소들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구원의 현존을 드러내고, 구원을 구체적으로 통교한다는 것이다. 셋째로 전례거행은 거기에 참석하는 사람들의 전 존재를 감화시켜, 삶의 올바른 품행으로 이끌고, 하느님께 바치는 거룩한 제물이 되게 한다. 이 세 가지를 자세히 살펴본다면;
 
첫 번째 관점은 [제의적 차원]에서 전례거행을 말한다. 거행한다는 것은 과거에 일어난 사건들을 의미적으로 전례적으로 실현하는 것이다. 이런 뜻에서 전례거행은 벌어지는 전례, 즉 구체적인 시간과 장소에서 교회의 예배작용과 성화작용이 실현되는 순간을 말한다. 이런 관점에서, 전례거행은 네 가지 구성요소를 가진다: 1) 전례거행의 동기를 부여하는 구원사건, 2) 공동체가 이루는 전례회중, 3) 전례행위, 4) 모든 것을 채우는 축제.23)
 
두 번째 관점은 전례거행에 있어서 [신비적 차원]을 언급하며 신비로서의 전례에 대한 것으로, 다시 말하면, 전례에 참여하는 백성 전체와 각 개인의 삶에 하느님의 현존이 실현되는 것이다. 여기서 전례거행의 내용, 즉 전례행위 속에 통교되고 표현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실재를 다룬다.
 
세 번째 관점은 전례거행에 있어서 [존재의 차원]에 대해 다루며, 삶으로써의 전례를 말한다. 회개한 존재자의 일상의 삶은 전례 안에서 상징과 행동으로 바뀌어, 영과 진리 안에서 아버지께 드리는 예배가 된다. 전례거행 안에 이것은 정확하게 드러난다. 전례는 교회 활동과 그리스도교적 삶의 '원천이요 정상'이다 (전례헌장 10, 교회헌장 11).
 
전례거행은, '성령의 힘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으로부터 실현된 구원을 말씀과 행위를 통해 기념하고 현재화하는 행위인 전례가, 표현적으로, 상징적으로, 제의적으로, 그리고 성사적으로 이루어지는 순간'이라 정의할 수 있다.
 
전례거행은 좁은 뜻으로 우선 전례의 축제적이고 표현적이고 제의적인 차원에 응답하는 하나의 행위이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몇몇 요소들이 제공되어야 한다: 1) 전례거행에 동기를 부여하는 상황, 2) 전례거행의 주체, 3) 일련의 행위, 그리고 4) 시간과 공간 안에서 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 등이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는 신비로써의 전례에 대해 언급한 후에(단원 1, 그리스도교 신비의 전례거행, 제 1 장 이후), 전례 거행에 대한 문제들에 대해 다룬다: "누가 거행하는가? 어떻게 거행하는가? 언제 거행하는가? 어디에서 거행하는가?" (교리 1135).
 
앞으로 다루어질 장들은 이런 모든 의문에 대해 대답을 제공하며 나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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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모든 전례거행의 중심인 그리스도의 신비
 
이것은 '구원경륜 속의 전례'에 대해 말한 앞의 장(章)에 이어지는 것으로, 전례거행의 개념을 적용하여 살펴보는 것이다. 전례에 존재하는 구원 역사와 그리스도의 신비의 중심성이, 다른 사람들이나 교회의 삶의 여러 사건들을 전례에서 제외할 것을 요구 않는다. 이들은 전례에 포함되어 있다. 그 예는, 1) 어떤 면에서 삶의 이정표가 되는 성사와 준성사들의 거행, 2) 기쁘고 슬픈 기념일들, 3) 장소에 대한 그리고 노동, 통신 교통 수단들에 대한 축복, 끝으로, 4)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관련을 가진 그리스도교 축제와 교회가 제정한 날들 등이다.
 
전례는 전례거행에서 이런 일상의 사건들에게도 자리를 제공할 뿐 아니라, 그 사건들 속에서 독서, 노래, 기도문, 예절, 대축제 등과 같은 전례 행위의 몇몇 요소들을 구성하기 위한 발판을 얻는다. 그렇다면 전례는, 이러한 인간적이고, 사회적이고, 교회적인 그러나 직접적으로 전례적인 것은 아닌 동기들을 받아들여, 이 모든 것들이 항상 예수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와 관련 속에서, 또한 파스카 신비의 구원 행위를 유익하게 하고 그 현존의 증인이 되게 한다.24)
 
전례를 거행할 때마다, 구원의 신비 주위로 항상 조금씩 더 큰 원들이 나타난다고 말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고 그 중심에는 항상 그리스도와 교회의 신비가 존재한다.
[이 글은 현재 로마 안셀모 대학에서 전례학을 전공중인 대구대교구 장신호 요한보스코 신부님께서 번역하신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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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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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부분은 훌리안 로페스 마르틴 (Julian Lopez Martin) 주교의 저서 La Liturgia de la Iglesia, [= BAC Manuales 6], Madrid 1994, pp. 73-81의 제 6장 La celebraci n 을 번역한 것이다.
2) 교리 1135-1209, "파스카 신비의 성사적 거행"의 제목.
3) 참조. Forcellini, A., Lexicon totius latinitatis, Prato 1839, pp. 520-521. 또한 참조. Droste, B., "Celebrare" in der r mischen Liturgiesprache, Munich 1963.
4) 참조. Pelvi, V., "Per una teologia della 'celebrazione'. Fondamenti biblici e patristici", in: Asprenas 23 (1976) 411-424.
5) 참조. Mayer, R., "Fiesta(eort )", in: DTNT 2, pp. 188-193.
6) 참조. Coenen, L., "Llamada(kal  )", in: DTNT 3, pp. 9-15.
7) 테르툴리아노, Advers. Valent. 30, in: CSEL 47, 206; De oratione 23, 4, in: CCL 1, 272; 성 치프리아노, De orat. dominica 11, in: PL 4, 526; Ep. 7, 7, in: PL 4, 242.
8) 성 암브로시오, De poenit. 2, 7, in: PL 16, 511-512; De Abraham 1, 5, in: PL 14, 437.
9) 카시아노, De Caenae instit. 3, in: PL 49, 114.
10) 성 아우구스티노, Serm. 325, 1, in: PL 38, 1447; Serm. 302, 1, in: PL 38, 1385; De civit. Dei 10, 6, in: PL 41, 284 등.
11) 성 레오, Serm. 63, 7, in: PL 54, 357; 참조. Pascual, J.A., "El misterio pascual seg n san Le n Magno", in: RET 24 (1964) 299-314; Soos, M. B. de, Le Myst re liturgique d apr s saint L on le Grand (= LQF 34), M nster i. W. 1958.
12) 참조. Trettel, G., "Celebrare i misteri in Cromazio d Aquileia", in: EL 94 (1980) 27-68, 145-175.
13) 참조. Blaise, A., Le vocabulaire latin des principaux th mes liturgiques, Turnhout 1966 등.
14) 참조. Frattallone, R., "La celebrazione liturgica: premesse antropologico - teologiche", in: EL 92 (1978) 245-260.
15) 참조. Guardini, R., "La liturgia como juego", in: El esp ritu de la liturgia, Barcelona 1962, pp. 137-157; Maggiani, S., "Per una definizione del concetto di liturgia: le categorie di 'gratuit ' e di 'gioco'. La proposta di R. Guardini", in: Dell Oro, F., Mysterion. Miscellanea S. Marsili, Leumann-Torino 1981, pp. 89-114; Thuriam, M., "La liturgia   una festa", in: Not 172 (1980) 578-581.
16) Casel, O., "La notion de jour de f te", in: LMD 1 (1945) 23-36; 또한 참조. 같은 저자, "Hodie", 앞의 책 65 (1961) 127-132. 참조. Neunheuser, B., "La celebrazione liturgica nella prospettiva di Odo Casel", in: RL 57 (1970) 248-256.
17) 참조. Federici, T., "Liturgia, creativit , interiorizzazione, attuazione", in: Not 127 (1977) 73-87; 또한 Dupont, V.L., "Le dynamisme de l action liturgique. Une  tude de la mystagogie de saint Maxime le Confesseur", in: RevSR 65 (1991) 363-388.
18) 참조. 교회헌장 49-50; 교리서 1137-1139.
19) 참조. Andronikof, C., El sentido de la liturgia. La relaci n entre Dios y el hombre, Valencia 1992, pp. 217-235; Aug , M., "La comunidad eclesial colocada en la tensi n entre el mundo actual y el mundo futuro", in: Claretianum 10 (1970) 139-162; Brovelli, F. (dir.), Escatologia e liturgia. Aspetti escatologici del celebrare cristiano (= BELS 45), Roma 1988; Castellano, J., "Escatolog a", in: NDL, pp. 659-676; Magrassi, M., "Il clima escatologico della celebrazione primitiva", in: RL 53 (1966) 374-939; Mart nez, G., La escatolog a en la liturgia romana antigua, Madrid 1976; Rordorf, W., "Liturgie et eschatologie", in: EL 94 (1980) 385-395; Triacca, A.M.-Pistoia, A.(dir.), Eschatologie et liturgie (= BELS 35), Roma 1985.  
20) 참조. L pez Mart n, J., "La comunidad como clave de la celebraci n", in: Ph 172 (1989) 287-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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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Coffy, R., "La c l bration, lieu de l  ducation de la foi", in: LMD 140 (1979) 25-40, 특히 30; 참조. 같은 저자, Una Iglesia que celebra y que ora, Madrid 1976; Vilanova, E., "La Iglesia celebra la fe", in: Ph 177 (1990) 211-226.
23) 참조. Llopis, J., "Celebraci n lit rgica", in: Gran Enciclopedia Rialp 5 (1971) 441-444, 특히 442.
24) 참조. L pez Mart n 2, pp. 63-99; Maldonado, L., "Los signos de los tiempos en el coraz n del culto", in: Ph 62 (1971) 211-214; Seasoltz, K., "Motivos y matices de las celebrationes lit rgicas actuales", in: Conc 172 (1982) 197-210; Sottocornola, F., "Celebrare l unico mistero di Cristo nei molti avvenimenti della storia", in: RL 64 (1977) 333-346; Tena, P., "La celebraci n lit rgica, entre el acontecimiento y los acontecimientos", in: Ph 58 (1970) 371-383.
 
[출처 : 전례학 동호회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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