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자료실 > 한국의 성지와 사적지 > 김범우 묘

어찌 이리 먼 곳에

순교자 김범우의 묘가 발견된 것은 이제 겨우 6년이다. 1985년 김범우의 묘를 백방으로 찾던 후손 김동환과 영남 지방 교회사 연구에 몸바친 마백락 씨 등은 1989년 극적으로 후손의 외손 중 한 명을 만나 김범우의 묘로 지적해 준 묘를 확인함으로써 비로소 김범우의 묘를 찾아낸다. 그리하여 김범우의 묘소는 밀양군 삼랑진읍 용전동 산 102번지 만어산 중턱에서 발견하게 됐고 그의 신앙과 생애에 대한 세인들의 관심이 높아졌다.
 
김범우의 묘가 있는 밀양군은 중부 경남의 중심지로 일찍부터 넓고 기름진 평야와 높은 산, 깊은 계곡이 많은 아름다운 고장으로 잘 알려져 있다. 또 임진왜란 때 이름을 떨친 사명 대사, 휴정 등 훌륭한 인재가 많이 배출된 고장이다. 특히 재약산(858미터)의 표충사와 만어산(670미터)의 만어사는 여러 가지 전설이 전해지고 있는 고찰(古刹)이기도 하다.
 
이 지역에 대한 천주교의 전래는 바로 김범우의 귀양살이에서부터 시작된다. 유명한 역관 집안에서 태어난 김범우는 1784년 이승훈이 북경에서 영세 후 돌아와 한국 교회가 창립되자 이에 같이 참여했으며 이듬해인 1785년에는 서울 명례방의 자기 집에서 신앙 집회를 개최하다가 추조(형조)관리들에게 발각된다.
 
이것이 바로 일명 을사 추조 적발 사건으로 그는 동료들과 함께 형조에 끌려가 많은 매를 맞고 옥에 갇혔으나 끝내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는다. 그와 함께 끌려간 이벽, 이승훈, 정약용 등은 모두 소위 양반계층에 속한 인물들인지라 즉시 풀려 나왔지만 김범우는 교회 집회 장소의 집주인일 뿐 아니라 중인(中人) 신분이었기 때문에 멀리 밀양으로 귀양을 떠나야만 했다.
 
처연한 신세가 되어 그는 만어산의 금장굴 부근에서 2년간 귀양을 살게 된다. 하지만 그는 귀향된 후에도 공공연하게 천주교를 신봉할 것을 설득하면서 "큰 소리로 기도문을 외우고 자기 말을 듣고자 하는 모든 이를 가르쳤다."고 샤를 달레의 기록에는 전해진다.
 
그러나 결국 그는 혹독한 매질의 여독으로 2년 동안 고생하다가 세상을 떠난다. 그가 죽은 뒤 후손들은 만어산을 중심으로 삼랑진, 단장면의 범귀리 등에 살면서 신앙을 전파했다.
 
용전리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산등성이에 위치한 김범우의 묘소로 가는 길목에는 '오순절 평화의 마을'이 나타난다. 이 지역의 지리와 사적지에 대해 잘 모르는 순례자들은 이곳에서 상세한 안내를 받는 것이 좋다. [주평국, 하늘에서 땅 끝까지 - 향내나는 그분들의 발자국을 따라서, 가톨릭출판사,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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